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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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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10일 09시 28분 등록
우리가 정말 알아야할 삼국유사
고운기 글 양진 사진 현암사

지난 며칠 동안 “고운기의 삼국유사”를 끌어안고 잠이 들었다.
드디어 어젯밤에 고운기가 꿈에 나타났다.

“그가 고운기였는지, 일연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곳은 내가 돌보는 아이들과 늘 가서 뛰어 놀던 흙마당 같은 곳이었다.
그런데 그 뒤로 대문이 활짝 열려있다.
어디인지 모르겠으나 우리가 늘 가서 놀던 곳이었는데 오늘은 문이 모두 활짝 열렸다.
그렇게 열린 문들을 통해 보이는 곳은 정갈하고 품위 있는 절간인 것 같아 보였다.
일연인지 고운기인지 모르겠으나, 내내 선한 웃음을 머금고 우리가 노는 양을 바라보고 있던 한 젊은 스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그에게
“이곳은 우리가 늘 와서 놀던 곳입니다. 그런데 이곳 바로 옆에 저렇게 넓고 깊은 절집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하고 말했다.
나는 그와 몇 가지 이야기를 더 나누었다. “

나는 이러다 과제물도 다 못 하겠구나 싶게 벅찬 일상을 보냈다. 날마다 자다 깨다를 되풀이하였는데 그 새벽에도 그렇게 잠을 깻다.
책을 읽다가 잠깐 잠이 들었는데 그때 꾼 꿈이었다.
나는 그 꿈이 내게 말해 준 상징과 은유에 대해 생각했다.
내게 삼국유사는 아이들과 함께 가서 놀던 대문 앞 같은 곳이었다.
곰이 여인이 된 이야기서부터 시작하여 호랑이 이야기까지, 아이들에게 들려준 삼국유사 이야기는 내게 일상적인 일이었으나 나는 늘 그 대문 앞에 서 있었다.
나는 그 삼국유사속의 수많은 이야기를 기록해 낸 일연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었다.
현암사에서 나온 어린이 삼국유사 1,2권을 재정리한 분이 서정오 선생인 것만 기억했고, 그 책의 원문번역을 한 이가 고운기이었음을 기억하지 못했다.
이 책 “우리가 정말 알아야할 삼국유사”는 일연의 삼국유사가 아니다.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의 국문학자 고운기의 삼국유사이다.
그러니 나는 고운기가 열어 놓은 문을 통해 다시 삼국유사의 집안으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
문을 열어 준 것은 고운기였으나 그 다음은 내 몫이 될 것이다.

저자에 대하여

고운기 (1961년 전남 보성 출생
한양대 국문학과 졸 연세대 대학원 국문학과 석, 박사 학위.
현재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1983년 동아 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그는 역사학자가 아니라 국문학자다.
그는 역사서로서의 삼국유사보다 우리 고대 국문학 자료로서 삼국유사를 만난 것으로 짐작된다.
余之學問 出於是書 而成於亦是書
(내 학문은 이 책에서 나와 이 책으로 또한 이룰 것이다)
그는 1980년대 초에 삼국유사 원본의 영인본을 사고 그 제일 앞장에 위의 글을
스스로 썼다고 한다.
1980년에 대학에 입학을 했다는데 80년대초에 산 책앞에 이런 한문을 쓸 수 있었다니 우선 놀랍고, 그 나이에 이미 자신이 걸어갈 학문의 길을 찾을 수 있었다니 더욱 놀랍다.
그는 국문학도였고 전공 시간에 나온 일연의 시 한편에 매료되어 “삼국유사”와 “일연”을 향한 짝사랑을 시작했다고 한다.
일연의 “삼국유사”에서 그가 받은 또 하나의 인상은 현장답사에 대한 것이었다.
고운기는 1988년 여름부터 삼국유사의 현장을 하나하나 차례로 밟아가기 시작한다.
그가 처음 찾은 곳은 일연이 말년에 삼국유사의 저술을 마쳤다고 하는 인각사라고 한다.
“책상을 떠나 처음 찾아 간 곳이 인각사. 경상북도 군위군의 산골짜기에 있는, 일연이 만년에 거처하며 삼국유사의 저술을 마쳤다고 하는 곳이다. 면 소재지로 향하는 길은 아직 부분적으로 비포장도로였고, 버스는 더디 오는데 , 유난하였던 그 여름의 땡볕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이제 남한에 있는 삼국유사의 무대를 거의 다 가 본 것 같다. 짝사랑이라면 지독한 짝사랑이다.“
(“일연을 묻는다” p18 2006. 고운기 저 현암사)
이처럼 고운기는 삼국유사뿐아니라 일연의 일생에도 커다란 관심을 보였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할 삼국유사”의 머리말을 통해 자신은 “삼국유사읽기”의한 방법을 내어 놓는다고 했다.

