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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3일 09시 51분 등록

[금빛 기쁨의 기억-한국인의 미의식, 강영희, 일빛]


지금 당신 앞에 두 개의 길이 있다.
하나는 한국인의 길이요, 다른 하나는 세계인의 길이다.
당신은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애당초 이 질문은 잘못된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게다가 우리에게 법고창신(옛 것을 따름으로서 새 것을 창조하는 것)을 목에 핏줄을 세우며 강조한다. 무자년 새해에 이 사람의 주장에 잠시 귀기울여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1. 저자에 대하여

강영희(姜英熙)

문화평론가. 1960년 6월 6일 서울 출생. 서울대 동양사학과 학사, 국문학과 대학원 석사, 동국대 영화학과 대학원 석사를 졸업했다. 저서에는 문화평론집「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1994)와 「우리는 자유로에서 다시 만났다」(1998)가 있다. 연극 평론에서 시작해서 문화평론으로 영역을 넓혔고,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인터뷰에도 팔을 걷고 나섰다. 6년전부터는 책을 쓴다는 핑계로 한동안 무위도식하며 전국 방방곡곡을 비롯해서, 중국,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대만 등지를 열심히 돌아다녔다.
문화평론가로서 세상의 모든 잡사(雜事)에 대한 잡문(雜文)을 써온 그녀는, 이 책을 쓰면서 세상의 모든 잡학을 용감하게 돌파하여 그것들을 꿰뚫는 깨달음을 얻겠노라는 야무진 꿈을 꾸게 되었다. 꿈의 주제는 물론 문화이며 인문이며 창조이며 성찰이다. 한국인의 미의식을 다른 이 책은 그 첫걸음인 셈이다.



2. 내 마음에 들어온 글귀들

[20] 요컨대 예술은 아이덴티티를 구하는 방법의 하나이며, 그것이 예술의 큰 기능입니다. 남의 유행에 동의하는 것과 아이덴티티는 상반된 개념이지요. 예술은 결국 모순입니다.(김홍희, 「백남준 vs 김홍희」, 『백남준과 그의 예술』)

[26] 한국인과 세계인, 토속성과 세계성이 창조의 마음을 징검다리 삼아 경계를 허물고 손잡는다면, 그것들은 서로 다른 둘이고 모순이되 상생적인 둘이며 창조적인 모순이 될 것이다.

[27] 전통이란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쓸 수 있는 ‘기억 속의 심상’이다.

[28] “백남준 씨에게는 그의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이르는 시대들이 타임캡슐이나 또는 냉동식품처럼 통조림되어 있음을 느끼게 하는 일이 많다. 그것들을 회생시켜서 비디오라는 오븐 안에 넣고 조리한 듯한 예술.

[38] 지난 세기의 한국인에게 근대화가 의미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한마디로 서구화에 일본화를 겹쳐놓은 것이었다. 동시에 그것은 문명, 개화, 과학, 합리, 이성과 동일시도기도 했는데, 주목해야 할 것은 이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주체적으로 변용시키는데 필요한 성찰의 여백은 실종된 반면 이것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데 급급한 조급함만이 넘쳐났다는 것이다.

[40] 전근대적 인간에서 근대적 인간으로의 변화는 개인에게는 천지개벽에 비유될 만한 것이다. 따라서 이것이 하나의 사건을 계기로 발생한 다음 그것의 결과가 등장인물의 의식과 행동에 의미있게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사건의 앞뒤를 통해 지속되는 치열한 갈등이 필수적이다.

[43] 이같은 조급함의 한국적인 양상은 무엇인가. 그것은 중국의 혁명이나 일본의 팽창처럼 현실에서 자신을 관철시키지 못함으로써 더한층 강렬하게 끊어오른, 관념적인 조급함이다.

