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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3일 22시 53분 등록
Ⅱ. 가슴으로 읽는 글귀(인용)

1부 기억상실과 어제의 한국인
<백남준과 서울의 기억>

[16] 한국은 탈아입구(脫亞入歐)의 깃발 아래 ‘동양 속의 서양’을 자처한 일본에 의해 식민지를 강요당했고, 한국인은 자신을 보존하는 동시에 자신을 변화시켜야 하는 모순된 상황으로 내몰렸다. 한쪽에서는 척사(斥邪)와 쇄국(鎖國)에서 민족주의(民族主義)와 주체사상(主體思想)에 이르는 구호가, 다른 한쪽에는 개화(開化)에서 세계화(世界化)에 이르는 구호가 등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 결과 한국인이게는 자기를 굳건하게 다지려는 자화상과 자기를 바꾸려는 자화상이 공존(共存)하게 되었다.

[21] 밝음이 지긋이 내리누르는 어둠에 의해 차분히 가라앉혀지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마침에 깊이 있는 아름다움을 확보한다.
* 고려의 ‘양류관음’ 사진에 설명에 덧붙인 저자의 설명

[22] 한국을 일찍 떠났기 때문에 일찍 서구문물에 개명하게 된 것이 아니라, 한국을 일찍 떠났기 때문에 오히려 한국의 순수성을 더 잘 보전한 고전인이었던 것이다. (김용옥, 「도올이 백남준을 만난 이야기」,『석도화론』)

[25] 반드시 백남준이거나 윤이상, 이응노여야 할 이유도 업다. 겸재나 박수근이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장사꾼이면 어떻고, 평범한 시민이면 어떤가. 중요한 것은 당신의 삶이 창조적이기를 원하는가에 달려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이 수간 세계인과 한국인의 제로섬 게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27] 그(백남준)에게 있어 전통이란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쓸 수 있는 ‘기억 속의 심상’이다.

[28] 인간의 삶을 관통하는 모든 비극은 인간이 시간의 일방적인 흐름 속에 갇힌 존재이기 때문에 생겨난다. 시간의 엔트로피 법칙 또는 불가역성은 덧없음이라는 인생의 쓰디쓴 진리를 탄생시킨 우주의 원죄다.

[32] 문화의 저력이란 문화 속에 덧쌓인 ‘기억 속의 심상’의 두께이며, ‘기억 속의 심상’을 일관되게 관통하는 취향이야말로 미의식의 본질이다. 따라서 살아 있는 전통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취향을 즐겁게 뛰놀도록 하는 ‘기억 속의 심상’이 ‘생의 지주’와도 같이 우리 안에 늘어서 있어야 한다.

<기차가 있는 풍경>

[39] ‘식민지 조선의 서구화 = 근대화’를 민족간의 적자생존 원리를 전제로 한 문명화로 받아들이는 논리는, 결과적으로 제국주의를 문명이 비문명을 선도하는 필요악으로 합리화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41]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별다른 욕망이나 반성도 없이, 마치 손바닥을 뒤집는 것과 같이 한순간에 변화를 맞이한다. 이것은 ‘기차가 있는 풍경’ 속에 존재함으로써, 근대문명의 총아인 기차의 속도감에 정서적으로 기대에 있음으로써 비로소 가능하다. ‘기차가 있는 풍경’이란 서구에 대한 콤플렉스 속에서 근대화를 향해 강박적으로 내몰리는 조선사람의 조급함을 상징하는 기호다.

[47] 시간의 흐름보다 앞서고자 하는 조급함의 열기에 휩싸인 나머지 가끔씩 시간의 흐름에서 뒤돌아설 때만 확보되는 기억 속의 심상을 상실한 근대 한국인은, 마침내 인간적인 정체성의 토대가 흔들리는 비극에 직면했다. 이것이 바로 근대 한국인의 기억상실이다.

[47] 취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오늘의 나를 구성하는 찰나(刹那)인 동시에, 어제의 나에 대한 기억이 깃들이는 영겁(永劫)이다.

[49] 취향이란 무엇보다 타인과 자신을 구별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구체적인 계기이기 때문이다.

[50] 취향이란 ‘기억 속의 심상’이라는 영혼이 깃드는 육체와 같은 것이며 영혼과 육체는 하나로 통합되어 인간적인 정체성의 토대를 이룩한다.
* 공각기동대에서 로봇은 기억속의 심상을 갖지 않는 것이 인간과는 다른 점이었다. 로봇은 그저 프로그램으로 저장된 단일 영상을 저장하여 그것을 꺼내어 쓸 뿐이다. 그러니 변종(창조적인 것)을 만들어 낼 수 없다.

