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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22일 21시 27분 등록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나탈리 골드버그 / 권진욱 옮김 / 한문화


Ⅰ. 저자에 대하여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Wrtiting Down The Bones:Freeing The Writer Within)』
의 저자 나탈리 골드버그는 이 책을 통해 글쓰기에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이 책은 백만부 이상 팔렸고, 14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나탈리 골드버그는 세미나를 통하여 30년 동안 글쓰기를 가르쳐오고 있다.

나탈리 골드버그는 선명상과 더불어 같이 시작한 painting 작업 또한 25년 넘게 계속하고 있으며, 그녀 자신의 선체험을 글쓰기에 접목하여,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자기 확신으로부터 창조적 작업이 이루어짐을 역설한다.

1999년,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나탈리, 그녀의 정신세계'란 제목으로 동행 취재하여 그녀의 그림, 글쓰기 가르침, 걷기 명상등의 다양한 활동들을 담아 방영하기도 했다.
현재는 New Maxico 북부에 살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글쓰기에 관한 오디오북, 그녀의 시와 에세이와 painting을 담은 것, 소설 등으로 다양하다. 'Wild Mind: Living the Writer's Life' (1990), 'Long Quiet Highway ' (1993), 'Banana Rose' (1995), 'Living Color:A Writer Paints Her World’' (1997), 'Thunder and Lightning' (2000), 'Top of My Lungs' (2002), 'The Great Failure ' (2004), 'The Essential Writer's Notebook' 등이 있다.


자료출처 및 참고 사이트: 나탈리 골드버그 홈페이지(http://www.nataliegoldberg.com/)

Ⅱ. 가슴으로 읽는 글귀(인용)

추천의 말
[5] 이 책은 글을 쓰고자 하는 이들만이 아니라 인생의 모든 모험을 앞에 두고 있는 이들에게도 최고의 안내서이다.
* 글쓰기에 관한 책에 붙여진 최고의 추천사이다.

[5] 작가는 다른 사람들에게 지식을 나누어 주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그보다는 작가는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기 위해 글을 쓴다. ...... 글을 쓰기 위해서는 ‘세상으로부터 차단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여 수용할 수 있는’ 균형 잡힌 집중력을 가져야 한다.

[12] “뭣하러 굳이 명상 모임에 찾아오는 겁니까? 당신은 왜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단련하지 않죠? 만약 당신이 글쓰기 안으로 깊이 몰입할 수 있다면, 글쓰기가 당신을 필요한 모든 곳으로 데려다 줄 것입니다.”

[13] 나는 문학이란 것과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그야말로 미친 듯한 불꽃같은 사랑이었다. 나는 제랄드 만레이의 시를 타자기로 옮겨 쓰고 또 옮겨 써서 나중에는 그의 시를 깡그리 외우게 되었다.

[15] 에리카 종이 쓴 <과일과 채소>라는 얇은 시집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무심코 책장을 넘기다가 어리벙벙해졌다. 아뿔싸! 바로 요리에 대한 시였다. ‘아니, 이런 것도 시가 될 수 있단 말인가?’
맙소사! 이렇게 평범한 것이 시란 말인가? 내가 매일 하는 그런 일이 시라고? 그때 무언가가 나의 신경망을 건드리고 지나갔다.

[16] “자신이 사랑하는 일에 믿음을 갖고 계속해서 밀고 나갈 때만이, 그 일이 자신이 가야 할 길로 이끌어주는 법이지.”

[18] 수업시간에 나는 학생들과 함께 여러 가지 방법의 글쓰기를 시도해 본다. 시간이 지나면서 학생들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나타낼 것인지 알게 된다.

[18]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말은 긴장을 풀고, 몸과 마음 전체로 이 책을 흡수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읽는 데서 끝내지 말라. 부디 써라. 그리고 자신을 믿어라. 자신의 요구가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여러분이 이 책을 쓰임새 있게 만들어주기를 바란다.

[19] 글쓰기는 매번 지도 없이 떠나는 새로운 여행이다.

[21] 노트 크기도 생각해 보자. 노트가 주머니에 들어갈 만큼 작다고 해서 생각을 담는 용량마저 적은 것은 아니다. 생각을 적어 넣을 수만 있다만 그만 아닌가.
* 냅킨에 항공사를 세우는 아이디어를 그린 사람도 있다.

