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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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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23일 19시 01분 등록
1.저자소개

시몬 드 보부아르는 1908년 1월 9일에 파리 라스파유 거리의 한 부르주아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조르주 베르트랑 드 보부아르는 변호사였다. 보부아르는 이런 가정적인 분위기에 사춘기 시절부터 심한 저항감을 느꼈고, 이런 체험은 나중에 그녀의 작품 곳곳에 생생하게 재현된다.1929년 대학 졸업의 해에 자신의 자유를 잃지 않기 위해 사르트르와 계약 결혼에 들어간다. 1931년 보부아르는 마르세유에, 사르트르는 르 아브르의 철학 교사로 임시가 정해졌다. 1933년 보부아르는 루앙으로 옮겨 37년까지 있다가 파리로 돌아와 중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러던 그녀는 교육계를 떠나 ‘글쓰기에 전념한다. 그녀는 35세라는 <초대받은 여자>가 갈리마르사에서 출판되어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반영하는 작품을 집필함으로써 그녀는 자신을 재창조하고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하고자 했다.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의 존재를 책임지고자 했으며 자신의 일상적인 현실을 담은 다수의 작품을 발표했다.

또한 그녀는 노년의 책에도 여러 번 등장하듯이 사르트르의 삶, 사상과도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전쟁이 끝나고 사르트르, 메를로 퐁티, 레몽 아롱, 장 폴랑 등과 함께 <현대>지를 창간했다. 보부아르는 사르트르의 한 팔이 되어 실존주의 문학 운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녀가 실존주의에 끊임없이 부여하고자 했던 것은 ‘윤리성’이다 그녀는 “무엇보다도, 특히 자유 그 자체를 원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 자유는 “책임이라는 윤리속에서 항상 경계 태세를 갖추고 있는 자유”이어야 함을 강조한다.
노년에서도 그녀는 이익보다는 자유를 선호한다고 밝히고 있다. 독자들은 자신에게 낙관론을 무엇보다도 여자의 운명에 관한 낙관론을 요구하지만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굳어진 이미지에 본인 자신을 양도하기를 거부한다고 밝혔다.

보부아르는 젊은이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젊은이 안에서 이 인류가 지속되기를 바라며 그가 좀더 나은 시대를 맞기를 원한다고 이와 같은 희망이 없다면 자신이 향해가고 있는 이 늙음을 견딜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며 그녀에게 건강한 100년이란 시간이 주어진다면 그녀는 새로운 계획들 속에 뛰어들 것이고 미지의 영역을 정복하러 떠나겠다고 한다. 돌이킬 수 없이 자신의 개별성 속에 갇히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사는 동안 엄청난 저술활동에 평생을 바치고 “인간의 삶의 의미는 결코 확정지어지지 않는것이다. 그것은 끊임없이 정복되어여 할 무엇이다”라고 말한 그녀가 아직 우리 곁에 있다면 어느 미지의 영역을 정복하여 우리 삶의 변화의 의지를 불러 일으켰을는지 궁금하다.


2.내마음 속에 들어온 글귀

“오 불행이로다. 약하고 무지한 인간들은 젊음만이 가질 수 있는 자만심에 취하여 늙음을 보지 못하는 구나. 어서 짐으로 돌아가자. 놀이며 즐거움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지금의 내 안에 이미 미래의 노인이 살고 있도다.” 붓다는 한 노인을 통해 자신의 운명을 보았다. 인간을 구원하기 의하여 태어난 붓다는 인간 조건 전부를 걸머지기로 결심했던것이다. 그가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은 바로 이것이다 7

나는 내가 노년의 문턱에 서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이러한 인정은, 늙음이 모든 여자들을 복병처럼 노리고 있으며, 이미 많은 여자들이 늙음에 발목에 잡혀 있다고 말하는 셈이다. 8

모든 문학작품에서는 노년에 관한 것들은 찾아 볼수가 없다. ‘노인들은 삭제해버리시오’ 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내가 이 책을 쓰는 이유는 바로 이런 침묵의 음모를 깨버리기 위해서다. 8

팽창과 풍요의 여러 신화 뒤에 몸을 숨기는 그 무사태평한 의식은 노인들을 천민 계급으로 취급한다. 노인들은 가난과 고독, 불구, 그리고 절망의 형을 언도받았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노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게 하고자 한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상황은 어던 것이며, 그들이 어떻게 그 상황을 살아나가는가를 묘사하고자 한다. 즉 노인들이 실제로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느끼는가를 말하고자 한다. 9

