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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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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9일 15시 25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책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이하 우정삼)’ 는 일연의 ‘삼국유사’를 고은기가 풀이하는 방식의 책이다.(사진: 양진) 이 책은 책 속의 책인 ‘삼국유사’를 풀이한 책이라 액자 형식의 구성이라고도 할 수 있을것 같은데 저자에 대해서는 이 책의 가장 핵심인 ‘삼국유사’를 편찬한 승려 일연에 대해서 정리해 볼까 한다.
먼저 '삼국유사' 와 '우정삼'의 저자 고운기의 풀이를 읽으면서 ‘삼국유사’의 저자 승려 일연에 대한 성격과 기질에 대해 어렴풋한 인상이 있었는데 그런 그의 성격을 MBTI유형으로 찾아 보고 책을 통해 드러나는 일연의 성격과 다시 하나씩 비교해 설명해 보고자 한다. 먼저 결론부터 말하면 책 곳곳에서 드러난 그의 성격들을 대략 정리해 보면 승려 일연의 성격유형은 ‘ENFP’ 형태로 분류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를 ‘ENFP’의 성격 유형이라 판단하게 한 그의 행동들과 기질적 특성은 다음과 같다.

“열정 / 낙천성 / 독창성과 창의성 / 이해심과 개방성 /사교성과 활동성 / 세심한 작업보다 아이디어 위주 작업에 적합 / 가족(친구)에 대한 사랑”

- 열정: 칠십이 넘은 후에 ‘삼국유사’를 집필하기 시작한 일연. 요즘 세상에도 칠십이라면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다. 기력이 어느 정도 쇠하고 이제는 삶을 정리하며 천천히 여유롭게 사실 나이이다. 그러나 일연은 이때가 오히려 불꽃 튀는 집념의 글쓰기를 시도하였다. 열정이 없었다면 감히 이렇게나 큰 작업을 이루어낼 수 있었을까? ‘삼국유사’라는 책을 통해 10세기까지의 우리 선조의 이야기를 재구성 해 내는 데에는 무엇보다 그의 열정이 가장 큰 역할을 해 냈으리라.

- 낙천성:일연이 살던 고려 말기는 혼란스러운 시대였다. 몽고와의 전쟁으로 몸과 마음이 모두 움츠러들어 숨기에 바빴을 그때. 일연 자신은 개의치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하고자 하는 일을 해나간다. ‘삼국유사’는 그렇게 혼란스러운 시기에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지속적으로 본인이 목표한대로 작업을 해나간 산출물이다. 고맙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물론일 것이다.

- 독창성/창의성: 분명 역사를 한번에 정리해 묶어낸다는 것은 힘들 일일 것이다. 왕명의 뜻을 받들어 많은 사람이 함께 작업한 것도 아닌 오로지 스스로 생각해서 구성하고 만들어 내기에는 선뜻 엄두가 안 나는 작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승려 일연은 해냈다. ‘삼국유사’의 구성과 이야기를 담기에는 오랜 기간의 밑 작업을 통해 이 ‘삼국유사’를 만들어 냈을 것이다. 국왕의 명령으로 편찬된 ‘삼국사기’와는 다른 관점에서 스스로 우리 역사를 정리하려는 마음을 먹었다는 것, 그 이야기를 ‘삼국사기’나 기타 중국을 통해 들여온 책들과는 다르게 구성, 집필하였다는 것이 그의 독창성을 엿보게 한다.

- 이해심과 개방성: 그는 ‘삼국유사’에 승려의 신분을 감안하지 않은 껄끄러운 다양한 이야기들도 포함하였다. 가령 ‘기이’편의 ‘도화녀와 비형랑’이라는 조와 같은 야래자설화 같은 이야기들인데 승려로서 어떠한 편견 없이 다양한 이야기를 싣기 위해 애쓴 흔적은 그의 개방성과 이해심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또 나이 쉰이 넘어서 편찬하게 된 ‘중편조동오위’ 라는 책은 일연이 속한 종파와 다른 종파에 관한 책으로서 왕명이 아니면 종파를 바꿀 수 없던 시기에도 그가 얼마나 호기심이 많고 사고의 한계가 없는 사람인지 파악할 수 있는 단서이기도 하다. 더불어 ‘삼국유사’에 포함한 많은 승려 이야기 중 점찰경이나 밀교와 관련된 승려에 대한 이야기 또한 스스럼 없이 하고 있다. 단순히 다양한 불교 종파를 소개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긍정적 설명과 함께 심지어 사회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는 교파에 대해서는 변호까지 하고 있다. (590,612P. 밀교와 점찰경에 대한 일연의 풀이 참조) 자칫 폐쇄적이라면 더욱 폐쇄적일 수 있는 한 종파에 속한 승려의 입장에서 이처럼 일연이 관심을 보이는 불교 사상은 매우 넓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가 훗날 조선조 때 특히 밀교나 점찰법회 같은 불교 비판 시기에 일연도 같은 분류로 나눠져 그에 대한 가치가 격하되는 계기를 만들기도 한다.

- 사교성과 활동성:일연의 일생을 살펴보면 그는 꽤나 활동적이고 바쁜 승려였던 듯싶다. 스물 두 살에 승과에 합격한 그는 삼중대사, 선사, 대선사등의 직급에 차례로 오르게 되고 마흔이 넘어서는 불교계의 핵심 지도자로 자리 잡는다. 또한 왕명 받들어 불교 행사를 주관하기도 하는 등 넓고도 다양한 활약을 보인다. 또 ‘우정삼’ 필자 고운기의 판단에 의하면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와 같은 이전에 만들어진 책을 참고하는데 그치지 않고 더욱 생생하고도 풍성한 이야기들을 많이 싣고 있는데. 이는 곧 자기가 머물게 된 지역에서는 반드시 주변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 수집해 두었다가 ‘삼국유사’를 집필하면서 이용했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만약 그렇다면 일연은 어느 정도 사교적인 사람이기도 했으리라. 마을에 머물게 되면 주변 마을의 사람들에게서 다가가 이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을 묻고, 수집하는 작업을 햇을 것이기 때문이다. 낯선 지역의 주민에게 친밀하게 다가가 날씨, 사는 이야기등으로 대화의 물꼬를 트면서 “이 지역에 내려오는 재미난 이야기는 없수?” 하고 물었을 것 같은 승려 일연의 모습이 떠오른다면 너무 과장일까?

- 세심한 작업보다 아이디어 위주 작업에 적합: 그는 ‘삼국유사’를 쓰면서 세세한 년도나 수치 계산에서 반복적인 실수를 보인 것 같다. ‘우정삼’의 저자 고운기가 책 속에 다양한 ‘삼국유사’의 이야기들을 풀이하면서 다음과 같이 일연에 대해 불평하는 글들을 보게 되는데 ‘삼국유사’를 읽으면서 웃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거의 800년을 사이에 두고 마치 두 사람이 아웅다웅 하는 것 같아서이다. “ ‘삼국사기’의 본전에서 이렇게 말한다’ 해 놓고, 정작 거기 없는 내용을 추가해 놓은 것도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다.(350P.)” “ 일연이 제시한 출전을 찾아가 확인해 보면 이런 일이 일어난다.(663P.)” 분명 일연은 ‘삼국유사’를 편찬한 대단한 사람임에는 분명하지만 그러한 큰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것 외에 이런 식의 세심한 실행작업은 약간씩 부족했음을 확실히 볼 수 있지 않다. 하지만 후에 제자 무극등이 책 곳곳에 추가로 작성해 놓는 글들을 통해 스승의 작업을 보완하려 했던 시도등을 보면 이렇게 소소하게 부족한 부분은 다른 곳에서 채워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 가족에 대한 사랑: 1206년 ‘김견명’이라는 이름을 갖고 태어난 그는 일찍 아버지를 여위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게 된다. 아홉 살 나던 해 전라도 광주의 무량사로 취학하게 되는데 아마 홀어머니 살림 형편에 입 하나 덜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을 터이다. 그 뒤 14살 정식으로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어 평생을 절에서 보내면서도 일연에게 평생의 화두는 ‘어머니’였다고 한다.(고운기 풀이) 말년에는 고향에 내려가 어머니를 봉양하기를 희망했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기까지 정성스럽게 돌보았다고 한다. 그의 비문에도 그의 효성스러움이 엿보이는 내용들이 쓰여 있는데(688P참고) 분명 한 평생을 대부분 혼자 보내셨을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안쓰러움이 그의 행적 여기저기에서 효심으로 표출되었을 것이다.

