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북

연구원들이

  • 소현
  • 조회 수 2318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07년 12월 10일 10시 38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1887년에 태어나 인류학자로서 1948년에 사망한 루스 베네딕트는 미드와 함께 2대 여류학자로 손꼽힌다. 1909년 바사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어학교사와 시인으로 활동하다 생화학자인 스탠리 베네딕트와 결혼하였다. 1919년 인류학을 접하게 되고 컬럼비아 대학에 입학하여, 유명한 미국의 문화 인류학자인 프란츠 보아스를 만나게 되면서 본격적인 인류학 연구에 빠져들었다. 아메리칸 인디언 종족들의 민화와 종교를 연구하여 컬럼비아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모교에서 인류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루스 베네딕트는 문화 인류학자로서 1944녀 6월 일본에 대한 연구를 위촉받았다. 이 때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고, 당시 일본과 전쟁 중이던 미국은 미국인으로서는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일본인의 행동을 연구하고자 했다. 일본연구를 시작하여 2년 뒤에 “국화와 칼󰡓출간 되었다. 저서로는 <문화의 패턴(patterns of culture : 1934)>, <종족(Race : Science& Politics :1940)>이 있다.

2, 흥미로운 글귀

23-24-어떤 국민이 자기의 생활을 들여다보는 렌즈는 다른 국민이 사용하는 렌즈와 다르다. 우리가 사물을 볼 때에 반드시 그것을 통해 보는 안구를 의식하기는 어렵다. 어떤 나라도 새삼스럽게 그러한 것을 문제 삼지 않는다. 그리하여 어떤 국민의 공통된 인생관을 부여하는 초점을 맞추는 법, 원근을 취하는 요령이 그 국민에게는 신에게 받은 그대로의 풍경 배치와도 같이 생각하게 된다. 안경의 경우 안경을 쓴 당사자가 렌즈의 처방을 알고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국민이 자기의 세계관을 분석하는데 기대를 걸 수가 없다. 만일 안경에 관해 알고 싶으면 우리는 안과 의사를 양성하여 그 사람에게 의뢰하면 그가 어떠한 안경의 처방도 써 줄 수 있다고 기대한다. 우리는 사회과학자의 작업이야말로 의심할 바 없이 현대 세계의 여러 나라 국민에 관해 이 안과 의사와 같은 역할을 하리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이 작업은 어느 정도의 강인한 정신과 어느 정도의 관용성을 함께 필요로 한다.

32-반면 일본은 전쟁의 원인을 이와는 다른 시각에서 보았다. 각국이 절대적 주권을 가지고 있는 동안 세계는 무정부 상태가 계속된다. 일본은 계층제도를 부립하기 위해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질서의 지도자는 물론 일본이다. 왜냐하면 일본은 위로부터 아래까지 계층적으로 조직된 유일한 나라이며, 따라서 ‘저마다의 알맞은 위치’를 가져야 할 필요성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38-첫째로, 그들이 지적한 점은 아나운서가 말한 그대로 이 대위의 영웅적 행위가 그야말로 ‘기적적인 사실’이라는 것이었다. 어째서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영혼은 단련할 수가 있다. 이 대위는 분명히 수양을 쌓은 대가였다. 만일 일본은 전부가 잘 알고 있듯이 “강인한 정신은 사후 천년이나 지속할 수가 있다”고 본다면, ‘책임’을 생활 전체의 중추적 원칙으로 삼아 온 이 대위의 죽은 육체 속에 영혼이 몇 시간 더 머문다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 아니었겠는가? 일본인은 사람이란 특별한 수행에 의해 그 정신을 지고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 대위는 그 수행법을 배워서 효과를 거두었던 것이다.

40-모든 것이 예기되고 모든 것이 충분히 계획된 일들이라는 가정에 서야만 일본인은 일체의 사태는 이쪽에서 적극적으로 바란 것이라는 것, 결코 수동적으로 당하고 있지 않다는 그들에겐 필수적인 주장을 계속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수동적으로 공격당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적극적으로 적을 우리 손안에 끌어들였다고 생각해야 한다.” “적이여, 올테면 오라, 우리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말하는 대신, 오히려 ‘기다리고 기다렸던 호기가 왔다. 우리는 이 좋은 기회가 온 것을 기뻐한다’고 말할 것이다. ”기회에는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우연히 부딪히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우리가 만들어 내는 것이다. 매우 어려운 시기를 당해서는 반드시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 내야 한다.“

51-죽느냐 사느냐의 위험을 태연히 감수하는 것이 훌륭한 태도이지, 위험 예방책을 취하는 것은 경명해야 할 일이다. / 일본군들은 죽은 그 자체가 정신의 승리이며, 우리 미국인 같이 환자를 충분히 간호하는 것은 전투기의 구명 도구처럼 영웅적 행위를 해치는 것으로 가르침을 받았던 것이다.

