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북

연구원들이

  • 박안나
  • 조회 수 2114
  • 댓글 수 2
  • 추천 수 0
2008년 3월 10일 11시 42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이 책을 읽는 내내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가 읽고 있는 이 글의 저자가 누구일까 하구요. 삼국유사의 저자가 일연인 건 초등학생도 다 아는 사실이지만,
지금 읽고 있는 이 책의 저자도 과연 일연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다 읽고 다시 머리말로 돌아 왔을 때, 문득 눈에 띄는 글귀가 있었습니다.

‘나는 삼국유사를 방금 따낸 과일이나 방금 캐낸 채소에다 비유해 본 적이 있다. –중략- 그러므로 모름지기 삼국유사는 시대마다 좋은 요리사를 만나 좋은 요리가 만들어지기를 기다리는 재료인지 모른다. 나는 여기 서툰 요리사로 나섰다’

만약 이 책이 그 요리라고 한다면 그 요리가 맛있거나 혹은 맛이 없을 때 그 공이나 실은 요리사에게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또 서점에서 다른 삼국유사를 살펴 보았는데 대부분이 삼국유사에 대한 해석이 주가 되는 되는 것에 비해 이 책은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이나 배경지식이 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의 저자를 ‘일연’이 아닌 ‘고운기’로 보고 글을 써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저자 강운기는 1961년 전남 벌교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대학교에서 국문학을 전공하였습니다. 그가 어떤 연유로 이렇게 20년 가까이 삼국유사에 심취하여 연구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아마 학창시절 이 책에 관한 시험문제를 자주 틀렸던 경험과 수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이 책에 대한 사람들의 지식이 별반 달라진 게 없는 것을 보고 어떤 사명감을 느끼게 된 것 같습니다.

지난 번 읽은 책이 조셉 캠벨의 저서여서 그런지 자연스레 그와 조셉 캠벨을 비교해 보게 되었습니다. 조셉 캠벨 또한 어린 시절의 사소한 경험들이 모여 결국 그가 한평생 신화에 대해 연구하도록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 또한 어린 시절의 경험이 그가 삼국유사를 연구하게 만든 주요 이유가 된 것을 보면 어린 시절의 경험이 한 사람의 생애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조금 억지스런 추측 같기는 하지만, 그가 국문학과를 선택한 배경에도 이러한 동기가 깔려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캠벨은 10세 남짓한 나이에 신화의 세계에 빠져 들어 한평생 신화를 연구하였습니다. 이 책의 저자가 1961년 생이니 이제 40대 후반에 접어들었겠고, 이 책의 발행일은 2002년입니다. 그 시점에서 그가 삼국유사에 바친 시간이 20년 가까이 된다고 하니 대학생이 된 후에야 자신의 진로를 결정짓는 우리나라 현실을 감안 해 볼 때 지금까지 그의 삶 또한 온전히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를 연구하는데 바쳐진 게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결국 자신의 천복을 발견한 사람들은 한 눈 팔지 않고 묵묵히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아니 그렇게 인고의 시간을 참고 견뎌냈기에 그것이 그의 천복이 된 것일까요? 무언가 가슴 두근 거리는 경험을 찾아 이리 저리 방황하는 지금 저의 현실에 비추어 부끄럽게 느껴지는 부분이었습니다.

캠벨은 그의 저서에서 영웅이란 자신의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유익한 그 무엇을 가져오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삼국유사에서도 이와 비슷한 글귀가 눈에 뜨입니다

‘혁명가는, 그 스스로 안위와 감고의 거친 세월 속에서, 도리어 피와 살이 되는 어떤 기제를 찾아 뒷사람에게 남겨 주었던 것 같다. 나는 그 틀에 기대어 ‘삼국유사 읽기’의 한 방법을 여기 내놓은 것인데, 다들 어떻게 생각 하시는지 이 땅의 사람들에게 조심스레 묻는다’

결국 신화의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한 조셉 캠벨처럼 그 또한 삼국유사를 이해하는 또 다른 방법을 찾아 우리 앞에 제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운 좋게 그의 저서를 접하게 된 우리들은 그가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 낸 성과물을 읽고, 그가 제시한 삼국유사의 세계에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그가 또 어떤 성과물을 내놓을지 기대해 보며 글을 마칩니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머리말

혁명가는, 그 스스로 안위와 감고의 거친 세월 속에서, 도리어 피와 살이 되는 어떤 기제를 찾아 뒷사람에게 남겨 주었던 것 가다. 나는 그 틀에 기대어 ‘삼국유사 읽기’의 한 방법을 여기 내놓은 것인데,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이 땅의 사람들에게 조심스레 묻는다.

