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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10일 02시 14분 등록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고운기 글/양진 사진/현암사

1. ‘저자에 대하여‘ - 저자에 대한 기록과 개인적 평가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가벼운 고민 중의 하나가 과연 저자에 대하여 쓸 때 누구를 위주로 써야할까 였다. 『삼국유사』를 관점으로 본다면 당연히 일연을 저자로 쓰는 것이 맞겠지만 『삼국유사』란 내용을 가지고 감칠맛 나는 요리를 정성스럽게 만든 사람은 바로 고운기시인이였기 때문이다. 며칠 고민을 하다가 결론을 내렸다. 현실과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 받아들이고 조합하고 연결하며 재창조하는 작업을 통해 만든 작품은 그 내용을 인용하고 차용했다 할지라도 결국 저자로서 인정해도 무리가 없겠다는 판단이었다.

저자인 고운기는 한마디로 일연을 존경함과 동시에 일연을 닮기 원하는 사람이다. 시인임에도 불구하고 『삼국유사』에 빠져 일생을 일연 쫓아다니기에 주력하고 있는 사람이자 삼국유사를 통해 우리 민족의 자주성, 주체성과 자긍심을 우리 국민 모두에게 그리고 세계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리고 싶어하는 대표적 사람이다.

그가 『삼국유사』에 빠지게 된 계기는 시 한편으로 인해서 였다고 한다.

압록강 봄 깊어 풀빛 고웁고
백사장 갈매기 한가히 조는데
노 젓는 소리에 깜짝 놀라 멀리 날으네
어느 곳 고깃밴지, 안개 속에 이른 손님

이 시는 전진의 승려 순도가 고구려에 불교를 전한 이야기를 적고 난 다음에 일연스님이 쓴 찬이다. 시인이기도 한 고운기 교수는 『삼국유사』속의 이 시 한편으로 단박에 『삼국유사』와 일연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그는 〈일연을 묻는다〉란 책에서 “『삼국유사』에는 삶이 있고 현장이 있다. 고대인의 숨결까지도 그대로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삶의 현장, 그것이 『삼국유사』가 가진 최고의 미덕이다. 나는 『삼국유사』를 밭에서 캐낸 야채로 비유한다. 『삼국사기』의 그것을 통조림이라 비유하는 것과 대조해서 말이다. 해석의 가능성을 풍부하게 제공해 주는 이야기는 마치 방금 캐낸 야채로 무엇이든 요리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고 적고 있다. 참고로 저자는 『삼국유사』를 대학원에서 전공하였다.

저자는 삼국유사의 무대를 무려 20년의 세월동안 발로 누비며 직접 찾아가는 방식을 택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보다 더 현실감 있고 정확한 내용을 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일연 스님의 탄생과 출가 그리고 입적까지의 행적을 일일이 찾아 그의 흔적, 숨결 그리고 그의 삶이 전하는 순간순간의 생각까지도 유추해 내어 여러 가지 가정과 상상력으로 허구를 사실보다 더욱 사실스럽도록 포장하고 있다. 역사의 일편 기록만 보고 모든 역사를 판단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국 역사를 전하는 사람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한 것이며, 저자는 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으며 그 역할의 중요성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세상에서 정말 중요한 일은 이렇게 버림받기도 하고 버려지기도 한다. 그래서 후세의 눈 밝은 사람이 필요한지 모른다.”(607P)

또한 『삼국유사』의 의미에 대해서

“세계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한국이 커지면 커질수록 세계는 우리를 향해 ‘너희는 누구냐’는 질문을 더 자주 던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린 이런 사람이다’라고 얘기해줘야 하는데 우리가 누구인지를 아는 데 『삼국유사』만한 텍스트가 없습니다.” 라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코리아니티’이다. 우리가 누구인지를 먼저 알아야 우리의 진정된 모습을 발현시킬 수 있다. 세계화는 동질화가 아니다. 우리의 것을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 본연의 모습으로 나타내어 드러낼 수 있어야 비로서 세계화에 성공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삼국유사의 내용들은 우리가 마음 속에 더욱 새겨가야 할 우리 고유 역사의 정신적 모태라 하겠다.


◉ 저자에 대한 약력

저자 고운기(1961년 전남 보성)는 한양대 국문학과와 연세대 대학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밀물 드는 가을 저녁 무렵'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1999년부터 일본 게이오 대학 문학부 방문 연구원으로 한국과 일본의 고시가를 비교 연구하였고, 2006년 현재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시집으로 <밀물 드는 가을 저녁 무렵>, <섬강 그늘>, <나는 이 거리의 문법을 모른다>가 있으며, 그동안 지은 삼국유사 관련 연구서로 <일연>(1997), <삼국유사>(2001), <일연과 삼국유사의 시대>(2001),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2002)가 있다.

옮긴 책으로는 시모무라 고진의 <논어>, <한국, 1930년대의 눈동자>, <그늘에 대하여> 등이 있다.

연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한 저자 양진(1966년 대전)씨는 대학 재학시절부터 사진 동아리 '연영회'에서 활동하며 사람과 자연을 테마로 한 다큐멘터리 사진을 주로 찍어 왔다.

1991년부터 고운기와 함께 <삼국유사>의 현장을 답사하면서 사진 작업을 했고, 2006년 현재 우리의 자연과 문화를 담아내는 일을 하고 있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머리말

『삼국유사』는 시대마다 좋은 요리사를 만나 좋은 요리가 만들어지기를 기다리는 재료인지 모른다.


들어가며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와 더불어 논의하지 않을 수 없고, 그 둘의 분명한 차이가 사(史)와 사(事)에 있다는 점.(3P)


기이(記異)

단군신화를 실었다는 것 그 하나로 일연의 『삼국유사』는 특별한 대우를 받아 왔다. 애써 이 시기를 눈감아버린 『삼국사기』의 태도와 견주어 보면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나는 『삼국유사』의 다른 곳이 아닌 그 책의 첫머리에 단군신화를 실었다는 점으로 더욱 호들갑을 떨고 싶다.(11P)

일연이 살았던 13세기의 사람들이야말로, 그 샘과 뿌리를 단군이라고 본 아마도 첫 세대였던가 한다. 누구나 흔하게 생각하는 것이기에 자못 중요하게 쳐주지 않는 경우가 있다. 『삼국유사』의 단군 신화 등재(登載), 그것도 첫머리에 자리잡은 일이 그렇다.(12P)

글을 쓰는 것이 목숨과 바꿀 무게로 쳐지는 시대에서 단 한 글자로 허투루 적을 수 없다.(12P)

이런 이유 때문일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면서도 문제가 되지 않기 위해서 사실의 기록만이 아닌 상징이 자리 잡는다.(12P)

상징의 체계로 들여다 볼 때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로 우리를 이끄는 즐거운 이야기인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오롯이 역사적 사실이 숨어 있다.(14P)

사실 건국 연대보다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 했다는 점이 더욱 중요하다. 이 땅에 세워진 첫 나라의 이름이요, 이후 우리 역사에서 이만큼 자주 국호로 애용된 이름이 없다. 단군조선(일연은 고조선이라 썼지만), 위만조선 그리고 이씨조선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까지, 이렇듯 다양하므로 조선의 앞이나 뒤에 관형어를 붙여야 구분이 가능하다.(19P)

오늘날 북한이 정식 국호를 ‘조선’이라 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정통성 시비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그들의 몸부림을 어느 정도 이해할 만하다.(20P)

우리는 단군의 자손이 아니다. 더러 단군의 자손도 있겠지만, 그 때 이미 한반도에 살고 있다가 단군을 왕으로 모신, 이러저러한 사람들의 자손이다.(21P)

『삼국사기』는 한반도에 살았던 지식인층이 중국으로부터 문자와 그와 관련된 여러 문화를 전수 받은 다음, 이제 완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했음을 보여주는 책이다.(22P)