만약 현재에 승려가 아닌 모습으로 살고 계셨다면 분명 70이 넘으신 나이에도 청바지를 입고 ‘노인대학’등을 다니시면서 무엇이든지 열심히 하면서 활기차게 지내실 것 같은 모습이다. 어려운 시기에도 우리의 선조 이야기를 정리하는 방대한 작업을 통해 ‘삼국유사’를 만들어 낸 그의 열정과 창의력에 박수를 보내며 800여년이 지난 지금 그의 후손들인 우리가 이렇게 기억하고 감사하고 있음을 전해 드리고 싶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 들어가며
3P. 고려 초부터 이 시기 지식인들은 우리 고대사를 정리하는 역사서의 편찬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 김부식의 ‘삼국사기’로 대표되는 고려 전기 지식인들의 세계 인식은 사대로 요약된다./ 세계관의 변화는 곧 역사관의 변화를 가져온다. 모든 것을 중국 중심으로 해석했던 ‘삼국사기’의 역사 기술은 이쯤 와서 힘을 잃게 된다.
5P.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그(일연)가 승려였다는 점에서 보다 적극적이었다./ 승려들은 처음부터 중국 중심에 서 있지 않았으므로 보다 빨리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 ‘삼국유사’는 이 시기에 우리 역사를 주체적으로 바라보고자 했던 지식인들의 일련의 작업 속에 놓여 있는 것이다.
8P. 일연은 ‘삼국유사’를 쓰면서 삼국사기 같은 역사서로만, 고승전 같은 불교서로만 만족하지 않았던 듯하다. 그것들이 어우러지면서 우리 고대사를 입체적으로 조망해 볼 어떤 틀을 만들어 냈다고 보아야 옳지 않을까.

1. 기이 (紀異)
[이땅의 첫나라]
12P. 10세기부터의 고려 사회는 중국적 유교 사관으로 무장한 김부식과 같은 지식인들이 주도권을 잡고 이끌어 나갔다. 그들은 단군과 단군조선의 존재는 역사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 사실을 그대로 써서 저촉되는 것을 상징으로 포장해 놓으면 규범이 만든 규제의 그물망을 벗어난다.
17P. 새로운 역사를 창출하고자 각고면려(刻苦勉勵)한 곰 부족에게서 새로운 인물이 나온다. / 구월산에는 삼성당이라는 제각이 있는데 여기서는 환인,환웅,단군의 세 성인을 제사 지낸다고 한다. 그러나 북한의 연구자들은 아사달이 요동 쪽에 있다고 보면서, 고조선의 범위를 무척 크게 잡아놓고 있다.
22P. 빙하기가 끝나고 지금 세상에 들어 이 땅에도 처음 사람들이 있었다. 어느 시점에서 부락을 만들고, 부락들이 만나 연합적인 공동체를 이루어 가다 보니, 그 사이 벌어지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해결할 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을 제어하는 힘은 하늘에서 나온다고 믿어, 하늘의 힘이 구체적으로 이 땅에 어떻게 이르게 되었던가를 설명하면 그만이다. / 고려 왕조에 들어 이전 시대를 정리하는 처음 역사서는 ‘삼국사기’가 차지했다. 12세기 중반의 일이다. 사실 ‘삼국사기’는 한반도에 살았던 지식인층이 중국으로부터 문자와 그와 관련된 여러 문화를 전수받은 다음, 이제 완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했음을 보여 주는 책이다. /
23P. 한껏 폼을 내 만들어 놓은 ‘삼국사기’라는 명약이 우리만의 고유한 정신과 영역을 잠식해 들어가는 바이러스로도 기능할 줄은 아마도 그 찬술자들조차 몰랐던 것 같다. / 중국의 사고방식을 따르자니 ‘삼국사기’는 한반도 역사를 한(漢)나라가 세워진 한참 후인 기원전 57년에 와서야 떨렁 시작한다. 신라의 건국이다.
24P. 고려는 역사적으로 커다란 두가지 사건을 겪었다. 첫째는 무신정권의 성립이고, 둘째는 몽고와의 전쟁이다./ 기존에 세워졌던 질서가 무너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이념과 사상이 자리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삼국사기’와 그 시대에 수놓아졌던 중국 중심의 사대주의는 힘을 잃는대신, 거기에 희미하게나마 민족의 주체성 같은 것이 자리한다. 매우 의미심장한 변화다. / 중국의 자존심을 하루아침에 땅바닥에 떨어뜨린 몽고의 원(元)건국,
25P. 무인정권이 내세웠던 ‘새로운 질서’라는 대의 명분에 상당한 힘이 실렸다. / 이 같은 분위기가 일연으로 하여금 우리 역사의 더 먼곳에 관심을 갖게 했고, 거기서 단군이 발견되었음은 당연하다.

[고구려와 북방계]
35P. 조선의 시대 곧 고조선과 위만조선이 끝나고 한반도에는 여러나라가 군웅할거(群雄割據)하는 시대를 맞는다.
36P. 하나의 체제가 무너진 다음 일정한 혼란기를 거쳐 새로운 질서가 잡혀지는 것 또한 중국의 고대사가 그랬듯이 매우 자연스럽다.
43P. ‘삼국사기’가 금기시하는 것들이 이미 무너졌을 떄, 그 존재를 회복한 것은 단군만이 아니다. 이렇듯 주몽에게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43P. 난생신화의 핵심은 결국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이리라. 첫 출발의 의미를 문학적으로까지 보이게 하는 이 표현은 곧 그 옛날 왕을 맞이하는 어떤 의식과도 관련이 있을 듯하다.

[신라와 남방계]
56P.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말은 곧 오리지널의 출발을 의미할 것이다. / 이제 남쪽에도 하늘에서 내려온 이들이 있음을 말하는 일연의 의도란 곧 북쪽과 계통을 달리하는 오리지널이 있음을 강조하자는 데 있지 않을까?
68P. 무당의 탄생 내력을 담은 이야기는 고대 국가의 건국 신화와 사촌간처럼 가깝다. 그것은 고대로 올라갈수록 왕권과 신권이 분리되지 않았던 데에서 연유한다. / 신라 불교가 토착적인 신앙과 만나는 장면은 앞으로 자주 소개되겠지만, 그것이 곧 왕실과 국가의 안정에 기여한다는 호국불교로까지 발전하는 모습을 눈여겨볼 만하다.
69P. 일연은 신라라는 나라 이름에 대해, “서라벌 또 서벌이라고 하였고, 어떤 이는 사라 또는 사로라고도 하였다”고 하였다. 여기서 서벌이 나중에 서울로 바뀌어 나갔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 일연은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초반부 곧 남해왕부터 지증왕까지에서 왕의 이름과 관련된 부분을 여기 한곳에 모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고 있다. 대체로 일연은 ‘삼국사기’를 인용하면서도 필요한 부분을 여기저기서 발췌하여 한 문장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탈해왕을 둘러싼 갈등]
78P. 하늘과 땅이 조화로 자신의 신성성을 포장하는 시대를 지나, 이제 인간대 인간의 투쟁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목적을 달성하려는 매우 정치적인 모습이 나온다. 신화가 설화로 돌아서는 지점이다. / 어쨌든 문물의 발달이 신화시대를 거둬내고, 실질적인 힘으로 정복과 지배를 영위해 나가는 시기가 이 한반도에도 도래한 셈이다.

