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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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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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17일 02시 42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저자를 처음 만난 것은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통해서다. 책이 출간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책은 좋았다. 잘 읽혀지는 책이었고, 내용은 신선했다. 어떤 면에서는 충격적이었다. IMF라는 시대상황이 더욱 그런 느낌을 가지게 한 면도 있을 것 같다. 평범한 직장인이 책을 내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점에서 한편 부럽기도 했다.

‘낯선 곳에서의 아침’이 발간되었을 때는 기다렸다는 듯이 책을 읽어 보았다. 역시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즐거웠다. 이 책은‘지금이 나를 바꾸는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할 시기가 아닌가?’ 하는 강한 메시지를 가슴속에 남게 했다. 이 두 권의 책으로 구본형은 내 도서구입 우선순위 상위에 랭크되었다. 그 이후로 여러 권의 책을 접했는데(세어보니 8권이다, 빠진 게 뭔가? 이거 내일 구입해야 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어떤 책은 마음에 와 닿고 어떤 책은 좀 어렵다거나(‘월드클래스를 향하여’), 다른 저서에 비해 좀 신선도가 떨어진다는(‘공익을 경영하라’) 느낌을 주었다. (나의 일천한 식견에 따른 주관적인 느낌일 뿐임.)

어찌되었건 자신이 스스로에게 약속한 ‘1년에 책 한권 내기’를 실천한 저자에게 찬사를 보낸다. 이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일 것 같다. 그것을 해 낸 성실함, 열정과 끈기에 박수를 보낸다.


구본형은 어떤 면에서 요즘 사람 같지 않다. 그는 상업적인 냄새를 풍기지 않는다. 시쳇말로 잘 나갈 수 있는, 한번 크게 뜰 수 있는 여건을 지니고 있는 것 같은데, 책에서 느껴지는 그는 한탕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항상 겸손하고 진중하다. 이런 면이 요즘 같은 세상에서 오히려 그를 돋보이게 하는 매력이다. ‘어제보다 아름다워 지려는 사람’들 옆에서 그들을 도와가며 조용히,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자기가 좋아하는 방식대로 자기가 할 일을 찾아 뚜벅뚜벅 해나가는 사람. 그냥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도 그렇게 한결 같이 우리 옆에 있어 줄 것만 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렇게 오늘이나 내일이나 변함없을 것 같은 그의 전공이 오늘과 다른 내일을 만들어 가는 변화경영이다. 직장생활 20년 중 16년을 변화경영분야에서 근무했다. 그리고 역사를 공부한 학창시절에는 혁명사를 전공하고 싶었다고 한다. 이게 그와 어울리는 건가? 그는 그의 말대로 모순을 포용하고 사는 우리 한국성을 대변하는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요즘 사람 같지 않다는 그에 대한 생각과, 그의 글에서 느끼는 몇 가지 특징을 생각하면 학창시절에 책이나 강연을 통해서 접했던 선학(先學)들을 생각나게 한다.

그의 어휘구사력, 문장력은 매력적이다. 그는 비슷한 상황이나 내용을 여러 가지로 마음에 와 닿게, 다양하게 표현하는데 발군의 재능을 보여준다. 처음 접하면 마음에 잘 와 닿지 않는 주제를 다양한 사례와 표현력으로 마음에 각인되게 하고, 그를 통해서 마음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 꿈틀거리는 힘을 느끼게 한다. 옛날 철학을 하셨던 안병욱 교수가 그러셨다. 같은 내용을 다양한 방법으로 반복 설명하면서 어렵게만 느끼던 철학을 마음에 와 닿게, 알기 쉽게 설명해 주셨다. 그런데 저자에게는 안병욱 교수에게는 느낄 수 없었던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매력과 세련미가 더해진다.

그는 때로는 이론적으로, 논리적으로 독자의 마음을 파고든다. 조근 조근 설명하면서 결국은 사람의 마음을 그의 논리에 사로잡히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그런 면에서는 역시 철학을 하셨던 김형석 교수를 생각나게 한다.

헌데 그에게는 감성적이거나 논리적인 그의 특질과 전혀 다른 면이 있다. 그는 변화경영전문가다. 그가 항상 이야기 하는 주제는 변화와 혁신, 즉 파격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한국의 전통을 이야기 하고, 한국다운 멋을 이야기 한다. 파격과 멋을 이야기 하는 그에게서 양주동 선생의 멋과 풍류를 느끼게 된다.

그는 ‘코리아니티’ 에서 이런 말을 한다.

“앞으로 10년간 100명의 연구원들과 함께 ‘한국과 세계’라는 주제를 가지고 그 어울림의 방식을 다루어 보려한다. 이것은 10년간 신나게 놀아볼만한 재미있는 놀이이며 의미 있는 과제가 될 것이다. 이 책은 그 첫해의 수확이다.”

그는 지금 그 꿈을 차곡차곡 이루어 가고 있다. 지금이 4년 차다. 그의 꿈이 실현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
책을 읽다 마음에 들어 온 ‘인용문’을 인용 페이지와 함께 발췌하여 적을 것
( 10 페이지 이상)

“우리는 어제보다 아름다워지려는 사람을 돕습니다.”[표지]

코리아니티(Coreanity)는 한국인 다수의 정서적 기상도며 문화적 DNA다.
그것은 한국인의 생활 속에 살아 작동하는 일상적 취향이다. 코리아니티 경영은
‘한국적 특수성의 보편화’와 ‘세계적 보편성의 한국화’라는 두 물결의
합류를 통해, 세계적이면서 한국적인 매력을 창조해내는 것이다.[표지 다음 여백]

전 세계가 보편화되면 될 수록 사람들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더욱더 문화적 정체성에 의존하게 된다. 우리가 어느 나라 국민이든, 어디에 살든, 모든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뼛속에 들어 있는 ‘그 사람’이다.[7]

정체성이란 우리가 지금 머무는 정신적 현재를 의미한다. 정체성은 과거로부터 오랫동안 흘러온 것이지만, 과거에 고착된 것이 아니다. 정체성 역시 물처럼 흐르는 것이다. 따라서 같은 문화적 강물 속에 잠겨 흐르는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자연스럽게 기대하고 예측할 수 있는 감정적 공감대를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7]

한국인들의 문화적 공감대를 나는 ‘코리아니티(Coreanity)'라고 부른다.[8]

<< 모방과 추종을 넘어 선도의 자리로[프롤로그] >>

추종을 통해서는 리더의 자리로 진입할 수 없다.[11]

코리아니티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한국인 대다수의 생활 속에서 작동하는 일상적 취향이다. 일상에서 지키면 편안하고 지키지 않으면 불편하며 의외가 되는 가치체계와 공유의식 그리고 일반 정서, 나는 이 복잡한 덩어리를 코리아니티라고 부른다. 비유적으로 표현하면, 코리아니티는 한국인 다수의 정신적 기상도이며 문화적 DNA다. 코리아니티의 번역어는 ‘한국성(韓國性)’일 것이다.[12]

코리아니티 경영은 한국인이 가진 문화적 차별성을 브랜드화하여 문화적 프리미엄을 얻어내는 일이다. 그러려면 ‘한국적 특수성의 보편화’와 ‘세계적 보편성의 한국화’라는 두 물결의 합류를 통해 ‘세계적이면서 한국적’인 매력을 창조해내야 한다.[12]

가장 훌륭한 전략은 싸우지 않고 번영하는 것이다. 남들이 감히 들어올 수 없는 특수성, 이 특수성의 보편가치화가 바로 우리가 가야 할 ‘세계화(globalization)'의 전략 방향이 되어야 한다.[13]

‘세계인이면서 순 한국인’ 이라는 이 창조적 모순을 기업과 경영의 세계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 우리는 세계적 시야를 확보하는 동시에, 한국의 문화적 프리미엄에 기초한 차별성으로 세계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문화 없는 상품은 삼류이고, 차용한 철학으로는 혼신의 경영이 불가능하다.[14]

생활 속에 녹아 있는 정서와 취향이 소거된 직원과 함께 즐거운 경영을 한다는 것은 어림없는 일이다. 또한 즐겁지 않은 일에서 성과를 내고 최고가 되기란 매우 괴롭고 어려운 일이다.....즐기지 못하면 최고가 될 수 없다. 최고가 아니라는 것, 적어도 선진 대열에 합류하지 못한다는 것, 그것이 현재 한국이 안고 있는 고뇌다.[14]

세계화는 이미 우리가 익혀야 할 가장 중요한 개념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한국은 모방과 추종의 시간 압축적 추격에서 벗어나 한국적 세계성이라는 모순을 우리 안에서 조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모방 대신에 융합적 가치를 창조함으로써 선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하고, 인류의 위대한 다양성에 기여하는 훌륭한 이웃이 되어야 한다. 이 같은 목적을 이루려는 실험이 바로 내가 말하는 ‘코리아니티 경영’이다.[15]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차별성을 경영의 바탕으로 활용해야 하는 이유는 단 하나, 우리의 정신적 유산을 활용하여 새로운 문화적 프리미엄과 브랜드 이미지를 창조해내기 위해서이다.[16]

‘코리아니티 경영’이라는 언어를 선택한 것은 ‘한국적 경영’이라는 말이 풍기는 폐쇄적 의미를 가능한 한 줄이기 위해서이다.[16]

코리아니티 경영은 우리 것을 바탕으로 세계적 동의를 얻어내려는 창조적인 섞임 경영이며 즐거운 비빔 경영이다.[16]

‘과거에서 왔지만 미래를 지향한다’ 는 의미에서 ‘Korea-nity' 대신 ’Corea-nity'로 표시했다. 과거의 한국성이 아니라 미래의 한국성을 표시하는 새로운 문화 기호로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16]

과거의 Korea를 버리고 새로운 Corea를 채택함으로써 선두그룹으로 주파하는 것은 멋진 일이다. 타도 Korea, 건설 Corea! 아마도 이 거칠고 공격적인 문구가 이 책을 쓰고 있는 내 마음일 것이다.[17]

<< 1장 왜 코리아니티인가 ? >>

“내가 누리고 있는 언어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배운 것이다. 내가 쓰는 몸짓도 내가 창안한 것이 아니다. 내가 내세울 수 있는 능력, 기능, 재치 등은 무엇이든 사회적 유산에 의해 길러진 것이다. 심지어 나의 꿈조차 내가 만들지 않은 세계, 내가 완벽하게 차지할 수 없는 세계에 뿌리내리고 있다.” - 모리스 메를로퐁티

