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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4일 22시 44분 등록
왜 글을 쓰는가?

“당신이 바로 지금, 현재에 존재할 때, 세상은 진정으로 살아 움직이게 된다.” p28

진짜 중요한 것은 작품과 더불어 우리의 삶을 꾸려 나가는 과정이다. p30

문학의 책임은 사람들을 깨어 있게 하고, 현재에 충실하게 하고, 살아 숨 쉬도록 만드는 것이다. p103

작가들은 위대한 애인이며 글쓰기는 공동체의 산물이다. p135

글을 쓰는 것이 내 진화의 발전의 시작이므로. p181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는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 마음속에 있는 가장 깊은 비밀이다. p193



1. 저자에 대하여


나타리 골드버그 Natalie Goldberg
작가이자 글쓰기 강사. 1986년 자신만의 독특한 글쓰기 철학을 담은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를 출간하면서 미국인들의 글쓰기에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이 책은 백만 부가 넘는 판매를 기록하며 세계 각국으로 번역되었고, 글쓰기에 도전해보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꼭 읽어보아야 할 새로운 바이블로 떠올랐다. 출간된 후 20년 가까이 지났지만 독자들의 이런 열기는 식지 않아서 이 책은 현재에도 아마존 베스트셀러 상위를 점하고 있다.

이 책에서 그녀는 자신이 25년 간 이어온 선禪체험과 글쓰기를 접목시킨, 혁명적이고도 강력한 글쓰기 노하우를 보여준다. 그것은 단순한 작법론이 아니라, 진정한 창조가 무엇이며 우리가 어떻게 그것을 내면에서 발견할 수 있는지를 일깨우는 데까지 이른다. 그녀가 말하는 창의력의 비밀은 글을 첨가하는 것이 아닌 ‘덜어내기의 법칙’이다. 글쓰기에 대한 이런 독특한 관점은 오랜 명상 체험을 통해 얻어진 것이다. 나탈리 골드버그는 그 책을 통해 용맹한 전사처럼, 때로는 깊은 통찰력을 가진 현자처럼 삶과 글쓰기를 관통하는 어떤 진실을 독자에게 들려준다.


추천의 말

내 가족의 진실을 찾아내어 작품으로 완성시키겠다는 소망이 있었다. p4

이 책은 글을 쓰고자 하는 이들만이 아니라 인생의 모든 모험을 앞에 두고 있는 이들에게도 최고의 안내서다. 여기에는 사람들에게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하고, 글을 쓰게 하고,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이루어 내도록 하는 모든 방법이 들어 있다.

작가는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기 위해 글을 쓴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세상으로부터 차단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여 수용할 수 있는’ 균형 잡힌 집중력을 가져야 한다. p5

나는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서 더 앞으로 나갔어야만 했다.
써니: 나는 내 팔자, 운명 너머의 '살고 싶은 나'를 살아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공연한 오기나 집착이라기보다 내가 속했던 환경과 교육이 내게 그렇게 각인시킨 점들을 믿고 확인해보고자 하기 때문이다. 거짓 진실이 아니고 잘못 배운 것이 아니었다면 시련을 넘어 언젠가 가슴 충만한 그날이 오고야 말리라라고 나는 아직도 생각하고 있기에.

이 책은 여러분의 인생까지 구원해 줄지 모른다. p7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나탈리, 선仙이란 글을 쓰는 것과 똑같아요.”

“뭣하러 굳이 명상 모임에 찾아오는 겁니까? 당신은 왜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단련하지 않죠? 만약 당신이 글쓰기 안으로 깊이 몰입할 수 있다면, 글쓰기가 당신을 필요한 모든 곳으로 데려다 줄 것입니다.”
이 책은 글쓰기에 대한 책이다. 또한 글쓰기를 통해 삶이 끝나는 날까지 건강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실천적 훈련의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하다.

“나탈리, 지금 당신이 말하는 건 사업 이야기와 똑같군. 그게 바로 사업이야. 글쓰기와 사업가의 길 사이에는 아무 차이가 없어.

학창시절 내내 나는 말 그대로 꽉 막힌 모범생이었다. 나의 유일한 목표는 오직 선생님 마음에 드는 학생이 되는 것이었다.

대학에 들어간 후, 나는 문학이란 것과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그야말로 미친 듯한 불꽃같은 사랑이었다. 나는 제랄드 만레이의 시를 타자기로 옮겨 쓰고 또 옮겨 써서 나중에는 그의 시를 깡그리 외우게 되었다. 존 밀턴과 쉘리, 키이츠의 시를 소리 높여 낭송하다가 기숙사 내 좁은 침대 위에 그대로 쓰러져 잠든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가 60년대 후반이었다.

대학생이던 나는 이미 영국을 비롯한 유럽 출신 대부분의 남성 작가들의 시와 이미 세상을 떠난 남성 작가들의 작품까지 죄다 읽었다고 자부했다. 문제는 내가 그들을 무척이나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나의 일상 현실과 아주 먼 곳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결코 내가 삶에서 실제로 겪어 나가야 할 경험들에 대해 어떠한 영향도 줄 수 없었다. 나는 상대가 시인이라면 결혼해 줄 수도 있다는 은밀하고 의뭉스런 꿈을 가슴속에 품고 있었지만, 나 자신이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었다.

나는 친구 세 명과 함께 미시간 주에서 인공감미료를 첨가하지 않은 순수 자연식 레스토랑을 개업했다. p14

우리는 그 레스토랑의 창조자였다.

이때가 내가 자신의 마음만을 믿어야 한다는 사실을 배운 최초의 시기였다.

‘아니, 이런 것도 시가 될 수 있단 말인가?’ 맙소사! 이렇게 평범한 것이 시란 말인가? 내가 매일 하는 그런 일이 시라고? 그때 무언가가 나의 뇌신경망을 건드리고 지나갔다. 집을 향해 걸음을 옮길 때 나는 어느새 내가 알고 있는 것 그리고 나만의 생각과 감정이 실린 글을 써 보겠다고 결심하고 있었다. 나는 먼저 내 가족에 대해 쓰기 시작했다. p15

“자신이 사랑하는 일에 믿음을 갖고 계속해서 밀고 나갈 때만이, 그 일이 자신이 가야 할 길로 이끌어 주는 법이지.”
그리고 여러분에게 안정된 삶의 방식을 가지려고 너무 염려할 필요는 없다고 당부하고 싶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시작할 때 이미 당신은 끝까지 그 일을 따라갈 깊은 안정성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11년 동안 수많은 지역에서 글쓰기에 대한 방법을 가르쳐 왔다. 뉴멕시코 대학, 라마 재단 그리고 타오스에서는 히피들을 작문 교실을 열었다. 알부퀘르크에서는 간호사들을 위해, 불더에서는 비행 청소년들을 위한 수업을 했고, 다시 미네소타 대학, 노스이스트 대학, 네브라스카 주 노포크에 있는 기술 고등학교, 미네소타 시인학교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지역에서는 게이들만을 위한 일요일 밤 작문 교실도 열었다. 어디서 누구를 가르치든 나는 항상 똑같은 방법론을 주장한다. 바로 ‘자신의 마음을 믿고, 자신이 경험한 인생에 대한 확신을 키워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p16

글쓰기를 배우는 길에는 많은 진리가 담겨 있다. 실천적으로 글을 쓴다는 의미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인생 전체를 충실하게 살겠다는 뜻이다.

이 책은 다양한 방법론을 제시한다.

모든 사물에 개별적인 정체성을 주어 접근하라.
자신을 누르지 말고 감정의 파도에 실린 그 상태로 글을 몰고 가야 한다.
쓰는 이가 자신의 내면 아주 깊은 곳까지 내려가야만 한다.
은밀한 개인적인 공간이 필요하니 작업실을 정하라. p17

수업을 할 때 나는 학생들에게 ‘뼛속까지 내려가서 쓰라’고 요구한다. 자기 마음의 본질적인 외침을 적으라는 말이다.

나는 각각의 장이 그 나름대로의 장점을 가지도록 이 책을 썼다.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말은 긴장을 풀고, 몸과 마음 전체로 이 책을 흡수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읽는 데서 끝내지 말라. 부디 써라. 그리고 자신을 믿어라. 자신의 요구가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여러분이 이 책을 쓰임새 있게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 p18

모든 위대한 베스트셀러작가들의 책은 한결같이 쉽게 쓰여 졌다. 그래서 기대를 잔뜩하고 훑을 때에는 자칫 중요한 구절들을 놓칠 염려가 있을 만큼 평이하다. 이 책 역시 처음에는 제목만큼 내게 큰 느낌을 주지 못하였다. 연구원 하나는 내게 “누나와 같은 글쓰기를 하는 사람에게는 어쩌면 그리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던 말이 기억나기도 했다. 그래서 꼼꼼히 읽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솔직히 몸이 뒤틀릴 만큼 나를 빨려들게 하는 책은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진솔하게 쓰여 졌고 간결했으며 쉬운 말속에 오래 묵었으나 담담하게 펼치는 신선함이 있었다. 김장김치를 독에 두고 꺼내먹어도 질리지 않을 때처럼, 그리고 계절에 상관없이 꺼내먹을 때마다 새로운 맛을 느끼듯 잔잔한 여운이 담긴 책이라고 할만 했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과 달리 식상한 면들도 없지 않았다. 무엇보다 얇게 저격한 것이 성공적이었다고 할 만큼 정제되었다는 것은 인정해 주고 싶다. 부담 없이 뽑아서 가볍게 들췄으나 결코 휙휙 넘길 만한 것은 아니었다. 이것이 이 책의 장점이라고 생각되어진다.



2. 내 마음속에 들어온 글귀


나는 첫 번째 수업을 무척 좋아한다. 글쓰기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글 쓰는 사람으로 인생을 살겠다고 다짐했던 그 ‘첫 마음’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써니: 사부님은 강연도 많이 하시고 책도 많이 내고 계시지만, 그보다 당신께서 자발적으로 이끌어 가시는 <꿈 프로그램>과 <연구원 수업>은 이런 맥락에서 늘 새롭게 시작되는 것 같다.
적어도 한 해에 4번은 그러니까 석 달에 한번 은 당신을 말갛게 비우고자 하시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새로운 하루, 새로운 석 달간을 새롭게 계획하고 만들어 가시는 것 같다.
그렇게 늘 깨어있기를 주저하지 않으시며 날마다 日新 又日新 하시며 거듭 일상을 갈무리해 나감을 느낀다.

