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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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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9일 16시 51분 등록
1.저자소개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
일연은 1206년 경상도 경산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이씨가 태양이 배를 비치는 꿈을 꾼 후 태기를 얻고 그를 낳았다 하니 일연은 태양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자신의 태몽에 대해 궁금히 여기고 의미 부여하기를 좋아하는 것은 이런 연휴인지도 모르겠다.
일연은 사람됨이 과묵하여 허튼말을 하지 않았고 특별한 스승을 거치지 않고 스스로 수양하였다.
일연이 쓴 책은 모두 100여권나 된다 하니 그의 박식함을 볼 수 있겠다.
그는 삼국유사에서도 잘 드러나 있듯이 신화, 설화, 야화등을 역사의 흔적으로 받아들여 기록함으로 그 이야기가 지닌 상징적 의미를 재해석하고 백성을 평안케하며 한국역사의 불교를 이끌어 낸 인물이다.

그의 본래 이름은 김견명, 홀어머니에게서 자라난 그는 8살때 어머니의 품을 떠나 전라도 광주의 조그만 절로 공부하러 떠났다.
그로부터 여섯해가 지나, 열네살때 양양의 진전사로 가서 스스로 머리를 삭발하고 승려로서의 삶을 살게 되고 이때 이름은 회연이었다.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면, 최씨정권의 무신정권기와 몽고 제국에 흩어져 있는 모든 부족을 통합하여 몽고제국을 설립한 몽고전환기의 혼란한 시대 상황이었다.
이 시기 고려사회는 통째로 뒤흔들렸으며 기존에 세워졌던 질서가 무너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이념과 새로운 사상이 자리잡게 된다.
이때 일연은 우리 역사를 중국의 속국이 아닌 주체적으로 바라보고자 했으며, 비록 힘없고 작은 나라이었지만 나라의 지존을 잃지 않았던 사람이다.

상상해보라. 14살이라는 사춘기의 소년시절에서 청년이 되기까지, 진전사라는 강원도 골짜기에 머물면서 혼자서 수행할 수 밖에 없던 그의 생을.
개인의 운명은 시대와 함께 모진법이다.
오랫동안 원의 간섭을 받아야만 했던 국가의 원통한 시절속에서 일연은 여기 저기 옮겨 다니다, 자신이 머문 지역에 전해져 오는 이러 저러한 이야기들을 꼼꼼히 메모해 두었다가 그 이야기들을 통해 민족의 주체성을 드러내고자 했다.
일연은 삼국유사를 통해 단순 역사서에 그치지 않고 우리 고대사를 입체적으로 조망해볼 어떤 틀을 제시함은 물론 나라를, 한 사회를 지키는 것은 정치가의 저 잘난 사람이 아니라 바로 민중임을 , 백성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일연의 삶에 주목하는 것은 그의 찬란한 업적보다도 그가 삶을 살아낸 태도이다.

그가 머물렀던 진전사는 강원도 골짜기이다.
설악산 품에 안긴 서늘한 바람과 검푸른 바다가 펼쳐지고 감당못할 고요가 밀어닥쳤을 것이다.
일연 그가 이 골짜기에 있는 동안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이었음을 감안할 때, 아무리 수행을 한다지만 두고온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세속에 대한 아쉬움과 때때로 알지 못할 기쁨 같은 것이 무찔러 들어왔을 것이다.그 가운데에서도 자기를 잃지 않은 자기로서의 삶을 살아낸 그것이다.
이름은 김견명, 승려로서의 이름은 회현, 말년에 쓰인 이름은 일연, 일연이 임종한 뒤 1985년 인각사 그의 시비에 이런 시가 새겨졌다.
좋은시간 금세, 마음은 어느새 시들고
근심은 슬며시 늙은 얼굴에 가득
이제 다시 메조밥 짖다 깨닫던 이야기 들추어도
수고로운 인생 일순간 꿈인 것 알겠네.
그랬을 것이다. 모진 시간 속에서도 민족의 자긍심과 주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그의 근심이 얼굴에 가득하였을 것이다. 이곳 저곳 떠돌아 다니며 모은 이야기들을 들추어 나라의 지존을 세우고 백성을 평안케 하고자 했던 그의 얼굴이 가슴에 아로새겨지는 듯 하다.


<우리가 알아야 할 삼국유사의 저자 고운기>
고운기는 1961년 전남 벌교 출생으로 한양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 연세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동안 삼국유사와 관련 연구로서 <일연>, <일연과 삼국유사의 시대>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를 냈다.
또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밀물 드는 가을 저녁 무렵’이라는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고
<나는 이 거리의 문법을 모른다>등 세권의 시집을 선보였다.
1999년부터 일본 게이오 대학 문학부 방문 연구원으로 일본의 고시가를 비교 연구하였으며 현재 연세대학교 국학 연구원 연구교수이다.

그가 시인으로 등단하게 된 ‘밀물 드는 가을 저녁 무렵’ 시 한 구절을 읽어보자.