고운기의 책에 사진을 담은 양진(1966년생. 연세대 금속공학과졸업)은 1991년부터 함께 다
니며 삼국유사에 나오는 이야기의 현장을 찍는다.
양진의 사진은 “우리들이 정말 알아야할 삼국유사”뿐 아니라 “길위의 삼국유사”와 “일연을 묻는다”등 고운기의 삼국유사 관련 책들에 어김없이 실린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할 삼국유사”의 사진아래 실린 짧은 글귀들은 양진의 것이다.
양진이 보여주는 사진은 시공을 뛰어 넘어 우리를 저 삼국유사의 무대로 데려다 놓는다.

나는 이 책의 저자에 일연을 써야 하는지 아닌지 잠깐 생각했다.
곧 결정했다.
나는 이 책의 저자는 고운기이지 일연이 아니므로 쓰지 않기로.
고미숙의 고전 리라이팅 “열하일기, 그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이 떠올랐다.
그 책의 저자는 박지원인가? 고미숙인가?
그렇다면 이 책 “우리가 정말 알아야할 삼국유사”의 저자는.

내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3 어쨋거나 이 두가지 사실은 “삼국유사”를 이해해 들어가는 중요한 단서이다.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와 더불어 논의하지 않을 수 없고, 그 둘의 분명한 차이가 사(史(덧말:사))와 사(事)에 있다는 점.

4 김부식의 삼국사기로 대표되는 고려전기 지식인들의 세계인식은 사대 (事大)로 요약된다
세계관의 변화는 곧 역사관의 변화를 가져온다.

5 1206년에 태어나 13세기를 온전히 살다간 일연은 바람처럼 휘몰아치는 시대의 변화를 겪었던 사람이디.
승려들은 처음부터 중국중심에 서 있지 않았으므로 보다 빨리 자신의 길을 걸어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삼국유사는 이 시기에 우리 역사를 주체적으로 바라보고자 했던 지식인들의 일련의 작업속에 놓여 있는 것이다.
삼국의 고대사를 보여 주는 데에 삼국사기가 지닌 강점과 맹점을 누구보다 일연 자신이 깊이 간파하고 있었다.

6 기이 편에서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한 조를 한 왕과 그 왕대의 특징적인 사건 하나를 묶어서 기술해 나간 점이다. 미추왕과 죽엽군, 내물왕과 김제상 이런 식이다. 그것은 삼국유사가 정식 역사서의 굴레를 뒤집어 쓰지 있지 않았으므로 가능했지만, 한 왕대에 여러 가지 복잡한 사건이 얽혀 있다고는 하여도, 그것을 특징적인 사건 어느 하나로 집약하여 정리해주는 이 방식에서 일목요연한 흐름을 짚어 보게 되고, 저자의 분명한 역사관 또한 찾아볼 수 있으니 매우 흥미롭다.

11 그러나 나는 삼국유사의 다른 곳이 아닌 그 책의 첫머리에 단군신화를 실었다는 점으로 더욱 호들갑을 떨고 싶다.
그렇다면 ' 처음기준' 은 누구의 생각인가? 그것이 맨 처음이 되어야 한다고 본 그 관점과 의식은 어떻게 생겨났던가? 설령 처음 이야기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미 사실로는 믿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일때, 다른 부분부터 시작하였다가 뒤 어디쯤에서 슬며시 끼어 넣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일연은 그런 편법을 쓰지 않았다.
지금은 흔한 생각이 되고 말았지만 일연이 살았던 13세기의 사람들이야말로, 그 샘과 뿌리를 단군이라고 본 아마도 첫 세대였던가 한다.

12 그 쓰디쓴 경험이 사회와 역사를 보는 눈을 바꾼 것일까? 그렇다면 값비싼 희생을 치렀지만 귀중한 결과물을 얻은 셈이다. 승려 출신의 일연같은 이가 삼국사기와는 다른 책을 편찬하겠다고 나선 것이 그 결과물의 하나였다.
글을 쓰는 것이 목숨과 바꿀 무게로 쳐지는 시대에서 단 한 글자도 허투루 적을 수 없다. 다른 이야기가 아니다. 큰 나라야 제 일을 제 방식대로 쓰면 된다. 예나 이제나 작은 나라는 거기에 그다지 자유가 없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면서도 문제가 되지 않기 위해서 사실의 기록만이 아닌 상징이 자리잡는다.

14 상징으로 그리는 역사를 옳게 읽자면 독자는 상상력을 써야 한다.
17 여기서 곰과 호랑이가 단순한 동물이 아닌, 그것들로 상징되는 어느 부족이라는 인류학적 해석이 덧붙여진다. 새로운 역사를 창출하고자 각고면려한 곰 부족에게서 새로운 인물이 나온다. 그가 바로 단군이다.

18 곰은 여자가 되는데 목적이 있지 않았다. 최후의 주인공 단군의 출생까지 커다란 각본이 마련되어 있었고, 그것을 움직여 나간 주체는 바로 어머니 곰이다. 단군은 그렇듯 현명한 곰 부족 출신의 어머니를 두고 태어나 이 땅의 첫 왕이 되었다.

19 사실 건국 연대보다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 했다는 점이 더욱 중요하다. 이땅에 세워진 첫 나라의 이름이요, 이후 우리 역사에서 이만큼 자주 국호로 애용된 이름이 없다.