[45] 선진제국의 철도가 근대 문명 건설의 동맥이었던 반면 일제 강점기 한국의 철도는 제국주의 지배와 수탈의 동맥이었다는 사실을 직시한다면, ‘기차의 있는 풍경’의 조급함이 얼마나 맹목적인 것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성찰을 결여한 눈먼 뜨거움이었다.

[47] 기차가 있는 풍경 속 근대 한국인의 내면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그것은 조급함이다.

[49] 취향이란 무엇보다 타인과 자신을 구별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구체적인 계기이기 때문이다.

[50] 자신의 취향 위에 타인의 취향을 겹쳐놓은 것은 새로운 창조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창조적 모순이다. 문제는 타인의 취향과 자신의 취향을 양자택일의 제로섬 게임으로 받아들이도록 강요한 서구화로서의 근대화의 비극에 있다.

[60] 아프리카 예술에 대한 피카소의 애호와 타히티 풍경에 대한 고갱의 집착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듯이, 근대라는 역사의 페이지 속에서 권력적인 위계질서을 형성한 서구와 동양, 제국과 식민지 사이에는 이처럼 상위사회의 미의식을 하위사회의 미의식에 덮어씌우는 미적인 위계질서 만들기가 유행했기 때문이다.

[67] 이렇게 미의식에도 위계질서가 적용되며, 일본인에게는 윗자리의 미의식이, 한국인에게는 아랫자리의 무의식이라는 ‘저마다의 알맞은 위치’가 주어진다.

[75] 야나기가 즐겨 사용한 ‘자연스러운 인정’이라는 구절에는 일본 국학의 핵심 주제가 포함되어 있다.

[89] 일본문화 특유의 미적 범주인 시부사의 기원이 한국문화라고 주장하는 근거 중 하나는 일본인 자신이 인정하듯이 시부사의 본질에 좀더 가까운 예술적 성과가 일본문화 아닌 한국문화에서 발견된다는 사실로부터 찾을 수 있다.

[98] 여기서 우리는 취향 또는 미의식은 결코 제멋대로의 것이 아니라 고유의 풍토와 역사 속에서 형성된 인문적 지혜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한옥의 지붕곡선이 현수곡선으로 만들어진 것은 장마철의 집중호우를 특징으로 하는 한국의 풍토에서 빗물을 빨리 배수시키기 위한 과학적인 노력의 산물이다.

[106] 흔히 격이라고 불리는 이것은, 빈틈없이 맞추어야 하는 눈앞의 실선 같은 것이 아니라 느슨하게 의식되는 머리 속의 점선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일본의 기교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범’인 반면, 한국의 격은 ‘때에 따라 넘나드는 틀거리’라고나 할까. 달리 말하면 한국의 격은 ‘격식에 맞으면서도 격식을 뛰어넘을 때’를 어림하기 위한 가상의 척도 같은 것이다.

[107] 다시 말하면, 멋은 먼저 형식상의 격식을 바탕으로 한다. 즉, 격에 맞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격식에 맞는다는 것만으로 멋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격식에는 빈틈없이 맞으면서도 멋이 없는 예술과 행위를 얼마든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뜻에서 본다면, 멋은 격식에 맞으면서도 격식을 뛰어넘을 때, 바꿔 말하면 격이 맞는 변격, 변격이면서 격에 제대로 맞을 때 거기서 멋을 느낀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초격미라고 부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는 ‘변격이합격(變格而合格)’이요 ‘격에 들어가서 다시 격에서 나오는 격’이라 할 수 있다. (조지훈, 「멋의 연구」)

[127] 깨달음에 도달하기 위한 구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화두를 짐지고 그곳을 향해 걸어간다. 아름다움에 도달하기 위한 구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도 저마다 다른 취향을 손에 쥐고 그곳을 향해 걸어간다. 누구나 아름다움에 대한 저마다의 취향을 가지고 있으며, 남의 취향이 아닌 나의 취향을 통해 그곳에 도달한다. 서구인은 서국의 풍토와 역사 속에서 황금비라는 취향을 만들어냈고, 한국인은 한국의 풍토와 역사 속에서 다른 이름의 취향을 만들어냈다.

