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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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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8일 00시 29분 등록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고운기 글 / 양진 사진, 현암사(2002)

1. 저자에 대하여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이책의 저자는 누굴까?
분명 책 표지에는 고운기 글, 양진 사진 이라고 까맣게 빛나고 있다. 그런데 일연은 보이지 않았다. 일연은 책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고, 녹아든 일연을 고운기 작가가 부활시켰다. 여기에 양진의 사진을 더하니 금상첨화가 따로 없다.

고운기 1961년 전남 벌교 출생
죄송스럽게도 그의 이름석자를 알게된 것은 불과 3주 밖에 되지 않았다. 역사와 문학 특히 시와 멀어진지 오래다. 변경연 연구원이 되어보겠다는 마음이 없었다면 아마도 평생 모르고 지낼뻔한 분이다. 삼국유사에 대한 이야기를 쓴 것으로 봐서 역사학을 전공하셨거니 했다. 그러나 그는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석박사도 국문학으로 취득한 문인이었다.

그에 대해 궁금증이 더해간 것은 책을 한참 읽은 후였다. 일연을 중심으로 읽어나갔던 책읽기는 사실 재미가 덜했다. 옛날 이야기에 대한 내 편견이 책의 정수를 가렸다. 뭔가 잘못 집고 있다는 생각이 떠나질 안았다.

이책은 한자로 된 삼국유사가 아니다. 고운기 그가 그의 문학적 감성으로 그려낸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다. 2006년 6월 16일 국민일보에 실린 그의 인터뷰 기사를 보자.

연세대 국학연구원 고운기(45) 교수는 삼국유사 전문가로 불린다. 700년 전에 쓰인 역사책 한 권을 붙잡고 20년이 넘는 세월을 보내고 있다.

“세계화가 진행되면 될수록,한국이 커지면 커질수록 세계는 우리를 향해 ‘너희는 누구냐’는 질문을 더 자주 던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린 이런 사람이다’라고 얘기해줘야 하는데 우리가 누구인지를 아는 데 삼국유사만한 텍스트가 없습니다.”

그의 삼국유사에 대한 사랑이 듬북 담긴 인터뷰다.

그는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하면서 시인으로도 인정받았다. 한문은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많은 차이를 나타낸다고 한다. 그가 한문으로 된 삼국유사를 우리글로 옮겨놓은 것을 보면 일연이 환생한 것이 아닌가 할 정도다. 그의 한문학에 대한 탁월함은 신춘문예 당선 당신 심사평을 보면 그때부터 역사에 대한 남다른 시각과 깊이가 있었음이 잘 나타난다. 당시 심사평의 일부를 다시 들어보자.

심사평 / 김규동, 김우창
“고운기씨의 「밀물 드는 가을 저녁 무렵」을 당선작으로 하는 데 두 선자는 쉽게 합의할 수 있었다. 이 시는 독자가 공감할 만한 개인적 체험의 차원을 떠나지 않으면서 동시에 우리 시대의 갈등, 또 영원한 삶의 갈등을 읊고 있다. 한 시대의 비극 속에 놓인 시인의 정서를 단순하고 담담한 말들로 포착하였다. 평범한 진술인 듯 싶으면서도 어떤 중심을 향해 정신적 집중이 향해지고 있는 것이 매력적이다. 고운기씨가 이 시와 더불어 제출한 다른 시들도 그의 서정적이면서 또 서사적인 재능을 드러내주고 있다.”

그의 시를 읽으면서 일연의 찬과 통하는 느낌이 참 좋았다.


양진 1966년 대전 출생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의 멋들어짐은 그의 사진이 있어 더더욱 빛났다. 책은 읽기도 하지만 보기도 한다. 진정 보는 즐거움을 선사해 주었다. 책의 내용과 사진이 절묘하다. 그는 자칭 ‘알바작가’라고 한다. http://pygmalion.egloos.com/1284506 내용에서 발취한 내용을 조금 걸쳐놓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본다. 꼭 방문해 보라. 책에서 본 사진을 넘어서는 그의 사진 정말 짱이다.

[미디어다음/2006. 3. 17] 《삼국유사》를 쓴 일연스님 탄신800주년을 맞아 관련 도서들이 잇달아 발간되는 가운데, 15년 간 《삼국유사》 속 유적지를 꾸준히 사진으로 기록해온 이가 있어 눈길을 끈다. “나는 사진작가가 아니라 ‘알바작가’일 뿐”이라고 눙치는 양진 씨의 사진 편력기, 한번 들어보자.........

《삼국유사》라는 한 가지 주제로 15년 넘게 사진을 찍어왔지만, 양진 씨는 굳이 자신을 사진작가라고 내세우지 않는다. 대학에서도 금속공학을 전공했다니 현재 직업이나 전공만 본다면 그런 호칭이 낯설기는 하다. “그럼 사진애호가라고 불러야 되나요?” 하고 물으니, 잠깐 생각하다가 “남들에겐 ‘알바작가’라고 그래요” 하고 씩 웃으며 답한다. 전업작가의 반대말, 오늘 새로 배웠다.

일연(一然 : 1206~1289)
지면 관계상 일연에 대한 소개는 생략하도록 하겠다. 이는 책의 저자에 일연이 들어있지 않았고, 책 속에 일연 스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자에 대한 소개가 한페이지 반을 넘기고 있는 부담 때문이기도 하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머리말
혁명의 나그네가 되어 떠돌던 손문(孫文)이 광동성 궁벽진 어느 후원자의 집에서 며칠을 묵었다. 빈손의 그는 사례 대신 글 한 폭을 남기고 떠났다.
安危他日終須仗
甘苦來時要共嘗
편안함이나 위험이 어떤 날에는 서로 기대는 친구가 되고
즐거움이나 고통이 닥치거든 두루 맛보아야 하는 것

이땅의 첫 나라

사실을 그대로 써서 저촉되는 것을 상징으로 포장해 놓으면 규범이 만든 규제의 그물망을 빗어난다. 13세기의 일연 같은 이는 그 점을 간파했던 사람이다. 12p

예날 환인(桓因)의 서자 환웅(桓雄)은 하늘 아래 사람이 사는 세상을 찾아가 보고 싶었다. 아버지가 자식의 뜻을 알고, 아래로 세 봉우리가 솟은 태백산을 굽어보니, 널리 사람 사는 세상을 이롭게 할 만하였다. 15p

'널리 사람 사는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 곧 홍익인간(弘益人間)이다. 그러므로 홍익인간은 단군이 나라를 세우기 전 곧 그의 아버지 환웅과 할아버지 환인의 생각을 보여 주는 말이다. 16p

곰 아가씨는 누구와 혼인할 상대가 없었다. 잉태하고 싶어 늘 신단수 아래에서 빌었다. 이에 환웅이 사람의 몸으로 나타나 혼인하고 잉태하여 아들을 않으니, 단군이라 불렀다. 16p

건국이냐 창세냐 구분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네 관념의 소산이고, 그것은 특히 서양식 사고방식 아래서 그렇다. 21p

『삼국사기』와 그 시대에 수놓아졌던 중국 중심의 사대주의는 힘을 잃는 대신, 거기에 희미하게나마 민족의 주체성 같은 것이 자리한다. 매우 의미심장한 변화다. 『삼국유사』는 그 변화의 끄트머리에 자리 잡는다. 24p

