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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14일 19시 40분 등록
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 : Patterns of Japanese Culture
국화와 칼- 일본 문화의 틀

루스 베네딕트 지음 / 김윤식,오인석 옮김 / 을유문화사

Ⅰ. 저자에 대하여

루스 베네딕트(Ruth Benedict) (1887-1948)
미국 뉴욕 출생
바사대학 영문과 졸업
컬럼비아대학 대학원 인류학과 졸업
저서: <문화의 유형(Patterns of Culture)>(1934), <종족(Race:Science and Politics)>(1940)외 다수

저자인 루스 베네딕트는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1909년 바사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어학교사와 시인으로 활동하다가 화학자인 스탠리 베네딕트와 결혼, 1919년 인류학에 접하게 되고 2년후 컬럼비아 대학에 입학하여 절대적인 스승 프란츠 보아스를 만나게 되면서 본젹적인 인류학 연구에 빠져들게 된다. 현지 답사하며 아메리카 인디언 종족들의 민호와 종료를 연구하여 컬럼비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녀는 1930년부터 모료에서 인류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베네딕트의 대표작은 <문화의 유형(Patterns of Culture)>(1934), <종족(Race:Science and Politics)>(1940) 등으로 알려져 있다. 루스 베네딕트의 책 중 우리 나라에 널리 알려진 것은 <국화와 칼>이지만, 학문적으로, 또 인류학적으로 훨씬 중요한 책은 <문화의 유형>이다. <문화의 유형>은 북아메리카의 푸에블로 족과 콰키우틀 족, 멜라네시아 도부 족의 세 가지 문화를 비교 분석하는 내용의 책이다.

만년의 명작인 이 <국화와 칼>은 1944년 6월 미 국무부의 위촉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인데, 저자 자신은 일본을 방문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학문의 연구에서 그 대상을 직접 목격하지 않은 쪽이 오히려 보다 엄밀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이 저서는 입증하고 있다. 객관성을 유지하면서 일본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일본인의 외면적 행동과 그 배후의 내면적 사고 방식, 즉 문화의 패턴을 심층 해부하고 있다. 천황에 대한 숭배를 보은과 의리의 의무로 생각하며, 개인 보다는 집단(타인의 시선, 공동체에서의 소속됨)을 우선시하고, 군국주의적이면서도 탐미적이고, 공격적이면서도 순종적인 모순성 등을 문화 인류학적 방법에서 접근하고 있다.

Ⅱ. 가슴으로 읽는 글귀(인용)

<역자서문>

[] 이 저서는 ‘국화’와 ‘칼’이라는 두 가지 상징의 극단적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저는 그 부제가 표시하듯 일본 문호의 틀의 탐구인 것이다. 그것은 문화 인류학이라는, 미국에서 크게 발달한 학문의 방법론에 의한 것이며, 따라서 매우 전문적인 것이다.

[] 저자가 목적으로 삼은 것은 평균적 일본인(平均的 日本人:average Japanese)의 행동과 사고(思考)의 틀(形:Pattern)을 탐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하지(恥:수치 부끄러움)’에의 인식에 놓인 문화다.

[] 원래 이러한 문화 인류학적 방법은 역사주의 방법과는 현저히 다른 것이다. 따라서 흔히 우리가 입문적으로 어떤 나라의 문화나 사물을 이해하는 방법론과도 현저히 다른 것이다. 그러나 역사주의 방법은 주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결정적인 한계가 있다. 이에 비하면 이 저서의 방법은 그러한 주관성을 극복했다는 뜻에서 학문적 객관성을 획득하고 있다. 특히 이 저서의 정수는 계층제도의 분석에 있다.

[] 학문의 연구에서 그 대상을 직접 목격하지 않은 쪽이 오히려 보다 엄밀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이 저서는 입증하고 있다. 대체적으로 부분적 체험은 전체적인 방법론을 망쳐 놓기 수윈 것이다.

<제1장 연구과제 - 일본>

[11] 일본인은 미국이 여태껏 전력을 기울여 싸운 적 중에서 가장 낯선 적이었다. 대국을 적으로 하는 전쟁에서 이처럼 현격히 이질적인 행동과 사상의 습관을 고려하지 않은 수 없는 필연성에 직면한 적은 일찍이 없었다.

[11] 문호가 개방된 이래 75년간 일본인에 대해 씌어진 저작에는, 세계 어느 국민에게도 일찍이 쓰인 바 없을 정도의 기괴하기니 짝이 없는 ‘그러나 또한(but also)'라는 표현이 연발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12] 아름다움을 사랑하며 배우와 예술가를 존경하며 국화(菊花)를 가꾸는 데 신비로운 기술을 가진 국민에 관한 책을 쓸 경우, 동시에 이 국민이 칼을 숭배하며 무사(武士)에게 최고의 여예를 돌린다는 사실을 기술한 또 다른 책에 의해 그것을 보충하는 그러한 일은 일반적으로 없다.

[12] 일본인은 최고도로 싸움을 좋아하는가 하면 동시에 얌전하며, 군국주의적인 동시에 탐미적이며, 불손하면서도 예의바르고, 완고하면서도 또한 적응성이 풍부하며, 유순하면서도 귀찮게 시달림을 받으면 분개하며, 충실하면서도 불충실하며, 용감하면서도 겁쟁이이며, 보수적이면서도 또한 새로운 것을 즐겨 받아들인다. 그들은 자기 행동을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해 놀랄 만큼 민감하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이 자기의 잘못된 행동을 모르게 될 때는 범죄의 유혹에 지고 만다. 그들의 병사는 철저히 훈련되지만 또한 반항적이다.

[14] 우리는 일본인의 사상·감정의 습관과, 그러한 습관에 잠긴 문화의 틀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또한 우리는 이러한 행동이나 의견의 배후에 있는 강제력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우리가 미국인으로서 행동할 때의 전제(前提)를 잠깐 옆에 제쳐놓고, 될 수 있는 한, 어떤 주어진 상황 아래서 일본인이 취하는 행동은 우리가 취하는 행동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단정하는 안이한 결론으로 비약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었다.

[15] 전쟁 중에는, 적을 나쁘다고 철저하게 깍아내리는 일은 용이하지만, 적이 어떤 방식으로 인생을 보는가를 적 자신의 눈을 통해 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16] 미국에는 일본에서 자란 일본인이 많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경험한 구체적인 사실을 묻고, 그들이 그들 자신을 어떻게 판단하는가를 알아내어, 연구의 많은 결함을 그들의 설명으로 메울 수가 있었다.

[17] 일본에 관해 쓰는 일본인은 참으로 중요한 문제를, 그가 호흡하는 공기처럼 흔하며 보이지 않게 때문에 빠뜨려 버린다. 미국인이 미국에 관해 뜰 경우도 마찬가지다.