글쓰기는 매번 지도 없이 떠나는 새로운 여행이다. p19
써니: 인생과 글쓰기와 여행의 절묘한 삼박자?

원고를 손으로 쓰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빠르게 써지는 필기구를 마련해야 한다. 생각은 손이 움직이는 것보다 언제나 앞서 달려가기 때문이다. p20

나는 세상에서 가장 볼품없는 쓰레기 같은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라. p21

나는 감정적인 글을 쓸 때는, 적어도 처음에는 직접 손으로 쓴다. 손으로 쓰는 것이 심장의 운동과 더욱 가깝게 연결되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이나 긴 이야기를 쓸 때는 주저 없이 타자기 앞에 앉는다. p22

그림을 그리는 아주 커다란 도화지에 글을 써 보는 것도 한번 해볼 만한 방법이다.
내면세계가 외부 세계를 창조한다는 말은 참말이다. 하지만 이 외부 세계와 우리가 쓰고 있는 연장 또한 우리의 사유 형태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사실이다. 하늘에 대고 글쓰기를 하지 못할 것도 없다. p23

‘첫 생각’을 놓치지 말라

감정과 사유에 대한 집착을 흘려보내는 것, 끝까지 계속 앉아 있는 것, 이것이 좌선의 규칙이다. p24

자신의 감정을 넘어서야만 저반대편 심장부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눈물을 흘리는 데서 멈춰서는 안 된다. 눈물을 넘어 진실을 파고들라. 이것이 원칙이다.

중요한 것은 글쓰기에 할애할 시간이 얼마이든 간에 그 시간 동안만큼은 글쓰기로만 완전하게 채우도록 집중하는 일이다. p25 완전한 몰입을 주장***

• 편집하려 들지 말라. 설사 쓸 의도가 없는 글을 쓰고 있더라도 그대로 밀고 나가라.
• 철자법이나 구두점 등 문법에 얽매이지 말라. 여백을 남기고 종이에 그려진 줄에 맞추려고 애쓸 필요 없다.
• 마음을 통제하지 말라. 마음 가는 대로 내버려 두어라.
• 생각하려 들지 말라. 논리적 사고는 버려라.
• 더 깊은 핏줄로 자꾸 파고들라. 두려움이나 벌거벗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도 무조건 더 깊이 뛰어들라. 거기에 바로 에너지가 있다.

첫 생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마음에서 제일 먼저 ‘번쩍’하고 빛을 낸 불씨다. 이 불씨의 뿌리는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잠재력과 맞닿아 있다. p26

첫 생각은 에고 또는, 우리를 통제하려고 드는 논리적인 메커니즘(세상은 영구불변하며, 견고하고, 지속적이며, 보이는 것이 전부라는 생각)에 얽매이지 않는 생각이다. 세계는 불변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고 있으며,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실들로 가득하다. 그러므로 만약 당신이 자신의 의식 차원을 넘어선 글을 쓸 때, 그것은 있는 그대로 사물의 진실을 나타낸 것이 된다. 그래서 이런 글은 에너지가 넘칠 수밖에 없다. 글쓰기를 가로막던 ‘에고’라는 짐을 벗어던지는 순간 당신은 더 큰 조류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째서 첫 생각에는 이처럼 굉장한 에너지가 들어 있는 것일까? 첫 생각은 참신함 그리고 영감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감이 오는 순간에 당신은 신과 하나가 될 수 있다. p27
번득이는 첫 생각과 만나는 순간, 당신은 자신이 알고 있던 것보다 더 큰 존재로 변화했다. 우주의 무한한 생명력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첫 생각은 바로 지금, 이 순간에 당신이 그동안 겪어 온 감정과 사건과 정보가 밑바탕이 되어 발산되는 것이기에 엄청난 에너지로 충만해 있다. 이것이 바로 첫 생각이 가진 에너지다.

“당신이 바로 지금, 현재에 존재할 때, 세상은 진정으로 살아 움직이게 된다.”

멈추지 말고 써라
글쓰기 훈련의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는 자신의 몸과 육체를 믿는 법, 다시 말해 인내심과 공격하지 않는 마음을 키우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진짜 중요한 것은 작품과 더불어 우리의 삶을 꾸려 나가는 과정이다.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 내는 시와 소설을 방편으로 삼아 진정 깨어 있는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티베트 불교 승려인 초감 트룽파 Chogyam Trungpa는 이런 말을 했다. “무서운 적을 만나게 되더라도 계속 열린 마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직도 겹겹이 쌓여 있는 마음의 층을 벗겨 내야만 합니다.”
글쓰기 훈련은 세상과 자기 자신에 대해 마음을 지속적으로 열어 나가게 하고, 자기 내면의 목소리와 스스로에 대해 믿음을 키워 나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과정이 옳았을 때만 좋은 글을 얻을 수 있다.
써니: 사부님을 뵐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다. 모든 사람, 모든 부적응자들을 향해 열어가는 마음의 문의 넓이와 깊이를 배운다.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믿는 법을 배운 다음 글을 쓰게 되면, 그것이 사업상의 서류이든 장편 소설이든 박사 논문이든 또는 여행기이든, 그 글에는 힘이 실리게 된다. p30

달리기와 마찬가지로 글도 많이 쓰면 쓸수록 실력이 향상된다.

규칙적으로 달리기 훈련을 하게 되면, 이 훈련 자체가 저항감을 잘라내고 무시해 버릴 수 있는 또 다른 훈련이 된다.

일단 글쓰기에 빠지게 되면, 왜 그토록 오랜 시간을 방황하고 이제야 책상 앞에 앉게 되었는지 의아해질지도 모른다. 글쓰기도 훈련을 통해서만 실력을 쌓을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깊은 자아를 믿게 되면, 이제 그곳에는 글쓰기를 두려워하라는 목소리는 자연스럽게 설자리가 없어진다. p31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졸작을 쓸 권리가 있다”라고만 하자. 그저 많은 글을 쓰겠다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라.

나는 작품을 쓸 때마다 나 자신만을 위한 글쓰기 안내서를 항상 새롭게 만든다. p33

글쓰기 훈련은 당신의 인생 전체를 끌어안을 것이다. 이런 글쓰기 훈련은 어떤 식의 논리적 형태도 요구하지 않는다. 바깥에서는 무섭게 천둥이 치고 있는데도 할머니가 만들어준 따뜻한 수프를 먹고 있는 꿈을 꿀 수 있는 것처럼. 글쓰기는 재갈을 물리지 않은 야성이 숨 쉬는 공간이다.

우리는 글쓰기 훈련으로 무장되어 있을 때 논리라는 그물에 걸리지 않게 된다.

지금 당신의 마음이 달려가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그대로 적어 내려가라. 제발 어떤 기준에 의해 글을 조절하지는 말라. 무엇이 다가오더라도 지금 이 순간의 것을 잡아라. 손을 멈추지 말고 계속 쓰기만 하라. p34
써니: 나는 감정이 이끄는 대로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이 글을 대하면서 웃음이 난다. 이렇게 혼자서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변.경.연 더 정신없어도 될까요? ㅋㅋㅋ

글을 쓰는 것은 내가 아니다
지각과 판단력은 우리의 의식과 육체를 거쳐서 나온 경험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자신의 마음을 하나의 재료로서 탐색하고 있는 게 보인다. 이런 학생들이야 말로 그저 ‘나도 글을 써 보겠다.’는 소망에 머물지 않고 실제로 훈련 과정을 충실히 거쳐 앞으로도 계속 글을 써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다.

오히려 그는 자기 내면의 더욱 깊은 곳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우리 안에 들어있는 그 풍요의 정원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퇴비에서 한 송이 붉은 튤립이 피어난 순간이었다. p37

“당신의 작은 힘으로는 어떤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일을 하게 만드는 건 ‘위대한 결정자’입니다. 당신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당신이, 당신 배후에 존재하는 우주만물 즉 새, 나무, 하늘, 달, 그 밖의 무수한 생명의 흐름들과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에만 위대한 결정자가 당신을 도와 그것이 이루어지도록 합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경영할 수는 없다. 우리는 심지어 자기가 쓰는 글조차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훈련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스스로의 경영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을, 결코 편하게 앉아서 사탕이나 먹으며 살겠다는 핑계거리로 삼지 말라. 우리는 계속해서 비료가 될 만한 자료를 수집하고, 발효시키고, 비옥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 비료가 글을 쓰는 데 필요한 우리의 근육이 되어 준다면 우리는 위대한 우주의 조류를 타고 더 넓은 곳으로 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p38
써니; 무덤에 가서도 써라

예술적 안정성을 얻는 과정
우리 모두는 저마다 자기만의 비밀스러운 신화를 만들며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 자신을 알아보고 그것을 받아들여 준다면, 그보다 더 고마운 일은 없지 않은가. p41

그러나 나는 내 인생의 밑바닥에서 무언가가 나를 지탱하고 키워주고 있다는 믿음만은 늘 가지고 있었다. 내가 가야 할 나만의 길이 하나 있을 거라는 신념은 놓치지 않았다. 비록 마음은 아무런 감흥 없이 무감각하게 가라앉아 있거나 잡념들로 산만하게 채워져 있곤 했지만. 그 시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곤 오로지 그런 산만한 마음과 그 동안 살았던 인생이 전부였다. 나는 거기서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려 주는 이 노트를 통해 내가 진보하고 발전하고 있음을 안다. 이 노트는 한 인간의 존재 증명이다.”

이처럼 당신이 자신의 마음에서 나온 것들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면, 앞으로 5년 동안 쓰레기 같은 글만 쓸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보다 더 많은 세월 동안 글쓰기를 멀리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이런 쓰레기와 퇴비에서 피어난 글쓰기만이 견고한 글이 된다. 당신은 어느 것으로부터도 도망치지 않게 된다. 당신은 예술적 안정성을 지니게 된다. 안에서 울려나오는 목소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바깥에서부터 쏟아지는 어떤 비평도 무섭지 않다. p43
써니: 진흙탕 속에서 피워 올리는 청초하고 맑은 연꽃을 연상하게 하는 구절이다.