중국의 자존심을 하루아침에 땅바닥에 떨어뜨린 몽고의 원(元) 건국, 남의 불행한 일에 잘됐다고 박수칠 일은 아니지만, 한편 변방의 나라들로서는 숨통이 트일 일도 되었다. 24p

우리가 『삼국유사』의 첫 부분을 대할 때 유의할 점이 여기에 있다. 일연이 ‘고조선’조와 ‘위만조선’조를 나란히 두고, 이 땅의 첫 나라인 조선에 관한 대부분을 갈무리했다는 것이다.
사실 『삼국유사』에서 단군 신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지만, 실은 일연이 단군 한 사람에 그치지 않고, 조선이라는 나라의 처음과 끝을 설명하고자 한 데 더 힘을 기울였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기에 중국 쪽 역사서에서 조선에 관한 기사를 모두 찾아보고, 그것을 일연 나름대로 정리해 크게 두 개의 제목을 써서 정리한 것인데, 일관성과 근거가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성공적이다. 오늘날 우리가 ‘고조선’조와 ‘위만조선’조를 나란히 두고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34p

고구려와 북방계

금와는 이를 기이하게 여겨 방안에 깊이 가두었다. 그런데 햇빛을 비추자 몸을 움직여 피하게 했으나, 해 그림자가 또 좇아와 비추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잉태하여 알 하나를 낳았거니와 크기가 다섯 되쯤 되었다. 왕은 알을 버려 개와 돼지에게 주었는데 다들 먹지 않았고, 또 길거리에 버렸는데 소나 말이 피해 갔으며, 들판에 버렸더니 새와 짐승들이 덮어 주었다.
왕이 쪼개보려 했으나 깰 수도 없어 결국 어미에게 돌려 주었다. 어니가 물건으로 싸서 따뜻한 데 두었더니, 아이 하나가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이 었다. 골격과 겉모습이 헌걸차고 우뚝했다. 나이 겨우 일곱 살에 헌칠하여 비상했고, 활과 화살을 만들어 쏘는데, 백이며 백 명중 이었다. 세간에서 활 잘 쏘는 사람을 ‘주몽’ 이라 하였으므로, 이를 가지고 이름을 지었다. 39p

난생 신화(卵生神話)의 핵심은 결국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이라라. 43p

주몽의 이 같은 고난과 극복은 소설의 이론에서 말하는 ‘영웅의 일생’에 부합한다. 영웅은 특이한 재주를 지니고 태어난다. 그러나 성장 과정에서 주변으로부터 많은 공격을 받아 고난을 겪는다. 영웅은 그가 타고난 능력으로 이 같은 고난을 극복하고 이상을 실현해 낸다. 45p

신라와 남방계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것은 곧 오리지널의 출발을 의미할 것이다. 이제 남쪽에도 하늘에서 내려온 이들이 있음을 말하는 일연의 의도란 곧 북쪽과 계통을 달리하는 오리지널이 있음을 강조하자는 데 있지 않을까? 56p

탈해왕을 둘러싼 갈등

“내가 술법으로 다투는 마당에 매가 되자 독수리가 되었고, 참새가 되자 새매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내가 목숨을 보전한 것은 죽이기를 싫어하는 성인의 어진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왕과 더불어 왕위를 다투는 것은 참으로 어렵겠습니다.” 81p

연오랑 세오녀, 첫 설화의 주인공

“내가 이 나라에 이른 것은 하늘이 시켜서 된 일이다. 지금 어찌 돌아가겠는가? 그러나 왕비가 짠 가는 비단이 있으니, 이것을 가지고 하늘에 제사지낸다면 될 것이다.” 93p

정령을 잃은 사람은 눈 뜬 소경과 같다. 사회도 그렇다. 일연이 강조한 것은 거기에 있지 않았을까? 100p


신라는 왜 일본과 앙숙일까

박제상 사건으로 터진 감정의 폭발
가까운 사이라고 함부로 대하다 보면 틀어지기 마련이다. 왜의 잦은 침략을 받는 신라로서는 더 이상 그들을 가까이 하기 힘든 조재로 굳혀 갔으리라 보인다. 109p

"저는 임금이 근심하면 신하는 욕을 보고, 임금이 욕을 보면 신하는 죽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만약 쉽고 어려움을 따진 다음에 행한다면 충성을 다한다 하지 못할 것이요, 죽고 사는 것을 가린 다음에 움직인다면 용맹스럽지 못하다 할 것입니다. 저는 비록 불초한 몸이오나 명력을 받들면 행하겠습니다.“ 112p

"차라리 신라 땅 개돼지가 될지언정 왜나라의 신하가 되지는 않을 것이오. 차라리 신라 땅에서 갖은 매를 맞을지언정 왜나라의 벼슬은 받지 않겠노라.“ 115p

밤에 찾아오는 손님

엤날 광주(光州) 북촌에 한 부자가 살고 있었다. 그에게 딸 하나가 있었는데, 자태와 얼굴이 단정했다. 하루는 딸이 아버지에게 말했다.
“자줏빛 옷을 입은 사내가 잠잘에 들어 정을 통하곤 한답니다.”
“그러면 네가 긴 실을 바늘에 꿰어, 그의 옷에다 꽂아 두어라.”
딸이 그 말대로 했다.
다음날 북쪽 담장아래에서 그 실을 찾았다. 바늘은 커다란 지렁이의 허리에 꽂혀 있었다. 뒤에 임신을 하고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나이 열다섯 살에 스스로 견훤이라 불렀다. 135p

신라가 통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씀은 옛 유대 성인의 입을 통해 나왔지만,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그것은 진리다. 최소한 한반도에서 신라는 그 말씀이 진리임을 입증한 나라였다. 140p

"저희들은 꽉 막혀서 아는 바가 없습니다. 한 말씀 주셔서 죽기까지 계를 삼기를 바랍니다.“
“불교에는 보살계가 있고 따로 열 가지가 있다. 자네들은 남의 신하가 된 몸으로 감당할 수 없을 듯 싶다. 그래서 세속오계를 주노라. 첫째, 임금을 섬기되 충성으로 할 것이요. 둘째, 부모를 섬기되 효성스럽게 할 것이요. 셋째, 친구와 사귀되 믿음으로 할 것이요. 넷째, 싸움에 나가서는 물럿는 일이 없을 것이요. 다섯째, 산 것을 죽이되 가려 해야 할 것이다. 자네들은 이를 행하고 소홀히 하지 말라.” 151p

"나라의 흥망은 하늘에 달린 것이오. 만약 하늘이 고구려를 버리지 않는 다면 내가 어찌 감히 넘보겠소.“
이 말은 이내 고구려 쪽에 전해졌다. 고구려는 이 말에 감동하여 신라와 좋은 관계를 맺게 되고, 백제는 이를 원망하였다. 백제의 침공에는 이런 까닭이 있었던 것이다. 156p

문희, 그 아름다운 여자의 이름

문희라는 이름을 다시 본 것이 『삼국유사』에서다. 김유신의 동생이요 김춘추의 부인이 문희다. 삼국 통일 과정에서 역사의 문면에 드러나지 않지만, 아마도 이 삼각의 한 축을 감당해야 했던 여자의 표정 또한 「미워도 다시 한 번」의 문희와 그다지 멀어 보이지 않는다. 159p

