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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4일 11시 44분 등록
어린이는 어떻게 어른이 되어 가는가? 프랑수아즈 돌토(1908-1988) 표원경 옮김
1. 저자에 관하여



프랑스인의 대모(代母) 프랑수아즈 돌토는 라캉과 함께 프랑스를 대표하는 정신분석가이다.
가톨릭이지만 교회에는 잘 다지지 않는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딸 둘, 아들 다섯인 7형제 중 넷째였다. 어린 시절은 매우 유복했으며 가족 중심적이었지만 별로 자유롭지는 못했다. 그녀는 “25세 때까지는 집이나 할머니 댁 외에 다른 곳에서 식사를 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고 말한다. 출생초기에는 아일랜드인 유모가 프랑슈아즈를 돌보아 주었다. 그런데 이유모는 보석을 훔쳤다는 이유로 쫓겨났다. 유모가 떠나자마자 생후6개월인 프랑슈아즈가 폐렴에 걸렸다. 그 후로는 “어머니가 밤마다 유모 대신 나를 꼭 껴안고 나를 돌보아 주셨다.”고 말한다. 분석 치료 중에 비뇌주(Vineuse)거리의 수수께끼를 풀었다. 즉 유모가 자주 들렀던 호텔과 더불어 자신의 생의 단편을 재발견한 것이다.
4세경에는 기차가 지나가는 라넬라프 거리의 구름다리를 경험한다. 연기의 현상 속에서 “세상은 사라져버렸고, 사람들은 하늘에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죽음 이후에 대해 질문하고, 어른들의 지식의 한계에 대해 확인한다.

1916년 7세 때 전쟁 중에 대부가 돌아가셨다. 그는 프랑수아즈가 마치 약혼자처럼 여겼던 ‘오이디푸스 삼촌’이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과부’, ‘7세의 전쟁 미망인’이 되었다. 주로 집에서 공부를 했던 프랑수아즈는 호기심이 많고 창의성이 풍부한 어린 소녀였다. 8세 때는 교육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프랑수아즈는 “교육에 문제가 있을 때 아이들은 아프지만 그것은 진짜 병은 아니라는 것을 아는 의사가 되고 싶어 했다.” 전쟁이라는 재앙으로 가장을 잃고 황폐해진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며 프랑수아즈는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1920년 9월. 프랑수아즈가 12세 때 언니가 죽는다. 첫 번째 영성체 전날 밤, 어머니는 그녀에게 언니가 치명적인 병에 걸렸으니 열심히 기도하라고 하면서 기도를 잘하면 하느님이 기적을 베풀어 주실지 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녀는 “나는 기도를 잘하는 법을 몰랐기 때문에 언니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죄의식을 느꼈고 어머니 역시 내가 기도를 잘못해서 언니가 죽었다고 했다.”라고 말한다. 또 “가정의 전체적인 구조에서 이러한 돌연한 상실이 없었다면 나는 분석가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후 어머니는 우울증에 걸렸고 프랑수아즈는 이후 어머니의 자신에 대한 여러 가지 억지들을 그 우울증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15세 때 막내 남동생이 태어났는데 ‘커다란 바람 같은 것’을 집안에 가져왔다. 프랑수아즈가 주로 이 동생을 돌보았으며, “그와 함께함으로써 아동 정신분석을 발견할 수 있었다”라고 말한다.

1924_34년 몰리에르 고등학교에서 철학 수업을 듣게 된다. 프랑수아즈가 고등학교에 다닌 것은 한 해 뿐이었다. 바칼로레아에 합격했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바칼로레아를 가진 처녀는 결혼을 할 수 없다”며 오히려 못마땅하게 여겼다. 바칼로레아 이후 어머니의 반대로 학업을 중단하고 집에서 여러 가지를 배우면서 의학을 공부할 수 있다고 한 스물다섯 살이 되기를 기다린다. 그러다가 22세 때는 간호학을 공부하여 다음해 자격증을 취득한다. 남동생이 의학 공부를 시작하던 24세 때 그녀도 동생과 함께 의학 공부를 시작할 수 있게 된다.
어머니와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학업에 집중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어진 그녀는 동생 필립이 이미 분석을 받고 있었던 라포르그에게 도움을 받아 환자로서 자신의 정신 분석을 시작한다.
약혼자와의 파혼으로 불거진 어머니와의 갈등 때문에 전신분석을 받게 된 돌토는 스스로의 치료과정에서 정신분석의 놀라운 힘을 경험하게 되고 ,애초 소아과 의사가 되려는 소만을 접고 정신과 의사가 되어 정신분석학을 시작한다. 어렵고 딱딱한 상아탑 담론에 갇히지 않고 현장의 정신분석과 임상실험으로 대중과 직접 교감했던 돌토의 실천적 정신분석은 특히 아동들에게 집중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감동적이다. 아무리 어린이라 할지라도 인간으로서 말하고자 하는 언어에 대한 강렬한 욕망이 있으며 하나의 증상이란 이름 없이 방황하는 흥분 감정이라는 확신으로 아동의 정신을 분석했던 돌토의 공헌은 프랑스가 ‘아동 교육의 천국’이 되게 하는데 큰 디딤돌이 되었다. 직접 세운 영아원‘초록의 집’에서 1988년 육체적 생을 마감하기 까지 아동상담을 계속했던 그녀는 ‘도미니크의 사레’, ‘아이들의 대의’ ‘신생아 보고서’ ‘아이와 거울’, ‘아이가 타어나면’등의 저작을 남겼다.