[23] 내부 세계가 외부 세계를 창조한다는 말은 참말이다. 하지만 이 외부세계와 우리가 쓰고 있는 연장(연필과 종이) 또한 우리의 사유 형태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사실이다. 하늘에 대고 글쓰기를 못할 것도 없다.

[24] ‘첫 생각’과 만나서 거기서부터 글을 터낼 때 당신은 싸움에 나선 전사가 되어야 한다. 특히 처음 시작하는 사람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감정과 에너지의 힘에 질려 겁을 먹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손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당신은 생각의 심장부로 뚫고 들어가도록 손을 계속 움직여야 한다.
.... 자신의 감정을 넘어서야만 저 반대편 심장부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눈물을 흘리는 데서 멈추서는 안된다. 눈물을 넘어 진실을 파고들라. 이것이 원칙이다.

[26] 첫 생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마음에서 제일 먼저 ‘번쩍’하고 빛을 낸 불씨다. 이 불씨의 뿌리는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잠재력과 맞닿아 있다.

[27] ‘내 목구멍에서 데이지 꽃을 꺾는다.’

[27] 첫 생각은 참신함 그리고 영감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영감이 오는 순간에 당신은 신과 하나가 될 수 있다.

[29] 글쓰기 훈련을 하는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는 자신의 몸과 육체를 믿는 법, 다시 말해 인내심과 공격하지 않는 마음을 키우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30]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믿는 법을 배운 다음 글을 쓰게 되면, 그것이 사업상의 서류이든 장편 소설이든 박사 논문이든 또는 여행기이든, 그 글에는 힘이 실리게 된다.

[31] 열망은 절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게을리 하거나 회피하는 사람에게는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32]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졸작을 쓸 권리가 있다.”라고만 하자. 그저 많은 글을 쓰겠다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라.
..... 나는 한달에 노트 하나를 채우는 것으로 내 임무를 다 한다. 그저 이 노트를 채우면 그만이다. 그것이 내가 정한 나의 글쓰기 훈련법이다.
* 나는 그저 한달에 하나씩 이 스케치북을 채우겠다. 그것이면 족하다?

[35] “난 미치도록 사랑에 빠져 있어.”

[36] 헤밍웨이는 그의 작품 <움직이는 사육제 A Moveable Feast>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파리에서 미시간 이야기를 썼듯 어쩌면 나는 파리를 벗어난 후에야 비로소 진짜 파리 이야기를 쓸 수 있을지 모른다. 그것은 내가 파리를 충분히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파리를 떠난 후에야 알게 되기 때문이다.”

[37] 똑같은 시간을 주었음에도 남보다 많은 분량의 글을 써내는 학생을 보면 나는 기분이 좋아진다. ...대개 그런 학생들은 자신의 마음을 하나의 재료로서 탐색하고 있는 게 보인다. 이런 학생들이야말로 그저 ‘나도 글을 써보겠다’는 소망에 머물지 않고 실제로 훈련 과정을 충실히 거쳐 앞으로도 계속 글을 써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다.

[37] 한동안 나는 쓰고 싶은 주제가 늘 똑같았던 적이 있었다. 예를 들어 1983년 8월부터 12월까지 내 습작 노트를 보면, 거기엔 내가 여러 달 내낸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글을 쓰려고 노력한 흔적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때 나는 이 주제에 매달려 거기에 맞는 퇴비를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어찌된 영문인지 지금도 모르겠지만, 12월에 접어들어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미네아폴리스에 있는 제과점인 크로아상 익스프레스에 멍하니 앉아 있었고, 내 앞에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장시 한 편이 놓여 있었다. 내가 말해야 했던 모든 것들이 갑자기 에너지를 발산하면서 하나의 통일된 실체를 이루어낸 것이다. 퇴비에서 한 송이 붉은 튤립이 피어난 순간이었다.

[41] “주말 내내 네 노트 읽느라고 혼났어. 아주 친밀한 글이더라. 하지만 어떤 글은 겁에 질려 있고 불안감이 배어 있었지. 지금의 네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너의 모습이라고는 상상도 못할 아주 거친 에너지가 들어 있는 생경한 글도 읽었어. 그리고 지금 내 앞에 네가 다시 서 있어. 육체를 가진, 하나의 인간으로서 너의 모습은 글과 또 달라. 정말 재미있는 일이지?”

