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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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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9일 20시 26분 등록
Ⅰ. 저자에 대하여

어렸을 때 우리 집에는 조선왕조에 관련된 책자가 있어 호기심에 어떤 내용인가 먼지를 털어내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당시를 회상해 보면 책의 내용 보다는 부피가 두꺼웠다는 점과 세로로 내용이 전개되어 있어 읽기가 무척 힘이 들었었다 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인지 고전을 다루는 작가들을 볼 때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먼저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최근들어 다시 인문학과 유교를 재해석 하고 그것을 기업에 접목하는 등의 바람이 불고 있기는 하지만... 여하튼 그런 면에서 ‘우리가 정말 알아야할 삼국유사’의 저자인 고운기님의 저서를 읽다보면 먼저 그 방대한 삼국유사를 이렇게 함축적으로 그리고 자신의 언어로 재탄생 해냄에 대해 감탄이 먼저 앞선다.

저자는 작가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의 배경이기도한 벌교에서 출생 하였고 국문학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은 시인이자 소설가이다. 역사적인 배경인 벌교 자체의 지역적인 환경과 성장과정의 영향이어서 인지는 몰라도 책을 읽다보면 곳곳에 본인의 역사와 주체관을 아래와 같이 표현해 놓은 것이 눈에 띈다.
‘삼국유사를 읽는 첫 번째 이유는 단군을 우리 조상으로 받아 들이는 등 한민족이 출발하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특정 인물 보다는 이름없는 민중의 이야기까지 다루었다는 점이다.’
‘삼국유사는 이 시기에 우리 역사를 주체적으로 바라보고자 했던 지식인들의 일련의 작업속에 놓여 있는것’...
‘일연을 존경해 마지않는 것은 그는 민족의 자존을 염두에 두었던 사람이다.’

이런 역사관을 가진 저자는 여타 작품에서도 간접적인 그 사상을 나타내는데 그의 작품중 ‘동대문’ 이라는 시의 첫소절을 살펴보면,
‘이 문이 열리면 조선의 동쪽이 열리고
이 문이 닫히면 조선의 동쪽 사람들은 이문동이나
신설동에 와 머물러야 했다‘...

여하튼 이런 저자의 사상관으로 후대의 역사가들의 여러 평가를 차지하고서라도 일연의 삼국유사와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지속적으로 대비시켜 나간다. 즉, 당시의 시대적 상황의 틀안에서 중국의 역사관을 바탕으로 사실적으로 기재한 삼국사기 보다는, 민족의 자주성 이라는 바탕아래 엮어진 삼국유사에 더후한 점수를 매긴다. 일련의 민간의 설화적인 내용들과 일연 자신의 개인적인 배경이 많이 포함되어 있음에도 말이다.

책을 읽고 있노라니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자유 무역을 비판하고 국가 주도의 보호 무역정책을 일견 옹호한 장하준씨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내용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최근 대한민국의 국가 원수로 새롭게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은 전임 노대통령과는 달리 친미관계를 최우선 과제중 하나로 내세우고 있고 방미도 가장 앞서 서두르고 있다. 더불어 국제화라는 시대적 소명과 함께 영어 공교육도 우선으로 하고 있다. 이런 작금의 시대에 고운기씨의 삼국유사가 우리에게 남기고 있는 메타포는 무엇이며 이를 통해 우리가 나아갈 방향성은 어떤 것일까?


