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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19일 09시 57분 등록
짧은 글 긴 침묵
미셸 투르니에 /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Ⅰ. 저자에 대하여

미셸 투르니에(Michel Tournier)는 1924년 파리에서 태어났으며, 소르본대학과 독일 튀빙겐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였고, 플롱출판사에서 오랫동안 문학부장을 역임하며 독일 문학 작품 번역하였다. 1967년 43세에 다니엘 데포의 『로빈슨 크루소의 모험』을 바타응로 한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을 발표하여 프랑스 아카데미 소설 대상을 수상하였고, 1970년에는 게르만 신화를 바탕으로 한 『마왕』을 출간하여 만장일치로 공쿠르상을 받았다. 매년 노벨문학상의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는 작가이다.

현재 파리 근교의 한적한 마을 생 레미 슈브류즈의 사제관에서 홀로 살고 있다. 작가 생활을 시작한 1950년대 말 전 재산을 털어 인수한 사제관이다. 전원 생활에 푹 빠져 있는 그는 한 달에 한 번 파리 나들이에 나선다. 공쿠르상 심사위원들과 점심식사를 즐기면서 문학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유일한 문단 접촉이다. 그는 1972년 아카데미 공쿠르 회원으로 천거되어 공쿠르상의 심사위원이 되었었다.

미셸 투르니에는 신화, 성서, 여행, 사랑, 종교, 기상, 언어, 이민, 빈곤, 전쟁, 장애인, 쓰레기 등을 주요 주제로 다룬 다양한 작품을 냈다. 그의 작품 세계는 신화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현대 사회의 여러 가지 면모들을 재조명하고 재해석하는 특징을 보인다. 그의 작품은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원시적 상상력이 현대적 감수성으로 재해석되는, 기분 좋은 느낌을 받게 된다. 그의 작품 세계는 동화적이고 악마주의적인가 하면, 삶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이야기 형식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매우 철학적이고 종교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가 삶의 문제들을 다루는 방식은 매우 유머러스하고 쾌락주의적이다.

미셸 투르니에는 자신의 글쓰기에 대하여 번역자 김화영 교수와의 만남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 요즘엔 무엇보다 흡혈귀의 문제에 심취해 있어요. 그 주제를 가지고 한 권의 소설을 써보려고 말입니다. 아주 결정적인 흡혈귀 소설을요. 모리스 라벨이라는 작곡가는 왈츠곡을 작곡했었죠. 그가 원했던 것은 흔히 있는 왈츠곡들 중 한 곡이 아니라 왈츠곡 그 자체였어요. 과연 그 곡이 발표된 이후에는 아무도 왈츠를 더 이상 작곡하지 않았죠. 내가 원하는 흡혈귀 소설도 그런 거예요.”
‘부정관사가 아니라 정관사가 붙는’ 흡혈귀 소설을 쓰고자 하는 투르니에의 이 발언은 오만한 듯이 보이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넣어서 생명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인다. 『흡혈귀의 비상-독서록』의 서문의 글과 연결하여 본다면 그는 분명 독자의 가슴으로 날아가 독자에게 불을 붙여 영원히 존재하는 것과 모든 것을 묻어버리고 닫아버리는 죽음의 경계에 선 흡혈귀를 만들어 내고자 하는 것이다.

“피는 끔직한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오랜 전통 속에서 피는 곧 성스러운 생명입니다. 예수의 피를 받는 성배가 그렇고 영성체가 그렇습니다. 피가 없다는 것은 생명이 없다는 뜻이지요. 생명이 없는 자는 생명의 피를 애타게 그리워하게 되어 있어요. 이 핏기 없는 한 마리의 새. 난쯤만 존재하는 새, 즉 한 권의 책이 살아서 날 수 있게 되려면 바로 이 가벼운 새가 독자의 심장에 내려앉아 그의 피와 영혼을 빨아들여야 합니다. 그 과정이 바로 독서라는 것이지요.”

그는 『짧은 글 긴 침묵』에서 「고인이 된 한 작가의 약력」에서 자신의 소설을 이렇게 말했다. ‘그가 구상한 소설은 언제나 가능한 한 관습적인 외관을 갖춘, 지어낸 이야기들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적극적인 빛을 발하는 형이상학적인 하부구조를 감추고 있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그의 작품을 두고 사람들은 ‘신화’라는 말을 자주 입에 올리는 것이다.’

「고인이 된 한 작가의 약력」에서 자신의 자화상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그에게 어떤 조상의 꼬리표가 필요하다면 J. K. 위스망스를 떠올리면서 ‘신비적인 자연주의자’ 정도로 평가해도 무방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눈에는 모든 것이, 심지어 추악한 것까지도 아름답게 보이고, 모든 것이, 심지어 진흙탕까지도 성스럽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의 무덤에 묘비가 세워진다면 아마도 그는 이런 비문을 새겨놓기를 바랐을 것이다.
<내 그대를 찬양했더니 그대는 그보다 백 배나 많은 것을 내게 갚아주었도다. 고맙다, 나의 인생이여!>

주요 저서
『마왕』
『방드리드, 태평양의 끝』
『생각의 거울』: 대립되는 57개의 개념에 대한 철학 에세이
『레 메테오르(기상 현상)』
『동방박사들』
『금방울』
『황야의 수탉』
『흡혈귀의 비상』
『움직이지 않는 떠돌이』
『뒷모습』
『외면일기』
『예찬』
『꼬마 푸세의 가출』
『환상여행』
『지독한 사랑, Gilles & Janne』
『소크라테스와 헤르만헤세의 점심』

Ⅱ. 가슴으로 읽는 글귀(인용)

[9] 엉뚱천사.
그는 세상들을 돌아다니다가
평범하거나 추하거나 잔혹한 장면들과 마주친다.
그때마다, 그 장면을 만들어내는 주역 들 중 어느 하나를 날개로 툭 건드린다.
그러면 대뜸 장면은 독창적이고 우아하고 다정해진다.

1장. 집

[13] 25년전 내가 이 집에 처음 이사왔을 때 유난히 마음에 드는 것은 그 텅 빈어 있음과 가구 하나 없는 방들에서만 느낄 수 있는 낭랑한 울림. 그리고 작가인 나에게는 백지의 흰색을 연상시키는 그 벌거벗음이었다.

[13] “그래요. 좋아요. 하지만 차라리 아무것도 없는 게 낫잖아요?”
그 ‘아무것도 없음’이야말로 내가 볼 때 집의 필수적인 출발점이다.

[14] 요컨대 이 조가비는 그들에게 맞도록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분이다. 이 조가비는 내 움직임 하나하나. 내 몸짓 하나하나의 흔적이 찍혀져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것은 내 일상샐황을 찍어낸 정확한 틀이다.

[14] 나는 내 주위에 이 가정적 환경을 만들어놓음으로써 점차적으로, 그러나 돌이킬 수 없도록 무겁고 둔해져버렸다. 이건 아주 슬그머니 늙어가는 방식이다.

