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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1일 18시 44분 등록
마을이 지구를 구한다. [마하트마 간디]- 김태언 옮김 녹색평론사


1. 저자에 관하여.


‘전쟁의 상처로 피 흘리면서 핵의 프랑켄슈타인에 의해 겁에 질린 인류는 죽음의 덫에서 벗어나길 간절히 원하고 있다. 인류는 명예롭지 못한 죽음 대신 삶을 갈망하고 있다.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구한다. 증오가 아니라 사랑에 굶주렸고, 질서가 무질서를 대신한다.[p8]

간디를 인류의 위대한 지도자로 섬기며 그의 사상이 녹아있는 ‘마을이 지구를 구한다’를 읽고 있는 순간에도 폭력은 계속되고 있었다.

--파키스탄 야당지도자 부토 테러로 사망--
27일 암살당한 베나지르 부토는 이슬람권 최초의 여성총리다. 1947년 영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신생독립국가를 이룬 파키스탄의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중앙일보 12.28)

「1947년 8월 간디의 뜻과는 달리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리독립이 결정되었고 이는 간디의 생애에서 가장 슬픈 일이었다. 양쪽으로부터의 비난을 무릅쓰고 간디는 두 종교의 갈등을 해결하고자 모든 노력을 다했으나 이것은 너무나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모든 노력이 실패로 돌아가자 간디는 단식에 들어갔다. 간디의 단식에 의해 1947년 9월 캘커타의 폭동이 가라앉았고 1948년 1월에는 델리에서 휴전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불과 며칠 뒤인 1월 30일 간디는 나투람 고드세라는 힌두교 광신자에게 암살당했다.」 ( 다음 백과사전 )

1. 저자에 관하여.

간디 [ 1869. 10. 2 인도 구자라트 포르반다르~1948. 1. 30 델리 뉴델리]
20세기의 위대한 민족주의 지도자, 비폭력주의의 제창자, 시민 불복종 운동, 그리고 자발적인 빈곤을 즐긴 우리 인류의 위대한 스승으로서 간디.
간디는 영국의 지배를 받던 서벵골 그자라트주의 작은 공국 포르반다르 데완의 총리였던 아버지 카람찬드와 그의 넷째 아내였던 푸틀리바이 사이에서 막내로 태어났다. 카람찬드 간디는 공적인 교육은 많이 받지 못했지만 유능한 행정가로 변덕스러운 군주들과 그들에게 오랫동안 고통당해온 백성과 권력을 쥐고 있는 고집불통의 영국 관리들 사이에서 잘 처신했다.
어머니 푸틀리바이는 신앙심이 매우 깊은 사람이었다. 그의 집안은 힌두신 비슈누를 신봉하는 비슈누파에 기울어져 있었다. 이 파는 비폭력을 중시하고 우주만물이 영원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며 도덕적으로 매우 엄격한 인도종교인 자이나교의 경향을 많이 가졌다. 이런 가정환경 속에서 그는 아힝사(ahiṃsā:살아 있는 모든 것의 불살생)와 채식주의, 자기 정화의 단식, 그리고 모든 종파의 상호 관용을 배우며 자랐다.

--젊은시절--
포르반다르의 교육시설은 형편없었다. 다행히 그의 아버지가 다른 공국인 라지코트의 데완이 되었으므로 그곳에서 교육을 받았다. 13세에 결혼하여 학교를 1년 쉬었다. 공부에서나 놀이 때에나 눈에 띄는 아이가 아니었고 시간이 나면 혼자서 오랫동안 거닐기를 좋아하는 매우 소극적인 성격이었다.
1887년 봄베이의 대학입학시험에 간신히 합격한 그는 바우나가르에 있는 사말다스대학에 입학했다. 의사가 될 생각이 있었지만 해부에 대한 비슈누교의 터부와 구자라트에서 고위 관리가 되어야 하는 가문 전통을 고려하여 변호사가 되는 길을 택했다. 이를 위해서는 영국으로 가야 했다. 대학생활이 힘들었던 차에 영국을 '철학자와 시인의 나라, 문명의 중심지'로 생각했던 그는 그곳에 가기를 희망했다. 영국행을 결심한 그에게는 많은 장애가 기다리고 있었다. 경비를 주지 않는 아버지 대신 형에게서 돈을 구했고 어머니에게는 술과 여자, 육식을 금할 것을 맹세했다. 마지막으로 영국여행을 금하는 메드 바니아 카스트 지도자들의 교령(敎令)은 무시해버렸다. 이런 어려움을 넘은 그는 1888년 9월 영국으로 건너가 도착 10일 후 런던에 있는 이너템플법과대학에 입학했다(→ 법학원).

--영국생활--
간디는 학업에 열중했으나 영국체류 3년 동안 그의 주요 관심은 학업보다는 개인적이고 도덕적인 문제들이었다. 런던과 같은 거대도시의 생활과 서양의 음식·의복·예절에 적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채식주의로 인해 처음에는 상당히 곤란을 겪었지만 곧 채식에 대한 합리적인 근거를 알려주는 책과 식당을 알게 되었고 런던 채식주의협회 집행위원이 되었다.

