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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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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2일 23시 05분 등록
Ⅰ. ‘저자에 대하여’

대학교 학부 수업중에 성격 심리학 이라는 과목이 있었다. 여러 심리학자들의 이론들을 소개하는 시간 이었는데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는 그들의 이론적 틀은 어릴적 성장경험에 기반을 둔 내역들이 많았다. 미국의 신화 종교학자이자 비교 신화학자이며 20세기 최고의 신화 해설자로 불리는 조셉캠벨도 마찬가지이다.
비교신화학(比較神話學)이라는 과정에 입문하게된 동기로써 그는 스스로 몇가지를 책에서소개하고 있다. 그는 로마 가톨릭 가정에서 자라났다. 대개의 가톨릭 가정 이라는 것이 그렇듯이 그도 어릴 때부터 주일학교와 미사에 참례 하였을 것이고 조금은 보수적인 테두리에서 자라났을 것이다. 그런 성장배경의 이점에 대해 그는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로마 가톨릭 가정에서 자란 이점중 가장 큰 것은 신화라는 것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신화를 삶에 적용시키고, 신화 모티브와 유사한 삶을 사는 방향으로 교육받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렇듯 가톨릭이라는 종교를 통하여 신화라는 자l연스런 분위기 속에 자라난 그는 또 이렇게 언급한다. ‘가톨릭 가정의 아이는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탄생하고, 무리를 가르치고, 십자가에 매달리고, 부활하고, 하늘 나라로 돌아가는 이 순환적인 주기를 계절적으로 체험하면서 자랍니다. 말하자면 1년 내내 계속되는 의례가 가변적인 존재의 불변하는 핵같은 것을 어린아이의 마음속에다 새겨놓는다는 겁니다’
이렇듯 정통 가톨릭 가정에서 자란 조셉캠벨은 어느날 미래의 최고 신화 해설자로 거듭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어릴 때 <와일드 웨스트 쇼> 공연을 우연히 본후 그의 마음속에는 아메리카 인디언을 짝사랑 하게되고 관련된 책을 사보게 되면서 신화학자의 꿈을 키워 나간다. 그러다가 아메리카 인디언 신화와 수녀 선생님에게 들은 것과 똑같은 모티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작지만 충격속에 빠지게 된다. 즉, 가톨릭이라는 세계관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그에게 또다른 세계의 눈을 열 수 있는 계기가 제공이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서양의 시각으로 보는 신화론적인 접근 보다는 동양을 동경 및 이해하게 되고 그것을 본인의 시각으로 해석해 나간다. 그러다가 가톨릭 세계관을 벗어난 그는 하느님을 넘어선 초월의 이미지로써 신화를 대하게 되기도 한다. 그영향으로 그는 내면의 세계와 영적인 존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그 눈을 띄게 만드는 도구이자 필요성으로써 신화의 여러 특성들에 중요성을 매긴다.
그의 책에서는 신화론적인 얘기도 있지만 동양의 현자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영성적인 내용들도 곧잘 눈에 띄인다. 신화의 이미지는 우리 모두의 영적 잠재력을 반영하고 있고 이 신화 이미지를 명상함은 우리 내부에 있는 이 잠재력을 촉발하는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이처럼 그가 얘기하는 의례의 통과의식을 그는 신화에서 찾은것 같다. 마음속의 하느님 및 관습과 서양의 사고방식의 용을 죽이고 그는 고대의 신화에서 하나의 화두 및 해결책의 단서를 발견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절정경험을 체험할 수 있는 수단으로 티베트 승려들이 수련하는 우주 에너지의 소리로 ‘옴’을 소개하며 동양적인 접근방법을 갈무리 한다.
저자에 대한 나자신의 개인적 평가를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넓고 깊은 바다처럼 여유로운사고의 자유로움을 넘나드는 점으로 표현하고 싶다. 서양적인 존재의식 보다는 고대와 동양적인 방식을 추구하고 잇점을 더부가하는 시각들이 있지만 그의 해박한 지식과 동서양을 아우르는 박식한 신화론적인 지혜에 갈채를 보낸다.


Ⅱ.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p8
“모든 고통의 씨앗은 가장 중요한 인간 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의 유한성 이랍니다.인생이라는 것을 알면 이것을 부인할 도리는 없는 것이지요.”
p10
‘신화 따위’의 잔재가 우리의 믿음이라는 내면적 체계의 벽에 줄지어 있다는 점이다.우리는 구조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와 인연이 있는 이러한 ‘따위’는 아직도 어떤 에너지로 작용한다.
p18
신화는 가시적인 세계의 배후를 설명하는 메타포이다.그러나 이 신화의 전통이라고 하는것은 각 문화권에 따르다. 다른 까닭은 각 문화권에 따라 마땅히 자각하여야 할 삶 자체의 양상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p19
과학이 우리를 깨우쳐, 우리 자신이 실은 우리의 내적인 자연의 귀이자 눈이자 사고이자 그 말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했다는 것이다.
p20
우리가 토요일에 마티니를 마시면서 시청하는 서부극이 사실은 그 이야기를 고대의 이야기에서 차용한 것이라는 점, 우리가 주일 학교에서 들은 이야기가 사실은 고도로 영적인 모험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던 다른 문화권의 이야기, 필멸의 운명을 타고난 인간이 하느님이라는 궁극적인 실체를 깨닫기 위해 악전고투하는 이야기와 동일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p21
신화란 우리 심층의 영적 잠재력에 이르는 실마리이며, 신화야말로 우리를 기쁨과 환상, 심지어는 황홀의 세계에까지 이르게 할 수 있다고 믿는 한편, 우리를 그 세계로 불러들이기를 좋아했다.