[18] 인류학자가 자기의 재료와 통찰력을 자기가 연구호가 있는 문화에 속한 국민으로부터 직접 얻으려고 노력하는 한, 그는 일본에 살았던 가장 유능한 서구인 관찰자 누구나가 행한 것과 조금도 다를게 없게 된다. 만일 이것이 인류학자가 제공할 수 있는 모든 것이라면, 그는 외국인 거류자가 여태껏 쌓아올린 일본에 관한 귀중한 연구에 무엇하나 더 보탤 가망이 없으리라. 그러나 문화 인류학자는 자기 훈련의 결과로서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몇 개의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연구자나 관찰자들의 풍부한 분야에다 독자적인 공헌을 보태는 것도 전혀 무익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21] 그 행위나 의견이 아무리 이상한 것일지라도, 어떤 인간의 느낌과 사고 방식은 그의 경험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다. 나는 일본인의 행동에서 무엇인가 당혹감을 느낄수록, 그것은 일본인의 생활 속에 그러한 이상함을 생기게 하는 당연한 조건이 무엇인가 존재함에 틀림없다는 확신이 생겼다. 만일 그러한 조건의 연구가 나를 일상적 교섭의 사소한 일에 끌어들인다면, 그것이야말로 더없이 좋은 일었다. 그것이야말로 사람들이 학습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21] 나는 문화 인류학자로서, 고립된 어떠한 행동도 서로 어떤 체계적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21] 인간 사회는 스스로를 위해 무엇인가 생활 설계를 마들지 않으면 안된다. 사회는 여러 가지 상황에 대처하는 일정한 방식, 그러한 상황을 평가하는 일정한 방식을 승인하다. 그 사회의 사람들은 이러한 해결 방법을 전세계의 기초로서 이해한다.

[23] 어떤 국민이 자기의 생활을 들여다보는 렌즈는 다른 국민이 사용하는 렌즈와는 다르다.

[24] 마음이 강한 사람들은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비로소 안심한다. 그들은 차이를 존중한다. 그들의 목표는 차이가 있더라도 안전이 확보되는 세계, 세계 평화를 위협함이 없이도 미국이 철저히 미국답고, 같은 조건으로 프랑스는 프랑스, 일본은 일본이 될 수 있는 세계인 것이다.

[25] 문화의 비교 연구도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생활 양식을 세계에서 유일한 해결법으로 믿고 그것의 방어에만 급급해하는 한 도저히 번영될 수가 없다. 그러한 사람들은 다른 생활 양식을 알게 됨으로써 자가 자신의 문화를 보다 깊게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즐겁고도 풍부한 경험으로부터 스스로를 단절시키고 있다.

[28] 타국을 이해하려 할 때는, 그 나라 사람들의 습관이나 가정에 관한 질적 연구를 조직적으로 행한 연후에야 비로소 여론 조사를 유효하게 이용할 수가 있게 된다. 신중하게 표본을 만듦으로써, 여론 조사는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를 발견할 수가 있다.

[28] 우리가 무엇보다도 먼저 알아야 할 것은, 바로 그들의 견해가 어떠한가이다. 그들의 견해는 그들의 습속, 성공한 사람들에 대한 그들의 비평, 자기 나라 역사에 관한 신호, 축제일의 연설들 속에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간접적 표현에 기초를 두고 연구할 수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조직적 연구를 필요로 한다.

<제2장 전쟁중의 일본인>

[31] 이 연구의 목적이 일본인의 문화 및 행동을 조직적으로 연구하는 데에 있기 때문에.....

[31] 그들의 어떤 행위도 우리들이 그 회답을 필요로 하는 일본인의 성격에 관한 문제를 제기해 주기 때문에 다같이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32] 일본은 계층제도(階層制度:hierarchy)를 수립하기 위해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질서의 지도자는 물론 일본인이다. 왜냐하면 일본은 위로부터 아래까지 계층적으로 조직된 유일한 나라이며, 따라서 ‘저마다의 알맞은 위치’를 가져야 할 필요성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33] 일본은 정신력은 반드시 물질력을 이긴다고 부르짖었다.

[33] 심지어 일본이 이기고 있었던 동안에조차, 일본의 정치가도 대본영도, 군인들도 이 전쟁은 군비의 싸움이 아니라 미국인의 물질에 대한 신앙과 일본인의 정신에 대한 신앙과의 싸움이라고 되풀이 말했다.

[38] “우리들은 수동적으로 공격을 당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적극적으로 적을 우리들 안에 끌어들였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 전세가 밀리고 있을 때, 방송에서 했던 말.

[39] “기회에는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우연히 부딪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우리가 만들어 내는 것이다. 매우 어려운 시기를 당해서는 반드시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 내지 않으면 안된다.”

* 해군 대신이 의회에서 한 연설 속에 1870년대의 위대한 무사 사이고 다카모리의 유훈(遺訓)을 인용한 구절

[] 미국인은 생활 전부를 끊임없이 도전해 오는 세계에 맞게 조정한다. 그리고는 그 도전을 방아들일 준비를 한다. 반면 일본인은 오히려 미리 계획되고 진로가 정해진 생활 양식에서만 안심을 얻을 수 있으며, 예견하지 못한 일에는 심각한 위협을 느낀다.
* 일본인을 기술할 때 미국인은 이러하다라는 점도 기술하는 경우가 많아 미국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40] 그들이 시종 입에 올린 문구는, “세계의 눈이 우리들의 일거일동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41] 일보에서 살았던 경험이 잇는 어떤 사람들은, 천황에 대한 모욕적인 말이나 공공연한 공격만큼 일본인을 노엽게 하고 그들의 전의를 선동하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43] “천황이 없는 일본이란 진정한 일본이 아니다.”

[47] 반물질주의적 편향에서부터 천황에 대한 태도에 이르는, 전쟁 중의 일본인의 행동에 관한 이러한 모든 중요한 문제는, 전선에서뿐만 아니라 본토에 있는 일본인들에게도 관련된 문제였다.

[49] 일본이의 병력 소모의 이론을 가장 극단까지 밀어오린 것이 그들의 무항복주의였다.
서양의 군인들은 최선의 노력을 다한 후에, 중과 부적이란 점을 알면 항복을 한다. 그들은 항복한 뒤에도 여전히 명예로운 군인이라 생각하며, 그 명단은 그들이 살았음을 가족에게 알기기 위해 본국으로 통지된ㄷ, 그들은 군인으로서도 국민으로서도 또 그들 자신의 가정에 있어서도 모욕을 받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경우 일본인은 사태를 전혀 다른 식으로 규정한다. 일본인에게 있어 명예란, 즉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것이었다. ..... 절대로 항복해서는 안된다.

[52] 또 그들은 미군이 포로가 되는 것에 조금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을 납득할 수가 없었다.

[53] 일본인의 행동은 어떤 하나의 행동 방침에 모든 것을 걸며, 만일 그것이 실패할 경우 다른 방침을 취하는 것을 당연하도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제3장 각자 알맞은 위치 갖기>

[55] 일본인의 국내 문제를 계층제도의 견지에서 바라보아 왔지만, 국제관계 역시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보아왔다.

[60] 가령 민간인이었을 때는 서로 친숙한 사이여서 따로 절을 안 했지만, 그들 중 한쪽이 군복을 입게 되면 평복을 입은 친구 쪽이 경례를 한다.