[43] 우리 스스로가 게으르며 불안정하고 자기혐오나 두려움에 쌓인 존재, 정말 말할 가치도 없는 존재라는 사실과 직면하는 순간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 그때 당신은 더 이상 어디로도 도망을 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를 것이다. 이제 당신은 별 수 없이 자신의 마음을 종이 위에 풀어 놓아야 하며, 그 가련한 목소리가 들려 주는 말을 경청해야 한다.

[43] 자신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아는 것도 좋은 일이다. 그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하다.

[51] ‘훈련’이란 언제나 잔인한 말이다. 나는 이 단어를 가지고 나의 게으름을 토벌하려 했지만, 소원대로 효과를 거둔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폭군과 저항군 사이의 싸움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53] “말할 때는 오로지 말 속으로 들어가라. 걸을 때는 걷는 그 자체가 되어라. 죽을 때는 죽음이 되어라.”
그러므로 글을 쓸 때는 쓰기만 하라. 열등감과 자책감으로 중무장한 채 자신을 학대하는 싸움은 하지 말라.

[61] 작가는 작품을 쓸 때 모든 것을 항상 처음 대하는 기분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61] “아이들 책상 밑을 한 번 보세요. 바닥이 온통 신발에서 묻어 온 흙 때문에 아주 지저분하죠. 정말 좋은 신호예요. 봄이 왔다는 신호니까요.”
* 뚝배기 불고기를 싸 먹을 상추를 접시에 담고 있었다. 상추가 따뜻하다. 매니저님은 주방에서 상추를 따뜻한 물로 씻었다고 한마디 하셨다. 나는 ‘소독도 되고 좋고만.’ 했다. 매니저님이 웃으셨다.

[63] 글쓰기는 글쓰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

[63] 만약 장편을 쓰고 싶다면 장편을 써라. 쓰고 싶은 글이 에세이거나 단편이라면, 그렇게 쓰면 된다. 장르에 상관없이 원하는 글을 써 보는 과정에서 그 장르가 가지는 특성을 배우게 된다. 당신은 점점 자기만의 기술과 기법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될 것이다.

[67] 스스로 속지 않도록 경계하라. 시시각각 우리는 변한다. 그리고 매 순간마다 변한다는 사실, 이것처럼 좋은 기회도 없다. 우리는 한 순간에 얼어붙어 있던 자신과 자신의 이상으로부터 빠져 나와 신선하게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다.

[69] 당신은 또 다른 흐름에 몸을 맡기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시에 들어가 있는 단어는 당신이 아니다. 당신 몸을 빌어 밖으로 표출되었던 ‘위대한 순간’이다. 그 순간을 잡아내 글로 옮길 수 있도록 항상 깨어 있는 것이 작가가 할 일이다.

[71] “왜?”라고 끊임없이 묻거나 옷을 고를 때처럼 신경을 곤두세우는 대신 우리 마음은 모든 것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울 정도로 열려 있어야 한다.

[71] 글쓰기와 인생 그리고 정신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런 경계가 없다. 자동차를 먹는 사람을 창조해낼 정도로 생각을 자유롭게 하는 사람만이 개미를 코끼리로 만들고 남자를 여자로 바꿀 수 있다. 이런 사람만이 각각의 분리되어 있는 형태들을 무너뜨리고 모든 형태 속에 이이 들어 있는 공통된 무언가를 찾아내게 될 것이다.

[72] 아주 오랫동안 한 가지 생각에 머물러 본 적이 있는가? 바로 그런 상태가 지속되다가 어느 한 순간 생각이 비약적으로 튀어오를 것이다.

[77] 글쓰기는 맥도날드 햄버거가 아니다. 패스트푸드가 아니라 슬로우푸드다. 요리는 천천히 익어 가고 있으며, 시작 단계에 있는 당신은 그 음식이 구이가 될지, 바비큐가 될지, 국이 될지 아직 모르는 것이다.

[79] 당신을 가장 괴롭히는 강박증에는 힘이 있다. 당신이 글을 쓸 때마다 언제나 같은 곳으로 돌아가게 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바로 이 강박증의 변두리에서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들을 창조해낼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하라. 그리고 이번에는 당신을 괴롭히던 강박증에 일부러 에너지를 쏟아 부어보라. 이제 우리는 강박증이 자신을 위해 봉사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79] 가족에 대한 글을 쓰지 않겠다고 억누를수록 그와 관계없는 일상 생활의 다른 부분까지 억압받는 느낌에 빠지곤 한다.

[80] 우리는 알게 모르게 강박 충동의 조정을 받는다. 강박증은 엄청난 힘을 갖는 것처럼 보인다 그 힘을 거부하지 말고 이용하라.

