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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31일 22시 15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 일상과 취향의 혁명을 앞당길 견이차는 세련되고 전위적인 엘리트들의 예술적인 상상력이 아니라 촌스럽고 뒤처지는 남녀노소 장삼이사張三李四들義의 알성적日常的인 감수성이다.』p227

『기쁨. 산다는 것의 기쁨. 육체의 기쁨.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찬란한 거. 살아 있는 유기체가 발산하는 생기의 느낌. 이것이 바로 상극적인 부조화를 상생적인 조화로 승화시킴으로써 얻어지는 한국적인 감성의 본질이다.』p268

『공적인 담론과 사적인 취향은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것. 둘은 양자택일이 아니라 회통하여야 하며, 창조적인 모순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공자님이 그랬듯이 성찰 또는 취향을 가능하게 하는 여백을 남겨 두어야 한다는 것. 성찰 또는 취향의 여백을 거느리지 않은 진리란, 도그마요 사기요 심지어는 삿대질로 끝나버릴 수도 있다는 것.

매년 전율하며 느끼는 것이지만 어김없이 다시 봄은 찾아왔다. 이 책이, 계절의 순환과 함께 성스러운 박동을 전해오는 자연의 질서처럼 인간 사회의 선善순환을 발동시키는 작은 화두가 되기를 바란다.』 p6

강영희 姜英熙 :
1960년 생으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문화평론가. 서울대 동양사학과와 국문학과 대학원, 동국대 영화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연극평론에서 시작해서 문화평론으로 영역을 넓혔고, 직접적으로 작가들을 만나서 인터뷰하며 책을 내기도 하였다. 책을 쓴다는 핑계로 한동안 무위도식하며 전국 방방곡곡을 비롯해서, 중국,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대만 등지를 열심히 여행하였다.

문화평론가로서 세상의 모든 잡사(雜事)에 대한 잡문(雜文)을 써온 그녀는, 이 책을 쓰면서 세상의 모든 잡학(雜學)을 용감하게 돌파하여 그것들을 꿰뚫는 깨달음을 얻겠노라는 야무진 꿈을 꾸게 되었다. 꿈의 주제는 물론 문화, 인문, 창조, 성찰이다. 한국인의 미의식을 다룬 이 책은 그 첫걸음인 셈이다.

저서에는 문화평론집『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1994)와 인터뷰집『우리는 자유로에서 다시 만났다』(1998)가 있으며, 논문으로「일제강점기 신파양식에 대한 연구」(1989)가 있다.


2. 내 마음속에 들어온 글귀


1부 기억상실과 어제의 한국인

백남준과 서울의 기억
우리는 이따금 밖으로 향해 있는 안테나를 내리고 우리 자신에게로 돌아올 필요가 있다. 그것은 겸재의 진경산수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또 다른 교훈이기도 하다. (유홍준, 화인열전)p17

요컨대 예술은 아이덴티틸ㄹ 구하는 방법의 하나이며, 그것이 예술의 큰 기능입니다. 남의 유행에 동의하는 것과 아이덴티티는 상반된 개념이지요. 예술은 결국 모순입니다. (김홍희, 백남준vs김홍희, 백남준과 그의 예술) p20

중요한 것은 당신의 삶이 창조적이기를 원하는가에 달려 있다. p25

러셀은「철학의 문제들」에서 현재가 감각을 통해 인식될 수 있는 것과 달리 과거는 오직 기억에 의해서만 인식될 수 있다고 말했다. p28
시간의 불가역성에 항거하는 것이 바로 기억이다. p28

전통이란 ‘기억 속의 심상’이 지금 이 순간에 새롭게 창조된 것이다. 그리하여 문화의 저력이란 문화 속에 덧쌓인 ‘기억 속의 심상’의 두께이며, ‘기억 속의 심상’을 일관되게 관통하는 취향이야말로 미의식의 본질이다. p32

기차가 있는 풍경
기억은 시간의 질서에 거역함으로써 세월의 무상함을 넘어서는 인간적인 정체성의 토대를 형성한다. p38

조선인의 비극 역시 그들의 비문명 때문이아니라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ㆍ식민정책의 결과다. p39

기차란 전신이나 전화, 잠수함이나 증기선 같은 문명의 이기들을 대표하며, 이 같은 풍경 속으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그들은 곧바로 전근대적 인간에서 근대적 인간으로 변신한다. p40

이 같은 개졈 속에는 ‘기차가 있는 풍경’속에서 맹목적인 조급함에 떠밀리는 근대 한국인의 자화상이 숨어 있다. P42

그것은 중국의 혁명이나 일본의 팽창처럼 현실에서 자신을 관철시키지 못함으로써 더한층 강렬하게 끓어오른, 관념적 조급함이다. 비등점에 가깝도록 뜨거워진 관념적인 조급함의 열기야말로, ‘기차가 있는 풍경’의 안쪽에 자리잡은 지난 세기 한국인의 내면 풍경이다. p43

선진 제국의 철도가 근대 문명 건설의 동맥이었던 반면 일제 강점기 한국의 철도는 제국주의 지배와 수탈의 동맥이었다는 사실을 직시한다면, ‘기차가 있는 풍경’의 조급함이 얼마나 맹목적인 것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성찰을 결여한 눈먼 뜨거움이었다. p46