이 땅의 첫나라
[24] 천자의 나라며 그러기에 모든 변방은 중국에 복속해야 한다는 생각은 중국인에게 아니 우리 나라 같은 옆 민족에게까지 강고하기만 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전체가 무너졌다. 아니 하늘이 무너진 것이다.

연오랑 세오녀, 첫 설화의 주인공

[91] 즐거운 상상력에 민족적 쇼비니즘이 끼여들면 곤란하다. 이런 주장들이 대체적으로 처음에는 잃어버린 우리 역사를 찾는다는 그럴듯하면서 거창한 명제 아래 시작한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건너왔다’는 대목에 이르면 김일 선수 박치기를 보듯이 흥분하고, 흥분하다 보면 사실과 상상을 혼동하며, 나아가 그렇게 흥분하는 심리란 열등감의 역설적 표현ㄴ에 지나지 않아 보여 뒷맛이 개운치 않다.

신라는 왜 일본과 앙숙일까

[111] 저는 임금이 근심하면 신하는 욕을 보고, 임금이 욕을 보면 신하는 죽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만약 쉽고 어려움을 따진 다음에 행한다면 충성을 다한다 하지 못할 것이요, 죽고 사는 것을 가린 다음에 움직인다면 용맹스럽지 못하다 할 것입니다. 저는 비록 불초한 몸이오나 명령을 받들면 행하겠습니다.

밤에 찾아오는 손님
[120] 무릇 큰 강은 어느 지류도 마다 않고 받아들여 함께 흐르고, 그러기에 거꾸로 생각하면 큰 강이 된 것과 다르지 않게, 사람도 큰사람이 있는 법이고, 큰사람이 이룬 일에 대대로 많은 이들이 도움을 받는다

신라가 통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
[140]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

[149] 힌트는 어디선가 주어져 있는 법이다. 그것을 찾고 못 찾고는 지혜의 눈을 가지고 있는가 그렇지 못한가에 달렸다.

문희, 그 아름다운 여자의 이름
[164]그렇다면 일연이 보이고자 한 김유신의 생애에서 가장 큰 특색이 여기에 담겨 있다고 보아야 한다. 김유신은 호국신이 지켜주는 존재이고, 삼국 통일의 선봉에 설 수 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음을 암시하자는 것일까?

[169] 일제시대 때 최재서가 그린 김유신의 모습이란 바로 망국민의 콤플렉스를 안고 살아가는 번민에 찬 지식인이다. 그것은 곧 최재서 자신의 의식이 투영된 분신이었다.

[177]동생의 처지가 처량해서만 그랬을까? 일은 제가 벌여 놓고 길길이 날뛰는 유신의 노한 목소리에 묻혀 한 여자의 여린 일생이 가려 있다.

만파식적 만만파파식적
[184] 옛날 만사를 아우르던 영웅도 끝내는 한 무더기 흙더미가 되고 말아. 꼴 베고 소 먹이는 아이들이 그 위에서 노래하고, 여우와 토끼가 그 옆에서 굴을 팔 것이니, 분묘를 치장하는 것은 한갓 재물만 허비하고 역사서에 비방만 남길 것이요, 공연히 인력을 수고롭게 하면서도 죽은 혼령을 구제하지 못하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하면 마음이 쓰리고 아픈 것을 금 치 못하겠으되, 이와 같은 것은 내가 즐겨하는 바가 아니다.

[189] 그것이 믿을 수 없는 괴이한 일인들 어떠랴. 당대의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그런 믿음 위에서 마음을 하나로 하여 살아가는 일 자체가 중요할 뿐이다. 그것이야말로 ‘값으로 칠 수 없는 큰 보배’인지 모른다.

