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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27일 09시 57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볼프강 마이젠하이머(Wolfgang Meisenheimer)는 1933년 독일에서 태어났다. 아헨 대학에서 <건축 공간, 구조, 형태, 개념>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독일 공작 연맹의 일원으로 뒤렌에서 교육관, 공공건물, 산업시설, 주택 등을 설계했다.

1978년부터 1998년까지 뒤셀도르프 대학교 응용과학 교수로 재직했고, 9년동안 학장과 학부장을 역임하며 건축 세미나 자료집을 편찬하는 대학 출판부를 설립하였다. '다이달로스' 지의 편집위원이기도 한 그는 현재 뒤렌에서 건축의 근본적인 현상에 대한 학술 작업과 콘크리트나 점토를 이용한 그림과 조각 등의 예술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형상'(1979), '지역 구조'(1988), '공간의 안무'(1999), '신체와 건축 공간에 대한 사색'(2004) 등이 있다.

'공간의 안무'의 초판은 1999년 독일에서 출간된 'Choreografie des architektonischen Raum'으로 우리나라에는 2007년, 한국어, 영어가 수록되어 재출간되었다. 이 책을 우리나라에 소개한 건축가 승효상은 '건축, 우리 삶의 가능성을 암시하는 무대'라는 여는 글을 통해 저자의 사유를 이렇게 소개한다.

"특히, 건축이 우리의 가능한 삶을 암시하는 무대라는 선언적 사유는, 이성과 합리를 명분으로 우리 삶을 재단하며 마감시킨 전시대의 계량적 건축과는 궤를 달리한다. 또한 그가 단정짓지 않은 채 비워놓은 감성의 공간이 확정할 수 없는 우리의 삶에 대한 존경과 사랑으로 차 있음을 알게 되면서, 이 책은 읽는 이로 하여금 그냥 페이지를 넘길 수 없게 만든다."

이제 건축과 공간과 시간에 대한 사유을 통해 동양과 서양이 만나고, 3개 국어가 한데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이미지와 텍스트의 안무 속으로 들어가보자.





#2. 내 가슴에 들어온 글귀

들어가는 말 (Introduction)

(23) 몸의 형태와 움직임의 구조는 건축의 구조와 관련되어 있다.

(23) 원초적 인식은 몸의 움직임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24) 신체는 '움직이면서 생각'하며, 몸은 자신이 인식한 재질을 결코 융통성 없이 받아들이지 않고 능숙한 '탐색 자세'로 받아들인다.

(25) 신체 틀에서 가장 강력한 요소는 아마도 '여기'라는 느낌일 것이다.

(25) 설계는 안무와도 같은 특징을 지녀야만 한다. 즉 시간적 차원이 공간 구성에 포함되어야만 한다.

(26) 학설이나 건축 이론에 대한 이해 속에서만 묘사한다면 움직임을 위한 무대, 즉 건축을 율동적인 배열로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은 완전히 사라져버리게 된다. 건물을 지을 때와 설계할 때, 평면적인 배열을 통해서는 현상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나는 몸짓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건축적 표현을 이해하려 시도할 것이다. 시간적 특성은 공간의 형식, 차원, 비례, 형태, 그리고 공간 배분을 이해하기 위한 필수 요소이다. …

우리가 다룰 주제는 시간 속으로 사라지는 공간, 그리고 공간 속에서 확장된 시간이다. (Our subject matter is the transformation of space into time, the transformation of time expanding within space.)



1. 장소의 몸짓. _ 자세를 닮은 장소. (The Gestures of Places. _ Places as Mimetic Positions.)

(55) 모든 건축적 장소들에 대한 이해의 저변에는 과거, 혹은 미래의 활동과 사건들이 깔려 있다. 몸의 특정한 움직임 역시 과거와 미래의 행위와 관련되어 있다. 건축 형식은 이러한 사실을 상기시키고, 자극하고, 불러일으킨다. 아니면 단지 우리가 그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64-68)
여기. 지금 바로 여기에. (being here. Being here now)

이리로! (here!)

저리로! (there!)

(70) 이보다 더 간결하게 공간의 특질을 정의한 말을 나는 알지 못한다 건축을 이야길 할 때, 우리들은 이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나는 여기에 머무르고 싶다! 여기에 살겠다! 여기에서 죽을 것이다! 기사들의 말. 농부들의 말. 왕의 말. 건축을 향한 최초의 분기점.

(72) '이곳'이라는 장소를 건축물로 변화시키기 위한 간단한 행위들. 돌을 쌓고 기둥을 세우고, 산을 쌓아 올리고, 기둥을… 이 같은 단순한 행위에 대한 기억 없이는 어떤 건축물도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

(78) 우리는 위대한 인물의 출생지나 사망 장소에서 그들의 정신과 능력을 발전시킨 장소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델로스 섬의 야자수 밑에서 태어난 아폴로. 베들레헴 구유에서 태어난 그리스도. 에트나 화산 분화구로 뛰어든 엠페도클레서. 피레네 산맥 세관 건물에서 자살한 발터 벤야민. 바이마르 프라우엔플란의 임종 침상에 누워있던 괴테.

시, 소설이 태어난 장소, 시인에 의한, 애인에 대한, 사랑이 생겨난 장소는 소중하다. 그리고 친구에 대해서도.