Ⅱ.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p18
왜 ‘삼국유사’를 읽느냐는 물음?
첫째, 이 책에서 한민족이 출발하기 때문. 단군을 우리 조상으로 받아들이고, 한반도를 중심으로 멀리 고구려가 차지했던 영토까지 바로 우리 민족의 경계이며, 그 안에 살던 사람들이 한민족이라 말한 첫 번째 책을 나는 삼국유사라고 생각한다. 실로 한민족의 정체는 여기서 잡혀졌다.
둘째, 잘나고 못나고 할 것 없이 골고루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면면을 두루두루 보여 주기 때문이다. 역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저 이름 없는 민중이라고 우리는 크게 외치기만 하는데, 일연(一然) 노스님은 그것을 구체적으로 가만히 보여 주고 있다. 그렇다고 누구룰 깍아 내리지도 않으면서.
p18
'삼국유사‘를 읽는 동안 나는, 동굴 속의 곰이 되어 보기도 하고, 매에게 쫓겨 피를 흘리며 제 새끼를 품고서 두려운 눈을 휘둥 대는 꿩이거나, 그것을 측은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한 지방 관리가 되어 보기도 하고, 있는 식량 다 털어 주먹밥 여섯 덩이 채워주고 구도의 밤길로 내쫓는 비원의 어머니이거나, 그 아들이 되어 보기도 한다. 모두 다 그리운 우리 조상의 얼굴들이다.
p24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와 더불어 논의하지 않을 수 없고, 그 둘의 분명한 차이가 사(史)와 사(事)에 있다는 점.
-.고려 초부터 이 시기 지식인들은 우리 고대사를 정리하는 역사서의 편찬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이는 문자 생활의 변화에서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p25
-.문자에 대한 자신감, 이는 저술을 감발(感發)시키는 촉진제다. 첫 번째 저술은 역사서로 정해졌다. 새로운 나라가 들어선 다음, 그 앞시대를 정리한다는 생각은 이미 중국에서 보편화되어 있었다. 한문이라는 문자 수단의 이입은 그 문화를 송두리째 가지고 들어 왔고, 특히 중국에서 만들어져 하나의 전범을 이루고 있었던 사마천의 ‘사기’는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이름마저 거기에 기댄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이렇게 해서 만들어졌다. 고려 인종 23년(1145년)의 일이다.
-.고려 사회는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무인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정권을 잡은 것이다. 무인들의 집권은 단순히 집권 자체로 끝나지 않았고 세계관에 변화를 주었다. 무인 정권 이후 고려는 전반기와는 아주 다른 분위기를 만들었다.
-.새로운 분위기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에 대한 성찰이다. 김부식의 ‘삼국사기’로 대표되는 고려 전기 지식인들의 세계 인식은 사대(事大)로 요약된다. 본격적으로 중국의 문화에 압도당하기 시작한 사회에서 그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이념의 틀은 우리에게서 다시 만들어져야 했다. 도대체 우리는 누구이고 어디서 왔다는 말인가.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송나라의 멸망과 원나라의 성립이었다. 당에서 송으로 이어지며 높아질 대로 높아진 한족(漢族)의 자존심을 일거에 무너뜨린 이 일은, 그렇지 않아도 우리 중심의 새로운 세계관을 형성해 보려던 고려의 정권 담당자들에게 커다란 충격과 암시를 함께 주었다. 하늘처럼 알았던 한족의 중국도 변방의 오랑캐에게 무릎을 꿇지 않는가. 당대의 관념이 완전히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세계관의 변화는 곧 역사관의 변화를 가져온다. 모든 것을 중국 중심으로 해석했던 ‘삼국사기’의 역사 기술은 이쯤 와서 힘을 잃게 된다.
p26
-.'삼국유사‘ 탄생의 배경은 아무래도 이 두 가지 당대의 세계사적 사건으로 잡아야 할 것 같다. 1206년에 태어나 13세기를 온전히 살다간 일연은 바람처럼 휘몰아치는 시대의 변화를 겪었던 사람이다.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그가 승려였다는 점에서 보다 적극적이었다. 유학을 기본으로 하는 선비들이야 인식의 전환을 가져온다고 한들 분명한 한계를 드러내 주는 데 반해, 승려들은 처음부터 중국 중심에서 서 있지 않았으므로 보다 빨리 자신의길을 걸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신라 말부터 유입된 선종(禪宗)은 사고의 혁신을 불교 안에서 먼저 이루어 사회로 퍼져나가게 했다.
-.이 같은 역사 인식의 변화를 놓고 볼 때 일연이 ‘삼국유사’의 첫머리에서 단군조선을 실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삼국유사’는 이 시기에 우리 역사를 주체적으로 바라보고자 했던 지식인들의 일련의 작업 속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일연은 어떤 사람인가
p26~28
일연은 1206년 경상도 경산에서 태어났고 지금까지 남아 유일하게 전하는 불교 관계 저 서 ‘중편조동오위’를 찬술
밝음이 어둠이요 어둠이 곧 밝음이며, 어둠과 밝음은 종국에 둘이 아닌 하나라는 불교의 깊은 진리가 일연의 개명 과정에는 숨어 있다.
일연은 1281년 그의 나이 78세에 국사로 책봉되었다.
우리가 그를 존경해 마지않는 것은 무신 정권기와 몽고 전란기를 헤쳐가면서 그가 보여 준 삶의 궤적 때문이다. 비록 작은 나락로 힘없는 자의 설움을 당하면서도, 그는 민족의 자존을 염두에 두었던 사람이다. 그것을 그는 불교적 인식 세계에서 불국토(佛國土)사상으로 이었으며, 만년에 경상도 군위의 인각사에 거처하면서 정리한 삼국유사에 여실히 표현해 놓았다.