21 대개 책의 처음을 시작할 때 거기에 책 전체의 집필의도를 함축할 어떤 상징적인 것을 내세우고 싶어한다. 일연의 삼국유사에서 단군신화는 그러한 상징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단군신화는 건국신화다.
건국이냐 창세냐 구분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네 관념의 소산이고 그것은 특히 서양식 사고방식 아래서 그렇다.

22 하늘의 힘이 구체적으로 이땅에 어떻게 이르게 되었던가를 설명하면 그만이다. 단군신화는 그것을 상징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23 이를 그대로 들여와 내용만 우리 것으로 채웠을 때, 내용은 형식에 가려 실상을 보여주지 못했다. 세련된 장식으로 우리 역사를 볼품 있게 세워 놓았지만 그로 인해 본질을 놓친 것, 부작용이란 다름아닌 우리의 실종이었다.
삼국사기는 한반도 역사를 한나라가 세워진 한참 후인 기원전 57년에 와서야 떨렁 시작한다. 신라의 건국이다. 그 이전의 일들은 언급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24 삼국사기가 나온 12세기 중반과 삼국유사의 13세기 후반까지는 150년은 그 이상의 현격한 차이를 보여준다.
대내외적으로 같은 시기에 겪은 이 사건은 고려사회를 통째로 뒤흔들어 놓는데, 무엇보다 기존에 세워졌던 질서가 무너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이념과 사상이 자리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거기에 희미하게나마 민족의 주체성 같은 것이 자리한다. 매우 의미심장한 변화다. 삼국유사는 그 변화의 끄트머리에 자리 잡는다.

25 이 같은 분위기가 일연으로 하여금 우리 역사의 더 먼 곳에 관심을 갖게 했고, 거기서 단군이 발견되었음은 당연하다. 단군의 발견과 그 기록은 일연이 지닌 선각적 혜안만으로 이루어질 성질의 일은 아니었다.

29 일연은 같은 민족이라는 전제 아래, 위만조선을 단군조선의 후계로 여겼으리라 생각한다. 중국에서 직접 책봉한 기자를 애써 간단히 처리해 버리고, 위만조선을 그 다음 조에 이어 놓은 일연의 생각은 여기서 조금씩 드러난다.
34 사실 삼국유사에서 단군 신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지만 실은 일연이 단군 한 사람에 그치지 않고 , 조선이라는 나라의 처음과 끝을 설명하고자 한 데 더 힘을 기울였다고 보아야 한다.

43 그것을 받아들인 일연의 삼국유사에 와서 주몽은 삼국사기에서보다 더 확실히 하늘님의 아들이라는 지위를 획득했다. 삼국사기가 금기시하는 것들이 이미 무너졌을 때, 그 존재를 회복한 것은 단군만이 아니다. 이렇듯 주몽에게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다만 주몽은 하늘님으로 이어지는 부계와 신이한 존재로서 모계를 두루 갖추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그러나 이런 난생신화의 핵심은 결국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이리라.

53 고구려나 백제와 달리 신라의 건국에 관한 일연의 기술은 삼국사기에 거의 의존하지 않는다. 대개 삼국사기보다 훨씬 자세하며 적어 나가는 태도 또한 매우 자신에 넘쳐있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가져온 것일까?

54 삼국사기가 여섯 부족을 조선의 유민이라 한 데 반해 일연은 “여섯부족의 시조는모두 하늘에서 내려왔고”고 한다. 되도록 이성적 판단에 맞아 들어가는 것을 추구했던 삼국사기의 세계와 일연 사이에 놓이는 차이점을 여기서도 확인한다.

56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말은 곧 오리지널의 출발을 의미할 것이다. 이제 남쪽에도 하늘에서 내려온 이들이 있음을 말하는 일연의 의도란 곧 북쪽과 계통을 달리하는 오리지널이 있음을 강조하자는 데 있지 않을까?

66 그 대표적인 것이 지리산의 여신 신화 성모천왕 전승과 성거산의 여신 전승이다.
이같은 지리산 성모천왕 전승은 무당이 처음 어떻게 생겨났는가를 알려 주는 이야기다. 이를 무조신화라 한다.
한편 성거산의 여신 전승은 고려왕족을 성화시키려는 의도에서 나왔다.

68 신라 왕조의 출발이 어디에 그 근거를 두고 있는지 명확해진다. 무당의 탄생 내력을 담은 이야기는 고대 국가의 건국신화와 사촌간처럼 가깝다.그것은 고대로 올라갈수록 왕권과 신권이분리되지 않았던 데에서 연유한다. 삼국의 건국신화 가운데 신라쪽이 유독 무조신화나 민간 전승의 신모 신화에 가까운 것은 왕실의 성격이 곧 거기에 기반을 두었다는 강한 증거다.

70 탈해는 무척 복잡하고 신비한 인간이다. 그 출생과정부터 한 남자의 생애는 파란만장을 예고하고도 남았다.

78 달리 생각하면 이만큼 인간 냄새가 나는 이야기도 없다. 하늘과 땅이 부리는 조화로 자신의 신성성을 포장하는 시대를 지나, 이제 인간대 인간의 투쟁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목적을 달성하려는 매우 정치적인 모습이 나온다.

