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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19일 01시 39분 등록
[저자에 대하여]

저서: 국화와 칼 을유문화사(2007) 김윤식 오인석 옮김
저자: 루스 베네딕트(Ruth Benedict)

1887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바사 컬리지에서 영문학을 전공, 이후 유럽에서 1년 유학하며 스위스, 독일, 이탈리아, 영국의 가정에서 생활하며 그 곳의 풍속과 습관에 흥미를 가지고 관찰했다. 미국으로 돌아와 캘리포니아주의 여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다 1914년 뉴욕으로 돌아와 생물학자인 스텐리 베니딕트 박사와 결혼. 그녀가 처음으로 세상의 주의를 끈 일은 시인으로써이며 앤 싱글턴 이란 필명을 가졌다.

1919년 컬럼비아 대학에서 프란츠 보아스 교수의 지도하에 인류학 연구를 시작한다. 그리고 졸업과 동시에 박사학위를 받고 1939년까지 교수로써 강의를 하다가 1948년에 사망.

저자를 조사하면서 또 다른 유명한 인물이 그녀와 긴밀하게 거론되고 있는 데 바로 마가렛 미드이다. 그녀는 루스 베네딕트와 15년의 나이 차이가 있지만 남다른 우정을 나누었다. 둘다 보아스 교수의 제자였으며 인류학의 많은 공헌을 한 인물들로 평가된다. 성격은 완전히 달랐다. 두 사람을 다룬 글에서 루스 베네딕트의 성격을 살펴 보자면 저자는 몽상가이며 내성적이었으며 스스로가 “이탈자”임을 자각하고 감정을 밖으로 나타내지 않는 타입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녀의 전기를 쓴 사람 중에는 마가렛 카프리라는 인물도 있는데 이 여자가 쓴 글에서 저자의 기질이 적혀 있는 부분을 발견하여 옮겨본다.

“그들은 본질을 꿰뚫어보는 눈을 가지고 매사에 그런 부분으로의 접근에 강한 관심을 표현했다. 겉을 장식하는 것들을 싫어했고 고독과 프라이버시를 사랑했으며 타인에게 친절하고 관용적이었다. 그러나 위선과 자만에 대해서는 엄격한 태도를 취했으며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재능을 가진 사람에게는 솔직하게 경의를 표했다. 자신들을 칭찬하거나 숭배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당혹해 했으며 때때로 그런 이들을 혐오하는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래서 그들은 통속적인 관계를 거절하기 위해 냉혹함을 내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지 않는 경향도 있었으며 사람들의 잡담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 때문에 타인의 기분을 종종 상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내면적인 충돌과 갈등”이 있었다. 그들을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으나 그럼에도 사람들에게 외면당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마치 그들은 정말 어딘가 먼 나라에서 온 사람 같았다.”

그녀라고 말하지 않고 그들이라고 한 이유는 마가렛 카프리가 루스 베네딕트와 더불어 그녀와 비슷했던 또 한 사람의 심리학자를 같이 놓고 이야기한 부분이라 “그들”이라는 표현을 그대로 썼음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저서로는 <문화의 패턴> <종족>등이 있다.
<국화와 칼>은 1944년 6월 미 국무부의 위촉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인데, 저자 자신은 일본을 방문한 적이 한번도 없다. 미국에서는 당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을 하면서 적국에 대해 좀 더 알기를 원했고 그 임무에 저자가 뽑힌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처음의 목적보다는 점령국의 원활한 통치를 위한 것으로 용도가 바뀐다.

국화와 칼 (菊と刀), 이 유명한 책은 일본에서는 일본인론의 새로운 지평을 연 책으로 인식되어 있으며 지금도 그 원조로서 많이 읽히는 책이다. 일본 문화나 일본인론에는 예외 없이 등장하는 책이 바로 이 책이며 오늘 날에도 여전히 그 해석에 많은 일본인들의 입담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여겨지는 책이다.

[내 마음에 들어 온 글귀들]

나에게 주어진 이러한 연구과제는 어려웠다. 미국과 일본은 교전 중이었다. 이러한 전쟁 중에는 적을 나쁘다고 철저하게 깎아 내리는 일은 용이하지만 적이 어떤 방식으로 인생을 보는 가를 적 자신의 눈을 통해 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14p

전체적으로 보면 많은 특성을 공유하고 있는 여러 민족간에서 발견되는 차이를 연구하는 것만큼 인류학자에게 유익한 일은 없다. 19p

그 행위나 의견이 아무리 이상한 것일지라도 어떤 인간의 느낌과 사고 방식은 그의 경험과 관계를 가지고 있다, 21p

또한 나는 문화 인류학자로서 고립된 어떠한 행동도 서로 체계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나는 수백 개의 개개의 일들이 어떤 식으로 종합적인 유형으로 분리되어 있는가 하는 점을 중요시했다. 21p