2. 내 가슴에 들어온 글귀

어린이가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
어린이는 어떤 과정을 거쳐 어른이 될까?
어린이는 어떤 시련을 겪으면서, 어떤 갈등 속에서, 어떤 방해에 부딪치며 자라는가?
어린이가 자기 자신을 이루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이루어야 하나? 어린이는 무엇으로 자기 자신을 곧추 세워 씩씩하고 지혜로운 어른으로 변하나?
몸은 자랐으되 심약하고 주관 없는 어른이 되는 것은 또 어떤 이유에서인가?
[들어가는 말 중에서]

어른들도 한 때는 어린이였다. 그렇지만 어른만 되면 그 세계를 까맣게 잃어버리고 어린이를 자신의 방향대로 몰아간다. 이러한 어른들의 일방적인 생각과 뮈, 몰이해 때문에 어린이는 야단을 맞으면서도 수긍할 수 없고 그래서 또 다시 야단맞을 일을 한다. 이 묘한 순환을 추억하며 돌토는 어린이가 자라 어른이 되고, 그 어른이 어린이를 키우면서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모순을 들여다본다.

조용하면서도 확고한 생리적인 힘이자
생각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그런 것,
나는 이것이 모든 어린이들의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언제나 욕망함으로써 현재하는 어떤 것을 지닌다. 그래서 아이들은 다른 사람의 욕망을 돌아볼 시간이 없다.
그러나 어른인 내가 아이들이 지니는 성격의
어떤 면모를 간직하고 있다면
그것은 나이 많은 할머니로서
타인의 욕망을 염려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23] 그런데 그 죽음에 대한 생각은 아주 이상한 데로 가버렸어. 내게 새로운 공포를 가져왔다고나 할까. 그것은 죽지도 않은 내가 잊혀지면 어쩌나 하는 거와 관련된 거였어. 그때 나는 아주 나이 많은 사람들을 볼 때마다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곤 했단다. ‘무서운 일이야. 저 사람들은 잊혀졌어.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 그들의 손자들마저 죽게 된다면 그들이 누구인지 어느 누가 알까? 그렇게 잊혀진 채로 그들은 남게 되고, 살아서는 죽음에 다가가지 못하니까 죽음이 어떻다는 것도 전혀 알지 못하겠지.’ 이런 것들이 너무 두려웠지.

[26] 나는 사람들이 죽어서 가는 하늘과 총총한 별들이 떠있는 하늘이 같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 내게 있어서 사람이 죽어서 가는 하늘은 더 이상 세상이 보이지 않는, 기차 연기와 같은 구름처럼, 땅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 있는 어떤 곳이었지. 그것은 삶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었어. 그래서 나는 자주 이렇게 말했어.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살고 있다고. 내게 있어 하늘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아니었지. 그것은 우리와 아주 가까이 있으면서도 눈에는 보이지 않는 신비한 현실 속에 있었어. 그렇지만 다른 하늘, 즉 별이 뜨고 지는 하늘은 신비한 것은 아니었어. 그렇다고 우리가 그 다른 하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언젠가는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지.

[28]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소위 어른들이 말하는 멍청한 일들을 수도 없이 저질렀던 장본인이었거든. 그런데 나는 정말이지 그 일이 어째서 그리 나쁜 일인지, 왜 그리 멍청한 일인지 알지 못했어. 그래서 몹시 힘들었지. 언제나 영문도 모르는 채 벌을 받아야만 했으니까.