습작을 위한 글감노트 만들기
평소 쓰고 싶은 주제가 떠오를 때마다 아이디어를 적어 두는 노트를 따로 마련해 두자. 단 한 줄짜리 짧은 글일 수도 있다. 번개처럼 지나가는 기억도 주제 목록에 첨가될 수 있다.

글을 쓰고 싶은 주제가 떠오르면 언제라도 노트에 적어두라. 그것이 한 단어이든 한 문장이든 이러한 목록들은 당신이 다음에 글을 쓰고자 할 때 요긴하게 끄집어내어 사용할 수 있는 글감이 될 것이다.

이 방법은 일상 속에 숨어 있는 글쓰기의 재료들을 찾아내는 훈련이 될 뿐 아니라, 글쓰기가 바로 당신의 인생과 그 인생에서 탄생하는 산물임을 깨닫게 한다. p46

글이 안 써질 때도 글을 쓰는 법
당신 속에서 싸움을 원하는 마음이 있다면 싸우도록 그냥 내버려 두라. 하지만 그 싸움의 한 구석에서, 제 정신을 차리고 있는 실제적인 마음이 조용히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 그 마음이 노트로 옮겨져 더 깊고 평화로운 곳에서부터 나온 글을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p52

“말할 때는 오로지 말 속으로 들어가라. 걸을 때는 걷는 그 자체가 되어라.” 그러므로 글을 쓸 때는 쓰기만 하라. 열등감과 자책감으로 중무장한 채 자신을 학대하는 싸움은 하지 말라. p53
써니: 나는 오래 자학해 왔다. 주의에서 들은 말도 그러하다.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까? 선택은 자유, 깨달음도 훈련일 것인가?

나는 한 달에 노트 한 권 정도는 채우려고 애를 쓴다. 글의 질은 따지지 않고 순전히 양만으로 내 직무를 판단한다. 그러니까 내가 쓴 글이 명문名文이든 쓰레기이든 상관없이 무조건 노트 한 권을 채우는 일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만약 25일이 되었을 때 노트가 다섯 장 밖에 채워져 있지 않다면, 나는 나머지 5일 동안 전력을 다해 나머지 노트를 꽉 채우고야 만다.

밑도 끝도 없는 죄의식과 두려움,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쓸데없는 시간 낭비다. 글을 쓸 수 있는 시간만 있다면, 어떤 글이든지 쓰겠다는 자세가 중요하다. p55
써니: 정말? 나탈리, 당신 제정신 맞아욧?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니라고, 마치 불치병처럼 구제가 불가능한 것처럼 내게 칼을 드리댔는지 알고나 그러슈? 당신은 쓰레기 같다는 평을 듣고도 계속해서 써나갈 수 있나요? 나는 요, 글을 쓴 게 아니었어요. 내 마음의 일렁임 들을 주체할 수 없었고, 그렇게까지 비참해져야 하는 내가 싫어서 흐느꼈어요. 깨어짐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가망 없다는 말이 얼마나 숨통을 조이는 것인지 알아요? 그 절망이 생사람을 잡아 죽이기에 부족함이 없지요. 날마다 처형되는 기쁨, 그렇게 하루를 연명하는 것을 기록하는 것, 나의 일상을 담은 일기를 고집하는 자의 서러움을 아시나요? 작가라는 욕심 따위는 없었어요. 하지만 이러한 내가 있다는 것, 이런 나도 여러 세상 사람들의 삶의 구성요소 가운데 하나라는 것, 내 어머니도 나를 위해 미역국을 잡수셨다는 것을 적어도 나만은 기억하고 싶은 거죠. 나아가 이게 나 하나뿐일까 하는 생각, 나도 무언가 누군가에게 무엇이, 아니 의미가 있는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 거죠. 요괴가 아니라 아름다운 사람으로.
고로 미친 써니는 아직도 더 미쳐야 한다. 모두가 미쳐서 내가 미치지 않은 것으로 보일 때까지? 하하하.

편집자의 목소리를 무시하라

눈앞에 있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라

작가는 작품을 쓸 때 모든 것을 항상 처음 대하는 기분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p61
어떤 것이 이상적인 글인가? 무엇에 대해 써야 할까? 당신 앞에 있는 것이 무엇이든지 바로 거기서부터 출발하라. 그런 다음 그 속으로 파고들어라. 당신이 가지 못하는 곳은 없다. 그리고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하라. p62

글쓰기는 글쓰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
글을 쓰는데 자신의 재능이나 잠재력을 문제 삼을 필요는 없다. 재능과 실력은 훈련을 거쳐 가면서 커지는 법이다.
“우리의 잠재력은 지구 표면 밑에 있는, 보이지 않는 지하수면과 같습니다.”

자신의 목소리를 스스로 믿게 되었을 때, 그 목소리가 이끄는 곳으로 곧장 나가라. p64

장르에 상관없이 원하는 글을 써 보는 과정에서 그 장르가 가지는 특성을 배우게 된다. 당신은 점점 자기만의 기술과 기법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될 것이다.

자신의 바깥에서는 어떤 배움의 길도 없다. p64

작가와 작품은 별개다
스스로 속지 않도록 경계하라. 시시각각 우리는 변한다. 그리고 매 순간마다 변한다는 사실. 이것처럼 좋은 기회도 없다. 우리는 한 순간에 얼어붙어 있던 자신과 자신의 이상으로부터 빠져나와 신선하게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이것이 글쓰기이다. 글쓰기는 우리를 동결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자유롭게 흐르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

당신은 더 이상 내면에 있는 것들과 싸우지 않는다. 그래서 당신은 자유롭게 된다. 이전까지 싸움의 대상이었던 것들이 이제는 당신과 하나가 되고 당신을 도울 것이다.

나와 내가 쓴 작품은 별개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라. 물론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반응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상관없다. 우리가 힘을 얻는 곳은 언제나 글 쓰는 행위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진짜 인생은 글 쓰는 행위에 있는 것이지 같은 작품을 몇 년 동안 되풀이해서 읽고 또 읽는 것에 있지 않다.

자신이 만들어 낸 작품과 자신을 지나치게 일치시켜서는 안 된다.

당신은 또 다른 흐름에 몸을 맡기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시에 들어가 있는 단어는 당신이 아니다. 당신 몸을 빌어 밖으로 표출되었던 ‘위대한 순간’이다. 그 순간을 잡아내 글로 옮길 수 있도록 항상 깨어 있는 것이 작가가 할 일이다. p69

사고의 모든 경계를 허물어뜨려라
작가는 두려움 없이 무조건적으로 모든 것을 써 낼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글쓰기와 인생 그리고 정신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런 경계가 없다. p71

아주 오랫동안 한 가지 생각에 머물러 본 적이 있는가? 바로 그런 상태가 지속되다가 어느 한순간 생각이 비약적으로 튀어오를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섬광 같은 영감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영감의 근원은 만물의 근원과 맞닿아 있기에 자연히 그것들의 공통적인 법칙과 본질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p73

글쓰기는 맥도날드 햄버거가 아니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당신의 감정들은 밖으로 표출되고 싶어 한다. 그것이 당신 생각에 방해 받기 전에, 솟아나는 감정들을 일단 종이 위에 표현해야 한다. 자신의 생각대로 글을 조절하겠다는 마음을 버리고 그때그때 솟아 나오는 감정들을 글로 써 내려가라.

글을 쓸 때는 모든 것을 풀어주라. 아주 쉬운 말로 단순하게 시작하고, 당신 속에 깃들여 있는 것을 그대로 표현하도록 애써라.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노출시킨다는 것은 절대 자신의 에고를 남들에게 보여 주고 싶은 대로 연출한다는 뜻이 아니다. 자신이 그저 하나의 인간 존재임을 드러내 보인다는 뜻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나는 글쓰기가 종교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글쓰기는 당신이 쓰고 있는 딱딱한 껍질을 벗기고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향해 다가가도록 한다. p75

글을 쓰는 데는 당신의 온몸, 즉 심장과 내장과 두 팔 모두가 동원되어야 한다. 바보가 되어 시작하라. 고통에 울부짖는 짐승처럼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시작하라. p76

엄청난 분량의 글을 쓰겠다는 결심을 하기 전에 먼저 자신에게 여유를 주자. 자신의 목소리가 지닌 힘을 믿는 법을 배우자. 자연히 이런 과정에서 우리는 방향 설정을 하고 목적지가 어딘지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 목적지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다른 장소에서 나타날지도 모른다. 글쓰기는 맥도날드 햄버거가 아니다. 패스트푸드가 아니라 스로우푸드다. 요리는 천천히 익어 가고 있으며, 시작 단계에 있는 당신은 그 음식이 구이가 될지, 바비큐가 될지, 국이 될지 아직 모르는 것이다. p77

강박관념을 탐구하라
글쓰기에 대한 강박증은 직접 글을 써서 풀어내야 한다. p81

세부묘사는 글쓰기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다
인생이란 너무도 다양해서 만약 당신이 사물의 과거와 현재의 진정한 모습을 세세하게 써 내려갈 수만 있다면 당신에게 더 이상 필요한 것은 없다. p82

그들의 이름을 불러 주라
글쓰기에서 우리가 살았던 장소와 그 공간을 채우던 사물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것을 우리 삶의 세부사항으로서 써 내려 가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우리의 삶은 모든 순간순간이 귀하다. 이것을 알리는 것이 바로 작가가 해야 할 일이다. 작가는 의미 없어 보이는 삶의 작은 부분들마저도 역사적인 것으로 옮겨 놓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러므로 작가는 인생의 모든 면들에 대해, 한 모금의 물, 식탁에 묻어 있는 커피 얼룩에 대해서까지 “그래!”하고 긍정할 수 있어야 한다. p84

작가가 쓰는 글은 이 세상 모든 것을 재료로 해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소중한 존재들이며, 우리의 삶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자가가 되려는 당신은 알고 있는가? 덧없이 지나가버리는 세상의 모든 순간과 사물들을 사람들에게 각인시켜 주는 것, 그것이 작가의 임무다.