53-일본인에게 명예란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것이었다. 절망적 상황에 몰렸을 때에는 일본군은 최후의 수류탄 하나로 자살하든가, 무기 없이 적진으로 돌격하여 집단적 자살을 하든가 해야지 절대로 항복해서는 안 된다. 만일 부상당했다든가 기절하여 포로가 된 경우조차도 그는 “일본에 돌아가면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다”고 여긴다. 그는 명예를 잃었다. 그 이전의 생활에서 본다면 그는 ‘죽은자’였다.

56-“그러나 당신들의 관습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나는 모범적인 포로가 되겠소.”

59-“각자가 알맞은 위치를 갖는다(take one's proper staion)"

66-그것은 결코 내용 없는 몸짓이 아니다. 그것은 머리를 수그리는 사람이, 사실은 자기 뜻대로 행동할 권리를 승인하는 것이며, 절을 받는 사람은 그 사람대로 그 지위에 당연히 돌아가는 어떤 책임을 승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에게는 성별과 세대의 구별과 장자 상속권에 입각한 계층 제도가 가정생활의 근간이다.

73-특권과 특권 사이의 형식적인 경계선을 누군가 다른 사람이 보이지 않는 데서 조종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파괴되지는 않는다. 겉으로 드러난 부분이 실제의 지배 관계에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특권 관계는 변경되거나 수정되지 않는다.

76-황실을 의미하는 일본어의 명칭은 ‘구름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

88-실상 일본인이 천황에 대해 품고 있는 관념은 태평양 여러 섬에서 종종 목격되는 관념과 같은 것이다. 그는 어떤 경우에는 정치에 관여하며, 또 어떤 경우에는 관여하지 않는 신성 수장이다. 태평양 어느 섬에서는 그는 스스로 권력을 행사하며, 어느 섬에서는 그 권력을 타인에게 위탁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항시 신성한 존재였다. 뉴질랜드의 여러 부족들 사이에서는 신성 수장은 신성 불가침이다. 그는 스스로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되므로 하인이 입에다 떠 넣어 준다. 그때 숟가락이 그의 신성한 이에 닿아서는 안 된다. 또한 외출할 때는 결코 땅을 밟아서는 안 된다. 그가 신성한 발로 땅을 밟으면 그 땅은 자동적으로 성지가 되어 신성 수장의 소유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특히, 신성 수장의 신성 불가침한 머리는 아무도 손을 댈 수 없다. 그가 하는 말은 부족 신들의 귀에까지 들리는 것이다.

90-사람들은 그것을 바꾸든가 혹은 그것에 반항하는 대신, 그것을 지키는 데서 자신의 용기와 고결함을 드러내었다.
91-각각의 계급에 일종의 보증이 주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천민 계금일지라도 특수한 직업을 독점하는 권리를 보증 받았고, 또 그 자치 단체는 당국자의 승인을 받고 있었다. 각 계급에 가해지는 제한은 컸지만 그 대신 질서와 보증이 있었다. 카스트 제도에서 인도에서는 전혀 인정되지 않는 어느 정도의 유연성이 있었다.

93-일본이 유럽 대륙의 여러 나라들보다도 더 많은 계급간의 이동을 승인하는 것은 미묘하고도 이외의 일이지만,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무엇보다도 유력한 증거는 귀족과 서민 사이에 계급 투쟁이 행해진 흔적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다. 일본에서는 계급간의 사이가 밀접하였다.

101-메이지유신 : 그들은 그들의 임무를 결코 이데올로기적인 혁명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것을 하나의 사업으로 취급하였다.

110-국가의 통제를 받는 영역이 바로 국가신토이다. 국가신토는 미국에서 국기에 대해 경례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국민적 상징에 정당한 경의를 표하는 것을 기본 취지로 하기 때문에 “종교가 아니다”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그러므로 일본은 서양의 신앙의 자유 원칙에 조금도 저촉됨이 없이 모든 국민에게 국가신토를 요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마치 미국에서 성조기에 대해 경례를 요구하는 것이 조금도 신앙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것은 단순한 충성의 상징에 지나지 않았다.

114-전문적으로 종교적 고행에 몸을 바친 몇몇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본에서 종교란 결코 위압감을 주는 것이 아니다. 일본인은 즐겨 먼 곳의 신사에 절에 참배하러 가지만 이것 역시 휴일을 즐기려는 것이다.

