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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21일 07시 17분 등록

인간과 환경의 문명사 - 데이비드 아널드 지음/서미석 옮김 [한길사]


1351년, 유럽 전역을 휩쓸고 지나간 흑사병은 유럽 전체 인구의 1/3이상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로 인한 인구 감소의 결과로 농촌마을은 버려졌고 그 가운데 다수는 영원히 유기되었다. 흑사병이 인간의 목숨을 빼앗아간 것과는 달리 자연계에는 또 다른 변화를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개체 수가 점차 줄어들고 있던 유럽의 야생생물들이 멸종위기에서 벗어났고, 급속하게 사라지고 있던 삼림과 습지가 회복하게 된 것이다.

인간 역사의 원동력은 읽어내는 것은 각자의 관점에 달려있다. 또한 시대적 상황이나
주변적 특수성에 의해서도 관점의 차이가 나타날 수 있다.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바라보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다.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서구사상에 있어서 자연은 시대에 따라 그 해석이 달리되어져 왔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자연은 일정한 목적이나 의도를 위한 것이었으며 아퀴나스에게의 자연은 신의 섭리에 의해서 인간을 위해 사용되어지도록 운명 지어진 그것이었다. 자연은 말로 자기를 나타내지 않기에 인간은 그를 정복의 대상의 위치에 놓기도 하고 때로는 두 관계의 조화로움에 초점을 맞추기도 하였지만 인간을 위협하는 대상의 위치에 놓이기도 한 것이다. 데이비드 아널드는 이 책에서 환경론자 패러다임 이라는 것을 탐구해 나가고 있다.
[14]이는 환경(질병, 기후, 야생생물, 식물 등도 포함)이 사회와 사회의 문화적, 물질적 조건과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를 이해하는 것은 물론 인간의 역사에도 강력한 영향을 발휘해 왔다는 사고방식이다. 여기에서는 또한 전 세계의 자연을 형성하고 개조하는 데 인류가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는 인식도 포함된다. 이러한 환경패러다임은 20세기 중반에 와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저자 아놀드가 서문에서 언급했듯이 유럽중심의 환경패러다임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인디언의 시각에서 잠시 언급한 것을 제외하고 아시아인의 자연에 대한 세계관은 논의에서 빠져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그 이유는 지금까지는 환경에 대한 초점이 주로 유럽과 북미에 있었고 믿어도 좋은지 모르지만 동양적 사고는 자연을 덜 개발하려하는 사고가 서양 사고와 놀랄 정도로 대조적이라는 것 때문이라고 한다. 이 책은 저자가 행커스터 대학과 런던의 동양 및 아프리카 연구소 학부 역사학 강좌에서 소개했던 내용을 엮은 것이다. 제자들의 비판적 견해가 그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그 만큼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강의에 참여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나아가서 열린 강좌였다는 것도 동시에 나타내고 있다.

저자 : 데이비드 아널드 David Arnold

1946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엑서터 대학 역사학과를 졸업하고 서식스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랭커스터 대학을 비롯해 호주의 플린더스 대학, 탄자니아의 다르에스살람 대학 등에서 강의했으며, 1988년부터 런던의 동양 및 아프리카 연구소 남아시아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68년 초, 2년 동안 인도를 방문하게 되면서 남아시아에 대한 관심을 키워 그 분야에 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진행했고, 현재는 19세기 서구 의학사상의 ‘열대성’이라는 관념에 대한 연구와 1911년에서 1947년까지 인도에서의 의학 연구와 정책에 관한 책을 편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기근 : 사회적 위기 및 역사적 변화』(Famine: Social Crisis and Historical Change), 『신체의 식민지화 : 19세기 인도의 국가 의학과 전염병』(Colonizing the Body: State Medicine and Epidemic Diseases in the Nineteenth Century India) 등이 있으며, 그밖에 식민지주의와 의료문제를 중심으로 한 많은 편저서가 있다.