[연오랑 세오녀, 첫 설화의 주인공]
91P. 신공왕후는 3세기경 일본열도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 인물이지만, ‘일본서기’와 같은 고대 일본 역사서가 만들어 낸 가공 인물일 것이라는 학설은 학계에서도 거론되는 바다. / 일본에서 한창 논쟁중인 히미코의 야마일국이 기본적으로 한반도의 중서부 곧 지금의 황해도에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대방군에서부터 출발하였다는 점은 공감을 얻고 있다.
92P. 우리가 아득한 옛 역사를 말하면서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너무 긴장한다면 결론이 엉뚱한 곳으로 흐르기 쉽다.
98P. 신라 사람들이 잃어버린 것은 해와 달이 아니라 해와 달을 해와 달로 볼 수 있는 그 정령이었다.
100P. 신라가 다른 두 나라에 비해 유독 토착 신앙에 강했다는 말을 우리는 상식적으로 한다.

[신라는 왜 일본과 앙숙일까]
118P. 일연이 박제상 이야기를 가져온 원본은 반드시 ‘삼국사기’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 묘사가 모자란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박제상에게 초점을 맞추되, 보다 인간적이고 감동적인 묘사를 추구했던 의도가 드러나 보인다.
119P. 전쟁은 적개심을 필요로 한다.

[밤에 찾아오는 손님]
120P.설화 문학에서 말하는 하나의 유형 중 밤에 찾아오는 손님이 소개가 되는 야래자 설화가 있다.
121P. 자칫 몰래한 사랑의 불륜성 시비에 휘말릴 이런 이야기를 일연은 서슴없이 ‘삼국유사’안에 거둬들이고 있다. 그것은 다시 ‘기이’편의 ‘무왕’조와 ‘후백제와 견훤’조에서 거듭 반복된다. / 가까운 일본의 백제 영향권 아래의 지역에서 유포된 설화와 매우 비슷한 점을 보여, 설화를 통한 이동 경로를 추정하는 데도 흥미로운 자료가 된다.
126P. 다섯빛깔이 오방을 상징한다면 천하가 감싸준다는 것이고, 향기는 귀한 손님을 맞아들이는 것이니, 이것은 특별한 사건이 벌어지리라는 징조다.
132P. 옛 사람들은 요즘 사람들보다는 귀신과 조금 더 친하게 지냈던 것 같다. 귀신을 항상 같이 지내는 존재로 여기며 위하기도 했다가, 어르고 달래며 하인처럼 부리기도 했다.
136P. 이야기의 구조는 앞의 견훤 탄생담과 너무나도 닮았고, 이 같은 이야기는 오키나와에서도 발견된다.

[신라가 통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
140P.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씀은 옛 유대 성인의 입을 통해 나왔지만,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그것은 진리다.
144P. 신라 불교의 힘은 무엇보다 먼저 있었던 토착 신앙을 버리지 않고 포용해 간 데서 더욱 커진다. / 본수지적, 불국토 사상은 바로 토착 신앙을 저버리지 않는 밑바탕이었다.
150P. 신라의 경우, 비록 수용이 늦었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철저히 자기화 되어 정착되었으므로, 생경한 외래 사조에 휘둘리지 않았다.

[문의, 그 아름다운 여자의 이름]
160P. 역사는 충신들이 만들어 낸 역사인지 모른다.
164P. 김춘추는 김유신보다 여덟 살이 아래였다. / 김유신이 진평왕 17년(595년)생, 김춘추는 같은 왕 25년(603년)생이다. 두 사람의 만남은 곧 신라의 삼국 통일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이루어 내는 드라마의 시작이다.
169P. 김유신은 가야출신이다. 가야가 구형왕을 마지막으로 신라에 복속된 것은 법흥왕 19년(532년)의 일이다. 김유신이 태어나기 60여년 전, 유신의 증조부 구해는 수로왕의 후손이었는데, 가야가 신라에 병합되자 가족들을 데리고 경주로 와서 살았다. 그래서 유신은 신라에서 태어났고, 그의 아버지가 신분이 높은 집안의 여자와 결혼하고 관직에 올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국민에다 이민 4세의 신분적 제약은 좀체 지워지지 않았던 것 같다. 유신에게는 치명적인 콤플렉스였다.
172P. 그때까지는 두 집안이 모두 왕족이어야만 왕이 되는 신라 왕실에서, 이제 한 쪽만이어도 가능하다는 새로운 규칙을 만든 것이다. 사실 진골은 편협한 신라 왕실이 한층 더 개방적으로 나가는 데 크게 공헌한 제도이기도 하다.

[만파식적 만만파파식적]
179P. 신라가 당나라를 끌어들여 벌인 통일 전쟁이 한민족의 영토를 축소한 결과만 초래했다고 비판받지만, 기록을 자세히 살피자면 당나라에 전부 뺏기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다.한반도 땅 전체를 집어삼키자는 것이 당나라의 속셈이었기 때문이다. 문무왕 법민은, 좀더 적극적으로 평가한다면, 그런 당나라와 맞서 최대한의 땅을 지켜낸 사람이다.
195P.벼슬이 높아져 더 이상 오를 데가 없으면 한글자씩 덧붙이는 신라의 관습

[권력의 끝]
200P.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삼국시대를 신라 중심으로 기술했다고 하지만, 좀더 엄밀히 말하면 신라의 김씨 왕 중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김부식과 일연이 다 같이 경주 출신에 김씨여서였을까?

[수로부인,미시족의 원조]
228P. ‘뭇입은 쇠라도 녹인다’는 말은 원문에서 ‘중구삭금’이라 표현되어 있다. ‘중구’란 곧 오늘날의 여론, 또는 민중의 소리라고나 할까? 사람들의 일치된 생각과 거기서 나오는 힘이 저 신물의 가공할 위세를 쳐부술 수 있다는 것이다.
229P. 정치란 예나 이제나 같은 모양이고, 그것이 핍진한 현실임을 누군들 부인하랴.

[첫 성전환증 환자]
향가가 신라 이후에도 승려층에 의해 전승된 것은 고려 초의 스님 균여가 향가를 남기고 있는 점을 통해 입증되지만, 같은 스님인 일연이 ‘삼국유사’속에 공들여 향가를 모아 놓은 점을 설명하는 데도 유용하다.
월명사 이야기를 하나 보태고 가자. 그를 말하면 ‘제망매가’를 빼놓을 수 없다. 이 노래는 서정 시가로서 신라 향가 최고의 명편이다.
생사의 갈림길
여기 있으니 두려웁고
“나는 갑니다” 말도
못하고서 갔는가
어느 이른 가을 바람 끝에
여기저기 떨어지는 잎처럼
한가지에 나고
가는 곳은 모르겠네
아, 미타찰 세상에 만날 나는
도 닦아 기다리리
이후 신라 왕실은 김양상과 김경신등 내물왕계 후손이 다시 왕위에 오르고, 김춘추 직계는 어찌되었는지 알기 어렵다. 쓸쓸한 종막이다.