‘삼국유사’는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가
p28~30
-.'삼국유사‘는 전체가 왕력, 기이, 흥법, 탑상, 의해, 신주, 감통, 피은, 효선, 이렇게 9개 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적인 구성을 본다면 연대기로서 왕력, 준 역사서로서 기이, 불교문화사적 관점에서 당대인의 삶을 기록한 홍법 이하의 여러 편으로 삼대분(三大分)해 볼 수 있다.
여기서 왕력은 삼국유사 전체 기술의 기반이 되는 부분이고, 기이는 양적으로도 역사 자료의 가치가 충분히 있지만, 기술 방식이나 역사관에서 ‘삼국사기’와 다른 질적인 면이 더욱 우리의 관심을 끈다. 특히 기이 편은 그 서문에서 밝힌 바, 우리에게 뿌리가 되는 나라와 왕들을 비록 기이한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나 굳이 수록하겠다는 것, 그래서 단군 신화가 처음으로 문서상에 기록되었다는 데에서 더 이상 강조할 필요없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일연은 ‘삼국유사’를 쓰면서 ‘삼국사기’같은 역사서로만, ‘고승전’같은 불교서로만 만족하지 않았던 듯하다. 그것들이 어우러지면서 우리 고대사를 입체적으로 조망해 볼 어떤 틀을 만들어 냈다고 보아야 옳지 않을까.

우리에게 ‘삼국유사’가 전해지기까지
p31
-.지금 우리에게 전해지는 이 책의 가장 오래된 판본은 조선 중종 때 간행된 것인데, 이때의 연호를 따서 정덕본(正德本)이라 부른다.
-.근세에 들어 ‘삼국유사’에 대한 관심은 일본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1904년, 도쿄대학의 배인본(排印本) ‘삼국유사’가 바로 그것이다.-임진왜란과 관련·