먼 바다 쪽에서 기러기가 날아오고
열몇 마리씩 떼를 지어 산마을로 들어가는
밀물 드는 가을 저녁 무렵
<중략>
열심히 쌓던 모든 것을 놓아두고
각자의 집으로 찾아들어간 조무래기들의 무심함만큼이나
물은 사납거나 거세지 않게
천천히 고스란히 잠재우고 있었다
먼 바다 쪽에서 기러기가 날아와
산마을 어디로 사라지는
밀물 드는 가을 저녁 무렵


이 시로 신춘문예에 당선된 고운기씨는 독자가 공감할 만한 개인적 체험의 차원을 떠나지 않으면서 우리 시대의 갈등, 또 영원한 삶의 갈등을 읊고 있다는 평을 받앗다.
한 시대의 비극 속에 놓인 시인의 정서를 단순하고 단단하게 포착하여 어떤 중심을 향해 정신적 집중을 이루어 내고 있다.
이 같은 고운기씨가 시대의 갈등 상황과 휘몰아치듯 격변기 시대를 살앗던 일연의 생과 그 시대의 이야기 집이며 역사와 철학이고 문학이라 말할 수 있는 삼국유사에 매달리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2.내 마음 속에 들어 온 글귀

삼국유사를 왜 읽느냐는 한민족의 출발이기 때문이다. 단군을 우리 조상으로 받아들이고,한반도를 중심으로 멀리 고구려가 차지했던 영토까지 바로 우리 민족의 경계이며 그 안에 살던 사람들이 한민족이라 말한 첫번째 책이다 18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면면을 두루두루 보여 주기 때문이다. 역사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저 이름 없는 민중이라고 일연 노스님은 구체적으로 가만히 보여주고 있다. 18

삼국유사를 읽는 동안 나는, 동굴 속의 곰이 되어 보기도 하고 매에게 쫓겨 피를 흘리며 제 새끼를 품고서 두려운 눈을 휘둥대는 꿩이거나 그것을 측은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한 지방 관리가 되어 보기도 하고, 있는 식량 다 털어 주먹밥 여섯 덩이 채워 주고 구도(求道)의 밤길로 내쫓는 비원의 어머니이거나, 그 아들이 되어 보기도 한다. 18

삼국유사는 700년 전에 쓴 글이기에 어쩔 수 없는 벽을 넘어가기가 쉽지 않다. 그 때문에 자칫 책 읽는 재미를 느끼지 못할 위험을 도사리고 있다. …무딘 재주를 무릅쓰고 ‘해설서로서의 삼국유사’를 내자 생각하고 실행에 옮겨 2002년 봄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두둰을 내었다. 많은 분들의 힘을 업어 이 책의 보급판으로 보다 쉽게 만나볼 수 있고 독자들이 좀더 재미있고 실감나게 삼국유사를 읽을 수 있도록 했다. 19

삼국유사에 대한 가치부여와 중요성 제고와는 달리, 우리가 이 책을 실제대로 올바로 알고 있는지, 그 세계에 한번쯤은 깊이 빠져 본 경험이 있는지 문제는 거기에 있다. 23

삼국유사의 첫머리에 단군조선을 실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삼국유사는 이 시기에 우리 역사를 주체적으로 바라보고자 했던 지식인들의 일련의 작업속에 놓여 있다. 26

일연은 1206년 경상도 경산에서 태어났다. 이름은 김견명이었다. 열네살때 강원도 양양의 진전사로 가서 삭발하고 승려로서의 이름은 회연이었다. 몽고 전란기의 혼란한 사회 상황에서도 올곧은 수도생활을 계속하여 삼중대사, 선사, 대선사 등의 직급에 올랐다. 일연이라는 이름은 그의 말년에 쓰인 것으로 보인다. 27

우리가 그를 존경해 마지않는 것은 무신 정권기와 몽고 전란기를 헤쳐가면서 그가 보여준 삶의 궤적 때문이다. 비록 작은 나라로 힘없는 자의 설움을 당하면서도 지존을 염두해 두었던 사람이다. 28

삼국유사는 전체가 왕력, 기아, 흥법, 탑상, 의해, 신주, 감통, 피은 효선 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왕력은 삼국유사 전체 기술의 기반이 되는 부분이고 기이 편은 우리에게 뿌리가 되는 나라와 왕들을 기이한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나 굳이 수록하겠다는 것,,,그래서 단군신화가 처음으로 기록되었다는데에서 더 이상 강조할 필요가 없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
홍법이하의 편들은 불교문화적 관점에서 당대의 삶을 기록했다. 일연은 승려이고 분명한 불교적 역사 의식을 가진 사람이었다. 불교문화사란 그런 저자에게서 나올 수 있는 당연한 결과다. 다만 불교 하나로 모든 것을 재단하고 있지 않다는 점, 그러므로 읽는 이도 어떤 편협한 선입관에 빠져서는 안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29

일연은 삼국유사를 쓰면서 삼국사기와 같은 역사서로만, 고승전 같은 불교서로만 만족하지 않은듯 하다. 그것들이 어우러지면서 우리 고대사를 입체적으로 조망해 볼 어떤 틀을 만들어 냈다고 봐야 옳지 않을까 30

일연이 살았던 13세기의 사람들이야 말로, 그 샘과 뿌리를 단군이라고 본 첫세대였던가 한다. 34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 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 땅에 세워진 첫나라의 이름이요 이후 우리 역사에서 이만큼 자주 국호로 애용된 이름이 없다. 단군조선, 위만조선, 그리고 이씨조선에서 조선민주공화국까지…오늘날 북한이 정식 국호를 조선이라 하고 있는점을 감안하면, 정통성 시비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그들의 몸부림을 어느정도 이해할 만하다. 41