< 문화, 모방할 수 없는 경쟁력 >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자산이다. 그것이 바로 경쟁사들이 도저히 모방할 수 없는 우리만의 경쟁력이다. 내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우리만의 독특한 애사심, 곧 기업문화나 정신을 잃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 정신을 잃는다면 우리의 가장 소중한 경쟁력을 잃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허브 켈러허, 사우스웨스트 항공사 CEO >[24]

소니가 구조조정 신청을 받을 때 캐논은 ‘종신고용제’를 재 천명했다. “공동운명체의식으로 회사 전체가 단결하는 것이 바로 캐논의 경쟁력이다.”<미타라이 후지오 캐논 사장>[24]

프랑스는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수출한다. 화려한 문화전통, 포도주, 향수, 의상 등으로 상징된다. 프랑스의 경쟁력은 바로 ‘프랑스식 삶의 방식’에 있는 것이다. ..... 미국 제품에서는 아메리칸 드림, 일본제품에서는 정교함, 독일제품에서는 견고함을 사는 것이다.[25]

성공한 기업이나 국가들은 이처럼 자신만의 문화, 매력과 차별성을 무기로 삼았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그 무기는 과연 무엇일까? 다수의 한국인을 규정하는 ‘코리아니티’란 무엇일까? 우리는 ‘우리’라는 퍼즐과 수수께끼를 풀어야 한다. 내면적 자산인 코리아니티를 명료하게 찾아내어 계발하고 보완하고 강화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비즈니스 영역에서 특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24]

< 달라도 너무나 다른 동양과 서양 >

미국 문화는 보편주의가 강하다. 따라서 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동양인들에게는 특수주의가 강하게 작용한다. 그 사람과 나의 ‘관계’에 따라 법 적용의 정도와 수준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27]

미국인들은 세상을 조직화하는 방법으로 범주를 정하고, 그 범주를 지배하는 보편적 규칙을 찾아내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동양인들은 범주와 무관하게 사물들 간의 ‘관계’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29]

한국인들은 관계 지향적이다. 개인의 가치가 독립적으로 결정된다기 보다는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서 적절하게 규정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미국인들은 개인이 독립적이며 조직과 사회에서 분리되어 그 자체로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집단보다는 개인, 관계보다는 고유한 본질을 우선 가치로 받아들인다.[30]

< 고독한 영웅 vs. 무리 속의 나 >

미국 - 위대한 개인이 조직을 구한다.

미국인들은 다른 사람이나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기보다는 개인 개인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사회적 전통 속에서 살아간다. 미국의 개인주의는 외적 조건이 아니라, ‘자신에 의한 성공’이라는 내부 지향적 개인주의를 특성으로 한다.[34]

미국인들에게 공동체에 대한 개인의 충성심이나, 개인에 대한 공동체의 배려는 중요하지 않다.....미국인들은 개인의 경제적인 이익이 사회적 관심보다 중요하다고 믿는다.[35]

개인은 자기의 이익을 추구할 뿐이지만, 결과적으로는 그것이 선순환 과정을 거쳐 공동의 이익에 기여한다. 따라서 인간의 이기심은 훌륭한 자원이다. 바로 이것이 미국의 가치가 되었다.[35]

프랑스, 일본 - 개인보다는 집단이 우선이다.

개인의 이익은 일반 이익에 종속되어야 한다. 이 원칙은 기업에서 특정인 또는 특정 집단의 이익이 기업 이익보다 우선시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무지, 야망, 게으름, 나약함이 개인의 이익 앞에서 일반의 이익을 흐리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앙리 페롤, 프랑스 기업이론가>[38]

일본은 가장 집단적인 나라다. 개인은 없고 조직이 존재할 뿐이다..... 그들에게 개인적 관계는 계약적인 의무감 이상이다. 능력이 뛰어나지 못한 사람은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돌봐줄 대상이다..... 오래된 지혜를 낡고 쓸모없는 것으로 비웃는 서구와는 달리, 일본인들은 실수를 통해 지혜를 배워야만 다시 실수하지 않는다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38]

한국 - ‘우리’와 ‘나’ 사이의 넘나듦이 가능하다.

한국인들은 대개 ‘우리’와 ‘나’ 사이에 있다. ‘우리’라고 부르지만 늘 ‘나’를 생각하는 것이 한국인이다. ‘우리 마누라’라고 부르지만 그건 ‘내 마누라’를 뜻한다. 한국인들은 조직 속에 자신의 자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이름(名) 또는 격(格)이라고 불렀다. 말하자면 군주는 군주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 경영자는 경영자다워야 하고 직원은 직원다워야 한다. 이래야 비로소 이 사회나 조직이 가장 이상적인 관계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조직 속의 자리, 곧 이름에 알맞은 자기 자리를 ‘격’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한국인들에게 이 자리는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넘나듦이 가능한 유동적인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인들에게 일탈과 파격은 바로 멋이다. 멋이란 파격으로 새로운 어울림과 조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우리와 나’는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이면서 나’일 수 있는 것이다. 이 파격과 일탈이 만들어낸 새로운 어울림이 바로 멋이다. 멋은 한국인이 가진 미의식의 핵심 개념이다.[40]

단기성과주의 vs. 장기적 안목

미국은 바쁜 나라이고, 미국인들에게 시간이란 빠른 속도로 사람들을 태우고 달리는 ‘무엇’이다.....시간을 과거에서 출발하여 미래를 향해 흘러가는 강물처럼 직선적으로 파악하는 미국인들의 시간 인식은 미국식 경영관을 탄생시켰다. 단기성과에 따라 경영자에게 보상하는 성과 지향적 보상 형태도 미국식이다.[44]

그러나 일본인들에게 시간은 ‘친구’와 같다. 시간은 순환한다. 밤낮의 순환, 계절의 순환 그리고 생명의 순환..... 일본인들은 시간을 동시성과 순환성을 가진 것으로 믿는다. 시간이 과거에서 미래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과거․현재․미래가 내 안에 공존하고 있다. 따라서 미래는 우리가 알 수 없는 무엇이 아니라, 이미 과거와 현재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미래를 아주 모호하게 보는 미국인들의 생각과 다르다.[45]

시간을 흘러가는 물로 보는 미국인들은 순서에 따라 단계적으로 일을 진행한다. 반대로 시간의 동시성과 순환성을 맏는 일본인들은 연속성 속에 동시성을 강화한다.[46]

동시화 시스템이 가능하려면 한 사람이 여러 작업과정을 이해하고 필요한 도구를 익숙하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도요타의 작업자들은 적어도 3가지 기계를 운전할 수 있다고 한다. 바로 이 점이 일본인들이 생산성을 높인 방식이었다.[47]

프랑스인의 시간, 한국인의 시간

프랑스인들에게는 과거가 현재나 미래에 비해 중요하다. 이 점에서 프랑스는 매우 특이한 나라다. 그것은 그들의 사유체계가 역사적 시각을 통해서 모든 것을 조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현재와 미래는 과거와 분리되지 않는다. 그들에게 현재와 미래는 과거라는 나무에서 계속 피어나는 꽃과 같다. 그들의 사유체계는 늘 역사적 맥락에서 현재의 쟁점으로 옮겨온다.[48]

한국인의 시간인식은 이중적이고 혼합적이다. 여유와 느림의 나라이기도 하고, 빨리빨리의 나라이기도 한다. 가마솥의 나라이기도 하고, 냄비의 나라이기도 하다. 모순을 버무리는 능력이 탁월한 한국인들은 시간 역시 이중적 모순의 조화로 이해했다. 세상에서 가장 조급하고 서두르는 한국인들은 역설적이게도 시간을 길게 보고 그 누적 효과를 믿는다. 이것은 경영에서도 장기적 관점을 고려하게 한다.[48]

< 점진적 개선 vs. 파격적 혁신 >

가이젠의 나라, 일본

집단주의적인 일본인들은 작은 변형, 곧 개선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집단주의적이면 개인의 창조성과 상상력, 모험심은 설 자리를 잃게 마련이다. 따라서 일본의 경영자들은 질서를 깨뜨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작은 개선을 독려해 왔다.[50]

일본인들은 마치 아주 작은 변화를 거듭하면서 계속 진화하는 생물체 같다. 창조적 혁신이나 혁명이 아니라 아주 서서히 진화하는 과정을 거치는 셈이다.[51]

일본인들에게 과거란 ‘뒤집어엎어야 할 것’이 아니라 ‘조금씩 고쳐 써야 할 것’이다. 일본인들에게 혁명과 이노베이션은 없다. 일본은 오랜 시간에 걸친 가이젠(개선)의 나라다.[51]

다중성의 나라, 프랑스

반면에 프랑스는 모순과 대립을 즐기는 나라다. 프랑스인들은 서양인들 가운데 특이하게도 모순의 공존을 잘 견딜 뿐 아니라, 그것이 삶의 일상적 모습이라고 생각한다.[51]

미국의 이노베이션과 일본의 가이젠

미국은 점진적 개선의 나라가 아니다. 미국은 '연결되지 않는 것을 연결함으로써 얻어지는 창조력‘에 의한 이노베이션의 나라다. 한때 미국은 일본을 따라가려 시도했으나 일본의 가이젠을 적용하는데 실패했다. 그것은 전혀 미국적인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국도 그랬는데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개선은 한국적 진보의 방식이 아니다.[54]

한국인의 멋과 파격

한국인은 기질적으로 점진적 개선을 선호하지 않는다. 한국적인 멋은 기본적으로 데포르마시옹의 미의식이다..... 조지훈은 멋을 ‘정상적인 상태에서 약간 벗어나되 그것이 전체적인 조화를 해하지 않을 때 느껴지는 그런 소극적인 것이 아니라, 정상에서 벗어나 조화를 깨뜨림으로써 오히려 새로운 조화를 이룩하는 적극적인 것’이라고 정의했다.[54]

멋은 새로운 조화를 추구하는 파격의 변형력이며 에너지인 것이다. 그래서 때때로 한국 경영의 모습이 공격적인 기업가 정신으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54]

멋은 규제를 벗어나는 것이며 구속을 뛰어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방만함이 아니라 또 하나의 중심을 가지는 새로운 통일을 이룬다. 이것이 한국 문화의 상상력과 창의성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힘이다.[55]

한국인은 경영의 영역에서도 자연스럽게 ‘경영의 멋’을 만들었다. 정주영의 ‘소 떼 경영’, 정문술의 경영에는 ‘떠날 때 떠날 줄 아는’ 탈속의 멋이 있다. 안철수의 경영에서는 돈의 세계에서도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따르는 순수한 멋이 느껴진다. 문국현의 경영에는 노사갈등을 상생으로 이끌어낸 ‘인간경영’의 멋이 있다.[55]