간디는 채식주의 식당이나 하숙집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성경은 물론 힌두교의 철학적 시가집 〈바가바드기타 Bhagavadgῑtā〉를 처음으로 접했다. 영국 채식주의자들 가운데는 사회주의자·인도주의자·페이비언주의자·신지학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이상주의자였고, 그중 몇몇은 자본주의와 산업사회의 악덕을 비판했다. 단순한 생활을 예찬하고 도덕적 가치와 협동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그들의 사상은 그의 인격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정치사상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1891년 7월 인도로 돌아왔다. 어머니의 사망소식을 비롯하여 반갑지 않은 일들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동안 변호사 인원이 크게 늘어 변호사자격증만 가지고는 직장을 구할 수가 없었다. 봄베이 고등학교의 시간제 교사직조차 얻기 어려워 그는 라지코트로 돌아와 소송인의 탄원서를 작성해주며 생활했으나 이 일마저도 영국인 관리의 비위에 거슬리자 계속할 수 없었다. 따라서 남아프리카 공화국 나탈의 어느 인도인 회사로부터 1년 기한의 계약 요청을 받아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갔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생활--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간디에게 완전히 새로운 도전과 기회의 땅이었다. 더반의 법정에서는 유럽인 판사가 그에게 터번을 벗으라고 했지만 이를 거절하고 퇴장했다. 며칠 뒤 프리토리아로 여행하면서 열차의 1등칸에서 쫓겨나는 모욕을 당했고 마차를 타고 가던 중 유럽인에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고 백인 마부에게 두들겨 맞기도 했다(→ 인종차별). 호텔은 유럽인 전용이었기 때문에 들어갈 수 없었다. 이러한 굴욕은 나탈의 인도인 노동자와 상인들이 매일 겪는 일로 그들은 꾹 참고 지내고 있었다. 그는 훗날 이 여행에서 그의 인생 중에 가장 창조적인 경험을 했다고 고백했다. 그것은 진실과 접한 순간이었다. 이때부터 그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질서를 알게 모르게 이루고 있는 모든 불의에 맞서 인도인으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1899년 보어 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영국 식민지 나탈에서 완전한 시민권을 주장하는 인도인들에게 나탈을 지키는 것이 그들의 의무라고 설득하고 1,100명의 지원자를 모아 간호부대를 만들었다. 그러나 보어 전쟁에서 영국이 승리한 뒤에도 인도인들의 처지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고 1906년 트란스발 정부는 극히 굴욕적인 인도인등록 법령을 제정했다. 인도인들은 그의 지도 아래 그 법령에 대한 불복종과 그로 인한 모든 불이익을 감수하겠다고 맹세했다(→ 시민불복종). 이때에 처음으로 사티아그라하(satyāgraha:진실에의 헌신)가 태어났다. 이는 적대자들에게 원한과 투쟁, 폭력을 쓰지 않고 저항해 그것으로 그들의 잘못을 바로잡는다는 새로운 방법이었다.
그는 1914년 7월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떠나 인도로 갔다. 이후 사태가 보여주듯 그는 아프리카의 인도인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의 인종문제는 그의 감춰진 특별한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이상적 환경을 제공했다.


종교적 추구
포르반다르와 라지코트에서 보낸 어린시절부터의 어머니와 집안의 영향으로 종교적 욕구를 지니고 있었으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도착한 이후 크게 자극을 받았다. 프리토리아에서 퀘이커교도들이 그를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려던 노력은 실패했으나 이를 통해 그는 종교연구 욕구가 불타게 되어 톨스토이의 그리스도교적 저술에 깊이 빠졌고, 코란의 번역본을 비롯하여 힌두 경전과 철학서를 읽었다. 여러 종교를 비교연구하고 신학서들을 많이 읽고 학자들과 토론한 결과 간디는 모든 종교는 진실하지만, 빈곤한 지성과 때로는 진실하지 않은 마음으로 해석하고 오역하여 불완전하게 되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간디의 정신적 조언자였던 뛰어난 젊은 철학자 라지찬드라는 그에게 힌두교의 미묘함과 심오함을 깨닫게 하여 새로운 삶을 맛보게 했다. 또한 그가 영국에서 처음으로 읽었던 〈바가바드기타〉는 그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 거기에서 특히 2가지 개념이 그를 매료시켰다. 하나는 물질적 욕망을 끊어버리라는 아파리그라하(aparigraha:무소유) 개념이고 또 하나는 고통이나 기쁨, 승리나 패배에 동요되지 말라는 사마바바(samabhava:평정) 개념이다.

이러한 영향들은 변호사 일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어, 소송의뢰인들에게 문제를 되도록이면 법정 밖에서 해결하도록 설득했다. 그는 소송의뢰인들을 그의 고객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친구로 생각했다. 그의 수입은 1년에 최고 5,000파운드에 달했으나 그는 돈을 벌고, 모으는 데는 별관심이 없어 많은 부분을 공적인 활동에 사용했다. 더반이나 요한네스버그에서 그의 집은 항상 젊은 동료들과 정치동지들이 만나는 장소가 되었다. 또한 근검절약·육체노동 등에 큰 매력을 느꼈던 간디는 농장을 세우기도 했다.


