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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3일 09시 15분 등록
아티스트웨이
-내 안의 창조성을 깨우는 12주간의 여행-
줄리아 카메론 지음/임지호 옮김/ 경당 출판사


Ⅰ. 프롤로그

나는 좀 더 사랑할 것이고, 좀더 많이 웃을 것이고, 좀더 많이 아름다운 것들에게 말을 걸 것이다. 나는 더 행복해질 것이다.

아티스트웨이에서 말하는 모닝페이지를 시작하면서 나는 떨고 있다. 두려움, 그리고 흥분. 아티스트(창조자)는 재능이 필요한 게 아니라, 용기가 필요하다고 줄리아 케메론은 말한다. 그렇다. 자신을 마주할 용기. 세상을 보이는 데로 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도 뭔가를 하는 것이라고 한다. 두려움은 언제나 그것을 느끼는 사람을 덮을 만큼 큰 외투를 가지고 있다. 그것에 가려진 사람은 무기력해진다. 나는 지금 그런 외투 앞에 있다. 두려움은 나를 덮어버리려고 내 옆에 있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나를 덮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나는 여행자이다. 이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보고 싶다. 가서 보지 않으면 무엇이 있을지 모른다. 이 길은 그 길을 걷는 사람에게만 보여주며, 그것은 보이는 이 마다 달리 보이게 한다. 각자에게 아주 특별한 것으로 보여준다. 마치 오즈의 마법사를 만나는 것과 같이. 오즈의 마법사 일행을 만난 그들은 모두 자신이 본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이미 얻었다. 심지어는 도로시까지도 자신이 원하는 것에 갈 수 있는 것을 이미 가지고 있다. 나도 그들처럼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이 길을 나선다.

12주간의 모닝페이지와 아티스트웨이를 약속하고, 서약을 한다. 그 서약은 이름을 적고 날짜를 적음으로써 나와 우주와의 거래가 성립했다. 나는 서약을 함으로써 시간의 힘을 끌어오기로 했다. 서약을 함으로써 창조주와 약속을 했다. 내게 무엇을 보이든지 다 받아들이겠다고. 그러니 내가 기대한 것을 내게 보이시고, 내가 기대하지 않았던 것도 내게 끌어다가 나를 깨우시라고 그 앞에 엎드려 간청을 했다. 이제 나는 당신 것이며, 그리고 오로지 나의 것이니 나를 깨우시라고 서약을 했다. 나를 깨우시고 내게 보이시는 모든 것을 서약한 대로 받아들이겠다고.

아티스트 웨이. 시작이다.

Ⅱ. 저자에 대하여
저자 줄리아 카메론은 시인, 소설가, 영화감독, 작곡가, TV 프로듀서, 영화감독 등 다재다능한 예술가로 인정받고 있다. 카메론은 18세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고, 시카고 트리뷴, 뉴욕타임스, 롤링 스톤, 보그, 마드모아젤, 코스모톨리탄 등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했으며, 수년동안 American Film지의 편집자로 일했다.

영화감독 마틴 스콜세지와 결혼하여 그의 대표작인 「택시 드라이버」「뉴욕 뉴욕」의 시나리오를 공동 집필하기도 했으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갈등하는 계기가 된다. 결국 그와 이혼한 후 그녀는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에 빠졌는데,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포함한 인간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은 바로 아티스트(창조성)라는 사실과 자신처럼 상처받은 사람들의 창조성을 치유하고 어루만져줄 소명감을 느끼게 된다. 창조성을 깨어나게 하는 데 강력한 도움을 주는 책 『The Artist's Way』는 읽고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퍼져 현재는 세계 20개국에서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녀는 창조성을 가르치는 워크숍을 열어 화가, 음악가, 작가 뿐 아니라 주부, 변호사, 비즈니스맨, 학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창조활동을 수행하도록 많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다.
『The Artist's Way』와 더블어『황금의 맥The Vein of Gold』『글을 쓸 권리The Right to Write』는 대학, 교회, 휴먼 역량개발 센터와 심지어는 작은 소그룹 모임에서도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

줄리아 카메론은 여러 분야에서 예술적 재능을 꽃피웠는데, 그녀가 대본을 쓰고 감독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 「God's Will」은 세계 페미니즘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고, 런던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 그녀는 뉴욕의 맨해튼과 뉴멕시코 고산지대의 사막을 오가며 살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황금의 맥The Vein of Gold』『글을 쓸 권리The Right to Write』『어두운 방The Dark Room』등 17권에 달하는 픽션과 논픽션이 있다. 기도서로 『Heartsteps』『Blessings』『Transitions』가 있다.

줄리아 카메론은 ‘창조적 재능’이라는 말 대신에 ‘아티스트’라는 말을 사용하여 이렇게 주장한다. ‘아티스트(창조성)은 언제나 나를 이끈다. 나는 단지 세상에서 그것을 행할 뿐이다. 나의 책은 창조성에 관한 이론서적이 아니다. 그것들은 나의 창조적 활동의 분출이다. 나는 내가 가진 도구들의 바닥재의 셈플같은 것들이다. 우리는 뭔가에 막혀있지 않을 때, 독특하고 다양한 모험을 할 수 있다’

우울증은 창조성을 제대로 표현해 내지 못해 생긴 단순한 불행이에요. 우리는 어떤 것을 만들어 감으로써 우리 자신을 변화시켜야만 합니다. 질투, 혐오, 후회, 슬픔과 같은 자기 회의에 온통 창조적 에너지를 탕진하기엔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란 걸 알기 바래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보잘 것 없는 조그만 행동으로도 우리는 더 큰 창조적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겁니다. 단계를 밟으세요. 지금 그대로의 삶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고 말이죠. 답이 안 나오는 지금 큰 문제에 빠져 있지 말고 작은 행동 한 가지를 매일 매일 지속적으로 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운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할 겁니다. -줄리아 카메론

Ⅲ.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을 워크북으로 활용한 사람들은 말한다. ‘매우 영적인 책. 사심이 없는 책.’이라고 뭔가를 일부러 꾸미쓰지 않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솔직하게 써서 자신이 얻은 구원을 다른사람에게 전달한다. 그가 자신 스스로 외면했던 창조성을 만나게 된 방법을 그대로 드러냈다. 12주간의 여행이란 이름으로 각 주에 겪을 일을 자연스럽게 소개하고 그때 생길만한 일을 미리 주의를 준다. 이러이러한 것을 경계하고 이런 것을 해보는 게 좋다하는 식으로 미리 알려주는 것이다.

전체의 구성은 앞쪽 2장은 저자가 아티스트라고 부르는 ‘창조성’과 그녀가 추천하는 모닝페이지에 대한 것이다. 창조성은 누구나가 가진 것이며, 그것을 외면하는 삶은 자신의 것이 아닌 타인이 이끄는 혹은 자신을 미워하는, 혹은 남을 부러워하는, 질투하는 작아진 자신을 바라보는 ‘그림자’ 삶이라고 말한다. 모닝페이지는 가장 간단하면서 쉽게 할 수 있는 것이어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도구가 되어줄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도 이 앞쪽에서 하는 일이다. 또 하나의 도구인 아티스트 데이트는 실천 부분이다. 모닝페이지는 생각의 배수로이다. 그것으로는 배수를 한다. 아티스트 데이트는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마음에 끌리는 것을 직접 하는 것으로 자신에게 맑은 물을 공급하는 것과 같다.