이 책을 읽는 분들에게
p32~33
이 책을 쓰면서 내가 유념한 몇 가지 점을 미리 밝혀 둔다.
첫째, 본문을 읽어나가며 설명하는 방식이다. '삼국유사‘를 읽으려 해도 앞뒤 배경을 모르니 그다지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나는 그 배경을 설명해 주되, ’내가 만일 ’삼국유사‘를 썼다면 이런 식으로 했을 것’ 이라는 기분으로, 어디까지나 본문의 이해와 전달을 위주로 하였다.
둘째, ‘삼국유사’에 실린 전체 조목 수는 약 140여개, 그것을 ‘삼국유사’의 순서대로 19개의 제목으로 분류하여 기술했다.
셋째, 배경을 설명하면서 ‘삼국사기’와 면밀히 비교해 보았고, 여러 승전 등을 많이 참고하였다.
넷째, ‘삼국유사’는 1290년경 일연에 의해 쓰여졌고, 곧이어 그의 제자들에 의해 출판된 것으로 보인다. 저자인 일연이 이 책에 들인 애정은 특별한 것이어서, 그의 생애와 저술 의도를 이해하는 것이 ‘삼국유사’ 본체를 이해하는 데 요긴하다. ‘삼국유사’는 분명 10세기까지 우리 선조들의 이야기이나, 13세기의 일연이라는 인물에 의해 재구성되었다는 점 또한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 땅의 첫 나라
p34
-.단군 신화(檀君神話)를 실었다는 것 그 하나로 일연의 ‘삼국유사’는 특별한 대우를 받아 왔다. 그러나 나는 ‘삼국유사’의 다른 곳이 아닌 그 책의 첫머리에 단군 신화를 실었다는 점으로 더욱 호들갑을 떨고 싶다.
-.단군 신화의 무엇이 그에게 그다지 중요했을까? 모두가 아는 ‘개천절 노래’의 첫 구절 ‘우리가 물이라면 샘이 있고, 우리가 나무라면 뿌리가 있다’고 쓴 이는 20세기에 들어 위당 정인보 선생이다. 지금은 흔한 생각이 되고 말았지만, 일연이 살았던 13세기의 사람들이야말로, 그 샘과 뿌리를 단군이라고 본 아마도 첫 세대였던가 한다.
p35
-.그러나 13세기에 일연이 ‘삼국유사’를 편찬하고 그 첫머리에 단군신화를 실을 때까지의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다. 10세기부터의 고려 사회는 중국적 유교 사관으로 무장한 김부식과 같은 지식인들이 주도권을 잡고 이끌어 나갔다. 그들은 단군과 단군조선의 존재는 역사로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기에 유려한 한문으로 집필된 ‘삼국사기’의 첫머리에 단군은 실리지 못했고, 세월은 150여 년을 흘러야 했다. 그 사이 사회가 변했다. 정권 담당자도 바뀌고, 크나큰 나라 몽고와 20여 년에 걸친 전쟁도 겪었다. 곤고한 세월 이었다. 그 쓰디쓴 경험이 사회와 역사를 보는 눈을 바꾼 것일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면서도 문제가 되지 않기 위해서 사실의 기록만이 아닌 상징이 자리잡는다.
-.사실을 그대로 써서 저촉되는 것을 상징으로 포장해 놓으면 규범이 만든 규제의 그물망을 벗어난다.
-.단군 신화는 ‘삼국유사’를 가치있게 만든, 그래서 그 저자인 일연을 일약 민족주의 사학자로 만든 데서 그 의미가 끝나지 않는다. 상징의 체계로 들여다볼 때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로 우리를 이끄는 즐거운 이야기인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오롯이 역사적 사실이 숨어 있다.
p37
하늘님의 아들 환웅이 추구한 궁극의 이상은 한마디로 ‘널리 사람 사는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 곧 홍익인간(弘益人間)이다.
p39
단군신화에의 곰과 호랑이가 단순한 동물이 아닌, 그것들로 상징되는 어느 부족이라는 인류학적 해석이 덧붙여진다. 새로운 역사를 창출하고자 각고면려(刻苦勉勵)한 곰 부족에게서 새로운 인물이 나온다. 그가 바로 단군이다.
p42
-.책의 처음을 시작할 때 거기에 책 전체의 집필 의도를 함축할 어떤 상징적인 것을 내세우고 싶어한다. 일연의 ‘삼국유사’에서 단군신화는 그러한 상징이다.
-.단군신화는 창세 신화(創世神話)가 아닌 건국 신화(建國神話)다.
-.처음 환웅이 신단수에 내려 왔을 때 그곳에는 이미 사람 사는 세상이 존재하고 있었다. 다만 그들을 묶어 나라를 이룩하고 다스리는 제도가 없었을 뿐이다. 비록 그가 첫 왕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에게서 단군이 나오고, 단군은 곧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군의 자손이 아니다. 더러 단군의 자손도 있겠지만, 그때 이미 한반도에 살고 있다가 단군을 왕으로 모신, 이러저러한 사람들의 자손이다.
-.건국이냐 창세냐 구분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네 관념의 소산이고, 그것은 특히 서양식 사고방식 아래서 그렇다.
p43
일연의 단군에 대한 관심은 신화로서가 아니라 조선이라는 나라의 존재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p44
삼국사기가 외면한 이 책(古記)의 단군조선 부분을 일연이 관심 가진 것은 오직 여기서만 조선이 온전히 보였기 때문이다.
p44~45
삼국사기가 나온 12세기 중반과 ‘삼국유사’의 13세기 후반까지는 150여 년의 사이가 있다. 그러나 실로 고려의 역사에서 이 150년은 그 이상의 현격한 차이를 보여 준다. 단군조선의 수록 여부는 그 시대 상황의 차이에서도 갈렸다.
이 시기에 고려는 역사적으로 커다란 두 가지 사건을 겪었다. 첫째는 무신 정권의 성립이고, 둘째는 몽고와의 전쟁이다. 이것은 무엇보다 기존에 세워졌던 질서가 무너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이념과 사상이 자리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삼국사기’와 그 시대에 수놓아졌던 중국 중심의 사대주의는 힘을 잃는 대신, 거기에 희마하게나마 민족의 주체성 같은 것이 자리한다. ‘삼국유사’는 그 변화의 끄트머리에 자리잡는다.
p45~46
중국의 변방에서 일어나 중국 본토를 삼키고 거기에 나라를 세운 최초의 민족인 몽고의 원나라 건국은 하나의 복음. 이런 분위기가 일연으로 하여금 우리 역사의 더 먼 곳에 괌심을 갖게 했고, 거기서 단군이 발견되었음은 당연.
p48
일연은 위만조선을 단군조선의 후예로 여겼으리라 생각

고구려와 북방계
p52
김부식과 관찬(官撰) 사학자들의 관심은 책의 표제대로 신라-고구려-백제 세 나라만의 역사를 충실히 쓰는 데 있었다.
p54
동명왕-고구려의 시초
:단군신화와 다른 점은 하늘님인 해모수가 직접 내려와 나라를 만들고 왕이 되었으며, 다시 그 아들을 왕위에 올렸다는 점.
p59
-.그러나 일연도 수정을 하면서 한 가지는 놓쳤다. 유화가 하는 말 가운데 ‘여러 동생과 나와 노닐 때에 한 남자가 자신은 하늘님의 아들 해모수라 하고...’라 한 데서, ‘하늘님의 아들’은 그냥 ‘하늘님’이라 했어야 했다.
-.주몽이 알에서 나왔다는 신화는 신라의 박혁거세 탄생 신화와 비슷하다. 다만 주몽은 하늘님으로 이어지는 부계와 신이한 존재로써 모계를 두루 갖추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그러나 이런 난생 신화(卵生神話)의 핵심은 결국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이리라.
p60
주몽의 이 같은 고난과 극복은 소설의 이론에서 말하는 ‘영웅의 일생’에 부합한다.
p61
삼국유사가 신라 중심의 기술을 했다는 주장
p63
돌아오는 백성이 매우 기뻐했다 하여, 나라 이름을 고쳐 백제(百濟)라 했다.
p64
일본으로 건너간 백제계는 그 선조들의 경험을 그대로 살려 다시 새오룬 땅의 주인이 되었다. 나는 그것이 고구려에서 시작한 북방계 이동의 끝으로 보인다.

