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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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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2일 16시 14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평소 접해 보지 못하던 스타일의 책이었던 대담집 ‘신화의 힘’. 1985년 미국에서 방영된 TV 대담 내용을 인터뷰어인 빌 모어스가 책으로 엮은 것이어서 ‘저자에 대하여’ 쓰라는 선생님의 요청에 첫 숙제였기 때문인지 더욱 소심한 고민이 스치기도 했다. 누가 저자일까.. 아래 사항은 그 짧은 고민 끝에 적게 된 이야기꾼 조셉 캠벨에 대해서 살펴보고 역자인 이윤기에 대해서도 잠깐 언급해 보고자 한다.
먼저 조셉캠벨 (Joseph Campbell)은 누구인가?
그는 1904년 생으로 콜롬비아 대학을 졸업하고 한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면 전 세계의 신화를 수집, 정리하고 비교, 연구한 인물로 20세기 최고의 신화학자라고 칭송을 받는 학자이다.

그는 생전에 20여권의 책을 쓰거나 집필했는데 우리나라에는 8권 정도(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신의 가면 4권, 신화와 함께 살기 등)가 번역되어 소개되어 있고 공동 집필로 2권이 더 번역되어 있다. (알라딘, 예스 24참조)
일반적인 그의 객관적 행적 대신 이 책 ‘신화의 힘’에서 가끔씩 언급되는 그의 일화들을 통해 그를 살펴보는 것도 그를 아는데 더욱 도움이 될 것 같다. 독실한 카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 아메리카 인디언 신화를 읽다가 학교에서 수녀 선생님에게 들은 것과 똑같은 모티프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약간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 뒤 아주 어린 나이인 10살 때부터 신화에 빠져든 그는 이쪽 방면에 대해 공부를 시작하고 결국 세계 최고의 석학이자 (모이어스의 표현을 빌자면) 가장 화끈한 스승이 되었다.

그의 어린 시절의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는 또 있다. 신화에 빠진 뒤 맨하탄에 있는 미국 자연사 박물관을 즐겨 찾았는데 그 중 특히 박물관 한 쪽의 토템 기둥에 매료되어 자주 찾아가곤 했다는 것이다. 어린 아이가 토템 기둥에 매료 되었다는 것도 그의 범상치 않음을 보여주는 이야기임은 물론 시간이 날 때마다 그곳을 들락거리며 하염없이 기둥을 바라 보았을 어린 소년의 그를 떠올리니 이미 세상을 떠난 고인이기는 하지만 타고난 그의 신화에 대한 열정에 대한 경건함과 함께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그는 평생 신화를 연구하면서 진리란 하나이며 종교란 현자가 여러 이름으로 언표 한 진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신화 역시 종교처럼 ‘신의 가면’(그의 표현대로) ‘진리의 가면’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즉 종교란 다른 문화권에서 신들이 가면을 쓰고 나타난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게 된 그는 카톨릭 집안에서 자라났지만 종교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는 듯 하다. 오히려 종교부분에 있어서는 차츰 불교, 힌두교와 같은 동양사상에 마음을 뺏긴 듯 하다. 이 책에서 다루는 다양한 성경, 불교, 힌두교, 인도 경전, 신화들을 예시로 제시하고 풀이할 때마다 그에게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성경 보다는 동양사상을 통해 표현되는 신화 이야기의 원형과 해석에 더욱 애정을 쏟고 공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전반적으로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으나 유일신 개념만을 주장하고 자연에 대해서 파괴적인 이미지를 제시하는 서양적 관점의 기독교라는 표현을 써가며 기독교를 설명하는 그는 분명히 토템 기둥에 매료되듯 동양사상에는 매료되어 버린 듯 하다. 그의 이와 같은 사상은 “오늘날에는 유효한 단 하나의 신화학은 지구라고 하는 행성의 신화학인데, 유감스럽게도 우리에게 이것은 없어요. 내가 아는 한, 지구라는 행성의 신화학에 가장 가까운 것은 불교입니다.(61P)” 라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더욱 분명해 진다.
어찌되었건 연구하고 공부하는 것을 최대의 낙으로 삼고 평생을 바쳤던 그는 이 TV 대담을 마친 후 2년 뒤인 1987년 10월 세상을 떠났다. 평생을 신화만 바라보고 신화가 자신의 천복이라고 말하던 그. 인생에서 ‘존재’ 란 죽음과 삶이 하나인 것이고 그 둘은 서로 균형을 잡아주어야 하는 것이라던 그는 분명히 달콤한 죽음을 맞이했을 것 같다.

역자 이윤기에 대해서도 간단하게 나마 소개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어렸을 때 아버지 주몽을 찾아 떠나는 유리왕을 소재로 한 연극을 보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눈물을 흘렸다던 그. 그런 그가 그리스 신화를 보고 아버지 태양신을 찾아 길을 떠나는 파에톤이나 장성한 후 아테나이의 왕 아이게우스와 상봉한 테세우스는 모두 또 다른 유리왕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10살 때의 조셉캠벨과 같은 충격을 받은 나이는 20대 후반. 이후 신화에 빠져든 그는 우리 나라에서는 최고의 신화 전문가로 꼽힌다.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익히 들어온 터라 평소 신화에서 풍기는 느낌상 왠지 계단을 잘 밟아 올라온 엘리트의 전형일 것 같던 그. 그러나 너무 가난해서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그는 오로지 책에 대한 열정과 호기심, 신화에 대한 사랑으로 현재의 위치까지 온 흔한 말로 자수성가한 사람으로 브리태니커 사전 한 권을 다 씹어먹었다는 일화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번 기회를 통해 찾아본 그의 모습은 역시나 예상과 달리 마치 몇 십 년을 오로지 한 가지에만 매달려온 장인 혹은 달인과 같은 인상이었다. 무척 고집이 센듯하면서도 순박해 보이던 그. 그리스, 로마 신화 전문가라 불리는 그가 번역한 글이어서 더욱 알토란처럼 알찼던 것 같다. 틈을 내 역자인 이윤기의 그리스로마 신화를 사봐야 하겠음은 물론이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너무 무찔러 드는 글귀가 많아 적는데 애는 먹었지만 어려운 이 책에 감이라도 잡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빌 모어스의 서문]
10P.
- 법의 권위라고 하는 것은 단순한 강제력 이상의 어떤 힘을 지니는 것이기 때문에 재판장의 권능이 의례화하고 신화화하는 것이다. 캠벨은 종교와의 전쟁에서 사랑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우리 삶의 잉태는 이러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한다.
11P.
- “영웅의 역정에서 얻는 직관은 이성과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다. 영웅의 역정은 이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할 수 있다. 부정적인 열정을 극복함으로써, 영웅은 우리에게도 우리 내부의 비합리적인 야만을 극복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15P.
- 그는 자기의 작업을 관류하는 ‘중심 사상’이 ‘세계의 신화가 지닌 주제에서 공통되는 요소를 찾아내는 일’임을 인정한 바 있다. 그가 보기에, ‘세계 신화가 지니는 공통되는 주제는 심오한 원리를 통하여 중심에 이르려는 인간 정신의 욕구를 지향’한다.
18P.
- 그는 세계의 각각 다른 문화권에서 신들이 각기 다른 가면을 쓰고 나타나는 까닭을, 이 수많은 문화의 가지에서 서로 비슷한 이야기가 생겨나는 까닭을 알고자 한다. 그는 “진리는 하나이되, 현자는 여러 이름으로 이를 언표한다”는 힌두 경전에 나오는 통찰을 좋아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신의 이름과 신의 이미지는 가면일 뿐이다. 이 가면은 곧, 우리의 언어와 기술로는 정의가 불가능한 궁극적 실체를 뜻한다. 신화 역시 ‘신의 가면’이다.
21P.
- 그는, 신화란 우리 심층의 영적 잠재력에 이르는 실마리이며, 신화야말로 우리를 기쁨과 환상,심지어는 황홀의 세계에까지 이르게 할 수 있다고 믿는 한편, 우리를 불러들이는 그는 마치 그 세계를 다녀온 사람 같았다.