[128] 아름다움이란 창조에서 비롯되는 것이요, 창조란 성찰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성찰이란 백인백색의 취향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129] 신이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셨다’는 것을 창조의 객체인 인간의 입장이 아니라 창조의 주체인 신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이것은 창조가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다시 성찰은 어디에서 비롯될까. 그것은 백인백색의 취향에서 비롯된다.
흥미로운 사실은 한국어에서 아름다움의 고어인 ‘아다옴’의 본뜻이 사호 즉 ‘제 마음에 어울린다’는 뜻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취향이 아닌가.

[131]진・선・미의 합일을 지향하는 한국의 가치관념이 바로 ‘멋’이다.

[139]‘눈에 보이는’ 형 너머에 존재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상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이 때문에 흔히 멋이라고 불리는 한국인의 미의식은 형태미를 넘어서는 정신미의 성격을 지닌다.

[139] 한국인의 미의식을 돌아보는 것은 한국인의 가치관 전반을 돌아보는 것이기도 하다.

[141] 그것은 가까이서 보기에는 졸한 듯 하지만 멀리서 보면 아를 발하는 화강암의 질감이 상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한국인의 미의식과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145] 뜯어보믄 잘 못 생겨서 잘 생긴 것도 있어라우

[146] 다시 한번 주목해야 할 것은 평균치를 넘어서는 우아함을 갖춘 상은 어느 정도 형의 졸함을 수반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진기의 셔터를 누를 때 하나의 장면에 대해 정확하게 초점이 맞는 거리는 하나뿐인 까닭에 원경에 초점을 맞출 경우 근경의 초점이 흐려지는 사실에도 비유된다.

[150] 비균제성이나 비대칭성이란 인위적인 것을 배제한 결과 생겨난 무의식의 산물이 아니라 형의 어눌함을 수반하는 상의 미의식의 산물이다. 이것은 신과도 같은 상위 존재인 자연이 자신에게 순응하는 하위 존재인 인간을 자동인형처럼 움직인 결과가 아니라, 상호 유기적으로 관련된 천지인의 한복판에서 스스로 천지를 품은 인간이 자신의 삶을 통해 천지인의 조화를 이룩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한 결과다.

[153] 상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살아있는 유기체가 발산하는 생기의 느낌이다. 유기체의 생기야말로 육체라는 형 너머에서 정신이라는 상을 느끼게 하는 근원이다.

[155] 한국인이 이처럼 살아 있는 유기체가 발산하는 생기의 느낌을 생활 속에서 물질적으로 확인하고 다시 확인하고 또다시 확인해온 감각적인 근원은 무엇일까. 그것은 한국의 맛을 대표하는 발효맛이다.

[159] 평균 전통 밥상의 85퍼센트 이상이 발효음식이라는 조사도 있었다.

[159] 중요한 것은 발효음식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그것을 요리의 시스템이나 코드로 사용하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159] 발효음식을 요리의 시스템이나 코드로 사용한다는 말은 특정한 몇 가지의 음식이라는 사실 이상을 의미한다.

[162] 유명한 구 소련의 유전학자 Vavilov는 콩의 원산지는 옛 고구려 땅인 중국 동북부라 하였으며, 많은 학자들의 지지를 받았고, 세계적으로 통설이 되어 왔다.

[163] 한국인의 밥상에서 호사스런 취미와 구별되는 까다로운 취향이 옹골지게 자리잡아갈 때에만, 한국인의 미의식 역시 생기발랄하며 웅숭깊은 것으로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165] 그렇다면 상극관계를 부정하지 않은 채로 상생적인 조화를 추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상극관계를 고스란히 껴안은 채 그것을 가능한 한 상생관계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문화 속에서 이같은 변화를 이룩한 원리는 무엇일까. 발효의 원리와 비보의 원리가 그것이다.