[31] 후식을 못 먹게 하는 벌. 그것은 먹는 걸 좋아하는 내게는 너무 가혹한 벌이었어. 어찌나 끔찍했던지 입술을 깨물고 다짐했어. ‘어른이 되기만 해봐라. 매일매일 후식을 세 가지씩 먹을테니!’ 지금도 종종 후식을 먹다가 그 때가 떠오르는 걸.

[33] 그래. 실은 난 거짓말쟁이였어. 닦지도 않은 이를 닦았다고 우기는. 난 사람들이 이를 닦았는지 닦지 않았는지를 알아낼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러나 그건 내 착각이었지. 내가 이를 닦았다고 우기면 가족들은 내 칫솔을 보러 갔거든. 당연히 칫솔은 보송보송했지.

[34] 손이나 다리에 쓰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던 나는 늘 연필로 온몸에 낙서를 해댔지. 그때까지도 볼펜은 없었어. 요즘엔 볼펜 자국을 자기 몸에 남기는 아이들도 많지. 피부에다 색연필로 무언가를 그려 넣은 아이들도 있고. 그것은 일종의 문신인데 아이들이 그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뭘까? 내 생각으론 사는 동안 갖게 된 흔적들, 그 삶의 흔적들의 주인이 다름 아닌 자신이라는 확인 때문이 아닐까 싶어

[48] “어른한테 바보라고 그러면 못 써!”
못 쓰는 말을 한 대가로 아이들은 야단맞고 벌을 받지. 하지만 이것은 아이가 나름대로의 현명한 성찰을 말했다는 것을 부모가 이해하지 못한 처사야. 이런 것이 아이에게 갈등을 일으키지. 나름대로 타당했던 아이는 자기가 아주 좋아하는 사람을 어리석다고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야.

[54] 나는 두 가지 감정 사이에 있었어. 전쟁이 끝났다는 게 바로 이런 것이었음을 몰랐다고 하는 데서 오는 기이함과 ‘이 기상천외한 축제 다음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에 대한 염려 말이야. 돌아오지 못한 아버지와 아들들, 수잔 - 우리 집에서 옷을 만들고, 일주일에 두 번씩 수선도 하는-의 멋진 약혼자가 있는데, 이렇게 즐겁게 축제를 보내고 나면 어떤 마음일까 걱정되었지. 모두들 영웅의 죽음과 그로 인한 슬픔들을 외면한 채 웃고만 있었어. 정말 충격이었어. 너무 큰 충격이었지. 아마도 그래서 ‘테른느’거리가 있어야 했는지도 모르겠지만.

[58] 어른들은 아이가 묻는 질문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 역시 그것을 어떻게 물어야 하는지 잘 몰랐기 때문이야.

[76] 내 경우는 죽는다는 것에 대한 호기심이 커서인지 그에 대한 두려움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 내게 있어 죽음이란 나의 약혼자였던 피에르 삼촌을 다시 만난다는 의미였지. 삼촌이 죽었을 때 나는 과부로 살아야 한다고까지 생각했었단다. 결혼 같은 건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지.

[84] 우리가 의식해야 할 것이 있다면, 사랑하는 그들을 향해서 그것에 대해 너무 많이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 어머니가 친가를 사랑한다고는 말할 수 없었어. 아버지의 경우도 그랬던 거 같아. 그래서 어머니가 없을 때 우리가 친가에 가서 했던 일을 말하면 상당히 귀를 기울이는 데 반해, 외가에 대해 말하면 별로 귀담아 듣지 않았지.
우리 부모가 남매가 아니라는 것도 나는 이렇게 해서 알게 되었던 것 같아. 처음에는 아무도 우리 부모가 남매가 아니라고 말해 주지 않았으니까. 더구나 아버지는 어머니의 어머니를 ‘어머니’라고 불렀고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던 상황을 나는 헷갈림을 부추겼지.

[86] 어머니의 자식 사랑은 아주 특별해서 우리 형제들 모두에게 아주 귀한 것을 선물해주셨단다. 즉 한 사람에 하나씩 앨범을 만들어서 그 속에 선대의 사진과 부모 사진 그리고 각자의 어린 시절부터 모아두었던 사진들을 차곡차곡 정리해서 남겨주었지.