[1. 신화와 현대 세계]
26P.
- 인류의 삶을 떠받쳐오고, 문명을 지어오고, 수 천년 동안 종교의 틀을 지어온 고대의 정보는 심원한 내면적 문제, 내면에 관한 신비, 내면적인 통과의례의 문턱을 넘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요.
- 우리는 바로 이 신화라는 것에서 우리로서는 도저히 손에서 놓아버리고 싶지 않은 전통의 느낌, 깊고 풍부하고 삶을 싱싱하게 하는 정보가 솟아 난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28P.
- 완전한 것은 비인간적입니다. 보고 듣는 사람에게 초자연적인 인간이나 불사신이라는 느낌을 주는 대신, 아슬아슬한 것. 인간이라고 느끼게 하는 인간미…. 이게 사랑스러운 겁니다.
29P.
- 사람들은 우리 인간이 궁극적으로 찾고자 하는 것은 삶의 의미라고 말하지요.그러나 나는 우리가 진실로 찾고 있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는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은 살아 있음에 대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 신화는 인간 삶의 영적 잠재력을 찾는데 필요한 실마리인 것
30P.
- 외적 가치를 지닌 목적에만 너무 집착해서 움직이는 바람에,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이 내적 가치임을, 즉 살아 있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삶의 황홀이라는 것을 그만 잊어버리게 되었지요.
- 신화는 사람들에게 내면으로 돌아가는 길을 가르쳐 줍니다.
- 자기 종교와 관련된 신화보다 다른 문화권의 신화를 읽어야 하는 까닭은, 우리에게는 자기 종교와 관련된 신화를 믿음이라는 문맥에서 해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른 문화권의 신화를 읽으면 메시지를 느끼게 됩니다. 남의 신화를 읽으면 경험이 무엇인지 배우게 됩니다.
31P.
- 결혼은 연애 같은 것과는 달라요. 연애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이에요.결혼은 경험이 지니는 또 하나의 신화적인 차원입니다.
- 삶을 온당하게 산 사람이라며, 이성을 웬만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마음의 소유자라면 온당한 남성 혹은 여성 상대자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아요.
- 이거다, 하고 오는 게 있어요. 그러면 사람의 내면에 있는 어떤 존재가 이게 바로 그것이구나 하고 알게 됩니다.
32P.
- 결혼에서 중요한 것은 영적으로 하나가 된다는 것
- 결혼에서는 서로 전혀 다른 두 단계가 있어요. 첫번째 단계는 자연이 부여한 불가사의한 충동에 따라 두 젊은이가 결혼하는 단계이지요. 젊은이들은 이 자연의 충동을 좇아 생물학적인 성의 교합을 하고 자식을 낳습니다.하지만 이윽고 아이들이 가정을 졸업하고 나면 부부만 남게 되는 단계가 옵니다. 나는 가까운 사람들이 40~50대에 무수히 갈라서는 것을 볼때마다 놀라고는 한답니다. 아이들이 함께 있을 때는 정말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훌륭한 삶을 함께 산 사람들이었지요.하지만 이들은 자기네 관계를 아이들을 통한 관계로 해석하면서도 그것이 실수를 범하는 일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제대로 된 관계를 지닌 삶들이라면 자기네의 관계를 상호간의 인간적인 관계라는 측면에서 해석해야 하는 것이지요.
33P.
- 우리는 대개 결혼을 통해서 한두 가지씩은 희생을 시킵니다.결혼이라는 관계를 위해서 희생시켜야지,상대를 위해서 희생 시켜서는 안됩니다.
- 젊은이의 결혼은 어느 대목에 이르면 두번째 단계에 접어드는데,이것이 내가 바로 ‘연금술적 단게’라고 이름 붙인 단계입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둘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데, 바로 이 단계에서 부부는 내가 앞서 말한 희생의 의미를 서로 아름답게 깨닫게 됩니다.
35P.
- 모든 아이는 지금의 세상에서 이성적으로 기능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그런 다음에야 어린 시절을 떠날 수 있어야 합니다.
36P.
- 어떤 문화권이든 우리가 문화권이라고 부르는 모듬살이에는 삶의 규범이 될 만한 룰, 그 문화권 사람들 사이에 묵시적으로 이해되는 불문율 같은게 있는 법.그런 문화권에는 에토스라고 할 수 있는 것, 삶의 양식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우리는 그런 식으로는 하지 않는다’라고 하는 어떤 묵시적 양해 사항이 있어요..정리되지 않은 신화라고 부를 수 있겠지요.
39P.
- 1년 내내 계속되는 의례가 가변적인 존재의 불변하는 핵(核)같은 것을 어린아이의 마음속에다 새겨놓는다는 것
- 나는 아메리카 인디언 신화에,내가 어릴 때 학교에서 수녀 선생님에게 들은 것과 독 같은 모티프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약간 충격을 받았습니다.
41P.
- 세계의 신화들이 갖는 공통적인 테마는 시공을 초월해 있습니다. 문화는 이런 이야기의 영향을 받은 것
- 민족적 기질에 따라 적용하는 것이 조금씩 다르다.
- 신화는 문학과 예술에 무엇이 있는가를 가르쳐 줍니다. 우리 삶이 어떤 얼개로 되어 있는가를 가르쳐줍니다. 신화는 우리 삶의 단계,말하자면 아이에서 책임 있는 어른이 되고,미혼 상태에서 기혼 상태가 되는 단계의 입문 의례와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42P.
- 왕이나 여왕에 대하여 반응할 때는 우리는 그들의 인격에 따라서 반응하는 것이 아니고 이들이 지닌 신화적인 역할에 따라 반응합니다 어떤 사람이 판사가 되거나,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될 경우 그 사람은 더 이상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신성한 직함을 대표하는 사람이 됩니다.
48P.
- 기도나 명상이라고 하는 것은 의식의 수준을 오르락내리락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어떤 의식의 수준을 일정하게 유지시키기 위해서 있는 것
- 신화는 이 세상의 꿈이지 다른 사람의 꿈이 아닙니다. 신화는 원형적인 꿈입니다.인간의 어마어마한 문제를 상징적으로 현몽(現夢)하고 있는 원형적인 꿈입니다.
57P.
- 태초에는 하느님도 많은 하느님 중 가장 힘이 센 하느님에 지나지 않았어요. 당시의 하느님은 어떤 동네의 종족신(種族神)이었답니다. 그런데 6세기 유태인들이 바빌론에서 귀양살이를 할 때, 문득 이 세계의 구주(救主)라는 관념이 생기면서 성서의 신은 새로운 차원으로 발돋움합니다.
- 옛 전통을 가꾸는 유일한 방법은 시대의 상황에 맞게 그것을 쇄신하는 길뿐
58P.
- 각기 새로운 신화가 필요하지요. 원수를 사랑하라, 열어라, 남을 평론하지 말라! 이것은 모두 불교에 있는 겁니다. 신화에 있는 겁니다. 옛날부터 있어 왔어요.
60P.
- 신화의 뼈대가 되는 모티프는 같아요. 옛날부터 그래왔어요. 우리의 신화학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되는 것은 자기가 사회의 어떤 동아리에 속해 있느냐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지요. 모든 신화학은 어떤 범주에 구속된 사회에서 자라납니다. 그런 신화학이 밖으로 나오면서 충돌하고, 충돌을 거쳐 어떤 관계 속으로 들어가고, 여기에서 혼효(混淆)를 거치면서 더욱 복잡다단한 신화학이 됩니다.
61P.
- 하지만 오늘날에는 구속적인 범주라는 것이 없어요. 오늘날에는 유효한 단 하나의 신화학은 지구라고 하는 행성의 신화학인데, 유감스럽게도 우리에게 이것은 없어요. 내가 아는 한, 지구라는 행성의 신화학에 가장 가까운 것은 불교입니다.
- 참여와 사랑의 신화는 오로지 무리의 안을 맴돕니다. 밖을 향하면 태도는 표변합니다.
- 신은 인간의 삶과 우주에 기능하는 동기를 부여하는 힘, 혹은 가치 체계의 화신(化神)입니다.
- 신화학에는 서로 전혀 다른 두 개의 유파가 있습니다. 신화학에는 우리의 본성, 우리가 속하는 이 천연의 세계를 나타내는 신화가 있고, 특수한 사회에 속하는 극히 사회적인 신화가 있는 것이지요. 후자의 경우 한 인간은 한 자연인이 아니고 특수한 사회의 구성원입니다.
62P.
- 성서적 전승은 사회 지향적 신화학입니다. 여기에서 자연은 쫓겨납니다.
64P.
- 우리에게는 개인을 그가 속한 지역적 동아리와 동일시하게 만드는 대신, 지구라는 이 행성과 동일시하게 만드는 신화가 필요해요.
71P.
- 이성을 파괴하는 것은 열정입니다. 정치에서 열정은 곧 탐욕입니다.
- 인간은 누구든지 하느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요. 누구에게만 특별한 계시가 내리는 일 같은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거죠.
74P.
- 앞으로도 우리는 신화를 가질 수 없을 겁니다 .세상은 신화를 낳을 사이도 없이 너무 눈부시게 변하고 있어요.
- 개인은 자기 삶과 관계된 신화의 측면을 자기 나름대로 찾아야 합니다.
77P.
- 신화와 꿈은 같은 곳에서 옵니다. 이 양자는 상징적인 형태로 나타내어야겠다는 일종의 깨달음에서 옵니다.
- 미래를 생각하게 하는 신화 중에서 가치 있는 신화는 어떤 도시,어떤 동아리에 관한 신화가 아니라 이 땅에 관한 신화
78P.
- 달에서 지구를 보면 국경 같은 게 안보이잖아요? 이것은 미래 신화를 위한 대단히 중요한 상징같습니다. 우리가 세워야 하는 나가라 이러한 나라이고, 우리가 한 겨례가 되어야 하는 나라가 바로 이러한 나라인 것이지요.
- 우리에게 땅을 사겠다는 생각은 이상하기 짝이 없어 보입니다. 많은 대기와 찬란한 물빛이 우리 것이 아닌 터에 어떻게 그걸 사겠다는 것 일는지요?