민족지도자로서의 활동
1915~18년 그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의 입장을 지지하기는 했지만 정치활동에는 잘 나서지 않았다. 그러나 1919년 민중탄압법인 롤래트 법이 제정되자 그는 영국의 지배에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1919년 봄 그는 사티아그라하투쟁을 선언했고, 곧 봉기가 일어나 펀자브의 암리차르에서 400명에 달하는 인도인이 영국군에게 학살되는 사건이 일어나자 잠시 움츠러들었지만, 1년 안에 다시 투지를 갖고 1920년 가을 그는 인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정치적 지도자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인도 민족주의운동은 마지막 국면에 들어섰다. 그는 파시즘을 증오했으며 전쟁 또한 싫어했다. 인도 국민회의당은 자치정부 수립을 조건으로 영국에 협력하고 간디는 1942년 영국에 인도로부터의 즉각적인 철수를 요구했다. 일본과 전쟁이 심각해지자 영국은 간디와 국민회의파를 탄압했고 이에 대항하여 폭동이 발생, 영국과 인도의 관계는 최악의 상태에 빠졌다.

1945년 영국에 노동당이 집권하면서부터 2년 동안 국민회의파, M.A. 진나가 이끄는 이슬람 동맹, 영국정부 간의 3자협상이 벌어졌으나 협상중인 1946~47년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 사이에 유혈충돌이 계속 일어났다. 이성과 정의, 인내와 신뢰를 호소하는 간디의 말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1947년 8월 간디의 뜻과는 달리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리독립이 결정되었고 이는 간디의 생애에서 가장 슬픈 일이었다. 양쪽으로부터의 비난을 무릅쓰고 간디는 두 종교의 갈등을 해결하고자 모든 노력을 다했으나 이것은 너무나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모든 노력이 실패로 돌아가자 간디는 단식에 들어갔다. 간디의 단식에 의해 1947년 9월 캘커타의 폭동이 가라앉았고 1948년 1월에는 델리에서 휴전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불과 며칠 뒤인 1월 30일 간디는 나투람 고드세라는 힌두교 광신자에게 암살당했다.

2, 가슴에 들어온 글귀

[27] 스와라지는 신성한 말, 베다의 말로 자기통치, 자기억제를 뜻하며 ‘독립’이라는 단어처럼 모든 억제로부터의 자유를 뜻하지 않는다. 모든 나라가 먹고 마시고 숨쉴 수 있어야 하는 것처럼 모든 민족은 자신의 일을 아무리 서툴게라도 스스로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28] 자치는 전적으로 우리의 내면의 힘에, 가장 힘든 역경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능력에 달려있다. 사실 그것을 얻고 그것을 유지하려는 계속적인 노력을 요구하지 않는 자치는 그 이름에 값할만한 것이 못된다. 따라서 나는 말과 행동으로 정치적 자치, 즉 다수의 남녀를 위한 자치는 개인의 자치보다 나을 것이 없고, 따라서 그것은 개인의 자치 혹은 자기 지배를 위해 요구되는 것과 정확히 똑같은 수단에 의해 달성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려 하였다.

[29] 푸르나 스와라지-‘완전한’ 스와리자라고 하는 것은 그것이 왕자에게나 농부에게나 똑같고, 부유한 지주에게나 땅이 없는 농군에게나 똑같고, 힌두에게나 무살만에게나 똑같고, 파시교도와 기독교에게나, 자이나교도 유태교도 시크교도에게도 카스트나 종파나 신분에 상관없이 똑같기 때문이다.

[31] 우리가 완전한 스와라지로 무엇을 의미하고 그것을 통해 무엇을 원하는가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 만일 우리가 대중들의 각성과, 그들의 진정한 이해와 온 세상에 맞서서 그 이해에 봉사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그리고 완전한 스와라지를 통해서 우리가 조화와, 내부의 것이든 외부에서 오는 것이든 공격을 받지 않을 자유, 대중의 경제적 조건의 진보적 개선을 원한다면 우리는 정치적 권력 없이도 그리고 현존하는 권력에 직접 작용함으로써 우리의 목적에 도달할 수 있다.

[31] 내가 생각하는 스와라지는 오직 우리 모두가 우리의 스와라지를 진실과 아힘사만을 통해 얻고 구축하고 유지해야 한다고 확고하게 믿게 되어야만 실현될 것이다. 진정한 민주주의 혹은 대중의 스와라지는 거짓되고 폭격적인 수단으로는 이룰 수 없다. 그것들을 사용하면 자연히 반대의견을 가진 이들을 억압하고 제거하여 모든 반대 자체를 없애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는 개인의 자유로 나아갈 수 없다. 개인의 자유는 오직 순수한 아힘사의 체제하에서만 완전히 발휘될 수 있다.


-----제 2장 이상적 사회의 모습-----

[35] 공동체에 봉사한다는 원칙이 무제한의 기계적인 경쟁을 대신하게 된다. 모든 사람이 충분한 여가와 기회와 교육과 문화를 위한 편의를 누리며 일한다. 그것은 가내공업과 집약적인 소규모 농업협동체로 구성된 매력적인 세계이며, 자민족 중심주의나 카스트제도가 들어설 틈이 없다. 마지막으로, 그것은 경제적인 자립이 강화되면서 개인의 자유의 범위는 최대한으로 확대된 스와데지의 세계이다.