[왕이 되는 자]
253P. 성공하면 충신이요 실패하면 역적인 것이 쿠테타다.
258P. 고구려의 경우, 연개소문이 도교에 심취하면서 불교가 상대적으로 왜소해져 버린 것도 당나라의 영향이었다. 삼국 통일 후에는 신라에도 도교를 전하고자 노력한 흔적을 여기저기서 보게 되는데, “당나라 사신이 ‘도덕경’등을 보내와 왕이 예를 갖추어 받아들였다”는 그 한예에 불과하다. 사신으로 오고 가는 국가의 공식적인 교류에서 도교가 전면에 등장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나라가 망하는 징조]
269P. 한번 일어나면 한번 사그라지는 불꽃처럼 대체로 흥망성쇠를 유전하기 마련이다.
272P. 대개 ‘기이’편에서 조의 제목은 왕,나라이름,사건을 중심으로 붙여진다. 그런데 ‘이른 눈’이라는 제목은 이것들과는 다르다. 일찍 눈이 내렸다는 제재도 묶은 것이다. 게다가 한 왕대의 일이 아니라 여러 왕대에 걸쳐있다. 같은 제재를 여러 군데서 찾아 한 자리에 묶었기 때문이다. 이는 어떤 메시지를 표면에 내세우기보다는 객관적 사실만 나열시켜 놓고, 읽는 이에게 그 의미를 생각해 보게 하는, 일종의 상징적 기술임을 알 수 있다.
280P. 우리 옛 이야기 속의 용은 그다지 나쁜 역할을 맡지 않는다.
284P. 신라 헌강왕대는 사치가 극성했지만 바야흐로 기울어 가는 시기였다. 엄연한 유부년가 외간남자와 정을 통하는 이 장면에서 당시의 사회상을 읽을 수 있다. / 일연은 역사적으로 사실로서 광란스런 왕들의 혈전을 쓰는 것보다, 민간에 전해지는 이야기 한 토막으로 더 실감나게 당시 모습을 전해 준다. 그것이 ‘삼국유사’다.

[지는 해 뜨는 해]
287P. 신라의 멸망 원인 가운데 무엇이 선두에 설까? 나는 무엇보다 ‘ 골품제의 동맥경화 현상’을 내세우고 싶다.중앙과 지방의 중요한 관직을 성골과 진골로만 채우는데, 그들이 나라일을 맡아 해낼 능력도 의지도 부족해 졌을 때, 신라는 탄력성을 잃고 둔해지기 시작했다.
288P. 역사에는 가정(假定)이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289P. 거리에 나 붙었다는 ‘다라니’는 일종의 ‘노가바(노래 가사 바꿔 부르기)’일 것이다. 우리 나라의 1980년대에, 혹독한 군사 정권을 비판하는 데 큰 몫을 했던 노가바의 출생 배경을 생각해 보면, 이 다라니의 유행 경위도 짐작할 수 있다.
293P. 배를 타고 가던 일행이 풍랑을 만나자, 일종의 제비뽑기로 희생양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구약성서’의 요나 이야기와 닮았다. 물론 배를 타는 계기는 다르지만, 배를 탄 본디 목적과 다른 행로를 밟게 된 이 사람이 결국 구원자의 역할을 하는 것은 비슷하다.
297P. 신라 멸망의 상징으로 포석정 연회를 든다. 마치 박정희의 마지막 만찬처럼.
302P. 백성의 입장에서야 누구의 백성이 된들 무슨 상관이랴? 더욱이 넘쳐나는 새로운 힘으로 나라를 잘 이끌어 백성의 삶이 더욱 윤택해질 교체라면, 어느 개인의 사유물처럼 정권을 휘둘러 무고한 희생만 초래하는 것에 비길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은 하늘의 뜻이요,왕조 사회에서 그렇게 표현하는 백성의 힘이다.
303P. 조선조에 들어 김부식은 사대주의에서도 민족적 주체성에서도 모두 공격을 받았다. 완벽한 중국 중심에 빠져든 한편의 유학자들은 그를 얼치기 사대주의자 정도로 보았고, 실학의 바탕에서 우리 고대사를 새롭게 보려 했던 다른 한편의 유학자들은 민족의 주체성을 모르는 지식인 정도로 보았다.
304P. 일연은 오히려 올바른 김부식 팬이었다. 좋은 부분을 인용하면 그만이라는 태도가 엿보이고, 좋지 않은 부분을 놓고 비판한다거나 굳이 자기관점에서 해석하지도 않았다. / 신라멸망의 원인으로 김부식이 제시한 불교 비판 부분을 그대로 옮겨 놓고 있다. / 비단 주고 승직을 산 승려들을 비꼬아 사람들 사이에서 생긴 말이 능수좌,나선사다. / 자신이 비록 승려지만, 불교의 말폐를 지적하는 것은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우는 일이면서 불교가 살아날 길이기도 했다.

[백제와 일본, 그 근친의 거리]
307P. 일연의 수고와 노력으로 그나마 우리가 알게 되는 삼국시대의 살아 있는 역사를 고마워하면서도 아쉬움은 분명 있다. 그것은 일연이 삼국의 다른 두 축을 이루는 고구려와 백제의 역사에 어찌 그다지 인색했는가다. 다만 시조 왕의 사적을 잠깐 언급한 다음, 나머지는 신라에 비해 옹색하기 그지 없다. / 고구려의 전성기만큼이나 우리 역사가 중국에 떳떳한 적이 드물었으며, 일본의 초기 왕실이 백제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서 성립되었다는 사실을 상정했을 때 그 아쉬움은 커진다.
325P. ‘일본’이라는 국호의 최초 사용을 보여 주는 의미 있는 대목이다. 종주국 백제의 멸망 후 7년, 국호의 변경은 무엇을 의미하는 가? 그것은 백제에 대한 일본 왕실의 독립선언으로 보인다.
326P. 그 이후 일본의 왕실에서 백제의 흔적 지우기는 끈질기게 계속되었다./나는 그것을 일본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부정이라기보다 독립의 비원으로 본다.

[서동은 정말 선화공주를 꾀었을까]
327P. 맹랑하기 그지 없는 자가 새로운 역사를 만든다. 누구도 될 수 없다고 포기할 때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로 난국을 돌파하는 꾀는 맹랑한 자에게서 나온다.그런 명랭한 사람을 우대하는 사회가 발전한다.
330P. 영웅은 자기가 타고난 비법한 재주로 고난을 극복해 낸다.
331P. 어떤 목적한 상황으 이미 이룬 것처럼 상정하고 있다는 데에서 참요 도는 예언요
337P. 재미있는 이야기는 어떤 경로를 통해서나 전파되기 마련이고, 자생적으로 생겨난 이야기가 서로 비슷한 경우마저 있기도 하다.
343P. 미륵불은 여성의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미륵이 본디 남자였지만 이렇게 바뀌는 것은, 미륵불이 자비와 영원불멸의 생산을 의미하는 여성적인 성격을 가진 데다 남성인 석가불에 대응하려는 사람들의 의지가 개입되었기 때문이다. / 미륵은 자비의 부처다.