[2. 내면으로의 여행]
85P.
- 신화의 이미지는 아득한 옛날부터 앞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거의 무의식 상태에서 전수된 것
86P.
- 모든 신들, 모든 천국, 모든 세계가 다 우리 안에 있어요. 이러한 개념이야말로 확장된 인류의 꿈이고, 꿈은 서로 갈등하는 우리 몸 속의 에너지가 이미지 형태로 현현한 것이지요.
89P.
- 시련을 극복하고, 기왕에 해석되어 있는 경험에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를 열어주는 용기, 이게 바로 영웅의 용기입니다.
92P.
- 인간의 마음과 삶의 조건을 화해시키는 일, 이것은 창조 신화의 기본 구조를 이룹니다. 그래서 세계의 창조 신화는 서로 아주 비슷한 거지요.
98P.
- 결국 여자가 이 세상에 삶을 일군 겁니다.
101P.
- 하느님은 결국 ‘하느님’이라는 이름을 초월해서 존재합니다. 하느님은 이름과 형상 너머에 있는 존재인 것이지요
102P.
- 삶의 신비는 인간이 만든 모든 개념 너머에 있어요. 우리가 아는 것은 모두,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 많은가, 적은가, 진실한가 진실하지 못한가 하는 개념의 용어에 갇혀 있어요. 우리는 항상 대극이라는 용어 안에서 생각해요. 그러나 궁극적 실재인 하느님은 대극 너머에 존재하지요.
103P.
- 최상의 것은 생각을 초월해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언표될 수 없습니다.
- 신화는 절대적으로 초월적인 존재가 언표되는 장이랍니다.
109P.
- 우리가 신화를 다루는 것은 신의 실제를 경험할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지침을 얻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113P.
- 내가 ‘시’라고 하는 것은 언어로 된 것이 아니고 행위와 모험으로 이루어진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는 행위를 초월한 어떤 의미를 지닙니다. 그래서 이런 시를 접하면 우리 자신이 우주적인 존재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겁니다.
114P.
- “스스로 안다고 생각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자는 실은 알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안다는 것은 실은 모르는 것이고 모르는 것은 아는 것이다.”
115P.
- 종교는 인간의 삶이라는 극도로 복잡한 것을 우리 안에서 익게 하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 기독교의 신은 다른 민족의 전승에 등장하는 선악이 두리뭉수리하게 어우러진 신과는 전혀 다르지요.
116P.
- 모든 종교에는 일장일단이 있지요. 즉 이런 입장에서 보면 진실일 수도 있고 저런 입장에서 보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거지요. 그러니까 은유적인 것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 은유라는 것을 오해하여 사실로 해석하면 뭐가 뭔지 모르게 됩니다.
- 은유를 은유로 보지 않고 문자 그대로를 가리키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음식점에 가서 메뉴를 달라고 한 뒤, 그 메뉴에 비프스테이크가 있는 것을 보고는 그 페이지를 씹어 먹는 것이나 같지요.
119P.
- 우리의 삶은 지금 우리가 여기에 살고 있으면서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깊고 넓습니다.
- 삶을 하나의 시련으로 보는 관념. 이 시련을 겪어야 세속적 의미의 삶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관념은 고등 종교의 관념입니다. 나는 원시 신화에서는 이런 관념을 접한 적이 없어요.
122P.
- 우리가 민담이라고 부르는 것은 신화가 아니라,보통 사람들이 서로 주고 받으면서 즐기기 위해,혹은 위대한 영적 순례의 차원에 조금 못 미치는 존재의 어떤 측면을 드러내기 위해 하는 이야기 그의 해석대로라면 나는 그 동안 민담과 신화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었다.
- 민담은 그저 듣고 즐기는 것. 신화는 영적인 교시를 위한 것
123P.
- 신화는 문화와 시간, 장소와 정말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만일 상징과 은유가 예술을 통해 되살아나지 못한다면, 삶은 신화에서 떨어져나가 버립니다.
127P.
- ‘하느님’이라는 말은 모든 사유를 초월해 있는 존재를 일컫는 말. 그러나 이 ‘하느님’ 이라는 말 역시 사유를 통해서 생긴 것.
- 무엇이든 궁극적인 실재는 존재와 비존재의 모든 범주를 초월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있느냐, 없느냐는 시비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겁니다.
134P.
- 세속성이 개입되어 있지 않은 삶은 삶이 아니지요. 그러니까 우리는 삶을 긍정하고 이대로도 훌륭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의도가 이러한 것이었으니까요.
137P.
- 영원이라는 것은 뒤에 오는 것이 아니예요. 영원은 그리 긴 시간도 아닙니다. 아니,영원이라는 것은 시간과 아무 상관도 없는 것입니다. 영원이라는 것은 세속적인 생각을 끊는 바로 지금의 이 자리에 있습니다.