신라와 남방계
p65
고구려나 백제와 달리 신라의 건국에 관한 일연의 기술은 ‘삼국사기’에 거의 의존하지 않는다. 대개 삼국사기보다 훨씬 자세하며, 적어나가는 태도 또한 매우 자신에 넘쳐 있다.
p66
삼국사기가 여섯 부족을 조선의 유민이라 한 데 반해 일연은 ‘여섯 부족의 시조는 모두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한다. 되도록 이성적 판단에 맞아 들어가는 것을 추구했던 삼국사기의 세계와 일연 사이에 놓이는 차이점을 여기서도 확인했다.
p73
성모천왕 전승은 무당이 처음 어떻게 생겨났는가를 알려주는 이야기이다. 이를 무조신화(巫祖神話)라 한다.
p74
삼국의 건국 신화 가운데 신라 쪽이 유독 무조 신화나, 민간 전승의 신모 신화에 가까운 것은 왕실의 성격이 곧 거기에 기반을 두었다는 강한 증거

연오랑 세오녀, 첫 설화의 주인공
p76,78
일본의 여자 프로레슬러 히미코
-->이영희씨 관심. 그는 그의 책 ‘노래하는 역사’에서, 히미코가 한반도에서 건너가 가야 지방의 미오야마국을 이어 일본에 야마일국을 세운 여왕이라고 설명
-->그러나 이씨의 의견이 지금 학계에서는 거의 수용되지 않고 있다
p84
-.무당들이 모시는 가장 높은 신은 해와 달과 별 곧 일월성신(日月星辰)이다.
-.연오와 세오가 일본 땅으로 가 버린 다름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고 했다. 나는 이것을 일식이나 월식 같은 자연 현상으로 보지 않는다.
-.본다는 것은 그 정령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신라 사람들이 잃어버린 것은 해와 달이 아니라 해와 달을 해와 달로 볼 수 있는 그 정령이었다.
연오와 세오는 해와 달의 정령이었다. 그들이 일본으로 가서 왕이 되었다는 것을 정치적 의미로만 풀어서는 곤란하다.
p85
일본의 삼국유사라고 불리는 ‘고사기(古事記)’의 아마테라스 신화의 기본적인 틀은 연오랑 세오녀와 비슷
p86
정령의 의인화야말로 연오랑 세오녀 이야기를 아름답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사람이 사는 세상의 사람으로 바뀐 이 같은 이야기 구조는 ‘삼국유사’ 전체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것은 곰이 사람으로 바뀌는 단군 신화에서 시작하여 호랑이가 아름다운 처녀로 바뀌는 김현(金現)의 전설까지 다양하게 퍼져 있지만, 여기 해와 달의 정령을 사람으로 설정한 데서 아름다움은 극치를 달린다.

밤에 찾아오는 손님
p87
설화 문학에서 말하는 하나의 유형 중 밤에 찾아오는 손님이 소재가 되는 야래자 설화가 있다. 그 밤손님은 물건이나 훔치는 도둑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상적인 관계를 가질 수 없는 남녀 관계에서 남자 쪽을 가리킨다.
p88
견훤의 탄생설화는, 가까운 일본의 백제 영향권 아래의 지역에서 유포된 설화와 매우 비슷한 점을 보여, 설화를 통한 이동 경로를 추정하는 데도 흥미로운 자료가 된다.
p94
'기이‘편의 ’후백제와 견훤‘ 설화중
:바늘은 커다란 지렁이의 허리에 꽃혀 있었다. 뒤에 임신을 하고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나이 열다섯 살에 스스로 견훤이라 불렀다.
-->일본의 역사서 고사기에 실려 있는 미와야마 얽힌 전설 이야기의 구조와 닮음

문희, 그 아름다운 여자의 이름
p99
미워도 다시한번 영화 주인공의 문희-김유신의 동생이요 김춘추의 부인 문희
p100~101
-.역사는 충신들이 만들어 낸 역사인지 모른다. 신라의 전반기가 박제상과 이차돈이라는 충신이 만들어 낸 역사라면, 그 중반기가 김유신이라는 충신이 만들어 낸 역사라로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연이 ‘기이’편에 59조를 배치하면서 오직 그 이름 하나로 제목 삼기는 ‘김유신’조가 유일하다
p101~103
삼국사기에는 없는 백석(白石)이라는 고구려 첩자와의 사이에 일어난 일
-->김유신은 호국신이 지켜 주는 존재이고, 삼국 통일의 선봉에 설 수 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음을 암시
p106
일제말기에 활동하여 근대적 문학 평론의 개척자로 평가받는 최재서
:일제시대 때 최재서가 그린 김유신의 모습이란 바로 망국민의 콤플레스를 안고 살아가는 번민에 찬 지식인. 그것은 곧 최재서 자신의 의식이 투영된 분신