책의 처음을 시작할 때 책 전체의 집필의도를 함축할 어떤 상징적인 것을 내세우고 싶어한다. 일연의 삼국유사에서 단군신화는 그러한 상징이다. 42

세상이 아니라 나라다 기독교 성서의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사람을 비롯한 세상의 온갖것을 만들었다는 이야기와 다르다. 처음 환웅이 신단수에 내려 왔을 때 그곳에는 이미 사람사는 세상이 존재하고 있었다. 다만 그들을 묶어 나라를 이룩하고 다스리는 제도가 없었을 분이다. 42

고려 왕조에 들어 이전 시대를 정리하는 처음 역사서는 삼국사기가 차지했다. 12세기 중반의 일이다. 사실 삼국사기는 한반도에 살았던 지식인층이 중국으로부터 문자와 그와 관련된 여러 문화를 전수받은 다음, 이제 완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 했음을 보여 주는 책이다. 43

삼국사기가 나온 12세기 중반과 삼국유사의 13세기 후반까지는 150여년의 사이가 있다. 고려는 역사적으로 커다란 두가지 사건을 겪었다. 첫째는 무신정권의 성립이고 둘째는 몽고와의 전쟁이다. 이 사건은 고려 사회를 통째로 뒤흔들어 놓았는데 무엇보다 기존에 세워졌던 질서가 무너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이념과 사상이 자리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삼국사기와 그 시대에 수놓아졌던 사대주의는 힘을 잃는대신 거기에 희미하게나 민족의 주체성 같은 것이 자리한다. 매우 의미심장한 변화다. 45

조선의시대 곧 고조선과 위만조선이 끝나고 한반도에는 여러 나라가 군웅할거하는 시대를 맞는다. 한나라가 위만조선을 물리친 자리에 이른바 4군을 두는 때와 같은 시기인데, 나는 이것을 앞서 ‘한반도판 전국시대’라 부르기도 하였다. 일연을 그런 여러 나라를 일일이 소개하고 있다. 이 점 또한 삼국기와 다르다. 비록 짤막짤막한 기사들이지만 대방, 말갈, 발해, 이서국, 가야등을 소개하고 한나라의 4군이 2부로 다시 70여 개의 나라로 갈려 졌음도 서술한다. 이른 바 전국시대의 여러 나라이다. 52

난생 신화의 핵심은 결국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이리라 그 옛날 왕을 맞이하는 어떤 의식과 관련이 있을 듯 하다. 59

주몽의 이 같은 고난과 극복은 소설의 이론에서 말하는 ‘영웅의 일생’에 부합한다. 영웅은 특이한 재주를 지니고 태어난다. 그러나 성장과정에서 주변으로부터 많은 공격을 받아 고난을 겪는다. 영웅은 그가 타고난 능력으로 이 같은 고난을 극복하고 이상을 실현해낸다 60

삼국사기가 여섯 부족을 ‘조선유민’이라 한데 반해 일연은 “여섯 부족의 시조는 모두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한다. 되도록 이성적 판단에 맞아 들어가는 것을 추구햇던 삼국사기의 세계와 일연 사이에 놓이는 차이점을 여기서도 확인한다. 66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말은 곧 오리지널의 출발을 의미할 것이다. 이제 남쪽에서도 하늘에서 내려온 이들이 있음을 말하는 일연의 의도란 곧 북쪽과 계통을 달리하는 오리지널이 있음을 강조하는데 있지 않을까? 68

무당의 탄생이력을 담은 이야기는 고대 국가의 건국 신화와 사촌간처럼 가깝다. 그것은 고대로 올라갈수록 왕권과 신권이 분리되지 않았던 데에서 연휴한다. 삼국의 건국 신화가운데 신라 쪽이 유독 무조 신화나, 민간 전승의 신모 신화와 가까운 것은 왕실의 성격이 곧 거기에 기반을 두었다는 강한 증거다. 74

오래도록 남성에 복종하며 살아온 일본의 여선들이 자신의 일을 찾고 자기의 삶을 추구하는 쪽으로 변하고 있는데 그들이 내세우는 상징적인 인물이 하미코라는 것이다. 79

일연은 삼국의 역사적 사실을 쓰면서 삼국사기에 많은 부분 의존하고 있다. 자신이 조사한 부분이 일부 첨가되기는 한다. 그런데 연오랑 세오녀의 이야기에 와서 처음으로 일연은 삼국사기를 떠나 독자적인 길을 가고 있는데, 매우 자신만만한 태도다. 83
일연은 승려다. 승려 생활을 구름이나 강물처럼 머물러 살 수 없는 운명을 나타난 존재, 운수행각이라고 한다. 일연 또한 거기서 예외일 수 없었고 그래서 여기 저기 옮겨 다니며 살았지만 13세기의 혼란스러런 고려 사회가 그 삶을 더욱 모질게 했다. 그런데 일연은 여러 군데 옮겨 다니는 생활 속에서 일연은 남다른 일 하나를 했다. 자기가 머문 지역에 전해오는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을 빠뜨리지 않고 모았다는 점이다. 자신이 승려라 해서 불교적인 데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의 관심은 광범하게 퍼져 있다. 오늘날의 민속학자가 따로 없다.83

영일은 한자어로 뜻을 풀었을 때 해를 맞는 고장이다 신라와 일본의 교통에서 영일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 두가지가 자연스레 결합되어 나온 것이 연오랑과 세오녀의 이야기이다. 해와 달이 사는 세상에서 우주의 어느 별자리보다 중요한 것임은 말할나위 없지만 그것은 고대인에게 더욱 절실했다. 무당들이 모시는 가장 높은 신은 해와 달과 별 곧 일월성신이다 고대 삶의 모습을 지금까지 충실히 지키고 잇는 그들에게서 우리는 고대인이 지녔을 사유방식의 틀을 읽는다. 84