역자 : 서미석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를 졸업하였으며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한길사에서 펴낸 『세상을 뒤바꾼 열정: 위대한 페미니스트 울스턴크래프트의 혁명적 생애』『십자군전쟁 그것은 신의 뜻이었다』『패션의 문화와 사회사』를 비롯해 『아이반호』『그리스 로마 신화』『러시아 민화집』『아서 왕과 원탁의 기사』『북유럽 신화』『해밀턴 신화집』『로빈 후드』『켈트족 옛이야기』『호모쿠아에렌스』 등이 있다.
[저자 탐색-yes24시]

2. 내 마음에 들어온 글귀

[P7] 자연 풍토에 따라 인간이 us하다고 본 히포크라테스
히포크라테스는 사라들이 모두 기본적으로는 매우 유사하지만 환경의 적응력, 즉 물, 공기 그로인해 걸리기 쉬운 질병 등의 영향으로 서로 차이를 보인다고 생각했다. 매서운 북풍이나 계절의 변화처럼 자연에 동요를 일으키는 것은 체격과, 질병에 걸리기 쉬운 소인을 결정짓는 몸의 네 가지 기분 혹은 체액에 그만큼의 효과를 미친다고 생각했다.

[P8] 자연을 조화로운 것으로 바라보던 기존의 시각에 의문을 제기한 맬서스와 다윈
‘인구의 원리에 대한 소론’에서 맬서스는, 인구는 무한하게 증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식량부족, 전염병, 그리고 전쟁으로만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맬서스의 글에서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아 자연선택의 원리를 파악한 다윈은‘종의 기원’을 통해, 자연을 조화롭고 불변의 것으로 보는 대신 종들 사이의 끝임 없는 경쟁과 ‘적자생존’을 강조했다.

[P9]
흑사병으로 인한 인구감소로 인해 농촌마을들은 버려졌고, 그 가운데 다수는 영원히 유기되어졌다. 그러나 덕분에 개체수가 점차 줄어들고 있던 유럽의 야생생물들이 멸종의 위기에서 벗어났고, 급속하게 사라지고 있던 삼림과 습지는 회복의 기회를 맞이했다.

[P10] 대항해 시대의 무분별한 식민지 정책은 인간과 환경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스페인의 통치 첫 10년 동안 부분적으로는 어리석고 부분적으로는 폭력적이고 분별없는 조치를 취한 콜럼버스의 행정 때문에 원주민의 인구는 심각하게 감소했다.

[P11] 황열병과 말라리아에 대한 면역력 덕분에 흑인노예들은 노예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 백인들은 아프리카의 여러 풍토병으로 사망 했지만, 흑인들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래서 백인들은 아프리카인들이 뜨거운 지역에서 힘든 일을 하도록 특별히 타고났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P12] 미국의경계가 서쪽으로 이동하는 동안 인디언과의 전쟁은 미국의 여러 주들이 통일도니 행동을 취하게 만든 자극제가 되었다. 백인들은 인디언들을 자연에 가까운 환경의 일부, 삼림, 강, 산길처럼 원시적이고 방해가 되는 존재로 여겼다. 그러나 동시에 인디언들은 미국을 만들어 주는 힘이기도 했다.

[P13]18세기말에 유럽인들이 한 곳의 열대지역에서 다른 열대지역으로 시물을 옮겨 얻는 경제적인 이득에 눈뜨기 시작하면서부터 시물의 교환은 좀 더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형태를 갖추었다. 폭정을 일삼던 블라이 함장에 대한 선상의 반란이 일어났던 바운티 호의 항해 목적은 빵나무 묘목을 타히티에서 서인도 제도로 옮기는 것이었다.


[P13]유럽인들이 인도에 처음 접했을 때 이미 인도의 많은 부분에서 환경은 수 천 년 동안
물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이용되어왔다. 유럽인이 생각하는 열대지방의 전형적인 틀에서 벗어나 있던 인도 주민들은 유럽의 질병에 전멸되지 않았고, 풍경은 다양한 문화의 흔적으로 뒤덮여 있었다.

1. 자연의 지위

[P37]자연과 문화가 역동적으로 관련되어 있으며 역사는 깊고도 지속적인 이러한 관계와 어느 정도 집중되어 있다는 신념이다.