[189] 이 피리를 불면 적병이 물러나고 병이 치료되며, 가뭄에는 비가 내리고 홍수 때는 맑아지며, 바람이 자고 파도가 잔잔해지는 것이었다.

수로부인, 미시족의 원조

[233] 어디인들 수로부인에게 이 여행은 아름다운 것이었다. 예쁜 꽃과 함께 노래를 선물 받았는가 하면, 용궁에 들어가 진기한 경험을 하고 나왔다. 수로부인처럼 아름답고 천연덕스럽게 살아가는, 거기서 세상의 지혜를 터득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산과 바다는 그런 곳이다. 동해 사람들에게 산과 바다는 그런 곳이다.

첫 성전환증 환자
[242] 다만 삶의 고통은 죽음이라는 운명적 환경이 만들어 준 것, 도 닦는 사람이라고 거기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가을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 한 잎에도 속절없는 인간의 생애를 비유한 솜씨가 비상하기만 하다.

[247] 구물거리며 살아가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그 삶이 보잘 것 없는 백성이로되, 다스리는 자의 따사로움을 알고 믿고 따른다면 그들이 어디로 가겠는가? 또한 백성이 없으면 나라의 근본이 흔들린다.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이것 이외에 무엇이 더 필요할까?

왕이 되는 자
[262]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낮은 사람들보다 겸손하게 사는 이가 첫째요, 큰 부자이면서 검소하게 옷을 입는 이가 둘째요, 본디 귀하고 힘이 있으면서 그 위세를 쓰지 않는 이가 셋째이옵니다.”

[264] 제가 말씀드린 세 가지 좋은 일이 지금 모두 나타났습니다. 큰딸을 맞아 들였으므로 이제 왕위에 오른 것이 하나요, 예전에 미모에 끌렸던 동생을 이제 쉽게 얻을 수 있으니 둘째요, 언니를 맞아들였으므로 왕과 부인께서 기뻐하였음이 셋째입니다.

[267] 뱀을 이불 삼아 자야했던 사람, 시중드는 내시들뿐만 아니라 부인조차 모르게 감추어야 했던 긴 귀를 가진 사람- 그것은 곧 자신의 고민을 오직 스스로 혼자 지고 가야하는 고독한 이의 슬픈 초상이다.

지는 해 뜨는 해

[288] 그러나 돌이켜 보며 아쉬워한들 무엇하랴.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무엇보다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고, 적재적소에 등용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있는 인재마저 죽이는 상황이 반복될 때, 거기서 우리는 한 나라의 멸망을 명확하게 예언할 수 있을 분이다.

서동은 정말 선화공주를 꾀었을까

[327] 맹랑하기 그지없는 자가 새로운 역사를 만든다. 누구도 될 수 없다고 포기할 때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로 난국을 돌파하는 꾀는 맹랑한 자에게서 나온다. 그런 맹랑한 사람을 우대하는 사회가 발전한다.

[329] 하기야 엉뚱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진짜처럼 둘러댄 게 어디 이 하나 뿐인가? 저마리지 서동만큼 맹랑한 사람은 일연 당신이다. 그러기에 그 눈으로 서동 같은 인물이 보였을 것이다.

[342] 대소 인민에 차등이 없고, 남녀간에 대소변을 보고자 하면 땅이 저절로 열렸다가, 보고 나면 문득 도로 합쳐지며, 껍질 없는 찹쌀이 저절로 달리는데, 지극히 향기롭고 아름다워 먹으면 병이 없다. 금은 진보와 차거, 마뇌, 진주, 호박 등 각종 보배가 땅에 흩어져 있으나 거들떠보는 사람이 없고, 가끔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집어 들고 서로 이렇게 말한다.
“예전 사람들은 이런 물건 때문에 서로 해치ㅗ, 옥에 갇혀 무수한 고뇌를 받았다 하는데, 지금은 기왓장이나 돌과 같아서 아무도 지키려 하지 않는다”