(88) 기념물.
기념비.
묘비.
경계비.
기억 속의 장소를 나타내는 표석.
한 장소에서 시간을 고정시키려는 노력.

어떤 사람이나 사건, 시대에 대한 상쾌한 기억, 교훈적인 기억, 혹은 유쾌한 기억.
표석의 내용은 기억의 원래 장소로부터 떨어져 나가, 임의의 장소로 퍼져가기 시작한다.
삶의 흔적을 나타내는 지도에서 그 표석은 힘을 갖는 수단이 된다.
 
(92) 시간이 응축되어 공간의 분위기를 결정한다.
 
(94) 건축에서, 그리고 삶의 장면에서 탁자는 중요한 테마가 된다! 식탁·작업용 탁자 · 책상 · 부엌의탁자 · 기저기를 갈기 위한 탁자 · 화장대·전시용 탁자 · 회의, 결혼식, 저녁 만찬용 탁자.



탁자는 땅의 중요한 장소를 우리의 손 높이로, 즉 가장 집중할 수 있는 곳으로 올려 놓는다. 이곳에서 무슨 일인가 일어날 것이다. 어떤 사건이 공간 속에서 대단히 밀도 있게 준비되어 있다.
  
(104) 풍경 속의 산이나 나무처럼, 하나의 건축물은 길을 가르쳐 준다. 방향을 정하는 것을 수월하게 만들고, 일상적 행위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머릿속의 도로지도를 정돈하기 위해 우리는 모퉁이 첨탑, 교회의 뾰족탑, 가게와 술집의 시선을 끄는 물건, 다리나 방송 송신탑의 위치를 떠올린다.
그것들은 공간에 대한 우리의 상상 속에서 선별된 형상 기호들이다.
그것들은 사람들이 발을 들여놓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억을 뚜렷하게 만들기 위해 세워진 도시의 장소들이다.
장소의 몸짓을 통해,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는 희귀의 감정을 느낀다.
누구나 알고 있는 잘 알려진 좌표 지점 사이에는, 오로지 우리의 삶에만 속해 있으며 우리의 일상이 강하게 의존하고 있는 개별적인 특징으로 짜인 작고 붉은 양탄자가 깔려 있다.



(106) 건축적 형상으로 역사를 나타내는 장소들. 회자되는 사건의 외부에 존재하는 장소들. 시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중심점들.

 
(114) 모든 공간감 중에서 가장 끔찍한 느낌. 즉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장소를 잃고 사라져 버렸다는 느낌의 재현. (The representation of the most frightening of all spatial feelings : being nowhere, being placeless, being lost.)

(116) 현재를 사는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가상 세계의 상당 부분, 즉 영화, 비디오, 시디롬 등은 움직이는 무대배경 속에, 차량과 비행기, 그리고 우주 정거장 속에 자리잡고 있다.
결과적으로 형태에 대한 상상은 점차 지상의 특정한 장소나 풍경으로부터
떨어져 나오게 되었으며, 동시에 무대배경은 서로 바뀌기도 한다.
또한 문명화된 사람들, 최소한 도시 사람들은 실제로 움직이는 건축물 속에서 삶의 일정 부분을 보내게 되었다.



(118) 사이버 공간에서 조종사의 방향 설정은 더 이상 구체적 사물이나 장소가 아니라 기계, 즉 계기판의 눈금에 의존할 뿐이다.







2. 길의 몸짓. (The Gestures of Passageways.)
 
(122) 모든 건축적 장소와 거주 가능한 장소는 한 가지 조건을 전제로 한다. 바로 사람들이 오고 가는 것이 가능한 길가와 교차로에 건축물이 위치한다는 사실이다. 건축물을 향해 난 길, 혹은 건축물에서부터 시작되는 길이 없다면, 통로가 없다면, 통로와 문이 없다면, 건축물은 존재할 수 없다. – 자크 데리다
 
(122) 흐름이 멈추어서 ‘굳은’ 상태를 장소라고 한다면, 길들은 가상적인 진행과정을 나타낸다. 시간은 공간 속에서 전후 관계의 현상을 드러내는 텍스트로 간주되기 때문에, 걷는 사람은 텍스트를 읽는 독자가 된다. 전후 관계의 경험을 만들기 위해서 사람은 길을 걸어가야 하고, 전실에 발을 들여놓아야 하고, 문을 지나가야 한다. 문, 문턱, 계단, 교차로 등은 공간적인 형식이지만 그 형식 속에는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 내포되어 있다. 공간과 시간은 분리할 수 없게 서로 얽혀 있다. 공간은 시간의 차원을 잠재적 특질로 내포하고 있다.



(132) 서막, 사전 통고, 최초의 암시들! 사랑에 대한 매혹적인 첫 예감, 최초의 공포……. 시작의 몸짓은 희미하게 예견된 특질을 나타낸다. 그것은 기대의 순간인 미래를 포함하고 있다. 이상한 일이지만, 기억의 순간 역시 기대에 속한다. 기억의 흔적은 시작의 한 부분이며, 결과적으로 시작은 다가올 것의 한 부분이 된다.