우리가 삶의 세부사항을 묘사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까닭은 지나치게 빠른 속도와 효율성만을 주장하는 문명의 이기, 우리를 대량학살하려는 원자폭탄 같은 무자비한 폭력에 항거하기 위함이다.

예드 바쉠 Yod Vashem은 ‘이름을 기억한다’는 뜻이다. p85
써니: '이름을 기억한다'라는 말이 왜 이렇게 아름답게 들리지?

우리가 누구인가? 우리가 부둥켜안아야 할 현실은 무엇인가? 우리의 삶은 지극히 평범한 동시에 신화적이다.

작가의 임무는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의 삶을 이루는 실체들에 대해 경건하게 “네!”라고 긍정하는 것이다.
써니: 이 대목에서 한용운님의 <복종>이라는 시가 떠오른다. 복종하고 싶은 데에 복종하는.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만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가 없는 까닭입니다. -만해 한용운


케이크를 구우려면
삶의 모든 세부 사항들을 조심스럽게 다루고 다정하게 접촉하라. 당신을 둘러싼 것에 진정한 관심을 기울이라. 강에 대해 쓰고 있다면 그 강에 온몸을 적시라. 그 강이 탁한 황토 빛으로 둔하게 흐른다고 적는다면 당신의 몸이 그 탁한 느낌을 그대로 느껴야 한다. 글쓰기에 깊이 빠져들면 쓰는 사람과 글은 분리되지 않는다.

“좌선을 할 때 당신은 사라져야만 한다. 좌선이 좌선을 하도록 만들어라.”

글이 글을 쓰도록 하라. 당신은 사라진다. 당신은 그저 당신 속에서 흐르고 있는 생각들을 글로 적어 내고 있을 뿐이다. p88

그저 당신의 상황과 진실을 적어 내려가라.

아무런 재료도 준비하지 않은 채 열만 믿고 케이크를 구우려는 이들이다.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지만 아무도 그 결과물을 먹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세부 묘사가 빠진 추상적인 글쓰기에서 대개 이런 허점이 발견된다. 분명히 아주 웅장한 생각과 열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쓴 글이지만 누구도 읽어 주지 않는다. 그러나 세부 묘사를 사용하면 당신이 느끼는 환희나 슬픔을 아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p89

세부 묘사야말로 글쓰기의 기본 요소이자 단위다. p90 ***** 소라가 잘한다.

작가는 비를 맞는 바보
작가는 인생을 두 배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모든 것을 다시 곱씹는 두 번째 인생이다. 이들은 글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을 때마다 자신의 인생을 다시 들여다보고 그 모습을 면밀하게 음미한다. 삶을 이루고 있는 재질과 세부 사항을 들여다본다. p91

결국 당신은 돈을 버는 일보다 글을 쓰기 위해 바보가 되는 것도 무릅쓰고 글쟁이의 인생에 더 많이 끌리고 있는 것이다. ***** 그래, 어떻게 알았어. 나, 이래도 되냐구?

작가들은 자신만의 시간을 지키고 있으며, 그 시간의 중요성과 가치를 느끼는 사람들이다. 시간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그들은 시간을 팔아 돈을 벌지 않는다. 이들에게 시간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과 같은 것이다.

당신 속에는 시간을 필요로 하는 느림보가 들어있다. p93

글쓰기는 육체적인 노동이다
사람들은 글쓰기가 육체적인 노동이라는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글쓰기는 생각하는 행위만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시각, 촉각, 후각, 청각 등 모든 지각 능력과 관계하고 있다. 또 반드시 ‘손을 계속 움직여 써 내려가는’ 과정이 있어야 하나의 작품이 탄생된다.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만으로는 아무런 결과물도 생산할 수 없는 것이다. p94

잘 쓰고 싶다면 잘 들어라
글쓰기 역시 90퍼센트는 듣기에 달려 있다. 열심히 들으면 당신을 채우고 있는 내면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 자연히 나중에 글을 슬 때, 당신은 그 내면의 소리를 저절로 분출시킬 수 있게 된다. 내면의 진실한 소리를 듣게 된다면, 글쓰기에는 더 이상 다른 것이 필요 없다. 당신은 그저 식탁 건너편에서 당신에게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그곳의 분위기가 내는 소리와 의자와 문이 말하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문 너머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까지도.

계절이 만들어 내는 음향과 바람에 실려 오고 있는 온갖 색상의 음향을 받아들여라. 과거와 미래와 현재 당신이 있는 곳에 귀를 열어 두어라. 귀로만 듣지 말고 온몸으로, 당신의 위장과 심장과 피부와 머리카락으로 들어라.

듣는 것은 곧 받아들이는 것이다. 당신이 더 깊이 들으려 하면 할수록 더 좋은 글을 쓰게 될 것이다. 아무런 편견 없이 사물이 가는 길을 받아들일 때 그 사물에 대한 진실한 글이 태어난다. 만약에 당신이 사물의 이치를 잡아낼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글을 쓰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얻은 셈이다. p99

시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 사람은 시를 읽고, 시를 들어야 한다. 논리적으로 시를 분석함으로써 시로부터 멀어지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 그저 시가 당신의 몸속으로 스며들게 하라.
위대한 선승인 도겐道元은 “안개 속을 걷는 사람은 안개에 젖는다.”고 했다. 그러니 그저 듣고, 읽고, 쓰라. 너무 조바심을 내지 말고 그 자연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올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라. 그냥 흐르는 대로 운율에 맞춰 노래하고 쓰라. p101

파리와 결혼하지 말라
작가 스스로 글의 방향을 명확하게 정리하지 않은 채 글을 써 내려가거나, 다루고 있는 글의 소재에 밀착되어 있지 못한 경우에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 이런 부분이 생기면 글의 초점이 흐려지고 결국에는 독자들의 흥미를 떨어뜨리게 만든다.

문학의 책임은 사람들을 깨어 있게 하고, 현재에 충실하게 하고, 살아 숨 쉬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가 방황한다면, 독자 역시 방황하게 된다. p103

글쓰기는 사랑을 얻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몇 년 전, 그 동안 쓴 글들을 모두 발표했을 때, 나는 모두가 내 작품을 좋게 평가한다는 사실과 상관없이 외롭고 두려운 감정에 빠져 있었다. 나는 스스로 내가 쓴 글을 비난했다. 그렇게 문제투성이 글을 내가 썼을 리 없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때 나는 이혼을 목적에 두고 있어서 심각한 자기비하 상태에 빠져 있었다. 나에게는 버팀목이 필요했는데, 시는 그 버팀목이 되지 못했다. 난 이 두 가지를 혼동하고 있었다. 내가 그 시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시는 건강했지만 나는 건강하지 못했다.

작가인 우리는 늘 의지할 것을 찾아다닌다. 동료들로부터, 비평가로부터 인정받아야만 안심하려 든다. 그러나 자신의 재능이나 작품에 대해 보내는 타인의 칭찬에 기대어 살아가는 한, 그 작가는 다른 이들의 비평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p106

작가가 되려면, 자신을 향한 긍정적이고 솔직한 격려를 받아들이는데 필요한 여유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하니까. p109

꿈에 대해 써라
자신이 꿈이 무엇인지에 대해 5분에서 10분 동안 써 보도록 하라. 이때 우리는 마음속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떠다니는 소망과 있는지조차 몰랐던 소망들을 적어야 하는 강요를 받는다. 이 소망들을 글로 적는 것은 우리 인식의 한 가운데에 그 소망을 각인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리고 소망에 대해 쓴 글을 다시 읽어보라. 적혀 있는 꿈과 소망을 진지하게 대해야 한다. 만약 자신의 진짜 소망이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겠다면, 가고자 하는 방향이라도 잡아 두라. p111

꿈은 우리가 삶 속으로 관통해 들어가게 만드는 하나의 방법이다. 이게 틀린 말이라면 우리는 꿈과 함께 영원히 상상 속을 표류하는 것으로 끝날 것이다. p112

문장 구조에서 벗어나 사유하라

말하지 말고 보여주라
‘말하지 말고 보여주라’는 말이다. 무슨 뜻인가? 이것은 이를테면 분노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서, 무엇이 당신을 분노하게 만드는지 보여 주라는 뜻이다. 당신 글을 읽은 사람이 분노를 느끼게 하는 글을 쓰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독자들에게 당신의 감정을 강요하지 말고, 상황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있는 감정의 모습을 그냥 보여 주라는 말이다.

작가는 슬픔과 기쁨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독자의 마음을 슬픔과 기쁨의 골짜기로 안내할 수 있어야 한다. p117

당신의 숨결을 느낄 수 없는 글은 당신이 그 글 속에 들어 있지 않은 것이다 p119

그냥 ‘꽃’이라고 말하지 말라

몰입하기
글쓰기 속에 몰입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세상으로부터 차단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언제나 세상의 실체를 보여주기 위한 몰입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 균형을 잡는 데는 상당한 기술이 필요하다. p125

평범과 비범은 공존한다

이야기 친구를 만들다
마음에 맞는 친구에게 당신이 쓰고 싶은 이야기를 해보자. p131

말하기는 혼자서 펜과 종이만을 상대로 보내야 하는 길고 긴 창작의 기간에 앞서 하는 준비운동이다. 당신이 수없이 누군가에게 말했던 이야기들을 목록으로 만들어 보라. 그것으로 글쓰기의 많은 부분은 이미 이루어졌다. p134

작가들은 위대한 애인이다
글쓰기는 공동체의 산물이다. 일반인들의 믿음과 정반대로 작가는 절대 불을 지키기 위해 홀로 싸우고 있는 프로메테우스가 아니다. 그래서 글 쓰는 사람은 완전히 혼자만의 고유한 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식으로 말을 하면, 나는 솔직히 아주 화가 난다. p135

현상을 넘어 사물 속으로 파고들라

먹잇감을 응시하는 고양이처럼
제일 좋은 글은 당신의 안에 들어 있는 모든 것이 실린 글이다. 작품을 쓰다가 세상으로 나갈 때는 당신의 모든 것을 데리고 나가라. 아주 상식적인 생각에서부터 부처와 같은 마음까지. p144

자신을 믿어라
세상이란 언제나 흑백으로 갈라지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작가가 되고 싶다면 분명하고 확실하게 진술하는 것이 필요하다. “글쎄, 웃기는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나는 아마 그것이 푸른 말이었을 거라고 생각해” 이런 글은 곤란하다. “이것은 푸른 말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하라. 이런 글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마음을 믿고 자신의 사고 속에 똑바로 서있는 훈련을 해야 한다.