[18] “사제관은 어디 하나 그 매력을 잃지 않았고 정원은 어디 하나 그 광채를 잃지 않았다.”
* ‘매력과 광채’ 중에서

[18] 이따금 겨울날 좀 늦게 집으로 돌아오면 나와 같이 사는 어린 녀석이 밖으로 나와 집 앞 계단에 낮아 있는 것이었다.
- 왜 밖에 나와 기다리지?
- 들어갔다가 다시 나왔어.
- 무서웠어?
- 아니, 하지만 나무계단이 삐걱거려.


[20] 필경 오래된 집들은 어느 것이나 다 그럴 것이다. 나의 집에는 열쇠들과 자물쇠들이 서로 맞는 게 하나도 없다. 열쇠라면 내 서랍 속에 넘치도록 가득 들어있다.

[21] 파스칼의 표현처럼 그것들은 식욕 증진 능력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 열쇠와 자물쇠에 대하여

[22] 자물쇠는 닫힘의 관념을 상기시킨다. 열쇠는 여는 행동을 상기시킨다. 그 양자는 각기 하나의 부름을, 하나의 소명을, 그러나 서로 반대되는 방향에서 형성한다. 열쇠가 없는 자물쇠는 해명해야 할 비밀이요, 밝혀져야 할 어둠이요, 판독해야할 암호이다.

[22] 자물쇠가 없는 열쇠를 가진 사람은 두 발을 묶어놓고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 그는 손에 자신의 열쇠를 들고 자물쇠를 닮은 것이면 무엇이든 다 넣어 돌려 보면서 오대양 육대주를 골고루 돌아다녀야 한다. 어린아이는 마주치는 모든 대상이 자물쇠가 그 정당성을 부여하는 열쇠라고 굳게 믿으면서 매순간 “이건 무엇에 쓰는 거지?”하고 묻는다.

[22-23] 가택 침입 강도들은 각기 그 두종류 중 하나에 속한다. 만능 열쇠 꾸러미를 손에 들고 슬그머니 다가오는 자는 에누리가 없다. 그는 열쇠형 인간이 아니라 자물쇠형 인간이다. 그는 유연하고 조직적이다. 그를 유심히 보라. 그는 미혼의 젊은 여왕에게 구혼자들을 소개하는 지체 높은 대신처럼 자신이 선택한 자물쇠 앞에 정중히 무릎 꿇고 앉아서 그 속에 열쇠를 하나하나 밀어넣고 돌려보는 것이다. 반면에 열쇠형 강도는 오직 한 가지 열쇠밖에 가진 것이 없다. 자물쇠 여는 지렛대 아니면 용접기뿐인 것이다. 사실 그는 밧줄로 만든 자물쇠라고 할 수 있는 고르디오스 매듭을 칼로 쳐서 끊어버린 무지막지한 알렉산더 대왕처럼 불한당인 것이다.

[26] 계단을 오르는 것은 ‘힘들고’ 계단을 내려가는 것은 ‘위태롭다.’
* ‘계단’에 대한 글을 전체가 아름답다. 오르는 것과 내려가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내면을 파악한 이 글은 어느 한 도막을 잘라온다는 것이 어렵다. 계단에 대한 이 글 전체가 유기적으로 한 도막이다.

[29] 그가 연료 탱크의 탁한 공기 속에서 돌연 몸이라도 불편해지는 날에는 어떻게 그 사람을 끌어내야 할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소파 수술을 할 때처럼 그의 몸을 조각조각 잘라서 꺼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제왕절개를 할 때처럼 연료 탱크의 배를 갈라야 하는 것일까? 여기서 나는 모태 퇴행과 매장환각(혹은 화장 환각)이 기이하게 만나서 나와 내 집과의 미묘한 관계에 접목되는 것 같은 느낌을 갖는다.
*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통해서 자신의 의식과 무의식, 신화의 세계로 연결시켜나간다.

[30] 가끔 내 정화조에서 원망 섞인 한숨소리가 새어나오는 것만 같은 느낌마저 없지 않다.
* 저자는 집을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혹은 유기체들이 모여 사는 하나의 세계인 것처럼, 사물들이 하나의 생명체인 듯이 묘사를 한다.

[32] 배관공은 그 구멍 밑바닥에 전기 펌프를 설치하여 자동적으로 물을 뽑아내도록 하는 것이 어떠냐고 말했다. 나는 우리 집의 가장 은밀하고 가장 인간적인 그 부분에다가 그런 기계적인 폭력을 가하고 싶지는 않다.

[33] 어젯밤은 잘 잤다. 나의 불행도 잠이 들었으니까. 아마도 불행은 침대 밑 깔개 위에서 웅크리고 반을 지낸 것 같다. 나는 그보다 먼저 일어났다. 그래서 잠시 동안 형언할 수 없는 행복을 맛보았다. 나는 세상의 첫 아침을 향하여 눈을 뜬 최초의 인간이었다. 이윽고 나의 불행도 덩달아 잠을 깼다. 그리게 내게 달려들어 간을 꽉 깨물었다.

2장 도시들

[50] 아침의 기도 : 주여, 저의 가는 길 위에, 광휘에 찬 사랑을, 저의 삶을 휩쓸어버릴 사랑을 놓아주소서!
기도에 덧붙이는 말 : 주여, 제가 소원을 빌거든 부디 무조건 들어주지는 마시옵소서!

[54] 에로티카 : 튀니지, 육체의 땅, 이라고 지드는 노래했다.

[58] 오늘 아침 바닷가 분수의 둘렛돌 위에 서 있던 미켈란젤로는 한 떼의 청개구리들이 둘어싸고 그를 향하여 목청껏 울어대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그 후 그는 자기가 개구리들의 왕으로 선출된 것이라고 믿는다.

[66] 사람들은 뒤러 그림의 획이 보여주는 거칠음, 투박함을 이해하고자 한다. 그의 힘은 거기서 온다. 천부의 재능, 재치, 숙련이라고 하는 세 가지 예술적 기능에다가 많은 예술가들의 경우, 우리는 위의 세 가지를 대신하는 것으로 수완을 하나 더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질료를 창조해내는 천부의 재능, 형태를 창조하는 재치, 기량의 원천인 숙련은 모두 존중할 만한 자질이다. 반면에 수완은 완전히 멸시의 대상이다.
어느 예술가에게나, 어느 인간에게나 이 네 가지 요소가 잠재해 있다. 다만 그 상대적인 양과 비율이 다양한 차이를 보일 뿐이다.

[73] 그의 전문은 꿈을 사진 찍은 것이라고 했다.
* 꿈을 사진찍는 사람의 이야기.

[76] 그러나 델리에 첫발을 딛는 즉시 나는 내가 일생 처음으로 타관에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적합. 이것이 이 나라에 어울리는 단 하나의 단어다.