(134) 붓놀림과 펜의 움직임을 구체적 행동의 흔적으로 살펴보자. 기계적인 논리로 보면 이런 행위는 언제라도 중단될 수 있다. 하지만 마지막 단계까지 생각하면, 그 움직임은 전체적인 특질을 얻게 된다. 끝을 통해서 시작은 온전한 의미를 갖게 된다. 체험시간이 도입부에서 특정한 흐름의 예감을 포함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종결부에서는 되돌아가려는 경향을 갖는다. 과정은 끝남과 동시에 일시적 시간에서부터 벗어나게 되고, 과정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 된다.



(137) 시작에 대한 기대. 사건에 대한 예감. 작품의 준비.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곧 무언가가 생길 것 같은 상태. (The not-yet-but-soon)
 
(144) 밖에서 안으로, 안에서 밖으로. 건축이 표현할 수 있는 중요한 길은 언제나 경계를 지나간다.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넘어가는 이행 장소든, 길과 집 사이에 있는 갑문이든, 혹은 거리에서 광장으로 넘어가는 통로든, 중요한 것은 떠나고 도착하는 것, 그 두 가지이다. 독자들이여, 거의 모든 건축체험의 연출은 이와 같은 ‘사이현상’과 연관되어 있다.
 
(144) 경계에서 경험의 한 부분이 끝나는 것이다.
 
(144) 첫째로 경계는 과거와 연관을 맺음으로써 풍부한 표현력을 갖고, 둘째로 미래와 관계를 맺음으로써 도전을 요구한다. 이 같은 이중적 특징은 경계를 서술적인 것으로 만든다.
 
(144) 일시적인 것, 순간적 인상을 통해서 생겨난 기대, 처음 본 순간 생겨난 흥분이 경계에 속해 있다.
 
(144) 몸은 찰나의 순간에 전체를 예견한다. 그리고 우리의 몸은 기대의 진행에 적합한 수준으로 조직된다. 귀와 코, 그리고 피부는 이 변화하는 환경의 언저리에서 자발적으로 첫인상을 보내고 분위기의 반전을 일으키는 기관이다.

(145) 경계의 언어는 원초적 몸짓과 원형적 길(운명의 길)에 결부되어 있다.
 
(145)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언어적 표현이 아니라 오히려 육체적 자세의 표현, 그리고 그것과 결부된 움직임의 결과이다.
 
(146) 건물 전체의 외피는 이제 경계의 언어가 되었다.
 
(146) 경계는 도쿄, 홍콩, 뉴욕, 포트워스 같은 대도시들을 건축적 도구인 시·공간으로 이루어진 기계로 정의한다.
 
(146) 사랑의 과정에서와 마음을 열고 딛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진행과정이 지닌 매력은 문을 열고 닫는 과정 속에서 변화하는 것이다.
 
(147) A threshold phenomenon is situational in character, not thingly; it cannot be sufficiently described by defining it in terms of form, size, width, material, position or direction. Rather, the situational condition is decisive parameter, its reference to action, the material quality of the path and its associates expectations and memories. Because what is intended by placing a threshold is the experience of transition. Particularly at this point a space is being laid out according to its temporal quality.
 
(154) 경계는 공간의 안무를 가능하게 하는 수단이다.
건축공간을 이용할 때, 경계는 여러 가지 몸짓들로 속도를 늦춘다.
문과 경계, 계단과 통로 앞의 단, 좁고 경사졌을 뿐 안과 밖, 이편과 저편은 형식과 재질에 의해서 예술적으로 나누어져 있고, 예술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경계의 세부 항목들은 건축언어에서 가장 섬세하고, 가장 풍부한 목록이다.

(165) 기계가 발휘하는 매혹은 시각적 도취에 의해 생긴다. 반면에 기계를 사용하는 사람의 몸은(땅과의 접촉을 잃고 신체적 율동을 상실한 몸) 점점 굳어진다.


 
(167) 화살은 자신의 현재 모습으로 나중의 것을 보여주고 공간 속에서 힘이 발전해가는 것을 나타내며, 물리적인 추동력을 드러낸다.



(181) 안에서 밖으로의 극적인 변화, 안에서 밖으로, 밖에서 안으로의 여행, 안으로 들어가기(빛에서 어둠으로), 밖으로 나가기(어둠에서 빛으로), 건축공간 요소들의 기본적인 안무. (The drama associated with the change from inside to outside, the transition from an inside to an outside, from an outside to an inside, getting inside (from light into dark), stepping outside (from dark into light) : basic choreographic elements of the architectural space.)

(186) 즉 몸은 관절을 지니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공간적 현상이다.



(198) 길이 갈라지고 교차한다. 인도가 그물망처럼 얽히고 설킨다. 특정한 계산법에 의해서 겹쳐지고 접근하며, 하나로 녹아서 얽혀 있는 노선의 공간적 체계. 노선은 땅이 지닌 특징을 그대로 따르기도, 따르지 않기도 한다. 밟아서 다져진 오솔길이 나뉘고, 본능과 후각을 짜라 움직이는 동물의 자취가 나뉜다. 길이 지닌 기호의 특성과 길이 지닌 신체의 표현은 바로 불규칙한 특성으로 강조된다.



(207) 공간 속에서 위쪽은 긍정적 의미로 채워져 있고, 권력이 있는 자들에 의해서 이용되었으며, 사람들이 동경하는 구역이다. 순례나 청원을 위해 걷는 길의 무대인 계단. 아래쪽에서 빛을 향하고, 골짜기에서 산정을 향하고, 어둠에서 밝음을 향하고, 지상에서 신들을 향한, 동경의 길을 위한 과정으로 기능하는 계단.