86 머나먼 이역, 아니 어느 시골 마을에서 올라와 입신양명한 탈해.

96 일연은 남다른 일 하나를 했다. 자기가 머문 지역에 전해오는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을 빠뜨리지 않고 모았다는 점이다. 자신이 승려라고 해서 불교적인 데에만 머물지 않았다.
연오랑 세오녀 이야기 또한 그의 이같은 관심과 실천 속에 모아진 것으로 본다. 그런 이야기 일수록 일연의 붓끝은 힘을 얻는다.

98 신라 사람들이 잃어버린 것은 해와 달이 아니라 해와 달을 해와 달로 볼 수 있는 그 정령이었다.

101 정령의 의인화야말로 연오랑 세오녀 이야기를 아름답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사이 사는 세상의 사람으로 바뀐 이 같은 이야기 구조는 삼국유사 전체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것은 곰이 사람으로 바뀌는 단군신화에서 시작하여 호랑이가 아름다운 처녀로 바뀌는 김현의 전설까지 다양하게 퍼져 있지만, 여기 해와 달의 정령을 사람으로 설정한데서 아름다움은 극치를 달린다.

110 물론 박제상의 장렬한 죽음에다 양쪽 모두 초점을 맞추었다는데에 큰 차이는 없다. 그리고 그 죽음은 신라와 일본의 오랜 갈등속에 빚어진 가장 비극적이고 상징적인 사건이다.

116 망부석, 그 슬픈 전설
오랜 다음이었다. 부인이 사모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세 낭자를데리고 치술령으ㄹ 올라가 왜나라를 바라보고 통곡하다가 죽어서는 치술신모가 되었다. 지금 사당이 되었다.

120 승려의 신분을 벗어난 파격적인 내용으로 삼국시대 그 밑바닥의 정서를 전해 준 점,

121 이 유형의 이야기들이야말로 삼국시대의 비극적 영웅들이 어떻게 태어났는가를 실감나게 전해준다.

126 이쯤되면 진지왕을 단순히 호색한이라고만 부르기가 꺼려진다. 도리어 순진한 사람처럼 보인다. 더욱이 두 사람이 합방하는 동안 “다섯 빛깔의 구름이 집을 덪고, 향기가 방에 가득했다”는데, 다섯빛깔이 오방을 상징한다면 천하가 감싸준다는 것이고, 향기는 귀한 손님을 맞아들이는 것이니, 이것은 특별한 사건이 벌어지리라는 징조다. 아니나 다를까, 천지가 진동하며 태어난 아이가 있었으니 그가 곧 비형이다.

133 사람을 돕는 귀신
그런데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달아나는 길달을 비형이 죽였다는 마지막 대목에서 우리는 또다시 귀신 세계를 보는 당시 사람들의 태도를 알 수있다.

137 밤에 찾아오는 손님은 보통 손님이 아니다. 아무에게나 찾아오지 않는다.

141 거문고의 갑을 쏘라
연못가운데에서 나와 편지를 바치는데 겉면에 “뜯어서 보면 두 사람이 죽을 것이요, 뜯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 라고 쓰여있었다.
“두 사람이란 일반 백성이요, 한 사람이란 왕입니다”

143 다르게 해설할 수 있는 여지가 넓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내전의 분수승으로 대표되는 불교에 대한 고위관료들의 적대감이 표현되었다는 점이다. 편지를 바친 노인의 존재가 전통적인 세력을 대표한다고 보면 더욱 그렇다


144 불교가 먼 나라에서 전래된 이방 종교가 아니라, 이미 전세에 인연을 마련한 우리 종교라고 생각한 신라인들의 본지수적또는 불국토사상은 바로 토착 신앙을 저버리지 않는 바탕이었다

147 석가모니가 열반하고 64억 7,000만 년 뒤에 오신다는 부처님이 미륵이다.

179 신라가 당나라를 끌어들여 벌인 통일 전쟁이 한민족의 영토를 축소한 결과만 초래했다고 비판받지만, 기록을 자세히 살피자면 당나라에 전부 뺏기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없지 않다. 한반도 땅 전체를 집어삼키자는 것이 당나라의 속셈이었기 때문이다. 문무왕 법민은, 좀더 적극적으로 평가하면, 그런 당나라와 맞서 최대한 땅을 지켜 낸 사람이다.

187 그러나 일연은 다르다. 절이며 피리며,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믿을 수 없는 일들을 그는 떳떳이 쓰고 있다. 일연도 정말로 믿지 못할 구석이 없기야 했겠는가? 다만 그는 이 모든 일들을, 요즈음 말로 하면, 상징으로 받아들였을 터다.