비록 우리 인생이 언제나 선명한 것은 아닐지라도. 명확하게 인생을 표현해 보는 것이 좋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다.” “이것이 순간의 나다.” 이렇게 쓸 수 있게 되기까지는 많은 훈련이 필요하지만, 당신은 훗날 그만한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p146

글쓰기는 안개에 싸여 있는 마음에 불을 지피는 행위다. 종이 위에 안개를 옮겨 놓지 말라. 설사 확실하지 않을 때라도 자신이 그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표현하라. 이런 훈련은, 문장을 훨씬 힘차고 생동감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p147

카페에서 글을 쓰는 일에 대하여
글을 쓸 작정으로 카페에 들어간다면 당신은 먼저 인간관계부터 만들어야 한다. p148

작업실에 대하여

성, 그 거창한 주제에 대하여

자신이 사는 마을을 순례하라
작가는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다. p161

쓰라, 그냥 쓰라, 그냥 쓰기만 하라
아무리 낯선 환경 속에서도, 완전히 다른 장소에서도, 글쓰기 훈련은 계속 되어야 한다. p164

진정 글을 쓰고자 갈망한다면, 결국 당신은 환경이 문제가 되지 않는 길을 찾아내게 될 것이다. p165

충분하다고 느낄 때 한 번 더
글쓰기에서 자신이 해야 할 말을 다 했다고 생각될 때, 조금만 더 자신을 밀고 나가보라. 당신이 종점이라 생각하는 곳이 실은 초입에 들어선 것에 불과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항상 끝까지 도달했다고 생각하고 멈추었던 곳에서 조금 더 멀리 나갔을 때, 당신은 제어할 수 없는 아주 강한 감정과 만나게 될 것이다. p166

당신이 글을 밀고 나가 그저 적당한 종점에서 끝맺으려고 한다면, 그 글에는 당신의 진정한 숨결이 배어날 수 없다. 글쓰기는 자유를 향해 헤엄칠 수 있는 위대한 기회다. 그 기회를 놓치지 말라.

심지어 당신이 자신을 충분히 밀고 나갔고 철저하게 자아가 깨졌다고 느낄 때조차도, 조금만 더 앞으로 밀고 나가라. 중간에서 멈추지 말라. 이 순간은 다시는 같은 방식으로 돌아보지 않는다. 그러니 나중으로 미룬다면, 지금 작품을 끝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것은 순전히 내 경험에서 우러나온 충고다. 당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언제나 더 멀리, 계속 나가야 한다. p167

삶을 사랑하라
나는 외로움이라는 들판 속을 헤매며 그것을 즐기는 법을 배울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p171

‘인간은 고통을 안고 산다.’라는 사실에서부터 글쓰기를 시작하라. 결국에는 너무나 보잘 것 없고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는 우리들의 인생에 대해 연민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연민의 감정은, 우리로 하여금 발아래 깔린 혹독한 폭풍에 짓이겨진 마른 풀들마저도 다정스레 바라보게 한다. 예전에는 추하게 생각했던 주변의 사물들을 이제는 손으로 만지게 되고, 사물의 세부를 있는 그대로 보아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된다. 그 사물이 여기 있다는 사실, 우리 인생을 싸고 있는 일부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된다. 그리고 이런 인생을 사랑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인생이고, 지금 이 순간의 인생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p172

의심이라는 생쥐에게 갉아 먹히지 말라
우리에게는 그저 계속 가야만 한다는 진실이 있을 뿐이다. 작가가 되고 싶다면, 쓰라! 설령 그 글이 출판되지 않더라도 또 다른 글을 계속해서 쓰라. 훈련은 당신의 글을 점점 훌륭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의심과 의혹은 고문이다. 우리가 무언가에 전적으로 매달려 심혈을 기울였다면, 그 일은 그것을 그만두어야 할 때가 언제 인지도 우리에게 분명하게 알려 준다. 의심은 굽히지 않는 불굴의 정신을 끊임없이 시험하는 것이다. p174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천국이다
“나는 인간이다. 아침이면 일어난다. 그리고 나는 고속도로 위를 달린다.” 고어 비칼 Gore Vidal은 아주 멋진 말을 남겼다. “모든 작가와 독자들은 글을 잘 쓰는 것이 그들 모두에게 최고의 여행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여러분은 글을 ‘잘 ’쓰는 것에 대해서도 염려하지 말라. 그냥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천국이니까. p177

장대 위에서 발을 떼라
“백 미터 장대 위에서 발을 떼라.”

써니: “가지를 잡고 나무에 오르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나,
벼랑에 매달려 잡은 손마저 놓는다면 가히 대장부로다.” <백범일지> p48
나는 왜 이 구절이 이렇게 마음에 들지?

왜 글을 쓰는가
글을 쓰는 것이 내 진화의 발전의 시작이므로. p181
왜냐하면 나는 무언가 할 말이 있으니까.

하지만 ‘왜’ 라는 질문도 좋다. 마지막까지 남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글쓰기가 얼마나 다양한 모습으로 삶에 스며들고 있는지 볼 수 있는 눈을 키워 주기 때문이다.

한 가지 알아야 할 점은, 글쓰기가 인생을 치료하는 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글쓰기 자체가 치료술은 아니라는 점이다. p182

당신이 글을 쓰는 이유는 그저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p186

관통하는 글쓰기

작가로 살아남기
“우리의 목표는 매순간 모든 존재에 대해서 상식적으로 대하고 친절한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이 말은 종이에는 멋진 시를 적으면서 자기의 삶에는 침을 뱉지 말라는 뜻이다. 책상에서 시를 치우고 부엌으로 돌아가라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작가로서 살아남는 방법이다. p192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는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 마음속에 있는 가장 깊은 비밀이다. p193

자신이 쓴 글에서 떠나라
학교, 교회, 명상센터, 탁아소에서 주최하는 바자회나 사육제를 그냥 놓치지 말라. 그 행사에 공헌한 일이 없다는 생각은 버려라. 이런 장소에 당신은 즉흥적인 ‘글쓰기 창구’를 만들 수 있다. p194

일본에는 뛰어난 하이쿠를 적은 종이를 병에 담아 강이나 개울에 띠워 보내는 시인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이것은 작가란 모름지기 자기 작품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아주 의미심장한 우화다. p195

위대한 불교 지도자인 초감 트롱파 Chogyam Trungpa는 사업가가 되려면 우선 먼저 위대한 전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두려움을 떨쳐내야 하며, 한 순간에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즉흥 글쓰기 창구는 바로 이러한 위대한 전사가 될 수 있는 기회다. 글을 쓰는 동안 모든 것을 집중시켜야 하며, 그 다음에는 아무 미련 없이 자기가 쓴 글을 고객에게 넘겨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주 빠르게 글을 쓰게 되면 실제로 자기제어가 통하지 않게 된다. 내 경우는 처음에 쓰려고 했던 것보다 항상 더 많은 글을 쓰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대중을 절대 과소형가해서는 안 된다. 대중은 진실의 단면을 보고 싶어 한다. p196

즉흥 글쓰기 창구는 글을 떠나보내는 데 더없이 좋은 훈련이다. 자신이 쓴 글을 완전히 떠나보내는 것, 그럴 수 있을 때 당신은 작가로서 완전하게 설 수 있다. p198
써니: 나는 아직 한참 멀었다. 자신의 글의 부족함을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마구 쏟아내며 올리지를 않나, 내일을 생각하기보다 오늘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거나 고집하고 있으니, 더군다나 내 말이나 글에 갇혀 살아가고 있으니 얼마나 멀었는가. 이래도 계속해도 될까?

문학의 형식, 삶의 형식
우리는 한 편의 좋은 장을 얻기 위해 세 편의 장편을 쓰는 훈련을 거칠 수도 있다. 형식이란 이렇게 어려운 것이다. 문학의 형식도 배워야 하지만 우리는 또한 인생이라는 형식을 채워 나가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인생의 형식에도 훈련이 따른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p203

익숙한 초원을 떠나라
우리 삶에는 반드시 미쳐 버려야 할 시기, 사물을 바라보는 일상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야 하는 시기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그렇게 견고하지도 않고, 구조적으로 완벽하지도 않으며, 영원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배워야 할 때가 있다는 뜻이다. 우리의 삶은 언젠가는 당도할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며, 이 죽음을 막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사실을 규정하는 경계를 확장시켜라. 잠시 동안이라도 그 경계선 끄트머리에서 살아보라. 우리는 스스로를 영원불멸한 존재인 것처럼 생각하며, 이런 환상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이 언제 죽을지 그 시간조차 알지 못한다.

숙명에 대한 깊은 고찰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더욱 생동하게 만들고, 현실에 충실하게 만들며,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않도록 만들어 준다. p207

스즈키 선사는 <선심초심 Zen Mind, Beginner's Mind>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중을 통제 조정하는 최상의 길은 그들에게 해로운 일을 하도록 조장하는 것이다. 그러면 대중은 스스로 통제력 안으로 들어올 것이다. 소와 양을 통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소와 양을 탁 트인 황야에 풀어 놓는 것이다.” 글쓰기에서도 커다란 들판이 필요하다. 너무 고비를 세게 잡아당기지 말라. 스스로에게 방황할 수 있는 큰 공간을 허용하라. 아무 이름도 없는 곳에서 철저하게 길을 헤맨 다음에라야 당신은 자기만의 방식을 찾아낼 수 있다. p208 ****방목하라.

규칙적인 연습은 창조력을 마비시킨다
다른 운동이 그렇듯, 글쓰기를 발전시키는 데는 연습만이 지름길이다. 하지만 글쓰기 훈련은 의무적으로 치러질 수 없다는 점이 여느 훈련과 다르다.