[88] 민족학이 그렇듯이 의학도 여성화하면 좋은 점이 많다. 아니 하나 더 보탠다면 사진예술도 그렇다. 사람들에게 사진기를 들이대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실례되는 일이고 공격적일 수밖에 없는데 사진을 찍는 사람이 여성일 경우에는 좀 더 너그럽게 봐준다.

3장. 육체

[95] 나는 여성다움의 온갖 장치가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강요해서 생긴 것인지 아니면 여자들 스스로 좋아서 그렇게 본능이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택한 것인지 오랫동안 의문이었다. ...... 사실 어떤 사람에게 무엇을 강요하는 것으로 말하자면 그것에 대한 취향과 욕구를 주입시키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없으니까 말이다.

[97] 프리드리히 니체는 1882년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를 처음으로 만난다. 러시아 출신의 젊은 여자인 루는 그 후 릴케와 프로이트의 조언자요 구원의 여성이 된다. 이 기막힌 삼인조를 두고 동시대의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한 위대한 지성인이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되면 9개월 뒤에는 어김없이 걸작을 하나씩 낳는다.”
.... 니체는 그의 누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무엇이라고 섰던가? 그는 전하기를, 이제 막 어떤 젊은 여자를 만나 알게 되었는데 어찌나 지성미가 빛나는지 그의 볼품없는 생김새를 까맣게 잊어버릴 지경이라고 했다.

[99] 수염이 난 타잔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뿐이 아니다. 그가 매일 아침 면도를 한다는 것 또한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사실 ‘젊은’ 영웅이라는 표현은 충분하지 못하다. 아주 적절하게 표현하자면 ‘어린애 같은’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타잔에겐 수염이 없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100] 사내다움과 힘을 한데 결부시켜 생각하는 관습이 무너지면서 여자다움과 연약함을 한데 연관지어 생각하는 관습 또한 함께 무너진다.

[103] 그대가 태어나던 날 내가 만약
그대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책무를 맡았다면
아폴로 신으로부터
미래를 읽는 지혜를 얻어
그대의 영혼과 눈길을 생생하게 그려야 했다면
그대 이름은 주저 없이 바이야르라 지었으리라.
* ‘퇴락한 낭만적 정자에는 여전히 프랑스어 운문으로 된 마드리갈 연애시가 새겨져 있다.’

[107] 옛날에는 손이 네 개 달린 포유류 동물을 ‘사수류(四手類)’라고 불렀고 오늘날에는 기꺼이 ‘영장류’로 지칭하고 있으며 한편 보통 사람들은 항상 ‘원숭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한편, 인간은 ‘두 손을 가진 동물bimane’이 아니라 '두 발 가진 동물bipede'이라고 불리고 있으니 기이한 역설이다. 마치 인간의 장점은 두 개의 손을 가졌다는 것뿐만이 아니라 특히 두 개이 발을 가졌다는 데 있다는 듯이 말이다. 이렇게 되고 보니 인간은 ‘네 발을 가진 동물’인 개와 ‘네 손을 가진 동물’인 원숭이의 중간쯤 되는 형국이다.

[111] 한편 키가 제일 큰 저 가운데 얼간이로 말할 것 같으면, 그 누구도 그것이 무엇 때문에 다른 모든 손가락들보다 길이가 더 길어야 하는 것인지 딱 부러지게 말하지 못한다.

[117] 수많은 젊은이들이 그랬듯이 나도 패거리와 부대편성, 군대식 암호 같은 것을 몹시 좋아했었다. 그러다가 늙어가면서 나는 그런 모든 것을 뒤흔들어버리기 시작했다. 나는 진단이니 이데올로기니 하는 것들을 저 멀리 던져버렸다. 고독, 독립, 그리고 창의에 필연적으로 전제되어 있는 위험 부담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아졌다. 그리하여 마흔 살에 나는 책들을 쓰기 시작했다. 스무 살 때는 다만 상상도 할 수 없었을 책들을 말이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갓난아기의 말짱하게 새것인 뇌가 좋진 좋지. 그렇지만 일생에 걸친 배움, 경험, 암중모색의 탐구, 인내 같은 것도 중요하거든. 처음에 천부적으로 받은 게 있고 다음에 그걸 가지고 우리는 건설하는 것이다. 우리 자신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119] 나는 나 자신을 위하여 세수를 하고 나 자신을 위하여 옷을 차려 입는다. 나는 너를 위하여 머리를 매만진다.
반대로 승려, 병정 혹은 죄수의 면도로 밀어버린 두개골은 규율과 질서를 위하여 타인과의 자연적 사회적 관계를 단절했음을 명백히 드러낸다.

[120] 말(馬)이 인간들에게서 예외적인 정도의 대단한 인기를-‘인간을 매료시킨 가장 고상한 애인’-차지하면서 멋있고 민감한 동물로 찬상되고 있는 것은 전쟁과 노동에 있어서 말이 수행한 역할 덕분이라고 믿지 말라.
그게 아니다. 그 까닭은 오로지 말이-개, 소, 낙타 심지어 코끼리와는 달리-매력적인 엉덩이를 가진 동물이기 때문이다.
* ‘엉덩이 예찬’ 중에서
* 동의한다. 그럼 사슴도 그 엉덩이 때문에 사냥의 대상이 되었을까.
* 나는 고양이과 동물의 유연하고 날씬한 허리가 마음에 든다. 달릴데의 모습이란 황홀하기 그지없다. 군더더기 없는 그 몸매가 좋다. 치타나 표범의 달릴 때의 그 날씬함, 유연함, 쭉 뻣은 곡선이 좋다.

[121] 튀튀는 앙큼하게도 엉덩이를 가리는 척하면서 동시에 사실은 빳빳하게 뻗친 채 폭발하는 듯한 스커트의 밑자락들을 통하여 엉덩이의 존재를 돋보이게 하여 열광을 이끌어낸다. 튀튀는 발레리나의 몸 중에서도 가장 살이 많고 통통한 부분의 희고 수증기 같은 대폭발이며 순결한 분무(噴霧)다.

[123] “진실은 벌거벗었다. 그러나 벌거벗음 속에는 상처 입은 자가 있다.” - 폴 발레리
보다 더 심오한 현실이 가차없이 냉혹한 현실을 기대하고 있으며 동시에 그 예술을 보상한다는 뜻이다.

4장. 어린이들

[130] 그 찬미자인 어린이가 사춘기를 겪으면서 추앙받는 성자가 성(性)을 바꾼다는 것을 선생님은 알고 있다. 그리하여 열세 살의 소녀는 지금까지 자기가 찬미했던 열세 살의 소녀는 지금까지 자기가 찬미했던 여성 스타들을 외면해버린 채 남성 영웅들에게로 고개를 돌리고 같은 무렵 사내아이들은 타잔과 제임스 본드를 버리고 셰일라와 마리 폴의 팬이 된다.
* 공주처럼 생긴 인형을 가지고 놀다가 어느 순간부터, TV에 나오는 남성 연예인에 열광한다. 사진을 모으고, 그리고, 자신이 만든 공상의 세계 속에 그를 불러 들인다.