일본에게 불행한 일은 일본 점령하에 있었던 나라들이 대동아의 이상을 일본과 같이 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33p

미국인은 생활 양식을 끊임없이 도전해 오는 세계에 맞게 조정한다. 그리고는 그 도전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반면 일본인은 오히려 미리 계획되고 진로가 정해진 생활 양식에서만 안심을 얻을 수 있으며 예견하지 못한 일에는 심각한 위협을 느낀다. 41p

계층제도에 대한 일본인의 신뢰야 말로 인간 상호관계 및 인간과 국가의 관계에 관해 일본인이 품고 있는 관념 전체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59p

같은 두 사람 사이에도 처지가 변하면 그것에 알맞은 존경이 요청된다. 65p

절을 받는 다는 것은 그 사람대로 그 지위에 당연히 돌아가는 어떤 책임을 승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66p

일본인이 상세한 행동의 지도를 좋아하고 신뢰한 것에는 그럴만한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그 지도는 사람이 규칙에 따르는 한 반드시 보증을 받을 수 있었다. 그것은 부당한 침략에 대한 항의를 인정하였다. 그것은 상호 의무 이행을 요구하였다. 19세기 후반에 도쿠가와 바쿠후가 붕괴되었을 때에도 국민 중에 이 지도를 없애 버리자는 의견을 제시한 그룹은 없었다. 프랑스 혁명 같은 것은 일본에서는 일어나지도 않았다. 프랑스의 1848년2월 정도의 혁명조차도 일어나지 않았다. 95p

그러면 이토록 철저하고 평판 나쁜 개혁을 단행한 “정부”는 대체 누구였는가? 그것은 특수한 일본의 여러 제도가 이미 봉건 시대부터 육성시켜온 하층 사무라이 계급과 상인 계급의 “특수한 연합세력”이었다. 100p

그러나 문제의 중요성은 이 정치가들이 어느 계급 출신인가에 있지 않고 어떻게 그들이 그토록 유능하면서도 현실주의적일 수가 있었는가에 있다…………….이들 지도자들의 장점은 물론 또 그 단점까지도 전통적인 일본인의 성격에 깊이 뿌리 박힌 것이었다. 그 성격이 무엇이었고 또 무엇인가를 논하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목적이다. 101p

왕제 복고는 천황을 계층제의 정점에 두고 쇼군을 제거함으로써 계층적 질서를 단순화시켰다. 102p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는 나라와 정치 체제에 관계없이 위로부터의 권력이 아래로 미치는 과정의 어느 지점에서는 반드시 밑으로부터 올라오는 지방 자치제의 힘과 마주친다. 나라에 따라 차이가 나는 것은 단지 민주적 책임이 어느 정도까지 위로 미치고 있는가, 지방 자치 제도의 책임이 얼마만큼인가, 지방적 지도력이 지방 공동체 전체의 요망에 어디까지 부응하고 있는가, 또 지방의 세력가들에게 농락 당하여 주민의 불이익을 얼마나 초래했는가 등등의 차이가 있는데 불과하다. 105p

메이지의 정치가들은 종교 분야에서 정치에 비해 훨씬 기묘한 형식적 제도를 만들어 냈다………….국가의 통제를 받는 영역이 바로 국가신토 國家神道이다. 국가 신토는 미국에서 국기에 대해 경례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국민적 상징에 정당한 경의를 표하는 것을 기본 취지로 하기 때문에 “종교가 아니다”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그러므로 일본의 서양의 신앙의 자유원칙에 조금도 저촉됨이 없이 모든 국민에게 국가 신토를 요구할 수 있었다. 110p

..일본에서 나리킨(成金) 이란 말은 일본의 장기놀이에서 온 낱말로서 여왕(金)으로 승격된 졸(卒)을 의미한다. 그것은 그렇게 날뛸 수 있는 아무런 계층적 권리도 없으면서 거물처럼 장기판 위를 사납게 날뛰는 졸이다. 일본인은 나리킨은 사람을 속이고 이기적으로 이용하여 돈을 모은 사람이라고 믿고 있다. 따라서 이 나리킨에게 향해진 일본인의 비난은 미국인이 성공한 하인을 대하는 태도와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다. 일본은 계층 제도 속에 거대한 부가 차지하는 위치를 주어서 그것과 제휴하였다. 그러나 그 부가 영역 밖에서 획득된 경우에는 일본인의 여론은 그것에 통렬한 비난을 퍼붓는 것이다. 120p