(212) 몸을 세우고, 도약해서, 공중으로 높이 오르고, 꼿꼿하게, 힘차게 선다! 의기양양한 도약은 인간의 원초적 표현자세 중 하나이다. 이런 도약은 분출에 대한 거센 욕구와 비슷하고 공간을 바꾸는 땅의 위쪽, 그 한계와 가깝게 닿아 있다.
 
(215) 땅, 지금 이 순간 이곳을 떠나는 것. 창공을 향해 과감하게 땅을 박차고 오르는 것! 중력을 상실하고, 우주를 얻는다. 모든 곳에 존재하는 것. 건축은 상승을, 세계의 시작을 가장할 수 있다. 공간이 매력은 시간이 발휘하는 매혹으로 대체되었다. 솟아오르기! 비행! 활강!
 
(217) 올라갈 때 긴장과 승리에 도취되었던 육체가 내려갈 때에는 힘을, 통제력을, 긍정적 기대감을 잃는다. 이 자세에 깃들어 있는 다양한 사회 문화적 특징들. 고귀한 하강, 공손하고 친화적이며, 조화롭고 겸손한, 그리고 부드러운 자세이며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자포자기, 패배, 포기, 추락이기도 하다. 땅 속에 몸을 숨기기, 지하실에 숨기, 지하세계로의 추방. 절망의 자세.
 
(220) 느려지려는 경향. 행위의 진행 속에 휴식과 장애가 개입된다. 단선적인 진행은 틈, 제동, 작은 사건들에 의해서 중단되고 이러한 장애는 바람직한 것이 된다. 행렬이 지나가는 길, 명상의 길, 수목원 샛길, 즐거움을 주는 회랑에서 사람들은 느려지려는 경향을 유지한다. 차단막, 돌출부, 굽은 곳, 솟아오른 곳, 재질의 변화, 청각공간, 그리고 빛의 밝기가 진행을 지연시킨다. 그렇게 진행과정 속으로 여러 정황들이, 사건 속으로 공간적 형상들이 덧붙여진다.
시간은 조각나고, 공간현상들로 채워진다. 사건은 중단되고, 필요한 휴식이 주어진다.


 
(222) 속력을 높이고 질주하려는 경향. 어슬렁거리던 걸음걸이가 보통의 걸음걸이로, 빠른 걸음으로, 달리기로, 차를 몰고 쏜살같이 질주하는 것으로, 날아가는 것으로 변한다. 신체운동이 도구의 힘을 빌려 빠르게 증가할수록, 체온도 올라간다. 촉각과 후각은 기능을 멈추고, 청각과 시각은 재빠르게 변하는 장면의 변화에 맞추어진다.
도구적, 기능적 사고가 증가함에 따라 신호의 변화에 대한 의존도 증가하게 된다. 신체공간은 강력한 시간 좌표를 지닌 도구공간으로 단계적으로 변화한다.
결국 사이버 공간을 항해하는 조종사인 현대인은 자신의 움직임을 더 이상 인지하지 못하게 되고 그의 육체는 경직된다. 그는 계기판을 통해 시간의 파열을 경험한다.



(232) 감기는 나선운동, 무한 속으로 침전! 풀리는 나선운동. 무한한 외부로의 확장! 사라지는 과정을 나타내는 형상들. 회오리바람과 소용돌이는 나선형상에 가까운 자연현상이며 코르크 마개 뽑아와 원심분리기는 나선체계를 이용하는 기술적 형식들이다. 건축물에 있는 나선셩 요소인 램프타워와 나선형 계단은 공중으로 지하로 사람들을 이끈다.
 
(241) 바벨탑, 달 여행, 휠덜린의 ‘히페리온’, 니체의 ‘차라투스라’, 타틀린의 탑. 이것들은 다시 새롭게 시작하려는 인간의 동경이 폭발한 것이다. 열정적인 동시에 절망적인 몸짓, 항상 새롭게 시작하는 몸짓. 영원을 향한 동경은 일깨워진 채로 출발의 행위 속에 포함되어 있다. 동경의 행위는 시간의 깊이로 안내하지만, 다시 자신에게로 되돌아간다.



(242) 무로 사라지는 것에 대한 동경. 공간과 시간 속으로 자신을 내던졌던 이카로스의 꿈.
자신을 넘어서, 지금 이 곳을 넘어서, 죽음을 넘어서, 무한 속으로 사라지는 것. 스스로 자신을 만드는 것.
 







3. 침묵의 장면. 휴식 공간. _ 공간에서 사라진 시간. (Quiet Scenes. Spaces of Rest. _ The Disappearance of Time out of Space.)
 
(246) 장소와 길은 움직임의 공간으로서 건축의 본질적인 현상이다. 다양한 표현세계인 건축의 복잡한 무대적 특질에 관해서, 우리들은 이런 현상들이 가득찬 속에서 서로 대립하는 두가지 경향을 관찰할 수 있다. 한편에서는 정적과 안정을 추구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질주와 혼란을 추구한다.