124-남에게 빚이 있는 인간은 극도로 화를 잘 내는 법인데, 일본인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또한 이 채무가 일본인에게 갖가지 큰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다. 오블리게이션에 해당하는 일본말은 ‘온’이다. 온은 여러 가지 용법 전부를 관통하는 의미는, 사람이 할 수 있는 한도에서 젊어질 수 있는 부담, 채무, 무거운 짐이다. 사람은 윗사람으로부터 온을 받는다. 그리고 윗사람이 아니거나 또는 적어도 자기 자신과 동등하지 않은 사람으로부터 온을 받는 행위는 불쾌한 열등감을 준다. 일본인이 “나는 누구에게서 온을 입었다”라고 말하는 것은 “나는 누구에 대하여 의무의 부담을 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그들은 채권자나 은혜 입힌 사람을 그들의 ‘온진’이라고 부른다.

131-비교적 인연이 먼 사람으로부터 뜻밖의 은혜를 입는다는 것은 일본인에게 가장 큰 불쾌감을 느끼게 하는 일이다.

134-136-그러나 채무자가 되는 것은 대단히 괴로운 일이어서 쉽게 화를 내기도 한다. 이와 같은 사소한 일에 관한 신경 과민이나 상처받기 쉬운 생각은 미국에서는 젊은 푹력배들의 기록이나, 신경쇠약증 환자의 병력 기록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다.

142-사랑, 친절, 너그러운 마음 등은 미국에서는 부수적인 대가가 요구되지 않기 때문에 존중되지만, 일본에서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그런 행위를 받은 사람은 채무자가 된다. 일본인이 잘 쓰는 속담이 있다. “온을 받는 데에는 더없이 타고난 너그러운 마음이 필요하다”
156-일본의 정치가들이 천황을 신성한 수장으로 받들고, 세속적 생활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하는 계획을 세운 것은 정말로 타당한 조처였다. 일본에서 천황은 전국민을 통일하여 반감 없이 국가에 봉사하도록 하는 수단으로서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단순히 천황을 국민의 아버지로 삼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였다. 왜냐하면 가정의 아버지는 자식들이 모든 의미를 다하여 은혜를 갚기는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존경받을 수 없는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천황은 일체의 세속적 고려에서 떠난 신성한 수장이어야 했다. 일본인 최고의 덕인 천황에 대한 충절, 즉 주忠는 속세와의 접촉에 의하여 더럽혀지지 않는 하나의 환상적인 ‘선량한 아버지’를 무의식적으로 받들어야 한다. 천왕은 책임 있는 국가의 원수로서가 아니라 일본 통합의 최고의 상징으로 필요한 존재였다.

160-천황은 이처럼 여러 가지 방법에 의하여 국내의 경쟁이 전혀 미치지 않는 곳에 놓여진 상징이 되어 있었다. 성조기에 대한 충성이 일체의 정당 정치를 초월한 영역에 있는 것과 같이, 천황은 ‘침범될 수 없는 것’이었다. 우리는 만일 그것이 인간이라면 그러한 일이 전혀 온당치 못한 것으로 생각할 정도로 국기를 정중하게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일본인은 더 없는 상징성을 지닌 인간을 철저하게 활용하였다. 국민은 공경을 다하고 천황은 거기에 응답할 수가 있었다. 그들은 천황이 ‘국민을 염려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황송하여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폐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 온몸을 희생하였다. 일본 문화처럼 완전히 개인적인 유대 위에 입각한 문화에서는 천황은 국기 따위는 감히 미치지 못하는 충성의 상징이었다. 훈련중인 교사가 만일 인간 최고의 의무가 조국애라고 말한다면 낙제였다. 그것은 천황에 대한 보은이라고 말해야 했다.

162-양국 국민의 자존심은 각각 다른 태도와 결부되어 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미국에서는 그것은 자신의 일은 자신이 처리한다는 태도에 의존하고 있고, 일본에서는 자신이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은혜를 갚는 것에 의존하고 있다.

166-“기리義理 처럼 쓰라린 것은 없다” 기리는 올바른 도리, 사람이 좇아야만 할 길, 세상에 대한 변명 때문에 본의 아니게 하는 일‘로 되어 있다.

167-기리는 두 개의 전혀 다른 종류로 나누어진다. 여기에서 ‘세상에 대한’-문자 그대로는 ‘기리를 갚는 것’-이라 부르는 것은 동년배에게 온恩을 갚는 의무이고, ‘이름에 대한 기리’라 부르는 것은 대체로 독일인의 ‘명예’와 같은 것으로 자신의 이름과 명성이 어떤 비난에 의해 더럽혀지지 않도록 하는 의무이다. 세상에 대한 기리는 개략적으로 말하면 계약 관계의 이행이라고 할 수 있다.