……..그 사람이 “나의”계층적 조직 속에 일정한 위치를 점하는 사람이든지, 혹은 바람 부는 말 모자를 집어 준 경우처럼 나 자신도 아마 그렇게 하였으리라 상상되는 일이든지, 혹은 나를 숭배하는 사람일 경우에 한해서는 일본인은 안심하고 온(恩)을 입는다. 그런데 일단 이런 조건에 해당되지 않으면 그 온은 참기 고통이 된다. 137p

성조기에 대한 충성이 일체의 정당 정치를 초월한 영역에 있는 것과 같이 천황은 “침범될 수 없는 것”이었다. 160p

“이것은 천황의 명령이다” 하는 표현은 주(忠)을 환기하는 표현으로 아마도 다른 어떤 근대 국가도 환기할 수 없는 강한 강제력을 가지고 있다. 161p

…일본인은 비록 그것이 항복의 명령이긴 했지만 명령을 내린 것은 천황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한 것이었다. 164p

복수는 이름에 대한 기리(義理) 가 때때로 요구하는 하나의 덕에 불과하다. 이름에 대한 기리 속에는 복수 이외에 조용하고 감추어진 많은 행동이 포함된다. 체면을 소중히 여기는 일본인에게 요구되는 스토이시즘(Stoicism), 즉 자제(自制)는 이름에 대한 기리의 일부분이다. 여자는 분만할 때 큰 소리를 내어서는 안되고 남자는 고통이나 위험에 직면하여 초연해야 된다. 홍수가 마을을 덮칠 때도 체면을 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최소한의 필수품만을 챙겨서 높은 지대로 피난 간다. 그 곳에는 아비규환이나 우왕좌왕, 낭패를 당한 기색이 없다. 추분 무렵 폭풍우가 올 때도 같은 자제가 요구된다. 183p

그들은 경쟁을 너무나 민감하게 자신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공격이라 여긴다. 여기에서 그들은 그들이 종사하는 일에 전념하는 대신에 그들의 주의력을 자신과 공격자에게 빼앗기는 것이다. 190p

일본에서는 어떠한 계획이건 성공이 확실해지기까지는 될 수 있는 한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하는 예절을 요구한다. 193p

일본인은 그 반대로 예의 바름의 모범이다. 걸므로 이러한 뚜렷한 예의 바름은 그들이 오명을 씻어야 하는 기회를 얼마나 극단적으로 제한하고 있는가를 평가하는 척도가 된다. 그들은 모욕이 불러 일으키는 분노를 더 없이 성공의 자극제로 삼고 있지만 그러나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태를 제한하고 있다. 그것은 특별한 경우나 혹은 그것을 제거할 수 있는 전통적 수단이 어떤 힘에 의해 방해되고 좌절된 경우에만 일어난다. 195p

공격을 안으로 향하는 것에는 두 가지 선택이 있다. 즉 그것을 “불가능”의 실현에 자신을 독려하는 자극으로 이용하든가, 또는 그것 때문에 완전히 마음이 상하든가 이다.
일본인은 실패나 비방, 배척 때문에 상처받기 쉽다. 따라서 타인을 괴롭히기보다는 너무나 쉽게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일이 많다. 202p

그들은 다른 사람을 살해하는 사건보다 자신을 죽이는 사건을 화제에 올리기 좋아한다. 205p

일본인에게는 이와 같이 명예심에 호소하는 비평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210p

일본인은 자신이 속해 있는 세계에서 존경을 받으면 그것으로 충분히 보답이 된다. 그래서 기리(義理)를 모르는 인간은 아직도 “비열한 놈”이 된다. 그는 친구들로부터 경멸을 당하고 추방된다. 216p

일본인은 일본인 나름대로 해도 좋은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구별하는데 그 경계선은 우리의 경계선과는 다르다. 229p

그들은 온(恩)을 갚는 일이 개인적 욕망이나 쾌락을 희생시키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다. 행복의 추구를 인생의 중대한 목표로 하는 사상은 그들에게는 놀랄 만한 그리고 부도덕한 가르침이다. 행복은 사람이 그것에 탐닉할 수 있을 때만 탐닉하여 기분을 전환하는 것이지 그것을 과장하여 국가나 가정을 이에 따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으라는 것 따위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주(忠)나 기리(義理)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심한 고통을 경험한다는 사실은 그들이 처음부터 각오하고 있는 바이다. 그것은 인생을 곤란하게 만들지만 그들은 그 곤란을 견디어 낼 마음가짐이 되어있다. 그들은 끊임없이 그들이 조금도 나쁘다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은 쾌락을 단념한다. 거기에는 강한 의지가 필요하지만 그와 같은 강함이야말로 일본인이 가장 칭송하는 미덕이다. 235p

