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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7일 05시 48분 등록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 [장 피에르 카르티에. 라셀 카르티에]-길잡이 늑대 옮김
출판사 - 조화로운 삶


피에르 라비
1939년 알제리 남부의 캐낫 오아시스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을 사막에서 보낸다. 대장장이의 아들로 궁핍한 생활이었지만 자족의 아름다움과 노동의 신성함을 배우고 느끼며 자란다. 그의 말대로 자연은 어머니의 품이었다.
[11] “ 그 곳은 나를 자신만의 풍요로운 세계로 데려다 준다. 황혼의 신이 술에 취한 듯 몽상과 게으름에 빠져 있는 그 오아시스로. 그 때 사물들은 끝없는 기다림 속에 매달려 정지한 듯하다. 사막의 광대함은 우리를 침묵에 빠뜨리고, 인간의 집들은 깊은 명상에 잠기게 한다. 그리고 그렇게 무르익은 분위기를 무에진의 기도소리가 조용히 흔들어 놓는다. 그러면 그곳에 영원의 향기가 존재한다. - 그의 저서 ‘석양에 바침’ 중
가난으로 인해 학업의 길이 닫힌 상황에서 프랑스인 교사 부부에게 입양된다. 알제리에서 교사생활을 하던 양부모와의 생활에서 자기 정체성을 잃고 안간힘을 쓰고 있던 중 알제리 전쟁이 발발하고 양부모와 헤어져 파리로 향한다. 파리에서의 단순기능공으로 일하며 궁핍한 생활을 한다. 나아가 산업사회의 착취와 모순에 염증을 느끼고 조화로운 삶을 꾸리던 고향의 농부들을 생각하며 20살 나이에 아내 미셀과 함께 남프랑스의 농촌마을 아르데슈에 정착한다.

농촌의 현실은 생각보다는 훨씬 암울했다. 어느새 "도시화와 산업화의 방식이 시골에까지 침투"해 있었던 것. 그는 3년간의 농경 끝에 독한 화학비료로 땅을 오염시키고 기계로 마구 파헤치는 '생산성 증대' 위주의 농사 방식을 영구히 추방해야할 필요성을 깨닫는다. 거기에는 "자연은 우리의 어머니이고, 우리에겐 그것을 오염시킬 권리가 없다. 동물들은 결코 잘려진 몇 킬로그램의 고깃덩어리가 아니다"라는 신념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생명농업의 길을 실천한다. 직접 퇴비를 만들고 손으로 농기구를 만들며 자연과 조화로운 삶을 살아간다. 신이 결코 우리에게 넘치게 준 것이 없음을 지적하며 지족하는 삶의 중요성을 알리며 책, 강연 등을 통하여 피에르의 삶의 방식과 우리의 터전인 대지를 살리는 방법을 알린다.
이 후 40년 넘게 프랑스는 물론 아프리카 유럽 등 여러 나라를 오가며 자신이 직접 체험해서 얻은 자연농법을 세계에 알리고, 사라져 가는 재래종 씨앗을 보존해야 하는 중요성을 알리고 있다. 또한 농부들을 교육해 위기에 처한 농촌을 구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장 피에르 카르티에 &' 라셀 카르티에
프랑스 중부 지방에서 태어난 장 피에르 카르티에는 25년간 잡지 <파리마치>의 기자로 일하며, 주로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개인의 특이한 체험이나 사회적 관심거리를 기록했다. 지금은 도시를 떠나 강변 마을에 정착한 그는, 부인 라셀과 함께 위대한 인물을 찾아가 기록하고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은 이 책을 통해 축적된 현대 문명의 부 앞에서 그런 풍요가 끝없이 계속될 것이라고 믿으며 스스로를 안심시키고 있는 현대인의 착오를 꼬집고, 거대한 우주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생명 현상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하는 피에르 라비의 일생과 노력들에 대해 상세히 기록해 놓았다. 그리고 이상으로만 그치지 않도록 끊임없이 행동한 그의 낙천적인 열정에 존경을 표한다. 두 사람이 함께 쓴 책으로 <빛의 여인들> <오늘날의 예언> <대지의 수호자> <우주의 아이들> <틱낫한: 풍부한 의식의 행복> <라마크리슈나: 우리 시대의 스승>이 있다.

2. 내 가슴에 들어온 글귀

[11] “ 그 곳은 나를 자신만의 풍요로운 세계로 데려다 준다. 황혼의 신이 술에 취한 듯 몽상과 게으름에 빠져 있는 그 오아시스로. 그 때 사물들은 끝없는 기다림 속에 매달려 정지한 듯하다. 사막의 광대함은 우리를 침묵에 빠뜨리고, 인간의 집들은 깊은 명상에 잠기게 한다. 그리고 그렇게 무르익은 분위기를 무에진의 기도소리가 조용히 흔들어 놓는다. 그러면 그곳에 영원의 향기가 존재한다.