[131] 영원불변의 젊음-치유할 길 없는 미성숙이라고 해도 될까?-을 버리지 못한 어른들의 경우, 찬미의 감정이 그 어떤 감정보다도 우세한 나머지 생명을 향한 충동 속에서 사랑과 우정을 앞질러 덮어비리는 것이다.

[132] 우리들의 위생적인 청교도 사회는 촉각의 체험과 민족에는 날이 갈수록 부적절한 모습이 되어가고 있다. 눈으로만 만져라. 우리가 어린아이 적에 가졌던 온갖 충동들을 박살내는 이 어처구니 없는 충고가 보편적 억압적인 지상 명령이 되어 버렸다. ...... 잡지, 영화, 텔레비전이 눈만 포식하게 하고 인간이 그 나머지 감각들은 무용지물로 만든다. 오늘날 인간은 입마개를 쓰고 팔 잘린 채 신기루들이 가득 찬 궁전 속을 어슬렁거리고 있다.
그렇지만 이따금씩 진열창으로 큼직한 돌팔매가 날아가고 어떤 젊은 몽뚱이가 그 안에 가득한 금지된 과일들 위로 덮치나니.......
* 돌팔매 만세!

[134] 다양한 생식방식의 차원에서 보건대 대자연은 그야말로 어리둥절할 정도로 창의성을 발휘하고 있다.

[140] 아이가 그 어두운 공허, 그 김 빠진 고통, 그 회색빛나는 허무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것은 필시 맹목적인 의욕뿐 변화하는 현실의 추이 속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나이 때는 모든 것을 확 바꾸어놓고 뒤집어 엎어 놓을 어떤 일, 혹은 어떤 사람의 출현을 기대하게 된다. 그것이 설령 지구 전체에 걸친 대재난일지라도 말이다.

[141] 아이의 생명 리듬은 성인의 그것보다 열배백배 더 빠르게 고동친다. 그래서 그의 내면을 가득 채우려면 열배백배 더 풍부한 삶의 질료들이 필요한 것이다.

[142] 언젠가 어떤 여자를
언젠가 나느 어떤 여자를 얻게 되리라.
그리하여 나의 여자가 한 살이 되면, 나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서투르고 불안하게 첫 발짝을 떼어놓는 그의 뒤를 두 팔 벌리고 따라다니리라. 그리고 꽃과 짐승들과 사람들에게 두려움 없이 다가가는 법을 가르쳐주며 그를 인도하리라. 우리는 굽이치는 파도 속에 몸을 던지고 나는 그에게 바다를 가르쳐주리라. 그는 깔깔대며 팔딱거리는 새끼 바다표범인 양 마치 작은 만 안으로 들어가듯 이 내 품안으로 몸을 피하여 숨을 것이고 마치 어떤 섬으로 올라가듯이 내 등위로 기어오를 것이다.
훗날, 나의 여자는 내가 쓴 책들 위로 수그리고 들여다볼 것이다. 그러면 나는 사물과 사건들을 보지 못하게 가리고 있던 그녀의 그 이상한 실명 상태를 문자와 말들을 통해서 시간 시간 채워주리라. 나는 한 무더기의 잉크 묻힌 종이로부터 공원이, 정원이, 마녀가, 야수가, 끔찍하고 멋진 모험들이, 웃음과 눈물이 솟아나오게 하는 저 마술적인 위력을 그녀에게 불어넣어 주리라. 그리고 나서 마침내 나는 그녀의 손을 종이 위로 인도하여 문자의 근육과 뼈라고 할 수 있는 맺힌 획과 끊어진 획을 긋는 법을 가르쳐주리라.
그리하여 밤마다 나의 여자는 내 몸이 오목한 품에 안겨 잠들리라. 왜냐하면 세상에는 인간의 육체가 고독을 견디지 못하여 슬픔으로 죽어버릴 위험이 있는 더두운 시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나의 여자는 내게 찾아와서 어항 속에 든 물고기처럼, 화분 속에 심겨진 튤립처럼, 내 삶 속에 자리 잡고 나의 삶을 살리라. 그리고 나의 삶은 풍성하고 비옥하므로 나의 여자는 아름다움과 정신과 지혜에 있어서 끊임없이 성장할 것이다. 그리하여 나의 삶은 그녀가 가져다 주는 그 과일에 황홀해하면서 이어지리라. 처음에는 나의 젊고 힘찬 손이 그의 부드럽고 통통한 어깨를 붙잡아주며 인도해주었다. 끝에는 메마르고 얼룩진 내 손이 그녀의 단단하고 둥근 어깨에 기대어 의지하리라.

* 언젠가 생길 그의 연인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의 손녀를 말하는 것일까? 그는 이 글을 쓸 당시 독신이다. 연인과 손녀를 헛갈리게 한 이 글은 연애소설보다도 아름다운 삶의 찬미이다.

5장. 이미지

[145] 자화상 : 임종의 자리에 누운 채 화가 제리코는 그의 오른손으로 왼손을 그리고 있었다.

[147] 곡선은 생체, 특히 인간의 육체의 선이라는 점이 그것이다. 그러니까 직선과 곡선은 수천 년 동안, 이집트건 그리스건 현대건 상관없이, 건축가와 조각가를 구별해주는 요소였다. 조각가는 육체의 곡선과 일치하려고 노력했고 건축가는 이성이 직선을 가지고 집을 지었다. 그런데 바로크 건축과 더불어 바야흐로 곡선이 건축물 속으로 밀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148] 붉은 광대와 흰 광대
이 두 광대야말로 웃음의 정반대되는 두 가지 미학을 구현하는 것이다.

[149] 웃음은 그 옆에 멍청하게 서 있다가 뒤집어쓰는 붉은 광대의 몫이다. 그 붉은 광대는 말이나 이상한 옷차림과 무언의 몸짓을 더할 수 없을 만큼 그로테스크하게 과장하는 통에 모든 공격의 표적이 된다. 그는 멋있어도 안 되고 정신적으로 고상해도 안 되고 심지어는 연민의 정을 불러일으켜도 안 된다. 웃음을 자아내는 것이 그의 맡은 임무인데 그게 안 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백색광대는 의젓하면 의젓할수록 좋다.

[151] - 기가 막히군요! 내가 그렇게까지 완벽한 인간이라니! 내 두 눈이 그렇게까지 똑똑하다니! 정말입니다 눈이 두 개이고 보면 각각 전문화하여 분업을 하지 말란 법도 없잖습니까?
.......
- 그래요. 당신은 세상을 평면상에 놓고 보고 있어요.
당신 눈에는 오른쪽 왼쪽. 위아래는 있지만 깊이는 없어요. 그게 바로 애꾸눈이 보는 세상입니다.
.......
마침내 나는 자구책을 감행했다. 안경을 접어서 주머니 안에 집어넣어버린 것이다. 오, 부드러움이여! 오 다사로운 봄이여! 행인들과 자동차들이 캔버스 위에 비쳐진 그림자처럼 요철 없이 평면적으로 미끄러져가고 있었다.