[166] 발효의 원리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그것이 부패와 관련된 미생물의 활동을 억누르고 발효와 관련된 효모균의 활동을 북돋운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소금을 첨가하여 음식물을 부패시키는 균들을 죽이고 소금에 견디는 유익한 균들만 활동하도록 하는 식이다. 따라서 발효 원리의 핵심은 부패균을 죽이는 상극적인 방식이 아니라 발효균을 상생적인 방식을 취한다는 것이다.

[169] 비보의 원리란 상극의 원리가 관철되는 무정한 자연을 상생의 원리가 숨쉬는 유정한 자연으로 바꾸려는 인문적인 자의식의 소산이다. 인과율에만 따르는 자연적인 상극을 목적률을 지향하는 인문적인 상생으로 변화시키고자 한 것이랄까.
비보의 원리란 이처럼 상극적인 것을 향해 대립과 투쟁을 전개하는 대신 허전한 곳을 메우고 험악한 곳을 달래는 보완과 화해를 통해 상극적인 것을 상생적인 것으로 변용시키는 것이다.

[171] 풍수무전미(風水無全美)라는 말이 있다. 완전한 땅이란 없다는 뜻이다. 사람이건 땅이건 결함이 없는 것은 없다. 일부러 결함을 취하여 그를 고치고자함이 도선풍수의 근본이다.(최창조, 「땅의 눈물 땅의 희망」)

[172] 해학과 신명은 무엇보다 인물의 형상과 관련된 미적 범주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통해 한국인의 자화상과 만날 수 있다.

[173] 한국인의 자화상은 흥부의 내면적 형상뿐만 아니라 외면적 형상을 통해서도 표현된다. 전자가 대성 통곡하며 우는 눈물이자 한이라면, 후자는 배꼽을 잡으며 웃는 웃음이자 흥이다.

[176] 멈춤의 그늘, 울음의 그늘은 한국인이 오랜 세월 온몸으로 부딪혀온 ‘상극적인 것’의 살아있는 과거이며, 이같은 그늘을 슬며시 드리운 웃음, 움직임은 한국인이 오랜 세월 온 마음으로 삭혀온 ‘상생적인 것’의 살아있는 미래다.

[179] 반쪽의 논리에 불과한 한에 대한 담론이 지금껏 설득력을 얻어온 까닭은 무엇일까. 해답의 실마리는 한에 대한 담론이 발생한 시점이 일제 강점기라는 사실로부터 주어진다. 첫째 한을 삭일 여유가 없었던 까닭에 해학과 신명으로 승화시키지 못한 채 한의 늪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던 일제 강점기의 척박한 현실을 염두에 두어야 하며, 둘째 일본적인 정서인 모노노아와레와 신파의 퇴행적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181] 상극적인 것을 상생적인 것으로 승화시키지 못한 채 상극적인 것을 늪에 주저앉을 가능성이 우리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경계하기 위해, 지난 세기의 한에 대한 담론을 역사책의 한켠에 선명하게 기록해줄 필요는 있을 것이다.

[185] 이쯤에서 우리는 문화에 대한 인간의 시간적 인식이 역사라면, 공간적 인식은 지리와 지도라는 다음의 글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186] 사람은 위치와 장소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사람은 시간에 대한 사유보다 공간에 대한 사유를 더 절실해 한다.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지 못하면 사람은 불안해한다.