만파식적 만만파파식적
p114
실질적인 통일의 주역은 문무왕 법민
:김춘추와 문희 사이에 태어난 아들
p115
신라가 당나라를 끌어들여 벌인 통일 전쟁이 한민족의 영토를 축소한 결과만 초래했다고 비판받지만, 기록을 자세히 살피자면 당나라에 전부 뺏기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없지 않다. 한반도 땅 전체를 집어삼키자는 것이 당나라의 속셈이었기 때문이다. 문무왕 법민은, 좀더 적극적으로 평가한다면, 그런 당나라와 맞서 최대한의 땅을 지켜 낸 사람이다.
p122
그런 소망의 결정이 피리로 상징되어 나오는 것이다. 문무왕은 바다를 지키는 용이, 김유신은 하늘을 지키는 별이 되어, 신라와 거기 사는 백성을 영원토록 평안히 해준다는 믿음 또한 거기 가세한다.
그것이 믿을 수 없는 괴이한 일인들 어떠랴. 당대의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그런 믿음 위에서 마음을 하나로 하여 살아가는 일 자체가 중요할 뿐이다.

첫 성전환증 환자
p125
경덕왕을 전후로 한 왕대에 벌어진 사건을 기록한 ‘삼국유사’의 이야기들은 오늘날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게 읽힌다.
:중요한 이유가 경덕왕 때 두 사람의 뛰어난 향가 시인이 존재했다는 점. 두 사람은 충담사
와 월명사
p130
월명사의 ‘제망매가(祭亡妹歌)’
:서정 시가로서 신라 향가 최고의 명편으로 죽은 누이를 위해 재를 올리면서 이 시를씀
-->생사의 갈림길
여기 있으니 두려웁고
‘나는 갑니다’말도
못하고서 갔는가
어느 이른 가을 바람 끝에
여기 저기 떨어지는 잎처럼
한 가지에 나고
가는 곳은 모르겠네
아, 미타찰 세상에 만날 나는
도 닦아 기다리리
p136
한편 일연은 ‘혜공왕이 선덕왕과 김양상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썼는데, 여기에 약간의 문제가 있다. 우선 선덕왕이 김양상이므로 이는 분명한 착오다. ‘선덕왕 곧 김양상’이라 하든지, ‘선덕왕과 김경신’이라 했어야 맞다. 김경신은 김양상의 동생이다.

왕이 되는자
p144~145
‘기이’편의 ‘48대 경문대왕 조’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낮은 사람들보다 겸손하게 사는 이가 첫째요, 큰 부자이면서 검소하 게 옷을 입는 이가 둘째요, 본디 귀하고 힘이 있으면서 그 위세를 쓰지 않는 이가 셋째
p147
경문왕의 당나귀 귀
;서양에서도 전해오는 동화 한 편과 너무나 닮았다. 이렇게 닮은 이야기가 ‘삼국유사’속에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놀라워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순교의 흰 꽃 이차돈
p165
-.불교 전래는 앞서고 뒤서는 순서에 따라 고구려-백제-신라로 이어지지만, 이후의 전개 과정은 거꾸로 되어있다. 곧 신라를 먼저 그리고 백제와 고구려의 순이다. 이는 일연의 의도가 분명히 드러나는 매우 흥미로운 점이다. 전래된 순서야 이미 정해진 터여서 마음대로 바꿀수 없지만, 그 다음의 일은 중요성에 따라 조정할 수 있으므로, 거기에 편찬자로서 일연의 의지가 반영된것
-.일연은 삼국의 역사에서 신라를 중심에 두었다, 불교역사주의적 의식이 작용. 신라의 불교는 신라 한 나라에만 그치지 않는 한국 불교의 화두
p171
일연이 이차돈의 죽음을 노래한 찬에서 우리는 일연의 속생각을 읽을 수 있다.
-->시인은 결연히 노래한다. 사라진 것은 오직 몸일 뿐이요, 쇠북소리에 실린 그의 자취는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고.
p173
백제에 비한다면 고구려에 대한 일연의 태도는 노골적으로 비판적이다. 도교를 신봉하면서 상대적으로 불교가 쇠퇴해진 데 대한 아쉬움 등
p174~175
-.고구려의 후반기에 도교가 번성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사실을 적은 일연의 태도는 현저히 불교와 상대적으로 비교하는 입장이다. 나라가 망한 이유가 불교를 멀리하고 도교룰 가까이 한 것 때문이라는 결론에서 그 의도는 명백해진다.
-.삼국의 흥망을 불교역사주의적 관점에서 보려했던 일연의 태도