[154] 미소는 이차원과 가장 잘 어울린다. 입이 커다랗게 벌어지면서 두 눈이 좁아드는 것이다. 그것은 곧 평면적인 삶의 개화다. 어린아이는 그걸 잘 알기에 미소와 정반대되는 찡그리는 표정을 지을 때는 혀를 내밀면서 삼차원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161] 사실 소설에 있어서 어떤 주인공을 그의 출신이나 환경과 상관없이, 즉 배경에 관심을 두지 않은 채 그 자체로서만 그리느냐 아니면 그 반대로 조리개를 잔뜩 오므린 채, 그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으며 존재 이유의 근원이기도 한 사회 역사적 총체 속에 놓고 그리느냐 하는 선택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162] 화가가 자신의 적나라한 얼굴을 거침없이 드러내 보이기 위해서는 르네상스와 그 시대의 대담한 개인주의가 도래하기를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 ‘자화상’ 중에서

[164] 성서에서 신이 스스로의 모습을 본떠서 인간을 만들었다고 했을 때 그것은 곧 인간이 여화와의 자화상이라는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인간은 곧 신의 이미지인 것이다.

[166] 사진작가의 입장에서 볼 때, 번개처럼 빠른 속도로 피사체의 형상을 잡아먹는 그 새카만 입을 자기 자신의 얼굴에다 겨냥하기가 망설여진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남에게는 잘하던 일을 자기 자신에게 하기는 싫어지는 것이다.
* ‘자화상’ 중에서

[170] 만약 당신이 어떤 여자나 어떤 남자나 어떤 아이의 나체 초상을 찍고 싶다면 그 모델을 완전히 벗겨라. 그리고 얼굴을, 오직 얼굴만을 렌즈 안에 담아서 사진을 찍어라. 그러면, 단언하거니와, 그 초상들 위에서 모델의 눈에 보이지 않는 나신을 활짝 펼쳐놓은 책처럼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172] 원척적으로 생식과 무관한 동성애는 그처럼 위험하고 범죄적인 기만술책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이성애보다 더 순수하게 에로틱하다.

[189] - ‘인간들에게는 우연한 것이 신에게는 의도적 섭리다.’

[191] - 사르트르의 제일 중요한 저서의 제목이 『존재와 무』이기 때문이죠. 무는 바로 나무가 던지는 그림자라고 할 수 있거든요.
- 또다시 동음이의어의 말장난이군요!
- 책과 너도밤나무는 원래 그 뿌리가 같기 때문이죠. 생 종 페르스는 말했어요. “한 권의 책을 펴낸다는 것은 한 그루의 나무를 파괴하는 것이다.”라고요. 다른 말로 바꾸면 너도밤나무는 무다 이런 뜻이 되죠.
* ‘너도밤나무는 무다’라는 표현과 사르트르의 저서의 제목 『존재와 무』는 발음이 똑같다.

[194] 초상화는 원래 죽음을 극복하고자 하는 야망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동시대인들보다는 후세 사람들을 상대로 만들어진 것이다.

[194] 초상화는 보다 더 심오하고 더 신비스러운 또 하나의 관계를 시간과 맺고 있다.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 속에다가 모델의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 나아가서는 미래까지도 담겠다고 나서는 것이니 말이다.

[196] 자신의 영상을 본떠서 닮은 모습으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한 여호와는 그들에게 말한다.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퍼져서 땅을 가득하게 하여라.” 그렇게 그는 자화상을 만든 다음에 자기 고아고의 길을 터놓은 것이었다. 결국 십계명의 제2계명인, “너는 그리거나 조각한 영상을 만들지 말라.”에서부터 이미 신의 영상 독점이 공포되어 있었던 셈이다.

[196] 오랫동안 돈은 그러한 모방의 유일한 수단이 된다.

[198] “지혜로움이란 바로 육체에서 영적인 것을 얻어내는 데 있다. 그리고 정치적 지혜로움은 복종에서 일체의 허가를 박탈하는 데 있다.” - 알랭, 프랑스의 사상가

[210] 기층부의 공산당원들이 자기들 사람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한 스탈린의 모습을 그린 피카소와는 달리, 유서프 카쉬는 그가 사직 찍는 저명인사에 대하여 만인이 저마다 마음속에 그리고 있는 이미지를 미리 알아서 만들어내는 천재를 발휘한다. 그가 이미 마음속의 평균적 이미지를 너무나도 정확하게 짚어내고 다듬어 집단의 기억 속에 깊숙이 아로새겨놓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예컨대 처칠-그가 찍은 가장 유명한 인물 사진-을 그가 제시한 태도와 표정 속에서가 아니고서는 더 이상 상상할 수가 없는 것이다.

[210] 라디오, 영화, 텔레비전의 출현은 권력의 이미지와 더불어 이미지의 권력을 뿌리부터 뒤흔들어놓았다. 이 새로운 도구들을 사용하는 것은 정치인에게 있어서 하나의 지상 명령이 되었다. 국가 원수는 탁월한 배우로서의 자질을 가져야 하는가? 라는 겉으로 어처구니 없어 보이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는 사정이 된 것이다.

[212] 우상이란 그 자체의 사실에 의해서라기보다는 그를 바라보는 대중이 그에게 쏟아붓는 욕망과 환상 덕분에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214] 결국은 그 요구에 못 이겨 사울을 선택하여주었다. 그러데 성서는 선택에 대하여 단 한기지만의 이유를 들어보이고 있다. “이스라엘이 낳은 아들들 중에서 이보다 더 잘생긴 사람은 없다. 또 그는 어느 누구와 견주어 보아도 머리 하나만큼은 더 크다.” 왕재로서 이 플레이보디 전통은 한 번도 무너진 적이 없다.
...... 그렇다. 정치 지도자는 잘 생겨야 한다. 이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냥 잘생기기만 해서는 안 되고 호감이 가고 안도감을 주며 열정적... 등등이어야 한다.

[217]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원칙은 가해자의 거짓말에 불과하다.

6장. 풍경

[223] 나는 탱크트럭 그 자체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백 개가 넘는 인심 좋은 젖꼭지를 가진 엄청나게 큰 암퇘지처럼 굶주린 인도 어린이들에게 실컷 빨아먹도록 배를 맡겨놓고 싶은 것이었다.

[235] 모레밭에 좌초한 돛단배처럼 땅에 발목 잡혀 수인이 된 풍차는 땅에서 헤어나 허공으로 떠올라 날아가기 위하여 절망적으로 날개를 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사정이 이러하고 보면, 비행기로 변하여 날고 싶은 이 농기구의 거창한 열망을 풍찻간 주인이 나누어 가지고 있다 한들 전혀 이상할 것이 없을 것이다.