한껏 폼을 내 만들어 놓은 『삼국사기』라는 명약이 우리만의 고유한 정신과 영역을 잠식해 들어가는 바이러스로도 기능할 줄은 아마도 그 찬술자들조차 몰랐던 것 같다.(23P)

일연은 그 바이러스의 정체를 발견했다. 중국의 제도와 문물이 좋다고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중국이 그들의 필요에 따라 만들고 쓴 것이다. 이를 그대로 들여와 내용만 우리 것으로 채웠을 때, 내용은 형식에 가려 실상을 보여주지 못했다. 세련된 장식으로 우리 역사를 볼품있게 세워 놓았지만 그로 인해 본질을 놓친 것, 부작용이란 다름 아닌 ‘우리’의 실종이었다.(23P)

『삼국사기』와 그 시대에 수놓아졌던 중국 중심의 사대주의는 힘을 잃는 대신, 거기에 희미하게나마 민족의 주체성 같은 것이 자리한다.(24P)

천자의 나라며 그러기에 모든 변방은 중국에 복속해야 한다는 생각은 중국인에게 아니 우리 나라 같은 옆 민족에까지 강고하기만 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전체가 무너졌다. 아니 하늘이 무너진 것이다.(24P)

이 같은 분위기가 일연으로 하여금 우리 역사의 더 먼 곳에 관심을 갖게 했고, 거기서 단군이 발견되었음은 당연하다. 단군의 발견과 그 기록은 일연이 지닌 선각적 혜안만으로 이루어질 성질의 일은 아니었다.(25P)

약간의 추측이 가능하다면 일연은, 같은 민족이라는 전제 아래, 위만조선을 단군조선의 후계로 여겼으리라 생각한다.(29P)

사실 『삼국유사』에서 단군 신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지만, 실은 일연이 단군 한 사람에 그치지 않고, 조선이라는 나라의 처음과 끝을 설명하고자 한 데 더 힘을 기울였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기에 중국 쪽 역사서에서 조선에 관한 기사를 모두 찾아보고, 그것을 일연 나름대로 정리해 크게 두 개의 제목을 써서 정리한 것인데, 일관성과 근거가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성공적이다. 오늘날 우리가 ‘고조선’조와 ‘위만조선’조를 나란히 두고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34P)

오늘날 역사학자들도 말하듯이 고대 왕권 국가란 곧 율령의 반포가 분명한 기준이 된다. 율령에는 국가 조직의 정비도 포함된다.(36P)

『삼국사기』는 『고기』의 신이한 부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것을 받아들인 일연의 『삼국유사』에 와서 주몽은 『삼국사기』에서보다 더 확실히 하늘님의 아들이라는 지위를 획득했다. 『삼국사기』가 금기시하는 것들이 이미 무너졌을 때, 그 존재를 회복한 것은 단군만이 아니다. 이렇듯 주몽에게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43P)

이런 난생 신화(卵生神話)의 핵심은 결국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이리라. 첫 출발의 의미를 문학적으로까지 보이게 하는 이 표현은 곧 그 옛날 왕을 맞이하는 어떤 의식과도 관련이 있을 듯하다.(43P)

주몽의 이 같은 고난과 극복은 소설의 이론에서 말하는 ‘영웅의 일생’에 부합한다. 영웅은 특이한 재주를 지니고 태어난다. 그러나 성장 과정에서 주변으로부터 많은 공격을 받아 고난을 겪는다. 영웅은 그가 타고난 능력으로 이 같은 고난을 극복하고 이상을 실현해 낸다. 영웅소설이라 불리는 작품들이 이 같은 유형으로 이어지는데, 아마도 그 원조는 주몽의 이 이야기가 아닐까?(44-45P)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말은 곧 오리지널의 출발을 의미할 것이다. 이제 남쪽에도 하늘에서 내려온 이들이 있음을 말하는 일연의 의도란 곧 북쪽과 계통을 달리하는 오리지널이 있음을 강조하자는 데 있지 않을까?(56-57P)

달리 생각하면 이만큼 인간 냄새가 나는 이야기(탈해왕)도 없다. 하늘과 땅이 부리는 조화로 자신의 신성성을 포장하는 시대를 지나, 이제 인간대 인간의 투쟁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목적을 달성하려는 매우 정치적인 모습이 나온다. 신화가 설화로 돌아서는 지점이다.(78P)

문물의 발달이 신화시대를 거둬내고, 실질적인 힘으로 정복과 지배를 영위해 나가는 시기가 이 한반도에도 도래한 셈이다.(78P)

즐거운 상상력에 민족적 쇼비니즘이 끼여들면 곤란하다. 이런 주장들이 대체적으로 처음에는 잃어버린 우리 역사를 찾는다는 그럴듯하면서 거창한 명제 아래 시작한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건너왔다’는 대목에 이르면 김일 선수 박치기를 보듯이 흥분하고, 흥분하다 보면 사실과 상상을 혼동하며, 나아가 그렇게 흥분하는 심리한 열등감의 역설적 표현에 지나지 않아 보여 뒷맛이 개운치 않다. 살아 있는 역사란 그런 의미가 아닐 것이다.(91-92P)
*쇼비니즘 : (프랑스)맹목적, 광신적, 호전적, 배타적 애국주의 = (영국)징고이즘(Jingoism)

우리가 아득한 옛 역사를 말하면서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너무 긴장한다면 결론이 엉뚱한 곳으로 흐르기 쉽다. 프로레슬링을 진짜 격투기라고 생각한 우리에게 잃어버린 것은 재미요 남은 것은 공허감이지 않았던가? 역사 또한 그래서는 안된다.(92P)

일연은 승려다. 승려 생활을 구름이나 강물처럼 머물러 살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존재, 운수행각(雲水行脚)이라고 한다.(96P)

정령의 의인화야말로 연오랑 세오녀 이야기를 아름답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101P)

실성왕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일연의 기술에서 그것은 더 명료해진다. 참는 데도 한도가 있는, 그래서 쌓이고 쌓인 감정의 폭발이라고나 할까, 좀체 흥분하지 않는 일연의 붓끝이 여기서 가늘게 떨리고 있음을 우리는 놓치지 말아야 한다.(110-111P)

"저는 임금이 근심하면 신하는 욕을 보고, 임금이 욕을 보면 신하는 죽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만약 쉽고 어려움을 따진 다음에 행한다면 충성을 다하지 못할 것이요, 죽고 사는 것을 가린 다음에 움직인다면 용맹스럽지 못하다 할 것입니다. -박제상- (111-112P)

이런 이야기 끝에 제상의 부인을 국대부인(國大夫人)으로, 그의 딸은 미해의 부인으로 삼았다는 결말 부분은 그저 심상하게 읽힌다. 나라의 일이며 충성이 중한들, 목숨을 내놓은 값은 무엇으로 갚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116P)

한반도의 가장 가까운 신라가 그들(왜)과 적대 관계로 정착되는 상징적인 사건, 나는 그것을 박제상의 죽음으로 본다.(116P)

전쟁은 적개심을 필요로 한다.(119P)

무릇 큰 강은 어느 지류도 마다 않고 받아들여 함께 흐르고, 그러기에 거꾸로 생각하면 큰 강이 된 것과 다르지 않게, 사람도 큰사람이 있는 법이고, 큰사람이 이룬 일에 대대로 많은 이들이 도움을 받는다.(120P)

대체적으로 사람들의 소박한 소망에 초점을 맞추면, 설화가 지닌 내적 의미를 알게 된다. 세상에서 무서운 것은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어떤 조화(造化)다.(134P)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씀은 옛 유대 성인의 입을 통해 나왔지만,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그것은 진리다. 최소한 한반도에서 신라는 그 말씀이 진리임을 입증한 나라였다.(140P)

보고도 보지 못하는, 눈에 씌운 아상(我相)은 그토록 완고한 법이다.(147P)