[3. 태초의 이야기 꾼들]
145P.
- 어디에선가, 가시적인 우리 삶의 버팀목 노릇을 하는 불가시적인 삶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신화의기본적인 테마를 이루는 관념
155P.
- 의례를 통해 삶은 다른 차원으로 들어갑니다. 이 새로운 차원에서 생명은 다른 차원으로 들어갈 수도 있고 그 들어간 곳을 통해 나올 수도 있게 됩니다.
- 인디언들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을 ‘그대’라고 불렀어요.
162P.
- 의례의 마당은 신화가 드러나는 마당입니다. 의례에 참가한다는 것은 곧 신화에 참가하는 것이지요.
165P.
- 고대의 의례가 지닌 중요한 역할은 개인을 부족의 한 구성원으로, 한 지역 사회의 구성원으로, 한 모듬살이의 구성으로 통합시키는 것
166P.
- 의례를 소중하게 재현시킴으로써 그 가르침이 살아 있게 해야 합니다.
168P.
- 예술가들의 기능은 마땅히 환경과 세계를 신화화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 전통문화는 엘리트의 경험, 특별한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의 경험에서 나옵니다. 이들의 귀는 우주의 노래에 열려 있어요. 이들이 민중에게 이야기하면 민중에게서 반응이 생기는데, 이 작용과 반작용이 상호 작용을 하는 겁니다. 민중의 문화를 빚겠다는 최초의 충동은 위에서 생겨나는 것이지 아래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4. 희생과 천복]
179P.
- 우리 삶의 겨냥은 지나치게 경제화, 실용화에 맞춰져 있습니다. 그래서 나이를 먹어갈수록 순간순간의 요구가 어찌나 집요한지, 우리는 우리 자신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우리가 참으로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세태를 살다 보면 우리는 늘 우리에게 요구된 일만 합니다.
180P.
- 우리 천복(天福)의 정거장은 어디에 있느냐.. 우리는 이것을 찾아야 합니다. 오디오를 틀어놓고 좋아하는 음악을 올려 놓아도 좋습니다.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시시한 음악을 올려놓아도 좋습니다. 좋아하는 책을 읽어도 좋겠지요. 바로 이 성소에서 다른 삶을 ‘그대’라고 부르는 것을 체험하는 겁니다. 초원에 살던 사람들이 이 세상의 만물에 대해 그렇게 했듯이 말이지요.
186P.
- 신화는 우리 삶의 요체인 영적인 삶의 원형과 만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날마다 의례를 접하는 것, 이것이 우리 삶의 질서를 온전하게 바로 잡아줍니다.
189P.
- 신화가 자연을 타락한 것으로 보느냐, 아니면 자연 자체를 신의 현현으로, 정신을 자연의 본성인 신의 드러남으로 보느냐에 따라 문화나 삶의 양식은 확연하게 달라집니다.
- 예술가들이야말로 오늘날에도 신화와 교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예술가는 신화와 인간성을 이해하는 예술가이지, 대중에게 봉사하기를 좋아하는 사회학자는 아닙니다.
191P.
- 샤먼은 자기가 본 환상을 자기 부족을 위한 의례 행위로 해석해 낼 수 있습니다. 즉 내적인 경험을 외적인 경험으로 확대재생산할 수 있는 것이지요. 종교는 그렇게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추측일 뿐입니다. 우리로서는 확실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192P.
- 지리학은 우리의 문화와 종교 관념의 모양을 빚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사막의 신은 초원의 신이 아닙니다.(우림에는 복수의 신이나 사막은 신이 하나일수 밖에 없다. )
193P.
- 지리학이 어떤 종족에게서 신의 이미지를 빚는다… 그 다음에는 이 이미지를 밖으로 투사시키고 이것을 하느님이라고 부른다. 신 관념은 항상 문화적 조건을 따릅니다
194P.
- 수렵사회는 남성이 그랬는데 이게 여성에게로 넘어온다. 여성에게는 마력이 있습니다.그 마력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대지처럼 출산하고 먹여 기르는 힘. 쟁기가 대지를 가는, 말하자면 남녀의 성적 결합 시뮬레이션도 신화 이미지가 됩니다.
- 이 상징 체계를 통하여 어떤 시대의 정상적인 인간 조건이 상징되고, 조직되고, 나타나는 것
195P.
- 동물 사냥에서 식물 경작으로 바뀌면서 신화적 상상력에는 대단히 극적이고 전반적인 변화가 생겨남. 신화만 변한 것이 아니라 정신 자체에도 변화가 있었다.
198P.
- 신화를 읽다 보면 가장 놀라운 게 바로 그 점. 한 문화권의 이야기가 다른 문화권에서 그대로 발견되는 데에는 여전히 놀라고는 합니다.같은 이야기의 복사판에 퍼져 있으니 놀라울 수밖에요.
204P.
- 만일에 우리가 우리 삶을 두려워하면 동산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아’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난 상태에서, ‘자아’라고 하는 것이 더 크고 영원한 전체성의 한 기능임을 깨닫는다면, 작은 것이 아닌 큰 것을 섬긴다면, 이런 문지기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무사 통과할 수 있는 것이지요.
- 다시 낙원으로 돌아가려면 우리는 공포와 욕망이라는 이 한 쌍의 대극을 극복해야 합니다. 초월해야 한다는 뜻이지요.
205P.
- 죽음과 삶의 균형을 잡아주어야 하는 거지요. 이 양자는 한 사상, 즉 ‘존재’의 두 측면이니까요.
206P.
- 삶에서 승리한 자만이 제물이 될 수 있다….. 이게 바로 희생과 관련된 옛날의 관념입니다. .. 마야 인디언의 이 의례에서 승자에게 내려지는 상은 거룩하게 희생될 수 있는 자격입니다.
209P.
- 죽는다는 것은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라는 근본적인 테마를 드러내고 있어요.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죽어야 한다는 겁니다. 다음 세대가 오게 하려면 앞 세대는 모두 죽어야 한다….. 이것이 이 의례의 의미입니다.
217P.
- 길이 미로 같은 것은 누군가가 고의적으로 그렇게 해 놓은 겁니다. 하지만 이 미로의 비밀을 알기만 하면 들어가서 미로의 주인을 만나는 것도 가능하지요.삶의 미로를 뚫고 지나가면 삶의 영적인 가치를 접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신화가 드러내고자 하는 진실입니다.
220P.
- 큰 죄인은 연민하는 하느님을 크게 깨달은 자인 셈입니다.이것은 도덕의 역설과 삶의 가치와 밀접한 관련을 지니는 아주 근본적인 관념입니다.
223P.
- 중세의 필사본에 여러 문맥에서 자주 나타나는 이미지가 바로 행운의 바퀴라고 하는 이미지입니다.이 바퀴에는 굴대도 있고 바퀴살도 있고 테도 있어요. 그런데 말이지요. 이 바퀴의 테를 잡고 있으면 늘 같은 자리, 즉 중심에 있을 수 있답니다.
- 사람들은 늘 다른 일에 관심을 쏟지요…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는 자기 천복을 붙잡기가 어렵습니다. 천복거리를 찾는 일은, 스스로 갈고 닦아야 하는 기술 같은 것이지요.
225P.
- 굴대를 붙잡아야 천복을 누리며 살 수 있어요.
226P.
- “내 의식이 제대로 된 의식인지, 아니면 엉터리 의식인지 모르겠다. 내가 아는 존재가 제대로 된 존재인지, 아니면 엉터리 존재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어떤 일에 천복을 느끼는지 그것은 안다. 그래. 이 천복을 물고 늘어지자. 이 천복이 내 존재와 의식을 데리고 다닐 것이다.”
227P.
- 천복을 좇으면, 나는 창세 때부터 거기에서 나를 기다리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내가 살아야 하는 삶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삶입니다. 이걸 알고 있으면 어디에 가든지 자기 천복의 벌판에 사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문을 열어줍니다. 그래서 나는 자신 있게 사람들에게 권합니다. “천복을 좇되 두려워하지 말라. 당신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있어도 문은 열릴 것이다.“