1.신화와 현대 세계
p26
고전 이야기를 마음에다 담아 놓으면 그 이야기가 나날이 일어나는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될 터인데 말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 신화라는 것에서 우리로서는 도저히 손에서 놓아버리고 싶지 않는 전통의 느낌, 깊고 풍부하고 삶을 싱싱하게 하는 정보가 솟아 난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p29
사람들은 우리 인간이 궁극적으로 찾고자 하는 것은 삶의 의미라고 말하지요. 그러나 나는 우리가 진실로 찾고 있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는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은 살아 있음에 대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p29
신화는 인간 삶의 영적 잠재력을 찾는 데 필요한 실마리인 것이지요.
p30
신화는 사람들에게 내면으로 돌아가는 길을 가르쳐줍니다. 신화를 읽으면 사람들은 상징의 메시지를 해독하기 시작하지요. 자, 다른 민족의 신화를 읽어야 하지, 자기 종교와 관련된 신화를 읽는 것이 아니랍니다. 자기 종교와 관련된 신화보다 다른 문화권의 신화를 읽어야 하는 까닭은, 우리에게는 자기 종교와 관련된 신화를 믿음이라는 문맥에서 해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른 문화권의 신화를 읽으면 메시지를 느끼게 됩니다. 남의 신화를 읽으면 경험이 무엇인지 배우게 됩니다.
p31
신화는 결혼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결혼은 분리되어 있던 한 쌍의 재회 랍니다. 즉, 결혼이 무엇이냐 하면 결혼하는 두 사람 사이의 영적 동일성을 인식하는 일입니다.
p34
중요한 것은 영적 수련입니다. 사회는 사람들로 하여금 깨달음에 이르게 해야 하는 것이고요. 사람은 사회를 섬겨야 하게 되어 있지가 않아요. 사회가 사람을 섬겨야 하지요. 사람이 사회를 섬기게 되면 우리는 괴물이나 다름없는 상태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 이 시각에도 이 세계를 위협하는 것 아닙니까?
p36
범죄가 많은 또 하나의 까닭은 이 미국에는 에토스(윤리적 겨레 정신)가 없다는 것이지요.
p37
모이어스:선생님께서는 선생님께서 들려주시는 신화나 옛 이야기가 학생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캠벨:내가 학생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삶의 지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은 삶의 지혜와는 상관없는 것이지요.
p38
카톨릭 가정의 아이는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탄생하고, 무리를 가르치고, 십자가에 매달리고, 부활하고, 하늘 나라로 돌아가는 이 순환적인 주기를 계절적으로 체험하면서 자랍니다. 말하자면 1년 내내 계속되는 의례가 가변적인 존재의 불변하는 핵같은 것을 어린아이의 음속에다 새겨놓는다는 겁니다.
p39
캠벨:나는 아메리카 인디언 신화에, 내가 어릴 때 학교에서 수녀 선생님에게 들은 것과 똑 같은 모티브가 있는 것을 알고는 약간 충격을 받았습니다.
모이어스:창세 모티브 같은 건가요?
캠벨:창세, 사망과 부활, 승천, 처녀 수태, 뭐 이런건데 처음에는 뭔지 모르다가 하나 하나씩 어휘를 익히게 되었지요.
모이어스: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캠벨:푹 빠졌지요. 나에게는 이것이 바로 비교신화학(比較神話學)에 입문한 계기였던 셈입니 다.
p41
-.테마가 시공을 초월해 있습니다. 문화는 이런 이야기의 영향을 받은 것이고요.
-.신화는 문학과 예술에 무엇이 있는가를 가르쳐 줍니다. 우리 삶이 어떤 얼개로 되어 있는가를 가르쳐줍니다. 이건 대단한 것이지요.
-.판사가 법정으로 들어서면 사람들은 모두 일어서지요. 사람들은 그 친구를 보고 일어서는게 아니라, 그 친구가 입고 있는 법복, 그 친구가 맡고 있는 역할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 일어서는 것입니다. 판사로 하여금 자신의 역할에 가치를 부여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 역할로써 판사가 지니게 되는 완전무결함, 즉 그 역할의 원리로 대표되는 완전무결함이지, 저마다 나름대로 생각과 편견을 지닌 판사들의 무리가 아니다.우리가 일어서서 경의를 표하는 대상은 판사 자체가 아니라 신화적인 인격인것.
p42
-.왕이나 여왕에 대하여 반응할 때 우리는 그들의 인격에 따라서 반응하는 것이 아니고 이들이 지닌 신화적인 역할에 따라서 반응
--->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신화의 의례가 계속되고 있다는것
-.입대해서 군복을 입는다고 하는 것은 자기의 개인적인 삶을 방기하고, 자기가 속한 사회를 섬기기 위해 사회적으로 조직된 삶을 받아들인다는 뜻.어떤 개인이 전시에 한 일을 상식의 잣대로 잴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전시에 그 개인은 개인으로서 행동한 것이 아니라 개인보다 훨씬 상위 개념인 어떤 무리, 바로 그 자신이 섬기기로한 무리의 대리자로서 행동한것. 따라서 그런 사람의 행동을 개인으로서의 행동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부적당한것.
p50
영화를 보고 있는 사람은 그 자리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전혀 다른 곳, 그러니까 영화가 나타내고 있는 상황을 체험
p53
비행기가 나는 것은 이세상에서 놓여나고자 하는 인간의 상상력의 산물. 새가 상징하는 것도 바로 이것. 인간의 이승의 속박에서 영혼을 해방시키고자 하는데, 뱀이 이승의 속박을 상징한다면 새는 이승의 속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를 상징. 이제부터 비행기가 그 할을 맡는것.
p54
스타워즈에는 신화적인 원근법이라고 할만한게 있슴
p58
서양의 3대 종교 유태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한 덩어리로 어울려 치고 받고함. 성서에 나오는 같은 신을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 때문. 서로의 이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메타포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그 참 의미는 도무지 깨닫지 못함.
p59
-.피그미족의 전설
한 소년이 숲 속에서 아름다운 새 소리를 듣고는 그 새를 사로잡아서 집으로 돌아옴. 소년은 세에게 먹이를 주자고 아버지를 조름. 아버지는 새 따위에게는 먹이을 줄 수 없다면서 새를 죽여버림. 이 전설은 그 사내는 새를 죽이고, 새를 죽임으로써 새의 노래를 죽이고, 노래를 죽임으로써 제 자신을 죽인다는 메시지을 전함. 이로써 그 사내는 죽는 것이지요.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죽는 것이지요.
--> 인간은 자연만이 아니고 지기 본성도 파괴. 노래를 죽이니까.
-.신화 자체가 노래. 육신의 에너지에서 부추김을 받은 상상력의 노래, 이것이 신화
p60
우리의 신화학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되는 것은 자기가 사회의 어떤 동아리에 속해 있느냐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
p61
신화학에는 서로 전혀 다른 두 개의 유파가 있슴. 신화학에는 우리의 본성, 우리가 속하는 이 천연의 세계를 나타내는 신화가 있고, 특수한 사회에 속하는 극히 사회적인 신화가 있슴. 후자의 경우 한 인간은 한 자연인이 아니고, 특수한 사회의 구성원임. 유럽의 신화학 역사를 보면 이 두 신화학 체계의 상호작용이 눈에뜀. 대개의 경우, 특수한 사회를 겨냥하는 신화학 체계는 떠돌아다니는, 따라서 중심을 무리 중에서 찾는 유목 민족의 체계임. 대신 자연 지향적인 신화학은 경작 민족의 것인 경우가 보통
p64
우리에게는 개인을 그가 속한 지역적 동아리와 동일시하게 만드는 대신, 지구라는 이 행성과 동일시하게 만드는 신화가 필요
p70
1달러짜리 지페에서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놀라운 이미지(초월적인 진리는 이 세상 어디에서도 현현할 수 있다는)를 표상하는 독수리인것. 이것은 미합중국의 건국 이념이기도함
p71
인류는 기원전 5백 년경에 큰 전기를 맞음. 이 시점은 석가, 피타고라스, 공자 그리고 노자가 살던 시점. 바로 인류의 이성이 크게 깨어난 시기. 이때부터 인류는 동물적인 힘의 지배를 받지 않음. 이때부터는 천체 운행의 아날로지를 길잡이로 하지않음. 이때부터 이성을 길잡이로 했던것
p74
앞으로도 우리는 신화를 가질수 없을것. 세상은 신화를 낳을 사이도 없이 너무 눈부시게 변하고 있슴. 결국 개인은 자기 삶과 관계된 신화의 측면을 자기 나름대로 찾아야함. 신화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네 가지 기능을 지님.
첫째, 신비주의와 관련된 기능--> 신화는 신비의 차원, 만물의 신비를 깨닫는 세계의 문을염
둘째, 우주론적 차원을 연다는것 --> 과학은 우주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신화는 신비의 샘으로서의 우주를 보여줌
셋째, 사회적 기능. 신화는 한 사회의 질서를 일으키고 그 질서를 유효하게함. 신화의 기능 중에서 우리 세계를 가장 폭넓게 지배하고 있는 기능이 바로 이 사회적 기능
또하나 신화에는 네 번째 기능이 있다. 오늘날 우리가 한번 음미해보아야 할 것이 바로 이기능.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이 삶을 이 특정한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된 교육적 기능이다. 신화는 사람들에게 그걸 가르쳐줄 수 있슴
p76
오늘날 우리가 할 일은 온 길을 되돌아가 자연의 지혜와 조화되는 길을 찾는 것입니다. 이로써 짐승과 물과 바다가 사실은 우리와 형제지간
p77
오늘밤에 무슨 꿈을 꾸게 될지 알 수 없듯이, 내일 어떤 신화가 태동할지도 알 수 없슴. 신화와 꿈은 같은 곳에서 옴. 이 양자는 상징적인 형태로 나타내어야겠다는 일종의 깨달음에서옴. 미래를 생각하게 하는 신화 중에서 가치 있는 신화는 어떤 도시, 어떤 동아리에 관한 신화가 아니라 이땅에 관한 신화임. 모든 인류가 사는 이땅에 관한 신화여야함. 이것이 바로 미래의 신화가 어떻게 될 것이냐는 질문 앞에 내밀 수 있는 나의 중심사상임p78
-.달에서 지구를 보면 국경 같은게 안보임. 이것은 미래 신화를 위한 대단히 중요한 상징-.시애틀 추장은 구석기 시대 도덕률의 마지막 대변자 중 한 사람. 1852년 전후 미합중국 정부가 그 부족의 땅을 팔 것을 요구했을 때 시애틀 추장은 명문의 해답을 보냄. 이 서한은 도덕의 문제, 진짜 도덕의 문제를 더 이상 설명할 수 없게 표현하고 있다.