[238] 태초에 아무 가진 것이 없이 사방으로 위협받는 처지였던 인간은 동물들 가운데서도 가장 약하고 가장 적응력이 부족한 동물에 불과했다. 왜냐하면 그의 사명은 - 바로 이 점이 다른 생물들과 인간을 분간시켜 주는 것이지만 - 스스로 자연에 적응하는 대신 자연을 복종시키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240] 구근이야말로 삶과 동시에 죽음의 상징이다.

[247] 나무 테스트. ‘환자’의 심리는 밝혀내기 위하여 정신과 의사는 흔히 그에게 나무를 한 그루 그려보라고 한다. 바로 여기서 서스펜스는 시작된다. 자연 속에도 종이 위에 그린 그림 속에도 완전히 똑같은 두 그루의 나무란 있을 수 없으니까 말이다.

[250] 8월 6일에 맞추어진 예수의 신체적 아름다움의 찬미다. 그날 예수는 베드로, 야곱 그리고 요한과 더불어 티보르 산으로 올라간다. 거시서 돌연 예수는 그들에게 그 찬란하고 거룩한 모습을 숨김없이 다 드러낸다. “그의 얼굴이 태양처럼 빛난다”고 마태가 말했다. 보다 점잖고 보다 신비로운 누가는 이렇게 기록한다. “그가 기도할 때 얼굴 모습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던져지는 기쁨의 빛이 너무나도 강렬하였으므로 베드로는 순진하게도 그 자리에서 천막을 치고 영원히 거기 머물러 있자고 제안한다.
.... 그런데 예수 현성용(顯聖容)의 축제는 매년 8월 6일에 가진다. 이보다 더 나은 선택이란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8월 6일이란 어떤 때인가? 그것은 여름의 절정이다. 그날이 지나고 여름은 한풀 꺽여버릴 뿐이다. 그 아름다움은 절정에 이르렀다.

7장 책

[253] 오래된 옛날 책의 페이지에 찍힌 갈색의 얼룩들은 아마도 독자들이 그 책을 크게 소리내어 읽다가 튀긴 침의 흔적일 것이다. 문어의 책 위에 찍힌 구어의 흔적.

[255] 글을 왜 쓰십니까?
.... 나라면 다른 사람들에게 읽혀지기 위해서 쓴다고 대답하고 싶다.

[255] 모든 창조 행위란 어느 것이나 다 즐거움을 가져오듯이, 내게는 이중의 즐거움이 있다. 창조하는 즐거움과 나의 독자의 공동 창조를 촉발시키는 즐거움이 그것이다. 내가 마음속에 불을 댕기고 그 불이 내게 열과 빛을 준다. 어디 그 뿐인가. 나는 또한 그 불을 널리 퍼뜨리면서 내가 쓴 책들이 온 세상 사람들의 정신과 마음속에 만들어내는 수천 수백만 개의 작은 불빛들이 떨리고 있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다.

[257] 그렇다. 나는 한 권의 책에는 늘 그 책을 쓴 이와 그것을 읽는 이, 이렇게 두 사람의 저자가 있다고 생각한다. 씌어지기만을 했을 뿐 읽혀지지 않는 책은 진정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독자를 애타게 부르고 있는 잠재적인 존재에 불과하다. 이는 마치 땅의 오목한 한구석에 내려앉아 마침내 진정한 존재, 다시 말해서 잎과 꽃과 열매로 변할 때만을 애타게 기다리면서 바람 부는 대로 끝없이 날아다니는 날개 달린 씨앗과도 같은 것이다.

[259] 반면에 손가락으로 더듬어가며 책을 읽는 사람들을 보는 느낌은 전혀 다른 것이다! 단어들을 손으로 만져보고, 은유들을 쓰다듬어보고, 구두점들을 문질러보고, 동사들의 맥을 짚어보고, 형용사를 엄지와 검지로 집어들어 보고, 한 문장 전체를 애무해본다는 것은...... 얼마나 공감이 가는 행동인가! 한 권의 책이 마치 내 무릎 위에 엎드려서 가르릉거리는, 그래서 내가 주의 깊은 애정을 다하여 두 손으로 쓰다듬게 되는 한 마리의 작은 고양이와 흡사한 그 무엇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얼마나 큰 공감을 갖는가!

[262] “홀의 맨 뒷좌석에는 벽을 이루며 늘어서 있는 입석 손님들의 그늘 속에 한 기이한 감상자가 앉아 있었는데 그는 바로 각별한 호의를 입어 시르크 회관에 입장하곤 하는 스테판 말라르메였다. 그는 베토벤이나 바그너의 마력에 매혹되긴 하지만 동시에 고차원적인 라이벌 의식에서 오는 저 순결한 고통을 맛보았다. 그는 마음 속으로 항변하고 있었다. 그는 또한 위대한 언어예술가로서 저 음의 신들이 그들 나름대로 내뿜으며 퍼뜨리는 바를 판독하는 것이었다. 말라르메는 어떤 숭고한 질투심에 가득 차서 연주회장을 나섰다. 그는 너무나 강력한 음악이 그에게서 훔쳐간 신비스럽고도 중요한 그 무엇을 우리의 예술을 위하여 다시 찾아올 방법이 없을지 절망적으로 모색했다. 시인들은 그와 더불어 눈이 부시고 풀이 죽어가지고 시프크 회관을 나서는 것이었다.”

[263] 시인이 눈이 멀고 풀이 죽는다고 한다면 소설가는 그와 반대로 음악의 모범에 의하여 깨달음과 생기를 얻게 되지 않을까? 음악은 시에 너무 가까워서 시의 생명을 앗아갈 위험이 있다.

[264] “내 시와 나란히 음악을 갖다놓는 것을 금지한다!” - 빅토르 위고

[264] 베토벤의 제7교향곡의 알레그로토나 라벨의 4중주의 첫 악장을 들으면서 “그래, 바로 이런 이야기를 들여줘야 하는 거야.” 하고 마음속으로 부르짖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266] 현대 작곡가들은 듣는 살마의 귀에 와서 충돌하면서 깜짝 놀라게 만드는, 도끼로 탁 끊어버리는 방식을 택한다. 아마도 그들은 베토벤식 피날레에서 교훈을 얻은 것인지도 모른다.

8장. 죽음

[273] 만년의 앙리 몽프레드에게 근황을 묻는 사람에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분통이 터질 일이다. 나는 지금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난 절대 아무 탈이 없는 것이다!”

[274] 의사들은 그들의 권력의지에 사로잡힌 나머지 우리들의 죽음을 차지해버렸다. 우리들의 죽음만이 아니라 출생과 사랑까지도 다 독차지했다. 태어나는 인간과 사랑하는 인간과 죽어가는 인간의 머리맡에는 항상 의사가 지키고 있다. 마치 출생과 사랑과 죽음-인생의 가장 중요한 세 가지 마디-은 유감천만인 사고요 치료하면 낫는 병이나 된다는 듯이 말이다.