신라 사람들이 잃어버린 것은 해와 달이 아니라 해와 달을 볼 수 이는 그 정령이었다. 연오랑 세오녀는 해와 달의 정령이었다. 정령을 잃은 사람은 눈 뜬 소경과 같다. 사회도 그렇다. 일연이 강조한 것은 거기에 있지 않을까? 85

문득 그 정령은 먼 나라로 갔다. 그런데 정령의 존재를 알고 서둘러 따라온 신라 사람들을 우리의 아리따운 정령들은 맨손 쥐어 돌려보내지 않았다. 이런 것이 우리 설화의 기본 구조다. 그것은 수천년을 이땅에 자리잡고 살아온 우리네 사람들의 심성이기도 하다. 86

아무리 귀신인들 그들이 곧 사람을 이롭게 하는 존재로 그려진 이상 그다지 두려울 일은 없다. 신라 사람들에게 귀신은 그렇게 다가왔다. 93

귀하신 왕의 혼으로 아들을 낳으니/ 비형랑 그 사람의 방이 여기네/ 날고 뛰는 가지 가지 귀신들아/ 이곳에 머물지는 말아라 일연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 노래를 붙여 귀신을 쫓는 습속이 생겼다. 94

최근 연구결과 딸의 아버지 이름이 스에쯔미노미코토인데 여기서 스에는 스에키라는 도자기를 생산하는 곳의 지명이고, 이 도자기의 생산자들은 고대 백제계 이주민들로 밝혀졌다. 까라서 이 사람들에 의해 한반도로부터 전해진 설화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견훤탄생담 같은 야래자 설화가 견훤 이전에도 한반도에 퍼져 있었고 그 증거는 앞서 도화녀의 이야기에서 나타나거니와 그 같은 틀은 도래인들에 의해 일본에까지 전파된 것으로 이해 할 수 있다.

밤에 찾아오는 손님은 보통 손님이 아니다. 아무에게나 찾아오지도 않는다. 그것은 적어도 왕의 권위를 가지고, 더 크게는 신탁의 임무를 띠고 나타나, 구물구물 살아가는 이 땅의 중생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간다. 97

역사는 충신들이 만들어 낸 역사인지 모른다. 신라의 전반기가 박제상과 이차돈이라는 충신이 만들어 낸 역사라면, 그 중반기가 김유신이라는 충신이 만들어낸 역사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100

왕이 될 만한 이로 춘추밖에 없었고 문희와의 결혼이 이루어졌을때라야 신라와 가야는 진정한 한 나라가 된다는 생각이 그 밑에 깔려 있었다. 그것이 최재서가 말하는 ‘민족의 결혼’이었다. 107

김유신의 나라에 대한 충성은 누구에게도 견줄 바 아니다. 힘으로 안되면 지략으로, 지략으로 모자라면 신술을 써서라도 주어진 일을 해내고야 마는 그였다. 110

신라가 당나라를 끌여들여 벌인 전쟁이 힌 민족의 영토를 축소한 결과를 초래했다고 비판받지만 기록을 자세히 살피자면 당나라에 전부 뺏기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없지 않다. 한반도 땅 전체를 집어 삼키자는 것이 당나라의 속셈이었기 때문이다.문무왕 법민은 좀 더 적극적으로 평가한다면, 그런 당나라와 맞서 최대한의 땅을 지켜 낸 사람이다. 115

사실 그 이후로도 문무왕은 끝까지 당나라와 살얼음을 밟는 듯한 관계를 계속했다. 싸움은 거의 그칠날이 없을 정도다. 116

왕위에 있었던 20년동안 문무와은 당나라와의 투쟁을 계속한다. 당나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을 꾀어 신라를 괴롭히게 하고 문무왕은 그것을 역으로 이용하여 당나라 군사를 쳐부순다. 당나라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고구려와 백제의 반란군을 제압한다는 명분아래 싸움을 일으키되 실제로 주적은 당나라 군사로 삼았던 것이다. 문무왕의 이런 행적은 크게 평가받아 마땅하다고 여겨진다.
그런 까닭에 문무왕은 한시도 편한 날이 없었다. 삼국사기에 실려 있는 왕이 죽을 때 남긴 조서에는 “풍상을 무릅쓰다 보니 마침내 고질병이 생겼으며 정무에 애쓰다 보니 더욱 깊은 병에 걸리고 말았다.”고 적고 있다.118

살아서 사천왕사를 지어 나라를 지킨 문무왕은 죽어서는 용으로 태어나 그 일을 계속하겠다고 한다. 용으로 태어나는 것은 축생도 곧 지옥이나 다를바 없는 곳에 떨어지는 일이다. 지의 법사가 이를 걱정해서 한마디 거들지만, 왕의 신념은 비록 축생도에 떨어진들 변함없어 보인다. 문무왕의 이 같은 거룩한 생각은 그 아들 신문왕에게 이어져 더욱 아름답게 꽃핀다. 뭄무왕의 이름이 법민인데 비해 신문왕의 이름은 정명이다. 두 이름을 합쳐보면 법정<法政>민명(敏明), 두왕에 걸쳐 정치와 법이 밝고도 바르게 이루어지기를 이름에 넣어 소망항것이지만, 실제 신라 천년의 역사에서 두 왕대가 전성기를 구가한 것으로 보아 틀림없을 때, 이름은 이름 값을 하고 있다. 119