시간만 채우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시간 속에 엄청난 압력을 가해야 한다. 글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을 때는 목숨 전체를 기꺼이 그 글 속에 집어넣어야 한다. p209

마음은 다른 곳에 두고 단지 규칙에 맞추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쏟는 것처럼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는 없다. 만약 당신의 기본자세가 이렇다면 당장 글쓰기를 중단하라. 일주일에서 멀게는 1년이 되어도 좋으니 글쓰기에서 떨어져 있으라.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갈증을 느껴, 말하지 않으면 병이 날 것 같을 때까지 기다려라. 그런 다음 글쓰기로 돌아가라. p210

규칙에 얽매이면 글쓰기에 필요한 ‘진짜 현실’이라는 반석을 얻지 못한다. 그냥 옥수수밭으로 들어가라. 심장 전체로 글을 쓰라. “난 매일 글을 쓰겠어.” 따위의 규칙으로 자신을 마비시키는 짓은 하지 말라.

글쓰기 속으로 깊이 들어가지 못하면 결국에는 글 쓰는 작업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시간이 흘러 다시 규칙을 지키는 ‘착실한’ 사람으로 돌아가겠지만,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진실은 말하지 않게 된다. 글쓰기 훈련에 자신을 충실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몰입하는 사람만이 자기 인생에도 몰입할 수 있다. p214

인생이 무엇인지 그리고 글을 쓰는 인생이 어떤 것인지 배우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큰 도전이다. 그 도전을 받아들이라. p215

더 이상 갈 곳이 없을 때
“매일 매일이 좋은 날이다.” p218

중요한 것은 수많은 전술의 변화와 상관없이 무슨 일이 있어도 글쓰기와의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었다. p218

이렇듯, 작가가 되려면 아주 깊은 믿음이 따라야 한다.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가장 깊은 진실이다. 그리고 만약 작가가 아니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작가가 되는 것, 이것이 내가 이 세상에서 나머지 인생 동안 가야 할 길이다. 나는 이 사실을 다시 또 다시 기억할 것이다. p219

음식에 대해 써보라
써니: 이 장을 펼치자마자 꿈 벗, 박 노진님이 팍 떠오른다. 얼마나 무서운 각인이냐. 얼마나 아름다운 각인인가 말이다.

글쓰기를 하다가 막히거나 글이 지나치게 추상적으로 되어갈 때, 음식을 주제로 글을 써보라. 언제라도 떠올릴 수 있는 일상적인 소재 가운데 음식만한 것도 없다. p220

다이안 디프리마 Diane Diprima의 시집 <저녁과 악몽 Dinners and Nightmares>은 음식에 대한 글쓰기를 음미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예다. 이 시집의 절반은 시인이 그 동안 먹었던 음식과 직접 준비했던 정찬 모임, 그 정찬에 초대한 손님들의 이름 그리고 그 음식을 만들기 위해 장을 본 목록으로 채워져 있다. p221

외로움을 이용하라
예술은 의사소통이다. 고독의 씁쓸한 맛을 본 사람은, 거기에서 혼자 외롭게 지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동지애와 연민을 배우게 된다. 그런 다음에는 비슷한 처지의 다른 누군가를 생각하고 그에게 당신의 인생을 알려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작품을 끌고 나가게 된다. 당신의 글이 또 다른 외로운 영혼에게 닿을 수 있도록 손을 뻗으라. “이것은 지난 8월 네브라스카 주를 횡단할 때, 초저녁 푸른 자동차 속에 혼자 앉아 있는 내 기분을 쓴 글이야”라고 말해 주라. 고독을 이용하라. 고독이 아픔은 당신에게 세상과 소통하고 싶다는 강한 욕망을 만들어 줄 것이다. 고독의 아픔을 받아들이고 그 고독을, 당신의 더 깊은 곳을 탐사하는 내시경으로 이용하라. p225 ***** 마음 탐사 내시경

스스로에게 넌덜머리가 났을 때
자기 자신과 자신의 목소리 그리고 쓰고 있는 작품에 넌덜머리가 날 정도로 지쳐버리는 시기도 찾아오게 마련이다. 이런 때는 아무리 둘러보아도 길이 보이지 않는다. 환경을 바꾸어 보겠다고 카페로 달려가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무언가 다른 방법-머리를 녹색으로 물들이고, 손톱에 자줏빛 매니큐어를 칠하고, 코걸이를 하고, 남자 옷을 입고 이상한 파마를 해야 하는 때다. 하나의 작은 자극이 때로는 위축된 창조력을 되살려 줄 때도 있다. p226

친구에게 검은 색 가죽 재킷을 빌려 입고 오토바이 폭주족처럼 커피숍 내부를 왔다갔다하며 글을 써보라. 새빨간 베레모를 쓰거나, 집에서 신는 실내화에 나이트가운을입고, 일터에서 신는 긴 부츠를 신고, 농부들이나 입을 법한 목이 올라오는 스웨터를 입고 성조기로 몸을 칭칭 감싸거나 아니면 머리에 플라스틱 컬을 감은 채로 돌아다녀 보라. 평상시에는 상상도 하지 않았던 모습으로 앉아서 글을 쓰는 것이다. 아니면 아주 커다란 도화지에 글을 써 보는 것도 좋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통 흰 옷을 입거나 목에 청진기를 걸고서 글을 써보라.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만 된다면 얼마든지 파격적인 변신을 해도 좋다. p227

자신의 뿌리를 이해하라
“자신의 근원으로 돌아가야만 해.”

만약 당신이 완전한 작품을 쓰고 싶다면, 당신이 처음 있었던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또 자신의 더 깊은 곳을 들여다보기 위해서 돌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근원을 명예롭게 여기고 그것을 껴안기 위해서, 아니면 적어도 인정하기 위해서라도. p228

“당연합니다. 당신이 내면 깊이 들어갈수록 당신은 점점 더 당신 자신이 되기 때문입니다.”p229

가족의 말투와 독특한 표현을 목적으로 작성해 두면 좋은 글쓰기 자료가 된다.
하지만 그저 머물기 위해서라면 집으로 가지 말라. 당신이 집에 가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더 큰 자유를 얻기 위해서다. 자신이 누구인지 확인하고, 그것을 더 이상 회피하지 않기 위해서 가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무언가 회피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당장 글에 드러나게 될 것이다. p231

“당신이 무슨 일을 하든지, 제발 종교적 색채를 띠는 작가는 되지 마십시오.”여러분도 지역주의라는 편협한 덫에 걸리지 말아야 한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종교를 다루는 것은 좋지만 그저 다루는데서 멈추지 말라. 세상의 모습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더 많이 볼 수 있는 기회로 만들라.

단 한 사람과 접촉하고 교제하면서도 인류 전체에 대한 연민을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p232

당신 가족과 친척들 속으로 조용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뚫고 들어가기 위해서 그리고 거기에서부터 모든 사람들이 인생과 투쟁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 고향으로 돌아가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든 작가들은 독자들로부터 이해받기를 바란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만든 작품을 세상에 내놓는다. 그러니 당신의 글을 읽을 독자에게 당신 심장의 더 깊은 곳으로 들어오는 기회를 만들어 주라. p233

이야기모임 만들기
글을 시작할 때는 이야기를 할 때처럼 꾸밈이 없어야 한다. 글을 시작하는 데 애를 먹은 경험이 있다면 대화하듯 써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p237

벌거벗은 자만이 진실을 쓸 수 있다
다른 사람 작품에 평을 하지 않는 이 방식은 글로써 모든 것을 표현하겠다는 건강한 욕구를 만들어 준다. 말하고 싶은 에너지를 다음 번 글쓰기에 쏟아 붓는 것이다. 쉬지 않고, 쓰고 읽고 쓰고 읽는 것을 반복하는 이 방법은 내부의 검열관을 잘라 내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 또 마음속에 들어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글로 나타내게 만드는 엄청난 자유를 허용해준다.
우리는 또 종이에 하 가지씩 주제를 적은 다음 그것을 반으로 접어 교실 한가운데에 있는 상자 속에 집어넣기도 한다. 매회 글쓰기는 훈련이 시작될 때마다 한 사람이 종이쪽지를 꺼내 주제를 읽는다. 반드시 그 주제에 맞추어 써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주제에서 시작하고 그 주제에 매달리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p240

자신을 벌거벗기고 해체시키는 기분. 하지만 이것도 괜찮으니 받아들이라. 벌거벗은 자만이 어느 것에도 왜곡되지 않는 진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므로. p243

누구에게나 천재의 목소리가 들어있다
자신이 좋은 글을 썼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 나는 학대를 받거나 짓밟힌 사람을 볼 때보다도 더 심한 안타까움을 느낀다. p244

누구에게나 정직한 고결함과 세심함으로 자신의 인생을 표현해 내는, 천재의 목소리가 들어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위대한 능력과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각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고, 바로 그 때문에 자신의 글이 우수하다는 걸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p245

“우리 모두가 부처입니다. 나는 당신이 부처라는 것을 압니다. 당신은 내 말이 믿어지지 않겠죠. 당신이 자신이 부처임을 자각할 때, 당신은 깨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깨달음입니다.”

자신의 인생이 무엇인지 알고 그 가치를 올바로 이해하기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바깥에서 보여 지는 모습으로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 훨씬 쉽다. 하지만 우리가 자신이 좋은 글을 썼음을 인정하게 될 때, 우리는 우리 속에 들어 있는 진정한 재능과 그것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 사이를 가로막던 장애물을 치워버릴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우리가 하는 이 작업이 아름답고 창의적인 인간의 작업이라는 사실을 끌어안아야만 한다. p247

우리 안에는 누구나 뭔가 천재적인 것이 들어 있으며 그것을 바깥으로 발산시켜야만 한다는 뜻이다. 내면에 있는 풍요로움을 외부에 있는 작품으로 연결시키는 것. 이것이 예술가들이 바라마지 않으면서도 다가서기 힘든, 고요한 평화와 확신감을 얻는 열쇠다.