[85] 작가가 쓰는 글은 이 세상 모든 것을 재료로 해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소중한 존재들이며, 우리의 삶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작가가 되려는 당신은 알고 있는가? 덧없이 지나가 버리는 세상의 모든 순간과 사물들을 사람들에게 각인시켜 주는 것 그것이 작가의 임무다. 만약 우리 인생의 작고 평범한 부분들이 중요하지 않다면, 우리는 당장 원자폭탄에 의해 전멸당해도 아무 할 말이 없는 것이다.

[87] 단지 재료를 섞기만 한 반죽에는 아무런 생명이 없다. 사랑과 증오라는 감정의 에너지를 가해 세부를 채워 나가야 한다. 하나의 숨 쉬는 생명체로 창조해야 한다.

[87] 삶의 모든 세부 상항들을 조심스럽게 다루고 다정하게 접촉하라. 당신을 둘러싼 것에 진정한 관심을 기울이라. 강에 대해 쓰고 있다면 그 강에 온 몸을 적셔라. 그 강이 탁한 황토 빛로 둔하게 흐른다고 적는다면 당신의 몸이 그 탁한 느낌을 그대로 느껴야 한다.

[95] 위대한 작가들의 작품을 읽어보라. 작가가 영감을 받고 글을 써 내려가던 순간의 호흡이 생생하게 느껴질 것이다.

[96] 만약 당신이 진정으로 불후의 명작을 완성시키고 싶다면 위스키를 마셔서는 안 된다. 대신에 세익스피어와 테니슨, 키이츠, 네루다, 홉킨스, 밀레이, 휘트먼 ..... 이들의 글을 소리내어 읽고 또 읽어 당신 몸을 그들의 운율에 맞춰 춤추게 만들어야 한다.

[98] “노래를 잘 부르는 비결의 90%는 청음입니다. 당신은 먼저 제대로 듣는 법부터 배워야겠어요.”
..... 글쓰기 역시 90%는 듣기에 달려 있다. 열심히 들으면 당신을 채우고 있는 내면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

[100] “방금 읽거나 쓴 글을 기억해 내서 가능한 가장 근접하게 표현해 보세요. 어떤 것이든간에 여러분에게 강하게 다가오는 것을 기억해 내세요. 제발 ‘그녀가 농장에 대해서 말한 부분이 마음에 들었어요’라는 식으로 말하지 말아요. 그보다 훨씬 상세하게 어떤 것인지 알려주세요. 예를 들면 ‘들판에 서 있으면 나는 소보다 더 외롭다.’ 이렇게요.”

[117] 글쓰기에 관련된 오래된 속담이 하나 있다. ‘말하지 말고 보여주라’는 말이다.
무슨 뜻인가? 이것은 이를 테면 분노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서, 무엇이 당신을 분노하게 만드는지 보여 주라는 뜻이다. 당신 글을 읽은 사람이 분노를 느끼게 하는 글을 쓰라는 뜻이다.

[122] 그냥 ‘꽃’이라고 부르는 대신 ‘제라늄’이라고 말할 때 당신은 현재 속으로 더 깊게 뚫고 들어가게 된다.
..... 사람의 이름도 마찬가지다. 같이 글쓰기 수업을 받는 다른 사람의 이름을 가능한 빨리 알아 두라. 그러면 자신이 속해 있는 모임의 성격을 빨리 파악하게 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작품 토론에 훨씬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될 것이다.

[136] 작가들은 위대한 애인이다. 작가들은 다른 작가들과 수수로 사랑에 빠진다. 이것이 바로 글쓰기를 배우는 방법이다. 그들은 한 작가에게 다가가, 그가 쓴 모든 작품들을 통해 그가 어떻게 움직이고 휴식을 취하는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는지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읽고 또 읽는다.

[144] 제일 좋은 글은 당신의 안에 들어 있는 모든 것이 실린 글이다. 작품을 쓰다가 세상으로 나갈 때는 당신의 모든 것을 데리고 나가라. ...... 그리고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라. 나는 내일 다시 글쓰기로 돌아갈 수 있으며, 한 마리 동물이 되어 거리를 쏘다니고 있는 지금도 나의 글쓰기는 계속되고 있다고.