문무왕이 왜병을 무찌르고자 이 절을 짖기 시작하였는데, 다 마치지 못하고 돌아가셔서 바다용이 되었다. 그 아들 신문왕이 개요 2년 (682년)에 일을 마치고 금당의 아래를 밀어 동쪽으로 구멍 하나를 뚫었거니와, 이는 용이 절에 들어와 돌아다니게 마련한 것이다. 유언대로 뼈를 묻은 곳을 대왕암이라 이름하고, 절은 감은사라 하였다. 뒤에 용이 나타난 모습을 본 곳을 이견대라 이름하였다. 120

일연은 다르다. 절이며 피리며,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믿을 수 있는 일들을 그는 떳떳이 쓰고 있다. 일연도 정말 믿지 못할 구석이 없기야 했겠는가? 다만 그는 이 모든 일을, 요즈음 말로 하면, 상징으로 받아들였을 터다. 120천하를 상서롭게 다스리고 화평해지기를 바라는 것은 누구나 같다. 그런 소망의 결정이 피리로 상징되어 나오는 것이다. 문무왕은 바다를 지키는 용이, 김유신은 하늘을 지키는 별이, 신라와 거기 사는 백성을 영원토록 평안히 해준다는 믿음 또한 거기 가세한다.122

경덕왕을 다루는 일련의 양상을 보면 일연이 어떤 인물의 무엇을 선호했는가가 짐작된다. 경덕에게는 비원(悲願)이 있었다. 경덕왕에게는 아들은커녕 왕위를 줄 마땅한 동생도 없었다. 경덩ㄱ이 표훈 대덕을 찾은 것은 그때였다. 표훈은 의상의 10대 제자 중 한 사람이며, 나중에는 신라 열 분 성인 가운데 든 큰스님이다. 126

월명사의 제망매가
생사의 갈림길/여기 있으니 두려웁고/나는 갑니다 말도/못하고서 갔는가/어느 이른 가을 바람끝에/여기저기 떨어지는 잎처럼/ 한 가지에 나고/가는 곳은 모르겠네/아 미타찰 세상에 만날 나는/도 닦아 기다리리
다만 삶의 고통은 죽음이라는 운명적인 환경이 만들어준 것, 도 닦는 사람이라고 거기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가을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 한 잎에도 속절없는 인간의 생애를 비유한 솜씨가 비상하기만 하다. 바람은 다름아닌 ‘이른바람’이다. 태어나는데는 순서가 있어 형, 아우 정해지지만, 죽는데는 순서가 없는 것이고, 언젠가는 누구나 죽음을 맞이한다 한들, 이다지 이르게 찾아옴 죽음이 비록 생사를 넘어서려는 구도자에게라 할지라도 심금을 울릴 일 아니겠는가 131

혜공왕의 성전환증은 신라 왕실이 오랫동안 근친혼을 했다는데서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지만, 한 직계가 6대에 걸쳐 8명의 왕을 내었으니 할만큼 했다고 하겠다. 136
원성왕은 기울어 가는 신라를 되살리고자 애쓴 마지막 왕이 아닌가한다. 비록 피비린내 나는 왕족간의 싸움 끝에 등극하였다고 하나, 그것이 곧 야심찬 젊은 왕족이 나라를 위한 충정이었다면 더욱 그렇다. 왕 즉위 4년에 실시된 독서삼품과는 그 대표적인 업적으로 볼 수 있다. 143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낮은 사람들보다 겸손하게 사는 이가 첫째요, 큰부자이면서 검소하게 옷을 입는 이가 둘째요, 본디 귀하고 있으면서 그 위세를 쓰지 않는 이가 셋째이옵니다. 145

때로 까닭을 설명하기 힘든 일이 벌어지는 것이 사람이요 사람이 만들어가는 역사다. 147

경문왕은 겉으로 보기와 다르게 결코 순탄치 않은 왕 노릇을 했는지 모른다. 그 자신이 아무리 덕을 갖추었다 한들, 이미 시대가 급격한 소용돌이 속에 빠졌는데, 늘 행운만 따르기를 바랄 수는 없었다. 뱀을 이불로 삼아 자야했던 사람, 시중드는 내시 뿐만 아니라 부인조차 모르게 감추어야 했던 긴 귀를 가진 사람, 그것은 곧 자신의 고민을 오직 스스로 혼자 지고 가야하는 고독한 이의 슬픈 초상이다148

오랜 싸움은 민심을 얻는 자가 이기는 법이다. 견훤은 제 힘만 믿고 오만하기 짝이 없어, 갈수록 민심을 잃는 편이었고, 왕건은 그렇게 떨어진 민심을 주워담아 자기 편으로 만드는데 능했다. 155

절정의 순간에 보낸 견훤의 편지와 예봉을 피해 가며 반격의 기회를 노리는 왕건이 보낸 답장에서 우리는 당시의 상황과 분위기를 한 눈에 읽을 수 있다. 싸움터의 칼바람이 스산하게 묻어있는, 그러면서 기 싸움에서 지지 않으려는 붓놀림은 그대로 칼 없이 겨루는 한 판이다. 156