< 보편주의 VS. 특수주의 >

미국식 보편주의의 장점과 한계

미국인들은 먼저 표준을 만들고 그 다음에 통제한다. 잡다한 인종과 문화가 뒤섞인 미국에서는 그것들을 망라하고 포괄할 수 있는 커다란 바구니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것은 누구나 인정하고 따라야 할 보편적 규칙이어야 했고, 원칙은 오차 없이 지켜져야 했다. 이는 경제와 경영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그들은 규격제품을 생산해냈고, 대량생산 체제를 만들어냈다.[57]

보편화를 추구하는 미국의 문화는 부국을 이루는데 기여한 훌륭한 자산이었다. 그들은 자연과학을 이상화하고, 그것을 산업에 열정적으로 활용했다. 그리고 공학, 생산, 안전, 재정, 회계, 법 등 경영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사회 경제적 활동을 규범화함으로써 세계 전체를 이끄는 스탠더드의 역할을 맡았다.[58]

현상을 따져서 원인을 파악해내고 이를 이론화하는 데 미국인들처럼 뛰어난 경우는 없다. 영미 경험주의의 전통은 이론적 분석과 보편화에 훌륭한 정신적 터전이 되었다. 그들은 경영의 세계 역시 보편적 규범에 따라 관리할 수 있다고 믿었다.[58]

미국인들의 보편주의는 이처럼 분석적 경향이 있다. 그들에게 기업은 기계적 조합, 곧 ‘corporation' 이었다. 한국인, 일본인, 프랑스인 그리고 라틴계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조직을 유기체로 생각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기계론적 조직은 생명의 파괴 없는 분해가 가능하지만, 유기체론적 조직은 생존하기 위해서 연결된 상태로 남아 있어야 한다.[59]

그러나 미국의 보편주의는 개별특수성을 간과하는 폐단을 낳았다. 보편성은 개념이며 서류상의 전략과 구상이다. 보편주의에 대한 집착은 사람들로 하여금 현장에서의 직접적인 경험과 생산 및 거래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구체적 현실에 무관심하게 만들었다.[59]

미국의 위대한 성공은 보편화로부터 시작했지만, 미국의 실패는 그 보편주의가 한계에 도달할 때 일어날 것이다. 보편주의자들은 전 세계가 단일화, 일반화, 법률화되기를 바란다. 반면에 그 대칭점에 서 있는 동양의 특수주의자들은 세상이 유일하고 예외적이며 서로 정신적으로 연계되기를 바란다.[60]

일본의 ‘지독한’ 특수주의

일본인들은 기업을 생명을 가진 유기체로 인식한다. 기업은 마치 나무와 같아서 그 속의 주체들이 선배와 후배의 관계로 묶여서 성장하고 발전해 나간다는 것이다. 그들은 함께 모여 조직화했을 때 홀로 존재하는 개인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일본 기업은 가장과 가족의 친밀성을 가진 공동사회(Gemeinschaft) 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일본인들은 피고용자의 전체적 인격(열정, 욕망, 꿈 그리고 평생직장이라는 소명감)을 활용하는 편이 훨씬 더 효과적인 인사방침이라고 믿는다.[60]

협력과 경쟁은 일본식 게임의 룰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일본인들은 이 둘 사이에서 묘한 조화를 이끌어 낸다. 승패가 결정되면 승자는 패자를 파멸시키지 않는다. 패자는 생존할 뿐 아니라 승자에게서 배운다.[60]

경쟁과 파괴사이에는 섬세한 구분이 있다. 중국인은 다른 사람의 밥그릇을 깨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일본인은 훌륭한 경쟁자가 파멸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소니의 모리타 아키오>[61]

일본은 안과 밖의 구분이 확실하다. 그들은 내부에서 결속하고 협력하여 외부와 경쟁한다..... 일본인들은 이런 방식 덕분에 협력과 경쟁이라는 모순에 시달리지 않는다. 개인들은 협조하고 조직은 경쟁할 뿐이다...... 일본인들은 경쟁과 협력 사이를 유연하게 오갈 수 있는 것이다. 협력과 경쟁을 통해 서로가 고양될 때 이를 ‘조화’라고 부른다.[61]

일본인들은 상황에 따라 변한다. 그들은 보편적 원칙에 따라 행동하지 않기 때문에 불투명하고 믿기 어려운 점도 있다.[62]

보편주의보다는 특수주의를 택함으로써 무수한 다양성을 인정하는 일본인들에게는 ‘조화’가 가장 중요하다. 그들은 ‘아니오’라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 사안보다는 관계를 중요시 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공손한 겉모습 역시 관계 지향성을 보여주는 처세술이다.[64]

소니의 모리타 아키오는 미국과 일본의 공장 체제를 ‘벽돌공과 석공’으로 비유했다. 미국인들은 미리 규격화 되어 있는 벽돌을 이용해서 표준적이고 단일한 제품을 만들어 낸다. 모양, 크기, 기능이 서로 다른 규격화된 벽돌을 쌓아올림으로써 ‘집’이라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반대로 일본인들은 다양한 모양의 돌을 다양한 목적과 필요에 따라 다듬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쌓아간다.[65]

일본인들에게 진리란 ‘순응’하는 것이다. 늘 상대적이며, 타협 가능하다......(그들에게는) 강한 지적 전통이 없다. 힘을 가지고 법을 집행하는 자들을 비굴하게 추종한다. 도덕성부재에 대한 용인과 찬양이 인과관계처럼 얽혀 있다...... 종교와 사상의 체계를 발전시켜온 문명국가들은 사회, 정치적 상황을 초월하는 진실과 진리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독일 언론인 카렐 볼레펜>[66]

프랑스의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는 이렇게 말했다. “문화상대주의는 한 문화가 다른 문화의 활동에 대해 ‘저속하다’거나 ‘고상하다’고 판단할 절대적 기준이 없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각 문화는 자체의 활동에 대해서만큼은 그런 판단을 내릴 수 있고, 또한 내려야 한다. 왜냐하면 한 문화의 구성원은 그 문화 안에서 관찰자일 뿐 아니라 행위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의 지식인들은 이런 지적 전통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일본인들이 객관적 진실과 진리를 받아들이는 이론적 인식수준은 야만적이라고 불릴 만큼 빈곤하다.[67]

프랑스식 ‘법의 정신’

프랑스인들은 법 자체보다는 법의 이면에 존재하는 정신을 존중한다. 모테스키외는 <<법의 정신>>에서 전체 제도는 법률의 이면에 숨어 있는 ‘살아 있는 원리’에 의해 지배된다고 주장 했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은 기업 경영에서도 그대로 살아 움직이고 있다.[67]

나는 원칙이라는 단어에서 ‘완고함’ 이라는 함의를 제거하고 사용하기를 원한다. 원칙이란 유연한 것이고 모든 필요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상황의 변화는 그 상황에 의해 파생된 규칙을 바꿀 수 있다. 나는 이것을 상황의 법칙(the law of situation)이라고 부른다.<앙리 페욜(Henri Fayol)>[67]

프랑스에서는 경영진에게 권한이 고도로 집중되어 있다. 그들은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원칙과 규칙을 깨지 않는 범위 내의 유연한 해석을 통해서 융통성을 발휘한다. 그들은 비공신적인 채널을 작동하는 것에 대해서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것은 막후 조정의 기술이며 지혜일 따름이다. 은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부끄럽거나 불공정한 것이 아니라 지혜이며, 인간의 복잡한 특성을 아우르는 관용이며, 엄격한 법이 해결할 수 없는 사회적 공존의 따뜻함이다.[68]

‘법 없이’ 살고 싶은 한국인들

한국인들에게 법은 만인을 위한 보편 기준이 아니다. 프랑스인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인들에게 법은 유연하게 적용해야할 무엇이다.[69]

한국인들은 법치국가를 이상으로 생각한 적이 없다. 우리가 만들고 싶어 한 사회는 ‘법이 필요 없는 사회’ 였던 것이다. 이것이 유가의 덕치주의 이상이었고, 우리의 오래된 가치관이었다. 법이 지켜지지 않아서 불투명한 사회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먼저 지켜야 할 도덕과 윤리가 깨어지기 때문에 오탁한 세상이 되는 것이다.[70]

선비들에게는 마땅히 지켜야 할 당위적 가치가 존재했다. 유가 이념에 바탕을 둔 성리학적 미덕들이 그 역할을 했으며, 학인(學人)으로서 선비는 지행합일을 중요한 덕목으로 생각했다.[70]

선비정신은 스스로 ‘수치를 아는 것’이다. 수치를 아는 사람은 부패할 수 없고 타락을 묵인할 수 없다. 이것은 우리가 물려받은 가장 훌륭한 정신적 유산이다.

< 수직적 작용 vs. 수평적 작용 >

가장 동양적인 유럽국가, 프랑스

프랑스인들은 집단 내에서 매우 권위적인 경영자의 지위를 만들어냈다. 이것은 자유와 평등을 혁명 이념으로 삼은 프랑스인들에게 잘 어울리지 않는 모순이다. 그러나 이런 모순은 그들의 생활 속에 상존하는 대립과 갈등이며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프랑스 역사는 위기의 순간마다 위대한 지도자들의 위엄과 카리스마로 빛난다. 혁명과 단절이라는 프랑스의 문화적 특성은 시대마다 그 위기에 맞서는 위대한 지도자를 갈망해 온 것이다. 이것이 바로 프랑스가 유럽나라들 가운데 가장 전체주의적이고 위계적인 문화를 이룬 원인이다.[71]

개인에 우선하는 내부 지향적 공동체주의는 강력한 권위와 힘을 가진 엘리트 경영자를 만들어냈다. 그들의 힘은 수직적인 위계에서 나온다. 그리고 가족적 분위기 속에서 직원들을 보호하고 배려한다.[72]

그렇다고 해서 프랑스 경영자들이 직원 위에 군림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대부분 풍부한 감정의 소유자이며, 위계가 가지는 공식성을 밀접한 인간관계로 보완한다. 이것도 한국이나 일본의 경영자들이 가진 의식과 비슷하다.[73]

인간은 서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인간관계의 조화야말로 사회생활의 가장 중요한 목표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프랑스는 가장 동양적인 유럽국가라고 말할 수 있다.[73]

일본의 중간조정경영

일본인들은 힘을 추종한다. 그들은 한국인들처럼 뒷전에서 남을 험담할 때, 그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 또는 나는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에 그는 힘이 없다. 그는 영향력이 없다고 말한다. 좋다 나쁘다, 옳다 그르다 대신 일본인들은 힘이 있다 없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들에게 힘과 영향력은 옳은 것이다.[75]