취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오늘의 나를 구성하는 찰나刹那인 동시에, 어제의 나에 대한 기억이 깃들이는 영겁永劫이다. p48

자신의 취향 위에 타인의 취향을 겹쳐놓는 것은 새로운 창조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창조적 모순이다. p50

2부 야나기 무네요시의 한국 예술론

고대 일본이 그랬듯이 근대의 일본도 조선 예술을 돌봄으로써 마음을 기를 수 있다는 야나기 자신의 주장처럼, 실제로 조선 예술에 대한 그의 사랑은 조선 도자기에 대한 에도시대 일본 다인들의 사랑이 그랬듯이 일본인의 미의식을 풍성하게 가꾸기 위한 참고자료로 사용되었다. p58

미적인 위계질서 또는 오리엔탈리즘
서양은 어디까지나 행위자(actor)이고 동양은 수동적인 반응자(reactor)이다. 서양은 동양의 행동의 모든 측면에 관하여 관찰자이고, 재판관이며, 배심원이다.(사이드, 오리엔탈리즘)

한국인의 무의식과 함께 아무렇게나 나뒹굴었던 한국 예술은 혼자서는 어떤 이름으로도 불릴 수 없는 평범한 밥공기였으며, 일본인의 미의식의 세례를 받고 나서야 비로소 천하 명물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었다. p61

이것은 어디까지나 일본식 오리엔탈리즘의 산물로서, 제국 일본에 의해 조작된 식민지 조선의 왜곡된 자화상이다. 인격을 상실하고 ‘사물적인 격’을 지닌 존재에게 미의식 대신 무의식이 주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이 바로 아나기의 조선 예술론의 핵심이다. p63

일본 국학과 야나기의 미의식
일몬의 국학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의 질서에 동참하는 '세계인' 이기를 거부하고 '일본인' 이기만을 고집한, 이를테면 동북아시아 세계의 왕따를 자처한 일본의 독자적인 사상이다. p76

일본의 국학은 '좋건 나쁘건 태어나면서부터 지니고 있는 그대로의 마음'으로 이해되는 마고코로(진심)를 최고의 덕목으로 내세우면서 이것을 '지나치게 영악한 마음'으로 이해되는 카라고코로(한의)와 대비시킨다. (마루야마 마사오, <일본 정치사상사연구>. 야나기식 말투에 따르면, 마고코로란 '자연스러운 인정'과 같으며 카라고코로란 '이지를 위한 이지'라든가 '지적 근거'와 같다. p77

따라서 구학적 세계관에 사로잡힌 일본인이 조선을 비롯한 이웃 나라의 문화를 존중하는 얭외적인 태도를 취한 것은 거기서 '일본적인 것' 을 발견했을 경우에 한정된다. p78

결국 야나기가 사랑한 것은 한국인의 미의 의식에 따라 창조된 한국 도자기가 아니라 , 일본인으 미의식에 따라 향유된 또하나의 한국 도자기였다. p80

중국적 작위 대신 일본적 자연을 내세운 국학의 자연주의가 자연의 배후에 존재하는 초인격인 신을 창조한 사실과 관련이 있다. 타고난 자연스러움에 따르는 일본인의 삶이란 결국 신이 마련한 길에 순종함으로써 신의 은총을 구하는 삶인 것이다. p85

선의 미와 야나기의 환상
야나기가 말하는 한국 예술의 '선의 아름다움'이란 일본인의 미의식을 한국 예술에 덮어씌우는 일본식 오리엔탈리즘이 자리잡고 있다.

짚고 넝머가야 할 것은 한국 예술의 선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며, 자유곡선이 아니라 자연곡선이라는 것이다. p94

사대와 사대주의는 구별되어야 한다. 특히 동북아시아 국제질서의 일환이었던 조선의 사대란 적극적인 세계화 정책의 일환이었을 따름이지 (자주성이나 주체성과 대립하는) 소극적인 사대주의적 근성과는 무관한 것이다. p102

일본의 기교와 한국의 격
한국인의 미의식 속에서는 야나기의 말마따나 일본적인 기교에 해당하는 '꼼꼼한' 무엇을 발견할 수 없으며, 그보다 훨씬 스케일이 큰 '분명한'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 따름이라는 것이다.

일본의 기교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범'인 반면, 한국의 격은 '때에 따라 넘나드는 틀거리'라고나 할까.

멋은 격식에 맞으면서도 격식을 뛰어넘을 때, 바꿔 말하면 격이 맞는 변격, 변격이면서 격에 제대로 맞을 때 거기서 멋을 느낀다는 말이다. p107

미었다는 것은 그 형태이고 충실하다는 것은 그 정기다. 그 정기라는 것은 제 몸뚱이의 충실한 것이 지극히 빈 가운데에서 무르녹아 맺힌 것이다. 오직 그 웅실한 까닭으로 힘이 종이를 뚫고, 그 빈 까닭으로 정기가 종이에 맑게 배어 나온다. (서결, 추사집)

근재적 자의식과 한국 예술의 민예성
야나기가 한국 에술에서 민예성을 발견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단도직입적드로 말하면 그것은 일본인의 눈으로 한국 예술을, 형식의 기료로 정신의 격을 바라봄으로써 생겨난 발견이자 창작이다. 난쟁이의 잣대로 거인의 키를 잰 것이라고 할까. 그것은 한국 예술의 상의 미의식을 일본인의 형의 미의식으로 바라봄으로써 생겨난 발견이다. 본래 상과 형은 한데 어우러져 사물의 형상을 이루되, 근본적으로 양자는 서로 반비례하기 때문이다.