189 “비유컨대 손바닥 하나로는 소리가 나지 않고, 두 손바닥으로 치면 소리가 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대나무라는 물건도 오므라진 다음에야 소리가 나지요. 훌량한 임금이 이 소리를 가지고 천하를 다스리게 될 상서로운 징조입니다. 왕께서 이 대나무를 가져다가 피리를 만들어 불면 세상이 화평해 질 것입니다. 지금 돌아간신 왕은 바다 가운데 큰 용이 되어 있고, 유신은 다시 천신이 되어서, 두 분 성인이 한 마음으로 이런 값으로 칠수 없는 큰 보물을 내어놓고 날더러 바치라고 하였습니다”
상징의 핵심은 “고장난명”이었다고나 해야할까? 천하를 상서롭게 다스리고 화평해지기를 바라는 것은 누구나 같다. 그런 소망의 결정이 피리로 상징되어 나오는 것이다.

196 삼국유사에서 토사구팽의 첫 비극적 주인공은 뜻밖에도 김유신이다.

212 득오의 「모죽지랑가」는 인생의 무상함을 그리고 있다. 그것은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인 동시에 삼국 통일 후 당해야 했던 화랑 출신들의 비극을 떠올리게 한다.
가 버린 봄을 그리워하자니
모든 것이 울어야 할 슬픔
아름답게 빛나시던
그 모습 갈수록 스러져 가도다.
눈 돌릴 사이
만나보기 어찌 이루랴
님 그리는 마음이 가는 길
다북쑥 구렁에서 잘 밤 있으리.

226 자연이 준 최고의 선물이 꽃이라면, 인간이 만든 최고의 선물은 노래이다.

228 뭇입은 쇠라도 녹인다는 말은 원문에서 중구삭금이라 표현되어 있다. 중구란 곧 오늘 날의 여론, 또는 민중의 소리라고나 할까? 사람들의 일치된 생각과 거기서 나오는 힘이 저 신물의 가공할 위세를 쳐부술 수 있다는 것이다. 노인은 그렇게 힘을 모을 방법으로 노래를 권했다.

229 거기에 비해 수로부인은 얼마나 다른 여자인지 모른다.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장면은, 속태우고 있었을 남편은 아랑곳않고, 용에게 받은 극진한 대접을 능청스럽게 늘어 놓는 수로부인을 클로즈업시키고 있다.

238 “저는 다만 국선의 무리에 속해있던 사람이라, 향가만 할 뿐 산스크리트말로 하는 염불은 잘 모릅니다.”
“이미 인연있는 승려로 정해졌으니 향가라도 좋다”
왕이 그렇게 말하자 월명은 도솔가를 지어 바쳤다.

오늘 여기서 산화가를 불러
솟아나게 한 꽃아, 너는
곧은 마음이 시키는 대로
미륵좌주 모셔 서 있어라

242 이 대목에서 일연은 “향가가 종종 천지와 귀실을 감동시켰다”는 기록을 일부러 적어넣고 있다.

267 대단한 능력을 타고나서 어떤 고난이라도 헤쳐갈 사람이라도 시대의 운아 뒷받쳐 주지않으면 대체적으로 결과는 비극을 향해 간다.그래서 운명적으로 소용돌이의 중심에 던져진 사라은 그 세계관이 바극적이다. 경문왕이야말로 그런 비극적 세계관의 주인공이다.

271 “이른 눈”으로 상징한 것

272 이는 어떤 메시지를 표면에 내세우기보다는 객관적 사실만 나열시켜 놓고, 읽는 이들에게 그 의미를 생각해 보게 하는 , 일종의 상징적 기술임을 알 수 있다.

280 그의 아내는 매운 아름다월다. 역신이 이 여자에게 푹 빠져, 사람으로 변장을 하고 밤에 그 집에 들어와 남몰래 함께 자게 되었다. 처용이 밖에 나갔다가 집에 이르러, 침상에서 두 사람이 자는 것을 보고는, 노래 부르고 춤추며 물러났다

서울의 밝은 달밤
밤늦도록 노닐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구나
둘은 내 것인데
둘은 누구인가
본디 내 것이었던 것을
빼앗아 감을 어찌하리

이 때 역신이 모습을 드러 내 앞에 나와 무릊 꿇고 말했다
“내가 그대의 처를 탐내서 지금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런데도 그대가 화를 내지 않으시니 감복하고 탄볼할 일입니다. 맹세컨대, 지금부터 이후로는 그대의 얼굴 모습을 그린 것만 보아도 그문안에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이 때문에 나라안의 사람들이 문에 처용의 형상을 붙여, 사악한 것을 몰아내고 좋은 일을 맞아들였다

284 일연은 역사적 사실로서 광란스런 왕들의 혈전을 쓰는 것보다, 민간에 전해지는 이야기 한 토막으로 더 실감나게 당시 모습을 전해 준다. 그것이 삼국유사다.

286 기왕의 기이한 사건을 한층 극적으로 전하려는데서 일연의 태도에 더 매력을 느낀다.

293 노인은 자기 딸을 꽃 가지 하나로 변하게 만들어 품속에 넣어 주었다
귀국한 다음 거타지는 꽃가지를 꺼내 여자로 변하게 하고 함께 살았다.

304 그런면에서 일연으 오히려 올바른 김부식 편이었다. 좋은 부분은 인용하면 그만이라는 태도가 엿보이고 좋지않은 부분을 놓고 비판한다거나 굳이 자기 관점에서 해석하지도 않았다.