어떤 사람이 이기적이라든지 불친절하다든지 하고 비난하는 대신에 일본인은 그 사람이 위반한 법도의 특정 영역을 명시한다. 240p

기리(義理)는 오늘날에도 매우 큰 권위를 가진 덕으로 “기리를 모르는 놈”이라는 말은 일본에서 가장 심한 비난의 하나이다. 260p

감정을 입 밖에 낸다는 것은 수치다. 그것은 자기를 속속들이 드러내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265p

남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지만 당신은 당신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 “은혜를 뒤집어 쓰게 되었다” 고 느낄 것이라는 것을 미리 예견하여 조심하여야 한다. 271p

여러 가지 문화의 인류학적 연구에서 중요한 것은 수치를 기조로 하는 문화와 죄를 기조로 하는 문화를 구별하는 일이다. 272p

수치는 타인의 비평에 대한 반응이다. 273p

우리는 수치에 수반되는 심한 개인적 통한의 정을 도덕의 기본 체계를 이루는 원동력으로 보지 않는다.
일본인은 치욕감을 원동력으로 하고 있다. 275p

그들은 어떻게든 서구인이 일본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생활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면밀한 예절을 발견해내려고 한다. 그리고 그런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어떤 일본인은 화가 났다고 말하고 어떤 일본인은 깜짝 놀랐다고 말하고 있다. 276p

짧은 기간일지라도 미국에서 산 경험이 있어 그다지 딱딱하지 않고 번잡스럽지 않은 미국의 행동 규칙을 받아들인 일본인에게는 전에 그들이 일본에서 보낸 그 답답한 생활을 되풀이 한다는 것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은 옛날의 생활을 어느 때는 잃어버린 낙원, 어느 때는 “질곡”, 어느 때는 “감옥”, 또 어느 때는 분재를 심는 “조그만 화분”에 빗대어 말한다. 분재로 꾸며진 소나무 뿌리가 화분 속에 갇혀 있는 동안은 아름다운 정원에 미관을 더해주는 예술품이 된다. 그런데 한번 직접 대지에 옮겨 심어진 분재 소나무는 절대 다시 원상으로 되돌려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이미 도저히 저 일본 정원의 장식이 될 수는 없다고 느낀다. 그들은 두 번 다시 옛날의 요구에 응할 수 없다. 이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첨예한 형태로 일본인의 덕의 딜레마를 경험한 사람들이다. 278p

수양은 사람을 잘 갈아서 예리한 칼로 만든다. 286p

그들은 “자기 몸에서 나온 녹”에 대하여 미국인 사이에서 보통 행해지고 있는 것보다 훨씬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도록 훈련되고 있다. 287p

정신적 훈련 또한 이와 마찬가지로 자득해야 한다. 스승을 모시는 일은 있어도 스승이 서구적인 의미로 “가르치는” 일은 없다. 왜냐하면 제자가 자기 이외의 원천으로부터 배우는 것은 아무런 가치도 없기 때문이다. 299p

징집병이 군대 교육을 마치고 나오면 완전히 인간이 변하여 “진짜 저돌적인 국가주의자”가 된다는 말이 있는데 이 변화는 그들이 전체주의적 국가 이론을 배웠거나 천황에 대한 주(忠)가 주입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가장 중대한 원인은 굴욕적인 기합을 당했던 경험일 것이다. 일본식 가정 교육을 받고 자라 “자존심(amour-propre)”에 집착하는 청년은 그러한 사태에 직면하면 완전히 이성을 잃고 짐승처럼 변하기 쉽다. 그들은 조롱 당하는 것을 참을 수 없다. 그들이 배척이라고 해석하는 이러한 일은 그들의 차례가 되면 그들을 신랄한 고문자로 만들기도 한다. 338p

음주와 같은 “자유로운 영역”을 제외하고는 사람은 절대 기대에 어긋난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누군가가 생활의 중요한 면에서 기대에 어긋난 행동을 하였다는 말은 “바보”라는 말을 제외하고는 일본인이 사용하는 가장 큰 악담이다. 348p

미국인이 목적 달성을 위한 필요 조건으로 자유라는 것을 강조하지만 생활 체험이 다른 일본인은 그것만으로는 결코 충분치 않다고 여겨 왔다. 그들은 자제에 의하여 자아를 한층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든다는 생각을 그들 도덕률의 중요한 신조의 하나로 여겼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시도 때도 없이 속박에서 벗어나 올바른 생활을 무너뜨릴지도 모르는 여러 가지 충동을 숨기고 있는 위험 천만한 자아를 통제할 수 있겠는가? 353p