2.내면으로의 여행
p85
-.신화의 이미지는 아득한 옛날부터 앞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거의 무의식 상태에서 전수된것. 이게 놀라운 이유는 우리와, 우리와 관련된 모든 사상의 심오한 신비를 드러내기 때문. 이것을 ‘미스테리움 트레멘둠 에 파스키난스’ 라고함. ‘무섭고도 놀라운 신비’라는뜻. 이것이 무서운 까닭은 사물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깡그리 부수기 때문이고, 이것이 놀라운 까닭은 이것 자체가 우리 자신의 본성이자 존재이기 때문
-.신화는 우리 인류에게 전형적인 어떤 것을 일러줌
p91
일정한 단계에 이르면 사적인 꿈은 신화적인 테마를 표현하게됨. 이렇게 되면 꿈은 신화의 아날로지 없이는 해석이 안됨.
p95~96
창세기에서 뱀이 여자를 꾀어 나무 실과를 먹게한 이야기와 같이 바사리 전설도 같은 식으로 진행
--> 어느날 뱀이 말했다. 우리도 이 실과를 먹어야 한다. 왜 우리만 주려야 하느냐? 영양이 말했다. 우리는 이 실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이렇게 되자 남자와 그 아내는 실과를 집어먹었다. 우눔보테가 하늘에서 내려와 물었다. 누가 이 실과를 먹었는냐? 그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저희가 먹었나이다. 우눔보테가 물었다. 누가, 그 실과가 먹어도 좋은 실과라고 하더냐? 모두 일제히 대답했다. 뱀이 그랬나이다. 자, 어떴습니까? 같은 이야기이지요?
--> 뱀은, 과거를 벗어던지고 계속해서 새 삶을 사는 생명의 상징으로 등장
--> 생명력은 뱀으로 하여금 허물을 벗게함(이게 바로 삶의 이미지)
--> 삶은 죽여서 먹음으로써, 남을 죽이고 자신을 달처럼 거듭나게 함으로써 살아지는것. 이 상징적이고 역설적인 이미지들이 나타내려고 하는 것은 바로 이 신비
p97
-.대부분의 문화에서 뱀은 긍정적인 이미지로 해석. 뱀은 시간의 장, 죽음의 장이면서도 영원한 생명의 장에서 기능하는 생명력을 상징
-.뱀이 기어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물처럼 흐르는 것 같지요. 혀를 보세요. 불꽃 같지 않아요? 결국 우리는 물과 불이라고 하는 한 짝의 대극을 뱀에게서 발견
-.기독교에서 여성과 죄악, 뱀과 죄악, 결국은 삶과 죄악을 동일시하는 것은 대단한 왜곡
:여자를 죄인이라고 보는 관점은 다른 신화 체계에서 없슴
p98
-.결국 여자가 이 세상에다 삶을 일군것. 이브는 이 속세의 어머니. 죽어서 부활하고 허물을 벗음으로써 그 삶을 새롭게 하느 뱀은 시간과 영원히 만나는, 이세계의 중심에 서있는 세계수. 결국 뱀은 에덴동산의 실질적인 신이었던것
-.히브리인들이 가나안 땅으로 이주하면서 가나안 백성을 정복한 것과 관련된 역사적 설명이 있다. 가나안 백성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여신. 그런데 이 여신은 뱀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슴. 바로 삶의 신비를 상징하는 존재인것. 남성신 지향적인 민족이 이런 신관을 거부하지 않을리 없슴. 달리 말하면 에덴 동산 이야기에는 역사적으로 모신(母神)을 거부하는 태도가 반영되어 있는것
-.타락의 책임을 왜 여자가 지게 된것입니까?
:여성을 삶을 상징. 남성은 여성을 통해서만 삶의 장으로 나올 수 있슴 따라서 대극하는 것과 고통이 있는 이 세상으로 우리를 나오게 한 것은 여성인셈.
-.대극이라는 것은 좌악에서 비롯됨. 죄악으로 인하여 인류는 낙원의 동산이라는 신화적인 꿈의 시간대에서 쫓겨남.
p101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궁극적인 떠남, 최고의 떠남은, 하느님을 위한 하느님으로부터의 떠남, 모든 관념을 초월하는 경험을 위해 하는님이라는 관념으로부터 떠나는 것이라고 말함
p105
신에 관한 참 놀라운 이야기가 있슴. 어느날 ‘자기’라고 하는 신이 ‘내가 있다’고 했더랍니다. 그런데 이 ‘자기’는, ‘내가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두려움을 느낌. 영원이라는 것을 인식했기때문. 그래서 이 자기는 왜 내가 두려워하느냐? 존재하는 것은 나뿐인데? 하고 생각했슴.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이번에는 외로워지면서, 다른 하나가 더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일더라지요. 욕망을 느낀것. 그래서 이 ‘자기’가 부풀어, 둘로 나뉘어 각각 남성과 여성이 되어서는 이세상을 낳았슴
‘두려움’ 이라고 하는 것은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 태아가 최초로 체험하는것
p109
-.우리가 신화를 다루면서 노리는 것은 세계 체험의 한 방법이 아닐까 싶음. 초월의 이미지를 열어줄 세계인 동시에 그 안에 살 우리의 모습을 빚는 세계에 대한 체험이라면 어떨까요?
-.우리가 신화를 다루는 것은 신의 실재를 경험할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지침을 얻기 위한것
-.인도의 인사법
--> 두 손을 모으고 상대에게 고개를 숙임(손바닥을 서로 붙이는 것은, 내안에 있는 신이 상대방 안에 있는 신을 알아본다는 뜻)
p113
나는 신화를 예술의 여신인 뮤즈의 고향이라고 생각함. 즉 바로 신화가 예술의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시의 영감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하는것임. 삶이 시같고, 우리는 바로 이 시의 세계에 참가하고 있다는 느낌은 신화가 있었기에 가능한것
p114
모든 신화는 특수한 문화적 상황이나 시대적 상황과 관계가 있는 삶의 지혜를 다루고 있슴. 신화는 개인을 그가 속한 동아리에, 그리고 동아리를 자연의 장으로 인도함. 신화는 자연의 장과 개인의 본성을 통합시킴. 신화는 조화시키는 힘
p120
창조적인 글을 써본 사람은, 마음을 열고 자신에게 복종하노라면 써야 할 것이 스스로 말을 하면서 제 자신을 이루어나간다는 것을 암
p133
선악의 관념은 조로아스터교의 관념이었는데, 이것이 유태교와 기독교로 흘러들어 왔슴. 다는 종교의 전승에 따르면 선악은 우리의 입장에 따라서 상대적인것. 어느 한쪽에 선한 것은 그 반대쪽에는 악한것. 인생이라는게 참혹한 것임을 알면 물러서지 않고 자기가 맡은 역할을 해낼수 있슴. 그리고 이 참혹함이 바로 신비, 무섭고도 놀라운 신비의 바탕이라는 것까지 알아야함
‘인생은 슬픈 것이다’. 이것은 석가가 처음으로 내뱉은말.
그러니까 우리는 삶을 긍정하고. 이대로도 훌륭한 것으로 보아야함. 왜냐하면 하느님의 의도가 이러한 것이었으니까
p134
이대로가 즐거운것. 악몽에서 헤어나는 길은, 두려워하지 않고 지금 이대로의 모습 자체가 만물을 창조한 무서운 힘의 현현임을 깨닫는일