[P39]환경결정론 견해는 기후, 건강, 의학의 3박자가 역사적으로 가장 강력하고도 널리 표현된 어법 가운데 하나임에 틀림없다.

[P8]아시아는 식물이든 사람이든 그곳에서 자라는 모든 것의 특성 면에서 유럽과는 매우 다르다. 아시아에서는 모든 것이 더 크고 우수하게 자라며, 토양의 특성이 부드러운 동시에 주민들의 성격도 좀 더 유순하고 덜 격하다. 이렇게 된 이유는 기후의 한결같은 조합 때문인데, 아시아가 새벽을 맞이하며 해가 뜨는 한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극단적으로 춥거나 더운 지역은 없다. 혹서와 혹한이 없고 온화한 기후가 우세할 때에 경작이 용이하고 풍요로운 수확을 거들 수 있다.

[P45] 혹한과 혹서가 둘 다 비껴가는, 아시아인들이 겪는 미미한 기후변화는 그들의 정신적 무기력과 겁의 원인이 된다. 아시아인들은 유럽인들보다 덜 호전적이며 기질도 유순한 편이다. 그 이유는 성질이 날카롭게 만들어 무모함과 성급함을 초래하는 물리적 변화와 정신적 자극을 겪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은 변화가 없는 조건에서 살고 있다. 늘 변화가 있는 곳에서는 사람들의 정신이 침체되지 않도록 자극을 받는다.


[60] 1874년에 벤저민 디즈레일러는 자신의 소설 탱크렛에서 “모든 것은 인종이다. 다른 진실이란 없다”고 언급했다. 3년 후 빅토리아 시대의 가장 열성적이고 영향력 있는 인종이론가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로버트 녹스는 간단히 “인종은 모든 것이다”라고 선언함으로써 훨씬 짧고도 예리하게 표현했다.

[61] 모든 시대에, 지구의 전 지역에서, 온난한 지역의 주민들이 열대지방의 주민들보다 우월했다는 것이 사실이 아니란 말인가? 인종의 모든 대규모 침투 및 이동은 오히려 반대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온 것이었다. 열대지방의 토착 문명이 오늘날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과거 어느 때에 단 한 번이라도 존재했었다는 기록은 전혀 없다.

[62] 동물계와 식물계에서 더 유리한 것들이 불리한 품종들을 희생시켜 증가하듯이, 유럽의 잡초가 타고난 생장력과 더 큰 생존 및 번식력으로 토착 잡초를 절멸시키며 북미와 오스트레일리아에 퍼졌듯이, 유럽인도 미개인을 희생시켜 증가할 수 있었다.

[69] 토인비는 순전히 인종과 민족국가의 발전이라는 관점에서만 씌어졌던 역사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그는 인류의 문화적 본원으로 되돌아가 문명의 역사 그 자체 뒤에 어떠한 요인이 도사리고 있는지 확립하려고 했다.

[72] 토인비는 ‘힘든 지역의 자극’ 에 대한 보편적인 명제에 도달했다. 즉, “환경의 안락함이 크면 클수록 환경이 인간에게 가하는 문명의 자극은 그만큼 약화된다.” 반면에 거꾸로 “환경이 점점 더 험난해짐에 비례하여 문명의 자극은 더욱 커진다.” 그러나 비록 초기 문명에서 “도전이 클수록 응전도 커진다”는 원칙을 예증하는 중요한 실례로 환경을 들기는 했지만, 토인비는 환경을 문명화된 삶이 발전하는 데 단지 하나의 요인으로서, 역사가 발전함에 따라 그 중요성이 감소된다고 보았다.