[신비의 왕조, 가야]
369P. 가야는 고대 한반도의 남부를 설명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다. 이곳은 완충지였다. / 그런 가야의 역사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오직 일연의 손에 의해 거둬들여진 이 짧은 기록 하나가 전부다.
370P. 가야는 규모 면에서 작은 나라였다. 나라의 이름만 아니라 임금과 신하의 호칭 또한 없었으며,다만 아홉 사람의 9간이 다스리는 100호에 7만 5,000명의 인구가 전부였다.

2. 흥법 (興法)
[불교로 보는 역사]
396P. 종교를 처음 전할 때 의술이 따라다닌 것은 동서의 고금을 두고 다르지 않음 모양이다.

[순교의 흰 꽃 이차돈]
402P. 일연은 삼국의 역사에서 신라를 중심에 두었다. 왜 그랬는지 그 기준은 ‘삼국사기’와 비슷할 터이나, 한가지 추가한다면 불교역사주의적 의식이 작용했다는 점도 앞서 지적했다. 신라의 불교는 신라 한 나라에만 그치지 않는 한국 불교의 화두다. 한국의 불교라는 강물은 신라에서 물꼬를 터서 흘러 나왔다. 일연은 그 점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413P. 백제에 비한다면 고구려에 대한 일연의 태도는 노골적으로 비판적이다. 도교를 신봉하면서 상대적으로 불교가 쇠퇴해진 데 대한 아쉬움이 컸겠지만, 굳이 그것만으로 이유를 댈 수야 없다.
414P. 고구려의 후반기에 도교가 번성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사실을 적는 일연의 태도는 현저히 불교와 상대적으로 비교하는 입장이다. 나라가 망한 이유가 불교를 멀리하고 도교를 가까이 한 것 때문이라는 결론에서 그 의도는 명백해 진다
415P. 삼국의 흥망을 불교역사주의적 관점에서 보려 했던 일연의 태도는 의천의 이 같은 입장과 더불어 결론 내려지고 있다.

3. 탑상 (塔像)
[신라의 중심 세계의 중심, 황룡사]
428P. 불교미술사학자들은 불상의 출현을 서기 1세기경의 쿠샨왕조 때로 보고 있다./ 아쇼카왕때 벌써 불교가전해졌고, 그리스 조형 예술의 기술도 들어와 있었다. 거기서 불상은 탄생했다.
434P. 중국과 인도의 불교 문화 그리고 가까이는 백제로부터 들어온 기술까지 모두 한자리에 모인 곳이 황룡사다.
435P. 싸움이나 싸움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천지가 평화로워지는 꿈, 그것은 일연이 구층탑을 보며 꾼 것이다.

[문수신앙의 근거지,오대산]
439P. 일연은 문수 신앙의수행법의 하나인 문수오자주를 염송하며 감응이 있기를 기다렸는데, 과연 벽 사이에서 문수보살이 나타나 피난처를 알려주었다. 문수보살의 가르침을 따라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기는 다음 해 여름이었다. 우리는 이 같은 기록을 통해, 일연의 불교 사상이 문수 신앙으로부터 시작한 것은 아닌가, 잠정적인 이정표를 세울 수 있다./문서 보살을 흔히 출가한 보살이라 한다.
454P. 무릇 의지만으로 하는 사람의 일이란 얼마나 고달픈가.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 그렇게 되는 것에 몸과 마음을 맡기는 것,인연은 그렇게 오는게 아닐가?

[작은 절들에 서린 삶의 애환]
456P.한 시인이 쓴 ‘절’
내 마음 오늘
절에 가서 절을 한다.
잎 한 장 한 장 만들어지는 동안
온기가 없어 차가운
오랜 그 옛 마룻바닥에 엎드려

일어난다 다시 쳐다본다
즐겁고 깨끗하고 늘 있는 나는
지난 봄이 사라진 숲 속에
가을의 마지막 시간 속에
덧없음만 항상하고 아름다워라

나 이길로 다시 돌아오라고
새싹의 아픔으로 돌아가라고
잎 한 잎 한 잎 떨어지는 동안에도 모든 것 향해 절할 수 있도록
내 마음 오늘
절하며 간다.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476P. ‘부처를 배우면 마땅히 부처가 되어야 하고, 진리를 닦으면 반드시 진리를 찾는다’ 는 말은 평범 속의 비범이다.
480P. 성불을 돕기 위해 나타나는 관음보살이 흔히 여자의 모습인 것은 ‘삼국유사’안에 여기 말고도 여러 군데에서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여자의 모습인가는, 일연이 결론 부분에서 “여자는 부녀자의 몸으로 나타난 섭화자라 할 만하다. ‘화엄경’에서 ‘마야부인 선지식이 열한 군데에 살면서 부처를 낳아 해탈문을 환상했다’는 거소가 같다. 이 이야기에서 여자가 아이를 낳은 숨은 뜻이 여기에 있다” 고 말한 데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자비롭고 희생적인 어머니의 정성과 같은 성격을 가진 이가 관음보살이다. 이는 불교가 중국으로 전해진 다음 더욱 강화된 생각이라고 한다.

[낙산사의 힘]
496P. 다른 경로를 통해 나중에 알게 되는 이 우연의 메커니즘, 사실 우리들의 만남은 대부분 이렇다.
497P. 도의 경지는 참으로 높은 데에만 있지 않고, 우리들의 일상 곳곳에 숨어들어 있음 또한 사실이다.
499P. 오늘날 우리가 선종이라 부르는 불교의 한 방식은 당대에 이단이나 마찬가지였다. 선종 초기 중국 쪽 사정과 마찬가지고 신라 땅에서도 금기시되거나 폄하 받기 일쑤였다. / 처녀가 남자와 관계하지 않고 아이를 낳은 이야기는 ‘신약성서’만의 독점물이 아니다.
504P. 세상살이의 헛됨을 비유하는 말은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한단지몽(邯鄲之夢) / 온갖 영화와 패배를 맛보는 꿈을 꾸고 깨어보니 밥이 되어 있었다는데, 한 세상사는 온갖 영고성쇠가 한솥밥 끓는 사이에 불과하더라는 이 절묘한 비유
508P.
좋은 시간 금세, 마음은 어느새 시들고
근심은 슬며시 늙은 얼굴에 가득
이제 다시 메조 밥 짓다 깨닫던 이야기 들추지 않아도
수고로운 인생 일순간 꿈인 걸 알겠네.
허망한 줄 모르면서 이전투구하고, 알면서도 뭔가 이뤄보려 악착을 부리는 게 우리네 평범한 사람이다.

4. 의해 (義解)
[운문사 이야기]
513P. 기록자가 자기 시대의 이념만을 고집해 당대의 생생한 자취를 남겨 주지 못한 점, ‘삼국사기’는 거기서도 비판 받을 여지가 있다./ 불교는 우리 사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종교다. 무릇 2천 년을 바라보는 오랜 역사에다, 거기 누벼진 사연이 많기도 많아, 불교야말로 이성으로만 받아들이는 어떤 형식으로서가 아닌 우리들 심성 깊숙이 내린 튼튼한 뿌리다.
515P. (원광) 본디 유학과 도학을 배웠으나 좀더 깊은 공부를 위해 중국 남북조 시대의 남쪽 진나라에 왔다가 불교를 만난다. “평소 세상의 경전에는 익숙해 이치를 궁구하는 데는 신통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불교 공부를 하자 도리어 썩은 풀 같았다. 헛되이 유교를 공부하는 것이 실로 생애의 두려움으로 다가와” 드디어 출가한다.
518P. 자리(自利)만 행하고 이타(利他)의 공이 없으면, 지금에는 높은 이름을 떨치지 못할 것이요, 나중에는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오.
521P. 일연은, 이미 13세기에, 이 땅에 뿌리내린 불교의 모습을 주체적으로 인식한 이였다고 보아 무방하리라.