가엾은 완산 아이가/ 아비를 잃고 눈물 흘리네/ 반역이 일어나던 당일 아침의 풍경을 그린 것이면서, 오늘날 우리가 완산요라고 부르는 노래의 출전이기도 하다. 이 노래에서 .가엾은 완산 아이’가 뜻하는 바는 참으로 여러 가지다. 견훤일수도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나 아들 신검 아니면 죽은 아들 금강일 수도 있다. 부자간에 벌어진 반역의 마당에 거기 가엾지 않을 이 누구이겠는가? 짤막한 노래 하나 등장시켜, 견훤의 말년을 실감나게 그린 일연다운 솜씨이다. 161

일연은 삼국의 역사에서 신라를 중심에 두었다. 왜 그랬는지 그 기준은 삼국사기와 비슷할 터이나 불교역사주의적 의식이 작용했다. 신라의 불교는 신라 한 나라에만 그치지 않는 한국 불교의 화두다. 한국 불교라는 강물은 신라에서 물꼬를 터서 흘러 나왔다. 일연은 그 점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166

일연이 이차돈의 죽음을 노래한 찬에서 우리는 일연의 속생각을 읽을 수 있다.
의에 죽고 삶을 버림도 놀라운 일이거니/하늘의 꽃과 흰 젖이여, 놀란 가슴을 치는구나/어느덧 한 칼에 몸은 사라진뒤/절마다 쇠북소리는 서울을 흔든다. 시인은 결연히 노래한다.사라진 것은 오직 몸일 뿐이요, 쇠북소리에 실린 그의 자취는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고 172

백제의 불교가 실제로 신라 못지않은 자리에 있었던 데 비해, 일연의 백제에 대한 평가는 다소 소극적이지 않았나 싶다. 일본에 전해진 백제 불교의 유적을 더듬어 볼 때 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백제에 비한다면 고구려에 대한 일연의 태도는 노골적으로 비판적이다. 보덕이라는 큰 스님이 제 나라에 있지 못하고 피신해야 했던 것을, 일연을 나라가 기우는 혼란스러운 상황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보고 있다.173

황룡사는 옛 경주의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었다. 아니 신라의 한가운데였고, 지리상으로만 아닌 마음속에서는 신라인이 상상하는 세계의 한가운데였다.
그러기에 경주를 여행하는 사람은, 비록 허허벌판일지라도, 황룡사 터에 한 번쯤은 서 보아야 한다. 거기서 남산으로 내려오는 완만한 능선이나, 명활산성으로 구획된 동쪽의 방벽이나, 천마총으로부터 시작하는 서쪽의 고분군을 한눈에 넣어 보아야 한다. 그 분지에 지상의 낙원을 이루고 살았던 서라벌 천 년의 사람들을 떠올려 보아야 한다.177

신라 제24대 진흥왕이 즉위한 지 14년 곧 계유년이 거기 나타났다. 이에 고쳐서 절을 삼고 ‘황룡사’라 이름지었다.179

신라를 가운데 두고, 중국과 인도의 불교문화 그리고 가까이는 백제로부터 들어온 기술까지 모두 한 자리에 모인 곳이 황룡사다.187

부처를 배우면 마땅히 부처가 되어야 하고, 진리를 닦으면 반드시 진리를 찾는다는 말은 평범 속의 비범이다. 193

박박은 하나만 생각했다면 부득은 최소한 둘 이상을 생각한 것이다. 수행자의 초심을 흔들려는 박박의 태도도 뜻이 있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상황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부득의 태도는 차원이 달라 보인다. 196

중생의 뜻을 따르고자 박절히 내쫓지 못한 것, 맑은 마음을 지키며 벽을 바라보고 부지런히 염불을 외운 것, 아이를 낳으려는 여자 옆에 애처로운 마음으로 가만히 등불을 피워 놓은 것, 두려운 마음 한편 가득했으나 새로 물을 끓여 산후의 여인을 씻긴 것 등 부득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우리는 비록 관음보살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도 이미 도를 이룬 자의 마음씀을 확인할 수 있다198

사람들의 눈이 두려워 참 보살행을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참 보살행이란 중생의 곤고한 처지에 동참한다는 것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는다.201

사람살이의 고통이 무엇이며 역사의 바른 방향이 어디로 가는지 고민하고, 그것은 뜻밖에 그가 쓴 찬이나, 인용해 놓은 다른 시와 민요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났다. 삼국유사야말로 이러한 시로 인해 완성되는 책이 아닌가. 201

낙산사의 경내로 들어서면 주변의 유흥과는 아무 관계없다는 듯 절은 차분하고 고요하기 이를데 없다. 낙산사에는 사람들을 그렇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는 모양이다.203

도의 경지는 참으로 높은데에만 있지 않고, 우리들의 일상 곳곳에 숨어들어 있음 또한 사실이다.우연히 스치는 수많은 만남이야말로 우리들이 흔히 경험하는바이다. ,,,,무릎을 칠일, 거기서 애석해하는 동네 아저씨 같은 분위기, 원효는 그렇게 인간답게 다가오는 매력이 있다.209

일연이 임종을 한, 지금 경상북도 군위군의 인각사앞에 일연 시비를 세운 것은 지난 1985년 거기 이 시가 새겨졌다.
좋은 시간 금세, 마음은 어느새 시들고/근심은 슬며시 늙은 얼굴에 가득/이제 다시 메조 밥 짓다 깨닫던 이야기 들추지 않아도/ 수고로운 일생 일순간 꿈인 것 알겠네. / 그러나 어찌 하겠는가? 허망한 줄 모르면서 이전투구하고, 알면서도 뭔가 이뤄보려 악착을 부리는 게 우리네 평범한 사람이다. 216