만파식적 만만파파식적

문무왕 법민은 김춘추와 문희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다. 앞서 잠시 그런 분위기를 내비췄으나, 문희 이전에 춘추에게 자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가야국 출신의 어머니에게 뿌리를 두고 태어난 아들이 왕위에 오르기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법민은 줄곧 당나라에 머물며 외교적인 업무에 종사하는데, 이는 국내에서 당할 정치적 견제를 피하고, 당나라 조정과의 친분을 쌓아 왕으로 등극하는 데 도움을 받고자하는, 김춘추나 김유신의 뜻t도 들어 있지 않았을까 한다. 178p

문무왕은 한시도 편할 날이 없었다. 『삼국사기』에 실려 있는, 왕이 죽을 때 남긴 조서에는 “풍상을 무릅쓰다 보니 마침내 고질병이 생겼으며, 정무에 애쓰다 보니 더욱 깊은 병에 걸리고 말았다”고 적고 있는데, 이는 결코 과장이나 빈말이 아니리라 본다. 184p

옛날 만사를 아우르던 영웅도 끝내는 한 무더기 흙더미가 되고 말아, 꼴베고 소 먹이는 아이들이 그 위에서 노래하고, 여우와 토끼가 그 옆에서 굴을 팔 것이니, 분묘를 치장하는 것은 한갓 재물만 허비하고 역사서에 비상만 남길 것이요, 공연히 인력을 수고롭게 하면서도 죽은 혼령을 구제하지 못하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하면 마음이 쓰리고 아픈 것을 금치 못하겠으되, 이와 같은 것은 내가 즐겨하는 바가 아니다. 184p

"짐은 죽은 뒤에 나라를 지키는 큰 용이 되겠소. 그래서 불법을 높이 받들고 나라를 지키겠소.“
“용은 짐승인데 어찌 하시렵니까?”
“나는 세상의 영화를 싫어한 지 오래 되었소. 만약 악한 업보 때문에 짐승으로 태어나더라도 짐이 평소에 가진 생각과 맞는다오.” 185p

문무왕이 왜병을 무찌르고자 이 절을 짓기 시작하였는데, 다 마치치 못하고 돌아가셔서 바다용이 되었다. 그 아들 신문왕이 개요 2년(682년)에 일을 마치고, 금당의 아래를 밀어 동쪽으로 구멍 하나를 뚫었거니와, 이는 용이 절에 들어와 돌아다니게 마련한 것이다. 유언대로 뼈를 묻은 곳에 대왕암이라 이름하고, 절은 감은사라 하였다. 뒤에 용이 나타난 모습을 본 곳을 이견대(利見臺)라 이름하였다. 186p

"이 산이 대나무와 함께 쪼개지기도 하고 오므라지기고 하니, 어쩐 일입니까?“
“비유컨대 손바닥 하나로는 소리가나지 않고, 두 손바닥으로 치면 소리가 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대나무라는 물건도 오므라진 다음에야 소리가 나지요. 훌륭한 임금이이 소리를 가지고 천하를 다스리게 될 상서로운 징조입니다. 왕께서 이 대나무를 가져다가 피리를 만들어 불면 세상이 화평해질 것입니다. 지금 돌아가신 왕은 바다 가운데 큰 용이 되어 있고, 유신은 다시 천신(天神)이 되어서, 두 분 성인이 한 마음으로 이런 값으로 칠 수 없는 큰 보물을 내어놓고, 날더러 바치라고 하였습니다.” 189p

권력의 끝

토사구팽(兎死狗烹) 그 비정한 원칙
얼마 전, 우리 나라의 정치인들 사이에서 ‘토사구팽’ 이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교토사주구팽(狡免死走狗烹)’ 곧 토끼를 잡고 나면 사냥개를 요리해 먹는다는 말에서 유래한, 권력의 비정한 뒤통수치기를 나타내는 이 말은 이미 비유도 아니다. 권력을 잡은 자의 마무리 과정에서 밀려날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은 모두 이 한마디에 쓸쓸한 제 인생을 깊은 한숨과 함께 무상한 세월로 돌려보냈다.
그것이 어찌 어제오늘의 일이겠는가? 이미 사마천의 시대부터 변함없이, 비정의 극치를 달리는 원칙이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거기서 예외가 될 사람 또한 없다. 최소한 그 권력을 좋아하고, 함께 쫓아다닌 사람이라면 어느 순간 사냥개 신세로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 196p

와이 이를 듣고 두려워하며, 대신 김경신(金敬信)을 보내 김유신의 능 앞에 가서 사과하고, 그를 위해 공덕보전(功德寶田) 39결로 취선사(鷲仙寺)에서 명복을 비는 데 쓰도록 했다. 이 절은 곧 김유신이 평양을 토벌한 다음 복을 빌기 위해 세운 연고가 있다. 203p

효소왕대의 죽지랑
김유신가의 몰락은 100여 년의 시차를 두고 서서히 진행되지만 토사구팽의 비정함은 여기저기서 목격된다. 전쟁이 끝나 시대가 안정되자 사람들의 관심은 자연히 다른 데로 흘러갔다. 그 가운데 가장 걸리는 존재가 전쟁 영웅들이었다. 그들은 전쟁 때에 절대적이면서 평화가 돌아오면 껄끄럽기만 하다. 토사구팽의 칼은 바로 그들을 겨누고 있었다. 204p

화랑은 바로 전쟁 영웅 그들이다. 앞서 살펴본 대로 ‘신라 통일의 8할’은 화랑이 차지해 마땅하다. 그런 그들이 예인이며 남창이라니?
믿지 못할 일이지만 통일 이후 화랑 출신들이 걸어갔던 쇠락의 길을 하나하나 찾아보면 한편 수긍이 가기도 한다. 화랑 가운데 우두머리는 실권을 잃은 종이 호랑이로, 무리들은 주인을 잃은 처량한 신세로 이리저리 내쳐졌다. 철저한 토사구팽이다. 205p

득오의 「모죽지랑가」
가 버린 봄을 그리워하자니
모든 것이 울어야 할 슬픔
아름답게 빛나시던
그 모습 갈수록 스러져 가도다.
눈 돌릴 사이
만나보기 어찌 이루랴
님 그리는 마음이 가는 길
다북쑥 구렁에서 잘 밤 있으리. 213p

수로부인, 미시족의 원조

자주빛 바위 가에
잡은 손 암소를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
꽃을 꺽어 바치오리라 226p

"예 사람의 말에, ‘뭇입은 쇠라도 녹인다’라고 했습니다. 지금 저 바다의 방자한 놈이라도 어찌 뭇사람의 입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마땅히 이 마을 사람들을 모아다가 노래를 지어 부리면서, 지팡이로 해안을 두드리면, 부인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공이 그대로 따랐더니, 용이 부인을 받들고 바다에서 나와 바쳤다. 228p

「해가(海歌)」
거북아 거북아 수로부인을 내놓아라
남의 부인 앗아간 그 죄 얼마나 큰가
네 만일 거슬러 내놓지 않는다면
그물을 쳐서 끌어내 구워서 먹을 테다 228p

첫 성전환증 환자

「도솔가」
오늘 여기서 산화가를 불러
솟아나게 한 꽃아, 너는
곧은 마음이 시키는 대로
미륵좌주 모셔 서 있어라 238p

월명사의 「제망매가(祭亡妹歌)」
이 노래는 서정 시가로서 신라 향가 최고의 명편이다. 월명사는 죽은 누이를 위해 재를 올리면서 이 시를 썼지만, 일견 평범해 보이는 표현의 내면에 속 깊은 울림이 있다. 구태여 요란을 떨지 않는 것이 진정선에 가까운 법이다.