188-‘교사로서의 이름에 대한 기리가 가리키는 것은 특히 이와 같은 자기 방어의 태도이다. 실업가로서의 이름에 대한 기리로, 그의 자산이 고갈되어 위기에 빠져 있다든가, 그가 자신의 회사를 위해 세운 계획이 실패하였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든 알게 할 수 없다. 또한 외교관은 기리 때문에 자신의 외교 방침의 실패를 인정할 수 없다. 이처럼 기리의 모든 용법에서 공통적으로 한 인간과 그가 하는 일이 극단적으로 동일시되고 있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의 행위 또는 능력에 대한 비판은 자동적으로 그 인간 자체에 대한 비판이 된다.

189-이와 같은 신경 과민은 경쟁에 진 경우에 특히 현저하게 나타난다. 취직할 때 자기 이외의 사람이 채용되었다든가, 또는 경쟁 시험에 낙제한 경우, 패자는 그런 실패 때문에 ‘창피를당한다’. 이러한 창피는 분발을 위한 강한 자극이 되는 경우도 있으나, 대개는 의기 소침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그는 자신을 잃고는 우울해지든지 화를 내든지 혹은 동시에 이 두 가지 상태에 빠진다. 그의 노력은 저해된다. 미국인에게 특히 중요한 것은, 그와 같은 경쟁이 우리 자신의 생활 구조 속에서 거둬들일 수 있는 바람직한 사회적 효과를 일본에서는 거둬들일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190-그들은 경쟁을 너무나 민감하게 자신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공격이라 여긴다. 여기에서 그들은 그들이 종사하는 일에 전념하는 대신에 그들의 주의력을 자신과 공격자의 관계에 빼앗기는 것이다.

196-나는 늘 상대의 분노를 용서한다. 곧잘 화를 내고 마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누가 나에게 거짓말을 한 경우에는 대체로 용서해 준다. 그 이유는 인간의 성격은 정말 약하고, 곤란에 직면하면 마음을 굳게 가질 수 없어서 누구나 거짓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는 또한 누가 나에 대해 근거 없는 소문을 낸다든가 험담을 하는 경우에도 용서한다. 그것은 누구든 다른 사람이 그렇게 설득당하게 되면, 정말 쉽게 빠지는 유혹이기 때문이다. 살인까지도 사정에 따라서는 용서할 수 있다. 그러나 조소만은 전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왜냐하면 고의적인 불성실이 아니고서야 죄없는 인간을 조소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들에게 내 라므대로 두 단어의 정의를 말해 주고 싶다. 살인자-그는 타인의 육체를 살해한 인간이다. 조소자-그는 타인의 혼과 마음을 살해한 것이다. 혼이나 마음은 육체보다 휠씬 귀한 것이다. 따라서 조소는 가장 큰 죄이다. 실제로 그 선교사 부부는 나의 혼과 마음을 살해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마음에 대단한 상처를 입었다.그리고 내 마음은 “왜 ‘너 따위가’라고 말하는가?라고 외쳤다.”

199-일본인은 사람이란 스스로 모욕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 한 모욕받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사람을 모욕하는 것은 ‘당사자로부터 나오는 것’ 뿐이요.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을 향하여 말하거나 행하거나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치는 윤리를 지니고 있지는 않다.

202-일본인은 실패나 비방, 배척 때문에 상처받기 쉽다. 따라서 타인을 괴롭히기보다는 너무도 쉽게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일이 많다. 최근 수십년간 일본 소설 중에는 교양 있는 일본인들이 빈번히 자아를잃고 분노를 폭발시키기도 하고, 반대로 극단적인 우울에 빠져들기도 하는 모습이 거듭 묘사되고 있다. 이들 소설의 주요 인물들은 권태를 느낀다. 매일의 생활에 싫증나고 가정에 싫증나고 도시에 싫증나고 시골에 싫증난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마음에 그려져 있는 위대한 목표에 비하면 일체의 다른 노력들이 시시하게 보이는, 저 높은 이상 세계에 도달하고자 하는 권태는 아니다. 즉, 그것은 현실과 이상간의 너무 큰 차이에서 생기는 권태가 아닌 것이다. 일본인은 중대한 사명을 꿈꿀 때 권태를 잊는다. 그들은 그 목표가 아무리 원대한 것일지라도 완전히 자취도 없이 권태를 잊어버린다.