일본의 조직은 위계적이다. 그들은 권력이나 책임을 가진 사람들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거나 도전하는 것을 꺼린다. 상대방의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언어를 사용하고, 지위 높은 사람들을 차별적으로 대우하는 것을 당연시한다......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그러면서도 권위주의의 폐단이 적다는 점이다. 그것은 조직에서 위, 아래 그리고 중간의 역할이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 경영은 조직 면에서 수평적으로 보이지만, 아래로부터의 경영 참여에 인색하며 위로부터의 통제와 관리라는 방법을 선호한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아래와 위의 역할을 구별한다. 노나카 이쿠지로는 이것을 ‘중간조정경영(middle-up-down management)' 이라고 부른다.[75]

노나카에 따르면, 중간간부의 역할은 하층에서 나오는 다양한 귀납적 사례와 의견 그리고 상층에서 나오는 가치와 정책적 연역을 중재함으로써, 모순된 요구를 조화시키고 혼란으로부터 질서를 바로잡는 것이다.[76]

경영자는 직원의 제안을 받아들여 폭넓은 가치와 정책을 만들어내고, 직원은 현장에서 이를 충실히 이행함으로써 서로 공명한다. 이러한 공명이 가능한 것은 경영자들이 하부에 상당한 권한을 위임하고 있기 때문이다.[76]

수직적 권위주의를 폐기하라

한국인에게 가장 취약한 대목은 바로 힘이 작용하는 방향이 지나치게 수직적이라는 점이다.[76]

하지만 정치적․사회적 민주화의 물결 속에서 개인들은 자유에 대한 목소리를 높여왔고, 인터넷 확산을 통해 한국은 가장 빠르게 수직적 경직성을 깨고 수평적 정보 전달을 구가하는 대표적인 나라로 바뀌고 있다.[77]

그러나 한국인들은 ‘얼굴이 있는 관계’를 가정하는 조직 속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코리아니티가 가지고 있는 반(反) 21세기적인 가치 가운데 대표적인 것 하나를 들라면 나는 ‘수직적 권위주의’를 꼽겠다..... 나는 ‘수직적 권위주의’라는 부정적 특성을 청산하는 것이 코리아니티 논의의 가장 절박한 교정 과제라고 생각한다. 권위는 존중하고 훌륭한 에너지로 활용하되, 권위주의는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77]


<< 코리아니티 핵심 5가지 >>

< 한국적인, 너무나 한국적인 >

한국은 젊은이들의 세상이다. 젊은이들은 ‘세상을 다 가져라’라는 주문을 받는다.[82]

외국인의 관점에서 100년 사이에 한국이 눈에 띄게 달라진 점

첫째,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달라졌다. 둘째, 노인의 시대에서 젊은이의 시대로 바뀌었다. 셋째, 느린 활보, 쓸쓸함, 느닷없는 농담, 여유 있고 넉넉한 걸음걸이가 사라졌다.[84]

100년 사이에 변하지 않은 이면의 공통점 들

첫째, ‘우리 속의 나’라는 정신적 틀이다. 한국인들은 집단에서 떨어져 나와 소외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공동체주의 속에서도 늘 ‘나’를 잊지 않는다. 한국인들은 자의식이 강하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적어도 다른 사람만큼은 성취해야 하고, 더 달려 나가지 않고는 참기 어려운 개인주의자들이기도 하다.[85]

둘째, 한국인의 중요한 공통점은 ‘생기’다. 한마디로 다이내믹하다. 가난하지만 즐겁고 어렵지만 찡그린 얼굴이 적다는 것은 정신적 싱싱함의 표현이다.[85]

셋째, 한국인의 또 다른 특성은 이중적 가치의 공존과 상생이다. 느림과 빠름, 노인에 대한 공경과 젊은이의 세상, 오랜 전통과 새것 선호, ‘우리’라고 말하면서도 ‘나’를 앞세움, 자연미의 추구와 성형 붐, 온순함과 공격성이 공존하는 것이다.[86]

넷째, 끈질긴 생명력과 흥청거림이다. 본건시대 탐관오리들의 만성적 수탈, 일제 식민지의 모욕, 한국 전쟁, 독재정권 아래서의 숨막힘..... 가난과 불안의 시대를 살아오면서도 한국인들은 스러지지 않았다. 어려운 현실은 한으로 쌓였지만 이내 흥이 되어 터지고, 울음은 해학과 웃음으로 흩어졌다.[86]

다섯째, 누구나 한국인의 특성이라고 입을 모으는 2가지는 바로 배움과 근면이다.[86]

‘한국적 특수성의 세계적 보편화’라는 과제가 바로 글로벌리제이션과 로컬리제이션이라는 모순을 화해시키며 번영할 수 있는 바람직한 접근법이라면, 한국인의 특수성은 무엇일까? 코리아니티,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계발하고 활용함으로써 세계적인 차별성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개인이 자신만의 강점을 활용해서 성공의 길을 열듯이, 한 사회는 문화적 특수성을 성장 엔진으로 활용해야 한다.[87]

< 코리아니티 1 - 남들만큼은 되어야 한다 >

고맥락 사회인 동양에서는 인간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유동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주변 맥락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고맥락 사회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은 당연히 개인의 자유보다는 관계 속에서의 책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89]

한국 사회는 칭찬보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중요시하는 관계 지향성을 문화적 특징으로 한다.[90]

한국인들은 분노를 표출해서 낙오되는 대신 차라리 분노를 참고 집단 속에 남는 길을 택하기 때문에 화병이 민족적 심리증후군으로 고착된 셈이다.[93]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감정은 조화, 호감, 정 그리고 공동의 이념적 목표를 추구하는 데서 얻는 ‘가족적 소속감’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미국인들은 스스로를 자율적이고 독자적인 개인으로 규정한다.[94]

유교 문화권에서의 개인은 ‘특정 집단에 소속된 구성원’이었다. ‘나’라는 존재는 타인과의 관계맺음과 그 속에서 부여되는 역할들의 총체일 뿐, 결코 독립된 존재가 아니다. 결국 그들의 정체성은 역할에 따라 결정되므로 역할이 바뀌면 정체성도 바뀌게 된다. 상황에 따라 ‘다른 나’가 되는 것이다.[95]

관계지향적인 한국인들은 공동체를 떠나서 살기 어렵다. 공동체에 대한 충성심도 대단히 높다.....그래서 조직으로부터 직원을 떼어내는 프로세스는 매우 신중하게 진행되어야 하며, 적절한 보완 장치 없이 적용하면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켜 쓰지 않은 것만 못한 결과를 낳는다.[96]

< 코리아니티 2 - ‘우리’ 속의 ‘나’ >

한국인들은 ‘우리’라는 집단 속에 자아를 심어두는 데 익숙한 문화적 DNA를 가지고 있다. 미국적 개인주의와 일본식 집단주의 사이에 한국인들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우리’와 ‘나’, 공동체와 개인이라는 2가지 속성을 다 아우르고 있는 셈이다.[98]

격이란 위계질서상의 격식을 의미한다. 격은 바로 세상 속의 ‘자신의 자리’이다. 그러나 또한 한국인들은 그 격을 ‘때에 따라 넘나드는 틀’로 이해한다.[99]

한국인은 집단과 개인 사이에 머물며 그 둘 사이의 갈등 속에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이 가장 적절한 표현이다.[100]

미국인들은 주로 직무 내용이나 성과에 대한 스트레스가 주를 이루는 반면, 한국인들은 주로 상사와의 갈등이나 집단주의 조직문화, 비공식적 직장문화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100]

‘조직은 개인의 성장을 지원할 때만 의미를 갖는 현장’이라는 미국식 개인주의가 아니라, ‘공동체의 성장과 더불어 함께 나아가는 개인’ 이라는 집단의식이 개인과 자아와 함께 발전해간다는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문화적 유산이 아닐 수 없다.[102]

판소리의 소리꾼이 자기를 실현해가는 과정처럼, 나는 ‘우리속의 나’라는 코리아니티가 그것을 보델로 삼아 발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102]

예술은 표준과 획일을 가정한 과학이 아니다. 예술은 개별화를 속성으로 하는데, 정형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판소리는 가장 예술적인 음악이라 할 수 있다. 판소리는 대략의 틀을 가지고 있지만 연주자와 소리꾼에 따라 얼마든지 변용이 허용되며, 청중의 어울림에 따라 창법이 변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104]

한국인에게 공동체는 자궁이다. 자신을 품어준 집단의 탯줄을 통해 배우고, 경험하고, 실험하면서 그 집단을 빛낼 또 하나의 전문가로 성장해나간다. 그리하여 스스로 훌륭한 추종자를 보유하는 또 하나의 유파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105]

< 코리아니티 3 - 모순을 껴안는 힘 >

이승희는 <멋>이라는 수필의 첫머리에서, “우리 문화의 특징으로서 가장 현저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친구가 있기에 나는 ‘멋’이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라고 썼다. 왜 한국인은 파격을 통해 새로운 조화에 이르는 멋을 문화적 특성으로 배양하게 되었을까? 나는 그것이 ‘모순을 껴안을 줄 아는 힘’에서 나온 것이라고 본다.[106]

이분법적 사고가 지배하는 문화권에서는 언제나 ‘선택’이라는 단어가 큰 의미를 가진다.[107]

한국인들은 ‘이것이면서 저것’, 곧 and의 문화권에 속해 있다. and문화권의 핵심은 음양의 원리이며, 상극과 상생의 원리가 지배하는 가치체계이다. 음양은 ‘서로 반대이면서 동시에 서로를 완전하게 만드는 힘’, 서로의 존재 때문에 서로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힘‘ 의 관계이다.