[5. 영웅의 모험]
230P.
- 이 심리적인 미 성숙 상태를 박차고 자기 책임과 자기 확신 위에서 영위되는 삶의 현장으로 나오려면, 죽음과 재생의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이것이 바로 보편적인 영웅 여행에서 기본이 되는 모티프입니다. 즉 이 여행을 마쳐야, 한 인간은 어떤 상황을 떠나 삶의 바탕이 되는 것을 찾아내고는 더욱 풍부하고 성숙한 인간 조건에서 살게 되는 것이지요.
231P.
- 이 모든 과정을 가져온 어머니 역시 영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출산은 영웅적인 행적과 동일시 되는 것입니다. 그럴 수 밖에요. 자신의 생명을 다른 생명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니까요.
233P.
- 우리가 우리 자신의 문제를 진정으로 참구한다면, 진정으로 자기를 보존할 방법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이미 의식의 영웅적 변모의 과정에 든 거나 다름 없습니다.
237P.
- ‘통찰의 탐색’이라고 불러도 좋은 특정한 신화 유형이 있어요. … 이것은 세계의 모든 신화에서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어요….세계의 서로 다른 모든 신화는 인간에게 필수적인 동일한 탐색을 다루고 있어요.자신이 속하던 세계를 떠나, 더 깊은 세계,혹은 먼 세계, 혹은 더 높은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지요.
239P.
- 우리 자신에게서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찾아볼 필요가 있어요. 현실로 드러나는 우리 모습 이상의 무엇을 촉발시킬 만한 상황으로 자신을 던져 넣을 필요가 있는 것은 이 때문이지요.
244P.
- 과학은 바야흐로 신비주의의 차원으로 넘어 들어오고 있어요. 과학은 머지 않아 신화가 이야기 하고 있는 세계로 밀고 들어올 겁니다.
251P.
- 이 새로운 것을 세우기 위해서 영웅은 기왕에 살던 땅에서 새로운 것을 싹 틔울 잠재력이 있는 씨앗을 찾아 떠나야 합니다.
- 우리 삶(남의 삶을 시늉하는 것이 아닌 우리만의 삶) 역시 탐색의 여행에서 나온 것입니다.
252P.~253P.
- 원시인들의 입문 의례는 신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그래서 소년이든 손녀든 입문 의례는 유아기의 자아를 죽이고 성인으로 거듭나는 모티프와 관계가 있어요. 소년에게 가해지는 입문의 시련은 소녀에게 가해지는 것보다 훨씬 가혹합니다. 왜냐하면, 삶이라는 것이 여성을 편애하기 때문이지요. 소녀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여자가 됩니다. 그러나 소년은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의도해야 합니다.초경을 경험하면 소녀는 벌써 어른이 된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남은 것은 알고,아기를 배고, 어머니가 되는 일뿐입니다. 그러나 소년은 먼저 어머니에게서 떨어져야 하고, 삶의 에너지 전부를 자기에게 쏟을 수 있어야 합니다.그래야 어른이 됩니다.
254P.
- 젊은이들에게 세계는 더 만나야 하는 것, 더 살아야 하는 것, 더 사랑해야 하는 것, 더 배워야 하는 것, 더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신화가 필요하지요.
258P.
-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모세,석가,그리스도,모하메드)의 메시지는 다 다릅니다.그러나 이들이 경험한 환상 여행은 동일합니다.
259P.
- 전통에 생명을 부여하는 영웅도 있어요. 이런 영웅은 전통을 재해석함으로써, 시대에 뒤떨어진 상투성에서부터 전통의 상징성을 해방시켜 당대의 살아 있는 경험으로 만들지요. 이런 작업은 모든 문화권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 민족 영웅, 혹은 지역 영웅은 자기가 속한 민족이나 지역을 섬기지만, 모하메드,예수,석가 같은 우주적인 영웅은 이 세상 너머에서 인류에게 유용한 메시지를 가져옵니다. 제가 알기로 이러한 종교의 영웅들은 신의 신비를 가져오는 것이지 신의 청사진을 가져오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모이어스)
- 신학이 들어와서는 이것은 이렇게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신화는 시예요. 시적 언어는 대단히 유동적인 것이에요. 그런데 종교는 시를 산문으로 바꾸지요.
262P.
- 신화라고 하는 것은 원래 이런 문제를 이해하게 하는 데 필요한 기본 교육 자료였어요. 오늘날의 우리 사회는 우리에게 이런 종류의 적당한 신화 교육을 베풀고 있지 못해요. 그래서 젊은이들이 이 사회 안에서 행동 통일을 하는 데 그렇게 애를 먹고 있는 거지요. 어떤 젊은이가 모종의 장벽에 부딪쳤을 경우에는, 거기에 해당하는 특정 신화 대응물을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는 겁니다.
263P.
- 신화가 암시하는 첫째 방법은 신화 자체, 또는 영적 지도자나 스승을 따르라고 가르칩니다 .신화나 영적인 지도자나 스승은 알고 있을 테니까요. 이것은 운동 선수가 코치를 찾아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중략) 좋은 스승은 충고를 할 뿐 명령은 하지 않습니다…. 또 하나 좋은 방법은, 자기가 다루고 있는 문제와 같은 것을 다루고 있다 싶은 책을 이용해서 배우는 겁니다. 책 역시 실마리를 던져줄 수 있습니다. 나는 주로 제임스 조이스나 토마스 만 같은 사람들의 책을 통해서 배웠어요… (중략) 이러한 문제의 본질을 잘 알고 있는 소설가의 작품에서 신화 모티프를 선택해서 길잡이로 삼는 것도 좋겠지요.
270P.
- 의식은 기가 한풀 꺾인 상태에서 우리 인간성을 섬겨야 하는 존재이지, 우리의 주인 노릇을 해도 좋은 존재는 아닌 것이지요.
271P.
-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포스’를 찾아야 합니다. 동양의 영적인 스승들이 제자들에게 자신 있게 “ 네 안에 있으니까 가서 찾아라” 라고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어요
- 천만에요. 그렇지가 않아요. 스승이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이야 소수겠지요. 그러나 내가 말한 것에 반응하는 건 누구든지 할 수 있어요. 아이가 위험에 처할 경우,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나가 아이를 구할 수 있는 잠재력은 누구에게나 있지요? 이와 같아요. 이런 능력은 우리 안에 있어요. 나날의 경제적 관심과 육신의 안락에 갇히지 않는, 진짜 삶의 가치를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든 이런 능력이 있어요.
272P.
- 신화에는 개인이 지닌 완전성과 무한한 힘의 가능성을 깨닫게 하고 그 세계를 날빛 아래로 드러내는 힘이 있어요. 괴물을 죽인다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어둠을 죽인다는 것입니다.
-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좋아서 선택한 일이라면 바로 그겁니다. 만일 “아니, 내가 그걸 어떻게 할 수 있어?”,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게 바로 우리 안에 갇혀 있는 용입니다. “ 안돼, 나는 작가가 될 수 없을 거야”라든지 “나는 아무개가 하는 일은 도저히 할 수 없을 거야”, 이런다면 이게 바로 우리 안에 갇혀 있는 용입니다.
278P.
- 죽음을 이해할 수는 없어요. 죽음과 화해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지요
-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죽음을 직면하고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받아들일 때, 죽음은 더 이상 우리를 괴롭히지 못할 분 아니라 스핑크스의 저주도 풀리는 것입니다.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면 인생은 전처럼 다시 즐거워집니다. 죽음을 받아들여야, 삶의 반대 개념으로서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삶의 한 측면으로서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우리는 무조건적인 긍정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삶이라고 하는 것은 어차피 죽음으로, 죽음의 순간에 끝나는 법입니다. 공포를 정복하면 용기 있는 삶의 길이 열리지요. 모든 영웅이 경험하는 모험 중 아주 중요한 통과의례는 바로 공포의 극복입니다. 공포가 극복되어야 비로소 영웅적인 업적의 성취가 있는 거지요.
286P.
- 행복을 찾으려면, 행복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을 잘 관찰하고 그것을 기억해 두어야 합니다. 진짜 행복한 상태, 그윽한 행복의 상태를 말합니다.
296P.
- 살면서도 고통을 당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하는 신화는 읽어본 적이 없어요. 신화는 우리에게, 어떻게 하면 그 고통을 직면하고, 이겨내고, 다른 것으로 변용시킬 수 있는가를 가르칩니다.
297P.
- 우리는 오로지 고통을 통해서만 고상한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 니체에게 아주 중요한 개념이 있어요. ‘아모르 파티’ 라는 건데, ‘운명에의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운명이 곧 우리 삶이니 사랑하라는 겁니다. 그가 말했듯, 우리가 우리 삶의 어떤 한 측면에 대해서만이라도 아니라고 할 수 있으면 만사는 해결됩니다.
299P.
-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도 이걸 통해서 와요. 중요한 것은 이걸 탓하거나 이걸 설명하려고 하지 말고 여기에서 생기하는 삶과 대결하는 겁니다.
- 부처가 말하는 니르바나는 바로 이러한 종류의 평화의 중심점입니다. 불교는 대단히 심리적인 종교이지요. 불교는 바로 고통이라는 심리적인 문제에서 시작됩니다.인생은 슬픈 것이라고 하는 데서 출발합니다.그러나 이러한 고통과 슬픔으로부터의 탈출구가 있는데 이게 바로 니르바나입니다. 니르바나는 우리 마음 혹은 의식의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이지 천당처럼 어떤 ‘곳’을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 “Flow”라는 책에서 이야기 하는 내용과 다르지 않은 듯 하다.내 안에서 받아들이고 행복을 찾는 것
301P.
- 깨달음이란, 만물을 통해 영원성의 찬연함을 인식하는 일이지요.
303P.
- 신화는 거짓말이 아니에요. 신화는 시, 신화는 메타포일 뿐이에요. 신화가 궁극적 진리에 버금가는 진리라는 말은 신화를 정말 잘 나타낸 말입니다. 신화 자체의 신비와 우리 자체의 신비를 알고 체험하면서 사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이런 앎과 체험은 우리 삶에 광휘를, 새로운 조화를, 새로운 빛을 더합니다.

[6. 조화여신(造化女神)의 은혜]
309P.
- 각각의 형상은 모두 나름의 의도와 가능성을 지닙니다. 바로 여기에서 의미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원형질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요.
311P.
- 나는 신화가 돌아오고 있다고 믿어요. 요즘의 젊은 과학자들은 형상을 낳는 장이라는 뜻으로 ‘형태 발생의 장’이라는 말을 쓰고 있지 않던가요? 이것이 바로 여신입니다. 바로 형상을 낳는 장입니다.
322P.
- 마리아에게는 육체적으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겁니다. 예수는 영적으로 태어난 것이지 육체적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영웅이나 반신은 자비로움이 육화 된 존재로 태어나지, 성적인 욕망의 소산, 혹은 종의 보존을 위한 소산은 아니라는 겁니다.
356P.
- 우주와 우리가 별개가 아니라 결국은 하나라는 인식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 이것이 신화입니다.
357P.
- 우리와 이 광막한 우주는 하나라는 느낌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도 이 우주에서 벌어지는 이 엄청난 변화에 참가하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7. 사랑과 결혼 이야기]
345P.
- 결혼은 육체적 관심에서 시작되어 정신화 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진정한 결혼은 사랑, 즉 아모르의 영적인 충돌에서부터 시작되는 겁니다.
350P.
- 서구 선진 사회는 개인을 살아 있는 실재로 인식하고 존중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개인을 꽃피게 하는 것이 사회의 기능이지, 사회를 꽃피게 하는 것이 개인의 기능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356P.
- 창의 상징적인 이미지와 관련된 이야기에 자주 등장하는 모티프이지요.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창에 상처를 입지요? 이 세상 그 상처를 고칠 수 있는 방법은 그 창을 상처에 문지르는 것뿐이다.
359P.
- 이 낭만적인 전설에서 성배 찾기는, 이렇게 헤어진 물질과 정신의 재결합, 이 재결합을 통한 평화 찾기이다. 성배는, 자기의 의지력으로 사는 삶, 자기 충동의 체계로 사는 참 삶을 상징합니다.
365P.
- 청교도들은 결혼을 ‘교회 안의 작은 교회’라고 불렀습니다.가령 ‘내’가 아내에게 헌신한다면 그것은 아내라고 하는 여성에게 헌신하는 게 아닙니다. ‘나’와 아내가 이루고 있는 관계에 헌신하는 거죠.
366P.
- 결혼은 우리의 동일성, 즉 한 사물에 두 측면이 있음을 상징적으로 인식하게 하는 장치입니다.
367P.
- 눈을 감음으로써, 즉 현상을 보고 있지 않아야 직관이 생긴다는 뜻입니다.그러니까 눈은 보이지 않아도 직관만 있으면 모르폴로지, 즉 사물의 근본 모습을 볼 수 잇다는 겁니다.
368P.
- 결혼이라는 것은 자신이 지니고 있던 이성의 측면과의 만남이랍니다.
370P.
- 사랑은 사회가 조직하는 결혼 이상의 정신적 체험이지요. 사랑은 곧 신의 임재입니다. 사랑이 결혼보다 상위 개념인 까닭이 여기에 있어요.
373P.
- 인도에는 어머니가 자식을,특히 아들을 마음 편하게 보낼 수 있게 하는 의례가 있어요. 인생이라는 게 슬픈 것이기 때문에 사랑도 종국은 슬픈 겁니다. 사랑 자체가 고통, 혹은 진정하게 살아 있음의 고통이라고 할 수 있지요.