세상에는 너무 커서 들리지 않는 것과 너무 커서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지구는 자전을 하면서 소리를 낸다고 하는데, 그 소리가 너무 커서 우리 귀에 들리지 않을 분이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원효는 너무 커서 보이지 않은 인물이다. 217

일연은 원효의 생애를 한마디로 요약했다.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은 사람이라했다. 217

나는 원효를 현실주의 신앙의 구현자로 설정한다. 현실주의란 현실에 매달린다는 말이 아니다. 범박하게 풀어보자면, 현실의 첨예한 문제를 피해가지 않고, 사람의 생애에서 부딪칠 수밖에 없는 문제를 불교의 틀 속에서 이해하고 실천한다는 뜻이다. 218

속과 성의 경계를 마음대로 드나들고자 했던 원효도 요석공주와의 사랑이며 설총을 낳은 일에 초연할 수만은 없었던가 보다. 스스로 파계를 인정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다. 그런데 그것은 지금까지의 그를 부정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바탕으로 극복되는 초월의 단계다. 원효가 오늘날의 원효가 된 것은 바로 이 같은 변증법적 정반합의 발전이기 때문이다.222

원효 아닌 원효는 무애의 원효였다. 무애의 원효가 지향하는 바는 관념이나 치장으로서의 불교가 아닌 현실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불교였다. ,,,일연이 발견한 원효는 모두의 승려,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았던 인간 원효를 가장 잘 바라본 이는 아마도 일연이 처음 아니었을까?223

원효는 대체로 낮은 자리에 사는 사람들의 친구였고, 우리는 이런 장면들에서 바보 같은 원효가 진정 바보가 아님을 확인하는 것이다. 227

한마디로 말하면 원효는 이 나라 불교의 ‘첫 새벽’이다. 그로인해 한국의 불교가 만들어지고 전승되었다는 것이다. 228

삭발한 승려를 보면 뭔가 알 수 없는 슬픔부터 느껴진다. ,,,조지훈의 승무는 중학교 시절에 배웠다. 승려들이 추는 아름다운 춤을 빼어난 솜씨로 그려낸 시이건만 거기 흐르는 정조는 왠지 애상을 띠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승무만이 아니다. 승려를 소재로 한 많은 작품이 대체로 인생의 번뇌와 그 번뇌 속에 시달리는 세속의 인간을 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출가는 그 번뇌로부터 떠남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 자체가 서글픔이다.231

세상에서 정말 중요한 일은 이렇게 버림받기도 하고 버려지기도 한다. 그래서 후세의 눈 밝은 사람이 필요한지 모른다. 326

일연의 혜통에 대한 평가는 극진하다. “이제 화상이 무외를 제대로 배워와, 속세를 ㄷㅜ루 돌며 사람을 구하고 세상을 교화시킴은 물론 운명을 보는 밝음으로 절을 지어 원망을 씻어주니, 밀교의 바람이 여기에서 크게 떨쳤다는 논평을 받는다. 241

감통편의 이야기들은 신라 사회가 불교를 받아들인 다음 민간대중에게까지 얼마만큼 체화되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245

애장왕 때라면 9세기가 막 시작할 무렵이다. 저물어 가는 나라의 분위기가 여기저기 감지되고, 정치적으로는 더욱 혼란스러워지는 때였다.
그런 사회를 지탱해 주는 것은 저 잘난 사람들이 아니었다. 여분의 옷 한 벌 없이 살아가는 한 승려가, 돌아가 덮을 이부자리 하나 없는 처지에 입고 있던 옷을 몽땅 벗어주고 알몸으로 달려가거니와, 그 순간이 바로 신라사회의 고갱이었다 말하면 어떨까? 246

엄장은 현실적인 사내다. 실수와 무지투성이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다. 그러나 어느 순간, 또는 어느 조력자를 만나 무지와 실수로 가득한 삶을 한 번 돌이킬 기회를 갖는 것, 그것 또한 우리의 모습이다. 252

세상과의 절연이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돼지우리 같은 시궁창에 뒹굴어도 살아 있음이 소중하고, 복마전 같은 세상일지라도 그 안에서 아옹다옹 싸우며 한 세상 마치는 것이 모정의 세월이다. 누군들 거기서 벗어나 홀로 한 길을 가고 싶겠는가. 그런데도 그 길을 간 사람들에게는 뭔가 곡절이 따르지 않을 수 없다. 269

일연은 아직 젊은 시절부터, 자기가 머문 곳에서 보고 들은 것을 꼼꼼히 메모해 두었던 듯 하다. 이것이 삼국유사 찬술의 재료가 되었다. 그러므로 삼국유사는 일연이 곳곳에 머물때마다 서둔 메모들의 집합일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275