[87] 인간의 모든 요구, 즉 의식주와 연료를 충족시킬 수 있고 바로 그러한 목적을 위해 신에 의해 특별히 예정되었다는 자연의 본질적인 풍요로움을 믿는 신념은 다른 많은 문화에서처럼 서구 전통에서도 오래 지속되어 온 것이었다. 그 신념은 낙원과 에덴 동산에 대한 고대의 관념과 종교와 예술에서 지속되었던 그 매력으로 분명히 나타나며, 심지어 광고와 관광 사업에조차 들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89] 맬서스의 이론에서는 자연이 두 가지 역할을 하고 있다. 첫째, 자연은 완전함․비옥함‧ 모든생물(동물‧식물‧사람)이 자신의 적정선을 벗어나 번식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한다. 그러나 둘째로, 자연은 이러한 방탕을 억누르도록 끊임없이 작용하는 파괴적인 힘(기근‧흑사병 ‧질병)을 초래하기도 한다.
[94] 이러한 혁신들 역시 부정적인 결과를 낳았다, 유럽의 해외 확장은 ‘전 세계를 유린’하게 되어, 자연적인 야생생물의 대대적인 파괴, 외래종의 유입, 자원을 무모하게 개발하는 세계 경제의 시작을 불러왔다. 신석기 시대의 혁명보다도 훨씬 더 심각한 두 번째 ‘대변형’은 화석연료의 사용과 산업화의 보급과 함께 일어났다.

[95] 폰팅은 인류 전체의 역사를 통해 인구가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생각하며, 그 영향과 중요성을 먼 과거에서부터 읽어내고 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파괴의 흔적은 산업화와 19, 20세기의 도시화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바로 정착사회의 기원으로까지 1만 년이나 거슬러 올라가는 냉혹한 과정인 것이다. 토인비에게는 ‘힘든’ 환경을 딛고 영웅적으로 애써 성취해낸 문명이었던 것이 폰팅에게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인더스 유역의 문명 이후로 깨지기 쉬운 생태계를 되돌릴 수 없이 파괴하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너무 동떨어져 있어서 인간의 존재 자체가 본래부터 자연 생태계의 보존에 위협이라고 할 수 있다.

[110 흑사병의 도래와 그로 인한 농촌 인구의 감소는 ‘중세의 촌락 형성이라는 첫 추세에 결정적인 종말’을 몰고왔다. 마을은 버려졌고, 그 가운데 다수는 영원히 유기되었고, 이전의 경작 가능한 땅은 양 떼가 풀을 뜯는 곳으로 변해버렸다. 인간의 삶에 그토록 파괴적인 질병인 페스트 덕분에 적어도 유럽의 야생동물(점차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던 늑대를 포함하여)이 감소 위험에 벗어났고, 급속하게 사라지고 있던 삼림과 습지는 회복할 기회를 맞이했다. 또한 사회적‧정치적 측면에서도 전염병의 충격은 대단했다. 특히 영국에서는, 전염병 문에 봉건주의는 종말을 맞이했고 개인적 봉직에 근거했던 사회에서 화폐 경제에 기반한 사회로의 변화가 가속화되었다. 땅은 많고 노동력은 빈약한 상황에서 영지제도는 쇠퇴하여 농노들이 부유한 소작농이 되고, 얼마 후에는 자영농이 될 수 있었다.

[123] 흑사병은 전염병이 인간 역사의 과정에 어떻게 갑작스럽게 거대한 충격을 미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데 이용되어왔다. 그러나 질병은 물론 사람‧동물‧식물이 관계된 네트워크의 연결 고기로 생각되기도 했는데, 이 네트워크는 바다를 가로질러 팽창한다.

[126] 크로즈비의 설명에서 중심적인 주제는 역사에서의 생물학적 요인들의 중요성이다. “인간은 로마 가톨릭교도나 자본주의자거나 그밖에 다른 무엇이기 이전에 생물학적 존재”라고 크로즈비는 단언한다. 그리고 계속 이어서 주장한다.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은 다른 유기체에 영향을 주고, 거꾸로 영향을 받기도 하면서 수천 년 동안 이 지구에 존재해온 생물학적 존재로서 인간을 살펴보는 것이다.”