327 맹랑하기 그지없는 자가 새로운 역사를 만든다.
서동은 우리 고대사에서 만나는 맹랑한 사람 가운데 하나다. 서여를 캐서 내다 팔아 홀어머니를 모시는 처지에, 더욱이 백제 사람으로, 신라의 공주 선화가 어여쁘다는 말을 듣고 그녀를 꾀어 내러 가는 출발부터가 맹랑하다.

337 단지 다르다면 선화공주가 억울하게 버림받았으면서도 끝내 어버이를 생각하는 착한 딸이라는 점, 그리고 그것은 바리공주 설화로 지금까지 전해오는 , 한국인의 심성 깊은 곳에 자리잡은 한국인만의 특성을 반영한 점뿐이다.

343 대체적으로 미륵불은 여성의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미륵이 본디 남자였지만 이렇게 바뀌는 것은 미륵불이 자비와 영원불멸의 생산을 의미하는 여성적인 성격을 가진 데다 남성인 석가불에 대응하려는 사람들의 의지가 개입되었기 때문이다. 미륵은 자비의 부처다.

360 가엾은 완산 아이가
아비를 잃고 눈물 흘리네

386 흥법은 곧 흥국이었다.

392
압록강 봄 깊어 풀빛 고웁고
백사장 갈매기 한가히 조는데
노 젓는 소리에 깜짝 놀라 멀리 나르네
어느 곳 고깃밴지, 안개 속에 이른 손님

398
금교에 눈 덮여 아니 녹으니
계림의 봄빛은 아직도 먼데
영리한 봄의 신(神) 재주도 많아
모례네 집 매화꽃에 먼저 피었네

399 봄빛이 아직 두루 돌지 못했을때 매화는 핀다. 이런 자연의 섭리는 곧 인간 세계의 그것으로 원용되고 있다. 눈 덮인 땅에 봄빛은 돌지 않지만 매화꽃과 같은 존재로 모례는 등장한다.

404 ”살을 베어 저울로 달아서라도 새 한 마리를 살릴 것이요. 피를 뿌려 목숨을 재촉할지라도 일곱 마리 짐승을 불쌍히 여길 것이다. 내 뜻이 남을 이롭게 하는 데 있는데, 어찌 죄없는 이를 죽이리요. 네가 비록 공덕을 쌓고자 하나 내가 죄를 피하는 게 낫지

417 황룡사는 예 경주의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었다. 그것은 신라의 한 가운데였고, 지리상으로만이 아닌, 마음 속에서는 신라인의 상상하는 세계 한 가운데였다. 그러기에 경주를 여행하는 사람은 황룡사 터에 한 번쯤 서서 그 분지에 지상낙원을 이루고 살았던 서라벌 천 년의 사람들을 떠올려 보아야 한다.

417 ‘너의 등을 덮여 주려고, 너의 영혼을 위로해 주려고 천 년을 기다렸단다’.

444 성인이 성인인 줄 알고 만난다면 오죽 좋으련만, 우리는 본질을 두고도 늘 외곽만 맴돌며, 손에 잡은 진리를 진리인 줄 모르고 버리는 경우 또한 허다하다. 나는 그것을 ‘우연히 스치는 듯한 만남’이라고 말한다.

454 도를 이루려고 해도 이루려는 의지만 가지고 되지 않는다. 그것은 도를 이루려는 일만이 아니다. 무릇 의지만으로 하는 사람의 일이란 얼마나 고달픈가.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 그렇게 되는 것에 몸과 마음을 맡기는 것, 인연은 그렇게 오는 것이 아닐까.

456 “마음이 찾아갈 정처(定處)가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우리는 질투와 미움의 화신, 누구도 한 마음으로 즐겁고 깨끗하게만 살 수 없다. 치밀어 오르는 질투와 걷잡지 못할 미움, 그것이 기실 누구에 의한 것이 아니고 나에게서 생긴 문제일진대, 미움도 질투도 피가 끓는 젊음이라 변명하는 동안 영혼 깊은 데에서는 상처만 커간다. 그래, 찢어진 마음이 찾아가 덧없음을 깨닫고 아름답게 치료받을 곳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나에게 절은 그랬다.

485 골짜기 날은 이미 어두웠는데 어디로 가리
남창에 자리 나니 머물다 가오
밤깊어 백팔 염주 염불도 깊어만 가는데
이 소리 시끄러워 길손의 잠 깰까 두려워라

참 보살행이란 중생의 곤고한 처지에 동참한다는 것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는다.

486 삼국유사야말로 이러한 시로 인해 완성되는 책이 아닌가

504 세상살이의 헛됨을 비유하는 말이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한단지몽, 중국의 한단이라는 동네에서 나온 이야기다. 밥이 끊는 솥단지 앞에서 따듯한 불을 쬐다 잠깐 잠이 든 사이, 온갖 영화와 패배를 맛보는 꿈을 꾸고 깨어보니 밥이 되어 있었다는이야기

507 “고운 얼굴 아름다운 미소도 풀 위의 이슬이요. 지란 같은 약속도 바람에 날리는 버드나무 꼴입니다. 당신은 내가 있어 걸림돌이 되고 나는 당신 때문에 근심만 쌓일 뿐, 지난날의 기쁨은 적이 근심과 고통으로 자리를 내주었군요…그러나 가고 말고 사람의 뜻대로 안 될 일이요. 헤어짐과 만남 또한 운수가 있으니. 청컨대 이쯤에서 헤어지자 합니다.”