[36] 여성과 마찬가지로 남성도 정숙과 순결을 굳게 지킬 것이다. 어떤 종교를 가진 사람이든 아내 이외의 여성들을 모두 나이에 따라 어머니나 누이나 딸로 대접할 것이다. 불가촉천민은 없고 모든 신앙이 동등하게 존중될 것이다. 모두가 자부심을 가지고 기쁘게 그리고 자발적으로 생계를 위해 일할 것이다. 나는 이 말을 듣거나 글로 읽는 사람들 모두가, 만일 내가 침상에 누워 햇볕을 쪼이며 그 생명력을 들이마시며 이런 황홀한 생각에 빠져 있다면 그것을 용서해주기 바란다.

-----제3장 어느 쪽에 희망이 있는가?-----

[38]기계에 대한 나의 근본적인 반대는 이들 나라가 다른 나라를 착취할 수 있게 한 것이 기계라는 사실 때문이다. 기계 자체는 중립적인 것이어서 좋은 목적이나 나쁜 목적이나 어느 것에도 봉사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그것은 쉽사리 나쁜 목적에 쓰인다.

[39] 악은 소달구지에 있는 것이 아니다. 악은 우리의 이기심과 이웃에 대한 배려의 부족에 있다. 우리가 이웃에 대한 사랑을 갖고 있지 않다면 어떤 변화도, 그것이 아무리 혁명적인 것이라도 우리에게 전혀 도움이 될 수 없다.

[41] 우리가 품위있게 생활하는 기술을 배웠을 때만 삶의 모든 은총이 가능하다.

[41] 소박한 삶이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그 시도는 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오직 한 개인이나 한 집안만이 노력한다 해도.

-----제4장 도시와 마을-----

[50] 현재 세계는 두 부류의 사상이 있다. 하나는 세계를 도시로 나누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마을들로 나누려는 것이다. 마을문명과 도시문명은 전적으로 다르다. 하나는 기계와 산업화에 의존하고, 다른 하나는 수공업에 의존한다. 우리는 후자를 택하고자 한다.

[50] 우리는 수십만, 수천만 루피를 모으기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일을 위해 항상 돈에 의지하고 싶지 않다. 대의를 위해 우리의 삶을 희생 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돈은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는 신념을 가져야 하고, 우리 자신에게 진실되어야 한다.

[52] 맨체스터의 천을 사용함으로써 우리는 돈만을 낭비하지만 인도에 맨체스터와 같은 곳을 만듦으로써 우리는 돈을 낭비하지 않는 대신 피를 대가로 지불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도덕적 존재 자체가 약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53] 나는 자연치유를 지지하는 사람이어서 신체를 전반적으로 정화하여 자연적으로 치유시키는 방법을 좋아한다. 만일 도시거주자들의 마음이 아직 마을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만일 그들이 진정으로 마을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다른 것들은 모두 자동적으로 따라갈 것이고 종기는 빠르게 나을 것이다.

[55]도시들을 스스로를 돌볼 능력이 있다. 우리가 관심을 돌려야 하는 곳은 마을이다. 우리는 그들이 편견과 미신,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도록 깨우쳐 주어야 하며, 그렇게 하려면 그들 가운데 머물려, 기쁨과 슬픔과 함께 하고 교육과 지적 정보를 그들 사이에 확산시키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57] 도시와 마을 간에 건강하고 도덕적인 관계가 생겨나는 것은 오직 도시들이 마을들을 이기적으로 착취하는 대신 마을에서 끌어내는 힘과 자양물에 대하여 적절한 보상을 하는 의무를 깨달을 때이다. 그리고 만일 도시의 아이들이 사회재건이라는 이 크고 숭고한 일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하려고 한다면 그들의 교육의 수단이 되는 직업이 마을의 요구와 직접 관련되어 있어야 한다.

[60] 나는 진실과 비폭력 없이는 인류에게 파멸밖에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오직 마을생활의 단순함 속에서만 진리와 비폭력을 실현할 수 있고, 이 단순함은 차르카와 그것이 내포하는 모든 것에서 가장 잘 발견된다.

[60] 내가 생각하는 마을 스와라지는 기본적 필요에 관해서는 이웃으로부터 독립되어 있고 그러면서도 의존이 불가피한 다른 여러 가지에 관해서는 상호의존적인 완전한 공화국이다.

[64] 첫째로 사람을 생각해야 된다. 추구해야 할 목표는 완전한 지적, 도덕적 성장과 결합된 인간의 행복이다. 나는 도덕적이라는 말을 영적이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쓴다. 이 목표는 탈중심화하에서 성취될 수 있다. 체제로서의 중앙집중화는 사회의 비폭력적 구조와 상반되는 것이다.

[71] 우리 모두가 이웃에 대한 의무를 제대로 수행한다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 누구도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웃에 봉사하는 사람은 온 세상에 봉사하는 것이다.

[71] 온 세상을 자신의 가족과 같이 느끼는 사람은 자기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고도 우주에 봉사하는 힘을 가진 것이다. 그는 오직 이웃에게 제공하는 봉사를 통해서만 이 힘을 발휘할 수 있다.