[61] 그것은 머리를 수그리는 사람이, 사실은 자기 뜻대로 처리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일에 있어서 상대방이 자기 뜻대로 행동할 권리를 승인하는 것이며, 절을 받은 사람은 그 사람대로 그 지위에 당연히 돌아가는 어떤 책임을 승인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성별과 세대의 구별과 장자 상속권에 입각한 계층 제도가 가정 생활의 근간인 것이다.

[63] 일본의 ‘효도’는 직접 얼굴을 마주치는 한정된 가족간의 문제인 것이다.

[64] 알맞은 위치라는 것은 단지 세대 차이만이 아니라 연령의 차이에도 적용된다. 일본인은 극단적 무질서 혼란 상태를 표현할 때, 이런 일이 “난형난제(難兄難弟)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표현은 우리들의 “물고기도 아니고 새도 아니다.”라는 표현과 비슷하다.

[68] 일본인 생활의 계층적 조직은 계급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가정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철저하다.
* 대망에서는 이에야쓰가 자길 닮은 아들놈(아마도 12번째쯤 되는 아들이었을 것이다.)을 성을 하나 주어 독립시키는 데 가신에게 부탁을 간곡히 하여 따라가 달라고 한다. 아들놈의 스승이자 가신이 되어달라고. 그 가신은 오래도록 이에야쓰 집안을 모셔온 집안이었다. 그러니까 그가 그것을 받아들이면 장자로 이어지는 그 문화 안에서는 그 집안은 이제부터 중요한 무사집안이 아닌 그저 그런 집안이 되는 것이다.

[70] 일본은 또 중국의 세속적 황제 사상을 채용치 않았다. 황실을 의미하는 일본어의 명칭은 ‘구름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며, 이 일족의 사람들만이 황제에 오를 수 있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빈번히 완조가 교체되었지만 일본에서는 한 번도 그러한 일이 없었다. 천황은 불가침이며 천황의 몸은 신성한 것이었다. 중국 문화를 일본에 도입한 일본의 천황들 및 그 궁정은 그런 점에 관하여 중국의 조직은 대체 어떠했던가에 대해서 전혀 생각도 못했고, 또 자기네가 어떤 변화를 가미하고 있는가를 깨닫지도 못했음에 틀림없다.

[73] 상인 계급은 천민 계급의 바로 위에 놓였다. 이 사실은, 미국인에겐 참으로 기이한 느낌을 주는 것이나, 봉건 사회에 있어서는 매우 실정에 맞는 일이었다. 상인 계급은 늘 봉건제도의 파괴자 였다. 실업가가 존경받고 번영하게 되면 봉건 제도가 쇠퇴한다.

[74] 히데요시는 농민으로부터 무기를 압수하였고, 사무라이게만 칼을 찰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사무라이는 더 이상 농민이나 공인이나 상인을 겸할 수 없게 된 것이다.

[74] 일본학자들은 사무라이 계급 전체의 평균 봉록은 농민의 소득과 거의 같다는 추산을 했는데, 이는 겨우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정도에 불과했다. 사무라이 집안에 있어 이 봉록ㄹ을 몇 사람의 상속인에게 분할하는 것은 매우 불리하였다. 그래서 사무라이들은 그들 가족수를 제한했다. 또 그들에게 있어 부와 허식에 얽힌 권세만큼 저주스러운 것은 달이 없었다. 여기서 그들은 절약과 검소라는 높은 덕목에 비상한 역점을 두었다.

[76] 농민은 사무라이에 비해 법률상의 보호를 받지 못했고, 무거운 세금을 내면서 여러 가지 제한을 받았지만, 몇가지의 보증은 받을 수 있었다. 그들은 농지의 소유권을 보장받았다. 일본에 있어서 토지를 소유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위신이 첨가됨을 뜻한다.

[78] 폭동 지도자들이 기름 가마에 혹은 교수형에, 또는 못박혀 죽는 형장에 민중들이 대거 몰려들었지만, 그들은 처형에 즈음하여 결코 폭동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그덧이 바로 법이자 질서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처형된 지도자들을 위해, 사당을 지어 순교자로서 숭배하기도 했으나, 그러한 처형 그 자체는 그들이 살고 있는 계층적 법률의 본질적 요소로서 시인했던 것이다.

[79] 이중 통치는 일본에서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12세기 이래 대원수(쇼군)가, 실권을 박탈당한 천황의 이름을 가지고 이 나라를 통치했던 것이다.

[80] 뉴질랜드이 여러 부족들 사이에서는 신성 수장은 신성 불가침이다. 그는 스스로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되므로, 하인이 입에다 떠넣어 준다. 그때 숟가락이 그의 신성한 이빨에 닿아서는 안된다. 또한 외출할 때는 결코 땅을 밟아서는 안 된다. 그가 그 신성한 발로 땅을 밟으면 그 땅은 자동적으로 성지(聖地)가 되어 신성 수장의 소유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81] 그들은 이미 아는 영역에 머루는 한, 이미 아는 의무를 이행하는 한, 그들의 세계를 신회할 수가 있었다.

<제 4장 메이지 유신>

[87] 일본의 근대화 초기의 절규는 손노조이(尊王攘夷), 즉 ‘천황을 복벽하고 이적을 추방하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일본을 외국에게 짓밟히지 않게 하는 것과 함께, 또 천황과 쇼군의 ‘이중 통치’속에 있었던 10세기의 황금시대로 복귀하려는 슬로건이었다.

[90] 이들 지도자들의 장점은 물론 또 그 단점까지도 전통적인 일본인의 성격에 깊이 뿌리 박힌 것이었다. 그 성격은 무엇이었고, 또 무엇인가를 논하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목적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단지 메이지유신의 정치가들이 어떻게 하여 이 사업을 수행해 갔는가를 이해라는 데 그칠 수밖에 없다.

[92] 계층제에 대해 스펜서는 일본의 전통적 조직이야말로 국민 복지의 비할 바 없는 기초이기 때문에, 이것을 존속시킬 뿐만 아니라 소중히 지켜 나가야 한다고 썼다. 윗사람에 대한 전통적 의무, 특히 천황에 대한 전통적 의무는 일본의 큰 장점이다.

[98] ‘모든 것을 그 알맞은 장소에 둔다.’ 이것이 일본의 좌우명이다.

[107] 일본은 그들에게, 비록 낮은 위치이기는 하나, 어쨌든 계층제 속에 하나의 위치를 주려고 하고 있지 않는가. 그리고 계층제란 것은, 계층제에 낮은 단계에 놓여진 자에게 있어서도 바람직한 것이 아닌가?라는 것이 그들의 의문이었다.

[107] 일본인은 그들 스스로에게 요구한 일을 다른 나라에도 요구할 수는 없었다.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자체가 잘못이었다. 그들은 그들로 하여금 ‘각자 알맞은 지위를 받아들이는’ 일본의 도덕 체계는 다른 어느 곳에도 기대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다른 나라들에는 그러한 도덕률이 없었다. 그것은 틀림없는 일본만의 산물인 것이다.

[108] 일본의 저술가들은 이 윤리 체계를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기술하지 않는다. 따라서 일본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에 앞서 먼저 그 도적 체계를 이해해야 한다.