2장의 설명 후에 각 주별 활동들이 각각 한 장씩 차지하고 있다. 12주간의 여행, 12주간의 여행은 각 주가 하나씩 새로운 것을 하는 것 같으면서도 하나로 통합되어 있다. 결국은 모두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이다. 한 장 안에는 그 장의 주제에 해당하는 설명과 그것을 상기할 만한 사례, 혹은 반대사례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뒷부분에 가서 한주간 마음에 품고있으면 힘을 낼만한 긍정적인 글귀가 있다. 그 후에 한주간 ‘해야할 일’ 목록이 있고, 확인이 꼬박꼬박 등장한다. 설명과 활동과 확인으로 이어지는 시스템이다.

이 책은 일주일에 후르륵 읽는 책이 아니다. 워크북이다.(따로 워크북이 나와 있기는 하지만) 한주 한주 저자가 이끄는 대로, 자신의 내부에서 말하는 소리를 듣고 따라가도록 만들어 주는 자동차 네비게이션과 같은 책이다. 그러나, 목적지는 알지 못한다. 단지 짐작을 할 수 있다. 12주간의 여행에서 도달하게 될 곳이 상상했던 곳이든, 자신의 상상을 넘어서는 더 큰 대양을 보여주는 것이든 그것은 그 길을 따라가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책은 그 길을 계속 갈 수 있도록 많은 안내를 하고 있다. 전체로 짜여진 것 속에서 길을 즐겁게 갈 수 있도록 다양한 ‘아티스트 데이트’를 제공한다. 뒷면에 궁금해 하는 것들에 대한‘질문과 답변’을 실었다. 전체의 구성이 하나의 목적을 향해서 일관되게 나아가고 있다. 독자의 창조성을 깨우는 것에 충실하도록.

저자가 책 중에 예를 들어 준 사례들은 일상에서 작은 아티스트들이 만날 수 있는 상황과 언어들로 가득하다. 어쩌면 이렇게 내가 평소에 의심하던 것들을 꼭 찝어서 말하지하며 감탄한 부분이 한두부분이 아니다. 부모의 반대에 부딪혀 작은 아티스트가 움츠려 든 것, 그것을 자신의 말로 설명해 내지 못하는 것까지도. 우리가 하는 행동,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두 논리정연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세상은 더 논리적이고, 더 합리적은 것들로 작은 아티스트들의 에너지를 가로막고 창조성의 빛을 차단해 버린다. 저자는 이 점에서 아티스트를 보호하는 훌륭한 대변인이다. 그림자 아티스트부분에서는 가슴이 아프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두고 그 주변에 맴을 도는 그림자 아티스트로 살아간다. 자신이 할 수 없다고 스스로에게 쇄뇌시키는 것이다. 타인을 후원하기는 해도 자신을 후원하지 못하는 그림자 아티스트.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아티스트에게는 재능이 아닌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책은 용기를 내는 법을 가르쳐준다.

Ⅳ. 가슴으로 읽는 글귀(인용)

[11] 상처받은 창조성은 ‘치유된다’. 창조성은 건강한 것이기 때문이다. 창조성을 회복하면서 사람들은 훨씬 더 강한 자아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스스로 마음에 품고 있는 존재보다 훨씬 더 큰 존재이다.

[12] 우리는 언제나 위대한 창조주와 우리보다 앞서 살았던 사람들의 안내를 받아왔다. 저 높은 곳에 있는 권능은 우리가 요청하기만 하면 언제라도 도와주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라도 요청해야 하며, 열린 마음으로 인도받아야 한다. 우리의 불신에도 불구하고 그 권능을 기꺼이 믿어야 한다. 창조성은 신념의 행위이다. 우리는 신념에 충실해야 한다. 그런 신념을 기꺼이 다른 사람을 돕는 데 함께 나눠야 한다. 그러면 그 다음 순서로 다른 사람들 역시 우리를 도울 것이다.

[13] 예술가로서 우리는 “신은 세부적인 것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경험한다. 예술은 만들면서 우리는 예술적인 삶을 만든다. 예술을 만들면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창조주의 손과 만나게 된다.

[21] 나는 많은 사람들과 나누었던 경험을 통해 창조성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이며, 그것을 막는 것은 꽃이 피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만큼이나 억지임을 깨달았다.

[23] 한때 나는 맑은 정신으로는 창조적일 수 없다면 굳이 맑은 정신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24] 나는 막막함에서 빠져나와 그 창조적인 힘에 온몸을 던지는 법을 깨달았다. 그저 원고지를 앞에 놓고 들려오는 것을 쓰는 법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글을 쓴다는 것이 남의 말을 엿듣는 것처럼 쉽게 느껴졌다. 복잡하지도 괴롭지도 않았다. 더 이상 술의 힘을 빌리든가 영감을 떠올리기 위해 나의 감성의 온도계를 들이댈 필요도 없었다. 좋은 나쁘든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예전에는 그러지 못했다. 남을 의식하지 않음으로써 비로소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창조성 회복을 위한 기본 도구>
창조적인 사람이 되는 데는 아주 작은 변화로도 가능하다.
모닝페이지 쓰기와 아티스트 데이트를 하는 것이다.
당신의 내면의 소리를 이끌어내는 그 둘은 잠재된 창조적 재능을 발견하는 데 꼭 필요한 기본도구이다.

[30] 잘못 쓴 모닝페이지란 없다. 매일 아침 쓰는 이 두서없는 이야기는 세상에 내놓을 작품이 아니다. 일기나 작문도 아니다. .... 글을 쓰는 것은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33] 이제부터 센서의 이런 부정적인 의견은 진실이 아니라고 인식하는 습관을 갖자. 물론 그런 연습은 하루아침에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므로 연습이 필요하다.
.... 센서는 교활한 적이다. 당신이 영리해질수록 센서도 영리해진다.

[34] 모닝페이지를 거르거나 줄이면 안 된다. 기분에 좌우되어도 안 된다. 센서가 뭐라고 하든지 상관하지 않는다. .... 무엇이든 생각나는 것을 3쪽에 걸쳐 쓴다. 쓸 것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면 “쓸 만한 말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라고 쓴다. 3쪽을 채울 때까지 이 말을 쓴다. 3쪽을 채울 때까지 무슨 말이든 쓰는 것이다.

[35] 논리적은 뇌는 깔끔하고 직선적으로 생각한다. 논리적인 뇌는 세상을 기존의 범주 안에서만 이해한다. ....... 논리적인 뇌는 기존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잘 모르는 것은 무조건 틀렸거나 위험한 것으로 여긴다.

[36]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스카이워커(하늘을 걷는 사람)’란 주인공의 이름은 정말 재치 넘치는 창조적인 뇌의 작품이다.

[38] 예기치 못했던 내부의 힘을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오랫동안 모닝페이지를 써나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나는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도 모닝페이지를 써왔지만, 그 페이지들은 강렬하고 명확한 자의식으로 통하는 오솔길, 우리 자신의 창조성과 창조자를 만나러 가는 오솔길이다.