[279] 그림자. 삶의 길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간다. 어린아이는 뜨는 해를 등지고 걷는다. 몸집이 작은데도 큰ㅂㄱ한 그림자가 앞서가고 있다. 그것이 그의 미래인데, 입을 딱 벌리고 있지만 또한 납작하게 눌려진, 약속과 위협으로 가득 찬 동굴이다. 아이는 흔히들 그의 ‘열망’이라고 부르는 그 동굴을 향해 나아간다.
정오가 되면 해는 남중하고 그림자는 어른의 발 밑으로 완전히 빨려들어가게 된다. 완성된 인간은 당장 발등에 떨어진 일들에 정신이 팔린다. 그는 미래 같은 것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는 아직은 그의 과거가 발걸음을 무겁게 하지도 않는다. 그는 다가올 날에 대한 두려움도 없고 흘러간 세월에 대해 향수를 느끼지도 않는다. 그는 현재를, 동시대인을, 친구를, 형제를 믿는다.
그러나 해는 서쪽으로 넘어가고 성숙한 인간에게는 등뒤에 그림자가 생겨나서 점점 길어진다. 이제부터 그는 점점 더 무거워지는 추억들의 무게를 발뒤축에 끌고 다닌다. 그가 사랑했다가 잃어버린 모든 사람들의 그림자가 자신의 그림자에 보태지는 것이다. 과연, 그의 발걸음은 점점 느려진다. 과거의 덩치가 점점 커짐에 따라 그 자신은 점점 작아진다. 뒤에 달린 그림자가 너무 무거워져서 걸음을 멈추어야 되는 날이 온다. 그러면 그는 사라져버린다. 그는 송두리째 그림자로 변하여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가차없이 맡겨진다.

[282] 오필리아는 그녀의 아버지가 살해되는 것을 보고서 미쳐가지고 자살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녀는 그냥 아버지와 함께 저 무거운 물 속으로 깊이 잠겨버렸고 오직 꿈꾸는 듯한 두 눈과 노래하는 입술만을 아직 물 위로 떠올라 있었던 것이다.

[284] 사랑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어떤 사람이 누구를 진정한 사랑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게 하는 한 가지 표시가 있다. 그건 그의 신체의 어떤 다른 부분보다도 얼굴이 상대에게 육체적인 욕망을 자아낼 때이다.”


[292] “........ 요즘엔 무엇보다 흡혈귀의 문제에 심취해 있어요. 그 주제를 가지고 한 권의 소설을 써보려고 말입니다. 아주 결정적인 흡혈귀 소설을요. 모리스 라벨이라는 작곡가는 왈츠곡을 작곡했었죠. 그가 원했던 것은 흔히 있는 왈츠곡들 중 한 곡이 아니라 왈츠곡 그 자체였어요. 과연 그 곡이 발표된 이후에는 아무도 왈츠를 더 이상 작곡하지 않았죠. 내가 원하는 흡혈귀 소설도 그런 거예요.” 부정관사가 아니라 정관사가 붙는 흡혈귀 소설! 투르니에는 항상 이런 식이다. 얼른 들으면 매우 오만한 발언이다. ....... 흡혈귀 소설의 결정판. 그 신화의 궁극적 해석. 그런 작품을 쓰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중요한 신화적 테마는 영원한 재해석, 혹은 다시 쓰기의 대상임을 그가 모를 리 없다.

[293] 「작가가 써서 출판한 한 권의 책이란 이렇게 가볍고 피가 없는 한 마리 새에 불과합니다.」
......
“피는 끔직한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오랜 전통 속에서 피는 곧 성스러운 생명입니다. 예수의 피를 받는 성배가 그렇고 영성체가 그렇습니다. 피가 없다는 것은 생명이 없다는 뜻이지요. 생명이 없는 자는 생명의 피를 애타게 그리워하게 되어 있어요. 이 핏기 없는 한 마리의 새. 반쯤만 존재하는 새, 즉 한 권의 책이 살아서 날 수 있게 되려면 바로 이 가벼운 새가 독자의 심장에 내려앉아 그의 피와 영혼을 빨아들여야 합니다. 그 과정이 바로 독서라는 것이지요.”라고 말하면서 그는 펼쳐진 책의 안쪽 페이지를 자신의 가슴에 갖다댔다. 그때 그 책의 표지와 제목이 내 눈에 들어왔다. 『흡혈귀의 비상-독서록』

[294] 〈작가가 한 권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는다는 것은 얼굴도 모르는 남녀 군중들 속으로 종이로 된 수천 마리의 새를, 바삭 마르고 가벼운, 그리고 뜨거운 피에 굶주린 새떼를 날려보내는 것이다. 이 새들은 세상에 흩어진 독자들을 찾아간다. 이 새가 마침내 독자의 가슴에 내려앉으면 그의 체온과 꿈을 빨아들여 부풀어오른다. 이렇게 하여 책은 작가의 의도와 독자의 환상이 분간할 수 없게 되섞여서-마치 한 아기의 얼굴에서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생김새가 섞이듯이-들끊는 상상의 세계로 꽃피어나는 것이다. 그 다음에 독서가 끝나고 바닥가지 다 해석되어 독자의 손에서 벗어난 책은 또 다른 사람이 또다시 찾아와 그 내용을 가득한 것으로 잉태시켜주기를 기다린다. 이렇게 주어진 사명을 다할 기회를 가진 책이라면 그것은 마치 무한한 수의 암탉을 차례로 도장찍어주는 수탉처럼 손에서 손으로 전해질 것이다.〉이것이 『흡혈귀의 비상』이라 이름지을 수 있는 그의 유명한 독서론이다.

[298] 너는 무엇을 먹고 사니? 하고 물으면 각각의 동식물들이 먹이의 이름과 그 맛을 설명한다. 다음에는 바로 그 먹은 자를 먹은 자가 그 맛을 설명한다. 결국 마지막으로 피를 먹고 사는 흡혈귀에게 피맛이 어떻더냐고 묻자 그 대답이 시의 결론을 이룬다. ‘달고 달더라. 너는 이 맛을 모를거야, 초식동물이여!’
* 제오 노르쥬, 20세기 초엽 벨기에의 대표적인 시인.

[303] 그는 번역의 노고를 치하하면서 그러나 번역은 오로지 장차 자기 개인의 글을 쓰기 위한 연습으로만 생각하라고 충고했다. ‘그렇지만 번역과 자기 글을 서로 혼동하면 안 될 것 같아요. 가령 내 최근 소설을 옮겨놓은 당신의 번역을-물론 아주 훌륭하죠-읽어보고 두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어요. 첫째는 원서에 있는 몇몇 대목들이 번역서에 와서 없어져버렸다는 점이예요.’ 그럼 두 번째 놀라움은 뭐죠? 하고 매우 불안해진 내가 물었다. ‘두 번째 놀라움은 그와 반대로 원서에서는 찾을 수 없는 몇 페이지를 번역서에서 읽을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당시 나는 스무 살이었고 시건방진 바보였으므로 E.M. 레마르크의 문장을 별로 대단찮게 생각하고 있었다. 얼굴이 뻘개져서 말을 한참이나 더듬다가 나는 방자하게도 이렇게 말했다. ‘두 번째 것이 첫 번째 것보다 나으면 되는 것 아닌가요?’ 그는 너그럽게 그냥 미소만 지어보였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번역자란 작가의 반쪽에 불과하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번역을 하면서 작가 지망생은 자기 스스로의 언어에 다한 장악 능력만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인내, 돈도 명예도 거두지 못한 채 꼼꼼하게 실천해야 하는 저 불모의 노력을 배우는 것이다. 그것은 문학적 덕목을 배우는 좋은 학교다.