생사의 갈림길
여기 있으니 두려웁고
“나는 갑니다” 말도
못하고서 갔는가
어느 이른 가을 바람 끝에
여기 저기 떨어지는 잎처럼
한 가지에 나고
가는 곳은 모르겠네
아, 미타찰 세상에 만날 나는
도 닦아 기다리리 241p

배경 설화인즉, 재를 마친 자리에 바람이 불어와 이 시를 적은 종이가 날아 갔다고 한다. 서쪽 방향이다. 서쪽이라면 당연히 불국토의 세계 곧 서방정포를 뜻할 것이다. 이 대목에서 일연은 “향가가 종종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켰다”는 기록을 일부러 적어 넣고 있다.

충담사 「안민가」
임금은 아버지요
신하는 다사로운 어머니
백성은 어린 아이라고
하실진대, 백성이 다사로움을 알도다

구물구물 살아가는 물생(物生)
이들을 먹이고 다스리라
이 땅을 버리고 어디로 가리
하실진대, 이 나라 보전될 것을 알도다

아,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한다면
나라는 태평하리니 246p

구물거리며 살아가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그 삶이 보잘것 없는 백성이로되, 다스리는 자의 따사로움을 알고 빋고 따른다면 그들이 어디로 가겠는가? 또한 백성이 없으면 나라의 근본이 흔들린다.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이것 이외에 무엇이 더 필요할까?

왕이 되는 자

뱀을 이불 삼아 자야했던 사람, 시중드는 내시들뿐만 아니라 부인조차 모르게 감추어야 했던 긴 귀를 가진 사람 - 그것은 곧 자신의 고민을 오직 스스로 혼자 지고 가야하는 고독한 이의 슬픈 초상이다. 267p

나라가 망하는 징조

달도 차면 기운다
한 집안이 그렇고 사회가 그렇듯이, 나라도 흥하고 망하는 데 절대적 시간이 정해져 있지는 앟을지언정, 한번 일어나면 한번 사그라지는 불꽃처럼 대체로 흥망성쇠를 유전하기 마련이다. 과학적 증명이나 운수소관을 따지기가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269p

「기이」, ‘태종 춘추공(太宗春秋公)’조

귀신 하나가 궁중에 들어와 크게 외쳤다.
“백제는 망한다. 백제는 망한다.”
그리고 곧 땅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왕이 괴이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땅을 파보게 했더니, 깊이가 세 자쯤 되는 곳에서 거북이 한 마리가 나왔는데, ‘백제는 둥근 달이요, 신라는 새로 돋는 달’ 이라는 글귀가 새겨 있었다. 무당에게 물었다.
“둥근 달은 가득 찬 것입니다. 찼으니 이지러지지요. 새로 돋는 달이라는 것은 차지 않은 것입니다. 차지 않았으니 점점 차 오르지요.”
왕은 화가 나 그를 죽였다. 어떤 이가 말했다.
“둥근 달은 번성한 것이요 새로 돋는 달은 미미합니다. 아마도 우리 나라는 번성하고, 신라는 매우 미미하다는 뜻이겠지요.”
왕은 기뻐하였다. 269p

무릇 세치 혀를 함부로 놀려 죽음을 스스로 불러들인 이가 여기 무당 하나뿐일까? 딴에는 정직하고자 애쓴 보람 없이 비명횡사(非命橫死)하고 말았지만, 어련히 그렇게 진행될 일에 토를 단 것도 부질없어 보인다. 무엇이 올바른지 판단하지 못하는 자에게 옳은 충고란 쇠귀에 경 읽기도 아니다. 270p

인재들이 죽어가는 나라에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277p

처용가
서울의 밝은 달밤
밤늦도록 노닐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구나
둘은 내 것인데
둘은 누구인가
본디 내 것이었던 것을
빼앗아 감을 어찌하리 280p

처용의 노래와 춤은 그 같은 비극 앞에서 체념한 것일까, 에둘러 꾸짖은 것일까? 일연은 역사적 사실로서 광란스런 왕들의 혈전을 쓰는 것보다, 민간에 전해지는 이야기 한 토막으로 더 실감나게 당시 모슴을 전해 준다. 그것이 『삼국유사』다. 284p

지는 해 뜨는 해

역사에는 가정(假定)이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무엇보다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고, 적재적소에 등용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있는 인재마저 죽이는 상황이 반복될 때, 거기서 우리는 한 나라의 멸망을 명확하게 예언할 수 있을 뿐이다. 288p

이야기의 끝은 늘 풍성한 법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품속의 꽃가지를 꺼내 아내로 맞는 마지막 줄은 기막하게 아름답다. 끝없이 이어지는 비극의 낱낱을 쓰기에 지쳤을 즈음에, 그 자신에게나 읽는 이에게나 한 가닥 희망 곧 새 나라 탄생의 빛을 실어 주려는 일연의 붓 끝이 보이는 듯하다. 294p



불교로 보는 역사

금교에 눈 덮여 아니 녹으니
계림의 봄빛은 아직도 먼데
영리한 봄의 신(神) 재주도 많아
모례네 집 매화꽃에 먼저 피었네. 398p

순교의 흰 꽃 이차돈

“살을 베어 저울로 달아서라도 새 한 마리를 살릴 것이요. 피를 뿌려 목숨을 재촉할지라도 일곱 마리 짐승을 불쌍히 여길 것이다. 내 뜻이 남을 이롭게 하는 데 있는데, 어찌 죄없는 이를 죽이리요. 네가 비록 공덕을 쌓고자 하나 내가 죄를 피하는 게 낮지.” 405p

의에 죽고 삶을 버림도 놀라운 일이거니
하늘의 꽃과 흰 젖이여, 놀란 가슴을 치는구나
어느덧 한 칼에 몸은 사라진 뒤
절마다 쇠북소리는 서울을 흔든다. 411p

신라의 중심 세계의 중심, 황룡사

하루해를 온전히 받아 모신 신라의 돌에 등을 기대었을 때, 그 돌이 소곤거리는 말을 저는 잊지 못할 겁니다. 너의 등을 덮여 주려고, 너의 영혼을 위로해 주려고 천 년을 기다렸단다. 417p

구층탑에 찬한 시
이에 올라 보라, 어찌 구한(九韓)만의 항복을 보겠는가
비로소 천지가 특별히 평화로움을 깨닫겠네
라고 노래한다. 싸움이 싸움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천지가 평화로 위지는 꿈, 그것은 일연이 구층탑을 보며 꾼 것이다. 435p

나는 들었네 황룡사 탑이 불타던 날
번지는 불길 속에서 한 쪽은 무간지옥을 보여 주더라고

문수 신앙의 근거지, 오대산

성인이 성인인 줄 알고 만난다면 오죽 좋으련만, 우리는 본질을 두고도 늘 외곽만 맴돌며, 손에 잡은 진리를 진리인 줄 모르고 버리는 경우 또한 허다하다. 나는 그것을 ‘우연히 스치는 듯한 만남’이라고 말한다. 444p