우리는 상극과 상생 모두 훌륭한 변화의 원리로 활용할 수 있다. 이것이 동야사상의 원천이고, 음양오행의 원리다.[109]

한동석은 <<우주 변화의 원리>>에서 “상극작용은 상생작용과 함께 생을 견실하게 한다. 극(克)으로써 해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만물을 생성하려는 목적으로 그렇게 하는 필요극(必要克)이다. ..... 발전과 통일을 위한 모순과 대립이다”라고 말한다.[109]

나는 한국인의 멋이 바로 이런 모순을 견디고 껴안는 힘에서 나오며, 그 내면적 모순들이 서로 갈등하고 회통하는 가운데 파격을 만들어내어 이윽고 새로운 조화의 길로 나아가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114]

만일 한국인에게 음풍농월하는 여유와 낭만이 없었다면 옛 선비들의 청빈낙도는 궁상에 가까웠을 것이며, 세사를 달관하는 초탈이 없었다면 유불선을 통합하여 풍류도(風流道)라는 멋진 정신세계를 이루어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결국 모순을 껴안는 힘은 내면에서 그 모순을 회통시켜 새로운 조화와 균형을 창조해내는 한국의 에너지라고 할 수 있다. 이때 모순은 갈등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창조의 동인(動因)이 된다.[115]


< 코리아니티 4 - 거친 생명력과 흥청거림 >

한국인들은 거칠다는 느낌을 준다. 자동차를 타고 나가면 그 거침이 금방 느껴진다.[116]

“조선 놈들은 두들겨 패야 말을 듣는다”는 비아냥거림은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얼마나 다이내믹한 사람들인가를 보여주는 송곳 같은 말이다. ‘오~ 필승 코리아’ 와 ‘대~한민국’은 2002년 갑자기 생겨난 정서가 아니다. 그것은 오랫동안 한국인의 가슴속에 이어져 내려온 한국인 특유의 생동감과 역동성의 표현이다. 우리는 그것을 ‘흥’이라고 불렀다.[116]

대충대충 빨리 빨리의 나라. 감정의 과격함이 돋보이고 그래서 공격적으로 인식되기도 하는 나라. 마음의 표현이 서투른 나라, 좀처럼 잘못했다고 사과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117]

일본인들은 자세하고 세기(細技)에 강하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전체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조망하지 못한다. 그들은 자기의 자리에 갇혀 완성을 추구하지만, 지나치게 기교에 치우쳐 종종 다이내믹한 생기를 잃고 만다. 반대로 한국인들은 커다란 전체를 본다. 뒷산의 둥근 모습을 보고 그 앞에 초가를 지어 어울리게 한다. 헐렁하고 엉성하지만 그 어울림이 자연스럽고 멋스럽다. 싱싱한 생명력으로 빛난다. 그리고 그 생명력은 늘 넘쳐흐르는 흥청거림의 넉넉함으로 표현되곤 했다.[120]

이희승은 한국 멋의 한 특성이 ‘흥청거림’에 있다고 보았다. 나는 흥청거림이 곧 다양한 군상들이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맛이라고 느낀다..... 이것은 우리 음식문화의 상징과도 일치한다. 우리 음식문화의 특징은 찌개와 비빔밥이다.[120]

바탕이 문체보다 승하면 거칠고(野), 문체가 바탕보다 승하면 사치(史)스럽다. 형식과 내용이 고루 어울린 뒤라야 군자다.<<논어>> <옹야>편[121]

그러나 한국인의 역동성과 생명력이 최근 들어 자연스러움을 잃고 다만 거침 그 자체로 남는 것을 종종 본다. 멋과 마음이 사라진 대강대강과 빨리빨리의 날림으로 흘렀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흥청거림이 물질적 낭비가 아니라, 함께 어울려 즐기는 정신적 여유와 흥이었다는 점 역시 간과되었다.[123]

조금은 거친 듯하면서도 대범하고 내면의 빛을 간직한 생기가 다시 한국인 고유의 매력이 될 수 있도록, 이 싱싱한 코리아니티를 더욱 발전시키고 진작시킬 일이다.[123]

< 코리아니티 5 - 명분과 배움, 선비정신 >

사람에게는 5가지 죄가 있다. 첫째는 머리가 빨리 돌면서 마음이 음험한 것이다. 둘째는 행실이 한 쪽으로 치우쳤으면서도 고집불통인 것이다. 셋째는 거짓을 말하면서도 달변인 것이다. 넷째는 추잡한 것은 외고 다니면서도 두루두루 아는 것이 많아 박학다식해 보이는 것이다. 다섯째는 그릇된 일에 찬동하고 그곳에 분칠을 하는 것이다. 이 5가지 가운데 하나라도 있다면 죽여도 된다. 그런데 소정묘는 이 죄악을 두루 겸했다. 어찌 그를 죽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공자>>[127]

조선의 선비들은 투철한 시대적 사명의식을 가진 지식인이었다. 국가가 위기를 맞았을 때 취해야 할 선비의 처세에 ‘처변삼사(處變三事)’라는 것이 있다. 은둔과 망명 그리고 자결이다. 어느 것도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또 다른 길을 선택했다. 바로 ‘거의소청(擧義消淸)’이다. ‘의를 일으켜 적을 쓸어버리는 것’이다.[128]

정옥자는 선비의 전공은 이른바 인문학의 요체인 문사철(文史哲)이며, 교양필수 과목은 시서화(詩書畵)라고 말한다.[129]

결국 경사(經史)를 배우고 익혀 진정한 삶에 이르고 그것을 글로 표현하여 여러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 지식인의 책무였으며, 앎을 삶과 일치시키는 지행일치가 선비들의 가치관이었다.[129]

선비의 생활철학은 지행합일(知行合一) 또는 학행일치(學行一致)로 요약할 수 있다. 자신과 남에게 같은 기준을 적용할 뿐 아니라, 때에 따라서는 자신에게 박하고 타인에게 후한 박기후인(薄己厚人)의 생활태도가 권장되었다. 이 일관성은 세력에 따라 변하는 기회주의를 용납하지 않아, 지조와 절개가 선비의 상징이 되었다. 그들은 겉으로는 부드럽고 안으로는 한없이 단단한 정체성을 가진 외유내강의 인간상을 지향한다. 그들은 청빈과 검약을 통해 스스로 겸손한 생활을 영위하였다.[132]

배운 것을 실천하는 기준은 의리와 명분이었다. 의리(義理)란 사람이 지켜야 할 올바른 도리를 뜻한다. 선비는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마다 항상 옳고 그름을 따져서 행동해야 했다. 그러나 사람이 사는 데 옳고 그름만 따진다면 삭막하고 인정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선비들은 의리와 인정을 적절히 보합하여 균형을 이루는 것을 잊지 않았다. 명분(名分)이란 각자의 이름에 어울리는 분수와 역할을 말한다. 조선은 명분의 사회였다. 그러나 인간이 사는 사회에서 이익을 배제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비 역시 명분과 개인의 이익을 합치시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부득이 하나를 택할 수 밖에 없을 때는 명분을 따르는 것이 선비로서 사는 길이었다.[133]

선비들에게 가장 어려운 마지막 지향점은 중용이었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균형과 조화야 말로 선비들이 도달하고 싶어 한 중정의 상태였다.[133]

선비정신은 옳고 그름을 선택의 기준으로 하되 인정을 잃지 않고, 명분을 앞세우되 실리 또한 잃지 않는 절묘한 지점을 찾으려는 노력이다.[133]

경영은 이익을 추구하는 활동이다. 그러나 경영이 사회적 명분을 잃은 돈벌이로 전락한다면 윤리경영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비윤리적 기업은 사회로부터 축출되어 마땅하다. 이것이 선비정신이 경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결정적 대목이다.[134]

쉽게 사람을 버리는 기업은 또한 인재들에 의해 쉽게 버림을 받을 것이다. 인재는 오랫동안 공들여 키워지는 것이다. 올곧은 선비는 여러 뛰어난 스승과 멘토들이 도와 오랜 시간에 걸쳐 정성스럽게 만들어 배출한 동량이다. 조직에 대해 충성심과 지극함을 가지지 못한 개인주의자들은 언제고 더 좋은 조건을 찾아 조직을 떠날 것이고, 그들에게 의리와 명분은 더 이상 선택의 기준이 되지 못할 것이다.[134]

지금 가장 훌륭한 직업인의 조건 가운데 하나는 평생을 학습할 수 있는 자세와 열정이다. 어제의 지식으로 오늘을 살 수 없을 만큼 지식의 유효기간이 짧아졌기에 학습없는 인재란 없다. 선비정신은 곧 평생학습의 정신이다. 선비는 학인(學人)이다. 그것도 평생 배우는 사람이다. 평생 배우는 자세를 가지지 않고 전문가가 될 수는 없다. 지금처럼 호학의 기풍이 필요한 때는 없다.[135]

윤리 원칙을 지키는 경영, 지구가 견딜 수 있을 만큼 절제된 자원의 배분, 인간에 대한 애정이 담긴 경영철학, 공동체와 상생하는 개인, 현장에서 계속되는 평생학습, 기회주의에 편승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묵묵함, 사회적 책임을 지는 기업정신, 세계와 자연에 마음을 여는 열린 자세 그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낼 수 있는 지식은 건강한 기업경영에 절대적인 도움을 준다. 바로 이것이 경영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선비정신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동안 여기서 너무 멀리 멀어져 있었다. 본래 가지고 있는 훌륭한 유산을 돌아보지 않고 그보다 못한 남의 것을 베껴와 찬양하곤 했다.[135]

<한국형경영모델 - 이류성을 극복하는 길>

나는 여기에 제시한 5가지 코리아니티가 의미 있는 분류이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초보적인 작업의 결과일 뿐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분류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문화적 강점인 코리아니티를 잘 발견해내고 끊임없이 계발하고 활용하여 효과적이고 강력한 한국적 경영모델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것이 모방에서 이류성을 지양하는 길이며, 문화적 부작용과 거부반응을 최소화하는 길이다.[138]

<21세기의 흐름과 코리아니티>

‘코리아니티와 세계화’ 라는 주제를 탐구하면서 내가 발견한 점은 21세기의 흐름과 코리아니티가 매우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21세기 미래 조직의 운영과 개인의 활동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키워드로 글로벌리제이션, 기술, 속도, 지적자본과 지식, 고객화, 지속적 성장 등을 꼽는다.[140]

세계화 시대에 성공하는 조직이 되려면 지구적 감수성에 따른 범세계적 동질성을 수용하고 기회로 삼을 수 있는 시야와 인식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지역문화적 차이가 존중되는 이질성을 차별적으로 전략화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경영자는 ‘세계적이면서 지역적이어야 하는 모순과 역설’의 과제를 풀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은 모순과 역설을 견디고 껴안는 데 능숙한 문화적 DNA를 가지고 있다.[142]

훌륭한 경영은 or 문화권보다 and 문화권과 잘 어울린다.... ‘모순을 견디고 조화시키는 힘’은 서구인들에게는 새로이 배워야 할 과제이지만, 한국인들에게는 이미 주어진 문화적 유산이다.[142]

기술은 세상을 더 작고 빠르게 만들었다. 기술 자체가 놀라운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사람이 살아가고 일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꾼다는 점이 중요하다.[143]

디지털 컨버전스는 기술 시대의 키워드가 되었고, 한국은 그 기회에 빨리 올라타고 있다. 한국인들은 여러 모순적 요소를 섞고 비벼서 새로운 맛을 창조해내는 데 능하다. 그뿐 아니라 이미 있는 것들로부터 일탈하여 파격의 멋을 만들어내는 변용력이 바로 코리아니티의 창조력이다.[143]