신비의 왕조, 가야

[379] 먼 뱃길을 지켜 주는 수호신으로서 석탑, 그것은 참으로 상징적이다. 우리는 인생을 항해에 비유하곤 한다. 바람과 파도 속에서, 또 때로 태양과 밤하늘에 빛나는 별의 인도를 받으며 건너는 고해가 있다. 그 길을 지켜 주는 석탑

불교로 보는 역사

[394] 순례자의 길은 외교 사절의 화려한 행차가 아니다. 무기를 쥔 군대의 살벌한 행진도 아니며, 이익에 혈안된 장사꾼들의 잰걸음도 아니다. 어떤 깨달음의 숭고한 사명이 조용히 깃든, 세계와 인간이 하나 되어 마침내 그 비밀에 눈뜨고야 말 두근거리는 첫 발자국이다.

순교의 흰 꽃 이차돈
[405] 살을 베어 저울로 달아서라도 새 한 마리를 살릴 것이요. 피를 뿌려 목숨을 재촉할지라도 일곱 마리 짐승을 불쌍히 여길 것이다.

[405] 난새와 봉새의 새끼는 어려서도 하늘을 솟구칠 마음을 가지고, 기러기와 고니의 새끼는 나면서도 파도를 헤쳐 나갈 기세를 품는다 했지. 네가 이와 같구나. 큰 선비의 행실이라 할 만하도다

[411] 시인은 결연히 노래한다. 사라진 것은 오직 몸일 뿌닝요, 쇠북소리에 실린 그의 자취는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고.

신라의 중심 세계의 중심, 황룡사
[417] 그러기에 경주를 여행하는 사람은, 비록 지그믄 허허벌판일지라도, 황룡사 터에 한 번쯤은 서 보아야 한다. 거기서 남산으로부터 내려오는 완만한 능선이나, 명활산성으로 구획된 동쪽의 방벽이나, 천마총으로부터 시작하는 서쪽의 고분군을 한눈에 넣어 보아야 한다.

[417] 하루해를 온전히 받아 모신 신라의 돌에 등을 기대었을 때, 그 돌이 소근거리는 말을 저는 잊지 못할 겁니다. 너의 등을 덮여 주려고, 너의 영혼을 위로해 주려고 천 년을 기다렸단다.

[424] 네 나라의 황룡사는 곧 석가와 가섭불이 가르침을 베풀던 곳이다. 연좌석이 아직까지 있으므로, 천축국의 무우왕이 황철 약간 근을 모아 바다에 띄웠는데, 1,300여 년을 지난 뒤에야 너희 나라에 이르렀으니, 완성하여 그 절에 모셨다. 이는 크나큰 인연이 그리 시켜서이다.

[425] 그러나 그에게는 지략이 있었다. 싸움에 이기면서 백성들의 신임까지 듬뿍 받았다. 반면 태자는 거만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 점점 여론은 아쇼카 쪽으로 기울고, 드디어 아쇼카가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부왕에 이어 왕이 된다.

[435] 싸움이나 싸움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천지가 평화로워지는 꿈, 그것은 일연이 구층탑을 보며 꾼 것이다.

[436] 나는 들었네 황룡사 탑이 불타던 날
번지는 불길 속에서 한 쪽은 무간지옥을 보여 주더라고

문수 신앙의 근거지, 오대산

[444] 대체로 성인을 만나는 장면은 이렇게 전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인이 성인인 줄 알고 만난다면 오죽 좋으련만, 우리는 본질을 두고도 늘 외곽만 맴돌며, 손에 잡은 진리를 진리인 줄 모르고 버리는 경우 또한 허다하다. 나는 그것을 ‘우연히 스치는 듯한 만남’이라고 말한다.

[454] 이것은 하나의 인연이다. 도를 이루려고 해도 이루려는 자의 의지만으로 되지 않음을 우리는 이런 이야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도를 이루려는 일만이 아니다. 무릇 의지만으로 하는 사람의 일이란 얼마나 고달픈가.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 그렇게 되는 것에 몸과 마음을 맡기는 것, 인연은 그렇게 오는 게 아닐까?