[186] 여기서 우리는 지난 세기의 한국인이 서국적 근대를 향한 ‘시간과의 경쟁’에 빠져든 결과 공간 의식과 공간 취향을 상실해 버린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주위의 공간을 오로지 서구적 근대의 잣대인 돈 가치, 효율성, 편리성에 의해서만 판단한 나머지 개인이 사는 집이나 집단이 사는 도시에 대해서도 오로지 평수나 땅값 같은 돈 가치만을 따지는 데 익숙해졌으며, 그 결과 자신의 공간취향이 발붙일 자리를 상실해 버린 것이다.
하지만 공간 의식과 공간 취향이 인간의 정체성과 직결되는 미의식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는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조차 없다. 흔히들 말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 역시 그런 것이거니와, 무엇보다 공간 의식이란 인간의 정체성을 속절없이 떠도는 천상의 것으로부터 든든하게 뿌리내린 지상의 것으로 잡아내리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187] 삶터는 정체성을 정립하고 소속감을 규정하며 운명을 가늠한다. 삶터는 뿌리와 방향을 제공하는 삶의 기억들로 가득 차 있다.

[189] 땅을 인체와 같이 마찬가지로 뼈대(산줄기)와 핏줄(물줄기)을 갖춘 살아있는 유기체로 본 것이다. 그들은 땅에도 음양과 오행의 이치가 있어 다양한 요소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야 바람직한 삶의 터전을 이룰 수 있다고 보았다.

[190] 땅을 ‘살아 있는’유기체로 보는 생각을 체계화시킨 것이 풍수사상이다.

[190] ‘언제나 속뜻을 숨기고 비약된 은유를 사용함으로써 깊은 지혜를 품고 있으면서도 미신 취급을 당하는’ 풍수 특유의 화법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오늘날 그같은 생각 주변에는 한 세기에 걸친 음지의 삶에 따른 곰팡내와 미운살이 박혀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땅을 ‘살아 있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면서 돈가치, 효율성, 편리성을 내세운 마구잡이 개발에 몰두한 결과, 아이러니컬 하게도 이제는 그동안 ‘살아 있지 않은’ 것으로 여겨온 지구를 ‘살리자’는 깃발을 내세우게 된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193] 풍수사상은 모든 지리적 요소들에 매우 인간적인 실존성을 부여한다.

[199] 오늘날 지리 교과서에 실려 있는 지도는 일본인 지질학자 고토 분지로가 1900년과 1902년 두 자체 걸쳐 14개월 간 한국을 답사하고 나서 1903년에 발표한 「조선산악론」과 이를 근거로 제작된 「조선전도」를 토대로 한 것이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같은 조선시대의 고지도가 오늘날의 지도로 탈바꿈한 사실은, 지난 세기의 한국인이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고유의 공간 취향을 잃어버리고 기억상실에 빠져들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201] 고유색 또는 조선색이라는 표현을 통해서도 짐작되듯이, 색이란 보편 너머의 특수가 자신의 ‘자다움’을 드러내는 눈빛과도 같은 것이다.

[210] 여백은 문자 그대로 비어있는 상태가 아니라 무엇인가 존재하고 있지만 우리의 눈에 쉽사리 확인되지 않는 그 어떤 심오한 상태인 것이다.

[210] 백의민족으로 표상되는 한국인의 흰색 취향이란, 주변의 다른 색들을 지우고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주변의 색들을 생생하게 살려내도 풍성하게 싸안는 것이다.

[211] 오방색과 관련해서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 민족이 누려온 수많은 색 가운데 순수한 우리말로 된 명칭은 하양, 까망, 빨강, 노랑, 파랑의 다섯 가지뿐인데, 이것이 바로 오방색이라는 것이다. 한국인에게 있어 오방색이란 관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색에 관한 현실 자체이기도 하다.

[215] 백의민족이 한국인의 마음 속에 친근하면서도 불편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이데올로기적 표상으로 자리잡은 것은 언제부터인가. 그것은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지난 세기 초반의 일인데, 구체적으로는 한국인의 백의를 비애의 상징으로 본 야나기 무네요시의 주장과 광명의 상징으로 본 최남선의 주장이 계기를 제공했다.

[225] 고유색의 부재란 한국 도시만의 문제가 한국 문화 전반의 문제인데, 이같은 문제의 배경에는 색 취향을 비롯하여 취향 전반을 잃어버린 한국인의 기억상실이 자리잡고 있다.