속도는 조직의 성공을 가장 빠르게 결정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제품의 주기는 빨라지고 짧아졌다. 그러므로 선점효과가 한층 더 중요해질 것이다.[144]

속도는 대충대충과 통한다. 또한 검증을 기다리기도 어렵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저 없이 그것을 활용해야 한다는 의미다. 다만 이것이 날림과 부실의 원인이 되지 않도록 끊임없는 수련과 완숙을 통한 효과성으로 보완해야만 한다.[144]

지식은 권한이나 지위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지식은 기업의 본질적 가치이며 경쟁력의 핵심이다. 따라서 기업은 늘 새로운 아이디어에 접근하고 배우는 학습조직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145]

한국은 사람 말고는 별다른 자원을 가지지 못한 나라다. 우리가 고등교육의 지식 전달방식과 내용을 혁명적으로 바꾸고, 대학에 들어가기만 하면 일제히 소멸되던 배움의 자세를 평생학습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면 한국은 수많은 세계적 인재를 양산하는 새로운 메카가 될 것이다.[145]

소비자의 고객화는 소비자 전체가 아니라 고객의 개별적 요구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될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소비자만이 고객화의 대상이 아니다. 직원도 고객화의 대상이 될 것이다.[146]

무엇보다 고객화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요소는 ‘고객과 나’ 사이의 특별한 관계이다. 일본은 이 고객화에 주목함으로써 차별적 경영에 성공했다. 한국 역시 오랫동안 관계 중심적인 문화적 전통이 지배적이었다. 고객화는 자연스럽게 한국인의 관계 지향성에서 끌어 올릴 수 있는 또 하나의 혜택이다.[147]

코리아니티는 21세기의 기업이 요구하는 핵심적 특성과 대단히 많은 공유 영역을 가지고 있다. 이 말은 미래 기업이 요구하는 특성들이 이미 한국인의 정신적 일부가 되어 있다는 뜻이다. 21세기는 한국인들이 가장 잘 읽어낼 수 있는 시대이며, 일상 속에서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시대로 보인다.[148]

‘한국적 특수성의 세계적 보편화’라는 과제가 바로 글로벌리제이션과 로컬리제이션이라는 모순을 화해시키며 번영할 수 있는 바람직한 접근법이라면, 한국인의 특수성은 무엇일까? 코리아니티,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계발하고 활용함으로써 세계적인 차별성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개인이 자신만의 강점을 활용해서 성공의 길을 열듯이, 한 사회는 문화적 특수성을 성장 엔진으로 활용해야 한다.[149]

<< 3장 ‘나의 길’을 간 성공 기업들 >>

< 캐논 - 절대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 >

1995년 캐논 사장으로 취임한 미라타이 후지오는 몇 년에 걸쳐 중요한 사업부문에서 철수를 결정한다. 채산성이 떨어지는 사업을 철수하자면 인력조정이 불가피 한데 그는 회사는 버려도 사람은 버리지 않는다는 일본의 전통적 정서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것이 바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라고 여겼다.[152]

여기에다 1997년부터 셀(cell) 생산방식을 도입함으로써 다품종 소량생산에 적합한 생산혁신을 이루어 냈다.[152]

컨베이어 생산방식이 단순작업이라 재미가 없었는데, 셀방식은 완제품을 만드는 재미를 준다. 조립한 제품에 자신이 사인을 한다. 따라서 품질보증까지 내가 한다는 보람을 맛볼 수 있다. 그 덕분에 불량률과 고장률도 줄었다.[153]

더욱 중요한 것은 작업자들의 사고방식이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나에게 일이 주어진다는 수동성에서 내가 제품을 만든다는 능동성으로 전환되었고, 능동성과 보람은 1인당 생산성을 1.5배 높이는 동기로 작용했다.[154]

2000년부터 캐논은 ‘마이스터(meister)' 제도를 실행하고 있다. 이것은 ’8명이 작업하는 셀에서 한 명을 줄여보면 어떨까‘ 하는 가이젠식 발상에서 비롯되었다. 한 명을 줄이면 전체 작업량이 15% 정도 늘어난다. 그러나 한 팀이 숙련도를 높여서 이 부담을 흡수해낼 수 있다면, 다시 또 한명을 빼내는 도전을 한다. 이런식으로 한 명씩 줄다 보면 결국 8명이 하던 일을 한 사람이 하는 수준에 이르게 되는데, 이때 이 사람은 마이스터가 된다.[155]

미타리아 후지오 사장의 종신고용은 전통적인 일본 경영 스타일을 우직스럽게 답습한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장기고용은 유지하되 연공서열의 보상제도는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 학력, 연령, 성별에 관계없이 오직 실력을 바탕으로 한 인사와 보상제도를 정착시켜 연령과 근무기간에 따른 프리미엄을 배제한 것이다.[156]

< 노키아 - 가장 핀란드다운 사업모델 >

인구 500만의 작은 나라가 자기들밖에 사용하지 않는 언어를 쓰면서 성장할 수 있는 길은 소수의 일에 집중하여 그 일을 남들보다 잘하는 것뿐이었다. 그들은 텔레커뮤니케이션에 집중했다. 그리고 성공했다.[158]

텔레커뮤니케이션이라는 노키아의 산업 분야가 매우 ‘핀란드적’인 분야라는 사실이다. 핀란드는 국토의 70%가 삼림이다.....이들에게 ‘거리(distance)'는 늘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다.[160]

그런가 하면 핀란드인은 바다의 방랑자이며 약탈자였던 바이킹의 후예다. 역사가인 나디아 밀루텐코(Nadia Milutenko)에 따르면, “돌아가 묻힐 조국이 없는 사람들”이 바로 바이킹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새로운 유목시대에 살고 있다. 달리 표현하면 이동정보사회(mobile information society)에 살고 있는 것이다. 자크 아탈리의 표현을 빌면, 휴대전화는 가장 대표적인 유목 물품 가운데 하나다.[161]

텔레커뮤니케이션은 핀란드의 정체성에 가장 적합한 비즈니스 분야였다는 의미다. 노키아는 가장 핀란드다운 사업 분야에서, 가장 핀란드다운 문화유산으로 무장된 사람들과 더불어, 가장 핀란드적인 경영방식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이다.[162]

한국이 텔레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훌륭한 성과를 내는 이유도 이 분야가 코리아니티와 일치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국토도 대부분이 산악이다.....우리도 핀란드인들처럼 공간적 격리를 잇는 거리의 극복이 중요했다.[163]

또한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이동성이 강한 민족이기도 하다.....우리는 길만 보면 달리고, 길 위의 생활을 즐긴다. 휴대전화는 이동을 즐기는 우리의 첫 번째 필수품이 될 운명을 가지고 있었다.[162]

< LVMH - 프랑스식 삶을 팔다 >

프랑스 사치산업의 성공은 프랑스적인 가치 창조에 있다. 가장 프랑스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기 때문에,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국제적 취향을 따르기보다는 자신의 고유한 것을 개발하는 것이 가장 잘 성공할 수 있는 길이다.[170]

< 유한킴벌리 - 배우자, 함께 가자 >

GE 전 회장 잭 웰치의 경영혁신과 효율적인 경영은 인력감축과 구조조정으로 성과를 올렸다. 미국 문화에서는 사회 안전망이 튼튼해서 직장을 그만둔 사람들이 이직할 곳이 많다는 배경 때문에 GE의 과감한 인력 감축이 가능했을 것이다.....그러나 현재 한국 사회와 문화적 현실에서 인력감축이 효율 경영의 대표적 수단이 될 수는 없다고 본다. 기업이 사회적 안전망을 늘리도록 위임받은 역할이 있는데 그 책임을 도외시하고 경제적인 성과만 추구한다면, 기업 자체에게는 단기적인 이익이 될지 모르지만 사회 전체를 봐서는 남의 것을 빼앗는 일이 된다. 이건 가치 장조의 경영이 아니다. 그 대신 유한킴벌리는 사람을 통해, 인력 유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새롭고 강력한 효율성에 주목했다.....사람에게 투자하여 사람을 회사의 제일 자산으로 만들면, 그 사람들 각자가 회사에 큰 이익을 안겨준다. 다만 거기에는 사람들이 역량을 키워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기회와 토대를 제공하는 회사의 역할이 전제되어야 한다.<유한킴벌리 문국현 사장>[176]

공부를 안 하는 사회에서는 학연이나 혈연 및 지연이 중요해지고, 그 안에서는 상하관계가 주를 이루게 됩니다. 하지만 전 세계가 수출과 교류를 통해 경쟁하는 글로벌 사회에서 한정된 공간 내에서의 상하 관계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최신 정보와 지식 그리고 경험을 누가 더 많이 갖고 있으며, 누가 가장 앞선 설계와 공정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할 뿐입니다.<문국현 사장>[180]

윤리경영은 기업에 무한한 성장 에너지를 줍니다. 기업의 가치는 물질과 감성을 거쳐 정신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기업에 대한 신뢰가 형성되면 일이 정확하고 빨라질 뿐 아니라, 광고 선전비 등 각종 경비가 격감하여 생산성이 크게 높아집니다. 윤리경영 보다 차별화된 경영전략은 없습니다.<문국현 사장>[186]

< 그라민은행 - 우리는 정반대로 했다 >

그라민은행이 추구하는 목표는 ‘융자를 받은 회원들이 즉각적인 수익을 내도록 하는 것’에 있는 게 아니라, ‘회원들이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을 도와주고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는 것’에 있다.[194]

그라민은행이 민간기업을 모델로 삼건, 비영리단체를 모델로 삼건 간에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 그라민은행의 원동력이 영리 추구에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우리도 수익을 창출하고, 비용을 충당하고, 미래를 개척하고, 계속 발전하기 위한 노력을 한시도 늦춘 적이 없다. 하지만 그라민은행의 가장 커다란 관심사는 융자를 받는 회원들이 즉각적인 수익을 내도록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들 회원 주주들의 장기적인 복지 향상에 있다.....[198]

일반 은행은 ‘돈’을 보고 ‘결과’를 관리하는 데 집중하지만, 그라민은행은 ‘사람’을 보고 그 ‘과정’을 관리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210]

내가 이 사례를 특히 좋아하는 이유는, 모든 기업이 하는 것과 반대로 경영하면서 성공한 기업의 이야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조건과 환경에 따라 얼마나 많은 해결의 묘법을 가질 수 있는지 배운다. 이것이 바로 실험정신이다. 그리고 성공이란 늘 어느 날의 실험이 우리의 기대에 딱 부합할 때 만들어지는 것이다. 성공이 새로운 실험의 결과라는 것을 아는 것, 이 깨달음이 바로 성공한 자들이 터득한 지혜다.[211]