“나는 좋은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는 좋은 글을 막는 벽을 뚫고 나가 그 글이 바로 나 자신임을 주장할 능력이 있다”라고 말하라. 이것이 우리가 맨 먼저 떼어 놓아야 할 첫 걸음이다. 이것이 우리가 채워 나가야 할 내용이다. 우리는 좋은 사람이고 더불어 우리의 작품도 훌륭할 때, 그것이 좋은 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히 알고 그것과 함께 서 있어야 한다. p248

작품을 평가하는 스스로의 잣대를 가져라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경청해야 한다. 그들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라. 그런 다음에 결정을 내려라. 이때 나오는 것이야말로 당신의 참다운 작품이고 목소리다. 여기에는 불변하는 규칙 같은 것은 없다. 작품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당신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가? 자신의 어떤 점을 드러내고 싶은가? p250

작품 속에서 발가벗는다는 것은 자신을 조절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좋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통제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당신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된다. 때로는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이해하기도 전에 자신을 노출 할 때도 있다. 그러면 마음이 아주 힘들어진다. 하지만 더 고통스러운 일은 얼어붙어서 아무 것도 노출하지 못하는 것이다. 얼어붙으면 나쁜 글밖에 나오지 않는다.

작품을 평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간을 두고 읽어 보는 것이다. 만약 확신이 생기지 않는다면 잠시 미루어 두라. 그리고 6개월 후 다시 작품을 읽어보라. 무언가 더 분명하게 보일 것이다. 어쩌면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지만 당신의 눈에는 정말 마음에 드는 시가 보일지도 모른다.

당신이 쓴 좋은 부분은 이미 당신을 위한 퇴비가 되기 위해 발효되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무언가 좋은 것이 되어 밖으로 나올 것이다. 인내심을 가져라. p251

사무라이가 되어 써라
“불필요한 부분을 잘라내라는 뜻입니다!” P253
써니: 집착이 많아 그런지 살이 너무 많다. 배고픔일지도 모르겠다.

시는 생명력의 그릇이다. 한 줄 한 줄이 반드시 살아 있어야 한다.

솔직할 수 있는 용기도 가져야 한다.

글쓰기를 하다보면 안개에 싸여 있는 마음을 뚫고 무언가 선명한 것이 표면으로 올라올 때가 있다.

완전히 태워버리는 것, 첫 생각에서부터 시작된 것만이 모든 사람을 깨우고 모든 사람에게 힘을 줄 수 있다. *****

써니: 너무 중요한 말이다. 이런 글은 쓰기도 읽기도 쉬우며 메시지 전달 능력 또한 명확하다.

무언가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된 것이다. 만약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죽은 말에 채찍질하는 짓은 멈추라. p255

고쳐 쓰기
만약 글을 쓸 때 당신이 진정으로 글 속에 있었다면, 글로써 나타나게 마련이다. 이제는 허영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우리가 썼던 언어들을 더 그럴싸한 다른 언어로 고치거나 조작할 필요가 없다. 글쓰기를 벌거벗는 것이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다시 읽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을 얻게 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조금도 과장시키거나 공격하는 일 없이 그저 수용하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 “난 행복하지 않아.” 이런 글을 쓰지 않겠다는 다짐도 하지 말라. 그것이 그때의 감정이었다면 아무 판단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p259

원고 수정 작업은 ‘새롭게 다시 상상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쓴 글에 모호한 부분이 있다면, 먼저 전체 그림을 다시 본 다음 그것과 조화를 이루도록 세부 묘사를 첨가하면 된다. 이때도 10분, 20분식으로 시간을 정해 놓고 수정에 들어간다. 원래 작품에서 나온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이야기를 다시 써보자. p261

나는 죽고 싶지 않다
“난 죽고 싶지 않네.”

“스승님이 보여주신 위대한 노력이 고마울 뿐입니다.”
카타기리는 위대한 작품 앞에 서게 되면 평화로움을 느낀다는 말을 자주 한다. 미술가가 명화를 보면 자신도 명화를 그리고 싶다는 충동을 받는다. 예술가는 생명력을 발산하고, 영적인 사람은 평화를 발산한다. 하지만 카타기리는 이 영적인 사람들이 평화를 느끼게 되기까지는 지난한 삶의 노력과 그 순간을 움직이는 우연성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예술가들이 생명력 있는 작품을 얻기까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요한 평화와 접촉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접촉을 이루지 못할 경우 예술가는 파멸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작품에 매여 아무리 바쁘더라도, 우리는 평화의 장소에서부터 나온 것으로 불타는 생명력을 만들어내야만 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이야기 중간에 흥분해서 날뛰다가 이야기를 끝내지 못하거나 영원히 책상을 떠나는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p264
써니: 느슨하게 이끄는 것 같으면서 결국에는 가장 정제된 엑기스만을 추출해 내라는 지극히 어려운 말씀.
에필로그
“이 책을 완성하는 데 1년 6개월이 걸렸어요. 적어도 절반은 처음 썼을 때 나온 것들이죠. 가장 힘든 싸움은 글 쓰는 행위가 아니었어요. 내가 과연 괜찮은 것을 쓸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싸우는 게 제일 힘들었죠.”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성공이 행복이다’라는 등식에 너무도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성공을 해도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성공은 또 다른 고립감과 실망을 가져온다. 모든 성공이 다 마찬가지다. 그러니 자신이 느끼고 있는 것을 받아들이는 여유를 가지라. 이렇게 큰 감정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를 제한시키지 말라. p267

“만약 그쪽에서 당신 책을 출판하겠다고 하면 아주 잘된 일이지만, 그것에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당신에게는 그냥 지나가는 일입니다. 계속해서 글을 쓰는 데만 정진하십시오.” p268

옮기고 나서
자유로운 글쓰기란 자신만의 솔직한 목소리를 찾아내는 길이며, 궁극적으로 인생의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써니: 이혼을 하면서 나무에 푯말 하나를 세워두었는데, 그때에 내가 적은 말이 “경험을 두려워 말고 자유와 진실을 향해 나아가라”였는데 글쓰기도 이와 같다니 새삼 감회가 새로워진다. 온 우주는 유기체적 맥락으로 하나의 찰라적 접점을 이루며 끊임없이 만나고 헤어지고 흩어지고 모이기에 살아있는 한 거듭 깨어있어야만 하는 것이던가.

이 책은 글 쓰는 사람들에 대한 나의 존경심을 더욱 높여주었다. 글을 쓴다는 것이, 자유와 진실을 추구하고 세상과 자신에 대한 진정한 연민을 키워가는 끊임없는 훈련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작가가 아니더라도 글을 쓸 수 있다는 점 또한 좋았다.
‘그들의 이름을 불러 주라.’ p270
써니: 작가가 아니어도 글을 쓰는 한에는 작가 이상의 치열함을 견뎌야 하고 그에 가까이 가지 않는 한 글이 될 수 없다는 말에 목이 탄다.



3. 내가 저자라면


하나, 아직도 ‘작가’라는 말의 어색함

이 책은 글을 쓰기 위한 내용으로 글쓰기의 다양한 방법론을 제시하였다. 성경처럼 읽히며 세계적으로 100만 부나 팔려나간 책이기도 하다. 저자 나탈리 골드버그는 작가가 되려면 무엇이든 써야 하고 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무엇보다 강조한다. 하여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라는 말은 설령 무덤에 가서라도 글쓰기를 멈추지 말 것을 강력하게 당부하는 것으로 들린다.

처음에 이 책의 내용은 싱거운 듯했다. 그러나 찬찬히 곱씹을 수록 그 의미가 새록새록 감칠맛나게 느껴진다. 쉽게 쓰인 것은 최대의 장점이고 더군다나 간결하게 함축하여 심오한 뜻을 내품은 것은 이 책이 많이 읽힌 원인이 바로 이것이로구나 하는 깨달음을 선사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 책의 추천인 쥬디스 게스트는 이 책이 인생까지 구원해 줄지 모른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대단한 칭찬과 신뢰감이 아닐 수 없다.

감히 내가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 것, 여러 불협화음의 정황 속에서도 지속시켜나가고자 하는 유일한 이유가 있다면, 내가 애타고 목말라 해왔듯이 내 글의 단 한 줄, 단 한 글자만으로 라도 나와 같은 어떤 이에게 순결한 진솔함과 생명의 불씨를 전달할 수 있다면, 내가 살아온 이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을 텐데 하는 욕심과 가당찮은 바람에서 일 것이다. 이렇듯 이 책은 누구나가 갖는 보편적인 감정을 일반적인 논리로서 편안하게 서술해 나가면서도 아주 강력한 메시지를 담아 누구나에게 무찔러 나간 점이 훌륭한 특색이라고 여겨진다.

나의 경우도 돌아보니 연구원 과정의 글쓰기를 하면서 스스로 찾게 된 의미 부여 역시 그러한 맥락의 것이 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일생을 수행하고도 고결한 진솔함으로 자신의 심정을 그대로 내보이며 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난 죽고 싶지 않네”라고 말했다는 스즈키 선사의 유언은 얼마나 의미 있는 대목이던가. “살고 싶다”고 당신들과 헤어져 살고 싶지 않다고, 이승의 시간들을 결코 헛되게 생각할 수 없다는 듯한 스즈키 선사의 마지막 말은 혹시 역설이었을까 하는 순간적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도 충분했다.

왜냐하면 내게 습득된 지식은 그게 아니었기 때문이리라. 나는 내게서 반사운동처럼 신앙처럼 뛰쳐나오는 이 무수한 행동들 가운데 잘못 각인되어진 것들이 있다는 것, 그것도 많다는 것이 무척 안타깝다. 그것은 개인들의 가정 교육이나 받아들임의 잘못된 인식이라기 보다 우리 사회가 무분별하게 안고 있는 구조적 모순의 몫이 크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아울러 오래 애써 배워온 것들과 그 경계 선상에서 애매하게 놓인 것들에 대한 균형감을 잡아가는 것이 쉽지 않아 짜증스러울 때도 있다. 즉 스즈키 선사의 유언에서 내가 익힌 풍속과 교육의 허상을 발견하는 것은 깨달음에 대한 긍정보다는 허탈함 같은 이중의 묘한 아쉬움을 동반하기도 하는 것이다.

고지식한 나는 이제까지 나를 지탱해오던 사상이나 관념들과 현실의 불협화음 가운데서 많은 갈등을 일으키고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이 모순 속의 나만의 혁명을 어떻게 뚫고 나가야 할지가 나의 깨우침이 될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이 책 나탈리 골드버그의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는 그의 추천인의 주장처럼 이 책이 인생까지 구원해 줄지 모른다는 바람과 절실함에 대하여 동의하는 가운데, 내가 여기에서 한가지만이라도 내 것으로 터득해서 지침으로 삼을 수 있다면 큰 수학이겠다 싶다. 그리고 나 역시 비록 부실한 과거를 지녔지만, 아직 남은 나의 생을 가꾸고, 더불어 누군가를 일깨울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다면 이 시간을 거친 내게 큰 의미와 보람이 되겠다고 생각해 본다.