스스로를 존중하는(자중하는)인간은 “선”이냐 “악”이냐가 아니라, “기대에 부응하는 인간” 이 되드냐 “기대에 어긋나는 인간” 이 되느냐는 것을 목표로 삼아 진로를 정하며 세상 사람 일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의 개인적 요구를 포기한다. 이러한 사람이야말로 “부끄러움(하지:恥) 을 알고” 한 없이 신중하고도 훌륭한 인간이다. 이러한 사람이야 말로 자기 가정에 자기 마을에 자기 나라에 명예를 가져오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하여 빚어지는 긴장은 대단히 커서 일본을 동양의 지도자이자 세계의 일대 강국으로 만들고자 하는 고상한 대망(大望)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긴장은 개인에게는 무거운 부담이다. 357p

일본인은 그들의 생활 양식 때문에 값비싼 대가를 치러 왔다. 그들은 미국인이 공기처럼 매우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 단순한 자유를 스스로 거부해 왔다. 이제 일본인은 패전 이래 민주화로 향하고 있다. 우리는 순진하게 또한 천진 난만하게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일본인을 미치도록 기쁘게 하는 것인가를 상기해야 한다. 357p

이 위장된 자연은 그녀에게는 그녀가 그때까지 교육받아 왔던 위장된 의지의 자유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일본 곳곳에 이와 같은 위장이 가득 차 있었다. 일본 정원의 땅 속에 반쯤 묻혀 있는 큰 바위들은 모두 신중하게 선택되어 운반해 온 것으로 땅 밑에 작은 돌을 깔고 그 위에 놓여진 것이다. 돌의 배치는 연못, 건물, 나무들과의 관계를 신중하게 고려하여 정해진다. 국화도 마찬가지로 화분에 심어져서 매년 일본 각지에서 개최되는 품평회에 출품하기 위하여 가꾸어진다. 볼 만한 꽃잎은 한 잎 한 잎 재배자의 손으로 정돈되고 또 때때로 살아있는 꽃 속에 작고 눈에 띄지 않는 철사로 만든 고리를 끼워서 올바른 위치를 지키게 한다. 359p

그러나 오늘날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기대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며 “하지(부끄러움)”의 강제력에 의혹을 품는 자유는 그들의 생활 양식에 미묘한 균형을 깨뜨릴 우려가 있다. 그들은 새로운 상황에서 새로운 강제력을 습득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변화는 값비싼 것이다. 새로운 가정을 만들어 내고 새로운 도덕을 수립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359p

국화는 철사 고리를 떼내고 그처럼 철저한 손질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답게 피어 자랑스러울 수 있다.

이러한 그들의 정신적 자유를 증대할 수 있는 과도기에 처하여 일본인은 두세 가지의 오랜 전통적 덕에 의지하여 평형을 잃지 않고 무사히 거센 파도를 넘을 수가 있을 것이다.

그 하나는 그들이 “몸에서 나온 녹”은 그들 자신이 처리한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는 자기 책임의 태도이다. 이 비유는 자신의 신체와 칼을 동일시하는 것이다. 칼을 찬 인간에게 칼이 녹슬지 않고 번쩍이게 할 책임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은 각자 자기의 행위의 결과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 사람은 자신의 약점, 지속성의 결여, 실패 등에서 오는 당연한 결과를 승인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일본에서 자기 책임이라는 것은 자유로운 미국에서보다도 훨씬 철저하게 해석된다. 이러한 일본적인 의미에서 칼이란 공격의 상징으로서가 아니라 이상적이며 훌륭히 자기 행위에 책임을 지는 인간의 비유이다.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시대에서 이 덕은 가장 훌륭한 평형의 역할을 한다. 더구나 이 덕은 일본 아이들의 훈육과 행위의 철학을 통해 일본 정신의 일부로서 일본인의 마음에 심어 온 덕이다.

오늘날 일본은 서구적 의미에서 “칼을 버리고 항복할” 것을 제의하였다. 그런데 일본적인 의미에서 일본인은 여전히 자칫하면 녹이 슬기 쉬운 마음 속의 칼을 녹슬지 않게 하는 일에 마음을 쓰는 강점을 지니고 있다. 그들의 도덕적인 어법에 의하면 칼은 더욱 자유롭고 더욱 평화로운 세계에서도 그들이 보존할 수 있는 상징인 것이다.
360~361p