[18] 어린 시절에 보았던 아름다운 풍경은
어디로 간 걸까.
새가 가득 내려앉던 숲은
저녁의 고요함은
우리는 계절의 아름다운 변화를 그리워하는
최후의 낭만주의자들일까.
어린 시절 냇가에서 꺾던 꽃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것들은 이제 그림에서밖에 찾아볼 수 없는 것일까.
기억해 두자. 지구의 얼굴은 우리의 얼굴과 같은 것.
우리는 이 소행성의 여행자에 불과하며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음을.
이반 라코미크 크로아터

[29] 아름다운 조개는
바닷가에 있고,
파도의 거품이 조개 속
진주를 반이게 했다.
나는 그 바다의 보물을
집으로 가지고 왔다.
그러나 그것은 초라하고
보기 싫은 하찮은 물건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태양과 모래와
파도 소리와 함께
바닷가에 그것의
아름다움을 두고 왔기에.
랄프 왈도 에머슨

[40] 종교적인 의식과 교리, 체제들에 대해 나는 더 이상 관심이 없습니다. 나는 현대인들이 영성에 대해 너무도 많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말하는 것들에 확신이 없다는 것을, 또한 우리가 우리를 안심시킬 무언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잘 설명해 줍니다. 만일 확신이 있다면, 우리는 그렇게 많은 말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 있으며, 그것이 전부입니다.

[41] 나는 많은 책들을 읽었지만 생각의 함정까지 파고 들어가는 앎을 가진 사람을 그때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나는 크리슈나무르티의 내면을, 그가 살아가는 방식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구루가 되지도 않았고, 인도 전통의 오렌지색 승복을 입지도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옷을 입었습니다. 내게 그는 소크라테스처럼 산파술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지적 사고를 자극하는 문답법 말입니다. 그는 이론가가 아니었으며, 우리에게 완성된 답을 주지도, 준비된 사상을 내주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시간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했습니다. 시간은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 자신을 과거나 미래 속으로 대던집니다. 거기에서 고통이 오며, 그 고통은 우리가 현재 속에 살 때에만 사라집니다. 왜냐하면 현재는 영원한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하루의 수고는 그날로 족하다.’고 말했으며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크리슈나무르티는 그것에 대해 깊이 추구했습니다.

[42] 크리슈나무르티 덕택에 나는 과거로부터 해방되어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나는 내가 겪었던 모든 고통과 행복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었습니다. 고통과 기쁨은 더 이상 나눠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나의 재산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일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 안에 이원론은 더 이상 없었습니다.

[42] 인간 존재의 문제는 그가 그 문제를 느끼지 못한다 하더라고 일체성을 되찾을 때 해결되며, 그것을 위해서는 과거와 아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문제는 계속 되풀이됩니다.

[43] 세계화의 가장 나쁜 점은 교환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화의 단점은 행성 전체를 마음대로 주무르는 힘이 그 안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빠른 정보 전달은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낳고, 젊었을 때는 그런 이데올로기에 저항하기가 힘듭니다.

[44] 자신이 깨인 의식을 가진 사람들 속에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육체를 가진 인간으로 남아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육체를 가진 인간으로 남아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만트라 주문을 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론 충분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행동 속으로 뛰어들어야 합니다.

[45] 아들아, 이 세상에 영원한 건
대지밖에 없단다.
사람이 사는 게 무엇인지
간절한 소원이 왜 안이루어지는지
아직 잘 모르던 내가
우울한 마음으로 말을 걸 때면
대지는 언제나 다정하게 대답해 주었지.
겨울 다음에 봄이 오고
죽음 다음에 생명이 온다는 걸
내가 잊어버릴 때마다
대지는 우뚝 일어서
환히 웃으며 일러 주었지.
아들아, 이 세상에 영원한 건 대지밖에 없단다.
낸시 우드

[49] “깨인 의식을 갖는다는 것은 어찌보면 불가능했습니다. 농사일이 이런 것이라면 나는 차라리 농사를 짓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51] 자연은 우리의 어머니이고, 우리에겐 그것을 오염시킬 권리가 없다. 동물들은 살아 있는 존재이며, 존중받고 사랑받을 권리가 있다. 그들은 결코 잘려진 몇 킬로그램의 고깃덩어리가 아니다. 이제 그는 그것을 깨달았고, 비로소 자신의 길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55] “우리가 처한 상황을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다스리고, 가능한 한 모든 일을 우리 손으로 해결하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어울렸습니다. 미셸과 나는 고되게 일만 하며 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는 다른 일들을 할 시간, 아이들을 키우고 음악을 연주하는 등의 여가를 갖고 싶어 했습니다. 진정으로 살아 있는 시간 말입니다.