2부 야나기 무네요시의 한국 예술론

[57] 피카소에 의해 간택된 아프리카의 민예는 아프리카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피카소의 영광을 위해 존재할 따름이다. 이 점, 혼동되어서는 안된다. 조선이 민에가 그것의 발견자인 일본인의 놀라운 직관을 드러내기 위해 존재하듯이 말이다.

[59] 일본의 미술사가인 야나기 무네요시는 한국의 고대 예술인들의 세계는 ‘사고(思考) 이전’ ‘인위(人爲) 이전’ 이라고 말한 일이 있다. 한국임의 정신은 실로 이 평언으로써 적중되었으며 여기에 더 덧붙일 말을 찾을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이를 만들어내자, 완전한 형을 만들어보자 하는 따위 예술가적인 사고 하기 이전, 마치 자연이 산천초목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은 ‘인간 이전’ ‘조작(造作) 이전’의 경지에서 만들어진 것이 한국의 미며, 그렇기 때문에 한국 미술품의 미는 특출하다는 것이다. (김원룡, 『한국인의 미』)

<미적인 위계질서 또는 오리엔탈리즘>

[60] 에드워드 사이드는 하위사회와 그 예술에 대한 사랑을 내새워 그들의 미와 상상력을 교묘하게 착취하고 마침내 그들의 영혼을 자기소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이같은 근대 속의 야만을 동양주의 또는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라고 불렀다.

[61] ‘서양은 어디까지나 행위자(actor)이고 동양은 수동적인 반응자(reactor)이다. 서양은 동양의 행동의 모든 측면에 관하여 관찰자이고, 재판관이며, 배심원이다.’ (사이드, 『오리엔탈리즘』)

[71] 본시 문화미라는 것은 거의 예외없이 그 사호의 상류계급의 문화의식과 관련되어 있으며, 이것을 대변하는 것이 문화적 선량(選良), 곧 지식인의 미관이다. 동아시아 회화권에 있어서는 소위 선비와 중 특히 선비계층이 이에 해당한다. 따라서 그림 그리는 사람이 미천한 화공(畵工)이건, 혹은 취미삼아 화필을 농하는 사대부이건 간에, 그 배후의 미관은 필연적으로 상류계급의 그것이며 또 상류계급의 수요에 따른다. (이동주, 『한국회화 소사』)

[73] 왕궁의 뜨락에 깔린 박석(薄石)이 반듯반듯한 전돌이 아니라 삐뚤삐뚤한 화강암이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74] 사람은 지적 근거만이 정확한 것의 모든 기초하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나는 차라리 변증이 없는 자연스러운 인정 같은 것이 오히려 진리의 본질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자연스러움에 기초를 둔 감정은 항상 바르고 따뜻한 진리의 세계를 드러내준다. 그런데, 이지(理智)를위한 이지 때문에 이 자연스러운 진리가 얼마나 자주 사라지고 있는지 모른다. ... 일찍이 이지가 따뜻한 우의를 보증한 예가 있었는가. 그것은 정이 따뜻하게 해주는 복지가 아니겠는가. 나는 이와 같이 자연스러운 바탕 위에 나의 사상의 기초를 세우려고 했던 것이다. (야나기 무네요시, 『조선을 생각한다』의 서문)
* 맨 마지막 문장만 아니라면 나는 그렇게 반반하지 안았을지도 모른다. 2부 앞쪽에 강영희님이 서술한 것이 아니라면 나는 무네요시를 곱게 보았을 것이다.

[82] 주목해야 할 것은 이같은 인욕(人慾)의 삶에는 반드시 쓸쓸함의 정감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엔카의 애상이나 벚꽃의 허무로 대표되는 일본적 감상주의의 본질이다.

[85] 끝없는 감탄사를 자아내게 하는 정령적인 자연은 신의 작위(作爲)를 상징하며, 그 속에서 유영하듯이 살아가는 동심의 인간은 인간의 무작위(無作爲)를 상징한다.
* 「이웃집 토토로」「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의 정령과 동심

[85] 순종과 은총의 함수관계 속에서 은총을 댓가로 순종을 강요당하는 거세된 존재인 일본적 인간상이 그들의 마음에 달콤한 비애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선의 미와 야나기의 환상>

[92] ‘선의 비밀’을 풀지 못하면 ‘조선의 마음’에 들어갈 수 없다는 야나기의 말은 진술이었다. 그러나 ‘선의 비밀’을 풀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마음 속에 들어 있는 편견을 버려야 했다.