신라의 고승 세 사람(자장, 원효, 의상)이 모두 국가의 중대사에 참여하고 있다. 신라인의 사상적 무장은 이들을 통해 이루어지고, 그것은 곧 국력의 신장으로 이어졌다.(153P)

역사는 충신들이 만들어 낸 역사인지 모른다. 신라의 전반기가 박제상과 이차돈이라는 충신이 만들어 낸 역사라며, 그 중반기가 김유신이라는 충신이 만들어 낸 역사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160-161P)

사실을 더 그럴듯하게 해주는 이야기가 배경에 깔리면 그 사실은 더 힘을 얻는 법이다.(167P)

그래서일까, 두 남자(김춘추, 김유신) 뒤에 한 여인의 그림자는 그만큼 짙어만 간다. 물론 이 여인은 문희다. 화려한 것을 받쳐줘야 하기에 속으로 인고하는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다.(175P)

동생(문희)의 처지가 처량해서만 그랬을까? 일은 제가 벌여 놓고 길길이 날뛰는 유신의 노한 목소리에 묻혀 한 여자의 여린 일생이 가려 있다.(177P)

"짐(문무왕)은 죽은 뒤에 나라를 지키는 큰 용이 되겠소. 그래서 불법을 높이 받들고 나라를 지키겠소.“
“용은 짐승인데 어찌 하시렵니까?”
“나는 세상의 영화를 싫어한 지 오래 되었소. 만약 악한 업보 때문에 짐승으로 태어나더라도 짐이 평소에 가진 생각과 맞는다오.”(185P)

“비유컨대 손바닥 하나로는 소리가 나지 않고, 두 손바닥으로 치면 소리가 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대나무라는 물건도 오므라진 다음에야 소리가 나지요.”(189P)

상징의 핵심은 고장난명(孤掌難鳴)이었다고 해야할까? 천하를 상서롭게 다스리고 화평해지기를 바라는 것은 누구나 같다. 그런 소망의 결정(結晶)이 피리로 상징되어 나오는 것이다. 문무왕은 바다를 지키는 용이, 김윻신은 하늘을 지키는 별이 되어, 신라와 거기 사는 백성을 영원토록 평안히 해준다는 믿음 또한 거기 가세한다.(189P)

신령스러운 피리를 일컬어서는 만만파파식적(萬萬波波息笛)이라 했다. 벼슬이 높아져 더 이상 오를 데가 없으면 한 글자씩 덧붙이는 신라의 관습이 있다.(194P)

얼마 전, 우리 나라의 정치인들 사이에서 ‘토사구팽’이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교토사주구팽(狡兎死走狗烹)’ 곧 토끼를 잡고 나면 사냥개를 요리해 먹는다는 말에서 유래한, 권력의 비정한 뒤통수치기를 나타내는 이 말은 이미 비유도 아니다. 권력을 잡은 자의 마무리 과정에서 밀려날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은 모두 이 한마디에 쓸쓸한 제 인생을 깊은 한숨과 함께 무상한 세월로 돌려 보냈다.(196P)

화랑 가운데 우두머리는 실권을 잃은 종이 호랑이로, 무리들은 주인을 잃은 처량한 신세로 이리저리 내쳐졌다. 철저한 토사구팽이다.(205P)

노인이 알려준 방법은 ‘강원도의 힘’이 아니라 한마디로 ‘여론의 힘’이었다. ‘뭇입은 쇠라도 녹인다’는 말은 원문에서 ‘중구삭금(衆口鑠金)’이라 표현되어 있다. ‘중구’란 곧 오늘날의 여론, 또는 민중의 소리라고나 할까? 사람들의 일치된 생각과 거기서 나오는 힘이 저 신물의 가공할 위세를 쳐부술 수 있다는 것이다. -수로부인 이야기중- (228P)

본격적으로 인간의 삶이 노동을 통한 생산물로 유지하는 시대에 노래는 민요가 되었고, 민요가 노동 현장에서 불렸을 때 노래의 제의적 성격이 감소되는 대신 기능적 성격은 충분히 살아 있게 된다. 「해가」는 신가에서 민요로 넘어오는 중간 과정을 보여 주는 중요한 자료다.(229P)

어디인들 수로부인에게 이 여행은 아름다운 것이었다. 예쁜 꽃과 함께 노래를 선물 받았는가 하면, 용궁에 들어가 진기한 경험을 하고 나왔다. 수로부인처럼 아름답고 천연덕스럽게 살아가는, 거기서 세상의 지혜를 터득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산과 바다는 그런 곳이다. 동해 사람들에게 산과 바다는 그런 곳이다.(233P)

월명사는 죽은 누이를 위해 재를 올리면서 이 시(「제망매가(祭亡妹歌」)를 썼지만, 일견 평범해 보이는 표현의 내면에 속 깊은 울림이 있다. 구태여 요란을 떨지 않는 것이 진정성에 가까운 법이다.(241P)

사실 이 시(「제망매가(祭亡妹歌」)는 여덟째 줄까지 평범한 인간이 토로할 슬픔을 절제된 감정 속에서 마음껏 뱉어 놓고 있다. 한바탕 시원하게 울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라면 승려의 신분으로 주책 맞을 일, 아홉 번째 줄에서 감탄사를 길게 뺀 다음 흩어진 감정을 추스린다. 이는 향가라는 시의 형식이 가진 특장(特長)이기도 하다.(242P)

구물거리며 살아가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그 삶이 보잘 것 없는 백성이로되, 다스리는 자의 따사로움을 알고 믿고 따른다면 그들이 어디로 가겠는가? 또한 백성이 없으면 나라의 근본이 흔들"린다.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이것 이외에 무엇이 더 필요할까?(247P)

성공하면 충신이요 실패하면 역적인 것이 쿠데타다.(253P)

기울어 가는 나라를 바로 세우기란 차라리 새로운 나라를 열기보다 더 힘든 일이다.(261P)

"제가 말씀드린 세 가지 좋은 일이 지금 모두 나타났습니다. 큰딸을 맞아 들였으므로 이제 왕위에 오른 것이 하나요, 예전에 미모에 끌렸던 동생을 이제 쉽게 얻을 수 있으니 둘째요, 언니를 맞아들였으므로 왕과 부인께서 기뻐하였음이 셋째입니다." -경문왕이야기중-(264P)

때로 까닭을 설명하기 힘든 일이 벌어지는 것이 사람이요 사람이 만들어가는 역사다.(266P)

대단한 능력을 타고나서 어떤 고난이라도 헤쳐갈 사람이라도 시대의 운이 뒷받쳐 주지 않으면 대체적으로 결과는 비극을 향해 간다. 그래서 운명적으로 소용돌이의 중심에 던져진 사람은 그 세계관이 비극적이다.(267P)

무엇이 올바른지 판단하지 못하는 자에게 옳은 충고란 쇠귀에 경 읽기도 아니다.(270P)

나라가 망한다는 사실보다 실로 더 억울한 일은 따로 있다. 백성이야 어차피 어떤 나라가 서도 백성, 제 정권 지키자고 혈안이 된 자들에게 당하는 백성의 희생을 우리는 진정 안타까워하는 것이다.(271P)

자연의 이상 변동을 기록하는 사관의 뜻은 그것이 사람의 잘못으로, 구체적으로는 정치의 불안정이겠지만, 사회가 어지러워지고 어려움이 닥친다는 경고에 있을 것이다.(272P)

인재들이 죽어나가는 나라에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277P)

일연은 역사적 사실로서 광란스런 왕들의 혈전을 쓰는 것보다, 민간에 전해지는 이야기 한 토막으로 더 실감나게 당시 모습을 전해 준다. 그것이 『삼국유사』다.(285P)