[56] 수익성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그것이 낫습니다. 하지만 수익성이 삶의 전부는 아닙니다. 우리처럼 흙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단지 생산을 위해서만 일을 하지 않습니다. 흙에서 일한다는 것은 삶의 기술을 가꾸는 것이고, 우리 자신이 밭과 자연, 그리고 계절에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는 것입니다. 나는 먹을 것들로 가득한 우리 집을 봅니다. 채소와 과일들이 식탁 위에 오르면 나는 그것들을 내 노력으로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생각은 나에게 매우 감동적입니다. 그것은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또한 우리에게 주어진 그 작은 공간 안에서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아름다운 자연을 보호하고, 그 장소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60] 첫째로 의식 혁명이다. 우리는 지구를 대하는 이전의 모든 사고방식을 바꿔야 한다. 지구를 수익성이라는 단 한 가지 관점으로 보는 것을 중단하고, 기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대지는 그 두께가 몇 센티미터밖에 되지 않지만 행성 위 모든 곳에서 지구 전체에 양분을 제공하며, 무궁무진한 생식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 조상들이 너무도 잘 알고 행했던 것처럼 대지를 사랑으로 보살피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이 바로 탐욕에 눈이 어두워 우리가 잊어 가는 것들이다.
둘째로, 영적 혁명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여러 원주민들이 특히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다른 많은 부족처럼 그들에게 어머니 대지는 신성한 것이었다. 우리는 이 대지에 가장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대지에 속해 있다. 지금 우리가 착각하고 있듯이 대지가 우리에게 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대지에 속해 있는 것이다. 인류는 우리가 우주와, 우주 전체와 하나라는 것을 배워야 한다. 어느 날 우리가 던진 질문에 한 아메리카 인디언 노인이 이렇게 대댑했다.
“어머니 대지는 우리를 사랑합니다. 대지는 우리를 먹이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제공해 줍니다. 대지는 우리를 사랑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괴롭히고, 거칠게 대하며, 오염시킵니다. 대지는 참을성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그렇게 대지는 참고 견딥니다. 하지만 만일 우리가 계속해서 자신을 더럽히고 오염시키면, 어느 날, 아마도 멀지 않은 시간에, 지구는 진저리가 나 개가 벼룩들을 털어 내듯이 몸을 흔들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 벼룩들은 바로 우리 인간들이 될 것입니다.”
피에르 라비는 이 세상의 종말을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생각에 깊이 동의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셋째로, 기술의 혁명이다. 우리가 이 책에서 보게 될 것처럼, 언제나 더 많은 양을 생산하기 위해 땅을 오염시키고 동시에 인류를 오염시키는 방법 말고, 조화로움 속에서 땅을 경작할 다른 방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상향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하자. 하지만 이상향을 향해 걷고 있다는 것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63] 풀잎 하나가 병들의 운행에 못지않다고
개미 역시 똑같이 완전하고
모래알 하나, 굴뚝새의 알 하나도
그러하다고
나는 믿는다.
내 손의 가장 작은 관절이라도
그것을 능가할 만한 기계는 세상에 없다.
고개를 숙인 채 풀을 뜯는 소는
어떤 조각품보다도 훌륭하다
그리고 한 마리 생쥐는
몇 억의 무신론자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기적이다.
월트 휘트먼

[67] "지구는 외따로 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지구는 스스로 진동하며, 동시에 다른 행성과 별들, 그리고 성좌들이 진동을 일으키는 욕조 안에 잠겨 있습니다. 바로 그 전체 지동 체계가 우주에 규칙을 부여합니다.“

[69] “대지에 대해 말하는 것은 악몽을 꾸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자랑스러워 마지 않는 드넓은 곡창 지대에서 비료 사용을 한번 멈추어 보십시오. 농부들은 당장 망하고 말 것입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인공적인 활성화에 대해 말합니다. 하지만 대지는 그 스스로 활발히 움직입니다. 대지는 끊임없이 움직이며 살아있습니다. 농지 거죽에 있는 흙을 분석해 보면 그것이 죽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 안에서 더 이상 흙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흙이 없는 지표면에는 어떤 생명의 흔적도 없습니다.
흙은 지표면 아래에만 존재합니다. 이런 조건에서 생산된 과일과 채소들이 예전의 향과 맛을 더 이상 내지 않는다는 것은 그렇게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과일과 채소들은 여전히 같은 모양을 하고 있지만, 그 안에 생명은 더 이상 없습니다. 밭에서 손수 기른 잘 자란 강낭콩이나 토마토를 슈퍼마켓에서 산 것들과 비교해 보십시오. 그 차이는 정말 볼만합니다. 나는 이런 현상을 자주 목격했습니다. 이것에 대해 농부에게 말하면 그는 분명히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나는 수익성이 많은 방식을 계속해서 따를 겁니다.’
그는 자신이 재배하는 생산물의 품질이 떨어지고 대지와 물이 파괴되어 가는 것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장 끔찍한 것은 ‘전문가’라고 불리는 이들이 이런 사실을 모두 일고 있다는 것입니다.