야나기가 마련해준 조선 예술의 천진한 민예성, 조선 도공의 순박한 무지 따위로 자신의 누추함을 가까스로 가리운 근대 한국인의 슬픈 자화상. 이제는 이 같은 식민의 담론과 결별할 때가 되었다. p120

자연과 작위를 통합시킨 일본의 세
세라는 것은 도학을 부정하고 인욕을 긍정하는 일본식 사고의 산물이다. 야나기는 일본적 자연을 토대로 삼은 위에, 근대적 작위를 동시대의 세로 쌓아올렸다. p123

3부 한국인의 미의식

신의 창조란 인간의 창조의 원형이다. 신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이것은 창조가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다시 성찰은 어디에서 비롯될까? 그것은 백인백색의 취향에서 비롯된다. p129

저다움의 취향이 성찰의 강을 거슬러 창조의 피안으로 올라간다는 것. 이것은 취향이 단지 미와 관련된 것만이 아님을 말해준다. 성찰의 강에서 피어나는 안개에는 미뿐 아니라 진과 선도 한데 섞여 있다. 그리하여 고유의 풍토와 역사 속에서 형성된 삶의 지혜를 대표하는 미의식은 진선미를 아우르는 인문적인 가치를 대표한다. 진선미를 아우르는 인문적인 가치를 ‘멋’이라는 이름의 미의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한국문화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p130

진선미의 합일을 지향하는 한국의 가치 관념이 바로 ‘멋’이다. 멋은 미의식일 뿐 아니라 정신미를 지향하는 생활의 이념이기도하다. 따라서 한국인의 미의식의 비밀을 푸는 일은 한국인의 가치관의 핵심을 탐구하는 일이 된다. p131

음양오행과 상의 미의식
한국인의 미의식은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상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형과 대립하는 개념이다. 예로부터 한국인은형과 상이 하나로 어우러져 사물을 이룬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생겨나는 것이 사물의 형상이다. p132

‘눈에 보이는’ 형 너머에 존재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상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이 때문에 흔히 멋이라고 불리는 한국인의 미의식은 형태미를 넘어서는 정신미의 성격을 지닌다. 박수근의 그림과 마애불에서 흘러넘치는 성찰의 시선도 이로부터 비롯된다.

흥미로운 사실은, 사상이 일상의 척도로 작용할 경우 취향의 형태를 띤다는 것이다. 따라서 본래 취향으로부터 형성된 사상은, 다시 취향을 통해 전승되며, 취향을 통해 퍼져나간다. 따라서 취향으로서의 한국인의 미의식에는 음양오행사상으로 체계화된, 상에 주목하는 한국인의 사상이 담겨 있다. 특히 상이란 형상에서부터 심상에까지 걸친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으므로, 그 속에는 미의 문제뿐 아니라 진과 선의 문제까지 포함된다. 그리하여 한국인의 미의식을 돌아보는 것은 한국인의 가치관 전반을 돌아보는 것이기도 하다. p139

아졸미 또는 고졸미
우리는 일그러진 달항아리와 대들보를 통해, '헝의 어눌함'의 후광에 해당하는 '상의 세련됨'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달리 말하면 '상의 세련됨'을 머금은 '형의 어눌함이 되는데, 바로 이것이 한국문화를 마음으로 겪은 이들이 한결같이 이야기하는 고졸이나 아졸, 무관심성이나 미군제성의 본질이다. p146

발효의 맛과 생기의 미감
상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살아 있는 유기체가 발산하는 생기의 느낌이다. 유기체의 생기야말로 육체라는 형 너머에서 정신이라는 상을 느끼게 하는 근원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같은 생기의 미감이 기운생동이라는 동북아시아의 미학 원리와도 통한다는 것이다. 기운생동이란 중국 남북조시대의 화가이자 화론가인 사혁이 동진의 고개지 이래 태동하기 시작한 원시적인 화론들을 집대성하여 내놓은 동북아 최고의 체계적인 화론인 육법의 첫째 항목이다. p153

발효음식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음식문화는 발효맛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맛을 낳았고, 이것은 어는 순간 물질에너지에서 '열에너지'로 승화됨으로써, 잘 삭힌, 시원하고 칼칼한, 생기의 미감을 탄생시켰다. p162

상극적인 것을 상생적인 것으로
상극 역시 만물의 생성변화에 필요악인 까닭에 상생적인 조화를 추구한다고 해서 상극관계를 애당초 부정하고 회피할 수는 없다. 상극관게를 부정하지 않은 채로 상생적인 조화를 추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상극관계를 고스란히 껴안은 채 그것을 가능한 한 상생관계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p165