[45] 당신의 창조성은 어린아이다. 어린아이에게는 부모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좋은 물건을 사주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잡동사니가 가득 쌓여 있는 고물상에 가보기, 해변에 혼자 가기, 옛날 영화 보러 가지, 수족관이나 미술관에 가기 등의 일을 하는 데는 돈이 아니라 시간이 필요하다. 꼭 지켜야 할 것은 시간을 낸다는 것임을 기억하기 바란다.

[46]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는 경우를 보면, 정말 중요한 사람과의 만남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상처받을까봐 그들의 생각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기회만 잡으면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불쑥 꺼내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들을 피하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갖고 있지도 않고 줄 수도 없는 대답을 원할지도 모른다. 물론 반대로 우리가 그들에게 똑같은 느낌을 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두 사람은 깜짝 놀라 서로 쳐다보며 이렇게 말 할 것이다. “네가 그렇게 느끼는 줄 정말 몰랐어!”

[51] 집중된 관심은 샘을 채우는 데 아주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의 경험을 무시하지 말고 대면해야 한다. 우리는 의식을 숨기기 위해 강제로 책을 읽는다. 붐비는(하지만 볼 것이 많은) 전철 안에서 자신의 관심을 신문 속에 흘려보낸다. 샘을 채울 수 있는 주변의 풍경과 소리를 무시한 채 말이다.

[51] “왜 나는 샤워 도중에 최고의 아이디어가 떠오를까?”

[52] 예술은 시간의 들판에서 뛰어노는 상상력이다. 당신의 자아가 뛰어놀게 내버려두자.

<창조성의 기본원칙>

[57] 창조자라는 단어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길 원한다. 당신은 아티스트 대 아티스트로서 위대한 창조주와 창조적 동맥을 맺으려는 것이다. 이 생각을 받아들이면 당신의 창조적인 가능성은 한없이 확대될 수 있다.

[58] “나는 믿지 않는다. 다만 알 뿐이다.”

[61] 우리는 창조적인 삶에 굶주려 있다.

[61] 정점에 올랐다가 다시 구렁텅이로 떨어지는 이 단계는 일련의 팽창과 수축, 즉 강력한 자신감과 방어적인 회의를 번갈아 겪는 탄생의 과정이다.
.... 하나는 자율성이 강화되고 회복과 기대 흥분으로 특징 지어지는 새로운 자아가 나타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구체적인 창작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능력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것은 엄청난 정서적 변동이라고 할 수 있다.

[63] 상처 치유하기
그전에 효과적인 창조성 회복을 위해서는 반드시 애도기간을 거쳐야 한다. 지금까지 함께 해왔던 자아의 죽음을 위로하기 위해서는 깊은 슬픔이 꼭 필요하다. 눈물은 미래의 성장을 위한 수분을 제공한다.

<1주 안정감을 되살린다>

[68] 아티스트들이 예술작품에 둘러싸여 있을 때면 그는 사탕가게 유리에 코를 박고 있는 아이와 같다. 그는 좀더 창조적인 삶을 살고 싶어하지만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몫이며 그가 감히 바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는 얼마 전에 한 아티스트에게 꿈을 포기하지 말라며 1년 동안 경비를 대주었다. 하지만 아티스트란 말이 자신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도록 길러졌기 때문에 스스로에게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68] “그래, 일단 해봐. 어떻게 되는지 보자구!”

[71] 진정한 아티스트로 살 것인가. 그림자로 살 것인가
아티스트는 다른 아티스트를 사랑한다. 그림자 아티스트는 같은 동족인 아티스트에게 끌리지만 스스로를 아티스트라고 생각하지는 못한다. 어떤 사람이 진정한 아티스트가 되느냐 혹은 그늘에 숨어 꿈을 드러내기를 두려워하는 그림자 아티스트가 되느냐는, 재능이 아니라 용기에 달려있다.

[72] “울지 마라. 화내지 마라. 이해해라.” - 스피노자

[72-73] “저는 아티스트가 될 만한 자질이 너무 많아요.”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자아의 힘이 필요하다.
.... 우리는 다윈의 결정론을 잘못 해석하고는, 진정한 아티스트라면 어떠한 악조건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 자신에게 말한다. 정말 바고 같은 이야기이다.

[74] 실수는 필수적으로 거쳐야할 과정이고, 비틀거리는 것이 정상이다. 이런 것들은 아기의 걸음마와 같다. 자신에게 요구해야할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 아티스트로 되살아나기 위해서는 형편없는 아티스트가 될 것을 각오해야 한다. 자신이 초보자임을 인정하고 형편없는 아티스트가 됨으로써 진정한 아티스트가 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아마도 시간이 지나면 정말로 훌륭한 아티스트가 될 것이다.

[79] 창조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자신과 일 사이에 이거 아니면 저거라는 양자택일의 생각을 하고 있다. 막혀 있는 창조성을 끄집어내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이렇게 양자택일적으로 사고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2주 자기 정체성을 회복한다>

[92] 창조적 자아를 되살리는 과정에는 밀물과 썰물처럼 회복기와 침체기가 반복된다. 자신감이 붙는 만큼 회의감도 밀려든다.

[93] 창조성을 회복하는 데 가장 해로운 적은 창조성이 막힌 사람들이다. 그들은 우리의 변화에 위협을 느끼기 때문이다.

[95] 창조성을 살찌우는 데 근본 요소는 자신을 살찌우는 데 있다. 자신을 키워감으로써 창조주와의 교류도 키워갈 수 있다. 창조주와의 교류를 통해 우리의 창조성은 활짝 열린다.

[97] 정신을 빼놓는 사람들은 드라마를 좋아한다. 드라마에서와 마찬가지로 항상 자신이 주인공이다. 주위 사람들은 모두 그들의 변덕에 따라 움직이고, 그의 큐 사인과 입장 또는 퇴장신호를 받는다. .... 이들은 다른 아티스트에게 해를 끼친다. 그들은 주변 사람들의 에너지를 빨아들여 실제 자신의 실력보다 높은 자리까지 올라선다. 이 때문에 정신을 빼놓은 아티스트들 주위에는 그들만틈 재능이 있으면서도 제멋대로 구는 그들을 뒷바라지하는 데 자신의 재능을 소모하는 사람들이 많다.

[104] ‘저 사람 때문에 피곤해 죽겠어’라는 생각이 들면 당신 스스로가 그 사람을 이용해 창조적인 작업을 미루고 있지는 않은지 자문해 보기 바란다.

[109] 살아 있는 것은 바른 정신을 갖는 것이고, 바른 정신을 갖는 것은 관심을 쏟는 것이라는 할머니의 교훈을 내가 미처 깨닫기도 전에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할머니의 편지는 이렇게 말했다. 할아버지의 기침이 심해지셨다. 우리는 집을 잃었다. 돈도 없고 일도 없지만 백합은 피었고, 햇볕이 따뜻한 곳에는 도마뱀이 있고, 더위에도 불구하고 장미꽃은 시들지 않는다고.

[109] 삶의 질은 기쁨을 맛보는 능력과 비례하고, 기쁨을 맛보는 능력은 관심을 갖는 것으로 비롯된다.