[226] 전통의 단절은 사실의 단절보다 전통 의식의 단절이 더욱 두려운 어둠을 빚는다.

[231] 이데올로기란 본질적으로 사물을 단면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232] 개성있는 취향은 정신의 여백에서 자라난다. 동양화의 여백이란 하릴없이 비어있는 공간이 아니라 부분을 비워내어 전체를 넘치게 하는 역동적인 기운생동의 근원이다. 정신의 여백을 간직한 사람만이 시시때때로 튀어오르는 정신의 자투리들로 아름다운 성찰의 조각이불로 꾸며낼 수 있다.

[234] 앞뒤가 따로 없는 ‘뫼비우스의 띠’나 안팎이 따로 없는 ‘클라인 씨의 병’에 비유될 수 있는 한 차원 높은 사고를 모색해야 한다. 나는 이같은 사고를 취향적 사고라고 부를 것을 새롭게 제안한다.

[235] 한복바지는 우리의 인체(입체)에다 옷을 그대로 맞추어 놓은 것이라면, 양복바지는 2차원의 평면에다 3차원의 인체를 넣는 무리를 저지르고 있다.

[245] 조선의 선비란 누구인가. 언뜻 보기에 그들은 한편으로는 입신양명하여 수신제가치국평천하 하고자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풍류시를 읊조리며 자연을 벗삼고자 하는 모순된 존재들이다.

[255] 상생 지향이 만들어낸 탈속의 경지는 참으로 아름답다. 거기에는 순수하게 증류된 아름다움, 한치의 가감도 허용되지 않는 유토피아적인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259] 어쩔수 없이 맞대면하게 되는 인간적인 상극의 질서에 대해 어설픈 화해의 태도를 취하거나(샤머니즘) 운명적으로 몸을 맡기는 태도를 취하는 것(허무주의)이 그것이다.

[260] 우리는 한국인이 상생 지향의 사고방식에 따라 인간의 질서인 상극보다는 자연의 질서인 상생을 추구한 나머지, 정신적인 내용을 착안하는데에는 탁월한 반면 육체적인 형식을 완성하는 데는 허술한 측면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261] 상극의 과정을 과거의 삶의 흔적으로만 남겨두는 정태적인 상생이 아니라 그것을 현재의 삶의 에너지로 확보하는 역동적인 상생쪽으로 우리의 취향을 자꾸만 밀어내는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261] 자연의 질서인 상생 대신 인간의 질서인 상극을 전면에 내세우는 서국적 근대와, 인간의 질서인 상극을 자연의 질서인 상생 속으로 통합시키는 한국적인 저다움을 ‘창조적인 모순’으로 통합시켜야 한다.

[263] 만물은 이와 같은 상극이라는 계기의 모순과 대립 속에서 자라나는 것이다. 그런즉 이것은 대립을 위한 모순이나 모순을 위한 대립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발전과 통일을 위한 모순대립인 것이다.

[277] 그것은 ‘지금 이 순간’의 주체가 체험하는 당대성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의 주체로 하여금 당대성을 체함하게 하는 지렛대는 무엇일까. 추사가 ‘연경의 기억’을 통해 획득한 국제적 감각이 그것인데, 그것은 우물 안 개구리와도 같은 토속적인 감각 또는 조선성을 넘어선 곳에 존재하는 세계성이다.


3. 내가 저자라면


龍頭蛇尾

이 말은 송(宋)나라 사람 환오극근(圜悟克勤)이 쓴 《벽암록》에 나오는 말로 ‘시작은 거창하게 하다가 마무리에서 흐지부지함’을 말한다. 이 책을 본 느낌이 바로 이렇다.