나라가 망하는 징조를 무슨 신나는 일이라고 장황히 적었을 리는 없다. 그러나 기미(機微)를 보아 사리(事理)를 판단하는 법이다. 시절은 바뀌었어도 사람이 세상에 사는 한 언제든 잘 되고 잘못되는 징조가 따라다니기 마련이다. 거기서 기미를 읽어내라는 간절한 충정으로 보인다.(286P)

신라의 멸망 원인 가운데 무엇이 선두에 설까? 나는 무엇보다 ‘골품제의 동맥경화 현상‘을 내세우고 싶다.(287P)

그러나 돌이켜 보며 아쉬워한들 무엇하랴. 역사에는 가정(假定)이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무엇보다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고, 적재적소에 등용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있는 인재마저 죽이는 상황이 반복될 때, 거기서 우리는 한 나라의 멸망을 명확하게 예언할 수 있을 뿐이다.(288P)

억울한 일을 당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단박에 하늘이라도 무너져쓰면 좋겠다는 심정이 간절해도, 끝내 가슴에 묻어야 할 답답한 현실이 엄연하지 않던가? 사필귀정(事必歸正)이요 새옹지마(塞翁之馬)라 하나, 누구에게나 반드시 이르는 결과는 아니요, 다만 그 말대로 이뤄진 경험을 해본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쪽이다.(289P)

"나라가 서고 망하기는 반드시 하늘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마땅히 충신과 뜻있는 선비들과 더불어 민심을 거두고 힘을 다한 다음이라야 그만둘 것이오. 어찌 천년 사직을 그다지 가벼이 남에게 준단 말입니까?“(301P)

'서리리(黍離離)‘는 『시경』 왕풍(王風)에 나오는 노래, 망한 주나라의 신하가 옛 서울을 지나다 그 곳이 메기장 밭으로 변해 버린 것을 보고 탄식하였다는 것인데, 신회의 노래는 그마저 없어졌으니, 천년 사직은 말 뿐이요 무상하기만 하다.(305P)

사실 고구려의 전성기만큼이나 우리 역사가 중국에 떳떳한 적이 드물었으며, 일본의 초기 왕실이 백제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서 성립되었다는 사실을 상정했을 때 그 아쉬움은 커진다.(307P)

일본 특히 왕실의 뿌리가 한반도라고 해서, 우리는 같은 민족이라고 한다거나, 한국이 종주국이라고 하는 따위의 생각은 참으로 난센스다. 한반도니 일본열도니 하는 말은 모두 후세가 만들어 낸 관념이다. 그들은 먹고살기 좋은 곳을 찾아 끊임없이 이동했던 당대의 생활인일 뿐이었다. 그 무렵 사람이 지금 살아온다면 그는 한반도라는 말도 일본열도라는 말도 모를 것이다.(315P)

맹랑하기 그지없는 자가 새로운 역사를 만든다. 누구도 될 수 없다고 포기할 때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로 난국을 돌파하는 꾀는 맹랑한 자에게서 나온다. 그런 맹랑한 사람을 우대하는 사회가 발전한다.(327P)

하기야 엉뚱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진짜처럼 둘러댄 게 어디 이 하나(서동요)뿐인가? 정말이지 서동만큼 맹랑한 사람은 일연 당신이다. 그러기에 그 눈으로 서동같은 인물이 보였을 것이다.(328P)

미륵불은 여성의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미륵이 본디 남자였지만 이렇게 바뀌는 것은, 미륵불이 자비와 영원불멸의 생산을 의미하는 여성적인 성격을 가진 데다 남성인 석가불에 대응하려는 사람들의 의지가 개입되었기 때문이다. 미륵은 자비의 부처다.(343P)

불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 똑같은 되풀이를 견훤과 그의 아들 신검(神劍)이 하고 있다. 그렇다면 아들이 아버지에게 끝없이 반항하다 망한 견훤 집안 3대다. 식민지 치하,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다른 이념과 생활 방식을 가지고 살다 망해 버리는 집안을 그린 염상섭의 소설 『삼대』는 이미 천여 년 전을 무대로 삼아도 통할 이야기다.(351P)

"토끼와 사냥개가 둘 다 지치면 마침내 놀림을 받게 되고, 조개와 황새가 서로 버티다 보면 또한 웃음거리가 될 것이오.“ -견훤이 왕건에게 보낸 편지중-(356P)

그것은 마치 초(楚) 항우(項羽)와 한(漢) 유방(劉邦)의 싸움을 보는 듯하다. 역발산 기개세(力拔山氣蓋世)라 한 항우 앞에 유방은 언제나 꼬리 감춘 쥐였으나, 민심의 향배(向背)가 그들의 운명을 가르지 않았던가?(358P)

반역을 당한 자는 비참하지만, 반역자가 아들인 경우엔 슬픔은 이중으로 겹쳐오고, 급기야 천륜을 팽개친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 삼기가 어디에도 없을 지경을 만들어 낸다.(361P)

뙤약볕 모래사장에서 자라난 풀입 한 포기를 보며 견훤을 떠올린다. 아무것도 없이 의지 하나로 나라를 일으켰던 ‘가엾은 완산 아이’는 후백제 마흔다섯 해라는 짧은 기록만을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362P)

먼 뱃길을 지켜 주는 수호신으로서 석탑. 그것은 참으로 상징적이다. 우리는 인생을 항해에 비유하곤 한다. 바람과 파도 속에서 또, 때로 찬란한 태양과 밤하늘에 빛나는 별의 인도를 받으며 건너는 고해(苦海)가 있다. 그 길을 지켜주는 석탑.(378P)

민족간은 결합해야 하고 결합할 수 있다는 신념과 경험을 가진 그(김춘추)라면, 나아가 신라-백제-고구려의 세 나라를 한 나라로 만드는 데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는지 모른다.(382P)


흥법(興法)

일연은 고대 삼국의 역사를 불교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불교를 받아들여 어떻게 발전해 나갔는지가 나라의 흥망성쇠와 곧바로 연결된다는 생각이고,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비록 뒤늦게 불교를 받아들였으면서도 그 문호를 화려하게 꽃피운 신라가 역사의 주인공이 될 충분한 자격을 갖춘 나라라고 보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불교의 전래 경위만이 아니라 일연이 가진 역사 의식의 말단을 읽게 된다.(386P)

흥법은 곧 흥국(興國)이었다.(386P)

그는 『삼국사기』가 전해 주는 역사적 사실 이상의 것을 바라보고 있다. 사실 이것의 것이란 물론 상상이다. 그러기에 시의 형식을 택했다. 그러나 상상은 시간이라든가 구조라든가 어떤 기제(機制)에 실릴 경우 사실 이상의 사실이 된다. 한 덩어리의 이야기는 사실 이상의 사실이 넘어간 그 어디쯤에서 완성된다.(392P)

순례자의 길은 외교 사절의 화려한 행차가 아니다. 무기를 쥔 군대의 살벌한 행진도 아니며, 이익에 혈안된 장사꾼들의 잰걸음도 아니다. 어떤 깨발음의 숭고한 사명이 조용히 깃든, 세계와 인간이 하나되어 마침내 그 비밀에 눈뜨고야 말 두근거리는 첫 발자국이다.(394P)

불빛이 아직 두루 돌지 못했을 때 매화는 핀다. 이런 자연의 섭리는 곧 인간 세계의 그것으로 원용되고 있다. 눈 덮인 땅에 봄빛은 돌지 않았지만, 매화꽃과 같은 존재로 모례는 등장한다. 신불(信佛)이 생명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스런 상황에서 꿋꿋한 믿음을 지킨 그녀다. 이는 고구려나 백제에서 볼 수 없는 신라 불교의 독특한 면이면서, 완고한 신라 사회에 뿌린 불교의 첫 씨앗이었다.(399P)

신라의 불교는 신라 한나라에만 그치지 않는 한국 불교의 화두다. 한국 불교라는 강물은 신라에서 물꼬를 터서 흘러 나왔다.(402P)