3.태초의 이야기꾼들
p141
고대의 신화는 몸과 마음을 조화시킬 목적으로 빚어진것. 신화와 의례는 마음을 몸에다 조화시키기 위한 수단, 자연이 가르치는 대로 삶을 자연에 조화시키기 위한 수단
p142
교수직에서 은퇴하고 나서 나는 내가 새로운 삶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걸 알았슴. 그래서 나는 삶에 관한 나의 사고방식도 바꿨슴. 즉 삶에 관한 관념 자체를 바꾼것. 그러니까 공부하고 활동하는 삶을, 이 신비를 즐기고 감사하고 편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삶으로 바꾼것
p145
의례의 중심적인 목적은 하나 개인을, 그 개인의 육신보다 훨씬 큰 형태론적 구조에 귀속시키는것
p147
짐승이 화살에 맞아 고통스럽게 죽어가면, 사냥꾼은 이것은 하고 저것은 하지 않는다는 식의 자기 희생적인 금제를 지킴
--> 여기에는 일종의 동일시, 신화적인 동일시가 개입. 죽임이라는 것은 단순한 살육이 아닌 의례행위가 됨
--> 사냥은 의례(자연의 법칙에 화합하는 행위다 이런뜻을 나타내고 있슴)
p155
-.의례를 통해 삶은 다른 차원으로 들어감. 이 새로운 차원에서 생명은 다른 차원으로 들어갈 수도 있고 그 들어간 곳을 통해 나올 수도 있게됨
-.인디언들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을 ‘그대’라고 불렀슴. 사실 이 세상 만물을 다 ‘그대’라고 부를수 있슴. 이렇게 부르면 우리의 마음 자체가 달라지는 걸 실감할 수 있슴. 2인칭인 ‘그대’를 보는 자아는 3인칭 ‘그것’을 보는 자아와 다를 수 밖에 없슴. 어떤 나라와 전쟁에 돌입하게 될 때, 언론이 노출시키는 가장 중대한 문제는 적국의 국민을 순식간에 ‘그것’으로 만들어버리는것
p156
우리가 신화적 상상력을 온전한 형태로 볼 수 있는 것은 수렵민 시절의 예술에서
p159
-.사원은 우리 영혼의 풍경. 우리는 성당으로 들어감으로써 사실은 영적인 이미지로 가득 찬 세계로 들어감. 성당은 우리 영적인 삶의 어머니의 자궁.
이 성당의 모든 이미저리는 신인동형동성(神人同形同性)의 형태를 취함. 하느님과 예수와 성자들이 모두 인간의 형상으로 그려지는것. 그런데 동굴에 그려진 이미지는 동물의 형상을 하고 있슴. 그러나 이것은 실은 같은것. 형상은 부차적. 중요한 것은 이 형상이 전하는 메시지.
-.암벽화의 메시지는 동굴에서 체험된 영원한 권능의 시간과 관계가 있슴
p160~161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이 베푸는 의례
:아이를 남자들만의 성소로 데려가서 시련(할례등)을 당하게함. 이런 의례가 진행될 동안 연장자는 아이에게, 위대한 신화의 신화적인 에피소드를 통해 모듬살이의 규정을 가르침. 부족의 신화도 배움-->아이는 어른이됨
p162
-.영화가 우리 시대에서 신화 시대의 의례에 해당되기도함
-.의례의 마당은 신화가 드러나는 마당. 의례에 참가한다는 것은 곧 신화에 참가하는것
p163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 신화의 상실은 어떤 의미를 지닙니까?
--> 성인식이 바로 이런 의례의 현대판. 카톨릭 교회의 견진성사를 통해 받은 이름이 있는데 아이들은 바로 이 이이름으로 나중에 성인식을 치러 받음
p166
-.‘미사’를 뜻하는 라틴어는 원래 우리를 일상성의 마당에서 ‘몰아낸다’는 뜻을 지님. 그래서 사제가 우리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는 곳, 그곳이 제단. 그렇게 등을 돌리고 있는 사제와 더불어 우리는 비로소 외계를 향했던것. 그런데 지금 사제들이 성소를 돌려놓아 버렸슴. 세상과 오순도순 지내보자는것
-.의례를 소중하게 재현시킴으로써 그 가르침이 살아 있게 해야함
p168
-.신화를 살아나게 해아함. 이것을 살아나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임. 예술가들의 기능은 마땅히 환경과 세계를 신화화하는 것이어야함
-->옛날에 신화를 쓴 사람들은 오늘날의 예술가들에 대응하는 사람들
-.독일 ‘다스폴크 디히테트’는 전통 문화의 관념과 시는 모두 민중에게서 비롯된다는뜻.
하지만 그렇지 않다. 전통 문화는 엘리트의 경험, 특별한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의 경험에서 나옴. 민중의 문화를 빚겠다는 최초의 충동은 위에서 생겨나는 것이지 아래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님