[304] “그 내용을 책으로 묶은 것을 한 부 보냈기에 들춰보았죠. 그런데 놀랍게도 그 속에 내 글이 한 편 실려 있는 거예요. 아무리 봐도 내가 쓴 적이 없는 글이라 여간 의아하지 않았습니다. 자세히 보니 바로 내가 독일 신문에 독일어로 쓴 바로 그 글을 누군가가 프랑스말로 번역한 것이었어요. 그런데도 그 글은 전혀 내 글이 아니더군요.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 이상한 번역을 원문과 대조해보니 한군데도 ‘틀린 데’가 없더라는 점이예요. 문학 텍스트의 번역은 이처럼 그냥 틀리지만 않으면 되는 게 아녜요.”

Ⅲ.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은 사부님에게 1월 수업 중에 추천받은 책이다. 책을 추천받았다고 하기엔 뭔가 조금 부족한 설명인 것 같다. 저자 ‘미셸 투르니에’를 추천하셨다고 하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 이 책과 더불어 다른 한 권을 더 추천하였는데, 『흡혈귀의 비상』이다. 이 책을 추천받은 이유는 내가 쓰게 될 책은 ‘미셸 투르니에’의 수필같은 책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 책을 읽게 되면서 나는 아마도 조금은 저자를 닮게 되었을 것이다. 저자가 날린 책이라는 새가 내게 날아와 잠시 나의 가슴에 머물다 가면서 남긴 흔적이다. 책을 읽는 이는 어느 면에서는 저자와 사랑에 빠진다. 사랑은 숨기려고 해도 드러난다고들 말한다. 그렇다. 사랑에 빠진이는 그것을 전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전하는 이는 어딘지 모르게 사랑에 빠진 이와 점점 닮아간다는 점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드러낸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날 놀래켜 눈을 동그랗게 뜨게 하고, 닮고 싶은 그의 모습은 여러 가지이다. <내 그대를 찬양했더니 그대는 그보다 백 배나 많은 것을 갚아주었도다. 고맙다. 나의 인생이여!>라고 말하는 저자처럼, 나를 감싸고 있는 모든 것들에 고맙다고 키스를 손으로 보낸다.

1장 집. 나는 몇일 동안 저자의 집에서 그와 함께 사는 소년이었다. 투르니에가 사는 사제관에서 집과 대화를 나누고 집을 돌보았고, 그 안에서 휴식했다. 다락방으로 오르는 계단과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을 보며, 상승과 하강과 그리고 죽음이라는 어두움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3장 육체. 육체에서는 몸의 각 부분들과 말을 걸어보고, 그 중 몇에게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육체를 보는 투르니에의 장난섞이고 아름다운 시선이다. 5장 이미지. 이미지는 환상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끔 만들고 그것을 숭배하게 만드는 어떤 것이다. 그래서 이미지 안에는 내면속의 진실이 숨어있다. 7장 책. ‘왜 쓰는가?’에 대해서 투르니에의 답이 실려있다. 나에게도 물어보았다. 왜 쓰려고 하는가? 그 질문을 나는 바꾸어 보았다. ‘왜 그리고 싶은가?’ 작가는 쓰는 것을 통해 세상과 만난다. 쓰는 것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어 소통한다. 쓰는 것 속에는 자신의 관심분야가 들어가 있고, 작가가 사는 세상이 담겨있다. 8장 죽음. 왜 하필 이 장이 맨 마지막 장인가. 그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어느 한 작가의 약력」이라는 대목에서 정리해 두었다. 미리서 묘비에 씌여질 글도 써 두었다. 일흔을 훌쩍 넘긴 노작가의 글이다. 이 대목에서는 잠시 물러서자고 속삭이자. 그때의 나이가 되면 닮고 싶어져도 괜찮다. 미셸 투르니에는 다소 무거워질 수 있는 주제에 대하여 유쾌하게 다루고 있다. 8장 뿐만이 아니라 그가 여행한 도시들에서 느낀 이국적인 모습과 가난과 어린이들, 예수와 육체와 종교에 대해서도 그렇다. 이 책에서 보여지는 저자의 모습은 잔잔한 미소를 지니고 있는 노작가이면서, 호기심으로 눈이 반짝이는 소년이고, 세상에 애정이 가득담긴 청년의 모습이다. 다른 책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지 궁금하다. 자신이 본 사물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어떤 포인트를 잡아내어 그것이 되고자 하는 점이 다른 책에도 담겨 있을까 궁금하다.

그러면서 나를 돌아본다. 나는 어떤 모습인가. 나는 내 인생을 어떻게 쓸 수 있을까.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어떻게 종이에 옮길 것인가.

사부님의 추천 이유는 책을 읽는 사이에 잊혀졌다가 다시 떠오르곤 하였다. 그것이 내 모습인 듯 하다. 책을 읽는 중에 떠오르는 이미지. 여기저기로 가지를 뻗어나가는 나무를 닮은 상상. 그것이 바로 내가 책을 보는 방식이고 세상을 보는 방식이다. 그렇게 나와 저자 사이를 오갔다. 대체 나는 미셸 투르니에에서 무엇을 찾아와야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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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63 [독서42] 경영의 역사를 읽는다/스튜어트 크레이너 지음 [1] 素田최영훈 2008.01.27 4233
3762 (39) 공간의 안무 - 볼프강 마이젠하이머 [1] [2] 時田 김도윤 2008.01.27 9852
3761 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어요? : 요슈타인 가아더 소현 2008.01.28 3453
3760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1] 우제 2008.01.28 4167
3759 [43] 마크 트웨인 자서전/ 마크 트웨인 [1] 써니 2008.01.29 3610
3758 [번역008] 12장 내면의 신념에 따른 삶(Living with Inner Conviction) 香山 신종윤 2008.01.31 3979
3757 [독서43]뼛속까지내려가서써라/나탈리골드버그 素田최영훈 2008.01.31 2486
3756 헤르만 헤세 <정원 일의 즐거움> [3] 소은(蘇隱) 2008.02.01 3726
3755 [43] 이미지와 환상 - 다니엘 부어스틴 [2] [1] 校瀞 한정화 2008.02.01 6533
3754 [44] 낯선 곳에서의 아침/ 구본형 써니 2008.02.03 2535
3753 어린이는 어떻게 어른이 되어가는가-프랑수아즈 돌토 우제 2008.02.04 39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