[71] 고백하건데 라셀과 나는 피에르 라비의 사상 속에서 아메리카 인디언들이나 마야 인들의 세계에서 강하게 느꼈던 신성에 대한 열정을 다시 발견하게 된 것이 무척 기뻤다. 그것은 우주 전체와 연결되어 있다는 일체감이고, 천지 만물에 대한 한결같은 경탄의 마음이다. 꽃이나 밀 이삭을 바라보면서 감탄하는 , 대지를 단지 존재의 수단으로만 보지 않고 우리를 사랑하는 어머니로, 수고에 대한 대가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는 어머니로 여기는 농부를 보는 일은 얼마나 큰 행복인가. 기술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바로 우리 인간들이 변해야 한다. 변화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다.

[72] 그렇습니다. 신성으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내게 있어 그것은 단지 언어적인 표현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나는 온 존재로 신성을 느끼며, 이 말 자체로 본질에 가 닿습니다. 때로 나는 그것에 스스로 감동받습니다. 내가 일반적인 흐름에 반대해 노를 저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나는 끝까지 노를 저을 것입니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까요.

[76]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나는 계속해서 내 주위의 신성에 주의를 기울일 것입니다. 비록 온 세상이 혼돈에 빠져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바로 매일 아침 전쟁과 테러, 학살과 몰이해, 공해 등 온같 나쁜 소식을 들으면서도 내가 행동을 멈추지 않는 이유입니다.

[72] 오늘날의 어린이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불안해하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아이들은 이제 점점 더 어린 나이에 학교에 가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세상은 자신들을 혼내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이 세상은 존경받는 인간이 되기 위해 이겨야 하고, 권력과 돈을 얻기 위해 싸워야 하는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이들이 불안해하는 것이 걱정스럽습니까?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잘 왔다고, 각자는 서로를 보완해주는 존재들이며, 경쟁보다는 공동체 의식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해 주십시오. 만일 그것을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계속해서 불안해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아이들은 먹고 먹히는 지배의 과정 속으로 무참히 내던져지고 맙니다. 특히 아이들에게 더 이상 겁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78] “나는 사막에서 태어났습니다. 말하자며 침묵의 세계 속에서. 그 침묵의 세계는 내 안에 깊이 각인되었습니다. 사막의 광활함 속에서는 소음조차도 부드러워집니다. 침묵을 깨며 먼 곳에서 들려오는 그 소리들은 마치 침묵을 보완해 주는 듯합니다. 나는 두 종류의 소리가 있다고 말하곤 합니다. 하나는 침묵을 강조하는 소리이고, 다른 하나는 침묵을 지우는 소리입니다. 당나귀 울음소리와 사막에 부는 바람 소리, 작업대 위에 부딪치는 망치 소리 등은 일상의 살아 있는 소리들입니다. 어린 시절을 보내는 동안 나는 그 부드러운 양수와도 같은 분위기 속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 침묵은 우리를 내면의 침묵으로 이끕니다.
반대로, 그런 세계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을 때면 나는 다른 정신적인 분위기를 차자갑니다. 그때는 도시로 갑니다. 글을 써야 할 때는 특히 더 그렇습니다. 나는 호텔 방 하나를 빌리거나 선술집에서 글을 씁니다. 그 분위기는 나를 자극하고 집중할 수 이게 해줍니다. 조용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먼 시끄러운 음악이 나오는 선술집에 있으면 나는 편안해집니다. 아마도 이것은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습니다. 어쨌거나 술집 테라스에 있을 때 나는 모든 것으로 단절되었다고 느낍니다. 찾아오는 사람이나 전화, 또는 팩스에 방해받지 않습니다. 나는 나만의 세계 속에 있습니다.“

[82] 당신 역시 알고 있을 테지만 아름다운 선언과 현실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인간의 생활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 먼저 말과 현실을 연결시켜야 합니다. 말과 현실이 연결될 때 빈사 상태에서 서서히 죽어 가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올 것입니다. 죽기 위해 태어나는 듯한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는 그런 현상이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아프리카 여행에서 돌아올 때마다 나는 현대 사회 속에 있는 나를 보게 됩니다. 나는 그 현대성이 속임수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발전했다고 여기는 이 현대 사회는 참담합니다. 이런 발전으로 혜택을 입는 사람은 아주 적은 사람들뿐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 살고 있는 우리는 끊임없는 파괴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단지 접시 위에 극소량의 양식을 얻기 위해 자신의 삶을 전부 내던지는 일은 정상저이지 않습니다. 쓸모도 없는 것을 만들기 위해 그렇게도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하는 것 또한 정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것은 인간에게 맞는 적절한 생활환경이 아닙니다. 주위를 돌아보십시오. 사람들은 자기들이 살고 있는 벌집 안에 들어가기 전에 낮 시간 내내 정신없이 뛰어다녀야 합니다.