3.내가 저자라면….책을 읽고

<우리가 알아야 할 삼국유사>의 저자 고운기는 시인의 목소리로 잔잔하고도 나즈막하게 삼국유사를 풀어내 준다.
삼국유사는 유사라는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는데 그치지 않고 당시의 역사는 물론 동시대의 이야기와 철학, 문학이며 이야기집이다.
여기서 잠깐 삼국사기와 비교해보면 삼국사기는 방대하고 정확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였지만 편찬자의 시각이 지나치게 합리성을 강조하고 중국중심적 기술이 많아 역사적 사실을 소홀히 하거나 왜곡시켰다는 평이 있다.
특히 역사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불교적 측면을 무시하거나 소홀히 다룬점에 대해 일연으로 하여금 새로운 시각에서의 역사서를 기술하게 했을 것이다. 따라서 삼국사기에서는 가치가 없다고 제외시키거나 소홀히 다룬 자료에 주목하고 의미를 부여한 내용도 많으며 그 과정에서 삼국사기에서는 볼 수 없는 내용도 있고 동일한 사건도 서로 다르게 기술하거나 해석한 부분도 적지 않다.
이러한 점에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대조적이면서도 상호보완적이라 할 수 있다.
삼국사기가 합리적이고 공식적인 입장을 취한 반면, 삼국유사는 초월적이고 종교적인 입장을 바탕으로 민족의 자주성, 주체성을 중요시하고 백성을 위로하고. 민중의 말에 온전히 귀기울였다 하겠다.
특히 일연이 삼국유사의 시작을 단군신화의 이야기로 시작했다는 것에 저자 고운기는 주목한다. 책의 처음을 시작할 때, 전체의 집필의도를 함축한 어떤 상징을 내세우는데 일연의 삼국유사에 단군신화가 그런 상징이라는 것이다.
휘몰아치는 13세기를 살았던 일연이 유학을 기본으로 하는 선비들이 의식의 전환을 갖지 못한데 반해 중국중심의 인식에서 떠나 단군조선을 첫머리에 실으므로 우리 역사를 주체적으로 보고자 했던 것이다.
이런 내용들이 비록 기이한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겟으나 굳이 수록해 놓음으로써 즉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것은 곧 오리지널의 출발을 의미하며 그 의미를 통해 우리의 샘과 뿌리를 강조한다.
또한 저자는 삼국유사야 말로 한 민족의 출발이라 말한다. 단군을 우리 조상으로 받아들이고 한반도를 중심으로 우리 고구려가 차지했던 영토까지 우리 민족의 경계로 보고 이땅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모두 한민족이라 말한 첫번째 책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면면을 두루 보여주며 역사의 주인공을 다름 아닌 저 이름없는 민중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또 저자는 누구나 한 번씩 겪었을 법한 삼국유사에 대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이책을 실제대로 올바로 알고 있는지, 그 세계에 한반쯤은 빠져 본 경험이 있는지, 문제는 거기에 있다”고 지적한다.
맞는 말이다 .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 학교시험문제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저자에 대해 외우고 시험치고 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우리 학생들이 한 번쯤은 푹 빠져 보는 것은 어떨까?
강조되어 마땅한 백성을, 민중을 이나라의 주인공이라 말하고 있는, 그 재미있는 이야기들 속으로, 너무나 오랫동안 부모와 자식이 서로 독립되지 못한채 살아가고 있는 현 시대에서 일연이 자신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고 외롭고 힘들었을, 가히 짐작되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길을 산 일연의 삶속으로 깊이 빠져 보는 것이 필요하리라 본다.
고운기 역시 이러한 바램으로 700년전에 쓴 글이기에 어쩔 수 없이 벽을 넘어가기 어려울 수 있고 자칫 재미를 느끼지 못할 위험을 염려해, 누구나 보다 쉽게 만나볼 수 있고 더 많은 사람들이 좀 더 재미있고 실감나게 읽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고 있다.

시인이면서 역사학자인 고운기는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한 설명을 따라 읽어내기에 부족함이 없고 간간히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것에도 주저함이 없다.
예를 들자면 연오랑과 세오녀의 이야기에 와서 일연이 처음으로 삼국사기를 떠나 독자적으로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다는 이야기나,신라가 당나라를 끌여들여 영토를 축소시켰다는 비판이 있으나 이는 어쩌면 당나라에 나라를 전부 뺏기지 않은 것만도 다행일지 모른다고 말한다거나 원효를 현실의 첨예한 문제를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생에서 부딪칠수 밖에 없는 문제를 불교의 틀 속에서 이해하고 실천한 현실주의자라고 말하는데, 자신의 목소리에 자신만만하다.

그럼에도 간간히 약간의 불편함을 느낀 것은 이야기의 일관성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본인의 집필의도에서 밝힌바 있듯이 누구나 쉽게, 좀 더 재미있게 실감나게 읽게 하기 위함이었기에 여행을 하듯이 풀어내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책을 읽는 동안, 나도 모르게 그곳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기 때문이다. 저자가 낙산사에 가 있으면 나 역시 낙산사의 그 조용한 경내에 서 있어 동해바다의 바람을 맞는듯 하였고, 동시에 이렇게 아름답고 역사 깊은 곳을 관리소홀로 잃고 말았다는 안타까움에 가슴 아팠고, 문무대왕릉 앞에서는 죽어서까지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문무왕의 나라에 대한 애절한 사랑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저자의 지적대로 나역시 한번도 깊이 빠져 본적 없는 내가 동굴속의 곰이 되어 보기도 하고, 경주로 날아가 천년의 역사의 숨소리를 고스란히 들어보기도 하고, 분황사에서 원효의 아들 설총을 만나보기도 하고, 연오랑과 세오녀처럼 해와 달의 정령이 되어 보기도 하였다.

누구라도 한번쯤 깊이 빠져보길 권한다.
따뜻한 봄이 되면, 삼국유사 이야기를 따라 찬찬히 둘러 보는 여행을 가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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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3.09 19:24:25 *.70.72.121
언제나 무겁지 않게 짐을 꾸려가는 모습이 경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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