[8. 영원의 가면]
375P.
- 신비를 체험해 본 사람이면 누구나 자기 오감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우주의 어떤 차원이 있다는 걸 압니다.
376P.
- 서구인의 사고방식은 하느님을 우주의 에너지와 경이의 종국적인 근원, 혹은 본원으로 봅니다. 그러나 동양의 사고방식은 신들을 결국 비인격적인 에너지의, 그 자체로서의 드러남이자 에너지의 공급자로 파악하지요.
377P.
- 우리 서구 사람들에게는 신을 인격화시키고 신에게 인간성을 보려 하는 경향이 있어요.
378P.
- 동양의 신들은 더욱 본질적이고 덜 인간적이에요. 동양의 신들은 서양의 신들보다 훨씬 자연력에 가깝지요.
- 기도는 신비에게 말을 걸고 명상하는 행위이지요.
379P.
- 한 가지에만 정신을 집중시키면 상상력에 따라 갖가지 차원의 신비 체험이 가능해 지는 것이지요.
- 우리가 뛰어 넘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예수의 이미지입니다.
- 처음에는 기아와 탐욕 같은 기본적인 동물적 경험 단계에서 시작하여 성욕의 단계를 지나 물질적인 것을 초월하는 단계로 이행합니다. 이런 단계가 바로 경험이 우리에게 에너지를 부여하는 단계인 겁니다.
-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기가 믿는 신과 하나 되기여야 합니다. 신과 하나가 된다면 이원성은 초극되고 형상은 사라집니다.
- 신도 없고 ‘나’도 없어요. 모든 개념을 완전히 초극해 버린 ‘나’의 마음은 사라져 존재의 바탕과 하나가 되어 버립니다.신의 은유적인 이미지가 의미하는 것이 곧 ‘나’라는 궁극적인 신비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나’라고 하는 존재의 궁극적인 신비는 세계라는 존재의 신비이기도 한 것이지요.
381P.
- 결국 ‘나’라고 하는 존재의 궁극적 신비는 세계라는 존재의 신비이기도 한 것이지요.
- 그리스도는, 자기와, 자기가 ‘아버지’ 라고 부르는 이가 사실은 하나임을 깨달은 역사적인 인물입니다.
382P.
- 우리는 하느님이기는 하느님이되, 자아에 집착한 상태로의 하느님인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비이원적 초월자와 하나가 되는 깊디깊은 존재의 차원에서만 하느님인 겁니다.
384P.
- 나는 자비를 근본적인 종교 체험이라고 믿는 사람입니다.
385P.
- 부처의 의식은 만물, 만상에 미치는 내재적, 이지적 의식입니다. 우리는 의식의 파편, 에너지의 파편으로만 살고 있지요. 그러나 종교적인 삶이라는 것은 이 특정 시간에 존재하는 이 특정 육신의 의도에 따르는 삶이 아니라 대국적인 의식이 통찰 안에서 사는 겁니다.
387P.
- 남의 삶에서 ‘나’의 삶을 인식하는 것, ‘나’와 남은 둘이지만 살고 있는 삶은 하나임을 인식하는 데서 출발하겠지요.
391P.
- ‘상징’이라는 말은 ‘둘을 서로 엮는다’는 뜻입니다
- 둘로 이루어진 더 큰 하나, 여기에서 나의 개인적인 삶이 생겨납니다. 결혼 반지는 우리는 원안에서 하나라는 것을 상징합니다.
393P.
- 우리의 정신 안에는 인류의 공통되는 어떤 힘이 있다는 뜻이지요. 그렇지 않고는 그렇게 자세한 데까지 같을 수가 없어요.
- 신화의 이미지는 우리 모두의 영적 잠재력을 반영하고 있어요.
394P.
- 신은, 인류의 종국적이고 본질적인 관념일 것입니다.
395P.
- 근원은 어떤 일이 생기든 전혀 관심 두지 않고 존재할 것들을 생성시킵니다. 중요한 것은 이 근원이 베푸는 생명을 부여하는 기능과 이로써 이루어지는 존재입니다. 이 근원이 바로 우리 안에 있는, 삶이 샘솟는 한 점인데, 모든 신화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려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396P.
- 종교 체계의 상징을 해석하는 비교 신화학과 신앙은 별개의 것이라는 점, 비교 종교학은 신앙 체계에 위험한 존재가 아니라는 게 분명해 진 겁니다. 왜 , 우리는 신화 이미지를 메타포라고 부르지, 사실이라고 부르지는 않거든요. 신화 이미지는 우리의 내적 체험과 삶을 위한 메시가 됩니다. 이 메시지를 받아들이면 신화 체계는 문득 우리의 개인적인 체험이 되는 것이지요.
399P.
- 내가 절정 경험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이 내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점은 어떤 절정 경험에서든 마찬가지이지요.
- 진정한 미학적 체험은 그것을 체험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대상을 비평하지도 거부하지도 않게 해야 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대상을 비평하고 싶게 하고 거부하고 싶게 하는 예술 작품을, 그는 도학적인 작품, 혹은 예술 자체가 지난 사회 비평 기능이라고 부르지요.
- 미학적 체험은 그저 그렇게 대상을 바라보는 경험이어야 합니다.
- 예술 작품이란 액자에 넣어 두게 하고, 처음에는 그가 바라보게 하고, 다음에는 그것이 작품임을 느끼게 하고, 다음에는 부분과 부분의 관계, 다음에는 부분과 전체, 그 다음에는 전체와 각 부분의 관계를 깨닫게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바로 이것이 작품이 지녀야 하는 필수적인 미학적 요인(관계의 조화 정연한 리듬)입니다.
400P.
- 미학적 체험은 윤리나 도학을 초월해 있는 것이니까요
405P.
- 천국과 지옥을 영원하다고 하지요 .천국은 끝나지 않는 시간입니다. 끝나지 않는 시간과 영원은 달라요. 영원은 시간 너머에 있어요. 시간이라는 개념은 이미 영원을 나타낼 수 없어요
407P.
- 그는 삶의 창조주, 삶을 생성시킨 신인 동시에 피조물을 상대로 삶을 가르친 신이기도 합니다.
- 신화는 형이상학을 다룹니다. 그러나 종교는 윤리, 선악은 물론이고, 신안에서 우리가 타인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타인을, 아내를, 친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도 다룹니다.(모이어스)
409P.
- 필멸의 팔자와 우리 안에 있는 초월적 영생불사의 관계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는 합니다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요.
411P.
- 시의 언어는 꿰뚫는 언어입니다. 시에서 정확하게 선택된 언어는 언어 자체를 훨씬 뛰어넘는 암시 효과와 함의의 효과를 지닙니다.
- 이렇게 놓고 보면, 인생을 살면서 당한 중요한 사건은 외견상으로는 우연히 일어난 것 같지만 사실은 일관된 구성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 듯 보입니다.
412P.
- 우리 인생은 한 사람이 꾸는 큰 꿈, 꿈속에 나오는 인물이 또 꿈을 꾸는, 말하자면 규모가 방대한 꿈이 아니겠느냐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렇게 해서 그 본질상 우주의 의지라고 할 수 있는 한 개의 의지의 동기 부여에 따라, 만사가 만사와 빈틈없이 연결되지 않느냐는 겁니다.
415P.
- 영생하는 것, 영생하는 것이 없으면 필멸하는 것 또한 없습니다.
- 절정의 순간은 이 언어 밖에 있는 것, 이 한마디, “아…..”, 이 한마디 밖에는 할 수 없는 데 있는 것이지요.


3.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은 총 8개의 장으로 대담의 내용들을 8개의 주제로 묶어 각 주제에 맞게 대담 내용이 정리하고 있다. 이들 각 장은 씨실과 날실처럼 서로를 넘나들며 신화를 가지고 현대 세계를 투사해 보기도 하고 다양한 상황에 신화가 의미하는 것들을 반복적으로 해석해 주고 있다. 먼저 그가 신화라는 것에 대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했던 바에 대해 정리해 보자.
그는 신화와 종교는 진리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정리 해 보면 그는 진리를 목표로 두고 진리>신화>종교 형태의 모습으로 자신이 연구하는 신화의 위치를 파악한 듯 하다. 거기까지의 결론을 위해 그는 신화 뿐 아니라 종교의 다양한 형태에 대한 수많은 고민과 해석을 위해 많은 시간을 연구에 쏟아 부었을 것이다.
신화라고 한다면 어려운 이름이 수도 없이 등장하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어본 것이 전부인 내가 신화와 신화의 의미 자체에 대해 논하는 대담집을 읽다 보니 처음에는 생경하고 정리가 어려웠지만 그 와중에서도 지속적으로 인간의 생애 단계에 대해 신화적인 의미가 부여되고 풀이되는 점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신화가 인생사의 각 단계에 필요한 것들을 친절하게 풀어내서 알려주는 중요한 교육적 역할을 한다고 명확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
인간의 일생은 아이인 소년 또는 소녀가 자신을 벗고 책임 있는 어른이 되는 단계, 예술가 또는 평범한 인간으로서 사는 단계, 진정한 자아를 찾는 시기, 본인의 일(천복이라는 표현되는) 것을 발견하는 단계,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는 시기, 죽음의 단계 등으로 다양한 단계로 나뉠 수 있을 텐데 캠벨은 이와 같은 인간이 겪는 대부분의 인간 생애를 신화적 관점에서 풀이해 주고 있다. 각 인생사의 단계는 각 8개의 장에서 반복되어 설명되어지므로 위에서 살펴본 인간의 일생의 각 단계적 시점을 신화적 관점에서 모아서 정리, 풀이 해 보면 아래와 같다.