건축설계의 변수가 되는 이 두 종류의 동경! 이런 동경 중 하나는 공간에서 시간의 차원을 내몰려고 시도한다. 그 동경은 영원을 겨냥한다. 다른 하나는 시간의 움직임 속에서 공간을 해체하려 시도한다. 그것은 순간의 힘을 겨냥한다.

(246) 숭고함은 현재가 모습을 감춘 저편에서 나타난다. 움직임으로서의 삶은 뒷전으로 물러나게 된다.
 
(247) 건축은 내면세계에 불안한 예감을 제공한다.

(247) 공간에서의 시간의 소멸은 이처럼 두가지 다른 특질을 지니고 있다. 하나는 자아의 집중과 명상과 치유를 목표로 삼고, 다른 하나는 자아의 상실과 무기력을 지향한다. 차분하고 조용한 공간은 보호와 위안을 제공하는 따뜻한 공간이 될 수도 있고, 위협적이고 차가운 공간이 될 수도 있다.
 
 (255) 침대, 애무를 할 수 있는 구석자리, 잠을 잘 수 있는 틈새 공간이나 동굴, 둥지, 조용한 구석자리. 신체의 가장 깊은 기쁨 중 하나는 잠을 자는 공간에서 서로 애무하는 것이다.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하고, 조용한 구석자리로 물러나는 행위. 잠에 빠져드는 것. 광란하는 사건에서 벗어나는 것. 어머니의 자궁으로 되돌아가는 것.


(257) 사랑의 공간, 고독의 공간, 수면의 공간, 도피의 공간, 죽음을 위한 공간. 원초적인 신뢰를 불러일으키는 혼자만의 공간이 있다. 혼자 있을 수 있는 편안한 구석자리, 등 뒤의 보호벽. 휴식에 적당하고, 이완에 적당한 거의 눈에 띄지 않는 빈 공간이, 현재의 가장자리에 존재한다.

(263) 가정, 오두막, 주말 별장, 휴가를 보내는 별장. 일상의 피곤함에 찌든 사람들이 꾸는 백일몽. 집과 도시 속에 있는 소시민적 전원 풍경들. 꽃이 놓여있는 창문, 온실, 정자, 그늘 진 작은 장소, 잠깐 동안 머물 수 있는 구석자리, 의자와 벽에 새겨진 글씨들, 친근한 세부사항들 그것들은 인상의 족쇄로부터, 직업적 의무로부터, 단순한 기능에 얽매인 상태로부터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 준다.
 
(265) 구석진 자리, 독서를 위한 자리로 숨기, 창가의 책상, 담소할 수 있는 구석자리를 찾는 것, 구석의 의자를 차지하는 것. 가장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비켜나 있지만 완전히 벗어나지는 않은 상태.
구석자리, 빈 공간, 마음의 은신처, 의사소통 공간의 가장자리에 있는 조용한 영역, 주거공간 안의 가장자리에는 머뭇거릴 수 있고, 사람의 이목을 끌지 않으며, 관조와 한가로움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는 자투리 공간이 존재해야 한다.



(273) 동굴, 욕조. 그리고 좁은 통로.
그것들은 습하고, 어둠침침하고, 숨겨져 있고, 보호되어 있는 내부공간이다. 은둔으로의 초대. 달팽이집, 조개껍질. 인내심과 사라짐을 위해 존재하는 형식들. 비밀스런 쾌락의 장소들.



(289) 밤. 명상의 최초 장면.

바다에서, 사막에서, 광대한 하늘에서, 펼쳐지고, 확장되고, 사라지는 것. 영혼의 꿈이 깃든 내면의 공간, 영혼의 공간이 깃든 내면의 꿈.

(293) 동굴 형태의 건축은 몸이 내면적 공간이라는 생각을 가장 강력하게 불러일으킨다. 이곳에 세워진 것은 더 이상 몸이나 사물이 아니다. 그것은 둘러싸인 공간 그 자체이다. 모든 방향에서부터 공간 속으로 걸어들어온 자아 그 자체이다.



(297) 허공, 빈 곳, 무, 사이. (Void – emptiness, nothingness, the in-between.) … 건물 안, 중정 안, 정원 속의 공허함은 자아와 감정의 흐름, 상상력을 위한 명상의 무대가 된다. 기억을 자극하고, 형상, 소망, 이념을 만들어내는 장소. 자아가 집중되는 곳.
 
(299) 무를 흡수하고, 무를 하나의 특질로 묘사하는 공허한 공간.

 
(301) 명상의 기본 문양인 원과 사각형



(313) 공간의 황폐함보다는 움직이지 않는 시간이 삶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공간에서 시간이 사라져 버린다. (This being the disappearance of time from space.)
 
(315) 나는 시간의 경직을, 무의 생성을 느꼈다. (what I felt then was the paralysis of time, the emergence of nothingness.)
 



 




4. 동요하는 장면들. 불안의 공간. _ 시간 속에서 해체된 공간. (Agitated Scenes. Places of Unrest. _ Transformation of Space within Time.)
 
(318) 건축공간은 ‘기대공간’이다. 말하자면 건축공간은 시·공간 현상에 의해서, 그리고 가능한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긴장과 애매함의 요소들에 의해서 특징이 드러난다.