512 원효는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았다.

527 운문은 구름의 문, 아마도 운수의 숙명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잠시 머무는 곳인가, 참으로 아름다운 이름이다.

530세상에는 너무 커서 들리지 않는 것과 너무 커서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지구는 자전을 하면서 소리를 낸다고 하는데, 그 소리가 너무 커서 우리 귀에 들리지 않을 뿐이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원효는 너무 커서 보이지 않는 인물이다.

535 누가 자루 빠진 도끼를 주려나
내가 하늘 괴는 기둥을 자를 터인데

궁궐의 관리가 원효를 찾아 나섰다. 이미 원효는 남산에서 내려오다 문천교를 지나는데, 관리를 만나자 거짓으로 물 속에 떨어졌다. 위아래 옷이 몽땅 젖었다. 관리는 스님을 궁으로 데려가 옷을 갈아 입히고 빨아 말리게 하였는데, 그러자니 자고 가게 되었고, 이어 공주는 태기가 있었으며, 설총을 낳게 되었다.

537 화엄경에 ‘모든 것에 거침없는 사람은 한 가지 길로 나고 죽는다’는 대목을 가지고 무애라 이름 짓고, 노래를 지어 세상에 유행시겼다.

574 가고서는 끝내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그러나 결국 그것이 진정 돌아갈 곳이 아니겠는가

604 하루는 자기집 동쪽 시냇가에서 놀다가 수달 한 마리를 잡았다. 살을 발라내고 뼈는 동산에다 버렸다. 아침에 보니 그 뼈가 없어졌다. 핏자국을 따라 찾아보자 뼈는 제 굴로 돌아와 새끼 다섯 마리를 안고 쭈그리고 있었다. 멍하니 바라보고 오랫동안 놀라워 하다가 깊이 탄식하며 머뭇거렸다. 문득 속세를 버려 출가하기로 하고 이름을 바꾸어 혜통이라 했다.

혜통은 다름아닌 밀교 승려다.

612 일연은 밀교에 대해 상당히 호의적이다.

616 환생담은물론 기본적으로 불교적 발상이다. 그런데 거기에는 불교적인 요소만이 아닌 민간신앙의 그것도 함께 들어 있다. 억울하게 죽었다고 생각한 악인이 상대편을 몰락시키기 위해 환생하는 이야기는 김유신에게서, 내세의 복락을 믿고 시주하여 정승의 집안에 태어나는 이야기는 김대성에게서 나오지만 불교설화와 민간 전승이 합해진 것들이다.

617 산복숭아 시냇가 살구가 울타리에 비쳤는데
오솔길에 봄이 깊자 양쪽 언덕아 꽃이 피었네
그대가 우연히 수달을 잡았던 인연으로
나쁜 용은 서울밖으로 멀리 쫓게 되었네

633 이 조에서 매력적인 인물은 엄장이다. 그는우리와 닮아 있다. 실수와 무지 투성이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다. 그러나 어느 순간, 또는 어느 조력자를 만나 무지와 실수로 가득한 삶을 한 번 돌이킬 기회를 갖는 것, 그것 또한 우리의 모습이다.

656 정작 큰 스승들은 무엇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는 법이 드물다. 진리는 단순한 법이기에 그런 것일까. 단순하기만 한 진리를 전하는 진신은 슬며시 다가온다. 진신인지 알고 모르고는 찾는 이의 책임인 것이다.

670 문제가 생길 때는 신라가 그랬고 고려가 그랬듯이, 성인의 가르침도 소용없는 절망의 순간이 온다. 지금 우리 시대의 풍속은 거기서 얼마나 멀까? 성인조차 나타나지 않는, 아니 인정하지 않는다는 과학의 시대에 우리는 무엇으로 경계 삼을 사표를 세울까?

690 어머니에 대한 일연의 향념은 신앙 그 자체이다

704 일연이 삼국유사에 신라 향가 14수를 실어놓은 것에 대해 우리는 더할 나위없이 고마움을 표해야 한다. 우리 고대 가요 중에 그 정형성을 최초로 획득했으며 지극히 높은 정신세계를 구축한 이 시가 장르에 대해, 비록 편린으로나마 구체적인 모습을 볼 수 있게 해 준 것이 오직 삼국유사 밖에 없기 때문이다 책 한 권에 실린 단 14수가 천 년의 시가사를 떠받치고 있는 셈이다.

741 13세기 혼미한 사회를 살다 간 일연은 종교와 문학 등 다양한 방면에서 새로운 출구를 찾으려 한 혁신적인 승려였다. 그가 원효를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음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그 자신이 원효 스타일의 원융적이면서도 혁신적인 삶을 살아가기를 바랐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시대가 필요로 하는 삶의 모습으로 보였을 터이다.