작은 절들에 서린 삶의 애환

[456] 시의 끝에 나는 이렇게 메모를 했다. “마음이 찾아갈 정처가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우리는 질투와 미움의 화신, 누구도 한 마음으로 즐겁고 깨끗하게만 살 수 없다. 치밀어 오르는 질투와 걷잡지 못할 미움, 그것이 기실 누구에 의한 것이 아니고 나에게서 생긴 문제일진대, 미움도 질투도 피가 끓는 젊음이라 변명하는 동안 영혼 깊은 데에서는 상처만 커간다. 그래, 찢어진 마음이 찾아가 덧없음을 깨닫고 아름답게 치료받을 곳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466] 자신들이 믿어마지 않는 어떤 절대자에 대한 꾸밈없는 흠모는 이런 기적을 낳게 한다.

[470] 한낱 짐승으로도 자비를 아는 짐스잉며, 욕심을 내자면 한없을 인간으로도 깨우침의 무릎을 꿇을 줄 아는 사람이 어우러진 장면 장면들이다.

[471] 그 두려운 눈빛을 보고도 총을 쏜 자들은 인간이 아니다. 짐승도 아니다. 정작 누가 총을 쏘았는지 서로가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했지만, 양쪽 모두 열렬히 신을 섬긴다는 사람들이 도대체 그 신은 무엇을 가르치길래 그토록 매몰찬 짓들을 하는 것인지, 나는 그것을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다.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473] ‘나는 마음 속에 가린 것이 있어서’ 성인을 만나고도 알아보지 못했다고 시인한다. 변통 없는 원리원칙은 득도의 순간을 막고 말았던 것이다. 부득의 도움으로 남은 목욕물에 몸을 담근 박박도 함께 금빛 보살이 된다.

[480] 노힐부득은 두려운 마음이 엇갈렸으나, 어여삐 여기는 마음은 더할 나위 없었다.

[484] 여자를 암자에 들여놓지 않겠다는 것은 일편 계를 지키는 출가자의 바른 행동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 속에는 이기적인 심성이 도사리고 있다. 이기심은 독선만 키울 분이요 자비심이란 찾을 수 없게 한다.

낙산사의 힘
[496] 그런 뜻밖의 만남이 곧 보살과의 만남임을 영원히 모르고 지났다면 사정은 다르지만, 다른 경로를 통해 나중에 알게 되는 이 우연의 메커니즘. 사실 우리들의 만남은 대부분 이렇다.

[497] 그러나 도의 경지는 참으로 높은 데에만 있지 않고, 우리들의 일상 곳곳에 숨어들어 있음 또한 사실이다. 거기서 우연히 스치는 수많은 만남이야말로 우리들이 흔히 경험하는 바이다. 다만 끝내 그 정체를 모르고 지나쳐 버리는 경우와 어느 순간 깨닫는 경우로 갈라질 뿐.

[498] 의상이건 원효이건 어떤 하나의 삶의 방식대로 살다 간 무수한 사람들을 대변하는 모델일 뿐이다.

[507] 망망히 세상사는 뜻이 없어지고, 이미 수고로운 인생에 지쳐 마치 백년 고생을 다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탐욕스런 마음이 얼음 녹듯 사라지는 것이었다.

[508] 좋은 시간 금세, 마음은 어느새 시들고
근심은 슬며시 늙은 얼굴에 가득
이제 다시 메조 밥 짓다 깨닫던 이야기 들추지 않아도
수고로운 인생 일순간 꿈인 걸 알겠네

원효 해동 불교의 자랑
[533] 원칙은 무너지기 쉽고 오해는 따르기 쉽다. 그러나 미로를 헤매지 않으며 오해를 무릅쓰면서, 사람이 살다 보면 당할 문제 속으로 자신을 내던지기란 쉽지 않다. 원효는 그것을 감당했고, 그 같은 전범을 뒷사람에게 남기고 보여준 사람이다.