"살을 베어 저울로 달아서라도 새 한 마리를 살릴 것이요.“(405P)

오늘 우리는 사실을 따지는 것이 중요할까, 사실이 무엇이건 거기 실린 순교한 자의 마음을 고이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할까?(407P)

신라 불교가 뿌리 내리는 데에 치른 값진 희생의 전통, 그것은 곧 아도와 이차돈의 순교다.(409P)

시인은 결연히 노래한다. 사라진 것은 오직 몸일 뿐이요, 쇠북소리에 실린 그의 자취는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고.(411P)


탑상(塔像기)

인도의 아육왕도 이루지 못했던 일, 그것은 힘만으로 공덕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태자의 말에 함축된 의미에다, 오직 인연 있는 땅에서만 가능하다면 신라는 바로 그런 인연을 갖춘 곳이라는 자부심이 은근히 배어 있다. 우리는 이것을 신라가 가진 불국토사상(佛國土思想) 또는 본지수적사상(本地垂迹思想)이라 부른다.(424P)

대체로 성인을 만나는 장면은 이렇게 전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인이 성인인 줄 알고 만난다면 오죽 좋으련만, 우리는 본질을 두고도 늘 외곽만 맴돌며, 손에 잡은 진리를 진지인 줄 모르고 버리는 경우 또한 허다하다. 나는 그것을 ‘우연히 스치는 듯한 만남’이라고 말한다.(444P)

이것은 하나의 인연이다. 도를 이루려고 해도 이루려는 자의 의지 만으로 되지 않음을 우리는 이런 이야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도를 이루려는 일만이 아니다. 무릇 의지만으로 하는 사람의 일이란 얼마나 고달픈가.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 그렇게 되는 것에 몸과 마음을 맡기는 것, 인연은 그렇게 오는 게 아닐까?(454P)

"마음이 찾아갈 정처(定處)가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우리는 질투와 미움의 화신(化身), 누구도 한 마음으로 즐겁고 깨끗하게만 살 수 없다. 치밀어 오르는 질투와 걷잡지 못할 미움, 그것이 기실 누구에 의한 것이 아니고 나에게서 생긴 문제일진대, 미움도 질투도 피가 끓는 젊음이라 변명하는 동안 영혼 깊은 데에서는 상처만 커간다. 그래, 찢어진 마음이 찾아가 덧없음을 깨닫고 아름답게 치료받을 곳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457-458P)

불성(佛性)은 대체로 마음에 이미 자리잡고 있는 법이다. 그 불성은 어떤 지식보다 나으며, 때로 기적을 나타내 보이기도 하는 것이나, 무엇이 값어치 있는가는 이런 이야기를 통해 분명히 드러난다.(469P)

'부처를 배우면 마땅히 부처가 되어야 하고, 진리를 닦으면 반드시 진리를 찾는다‘(476P)

의상이건 원효이건 어떤 하나의 삶의 방식대로 살다 간 무수한 사람들을 대변하는 모델일 뿐이다.(498P)

세상살이의 헛됨을 비유하는 말은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한단지몽(邯鄲之夢), 한 세상사는 온갖 영고성쇠(榮枯盛衰)가 한솥밥 끊는 사이에 불과하더라는 비유이다.(504-505P)

좋은 시간 금세, 마음은 어느새 시들고
근심은 슬며시 늙은 얼굴에 가득
이제 다시 메조 밥 짓다 깨닫던 이야기 들추지 않아도
수고로운 인생 일순간 꿈인 걸 알겠네.

그러나 어찌 하겠는가? 허망한 줄 모르면서 이전투구(泥田鬪狗)하고, 알면서도 뭔가 이뤄보려 악착을 부리는 게 우리네 평범한 사람이다.(508P)


의해(義解)

기록자가 자기 시대의 이념 만을 고집해 당대의 생생한 자취를 남겨 주지 못한 점, 『삼국사기』는 거기서도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513P)

불교는 우리 사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종교다. 무릇 2천 년을 바라보는 오랜 역사에다, 거기 누벼진 사연이 많기도 많아, 불교야말로 이성으로만 받아들이는 어떤 형식으로서가 아닌 우리들 심성 깊숙이 내린 튼튼한 뿌리다.(513P)

"평소 세상의 경전에는 익숙해 이치를 궁구하는 데는 신통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불교 공부를 하자 도리어 썩은 풀 같았다. 헛되이 유교를 공부하는 것이 실로 생애의 두려움으로 다가와“ 드디어 출가한다. -원광- (515P)

일연은 원효의 생애를 한마디로 요약했다.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은 사람’이라고.(530P)

나는 원효를 현실주의 신앙의 구현자로 설정한다. 현실주의란 현실에 매달린다는 말이 아니다. 범박하게 풀어보자면, 현실의 첨예한 문제를 풀어가지 않고, 사람의 생애에서 부딪칠 수밖에 없는 문제를 불교의 틀 속에서 이해하고 실천한다는 뜻이다. 원칙은 무너지기 쉽고 오해는 따르기 쉽다. 그러나 미로를 헤매지 않으며 오해를 무릅쓰면서, 사람이 살다 보면 당할 문제 속으로 자신을 내던지기란 쉽지 않다. 원효는 그것을 감당했고, 그 같은 전범을 뒷사람에게 남기고 보여 준 사람이다.(533P)

전설은 대체적으로 주인공과 전승자 사이에 합작으로 만들어진다.(535P)

속과 성의 경계를 마음대로 드나들고자 했던 원효도 요석공주와의 사랑이며 설총을 낳은 일에 초연할 수만은 없었던가 보다. 스스로 파계를 인정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다. 그런데 그것은 지금까지의 그르 부정(否定)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바탕으로 극복되는 초월의 단계다. 원효가 오늘날의 원효가 된 것은 바로 이 같은 변증법적 정반합의 발전이 있었기 때문이다.(537P)

원효 아닌 원효는 무애의 원효였다. 무애의 원효가 지장하는 바는 관념이나 치장으로서의 불교가 아닌 현실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불교였다.(537P)

한마디로 말하면 원효는 이 나라 불교의 ‘첫 새벽’이다. 그로 인해 한국의 불교가 만들어지고 전승되었다는 것이다.(545P)

"아, 마음에서 일어나 여러 가지 법이 생기고, 마음이 사라지면 토굴이나 무덤이나 매한가지. 또 삼계(三界)가 오직 마음이요, 모든 법이 오직 앎이니, 마음의 밖에 법이 없는 걸 어찌 따로 구하리요.“ -원효-(551P)

원효가 현실주의라면 의상은 교조주의(敎條主義)다.(565P)

다큐멘터리 사진의 그 투박함으로 가급적 현장을 현장 그대로 잡아낸 한 장 한 장이 진실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 버릇이 내게는 있다.(571P)

나는 거기서 참으로 모질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다. 그것은 우리가 모진 것과 다르다. 우리가 자본주의적 욕심에 버려져서 모질다면 그들은 원초적 자연 속에서 몸으로 그것을 이해하고 적응하고 생존하려는 데서 생긴 모짐이다. 인류가 가장 인류다운 모습, 아마도 문명 이전에 인류는 저렇게 살았을 것 같은 모습을 그들은 지금 그대로 우리에게 보여 준다. 진실로 두려워 할 줄 알고, 진실로 견뎌 낼 줄 아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것이 참으로 성스러워 보였다.(571P)

순례자의 마음인들 범인의 그것에 조금이나 가까운 것이 있다면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수구초심(首丘初心) 하나일까?(576P)


신주(神呪)

승려를 소재로 한 많은 작품들이 대체적으로 인생의 번뇌와 그 번뇌 속에 시달리는 세속의 인간을 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출가는 그 번뇌로부터의 떠남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 자체가 슬픔이다.(603P)