(318) 감각적인 사건들, 정보들, 그리고 설득의 형식들이 아주 복잡한 수준으로 제공되고 있으며 종종 공감각적으로 정교하게 우리의 시각, 청각, 후각 그리고 균형감각에 도전한다. … 정보, 도구, 그리고 삼물의 광란하는 움직임 한가운데에서 인간은 육체적으로 점점 마비되어간다.
 
(319) 기호에 대한 새로운 감수성은 사물의 특질과 자연의 특질에 대한 새로운 감수성과 서로 관련을 맺을 수 있을까?
 


(329) 밀려가는 구름들, 물결 모양으로 굴곡지어진 산들, 불었다가 줄어드는 물, 일었다가 잦아드는 바람. 이 장엄하고 무시무시한 자연의 광란은 운동현상들이다. 화산 폭발, 별들의 소용돌이, 돌풍, 작열하는 불꽃. 이들 역시 운동의 현상이다. 일탈, 비정상, 단절은 이미 주어진 안정적인 구조와 확연하게 대비된다.

(332) 물질이 지닌 형상은 정상적인 구조가 방해를 받게 되는 곳. 즉 단절된 면에서, 테두리에서, 고장 난 부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물질 공간 속으로 파고 드는 힘이나 물질 공간에서 튀어나오는 힘, 혹은 그 공간의 가장자리를 건드리는 힘의 특징은 규칙적인 구조의 혼란을 통해서 나타난다. 자재의 표현 특질은 특별히 비정상적인 부분에서, 분열된 부분에서, 구조화된 영역의 주변부에서 감지된다. 공간 구조 속으로 시간이 침입한다.


 
(338) 몸과 세계가 만나는 최초의 장소를 아주 섬세한 장면으로 표현한다. 최초의 이해는 이곳 피부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열리고 닫히는 피부를 통해서 외부 사건들에 대한 최초의 평가가 생겨난다.
 
(340) 나무껍질. 판자의 무늬. 돌의 매끄러움. 대리석의 결. 직물의 섬유. 회벽의 알갱이.
우리들은 재질의 표피 속에서 그것의 나이, 운명, 그리고 ‘시간과 함께 겪은 경험’을 읽는다.
 
(351) ‘영원을 위해서 만들어진 건축’과는 다른 의미를 지닌 시간의 집합체이다.
……
서커스, 천막, 춤을 추기 위한 바닥, 캠핑용 자동차, 시장의 판매대, 놀이동산 매표소, 민속축제를 위한, 산업적 용도를 위한, 혹은 장사를 위한 컨테이너, 바퀴 위에 세워진 집들.
 
(353) 장소의 특징들이 총체적으로 사라진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누구도 우리에게 묻지 않았고, 어떤 협의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이런 일들은 진행되었다.
 
(358) 건축공간에서 시간의 요소는 계획에 의해서 생겨나는 ‘가상적 움직임’ 속에 존재한다.



(375)
연속 - 물 흐르는 듯한 진행, 각 부분들의 잇따른 상호 자극.
중지 - 힘들이 지닌 긴장의 완전한 해소, 운동이 정지 상태에 도달하는 것.
역 진동 - 정지 지점을 통과해서 새로운 방향으로 움직이는 운동.
직선 - 병치되어 있는 부분들의 연관관계, 특징들의 훌륭한 배열.
대립 - 반대 긴장의 생성, 표현은 가장 바깥쪽의 영역으로 나타난다.
긴장 유지 - 잠재적인 에너지의 상승, 방전의 지연.
고립 - 형태의 부분들 그 자체도 형태이며, 형상의 요소들 그 자체도 형상이다.
연속적인 진동 - 새로운 방향으로 움직이는 동작이 만드는 메아리
 
(379) 우주공간의 재질과 에너지는 요동치는 변화 속에서 관찰되고 측정된다. 마찬가지로 자연은 율동적인 반복, 계절, 낮과 밤의 변화, 일출과 일몰, 썰물과 밀물, 물결 모양과 바람의 움직임과 변화 속에서 경험적인 세계로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낸다.
 
(388) 피카소의 회화, 케이지의 음악, 커닝엄의 춤은 관람객과 청중이 당황할 정도로 서로 독립되어 있고, 들어맞지 않는 여러 개의 인지 형상들을 한 작품 속에 동시에 제시하려는 실험을 했다. 또한 눈과 귀의 경험이 특정한 현상에 ‘적합한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를 관객이 스스로 결정하게 하는 실험을 했다.
 
(391) 사람들은 이끌어가는 아리아드네의 실은 더 이상 사물의 공간 안에서가 아닌, 경험 과정 그 자체 속에서만 발견된다. 연속적인 사건을 통해 감정은 현존에서 현존으로 건너뛰며, 기억과 기대로 구성된 재료로 놀라움과 실망으로, 현재라는 연극의 무대를 만들어낸다. … 아름다운 공간이 주는 매혹이 아닌, 과거와 미래의 틈새에 있는 일회적인 사건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 그것은 사라져가는,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의 확장이다. (It is the expansion of a diminishing, never recurring, time.)
 