한국은 이제 경제규모 면에서 세계 10위권에 도달하였지만, 외적인 성장에 비해서 내적인 면에서는 아직까지도 경제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잠재적인 능력에 비하면 그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이 책에서는 조급함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일본강점기 시절, 나라잃은 슬픔에 정신적으로 공항상태가 되었고, 해방이후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전쟁으로 인해 육체가 만신창이가 되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조급하게 경제성장에 매달리며 숨가쁘게 오늘날까지 달려왔다. 시간과 경쟁하느라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앞만 보고 달려왔다. 이를 두고 저자는 기억상실증에 걸렸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우리가 기억상실증에 걸렸다는 사실 조차도 인식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 예로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의 한국 예술론을 우리의 한국미인 것처럼 고스란히 받아들인 점을 들고 있다. 어떻게 해서 일본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한 개인의 미감을 한국미의 전체인 양 대변해왔는지, 그 숨은 진실이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다.

이는 미에 대해 문외한인 나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 일본의 잔재가 남아있고, 이것이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좌우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전율케 하였다. 또 내가 알지 못하는 부분이 얼마나 많을까.

저자는 한국미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지적하며 한국미의 대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한다. 형과 상의 조화, 고졸미, 발효와 비보의 원리, 해학과 신명, 풍수사상, 오방색 등 우리 주변에 쉽게 볼 수 있는 문화자산 속에서 한국적인 것들을 뽑아내려고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러면서 결론적으로 이데올로기에서 취향의 관점으로 미를 바라보기를 권한다. 사람마다 개성이 다른 것처럼, 사람마다 미에 대한 취향도 다르므로 취향적 사고로 미를 바라보기를 권하는 것이다. 이는 당연한 사실이며 중요한 부분이다. 그런데 한국의 전체적인 미를 이야기 하면서 갑자기 개인적인 취향으로 마무리하는 것은 풍선을 크게 부풀렸다가 갑자기 풍선안의 공기가 빠져버리는 느낌을 들게 만든다. 한국미는 한 개인이 다루기에 어렵고 힘든 주제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용두사미가 될지언정 과감하게 언급하여 문제의식을 갖게 한 용기에 대해서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 책을 보면서 한국성에 대한 중요한 단서뿐 아니라 나의 책의 한 부분을 얻었다. 첫째는 한국성을 분석할 때, 한국성이 발현되는 분야와 그 분야에 작동하는 원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예를 들어, 한이라는 감정은 한국에만 존재하는 감정이 아니라 인간이면 누구나 갖는 감정이지만 이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나라마다 달리 나타난다. 우리나라는 이 한을 삭히고 삭혀 새롭게 흥으로 발현하는 발효의 맛이 있다. 우리나라의 음식의 85%가 발효 음식이라는 면을 보더라도 발효의 원리는 한국성에 작동하는 기본적이고 중요한 원리일 것으로 생각한다. 상극적인 모순을 상생의 힘으로 바꾸는 원리 중에 으뜸이 ‘발효’가 아닐까 한다.

“발효의 원리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그것이 부패와 관련된 미생물의 활동을 억누르고 발효와 관련된 효모균의 활동을 북돋운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소금을 첨가하여 음식물을 부패시키는 균들을 죽이고 소금에 견디는 유익한 균들만 활동하도록 하는 식이다. 따라서 발효 원리의 핵심은 부패균을 죽이는 상극적인 방식이 아니라 발효균을 살리는 상생적인 방식을 취한다는 것이다.”(p 167)

변화란 과거의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취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또한 좋은 것만을 취한다고 해서 반드시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좋지 않은 것도 자신의 것으로 발효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슬픈 기억도 이 책의 제목처럼 ‘금빛 기쁨의 기억’으로 발효시키는 지혜가 필요하겠다. 이는 한국인만의 잠재된 특성이니 다른 어느 나라 사람보다 잘 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우리의 전통이, 우리의 경험이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쓸 수 있는 보물창고임을 깨달아야 겠다.

우리의 것이 좋은 것이여,
나의 것이 좋은 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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