[129] 수백 년 동안 아메리카 원주민 인구가 급격히 감소한 데 대한 설명 가운데 하나는 스페인 사람들의 잔인한 행위와 에 대한 ‘흉악한 전설’이었다. 몇 가지 점에서 흑사병과 ‘흉악한 전설’은 중세 말기와 근대 초기 세계의 커다란 두 가지 대학살에 대해 경쟁적으로 해설한 것인데 하나는 생물학적 ‘사고’를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과실을 의미한다. 정복 기간과 그 직후의 시기동안 원주민은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쫓겨나고, 약탈당하고, 식량을 빼앗기고, 사유지와 광산에서 골수가 빠질 정도로 험한 조건에서 일하도록 강요당했다고 한다.

[137] 1492년 콜럼버스가 도착한 지 25년 만에 “잘 조직되고 조화로웠던 원주민 사회는 외국에 예속된 혼란스러운 프롤레타리아로 전락했고, 일상적인 관습과 기쁨을 잃어버렸다.”심지어 살아남아 자식을 번식시키겠다는 의지마저도 사라졌다.

[138] 그러므로 아메리카의 인구 감소는 유일하게 ‘처녀지’ 전염병과 ‘세균의 침입’이라는 뜻밖의 결과인 생태학적 사고만은 아니라 유럽인들의 인종적 멸시, 야만적인 경제정책, 토지와 부에 대한 탐욕의 결과이기도 하다. 부에 대한 유럽인들의 냉혹한 추구는 스태너드의 악평으로 나타내면 순전히 ‘고의적인 집단학살’ 이나 마찬가지였다.

[141] 돼지와 토끼들은 사람이 먹을 목적으로 재배하던 작물을 먹어치우거나 가축이 먹을 초지까지도 해치웠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생태학적 균형이 결정적으로 유럽인들의 이익에 유리하게 바뀌었다.

[142] 크로즈비의 생물학적 결정론은 우리가 살펴본 이전의 결정론의 종류와는 분명히 여러 점에서 다르다. 이 결정론은 주로 기후나 기후 변화에 대한 것이 아니다. 기후는 직접적으로 결정적인 효과가 있는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았지만 온난한 지역과 열대지방 사이이 차이가 크로즈비의 전체 주장에 중요하기 때문에 유럽 생물군의 군체 형성에 적합한 세계의 지역에는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143] 그러나 이러한 업적을 존중한다고 하더라도 크로즈비의 생물학적 결정론은 몇 가지 이유에서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근본적으로 단일 원인으로만 설명하는 떠한 해석과 마찬가지로, 크로즈비는 너무 많은 것들을 단일 작용력과 생물학으로 귀착시키고, 인간의 의식적인 작용력에는 너무 비중을 두지 않으려 했다.

[143] 분명히 크로즈비의 주장에는 많은 강점이 있다. 그는 신유럽이 유럽의 생물학적 복제물로 변형되도록 함께 작용하는 유입 집단의 총체인 생태학적 ‘혼성’ 이론을 확립하기 위해 질병에 관한 논의를 환경변화, 그 가운데서도 주로 식물과 동물의 변화를 다른 요인들과 효과저긍로 통합한다.

[145] 적자생존의 관점에서 자연을 보는 다윈의 견해를 크로즈비는 생물학적 관점에서는 물론 사람의 관점에서도 전적으로 지지한 것 같다. 그 결과 크로즈비는 막대한 인명 손실과 ‘생태학적 제국주의’의 진척으로 소진된 부유하고 다양한 사회의 손실에 대해서는 회고의 눈길을 아끼지 않는다. 크로즈비는 환경의 도전을 극복(결국에는 유럽‧아시아‧아프리카가 수익자가 된 옥수수와 감자를 재배하는 데)하거나 또는 험준한 안데스의 산허리를 게 만들기 위한 정교한 계단식 논과 수로를 창안하는 데 콜럼버스 이전 사회가 거둔 놀랄 만한 성공을 무시한다. 크로즈비는 정복군대와 함께 나아가고 있다.

[147] 유럽의 흑사병과 아메리카의 인구 감소는 비슷한 현상으로 생각되어왔다. 즉, 유럽 인구의 3분의 1 또는 어떤 경우에는 멸종에 이를 정도로 막대한 인명을 감소시키는 데 페스트가 한몫 했다고 말이다. 게다가 유럽의 흑사병과 아메리카 인구 감소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 현상으로 생각된다. 흑사병은 유라시아의 질병 저장소의 통일을 완성한 것으로 생각된다. 천연두‧홍역‧발진티푸스‧인플루엔자 및 다른 질병으로 인한 아메리카의 인구 감소는 이러한 통합 과정이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로, 이어서 오스트레일리아와 태평양으로 확장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두 사건 사이에는 노예라는 또 다른 연결고리가 있다.