발효 원리의 핵심은 부패균을 죽이는 상극적인 방식이 아니라 발효균을 살리는 상생적인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p167

비보의 원리란 이처럼 상극적인 것을 향해 대립과 투쟁을 전개하는 대신 허전한 곳을 메우고 험악한 곳을 달래는 보완과 화해를 통해 상극적인 것을 상생적인 것으로 변용시키는 것이다. p169

풍수무전미라는 말이 있다. 완전한 땅이란 없다는 뜻이다. 사람이건 땅이건 결함이 없는 것은 없다. 일부러 결함을 취하여 그를 고치고자 함이 도선풍수의 근본이다.(최창조, 땅의 눈물 땅의 희망) p171

해학과 신명
한국인의 자화상은 눈물을 웃음으로, 한을 흥으로 승화시키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상극적인 것을 상생적인 것으로 변용시키는 해학과 신명의 본질이 관철된다. p178

문제는 각자가 간직한 바 자기 몫의 한을 어떻게 초극하느냐 하는 데에 있다고 할 것이다. 한국적 한이라는 말이 성립도리 수 있다고 할 때, 이는 한민족에게만 한이 있다거나, 한민족의 한이 유달리 넓고, 깊고, 짙다거나, 그러한 이유에서가 아니고, 그것을 초극해가는 삶의 양식 자체가 다른 민족의 그것과 다르다는 이유에서일 것이다. p179

울음이란 마침내 웃음으로 촉극되고야 만다는 것. 한이란 결국 흥으로 곰삭여진다는 사실을 간과한 채, 처음부터 끝까지 한에만 주목하는 한국적인 한에 대한 담론은 이제는 청산되어야 한다. p179

한에 대한 담론이 지금까지 설득력을 얻어온 까닭은 무엇일까. 첫째 한을 삭일 여유가 없었던 까닭에 해학과 신명으로 승화시키지 못한 채 한의 늪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던 일제 강점기의 척박한 현실을 염두에 두어야 하며, 둘째 일본적인 정서인 모노노아와레와 신파의 퇴행적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말하자면 일제 강점기의 한국인은 김치가 익어서 ‘시원하고 칼칼한’ 발효맛을 내기 전에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정서에 늘상 붙잡혀 있었는데, 이 틈새를 일본의 정서인 모노노아와레와 신파가 밀고 들어온 것이다. p180

고지와 명당론
우리 역사에 대한 시각적 파악이 역사라면, 그 공간적 인식이 지리와 지도이다. 지도에는 땅의 측량과 관계되는 과학의 영역이 있고, 땅을 생명체로 인식해온 우리 조상들의 독특한 지리관ㆍ우주관이 있으며, 땅을 채색그림으로 묘사한 화원들의 예술이 담겨 있다. (한영우, 우리 옛 지도와 그 아름다움) p185

사람은 위치와 장소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사람은 시간에 대한 사유보다 공간에 대한 사유를 더 절실해 한다.

공간 의식이란 인간의 정체성을 속절없이 떠도는 천상의 것으로부터 든든하게 뿌리내린 지상의 것으로 잡아 내리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p186

삶터는 소속을 내포한다. 삶터는 정체성을 정립하고 소속감을 규정하며 운명을 가늠한다. 삶터는 뿌리와 방향을 제공하는 삶의 기억들로 가득 차 있다. (최창조, 한국 풍수사상의 이해를 위하여) p187

땅을 살아있는 유기체로 보는 생각을 체계화시킨 것이 풍수사상이다. p190

풍수사상은 모든 지리적 요소들에 매우 인간적인 실존성을 부여한다.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공간을 구체적인 삶과 관련된, 상호 유기적 관계의 살아 있는 공간으로 만든다. 인간적 의미가 없는 공간은 사실상 죽은 공간이다. 땅에 인간적 의미를 주어, 이용과 소유의 대상이 아닌 더불어 살아가야 할 삶터로 환원시키는 것이 풍수사상이다. 모든 토지적 요소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데, 이것이 바로 땅 속의 생기, 즉 지기이다. 이때 땅은 그리고 자연은 존귀한 삶의 실체가 된다. (최창조, 한국 풍수사상의 이해를 위하여) p193

결국 풍수사상이란 한국인의 의식 뒤편에서 후광처럼 빛을 발함으로써, 의식의 수면 위를 떠다니는 공간 심상들로 하여금 실용적인 기호의 성격을 넘어 예술적인 도상의 성격을 아울러 지니도록 만드는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인에게 있어 풍수란 주변의 공간을 살아 있는 ‘기억 속의 심상’으로 자리잡게 만드는 비결이었다고 할 수 있다. p194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같은 조선시대의 고지도가 오늘날의 지도로 탈바꿈한 사실은, 지난 세 기의 한국인이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고유의 공간 취향을 잃어버리고 기억상실에 빠져들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p199

백의와 색동
미의식을 상징하는 ‘기억 속의 심상’의 핵심적인 요소의 하나가 바로 색色이다. 색이란 보편 너머의 특수가 자신의 ‘저다움’을 드러내는 눈빛과도 같은 것이다.
조선색이란 좁은 의미의 한국의 색깔을 넘어 넓은 의미의 한국인의 기질氣質을 가리킨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색은 무엇보다 ‘밝고 맑은’ 색, 즉 명도明度와 채도彩度가 아울러 높은 색이다. p201

색이란 사실상 어떤 풍경과 관련된 시각 이미지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색배열 또는 색구성의 문제가 색상의 문제보다 중요할는지도 모른다. p202

소색이란 무엇인가. 바탕 소素자에 색 색色자, 옥양목이나 비단, 광목의 색처럼 재질에 따라 다양한 뉘앙스의 색감을 드러내는 자연의 바탕색이다. p206

재질의 소색인 백색은 광선을 반사하여 번쩍거리는 백색이 아니고 빛을 흡수하는 듯한 은은한 빛깔이다.