신라의 중심세계의 중심, 황룡사
p177
후배 한 사람이 금당의 돌무더기 위에 올라가더니 한참을 누워 있은후 보내온 편지
-->‘하루해를 온전히 받아 모신 신라의 돌에 등을 기대었을 때, 그 돌이 소곤거리는 말을 저는 잊지 못할 겁니다. 너의 등을 덮여 주려고, 너의 영혼을 위로해 주려고 천 년을 기다렸단다.’(황룡사를 제대로 보고, 제대로 느끼고 돌아감)
p187
신라를 가운데 두고, 중국과 인도의 불교 문화 그리고 가까이는 백제로부터 들어온 기술까지 모두 한 자리에 모인 곳이 황룡사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p190
-.나는 이 조가 일연과 일연의 문학 그리고 ‘삼국유사’를 이해하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자료라고 주장
-.부득과 박박이 각각 미타불과 미륵불을 근실히 구하다 함께 왕생하는 이야기
p200
달달박박을 두고 쓴 시다. 여자를 암자에 들여놓지 않겠다는 것은 일편계를 지키는 출가자의 바른 행동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 속에는 이기적인 심성이 도사리고 있다. 이기심은 독선만 키울 뿐이요 자비심이란 찾을 수 없게 한다. ‘남쪽 암자로 가라’든지, ‘푸른 이끼 밟은 발’ 이라고 낭자를 몰아친 것이 그 증표다. 계율이 인간보다 앞서는, 그래서 매정하게 보이기만 하는 도의 낮은 차원을 일연은 이렇게 표현했다.

낙산사의 힘
p209
도의 경지는 참으로 높은 데에만 있지 않고, 우리들의 일상 곳곳에 숨어들어 있음 또한 사실이다. 거기서 우연히 스치는 수많은 만남이야말로 우리들이 흔히 경험하는 바이다. 다만 끝내 그 정체를 모르고 지나쳐 버리는 경우와 어느 순간 깨닫는 경우로 갈라질 뿐.
p210
재궁마을의 우물가 학 바위에서 처녀가 아이를 낳았는데, 이 여자는 표주박에 해가 담긴 물을 마시고 와서 잉태를 했다고 한다. 이렇게 태어난 아이가 바로 범일이다. 처녀가 남자와 관계하지 않고 아이를 낳은 이야기는 ‘신약성서’만의 독점물이 아니다.
p212
범일이 정취보살을 만나기까지의 이 같은 이야기 전개는 실로 일연의 신라 불교에 대한 강한 주체성이 작용되어 있다.
p213~216
세상살이의 헛됨을 비유하는 말은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한단지몽(邯鄲之夢), 중국의 한단이라는 동네에서 나온 이야기다. 밥이 끓는 솥단지 앞에서 따뜻한 불을 쬐다 잠깐 잠이 든 사이, 온갖 영화와 패배를 맛보는 꿈을 깨고 깨어보니 밥이 되어 있었다는데, 한세상 사는 온갖 영고성쇠(榮枯盛衰)가 한솥밥 끓는 사이에 불과하더라는 이 절묘한 비유.
그에 못지않은 것이 조신의 꿈
-->꿈을 꾸고난후 망망히 세상사는 뜻이 없어지고, 이미 수고로운 인생에 지쳐 마치 백 년 고생을 다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탐욕스런 마음이 얼음 녹듯 사라지는 것이었다.

원효, 해동 불교의 자랑
p223
무애의 원효가 지향하는 바는 관념이나 치장으로서의 불교가 아닌 현실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불교였다.
p225
태어나지 말 것을, 죽음이 괴롭구나.
죽지 말 것을, 태어남이 괴롭구나.

평범한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
p246
‘감통’편의 맨 마지막에 나오는 ‘정수 스님이 얼어죽을 뻔한 여자를 구하다’조
:크건 작건 실천의 문제다. 이론으로서 받아들인 철학을 넘어 생활 속에서 움직이는 실천 원리로 불교가 신라 사회에 자리잡혔음을, 우리는 이 같은 짤막한 삽화에서 읽을 수 있다.