[147] ‘혹시 내가 만든 질문에 답을 못하면 어쩌나?’하는 두려움은 떨쳐 버려라. 글쓰기는 안개에 싸여 있는 마음에 불을 지피는 행위다. 종이 위에 안개를 옮겨 놓지 말라. 설사 확실하지 않을 때라도 자신이 그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표현하라. 이런 훈련은, 문장을 훨씬 힘차고 생동감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149] 글쓰기 좋은 장소를 선별하는 것도 하나의 기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154] 작업실에 대하여.
비가 새지 않고, 창이 하나 있고, 난방만 된다면 그만이다. 책상과 선반, 푹신한 의자 하나면 들여놓으면 당장이라도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 ‘달과 6펜스’에 이런 집이 나온다. 고갱의 삶에서 영감을 얻어서 만들어진 주인공의 집에는 소파는 없고 딱딱한 의자만 달랑 하나 있다.

[158] 글쓰기는 발견의 기록이다. 당신은 자신이 쓰고자 하는 화제에 대한 사전적 정의가 아니라, 당신과 그 화제와의 관계를 발견하기를 원한다.

[159] 성애의 감정을 간직한 채 지금 먹고 있는 멜론의 느낌을 표현한다면, 성애와 연관된 단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고서도 독자에게 성적인 것을 느끼게 해 줄 수 있다.

[162] 평범한 것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을 배우라.

[164] 그래도 또 다른 노트를 꺼내, 다른 만년필을 잡고, 쓰라. 그냥 쓰고, 또 쓰라. 세상의 한폭판으로 긍정의 발걸음을 다시 한번 떼어 놓아라. 혼돈에 빠진 인생의 한복판에 분명한 행동 하나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 그냥 쓰라. “그래! 좋아!”라고 외치고, 정신을 흔들어 깨우라. 살아 있으라. 쓰라. 그냥 쓰라. 그냥 쓰기만 하라.

[166] 글쓰기에서 자신이 해야 할 말을 다 했다고 생각될 때, 조금만 더 자신을 밀고 나가 보라. 당신이 종점이라 생각하는 곳이 실은 초입에 들어선 것에 불과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항상 끝까지 도달했다고 생각하고 멈추었던 곳에서 조금 더 멀리 나갔을 때, 당신은 제어할 수 없는 아주 강한 감정과 만나게 될 것이다.

[167] 매우 드문 일이긴 하지만, 나는 최고의 글을 쓰고 있을 때 가슴이 미어지는 것을 느낀다.
당신이 글을 밀고 나가 그저 적당한 종점에서 끝맺으려고 한다면, 그 글에는 당신의 진정한 숨결이 배어날 수 없다. 글쓰기는 자유를 향해 헤엄칠 수 있는 위대한 기회다. 그 기회를 놓치지 말라.
심지어는 당신이 자신을 충분히 밀고 나갔고 철저하게 자아가 깨졌다고 느낄 때조차도, 조금만 더 앞으로 밀고 나가라. 중간에서 멈추지 말라. 이 순간은 다시는 같은 방식으로 되돌아오지 않는다.

[169] 모든 사람들에게는 인생에 대한 커다란 두려움이 하나씩 있다. 나의 두려움은 고독이다. 우리에게 두려움이 중요한 이유는 자신의 꿈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이 두려움을 극복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171] 하얀 종이는 앞에 있는데, 마음은 불확실하고 사고는 연약하기만 하고 감각은 무디고 둔하다. 하지만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렇게 조절력을 잃어버린 글쓰기, 결과물이 어디에서 나올지 확실치 않은 글쓰기는 무지와 암흑 속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이것과 정면으로 부딪칠 때, 이러한 무지와 암흑의 장소에서 출발한 글쓰기가 결국에는 우리를 깨우쳐 주며,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게 만든다. 이런 두려움의 회오리바람에서부터 진정한 천재의 목소리가 탄생되는 것이다.

[173] “만약 그곳 사람들이 당신을 쓰러뜨린다면 당신은 일어나야 합니다. 그들이 또 다시 당신을 쓰러뜨린다해도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얼마나 많이 쓰러지든, 당신은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그것만이 당신이 해야 할 일입니다.”

[179] 만물은 아무런 이유 없이 생겨나도 또 사라져간다. 이거야말로 더 바랄 것이 없는 기가 막힌 기회다.

[181]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아주 좋은 질문이다. 우리는 이따금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그 질문 안에 모든 대답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182] 한가지 알아야 할 점은, 글쓰기가 인생을 치료하는 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글쓰기 자체가 치료술은 아니라는 점이다.