한국인이 애호한 백색은 백자의 투명함에서 접할 수 있는 백색이나 세모시 백색 도포에서 보이는 백색과 같이 격格이 있고 깊이 있는 색이다. (금기숙, 조선복식미술) p207

소색이 지닌 복합적인 뉘앙스를 무시한 채, 그것을 색의 단일함이나 색의 부재로 몰아붙이는 사고방식은 잘못된 것이다. (이승철, 자연염색) p209

여백은 문자 그대로 비어있는 상태가 아니라 무엇인가 존재하고 있지만 우리의 눈에 쉽사리 확인되지 않는 그 어떤 심오한 상태인 것이다. (박용숙, 한국미술의 해학정신) p210

한국인에게 있어 오방색이란 관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색에 관한 현실 자체이기도 하다. p211

한국인이 음양오행사상을 배후에 지닌 오방색의 원리를 사용한 사실은 한국문화의 배색 원리가 상생적인 조화로움을 지향한 것임을 의미한다. p212

우리에게 있어서 민족주의는 단순히 자기관철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뒷바퀴에 그치지 않으려면 탈민족주의 시대를 내다보면서 자기를 극복하는 민족주의라야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p221

백의 민족의 이미지는 풍요로운 성찰의 계기를 제공하는 취향을 빼앗은 대신, 척박한 강박의 틀거리를 덮어씌우는 이데올로기를 떠안겼다. 따라서 취향의 해방을 위해서는, 풍요로운 성찰을 토대로 한 진정한 저다움을 위해서는, 먼저 백의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적 표상과 결별해야 한다. p222

색에 대한 취향의 상실은 개인의 문제에서 집단의 문제로 확산되어, 마침내 일상을 둘러싼 풍경 전반을 공해에 가까운 색의 부조화로 뒤덮었다. p224

마음의 색이 풍경의 색과 하나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기억 속의 심상이 현실의 풍경과 오버랩되는 일상을 꾸미는 사람들, 그들은 과연 미의식의 행복한 주인공들이다. p225

일상과 취향의 혁명을 앞당길 견이차는 세련되고 전위적인 엘리트들의 예술적인 상상력이 아니라 촌스럽고 뒤처지는 남녀노소 장삼이사張三李四들義의 日常的인 감수성이다. p227

4부 취향과 성찰 그리고 내일의 한국인

이데올로기에서 취향으로
적어도 미의 문제에 관한 한, 이데롤로기적인 표상보다는 취향적인 심상이 사물의 본질에 입체적으로 다가서는 쿨한 프리즘이다. 취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이끌리며 좋아하는 것이다.

사회학이란 인간의 집단적 삶을 반듯하게 그려내기 위한 모눈종이와 같은 것이다. p231

정신의 여백을 간직한 사람만이 시시때때로 튀어오르는 정신의 자투리들로 아름다운 성찰의 조각이불을 꾸며낼 수 있다.

출발점에서는 ‘제멋대로의 것’으로 작용하던 취향도 반환점을 돌고나서부터는 시나브로 ‘자기를 돌아보는 것’으로 작용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바로 취향이 지닌 성찰의 가능성이다. p232

취향에 대한 담론은 당연한 사실을 당연하게 말하는 동어반복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계기로서 작용한다. p233

이제 우리는 이같은 근대적 합리주의의 사고, 이원론적 사고, 이데올로기적 사고를 넘어, 앞뒤가 따로 없는 ‘뫼비우스의 띠’나 안팎이 따로 없는 ‘클라인 씨의 병’에 비유될 수 있는 한 차원 높은 사고를 모색해야 한다. 나는 이같은 사고를 취향적 사고라고 부를 것을 새롭게 제안한다. p234

‘나를 살리면서 남을 참고한’ 대신 ‘나를 죽이면서 남을 흉내 내는’ 데 몰두했으니 결과가 신통할 리 없다. ‘나를 죽이면서 남을 흉내 내는’ 사람이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p236

상생지향과 탈속의 아름다움
상극적인 부조화를 상생적인 조화의 테두리 안으로 수렴시키는 것, 이것은 천지인이 하나라는 사상을 배경으로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중시한 한국인의 가치관으로부터 비롯된다. p239

그들이 탁월한 예술가인 까닭은 그곳의 낯익음을 새삼스러운 눈으로 돌아보게 만든 데서 시작된 것이었다. p254

허무주의와 샤머니즘의 극복
어쩔 수 없이 맞대면하게 되는 인간적인 상극의 질서에 대해 어설픈 화해의 태도를 취하거나(샤머니즘) 운명적으로 몸을 맡기는 태도를 취하는 것(허무주의)이 그것이다. p259