내가 저자라면

책은 무려 756페이지에 이른다.
우선 내가 저자라면 이렇게 무시무시하게 만들지 않겠다.
연구원이 되는 두 번째 관문이 이 책인 것은 이해가 되기는 한다.
양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가 우선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이 되었다.

책의 겉표지안에 있는 사진을 보았다.
아~
나는 경주의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 계절을 모두 누려보았으나,
눈덮인 경주를 보지 못했다.
꼭 이루고 싶은 작은 소망 가운데 하나다.
사진에는 한줄 글이 쓰여있다.
“밤새 큰 눈이 내렸다. 경주에서는 참 드문 일이다(경주 대릉원)”
그리고 책속에서 찾은 다른 사진 하나는 장항사지 절터를 멀리서 찍은 사진 하나이다.
지금은 토함산을 넘어 동해 바다로 가는 길이 추령고개에서 추령터널로 바뀌었는데, 터널이 생기기전 굽은 산길을 넘어 가다 만났던 삼층석탑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경주와 신라 땅 곳곳에 대한 기록이 삼국유사에 의해 남겨졌음을 새삼스레 기억하게 되었다.

일연스님은 어찌하여 떠도는 길, 마을마다 골짜기마다 전하는 이야기들을 책에 글로써 남기려고 했을까? 나는 그것이 몹시 궁금해졌다.
일연스님은 남의 이야기를 귀여겨 듣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듵은 이야기들을 꼼꼼이 기록하여 남긴 까닭은 무엇일까?
문득 조셉캠벨의 “천복을 따르라”는 말이 떠오른다.
평생동안 자신이 스쳐지나간 자리의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사연들을 기록하여 남기는 것이 일연스님의 천복이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는 이렇게 자신의 천복을 따라 산 사람들이 이룩해 놓은 유산에 크게 빚지고 있다.

내게는 이번 책 “우리가 정말 알아야할 삼국유사”가 그간 조각 조각 흩어져 있었던 삼국유사가 큰 하나로 모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삼국유사속에서 내게 의미있는 것들을 모아보면, 신화와 민간에서 전해내려오는 옛야기기, 경주의 절과 탑들에 얽힌 이야기 그리고 향가 정도였다.
나뿐아니라 우리는 삼국유사의 많은 이야기들을 그동안 여기저기서 띄엄띄엄 들어 알고 있었다. 단군신화이야기, 연오랑 세오녀, 만파식적, 서동왕자와 선화공주... 제망매가와 찬기파랑가 ...
그런 익숙한 것들이 삼국유사속에서 어떻게 전체적으로 자리잡고 있는지 이번 고운기의 책을 통해서 새롭게 엮어지게 된 점이 내가 얻은 가장 큰 소득이다.
그리고 일연의 시에 대해서 새롭게 볼 수 있었던 것도 그렇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이 책속에 실린 시들에 크게 감화 받지는 못했다.
고운기는 일연의 시 한 수에 매혹되어 20여년을 삼국유사에 쏟았다고 하는데 말이다.
하나 그 가운데 14편의 향가 가운데 들어 간다는 “분황사 천수대비, 맹인 아이가 눈을 뜨다”는 기억에 남는다.

무릎이 헐도록
두 손바닥 모아
천수관음 앞에
빌고 벌어 두노라
일천 개 손 일천 개 눈
하나를 놓아 하나를 덜어
둘 없는 내라
한 개사 적이 헐어 주시려는가
아, 나에게 끼치신다면
어디에 쓸 자비라고 큰고.

희명이라는 여자가 딸아이의 눈을 뜨게 해 달라고 관세음보살에게 기도하며 부르던 노래라고 한다. 참으로 눈물겨운 장면이다.

삼국유사의 마지막 편은 “효선”편이다.
부모를 위해 자식을 묻을 수도 있었던 시절 효에 대한 이야기들이 실려있기는 하지만,그것은 딸아이의 눈을 뜨게 해달라고 관세음보살에게 노래하던 어미 희명이나 뼈가 되어 다시 자식에게로 돌아간 수달의 이야기와 댓구를 이루는 것이다.

13세기라는 시간과 공간. 나라 안팎으로 역경과 어려움이 휘몰아 치던 그 때
사람들은 무엇으로 버티었을까
그 때나 지금이나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버티게 해주는 것은 상상력이다. 이야기이다.
노년의 일연스님이 인각사 절에 앉아 삼국유사를 써 내려가던 그 날 밤을 떠올려 본다.
수많은 영웅과 악인과 신령과 효녀와 호랑이가 함께 어울려 만들어 내던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
그것이 800년을 뛰어 넘어 우리에게도 여전히 이 책이 의미있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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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3.10 17:02:11 *.70.72.121
열심히 애쓰고 있네요. 하는 일도 있어 바쁘실 텐데 병이 날까 걱정이 되는 군요. 모쪼록 너무 힘들지 않게 컨디션 조절 잘 하길 바래요. 스승은 부모님과 같다고 하지만 나경님이 새기는 글마다 인성이 묻어나 훈훈하기 그지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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