일본 항복 당시 중대한 문제는 어떤 성질의 점령을 할 것인가에 있었다………………맥아더 장군에게 지시한 국무, 육군, 해군 3부의 공동 지령은 이런 일에 관한 중대한 결정을 구체적으로 표시한 것이었고 그 결정은 맥아더 장군 사령부의 전면적 지지를 얻었다. 그 내용은 일본 국민이 자국의 행정 및 재건의 책임을 진다는 것이었다…………따라서 맥아더 장군에 의한 일본 관리는 독일이나 이탈리아의 관리와는 전혀 성질을 달리한다………….그 임무는 일본국 정부의 활동 목표를 정하는 것이었다. 만일 일본 대신이 그 목표의 실시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경우 그는 사직할 수가 있으며 또 그의 의견이 정당하면 지령이 수정될 수도 있었다.
이러한 관리 방식은 대담한 조치였다. 364~365p

일본 이외의 다른 나라 국민이었다면 아마도 이러한 신의에 바탕을 둔 정책은 이처럼 성공을 거둘 수 없었을 것이다. 일본인의 안목으로 보면 이 정책은 패전이라는 냉혹한 사실에서 굴욕적 상징을 제거하고 그들에게 새로운 국책의 실시를 촉구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이 새로운 정책을 수용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 특이한 문화에 의해 형성된 일본인 특유의 성격에 불과한 것이다. 366p

어떤 수단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는 그 국민의 성격이나 그 나라의 전통적 사회 질서에 의해 정해진다. 366p

아이가 아직 어릴 때 아버지와 접한 경험으로 배운 이러한 태도는 일본 사회의 모든 면에 통하는 하나의 틀이 된다. 그 계층적 지위 때문에 최고의 경의를 받는 사람조차도 그가 하고 싶은 대로 권력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것이 일본의 특이성이다. 367p

일본이 평화 국가로 출발하는 데 이용할 수 있는 참된 장점은 어떤 행동 방침에 대해 “실패로 끝났다”고 인정한 뒤부터는 다른 방향을 향해 노력한다는 점에 있다. 일본인은 양자 택일적인 윤리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전쟁에 의해 “알맞은 위치”를 얻으려 했으나 실패하였다. 그들은 이제 그 방침을 포기할 수 있다. 여태껏 받아 온 일체의 훈련이 그들을 방향 전환에 응할 수 있는 인간으로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371p

일본인은 어떤 일정한 행동 방침을 취해 목표 달성이 불가능해지면 “잘못”을 범하였다고 판단한다. 그의 어떤 행동이 실패로 끝나면 실패한 주장을 버린다. 언제까지나 집요하게 실패로 끝난 주장을 고수하는 성질이 아니다. 372p

맥아더 원수 지도하에 행해진 미국의 일본 관리는 일본인의 새로운 진로를 받아 들였다. 그는 적어도 일본인에게 굴욕을 주는 수단을 강행하여 이 진로를 저해하지 않았다. 서구의 윤리에 따르면 가령 그러한 굴욕을 주는 수단을 강행했더라도 그것은 문화적으로 용인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욕이나 형벌을 가하는 것은 나쁜 짓을 한 사람에게 죄를 자각하도록 하기 위한 사회적으로 유효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죄의 자인이 그 인간에게 갱생의 첫 걸음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본인은 앞에서 말한 대로 이 점을 다르게 생각하고 있다. 그들의 윤리는 사람이 자기 행위의 결과로 생기는 모든 사태의 책임을 져야 하며 어떤 과오의 당연한 결과에 의해 그 행위의 잘못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당연한 결과 속에는 총력전에서의 패배와 같은 참혹한 사건까지도 포함된다.

그러나 이러한 당연한 결과는 일본인이 굴욕이라고 분개할 만한 사태는 아니다. 일본인의 사전에는 어떤 개인이나 국가가 다른 개인이나 국가에 모욕을 주는 것은 비방이나 조소나 모욕이나 경멸이나 불명예의 징표를 강요할 때라고 씌어있다. 375p

미국의 최종적 승리는 일본인의 사태를 다시 변화시켰다. 일본인은 궁극적 패배에 직면하여 그들의 생활 관습에 따라 여태껏 취해 온 방침을 포기하였다. 그 독특한 윤리 덕택으로 일본인은 장부에서 일체의 숙원기록을 지워 버릴 수 있었다. 미국의 정책과 함께 맥아더 장군의 점령정책은 모처럼 깨끗해진 새로운 장부에 새롭게 모욕을 기입하는 일을 피하고 단지 일본인의 눈에 패전의 “당연한 결과”로 비춰지는 일만 이행하도록 한다는 태도를 견지하였다. 이것이 효과적이었다. 377p

유럽이나 아시아의 어느 나라도 앞으로 10년간 군비를 갖추지 않는 나라는 군비를 갖추는 나라를 능가할 가능성이 있다. 군비가 없는 나라는 경제 건설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381p