작은 절들에 서린 삶의 애환

“마음이 찾아갈 정처(定處)가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우리는 질투와 미움의 화신(化身), 누구도 한 마음으로 즐겁고 깨끗하게만 살 수 없다. 치밀어 오르는 질투와 걷잡지 못할 미움, 그것이 기실 누구에 의한 것이 아니고 나에게서 생긴 문제일진대, 미움도 질투도 피가 끓는 젊음이라 변명하는 동안 영혼 깊은 데에서는 상처만 커간다. 그래, 찢어진 마음이 찾아가 덧없음을 깨닫고 아름답게 치료받을 곳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458p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기름진 밭에 풍년이 들어 무척 남는다 해도, 옷과 밥이 생각하는 대로 저절로 배부르고 따스함만 같지 못할 것이요. 부인과 집이 진정 좋다 하나, 연꽃 핀 연못가와 꽃밭에서 천성(千聖)들과 함께 놀며 앵무새며 공작과 어울려 함께 즐김만 같지 못할 것이네. 하물며 부처님을 배우면 마땅히 부처가 되어야 하고, 진리를 닦으면 반드시 진리를 찾아야지. 지금 우리들은 미리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었으니, 세상에 묶인 끈을 벗어 버리고 다할 수 없는 도를 이루어야 하네. 먼지 날리는 세상에 코를 박고서야 어찌 세상의 무리들과 다름이 있겠는가?” 475p

가다 보니 해는 떨어지고 온 산이 저물어
길은 끊어지고 마을은 멀어 사방이 막혔다오
오늘 밤 몸을 맡겨 암자 아래 자려 하니
자비로운 스님께선 화내지 마세요 477p

날 저문 산길에
가는 곳마다 사방이 막혀 있네
소나무 대나무 숲은 그늘이 짙어 가고
골짜기 시냇물 소리는 낯설기만 한데
자고 가기를 바라는 것은 길을 잃어서만 아니요
스님께 계율을 일러 주려 함이네
내 청을 들어만 주실 뿐 어떤 사람인가는 묻지 마오 478p

일연의 찬
푸른 빛 떨어지는 바위 앞, 문 두드리는 소리
날 저문데 누가 구름 속 빗장 문을 당기는가
남쪽 암자 가까운데 그리로 갈 것이지
푸른 이끼 밟고서 내 뜰을 더렵히지 마오. 484p

골짜기 날은 이미 어두웠는데 어디로 가리
남창에 자리 나니 머물다 가오
밤 깊어 백팔 염주 염불도 깊어만 가는데
이 소리 시끄러워 길손의 잠 깰까 두려워라. 485p

낙산사의 힘

수고로운 인생, 일순간의 꿈
세상살이의 헛됨을 비유하는 말이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한단지몽(邯鄲之夢), 중국의 한단이라는 동네에서 나온 이야기다. 밥이 끊는 솥단지 앞에서 따듯한 불을 쬐다 잠깐 잠이 든 사이, 온갖 영화와 패배를 맛보는 꿈을 꾸고 깨어보니 밥이 되어 있었다는데, 한 세상사는 온갖 영고성쇠(榮枯盛衰)가 한솥밥 끊는 사이에 불과하더라는 이 절묘한 비유. 504p

고운 얼굴 아름다운 미소도 풀 위의 이슬이요. 지란(芝蘭) 같은 약속도 바람에 날리는 버드나무 꼴입니다. 당신은 내가 있어 걸림돌이 되고 나는 당신 때문에 근심만 쌓일 뿐, 지난날의 기쁨은 적이 근심과 고통으로 자리를 내주었군요. 당신이나 나나 어찌 이다지 극심한 지경에 이르렀단 말입니까? 뭇 새가 함께 주리기보다 차라리 외짝 난새가 마주볼 거울을 가지는 게 났겠지요.
별 볼일 없으면 버리고 됐다 싶으면 들러붙은 것이 사람 마음으로 감당 못할 일, 그러나 가고 말고 사람의 뜻대로 안 될 일이요. 헤어짐과 만남 또한 운수가 있으니. 청컨대 이쯤에서 헤어지자 합니다. 507p

인각사 앞 일연의 시비
좋은 시간 금세, 마음은 어느새 시들고
그심을 슬며시 늙은 얼굴에 가득
이제 다시 메조 밥 짓다 깨닫던 이야기 들추지 않아도
수고로운 인생 일순간 꿈인 걸 알겠네. 508p

운문사 이야기

운문은 구름의 문, 아마도 운수(雲水)의 숙명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잠시 머무는 곳인가, 참으로 아름다운 이름이다. 527

원효, 해동 불교의 자랑

무엇에도 얽매지 않은 사람, 원효
세상에는 너무 커서 들리지 않는 것과 너무 커서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지구는 자전을 하면서 소리를 낸다고 하는데, 그 소리가 너무 커서 우리 귀에 들리지 않을 뿐이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원효는 너무 커서 보이지 않는 인물이다. 530p

하루는 스님이 거리에서 소리질러 노래불렀다.

누가 자루 빠진 도끼를 주려나
내가 하늘 괴는 기둥을 자를 터인데

“이것은 스님이 아마도 귀부인을 얻어 현명한 아들을 낳겠다는 말일 게야. 나라에 큰 현인이 있으면 이보다 더 큰 이익이 있을라구.”
때마침 요석궁에는 과부로 지내는 공주가 있었다. 임금은 궁궐 관리에게 원효를 찾아 데려오라 명하였다.
궁궐의 관리가 원효를 찾아 나섰다. 이미 원효는 남산에서 내려오다 문천교를 지나는데, 관리를 만나자 거짓으로 물 속에 떨어졌다. 위아래 옷이 몽땅 젖었다. 관리는 스님을 궁으로 데려가 옷을 갈아 입히고 빨아 말리게 하였는데, 그러자니 자고 가게 되었고, 이어 공주는 태기가 있었으며, 설총(薛聰)을 낳게 되었다. 535p

화엄경에 “모든 것에 거침없는 사람은 한 가지 길(道)로 나고 죽는다.”는 대목을 가지고 무애(無碍)라 이름짓고, 노래를 지어 세상에 유행시겼다. 일찍이 이것을 지니고 모든 마을 모든 부락을 돌며 노래하고 춤추면서 다녔는데, 노래로 불교에 귀의하게 하기를, 뽕나무 농사짓는 늙은이며 독 짓는 옹기장이에다 원숭이 무리들까지 모두 부처님의 이름을 알고 나무아미타불을 외우게 되었으니, 원효의 교화가 크다. 537p

어느 날 그 어머니가 죽었다. 그 때 원효는 고선사(高仙寺)에서 지내고 있었다. 원효가 그를 보고 예를 갖춰 맞았다. 사복은 답례도 하지 않고 말하였다.
“그대와 내가 옛날에 경전을 싣고 다니던 암소가 이제 죽었소. 함께 장례를 치르는 것이 어떤가요?”
“좋다”
그래서 함께 집에 이르렀다. 원효더러 보살수계를 해달라 했다. 시신 앞에서 축원하였다.

태어나지 말 것을, 죽음이 괴롭구나.
죽지 말 것을, 태어남이 괴롭구나.