<제5장 과거와 세상에 빚을 진 사람>

[109] 더구나 동양인이 부채를 지고 있는 것은 과거에 대해서만은 아니다. 다른 사람과의 나날의 접촉 모두가 현재에 있어서의 그의 채무를 증대시킨다. 그의 일상적인 의사 결정과 행동은 틀림없이 이 부채로부터 발생된다. 그것은 기본적인 기점(起點)이다. 왜냐하면 그들 자신이 이렇게 소중히 양육되고 교육을 받아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 혹은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된 단순한 사실 자체까지도 모두 세상 덕이기 때문이다.

[110] 동양과 서양의 극단적인 차이를 말로 표현하는 것은 간단하지만, 실제 생활에서 어떠한 차이를 나타내는가를 인식한다는 것은 쉽지가 않다. 더구나 이러한 점을 일본에서 이해하려 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전쟁중 우리가 알게 된 그들의 극단적인 자기 희생이나, 유리들로서는 화를 낼 필요가 없을 듯한 경우에도 일본인들이 곧잘 화를 내는 이유를 알 수 없을 것이다.

[111] 사람은 윗사람으로부터 온(恩)을 받는다. 그리고 윗사람이 아니거나 또는 적어도 자기 자신과 동등하지 않은 사람으로부터 온을 받는 행위는 불쾌한 열등감을 준다.

[112] 그런데 우리들 미국인은 사랑이라는 것은 의무와 구속을 받음이 없이 자류롭게 주어지는 것으로 생각한다.

[112] 온은 첫째이며 최대의 채무, 즉 ‘천황의 온’에 대해서 사용하는 경우에는 항상 무한한 헌신이란 의미로 사용되도 있다. 그것은 천황에 대한 채무로서 사람들은 황은을 무한한 감사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된다.

[112] 전쟁중 전선의 군인들에게 천황의 이름으로 나누어 준 한 갭의 담배는 병사들 하나하나에게 천황에 대한 온을 강조하였으며, 출격에 앞서 병사들에게 분배된 한 모금의 사케는 다시금 황은을 깊게 아로새겼다.

[116] 도움을 베풀면 상대가 크게 은혜를 입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상, 어떻게 해서든 이 좋은 기회를 이용할 법도 한데, 반대로 원조를 베풀지 않으려 애써 조심한다. 더욱이 형식을 차릴 필요가 없는 경우 일본인은 온에 휩쓸리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125] 일본인이 잘 쓰는 속담이 있다. “온을 받은 데에는 더할 수 없을 만큼의 타고난 너그러움이 필요하다.”
* 이 구절을 읽으면서 ‘이런 미친’이란 말이 절로 나오는 것을 보니, 나는 그 온에 대한 일본의 태도와는 정반대의 입장인 사람임이 분명하다. 역시 문화는 다르다.

<제6장 만분의 일의 은혜갚음>

[127] 온은 부채이기 때문에 갚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보은은, 온과 아주 별개의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127] 사람의 채무(온)은 덕행이 아니다. 변제가 덕행인 것이다. 덕은 사람이 적극적으로 보답 행위에 몸을 바칠 때 시작된다.

[129] * 일본인의 의무 및 반대 의무 일람표

1. 온(恩) : 수동적으로 입는 의무, 사람이 온을 받는다. 또는 온을 입는다. 즉 온이란 수동적으로 그것을 받는 인간의 입장에서 본 경우의 의무이다.

자기가 누구에게서 온을 받았을 때 자기에게 온을 주는 모든 사람들은 모두 자기의 온진(恩人)이 된다.

2. 온의 반대 의무 : 사람은 온진에게 이들 ‘부채를 갚는다’ 또는 이들 ‘의무를 갚는다.’, 즉 이것은 적극적인 갚음이란 견지에서 본 경우의 위무이다.

A 기무(義務) :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결코 그 전부를 갚을 수 없고 또한 시간적으로도 한계가 없는 의무이다.
- 주(忠)=천황·법률·일본국에 대한 의무
- 고(孝)=양친 또는 조상에 대한 의무
- 님무(義務=자기의 일에 대한 임무
B 기리(義理) 자신이 받은 은혜와 같은 수량만 갚으면 되고, 또한 시간적으로 제한된 부채
1. 세상에 대한 기리
2. 이름에 대한 기리

[135] 싫은 것에 대한 아시아 여러 나라의 속언이, 이를 테면 버마에서는 ‘화재, 홍수, 도둑, 관리, 악인’을 열거하고 있는 데, 일본에서는 ‘지진, 벼락 오야지(the Old Man : 가장, 아버지)’를 들고있는 것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139] 정말 큰 이변이 일어난 것은 정신적 영역이었다. 주는 최고 사제이며 일본의 통일과 무궁함의 상징인 신성한 수장 곧 천황에 대하여 모든 사람이 지불하지 않으면 안되는 의무가 되었다는 점에 있었다.
* 명치유신에서 큰 변화

[143] 일본인은 우리 미국인을 준법 정신이 결여된 국민이라고 판단한다. 우리들은 또 우리의 관점에서 일본인은 민주주의의 관념이 결여된 굴종적인 국민이라고 판단한다. 양국 국민의 자존심은 각각 다른 태도와 결부되어 있다는 말하는 편이 더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 일본과 미국의 비교

[144] 외국인 기자 한 사람이 서술한 바와 같이, 아침에는 소총을 겨누면서 착륙했지만, 점심때는 총을 치워 버렸고, 저녁때는 이미 장신구를 사러 외출할 정도였다. 일본인은 이제 평화의 길을 따름으로써 ‘천황의 마음을 편안케’ 했던 것이다. 1주일 전까지는, 천황의 마음을 편안케 해드리기 위해서 죽창으로라도 이적을 격퇴키 위해 몸을 바치겠다고 했었다.

[145] 일본은 일본 고유의 강점, 즉 아직 전투력이 분쇄되지 않았는데도 무조건 항복을 수락한다는 막대한 대가를 주(忠)로서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능력을 사용하였다. 일본인의 편에서 보면, 이것은 분명히 막대한 지불임에는 틀림없었으나, 그 대신 일본인은 비록 그것이 항복의 명령이긴 했지만, 그 명령을 내린 것은 천황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한 것이었다. 패전에 있어서도 최고의 법은 여전히 주였다.

<제7장 기리처럼 쓰라린 것은 없다>

[147] 일본인이 잘 쓰는 말에 “기리(義理)처럼 쓰라니 것은 없다”는 말이 있다. 사람이란 기무(義務)를 갚지 않으면 안되는 것과 같이 기리를 갚지 않으면 안 된다.

[155] 일본인은 가끔 “나는 기리 때문에 기(義 :정의)를 지킬 수 없었다”라고 말한다. 또는 기리의 규칙은 이웃 사람을 자신처럼 사랑한다는 것과도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일본인은 사람들이 진심에서 자발적으로 관대한 행위를 하는 것을 요구치 않는다. 그들은, 사람이 기리를 지키지 않으면 안되는 까닭을 “만일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로부터 ‘기리를 모르는 인간’이라 불리고, 세상 사람들 앞에서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기리를 따르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세상의 소문이 무섭기 때문이다.

<제8장 오명(汚名)을 씻는다.>

[159] 이름에 대한 기리란 자기 자신의 명성에 오점에 없도록 하는 의무이다.