시구렁창 같은 세속일지라도 거기서 뒹구는 것이 세상살이의 즐거움일까, 그러기에 출가는 번뇌로부터의 결별이면서도 오히려 슬프게 다가오는 것일까? ‘출가한 이는 누구에게나 사연이 있다’라는 선입견이 우리에게는 있다.(603P)

누구나 쉽게 보이는 세계 속의 불교가 현교라면 깊이 숨어 은미한 세계를 간직하고 있는 불교가 밀교일 것이다. 어쨌건 밀교는 현교 곧 일반적인 불교의 세계를 거쳐 최후에 이르는 세계라고 그들은 말한다. 일반적인 불교를 포함하면서 거기에 넘어선 자기들의 세계를 구축한 것이다. 같으면서도 다르다는 말이 이 때문이다.(605P)

세상에서 정말 중요한 일은 이렇게 버림받기도 하고 버려지기도 한다. 그래서 후세의 눈 밝은 사람이 필요한지 모른다.(607P)


감통(感通)

기독교의 『성서』에서 예수님은, 불쌍한 어린 아이에게 베푼 덕이 곧 내게 해준 일이라고, 세상에서 예수님을 위해 한 일이 아무 것도 없다고 머리를 조아리는 사람에게 말한다.(623P)

크건 작건 실천의 문제다. 이론으로서 받아들인 철학을 넘어 생활 속에서 움직이는 실천 원리로 불교가 신라 사회에 자리잡혔음을 알 수 있다.(623P)

여분의 옷 한 벌 없이 살아가는 한 승려가, 돌아가 덮을 이부자리 하나 없는 처지에 입고 있던 옷을 몽땅 벗어 주고 알몸으로 달려가거니와, 그 순간이 바로 신라 사회의 고갱이였다고 말한다면 어떨까? 기록에 나타난 ‘우리 나라 첫 번째 스트리퍼’라고, 나는 이 대목을 농담처럼 설명하곤 한다. 그러나 그 농담 속의 진담을 아는 사람은 다 알리라.(623P)

선율의 환생은 그런 그들(욕심 가득한 우리 모두)에 대한 경계이지만, 사실 살아 돌아와 저승의 일을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욕심이 화를 부르는 줄 알면서도 능청스럽게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보통이다.(636P)

정작 큰 스승들은 무엇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는 법이 드물다. 진리는 단순한 법이기에 그런 것일까, 유독 진신과의 만남을 중요시여기는 불교에서 그 만남은 곧 진리의 깨달음을 다르게 표현한 말이겠는데, 단순하기만 한 진리를 전하는 진신은 이렇듯 슬며시 다가온다. 진신인지 알고 모르고는 찾는 이의 책임인 것이다. 기독교의 『성서』에서 예수님은 그것을 ‘도적같이 찾아온다’고 말한다.(656P)

문제가 생길 때는 신라가 그랬고 고려가 그랬듯이, 성인의 가르침도 소용없는 절망의 순간이 온다. 지금 우리 시대의 풍속은 거기서 얼마나 멀까? 성인조차 나타나지 않는, 아니 인정하지 않는다는 과학의 시대에 우리는 무엇으로 경계 삼을 사표를 세울까?(670P)


피은(避隱)

세상과의 절연이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돼지우리 같은 시궁창에 뒹굴어도 살아 있음이 소중하고, 복마전 같은 세상일지라도 그 안에서 아옹다웅 싸우며 한 세상 마치는 것이 모정(慕情)의 세월이다.(672P)


효선(孝善)

어머니에 대한 일연의 향념(向念)은 신앙 그 자체다. 진존숙은 중국 당나라 때의 고승이건만, 만년에 늙으신 어머니를 봉양하고자 하산했다는 분인데, 목주 출신의 그를 사모하여 ‘목암’이라는 호를 지었다는 것이나, 일연의 일생이 뜻 깊은 까닭 가운데 하나로 ‘진정한 자애’를 들고 있는 비문을 보건데, 효심은 일연을 일연이게 한 주요한 요소다.(690P)

대성은 현세의 부모를 위하여 불국사를 짓고, 전생의 부모를 위하여 석불사(석굴암)를 지었다고 한다.(697P)

삼뇌는 소․양․돼지를 일컫는다. 칠정은 일곱 개의 솥에다 각각 음식을 만들어 신에게 바치는 것이므로 이 둘을 합치면 그지없는 진수성찬이다.(703P)

『삼국유사』, 이 책 한권에 실린 단 14수가 천 년의 시가사(詩歌史)를 떠받치고 있는 셈이다.(704P)

재래신앙이 강하게 형성되었던 사회 중심부에 외래의 불교가 파고들어 오는데, 신라는 그것을 거부하거나 거기에 종속되지 않는 면을 보여 주었다. 재래 신앙과 불교 신앙이 조화하여 신라인의 독특하고 탁월한 불교 문화를 창출해 낸 것이다. 이것은 신라인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고급화된 문화로 옮겨 갔음을 말한다. 향가는 그 같은 특성을 설명해 주는 대표적인 증거다.(704P)

아마도 신라인들은 그들의 고유 정서, 이것을 담아 낼 그릇으로서 우리만의 표기 수단을 필요로 했던 것 같고, 「찬기파랑가」․「제망매가」․「원왕생가」같은 절창의 노래를 얻어냈다. 향가는 그런 노래이기에, 일연조차도 이를 평가해 ‘천지간 귀신이 감동하기를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하였던 것이다.(706P)

좋은 시인은 좋은 시를 쓰기도 하지만 좋은 시를 알아볼 줄도 안다. 일연은 분명 그런 시인이었다.(707P)

시는 현세의 문제 속에 있으면서, 현세에 안주하지 않는 초월성을 가진다.(710P)

부드러움과 강인함의 조화. 이것은 곧 신라 사회를 이룩한 미의 근본이다. 저 불국사 석굴암의 부처님이 남자로 보기에는 부드럽고 여자로 보기에는 위의(威儀)가 넘친다는 평처럼, 이 나라를 일으키고 지킨 조상들은 두 가지를 조화시켜 깊은 미의식을 창조해 냈다.(712P)

노동요는 일할 때 부르는 민요다. 힘든 일을 하다 지치고 괴로울 때 부르는 노래는 위안을 준다. 더욱이 함께 입을 모아 부르다보면 박자에 맞추어 행동이 통일되니 힘이 덜 든다.(714P)

태어난 일 자체가 설움, 우리는 그 운명의 짐을 저버리지 못한다.(714P)

충성심과 이기심은 종이 한 장 차이다.(720P)

순수 불교의 자리에서 약간 벗어난 듯한 일연의 태도에서 우리는 괴승의 요소보다는 시대가 요구하는 어떤 점에 적극적으로 대처한 선각자적 태도를 발견한다.(725P)

밝음이 어둠이요 어둠이 곧 밝음이며, 어둠과 밝음은 종국에 둘이 아닌 하나라는 불교의 깊은 진리가, 일연의 개명 과정에는 숨어 있다.(728P)

본질의 문제, 그 앞에서 일연은 기존의 방편을 부수고 있었다.(733P)

새로운 시대상을 창출한다는 명제 아에서 다른 산문의 경전을 해석하는 일이나 다른 산문의 고승을 스승으로 삼는 일이 무엇이 대수이겠는가. 오히려 거기에 가르침의 본질이 있다면 가서 배워야 하고, 그 업적을 널리 현창하여야 하는 일이다.(733P)

본질 앞에서 방편은 수정되어야 한다. 이것이 ‘멀리 목우화상을 이었다’는 말의 함의(含意)이다.(734P)

일연에게 새로운 시대에 대한 인식이 보다 구체화되는 것은 『삼국유사』의 편찬이다. 내외적으로 불어닥쳤던 거대한 변화의 조류는 필연적으로 전통적 사고방식의 해체를 가져왔는데, 『삼국유사』는 그같이 변화된 모습을 담는 그릇이었다.(734P)