[537] 속과 성의 경계를 마음대로 드나들고자 했던 원효도 요석공주와의 사랑이며 설총을 낳은 일에 초연할 수만은 없었던가 보다. 스스로 파계를 인정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다. 그런데 그것은 지금까지의 그를 부정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바탕으로 극복되는 초월의 단계다. 원효가 오늘날의 원효가 된 것은 바로 이 같은 변증법적 정반합의 발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543] 원효는 대체로 낮은 자리에 사는 사람들의 친구였고, 우리는 이런 장면들에서 바보 같은 원효가 진정 바보가 아님을 확인하는 것이다

순례자를 위해 부르는 노래

[571] 인류가 가장 인류다운 모습, 아마도 문명 이전에 인류는 저렇게 살았을 것 같은 모습을 그들은 지금 그대로 우리에게 보여 준다. 진실로 두려워 할 줄 알고, 진실로 견뎌 낼 줄 아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것이 참으로 성스러워 보였다.

[574] 그렇기에 일연이 제목에다 ‘귀축제사’라 한 귀는 깊은 의미를 지닌다. 가고서는 끝내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결국 그 곳이 진정 돌아갈 곳이 아니겠는가.

평범한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

[632] 아미타 서방정토에 왕생하기를 바라기야 하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실천한 사람과 현실의 삶에 고단하게 매인 사람은 마지막의 자리가 서로 멀다.

[633] 그러나 역시 이 조에서 매력적인 인물은 엄장이다. 그가 우리와 닮아 있기 때문일까, 실수와 무지투성이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다. 그러나 어느 순간, 또는 어느 조력자를 만나 무지와 실수로 가득한 삶을 한 번 돌이킬 기회를 갖는 것, 그것 또한 우리의 모습이다.

숨어 사는 이의 맛

[682] 일연은 아직 젊은 시절부터, 자기가 머문 곳에서 보고 들은 것을 꼼꼼히 메모해두었던 듯하다. 이것이 삼국유사 찬술의 재료가 되었는데 여기서 그 결정적인 증거를 보게 된다.
여기 뿐만 아니라 삼국유사의 다른 많은 부분들도 이렇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삼국유사는 일연이 곳곳에서 머물 때마다 써 둔 메모들의 집합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3. 내가 저자라면

그는 140여 개에 달하는 삼국유사의 전체 조목을 다시 40개의 제목으로 분류하여 기술하였습니다. 앞의 20개는 전반부 기이 편을 중심으로 뒤의 20개는 후반부 흥법편 이하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 분류기준은 같은 성질의 것끼리 엮어서 묶은 것인데 그것이 보통 다른 삼국유사와 다르게 이 책의 독특함을 결정짓는 요소가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삼국유사의 순서를 그대로 따라 간 다른 책과 비교해 삼국유사의 핵심을 더욱 더 이해하기 쉽게 만든 이유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삼국유사에 대한 지식이 짧아 이런 시도를 한 것이 그가 처음인지 아닌지 궁금하지만 어쨌든 이러한 시도 자체는 바람직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만약 제가 삼국유사를 쓴다 해도 그가 한 방식처럼 저 나름대로 그 목록을 분류하고 재구성 해 보려는 시도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점으로 인해 삼국유사 원본의 흐름을 짚어 볼 수 없다는 사실은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결국 다른 삼국유사 책들을 참조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이 책에 일연의 삼국유사 목록도 같이 실어 주었으면 그 점을 보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삼국유사는 원본의 내용을 해석하는 게 책의 주가 되는 데 반해, 저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배경지식을 설명하는데 많은 지면을 할애한 것 같습니다. 아마 그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삼국유사의 해석 자체보다 이 배경지식을 설명하는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어렸을 때 자주 삼국유사에 관한 시험 문제를 틀렸고 또 요즘 사람들이 삼국유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사실이 그가 이 책을 쓰도록 만드는 이유가 되었다는 사실을 비추어 볼 때 이것은 당연한 결과 일 것 같습니다.
그로 인해 삼국유사를 쓴 일연처럼 그의 저서에서도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이나 상상력을 가미하여 추측한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검증된 사실이 아니면 쓰기를 꺼려하는 일반적인 학자들의 태도와 달리 몸을 사리지 않은 그의 태도가 존경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결국 이 책에 대한 비판이나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그는 꼭 이 이야기들을 우리들에게 하고 싶었나 봅니다. 일연이 살았던 시대처럼 이러한 시도가 목숨까지 내줘야 하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20년 가까이 삼국유사를 연구하며 생긴 자신감이 이러한 시도를 하는데 힘이 되어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스치는 듯한 만남’, ‘치밀하고 정성스런 만남’, ‘현실과 신이가 하나된 만남’ 이렇게 저자가 특정 사건이나 상황을 자신의 언어로 정리하는 게 재미있게 느껴졌습니다. 아마 저자가 시를 쓰는 시인이기에 이렇듯 자신만의 언어로 재정의하고, 표현해 보는 것이 몸에 밴 습관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 또한 생활 속에서 이런 시도를 해 보았더니 모든 사건이나 사소한 일들이 그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참 재미있는 발상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종종 사용해 봐야 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좋았던 점은 단연코 원저자인 일연과 삼국유사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었습니다. 자신이 쓰고 있는 것에 대한 애정이 바탕이 되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자명한 사실일 것입니다. 책 곳곳에서 그는 일연을 실제 알고 있는 사람처럼 그의 입장을 변호하기도 하고, 그의 부족함을 두둔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면이 객관성을 잃게도 하지만, 기록으로 알 수 있는 단편적인 사실 이외의 것을 통찰할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지 않았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만약 삼국유사를 주제로 책을 낸다면요? 우선 저 또한 일연과 뜨거운 사랑에 빠져 볼 생각입니다. 그의 연인이 되고, 그의 누이가 되고, 그의 어머니가 되어 열렬히 그를 사랑해 볼 생각입니다. 그 후에 책을 계속 쓸지 말아야 할지 고려해 보겠습니다.