209-맹렬한 노력과 단순한 답보 상태인 무기력 사이를, 기분이 흔들림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일본인의 본성인 것이다. 일본인은 지금에 와서는 패전국으로서의 명예를 옹호하는 데 모든 뜻을 집중하고 있다. 그래서 연합국에 대해 우호적 태도를 취함으로써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필연적 귀결로서 대부분의 일본인은 무엇이든 당신이 하는 대로 내맡기는 태도를 취함으로써 그 목적을 가장 안전하게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무엇을 하더라도 안 될테니 잠시 걸음을 멈추어 형세를 관망하는 것이 제일이다”라는 생각을 갖는 것을 정말 쉬운 일이다. 무기력은 확산되어 같다.

212-일본인은 침략의 근거를 다른 데서 구한다. 그들은 반드시 세계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기를 원한다. 그들은 대국이 존경을 받는 것은 무력에 의해서였다고 생각하고, 이들 나라에 필적하는 나라가 되기 위한 방침을 취하였다. 그들은 자원이 부족하고 기술도 형편없었기 때문에 서구 여러 나라 이상의 악랄한 수단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비상한 노력을 경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하였는데, 그것은 그들에게는 결국 침략은 명예를 위한 길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였다. 기리는 항상 침략 행위의 행사와 상호 존경 관계의 준수를 동시에 의미하였다. 그리하여 패전에 이르러 일본인은 분명히 자기 자신에게 심리적 폭력을 가한다는 의식을 전혀 지니지 않았고, 전자에서 후자로 방향을 바꾸었다. 지금도 그들의 목표는 여전히 명성을 휙득하는 일이다.

217-일본인은 자기 욕망의 만족을 죄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청교도적이지 않다. 그들은 육체적 쾌락을 좋은 것, 함양할 만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쾌락은 추구되고 존경받는다. 그렇지만 쾌학은 일정한 한계 내에 머물게 두어야 한다. 쾌락은 인생의 중대한 사항의 영역을 침입해서는 안된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쾌락을 의무와 마찬가지로 배운다. 많은 문화에서는 쾌락 그 자체를 가르치는 일은 없다.

225-그들은 아내에 속하는 영역과, 성적 향락에 속하는 여역 사이에 울타리를 쳐서 그 둘을 명확하게 구별한다. 이 두 영역은 모두 다 공공연히 인정된다. 양자의 구별은 미국인의 생활에서처럼 한쪽은 세상 사람들에 대해서 공공연히 자인하는 것이고, 다른 쪽은 남의 눈을 피하여 몰래 발을 들여놓는 것이 아니다. 이 둘은 한쪽이 인간의 주요한 의무의 세계에 속하는 데 반하여, 다른 한쪽은 사소한 기분 전환의 세계에 속하는 것으로 구별된다. 이처럼 저마다의 영역의 ‘알맞은 위치’를 정해 두는 습관은 가정의 이상적인 아버지도 혹은 한량도 마찬가지여서 이 두 영역을 다른 세계로 보게 한다.

229-동성애 또한 전통적인 ‘인정’의 일부분을 이루고 있다.

231-이상과 같은 인본인의 ‘일정’관은 몇 가지 중요한 귀결을 수반한다. 그것은 육체와 정신이라는 두 개의 힘이 각자의 생활에서 패권을 휙득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고 생각하는 서구의 철학을 근본적으로 뒤엎는다. 일본인의 철학에서 육체는 악이 아니다. 가능한 육체의 쾌락을 즐기는 것은 죄가 아니다. 정신과 육체는 우주의 대립하는 2대 세력이 아니다. 그리고 일본인은이 신조를 논리적으로 밀고 나가 세계는 선과 악의 싸움터가 아니라는 결론으로까지 가져간다.

232-그들은 인간에게 두 가지의 영혼이 있다고 믿고 있는데, 그것은 서로 싸우는 선의 충동과 악의 충동이 아니다. 그것은 ‘온화한’ 영혼(니기타카)과 ‘거친’ 영혼(아라타마)으로, 그들은 모든 인간의 생애에는 ‘온화’해야 할 경우와 ‘거칠어’야 할 경우가 있다고 믿는다. 한쪽의 영혼이 지옥으로, 다른 한쪽이 천국으로 간다고 정해져 있지 않다. 이 두 개의 영혼은 모두 저마다 다른 경우에 필요하며 선이 된다.

239-일본인의 인생관은 그들의 주忠, 고孝, 기리義理, 진仁, 인정仁情 등의 표현에 나타나 있는 그대로이다. 그들은 ‘인간의 의무 전체’가, 마치 지도위의 여러 지역처럼 명확하게 구별된 몇 개의 부분으로 나우어져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인생이 ‘주의 세계’, ‘고의 세계’, ‘기리의 세계’, ‘진의 세계’, ‘인정의 세계’, 그 밖의 만은 세계로 이루어져 있다고 표현한다. 저마다의 세계를 각각 특유하고 세밀하게 규정된 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사람은 다른 사람을 완전한 인격의 소유자로 판단하지 않고, ‘고를 모른다’든지, ‘기리를 모른다’든지 하는 말로 판단한다.