[152] 면역력 덕분에 흑인들은 노예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 아메리카 원주민은 유럽과 아프리카의 질병으로 사망하고, 백인들은 아프리카의 질병으로 사망했지만, 흑인들은 두병에 모두 살아남을 수 있었으므로 오래지 않아 백인들은 아프리카인들이 뜨거운 지역에서 힘든 일을 하도록 특별히 타고났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152]신세계의 열대 저지대에서는 말라리아와 황열병이 아메리카 원주민의 사망을 촉진했을 뿐 아니라 백인들도 견디지 못하게 방해했다. 그러므로 질병의 충격이 가장 심각했던 곳은 어디에서나 아프리카의 노예들이 백인 자유노동자 계급을 대체했다. 그러나 대규모 사탕수수 농장이 출현하면서 백인 노동자는 카리브 제도에서 이미 감소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158] 터너는 자신의 전 스승으로서 민주주의를 포함하여 미국의 제도가 유럽과 특히 그 당시에 흔히 그랬듯이 독일 민족의 초기 제도에 그 기원을 두고 있고 믿었던 허버트 백스터 애덤스를 비롯한 다른 역사학자들의 견해에 반대했다. 터너는 유럽과의 이러한 관련을 부인하고, 대신 미국 역사 경험의 독특함을 강력하게 주장하려고 애썼다.

[163] 경계에서 형성된 경험에서 미국 민주주의의 정신이 태어났다. 테네시의 앤드루 잭슨은 터너가 본 민주주의는 “독일 삼림에 대한 이론가의 꿈에서 온 것이 아니라, 아메리카 삼림지에서 단련된 강력하고 단호하고 충만한 삶에서 비롯되었다”고 요약했다.

[176] 소어는 경계가 서부의 개척자와 원시적인 자연의 신비한 상호작용에 있지 않고, 풍경의 물리적 특성인 초목과 정착 패턴에 있는 것으로 보았다. 초기의 유럽인이 인디언의 존재에 대해 문화적으로 알지 못했거나 이 땅이 ‘비어 있는’ 땅이며, 사용되지 않았으며, 아무도 점유하고 있지 않으므로 자신들이 가질 수 있음을 입증하고 싶은 욕망에서 인디언의 존재를 무시했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변형의 손길’은 ‘인디언의 풍경’ 속에서 처음으로 분명히 나타났다.

[179] 터너 이후의 다른 많은 저자들처럼, 말린은 아메리카 생태계의 커다란 다양성을 가강조했다. 단일한 서부란 없었으며, 균일하거나 전형적인 경계 환경이라는 것도 없었다.

[181] 이러한 현실적 개혁주의자의 입장에서 말린은 터너의 환경결정론적 가정의 또 다른 견해, 다시 말해서 1890년에 경계의 종말과 ‘비어 있는’ 땅의 상실로 인해 생겨난 ‘닫힌 공간’ 에 대한 비관론적 견해와 경쟁했다. 말린의 견해로는 캔자스 평원 같은 지역은 결코 완전히 닫힌 곳이 아니었다. 그곳은 땅이 수많은 다른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는 새로운 문화적 가능성이 언제나 열려 있었다. 한 문화의 입장에서 보면 쓸모없었던 것이 또 다른 문화에서는 가치 있는 자원이 될 수도 있었다. 말린은 그렇게 맬서스식 시나리오를 거부했다.

[185] 인디언들은 이 땅에서 천 년이나 살았고, 땅을 거의 변화시키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한 세대만에 아메리카의 경계가 이 땅을 바꾸어놓았다. 대규모 이주는 그 땅을 한쪽으로 제쳐두었던 아메리카 원주민에게나, 그 땅을 빼앗아 이용했던 개척자들에게나, 땅 그 자체에게나 혁명과도 같았다.