대일 전승일 이래 일본의 공직에 있는 자들은 일본은 국민이 남녀 할 것 없이 모두 자기 자신의 생활을 누리며 자기 자신의 양심을 신뢰하도록 장려해야 한다고 말해 왔다. 물론 그들은 확실하게 입 밖에 내서 말하지는 않지만 일본인은 누구나 그들이 일본에서의 “부끄러움(하지:恥) 의 역할에 의문을 품고 있다는 것, 그리하여 그들이 국민 가운데에 새로운 자유가 즉, “세상”의 비난과 추방을 두려워하는 공포로부터의 자유가 자라나기를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왜냐하면 일본에서는 가령 일본인이 스스로 그것을 감수하는 경우라도 사회적 압력이 개인에게 너무 많은 희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일본인은 그러한 방침이 요구하는 일체의 자기 훈련을 감내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왔다……………군국주의자에게 이끌려 끊임없이 희생이 쌓이고 쌓이는 길을 걸어왔다. 그러한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독선적인 인간이 되었고 비교적 관대한 윤리를 가진 사람들을 멸시했었다. 383p

일본인은 침략 전쟁을 하나의 오류 및 실패한 주장으로 간주함으로써 사회적 변혁을 향한 최초의 큰 걸음으로 내딛게 되었다.

일본의 행동 동기는 기회주의적이다. 일본은 만일 사정이 허락되면 평화로운 세계 속에서 자기 위치를 구하리라. 그렇지 않으면 무장된 진영으로 조직된 세계 속에서 자기 위치를 찾게 될 것이다.

현재 일본인은 군국주의를 실패로 끝난 한 줄기의 광명으로 여기고 있다. 그들은 군국주의가 과연 세계의 다른 나라들에서도 실패한 것인가를 알기 위해 다른 나라의 동정을 주시하리라. 만일, 실패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일본은 스스로의 호전적 정열을 다시 불태워 일본이 얼마나 전쟁에 많은 공헌을 할 수 있는가를 보이리라. 만일, 다른 나라들에서도 군국주의가 실패한 것으로 판단된다면 일본은 제국주의적 침략기도는 결코 명예에 이르는 길이 아니라는 교훈을 뼈저리게 체득하였는가를 증명할 것이다. 384p

[내가 저자라면]

일본과 관계되면서 워낙 많은 일본 문화에 관한 책을 읽다 보니 이 책 역시 그저 그런 류의 이야기일 것이라는 선입관이 있었다. 더구나 60년 전의 책이니 뭐 그다지 대단한 게 있으랴 하고 언젠가 하고 밀어두었던 책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읽었다. 그냥 처음에 가볍게 읽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 대해 이구동성으로 흔히 말하는 식의 이해를 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다시 옮겨 적으면서 갑자기 털끝이 곤두서는 전율이 느껴졌다.

그리고 갑자기 저자인 루스 베네딕트라는 인물이 무진장 궁금해졌다. 와 이 여자 대단하다. 엄청난 내공이다. 도대체 인류학을 공부한다면 다 이렇게 될까? 어떻게 한번도 가지 않은 나라에 대해 이토록 깊이 쓸 수가 있었을까? 이런 통찰과 예측, 애정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일본 문화도 문화지만 인류학이라는 학문 방법이 버럭 궁금해지기까지 하는 책이다.

국화와 칼((菊と刀: 기쿠도가타나), 얼마나 많이 들어왔던 책 이름인가? 나로써는 감개무량이다. 내가 읽은 이 책의 느낌을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소위 말해지는 국화는 천황의 상징이 아니고 더더욱 칼은 그들의 호전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껍질이다. 나는 이렇게 이 책을 보았다.

“국화는 일본인의 자제력을 상징하고 칼은 책임에 대한 그들의 태도를 상징한다.”

루스 베네딕트는 분명 이 점을 통찰했고 그녀의 보고서는 미국이 점령국 일본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에 대해 제대로 된 방향을 제시했으며 그 결과는 전쟁에서 이긴 국가가 만족할만한 성과로 이어졌다. 그녀가 일본에 대해 애정을 가졌을지 어땠을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그러나 모욕에 대한 일본인의 반응에 대해 각별히 주의를 베풀었고 그것은 미국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들은 패전한 나라를 모욕하지 않는 법을 택했다. 타 문화에 대한 공감의 결여로 일본이 전쟁 중에 다른 나라에 모욕을 준 것과는 반대로 미국은 일본에 대한 공개적인 모욕을 자제했다. 이 책이 그런 힘을 가졌었을까? 나는 가졌으리라 본다.