(393) 끝없이 쌓이는 놀라움. 평면에서 깊이를 만들어내는 것, 과거를 통해서 현재를 꿈으로 변화시키는 것,
 
(396) 삶의 원초적 모티브는 '연체동물과 같은 유연한 움직임'이었을 뿐 재질도, 공간도, 시간도 아니었고, 공간과 시간은 아직 구분되어 있지도 않았다. '태초에 행위가 있었다'는 파우스트적 인식, 공간은 사건들을 불러일으키고, 자신 속에 시간의 본질을 포함하고 있다. 공간과 시간은 중첩되어 관계를 드러내고, 그것들은 일어날 수 있는 극적인 사건의 구조로서 이해된다. 이런 의미에서 건축 공간은 '가상의' 행위 공간, 즉 본질적으로 '시, 공간적'이며, 일어날 수 있는 행위에 맞게 조정되어 있다.



(406) 자아의 해체. 인지하는 자아, 행동하는 자아. 상상하는 자아의 해체. 시간의 질주 속에서 해체된 공간에 의해 소멸하는 육체적 자아. 떠 있기 위해, 날기 위해, 다른 어떤 장소를 위해, 무아지경 속에서 바로 이 장소를 포기한다. 심상의 마력 속에서 공간은 깎여 다듬어지고, 비틀리고, 해체된 상태로 나타난다. 체험시간이 공간을 분해한다.
 
(409) 미궁은 아주 오래된 탐구의 자세이며, 내적 형상 속에서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411) 그 다음 우리는 괴로움에서 새로운 원리의 기초를, 형식 속에 파편을 담은 언어의 문법적인 체계를 찾기 시작한다.
 
(412) “가끔씩 약간의 독은 안락한 꿈을 꾸게 만든다.”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라는 이렇게 말했다.’)



(415) “내 그대들에게 말하노라. 인간은 춤추는 별을 낳기 위해 자신 속에 혼돈을 지니고 있어야만 한다. 내 그대들에게 말하노라. 그대들은 여전히 내부에 혼돈을 지니고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라는 이렇게 말했다.’)

(423) '미디어는 마사지다" (마셜 맥루한).
우리는 삶의 모조품으로부터 우리의 삶을 어떻게 해방시킬 수 있을 것인가?
 
(427) 자궁 공간(따뜻한 공간)은 감각적인 자극의 과장 속에서 자신의 신뢰성을 내던지기 시작한다. 아직도 ‘땅’이 존재하는가, 아직도 내 맞은편에 ‘사물’이 존재하는가, 아니면 오로지 변화하는 감정의 소용돌이만 존재하는 것인가?

(428) 발명의 즐거움은 극단적 가능성을 찾아 더듬거리며, 경계를 넘어서려 하고, 지평선을 향해 손을 뻗는다. 마치 성적인 사랑처럼, 새로운 형상에 대한 동경은 도취를 원한다. 그 동경은 무언가 생겨날 미지의 세계로, 심연으로, 불가능으로 떨어질 준비가 되어 있다.

묘사된 적도, 통제할 수도 없는 변두리에 서있는 발명가의 길도 마찬가지다. 인식을 나르는 '운송 수단'과 같은 도구의 경계선은 의심을 받고, 그와 함께 질서, 안전, 기대, 그리고 힘들게 묶여 있던 모든 관습들마저 의심을 받는다.

호기심이 많은 사람은 고독하고 그의 땅은 존재하지 않는 공간, 존재하지 않는 장소가 된다. (The curious mind is a lonely individual, his country is the non-space, a non-topos.)
 
(434) 수천 년의 인류 역사에서, 운명이 참을 수 없을 만큼 극단적으로 변할 때 몰락은 창조의 마지막 표현으로 나타났다. 어떠헌 것이든 간에 건설과 고안과 설치가 불가능하게 되면, 자학적 쾌락인 몰락이 볼거리로 남는다. 파괴, 분열, 건축물이 넘어지고 가라앉는 것은 가상의 관객에게 주어지는 죽음의 경고문이 되었다. 파멸의 장면 밖에 있는 가상의 관객은 다른 매체, 예를 들어 회화, 영화, 혹은 무대예술의 표현을 통해서 묵시록적 파국을 새로운 삶의 대상으로 바꾼다.

(441) 존재할 수 없는 건축. 건축의 소멸. 시간 속에서 공간의 해체. (Anarchitecture. The Disappearance of Architecture. The Deconstruction of Void-Space into Time.)





#3. 내가 저자라면

'공간의 안무'는 이미지와 글이 함께 춤을 추는 책이다. 추상적인 글과 함께 생각이 저만치 달아나려하면, 이미지가 생각을 다시 잡아끌어주고, 추상적인 이미지가 시지각을 혼란시키면, 글이 슬며시 실마리를 흘려 놓는다. 이렇게 이미지와 글을 이용해서 독자의 양쪽 뇌를 유연하게 오가는 방식은 앞으로 책의 중요한 구성 방식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중요한 문제는 단지 텍스트와 이미지의 병렬이 아니라, 이 둘의 절묘한 결합을 통해 어떻게 독자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것인가,가 될 것이다.

이 책의 주제는 '시간 속으로 사라지는 공간, 그리고 공간 속으로 확장된 시간'이다. '공간의 안무'라는 책의 제목처럼 사람의 몸짓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해석하려는 노력이 담겨 있다. 저자는 이런 화두를 풀기 위해 책 전체를 4개의 장으로 나누었다.