[110-111] 릴케의 말을 빌리면 우리 모두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외롭다.” 관심이란 무엇보다도 서로가 통하려는 작용이다. 나는 이것 역시 우연히 배웠다.
...... 연인의 전화는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오겠지만 지금 이 수간만은 그 모든 것이 괜찮다. 나는 숨을 천천히 쉬고 있다. 이런 것을 인식하면서 나는 매순간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112] 시인 윌리엄 메레디스는 “그 사람은 아무 일에도 관심이 없다.”는 말이 가장 큰 욕이라고 했다.

<3주 내 안의 힘을 되살린다>

[121] 분노는 과거의 삶이 죽었음을 알리는 하나의 폭발물이다. 분노는 우리를 새로운 삶으로 이끄는 연료이고, 우리의 주인이 아니라 도구이다. 분노를 묻어두기보다는 끌어내야 한다. 잘만 이용하면 분노는 아주 유용하다. 게으름과 무관심, 절망은 적이지만 분노는 친구이다. 물론 착하고 점잖지는 않지만, 정직한 친구임은 분명하다. 분노는 우리가 배신 당했을 때, 우리가 자신을 배신했을 때를 언제나 알려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우리가 가장 흥미를 느끼는 것을 알려준다. 분노는 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어떤 행위를 초대하는 것이다.

[121] 간절한 소망은 응답을 받는다

[122] “당신이 무엇에 대해 기도하는지 항상 조심하라. 자칫 그 기도가 이루어질지도 모르니까.”라는 경고문이 왜 있겠는가? 기도에 응답을 받으면 책임은 이제 자신에게 돌아온다.

[123] 우리는 신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보다는 신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 많은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다.

[123] 정직한 사람이라면 불가능보다는 가능이 훨씬 두려우며, 감옥보다는 자유가 훨씬 무섭다고 말할 것이다.

[125] 나는 자신이 어떤 것을 ‘할 수 있는지’를 절대 물어보지 말라는 것을 경험으로 배웠다. 대신 그것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안전벨트를 단단히 매어둔다. 곧 놀라운 일이 일어날 테니까.

[129] 어떤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가족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밝히는 것과 같다. 비밀을 이야기하는 데는 수치심과 두려움이 따른다. “사람들이 이걸 알게 되면 뭐라고 생각할까?” 라고 말이다. 그것은 매우 두려운 의문이다.
..... 어떤 작품을 만드는 행위는 바로 그 사회에 드러내는 것이다. 예술은 그 모든 것을 밖으로 드러내고 빛을 비춘다. 예술은 우리 주위를 맴도는 어두움에 빛을 드리운다. 그것은 우리의 어두운 내면에 빛을 비추며 이렇게 말한다. “봤어?”
사람들은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여주는 사람에게 화를 내고 그 전달자를 제거하기까지 한다.

[131] 어린 아이는 관심을 끌려고 한 일들이 계속 무시당하면 관심을 끄는 것 자체를 두려운 행동으로 인식하게 된다.

[134] 우리는 예술적 활동을 통해 저마다의 부끄러운 비밀을 드러냄으로써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해방시킨다. 하지만 이런 해방이 언제나 환영받은 것은 아니다. 특히 인간의 영혼에 대한 비밀을 냉엄하게 폭로한 작품일 경우 사람들은 그 아티스트가 더욱 수치심을 느끼도록 만든다.

[140] 성장은 앞을 향한 변덕스러운 행진이다. 두 걸음 앞으로 나갔다가 한 걸음 물러나는 것이다. 이것을 기억하고 자신에게 너그러워져야 한다. 창조성 회복은 치료의 과정이다.

[141] 당신이 매일 자신에게 좋은 일을 한 가지씩 한다면 신은 두 가지 이상을 줄 것이다.
예기치 못한 곳으로부터 지지와 격려가 몰려들 것이다. ..... 그런 도움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연습을 해야 한다.

[143] 우리 모두는 마음 속에 나침반을 갖고 있다. 이것은 무엇이 올바른 방향인지를 가리키는 우리의 본능이다.

<4주 자기 신뢰를 회복한다>

[146]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괜찮다’는 말을 아주 포괄적으로 쓰고 있다. 이 말은 거의 모든 기분에 다 적용되고 상실감의 표현으로 애용된다. 모두들 겉으로는 괜찮다고 말하지만 과연 속도 그럴까?

[147] 간단히 말하면 갖가지 극한 감정이 들 때마다 모닝 페이지를 피하고 싶어진다. 모닝 페이지가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달리는 일이 습관이된 육상선수가 달릴 수 없게 돌 때 불안을 느끼듯이, 일단 모닝 페이지에 익숙해지기만 하면 하루라도 안 쓰면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우리는 항상 원인과 결과를 바꾸어 말하는 경향이 있다.

[150] 고독의 자유를 경험하기 전까지는 그 창조적인 자아와 연결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물에 걸려 있을지 모르지만 아직 만나지는 못한다.
예술은 그 만남의 순간에 존재한다. 우리는 자신의 진실을 만나고 자기 표현을 만난다. 우리는 특별한 무엇이 되기 때문에 독창적인 사람이 된다.
* 거짓 자아와 참 자아

[157] 읽지 말라고? 그렇다. 읽어서는 안된다.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에게 언어는 일종의 신경안정제와 같은 효과를 준다. 날마다 우리를 삼켜버릴 듯이 퍼부어대는 수많은 매체들의 수다를 피할 수 없다. 그것들은 기름투성이의 음식처럼 우리의 신경계를 부담스럽게 만든다.
모순처럼 들리겠지만, 주의를 산만하게 만드는 이런 오락거리를 없애야만 삶의 샘을 다시 채울 수 있다.

*독서 중지 : 창조의 샘 정화하기

[158] 독서 중지를 통해 침묵하고 있는 내면으로 들어가는 순간, 우리는 그 공간을 새로운 언어로 채우기 시작한다.

<5주 가능성을 되살린다>

[166] 신은 나의 원천이고, 우리는 그 안에 무한히 꺼내 쓸 수 있는 정신적인 계좌를 갖고 있다.

[167] 신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무한한 가능성을 준다. 사람들은 모두 똑같이 신의 도움을 이용할 수 있기에 우리의 풍성함은 누군가에게서 빼앗아 온 것이 아니다.

[170] 이 두가가를 한번 시도해보자. 잠들기 전에 질문하고 아침에 그 답을 듣기. 그리고 모든 도움을 기꺼이 받아들이기.

[172] 창조성을 회복한다는 것은 강을 발견하고 강의 흐름과 그 급류에 몸을 맡기는 과정이다. 기회가 왔을 때 거절하지 않고 “그래!” 라고 말하는 자신의 모습에 깜짝 놀랄 것이다.

[172] 활동적이고 야심찬 여자인 미셸은 플라멩고 춤을 배우기 시작했고 그것을 아주 좋아했다. 그러자 전에는 성공한 사람들의 고상한 감각을 보여주던 그녀의 집이 갑자기 무성한 화초와 화려한 쿠션, 감각적인 향기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하얗던 벽에는 풍부한 열대의 색상이 피어났다. 또한 정말 오랜만에 그녀는 직접 요리를 하고 재봉틀도 돌려 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사회적으로 성공한 위치에 있지만 이제 그녀의 생활은 훨씬 더 원숙한 세련미를 갖추게 되었다. 그녀는 예전보다 더 크게 웃고 더 예뻐 보였다.