사복이 “글이 번거롭군요”하더니, 고쳐서 말했다. “죽고 남이 괴롭구나.” 541p

그 태어난 마을의 이름이 ‘불지(佛地)’이고, 절의 이름이 ‘초개(初開)’이며, 스스로 ‘원효’라 부른 것이 모두 부처님의 날을 처음 떨쳤다는 뜻이다. 원효 또한 이 지역 말이다. 그 때 사람들이 모두 방언으로 그를 ‘첫 새벽’이라 불렀다. 545p

일연의 시
각승을 지어 처음 삼매의 요점을 열었고
뒤옹박 들고 춤추니 온 거리에 유행하였다네
달 밝은 요석궁 봄 잠은 옛일이니
문 닫힌 분황사 고영(顧影) 자리만 비었구나 546p

의상, 화엄의 마루

“지난밤 잘 때는 토굴이라도 편안하더니, 오늘은 잠들 자리를 제대로 잡았어도 귀신들 사는 집에 걸려든 것 같았네. 아, 마음에서 일어나 여러 가지 법이 생기고, 마음이 사라지면 토굴이나 무덤이나 매한가지. 또 삼계(三界)가 오직 마음이요, 모든 법이 오직 앎이니, 마음의 밖에 법이 없는 걸 어찌 따로 구하리요. 나라 당나라에 들어가지 않겠네.” 551p

“한 그림자에 외로이 싸우며, 죽음을 무릅쓰고 무러 나지 않았다.” 552p

또 서울에 성곽을 쌓으려고 이미 명령이 관리들에게 내려졌는데, 의상법사가 듣고 글을 올렸다.
“왕의 정치와 교화가 밝으면, 비록 풀이 가득 덮인 억덕에 금을 그어 ‘이게 성곽이다’ 라고 하더라도 백성들이 감히 함부로 넘지 못할 것이고, 재앙을 소멸시키며 복을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왕의 정치와 교화가 밝지 못하면, 아무리 장성이 있더라도 재해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왕이 곧 성 쌓기를 중지시켰다. 563p

"솥 안의 국 맛은 한 점 고기로도 충분하다“고 일연은 의상의 저술을 평했다. 무량수전에서 바라본 눈맞은 석등과 안양루야말로 맛볼 수 있는 ‘한 점 고기’다.(풍기 부석사) 567p

순례자를 위해 부르는 노래

용문(龍門)엔 폭포조차 끊기고 말았으며
정구(井口)에 뱀이 서린 듯 얼음이 얼었다
불을 들고 땅 끝에 올라 노래부르리
어떻게 저 파밀고원 넘어 가리오 573p

스승에서 제자로 이어지는 어떤 것

눈앞을 가리던 바위는 멀리 물러나
숯돌처럼 평평해지네
낙엽이 날아 흩어지니
앞은 밝아지네
부처의 뼈로 만든 간자를 찾아내
정결한 곳에 모시고
정성을 다하려 하네 599p

밀교의 한 자락

산 복숭아 시냇가 살구가 울타리에 비쳤는데
오솔길에 봄이 깊자 양쪽 언덕에 꽃이 피었네
그대가 우연히 수달을 잡았던 인연으로
나쁜 용은 서울 밖으로 멀리 쫓게 되었네 617p

평범한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

한마디로 말하면 「감통」편의 이야기들은 신라 사회가 불교를 받아들인 다음 민간 대중들에게까지 얼마만큼 체화(體化) 되었는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621p

일연은 욱면을 소재로 찬을 남겨 놓고 있는데, 처음 두 줄이 이렇다.

서편 이웃 오랜 절엔 불등이 밝았는데
방아 찧고 오노라면 밤은 금새 이경 625p

거창하게 모임을 만들고 절을 짓고, 그엄한 예불을 올리는 이들에게 부처님은 찾아오지 않았다. 껍데기 미타 신앙이 가진 허위 의식을 통렬하게 비판하자는 목적이라기 보다, 제 육신을 잊고 끝내 버리고만 욱면이라는, ‘평안한 시기의 부유한 층’의 계집종에게 초점을 맞춘 이야기에서, 우리는 더할 나위 없는 위안과 격려를 받는다. 627p

그러나 역시 이 조에서 매력적인 인물은 엄장이다. 그가 우리와 닮아 있기 때문일까, 실수와 무지 투성이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다. 그러나 어느 순간, 또는 어느 조력자를 만나 무지와 실수로 가득한 삶을 한 번 돌이킬 기회를 갖는 것, 그것 또한 우리의 모습이다.
회한과 눈물로 범벅이 된 엄장은 원효 스님에게 달려가 간절히 깨우침에 필요한 가르침을 물었다고 한다. 633p

아마도 이 조의 본문과 찬은 결국 살아 있는 사람들에 대한 경계일 것이다. 절의 재산을 몰래 훔친 여자의 부모, 저승의 일을 알지 못하는 그들은 곧 욕심 가득한 우리 모두를 상징한다. 선율의 환생은 그런 그들에 대한 경계이지만, 사실 살아 돌아와 저승의 일을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욕심이 화를 부르는 줄 알면서도 능청스럽게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보통이다. 636p

호랑이 처녀와 사랑

특히 조선왕조 이후 불교가 탄압을 받으면서, 사람이 사는 마을의 절들은 자꾸 없어지고 산에만 남게 되어, 이제는 그것이 보편적인 현상처럼 보인다. 산에 절을 두니 그 산을 지키는 신령도 모신다. 그런 까닭으로 절과 호랑이는 한 살림을 하고 있는 모양이 되었다. 637p

"사람이 사람과 사귀는 것은 누구나 아는 도리이지만, 사람과 짐승이면서 사귐은 정녕 특별한 일이네. 이제 조용해졌으니 진실로 하늘에서 내려준 다행일세. 차마 어떻게 배필로 맞은 이의 주검을 팔아 한 세상 벼슬이나 얻을 요행을 삼겠나?“ 643p

산 속에서 세 오빠 악한 짓 견딜 수 없어
꽃다운 잎에선 대신 죽겠노라 한마디
의리의 소중함 몇 가지로 들어 죽음도 가벼이
수풀 아래서 몸을 내놓았네, 떨어지는 꽃처럼. 644p

일연은 말한다. “호랑이가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을 해쳤으나, 좋은 처방으로 잘 이끌어 주어서 그 사람들을 치료했다. 짐승이라도 인자한 마음씀이 저와 같으니, 이제 사람이면서 짐승만 못한 이들은 어찌하리.” 651p

무엇이 진정한 믿음인가

정작 큰 스승들은 무엇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는 법이 드물다. 진리는 단순한 법이기에 그런 것일까. 유독 진신과의 만남을 중요시여기는 불교에서 그 만남은 곧 진리의 깨달음을 다르게 표현한 말이겠는데, 단순하기만 한 진리를 전하는 진신은 이렇듯 슬며시 다가온다. 진신인지 알고 모르고는 찾는 이의 책임인 것이다. 기독교의 『성서』에서 예수님은 그것을 ‘도적같이 찾아온다’고 말한다. 656p