4.희생과 천복(天福)
p177
사는 곳을 성화(聖化) 시키는 것, 이것은 신화의 기본적인 기능
p179
초원의 사냥꾼들에게는 세계 전체가 성소
p180
사람들은 동물과 식물을 신화화함으로써 땅을 창조의 성소로 요구함. 이들은 땅에다 영적인 힘을 투자
p186
신화는 우리 삶의 요체인 영적인 삶의 원형과 만나게 해줌, 날마다 의례를 접하는 것, 이것이 우리 삶의 질서를 온전하게 바로잡아줌
p189
-.에덴 동산에서의 인류의 타락을 다룬 우리 이야기는 자연을 부패한 것으로 보고 있슴. 자연 자체를 부패의 상징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비롯되는 모든 것은 죄악이고, 따라서 타기되어 마땅한 것으로 전락. 신화가 자연을 타락한 것으로 보느냐, 아니면 자연 자체를 신의 현현으로, 정신을 자연의 본성인 신의 드러남으로 보느냐에 따라 문화나 삶의 양식은 확연하게 달라짐
-.예술가들이야말로 오늘날에도 신화와 교감하는 사람들
-.신 관념은 항상 문화적 조건을 따름. 선교사가, 자기가 생각하는 하느님, 자기의 신을 어느 땅에 들여온다고 한들 그 신은 그 땅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신으로 변모
p194
가치, 즉 평가의 결과는 삶을 지배하는 조건에 따라 달라짐. 사냥꾼이 신화는 외계 지향적. 농경 신화는 내계 지향적. 사냥꾼에게는 동물이 신화를 촉발. 농경 문화에서는 식물의 세계 자체가 스승 노릇을함
p198
신화를 읽다보면 가장 놀라운점
:한 문화권의 이야기가 다른 문화권에서 그대로 발견되는 데에는 여전히 놀람.
p200
성서를 보면 ‘싹’은 카인이고, ‘부싯돌’은 아벨임. 성서에서는 아벨이 사냥꾼이라기보다는 양치기로 나옴. 여기에서 양치기와 농부는 서로 반목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당하는 것은 농부입니다. 이것은 농경 문화권을 정복하고, 피정복자인 농경민들을 욕보인 수렵 민족, 혹은 유목 민족의 신화임
p203
그리스도 이야기는 원래 농경 문화권에 속하던 이미지가 승화된 것인 듯한 느낌을줌. 그리스도는 ‘성 십자가’에서 세상을 떠남. 이 성 십자가는 나무임. 그리스도 자신은 그 나무의 열매가 되는셈. 그리스도는 영원한 삶의 열매임. 이 나무는 에덴 동산에 있던 두 번째 금단의 나무임
p209
이집트의 신 ‘오시리스’는 사자(死者)의 신이자 사자의 심판자인 동시에 생명을 생성시키는 신. 죽는 다는 것은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라는 근본적인 테마를 드러내고 있슴.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죽어야 한다는것
p217
종교 집단의 구성원이 되는 사람들은 이따끔씩 자기 앞길을 가로막는 미로를 만남. 이 미로는 앞길을 막는 존재인 동시에 영생으로 들어가는 길이기도함. 이것이 신화의 궁극적인 비밀임. 삶의 미로를 뚫고 지나가면 삶의 영적인 가치를 접하게됨. 이것이 바로 신화가 드러내고자 하는 진실
p227
-.내가 살아야 하는 삶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삶입니다. 이걸 알고 있으면 어디에 가든지 자기 천복의 벌판에 사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문을 열어줍니다. 그래서 나는 자신있게 사람들에게 권합니다.
“천복을 좇되 두려워하지 말라. 당신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있어도 문은 열릴 것이다.”
-.영원한 생명수는 우리가 있는 곳에 있습니다. 자기 천복을 좇는 사람은 늘, 그 생명수를 마시는 경험을, 자기 안에 있는 생명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지요.