[188] 당신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일 그 자체가 아니라, 당신이 어떻게 그 일을 하고 있는가, 어떤 방법으로 그 일에 접근해 나가는가 그리고 그 일에서 어떤 가치를 얻는가 하는 점이다.

[192] 우리는 작품 속과 작품 바깥이라는 두 가지 세계를 하나로 묶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술은 비공격의 실천이다. 우리는 작품 속에서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도 이 기술대로 살아야만 한다.

[193]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는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 마음속에 있는 가장 깊은 비밀이다.

[195] 위대한 불교 지도자인 초감 트룽파는 사업가가 되려면 우선 먼저 위대한 전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두려움을 떨여내야 하며, 한 순간에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즉흥 글쓰기 창구는 바로 이러한 위대한 전사가 될 수 있는 기회다. 글을 쓰는 동안 모든 것을 집중해야 하며, 그 다음에는 아무 미련없이 자기가 쓴 글을 고객에게 넘겨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198] 즉흥 글쓰기 창구는 글을 떠나 보내는 데 더없이 좋은 훈련이다. 자신이 쓴 글을 완전히 떠나 보내는 것, 그럴 수 있을 때 당신은 작가로서 완전하게 설 수 있다.
* ‘마음을 전하는 편지’는 글을 떠나보내는 것이다. ‘좀더 잘 쓸 걸’, ‘다른 말로 바꾸었어야 하는데’라는 미련따위까지 떠나보내는 것이다. 1년의 기간으로 주어진, 50개의 칼럼도 그런 연습이다.

[200 ] 짧은 시를 쓰고 싶다면..
* 천장의 불이 커피잔 안에 잠겼다.
까만 밤에 밝은 불빛 하나
손의 움직임을 따라 흔들린다.

[202] 우리는 한 편의 좋은 장편을 얻기 위해 세 편의 장편을 쓰는 훈련을 거칠 수도 있다. 형식이란 이렇게 어려운 것이다. 문학의 형식도 배워야 하지만 우리는 또한 인생이라는 형식을 채워 나가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인생의 형식에도 훈련이 따른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205] 마스터베이션, 마스터베이션, 마아아아스... 마!마!마!
마! 마스터. 바베 베 베이 션 션 션 .....
... 데이비드는 시작부터 이미 글의 모든 규칙을 파기하고 오직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고 싶은 방식으로 말했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충격을 주고 잇는 자신의 목소리를 계속해서 신뢰했다. ....... 나는 그의 결단력에 감동을 받았으며 그가 가진 유머감각을 사랑하게 되었다.
* 정말이지 웃음이 터져나오는 파괴다.

[206] 이미 잘 쓰는 글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이들은 자신이 서 있는 곳을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새로운 개척지를 개간하고 미지의 세계 속으로 나아가는 것ㅇ르 주저한다.

[206] “무엇이 문제인지 알았어요! 여러분 중에는 금지된 약물을 먹어본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겁니다!”

[214] 모범생이 되기 위한 모범생은 되지 말라. 규칙에 얽매이면 글쓰기에 필요한 ‘진짜 현실’이라는 반석을 얻지 못한다. 그냥 옥수수 밭으로 들어가라. 심장 전체로 글을 쓰라.

[215] 글을 쓰는 인생이 어떤 것인지 배우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큰 도전이다. 그 도전을 받아들이라.

[216] 더 이상 갈 곳이 없을 때.
그 동안 글쓰기를 회피하려 얼마나 애써왔는지 상관없다. 어느 순간 당신 앞에는 글쓰기만이 버티고 서 있다. 그 이후부터 당신은 하루하루의 기분에 의해 당신의 마음이 좌우되거나 흔들리지 않게 된다.

[218] 글쓰기는 숨을 쉬는 것과 똑같다. 아무리 급하고 중요한 일이 있어도 숨쉬기를 잊어버릴 순 없다.

[221] ‘화요일 아침 냉랭한 부엌에서 먹은 그 바나나, 나는 세계가 딱 멈추는 줄 알았다.’

[224] 고독은 언제나 우리를 물어 뜯습니다. 우리는 익숙해서가 아니라 그 속에 서 있을 수 있는 법을 배우기 위해 고독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224] 예술은 의사소통이다. 고독의 씁쓸한 맛을 본 사람은, 거기에서 혼자 외롭게 지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동지애와 연민을 배우게 된다. 그런 다음에는 비슷한 처지의 다른 구군가를 생각하고 그에게 당신의 인생을 알려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작품을 끌고 나가게 된다. 당신의 글이 또 다른 외로운 영혼에게 닿을 수 있도록 손을 뻗으라.