옛날 계빈에 큰스님이 한 분 있었다. 아란야법을 하며 일왕사에 이르렀다.
절에서는 큰 법회가 열리고 있었다. 문지기가 그의 옷차림이 초췌한 것을 보고, 문을 닫으며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이처럼 여러 차례 초라한 옷차림 때문에 들어가지 못하자 다른 방법을 썼다. 좋은 옷을 빌려 입고 온 것이다. 문지기가 보더니 막지 않고 들여보냈다.
자리를 차지한 다음, 여러 가지 좋은 음식이 나오면 먼저 옷에게 주었다. 여러사람이 물었다.
“어째 그러시오?”
“내가 여러 차례 왔으나 그 때마다 들어오지 못했소. 이제 옷 때문에 이 자리를 차지했으니, 여러 가지 음식이 나오면 그것을 옷에게 주어야 마땅하지요.” 662p

향불 태우고 부처님 세우며 새로 그린 탱화도 보며
공양 받는 스님네들 옛 친구 부리고 떠들썩하네
이로부터 비파암 위의 달은
때때로 구름에 가려 못에 비치기 더디었다네 663p

"산 고기를 가랑이 사이에 끼고도 있는데, 아무 장터에나 파는 마른 물고기 좀 등에 졌기로서니, 뭐가 꺼릴 게 있단 말이오.“ 666p

문제가 생길 때는 신라가 그랬고 고려가 그랬듯이, 성인의 가르침도 소용없는 절망의 순간이 온다. 지금 우리 시대의 풍속은 거기서 얼마나 멀까? 성인조차 나타나지 않는, 아니 인정하지 않는다는 과학의 시대에 우리는 무엇으로 경계 삼을 사표를 세울까? 670p

숨어 사는 이의 멋

장바닥에서는 어진 이가 오래 숨기 어렵고
주머지 속의 송곳도 한 번 드러나면 감추기 어렵네
뜰 아래 푸른 연꽃 때문에 그르친 것이지
구름과 산이 깊지 않아서 아니라네. 686p

불교가 보는 효도

“옛날 곽거가 아들을 묻어 하늘에서 금 솥을 내려 주었다더니, 이제 손순이 아이를 묻으니 땅이 돌 종을 솟아나게 했구나. 옛 효도와 지금의 효도를 하늘이 함께 살피셨도다.” 693p

"부처님의 법을 만나기는 어렵고 인생은 짧은데, 효도를 마친 다음이라니? 그건 너무 늦다. 내가 죽기 전에 도를 듣고 깨우쳤다는 소식을 듣는 것만 같지 못하구나. 머뭇거리지 말고 빨리 가거라.“ 701p

향가, 가장 고귀한 것의 정화

향가 최고의 작품, 충담사의 「찬기파랑가」

열어제치자
벗아나는 달이
흰 구름 쫓아 떠간 자리에
백사장 펼친 물가에
기랑의 모습이 겹쳐져라
일오천 자갈벌
낭이 지니시오던
마음의 끝을 쫓노라
아, 잣나무 가지가 높아
눈이라도 못 덮을 화랑이여 711p

깨달음의 더할 데 없는 경지, 영재의 「우적가」

제 마음의
모습이 볼 수 없는 것인데
일원조일(日遠鳥逸) 달이 난 것을 알고
지금은 수풀을 가고 있습니다.
다만 잘못 된 것은 강호(强豪)님,
머물게 하신들 놀라겠습니까
병기(兵器)를 마다하고
즐길 법일랑 듣고 있는데
아아, 조그마한 선업(善業)은
아직 턱도 없습니다. 721p

일연, 혼미 속의 출구

대체로 옛 성인들이, 예악(禮樂)을 가지고 나라를 일으키거나 인의(仁義)를 가지고 가르침을 베풀고자 할 때면, 괴이한 힘이나 자자분한 귀신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왕이 일어나려 할 때에, 부명(符命)에 맞는다든지 도록(圖籙)을 받는다든지, 반드시 남과는 다른 것이 나타난 다음 큰 변화를 타고 큰 틀을 잡아 나라를 일으킨다. 736p

13세기 혼미한 사회를 살다 간 일연은 종교와 문학 등 다양한 방면에서 새로운 출구를 찾으려 한 혁신적인 승려였다. 그가 『삼국유사』에서 원효를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음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그 자신이 원효 스타일의 원융적이면서도 혁신적인 삶을 살아가기를 바랐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시대가 필요로 하는 삶의 모습으로 보였을 터다. 물론 승려이기에 그가 보여 준 행적은 일반적인 경우의 충격적인 것과 정도가 다르겠지만 승려의 신분 안에서는 분명 예외적이었다. 그러기에 누카리야와 같은 학자가 순수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내렸을 법한데, 이는 한마디로 사회사적 배경을 무시한 결론이다.
가치 있는 것과 나아갈 향방이 어떤 것인지를 분명히 알고 실천한 일연의 생애가 막을 내리고, 이어 조선의 건국이 다가오지만, 그것은 견고한 중국 중심 보수주의로의 회귀였다. 결과론적이지만 조선 사회의 그런 성격이 결코 긍정적인 쪽으로 순을 들기 어렵게 한다. 741p

3. 내가 저자라면

책을 보면서 이렇게 많이 졸아본적도 드문 것 같다. 특히 책의 전반부 기이(紀異)편을 읽으면서 마치 꿈속에 주몽을 만나려는 듯 했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기이편을 읽으면서 고운기라는 저자를 생각하지 못했다. 책속에서 일연을 찾으려 해서 그런것인지 좀처럼 실마리가 풀리지 않았다. 책의 저자가 일연이 아니고 고운기라는 것을 책을 한참 읽은 후에 깨달았다. 저자는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를 1, 2권으로 나눈 두권 짜리와 그 두권을 한권으로 묶은 책을 동시에 내놓았다. 나는 2권짜리를 보았다. 처음엔 다른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책의 목차를 다시 확인했다. 같음을 확인하고 내달렸다.

책을 두 권으로 나눈 것은 저자의 배려라 생각한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삼국유사를 읽으면서 불교를 이야기한 종교서적의 이미지를 지울 수 없을 것이다. 2권은 온전히 불교에 대한 이야기다. 다만 시대적 상황이 불교와 너무도 밀접하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하지 않고는 설명되지 않아서 일 태지만 어쨌든 다른 종교에 귀의한 사람들에게는 쉽게 다가오지 않는 부분도 많았을 것이다. 그냥 역사서로 이해하기에 무리가 있을 만큼 2권은 신라의 불교사에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이 책은 고구려, 백제, 신라의 신화와 설화를 다룬 왕력(王儮), 기이(紀異)편과 신라시대 불교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다룬 흥법(興法), 탑상(塔像), 의해(義解), 신주(神呪), 감통(感通), 피은(避隱), 효선(孝善) 7편 총 9편의 내용을 고운기 특유의 문체로 해설하고 있다.

만약 조셉 캠벨의 ‘신화의 힘’을 읽지 않았다면 나는 기이(紀異)편을 이해 못했을 것이다. 갬벨이 이야기한 신화의 특징이 거짓말처럼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을 확인할 때마다 왠지 미소가 지어졌다. 이것은 태몽이 아닐까. 태어나기 이전의 상황을 꿈으로 풀어쓴 것처럼 기이(紀異)편은 기이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나라가 건국되어 발전하고 쇠락하는 전 과정을 담고 있다.

그중 김춘추와 문희 사이에서 태어난 문무왕의 이야기를 담은 「만파식적 만만파파식적」편은 매우 사실적이고 가깝게 느껴졌다. 인상깊은 구절을 옮겨본다.