대체로 옛 성인들이 예악(禮樂)을 가지고 나라를 일으키거나 인의(仁義)를 가지고 가르침을 베풀고자 할 때면, 괴이한 힘이나 지저분한 귀신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왕이 일어나려 할 때에, 부명(符命)에 맞는다든지 도록(圖籙)을 받는다든지, 반드시 남과는 다른 것이 나타난 다음 큰 변화를 타고 큰 틀을 잡아 나라를 일으킨다.(736P)

『삼국유사』보다 한세기 앞서 중국 중심의 고대 왕권 국가의 전형을 보여 주는 『삼국사기』는 그 체재나 기술 내용이 중국의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인 것이었다. 이는 고대 우리 나라의 지성을 가늠하는 척도이기도 했지만, 과도한 중국 중심의 사고방식이 벌써 13세기 사람들의 눈에도 무리하게 보이기 시작하였다.(736P)

중국에서 처음 나라가 설 때부터 한나라를 일으킨 유방에게까지 신이한 일로 점철된 건국의 역사를 낱낱이 대는 것은 우리도 이면의 전범을 하나쯤 마련하겠다는 일연의 논리적 전거 대기다. 그러기에 결론적으로, “우리 나라 삼국의 시조가 신이한 데서 출발했음은 무엇이 괴이한 일아랴”고 반문한다. 자존의 극치다.(738P)

13세기 혼미한 사회를 살다 간 일연은 종교와 문학 등 다양한 방면에서 새로운 출구를 찾으려 한 혁신적 승려였다.(741P)


사진 찍기는 참 재미있다

우리에게 『삼국유사』는 깊은 밤 외딴 산길 멀리서 흔들리는 불빛 같은 그런 존재였다.(742P)

황룡사 터를 배경으로 하얀 별빛과 노란 가로등 불빛에 처연히 빛나던 분황사 당간지주에 서린 원효의 고독한 사랑, 점점이 내리는 눈을 맞으며 서 있는 부석사 석등에 묻어 있는, 온갖 번뇌에도 흔들림 없이 제자리를 지켜 내는 의상의 순결한 사랑, 몸통만 남은 깨진 불상을 위해 촛불을 밝히는 촌노의 손 끝에 실린 욱면의 순박한 사랑, 남산 너머로 지는 해를 아쉬워하며 먼발치에게 까치발로 서성대는 익모초에 담긴 지귀의 짝사랑.(743P)

그래도 사진 찍기는 참 재미있다. 내가 즐기는 것 가운데 가장 신나는 놀이다. 의상의 몇 편 되지 않는 저술을 평한 일연의 글처럼, ‘솥 안의 국맛’을 책임지는 특별한 ‘한 점 고기’ 같은 사진 만들기, 희망사항이다.(744P)



3. ‘내가 저자라면’

지난 금요일 북리뷰 ‘저자에 대하여’ 의 참고자료를 구하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하고 있었다. 어, 그런데 이 책이 새대통령에게 추천하는 30권의 도서 중 한권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이 책이 역시 좋은 책이긴 좋은 책이구나. 역시 구본형 선생님의 안목은 높구나’ 라고 흐믓해하며 추천인을 보았더니 웬걸 ‘변화경영연구소 구본형소장’이라고 적혀 있는 것 아닌가! 헉.. 역시나..

‘그래, 이 책은 그만큼 가치 있는 책인거야.’ 라고 생각하며 이번엔 어떤 이유로 추천을 했는지 궁금하여 추천사를 살펴 보았다. “우리 문화에 대한 세계적 공감이 문화적 가치를 드높인다.”라고 되어 있었다. ‘흠.. 점점 어려워지는걸...’

책을 다 읽은 후 다시한번 이 책의 추천사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무슨 뜻일까. 한순간 답이 나왔다. 물론 나 혼자만의 답이지만 그럴 듯 했다. 스스로 만족스러워졌다. 『신화의 힘』의 저자 조셉캠벨은 전 세계적 관점에서 신화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해주었다. 가장 넓은 관점이면서도 결국 궁극적 추구 포인트는 천복을 쫓음에 있음을, 전세계의 신화를 통해 우리에게 강조하였다.

그렇다면 두 번째 『삼국유사』는 무엇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가. 나는 이것을 진정한 우리를 발견하기 위한 우리 민족의 주체성, 자주성, 자긍심의 모색에 있다고 보았다. 『삼국사기』가 중국 사대주의에 물들어 제대로 된 역사관점을 우리에게 보여주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겼다면 비록 내용의 구성이 신화와 야사 그리고 민화 등으로 구성되어 현실감이 다소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은 『삼국유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모습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민중의 역사서라 할 수 있겠다.

그럼 문화는 무엇을 말할까. 문화는 같은 시대를 공유하는 사람들 간에 만들어지는 공동 행동이자 사상, 트렌드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우리 문화는 무엇을 이야기 하는 것일까. 이 책을 빌어 이야기하자면 ‘중국’이나 ‘왜’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우리 고유의 행동, 사상의 산물이라 할 수 있으리라.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은 첫 부분에 단군신화를 내세움으로써 우리 민족의 주체성과 자신감을 과시했다. 이것은 우리의 것이다. 결코 남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우리 본연의 사상이자 관념이다. 고로 우리는 중국에 붙어사는 오랑캐의 자식이 아닌 하늘의 자식인 것이다. 우리의 문화는 여기에서부터 출발한다. 이것이 바로 구본형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코리아니티’일 것이고, 이 책을 추천한 이유일 것이며, 3번째 책이 선생님의 책인 ‘코리아니티 경영’인 이유일 것이다. 그럼 4번째 책이 시몬느 보봐르의 ‘노년’인 이유는 무엇이냐고? 그건 책을 접해보면 정확한 답을 알 수 있으리라. 근거없는 추측은 사실의 오도를 부를 수 있으므로... ㅎㅎ

이 책의 장점은 너무 많아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에 비해 아쉬운 점은 한가지 밖에 찾지 못한 점이 아쉽다. 그렇다고 단지 아쉬울 뿐이지 고치거나 꼭 개선을 해야만 하는 사항은 아니란 생각이다. 옥의 티 정도랄까? 그만큼 이 책은 독자를 이야기 속에 푹 빠지게 하는 절묘한 매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을 이야기하자면 다음과 같다. 『삼국유사』는 총 9개 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소분류의 제목은 나와 있지만 중분류의 제목인 기이, 흥법, 탑상, 의해, 신주, 감통, 피은, 효선은 차례에 나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본문 중엔 나와 있지 않아 처음 읽을 때 구분이 다소 어려웠다는 점이다.

장점은 많기 때문에 번호를 매겨 정리해 보았다.
① 시대배경의 설명을 통해 사실에 대한 이해를 더욱 쉽도록 했다는 것이다. 당시 『삼국유사』의 시대배경은 다음의 3가지가 지배적이었다. 첫째 무신정권 통치로 인한 시대 흐름의 변화가 있었으며, 둘째 송나라가 무너지고 새로이 원나라가 들어서며 중국의 사대주의의 지위가 무너지는 상태였으며, 셋째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13세기 지식인들이 왕성한 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당시 『동명왕편』의 이규보, 『제왕운기』의 이승휴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잘 나타내주는 서적이라 하겠다.
역사의 배경을 아는 것은 그 역사를 좀 더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진실은 무엇인가. 아무도 모르겠지만 그 배경을 최대한 이해하고 열린 마음으로 받아 들일 수 있다면 최대한의 객관적 주관으로 그 역사의 장면을 받아 들일 수 있을 것이다. 즉 역사서에 기술된 글자 그대로의 내용이 아닌 자신의 생각으로 역사를 재창조하여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② 책을 읽다보면 일연스님의 작업 모습이 어렴풋이 그려진다. 수 많은 중국 역사서를 가져다 놓고 그 중에서 우리 역사를 찾아내고 옮기며 수정하고 하는 일련의 작업 모습이 보인다. 또한 책을 쓰며 울분을 터뜨리는 모습까지도! 아마도 이러한 작업을 통해 일연 스님은 더더욱 민족의 자긍심을 키웠으리라.