====<<< 2부 코리아니티 인재경영 >>>====

<< 1장 사람을 남겨라 >>

기업의 성공은 부드러운 무형의 가치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미래의 비즈니스 성공에 필수적인 것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의 답은 이제 분명해졌다. 그것은 사람이다. 두뇌와 가슴이다. 의문의 여지가 없다.[218]

아이디어는 오리지널리티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을 가장 잘 활용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든 사람의 것이다. 그 점에서 아이디어는 범세계적이다. 그러나 아이디어의 실천에는 국경이 있다. 이 점에서 아이디어는 또한 국가와 문화의 자식이라고 할 수 있다.[220]

현실에서 통하는 전략이란 단순 명료한 것이다 전체적인 방향을 설정하고 필사적으로 실행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 이론은 흥미롭고 챠트나 그래프는 멋있어 보인다. 그러나 전략을 너무 복잡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전략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데이터와 세세한 사항들을 파고들다 보면 점점 더 알 수 없게 된다. 그것은 전략이 아니다. 고통일 뿐이다. 이는 비생산적인 일이다. 승리하고 싶다면 전략에 대하여 더 적게 생각하고 더 많이 행동해야 한다.<잭 웰치>[222]

조직에서 대부분의 일은 중위권에 속하는 70퍼센트의 사람들이 수행한다. 이 믿음직한 일꾼들은 그렇게 빛을 발하지는 않지만, 열심히 그리고 훌륭하게 직무를 수행한다. 이들은 충분한 배려와 관심만 받으면 빛을 발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중위권 70퍼센트의 사람들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암흑의 상태에서 일하게 해서는 안 된다.....이들은 아주 중요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기업의 심장이자 영혼, 즉 핵심부다. 인력의 다수를 차지하는 그들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잭 웰치>[223]

한국인 다수의 마음, 다수의 정신적 자세, 이것이 코리아니티다.[223]

코리아니티란 본질적으로 한국인 다수가 가지고 있는 내면적 일관성이다. 그러나 그것은 고착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환경과 조건에 따라 모양을 바꿀 수 있는 코리아니티의 창조가 중요하다.[224]

코리아니티 경영은 하나의 실험이다. 그리고 한국의 경영현장에서 반드시 실험되어야 할 일이다.[224]

‘장사는 이문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라는 말은 참 멋있다.[225]

GE는 여러분의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다. GE에서 희생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GE를 떠나라. GE는 여러분의 성장과 번영을 원한다. GE에서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만 이곳에 남아라.<잭 웰치>[228]

자부심은 자신이 하고 싶고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부여받았을 때 최고로 배양된다.[231]

재능(talent)은 지식(knowledge)이나 기술(skill)과는 다른 개념이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기술이나 지식은 가르칠 수 있지만 재능은 가르칠 수 없다는 점이다.....재능에 기반을 둔 인력채용과 육성은 그렇게 쉽지 않다. 재능은 눈에 잘 보이지 않아 파악하기 어려우며, 심지어 본인도 잘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때문에 적합한 사람을 뽑기 위해 노력하는 기업일수록 채용 절차가 엄격하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232]

훌륭한 기업은 자신의 가치에 부합하는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채용하고, 가치를 강화하고, 직원들이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과 적극적 지원을 제공한다는 명료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233]

나는 유능함이란 어울림이라고 생각한다. 일과 자신과의 어울림, 회사의 기대와 자신의 기대 사이의 어울림, 세상의 기준과 자신의 기준 사이의 화해 같은 것을 유능함의 기준이라고 말하고 싶다. 따라서 두 사람을 놓고 누가 더 유능한가 하는 질문은 위험하다.....중요한 것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일에 그 사람이 ‘적합한’ 사람인가를 묻는 것이다.[236]

저도 예전에 이 직책을 맡아본 적이 있습니다. 말을 세울 우리를 만드는 일이 가장 어렵습니다. 처음에 굽은 나무를 쓰면, 굽은 나무가 다시 굽은 나무를 요구하기 때문에 곧은 나무를 쓰려야 쓸 수가 없습니다. 이와 반대로 처음에 곧은 나무를 쓰면, 이 곧은 나무가 다시 곧은 나무를 원하기 때문에 굽은 나무를 쓰려야 쓸 수가 없는 것입니다.<<관자>>에서 <관중>의 대답.[238]

사람에 대한 인상은 단 2초 만에 결정된다![241]

목적과 성격이 다른 조직이 동일한 채용 및 직원 계발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 놀라곤 한다. 성공은 유능함을 떠나서는 얻어질 수 없다.[245]

<<맹자>> 에‘불영과불행(不盈科不行)’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물이 흐르다 구덩이를 만나면 그 ‘구덩이를 다 채운 다음에야 앞으로 흘러가는 것’을 뜻한다. 지름길에 연연하지 않고 정도를 걸으며 우직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고집이 바로 훌륭한 전문가에 이르는 비결이다.[246]

<<주역>>은 점을 치는 책이다. 그러나 점괘를 해석할 때는 해석자의 세계관과 가치관이 들어간다. 따라서 주역은 단순히 길흉을 점치는 책이 아니라 동양 문화권의 사람들이 자연과 사회를 바라보는, 오래도록 누적된 인식의 틀이다.[248]

조직운영의 요체는 ‘개인을 훈련시키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훈련시켜 하나로 만드는 것’이다.[249]

인재의 기준은 위대한 조직의 창조를 지향하는 구체적인 비전에서 비롯되어야 하며, 직원의 채용과 계발 그리고 함께 일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열정을 불어넣은 활력화가 경영활동의 근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회사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적합한 직원’이며, 가장 큰 손실은 ‘부적합한 직원’이기 때문이다.[250]

미래의 비즈니스 성공에 필수적인 것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의 답은 이제 분명해졌다. 그것은 사람이다. 두뇌와 가슴이다.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제 우리는 당장의 재무적 성과를 내다보며 조직을 경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기업조직의 구조와 운영 원칙은 ‘앞으로 5년, 10년, 15년 뒤의 사업 목표를 겨냥하여 설계’되어야 한다.[251]

<< 2장 직원을 기업가로 만들어라 >>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직무기술서가 설정한 좁은 영역에서 자신이 담당한 일을 하며 갇혀 지낸다. 업무가 갇히면 정신이 갇히고, 일상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고 동일화된다. 이것은 사람을 서서히 고사시키는 방식이다. 특히 한국인들처럼 역동적인 문화적 DNA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에게는 적절한 관리의 방식이 아니다. 더욱이 지금처럼 다양한 요구를 가진 고객들이 있고 경쟁이 치열한 시장 속에서 ‘고체와 같이 딱딱하고 정형화된’ 관리는 대단히 위험하다.[256]

사우스웨스트는 규정집을 없앰으로써 직원들이 규정에 매이지 않고 과감하게 행동할 수 있게 했다.[257]

코리아니티의 가장 큰 특징이 ‘우리’라는 공동체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서도 ‘나’를 실현해나가는 여정이며, 좀 거칠어 보일 만큼 강한 생명력과 역동성이다.[258]

인류 역사에서 르네상스와 백가쟁명시대처럼 역동적인 열정으로 가득 찬 시기는 없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다시 그 역동성과 자유로운 상상력을 요구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273]

앞으로 관리자는 일에 매일 것이 아니라 사람에 매여야 한다. 비즈니스는 결국 고객이다. 고객에게 부가가치를 만들어 주는 것은 직원이고, 행복한 직원은 행복한 고객을 만든다.[275]

피터 드러커는 “어떤 조직도 완전한 조직은 아니며, 그 조직은 결국 모든 것을 파괴한다는 점을 전제하라”고 강조한다. 훌륭한 경영자는 솔선해서 기존 조직을 끊임없이 해체해가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 대목에서 가장 그럴듯한 구호는 도요타의 ‘타도! 도요타’이다.[291]

<< 3장 상생과 수평의 기업문화 >>

< 일과 개인생활의 조화 >

한국인들이 조화와 균형이라고 부르는 것들을 서양인들은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경향이 있다.[293]

“비전 기업은 역설을 쉽게 받아들인다. 상반된 2가지의 힘이나 사상은 동시에 존재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세상은 ‘A and B'가 아니라 ’A or B'라는 흑백 논리를 신봉하도록 강요하였다.”.....비저 기업들은 다음과 같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 실질적 이윤을 추구하면서 이윤 추구를 초월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 격심한 변화를 겪으면서도 변함없는 핵심이념을 고수한다.
- 활기찬 변화와 개혁을 추구하지만 핵심이념에 대한 보수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 점진적이고 진화적인 개선과 동시에 거칠고 무모한 목표를 추구한다.
- 운영의 자치권을 허용하지만 기업이념은 철저히 통제한다.
- 변하고 적응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극도로 폐쇄적인 기업문화를 가지고 있다.
- 단기업적에 집착하지만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투자한다.
- 빈틈없는 일상업무를 수행하면서 철학적 비전을 가진 미래 지향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 환경에 순응하는 조직이면서 기업의 핵심이념에 일치하는 조직이다. [297]

개인생활은 조직의 사기와 생산성 그리고 성과에 영향을 주는 대단히 중요한 변수이다. 이제는 기업이 개인의 삶을 배려하는 조직으로 변모하기 위해 모색과 실험을 해야 할 때다.[300]

< 종신고용과 성과주의 >

구조조정(restructuring)이라는 서구의 경영기법은 사업 영역의 개편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다. 한국에서 이 말은 인원감축의 의미를 강하게 풍기고, 일본에서는 기업의 체질 개선이라는 의미가 강하다.[305]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 라는 마쓰시타의 말은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자신의 방식을 실천하는 그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이 되었다. 일본인들은 그를 ‘경영의 신’으로 추앙한다.[307]

정보와 지식이 결합한 복잡화 시대에는 이것저것 두루 알면서도 그 가운데 한 가지 일에는 전문가이며, 동시에 다른 한두 가지 분야에도 제법 식견이 있는 준전문가 수준의 멀티테스커들이 각광을 받을 수 밖에 없다.[310]

우리 시대의 새로운 인재상은 장르를 넘나드는 관심을 가진 전문가로서의 멀티테스커, 다양한 문화적 특성을 수용할 수 있는 다문화주의자 또는 다문화경험자, 기존의 직업에 기질과 재능을 결합해 자신만의 특화된 틈새를 만들어낸 사람들이다. 지금은 전문분야와 전문 분야를 융합하고, 직업과 자신의 내면적 역량을 결합하여 자신만의 차별성을 만들어 낸 사람들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312]