노인들에 대하여 사회가 취하는 태도는 하나같이 이중적이다. …사춘기의 위기는 청소년과 성인 사이에 하나의 경계선을 그을 수 있게 해준다. 18세에서 21세의 젊은이들은 성인 세계에 받아들여 진다. 이러한 인간으로서의 지위향상에는 거의 언제나 통과의식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노년기가 시작되는 순간은 명확히 정의되지 않고, 시대와 장소에 다라 변화가 있다. 또한 이 새로운 지위의 확립을 기리는 ‘통과의식’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9

“청춘기는 꽤 오랫동안 지속된다. 인생은 바로 이런 청소년들을 노인들로 만든다” 라고 프루스트는 지적했다. 노인들은 청년의 연장이며, 그렇기에 예전에 그가 가졌던 인간의 자질과 결점들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바로 이 점을 여론은 모르는 체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독 같은 욕망, 감정, 요구들을 표명하는 노인은 사람들의 빈축을 사게 된다. 노인들의 사랑과 질투는 추하거나 우스꽝스럽고, 성행위는 혐오스러우며, 폭력은 가소로운 것으로 여겨진다. 노인들은 모든 미덕의 본보기를 보여주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사람들은 그들에게 평정함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들이 평정함을 지니고 있다고 단정한다. 이러한 사고방식 때문에 노인들의 불행해 무관심해지는 것이다. 11

늙는다는 것보다 더 자명하게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없다. 그러나 도한 그것보다 더 에상 외인 것도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마치 자기는 절대로 늙지 않을 것처럼 행동한다. 12

그날이 오면, 그보다 앞서 그날이 가까이 오면, 이미 사란들은 보통 죽는것보다 늙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긴 시간을 앞서서 거리를 두고 명철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 바로 늙는다는 현실이 다. 노년기란 우리의 직접적인 가능성들 중의 일부이며, 어느 나이에고 노년은 우리를 위협하고 잇다. 그럴때면 우리는 종종 그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우리가 어느 한 순산 늙은이가 되어버리는 것은 아니다. 젊거나 혹은 한창나이 일 때 우리는 붓다처럼, 우리의 내면에 이미 이래의 노인이 살고 있다. 13

남비크와라 인디언은 ‘젊고 아름답다’는 뜻을 한 단어로 표현하며, 또 ‘늘고 추하다’는 뜻도 한 단어로 표현한다고 한다.13

타인의 노년은 앎의 대상이다. 반면 자기 자신의 노년은 자기의 상태에 대한 산 경험과 관련있는 법이다. 이 책의 제 1부에서 나는 첫번째 관점을 채택하여 생물학, 임류학, 역사, 사회학이 노년에 대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바를 검토할 것이다. 제 2부에서는 인간이 나이를 많이 먹게 되면 자기의 육체와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는가. 그리고 시간과 타인과의 어떤 관계를 맺는가. 또 어떤 식으로 그것을 내면화하는가를 기술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19

노년은 정태적 (靜態的)인 사실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과정의 결말이며 연장이다. 19

현대 해부학의 창시자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였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 하다. 그러나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는 화가였으므로 인체를 표현하는 데 열렬한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육체를 정확히 알고 싶었던 것이다. “인체에 대한 실제 지식을 충분히 얻기 위하여 나는 인체를 10구이상 해부햇다.” 라고 그는 글로 밝힌적 잇다. 사실인즉 그는 말년에 30구가 넘는 시체를 해부했다.30

젊음과 청춘기를 대상으로 한 전문 서적들은 많이 나온 반면, 노년기 그 자체를 위한 연구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대부분 금기였기 때문이다. 노년은 유쾌하지 않은 문제였던 것이다. 35

미국에서는 1900년에서 1930년 사이에 노인인구가 두 배로 불어났으며 1930년에서 1950년 사이에 다시 두 배로 늘어났다. 산업화가 노인 인구의 도시 집중을 초래했으며, 그 결과 심각한 문제들이 생겨났다. 36

노화나 죽음은 성장과 성숙의 확장된 프로그램이 한계에 도달하게 될 때 일어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노화란 기계의 고장이 아니란 말이다. 릴케의 말처럼 “마치 과일이 그씨를 품고 있듯이 우리들 각자가 우리 내면에 품고 있는 죽음과 같이, 모든 신체 조직은 애초부터 그 완성의 피할 수 없는 경과로서 노화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38
미국이 노인병 학자 하윌은 노소는 “사양길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똑 같은 속도로 내려가지 않는다. 우리는 연속적이고 불규칙적인 보행으로 사양길을 내려가며,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빨리 굴러 떨어진다. 45