사실 내가 그 동안 생각해왔던 문화개념이란 아주 허접한 것이었다. 나는 아래와 같이 대충 얼버무려 문화라는 개념을 뭉뚱그려 결론지었었다.
“문화라는 단어를 가지고 선진이나 후진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그의 자유이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가 속한 참조체계에 불과할 것이다. 인간이 사는 곳에는 그 부류의 퍼센티이지가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달라져 보일 뿐이다. 사유와 행동은 동일한 문화권이 아니다 할지라도 인간이라는 한계에 부닥치는 면에서 그 비율이 다를 뿐이다. 일본이 이렇다, 한국이 이렇다, 미국이 이렇다 하는 모든 단정적인 언어들은 때때로 야만스럽다. 단지 그것이 그 나라의 주류인가 비주류인가, 그것이 그의 취향인가, 나의 취향인가 하는 문제만이 있다는 생각이다.”

물론 지금도 이 이상의 범주를 논할 지식이나 체계가 갖추어져 있지 않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그녀가 파고드는, 생각의 끝까지 따라가다 보면 나의 관념이란 것이 얼마나 대충대충이었는지 우습기까지 하다. 무식하면 그냥 꼬리를 내리면 될텐데 끝까지 고집을 피우는 못난 송아지를 연상케한다.

이 책에서는 원래의 그 목적에 따라 일본인, 일본을 파악하려는 시도가 여러 곳에서 눈에 띈다. 평소엔 전혀 생각지 못하고 넘어가는 부분에서 그녀는 인류학적인 발상으로 그 차이를 발견하고 단정하고 있다. 저자는 상당히 이러한 패턴 분류가 익숙하다. 세계 여러 곳에서 솜씨를 발휘한 흔적이 여실이 드러나 있기도 하다. 만약 저자가 한국을 인류학적으로 파헤쳤더라면 어땠을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저자가 일본의 문화라고 파헤친 부분 글들 중에는 사실 일본 것이라고만 말하기엔 무리가 있는 것이 꽤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중국이나 한국에 걸쳐 대부분 공유하고 있는 감정이나 의식이 겹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순수하게 일본만의 것이라고 보기에는 나 같은 동아시아권에 있는 입장에서는 무리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현대까지 남아서 살아 가장 현저하게 살아 숨쉬고 있는 것들이 그 나라의 성향을 특질 짓는다고 말한다면 일치하는 부분은 있다.

일본인을 대표하는 말인 기리(義理)와 닌죠우(人情)은 한국사회에도 통용된다. 고우(孝)는 한국이 우세하다. 기무(義務)는 비슷하다. 그러나 주(忠)에서 그 대상이 회사로 바뀌었다는 정도일까..아 그러고 보니 그것도 비슷하다. 다 비슷한 듯이 보이는 데도 현실에서는 다르다.
이럴땐 참 난감하다. 다시 한번 허접한 나의 문화론을 들먹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아무리 어떠한 문화 하에서 살아왔다 하더라도 인간의 속성이 완전히 달라지진 않는다. 이런 면에서 나는 문화 분석은 재미있지만 그렇다고 싹쓸이 식의 언어표현은 거절하는 편이다. 내 안에 존재하는 헤아릴 수 없는 적응력이 도저히 그런 언어에 휩쓸림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여 나는 흥미는 가지만 그저 그곳엔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비교적 많구나 라는 사실을 기억할 뿐이다. 어느 나라에나 문화라고 불리는 것을 가진 이들의 구성원의 비교 항목은 같다. 단지 그 비율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가슴이 떨리던 책이었다. 이런 저런 잡소리를 쓰고 싶기도 하지만 생략한다. 그저 나는 나 나름대로 그녀가 내 놓은 퍼즐을 풀었다는 느낌에 행복해하고 있다. 오늘이 지나 또 다른 관점이 찾아온다 해도 후회하지 않겠다. 두 번 읽을 것을 권한다. 글이 써졌을 당시를 생각하며 그 시대를 음미하고 또 음미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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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12.19 08:22:44 *.180.48.238
책이 제목 '국화와 칼'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리뷰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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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전
2007.12.19 09:19:36 *.118.101.45
향인누님의 서평을 꼭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 알고 있는 것, 경험한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보다 더 위에 있는 이상을 보아야 하고,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들의 아래에 있는 사실을 더 살펴야 하겠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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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7.12.20 17:10:45 *.48.43.19
정화씨. 이 제목 참 의미가 깊었어요. 저도 책을 읽기 전까지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막상 읽고 나니 마치 저자가 걸어놓은 마법을 풀어가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 학구열에 불타는 정화씨 모습 보기 좋습니다. 감사.

소전님. 앞으로 정말 눈 똑바로 뜨고 정신 차리고 살아야겠어요. 영훈씨의 진지함과 성실함, 늘 배울 점이 많습니다. 우리 열심히 공부해서 앞으로도 서로 격려해 주는 사람이 되어 봅시다.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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