[77] 전세계적으로 자본과 노동 사이의 갈등이 있고 가난한 이들은 부자를 부러워한다. 만일 모두가 생계를 위한 노동을 한다면 계급의 구별은 사라질 것이다. 부자는 여전히 존재하겠지만 그들은 자신이 그들의 재산의 수탁자라고 생각할 것이고 그 재산을 주로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용할 것이다.

[78] 이것은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위한 노력을 그칠 필요는 없다. 희생의 법, 다시 말해 우리 존재의 법 전체를 수행하지 않으면 우리가 일상의 양식을 위한 충분한 육체노동을 했더라도 우리는 그 이상에서는 멀리 있다.

[79] 나는 지적 노동의 가치를 무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지적 노동이라도 전체의 공동의 이익을 위해 우리 각자가 제공하도록 마련된 육체노동에 대한 보상이 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육체노동보다 무한히 우월할 수 있고, 흔히 그렇기도 하다. 그러나 결코 그 대신이 될 수는 없다.

[86] 국가는 집중되고 조직된 형태의 폭력을 대변한다. 개인은 영혼을 가지고 있지만 국가는 영혼이 없는 기계이므로 자신의 존재 근거가 되는 폭력을 결코 떼어버릴 수 없다.

[87] 나는 비폭력이 단순히 개인적인 미덕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른 미덕들처럼 장려해야 할 사회적 미덕이다. 확실히 사회는 대체로 상호간의 일에서 비폭력의 표현에 의해 규제된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것을 보다 큰 국가적, 국제적 규모로 확산하자는 것이다.

[89] 스와데시는 우리가 더 멀리 있는 것은 배제하고 바로 가까이에 있는 것을 사용하고 거기에 봉사하도록 우리를 제한하는 우리 속의 정신이다.

[93] 우리가 스와데시 원칙을 따른다면 건강한 직업을 원하는 이웃들이 있다는 전제하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줄 수 있는 이웃들을 찾아내어 공급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그렇게 되면 인도의 모든 마을들은 오직 자기 지역에서 생산할 수 없는 필수품만을 다른 마을과 교역하고, 거의 자급자족하는 단위가 될 것이다.

[95] 내가 내 가족조차 잘 돕지 못하면서 온 인도를 돕기 위해 나서겠다고 하는 것은 교만이다. 나의 노력을 가족에게 집중하고 그들을 통해서 전국민에게, 그리고 또 전인류에게 봉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낫다.

[99] 모두가 협동한다. 그래서 우리가 사회나 민족이나 인류 전체를 가족으로 볼 때 모든 사람은 협력자들이 된다. 그런 협동의 모습을 생각할 수 있다면 우리는 생명이 없는 기계로부터 지원을 받을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기계를 최대한 사용하는 대신에 최소한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며, 거기에 사회의 진정한 안전과 자기 보호가 있을 것이다.

[102] 인간을 짐승과 구분하는 것이 사회적 본성이라는 것을 또한 잊지 말자. 독립적인 것이 인간의 특권이라면 상호의존적인 것은 인간의 의무이다. 오직 교만한 사람만이 모두로부터 독립해서 홀로 자립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107] 따라서 모든 마을들은 자립적이고 전세계에 맞서서 자신을 방어할 수 있을 정도로 되어야 한다. 마을은 훈련을 받고, 외부로부터의 공격에 맞서서 자신을 방어하다가 멸망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궁극적으로 단위가 되는 것은 개인이다. 이것은 이웃게 대한 의존이나 이웃이나 세계로부터 기꺼이 제공되는 도움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유롭고 자발적인 상호간의 힘의 작용이다. 그런 사회는 반드시 높은 문화가 발달해 있고, 그곳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고, 더욱이 누구도 다른 사람이 같은 노동을 하여 얻을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원하지 말하야 한다는 것을 안다.

[108] 이 모두가 유토피아적인 생각이고, 따라서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조롱을 들을지도 모른다. 유클리드의 점이 인간의 능력으로 그릴 수는 없지만 불멸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면 나의 그림은 인류가 살아야 할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완전히 실현될 수는 없더라도 인도가 이 진실된 모습을 위해 살게 하라.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에 근접하는 어떤 것을 가질 수 있기 전에 제대로 된 그림을 가져야 한다.

[113] 우리의 마을 사람들 경우를 보자. 어린 시절부터 내내 그들은 가축들과 마찬가지로 아침부터 밤까지 들에서 힘들게 일을 한다. 그들의 삶은 지루하고 끝이 없는 기계적인 노역의 반복이며, 한점의 지성이나 삶의 보다 높은 아름다움을 잠시 누릴 기회도 없다. 그들은 정신과 영혼을 개발할 여유도 엇어서 짐승들과 같은 수준에 떨어져 있다. 그들에게 삶은 비참한 고역이고, 그 속을 그들은 헤매어 나간다.