[187] 역사학자들은 경계와 경계가 작용한 변화들에 대한 터너의 획일적인 주의적 이해에 여전히 비판적인 반면, 생태 경계의 전진이 동일한 순서나 중요성 면에서 모든 곳에 존재하지는 않지만 깊고도 상대적으로 빠른 환경변화‧문화변화의 과정으로 점차 완결되는 일련의 단계라고 여전히 생각하고 있다.

[191] 삼림 벌채의 중요성과 그에 수반된 생태학적 사회적 변화는 미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어 면에서 그러한 변화는 칼소어와 더욱 최근에는 데이비드 와트가 묘사했듯이 서인도 제도의 좀더 약한 섬 생태계에서 훨씬 더 두드러졌다.

[193] 최초의 질병 침입에 이어 새로운 식물과 동물의 유입으로 ‘종의 대체’가 재빨리 뒤따랐다. 돼지들은 작물을 먹어치우고, 급격히 증가하며 숲에서 난폭하게 뛰어다녔으므로 원주민 생존에 새로운 위협이 되었다.

[194] 노예 노동력을 기반으로 한 사탕수수 농장의 발전은 분명히 이익추구가 그 동기였다. 네덜란드의 자본을 들여오고 브라질로부터 새로운 재배방식 도입한 데 힘입어 사탕수수는 1640년대 이후로 서인도 제도의 섬들로 급속히 퍼져나갔다.

[196] 많은 경우에 생물하적인 것의 성공은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조건을 자신의 상업이익에 맞추는 유럽인의 능력이나 결단력(서인도 제도의 사탕수수 대농장의 경우에서처럼)과 문화적인 것에 의존하고 있었다.

[204] 최초의 유럽인들은 아메리카의 황무지가 물리적인 황무지인 만큼 그리스도교와 정복을 소리쳐 요구하고 있는 정신적인 불모지로 간주했다. 청도교가 생각하기에 이러한 성서적 이미지의 황무지는 자신들의 신앙과 인내력을 시험하는 것이었다. 자신들의 임무는 ‘험악하고 울부짖는’ 황무지를 정돈된 지상의 에덴 동산으로 바꾸도록 신에게 부여받은 임무였다.

[211] 아메리카의 정체성과 운명은 이렇게 자연환경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 영향력은 역사 그 자체만큼이나 사료편찬에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동일시가 중단되어야 할 시점이 있었는데, 그 시기가 되면 풍경이 자아의 모습을 버리고 타성의 이질적인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3. 내가 저자라면