[85] 나무 한 그루를 심는 것은
생명에게 ‘예’라고 대답하는 일이다.
미라에 대한 우리의 신뢰를 확인하는 일이다.
나무 한 그루를 심는 것은
과거에 대한 우리의 빚을 인정하는 일이다.
씨앗은 결코 무에서 창조되지 않았으므로,
나무 한 그루를 심는 것은
자연에 동참하는 것이다.
자연 안에서 모든 생명체가 서로 의존하고 있으므로.
나무 한 그루를 심는 것은
과거의 잘못에 대한 슬픔의 표시다.
우리는 은혜로 받은 생명을 당연하다고 잘못 알았었다.
시몬스 목사

[87] 아이들은 거의 모든 유년 시절을 인간에게 매우 중요한 네 가지 요소들이 결핍된 상태에서 보낸다. 그 네 가지 요소는 물, 불, 공기, 흙이다. 자동차 배기가스만을 호흡하는 아이들에게는 공기가 부족하다. 정수된 물만을 마시기 때문에 물이 부족하고, 아스팔트 위만 걷기 때문에 흙이 부족하다. 또한 불이 부족하다. 가스레인지의 불꽃만을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94] 우리는 사랑과 관용, 영성에 대해 말합니다. 하지만 영성은 명상한답시고 배꼽을 들여다보고 앉아 있거나 멋진 말을 하는 것으로 생겨나지 않습니다. 영성은 구체적으로 실천하고 세상의 가난한 이들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진정한 기독교 정신은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일할 때만 존재할 수 있습니다. 불교나 회교도 마찬가지입니다.

[102] “거름 구덩이 주위를 돌면서 당신은 그것들을 휘젓는다. 따뜻하게 덥혀진 거름들은 숨을 쉰다. 그 성분들은 부드러워지며 햇빛에 그을려 거무스름해진다. 당신은 그것들에 알맞은 더운 온도를 유지해 주고 공기를 주입해 주었다. 그리고 재와 다른 재료들을 그것과 뒤섞었다. 당신은 훌륭한 제빵사처럼 깨어 있는 의식을 가지고 일했다. 그리고 지금 좋은 냄새가 나는 이것이 당신 앞에 있다. 해가 저물 때, 당신은 팔다리를 뻐근하게 하는 행복한 피로감을 온몸으로 느낀다. 태양은 서쪽 지평선을 붉게 물들이고, 낮 동안의 수고는 고요 속에 묵상한다.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무언의 기도를 드리듯 하늘을 바라보라. 당신은 파종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리고 이제 당신의 고요한 정신이 우주 속으로 펼쳐진다.”

[109] 흙에서 살고자 하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실천적이고 꿈을 꾸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역할을 먼저 그들의 정신에 순서를 정하고, 역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경험은 우리를 매우 침착하고 구체적이며 분석적인 사람이 되게 했습니다. 우리는 장부를 꼼꼼히 만들라고 사람들에게 충고합니다. 장부는 농업을 시작한 첫해와 그 이듬해에 써야 하는데, 주로 살림의 내역을 적습니다. 이런 정확성 없이는 경험이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111] 숨을 쉴 때마다 매번
당신은 수십억 개의 원소를 들이마신다.
그중 몇 백만 개의 원소들은
수명이 아주 긴 아르곤 가스 원소들로
몇 초 뒤에는 당신이 내쉬는 숨과 함께 밖으로 나와
대기 중에 흩어진다.
그것들은 아주 오랜 세월 그런 식으로
인간의 몸을 드나들었다.
지금 당신이 들이마시는 공기 속의 어떤 원소들은
부처나 예수의 코 속으로 들어갔던 것도 있고
한때 동굴에 사는 원시인의 폐 속을
방문했던 것도 있다.
-롤프 에드버그-

[113] 따라서 논리를 바꾸어야 한다. 가능한 한 빨리 운송에 의지하는 방식을 그만두고, 생산과 소비가 그 지역내에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적어도 가장 중요한 식량은 현지에서 생산되어야 한다.

[117] “하루 동안 행복하고 싶으면 돼지를 잡고, 한 해 동안 행복하고 싶으면 결혼을 하고, 전 생애를 행복하고 싶으면 밭을 일구라.”