보통 노인은 신체적으로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잇다. 신체적 건강은 정신이 낙오될 때 망가진다. 반대로 생리적인 삶이 심각하게 저하되면 지적 능력의 장애가 온다. 어쨌든 지적 능력은 신체적인 변모들로 인해 손상된다. 47

모든 사람의 기억력은 고령이 되면 감퇴된다. 그러나 손일을 했던 사람들보다 지적인 일을 했던 사람들이 덜 감퇴하며, 전직 막일꾼들 보다는 기능공들이 덜 감퇴하고, 퇴직한 사람들보다는 아직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덜 감퇴한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들은 잘 아는 사물들은 쉽게 재조직하지만 변화에는 저항한다.
노인은 예전에 얻은 습관들의 노예인 것이다. 그들에게는 유연성이 부족하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일단 세트를 채택하고 나면 그것을 버리기가 매우 힘들다. 50

아무리 장수한다 해도 인간은 노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노쇠란 불가항력의 것이며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51

세련되지 못한 것일지라도 일종의 문화란 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인간집단이란 없다. 인간이 스스로 만든 도구를 사용하여 하는 활동이 노동이다. 이러한 노동에는 사회 조직의 기원이 있다. 54

노인은 이미 사자(死)들의 세계에 한 발을 들여놓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승과 저승 간의 중개자 역을 맡게 된다. 그렇게 때문에 그에게는 무서운 힘이 주어지기도 한다. 61

그들이 (몽골인) 부자를 존경하는 것은 부유하게 만들어 주는 능숙한기술 대문이지 가지고 있는 재산 때문은 아니다. 83

저승에 갈 나이가 된 사람은 에 세상과 저 세상 사이의 가장 좋은 중개자가 된다. 종교생활을 이끌어 가는 사람은 노인들이며 그 종교 생활은 모든 사회적 생활을 포함한다. 86

몇몇 집단들은 유목민이나 무리들, 혹은 구조화 되지 않은 그룹들로 구성도어 있다. 그러나 씨족이나 부족들이 어떤 지역에 정착한다는 것은 농경사회로의 변화를 의미한다. 107

유목민은 끊임없는 이동 대문에 노인들은 보호할 수 없다. 노인들은 집단을 따라갈 수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을 버리고 가는 것이다. 농경사회에서는 상대적 풍요로움이 노인들을 먹여 살리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경제적 상황이 전적으로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보통 그 사회가 만들어 주는 특권이다. 108

한 아이가 어던 대우를 받느냐 하는 것이 장차 그의 인격 발달에 얼마나 큰 중요성을 지니는지 우리는 안다. 음식, 보호, 애정이 충분하지 않은 아이는 원한과 공포,그리고 심지어 증오 속에서 자란다. 이런 아이가 성인이 되면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공격적이 된다. 그는 부모가 늙어 무능해지고 자활 할 수 없게 되면 부모를 소홀히 대할 것이다. 반대로 부모들이 잘 먹이고 애지중지 기른 자식들은 행복하고 개방적이며 친절한 사람이 되고, 또한 애타심도 발달한다.109

행복하게 자란 자식들이 성인이 되어 늙은 부모에게 잔인하게 대하는 경우는 단 한 건밖에 발견하지 못한다. 그것은 오지브와의 경우다. 어린아이들을 잘 보살피지 않는 야쿠트족, 아이누족은 노인들을 거칠고 소홀히 다루는 반면, 거의 같은 생활 조건을 갖고 있지만 자식을 왕처럼 키우며 살고 있는 야마니족, 알류트인들은 노인들을 존경한다. 그러나 노인들은 흔히 악순환의 희생양이 된다. 즉 너무나 궁핍해지면 어른들은 자식들을 잘 먹일 수 없게 되고 노인들을 소홀히 대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또한 효심은 관습과 종교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110

장수는 때때로 감탄을 불러 일으킨다. 장수는 일생을 현명하게 영위할 줄 알았다는 것을 증명하며, 그래서 하나의 모범이 되는 것이다. 자연적인 또는 초자연적인 모든 시련들에 저항하고 살아남은 것을 보면 기이한 마술의 덕을 타고났음을 틀림없다. 113