③ 이 책의 중간중간 저자 고운기는 곧 일연으로서의 역할, 즉 일심동체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책 안에서 저자는 일연스님과 같이 슬퍼하고 기뻐하며 동시에 흥분하기까지 한다.

박제상의 죽음편을 보자.
“쌓이고 쌓인 감정의 폭발이라고 할까. 좀체 흥분하지 않는 일연의 붓끝이 여기서 가늘게 떨리고 있음을 우리는 놓치지 말아야 한다”(111P)

또한 저자는 시인이기 때문에 시가, 향가, 찬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는데 이는 시에 능하고 시가를 즐긴 일연스님과 일맥상통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저자는 일연 스님의 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좋은 시인은 좋은 시를 쓰기도 하지만 좋은 시를 알아볼 줄도 안다. 일연은 분명 그런 시인이었다.”(707P)
여기서 태클 하나. 그런 일연 스님을 알아본 저자도 그렇다면 좋은 시인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는걸까?

④ 감칠 맛 나는 구성과 전개를 통해 전혀 지루하지 않게 『삼국유사』의 세계를 안내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연오랑세오녀 편에서 저자는 주제의 흐름을 다음과 같이 끌고 가고 있다.
‘여자 프로레슬링 → 히미코 → 역사속 히미코의 모색 → 쇼비니즘 → 주관에 대한 경고 → 연오랑세오녀의 시작’이다. 처음 툭 하나 던져 놓은 엉뚱한 주제를 연결, 연결시켜 이야기하고자 하는 본문으로 최종 접속시키는 저자의 상상력이 무척이나 재미있게 다가온다. 또한 저자는 재미있는 제목으로 전혀 역사해설서 답지 않은 면목을 보여주고 있다. 야래자(밤에 찾아오는 손님), 문희-그 아름다운 여자의 이름, 수로부인-미시족의 원조, 첫 성전환증 환자 등. 상상력은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⑤ 적절하며 훌륭한 사진들, 그리고 알찬 해설들은 책을 읽는 내내 휴식의 공간이자 활력소가 되어주었다. 또한 내가 가본 적이 있는 곳의 사진들은 그 시간들을 다시 돌려보게 해주는 특별한 타임머신이 되어 잠시동안 삼국유사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게 해주었다. 좋은 경험이었다.

⑥ 울리고 웃긴다. 감동하게 만든다. 같은 민족, 같은 백성이라면 이러한 이야기에 감통(感通)하지 않을 자 없으리라!

'서리리(黍離離)‘는 『시경』 왕풍(王風)에 나오는 노래, 망한 주나라의 신하가 옛 서울을 지나다 그 곳이 메기장 밭으로 변해 버린 것을 보고 탄식하였다는 것인데, 신회의 노래는 그마저 없어졌으니, 천년 사직은 말 뿐이요 무상하기만 하다.(305P)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간다. 그리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⑦ 저자는 폭넓은 고증능력으로 최대한의 참고문헌을 활용하여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역사적 중심을 가지려 노력하고 있다. 한일동족설을 주장(신동아 10월호에 상, 12월호에 하가 실림)한 일본 문화사 전공의 홍윤기교수의 글이나 원효를 바라보는 근대문학의 개척자 이광수의 글, 그리고 일연의 『중편조동오위』에 대한 불교학자 정병조 교수의 주장까지 다채로운 참고자료는 보다 폭넓은 내용의 이해를 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책을 읽던 도중 한가지 궁금증이 일었다. 과연 아이들이 읽는 『삼국유사』 책에는 이 『삼국유사』가 어떻게 소개되어 있을까. 비판의식 없이 있는 그대로를 순수하게 받아들일 아이들의 책에는 이 『삼국유사』를 과연 뭐라고 말하고 있을까. 참고삼아 조사해 보았다.

"삼국의 역사와 사정을 처음으로 적은 책이 바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입니다.
〈삼국사기〉는 세 나라가 처음으로 나라를 세우고 발전한 사실과 마지막 멸망할 때까지의 이야기입니다. 고대의 역사책으로는 어느 나라 역사책보다 내용이 풍부합니다. 그런데 지은이 김부식이 유학자인 탓으로 불교나 무속 같은 신앙에 관련된 이야기는 거의 적지 않았습니다.
이와 달리 〈삼국유사〉는 지은이가 스님인 탓으로 당시 중심 신앙인 불교 이야기를 많이 적었으며, 역사보다는 이적을 보인 설화를 많이 담았습니다. 우리나라를 처음 연 단군 이야기도 이 책에서 처음 기록했습니다. 더욱이 그때 살던 사람들의 생활과 생각에 얽힌 이야기를 풍부하게 담고 있습니다. 황당하고 꾸민 듯한 이야기지만,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오늘을 사는 우리가 그 시절의 여러 사정을 짐작하고 상상하게 해 줍니다. 이 두 가지 책을 서로 비교하면서 읽으면 까마득한 삼국 시대의 역사와 생활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 인류의 역사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발전했는지도 알 수 있지요."
《쉽게 풀어 쓴 우리 고전 삼국유사․삼국사기》 - 이이화(감수자, 역사학자) -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와 함께 현존하는 우리 나라 최고의 사서이다.
〈삼국유사〉의 저자인 승려 일연의 거주지가 영남이었던 관계로, 〈삼국유사〉의 내용은 불교와 관련된 이야기가 대부분이며, 또 지역적으로도 신라에 편중되어 있는 감이 있다. 그러나 현존하는 사서 가운데 우리 나라 고대의 신화, 전설, 설화, 시가 등이 풍부히 수록된 사료로서는 이 〈삼국유사〉를 제외하면 거의 없는 형편이다."
《그림 삼국유사》 - 민족문화추진위원회-

"〈삼국유사〉는 당시 몽골족이 우리 나라를 강점하고 있던 시대에 저술된 책으로서 사대주의의 물결 속에서 자기를 찾으려는 의식과 집념으로 엮어진 민족적 긍지의 기록이다. 저자 일연은 인각사에 숨어 옛 조상의 정신적 고향을 이 한 권에 응집시켰는데 이는 시대적 요청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다음에 세워진 조선조의 선비들은 우리의 역사보다는 중국 역사를 가르치기에 여념이 없어 민족성 주체성이 담긴 〈삼국유사〉의 의의가 숨겨진 채로 남겨졌었다. 이런 의미에서 〈삼국유사〉 같은 민족의 성전을 유아들에게 읽도록 해 주는 일은 민족의 주체성을 일찍부터 갖게 하는 데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김동욱(전 학술원 회원)-

역사해설서는 저자의 주관에 의해 그 뉘앙스가 바뀔 수 있다. 즉, 같은 사실을 두고 전혀 다른 의미로 변모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역사서의 기술된 내용만을 보고 어떤 것이 옳다라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아무튼 우리의 아이들은 그 역사를 배우고 자란다. 그만큼 화자의 위치가 중요하다. 잘못된 교육은 평생을 갈 수 밖에 없으며, 한번 잘못된 인식은 또한 평생 고쳐지기 어렵다. 선생님들, 작가들, 출판사 관계자들 모두 중요한 위치에 있다. 많이 생각하고 많이 토의했으면 좋겠다. 결코 한쪽으로 쏠린 교육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계속해서 끊임없이 공부했으면 좋겠다. 역사는 흐른다. 정체 되어 있는 역사는 죽은 역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있는 싱싱한 역사를 우리 아이들에게 들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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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3.10 13:51:07 *.70.72.121
꾸준히 자신을 갈고 닦는 모습이 좋아요. 담담하게 평상심을 유지함이 느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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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na
2008.03.11 16:52:46 *.105.97.23
good job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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