[227] 스스로에게 넌덜머리가 났을 때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만 된다면 얼마든지 파격적인 변신을 해도 좋다.

[231] “말 하나가 오렌지 위에 누워 있다든?” 가족의 말투와 독특한 표현을 목록으로 작성해 두면 좋을 글쓰기 자료가 된다.

[232] 우리는 자신의 뿌리가 묻힌 곳에서 발견되는 고통을 견디기 싫어서, 그것을 외면하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도망’을 선택한다. 우리가 자신을 만들어 준 최초의 장소를 떠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232] “당신이 무슨 일을 하든지, 제발 종교적 색채를 띠는 작가는 되지 마십시오.”

[236] “할머니, 우리는 4년만에 만난 거잖아요.”
그녀는 손을 뻗어 배 하나를 따더니 내가 잘 볼 수 있도록 들어보였습니다.
“그건 나도 알고 있단다. 얘야, 나도 네가 보고 싶었어.”
우리는 집안으로 들어갔고, 할머니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다 감탄하는 과일 푸딩을 손수 만들어 주셨습니다. 할머니는 내가 한번도 곁을 떠난 적이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나를 대했습니다.

[237] 글을 시작할 때는 이야기를 할 때처럼 꾸밈이 없어야 한다. 글을 시작하는 데 애를 먹은 경험이 있다면 대화하듯 써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243] 자신을 벌거벗기고 해체시키는 기분. 하지만 이것도 괜찮으니 받아들이라. 벌거벗은 자만이 어느 것에도 왜곡되지 않는 진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므로.
* 미셸 투니에르는 ‘나체 초상화’라는 것을 얘기할 때, 모델의 진실한 온전한 면을 사진 찍고 싶다면 모델을 완전히 벗게 하라고 했다.

[250] 한 작품을 백 사람이 읽으면 백 개의 서로 다른 의견이 나올 수 있다.

[250] 작품 속에서 발가벗는다는 것은 자신을 조절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253] “만약 그 시에 한 줄이라도 에너지가 있다면, 그 줄만 빼고 나머지는 모두 잘라버려도 좋다.” 그 한 줄이 바로 시라는 뜻이다. 시는 생명력의 그릇이다. 한줄 한 줄이 반드시 살아 있어야 한다. 작품을 쓸 때 이런 부분은 간직하고 나머지는 잘라내 버려라.

[255] 나쁜 글은 세상에 이미 너무 많다. 그래서 좋은 글을 단 한줄만 써도 당신은 유명해질 것이다. 미적지근한 글은 사람을 잠들게 만든다.

[256] 고쳐쓰기
읽을 때는 항상 호기심을 가져야 한다. ‘이 사람이 하려는 말은 무엇인가?’ 작품을 처음으로 대하듯 여유 있는 마음으로 읽자. 건너뛰지 말고 한 페이지씩 차례대로 읽어라.

[257] 평범한 존재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 주는 것, 이것이 바로 예술이 가진 위대한 힘이다.

[260] 미련없이 적을 잘라 내는 사무라이처럼 자신이 쓴 글을 읽을 때는 기꺼이 감상을 버려야 한다.

[264] “난 죽고 싶지 않네.”

[267] “이 책을 완성하는 데 1년 6개월이 걸렸어요. 적어도 절반은 처음 썼을 때 나온 것들이죠. 가장 힘든 싸움은 글 쓰는 행위가 아니었어요. 내가 과연 괜찮은 것을 쓸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싸우는 게 제일 힘들었죠.”

[270] 글쓰기를 통해 세상에 숨겨진 진실을 밝혀 내려는 사람들이 있다. 글쓰기를 통해 끊임없이 자기를 돌이켜보며 인생을 완성시켜 나가려는 사람들이다. 어쩌면 이들이야 말로 세상에 활력을 불어넣는 진짜 보물들이다.