Ⅲ. '내가 저자라면'

소설가이자 시인, 평론가 이기도한 복거일씨의 저서중 ‘비명(碑銘)을 찾아서’란 작품이 있다. 주내용은 일본 추밀원 의장 이토 히로부미 공작이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서 있었던 안중근 의사의 암살 기도에서 부상만을 입었다는 가정 아래에서 씌어진 이른바 ‘대체역사(代替歷史)’이다. 가상역사를 다룬 점도 의의가 있었지만 과거의 역사를 모티브로 해서 새롭게 내용을 전개함에 흥미롭게 읽었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의 저자인 고운기씨도 이제는 우리의 마음속에 잊혀졌던 과거의 역사물의 하나인 일연의 ‘삼국유사’를 모티브로 하여, 내가 만일 삼국유사를 썼다면 이런 식으로 했을 것이라는 기분으로 본인만의 맛깔스러운 필치로 내용을 전개해 나간다.
앞부분에서도 잠깐 언급을 했었지만 책 내용 곳곳에는 저자의 주체적인 역사관과 우리 역사의 우월감이 드러난다. 단군신화를 다룬 중요성과 김부식과 대비되는 일연의 사상들을 반추해 내어 그 내용들을 부각시켜 이런 점들을 엿볼 수 있게한다.
또한 저자 자신의 사상관을 연오랑과 세오녀 등의 이야기들을 통해 그 내용을 풀어 나가면서 그시대의 민중과 현재의 우리 삶을 오버랩 시킨다.
‘본다는 것은 그 정령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신라 사람들이 잃어버린 것은 해와 달이 아니라 해와 달을 해와 달로 볼 수 있는 그 정령 이었다. 연오와 세오는 해와 달의 정령 이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현시대의 연오와 세오는 어떤 존재로 우리들에게 나타나고 있는가?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만파식적 만만파파식적 항목에서는 역사의 상징성을 통한 우리 민족의 단합성을 아우르며 후대의 사람들에게 이렇게 설파한다.
‘그런 소망의 결정이 피리로 상징되어 나오는 것이다. 문무왕은 바다를 지키는 용이, 김유신은 하늘을 지키는 별이 되어, 신라와 거기 사는 백성을 영원토록 평안히 해준다는 믿음 또한 거기 가세한다.
그것이 믿을 수 없는 괴이한 일인들 어떠랴. 당대의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그런 믿음 위에서 마음을 하나로 하여 살아가는 일 자체가 중요할 뿐이다.‘
이런 주체적인 사관을 가진 저자에게 경의를 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일연의 삼국유사에 대한 아래의 오타 부분에 대한 지적사항을 대할 때면, 웃음이 나오기도 하며 저자 자신의 우쭐대는 모습이 떠올려 지기도 한다.
‘그러나 일연도 수정을 하면서 한 가지는 놓쳤다. 유화가 하는 말 가운데, 여러 동생과 나와 노닐 때에 한 남자가 자신은 하느님의 아들 해모수라 하고... 라 한데서 하늘님의 아들은 그냥 하늘님 이라 했어야 했다’
‘한편 일연은 혜공왕이 선덕왕과 김양상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썼는데, 여기에 약간 문제가 있다. 우선 선덕왕이 김양상이므로 이는 분명한 착오다. 선덕왕 곧 김양상 이라 하든지, 선덕왕과 김경신이라 했어야 맞다. 김경신은 김양상의 동생이다.’

고운기님의 덕택으로 정말 오랜만에 학창시절의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었던 삼국유사란 작품을 통해 역사의 향취를 다시금 만끽할 수 있었다. 또한 ‘신화의 힘’ 책에서도 나타났듯이 동양과 서양이라는 차이점이 있음에도 인류가 공유하는 상징들의 공통점을 이 책에서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재궁마을의 우물가 학 바위에서 표주박에 해가 담긴 물을 마시고 와서 처녀가 아이를 잉태 했다는 내용 이라든지 경문왕의 당나귀 귀가 그예들이다.
다시한번 책을 통해 역사란 시간속에 살아 숨쉬는 당시의 등장인물들과 만날 수 있었고, 그들을 통해 면면히 흐르는 우리네 조상들의 삶들과 뿌리를 재확인할 수 있었음에 감사 드린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책을 통해 우리들에게 이렇게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도의 경지는 참으로 높은 데에만 있지 않고, 우리들의 일상 곳곳에 숨어들어 있음 또한 사실이다. 거기서 우연히 스치는 수많은 만남이야말로 우리들이 흔히 경험하는 바이다. 다만 끝내 그 정체를 모르고 지나쳐 버리는 경우와 어느 순간 깨닫는 경우로 갈라질 뿐.’

구본형 변화 경영연구소란 만남을 통해 나는 어떤 깨달음을 체득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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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3.09 21:27:31 *.70.72.121
지금의 이런 계기와 느낌들을 모아가는 것이겠죠.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몫을 당당히 해내고 성공하며 나눔과 도움의 풍요로운 일상들을 쟁취하겠죠. 읽기와 쓰기가 즐거운 놀이로 마음껏 흥겨워지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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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호
2008.03.10 16:18:34 *.107.35.44
좋은 덕담 감사 드립니다. 눈부신 하루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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