[원효, 해동 불교의 자랑]
530P. 세상에는 너무 커서 들리지 않는 것과 너무 커서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지구는 자전을 하면서 소리를 낸다고 하는데, 그 소리가 너무 우리 귀에 들리지 않을 뿐이다.
537P. 무애의 원효가 지향하는 바는 관념이나 치장으로서의 불교가 아닌 현실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불교였다. / 어려운 불교의 교리를 쉽게 풀고, 누구나 가까이 하는 불교를 만들었다.
538P. 고고한 학승만으로, 폐쇄적인 선승만으로 아닌 모두의 승려, 무엇에도 얽매지 않았던 인간 원효를 가장 잘 바라본 이는 아마도 일연이 처음 아니였을까?
541P.
태어나지 말 것을, 죽음이 괴롭구나.
죽지 말 것을, 태어남이 괴롭구나 /
죽고 남이 괴롭구나.
543P. 원효는 대체로 낮은 자리에 사는 사람들의 친구였고, 우리는 이런 장면들에서 바보 같은 원효가 진정 바보가 아님을 확인하는 것이다.

[의상,화엄의 마루]
551P.원효의 ‘마음의 밖에 법이 없는 걸 어찌 따로 구하리요
567P. “솥 안의 국 맛은 한 점 고기로도 충분하다”

[순례자를 위해 부르는 노래]
569P. (인도) 힌두 문화의 오랜 전통 속에서, 이 세상의 영화보다 저 세상의 부귀를 더 갈망하는 그들의 심성 속에서는 헛된 세상의 욕심을 버린지 오래고, 심지어 고통스럽게 사는 이 세상을 더 달가워한다는 것이 머리로는 이해된다.

[스승에서 제자로 이어지는 어떤 것]
586P. 지장보살은 누구인가? 지장은 대지의 태, 곧 땅속에 묻어 있는 어떤 것이다. 땅이 지닌 덕을 의인화하였다고도 하는데, 지장보살은 현세의 이익을 가져다 주는 것과 함께, 죽은 이들의 구제자가 된다.
590P. ‘삼베를 붙들고 황금을 버린다’

5. 신주 (神呪)
[밀교의 한 자락]
604P. 더 극적이어서 가치가 높다는 말은 아니다. 평범한 속에서도 진리는 엄연히 존재하고, 그래서 깨달은 무상의 존재들은 얼마든지 있다.

6. 감통 (感通)
[무엇이 진정한 믿음인가]
656P. 정작 큰 스승들은 무엇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는 법이 드물다. 진리는 단순한 법이기에 그런 것일까, 유독 진신과의 만남을 중요시 여기는 불교에서 그 만남은 곧 진리의 깨달음을 다르게 표현한 말이겠는데, 단순하기만 한 진리를 전하는 진신은 이렇듯 슬며시 다가온다.
670P. 고려는 기본적인 국가 체계를 유학의이념에 두었다고 해야한다. 불교이 권위는 여전했드되 신라만큼 그렇게 철저하지도 절대적이지도 않았다.

7. 피은 (避隱)
[숨어사는 이의 멋]
673P. 불교적 인식의 숨음과 드러남을 이해하자면 보다 복잡한 변증법적 사고가 필요하다.
686P. 숨되 숨는 것이 아니요, 드러나되 드러난 것이 아니라는 불교의 변증법적 피은의 논리란 이런 것이 아닌가 한다.

8. 효선 (孝善)
[불교가 보는 효도]
699P. 복을 빌어 받되 받은 다음에는 제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 향가, 가장 고귀한 것의 정화
704P. (향가) 우리 고대 가요 중에 그 정형성을 최초로 획득했으며 지극히 높은 정신 세계를 구축한 시가 장르
711P. 향가의 최고의 작품, 충담사의 ‘찬기 파랑가’
열어 제치자
벗어나는 달이
흰구름 쫓아 떠간 자리에
백사장 펼친 물가에
기랑의 모습이 겹쳐져라.
일오천 자갈벌
낭이 지니시오던
마음의 끝을 쫓노라
아, 잣나무 가지가 높아
눈이라도 못 덮을 화랑이여

- 일연, 혼미 속의 출구
725P. 순수 불교의 자리에서 약간 벗어난 듯한 일연의 태도에서 우리는 괴승의 요소보다는 시대가 요구하는 어떤 점에 적극적으로 대처한 선각자적 태도를 발견한다.
728P. 밝음이 어둠이요 어둠이 곧 밝음이며, 어둠과 밝음은 종국에 둘이 아닌 하나라는 불교의 깊은 진리가, 일연의 개명 과정에는 숨어 있다.
733P. 이른바 지천명의 나이에 들어선 선승의 눈에 비친 시대상은 한마디로 파탄과 혼란그 자체였다 / 새롭게 서야 할 질서, 그것을 일연은 불교 안에서부터 보았던 것은 아닐까? / 새로운 시대상을 창출한다는 명제 앞에서 다른 산문의 경전을 해석하는 일이나 다른 산문의 고승을 스승으로 삼는 일이 무엇이 대수이겠는가. 오히려 거기에 가르침의 본질이 있다면 가서 배워야 하고, 그 업적을 널리 현창하여야 하는 일이다.
734P. 본질 앞에서 방편은 수정되어야만 한다.
741P. 일연은 종교와 문학등 다양한 방면에서 새로운 출구를 찾으려 한 혁신적 승려였다.


3. 내가 저자라면

이번 섹션에서는 두 가지 측면에서 본 주제에 대해 적어야 할 것이다. ‘삼국유사’에 관한 이야기와 ‘삼국유사’를 밑바탕으로 이를 풀이한 책 ‘우리들이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이하 우정삼)’ 자체에 대한 이야기. 이렇게 두가지일텐데 사실 ‘삼국유사’에 직접 쓰여진 약 140여개의 이야기를 직접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우정삼’의 저자 고운기를 통해 풀이된 1/3 정도의 이야기만을 가지고 판단할 수 밖에 없는 한계로 인해 실제와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먼저 핵심인 ‘삼국유사’ 5권의 9개 절에 대해 ‘우정삼’의 각기 다른 장에 흩어져 풀이된 내용을 모아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특별히 덧붙이고 싶은 부분은 해당 편 하단에 화살표로 표기하고 설명을 추가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삼국유사 전반부]
1. 왕력(王曆) 편 | 왕 연대기 모음 | 구성: 연대기로 구성되어 있음 | ‘삼국유사’ 전체의 기반이 되는 삼국의 왕조사를 정리하고 있는 부분이나 ‘우정삼’에서 고운기는 별도로 왕력편은 싣지 않고 있다.

2. 기이(紀異) 편 | 기이한 이야기 모음 | 구성: 한 왕과 그 왕대의 특징적인 사건 하나를 묶어서 기술 | 포함된 이야기 예시: ‘신라의 시조 혁거세왕’ ‘미추왕과 죽엽군’ ‘내물왕과 김제상’ ‘후백제와 견훤’등.. | ‘기이’ 편은 양적으로도 역사 자료의 가치가 충분히 있으나 기술방식이나 역사관에서 ‘삼국사기’와는 다른 무엇을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우정삼'의 저자 고운기는 이야기 하고 있다. 일연은 단군신화부터 삼국 왕들의 탄생 신화 및 건국신화등을 비록 현재의 우리에게는 기이하게 보일 지라도 모두 수록해 두었다. 특히 첫 부분에는 ‘삼국사기’에는 다뤄지지 않은 단군신화까지 포함하고 있어 이 '삼국유사' 책 자체를 좀 더 가치 있는 책으로 격상 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는 부분이다.