한에서 흥으로, 울음에서 웃음으로 승화되는 과정은 전자를 지워버리고 후자로 날아오르는 초월超越의 몸짓이 아니라 전자를 등에 지고 후자를 향해 기어가는 포월蒲月의 몸짓이 되어야 한다. (김진석, 초월에서 포월로) 상극의 과정을 과거의 삶의 흔적으로만 남겨두는 정태적인 상생이 아니라 그것을 현재의 삶의 에너지로 확보하는 역동적인 상생 쪽으로 우리의 취향을 자꾸만 밀어내는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p261

따라서 우리는 이 같은 공존을 혹은 옛것 쪽으로 되돌리거나 혹은 새것 쪽으로 밀어붙이기보다는, 그것들을 하나로 버무려내는 모순적인 공존을 통해 창조의 길로 나아가는 유연하고도 열린사고를 가져야 할 것이다. 새것의 프리즘을 통과하여 ‘지금 이 순간’에 살아남은 옛것의 존재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278



3. 내가 저자라면


저자는 우리 한국인의 미의식의 좌표와 한국문화의 정체성에 대해 심도 있게 고찰해 보는 가운데, 우리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평가를 모색하며, 우리 문화의 주체성을 확립시켜나감에 있어 새로운 개안開眼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국인의 미의식의 원류를 점검하고 알아보기 위해 우리 문화와 역사를 되돌아보며, 백남준, 야나기 무네요시, 정선, 김정희 등 다양한 지점과 담론을 펼치고, 언뜻 보기에 우리 문화를 우호적으로 평가하는 듯하면서, 속내로는 우리 문화의 우위에서 우리의 문화를 폄하하고 있는, 한 때 우리나라를 지배했던 일본이라는 나라의 식민사관과 일본인들의 의식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한다. 여기에서 주의할 것은 그럴 리야 없겠지만, 이러한 고찰이 만의 하나 무분별한 자국민에 의해 단지 속국의 피해의식에 젖은 반발적 망상이라고 여겨져서는 매우 곤란할 것이다.

또한 제국의 열강들의 이데올로기라는 이분법적 잣대에 의해 제멋대로 평가 되어온 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고, 왜곡되어진 부분에 대하여는 반격을 가하며, 정선의 <진경산수화> 해석 방식을 둘러싼 사대주의적 논의와 ‘백의민족의 표상’에 담긴 식민사관 등을 조목조목 파헤쳐 논박함도 의미 있는 일이라 하겠다.

"한국의 도자기는 한국인이 만들었다고 해도 그것의 아름다움은 일본인의 안목의 산물이라는 것이다."p64

"일본인은 국내문제는 물론이고 국제관계 역시 같은 관점에서 바라보는데, 특히 국제관계의 경우 일본인 자신이 꼭대기에 자라잡은 위계질서의 피라밋을 구상한다는 것이다." p65

우리 민족 고유의 민족사관에 입각한 주체의식과 이 책의 주제의식이 돋보이는 가운데, 저자의 다방면에 걸친 문화적 관심과 천착, 여러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파격적인 비평이 다양하고 이채롭게 느껴지는 가운데 재미있게 읽었다.

"조선 예술에서의 조선 도공의 역할은 정당하게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교되어야 할 것은 일본 다인의 안목과 조선 도공의 무지가 아니라, 일본 다인의 미의식과 조선 선비의 미의식이다.
이렇게 볼 때 조선 도자기의 미와 관련해서 조선 선비의 미의식은 언급하지 않고 조선 도공의 무의식만을 언급한 다음, 그 자리에 자신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일본 다인의 미의식을 덮어씌운 야나기의 주장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p71

저자에게서 우리 문화에 대한 사명감과 당당함, 사랑과 애착을 느끼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 이 책의 저자는 불이 강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 확 끌어 올라 거침없이 공격을 하다가 저절로 사라지는 불꽃처럼 거침없이 야나기 무네요시를 공격하다가 어느 샌가 슬그머니 사라지고만 점이 싱겁다.

* 이 책만의 특징과 읽으면서 생각해 보는 느낌들

하나, 다른 책들에 비해 이 책은 인용문이 많았으며, 뒷장의 참고문헌을 살펴보니 무려 6페이지에 달한다. 컬러 사진을 곁들여 책의 내용과 저자의 주장에 수긍이 가도록 독자의 이해를 도운 점이 돋보인다.

두울, 이 책이 절판 되어 구하기 힘들다고 하자 사부님께서는 이 책을 대신할 만한 책이 쉽지 않다고 하시며 안타까워하셨다. 그래서 부랴부랴 수소문해서 빌려 읽게 되었는데, 여니 때와 마찬가지로 책읽기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지는 못하였으나, 역시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더군다나 재미있었던 것은 지난 번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 일본인들에 대한 반발과 감정이 보다 정확하고 신날하게 저자에 의해 우리 문화를 평가하는 일본인들의 이중 잣대의 시각과 식민사관에 일침을 가하니 속이 다 시원하다.