[163] “어린 새는 먹이를 찾아 울지만, 사무라이는 이쑤시개를 물고 있다.”

[166] 기리의 모든 용법에서는, 공통적으로 한 인간과 그가 하는 일이 극단적인 동일시되고 있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의 행위 또는 능력에 대한 비판은 자동적으로 그 인간 자체에 대한 비판이 된다.

[171] 일본에서는 어떠한 계획이건 성공이 확실해지기까지는 될 수 있는 한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하는 예절을 요구한다.

[172] 일본인은 분명히 예의바른 국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인은 비방에 대한 그들의 민감성을 경시해서는 안 된다. 미국인은 매우 가벼운 마음으로 서로 욕을 하곤 한다. 그것은 일종의 유희 같은 것이다. 우리들로서는 일본인이 왜 아무것도 아닌 말을 그처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176] ‘아침목욕’은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던진 흙탕을 씻어 내는 것으로서, 조금이라도 흙탕이 묻어 있는 동안에는 당신은 훌륭한 인간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본인은, 사람이란 스스로 모욕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 한 모욕받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사람을 모욕하는 것은 ‘당자로부터 나오는 것’뿐이요,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을 향하거나 말하거나 행하거나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치는 윤리를 지니고 있지는 않다.

[179] 일본인 특유의 권태는 과도하게 상처받기 쉬운 국민 공통의 병이다. 그들은 배척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그들 내부로 돌려 스스로를 괴롭힌다. 일본 소설에서 묘사되는 권태는, 현실 세계와 이상 세계 사이의 큰 차이가 주인공이 경험하는 여러 가지 권태의 기초가 되고 있는 러시아 소설에서의, 우리에게 친근한 권태와는 다른 심적상태이다.
... 미국의 소설가는 이러한(권태를 다루는) 주제를 취급하는 일이 별로 없다. 미국의 소설가는 작중 인물의 불행을 성격적 결함이나 무자비한 세상의 풍파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그 원인을 추구하나, 순수한 권태를 묘사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181] 미국인이 범죄 사건을 크게 떠들어 대는 것처럼 자살 사건을 크게 떠들어 대고, 미국인이 범죄에서 느끼는 대리 경험의 즐거움을 자살에서 느낀다. 그들은 다른 사람을 살해하는 사건보다 자신을 죽이는 사건을 화제에 올리기 좋아한다.

<제9장 욕망의 세계>

[191] 일본인은 자기 욕망의 만족을 죄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청교도적이지 않다. 그들은 육체적 쾌락을 좋은 것, 함양할 만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191] 미국인은 쾌락을 일부러 배워야 하는 것으로 생각지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 사람이 관능적 쾌락에 빠지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별로 배울 필요가 없는 이미 알고 있는 유혹을 극복하는 일일 뿐이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쾌락을 의무와 마찬가지로 배운다.

[201] 일본인은 일본인 나름대로, 해도 좋은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 사이에 경계선을 긋고 자중하는 데 그 경계선은 우리들의 경계선과는 다르다.

[203] 일본인의 철학에서 육(肉)은 악이 아니다. 가능한 육의 쾌락을 즐기는 것은 죄가 아니다. 정신과 육체는 우주의 대립하는 2대 세력이 아니다. 그리고 일본인은 이 신조를 논리적으로 밀고 나가, 세계는 선과 악의 싸움터가 아니라고 하는 결론으로까지 가져간다.

[203] 그들은 인간에게 두 가지의 영혼이 있다고 믿는데, 그것은 서로 싸우는 선의 충동과 악의 충동이 아니다. 그것은 ‘온화한’ 영혼과 ‘거칠은’ 영혼으로, 그들은 모든 인간의 생애에는 ‘온화’해야 할 경우와 ‘거칠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고 믿는다. 한쪽의 영혼이 지옥으로, 다른 한쪽이 천국으로 간다고 정해져 있지 않다. 이 두개의 영혼은 모두, 저마다 다른 경우에 필요하며 선이 된다.

[205] 일본에서는 인간의 성질은 태어날 때부터 선하며, 신뢰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자기의 나쁜 반절과 싸울 필요가 없다. 그것이 필요로 하는 것은 다만 마음의 창문을 깨끗하게 하고, 경우에 따라 알맞은 행위를 하는 것뿐이다. 만일 그것이 ‘더럽혀졌다’하더라도, 더러움은 용이하게 제거되며, 인간의 본질인 선이 다시 빛나기 시작한다.

<제10장 덕의 딜레마>

[209] 일본인의 인생관은 그들의 주,고,기리, 진 닌조 등의 표현에 나타나 있는 대로이다. 그들은 인간의 의무의 전체가, 마치 지도 위의 여러지여처럼 명확하게 구별된 몇 개의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210] 우리들은 충실한지 불충실한지, 협력적인지 고집이 센지 등으로, 양과 염소를 구별한다.

[211] 서구인에게 특히 중요한 것은, 일본인이 생활을 구분하고 있는 '세계' 속에는 '악의 세계'가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것은 일본인이 나쁜 행동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만 인생을 선의 힘과 악의 힘이 싸우는 무대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212] 각자의 영혼은, 원래는 새 칼과 마찬가지로 덕으로 빛난다. 다만, 그것을갈지 앟고 있으면 녹이슬게 된다. 그들이 곧잘말하는 '자기 자신이 몸에서 나온 녹'은 칼의 녹과 마찬가지로 좋지 않은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인격을, 칼과 마찬가지로 녹슬지 않도록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만 설사 녹이 슨다 하더라도, 그 녹 밑에는 여전히 빛나는 영혼이 있고 그것을 다시 한 번 갈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227] 기리는 오늘날에도 매우 큰 권위를 가지는 덕으로 "저 남자는 기리를 알지 못한다"는 말은, 일본에서 가장 심한 비난의 하나이다.

[236] 의도가 좋았다는 이유로 실패의 이규를 주장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일거수 일투족이 여러 가지 결과를 수반하는 거승로, 사람은 그 결과들을 고려하지 않고 행동해서는 안된다.
* 일본인의 사고


[237] 일본인은 죄의 중대성보다도 수치의 중대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다.



[240] 그들이 보는 바로는, 바로 일본인 특유의 문제는, 그들은 일정한 법도를지키며 행동하기만 하면, 반드시 타인이 자기의 행동의 미묘한 뉘앙스를 인정해 줄 것이 틀림없다는 안심감에 의지하여 생활하도록 길들여져 왔다는 것이다.


[241] " 나는 나 자신이 다른 세계에서는 아무 소용도 없는 감각과 감정르 가진, 어느 다른 유성엣 떨어져 온 생물체처럼 느껴졌다. 모든 동작을 얌전하게 하고, 모든 말투를 예의에 맞도록 하지를 요구하는 나의 일본식 예절이, 이 나라의 환경 속에서 나를 극도로 신경과민과 자의식에 빠지게 했다."


[242] 한번 직접 대지에 옮겨 심어진 분재 소나무는, 절대로 다시 원상으로 되돌려 질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은 이미 도저히 저일본 정원의 장식이 될 수는 없다고 느낀다. 그들은 두 번 다시 옛날의 요구에 응할 수는 없다. 이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첨단적인 형태로 일본인의 덕의 딜레마를 경험한 사람들이다.