[178] “당신은 자기 파괴적은 사람인가?”라는 질문은 “당신은 자신의 자아를 파괴하고 있는가?”라는 뜻이다. 그 말이 정말 우리에게 묻는 것은 “당신은 자신의 본성을 파괴하고 있는가?”이다.

<6주 창조적 풍성함을 되살린다>

[189] 일은 어디까지나 일어어야지 놀이가 되어서는 안 되며, 글쓰기나 연극, 춤처럼 자신이 진짜하고 싶어하는 것은 경솔한 짓이라고 여기고 저만치 치워놓아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진실이 아니다.

[191] 예술을 하고 싶으면 예술을 하면 된다.

[191] 신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면 할수록 신은 더 많은 것을 당신에게 준다.

[192] 우리는 모두 너무 자주 자신을 억제하면서 매사에 돈이 없기 때문이라고 변명한다. 그러나 돈이 없다는 것은 변명이 되지 않는다. 진짜 걸림돌은 움츠러든 우리의 기분이며 힘 없는 우리의 감각이다. 예술은 우리가 스스로 선택할 것을 요구한다. 그 가운데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자신을 돌보는 것이다.

[201] 좋은 사람들과 교제를 한다. 다섯 명의 친구들에게 엽서를 보낸다. 안부편지를 띄우라는 것이 아니다. 진짜 소식을 듣고 싶은 친구들에게 보낸다.

<7주 연대감을 되살린다>

[204] 예술은 새로운 무언가를 억지로 생각해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면에 있는 것을 자연스럽게 적는 것이다.
우리가 뭔가를 생각해내려고 노력한다는 것은, 자신의 손이 마치지 않는 곳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애쓰는 것과 같다. 저 위에, 저 멀리, 저 높은 곳에 있는 무엇인가를....... 하지만 내면에 이미 존재하는 것을 그냥 적을 때는 어떤 노력도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무엇인가가 그 일을 해주는 것이다.. 새로운 무엇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대신 자신의 내부에서 올려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만 하는 되는 것이다.

[205] 예술이란 창조성의 샘물에 주파수를 맞추고 그것을 따라가는 행위이다.

[207] 신은 위대한 아티스트라는 걸 잊지 말자. 아티스트는 다른 아티스트를 좋아한다. 우주가 당신의 꿈을 지지할 거라고 기대해보자. 우주는 반드시 그럴 것이다.

[208] “실수를 두려워하지 마라. 실수란 없다.”

[209] 폴 가드너는 이렇게 말했다. “그림에는 끝이 없다. 다만 재미있는 시점에서 멈추는 것이다.” 책을 쓰는 작업에도 끝이란 없다. 어떤 시점에서 매듭을 짓고 다음 작업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영화 역시 절대로 완벽하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어떤 시점에서 손을 놓고 다 됐다고 하는 것뿐이다. 손을 놓는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창조적 작업의 일상적인 일이다. 우리가 할 수 있고 또 볼 수 있는 관점에서 항상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210] 진지하게 음미해보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러나 살아보지 않은 삶을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창조성 회복은 생각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기는 능력에 달려있다. 이것은 우리를 위험과 정면으로 부딪히게 만든다. 그러나 대부분의 위험을 피하도록 자신을 다독거리는 데 익숙해 있다. 또한 자신을 드러내서 겪을 수 있는 고통이 무엇인지 대해 서도 아주 잘 알고 있다.
* 자기 한계와 위험

[210] 뭔가를 잘하기 위해서 처음에는 잘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려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한계를 성공이 확실하다고 생각되는 지점에 두고 싶어한다. 갑갑하고 절망적이고 지루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대신 우리는 안전함을 느낀다. 안전하다는 것은 매우 값비싼 대가를 치르는 환상이다.

[212] 할 만한 가치가 잇는 일이라면 잘못될 수도 있다는 점을 흔쾌히 받아들이자. 그러면 선택의 폭은 넓어진다.

[212] “그러니까 해! 네가 이기면 이기는 거고, 네가 져도 이기는 거야.”
위험을 감수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위험은 그것을 감수한다는 것만으로도 할 만한 가치가 있다. 자신의 한계를 확장시키는 데는 뭔가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위험이 바로 그 역할을 한다. 도전할 만한 일을 선택하고 그 일을 감행한다는 것은 자신감을 낳고, 그런 자신감은 보다 큰 도전을 위한 밑거름이 된다.

[214] “예술에 의무란 없다. 예술은 자유이기 때문에.” - 바실리 칸딘스키

[215] “용기 있는 사람은 위험을 감수할 수 있고, 동정할 수 있는 힘과 겸손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질 수 있다. 용기란 인격의 기초이다.” - 케시반 나이르

[215] 아무리 큰 변화도 그 시작은 작다. 녹색은 질투의 색깔이지만 희망의 색깔이기도 하다는 것을 기억하자. 질투의 뿌리를 캐고 그 에너지를 당신의 꿈을 실현시키는 방법으로 승화시킬 때, 질투는 푸른 미래를 위한 밑거름이 된다.

[217] “나 자신을 보물처럼 소중히 여기는 것이 나를 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8주 자기 강점을 회복한다>
[222] 아티스트가 해결해야 할 가장 어려운 과제 가운데 하나는 예술적인 생존이다. 그것은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희망과 체면을 잃는다든가, 금전적 손실을 입는다든가, 자신감을 상실하는 따위의 생생한 패배의 기법을 배워야 한다. 예술가의 길에는 많은 승리가 있기도 하지만 필연적으로 패배도 있다. 그것들은 거리에 널려 있는 표지판과 같다. 예술적인 패배는 예술적인 승리와 능력으로 바뀔 수 있다. 그러나 패배가 아티스트의 패쇄된 머릿속에 고립된다면 그럴 수 없다.
* 예술적인 생존에 이르는 길

[223] 슬픔으로 씻어내지 않은 상처는 미래의 꿈을 가로막는 장벽이 된다.

[227] 창조적인 아티스트의 삶에서 재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용기이다.

[228] 아이들은 위압적인 부모로부터 자율성을 획득해야 하듯이, 아티스트 역시 해로운 사람들로부터 벗어나 자율성을 획득해야만 한다.

[229] 창조적인 사람이 되기 위한 여정에 부상은 반드시 찾아오게 마련이다. 그것은 게임을 할 때면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부상을 극복하는 비결은 스스로 치유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운동선수가 쑤시는 근육을 내버려두면 부상이 악화되듯이, 패배의 고통을 붙어두는 사람 역시 침묵 속으로 자신을 몰아넣음으로써 스스로를 해치게 된다. 패배를 인정하는 것, 그것이 바로 상처를 치유하는 첫 단계이다.