240-사람은 ‘고를 위해’ 행동할 때와, ‘단순히 기리를 위해’, 혹은 ‘진의 세계에서’ 행동할 때에 전혀 다른 사람처럼-서구인에게는 그렇게 생각되는-행동한다. 또한 각각의 세계에서 법도는 그 ‘세계’ 속의 조건이 변화함에 따라서, 현저히 다른 행동이 당연히 해야 할 행동으로서 요구되도록 정해져 있다.

242-일본인의 생활에서는 모순-우리에게는 모순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이 그들의 인생관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서구인에게 특히 중요한 것은 일본인이 생활을 구분하고 있는 ‘세계’속에는 ‘악의 세계’가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는 일이다. 이것은 일본인이 나쁜 행동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만 인생을 선의 힘과 악의 힘이 싸우는 무대로는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마다의 세계, 저마다의 행동 방침은 그 자체로는 선이다. 만일 만인이 참다운 본능에 따른다고 한다면, 만인은 성인 될 것이다.

257-단지 메이지 천황은 칙유와 칙어만이 참다운 성전이다. 그것들은 정중하게 예를 갖춰, 기침 소리 하나 나지 않는 청중 앞에서 신성한 의식으로 봉독된다. 그것들은 토라(모세의 율법, 구약5시)와 같은 취급을 받고, 봉독 때마다 봉안소에서 꺼냈다가 청중이 해산한 뒤에 다시 정중히 봉안소에 넣는다. 칙어·칙유를 봉독하는 임무를 맞은 사람들은 그 속에 있는 문장을 틀리게 읽으면 책임을 지고 자살하였다.

266-일본인이 ‘성실’이라는 말을 쓸 때의 근본적인 의미는, 일본의 도덕률 및 ‘일본 정신’에 의하여 지도상에 그려진 ‘길(road)'을 따르는 열의이다. 개개의 문맥에서 마코토라는 말이 아무리 특수한 의미를 가진다 하더라도, 그것은 항상 일반적으로 ’일본 정신‘이라고 인정되는 어떤 측면의 칭찬, 덕의 지도 위에 세워져 있는 공인된 이정표의 칭찬이라고 해석하면 틀림이 없다.

274-일본인은 치욕감을 원동력으로 하고 있다. 분명히 정해진 선행의 도표에 따를 수 없는 것, 여러 가지 의무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거나 일어날 수 있는 우연을 예견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이 유지하지 못하거나 일어날 수 있는 우연을 예견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이 치욕(하지)이다. 그들은 수치는 덕의 근본이라고 말한다. 수치를 느끼기 쉬운 인간이야말로 선행의 모든 율법을 실행하는 사람이다.

285-태어난 그대로의 어린아이는 행복하지만 ‘인생을 맛보는’ 능력을 갖지 않고 있다. 정신적 훈련(혹은 자기 훈련 슈요)을 쌓아야 비로소 사람은 충실한 생활을 하고 인생의 ‘맛을 음미하는’ 능력을 획득한다. 이 표현은 통상 ‘이리하여 비로소 인생을 즐길 수가 있다“고 번역되고 있다. 자기훈련은 ”배(자제력이 깃는 곳)-배짱-를 만든다.”

293-그들은 이 방법에 의하여 ‘육관’이 비정상적으로 예민한 상태에 달한다고 한다. 육관은 마음속에 머물고 있다. 그리고 육관은 보통 훈련에 의하여 오관을 지배하게 되는데, 그러나 미각·초각·시각·후각·청각도 황홀 상태에 빠져 있는 동안에 각각 특별한 훈련을 받는다. 소리없는 발소리르 듣고, 그 발소리가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움직여 가는 것을 정확하게 뒤쫓아갈 수가 있게 되는 것, 혹은 또 삼매경을 중단하지 않고 음식의 맛있는 냄새-그런 냄새를 일부러 나게 하여-를 식별하는 것이 참선자들의 수행의 하나이다. 냄새 맡는 것, 보는 것, 듣는 것, 만지는 것, 맛보는 것이 ‘육관을 보조’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삼매경에서, ‘모든 감관을 예민하게’ 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304-화가도, 시인도, 연설가도, 무사도, 마차낙지로 이 무가의 훈련을 이용한다. 그들이 습득하는 것은 무한이 아니고, 유한한 미를 명료하게 방해받지 않고 지각하는 것인데, 혹은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지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꼭 알맞은 정도의 노력을 할 수가 있도록, 수단과 목적을 조화시키는 일이다.