[118] “나는 밭일에 무조건적으로 충성하는 농부입니다. 숨이 붙어 있는 한 계속해서 밭을 일굴 것입니다. 나는 내가 맺고 있는 대지와의 관계가 매우 멋지고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흙에 대해 알고, 흙에게 안부를 물어야 합니다. 또한 대지가 신성하다는 것을 깨닫고, 대지가 우리를 먹이는 것처럼 우리도 대지에게 영양을 공급해 주어야 합니다. 나는 종종 대지를 어린아이인 나에게 젖을 먹이는 여성에 비유합니다. 뿐만 아니라 대지는 나를 우주와, 생명의 리듬과 이어 줍니다. 흙은 나에게 인내를 가르쳐 줍니다. 흙에서 하는 일에는 언제나 적당한 시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해를 지나며 반복하는 자연의 순환을 존중하는 일입니다. 대지는 나에게 일을 어떻게 할지 매우 구체적인 계획들을 세우게 합니다. 흙은 우리에게 인내를 배우게 하고, 가뭄이나 많은 비, 엄동설한 등 날씨에 적응하게 합니다. 대지오 함께라면 절망이란 없습니다. 이번 해에 성공하지 못해도 다음 해에는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 예로, 올해 나는 토마토 농사에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년에 토마토를 심지 않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 미숙한 일꾼과 밭 사이에는 조용한 신뢰와 생명의 연금술이 있습니다.”

[121] 󰡒나는 모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한 번도 월급 노동자가 되기를 바란 적이 없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내 자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어떤 정신적 자세를 갖느냐의 문제입니다. 삶을 살아가는 데는 두 가지 접근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나는 내 능력을 월급과 교환한다.’ 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는 모험을 하고, 나만의 수익을 창조한다.’ 는 것입니다. 이 두 방식은 모두 존중받을 만합니다. 하지만 나는 두 번째의 것을 선호합니다. 현대인들의 월급 숭배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습니다.󰡓

[123] 󰡒종자들이 사라져 가는 것은, 다국적 대기업을 소유한 제조업체들이 선별해 내놓는 종자들의 침략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가장 추악한 일입니다. 아득한 옛날부터 농부들은 스스로 씨앗들을 생산해 왔습니다. 그 씨앗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땅과 기후에 완전히 적응했습니다. 오늘날 마치 세뇌라도 하는 것처럼, 많은 광고 문구들은 농부들에게 종자는 제조업체들에게서 사야 한다고 강조해 말합니다. 하지만 업체에서 판매하는 교배시켜 만든 종자들은 해마다 새로 사서 심어야 하고, 필연적으로 비료와 살충제를 많이 사용해야만 하는 씨앗들입니다.󰡓

[130]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은 서양을 모델로 한 불가능한 꿈을 좇아 질주하는 대신, 스스로의 능력으로 일어서야 합니다. 이것은 결코 이상적인 얘기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미 수천 년에 걸쳐 사람들은 자급자족하며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아프리카 인들은 식민지화되기 이전부터 그들의 방식대로 살아왔고, 또 정상적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전 인류의 생활 조건을 단 하나의 시각으로 판단하는 어리석음과, 경제만을 중요시하는 과오를 계속 저지르는 한 우리는 앞으로도 진정한 발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을 것입니다.󰡓

[131] 󰡒맞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매번 같은 문제로 귀결됩니다. 만일 우리 자신이 공정하지 못하면 공정하게 판단할 수 없습니다. 또한 우리 자신이 마음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면 자유를 영원히 이룰 수 없습니다. 우정은 그 깊이를 서로 말하지 않으며, 진정한 인류애는 모든 존재에 대한 사랑과 존경에서 비롯됩니다. 당신은 평등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평등은 이 모든 것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말이기 때문입니다.󰡓

[133] 아침잠을 깨우는 수다스런 새들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있기를.
못생긴 언덕에 핀 끈적끈적한 꽈리꽃
일찍부터 웃자란 맛이 쓴 상추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있기를.
거대한 열대 우림의 침묵
오지에 사는 사람들의 소박하고 단순한 생활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있기를.
물을 튀기는 바닷새들의 서투른 날갯짓
우주 공간의 무수한 많은 별들을 바라보며 놀라워하는
인간의 경이에 찬 눈동자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있기를.
-다이앤 디 프라마-

[137] 󰡒아프리카 사람들은 그다지 불행하지 않았습니다. 몇 천년 전부터 그들은 대대손손 그렇게 살아왔고, 전통적인 방식들은 그럭저럭 잘 진행이 되어 왔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그런 전통들이 우리 시대까지 이어져 내려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존의 인디언들은 아직까지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들이 평화롭게 살도록 우리가 내버려 두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조용히 살 수 있게 해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정상적인 일입니다. 결과적으로 볼 때 우리가 그들에게 가져다준 것 중에 긍정적인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그들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부탁하지 않았습니다. 이제가지 그들이 살아온 방식대로 살도록 내버려 두어야 합니다.󰡓

[144] 피에르 라비가 이렇게 격렬히 분개하는 모습에는 비장함이 담겨 있다. 문제는 너무도 크고, 이 작고 가냘픈 남자는 고독하다. 하지만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고 희망이 넘친다. 그 문제들에 기꺼이 맞서 투쟁하는 그는 가상의 적에게 도전하는 돈키호테와는 달리 뛰어난 분별력을 가지고 있고, 조직적인 사고와 과학적인 정신을 소유한 정열적인 농학자이자 실천가다.