[93] 그들(한국)의 미의식은 주제가 정지태에 있지 않고 힘찬 운동 계열에 있다는 것, 자웅이 합체 되고 음양이 하나 되어, 마치 태초에 내딛는 첫발가국과도 같이 고도로 응축된 힘을 발산하고 있다는 것. 이같은 미의식으 특성은 비단 사신도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한옥의 지붕곡선이나 의복의 선, 도자기의 선에서도 마찬가지로 발견된다. 그것들은 근엄하게 팔장을 낀 듯한 정지태에서 벗어나, 살아숨쉬며 꿈틀거리며 심지어는 슬쩍 말까지 걸어오는 듯한 움직임의 기미를 드러낸다.

<일본의 기교(奇巧)와 한국의 격(格)>

[113] 조선의 둥근 달항아리는, 그(야나기 무네요시)의 말처럼 한국의 미가 타력에 기대어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빙그레 곰삭은 웃음으로 전해준다. 그것은 철없는 아이의 천진함이 아니라 철없는 아아와도 같은 경지에 올라선 대가(大家)의 원숙함에 비유된다.

<근대적 자의식과 한국 예술의 민예성>

[118] 그러므로 이것을 형상의 대립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형(刑)과 기(氣)는 언제나 그 세력이 병행하는 것이 아니고 서로 소장(消長)하면서 외면을 형성한다는 원리를 말하는 것이다. (한동석, 『우주변화의 원리』)

<자연과 작위를 통합시킨 일본의 세(勢)>

[124] 도대체 남이 억지로 들이댄 잘못된 근거에 따라 나를 터무니없이 깍아내릴 까닭도 없으며 반대로 터무니없이 높여올릴 까닭도 없다. 이제는 열등감과 우월감으로 착잡하게 덧칠된 자닌 세기의 서글픈 자화상으로부터 벗어날 때가 되었다.

3부 한국인의 미의식

[127] 아름다움에는 설명을 덧붙일 필요가 없다. 봄이면 꽃이 피고 가을이면 잎 지는 자연. 두 볼을 발그스레 물들이고 웃음 짓는 어린아이, 고혹적인 여인의 자태 위에 신비스런 보살의 모습이 겹친 석굴암 관음보살입상. 마음을 황홀하게 들어올리는 천상의 음악을 들려주는 봉덕사 신종의 비천상. 이쯤 되면 아름다움에 대해 설명이 덧붙이는 것이 도리어 객쩍은 일이다.

[127] 깨달음에 도달하기 위한 구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화두를 짐지고 그곳을 향해 걸어간다. 아름다움에 도달하기 위한 구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도 저마다 다른 취향을 손에 쥐고 그곳을 향해 걸어간다. 누구나 아름다움에 대한 저마다의 취향을 가지고 있으며, 남의 취향이 아닌 나의 취향을 통해 그곳에 도달한다.

[129] 신의 창조란 인간의 창조의 원형이다. 성경 역시 신화 즉 ‘신에 대한 이야기’의 일종이라면, 그것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의 메타포에 해당한다. 신이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셨다’는 것은 창조의 객체인 인간의 입장이 아니라 창조의 주체인 신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이것은 창조가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130] ‘좋다’와 ‘됐다’는 인간의 요구에 부응하는 모든 가치에 통용되는 마리다. 따라서 그것은 절대가치라는 진·선·미의 한국적 표현인 ‘참되다’· '착하다'·'아름답다‘의 세 가지 어디에도 통용되는 말이다.

[131] 진·선·미의 합일을 지향하는 한국의 가치관념이 바로 ‘멋’이다.

<음양오행의 상(象)과 미의식>

[134] 음양오행사상은 크게 형이상의 측면과 형이하의 측면으로 나누어진다. 형이상의 측면이란 도가(道家)와 유가(儒家)의 철학으로 전개된 우주의 생성론이며, 형이하의 측면이란 음양가(陰陽家)에 의해 발전된 만물의 변화론이다.

[138] 바위 속에서 부처님의 얼굴을 찾아낸 그이들은 깍아지른 바위 앞에 옹색하게 버티고 서서, 바위들 가운데 제일 단단하다는 화강암을 조심스럽게 깎아 내려갔을 것이다. 그런데도 부처님들은 저토록 넉넉한 웃음을 머금고 계시다.

[139]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기 위해 눈을 감듯이

<아졸미(雅拙美) 또는 고졸미(古拙美)>

[145] “뜯어 보믄 잘 못 생겨서 잘 생긴 것도 있어라우”라는 도공의 말이 여기에 들어 맞는다. ‘잘 생긴 것’은 형(形)이요 ‘잘 못 생긴 것’은 상(象)이다.

[146] 평균치를 넘어서는 우아함을 갖춘 상은 어느 정도 형의 졸함을 수반하는 경향이 있다.