“제국의 일본인이 식민지 조선인의 사정을 알아보고 보호해 준다는, 저 흉학한 제국주의의 논리와 다를 바 없다. 게다가 그는 가장 낮은 층에서 가장 높은 질을 찾은 이같은 타력과 자력의 관계가 역사상 유례가 없다는 주장까지 덧붙인다.” p72

일본은 자신들이 내세우는 영원한 제국의 우월주의로 인해 반드시 자가당착에 빠지게 될 것이다. 겉 다르고 속 다른 이중적인 이기심과 그들의 두꺼운 밀가루를 덕지덕지 발라놓은 것 같은 가부끼 화장 속에 가려진 구역질나는 타국민과 타국에 대한 조소가 더 이상은 국제사회에서 먹혀들지 않을 것이다. 동정하는 양 하면서 자국민의 이익만 챙기고 남을 폄하하는 알량함과, 위계질서라는 허울 좋은 주장으로 우위를 점령하려고만 하는 가증스러움으로 인해 그들이 스스로를 낮추지 않음을 비관한 그들의 땅덩어리가 마침내 가라앉고 말 것이다. 지은 죄는 생각지 않고, 행여 혼자 멸하기는 싫다고 인접국인 우리를 붙들고 늘어질 수 있으니 두 눈을 부릅뜨고 단단히 조심하며, 우리 고유의 전통의 미를 꿋꿋하게 지키고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야 할 것이다.

세엣, 이 책을 읽으며 깎아지르는 화강암 절벽에 매달리며 작업을 하였을 조선 도공과 저자 강영희의 깡다구 있는 행동을 그려보다 책 쓰기에 대해 들게 된 생각

첫째, 책이란 저자 스스로가 최대의 독자다.
사부님은 수없이 말씀하시는데, 첫 책은 자신의 문제를 다스릴 수 있는 책을 써야 하며, 그 책의 첫 번째 독자는 자신임을 명심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막상 책을 쓰려고 생각해 보니 우왕좌왕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책을 쓰게 되면, 나는 (물론 한 명의 독자여도 상관이 없겠지만) 한 명의 독자가 아니라, 천 명일 수도 만 명의 몫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자를 의식하고 쓰겠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말을 제대로 하고, 쓰고 싶은 글을 제대로 쓸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더욱 관건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가장 소중한 독자임과 동시에 만 명 부럽지 않은 독자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둘째, “기억은 시간의 질서에 거역함으로써 세월의 무상함을 넘어서는 인간적인 정체성의 토대를 형성한다.” 38p

문득, 10여 년 전으로 돌아가 ‘뜯지 않고 보관하고 있는 포장된 물건이 내 마음이었구나’ 라는 생각을 해본다. 개봉하지 않은 그곳/것에 내 꿈과 살아보고 싶은 인생이 담겨 있는 것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미완의 시작이다.
그것은 다만 아쉬움을 남기는 부치지 못한 편지 따위가 아니라 새로운 인생을 위하여 아직 개봉하지 않은 미래의 내 삶이요, 더 나은 꿈과 인생일 수 있으리라.

셋째, 씨과실이란 결국 외로움을 견디는 것이다. 도공의 외로움, 이 모든 것을 밝혀 내기 위한 저자의 외로움은 비록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굳건하게 홀로라도 지킬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아니, 기꺼이 먹히는 희생재물이 되는 것이다. 한 개 남은 외로운 열매가 여러 생명을 오래 지키고 살린다. 한 개, 땅에 떨어져 죽은 밀알에서 싹이 나고 줄기를 곧게 세워서 많은 열매를 맺게 되듯이 말이다.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

네엣, 전통은 ‘기억 속의 심상’이요, 욕망과 죄의식 속에서도 자의식은 피어날 수 있는가?
「인간의 삶을 관통하는 모든 비극은 인간이 시간의 일방적인 흐름 속에 갇힌 존재이기 때문에 생겨난다. 기억은 인간을 자신의 일방적인 흐름 속에 가두어놓는 시간의 질서에 거역함으로써, 세월의 무상함을 넘어서는 인간적인 정체성의 토대가 된다. p28

‘기억 속의 심상’에 의지하여 시간의 흐름에 떠밀리는 세월의 무상함에 대항하는 몸부림이야말로, 인간에게 정체성의 후광을 부여하며 주체의 월계관을 씌워주는 인문적인 가치의 본령이다.

기억의 두레박으로 무의식의 우물에서 의식의 샘물을 길어올린 프루스트의『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지난 세기의 예술 정신을 대표한 까닭도 이 때문이다. 작품의 핵심어인 기억이, 산업혁명에서 제국주의로 이어지는 근대의 심장인 욕망과 이에 따른 죄의식罪意識을 오히려 빛나는 자의식自意識으로 탈바꿈시키는데 성공했기 때문일 것이다.」p29

도올 김용옥은 백남준이 예술의 성격을 ‘남을 흉내 내는 것’과 ‘토속적인 자기를 주장하는 것’으로 나누면서, 백남준이 ‘토속적인 자기를 주장하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고전적인, 어찌보면 이조인李朝人의 화석과도 같은, 전통적 인간으로서 지니는 모든 감정과 소양을 지닌 순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봐야 한다. 한국을 일찍 떠났기 때문에 일찍 서구문물에 개명하게 된 것이 아니라, 한국을 일찍 떠났기 때문에 오히려 한국의 순수성을 더 잘 보전한 고전인이었던 것이다.”(p22) 라고 말하며 1932년생인 백남준이 ‘토속적인 자기’를 지키고 그것으로서 미국문화로 하여금 세계문화의 리더로서 자신을 내세울 수 있게 한 비결이라고 설명하였다.