[121] 나는 인도에서 무상의 의무적인 초등교육의 원칙을 굳게 믿는 사람이다. 나는 또 아이들에게 유용한 일을 가르치고, 그것을 그들의 지적, 육체적, 영적 능력을 개발하는 수단으로 활용함으로써만 이것을 실현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교육에 이런 경제적 계산을 결부시키는 것을 야비하다거나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경제적 계산이 본질적으로 야비한 것은 아니다. 진정한 경제학은 최상의 윤리적 기준과 갈등하지 않는다.

[125] 이렇게 일부를 배제하는 과정을 얼마나 오래 계속해야 되는 지 묻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내 대답은 ‘평생 동안’이다. 결국, 처음에 배제해 둔 것들 다수가 이미 포함되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즉 포함시킬 가치가 있는 것들은 모두 포함이 되고 끝까지 배제된 채 남아있는 것은 아주 피상적인 것이어서 배제할 만한 것일 것이다.

[129]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독창성과 열정을 가진 교육자로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칠지를 날마다 생각하는 사람이다. 교사는 곰팡내 나는 책에서 이런 지식을 얻을 수는 없다. 그는 자신의 관찰력과 사고력을 사용해야 되고, 아이들에게 자신의 입으로 자신의 지식을 전달해야 되는 것이다.

[130] 학교 과정의 시작과 함께 아이들은 그 미래를 실현시키는 데 자신의 몫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131] 처음부터 나는 이 나라 사람에게 농업만이 확실하게 해를 거듭하며 생계를 제공해줄 방법이라고 굳게 믿었다. 우리는 그것을 기초로 삼아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 지 알아보아야 한다.

[132] 이제 우리가 농업에 주의를 기울일 때가 왔다. 지금까지 나는 국가행정을 우리가 맡지 않는 한 농업개선은 불가능하다고 믿었다. 이 점에 관한 나의 견해는 지금 수전되고 있다. 현재 상태에서도 개선이 가능하고, 그래서 농사짓는 사람이 세금을 낸 다음에 얼마간의 수익을 낼 수 있다고 나는 느낀다.

[133] 사람들은 그런 방법이 느리고 진취적이지 못하다고 비판할지 모른다. 나는 극적인 결과를 약속한다고 내세우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토양과 그 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번영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 건강한, 자양분이 풍부한 음식은 농업경제의 시작이요 끝이다. 농부의 가계의 대부분은 자신과 가족의 식량에 들어간다. 다른 것들은 모두 그 다음에 온다.

[134] 당신이 그들에게 말을 하고 그들이 말을 하기 시작하는 순간 당신은 그들의 입에서 지혜가 방울방울 떨어지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거친 외양 뒤에 깊은 영성이 축적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나는 이것을 문화라고 부른다. 이러한 것을 서양에서는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141] 모범적인 지주는 지금 소작인이 지고 있는 짐을 크게 줄일 것이다. 그는 소작인들과 긴밀히 접촉하고 그들의 요구를 알고 지금 그들의 생명을 죽이고 있는 절망 대신에 희망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그는 소작인들이 위생에 대해 무지한 것에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소작인들이 생활필수품을 가질 수 있도록 자신이 가난해질 것이다.

[125] 미래의 비폭력적 질서 속에서 땅은 국가에 속할 것이다. 그런 제도 아래서는 재능이나 노동의 낭비는 없을 것이다. 이것은 폭력적인 수단으로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폭력에 의해 지주들이 완전히 멸망한다면 결국 노동자들도 함께 명망하게 될 것이라는 말은 진실이다.

[153] 그러나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쓰레기를 처리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의 건강과 퇴비로 인한 소출 증가로 물질적 조건을 개선한다는 두가지 목적을 위해 모든 쓰레기를 묻어야 한다는 것이다.

[170] 나는 식량 위기에 관한 이 간략한 논평을 트루먼 대통령이 미국사람들에게 했다는 말을 환기시키는 것으로 끝맺으려 한다. 그는 굶주리는 유럽인들에게 매우 필요한 곡식을 비축하기 위해 미국 사람들이 빵을 덜 먹어야 된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미국인들이 건강을 잃지는 않으리라고 덧붙였다. 나는 트루먼 대통령의 이 박애적인 행동에 축하를 보낸다. 나는 이 박애적인 행동 뒤에 미국에 금전적인 이득을 끌어내려는 더러운 동기가 있다는 말에 찬성하지 않는다. 사람은 행동에 의해 판단되어야 하며 그것을 촉발시키는 동기로 판단되어서는 안 된다.

[182] 게으름은 모든 악의 커다란 원인이며 뿌리이다. 그 뿌리를 파괴할 수 있다면 대부분의 악은 더 많은 노력 없이 치유될 수 있다.

[187] 공장과 도시의 증가가 인도의 수많은 민중의 번영에 기여하지 않을 것임은 확실하다. 오히려 그것은 실업자에게 더 심한 가난과 굶주림에 따라오는 모든 질병들을 가져다 줄 것이다. 만일 도시 거주자들이 그런 광경을 편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더 말할 것이 없다. 그런 경우에는 인도에는 진실과 아힘사가 아니라 폭력이 지배하게 될 것이다.

[188] 이제 내가 말하려는 세 번째 것은 비폭력이 다른 세상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내게 아무 소용이 없다. 나는 땅에 속해 있고 비폭력이 정말로 가치 있는 것이라면 나는 그것을 이 땅 위에서 내가 아직 살아있는 동안에 실현시키고 싶다.