이 책에서 나탈리 골드버그는 자신의 선 명상과 글쓰기가 다르지 않음을 곳곳의 장에서 적절한 비유문과 예로서 설명하는 가운데, 더욱 설득력있는 모습을 발휘해가며 책을 심도있고 유연하게 완성하여 나갔다. 저마다 자신들만의 취향과 글쓰기로 살아있는 유기체적 감각을 통해 시시각각 경계를 허물고 넘나드는 가운데, 더 나은 혹은 또 다른 일깨움으로 확대되고 발전하며 하나의 깨달음으로 통합되어 나갈 수 있음을 설파한 점 또한 유연한 설득력으로 다가온다.

두울, 글쓰기는 모든 사물에 이름을 붙여주는 것과 같이 절연되지 않는 영감

"예술가는 생명력을 발산하고, 영적인 사람은 평화를 발산한다. 하지만 카타기리는 이 영적인 사람들이 평화를 느끼게 되기까지는 지난한 삶의 노력과 그 순간을 움직이는 우연성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예술가들이 생명력 있는 작품을 얻기까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요한 평화와 접촉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p264

또한 이 대목에 이르러 특히 사부님께서 강조하시는 절연되지 않는 영감에 대해 생각해 봄과 아울러 글쓰기가 일상의 많은 부분과 연결되어져 있음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사실 사부님의 말씀은 책 어디에도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책 마다마다에서 골목대장처럼 지키고 서서 생각나게 해주었다. 하여 1년 동안 오프라인 수업에서 채 10번 남짓 만나는 수업가운데에서도 한주일 내내 하루 종일 우리와 달싹 들러붙어 계셨던 것처첨 느껴지기도 한다.

하루는 공자로 하루는 여인 강영희로 하루는 프랑스계 미국인 클로테르 라파이유로 시시각각 상황과 저마다의 입장에 맞게 둔갑하며 여기 까꿍 저기 찰싹 도깨비 방망이를 휘두르듯 하시면서 우리들의 몸속으로 뼛속으로 아마도 핏속까지 침투해 들어오고 계시는 듯하다. “지금 너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거든, 지금 네가 무엇을 해야 한다고 느낀다면 지체하지 말고 변화하라. 네 안에 잠자고 있는 더 나은 꿈을 깨워 반란을 일으키고 당당하고 늠름한 혁명군이 되어 부조리와 갈등을 진압하여 나가라. 하여 너의 삶을 즐거운 일상으로 만들어 나가라” 고 끊임없이 거듭 설파하시는 듯하니까 말이다.

“그대들의 활기찬 생명력과 탄탄한 근육질이 흐믈흐믈 미적거리다 윤기와 탄력을 잃어버리고 주저앉지 않도록 들쑤시고 외쳐라. 살아있음을 증명하라. 살아있으면서 주검처럼 식물인간이 되어 더는 살지 마라라. 더군다나 새로운 해, 새해 아침의 찬란한 해와 새로움으로 무언가를 시도하고 싶은 이때에, 몸을 움직이고 마음을 일깨워 시도 하라.” 보채는 어린아이처럼 간절하게 연신 메시지를 보내시는 것 같다.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졸작을 쓸 권리가 있다”라고만 하자. 그저 많은 글을 쓰겠다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라. p33

한 인간의 존재 증명이다. p43

쓰기와 인생 그리고 정신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p71

우리의 삶은 지극히 평범한 동시에 신화적이다. p86

세부 묘사야말로 글쓰기의 기본 요소이자 단위다. p90

작가는 인생을 두 배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p91

꿈은 우리가 삶 속으로 관통해 들어가게 만드는 하나의 방법이다. p112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다. p161

자유를 향해 헤엄칠 수 있는 위대한 기회다.
당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언제나 더 멀리, 계속 나가야 한다. p167

“백 미터 장대 위에서 발을 떼라.”p178

사실을 규정하는 경계를 확장시켜라. 잠시 동안이라도 그 경계선 끄트머리에서 살아보라.
생동하게 만들고, 현실에 충실하게 만들며,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않도록 만들어 준다. p207

목숨 전체를 기꺼이 그 글 속에 집어넣어야 한다. p209

인생이 무엇인지 그리고 글을 쓰는 인생이 어떤 것인지 배우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큰 도전이다. 그 도전을 받아들이라. p215

수많은 전술의 변화와 상관없이 무슨 일이 있어도 글쓰기와의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었다. p218

예술은 의사소통 p225

자신의 뿌리, 자신의 근원으로 돌아가라 p228

더 큰 자유를 얻기 위해서 p231

단 한 사람과 접촉하고 교제하면서도 인류 전체에 대한 연민을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p232

누구에게나 정직한 고결함과 세심함으로 자신의 인생을 표현해 내는, 천재의 목소리가 들어있다. p245

시간을 두고 읽어 보는 것 p251

“불필요한 부분을 잘라내라는 뜻입니다!” p253

첫 생각에서부터 시작된 것만이 모든 사람을 깨우고 모든 사람에게 힘을 줄 수 있다. p255

지난한 삶의 노력과 그 순간을 움직이는 우연성이 뒷받침되어야 p264

절반은 처음 썼을 때 나온 것들 p267

세엣, 나탈리의 ‘첫 마음’과 초아식 ‘죽도록 사랑하는 변.경.연’

그리고 이 책은 그동안 초아선생님께서 내게 또한 변.경.연의 누구든, 모두에게 누누이 강조하셨던 말씀을 그대로 옮겨 적어놓은 느낌이기도 하다. 책장 마다마다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부분들이 조목조목 배어 있지 않던가. 단지 한 권의 주역서를 내신, 평생 그럴듯하게 표현해야 초야에 묻힌 초로의 역술인, 아니면 점을 보는 업을 가진 평범한 일상으로나 기억될지도 모를, 한 사람의 가장으로서의 보통의 삶, 그러나 자신에게는 한 생애를 바쳐 이룩한 비장함이 서린 인생의 경험과 결실이요 거룩한 신화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그 분의 삶을 통틀어 총체적인 언어로 들려주시던, 미처 다 이루지 못한 채 남아 꿈틀거리며 이무기처럼 설쳐대는 회한의 꿈들, 안타까운... 그립고 아쉬운 애틋한 절규가 아직도 너무나 생생히 남해바다처럼 출렁이는, 당신과 같은 누군가에게 목이 터져라 외치며 알려주고 싶었던, 간단치 않으며 경우에 따라서 험난할 수도 있는, 여기 모인 우리들의, 저마다의 굴레를 뒤집어쓰고 서성거리며 인생이라는 알 수 없는 정체와 꿈이라는 현실을 동반한 미지의 세계에 대해 애달아하는, 당신에게 오래 체험으로 각인되어온 것들을 정신없이 퍼부어대듯 쏟아내시던 말씀들이 다 숨어져있는 듯하다. 한마디로 ‘나탈리 골드버그는 미국의 초아대사였던 것이다’ 라고까지 말한다 해도 별 무리가 없을 성싶다. 하여 그녀가 전하고자 하는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라고 하는 의미를 초아식 버전과 나탈리 버전으로 서로 음미하여 곱씹어 보게 하기에 이른다.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믿는 법을 배운 다음 글을 쓰게 되면, 그것이 사업상의 서류이든 장편 소설이든 박사 논문이든 또는 여행기이든, 그 글에는 힘이 실리게 된다. p30

자신의 바깥에서는 어떤 배움의 길도 없다. p64

아주 쉬운 말로 단순하게 시작하고, 당신 속에 깃들여 있는 것을 그대로 표현하도록 애써라. p75

자신의 사고 속에 똑바로 서있는 훈련을 해야 한다. p146

작가란 모름지기 자기 작품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 p195

대중은 진실의 단면을 보고 싶어 한다. p196

글쓰기 훈련에 자신을 충실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몰입하는 사람만이 자기 인생에도 몰입할 수 있다. p214

종교적 색채를 띠는 작가는 되지 마십시오. p232

꾸밈이 없어야 p237

벌거벗은 자만이 어느 것에도 왜곡되지 않는 진실의 목소리를 p243

있는 그대로 p251

솔직할 수 있는 용기 p255

끝으로 이 책의 강조점 쓰고 또 쓰고 뼛속까지 내려가서 쓰기를 멈추지 않도록 쓰고는 가장 정제된 언어로 짧고 간결하게 관통하라는 “덜어내기의 법칙”은 나의 글쓰기에 또 한 번의 비수로만 꽂히고 말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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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07 05:19:47 *.70.72.121
3. 내가 저자라면에 붙이기

두울, 글쓰기는 모든 사물에 이름을 붙여주는 것과 같이 절연되지 않는 영감

"첫 생각은 참신함 그리고 영감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감이 오는 순간에 당신은 신과 하나가 될 수 있다." p27

"아주 오랫동안 한 가지 생각에 머물러 본 적이 있는가? 바로 그런 상태가 지속되다가 어느 한순간 생각이 비약적으로 튀어오를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섬광 같은 영감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영감의 근원은 만물의 근원과 맞닿아 있기에 자연히 그것들의 공통적인 법칙과 본질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p73

내가 읽고 쓰면서도 곧잘 빠트리고 헤매고는 한다. 윗글은 리뷰 마지막 부분의 3. 내가 저자라면의 두번 째란에 붙이려고 한 것인데 빼먹어서 각인 하기 위해 다시 아래에 붙여 본다.

오늘 아침 어느 구절 생각나는 부분이 있었는데 아직 못 찾으면서... ㅋ

그리고 이 책은 처음에는 글쓰기의 준비자세에서부터 뒷장으로 넘어 갈수록 자연스레 더 깊은 바다의 심연속으로 독자들을 물흐르듯 자연스레 몰고 갔다.

* 아울러 다시 한 번 내가 기억해야 할 부분
사무라이가 되어 써라 “불필요한 부분을 잘라내라는 뜻입니다!”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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