<제11장 자기 수양>

[243] 어떤 문화의 자기 훈련은 항상 다른 나라에서 온 관찰자에게는 무의미한 것으로 생각되지 쉽다.

[248] 태어난 그대로의 어린 아이는 행복하지만, '인생을 맛보는' 능력을 갖지 ㅇ낳고 있다. 정신적 훈련(혹은 자기 훈련, 수양)을 쌓아야 비로소 사람은 충실한 생활을 하고, 인생의 '맛을 음미하는' 능력을 획득한다. 이 표현은 통상 "이리하여 비로소 인생을 즐길수 있다(only so can he enjoy life) "라고 번연되고 있다. 자기 훈련은 "배(자제력이 깃드는 곳)-배짱-를 만든다". 그것은 인생을 확대한다.

[249] 훈련의 처음 무렵에 사람들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그 느낌은 이내 사라진다고 그들은 말한다. 그것은 나중에 훈련이 즐거움이 되거나 혹은 훈련을 포기해 버리기 때문이다. .... 새로운 요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이와 같은 수요(修養)을 피하려고 하는 것은 무리는 아니다.

[249] 수양은 자기 몸에서 나온 녹을 갈아 떨구어 내는 것이다. 수양은 사람을 잘 갈아서 예리한 칼로 만든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물론 그가 그렇게 되고 싶어하는 것이다.

[251] 무아(無我)란...... 의지와 행동 사이에 '머리카락 한 올만큼의 빈틈도 없을 '때의 체험을 말한다. 방출된 전류는 양극에서 음극으로 일직선으로 나아간다. 숙달의 경지에 도달하지 않은 사람의 경우에는, 의지와 행동 사이에 말하자면 일종의 절연벽이 가로막는다. 일본인은 이 장벽을 '보는 아', '방해하는 아'라고 부른다. 그리고 특별한 훈련에 의하여 이 장벽이 제거 되었을 때에 달인은 "지금 내가 하고 있다"는 의식을 전혀 갖지 않게 된다. 회로는 열려 있고, 전류는 자유로이 흐른다. 행위는 노력 없이 행해지게 된다. 그것은 일점적ㅇ로 변한다. 행위는 행위자가 마음속에 그린 형태와 한 치도 다르지 않게 실현된다.

[253] 일본인은 예로부터 항상 사후 생활의 공상에는 흥미를 갖지 않았다. 그들의 신화는, 신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으나 사자(死者)의 생활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고 있지 않다.

[253] 일본에서 볼 수 없는 것은, 육체와 정신이 대립되는 교의(敎義)이다.

[257] 12세기 및 13세기 동란 시대에, 경전 속에서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에 직접 체험 속에서 진리를 발견해 내려는 이 명상적이고 신비적인 가르침이, 승원이라는 피난처 속에서 세상의 폭풍을 피해 출가한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있었던 일어겠지만, 설마 그것이 무사 계급이 애호하는 생활 원리로서 받아들여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사실 그렇ㄹ게 된 것이다.

[258] 선의 가르침은 매우 구체적이었다. "선은 사람이 자기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광명만을 추구한다. 선은 이 추구의 방해가 되는 것은 어떤 것도 용서하지 않는다. 당신 앞에 장애를 모조리 제거하라. (중략) 만일 도중에 추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만일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성자를 만나면 성자를 모조리 죽여라. 그것이야말로 구원에 도달하는 유일한 길이다."
* 어디서 본 말 같다.
달마대사 이야기에서 본 것 같은데....

[260] 정신적 훈련 또한 이와 마찬가지로 자득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교사를 모시는 일은 있어도, 교사는 서구적인 의미로 '가르치는' 일은 없다. 왜냐하면, 제가가 자기 이외의 원천으로 부터 배우는 것은 아루넌 가치도 없기 때문이다. 교사는 제자와 토론하는 일은 있을지 모르지만, 상냥하고 친절히 제자를 지도하여 새로운 지식의 영역으로 유도해 줄 수는 없다.
* 이상하네... ?????

[262] 만일 심안이 열리기만 하면, 목전에 있는 손쉬운 수단으로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어떤 일이라도 가능하다. 그것도 자기 이외의누구의 도움도 빌리지 않고 말이다.

[266] 죽은자는 이제는 온(恩)을 갚는 것이 아닏. 죽은 자는 자유롭다. 따라서, '나는 죽은 셈치고 산다'는 표현은 모순 상극으로부터 궁극적 해방을 의미한다.

[267] 미국인에게 선행을 행하도록 요구하는 강력한 강제력은 죄의식이다.
.... 일본인은 인간의 마음의 밑바닥에 있어서는 선이다. 만일 추동이 그대로 즉시 해위다 되어 나타날 수 있다면, 인간은 쉽게 선행을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숙달'의 수행을 쌓아, '하지'의 자기 감시를 재벼하려 한다. 그렇게 되었을 때 비로소 그는 제6관은 장애가 제거된다. 그것은 자의식과 모순 상극으로부터 궁극적 해방이다.

<제12장 어린아이는 배운다>

[274] 어머니는 자신이 누구에게 인사를 할 때마다 갓난아이의 머리와 어깨를 앞으로 숙이게 하여 갓난아이에게도 인사를 시킨다. 갓난아이는 항상 한 사람으로 계산되는 것이다.

[276] 어머니가 어린 아이를 꾸짓을 때 쓰는 'ㅟ험해'라는 말과 '안 돼'라는 말 속에는 이과 같은 감정이 들어 있다. 세번째로 늘 쓰여지는 훈계의 말은 '더럽다'는 말이다.

[278] 이러한 경험(공갈로 아이를 집에서 내보는 것처럼 놀려대는 것)은 성인이 된 일본인에게 현저하게 나타나는, 조소와 배척에 대한 공초심을 기르는 비옥한 토양이 된다. ..... 어른이 된 뒤에도 타인에게 조롱을 당하게 될 경우에도 이 유아기의 공포가 어디엔가 남아 있게 된다.

[281] 아이는 보통 새로운 갓난 아이가 태어나면 진정으로 흥분하며 기뻐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그 흥분가 기쁨은 식어 버린다.

[286] "아이들은 부끄러움(하지)을 모르기 때문이죠"히고 말한다. 그리고 나서 "때문에 저처럼 행복한 것입니다"라는 말을 잇는다.
이것은 어린아이와 어른 간의 근본적인 차이이다. 왜냐하면 어른에게 "저 녀석은 부끄럼을 모른다"라고 하면 , 그사람은 완전히 파렴치한이라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283]이것들은 모두 보호를 베풀어 집안의 안전을 비켜준다. 마을에서는 그 동네 절이 마찬가지로 안전한 장소이다. 그곳은 자비심 많은 신들이 앉아서 수호하기 때문이다. 어머니들은 아이들은 안전한 절에서 놀게 하기를 좋아한다. 어린아이의 경험 속에는 신을 두려워한다거나 혹은 공정한 감시자로서의 신들을 만족시키려고 자기 행위를 규제하는 일은 없다. 어린이들은 신의 은총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신들은 권위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291] 계집아이의 유년기는 사내아이의 생활에서 배척됨으로써 끝난다.