<발효맛의 생기의 미감>

[153] 상(象)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살아있는 유기체가 발산하는 생기(生氣)의 느낌이다. 유기체의 생기야말로 육체라는 형 너머에서 정신이라는 상을 느끼게 하는 근원이다.

<상극적인 것을 상생적인 것으로>

[164] 봄이 되면 대지로부터 상생의 기운을 받아 성장하던 나무가 가을이 되면 상극의 원리에 따라 성장의 기세를 억제당하면서 열매를 맺는 이치와도 같이, 상극의 원리 역시 만물의 생성과 변화에 필수적이다.

[169] 비보의 원리란 상극의 원리가 관철되는 무정한 자연을 상생의 원리가 숨쉬는 유정한 자연으로 바꾸려는 인문적인 자의식의 소산이다.

[171] 완전한 아름다움을 지닌 완전한 땅이란 ‘자연적인 것’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손길을 거친 ‘인문적인 것’으로서 존재한다고 볼 수도 있다. 여기서 사라의 손길이란 비보(裨補)요, 완전한 아름다움이란 상(象)의 아름다움이다.

<해학과 신명>

[175] 서글픔일랑 진즉에 통과하여 저만치 흥에 겨운 얼굴, 해학과 신명의 가락 위에 얹어 놓은 자화상.

[177] 상극적인 것을 상생적인 것으로 변화시키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그것은 살아 잇는 유기체와도 같은 생기, 상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한국인의 미의식이다. 이것이야말로 한국인의 자화상으로 하여금 눈물과 한을 넘어 웃음과 흥으로 휘몰아치게 하는 원동력이다. 이와 관련해서 박래경은 ‘살아있는 유기적 생명체가 역시 생명을 지닌 것으로 간주되는 자연 속에서 노닐면서 자신의 생명유지와 생명확장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파생되는 갈등을 타넘은 결과 어떤 즐거움과 유희성이 동반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래경, 「한국 해학의 현대적 변용」)
* 살아있다는 것을 글로 표현한 것. 이것 정말 마음에 든다.

[179] 사람은 누구나, 그리고 민족은 어느 민족이나 각자 나름의 한을 지니고 살아가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문제는 각자가 간직한 바 자기 몫의 한을 어떻게 초극하느냐 하는 데에 있다고 할 것이다. ..... 한국인은 한을 삭이면서 인간으로 성숙해가고, 그 한을 즐기면서 멋을 구사하였던 것이다. (천이두 『한의 구조 연구』)

<고지도와 명당론>

[183] 그(윤두서)의 자화상의 강렬한 야성이란, 그의 말그림이 그렇듯이 지성으로 길들이고자 했으나 끝내 길들여지지 않았고 선비의식으로 다듬고자 했으나 끝내 다듬어지지 않은 개성적인 자의식으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니었을까.

[185] 문화에 대한 인간의 시간적 인식이 역사라면, 공간적 인식은 지리와 지도다.

[186] 사람은 위치와 장소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사람은 시간에 대한 사유보다 공간에 대한 사유를 더 질실해 한다.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지 못하면 사람은 불안해진다.
(양보경, 「한국의 옛 지도」)

[189] 지도를 그릴 때에도 땅이 살아 있다고 보고 생명체적 요소를 강조해서 그렸고, 산과 강은 뼈와 혈관으로 이해하여 맥을 강조해서 그렸다.

[198] 엄밀한 의미에서 사물만의 경관은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이 경관의 일부가 도어 이루어지는 경관체험이 보다 인상적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현, 「소쇄원도와 시문 분석을 통한 소쇄원의 경관특성에 관한 연구」)

[200] 당신의 마음 속에 돈 가치, 효율성, 편리성과 무관한 동기에 따라 기억 속에 자리잡은 공간적 심상이 있다면, 그같은 공간적 심상으로부터 문화적인 인식과 실천에 대한 통찰을 제공받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당신의 공간 취향이며 저다움의 미의식의 교두보라고 할이다. 옛집이라는 것, 고향이라는 것. 낯익은 등산로, 자꾸만 머리 속에 떠올라 눈 앞을 가로막는 ‘그때 그곳’이나 미지의 ‘어느 곳’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백의와 색동>

[201] 명도와 채도가 아울러 높은 ‘시원하고 칼칼한’ 색. 자연 염색된 조각보에서 볼수 있는 투명한 담채와도 같은 색. 그것은 단청이나 민화, 자수 같은 데서 볼 수 있는 불투명한 진체의 경우에도 중국의 색인 당채에 비해 한결 ‘밝고 맑은’ 느낌을 선사하는 색이다.