Ⅲ. 내가 저자라면
1. 글을 잘 쓰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이 책은 뭐라고 가르침을 주나?
이 책을 처음 접할 때는 그저 글을 잘 쓰고 싶었었다. 그때는 칼럼쓰기를 통해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연습을 하고 있지만, 글을 쓴 나조차도 읽는 데 뭔가 빠졌다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답답했고, 어느 부분을 보완하면 그 답답함이 사라질까가 나의 최대의 관심사였다. 그러나 이 책이 저자는 그것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듬성듬성, 여기저기 손에 짚히는 데로, 페이지가 펼쳐지는 데로 읽었지만 뾰족한 방법같은 것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내가 책에서 찾고자 하는 것과 저자가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방향이 달랐던 것이다. 이 책은 ‘이럴 때는 이렇게 하라’라고 직접적인 기법을 설명하는 'How to .....' 류의 책이 아니다. 그러나, 단지 글을 잘 쓰고 싶어서 집어든 부류에게도 시원스런 답을 해준다.
‘글쓰기는 오직 글쓰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

저자는 글쓰기는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뭔가를 하겠다고 통제하는 상태에서, 이미 머리 속에 틀을 갖춘 상태에서 접근하는 글은 쓰고자 했던 것을 다 풀어내지 못한다. 그것이 저자가 이 책을 통해서 전하는 가장 큰 메시지이다. 마음을 풀어 놓으라 그리하면 보일 것이고, 들릴 것이고, 쓰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글쓰기는 창조적인 작업영역에 한해서라고 제한을 해야 할 것 같다. 저자는 연구 보고서를 쓸 때에도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것이 먼저라고 말하지만, 저자가 제시하는 것들은 보고서나 논문에는 맞지 않는 것들이다.

2. 눈에 띄는 꼭지 제목들
첫 생각을 놓치지 말라
습작을 위한 글감 노트 만들기
눈앞에 잇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라
글쓰기는 글쓰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
작가와 작품은 별개다.
세부 묘사는 글쓰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그들의 이름을 불러 주라
작가는 비를 맞는 바보
잘 쓰고 싶다면 잘 들어라
글쓰기는 사랑을 얻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그냥 ‘꽃’이라고 말하지 말라
자신을 믿어라
충분하다고 느낄 때 한 번 더
장대 위에서 발을 떼라
문학의 형식, 삶의 형식
규칙적은 연습은 창조력을 마비시킨다.
벌거벗은 자만이 진실을 쓸 수 있다
누구에게나 천재의 목소리가 들어있다
작품을 평가하는 스스로의 잣대를 가져라
사무라이가 되어 써라
나는 죽고 싶지 않다.


이 꼭지 글들은 힘겨운 글쓰기에 위로를 준다. 우리는 언제나 다시 시작할 수 있고, 한번 더 연습을 추가할 수 있다. 이번에 쓰는 글이 안타가 아니고 병살타여도 좋다. 그림에 대해서도 그렇다. 몇 번의 연습을 추가해도 좋다. 많은 퇴비를 필요로 하여 피어나는 한송이의 튤립꽃과 같이 글은 많은 습작을 필요로 한다. 지금 자신이 쓰는 글이 퇴비가 될지, 한송이의 꽃인지는 써봐야지 안다.

저자는 ‘글쓰기’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데, 글쓰기를 먼저 듣고 난 다음에는 언제나 그림 생각이다. 이것을 그림그리기에는 어떻게 적용할 수 있나하고.


얼마 전 읽은 미셸 투니에르의 에세이 『짧은 글 긴 침묵』에서는 책(글)은 저자가 절반의 생명력을 주어 세상에 내고, 독자는 자신의 심장으로 파고드는 공감으로 책의 절반의 생명력을 준다고 했다. 글에 그림에 생명을 주는 법. 눈에 들어오는 소제목들은 내가 원하는 생명을 불어넣는 법을 말해준다.

뼛 속까지 내려가서 자신을 만나고,그 힘으로 생명을 가진 것을 만들어 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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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08.01.23 08:34:38 *.209.53.168
글쓰기를 접할 때마다 그림 생각이 나는 것, 그것 아주 좋은 현상같네요. '연결'과 '통합'... 그로써 '경계넘기'가 이 시대의 주된 방법론이 될 것 같으니까.
소장님 생신 선물로 드린 그림이 생생하게 살아있어 감동적이었어요. 글과 그림의 연결을 더욱 후벼파서, 해답 얻기 바라구요.

단지 하나, 글쓰기가 아직 힘겹다면, '모닝페이지'를 다시 시작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 내 경우 '환희'였고, 즐거워야 오래 갈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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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8.01.24 08:13:46 *.180.46.15
명석님 고마워요.
글쓰기 전에 긴장해요. 쓰는 도중에도 그렇구요.
'모닝페이지'의 유혹이 있긴 하네요. 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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