문무왕은 한시도 편할 날이 없었다. 『삼국사기』에 실려 있는, 왕이 죽을 때 남긴 조서에는 “풍상을 무릅쓰다 보니 마침내 고질병이 생겼으며, 정무에 애쓰다 보니 더욱 깊은 병에 걸리고 말았다”고 적고 있는데, 이는 결코 과장이나 빈말이 아니리라 본다. 184p

임금에 대한 현대인의 관념을 정면으로 대드는 구절이다. 절대권력으로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존제로 이해하자면 그건 지극히 치우친 생각이리라. 한 인간으로서의 임금의 고뇌가 연민으로 다가온다.

옛날 만사를 아우르던 영웅도 끝내는 한 무더기 흙더미가 되고 말아, 꼴 베고 소 먹이는 아이들이 그 위에서 노래하고, 여우와 토끼가 그 옆에서 굴을 팔 것이니, 분묘를 치장하는 것은 한갓 재물만 허비하고 역사서에 비상만 남길 것이요, 공연히 인력을 수고롭게 하면서도 죽은 혼령을 구제하지 못하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하면 마음이 쓰리고 아픈 것을 금치 못하겠으되, 이와 같은 것은 내가 즐겨하는 바가 아니다. 184p

신성시되는 왕의 모습이 아니었다. 진정으로 제나라 백성을 위하는 성군의 모습이 아닌가.
기이(紀異)편에서 이러한 글을 자주 만난다.

* 원효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나는 책의 저자가 일연의 문체를 빌어 원효를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생각을 했다.
원효 - 일연 - 고운기 그들의 생각이 맥을 같이 한다. 「원효, 해동 불교의 자랑」 부분을 읽는 내내 그분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입가에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장이 끝날 무렵 원효대사의 초상화가 나타났을 때 사진이 살아있는 것 같은 착각이 일 정도였다. 가장 인상깊은 장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원효에 대한 이야기를 제일로 치겠다. 치우침이 과하면 좋은 모습은 아니지만 원효를 다시 이야기하고 싶다.

무엇에도 얽매지 않은 사람, 원효
세상에는 너무 커서 들리지 않는 것과 너무 커서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지구는 자전을 하면서 소리를 낸다고 하는데, 그 소리가 너무 커서 우리 귀에 들리지 않을 뿐이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원효는 너무 커서 보이지 않는 인물이다. 530p

‘너무 커서 보이지 않는 인물’ 천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그를 가늠하기 어려운가 보다. 저자의 원효에 대한 각별함이 엿보이는 대목이 나닐 수 없다.

화엄경에 “모든 것에 거침없는 사람은 한 가지 길(道)로 나고 죽는다.”는 대목을 가지고 무애(無碍)라 이름 짓고, 노래를 지어 세상에 유행시겼다. 일찍이 이것을 지니고 모든 마을 모든 부락을 돌며 노래하고 춤추면서 다녔는데, 노래로 불교에 귀의하게 하기를, 뽕나무 농사짓는 늙은이며 독 짓는 옹기장이에다 원숭이 무리들까지 모두 부처님의 이름을 알고 나무아미타불을 외우게 되었으니, 원효의 교화가 크다. 537p

무지했던 민초에게 ‘나무아미타불’을 전했던 원효, 그가 마음속 깊이 들어앉아있는 모습이다. 종교를 특정 계층의 권력에서 진정한 믿음의 힘으로 자연스럽게 승화시킨 원효의 행적을 책 속에서 본 것은 큰 행운이다.

* 쉬어가는 볼거리 양진의 사진
이 책은 744페이지의 방대한 분량이다. 읽기도 전 그 양에 질려버리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가끔식 눈을 쉬어가게 하는 것이 있으니 양진 작가의 사진이다. 사진은 책에 몰입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마치 산행중 땀을 식히며 바라보는 멋진 풍경과 같았다. 글의 내용을 사진으로 첨가한 것 가히 금상첨화다. 사진이 없었다면 이렇게 흥미롭지 않았을 것이다.

* 한자 원문이 보이지 않는 아쉬움
책의 전체적인 구성과 이야기의 흐름은 전혀 신경쓰이지 않았다. 다만 좀 아쉬운 것이 있다면 삼국유사의 한자 원문을 함께 실어줬으면 하는 바램을 해봤다. 그것은 한문의 원문을 구지 해석해 보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저자 고운기의 뛰어난 한문 번역을 음미해 보고싶은 욕심이다. 물 흐르듯 이어지는 글귀가 한문을 번역한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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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3.09 08:30:57 *.70.72.121
두 번째 리뷰가 첫 번째 보다 훨씬 성숙해가는 모습이네요. 부지런한 읽기와 쓰기가 얼마나 중요한 지 보여주는 것 같아요. 700여 페이지를 거뜬히 읽어내니 다음 책들은 문제도 되지 않겠군요. 귀하의 노력하는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져요. 서로에게 친구이자 스승이기를 진솔하게 이해하고 나누며 돕는 것이 연구원들의 초지일관된 지향 이지요. 애쓰는 만큼 얻을 수 있는 곳이 또 이 과정 사람들일 거에요. 계속 화이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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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스
2008.03.09 13:08:03 *.255.78.36
감사합니다. 써니님
책읽는 속도가 겁나게 느린 제가 700여 페이지 중에서 300여페이지를 하루에 다 읽고나니 스스로가 대견스럽더라구요..ㅎㅎ
이렇게 칭찬까지해주시는 선배님이 계시니 어찌 열심히 하지 않을수 있겠어요. 잠과 맞바꾼 읽기와 쓰기 그게 더 좋습니다. 더욱더 애써보겠습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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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박
2008.03.10 10:49:15 *.218.203.245
성실한 모습이 단연 돋보이십니다. 하루 중 읽고 쓸 시간을 빼내는 것이 만만치 않았을텐데, 글을 보니 틈틈히 그리고 꾸준히 한 듯 합니다. 저는 그렇게 하지 못했기때문에, 홍현웅님은 지금처럼 '매일 꾸준히' 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렇지 않으면 저처럼 중반 이후로 지칠 수 밖에 없기 때문이에요. 사실, 제가 말씀을 드리지 않아도 잘 하실 것 같습니다. ^^

첨언하자면, 내가 저자라면 부분을 좀 더 전문적인 작가 입장에서 세부적으로 보는 것은 어떨까요? 저도 처음에는 이 부분을 어떻게 적어야 하는지 난감했습니다. 지금은 '수용을 목적으로 하는 건설적 비평'을 쓰는 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 '감상'에 가까워 보입니다. 전체적인 흐름은 좋으나 나중에 책을 쓸 때 도움이 되려면 좀 더 명쾌하고, 구체적으로 쓸 필요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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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스
2008.03.10 12:19:35 *.117.68.202
감사합니다. 옹박님.^^

'수용을 목적으로 하는 건설적 비평'
몇번을 읽어보고 또 읽어보고 있습니다.
옹박님께서 쓰신 리뷰를 봤습니다. 역시 명쾌하더군요. 리뷰란 이렇게 쓰는거구나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직 모자람이 많습니다. 앞으로도 피드백 부탁드립니다. 어떤 이야기도 수용하겠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공간이 있어 행복합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머리는 좀 어떠세요. 후유증은 없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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