[202] 색상의 문제뿐 아니라 색배열 또는 색구성의 문제 역시 색 취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색이란 사실상 어떤 풍경과 관련된 시각 이미지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색배열 또는 색구성의 문제가 색상의 문제보다 중요할는지도 모른다.

[203] 화가는 서울 중심가에서 남녀 노소 각기 다른 모자와 전통 의상을 입고 지나는 장면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210] 여백은 빈공간으로 나타나지만, 동양화에서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 여백은 문자 그대로 비어 있는 상태가 아니라 무엇인가 존재하고 있지만 우리의 눈에 쉽사리 확인되지 않는 그 어떤 심오한 상태인 것이다.

[221] 이데올로기적 표상이란 본질적으로 사물을 일면적으로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측면에 대해서는 배제적인 성격을 피할 수 없다.

[224] 우리는 언제부턴가 시간 좌표에 지나치게 강박된 반면, 공간 좌표에는 무감각해 졌다.

[226] 잃어버린 기억의 회복은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 불행한 근대사와 함께 찾아온 기억의 상실이 그러했듯이, 소망의 이십일 세기와 함께 찾아 올 기억의 회복 역시 혁명적인 난장의 형태를 취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문화와 예술의 몫이 아니라 일상과 취향의 몫이 될 것이며, 일상과 취향의 혁명이 문화와 예술의 변화로 이어지는 한 판의 반전으로 전개될 것이다.

4부 취향과 성찰 그리고 내일의 한국인

<이데올로기에서 취향으로>

[231] 취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이끌리며 좋아하는 것이다. 물론 취향은 갈짓자의 것이어서, 옳고 그른 잣재가 있는 것도 아니며 변덕스럽기까지 한 것이다.

[231] 사회학이란 인간의 집단적 삶을 반듯하게 그려내기 위한 모눈종이와 같은 것이다. 하지만 핵심을 미지수로 남겨 놓을 수밖에 없는 인간에 대한 방정식인 미학 또는 모눈종이일 따름이다.

[236] ‘나를 살리면서 남을 참고한’ 대신 ‘나를 죽이면서 남을 흉내내는’ 데 몰두했으니 결과가 신통할 리 없다. ‘나를 죽이면서 남을 흉내내는’ 사람이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상생 지향과 탈속의 아름다움>

[240] 세상의 다투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까 두려워
흐르는 물을 시켜 산을 막았다네 (최치원)

[242] ... 매화를 좋아함은 우선 옛 선비들의 아취를 사모하는 데서부터려니와 지난 가을에 누구의 글인지는 모르나, ‘散거 道人無坐性 / 閉門十日爲梅花’란 완서 한 폭을 얻은 후로는 어서 겨울이 되어 이 글씨 아래 매화 한 분(盆)을 이바지하고 폐문십일을 해보려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었다. (이태준 『무서록』)

[243] 선비의 자의식이란 외부의 질서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배제한 것일 뿐 아니라 내부의 인욕도 경계한 고담한 것이다.

[244] 흥미롭지 않은가. 선비의 근엄한 마침표와 풍류의 장난스런 쉼표가 물밑에서 가만히 손잡고 있다는 사실이.

[244] 이용희는 ‘영조, 정조 간 화단의 여러 경향을 통틀어 대표하는 감상안’으로 강세황의 안목을 들고 있다. 강세황은 진경산수, 남종산수, 인물, 사군자는 물론이요, 화조와 초충, 과채 할 것 없이 그림을 즐겼고, 예원의 총수답게 서화에 대한 제와 발, 평을 수없이 남겼다. 그림은 본래 그 시대의 감상안의 정도만큼 그려진다. 따라서 당대 최고의 안목을 지닌 그의 자화상에 담긴 성찰의 깊이는 조선 선비의 취향을 대표하는 것이다.

[244] 그림은 본래 그 시대의 감상안의 정도만큼 그려진다.

[247] 왕(태종)이 스스로를 가리켜 ‘나는 유학을 닦은 선비’라고 말했을 정도이니, 조선에서 선비가 지녔던 정신적인 지위를 짐작할 수 있다. 조선이란 무엇보다 ‘선비의 나라’였다.

[247] 백자배(白子杯)를 승정원에 하사하시고, 인하여 전교하기를, “이 술잔은 맑고 티가 없어서, 술을 따르면 티끌이나 찌끼가 다 보인다. 이를 사람에게 비유하건대, 마치 대공지정(大公至正)하여 한 점의 허물도 없게 되면 선(善)하지 못한 일들이 용납될 수 없는 것과 같다.” 하였다.(『조선왕조실록』성종22년 12월 7일)

[251] 이상한 일은, 아무리 되짚어보아도 선비정신의 세례를 받은 적이 업는 내가 푸른기 도는 순백자나 탈속의 해학이 넘치는 골코름한 철화배갖 앞에서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영혼이 말갛게 씻기우는 상쾌함을 맛본다는 것이다.