[148] ‘만일 당신이 10년 전에 왔다면, 우리는 당신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막다른 골목에 와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을 겁니다. 이 점은 이용해서 마음껏 실험하세요.’

[155] 놀라운 것은 아프리카가 실제로는 매우 풍요로운 대륙이라는 것입니다. 광물 자원이 풍부할 뿐 아니라 농업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아프리카는 충분히 자급자족할 수 있습니다. 이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세상의 주장에 세뇌된 이들입니다. 얼마 전 나는 유전자 변형 옥수수에 반대하는 사람들 편에 서서 증언을 하기 위해 푸아(스페인과 가까운 프랑스 남부 지방)에 갔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증언석에 설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나는 그 곳에서 사람들에게 OGM(유전자 변형 작물의 개발과 상업화를 위해 설립된 연구소)이 자신들의 도움만으로 세계를 구할 수 있다고 믿게 하는 것은 범죄 행위라고 주저하지 않고 말했습니다. 나는 거의 소리를 지르다시피 했습니다.

[159] 삽으로 흙을 뒤집는 순간
이 친구가 드러났다.
이번에는 다행히
몸이 반쪽으로 잘리지 않은 채.
갑자기 눈앞을 가로막던 장애물들이 사라지자
그는 봄날의 밝음 속에서 잠시 꿈틀거렸다.
그리고는 곧 태초부터 이어져 온 맹목적인 힘에 따라
한 방향으로 여행하기 시작했다.
몸을 뻗었다가 수축하고, 다시 뻗었다가 수축하면서.
깨끗하고 반짝이는 흙빛깔의
피부를 가진 녀석.
그는 내가 지금까지 삽으로 뒤집어 놓은 것보다
더 많은 흙을 뒤집어 놓았다.

[164]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끝나 버리고 마는 그런 회의들에 참석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하지만 나는 그 회의에 참석해 오아시스들을 인류의 창조성이 만들어 낸 기적의 장소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내 연설은 많은 공감을 이끌어 냈고, 아랍어로 번역되기 까지 했습니다. 그들은 나에게 일의 전체적인 책임을 맡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내가 그 일에 쓸모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나는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잠시 책상 머리맡에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에 충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일시적인 회복 가능성을 놓고 말하는 것도 큰 의미가 없습니다. 모두가 내 의견에 동의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어떤 일이든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168] 그는 매순간 다른 이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자신이 가치 있다고 느끼는 일들에 즉각적으로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다.



3. 내가 저자라면

사상은 거침없는 실천성이 동반할 때 가치가 있음을 주장했었다. 아무리 사상이 견고하여도 실천성이 동반되지 않는 것은 한낱 공허한 글 놀이에 불과한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라비는 ‘인간과 대지를 연결’하는 위대한 철학자다.
그는 대지에서 영성을 느끼고 신성을 찾아낸다. 나아가서 지구라는 행성과 타 행성과의 관계를 찾아내고 그 운행의 조화로움을 깨는 우리의 삶의 방식에 강한 경고장을 보낸다.
이 글은 저자가 프랑스 남부 마을에 살고 있는 피에르 라비의 집을 찾아가 일주일간 그와 함께 지내면서 그의 삶과 사상을 적은 글이다. 그러므로 이 책 속에서는 라비의 삶의 철학과 세계를 바라보는 눈, 나아가서 그의 일상이 소롯이 담겨 있다. 말 속에 사상이 담겨있고
생활 속에 철학이 살아 숨 쉰다. 인간을 향한 애정과 자연에 대한 겸손함이 일상의 생활 속에 녹아 있고 노동의 신성함을 몸소 보여 준다. 라비는 자기 확신을 통해 세상을 향하여 과감한 도전장을 보낸다. 그 도전장은 대결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변화와 어울러 함께 살아나가기 위함이다. 거대한 세계기업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고 무기력에 빠져 있는 농부들을 위한 자기의 몸 던짐으로 나타난다.

라비는 그가 성장한 사막의 오아시스 생활에서 삶의 가치를 알았다고 했다.
[10] 사막에 사는 사람들은 진정 자기 내면에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흔히들 사막을 끝없이 이어지는 수평의 연속으로 생각하지만, 그곳에는 수직으로 상승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나는 어렸을 때 이미 내면으로 들어가는 삶의 가치를 알았습니다. 정확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내 삶은 종교에 입문을 위한 하나의 여행과도 같았습니다.