[294] 괴롭힘을 당한 인간은 괴롭힌 인간에게 복수를 할 때야만 '시원한 기분'을 느낀다.
* 소년 탐정 김전일에서 왜 그렇게 수많은 살인사건이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295] 일본인은 혼자서 자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따라서 밤이 되어 아이의 이불은 마음에 맞는 연장자의 이불에 잇대어 펴는 수가 있다. '누구누구와 내가 사이가 좋다'라는 증거로 두 사람의 잠자리를 붙이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297] 할머니는 조용히 차눈하게, 모든 사람이 할머니의 생각대로 행동하는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나무라거나 반박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지만, 할머니의 솜털같이 부드러우면서도 아주 강인한 기대가 항상 그녀의 소가족을 그녀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로 인도하고 있었다.

[302] 종래 모든 서구인이 묘사한 일본인의 성격의 모순은, 일본인의 아이를 훈련하는 방법을 보면 납득이 간다. 그것은 일본인 인생관에 그 어떤 측면도 무시할 수가 없는 이원성을 가져다 준다. 그들은 유아기의 특권과 마음 편하던 경험에 의해서 그 후 여러가지 훈련을 받은 뒤에도, 다시금 '부끄러움을 몰랐던' 때의 편한 생활이 기억에 남는 다. 그들은 미래에 천국을 그릴 필요가 없다. 그들은 천국을 과거에 가지고 있다.

[302] 예닐곱 살이 지나서부터 차츰 주의 깊은 행동과 '부끄러움을 아는' 책임이 부과되는데, 그것은 만일 그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자신의 가족으로부터 배척된다는 가장 강력한 강제성이 따르는 것이다.

[304] 사람들은 거울 속에서 혼의 문인 자기 자신의 눈을 본다. 그리고 이것이 '부끄러움 없는 자아'로서 살아가는 데 도움을 준다.

[309] 스스로를 존중하는(자중하는) 인가은 '선'이냐 '악'이냐가 아니라, '기대에 부응하는 인간'이 되느냐 '기대에 어긋나는 인간'이 되느냐는 것을 목표 삼아 그 진로는 정하며, 세상 사람 일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의 개인적 요구를 버린다. 이러한 사람이 부끄러움을 알고 한없이 신중하고도 훌륭한 인간이다. 이러한 사람이야 말로 자기 가정에, 자기 마을에, 또한 자기 나라에 명예를 가져오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하여 빚어지는 긴장은 대단히 큰 것으로서, 일본을 동양의 지도자로 만들며, 세계의 일대 강국으로 만드는, 그러한 고상한 대망으로 나타난다.

[312] 서구의 여러 나라는 일본 국민이 서구의 도덕을 단번에 바로 채요ㅗㅇ하여, 진정한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잇다고 생각해서는 안되며, 또 일본은 결국 보다 자유롭고 보다 관용적인 윤리를 세울 수 없다고 생각해서도 안된다.

[312] 그들이 몸에서 나온 녹은 그들 자신이 처리한다는 마로 표현하고 있는 자기 책임의 태도이다 이 비유는 자신의 신체와 칼을 동일시 하는 것이다. 칼을 찬 인간에게 칼이 녹슬지 않고 번쩍이게 할 책임이 있는 거소가 같아, 사람은 각자 자기의 행위의 결과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된다.
....... 칼은 공격이 상징으로서가 아니라, 이상적이며 훌륭히 자기 행위에 책임을 지는 인간의 비유이다.


<제13장 패전 후의 일본인>

[317] 어떤 수단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그 국민의 성격이나 그 나라의 전통적 사회 질서에 의해 정해진다. .... 현명한 평화정책이라면 일본의 경우에는 독일과는 다른 조건이 정해져야 한다.

[318] 아이가 아직 어릴 때 아버지와 접한 경험으로 배운 이러한 태도가 일본 사호의 모든 면에 통하는 하나의 틀이 된다. 그 계층적 지위 때문에 최고의 경의를 받는 사람조차도 , 그가 하고 싶은 대로 권력을 행사하지 않으며, 계층제의 수뇌를 점하는 관리가 실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것이 일본의 특이성이다.

[319] 사회는 안쪽 구석을 핀으로 눌러 놓은 삼각형이다. 달리 말하자면 삼각형은 책상 위에 있으며 누구나 볼 수가 있다. 핀은 보이지 않는다. 어떤 때는 삼각형이 오른쪽으로 혹은 왼쪽으로 기욹리도 한다. 그러나 결코 그 정체를 들어내지 않는 축을 중심으로 하여 움직이는 것이다.

[331] 어느 외국인도 자기와 같은 습관이나 가정을 가지지 않는 국민에게 자기와 같은 생각이나 생활 방식을 따르라고 명령할 수는 없다.

Ⅲ. 내가 저자라면
1) 제목에 대하여
책을 읽고 난 후에 남은 단어 하나 '칼'. 그리고 거기에 하나 더 덧붙인다면 그것은 칼에 스는 '녹'. 수양하여 자신을 언제나 쓸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것, 쓰고 싶을 데, 자신의 상태가 어떤가 고려하지 않아도 되게 언제나 준비시켜 두는 것. 그것이 일본을 상징하는 칼의 이미지이다. 그런데 왜 하필 칼인가. 농기구인 중에도 녹이 슬지 않게 쓰는 기구도 있을 텐데.
'국화'와 '칼'로 부터 국화는 평화를 칼은 전쟁을 상징한다고 하는 말들을 인터넷에서 검색했다. 나는 검색 이전부터 막연하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칼은 전쟁을 의미할거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봤지만 그 점을 찾지 못했다. 단지 일본의 계층에는 사무라이라고 하는 칼을 지닐 수 있는 계급층에 대해서 언급하고, 그들의 위치가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또한 저자가 연구를 시작한 시기도 일본과 미국의 전시상황이니 칼(무사계급, 군인)은 연구에 중요한 키워드가 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리고 또한 나는 책에서 국화의 이미지를 찾지 못했다. 자세한 설명이 없다. 저자는 왜 '국화'를 제목에 넣었는지 한번 읽은 것만으로는 알지 못하겠다.
일부에서는 일본인이 가을날의 국화를 즐길 줄 아는 사람들, 그것을 키워내는 사람들이라는 이라는 의미로 국화의 상징을 사용하는 것 같다.

나는 저자를 들여다 보아서는 국화에 대해서 할말이 없다. 단지 자신의 생각들이 가미해서 이렇다라고 책을 설명하는 자료들을 찾을 수 있을 뿐이다.

(수정: 추가된 부분)
왜 국화인가를 다시 고민했다. 국화 어디서 본 것 같다에서 출발하여 전에 읽었던 소설 대망이 떠올랐다. 가문에는 문장(문양)이 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호리병 문양을 썼다. 도쿠가와 이에야쓰는 어떤 문양을 썼던가. 내 기억에서는 그것은 국화 문양이었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았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가문의 문장은 찾지 못했다. 국화 문양은 천황가문의 상징으로 검색되었다.