이런 새로운 인재들은 공통적인 특성을 가진다. 첫째, 자신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둘째, 취미를 직업화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셋째, 매일 학습한다는 점이다. 넷째, 자신의 욕망과 기질 그리고 경험을 연결함으로써 새로운 직업적 변종을 만들어내는 데 능하다는 점이다.[312]

주변부에 속한 지극히 평범한 개인들이라도 자신의 강점을 재발견하고 계발한다면 세상의 중심으로 진입할 수 있는 시대가 바로 지금이다.[313]

어제의 나에 갇히지 말자. ‘한국을 넘어선 한국인’이 되자. 연결하고 특화하여 새로운 직업적 변종을 만들자. 이것이 스스로를 고용하는 원칙이며, 자신의 강점을 활용하는 최상의 전략이다.[313]

중요한 것은 ‘희생당했다고 여기고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고통을 호소할 수 있는 적절한 채널이 마련되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잘 돌볼 수 있는 조정장치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공존하고 함께 번영할 수 있다는 점이다.[323]

인간의 역사는 길고도 긴 사냥 단계에서 아주 깊숙하게 뿌리를 내린 개인적 본능과 최근의 정착생활을 통해 생겨났지만, 아직 충분히 발전하지 못한 사회적 본능 사이의 갈등이다. 그리고 우리는 매일 이 갈등 속에서 살고 있다.[334]

외양상의 덕이 실제로 악덕이 되고, 외양상의 악이 또한 미덕이 될 수 있다.[335]

제레미 리프킨은 자본주의의 성공에 필수적인 요소가 바로 사회적 신뢰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특이하게도 사회적 신뢰는 비영리적 활동들에 의해 축적된다.[342]

게임의 룰이 분명하고 단호히 지켜져야 좋은 실력을 갖춘 선수들이 명예로운 승자가 될 수 있다.[347]

선비정신은 청빈과 기개라는 한국적 윤리성의 정신적 뿌리이다. 기억하자. 선비들은 명분과 실리를 조화시키기 위해 애썼다. 그렇지만 이익이 있을 때는 그 옳고 그름을 따져 불일치가 생기면 언제나 명분을 따랐으며, 그것이 선비로서 살아남을 수 있는 법도라고 여겼다. 훌륭한 경영자가 된다는 것도 이와 같다.[352]

히딩크의 표현을 빌리면 “그라운드에는 선후배가 없다. 다만 선수가 있을 뿐이다.”[356]

이 십자형 관계를 잘 나타내는 상징적 개념이 바로 ‘스승과 친구’의 융합이다. 중국의 학자 이타오는 이를 이렇게 표현했다.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스승이 아니고, 스승이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친구가 아니다.”[358]

우리가 변해야 할 방향은 수직적 일방성에 쌍방향의 가치 교류를 만들어냄으로써 수평적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369]

누군가를 칭찬할 때 성과를 칭찬해서는 안 된다. 성과를 칭찬받는다면 그 사람은 인형으로 쉽게 전락하고 만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피와 열정과 영혼을 얻어내는 것이다. 그것은 성과를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존재를 인정해 줄 때 비로소 가능하다. 존재를 인정받을 때, 우리는 열정을 가진 창조자가 된다. 또한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받을 때, 우리는 비로소 자존심과 명예를 보존할 수 있다.작은 일에도 수없이 감탄하고 고마워하면서도, 그를 조종하기 위한 모이와 떡밥이 아닌 그 존재의 든든함에 감사하는 칭찬이 중요하다.[377]

자기만의 애정 표현방식을 찾아내는 것은 살면서 우리가 터득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다. 자신의 매력을 믿고 다른 사람을 향해 마음을 여는 것이 마음을 전하는 격려의 기본자세라고 할 수 있다.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381]

세상이 만들어 주는 대로 살지 않는 사람들, 스스로 만들어가는 세상에 참여한 사람들, 그 주역이 바로 한때 평범했던 우리라는 인식의 전환이 중요하다. 어제의 나에 갇히지 말자. ‘한국을 넘어선 한국인’이 되자.[387]

결국 성공의 축은 2가지이다. 하나는 세계를 향해 항상 열려 있어야 하며 세계적 수준의 배움에 늘 배고파해야 한다는 점이다. 곧 ‘세계적 보편성의 한국화’가 하나의 날개이다.
또 다른 성공의 축은 그 반대편에 있다. ‘우리’라고 하는 수수께끼를 풀어냄으로써 자신이 가진 차별적 강점을 활용하는 것이다. 우리를 개조하고 성형하여 그들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개성을 살리고 특화하여 우리의 매력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곧 ‘한국적 특수성의 보편화’가 또 하나의 날개이다.
이 두 개의 날개를 통해 한국은 세계적 보편가치로 인정받을 수 있는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것이 지금 코리아니티 경영이 필요한 이유이다.[393]

이제 나는 앞으로 10년간 100명의 연구원들과 함께 ‘한국과 세계’라는 주제를 가지고 그 어울림의 방식을 다루어 보려 한다. 이것은 10년간 신나게 놀아볼만한 재미있는 놀이이며 의미 있는 과제가 될 것이다. 이 책은 그 첫해의 수확이다.[393]




3. ‘내가 저자라면’ -

‘인문학과 경영학의 만남’을 시도한다는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의 주제는 매우 관심 끌만한 내용이다. 하지만 저자가 이 책에서 밝히고 있듯이 정말 쓰기 쉽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책에서 나온 여러 나라의 문화적 특성을 정의하는 것만으로도 지난한 과제인데, 거기다가 기업경영 인재경영과의 접목을 시도하고, 결국은 우리의 문화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21세기 우리나라의 발전방향을 제시하는 일. 그야말로 ‘꿈’ 같은 일이다. 하지만 누구도 쉽게 생각하지 못하는 이런 시도를 했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1부 코리아니티 문화경영’의 ‘1장 왜 코리아니티인가?’ 에서는 성공한 기업이나 국가가 가지는 문화적 차별성과 문화적으로 너무나 다른 동양과 서양을 비교한다. 그리고 경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들에 대한 주요 문화권의 문화적 패러다임을 비교함으로써 코리아니티의 차별적 위치를 이해하도록 시도한다.

‘2장 코리아니티 핵심 5가지’에서는 한국의 변하지 않는 문화적 특성을 5가지로 분류하여 코리아니티를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21세기의 키워드(세계화, 기술, 지적자본 등) 와 코리아니티의 공유점을 스케치한다. ‘3장 ‘나의 길’을 간 성공 기업들’에서는 캐논 등 5개 기업의 성공사례를 보여준다.

2부 코리아니티 인재경영에서는 결국 우리나라가 앞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인재 양성, 1인 기업가 만들기, 일과 개인생활과의 조화 등 사람이 일을 하면서 잘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한다.


좋았던 점(배울점)

책장을 넘기자 첫 페이지 하단에 조그만 한 글씨로 코리아니티의 정의가 씌여있다. 독자의 관심을 유발하고 본문을 읽기 시작하기 전에 기본 정의를 한번 생각해보게 하려는 의도인 것 같은데... 좋은 생각. 참신한 아이디어!

목차의 글씨 크기가 여러 형태로 다르다. 보통은 차례(또는 목차)라고 큰 글씨로 쓰고 그다음 대제목-중제목-소제목 순으로 글씨 크기가 작아지기 마련인데, 이 책에서는 그 흔한 틀을 따르지 않았다. 저자의 의도인지, 책 도안 담당자의 생각인지 모르겠는데 변화를 주는 것이 재미나다는 생각이 든다.

남들이 생각 못하는 이와 같은 책을 쓰겠다는 엄청난 도전을 하는 저자의 자세가 부럽다. 배울만한 점이다. 나는 이제껏 한권도 책을 써보지 않았지만, 나중에 어느 정도 내공이 쌓여도 이런 책을 혼자 쓰려는 엄두는 나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정말 내가 이 같은 책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들면, 나는 T/F 팀을 구성하겠다. 한국학, 사회학, 미래산업 관련(정보공학, 생명공학, 환경공학), 경영학(인사, 조직, 전략기획), 심리학 등 10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 역할 분담을 해서 작업을 진행하면 지금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책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아쉬웠던 점

유한킴벌리 등 5개사의 성공사례가 앞장에서 설명한 코리아니티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던 것 같다. 또한 코리아니티를 보다 확실하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외국사례보다 코리아니티의 특성에 따라 성공한 한국기업 사례를 좀 더 실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376p]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는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는 거야“ <러브스토리>
이 말의 원본이 "Love means n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 아닌가? ‘고맙다’를 ‘미안하다’로 바꿔야 하는 것 아닌지... 이게 단순한 책 편집 과정 중 실수인지, 아니면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지 모르겠다.


특히 감동적이었던 장절

우리 시대의 새로운 인재상은 장르를 넘나드는 관심을 가진 전문가로서의 멀티테스커, 다양한 문화적 특성을 수용할 수 있는 다문화주의자 또는 다문화경험자, 기존의 직업에 기질과 재능을 결합해 자신만의 특화된 틈새를 만들어낸 사람들이다. 지금은 전문 분야와 전문 분야를 융합하고, 직업과 자신의 내면적 역량을 결합하여 자신만의 차별성을 만들어 낸 사람들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312]

이런 새로운 인재들은 공통적인 특성을 가진다. 첫째, 자신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둘째, 취미를 직업화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셋째, 매일 학습한다는 점이다. 넷째, 자신의 욕망과 기질 그리고 경험을 연결함으로써 새로운 직업적 변종을 만들어내는 데 능하다는 점이다.[312]

누군가를 칭찬할 때 성과를 칭찬해서는 안 된다. 성과를 칭찬받는다면 그 사람은 인형으로 쉽게 전락하고 만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피와 열정과 영혼을 얻어내는 것이다. 그것은 성과를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존재를 인정해 줄 때 비로소 가능하다. 존재를 인정받을 때, 우리는 열정을 가진 창조자가 된다. 또한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받을 때, 우리는 비로소 자존심과 명예를 보존할 수 있다.작은 일에도 수없이 감탄하고 고마워하면서도, 그를 조종하기 위한 모이와 떡밥이 아닌 그 존재의 든든함에 감사하는 칭찬이 중요하다.[377]

세상이 만들어 주는 대로 살지 않는 사람들, 스스로 만들어가는 세상에 참여한 사람들, 그 주역이 바로 한때 평범했던 우리라는 인식의 전환이 중요하다. 어제의 나에 갇히지 말자. ‘한국을 넘어선 한국인’이 되자.[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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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3.17 15:02:17 *.36.210.80
<어제의 나에 갇히지 말자. ‘한국을 넘어선 한국인’이 되자.[387]>

멋지죠. 즐거운 놀이가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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