[251] 피카소에 경탄하고 렘브란트의 자화상 앞에서 영혼을 무장해제 당하는, 이십일 세 개의 세계인에 걸맞은 잡종적 취향 속에서도 나의 취향을 키운 것은 팔 할이 서울 북촌의 기와집 풍경이었노라고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다.

[252] 산뜻하고 정갈한 전시실에 걸린 선 굵은 마티스와 환상적인 샤갈의 화폭을 낯선 마음으로 뜯어보던 나의 머릿속을 스쳐간 것이 있었다. 그림들은 선이나 색채를 어디선가 본 것 같다는 느낌이었는데, 얼마 뒤 그것들의 원 관념이 그곳의 자연과 거리의 풍광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림들 속에는 그네들 특유의 빛깔과 구도가 너무나 쉬운 ‘숨은 그림’으로 감춰져 있었다.
그때까지 나는 그곳의 자연과 거리라는 원관념을 빼놓은 채 이것과 그림 사이의 다리놓은 ‘예술가의 상상력’을 신기루인 양 찾아헤메고 있었다. 그런 데 어느 순간 마음의 눈을 떠보니, 그들이 탁월한 예술가인 까닭은 그곳의 낯익임을 새삼스러운 눈으로 돌아보게 만든 데서 시작된 것이었다. 그곳의 대중들이 자신들의 삶을 새롭게 응시할 수 있게 만든 그림들을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정태적이고 자페적인 유토피아>

<허무주의와 샤머니즘의 극복>

[260] 한에서 흥으로, 울음에서 웃음으로 승화되는 과정은 전자를 지워버리고 후자로 날아오르는 초월(超越)의 몸짓이 아니라 전자를 등에 지고 후자를 향해 기어가는 포월(匍越)의 몸짓이 되어야 한다. (김진석, 「초월에서 포월로」)

[262] 한국인은 때로는 상생적인 탈속 지향의 안정감에서 벗어나 상극적인 속세의 한복판으로 뛰어드는 불안정을 적극적으로 뒤집어 써볼 필요도 있다. 호생염극(好生厭極)의 마음이 극에 달하면, 결국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제자리만을 맴도는 것으로 끝나거나 아예 자폐적인 은둔으로 삶을 마감할 수도 있다.

<역동적이고 개방적인 유토피아>

[264] “이 희한한 냄새를 맡아보라. 이 멋들어진 냄새를. 이것이 바로 질서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관념의 형태라는 것이며, 그것은 이런 더러운 잡동사니의 혼돈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깨끗하기만 하고 맑은 것에서는 무엇이 태어나겠느냐? 정말 티없는 물을 아무리 끓여보더라도 거기선 이처럼 훌륭한 향기는 우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물 속에 장구벌레 한 마리든 암캐의 불알이든 뭐든 넣고 끓여봐라. 그땐 어쨌든 맹물 냄새보다 멋진 향기가 날 게다. 흐음. 음, 음. 흐음. 이 냄새의 구수함, 그윽함, 고상함, 이 거룩함, 이 탈속-이것이 바로 나니라. 나는 너희들과 같은 병신 나부랭이들이 끓여져서 승화된 향기니라. 나는 너희들의 질서며 너희들의 사상이다. (박상륭, 「상동장」『아겔다마』)

[268] 기쁨. 산다는 것의 기쁨. 육체의 기쁨.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찬란한 것. 살아있는 유기체가 발산하는 생기의 느낌. 이것이 바로 상극적인 부조화를 상생적인 조화로 승화시킴으로써 얻어지는 한국적인 감성의 본질이다.

<김정희와 연경의 기억>

[276] 법고창신. 옛것에 새것의 아우라를 뒤집어씌우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국제적인 감각을 통해 ‘지금 이순간’의 주체가 체험하는 당대성이다.

[276] 새로운 전통의 창조란 언제나 개인의 개성이 집단의 개성을 뛰어넘고 이것이 다시 집단의 새로운 개성으로 자리잡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279] 흔히 두 개의 길이 있다고들 한다. 하나는 한국인의 길이요, 다른 하나는 세계인의 길이다. 그리고 묻는다. 당신은 어느 쪽 길을 택할 것이냐고.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당신의 물음은 애당초 잘못된 것이라고. 백남준과 겸재가 그랬으며 추사도 그랬듯이, 한국인이니 세계인이니 하는 구분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들은 자신을 한국이인 동시에 세계인으로 여겼으며, 이 같은 회통적인 사고야말로 그들로 하여금 창조의 주체로 우뚝 서게 한 원동력이었다고.