[194] 물레는 비폭력적인 경제적 자급자족의 상징이다. 만일 우리와 사람들이 물레의 이런 의미를 이해한다면, 물레를 위한 선전에 동전 하나도 쓸 필요가 없다. 또 부자들이 보시를 하지 않나하고 쳐다볼 필요도 없다. 우리는 노력하지 않고 희망의 중심이 될 것이며 사람들은 스스로 우리에게 올 것이다. 그들은 일거리를 찾아 다른 곳에 가지 않을 것이다.

[201] 간단히 말하면,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들은 마을에서 생산된 것에 국한해야 한다. 그 제품들은 조잡할지 모른다. 우리는 그 물건들의 질이 개선되도록 유도해야 하며, 외국산 물건이나 도시의 큰 공장에서 생산된 물건보다 못하다고 해서 그것을 배척해서는 안된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마을 사람들의 예술적 재능을 일깨워야 한다. 이런 방법으로 우리는 우리가 그들에게 지고 있는 빚을 어느 정도 갚아야 한다.

[229] 그러나 구경거리나 떠들어대기가 아니라 조용히 정말로 건설적인 일을 하는 것이 목표라면, 소 수레가 훨씬 더 잘 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의견이다.

[235] 지성과 노동이 분리된 결과로 마을에 대한 한심스러운 무관심이 초래되었다. 그 결과, 아름다운 작은 마을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는 풍경 대신에 우리는 똥더미들을 갖게 되었다.

[236] 이것은 인도의 고통받는 대중들에게 셀 수없는 이익을 주는 정말로 흥미롭고 교육적인 봉사이다. 그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 내가 설명하였듯이, 의욕적인 일꾼들이 펜과 연필을 사용할 때와 같은 자부심과 편안함을 가지고 비와 삽을 사용한다면 비용 문제는 거의 완전히 사라질 것으로 기대한다.

[238]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라는 말은 아마도 인류를 위한 제 1법칙이다. 그것은 자명한 진리이다. 몸과 정신 사이에는 피할 수 없는 연결이 있다. 우리가 건강한 정신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모든 폭력을 버릴 것이고, 자연스레 건강의 법칙에 복종하여 애쓰지 않고도 건강한 몸을 갖게 될 것이다.

[273] 내가 생각하는 경찰은, 그러나, 현재의 경찰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일 것이다. 그 구성원들은 비폭력을 믿는 사람들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들은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봉사할 것이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그들에게 모든 도움을 줄 것이며, 상호협력을 통해 점점 줄어드는 소요사태를 쉽게 처리할 것이다.

[277] 우리는 현재의 기준을 바꿔야 한다. 우리는 당신에게 아무런 세속적 경력을 약속하지 않는다. 사실 우리는 당신이 그런 종류의 야망을 버리기 바란다.

[289] 그러나 그 사람이 마을에 정착을 하고 마을사람들처럼 살려고 한다면 노동을 해서 생계를 꾸리는 데 아무런 어려움도 없을 것이다. 그는 현명하지 못한 과거의 방법으로 일 년 내내 일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마을 사람들이 생계를 벌 수 있다면 그도 최소한 평균적인 마을사람만큼은 벌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294] 이상적인 방법은 마을에 의지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수치스러울 것은 없으나 겸손해야 한다. 또 제멋대로 할 수 있는 여유도 없다. 제멋대로 하는 것을 권장하거나 용인할 마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꾼이 해야 하는 일은 일하는 시간 내내 마을을 위해 일하고 필요한 곡식이나 채소 등을 무엇이든 마을에서 받는 것이다.

[301] 활기있는 운동이나 조직은 어떤 것도 외부의 공격으로 죽지 않는다. 그것은 내부의 부패로 죽는다. 필요한 것은 의심의 여지 없는 인품, 일의 기술에 대해 지식을 키워가면서 끊임없이 행하는 노력과 엄격하게 단순한 생활이다.

[309] 각 지방 정부는 마을 사람들에게 자신이 사용할 카다르 직물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자동적으로 지역에서의 생산과 분배가 일어나게 된다.

[314] 내가 생각하는 완전한 스와라지는 고립된 독립이 아니라 건강하고 위엄있는 독립이다. 나의 민족주의는 열렬한 것이기는 하지만 배타적인 것이 아니고 어떤 나라나 개인도 해치려는 것이 아니다.

[316] 나는 그것이 미국과 전세계를 위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고 그낀다. 나는 인도와 세계를 구하는 길이 물레에 있다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만일 인도가 기계의 노예가 된다면, 나는 하늘이여 세계를 구해 주소서 라고 말할 것이다. 나는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 세계가 출혈로 죽어가고 있다고 느낀다. 세계는 출구를 찾고 있는데 나는 어쩌면 갈구하는 세상에게 나갈 길을 보여주는 것이 오래된 나라 인도의 특권일 것이라고 믿고 있다.

[318] 나는 인도가 자유롭고 강해져서 세계의 향상을 위해 순수한 희생으로 자신을 기꺼이 제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개인은 순수한 존재라면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가족은 마을을 위해, 마을은 지역을 위해, 지역은 광역지방을 위해, 광역지방은 나라를 위해, 그리고 나라는 모두를 위해 희생한다.