327-일본 여인이 자는 모습을 보이기를 꺼려하는 것은 미국 여인이 나체를 보이는 것을 부끄러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단하다. 사내아이는 아무렇게나 잠을 자도 괜찮지만, 여자아이는 두 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몸을 곧바로 편 채로 자야한다. 이것이 사내아이의 예의 범절과 여자아이의 예의 범절을 구별하는 최초의 규칙의 하나이다.

345-격식이 있는 집안에서는 젊은 부부가 결혼할 때 ‘마쿠라조시(일종의 춘화책)’와 갖가지 체위를 상세하게 그린 두루마리를 준다. 한 일본인이 말한 것처럼 “책을 보고 배울 수 있다. 그것은 마치 정원 만드는 법을 배우는 것과 같은 것이다. 아버지는 일본식 정원 만드는 법을 가르치지는 않는다. 그것은 나이가 들면 스스로 배우는 취미이다.” 책을 보고 배우는 것으로서 성행위와 정원 만들기를 결부시킨 것이 흥미롭다.

347-일본인은 서구에서 말하는 ‘순결한 부인’ 또는 ‘음탕한 여자’와 같이, 한번 낙인이 직히면 변하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이에 따라 그때 그때의 상황에 적합한 행동을 취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이다.

351-사람들은 거울 속에서 혼의 문인 자기 자신의 눈을 본다. 그리고 이것이 ‘부끄러움 없는 자아’로서 살아가게 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 목적을 위하여 언제나 몸에 거울을 지니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그 중에는 집에 모신 불단 안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 보고 자신의 혼을 반성하기 위한 특별한 거울을 놓아 두는 사람도 있다. 그는 ‘자기 자신’을 받들어 모시고, ‘자기 자신’을 예배한다.

386-반면 인류학은 인간의 행동을 관찰한다. 인류학은 행동과학인 것이다. 따라서 수많은 인류학자들이 인구가 많은 곳보다는 한 족속이나 민족의 숫자가 통틀어 몇백 명, 몇천 명쯤 되는 곳을 찾아 들어간 것이다. 그곳에서 인류학자들은 역사에서 낙오·소외된 민족들을 연구하고 그들이 왜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연구했다.

388-사람은 각기 다른 환경에서 태어난다. 또한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합리적으로 운영해 오고 있다. 그러므로 어느 민족이 뛰어나다거나 못났다거나 하는 등의 평가는 무용지물이다. 인류학에서는 모든 사람의 가치가 똑같다. 다만 각기 태어난 장소에서 그들에게 주어진 여러 조건을 가장 합리적, 경게적, 논리적으로 영위하고 있고 그것을 문화라고 한다.


3. 내가 저자라면

책을 펴들고 놀라움과 동시에 이 책에 대해 기대를 하게 된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저자가 서양여자라는 것, 다른 하나는 1944년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절에 글이 쓰여 졌다는 것이다. 이 책을 스쳐지나가듯 알게 된 대학교 때에는 이렇게 오래된 책인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1판 인쇄를 보니 내가 태어나기 이전인 1974년도로 표시되어져 있었다. 어느 시대보다도 남성중심적일 수밖에 없던 전쟁당시, 미국 여성 인류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일본이라. 지금 내가 바라보는 혹은 알게 된 일본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 올 거란 기대감이 생겼다.

기대감과는 조금 다르게 결론적으로 이 책은 일본 문화에 대한 일종의 분석서이다. 당시 일본과 전쟁 중이던 미국은 미국인으로서는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일본인의 행동을 연구하고자 했다. 그 일환으로 미 국무청은 1944녀 6월, 이 책의 저자인 루스 베네딕트에게 연구를 위촉한다.

총 13장으로 구성되어 1장에서는 이 책이 어떻게 쓰여 지게 되었고 어떤 식으로 서술될지, 2장은 전쟁 중에 일본과 미국의 차이점이나 미국인들은 이해하기 힘든 일본인의 천황에 대한 무조건 적인 충성에 대해 서술되어있다. 3장에서는 일본의 철저한 계층제도에 대해서, 4장에서는 메이지유신에 대한 설명과 메이지 유신이 일본의 계층제도에 영향을 미친 점이 서술 되어있다. 6,7,8장은 일본인의 은혜에 대한 보답 즉 온(恩)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온다. 9,10,11,장은 일본인들만의 특성이 나와 있고, 12장은 일본인들의 육아법이 나와 있다. 13장은 패전 후 일본사람들의 모습과 미국은 일본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그리고 일본이 전후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설명하고 있다.