라비가 삶의 가치를 사막에서 알았다면 나는 ‘유유히 흐르는 강’과 거대한 산줄기를 통해서 깨달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라비가 그의 가슴에 자리 잡고 있는 자연에서 얻은 영성의 힘으로 거대한 산업사회의 모순에 반기를 들고 일어섰다면 나는 타협의 길을 선택했다.
정당히 눈 감고 적당히 분노하며, 나아가서 적당히 즐겼다. 물질적 풍요를 성공의 잣대로 여기고 그 ‘풍요’를 향해 끝없는 질주를 했었다. 가슴 한 쪽에서 꿈틀거리며 솟구치는 지연으로부터 얻은 영성을 외면하면서 철저한 신 자유인이 되어갔다. 돌이켜 보면 환경을 공부한 것도 나의 허식에 불과하다. 나의 밋밋한 생활에 변화를 요구했음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거대한 자본주의의 거물망 속에서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외침의 출발이 아니었다. 라비의 ‘대지의 노래’는 아름다운 교향악이다. 자연과 인간과 그리고 수많은 행서들과의 어울림이다. 그는 자족의 생활을 뛰어넘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옹골찬 신념으로 대지에 머리를 박고 물구나무를 섰다. 저자를 통해서 나타난 그의 말들이 공허한 설교가 아닌 단단한 사상과 실천적 기반이 뒷받침되었기에 그의 글이 더욱 빛난다.

이러한 생각은 결코 나만의 것이 아니다.
[2007.01.06 중앙일보]라비의 실천이 씨줄이라면 그의 사상은 날줄이 돼 책을 촘촘하게 메운다. 그가 사는 방식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최소한 우리의 무신경함을 반성하게끔 하는 통찰은 귀담아들을 만하다. "사자는 양을 잡아먹고 배를 채우지만, 나중을 위해 따로 저장해두지는 않는다. 그런데 인간 약탈자들은 도가 넘칠 정도로 필요 이상의 것들을 원한다""자동차 배기가스만을 호흡하는 요즘 아이들에게는 공기가 부족하다. 정수된 물만을 마시기 때문에 물이 부족하고, 아스팔트 위만 걷기 때문에 흙이 부족하다. 가스레인지의 불꽃만 들여다보므로 불도 부족하다"등등. 더불어 지역 먹거리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로컬 푸드 운동이나 사하라사막 이남 국가들의 심각한 사막화 현상, 아프리카 빈국들의 빈곤의 악순환 등 지구촌의 크고 작은 구조적 문제들이 각기 따로 노는 별개의 문제가 아님도 일깨워준다. 획일화된 삶, 성공 우선주의의 메커니즘에 현기증을 느끼는 이들이라면 라비를 만나볼 충분한가치가 있다.

‘무엇에 대한 책을 쓸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두 가지 관점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첫 째는 나의 관심사와 내가 몸담고 있는 곳의 작음 변화를 위한 것이다.
두 번째는 실천성의 문제였다. 내가 글로서 나타내는 것들은 어느 정도의 나의 실천성에 바탕을 둔다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의 측면에서 접근하자니 책을 쓴다는 것은 내 삶의 방식을 변화시키는 것과 동일한 것이 되었다. 그러니 책의 주제를 선정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일 년 동안 실천의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다. 교육의 현장에서 변화의 힘이 필요한 곳에 변화의 목소리를 내기 전에 나로부터 변화의 바람을 직접 일으켜 보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동안은 맹목적인 생활을 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좀 더 계획적이고 적극적인 생활로 나아가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 생각은 ‘농부철학자. 피에르 라미’의 책을 통하여 더욱 확고해 졌으며 구체화 되어간다고 볼 수 있다.

[72] 오늘날의 어린이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불안해하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아이들은 이제 점점 더 어린 나이에 학교에 가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세상은 자신들을 혼내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이 세상은 존경받는 인간이 되기 위해 이겨야 하고, 권력과 돈을 얻기 위해 싸워야 하는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이들이 불안해하는 것이 걱정스럽습니까?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잘 왔다고, 각자는 서로를 보완해주는 존재들이며, 경쟁보다는 공동체 의식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해 주십시오. 만일 그것을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계속해서 불안해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아이들은 먹고 먹히는 지배의 과정 속으로 무참히 내던져지고 맙니다. 특히 아이들에게 더 이상 겁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학교는 혼내고 겁을 주는 곳이 아니어야 함을 책으로 이야기 하고 싶다. 학교는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고 어우러짐의 소중함을 느끼는 곳임을 어른이 먼저 깨달아야함을 책을 통해서 이야기 하고자 한다. 단순한 우리의 밥벌이 장소이기 전에 참다운 인간과 인간의 만남의 장소임을 말하고자 한다. 그전에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을 가슴으로 품고 함께 배워나갈 일이다. 그들로부터 배우고 느낄 일이다. 또한 라비가 그렇게 했던 것처럼 흙에서 나의 신성을 찾아낼 일이다. 책이 언제 나올 것이냐에 앞서 내가 얼마나 실천적인 삶을 살아나가느냐가 우선되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본다면 라비의 책을 선택한 일은 행운이고 그가 걸음마하는 나를 결코 못 본 척 하지는 아니하리라는 확신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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