[230] 끝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231] “공을 잡으려면 공을 잡기를 바라야 한다네.” 영화 감독인 존 카사베츠는 젊은 감독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그 말을 “상황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말고 네가 진정 원하는 것을 향해 손을 뻗으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232] “왜 이렇게 일이 잘 풀리지 않을까?”하고 한탄하는 대신에 “어떻게 하면 될까?”라는 질문을 했기 때문에, 나는 소박한 첫 영화를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만들 수 있었다. 어쩌면 그런 식으로 직접 문제를 풀지 않았어도 영화는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영영 못 만들 수도 있지 않았을까?

[234] “Non illegitimite carborundum(어떤 나쁜 자식이 당신을 좌절시키게 놔두지 말라”

[235] 질문 : 제가 피아노를 잘 칠 때쯤이면 몇 살이 되는지 알기나 하세요?
대답 : 물론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것을 배우지 않아도 그 나이를 먹는 것은 마찬가지죠.

[237] 아이들은 남을 의식하지 않는다. 일단 창조성의 물결에 휩싸이며 우리는 아이가 된다.

[238] 당신은 연기하는 법을 배울 수 없다. 언제나 더 배워야 할 부분이 잇기 때문이다. 당신은 영화를 완벽하게 감독할 수 없다. 완벽하게 하려면 몇 년이 지나도록 그 영화를 다시 만들고 있어야 할 것이다.

[240] 초보자가 되게 해달라는 것은 아티스트에겐 언제나 최고의 기도이다. 초보자는 겸손하고 열린 마음으로 모든 것을 탐구한다. 탐구는 성취로 이어진다. 모든 것은 작고 두려운 단계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241] 긴 시나리오라도 매일 조금씩 써나갈 수 있게 쪼개면 집안일을 하기전에 재빨리 쓸 수 있는 두어장 분량의 원고가 된다. 그 두어장의 원고를 쓰면 남은 하루를 원고를 쓰지 않았다는 죄책감이나 써야 한다는 불안감 없이 보낼 수 있다.
붓을 빨거나, 화방에 들러 찰흙을 사거나, 연기강좌에 어떤 것이 있는지 보기 위해 신문을 펼치는 것은 아주 소소한 일이다. 내 경험으로는 창조성을 위해 매일 할 수 있는 행동이 한가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했다. 매일 이런 행동을 하겠다는 자신과의 향곣아 다보 단계를 밟는 것이다.

[242] 문화센터의 인체소묘 과정에 등록하는 대신, 미술전문 잡지를 사보며 나는 안된다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당연한 것 아닌가! 그림은 아직 그리지도 않았으니까.

[245] “우리는 가야만 하는 곳에 감으로써 배운다.” - 시인 뢰트케
우리는 단계를 밟아나가면서 언제나 커다란 변화만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커다란 변화는 작은 변화들이 쌓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9주 동정심을 되살린다>

[254] 창조성을 회복하는 데 가장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는 어떤 것에 대해 제대로 된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255] 창조성이 막힌 사람들 중에는 부도의 기대에 반해서 아티스트가 되려했던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이런 상황에서 갈등을 겪는다. 그리고 부모의 가치관에 맞서서 떳떳하게 나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그들은 절대로 그저 그런 아티스트가 되어서는 안된다. 부모에게 상처를 주려면 위대한 아티스트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부모는 아이들이 반항하면 상처를 준다. 아티스트가 되겠다는 것을 부모는 사춘기의 반항쯤으로 생각한다. 불행하게도 아티스트의 삶을 사춘기의 반항이라고 여기는 생각은, 예술행위는 부모와는 단절과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만든다는 생각으로 연결된다. 그러므로 창조적인 목표를 갈망하는 아티스트들은 자신이 원하는 똑을 선택했더라도 가슴 한쪽에 죄책감이 남아있다.
이런 죄책감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반항을 정당화시킬 목표, 즉 반드시 위대한 아티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목표에 더욱 집착하게 된다. 위대한 아티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오히려 아티스트가 되기 어렵게 만든다.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결국 어떤 작품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이다.
어떤 일을 시작하지 못한다는 것이 그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그것은 단지 자신으로부터의, 당신에게 힘이 되는 사람으로부터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뜻일 뿐이다.

[257] 우리는 훈련을 받는 멋진 자신의 모습에 감탄하곤 한다. 여기에서는 창조성이 분출이 아니라 훈련 자체가 초점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최상의 것을 창조하는 일은 맹목적이고 기계적으로 훈련된 기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군인처럼 정확하게 새벽에 일어나서 책상과 이젤, 화판에 경례를 하고 작업에 매달린다고 창조성이 발휘될 수 있을까?
.... 우리의 아티스트는 아침의 고요 속에서 타자기를, 혹은 이젤을 만나기 위해 이른 새벽에 일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일은 훈련이라기 보다는 비밀스런 모험에 대한 어린아이의 동경과 같은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고달픈 훈련으로 보여도 그것은 어린 아티스트와 즐기는 재미있는 놀이이다. “아침 6시에 만나자. 만나서 시나리오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하면서 재미나게 놀자구.”

[258] 어린아이들은 크기만 하고 아무런 장식도 없는 썰렁한 방에서는 못 견디게 지루해한다. 우리의 아티스트들도 마찬가지이다.

[267] 일종의 계약을 한다. 계약의 내용 “좋아, 창조성아. 내가 질을 맡아, 내가 양을 맡을게.” 계약서에 서명하고 반드시 벽에 붙여둔다.

<10주 자기 보호감각을 회복한다>

[274]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거해보자. 그것을 포기할 생각만 해도 화가 나는 것은 무엇인가? 가장 격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 그것이 최대의 탈선을 가져오는 것이다.

[275] 우리는 보통 차단제를 우연히 선택한다. 그녀가 우연히 전화를 걸어왔다. 시장기를 느꼈는데 마침 아이스크림이 거기 있었다. 그가 우연히 마약을 갖고 잠깐 들렀다. 장애물에 몸을 맡기는 것은 언제나 그렇게 쉽게 시작된다. 그러나 그로 인한 악영향은 오래 가는 법이다.

[276] 창조성이 막혀 있는 사람은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으며, 자신이 불행한 사람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창조성이 막히지 않은 사람은 훨씬 많은 위협을 받겠지만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다.

[277] 창조성이 막힌 사람들에게 재미라는 것은 그들의 창조성만큼이나 끈질지게 피하고 싶은 어떤 것이다. 왜 그럴까? 이 재미가 곧바로 창조성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이 재미가 재부 반란을 일으키게 하고 자신의 힘을 느낄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재미가 몰고올 이런 결과가 두려운 것이다.

[281] 각자 최저선은 다르겠지만, 절대로 해서는 안 될 행동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구체적으로 언급해두어야 한다. 이렇게 특정한 행동을 언급해두면, 모호하고 일반적인 결심을 했을 때보다 더 직접적인 회복을 기대할 수 있다.

[281] 창조적 U턴에서처럼 일 중독에서 헤어나려면 친구들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려면 친구들에게 당신이 성취하고자 하는 바를 말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당신이 만약 자기 관리 과정에서 빗나가고 있다고 생각되면 언제라도 기억을 되달려달라고 요청해야 한다. 하지만 상대방도 못 말리는 일 중독자가 당신을 지나치게 휘두를 소지가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당신의 문제이므로 다른 누구도 당신을 강제로 회복시킬 수는 없다.