5. 영웅의 모험
p234
결국 모든 신화가 다루고 있는 것은 의식의 변모. 의식은 스스로 부여하는 시련이나 계시를 통해서 변모함. 시련과 계시 이것이 바로 변모의 열쇠
p239
-.모험이 그로 하여금 스스로도 지니고 있는 줄 모르던 성격의 그런 측면을 드러나게 했던것임
-.우리 삶이 우리 기질의 잠을 깨웁니다. 우리 자신에게서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찾아볼 필요가 있슴
p249
왜 첫 저서의 제목을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이라고 하셨습니까?
:이 세계 모든 문화권, 많은 시대의 이야기에서 나타나는 영웅의 행동에서 하나의 전형적인체계를 도출할 수 있기 때문. 원형적인 영웅상은 하나밖에 없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 그러니까 이 하나의 원형적인 영웅상이 많고 많은 사람에 의해 모든 지역에서 베껴졌다는것.
p252
원시인들의 입문 의례는 신화를 바탕으로함. 그래서 소년이든 소녀든, 입문 의례는 유아기의 자아를 죽이고 성인으로 거듭나는 모티프와 관계가 있슴. 소녀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여자가 됨. 그러나 소년이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의도해야 함. 즉, 소년은 먼저 어머니에게서 떨어져야 하고, 삶의 에너지 전부을 자기에게 쏟을 수 있어야함. 그래야 어른이됨. ‘아버지를 찾으러 가라’는 신화가 전하고 있는 메시지가 바로 이것
p255
기원 신화에서 인간의 내면 탐색에 관한 신화로 되돌아가, 깨달음의 단계라는 것은 어떤 것이고,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과도기에 어떤 시련을 경험하게 되는지, 어른 되는 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번 읽어보세요. 이야기는, 우리 곁에 없는게 아니라 이렇게 있어요. 종교에 있어요.
p262
나에게는 하나의 이론이 있다. 어떤 젊은이가 모종의 장벽에 부딪쳤을 경우에는, 거기에 해당하는 특정 신화 대응물을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는것. 젊은이의 경우는, 문턱 넘기 의례와 관련된 신화 대응물을 찾아야 하는것.
p263
신화는 어떻게 하면 진짜 ‘자기’를 만날 수 있다고 가르치나?
:신화가 암시하는 첫째 방법은 신화 자체, 또는 영적인 지도자나 스승을 따르라고 가르침
-->좋은 코치는 선수에게, 팔은 어떻게 움직여야 한다. 다리는 어떻게 움직여야 한다는 등의 구체적인 지시는 하지 않음. 좋은 코치는 선수가 달리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선수의 천성적인 동작 양식만 조금 수정해줌
p272
-.신화에는 개인이 지닌 완전성과 무한한 힘의 가능성을 깨닫게 하고 그 세계를 날빛 아래로 드러내는 힘이 있다. 괴물을 죽인다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어둠을 죽인다는것. 신화는 우리를 사롭잡되, 우리 심층에 있는 것을 거머쥠
-.“그대의 천복을 따르라” 천복을 찾아내되, 천복 따르는 것을 절대로 두려워하면 안됨.
‘아니, 내가 그걸 어떻게 할 수 있어?’,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게 바로 우리 안에 갇혀 있는 용임. ‘안 돼, 나는 작가가 될 수 없을 거야’라든지 ‘나는 아무개가 하는 일은 도저히 할 수없을 거야’, 이런다면 이게 바로 우리 안에 갇혀 있는 용임.
p277
“그대는 그대의 운명에 깨어 있는가”라고 물은 햄릿의 문제
p278
죽음을 이해할 수는 없어요. 죽음과 화해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것.
예)십자가에 달려 죽으면서까지 인간 종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그리스도 이야기가 죽음을 수용하는 데 필요한 교과서,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이야기
-모든 영웅이 경험하는 모험 중 아주 중요한 통과의례는 바로 공포의 극복. 공포가 극복되어야 비로소 영웅적인 업적의 성취가 있는것
p279
커스터 장군의 부하들이 쏘는 총탄의 소나기 속을 뚫고 들어가던 용감한 인디언들
:‘죽기에 좋은 날이다!’ 이게 그들의 구호. 죽기에 마침 좋은 날이라고 생각하는 인디언에게 삶에의 집착이 있을 리 없지요. 이게 바로 신화가 전하는 대단히 중요한 메시지
p296
'자비(慈悲)‘라는 말은 ’더불어 슬퍼한다‘는 뜻
p297
"고통에서 놓여나고 싶거든 고통이 곧 삶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말고 용감하게 인정하세요. 우리는 오로지 고통을 통해서만 고상한 존재가 될 수 있답니다.“
p299
-.삶의 궁극적인 배경은 우연(인연)임.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도 이걸 통해서옴. 중요한 것은 이걸 탓하거나 이걸 설명할려고 하지 말고 여기에서 생기(生起)하는 삶과 대결하는것
-.우리가 이르러야 할 궁극적인 목적지는 바로 우리 안에 있슴
p302
신화는 우리 삶의 훌륭한 의지가지 같은것
p303
-.신화는 거짓말이 아닌 신화는 시, 신화는 메타포일뿐. 신화가 궁극적 진리에 버금가는 진리라는 말은 신화를 정말 잘 나타낸 말. 궁극적인 것은 결국 언어로 드러날 수 없기 때문
-.신화 자체의 신비와 우리 자체의 신비를 알고 체험하면서 사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
-.가장 중요한 문제는 우리 삶의 모험을 진심으로 반길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것
-.영웅의 모험, 즉 살아 있음의 모험