→ 단군신화부터 삼국 시대의 각 왕들의 이야기를 묶어낸 이 ‘기이’ 편을 단군신화로부터 반만년이 지난 현재에 후손인 내가 읽고 있는 이 기분은 경이로움을 넘어 한편으로는 인생의 무상을 느끼게도 한다. 그 시기에도 인생, 정치사에서 현재와 다를 바 없는 배신, 탐욕, 충성, 질투등 인간 본성들이 여지없이 나타나는데 반만년 역사에서는 그들도 결국 ‘찰나’에 머물렀던 사람들이 아니던가. 현재의 우리도 먼 언젠가에는 그런 ‘찰나’의 모습으로 묻혀가겠지. 하지만 분명 그 순간을 그렇게 치열하고 열심히 살아냈기에 현재의 우리가 있을 것이다. 우리 또한 현재의 우리 삶을 제대로 살아내야 후손들이 또 우리처럼 뒤이어 살아갈 수 있을 게다. 이야기들을 읽어나가면서 인생 살아감에 있어 너무 사사로운 것에 연연해 하지 말자. 우리 인생도 ‘찰나’이지 않는가 싶은 마음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또 이렇게 주어진 ‘찰나’의 순간을 잠깐이기에 아쉽지만 달콤하게, 소중하게 살아내야겠다고도 다짐해 본다.
이 편에서는 일연 스스로도 단군신화와 각 왕들의 탄생설화가 기이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도 굳이 제목을 ‘기이’라고 정하고 모든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다. 이는 ‘삼국사기’에서는 터무니없다고 다루지 않던 것과는 대조되는 부분으로 주체적이고 자발적인 우리의 뿌리를 세우려고 노력한 부분이 아니었을까. 다른 한편 왜 이렇게 기이한 이야기를 누가 만들고 전해 내려오는 것일까? 조셉캠벨이 신화의 힘에서 얘기한 것처럼 “사회는 당시에 알려져 있던 모든 종류의 마술을 그에게 바쳐버리지요.그래서 이런 인물이 정도에 지나치게 신격화되어 버리는 겁니다.(신화의 힘,260P)” 일까. ‘기이’ 편을 읽는 동안 또 하나 생각해 본 부분이 있다. 단기와 서기 표기이다. 우리의 역사를 표기하는데도 기원전, 후를 표기하는 것은 물론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날짜 표기이기에 인지하기 편리하지만 그러면서 아예 단기라는 개념을 잊고 지내고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든다. 나 또한 까맣게 잊고 있다가 ‘삼국유사’를 보면서 새삼 단기로 표기되는 우리 식의 날짜 표기가 떠올랐다. 세계 공용등의 이슈와 별도로 현재 방식의 날짜 표기와 함께 단기도 달력등에 적극적으로 함께 표기함으로써 우리의 뿌리를 계속 일깨우는 게 어떨까 싶기도 한다. 진정한 코리아니티로 나아가는데 필요한 뿌리 알기의 기초가 되지 않을까?

[삼국유사 후반부]

3. 흥법(興法) 편 | 불교 전래와 관련 이야기 모음 | 구성: 총 6개 조 (고구려,백제,신라의 순으로 불교가 처음 들어온 경위 소개 3조 + 그 이후 전개 과정 가운데 특이한 사례를 각각 3조) | 포함된 이야기 이야기 예시: ‘마라난타가 백제 불교를 열다’ ‘아도가 신라 불교의 기초를 놓다’ ‘원종은 불교를 일으키고 염촉은 몸을 바치다’ 등 | 삼국에 처음 불교가 어떻게 들어왔는가, 그리고 어떤 식으로 전개되는가를 설명한 부분으로 이 편에 들어서면 저자 일연의 승려로서의 모습이 나타나는 불교적 성격을 띠는 부분이다. 본인이 승려이기 때문인지 전반부에 비해 이야기도 다채로울 뿐만 아니라 인용한 책도 다양하나 일각에서 이런 부분들 때문에 삼국유사를 불교문화사라고 정의 내리기도 한다고 ‘우정삼’의 저자 고운기는 이야기 하고 있다.

4. 탑상(塔像) 편 | 탑과 불상에 관한 이야기 모음 | 포함된 이야기 예시: 장륙존상, 만장사 | 후반부에서 가장 만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 편 자체로도 불교 사료가 되어 당시의 역사를 재구성해 볼 수 있음. 절 자체에 대한 소개는 미미한 편이다.

5. 의해(義解) 편 | 고승들의 전기 모음 | 구성법 : 14가지 이야기 수록 | 원광서학, 귀축제사, 원효불기,의상전교등 | 원광등 고명한 승려들의 전기를 누가 봐도 편찬자의 두터운 사랑을 받았음을 한눈에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집필하고 있다. 최소 이 부분만큼은 본격적인 승전이라 생각하고 작성했을 수도 있는데 ‘삼국유사’의 문장이 난삽한데다 바르지도 않다는 비판은 ‘의해’ 편에서만큼 일단 유보 하는게 좋겠다는 ‘우정삼’의 필자 고운기의 의견이다. 참고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죄다 동원했다는 느낌의 인용과 자기 기술간의 매끄러운 연결 등은 다른 편에서 볼 수 없다

→ ‘우정삼’의 저자 고운기는 승려 일연이 많은 승려 중 특히 ‘원효’에 대해 특별한 애정을 품고 바라본다고 이야기 한다. 이야기에서 보여지는 원효는 바람같고 개방적이며 혁신적인 사람이다. 또한 오어사에서의 일화를 보면 무척이나 재간둥이처럼 매우 재치있게 그려지기도 한다. 그런 그를 승려 일연은 비슷한 기질을 타고났기에 더욱 닮고 싶어하고 인생의 역할 모델로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특히 나에게는 이 절에서 원효가 한 시신 앞에서 축원한 시가 기억에 남는다.

태어나지 말 것을, 죽음이 괴롭구나.
죽지 말 것을, 태어남이 괴롭구나.

한 문장으로 다시 줄여서 ‘죽고 남이 괴롭구나’ 라고 했다지만 위의 두줄짜리 시가 나의 마음에는 왠지 아련하게 와서 박힌다. 죽음과 생에 대해 관심이 많은 '나'이기 때문일까.

6. 신주 (神呪) 편 | 밀교 신승들의 이야기 모음 | 포함된 이야기 예시 : 밀본,혜통,명랑등의 이야기 | ‘의해’ 편과 비슷하나 그 당시 밀교를 바라보던 일부 부정적 시각이 아닌 밀교에 대한 일연의 호의적 시각으로 저술하고 있다.

7. 감통(感通) 편 | 불교를 매개로 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모음 | 구성법: 10개 조 | 포함된 이야기 예시: 정수 스님이 얼어 죽을 뻔한 여자를 구하다. 등 | ‘감통’ 편 또한 ‘의해’ 편과 성격이 비슷하나 일반 승려나 신도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체화된 불교를 이야기 위주로 쓰여지고 있다.