[92] 어릴 때 어머니를 여읜 그녀는 나를 유독 귀여워했는데 나는 그게 하나도 이상하질 않았어. 그녀는 ‘하늘나라’에 있어 실체 없는 어머니와의 유대가 작은 생명 덩어리였던 내게로 이전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96] 전차 이전에 ‘6마력의 합승마차’가 있었는데, 우린 그냥 ‘합승마차’라고 불렀어. 그 합승마차에는 ‘지붕 위 좌석’이 있었는데 거기에 탄 손님들은 진짜 지붕 위에 앉아서 갔지. 그 다음에는 트롤리 전차가 나왔는데 그건 전기로 가는 전차였어. 그리고 1930년경에 휘발유로 가는 버스가 나왔지. 그때부터 아이는 탈 것에 몸을 싣게 되었고 걸어서 다닐 때와 같은 표시들을 전혀 해놓을 수가 없게 되었어. 탈것이 멈춰서는 장소, 즉 아이와 동행한 어른을 내려놓는 장소나 구역은 그들이 탈것에 몸을 실었던 장소, 혹은 그들이 떠나왔던 친숙한 장소와 아무런 상관이 없었으니까. 걸어서 만든 길이 없음으로 인해서 그것은 훨씬 신기한 일이 돼버린 거야. 갑자기 모든 것이 다른 세계 속에 있게 된, 그리하여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는 공간들이 마구 쏟아지는 거지.

[109] 우리 형제들은 저녁마다 모여서 음악을 연주했어. 집안에 행사가 있을 때마다 특히 전쟁 이전에. 그 이후는 한두번 정도 어머니는 이중주나 삼중주 연주자들을 집으로 초청했지. 그리고 식사 이후 우리는 거실에서 두 시간 정도 음악가들의 연주를 감상했어. 독일 남부의 부르텐부르크 학자 집안 출신의 외할아버지의 영향으로 그쪽 전통이 우리 집에서 이어지면서 그런 식의 행사를 치렀던 거야. 당시 음악은 우리의 오락이나 다름없었어. 매일 저녁 함께 즐기는 놀이였다고나 할까.

[116] 거기에서 나는 당대의 유명한 문학가와 예술가들이 강연을 들을 수 있었지. 마드모아젤을 동반하고 참석했던 그 강연들은 다소 세계적인 수준의 것으로 내게는 소중한 자극제가 되었어. 그래서 나는 자크 코포, 앙트안, 드리스탕 베르나르와 같은 중요한 극단의 초기 인물들과 자식들의 여행에 관해 이야기해주었던 타로 형제, 장 콕토, 지로두, 앙드레 지드와 뒤마헬, 모리스 팔레오로와 같은 작가들도 만날 수 있었단다. 나는 강연을 통해 서평을 듣고 그들이 권하는 책들을 읽었어. 이런 나를 아버지는 이해하고 자랑스러워했지.

[121] 내가 정신분석을 해야겠다고 결정한 것도 있었지. 사실 그 때의 나는 거의 분열증 직전이었단다. 그것은 죄의식과는 별개의 문제였지. 의사가 되기 전 나는 언니 자클린의 친구이기도 했던 어떤 가족을 알게 되었어. 물론 내가 그 사람들을 알게 된 것은 언니가 죽고 난 다음의 일이었지.

[134] 나는 문장을 한 번 읽으면 대부분 한 번에 그 뜻을 파악할 정도의 이해력과 집중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2,3주 전부터는 두세 번을 읽어도 이해되지 않는 일이 반복되고 있었어. 나는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너무 심하게 들볶이고 있다고 생각했어.

[136] 실제로 나는 아주 빠른 속도로 그 상황에서 빠져 나왔는데, 라포르그에게 조금씩 내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경험했던 죄책감을 아주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거든. 나는 약혼자를 속였고 우롱했으며 또한 너무 선량한 한 남자를 혼란에 빠뜨려서 술에 취해 비틀거리게 한 나쁜 여자였지. 그렇게 나의 혼돈과 죄책감을 표현하는 대신 나는 공불에 몰입할 수 있을 만큼의 지적 능력을 빠른 속도로 회복해 나갔어.

[139] 나는 병원의 통근 조수를 하면서 공부를 계속했고 어린이를 돌보기도 했어. 의사로서 어린이를 돌보는 일은 어떤 경험보다 흥미로웠단다. 나는 거기에 많은 열정을 쏟았어. 때로 주사 놓기와 수술 보조 등의 부업도 했지. 물론 나에 대한 정신 분석도 계속했어. 나는 그 일이 아주 좋았거든

[149] 그때가 1935년이었으니까 나는 병원 통근 조수로 열심히 살 수 있게 된 내 인생이 좋아서 소리쳤어. 어머니는 어리둥절해져서 나를 쳐다보았지만 그래도 난 신이 났어. 그때는 보리스 돌토를 알기 3,4년 전이었단다.