6.조화여신(造化女神)의 은혜
p305
-.주기도문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시작됨. 왜 ‘하늘에 계신 우리 어머니’가 아닌가?
:이건 대단히 상징적인 이미지. 모든 종교 이미지와 신화 이미지는 우리 의식의 차원, 인간 정신에 잠재해 있는 경험의 장
-.신화라고 하는 것은 어머니 이미지가 승화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함
p322
구세주 아기의 어머니로서의 마돈나 고대 이미지는 호루스에게 젖을 먹이는 이시스
p335
의례의 집전은 곧 신화의 ‘연출’입니다. 우리는 의례를 통해서만 신화적인 삶을 체험할 수 있슴. 우리가 영적으로 사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바로 그런 체험에의 참여를 통해서만 가능.-->신화는 우리에게 영적인 삶으로 가는 단서를 제공
p336
-.우주와 우리가 별개가 아니라 결국은 하나라는 인식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 이것이 신화인것
-.우리가 우주로 나갈 때 가져가는 것은 바로 우리. 우리가 변하지 않으면 우주도 우리를 변하게 할 수 없슴
p337
우리와 이 광막한 우주는 하나라는 느낌을 경험할 수 있어야함. 우리도 이 우주에서 벌어지는 이 엄청난 변화에 참가하고 있다는걸 알아야함

7. 사랑과 결혼 이야기
p353
'passion'은 곧 고통인데 이걸 ‘함께(com-)'하는 것이 곧 ’자비(compassion)'
p359
가장 바람직한 삶은 빛을 향하여, 남을 이해함으로써 남의 고통에 동참하는 자비를 통해서 가능해지는 화합의 관계를 향하여 나아가는 삶임. 이것이 바로 성배가 의미하는것, 이것이 바로 중세의 로망스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인것
p360
융 박사는 ‘영혼은, 그 짝을 찾지 않고는 평화를 얻을 수 없다. 그런데 그 짝은 바로 우리 안에 있다’
p366
인생은 관계 속에 들어 있슴. 우리의 인생 역시 마찬가지임. 그래서 우리 역시 이런 관계 안에 있어야 하는 것임. 그 관계가 바로 결혼
p370
사랑은 곧 신의 임재(臨在). 사랑이 결혼보다 상위 개념인 까닭이 여기에 있슴. 신이 사랑이라면 사랑은 곧 신이다.

8.영원의 가면
p375
-.신화의 이미지는 우리 모두의 영적 잠재력을 반영하고 있어요.
바로 이 신화 이미지를 명상함은 우리 내부에 있는 이 잠재력을 촉발하는 겁니다.
-.신비를 체험해본 사람이면 누구나 자기 오감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우주의 어떤 차원이 있다는걸 암. 여러 <우파니샤드>중 하나에서 적절한 구절을 읽은적이 있슴
‘해 지는 광경의 아름다움이나 신의 아름다움 앞에서 문득 걸음을 멈추고, 아!하고 감탄하는 사람은 벌써 신의 일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참여하고 있는 순간에 이 사람은 이미 존재의 경이와 아름다움을 깨닫고 있는것. 자연계에서 사는 사람들은 날마다 이런 경험을함. 즉 인간의 차원보다는 훨씬 위대한 무엇을 인식하면서 살아간다는것.
p378
우리가 마음을 플라톤의 이른바 ‘불멸하는 생각, 신적인 생각’에 집중시키는 것이 명상.
명상이란 특정한 주제를 집중적으로 생각한다는 뜻. 어떤 수준의 생각이든 명상에는 가능
p379
한 가지에만 정신을 집중시키면 상상력에 따라 갖가지 차원의 신비 체험이 가능해지는것
p380
'나‘와 ’타자‘가 사실은 둘이 아니라 한 생명을 나누고 있다는 걸 깨닫게됨. 이렇게 되면 완벽하게 새로운 영적인 삶의 단계가 열림. 세계를 향한 마음의 열림, 이것이 바로 상징적.신화적 의미의 처녀 수태임-->영적인 삶을 잉태하게 되는것을 의미
p387
'종교(religion)'라는 말은 ‘렐리기오(religio)', 즉 ’뒤로 연결됨‘을 뜻함
p391
결혼 반지는, 우리는 원 안에서 하나라는 것을 상징
p393
모이어스:신화를 읽다보면 문화권도 다르고 시간과 공간도 다른데, 늘 똑같은 이미저리가 떠오릅니다. 이걸 어떻게 보시는지요?
켐벨:우리의 정신 안에는 인류의 공통되는 어떤 힘이 있다는 뜻이지요. 그렇지 않고는 그렇게 자세한 데까지 같을 수가 없어요.
p393
신화의 이미지는 우리 모두의 영적 잠재력을 반영하고 있슴. 바로 이 신화 이미지를 명상하면 우리 내부에 있는 이 잠재력을 촉발할 수 있는것
p394
우리 자신에 대한 우리의 지적 탐색은 우리 내부의 발화점에서 이루어져야함
p396
우리는 신화 이미지를 메타포라고 부르지, 사실이라고 부르지는 않음. 신화 이미지는 우리의 내적 체험과 삶을 위한 메시지가 됨. 이 메시지를 받아들이면 신화 체계는 문득 우리의 개인적인 체험이 되는것
p412
-.소펜하우어는, 우리 인생은 한 사람이 꾸는 큰 꿈, 꿈속에 나오는 인물이 또 꿈을 꾸는, 말하자면 규모가 방대한 꿈이 아니겠느냐는 결론을 내림
-.어떤 사건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많은 사건과의 상호 관계 속에서 일어남.
p413
-.나바호 인디언 ‘화분(花粉)의 길’
:‘내 앞도 아름답고, 내 뒤도 아름답고, 내 오른편도 아름답고, 내 왼편도 아름답고, 내 위도 아름답고, 내 아래도 아름답다. 나는 화분의 길에 들었노라’ 이렇게 노래함
-.이세상 도처에 왕국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그때까지 이 세상을 살던 방식을 버립니다. 이 버리는 순간, 이 순간이 바로 세상의 종말입니다. 이 세상의 종말은 미래의 어떤 순간이 아닙니다. 심리적인 변화가 오는 순간, 세계를 보는 방법이 바뀌는 순간이 바로 그 순간임. 이런 순간을 경험하면 이 세상은 물질의 세상이 아닌, 빛의 세상이 될것

p414
-.괴테는 ‘만물은 메타포’라고 말함
-.‘옴(AUM)'
:이 소리의 의미를 깨달으면 밖으로 나가 다른 것을 위해 죽을 필요가 없슴
:‘옴’은, 우리 귀가 들을 수 있는 만상이 체현하는 우주 에너지의 소리임
:‘옴’송을 통하여 우주와 접촉하고 우주를 느끼는 것, 이것이야말로 절정 체험