책의 제목 '국화와 칼'에서 국화는 천황가문의 상징이다. 즉 국화는 일본인의 충성을 의미한다. 책의 표현대로 빌자면 끝없는 온(恩)에 대한 갚음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국화를 가장 일본다운 무기, 칼의 다른 표현이라고 하고 싶다.

나는 앞에서 칼의 의미를 수양이라고 했다. 여기에 몇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칼은 죽음으로 이르게 하는 도구. 사무라이들이 가지고 다니는 두자루의 칼 하나는 긴 것, 하나는 짧은 것. 그 짧은 칼 하나. 긴 칼은 상대를 향하는 칼, 즉 전투용. 짧은 칼은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 칼. 스스로 죽음으로서 지키는 자존심, 명예. 그래서 칼의 상징은 죽음과 명예라고 하고 싶다.

책의 제목 '국화와 칼 : 일본의 문화 틀'에서 앞쪽의 '국화와 칼'은 가장 일본적인 것이다. 앞쪽의 제목은 일본인, 좀더 확대하자면 일본의 문화를 이해한 사람이 알아듣을 수 있는 제목이고, 뒤쪽의 제목 '일본의 문화 틀'은 세계인이 알아들을 수 있는 보편적인 제목이다. 두개의 이름이 붙어서 책의 제목이 된 것이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에서 시작해서 소설 '대망'을 통과하여 책의 제목을 나름대로 이해해 본다. '국화와 칼'의 의미를.


2) 목차와 내용
목차를 보고서는 어느 정도 일본 문화의 특징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가면 그것들이 서로 얽혀 있다. 앞부분에 설명한 제3장 '각자 알맞은 위치 갖기'가 다른 것들을 설명하는 열쇠처럼 보인다. 위치,관계로부터 개인의 행동 패턴이 정해진다.
내용들은 한 장에서 충분히 설명하지 않고 넘어가는 듯 하다. 다른 장에서 앞서 설명했던 것들이 조금씩 끼어드는 것 같다. 그리고, 어느 장들은 서로 모순되는 것들을 설명하는 듯 하다. 일본문화 속에서 자라지 않은 사람은 왜 일본인이 그런 행동 패턴을 보이는지 의해해 할 만한 것이라서 모순처럼 보일 것이다. 그것에 대해서 명확히 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있다.
저자는 책의 앞부분에서 일본인의 상호 반대되는 특징을 기술한 바 있다. 그것들을 설명해 내려면 좀더 명확하게 구분하는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아래의 몇개의 장을 중 부분으로 꼽을 수 있다.
3장 각자 알맞은 위치 갖기
6장 만분의 일의 은혜 갚음
7장 기리처럼 쓰라린 것은 없다.
8장 오명을 씻는다.
9장 인정의 세계
10장 덕의 딜레마
11장 자기수양

3) 흥미로운 부분
'12장 어린아이는 배운다'는 그동안 접한 몇가지 일본 문화에 대해서 생각하게 했다. 그리고 교육에 대해서 생각해볼 기회를 주었다.
나는 나 자신을, 우리 세대를 일본문화을 거부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세대라고 생각했었다. 그것은 어느 문화 평론가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 평론가는 우리 세대는 일본인들의 문화가 그대로 녹아있는 TV 만화를 보면서 자란 세대이기 때문에 일본문화를 우리의 윗세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일 것라고 했었다. 다른 방식이란 무조건적으로 비하시키고 반대하는 것이 아닌 방식을 의미한다.
어린시절 본 만화들은 마징가 제트, 아톰, 미래소년 코난..... 그리고 세계 명작동화 시리즈. 모두 일본인의 시각으로 재구성된 것들이다. 나는 일본 아이들 교육용으로 만들어진 것들을 보며 자란 한국인이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저자가 책에서 보여준 예를 읽으며 일부에서는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일본 만화에서 접한 것들을 일부 떠올려 보기도 했다. '애네들은 이상하네' 하면서도 몇 차례 접하다 보니 나중에는 '그럴만도 하겠다'했다. 일부는 아주 열광적이게도 만들었다. 일본 문화는 우리 삶에 아주 깊숙히 은연중에 들어와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접하여 배운 일본인의 사고는 교과서적으로 설명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일본인의 어머니가 그리고 할머니가 다음 세대에게 전달하는 방식을 따르지 않았을 뿐이지 영상이라는 교재와 text와 그림이 어울린 재미난 방식으로 전달되어졌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짐작한다. 재미와 함께 녹아들었을 것이라고. 책에서 예를 든 것, 즉 어머니가 할머니가 전달한 것이 아닌 방법만이 교육 방법은 아니라고.

'13장 패전 후의 일본인'에서는 저자는 일본에 대해서 말하는데, 나는 자꾸 미국을 떠올렸다. 전후 일본을 이런 시각으로 본다면, 1945년 이후 대한민국에 대해서는 미국은 어떤 시각을 가지고있을까? 그들은 어떤 연구 보고서를 가지고 이쓸까. 그 연구 결과가 '미군정'이었을까하는 의문이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일본은 독일과 문화가 다르므로 전후처리를 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언급했다. 그래서 우리의 문화는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현대사에 대한 공부가 필요한 대목이다.

4) 감정에 치우치지 않은 서술
우선 나는 일본에 대해서 말을 하려면 객관적으로 서술하지 못할 것이다.
저자는 '전시 중에 적국에 대해서 비난하는 것을 쉬운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단 말인가.'라고 연구에 대해서 객관성을 가지려 한점을 말하고 있다. 학문적으로 의미가 있으려면, 그리고 연구자료로서 유용하려면 그 객관성이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에 동의한다.
저자는 단지 어느 것이 더 낫다라고 설명하지 않는다. 서로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이 어떤 것인지 지적하고 그것의 바탕에 깔려있는 의식, 혹은 습관, 문화라는 것을 찾아 나선다.

5) 번역에 대하여
내가 본 책은 오래 된 책이다. 1997년 3판 7쇄가 눈에 들어온다. 그 이후에도 책을 계속 찍어냈다면 번역을 매그럽게 다듬었길 바란다.
이 책은 여러사람들이 번역했다. 여러 출판사에서 발간했다. 그중에 내가 본 책은.... 번역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다른 책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문장이 길어서 싫다. 한 문장을 다 읽기전에 삽입구절이 몇번씩 추가되어서 설명이 길어진다. 읽다가 주체를 흐려 버린다. 우리말을 하는 것 같지 않다. 영어식 문장을 그대로 직역한 것 같다.
번역은 저자의 메시지를 헤치지 않은 한도 내에서 자연스럽게 전달되도록 매끄러웠으면 좋겠다. 우리말로 쓰여진 책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번역했으면 좋겠다.
IP *.180.4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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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은
2008.12.03 01:59:48 *.51.218.167
국화에 대한 상징은 본문 p11에 모순에 대해 설명하면서 칼과 대비되는 것으로 언급하고 있어요. but also의 문화, 즉 서로 모순되는 진술이 진리가 되는 문화, 예술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칼을 숭배하는 민족....이런 대비와 모순이 바로 일본 문화의 씨줄과 날줄이 된다고 베네딕트는 보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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