[성인이 되기까지]
“ 모든 아이는 지금의 세상에서 이성적으로 기능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야 어린 시절을 떠날 수 있어야 합니다.(35P)”
즉 모든 아이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거북하고 미묘한 상황들을 뚫고 나갈 수 있는 지혜 등 이성적으로 기능하는 방법을 신화를 통해 배워야 한다고 그는 책에서 설파하고 있다. 이렇게 배우고 배워 성인이 되어야 시기가 오면 두 시기의 연결고리를 확실히 끊는 점프하는 단계의 의례를 거쳐야 한다고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고 있다.
“의례를 통해 삶은 다른 차원으로 들어갑니다. 이 새로운 차원에서 생명은 다른 차원으로 들어갈 수도 있고 그 들어간 곳을 통해 나올 수도 있게 됩니다. (155P) “ 원시인들의 입문 의례는 신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그래서 소년이든 손녀든 입문 의례는 유아기의 자아를 죽이고 성인으로 거듭나는 모티프와 관계가 있어요. (중략) 삶의 에너지 전부를 자기에게 쏟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어른이 됩니다.(252~253P)”
원시사회는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의례가 있었다. 그것도 아주 혹독은 의례. 소년 또는 소녀가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할례를 당한다던가, 심지어 살인을 해야 하는 혹독함을 넘어 정신적인 충격이나 강한 불안감을 줄 수 있는 통과의례를 겪어내야 했다. 혹독한 자연에 맞서 살아나가야 하기에 한편 잔인하게도 보여지는 행동들도 의례로 엮어 자신의 아이들을 어른으로 키워냈을 그들의 생이 애처롭기도 하다. 어쨌든 이렇게 아이는 혹독한 의례를 치워내야 이 세상에 진정으로 참여하는 것이며, 그 사회의 제대로 된 일원으로 제대로 태어나게 된다고 캠벨은 이야기 하고 있다. 이 단계를 생각해 보니 현대의 우리 또한 이것만큼의 혹독한 의례가 아니더라도 친구들끼리 하루 즐기고 끝내는 의식이 아닌 진정한 자신만의 성인의례를 하나 만드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이미 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면 본인 가문의 고유의 풍습으로서 아이들을 위한 성인 의례를 만들고 정착 시키는 것도 부모로서 아이를 진정으로 위하는 멋진 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예술가라면]
옛날의 신화를 쓴 사람들은 오늘날의 예술가에 대응하는 사람들이었다고 주장하는 조셉캠벨.
“예술가들이야말로 오늘날에도 신화와 교감하는 사람들(189P)” 이라고 믿는 그는 “ 예술가들의 기능은 마땅히 환경과 세계를 신화화하는 것이어야 합니다.(168P)” 라고 이야기 한다.
조셉캠벨다운 예술가들에 대한 신화학적 해석이다. 비록 예술가라는 것의 의미가 현대의 일반적인 해석과는 다를 수 있지만 인간의 정신적인 안정 및 순화 기능을 담당하고 좀 더 경건함이 요구되는 것이 예술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그의 이러한 의견에 일견 고개가 끄덕거려지는 부분이다.
책을 읽다 보니 보통 예술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신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생각도 든다.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쉽게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 예술적인 능력을 천복으로 자연스럽게도 내려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이기에 의무감 내지 권리를 가지고 어떻게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쳐야 하는지 조셉캠벨의 다음 말로 정리될 수 있을 것 같다. “ 전통문화는 엘리트의 경험, 특별한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의 경험에서 나옵니다. 이들의 귀는 우주의 노래에 열려 있어요. 이들이 민중에게 이야기하면 민중에게서 반응이 생기는데, 이 작용과 반작용이 상호 작용을 하는 겁니다. 민중의 문화를 빚겠다는 최초의 충동은 위에서 생겨나는 것이지 아래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168P)” 축복받은 자들이여, 당신의 의무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부디 좋은 작품으로 우리를 일깨워주소서..

[진정한 나를 찾는 단계]
“ 심리적인 미 성숙 상태를 박차고 자기 책임과 자기 확신 위에서 영위되는 삶의 현장으로 나오려면, 죽음과 재생의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보편적인 영웅 여행에서 기본이 되는 모티프입니다. 즉 이 여행을 마쳐야, 한 인간은 어떤 상황을 떠나 삶의 바탕이 되는 것을 찾아내고는 더욱 풍부하고 성숙한 인간 조건에서 살게 되는 것이지요.(230P)”
조셉캠벨은 진짜 내가 되기 위해서는 상징적인 죽음과 재생을 경험해야 한다는 것을 영웅 신화를 통해 명쾌하게 제시하고 있다. 우리가 신화에서 보는 영웅은 다름 아닌 누구나 자신 스스로가 겪어야 하는 과정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즉 신화를 통해 우리는 이 우주의 문을 열고 신비의 샘으로서 우주를 볼 수 있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 우리 삶(남의 삶을 시늉하는 것이 아닌 우리만의 삶) 역시 탐색의 여행에서 나온 것입니다.(251P)” 라고 이야기 하는 그는 진정한 내가 되기 위한 획기적 변화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조셉캠벨은 친절하게 방법까지 가르쳐 주고 있다.
“ 신화가 암시하는 첫째 방법은 신화 자체, 또는 영적 지도자나 스승을 따르라고 가르칩니다.신화나 영적인 지도자나 스승은 알고 있을 테니까요.이것은 운동 선수가 코치를 찾아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중략) 좋은 스승은 충고를 할 뿐 명령은 하지 않습니다…. 또 하나 좋은 방법은, 자기가 다루고 있는 문제와 같은 것을 다루고 있다 싶은 책을 이용해서 배우는 겁니다. 책 역시 실마리를 던져줄 수 있습니다. (중략) 이러한 문제의 본질을 잘 알고 있는 소설가의 작품에서 신화 모티프를 선택해서 길잡이로 삼는 것도 좋겠지요.(263P)”
조셉 캠벨의 말처럼 지도자를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보통의 우리가 쉽게 찾아 할 수 있는 방법은 책 읽기 일 것이다. 책을 통해 평생을 끊임없이 본질을 찾고 길잡이로 삼으면 언젠가는 진정한 우리 자신을 찾을 수 있다라는 그의 이야기가 새삼스럽게 무척이나 마음에 와 닿는다. ” 능력은 우리 안에 있어요. 나날의 경제적 관심과 육신의 안락에 갇히지 않는, 진짜 삶의 가치를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든 이런 능력이 있어요.(271P)”
또한 나는 이 조셉캠벨의 진짜 나를 위한 죽음과 재생 경험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구본형 선생님의 책 <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책의 각 장 앞 부분에 할애되어서 도랑에 빠져 죽음의 문턱까지 경험하고 돌아온 한 사내의 짧은 단편과도 같은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는 곧 40대 10년간을 돌아보며 끊임없이 진짜 자신을 찾아가려는 선생님의 시도가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바가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조셉 캠벨의 추천방법 2가지 외에 난 구본형 선생님의 방법인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고 엮어보기 또한 진짜 나를 찾기 위한 강력한 한가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여 보고 싶다.

[천복]
“ 사람들은 늘 다른 일에 관심을 쏟지요.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는 자기 천복을 붙잡기가 어렵습니다. 천복거리를 찾는 일은, 스스로 갈고 닦아야 하는 기술 같은 것이지요.(223P)”
겨우 열살 때부터 이 방면의 공부를 시작한 그는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천복을 빨리 발견 했으니… 보통의 우리들은 늘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좋다 하는 것에 관심을 쏟는다. 경제적인 삶에 얽매여 당장의 일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서른, 마흔이 되어서도 나의 천복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인데 그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며 천복을 찾아가도록 용기를 주고 있다. “ 천복을 좇으면, 나는 창세 때부터 거기에서 나를 기다리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내가 살아야 하는 삶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삶입니다. 이걸 알고 있으면 어디에 가든지 자기 천복의 벌판에 사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문을 열어줍니다. 그래서 나는 자신 있게 사람들에게 권합니다. 천복을 좇되 두려워하지 말라. 당신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있어도 문은 열릴 것이다 라고….(227P)“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했던가? 천복을 찾으면서 괴로워하는 나 같은 이에게 끊임없이 갈구하고 찾으려고 노력하면 내미는 손짓을 하는 곳이 있을 것이라는 그의 말이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 같다.