환경, 특히 자연환경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각이 어떻게 변화하여 왔는지를 한 학기 동안 수강한 적이 있었다. 강의는 세미나 형식으로 진행되었으며 진지하고 엄숙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엄숙했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자연에 대한 나름의 경외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진지했다는 것을 달리표현하면 강좌를 수강할 수 있는 자격이 결코 쉽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동서양의 역사를 통하여 인간의 자연에 대한 시각이 어떻게 변하여 왔는가를 살펴가면서 우리는 나름대로의 각 시대별 자연관에 대하여 개인적 의견을 반드시 언급해야 했었다. 고대 그리스, 로마인들에 대한 자연관에서부터 1962년에 발표된 리이첼 카슨의 ‘봄에 침묵’에 이르기 까지 우리가 이야기 한 것은 고대와 중세, 근대, 그리고동양과 서양을 뛰어넘는 전 인류 역사를 통한 폭넓은 시각으로 이루어 졌다. 이러한 강의에 참여하기 위해서 우리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다. 주어진 책을 읽고 주요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야 했으며 개인적 의견은 반드시 첨부되어져야 했었다. 상대 의견에 대한 냉철한 비판은 물론이거니와 개개인의 의견도 타 수강생의 의견과 조율되어 수정되어지는 것 또한 당연했다. 수강생 모두가 힘들었지만 행복해 했다. 동물에 대한 권리를 이야기 할 때 개인적 경험으로 울먹이는 사람이 있었는가하면 새만금을 비롯한 청계천복원 등에 관한 의견을 나눌 때는 그것들에 대한 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열띤 의견을 주고받기도 했다.
‘인간과 환경의 문명사’ 는 저자가 대학 강의시간에 사용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였다. 일방적인 강의 자료라기보다는 다른 시각을 가진 학생들이 이 책을 쓰는데 중요한 단서가 되었고 동료교수들의 비판적인 내용 또한 중요한 자료가 되는데 한몫을 했다.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해 볼 때 책의 구성 내용은 신선하다.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서 자연을 그 중요한 위치에 올려놓고 바라보았다는 인류 역사 속에서 자연과 인간, 인간과 과학, 그리고 인간과 신에 대한 폭넓은 이야기의 전개가 가능하다는 것을 이야기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역사가·철학자·지리학자·인류학자·과학자들이 문화의 발전을 설명하고, 문화의 차이점을 이해하며, 식민지화·노예제도·인종의 우월성을 정당화하거나 비난하려고 자연에 대한 사상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보여주고 있다. 환경결정론, 생물학적 결정론 사상의 주된 이론적 역할을 조사하고, 이러한 사상이 각기 다른 시대에 여러 가지 방식으로 권위·정체성·저항의 도구로 어떻게 이용되었는지도 설명하고 있다. 또한 자연에 대한 사상이 얼마나 강력하면서도 문제의 소지가 많은 것인지 보여준다. 여기서 문제라는 것은 저자의 시각일 수도 있고 문제성을 가진 진지한 문제가 될 수도 있는 것 들이다. 자연에 대한 인류의 시각이 시대와 공간에 따라 달랐듯이 학자 또는 개인의 시각도 역사속의 주어진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서해안의 기름유출 사건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인근 국가들, 나아가서는 수많은 생명체들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 이러한 시점에서 환경을 바라보는 시각은 고대 그리스 시대와는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근대에 있어서 자연은 탐구의 대상으로 인식되었던 것처럼 21세기의 인간에 대한 자연은 ‘자연이 일방적인 피해자’로 등장할 수 도 있고, 다른 시각으로는 자연이 인간의 야만적 행위에 대해 반기를 들고 일어나 거대한 꿈틀거림을 시작하는 대상으로도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자연에 대한 인류의 시각에 따라서 인간의 삶의 방식 또한 달라질 수 있다. 서양을 거대한 제국주의의 집단이라는 시각으로 볼 때 자연은 신이 인간에게 선물한 것, 과학이라는 눈으로 관찰하고 탐구하는 대상으로 위치지어진다. 반면 고대 동양적 사상에서 바라본다면 자연은 놓여진 그대로 인정되어지며 인간 또한 자연의 한 부분으로 이해되어지는 것이다. 자연을 이용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과 우주 구성의 한 요소, 단순한 인간 세상 이상을 뛰어 넘는 시각으로의 자연과는 엄청난 견해 차이가 있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데이비드의 본서는 그 한계점을 다분이 지니고 있다. 물론 그도 글의 서두에 이야기 했다시피 환경에 대한 인간의 시각이 북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연구되어 왔다는 점이 있기는 하지만, 역사적 시각은 단순히 역사적 사실에만 근거를 한다는 것은 한계점을 지니게 마련인 것이다. 역사적인 것일수록 다양한 시각이 필요하다. 서양 중심의 환경패러다임의 역사적 고찰은 학자적 입장에서 그 무슨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한계점을 안고 출발한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주로 인간의 행위에 초점을 맞추어 바라본 기존의 방식에서 탈피하고 환경론적 관점에서 바라본 사실은 새롭다. 몽테스키외의 환경결정론, 다윈 이후의 인종결정론, 토인비의 문명론, 터너의 경계 논제, 아날학파를 비롯하여 브로델, 맬서스, 크로즈비, 웨브, 훔볼트 등 많은 저자들의 견해를 소개하고 있는 것은 인간과 환경과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이해하는데 보다 넓은 시각을 지닐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사실이다. 역사가가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의 폭이 데이비드 아널드에 의해서 더욱 넓어지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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