[279] 회통적 사고. 한국인과 세계인 사이에서, 법고와 창신 사아에서 회통적인 사고를 모색한 사람들만이, 창조라는 새 역사의 문을 열어젖힐 수 있다.

[279] 한국인이기를 원한다면 동시에 세계인이기를 꿈꾸어야 하며 세계인을 꿈꾼다면 결코 한국인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280] 순일(純一)함이란 불모의 것이요 난장(亂場)만이 다산(多産)의 터전이라는 것.

Ⅲ. 내가 저자라면
1) 구성에 대하여
1부, 2부, 3부, 4부의 구성을 취했는데, 각 파트의 제목으로 봐서는 어디가 도입부이고 어디가 결론인지 잘 모르겠다. 저자는 어떤 의도로 이렇게 파트를 나누었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 책을 읽다보면 1부가 도입부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가장 꼭지글을 읽을 때쯤이면 1부가 도입부이며, 저자는 1부에서 문제를 제기했던 것을 4부에서 풀어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 2부와 3부는 본문에 해당된다. 그렇지만, 각부가 서론, 본론, 결론으로 가시적으로 나뉘어 지지 않은 것처럼 내용도 각 파트가 뚜렷이 구분되지 않는다. 이런 점은 뒤에도 서술하겠지만 저자는 논리적으로 뭔가를 풀어가는 사람같아 보이지 않는 면이 보여서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조금은 아쉬운 부분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2가지의 것을 맛보기로 보여준다. 한국 미술(예술) 혹은 예술(예술가)의 현재 위치를 인식하게 하는 것과 ‘한국의 미’이다. 이 둘이 얽혀 있기 때문에 부를 나누는 것이 모호해 보인다.
3부와 4부는 ‘내일의 한국인’이라고 이름 붙여진 저자가 주장하는 우리의 나아갈 길이다. 4부의 일부는 3부에 넣어도 좋을 듯 싶다. 결국 저자는 1부에서 백남준으로부터 시작하는 예술인의 자신의 예술세계의 시공간적 인식을 4부에서 다시한번 서술하며 강조하여 마무리한다.

2) 일본인 예술사가 야나기 무네요시의 눈을 통해 본 한국의 미와 그 비판
이 책은 저자 강영희의 눈을 통해서 야나기 무네요시의 한국의 미를 보는 시각을 보고, 그 후에 한국의 미에 대해서 다시 살핀다. 문제제기는 야나기가 먼저 하고, 강영희는 그에 대해서 반론을 펴거나 동의하거나 한다. 이 책의 2부는 집중적으로 그것을 다루었다. 야나기를 비판하면서 일본의 미의식에 대해서도 되돌아 볼 수 있었다.

3) 2부에서 이런 점에 흥미가 있었다.
피카소가 아프리카를 그의 그림에 넣은 것, 피카소가 여행한 곳의 특징을 그의 작품 세계에 넣은 것, 인상파 화가들이 일본그림에 흥미를 보여서 자신의 그림 곳곳에 기모노를 입은 여인을 넣은 것에 대한 의미를 짚어봤다. 본래 예술가의 기억의 저편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아닌 어떤 것을 계기로 흥미를 유발시켜 작품을 하게 하는 것으로 생각은 확장되었다.

4) ‘금빛 기쁨의 기억’의 문체
단번에 자신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말을 ‘툭’ 던져서 말을 꺼낸다. 그리고 나서는 서술을 한다. 나는 이것을 가슴을 쓰는, 마음이 먼저 한발 앞서 나서버리는 것이다. 서서히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물이 스미듯이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의 말은 반복적이다. 그리고 또한 자신이 본 것을 그려내듯이 서술한다. ‘~같다’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저자와 같은 입장에 서서 아름다움을 보게 하고, 같은 입장에 서서 주장을 하게 하는 표현을 사용한다. 저자에 동의하여 저자의 입장으로 제시한 그림이나 도자기를 볼 때는 저자가 말한 아름다움을 같이 보게 된다. 동의하지 못한 경우에는 그렇지 않겠지만, 저자의 서술은 어려운 말이 없이 쉽게 접근하는 말이다. 나는 그 바탕을 한국인의 정서라고 말하고 싶다. 자연스럽게 자신을 본 것을 타인에게 보여주는 방식의 전달을 받아들일 바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보이는 것이 아닌 것, 즉 논리부분은 약간 허술해 보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자신이 저자 강영희처럼 글로 풀어낼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본다. 머리와 가슴이 조화를 이룬 것 같지 않다. 산뜻한 맛은 없지만 어쨌든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전달했지 않은가. 조금은 거칠어 보이지만 적절하다.