나는 여기서 나의 개인사를 돌아본다. 내 삶에서 전통의 뿌리는 어떻게 작용하였으며, 전통과 한 시대에 국적을 같이하고 있으면서도 전통에 맞지 않는 이질감으로 비춰지거나, 전통을 외면한 것으로 오해 될 수 있다면 어떻게 수습되어야 하는가. 또한 이 경우 욕망과 죄의식 속에서도 피어나는 자의식이 있다면 이것을 어떻게 가꾸고 이끌어 나가야하며 이것은 바람직할 것인가. 전통의 갈등 속에서 개인의 가치는 어떻게 존재의미를 두어야 옳은가 등을 생각해 보게 된다.

다섯, 한국인의 미의식인 상象의 아름다움과 발효와 비보의 원리

한국인의 미의식은 상象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고, 상의 아름다움이란 한마디로 음양과 오행의 상생적 조화를 일컬음이다. 이것은 서로를 돕고 이해하며 서로를 생각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관계로 설명되어 질 수 있는데, 한국문화 속에서 이와 같은 변화를 이루는 원리에는 발효의 원리와 비보의 원리가 있다. 발효의 원리란 부패와 관련된 미생물의 활동을 억누르고 발효와 관련된 효모균의 활동을 북돋우는 것이며, 비보의 원리란 상극적인 것을 향해 대립과 투쟁을 전개하는 대신 허전한 곳을 메우고 험악한 곳을 달래는 보완과 화해를 통해 상극적인 것을 상생적인 것으로 변용시키는 것으로 설명되어 질 수 있다.

여섯, 백의민족이라는 것을 꼭 갈아엎어야 할까? COREANITY의 C처럼? p220

내가 사부님의 문하생이 되기로 작정을 하지 않았어도 K대신 C자를 사랑했을까?
색동옷과 오방색이 있다고 그것을 평상복으로 즐겨 입지는 않았었다. 소색과 흰색의 차이점을 나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별로 의미가 없다고 느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소색이던 흰색이든 하얀색이든 우리 민족이 입었고, 또 우리 민족이 즐겨 입는 흰색이 나쁘지 않다. 이제 와서 그게 뭐가 어떻다는 것인지, 무슨 그리 큰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개인적으로 흰색을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이유는 흰색은 다른 색과 무난하게 잘 어울리는 바탕색이 될 수 있으며 무엇보다 깔끔하고 정갈해서 좋다. 왜 우리가 일본인들이나 다른 나라 사람들이 평가하는 것에 예민해야 하는가?

내 경험으로는 흰색은 상복이 아니고 슬픈 빛깔이 아니다. 흰색은 청초하고 또한 밝고 맑은 색이 아닌가? 또한 내 경험으로는 사람이 우울하고 청승떨 때 얼굴 색깔이 창백하고 힐지는 모르겠으나, 무의식적으로 하얀색을 입기보다 짙은 색이나 검은색 계열을 선호하게 되는 것 같다. 물감이나 크레파스로 색을 칠해도 흰색을 더하면 부드러워지고 환해진다. 외부인들의 언급에 너무 의미를 두고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작위감이 드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일곱, 시간좌표와 공간좌표로 생각해 보는 타인에 대한 반성과 배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초조하리만큼 시간 좌표에 지나치게 강박된 반면, 공간 좌표에는 무감각해져 있다고 저자는 생각한다. 무질서하게 늘어선 거리의 간판들에서 이러한 현상들을 체감하는 저자는, 자신에 대한 반성과 아울러 타인에 대한 배려가 결여되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색에 대한 취향의 상실은 개인의 문제에서 집단의 문제로 확산되어, 마침내 일상을 둘러싼 풍경 전반을 공해에 가까은 색의 부조화로 뒤덮었다."p224

여덟, “개성 있는 취향은 정신의 여백에서 자라난다. 정신의 여백을 간직한 사람만이 시시때때로 튀어오르는 정신의 자투리들로 아름다운 성찰의 조각이불을 꾸며낼 수 있다.” p232

그렇다면 한국의 미의 여백은 부적응자들이 취하는 휴식 후 창조성과 같은 맥락으로 해석될 수 있을까? 글쓰기를 하면서 휴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일상생활의 포트폴리오가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를 체감하게 된다. 내 보기에 휴식과 여유는 부적응을 창조적으로 이끌기에 반드시 필요불가결한 요소라고 생각되어지니 말이다.

아홉, 우리 집 옆에 바로 이 책에 나오는 <호림박물관>이 있는데 아직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이런, 이런 무심한 사람하고는... 이리 하고도 어찌 문학과 문화를 공부한다고 할 수 있는지 원... . 꼭 시간을 내서 가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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