아이들에게는 미래의 희망이 있다. 과거에 닻을 내린 노인은 지식의 보유자이다. 노인은 조상에게 드리는 예배를 통해서건, 여자들에게서 다시 태어나기 위해 그들을 수태시킴으로써이건 자신의 생존을 보장해 줄 후계자를 만들어야 한다. 116

사회 안에서 노인은 열등한 인간이며 동시에 초인인것이다. 그는 노쇠하고 쓸모없는 인간이다. 그러나 또한 그는 중개인이고 마법사이며 제사장이기도 하다. 인간조건이하이기도 하고 그 이상이기도 하며, 흔히 양쪽에 다 속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노인들의 지위는 ‘획득되지’않고 ‘부여된다’는 것이다. 116

노인들로 인해 제기되는 문제들에 관해 원시인들이 채택한 실제적인 해결책은 아주 다양하다. 즉 그들을 죽이거나 굶어 죽도록 내버려두거나, 최소한의 생명만을 유지하도록 하거나, 안락한 종말을 맞도록 해 주거나, 혹은 그들을 존경하거나 혹은 극진하게 대접한다. 우리는 소위 문명화된 국민들도 이와 똑 같은 방식을 적용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단지 공공연한 살해만이 금지되어 있을 뿐이다. 118
노년이라는 단어에는 두 가지 아주 다른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첫째, 노년이란 어떤 사회적 범주를 가리키며, 그 범주는 상황에 따라 다소 가치가 인정된다. 둘째, 노년은 각 개인의 특이한 운명, 즉 자기 자신의 운명을 가리킨다. 119

인간의 모험 속에서 여성은 한 번도 주체인 적이 없었다. 그들은 구실이고 원동력이었다. 여성의 조건은 변덕스러운, 그러나 의미있는 곡선을 그리며 발전해왔다. 사회적 범주로서 노인은 한 번도 이 세상의 흐름에 개입하지 않았다. 노인은 활동 능력이 있는 한 그 집단에 통합되어 존재하기 때문에 그 존재력을 상실하게 되면 그때서야 ‘딴사람’으로 보이게 된다. 그때부터 그는 여자보다 훨씬 더 근본적으로 순수한 물체가 되는 것이다. 120

노인들의 문제는 엄밀히 말해서 활동하고 있는 성인들의 문제이다. 활동하고 있는 성인들은 자신의 실제적인 이익과 이데올로기적인 이익에 따라, 그들보다 앞서 활동했던 퇴역들에게 합당한 역할을 결정해버린다. 121

원숭이들 사이에는 젊은 수놈이 늙은 수놈에게서 권력을 뺏는다. 그들은 늙은 수놈만을 죽인다. 늙은 암놈들은 죽일 필요가 없다.
역사를 갖고 있는 사회들은 남자들이 지배한다. 여자들 사이에서도 젊은이나 늙은이 사이에 권위를 놓고 다툴 수 있으나 그것은 사생활 영역에서일 뿐이다.122

시인인 프타호테프가 쓴 것 “노인의 종말이란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가 노인은 매일매일 기력이 쇠진해진다. 시력은 약해지고 귀는 들리지 않게 된다. 힘은 쇠퇴하고 심장은 이제 쉴 틈이없다. 입은 날로 침묵을 지켜 말을 하지 않는다. 지적인 능력도 감소되어 어제의 일을 오늘 기억하지 못한다. 뼈마디가 아프고 예전에는 즐겁게 열중하던 일들이 이제는 힘겨울 수 바께 없으며, 맛을 느끼는 감각도 사라진다. 노년은 인간을 괴롭히는 불행 중 최악의 것이다. 코는 막혀서 더 이상 아무 냄새도 맡을 수가 없다. 125

기나긴 원정끝에/이제 재정 능력도 없이 남겨진 우리는/낡은 육신/어린애 같은 기력의/지팡이를 길잡이 삼아 우리는 살아가네/가슴 가득히 젊은 수액이 들끓으나/샘솟자마자 그 수액은 늙어버리는 듯하네/ 전쟁의 신 아레스의 자리는 여기에 없네. 늙은이란 무엇인가?/그의 나뭇잎들은 바싹 말라가고/ 고되고 긴 길을 세 발로 걸어가네/ 대낮의 꾼처럼, 이리저리 헤매네/ 아이스킬로스의 <아가멤논.에 나오는 합창대장의 대사이다. 141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인들로 하여금 이런 말을 하게 한다. “연장자요 조상으로서 우리는 시민들에게 불평을 해야겠소. 당신들은 우리가 세운 공적에 마땅한 보상과 예우를 전혀 해주지 않았소. 우리는 현재 비참한 운명을 어절 수 없이 받아들이고 있소. 당신들은 나이 든 우리를 법정으로 질질 끌고 다니오 144
나이 많은 남자가 성생활을 요구하는 것은 슬픈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에 빠진 노인보다 거 불쌍한 것은 없을 것이다 148