3. 내가 저자라면

3. 내가 저자라면

글을 읽어가는 동안, 육체가 본래 그러함인지를 의심케 하는 간디의 모습과 김구 선생의 모습이 크로즈업 되어 시야를 가렸다. 무엇이 이 두 사람으로 하여금 전체를 위해 홀연히 일어서게 했는가? 나 아닌 전체를 위해 그들의 모든 것을 던지게 했는가? 그들의 태생도 나와 다름없이 그들의 어머니 눈망울에 들어있던 아름다운 한 떨기 꽃이었으리라. 어디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 무엇이었으리라. 이는 곧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그들의 어미에게 있어서는 우리가 대접 받음과 동일하다는 것을 의미함이다. 그들은 그들이 ‘대접받았음’을 함께 나누는 방법을 우리에게 간절히 전하고 있다.

[39] 악은 소달구지에 있는 것이 아니다. 악은 우리의 이기심과 이웃에 대한 배려의 부족에 있다. 우리가 이웃에 대한 사랑을 갖고 있지 않다면 어떤 변화도, 그것이 아무리 혁명적인 것이라도 우리에게 전혀 도움이 될 수 없다.

간디는 인류(인도)가 살아갈 방향을 마을 즉 작은 공동체를 살리는데서 길을 찾았다. 서두에서 그가 말했듯이 그 방법적인 면에서는 언제든지 생각이 바뀔 수 있지만 함께 살아 가야함에는 변함이 없다. 육체적 노동과 자발적 빈곤을 즐기고 이웃에 대한 배려의 힘이 ‘선’임을 이야기 한다. ‘악’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이기심이라고 했다.
그는 소규모의 작은 마을 단위의 자급자족의 형태를 이상적 마을이라고 생각했으며 기계의 발달은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가는 것이 아닌 일손을 들어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또한 도시는 농촌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살핌의 방향으로 나가야 함을, 도시인들은 건강한 삶을 위하여 그들의 마음에 작은 공동체인 마을을 품고 있어야 함을 말한다.

우리 시대에 인류를 살리는 길은 무엇인가?
거창한 구호 같지만 삶의 소중한 가치를 상실해 가고 있는 내 이웃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발걸음은 무엇인가? 악이 악임을 알지 못하는 도시인들을 위한 고민은 아니었다. 나의 내면의 갈망에서 출발하였고 좀 더 덧붙이자면 교육다운 교육을 위한 고민에서 출발하였다.
아이들에게 삶의 올바른 의미를 심어주고 싶었고 그들의 그늘인 부모들을 위한 작은 첫걸음이고 싶었다.
간디가 이야기한 작은 마을은 내가 꿈꾸는 마을의 모델이다. 배려가 있고 자급자족이 이루어지며 노동이 신성시 되고 빈곤이 즐거움이 된다. 신이 우리에게 넘치게 준 것이 없음을 모두가 알고 번쩍거리는 기계음 대신 졸졸거리는 시냇물 소리가 영혼의 울림임을 안다. 그들은 도외지 사람들의 꼬임에 쉽사리 넘어가지 않는다. 그들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 낸 ‘생명체를 죽이는 심비의 묘약’ 대신 풀과 이슬과 함께 공존하는 방법을 안다. 그러나 도외지 사람들 또한 생명체를 가진 우리의 소중한 동료임을 잊지 않는다. 그들에게 속임수를 써서 폭리를 취하지 않으며 ‘나눔’을 더 큰 목적에 둔다. 아이들이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공터를 제공하며 은총이 무엇인지를 체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한다. 교실에서 일등하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 함께 하는 것이라는 것을 작은 공동체를 통해서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밭고랑 사이에 난 잡초를 제초제로 죽이는 것보다 두 손으로 뽑아내어 모깃불을 지피는 것이 우선임을 그들이 알게 한다.

먹거리에서부터 빈곤의 차이가 시작되는 것에 심한 비애를 느꼈다. 빈곤층은 식품에서부터 인간이하의 위치를 차지한다. 친환경제품 이라고 명명되어진 것은 값부터 범접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 생명의 원천, 땅에서 나는 것들조차도 편견과 ‘악’에 길들어져 간다.
그들은 ‘생산비용’이라는 근사한 변명아래 인간과 인간이하를 가름하고 ‘돈’의 마력에 끌리어 들어간다. 농촌은 그 길을 일어가고 있다. 우리의 외면이 그렇게 만들었고 도시인들의 약삭 바른 이기심 그렇게 만들었다.
함께 살아나가는 방법을 간디에게서 배운다. 물론 시대적 환경이나 개인적 여건, 나아가서 내재적 힘으로 인한 이견이 있지만 그 원류는 변함이 없다. 작은 마을은 우리 모두가 추구하는 건전한 삶의 모습을 품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한 평 위에 세워지든 아니면, 수 만평위에 세워지던 ‘인간’을 위한 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육체의 나약함이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있는 요즈음, ‘간디의 힘의 원천은 어디에서 왔는가’ 를 새로운 화두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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