[150] 확실히 나의 정식분석가는 나를 정신분석 쪽으로 몰아갔지. 내가 원했던 것은 소아과 의사, 특히 아이를 심리학적으로 이해하는 소아과 의사였어. 참 그 이야기 전에 아버지가 어머니의 요청에 따라 나의 치료비를 끊었다는 것부터 말해야겠다. 그래서 나는 갑자기 정신부석을 그만두어야 했지.

[151] 나에 대한 정신분석은 1934년에 끝났고, 그 후로 연구소에서 개최하는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나는 다른 사람들을 분석하게 되었어. 나는 의사로서 어른들을 치료했고, 보호소에 있는 성인 정신병 환자들을 돌봤지.

[152] 나는 당시의 내 삶에 대해서 어떠한 원망도 갖고 있지 않단다. 어떻게 보면 참 불행했던 시절이라서 열두 살에서부터 서른 살까지의 삶으로는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을 정도인데 말이야. 그러나 그 시절은 내게 나름대로 소중했다고 생각해.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다름들, 그리고 몰이해들을 알게 해준 아주 특별한 학교였으니까. 그리고 만약 서로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를 존중할 수 있었다면, 사랑을 나눌 수도 있었을 그들이 무의식적인 경쟁의식이나 완전함을 지향하는 성향, 선험적인 판단과 어머니의 달에 대한 질투 등이 복합되어 그럴 수 없게 된 사정도 알 수 있게 해주었지.

[156] 가정의 전체적인 구조에서 이러한 돌연한 상실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정신분석가가 되지 않았을 거야. 의사가 된다는 생각은 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여덟 살 때부터 줄곧 의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 만약 언니가 그렇게 죽지만 않았어도 그리고 어머니의 병적인 상실증, 아버지의 도덕적 고통과 혼란 그리고 형제 중에 언니와 가장 가까웠던 피에르 오빠의 고통, 이후에 어머니가 기대했던 보상적 만족을 가져오지 못했던 어린 동생의 출생을 경험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정신분석가가 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을 거야.

[159] 나는 아이의 지성과 감성을 일깨우는데 조그만 도움을 보태는 일로 그런 말을 듣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어. 오히려 나는 그 아이가 너무 놀라웠거든. 아이가 세계의 모든 것에 마음을 열고 빠져 들어간다는 것, 상징적이면서도 동시에 비유적인 세계 그리고 현실 세계와 함께 꿈의 세계에 동시에 빠져 들어간다는 것, 한 번 들은 이야기를 기억한다는 것, 실재한 사람인지 꾸며낸 사람인지를 구별해서 질문한다는 것 등이 너무 놀라웠지.

[161] 아이의 지적 능력은 감각적인 것이 기초가 되지. 아이의 지능은 지각의 차이들에서 영향을 받는단다. 왜 그것인가? 그것은 무엇인가? 자크가 내게 한 질문들의 대부분은 밖에서 마주친 조각들과 집 안의 그림들을 비교해서 즉, 문화와 계절에 따른 자연의 다른 모습들과 관계해서 떠오른 것이었지. 아이와 함께 마을을 산책하는 길에는 사람들이 먹이를 던져주는 오리들도 있었지만 꽃이 피고 낙엽이 지는 계절도 있거든.

[166] 아마도 이러한 것이 나의 관찰 감각을 발달시켰던 것 같아. 우리와 타인 사이에 다른 점은 무엇일까? 우리를 위해서 부모님이 타인과의 접촉을 두려워하게 된 것은 왜일까? 다른 사람들이 말을 하면 나는 세심히 들었지. 그들의 언어는 집에서 쓰는 것과는 아주 달랐거든. 이 차이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기도 했어. 물론 그렇다고 항상 대답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야. 그러나 부모가 나를 귀찮게 하려고 그런다고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어. 사람들이 누군가를 괴롭히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지.

[167] 하여간 나는 어떤 것을 발견하는 것이 너무 행복해서 그 발견하는 기쁨을 내게 마련해주고자 애썼어. 나는 사실 돈을 쓸 줄을 몰랐어. 돈을 쓸 만한 일도 없었지만 실제로 어디에 써야 할지도 몰랐지. 동생들이 팽이를 원하는 것을 보고 나는 팽이를 산 적이 있었던 게 고작인걸. 적어도 내가 광석 라디오를 만들고 싶어하기 전까지 나는 원하는 게 없었던 것 같아.