5) 책에 실린 사진들, 그림들에서 금빛 기쁨을 얻다
이 책에 실린 사진들 속의 그림과 도자기, 탑, 판화들은 넘나 아름답다. 마치 아름다운 것을 한 상자 선물 받고, 선물한 이로부터 그것의 의미도 설명을 받아 감동이 배가되는 순간을 맞는 것 같다. 저자는 읽은 이로 하여금 ‘금빛 기쁨’을 선사한다.

다음은 책에 실린 것들 중에서 아름다워서 오래도록 쳐다본 것들이다.

율동이 있는 살아있는, 기운생동. 강서대묘 현무도 p99
빛과 어두움으로 선을 들어낸, 서 있는 보살 p132
흐드러져 내리 핀 매화가지에 굳세다 칭찬하고 픈, 홍매도 p163
여백의 여유와 익살이 있는, 백자진사 송학문 항아리 p211
단아하고 맑은 궁궐의 청홍문 p227
웃고 있는 벅수 p239
자경전의 십장생 문양의 담벼락 p241
놀란 눈 땡그라니 뜬 익살스런 호랑이 문양의 도자기, 백자철화 호문호 p250
한의 한자락을 뚝 베어다가 정지상태로 만들어서 금새라도 휘감아 훌훌 어깨춤을 출 것같은 오윤의 판화 낙화2 p267, 춤3 p175
머리에 펄펄 솟아오는 열만으로도 힘이 느껴지는 오윤의 판화, 도깨비 p267
매혹적인 선을 자랑하는 백자, 백자병 p216

6) 읽고 싶은 책, 공부하고 싶은 책과 그 이유
저자의 참고문헌으로부터 읽고 싶은 책을 몇 권 짚어본다. 단순히 내 관심분야의 이끌림이다. 책 제목만을 보고서 ‘이 책들에는 이런 내용들이 들어 있겠지?’라며 읽고 싶은 책을 나열해 본다.
『도상학과 도상해석학』에게하르트 케멀링 편집, 이한순 외 옮김, 사계절, 1997
--> 이 책이 내게 갖는 의미는 ‘서양 미술에 나타나는 상징’ ‘서양화 읽는 법’ 쯤 될 것이다.

『동양화 읽는 법』 조용진
--> 여러 군데서 미술에 관해서 추천한 책이다. 관념과 상징의 세계라는 동양화에 대해서 눈으로 보는 것만이 아니라, 화가가 그림에다 담고자 했던 말까지 같이 읽어내고 싶다.

『동양화 구도론』왕백민, 강관식 옮김, 미진사, 1991
--> 여백과 안정이 느껴지는 동양화의 구도를 좋아한다. 보고 싶다.

『무늬』이기선, 안장헌 사진, 불교문화산업기획단 엮음, 오형문화사, 2003
--> 무늬라는 제목도 유혹적이고, 불교문화사언업기획단이란 이름도 눈이 간다. 어떤 무늬가 들어 있을지 궁금하다. 탱화는 선이 무척 아름답다. 그것까지 볼 수 있을까?

『수학과 미술』계영희, 전파과학사, 1984
--> 서양미술에 숨은 수학(과학, 철학), 혹은 미학, 근원적인 아름다움에 대해 쓰여있을 것 같다.

『오리엔탈리즘』 에드워드 사이드, 박홍규 역, 1991
--> 저자 강영희는 이 책의 일부를 인용했다. 이 책은 유명하다. 그리고 악명높다. 대체 무슨 내용인지 궁금하다.

『오윤, 동네사람 세상사람』 오윤기념사업회, 학고재, 1996
--> 80년대 노래패들의 노래책에는 곳곳마다 오윤의 판화가 있었다. 그의 목판화는 굳게 보였고, 또한 한이 있었고, 힘이 있었다. 오윤의 판화 전체를 다시 한번 보고 싶다.

『한국고대 불교조각사 연구』김리나, 일조각, 1989
--> 불교미술에 대해 알고 싶다. 불상에 깃든 잔잔한 미소에서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의문을 풀게 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한국사진과 리얼리즘』김한용,손규문,안종칠,이형록, 정범태, 눈빛, 2002
--> 사진에 담긴 한국의 아름다움을 보고싶다.

『한국회화소사』이동주, 범우사, 1996
--> 미술분야의 추천도서다. 필독서인 모양이다. 어떤 것이 담겨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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