[283] 가뭄기간 동안 우리는 신과 싸운다. 우리는 위대한 창조주와 창조적인자아에 대한 믿음을 잃었다. 우리는 따질 말이 많고, 따질 거리는 어디에나 있다. 여기는 마음의 사막이다.

[284] 우리가 절망으로 쓰러지지 않았기 때문에 가뭄이 끝난 것이다. 가뭄이 과연 끝날지 의심하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가뭄에서 헤어나려고 애를 써왔기 때문에 마침내 끝난 것이다.
창조적인 삶에서 가뭄은 필수적이다. 사막에서 가뭄은 우리에게 청명함과 관용을 가르쳐준다. 가룸의 시기가 오면 그 안에 어떤 목적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가뭄의 시기가 오면 그안에 어떤 목적이 있다는 걸 깨닫고 계속해서 모닝 페이지를 써야 한다.

[284] 아티스트 모두에게 모닝 페이지는 황무지인 동시에 오솔길이다.

[286] 자신을 소중하게 다룰수록 더욱더 강해진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명성이라는 마약에 중독되었을 때는 자신을 아낌으로써 해독해야 한다.

[286] 명성이라는 마약의 치료제는 창조적인 노력뿐이다. 창조적인 사람이 될 때만이 그 강박증세에서 해방될 수 있다.

[287] “나는 오늘 내 역할에 충실했나? 마감시간을 지켜서 원고를 발송했나? 그렇지 못했다면 원고를 부치지 못했다고 연락이라도 해주었던가?”
이런 질문이 진짜 필요한 질문이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289] 예술에 반응한다는 것은 자신의 경험에 따라 예술의 울림에 응답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생소한 어떤 것을 찾아낸다고 해도 실제로 해로운 것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 대신 우리는 이미 있던 것을 새로운 조명 속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290] 독창성이란 결국 자신에게 변함없이 진실하게 대하는 과정이다.

[291] 예술이란 그것을 키워갈 시간이 필요하다. 알에서 깨어나 엎드려 있다가 어색하고 보기 흉한 모습을 거쳐 마침내 독립된 개체로 모습을 드러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듯이.

[291] 보란 듯이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그 문제에서 승리하는 길이다.

<11주 자율성을 되살린다>

[298] 아티스트로서의 진실성은 내 자신과 신, 그리고 내 작품 속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바꾸며 말하면 자신이 쓸 수 잇는 시가 있다면 그것이 팔리든 안 팔리든 간에 그 시를 써야만 한다는 것이다.우리는 창조되기를 바라는 것을 창조해야 한다.

[299] 이따금 나는 형편없는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고 연기를 할 것이다. 그 정반대에 도달하기 위해 나는 그렇게 할 권리가 있다. 창조성은 그 자체가 보상이다.

[300] 내 삶은 곧 예술이기 때문에, 삶이 무기력해지면 내 작품도 똑같이 무기력해진다.

[300] 아티스트로서 나는 좋은 싫든 글을 쓴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싫어할지도 모르는 영화를 찍는다. 세월이 지난 다음 “난 이 방에 있었지. 행복했었어. 5월이었는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어”라고 회상하기 위해서 엉터리 스케치를 하기도 한다.

[301] 아티스트로서 나는 부자가 될 필요까지는 없지만 충분히 지원받을 수는 있어야 한다. 나는 정서적ㆍ지적 생활이 침체되어 작품에서조차 그것이 드러나는 것이 용납할 수 없다. 침체는 내 생활에서 드러나고, 내 기질에서도 드러날 것이다. 만약 창조적인 생활을 차지 않는다면 나는 질투로 똘똘 뭉친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302] 아티스트가 된다는 것은 특별한 것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특이한 것을 감상할 줄 알게 되도, 일반적으로 인정된 규범에 대해 일종의 장난을 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또한 “왜?” 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아티스트가 된다는 것은 돈이나 재산, 특권 따위를 우습게 느끼도록 만드는 모험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아티스트가 된다는 것은 놀라운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좋아하기만 한다면 어울리지 않는 작품이라도 방 안에 들여놓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입어서 좋기만 하면 기묘한 옷일지라도 고집스럽게 입는 것이다. 또 그것은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려고 애쓰지 않는 것이다.

[303] 창조주는 우리를 창조적인 존재로 만들었다. 창조성은 신이 우리에 내려준 선물이다. 따라서 창조성을 잘 키우는 것은 곧 신에게 드리는 우리의 선물이다. 이 계약을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자기 수용의 시작이다.

[311] “마을 타는 동안 나의 이성은 잠이 듭니다. 나는 참가자로서 느끼기만을 할 뿐이다. 보리 이삭에서 나온 작은 솜털들이 떠다니는 푸른 들판을 달릴 때면, 어떤 느낌이 내 마음을 노래하게 하죠. 눈보라가 햇빛 속에서 빛날 때도 마음은 노래하게 됩니다. 이런 강렬한 느낌을 갖는 순간, 나는 내 인생이 다른 순간에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어떤 남자에게서 그런 노래하는 느낌을 느끼고 푸른 초원과 눈 덮인 들판에서 그것을 느꼈음을 발견했을 때, 내가 축복받았다고 느끼는 것 자체가 진정한 나의 능력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313] 우리가 가야할 곳으로 감으로써 배우는 것이다. 운동은 우리를 침체에서 영감으로, 문제에서 해결로, 자기 연민에서 자기존종으로 옮겨주는 하나의 과정이고 방법이다. 우리는 감으로써 배운다. 우리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강하다. 우리는 새로운 전망을 갖고 사물을 바라보는 것을 배운다. 우리는 내부에 있는 창조성의 문을 열고 영감의 소리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에 의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배운다.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것 같지만 우리는 수영을 하고 걷고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동안 그 해답을 얻는다. 이것은 운동의 열매 중 하나이다.

[314] 어린 아티스트는 영혼의 언어를 말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음악, 춤, 향수, 조개 껍데기 ......... 창조주에게 바치는 당신의 제단은 반드시 재미있고 심지어 유치하게 보이는 것들로 채워야 한다. 어린아이들이 얼마나 화려한 물건을 좋아하는지 생각해보자. 당신의 예술가는 작은 아이이다.

[315] 종이 한 장을 꺼내서 자신을 키워갈 일주일간의 계획을 세운다. 이것은 일주일 동안 날마다 한 가지씩 구체적이고 사랑스러운 행동을 한다는 뜻이다.

<12주 신념을 되살린다>

[318] 분노나 불안처럼 우울도 저항이며, 이것이 문제를 일으킨다. 우울은 “난 모르겠어.....”라는 나태와 혼란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으며, 자신이 알고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318] “나는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내 자신의 내적 인도를 믿는다”

[319] 가징 진실한 꿈은 바로 자신에 대한 신의 의지이다.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너의 복을 따르라. 그러면 전에는 없던 곳에서 문이 열리리라.”라고 말한 적이 있다.

[319] 창조성은 인가의 삶 자체가 그렇듯이 어둠 속에서 시작된다.