이 때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다. 동양에서는 대동아의 기치를 내세운 군국주의 일본의 전쟁이었다. 저자는 전시상황으로 일본에 직접 가서 관찰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저자 자신이 일본에 다녀온 적도 없었다. 인류학의 생명은 연구자가 직접 현지에 가서 현지인들과 어울려 살면서 그곳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쓰는 것이다. 일본이라는 땅에는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한다는 것은 문화 인류학자에게 있어서 큰 치명타였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불리한 상황을 이용하여 인류학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수많은 자료들, 영화, 소설, 잡지, 미국에 살고 있는 일본인, 살았던 미국인, 일본 포로들과의 대화를 통해 일본을 이해하는 시도를 하였다. 그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학문의 연구에서 그 대상을 직접 목격하지 않으면서도 세밀한 분석을 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객관성을 확보했다. 이것이 이 책이 다른 책과 차별성을 가질 수 있는 재미있는 지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1940년대 중반 전시상황에 쓰여 진 책이라서 현재 일본에 적용시키기에는 한계가 있을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일본고전 필독서로 읽혀지는 힘은, 이 책이 서문(1장)을 통해 책의 배경과 목표를 구체적이고 뚜렷하게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뭇 논문 같은 느낌을 주는 ‘연구 과제’라는 제목의 서문이지만, 이 책을 시간적, 공간적 관점에서 모두 이해하고 읽을 수 있는 탄탄한 기반을 마련해 주고 있다. 이번 책에서도 서문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1944년 당시 미국과 일본은 교전 중인 상황이었기 때문에 일본인에 대한 사상, 감정, 관습 등 총체적인 문화의 틀을 파악하기 위한 연구는 상당히 까다로운 일이었다. 적국이기 때문에 한없이 그들을 깎아내리는 오류에 빠질 가능성도 높았을 것이다. 일본이라는 나라를 연구할수록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에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어느 때 보다도 시공간적으로 객관성을 유지하기 힘들었던 시기에, 그녀는 ‘모든 국민들은 저마다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고, 어떤 나라도 그것을 새삼스럽게 문제 삼지 않는다.’는 가치관을 잃지 않는다. 서양인이라는 선천적 장벽을 넘어,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통해 형성된 가치관을 차분하도고 예리하게 분석하고 있다.

장파의 책을 비롯하여 베네딕트의 책을 통해, 비교를 통한 객관적인 차이의 서술에 대한 생각들을 다시금 하게 된다. 그것은 ‘다름’이 ‘틀림’이 아님을, 또한 다름이 공존 혹은 상생할 수 있음을 편안하게 수용하도록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두 가지에 대한 깊은 이해와 지식이 필요하지만 다양한 주제로 접근하기에 좋은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IP *.231.50.64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212 [번역002] 제 1장 Living the Mystery [3] [2] 香山 신종윤 2007.12.14 2168
1211 [국화와 칼] 서양과 다른 동양, 한국과 다른 일본 여해 송창용 2007.12.14 7066
1210 (34) 국화와 칼 - 루스 베네딕트 [3] 時田 김도윤 2007.12.16 2407
1209 [36] 국화와 칼 /루스 베네딕트(수정) [1] 한정화 2007.12.14 2229
1208 국화와 칼(菊と刀) / 루스 베네딕트 [3] [2] 香仁 이은남 2007.12.19 2299
1207 [36] 국화와 칼/ 루스 베네딕트 [1] 써니 2007.12.12 2349
1206 국화와 칼 - 루스베네딕트 [2] [4] 우제 2007.12.12 2340
1205 국화와 칼 / 루스 베네딕트 file [1] 호정 2007.12.11 4463
1204 (35) 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 : 장파 박승오 2007.12.10 2359
» 국화와 칼 : 루스 베네딕트 소현 2007.12.10 2318
1202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2] 자로 2007.12.09 6002
1201 아름다운 경영 [8] 한명석 2007.12.09 2313
1200 [독서35]동양과서양,그리고 미학/장파 素田 최영훈 2007.12.07 2718
1199 [35] 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장파 校瀞 한정화 2007.12.10 2860
1198 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 / 장파(張法) 香仁 이은남 2007.12.06 4643
1197 [번역001] 서문 - Change Your Thoughts...... [2] 香山 신종윤 2007.12.06 2158
1196 (33) 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 - 장파 file 時田 김도윤 2007.12.06 2651
1195 [35] 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 장파 써니 2007.12.03 3150
1194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 우제 2007.12.04 2563
1193 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 (中西美學與文化精神) / 장파(張法) (1) file [3] 호정 2007.12.03 3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