플라톤이 노인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개념은 그 자신의 정치적인 선택들과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 있다. ..그는 사람들과 정치 풍습, 아테네 민주주의 대중 정신을 엄격하게 비난했다. 그는 아테네 민주주의가 무질서하다고 판단했으며, 민주주의의 평등주의를 힐책했다. 평등주의는 개인의 능력을 충분히 존중하지 않았다. 150

플라톤은 노년의 가치를 확립해 놓은 다음 “가장 나이 많은 사람들이 명령하고, 젊은 사람들은 그 말에 복종해야 한다.”라고 결론 짖는다. 151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영혼은 순수한 지성이 아니다. 동물들도 영혼을 하나씩 가지고 있으며, 영혼은 육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인간은 영혼과 육체의 결합에 의해서만 존재한다. 영혼은 육체의 형태이며, 육체에 감염되는 병들은 그 인간 전체에 렬향을 미친다. 노년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육체가 온전히 보존되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50세까지 발전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정도 나이에 달해야만 ‘프레노시스’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프레노시스란 적당하게 행동할 수 있게 하는 신중한 지혜로, 체험되는 것이지 추상적인 것이 아니어서 전달이 불가능한 지식이며, 경험을 쌓으면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 후에 오는 육체적 쇠퇴는 그 사람 전체의 쇠퇴를 초래한다. 152

아리스토텔레스는 젊음을 더할 수 없이 밝고 즐거운 빛깔로 그려 놓는다. 젊음은 열정적이며 도량이 넓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에개 노년은 모든 면에서 그 반대이다. “노인들은 수많은 세월을 살아왔고, 또 그러는 동안 종종 속으며 살았고, 실수도 저질렀으며, 도 인간사란 태반이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것들이므로 그들은 아무것에도 안심하지 못하고, 뻔히 드러나는데도 모든 일을 마땅히 해야 할 것 뒤에 숨어 위선적으로 행한다”
“그들은 성격이 나쁘다. 만사가 더 나빠지리라고 가정한다는 것은 결국 성격이 나쁘기 때문이다. 노인들은 그들이 품고 있는 불신 때문에 항상 악을 가정한다. 또 그들은 자신의 인생 경험 때문에 불신하고 의심하는 것이다. 153

“노인들은 희망보다 추억의 힘으로 산다.” 그들에게는 욕망은 없고 단지 이해관계를 따지는 이기심밖에 없기 때문이다. 노인들은 바로 이런 이기심에 의해 사는 것이지 아름다움에 의해 사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동정심에는 마음을 활짝 열고 있다.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노인 묘사 속에서 특히 흥미로운 것은 경험이 진보의 요인이 아니라 쇠퇴의 요인이라는 생각이다.153

플루타르코스는 노년을 서글픈 가을에 비유했다. 그는 “가을은 한 해의 운행을 마치는 노년과도 같다. 습기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으나 열기는 사라지거나 약해졋으니 추위와 메마름의 신호인 가을은 육신을 쉽게 병들게 한다. 그러니 영혼이 육신의 이러한 경향을 동정하고 또 정신이 무거워지고 방해를 받아 예지력이 어두워지고 입김으로 온통 흐려진 거울처럼 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일까?라고 쓰고 있다. 155

로마의 역사가 이 사실을 증명해준다. 고대 로마인들은 노인들을 익사시킴으로써 그들을 제거해버렸다고 한다. 있을 법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노인들을 바다로 보낸다고 말했 고 원로원 의원들을 ‘익사할 자’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156

키케로는 “노인은 정신을 계속 사용하고 정신을 풍부하게 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한 자기의 정신을 고스란히 보존한다.고 주장했다. 165

늙어가면서 사람의 가치가 격하된다는 것을 증명하는 정확한 사실이 하나 잇다. 자유인을 살해한 경우 그에 대해 요구되는 금전적인 보상이 그것이다. 6세기에 서고트의 법전은 그 조항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1세 어린이는 금화 60전/15-20세 소년은 금화 150전/20-50세 남자는 금화 300전/50-65세 남자는 금화 100전/15-40세 여자는 금화 250전/ 40-60세 여자는 금화 200전 175