[320] 아이디어는 종유석이나 석순처럼 의식의 어두운 동굴 내부에서 형성된다. 그것들은 네모반듯한 벽돌이 아니라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알을 깨고 나오는 아이디어를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아이디어가 잘 자라고 있는지 보겠다며 뿌리째 잡아당기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322] 예술을 축제처럼 느끼고 유머의 대상으로 삼는 lf도 필요하다. “예술, 그 애는 내 누이가 가끔 데이트하던 친구야.”

[323] 우리는 노는 법을 배워야 한다. 창조성은 예술이라는 특별하고 협소한 매개변수에서 벗어나 훨씬 광범위한 놀이로 인식되어야 한다.

[327] 가벼운 아첨도 탈출을 단념시킬 수 있다. 얼마 안 되는 돈도 마찬가지이다. 보다 심각한 것은 그럴 듯하게 포장된 의심이다. 특히 자신과 가강 가깝거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속삭일 때는 더욱더 심각하다.
“네 자신을 위해서야. 그냥 네가 이것에 대해서 생각해봤는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야.”
창조성을 회복하고 있는 사람들은 열정이 달아오를 때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트집쟁이를 찾는다. 자신의 열정을 가장 회의적인 친구에게 누설해버리는 것이다. 우리가 그를 부르거나, 우리가 부르지 않으면 그가 우리를 부른다. 이것이 바로 시험이다.

[328] 탈출 속도를 성공적으로 조절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변호사를 두는 법을, 회의주의자들 사이를 조용히 움직이는 법을, 계획은 동지들끼리만 이야기하는 법을, 조심해서 동지를 가려내는 법을 알아야 한다.
..... 당신의 일에 찬물을 끼얹는 사람은 그가 누구든지 받아주거나 참아서는 안 된다. 선의란 없다. 그의 본의가 아니라는 것도 행각하지 말자. 당신이 받은 축복만을 기억하자. 찰출 속도에는 강철 같은 의지와 칼과 자기 결단의 방패가 필요하다.

<에필로그>

[333] 산정을 향해 빙빙 돌아가는 길이 나 있던 히말라야 산이다. 그 길은 나선형 길이었는데, 내가 생각하는 아티스트의 길이 바로 그런 길이다. 그 산을 올라간다면 우리는 똑같은 경치를 몇 번씩이나 감상하게 될 것이다. 물론 고도는 매번 약간씩 다르겠지만 말이다. “여긴 전에 왔었는데.” 우리는 한바탕의 갈증을 느끼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가 거기에 왔었던 것은 사실이다. 길은 결코 곧게 뻗어 있지 않다. 성장이란 온 길을 되돌아가며 재평가하고 재편성하는 나선형의 과정이다.

[335] 아티스트의 길이란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보상정신에서 산을 오르는 행위와 같은 것이 아닐까.

<부록>
[336] 창조성은 다양한 형태로 모든 사람들이 경험하는 자연스러운 생명력이다. 피가 우리 몸의 일부이며 우리가 발명해야 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창조성 역시 우리의 일부이다. 창조성은 우리 각자가 우주의 위대한 창조적 에너지 속으로 들어가는 문이며, 방대하고 힘찬 영적인 샘물로부터 우리 자신의 개인적인 창조력을 증폭시키기 위해 길어오는 샘물이다.

[337] Q: 즉각적으로 극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A : 극적인 변화는 12주 코스 아에서 일어나겠지만, 보다 더 극적인 변화는 예술가의 길이 인생의 연장이 될 때 일어날 것이다. 2년 내지 3년에 걸친 변화는 그야말로 기적처럼 느껴질 것이다.

[339] 모닝 페이지는 의식의 흐름이면서 평상의 속도로 써나가는 3페이지짜리 아침 글쓰기 연습이다. 특히 서구인들에게 모닝 페이지는 ‘기술’이 아니라 능동적인 명상의 한 형태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모닝페이지에서 우리는 세상과 자기 자신에게 우리가 좋아하는 것, 우리가 싫어하는 것, 우리가 소망하는 것, 우리가 희망하는 것, 우리가 후회하는 것, 우리가 계획하는 것을 선포하는 것이다.

[340] 지도는 영토가 아니다. 당신이 직접 경험하지 않는다면, 모닝 페이지와 아티스트 데이트가 당신에게 제공해주는 것을 끄집어낼 수 없을 것이다.

[341] 이 프로그램은 실험적인 것이며, 결과는 발견되어야 할 것인지 설명되어야 할 것은 아니다.

[341] 자기 회의는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통과해나가는 것이다. ‘진정한 예술가’들은 자기 회의를 경험하지 않는다고 믿기 쉽다. 사실 예술가들은 회의와 더불어 작업하는 법을 터득한 사람들이며, 회의하면서도 작업하는 사람들이다.

[341] 결과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당신의 배움의 한 과정으로서 ‘실수’를 소중히 여기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343] 예술가 대 예술가로서 그리고 가슴과 가슴으로 행하는 도움과 지원이야말로 이 책의 핵심이다.

[347] 당신은 위대한 창조주와의 관계에서 예술가 대 예술가가 되는 관계를 추구하고 있다. 권위자가 다가오지 못하도록 경계하라. 당신은 자기 내면에 대답을 가지고 있다.

[348] 예술은 지성이 아니라 영혼의 활동이다. 자신의 꿈이나 비전에 대해 얘기할 때 우리는 성역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보다 훨씬 더 큰 힘과 에너지와 연관되어 있다.

[349] 우리는 서로에게 꿈의 산파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영역에서 일할 수는 없지만, 예술의 탄생을 위해 필요한 일을 도와줄 수 있으며, 그들의 예술이 성숙하도록 돌보아줄 수는 있다.

[352-353] 아티스트의 기도
위대한 창조주여
당신의 이름으로 모인 우리는
당신에게 우리의 동료들에게보다 큰 봉사를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도구로 우리를 바칩니다.
당신의 창조성에 우리를 엽니다.
우리의 예전 생각들을 당신 앞에 바칩니다.
당신의 새롭고도 광대한 생각들을 환영합니다.
당신이 우리를 인도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당신을 따르는 것이 안전하다는 것을 믿습니다.
당신이 우리를 창조했고 창조성은 당신과 우리의 본성이라는 것을 압니다.
우리의 뜻에 의해서가 아니라 당신의 계획에 의해서
우리의 삶을 펼쳐줄 것을 당신께 요청합니다.
치료하기에는 아직 늦지 않았다는 것을
그렇게 작은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믿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서로를 사랑하고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서로를 키워갈 수 있도록
서로의 성장을 격려할 수 있도록
서로의 두려움을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우리가 외롭지 않으며
우리가 사랑받고 있으며 사랑받을 만한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당신에 대한 경배로서 우리가 창조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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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스
2008.03.03 23:23:51 *.125.205.55
"아티스트(창조자)는 재능이 필요한 게 아니라, 용기가 필요하다고 줄리아 케메론은 말한다."

용기를 내었습니다.

"답이 안 나오는 지금 큰 문제에 빠져 있지 말고 작은 행동 한 가지를 매일 매일 지속적으로 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운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할 겁니다." -줄리아 카메론

줄그은 부분이 너무도 가슴에 와 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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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3.05 01:20:40 *.70.72.121
열심히 읽고 쓰고 그리는 모습이 아름답구나. 열심히 돈까지 벌게 되면 너무 바쁘겠지만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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