1장은 '장소의 몸짓 _ 자세를 닮은 장소'이다. 인간의 몸이 멈춘 곳, 공간이 시간에서 잠시 멈춘 곳, 그 곳이 바로 장소이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이 모인 그 곳에 집을 짓고, 기념비를 짓고, 도시를 짓고, 국가를 건설한다. 또, 위대한 건축물을 통해 시간의 한계를 넘어서려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아주 잠시 동안만 머무는 일시적인 장소도 있고,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와 같은 공간도 있으며, 또 눈금으로만 우리의 위치를 알 수 있는 사이버 공간도 있다.

2장은 '길의 몸짓'이다. "흐름이 멈추어서 굳은 상태를 장소라고 한다면, 길들은 가상적인 진행과정을 나타낸다. 시간은 공간 속에서 전후 관계의 현상을 드러내는 텍스트로 간주되기 때문에, 걷는 사람은 텍스트를 읽는 독자가 된다. 전후 관계의 경험을 만들기 위해서 사람은 길을 걸어가야 하고, 전실에 발을 들여놓아야 하고, 문을 지나가야 한다." 이런 길의 시작과 끝, 흐름과 속도를 통해 시간과 공간은 한데 얽혀 있다.

3장은 '침묵의 장면. 휴식공간 _ 공간에서 사라진 시간'이다. 시간이 멈춘 장소, 시간이 사라진 장소의 가장자리 혹은 중심에 대한 탐구이다. 침대, 욕실, 동굴, 집 안의 구석자리와 같은 사적인 공간, 창고, 도서관, 박물관등과 같은 기억의 공간, 시간이 멈추고, 영혼과 몸이 하나가 되어 꿈을 꾸는 명상의 공간, 그리고 시간이 숨막혀 죽거나 갈갈이 찢겨지는 감옥과 전쟁터와 같은 죽은 공간을 차례대로 살펴본다.

4장은 '동요하는 장면들. 불안의 공간 _ 시간 속에서 해체된 공간'을 연구한다. 시간과 공간이 만나는 지점, 공간이 파열되는 곳, 아주 순간적인 공간들, 한시적인 공연을 위한 무대들, 그리고 우리의 인지 감각을 뒤흔드는 미궁, 거울의 방과 같은 미쳐버린 공간들과 함께 마지막 춤을 추며,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더듬는다. 이를 통해 "존재할 수 없는 건축. 건축의 소멸. 시간 속에서 공간의 해체"를 논한다.

이 책을 덮은 나는 잠시 혼란스러워졌다. 이 책은 완결의 형태로 끝나지 않는다. 파열과 해체로 끝난다. 니체의 유명한 글귀처럼 - “내 그대들에게 말하노라. 인간은 춤추는 별을 낳기 위해 자신 속에 혼돈을 지니고 있어야만 한다. 내 그대들에게 말하노라. 그대들은 여전히 내부에 혼돈을 지니고 있다.” - 혼돈과 함께 끝난다. 그러다 잠시 후 정신을 차려보니 우리의 삶, 시간과 공간 그 모두가 한데 어울려 춤추는 '시공의 안무'임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저자는 말한다.

"발명의 즐거움은 극단적 가능성을 찾아 더듬거리며, 경계를 넘어서려 하고, 지평선을 향해 손을 뻗는다. 마치 성적인 사랑처럼, 새로운 형상에 대한 동경은 도취를 원한다. 그 동경은 무언가 생겨날 미지의 세계로, 심연으로, 불가능으로 떨어질 준비가 되어 있다.

묘사된 적도, 통제할 수도 없는 변두리에 서있는 발명가의 길도 마찬가지다. 인식을 나르는 '운송 수단'과 같은 도구의 경계선은 의심을 받고, 그와 함께 질서, 안전, 기대, 그리고 힘들게 묶여 있던 모든 관습들마저 의심을 받는다. 호기심이 많은 사람은 고독하고 그의 땅은 존재하지 않는 공간, 존재하지 않는 장소가 된다. (The curious mind is a lonely individual, his country is the non-space, a non-topos.)"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이카루스처럼 불가능한 꿈을 꾸는 것, 다이달로스처럼 경계를 넘어 저 너머에 도달하는 것. 혼란을 넘어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 눈에 보이는 것, 몸이 느끼는 것을 너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 존재하지 않는 장소"를 탐험하는 것, 그런 동경과 호기심이 바로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아닐까?

그렇다면 어떻게 그 경계를 탐험할 것인가? 머리로는 안 된다. 눈 만으로는 안 된다. 생각 만으로는 안 된다. 끊임없이 느껴야 한다. 맛보아야 한다. 춤을 추어야 한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이 우리의 시지각과 몸의 확장이며, 시간과 공간의 춤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렇게 자신과 인간의 한계를 탐험하는 것, 그것이 바로 꿈꾸는 인간이 해야 하는 일이다. 이제 자신의 좁은 경계를 넘어서라. 밖으로 나가 새로운 세상과 함께 춤을 춰라. 브레히트가 '사천의 선인'에서 노래했듯, 이제 책은 끝났다.

"이제 연극은 끝이 났다… 커튼은 닫혔고, 모든 질문은 열렸다... 존경하는 관객들이여, 가라, 스스로 답을 찾아라! 반드시 옳은 답이 있을 것이다. 반드시, 반드시, 반드시." (So ends the play… The curtain closed and all questions open. … Honored guests, go, find yourselves the answer! There must be a good one, must, must, m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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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1 17:58:05 *.43.26.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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