[사랑과 결혼]
개인을 살아 있는 실재로 인식하고 존중하게 된 서구식 개인주의가 중세 음유시인들에 의해 촉발된 눈과 눈의 만남(개인대 개인의 사적인 경험.즉 ”사랑”)에 의해 비롯되었다는 그의 해석이다. 하지만 여기서 그는 또 사랑과 결혼에 대해서 선을 긋고 있다.
“ 결혼은 연애 같은 것과는 달라요. 연애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이에요. 결혼은 경험이 지니는 또 하나의 신화적인 차원입니다.(31P.)”
즉, 조셉캠벨은 결혼은 결코 두 사람의 육체적 결합이 아닌 영적으로 하나가 됨을 이야기 하고 있다. 융 박사의 “영혼은, 그 짝을 찾지 않고는 평화를 얻을 수 없다. 그런데 그 짝은 바로 우리 안에 있다.(360P)” 라는 이야기가 바로 신화가 이야기 하는 바라고 캠벨은 이야기 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짝을 어떻게 찾느냐.. 캠벨은 아래와 같이 한편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 약간은 감상적인 논리를 펼친다.
“ 삶을 온당하게 산 사람이라면, 이성을 웬만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마음의 소유자라면 온당한 남성 혹은 여성 상대자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아요.(31P)”
“ (중략) 자기네 관계를 아이들을 통한 관계로 해석하면서도 그것이 실수를 범하는 일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제대로 된 관계를 지닌 삶들이라면 자기네의 관계를 상호간의 인간적인 관계라는 측면에서 해석해야 하는 것(32P)“ “ 결혼이라는 것은 자신이 지니고 있던 이성(異性)의 측면과의 만남 (368P)” 이라고 하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결혼을 한지 10개월 정도 밖에 되지 않은 나에게 앞으로 내가 부부라는 관계를 튼튼히 엮어 나가기 위해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장이기도 했다.

[죽음]
“ 죽음과 삶의 균형을 잡아주어야 하는 거지요. 이 양자는 한 사상, 즉 ‘존재’의 두 측면이니까요.(205P)” “ 죽음을 이해할 수는 없어요. 죽음과 화해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지요. (중략)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면 인생은 전처럼 다시 즐거워집니다. 죽음을 받아들여야, 삶의 반대 개념으로서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삶의 한 측면으로서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우리는 무조건적인 긍정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삶이라고 하는 것은 어차피 죽음으로, 죽음의 순간에 끝나는 법입니다. 공포를 정복하면 용기 있는 삶의 길이 열리지요.(278P)”
평소 죽음에 대한 나의 생각이 어쩜 이렇게 잘 드러나 있을 수 있을까 싶은 문구였다. 그가 이야기 하는 것은 죽음과 삶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다만 ‘존재’라고 하는 두 가지 측면을 말하는 것일 뿐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왜 신화인가?]
이야기를 마무리 하는 단계에서 왜 신화인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정리 해 보자. 왜 우리는 조셉캠벨의 주장처럼 이렇게도 열심히 신화를 알아야 하는가? 조셉캠벨은 다음과 같이 신화의 역할을 명확하게 강조하고 있다. “신화는 사람들에게 내면으로 돌아가는 길을 가르쳐 줍니다.(30P)” “우리는 외부로부터 강제를 당할 때마다 무엇인지 거북살스럽고, 이질적이고, 두렵고, 죄의식이 느껴지는 일을 경험하게 됩니다. 바로 이시기가 우리의 가장 까다로운 심리적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는 시기인 거죠. 신화라고 하는 것은 원래 이런 문제를 이해하게 하는 데 필요한 기본 교육 자료였어요. 어떤 젊은이가 모종의 장벽에 부딪쳤을 경우에는 거기에 해당하는 특정 신화 대응물을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는 겁니다. (262P)”
“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 신화와 종교에 관해 무수한 질문을 제기하던 그가, <신화의 힘>에서는 그 신화와 종교에서, 궁극적인 중심에 이르려는 인간 정신의 모습을 읽어내고는 그 흐름에 자연스럽게 휩쓸리면서 스스로를 구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7P)” 는 모이어스의 책 앞 서문대로 신화를 알면 우리 또한 스스로도 평생을 의문과 해답을 찾는데 최선을 다했고 드디어 답을 찾고는 편안하게 인생을 마감한 그를 신화와 함께 쫓다 보면 좀 더 빨리 그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는 특히 종교인에게는 더더욱 다른 문화권의 신화를 읽기를 추천하고 있다. 자기 종교는 단지 믿음이라는 문맥에서만 해석하지만 다른 문화권의 신화를 읽으면 메시지를 느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또한 자칫 카톨릭이라는 집안의 전통적인 종교 때문에 깨닫지 못했을 진리를 신화를 공부하면서 더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밖에서 봐야 안을 제대로 볼 수 있다는 의미처럼 말이다.

이처럼 신화에 대한 그의 이야기를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귀를 귀울이다 보니 최근 읽고 있는 도덕경과도 일치하는 개념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든다. 신화를 통한 예시와 도덕경을 통한 해석이 만나 나에게 좀 더 깊은 울림을 주는 듯 하다. 물론 이와 같은 현상은 그가 동양사상을 함께 공부하면서 받았던 영향이 컸을 것이고 한편으로 진리는 통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령 신화에서 이야기하는 다양한 이름으로 언표 되는 하느님의 존재와 특성에 대한 설명은(101,102,127P등) 도덕경에서는 도의 기본적인 것을 말해 주고 있는 1장과 맞닿아 있다. 또한 그가 그렇게 주창하던 여신, 여성에 대한 이야기는 도덕경 6장에서도 반복된다. 어쨌든 도덕경을 읽어나가면서 비교해 보는 재미가 더욱 쏠쏠할 것 같다.
또한 이 대담집 한 권에는 인용되거나 언급된 이야기들은 너무도 다양하게 다른 이야기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기에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찾아보아야 할 관련 이야기가 너무도 많다. 하지만 그것 또한 의미 있는 시도이리라. 개인적으로는 평소 각 종교들이 이야기하는 진리들이 부담스럽던 나에게 “ 종교 및 신화는 단지 세상의 진리에 대한 메타포일 뿐이다. 종교의 경우 초월신의 메타포에 지나치게 집착한 소산물 일뿐” 이라는 그의 해석은 시원함을 준다.

[이 책에 뼈대와 장단점에 대해]
TV에서 진행된 6시간짜리 대담을 그대로 책으로 엮어냈기에 일반적인 책과는 달라 무척 당황스러웠던 책 “신화의 힘”. 때론 선문답 같기도 한 두 고수의 대화를 내 머리 속에 그려내고 이해하기 위해 책은 한 권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두 권 분량의 이해력이 요구 될 만큼 강도 높은 독서였다. 마치 퍼즐 맞추기 하는 기분이어서 그들의 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음속에 나만의 책을 만드는 작업을 직접 해야 했다. 분류를 하고 목차를 잡는 작업들 말이다. 어쨌든 이 책은 누구나가 부담 없이 즐겁게 집어들 수 있는 책은 아닌 듯 하다. 그러나 이 대담집 안에는 조셉캠벨의 신화에 묻혀 산 인생의 모든 고민과 엄청난 지혜가 투사되어 녹아 들어있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열정으로 모든 상황을 신화에 비춰 바라보고 고민해 왔기에 저렇게 대화를 통제 할 수 있을까 하는 감탄마저 든다.반드시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
하지만 대담의 내용을 주제로 묶어서 인지 각 주제를 넘어서기도 하는 가지뻗기를 하는 경우가 눈에 띄기도 하였다. 두 사람이 주고받는 대화를 묶어낸 책이기에 일반적인 책보다 반복하고 부연 설명을 해나가는 부분들이 많아 어느 면에서는 이해하는데 도움을 되는 장점을 갖기도 하였으나 역시나 사람인지라 둘이 주고 받는 이야기 중 약간씩 다른 이야기로 가지가 뻗는 것들이 장의 주제를 염두해 두고 이해를 시도하는 독자에게 혼란을 줄 수 있어 가장 큰 단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조셉캠벨은 세상을 떠났다. 이야기꾼 조셉캠벨 스스로를 통해서 신화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는 기회는 더 이상 없다. 아쉬울 따름이다. 하지만 약 20여년 전의 그가 남긴 이 이야기들이 지금에도 유효하듯 그가 남긴 신화를 통한 인간 내면에 대한 울림은 앞으로도 계속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IP *.34.17.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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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스
2008.03.03 22:52:02 *.125.205.55
손지혜님의 저자에 대하여와 내가 저자라면을 보면서
그렇구나... 정말 열심히 노력하신 흔적이 역력하군요.
한수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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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3.04 09:12:01 *.70.72.121
캠벨이 신화에 묻혀 살면서 인생의 모든 고민과 지혜를 투사한 것과 같이 지혜님도 자신의 인생과 가치에 대해 고민이 많으신가 보군요.

꼼꼼한 리뷰가 자신은 물론 주위에도 좋은 선물이 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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