Ⅲ. ‘내가 저자라면’

인디펜던스데이, 투모로우 등 스펙터클 작품을 선보였던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신작이 최근 극장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 제목은 ‘10,000BC'. 태초의 권력을건 원시와 문명의 충돌의 테마로써 인류 최초의 영웅을 출연시킴과 함께 맘모스, 식인새 등 상상속의 동물들을 등장 시킨다. 여러 문화계에서도 특히 영화에서는 이같은 영웅과 신화적인 내용들을 곧잘 등장시키고 대중들의 이슈를 붙잡는다. 왜일까? 왜 대중들은 잊혀진 옛날의 이야기인 신화를 갈망하고 그것을 통해 지지를 표현하는 걸까? 왜 단순한 마법사들의 이야기인 조앤K. 롤링의 ’해리포터‘에 그토록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이런 궁금점에 대한 해답을 조셉캠벨은 ’신화의 힘‘에서 하나의 키를 제시한다.
원시 수렵사회 등의 고대신화, 버팔로 사냥, 영웅의 모험, 의례행위 등의 주제를 통해 그는 그만의 신화적이고 종교적인 시각으로 내용을 펼쳐 나간다. 조셉캠벨은 인간 삶의 영적 잠재력을 찾는 데 필요한 실마리이자 사람들에게 내면으로 돌아가는 길을 가르쳐 주는 매개체로써 신화를 제시한다. 그리고 청소년들에게 어른으로서의 성장통을 해소할 수 있는 입문관례의 하나로써도 신화를 제시한다. 적절한 사회적이고 교육적인 내용의 신화가 사람들에게 제시될시 윤택한 삶과 충만한 영적인 삶으로의 초대의 대안으로써 내다보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육신의 에너지에서 부추김을 받은 상상력의 노래로써 신화를 내세운다. 21세기 키워드의 하나인 상상력 이란 단어가 나오자 문득 세계적 브랜드의 하나인 나이키란 상표를 떠올리게 된다. 우리들은 그 상표를 떠올렸을 때 광고의 영향이기도 하겠지만 자연스럽게 승리에의 신화의 영상이 그려진다. 신화의 메타포가 우리 생활 저변에도 깊숙하게 숨겨져 있다는 하나의 증거가 아닐까.
문명의 생활을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삶의 모험을 진심으로 반길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신화가 더욱 필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용을 죽이는 또는 아더왕 등의 신화를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이 주체가 되어 현재의 삶을 헤쳐 나가는 힘을 받고 동일시하게 여기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신화는 우리의 메타포이자 모티브가 되는 것이다.
이같은 내용중에 가장 마음에 와닿은 구절중 하나는 ‘내가 살아야 하는 삶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삶입니다. 이걸 알고 있으면 어디에 가든지 자기 천복의 벌판에 사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문을 열어줍니다. 그래서 나는 자신있게 사람들에게 권합니다. 천복을 좇되 두려워하지 말라. 당신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있어도 문은 열릴 것이다’라는 문장이다. 이내용은 세간에 화제가 되었던 론다 번의 ‘시크릿’에서 강조한 내용과 일맥상통 하다고 본다. 시크릿 책의 요지인 끌어담김의 법칙과 조셉캠벨이 언급했던 천복(天福)이란 용어를 나는 얼만큼 확신하며 내안에 있는 용 -현대에서는 로저 본 외흐의 Creative Thinking에서 신성한 소로도 표현- 을 죽이기 위한 얼마만큼의 노력을 하고 있는지 나아가 내가 살아야 하는 삶을 잘살고 있는지를 되돌아 보게 된다.
신화란 테마를 주제로 다루어서 이기도 하겠지만 그는 내용의 상당수를 종교적인 의례를언급한다. 저자 자신이 가톨릭 세례인이기도 하여서 이겠지만 기독교와 타종교의 신화적인 내용의 공통점과 상이점을 여러 시각으로 풀어내고 있다. 가톨릭 미사를 의례의 한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영적인 단계로의 참여로 얘기하는 것도 그중 한부분이다. 여기에서 저자에게 아쉬운 점이 있다면 고대신화의 의미성을 강조를 하다보니 서양론적인 접근방식에의 비판적 접근이 조금은 주관적인 경향으로 흐르지 않나 하는 점이다.
‘미사’를 뜻하는 라틴어가 아무리 원래의 의미로써 우리를 일상성의 마당에서 ‘몰아낸다’는 뜻을 지녔기로서니, 세상과 조금더 가까워지려는 가톨릭의 행위(사제가 돌아서서 미사를 집전하는 것 등)들을 다른 시각으로 해석하는 점도 그렇지만, 에덴 동산에서의 인류의 타락을 다룬 이야기를 자연을 부패한 것으로 보고 있고 이러한 신화가 우리를 대신해서 이 세계를 부패시키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는 점이다. 과연 그럴까? 신화와 의례는 자연이 가르치는 대로 삶을 자연에 조화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그가 특정인 사항에 대해 비판 한다는 것은 과시적인 지적인 욕구에서의 발로가 아닐까? 통합화된 현시대에서 문화적 다원주의를 인정하는 시대에서 모든 신화는 특수한 문화적 상황이나 시대적 상황과 관계가 있는 삶의 지혜를 다루고 있다고 주장하는 그이기에 단편적 이기는 하지만 기독교 문화에 대해 비판 한다는 것은 고대 부족의 애정에 대한 편중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가져본다.


















IP *.221.96.87

프로필 이미지
홍스
2008.03.03 23:09:03 *.125.205.55
"저자에 대한 나자신의 개인적 평가를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넓고 깊은 바다처럼 여유로운사고의 자유로움을 넘나드는 점으로 표현하고 싶다. 서양적인 존재의식 보다는 고대와 동양적인 방식을 추구하고 잇점을 더부가하는 시각들이 있지만 그의 해박한 지식과 동서양을 아우르는 박식한 신화론적인 지혜에 갈채를 보낸다."

이승호님의 저자에 대하여를 읽으면서 저자에 대해 좀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써니
2008.03.04 21:16:01 *.70.72.121
편먹기 보다 이중적 시선을 가져보는 것 참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사회가 점점 쏠림 현상을 보이는 것 같기도 하구요. 영화를 잘 보시나보네요. 책읽기와 글쓰기와 더불어 상호간 참 도움이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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