IP *.234.191.213

프로필 이미지
써니
2008.03.10 17:45:37 *.70.72.121
뜨거운 여자 안나. 올 한 해 여럿 작가와 열렬한 사랑에 흠뻑 빠지겠구나.
프로필 이미지
김용빈
2008.03.10 18:52:41 *.6.100.161
"저자가 1961년 생이니 이제 40대 후반에 접어들었겠고, 이 책의 발행일은 2002년입니다. 그 시점에서 그가 삼국유사에 바친 시간이 20년 가까이 된다고 하니 대학생이 된 후에야 자신의 진로를 결정짓는 우리나라 현실을 감안 해 볼 때 지금까지 그의 삶 또한 온전히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를 연구하는데 바쳐진 게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자에 대해 저 보다 많이 생각해 보신 것 같네요!
도움이 되었습니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332 코리아니티 - 구본형 [1] 이은미 2008.03.15 1709
1331 코리아니티 경영, 구본형 [3] 홍현웅 2008.03.15 1716
1330 [독서47]왕의투쟁/함규진 素田 최영훈 2008.03.14 2275
1329 [48] 10cm 예술 / 김점선 [4] 써니 2008.03.13 2341
1328 [46] 오른쪽 두뇌로 그림 그리기/베티 에드워즈 [2] 校瀞 한정화 2008.03.13 4838
» 삼국유사 [2] 박안나 2008.03.10 2114
1326 삼국유사 순례기 [2] 서지희 2008.03.10 2097
1325 고운기 ,일연, 삼국유사 [1] 김나경 2008.03.10 2741
1324 삼국유사 - 일연/고운기 [1] 최현 2008.03.10 2211
1323 [02]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1] 오현정 2008.03.10 1791
1322 [02] 삼국유사/고운기 [2] 강종출 2008.03.10 2262
1321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 고운기 [2] 김용빈 2008.03.10 2275
1320 [북리뷰002]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 고운기 [2] 양재우 2008.03.10 2270
1319 삼국유사, 고운기 [4] 이한숙 2008.03.10 2700
1318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1] 유인창 2008.03.09 2167
1317 고은기, 양진 <삼국유사> [1] 박중환 2008.03.09 2525
1316 우리가 정말 알아야할 삼국유사 [2] 이승호 2008.03.09 2290
1315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1] 이은미 2008.03.09 2293
1314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Review [1] 손지혜 2008.03.09 2454
1313 삼국유사 [2] 최지환 2008.03.09 23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