8. 피은(避隱) 편 | 피세은거 한 승려 및 그 외 사람들의 이야기 모음 | 구성법: 10개 조 | 포함된 이야기 예시: 혜현, 낭지, 관기, 도성, 연회등의 이야기 | 주인공들은 대부분 승려들이지만, 불교만이 아닌 여러 가지 모양의 피세은거 소개


9. 효선(孝善) 편 | 효행이 뛰어난 사람들의 이야기 모음 | 포함된 이야기 예시: 손순, 김대성, 진정 스님등의 이야기

→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큰 수확은 나의 시조에 대해 다시 한번 활자로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바로 '효선’ 편에 나오는 이야기 중 어머니의 밥을 자꾸만 빼앗아 먹는 자신의 아들을 땅에 묻으려던 ‘손순’의 이야기가 나의 시조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어찌나 놀랍고 반갑던지. 물론 ‘우정삼’의 저자 고운기는 이와 관련된 이야기와 비슷한 내용이 중국에서도 전해 내려온다고는 하나 나의 시조이야기에도 ‘신화’는 아니더라도 ‘설화’쯤은 하나 필요한 것 아니겠는가. 그 자체를 통해 나의 뿌리를 확인하고 이야기를 통해서는 나를 돌아보는 기회로 삼는 것도 좋으리라. 물론 이 절을 읽으며 나의 시조가 행했던 부모님에 대한 효행을 후손인 내가 얼마나 실천하고 있는지 다시금 생각해 본 것은 물론이다.


‘삼국유사’는 흔히 김부식의 ‘삼국유사’와 많이 거론되곤 한다. ‘우정삼’의 저자 고운기가 서문에 이야기 하고 있듯이 대한민국에서 공교육은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시험문제에서 ‘삼국사기-김부식’ ‘삼국유사-일연’식의 짝짓기 문제를 보았을 것이다. 나 또한 늘 헷갈리던 부분이다. 게다가 솔직히 말하면 부끄럽게도 여태껏 ‘삼국지’는 2차례나 읽어봤음에도 불구하고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읽어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지금 ‘삼국유사’를 대략 접해본 나의 입장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것처럼 거시적으로 '삼국유사'를 불교서적인 승전으로만 봐야 한다,'삼국사기'와 달리 어떻다 등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된다. 다만 확실히 알수 있는 부분은 앞 단 기이편에서 덧붙인 것처럼 ‘삼국사기’와 달리 우리 뿌리의 근원인 단군신화 및 삼국 왕의 이야기를 확실하게 싣고 있는점, 굽이굽이 다양한 서민들의 이야기까지 모두 수록하려고 노력한 점, 우리의 시조인 향가를 되도록 많이 싣기 위해 노력한 부분에서는 우리만의 주체적인 첫 역사서를 만들기 위해 그가 많은 노력을 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또한 중국 중심의 역사관을 갖고 있던 시절에는 대단한 파격적 행동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틀을 깨는 주체적 관점을 가졌다는 관점에서 보자면 '삼국유사' 를 '삼국사기'에 비해서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확연히 드러나는 신라 중심의 이야기 전개 및 ‘삼국유사’의 후반기인 ‘흥법’ 이후부터는 대부분 불교와 관련된 이야기의 전개는 전체’ ‘삼국유사’의 관점과 의미에서 보면 균형이 깨지는 것도 사실인 것 같다. 그 시대의 일반적인 생활상을 파악하고자 하는 욕구까지 만족시키는 데에는 분명 한계가 있는 것이 무척 아쉽다. 특히 고구려나 백제와 같은 지역의 이야기가 신라만큼 할애되어 있지 못하고 간단한 언급 정도로 넘어간 부분들은 정말 발을 동동 구르게 아쉽기도 하다. 물론 일연 또한 사료가 부족한 이전 시기의 이야기를 적기에는 무리가 있었으리라. 또한 덤벙대시는 성격에 년도 표기와 참조 책이 맞지 않는 등의 부분은 역사를 남긴다는 큰 뜻을 품었다면 조금 더 신중하게 주의했어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더불어 이 ‘우리들이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에 대해서 덧붙이면. 전반적으로 방대한 ‘삼국유사’의 140여편 이야기를 때로는 절을 달리해 가며 잘 갈무리 해 본인의 맛깔스런 짧은 이야기와 함께 재미나게 묶어 풀어낸 부분들은 자칫 어려울 수 있는 고서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아마 그대로의 ‘삼국유사’ 원본이었다면 읽기 시도조차 못했을 것이다. 또한 이야기에 다뤄지는 그 지역 또는 장소의 현재 모습을 사진과 DVD로 담아 함께 제시한 부분 또한 내용을 더욱 풍성하게 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책의 부피에 대한 고려도 있었겠지만 몇몇 부분에서는 왠지 저자 고운기의 이야기가 계속 잘리는 듯한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벨을 눌러놓고 도망가는 아이처럼 이야기를 불쑥 꺼내놓고 바로 ‘삼국유사’ 이야기 제시로 들어가는 부분들은 약간의 아리송함을 주기도 했다. 특히 책을 마치는 말미에는 왠지 다음 장이 찢어지고 사라진 것처럼 불쑥 끝나는 것 같아 당황스럽기도 했다. 또한 이야기 속에 나오는 다양한 지역과 장소를 사진에 담아 보여준 부분에서는 페이지 중간중간에 사진이 있으므로 종종 책의 흐름을 방해하기도 하고 그다지 연결이 되지 않는 듯한 사진이 나오는 것 같기도 한 기분이 든다. 차라리 279페이지로 압축되어서 발행된 특별보급판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처럼 앞 단에 사진을 모두 담아 보여주고 글 속에서는 앞에 사진 몇 페이지 참조 정도로 구체적으로 연관되는 사진을 짝지어 주는 게 더욱 좋지 않았을까 싶은 의견이다. 마지막으로 추가하자면 불교 용어가 굉장히 많아 사전을 찾아보며 읽어봐야 하는등 약간의 부담이 있었는데 간단하게 불교용어를 정리해서 뒤편에 실어 주었어도 좋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다.

처음에는 선생님께서 연구원 4기 2차 시험을 위해 제시하신 도서 목록에서 ‘신화의 힘’ ‘삼국유사’ 등을 제시하신 것을 보고 설마 일부러 어렵고 두꺼운 책으로 시험하시려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좌절 했었다. 하지만 ‘신화의 힘’, ‘삼국유사’를 한 권씩 한 권씩 차분히 읽고 정리하다 보니 종국에는 이것들이 나중에 내가 연구원이 되어 해야 할 일중 ‘한국과 세계’라는 주제를 가지고 그 어울림의 방식을 다루어 보고자 하시는 선생님의 뜻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밑 작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아직 지원자의 입장에 그렇게 생각하는 게 무리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게 맞다면 확실히 효과는 보이고 있는 것 같다. ‘신화의 힘’에서는 신화와 관련된 전반적인 의미와 존재를 생각 해 보고 이어서 ‘삼국유사’를 통해 이 신화 혹은 설화가 한(一) 나라에 적용이 되어서는 어떤 의미와 위엄,가치를 갖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오로지 ‘나’에 대한 생각으로만 채워 오던 머리 속에 ‘한국인’으로서의 뿌리와 위치도 같이 생각해 보는 가치 있고 소중한 사유의 시간이었다. 이런 기회를 다시 한번 감사하게 생각하며 두번째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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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3.09 19:08:19 *.70.72.121
점점 열심히 곱씹어 삼키는 모습이 좋아보이네요. 2차 과제 중에 나중에까지 긴요하게 쓰이는 것들이 아주 많아요. 앞으로 해나갈 연구원 수업의 밑그림 같은 것이지요. 이 때의 폭발하는 열정이 귀하다는 것 연구원 모두 알게 될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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