[167] 결국 나는 바라는 게 없었지. 나의 모든 욕망은 단 하나로 집중되었어.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 하는것 ! 이상하게도 그것은 그칠 줄 몰랐지.

[169] 내게 돈은 무엇인가를 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보상의 가치를 지닌 어떤 것이었고, 누군가 내게 준 그 무엇이었어. 그것은 내 것이었고 그래서 나는 그것을 가지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었지. 갚아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못 했어. 좀 멍청했던 것 같지? 이런 것들로 나는 어른들을 즐겁게 해주었어.

[170] 정신분석가가 되고 난 다음에야 나는 비로소 나 자신과의 그 이상한 숨바꼭질을 분명하게 인식했어. 처음에는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페니스 주변이었지만 좀 더 나중에는 자신의 성과 상관없이 인간의 감추어진 가치 주변을 맴돌면서 하는 거였겠지. 그 다음은 말할 것도 없이 내 경우는 아일랜드 보모의 상실과도 관련된 숨바꼭질이었을 거야.

[174] 어쨌든 우리 집에는 이상한 어떤 것들이 있었다고 생각해. 가족들은 왜냐고 묻지는 않고 나를 야단쳤는데, 악의는 없다고 해도 이건 약간 어이없는 일이었지. 우리 집에서라면 악의를 가정하기에는 상상력이 부족했고 타인에 대한 방어적 공격성도 부족했지. 나는 의식적으로 공격적일 수 없었으니까. 그러나 사람들은 나로 인해 갑자기 나빠질 수 있었어. 하지만 나는 일부러 나쁘게 하려고 하지는 않았을 뿐 아니라. 나라는 인물에 누군가의 감정을 투사할 수도 없었어. 이것은 일종의 장애였지.

[177] 아마도 이것이었을 것이다. 나를 지켜준 힘! 그것은 내게 있는 조용하면서도 확고한 생리적인 힘이자 생각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그런 것이었다. 나는 이것이 모든 아이들의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그것이 내가 아이들을 낯설어하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아이들은 언제나 욕망으로써 현재하는 어떤 것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다른 사람의 욕망을 돌보아줄 시간이 없다. 그러나 어른인 내가 아이들이 지니는 비논리적이고 환상적인 성격의 어떤 면모를 간직하고 있다면, 그것은 나이 많은 할머니로서 타인의 욕망을 염려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인들이 행복한 아이들과 희망을 품은 젊은이 보기를 좋아하는 것, 그것이 바로 그들을 다시 젊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3. 내가 저자라면

아이들과 생활한지도 수십 년이 지났다. 누구보다도 아이들을 잘 안다고 생각 했던 것은 나의 착각임을 깨닫는다. 그들을 위한 책을 써 보겠노라고 생각한 순간, 그들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정확히 이야기 할 수 없었다. 내가 가진 그들에 대한 해답은 그들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다. 편리상 만들어 둔 해답에 불과하다. 그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들은 어른인 우리들을 어떻게 보는가? 프랑슈아즈는 그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는 과정을 통해서 어린 아이들의 심리를 읽어낸다. 그의 의식 속에 깔려있는 기억의 세계가 정확함의 여부를 떠나서 그러한 방법으로 어린아이들의 마음을 읽어낸 점에서 시사점이 크다.
어린이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그들에 대한 다양한 이론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돌통와의 만남은 책을 써 보리라고 생각한 길목에서 얻은 커다란 수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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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1 북 No.17- 김용규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 두번읽기 file 유재경 2011.07.24 3486
1040 놀이와 문화에 관한 연구 -호모루덴스(호이징하) 우제 2007.10.21 3488
1039 새로운 미래가 온다 - 다니엘 핑크 숙인 2010.01.03 3488
1038 서양의 지혜 - 버트런드 러셀 [1] 레몬 2012.10.29 3489
1037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 조셉 캠벨 [1] 레몬 2012.04.23 3490
1036 캔터베리 이야기 file [2] 레몬 2012.06.04 3491
1035 피터 드러커 자서전 [2] 예원 2009.10.05 3492
1034 66. <혼자놀기> 강미영 [4] 박미옥 2011.11.25 3495
1033 유라시아 유목제국사/르네 그루쎄 지음 file 최재용 2013.08.19 34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