신께서는 인간과 모든 동물에게 30년간의 삶을 정해놓았다. 당나귀나 개, 원숭이는 30년이라는 오랜 삶이 너무 고통스럽게 여겨져 각각 자신의 삶에서 당나귀는 18년, 개는 12년, 원숭이는 10년을 빼달라고 요청하여 허락을 받아냈다. 그런데 인간은 이 동물들보다 현명하지 못햇다. …인간은 장수의 대가로 노쇠라는 비싼 값을 치러야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리하여 인간은 당나귀가 포기한 18년, 개가 포기한 12년, 원숭이가 포기한 10년을 얻어내어 자기 삶을 보탤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인간은 70년의 인생을 갖게 되었다. 처음 30년은 애초부터 정해진 인간의 삶이요, 또 그 30년은 빨리 흘러간다. …그 후에 당나귀의 18년이 오니 이 기간 동안 인간은 무거운 짐에 또 짐을 어깨에 지고 가야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먹을 밀을 방앗간에 가져다주어야 할 사람은 바로 그다…그 다음에는 개의 12년이 온다. 이 기간 내내 인간은 이 구석 저 구석 기어다니며 으르렁 거린다. 왜냐면 물려고 해도 이젠 이가 없기 때문이다. …이 시절이 지나면 이제 그에게 남은 시간이라고는 마지막 원숭이의 10년밖에 없다. 이제 그는 정신이 없고 약간 우스광스러워져, 아이들이 보면 조롱하는 이상한 짓을 한다.” 이렇게 인간의 노년이 동물들의 노년보다 더 길고, 고통스러운 것은 모두 인간의 책임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경솔한 탐욕탓에 그런 선고를 받은 것이다. 190

시간은 흐른다 그러나 시간은 흘러가면서 동시에 창조한다. 고대인들은 시간의 이중적 의미를 강조했다. 올림피아에서 “우리는 시간 속에서 배우고 시간 속에서 자란다”라고 시간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는 것을 듣고서 피타고라스 학파의 파론은 반박하여, 망각이 이루어지는 것은 시간속에서가 아니냐며 시간은 ‘무지의 왕’이라고 말한다. 194

시간은 삶을 공격하는 죽음과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197

시간 또한 낫을 들고 있다. 그러나 낫은 더 이상 풍요의 상징이 아니라, 운명의 여신 파르카이가 생명의 실을 끊듯 삶을 베어버리는 낫이다. 198

단테는 <향연>이라는 작품에서 노년을 첫번재 시각에서 고찰한다. 단테는 인간의 삶을 당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활 모양의 선에 비교하는데, 그 선은 하늘의 정점까지 올라가서는 거기서부터 내려온다. 절정은 35세에 위치한다. 그후 인간은 천천히 기울어 쇠한다. 45세부터 70세까지가 노년의 시기이다. 이후는 고령이다. 현명하기만 하다면 이 마지막 시기는 평화로운 시기이다. 단테는 고령의 노인을 육지를 보고 가만히 돛을 내리며 항구에 서서히 다가가는 항해자에 비유한다. 인간의 진실은 내세에 있으므로 인간은 단지 짧은 여행에 불과했던 이 지상의 삶의 종말을 평온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평화롭게 항구에 닿는 것, 나이 많은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는 바로 이것이어야 한다. 199

노년은 다른 사람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비용에 의해 예언된 한탄처럼 아름다운 젊은 여인을 노리고 잇듯이 우리들 모두를 노리고 있다. 노년은 우리의 운명이다. 비용의 시가 특별히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것은 그 시인이 모년을 우리의 운명으로 자각했기 때문이다. 208
몽테뉴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숨기려고 애쓰는 현실을 그는 지적이고 엄격한 시선으로 직시했다. 몽테뉴는 노년을 멸시하지도 찬양하지도 않는다. 그는 다만 노년의 진실을 밝히고자 한다. 개인적으로 그는 노년이 자신을 풍요롭게 해주었다고 판단하지 않는다. 224

몽테뉴는 노년이 발전하기 보다는 점점 더 퇴보했다고 평가했다. “ 나는 요컨대 나이가 들어가면서 문득 찾아오는 회한이 싫다. 예전에 관능적 쾌락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주는 나이에 감사한다고 말했던 사람에게 반대한다. 나는 나이 때문에 직면하는 무능력을 도저히 간사할 수 없다. 노년에는 욕망도 줄어든다. 그 후에는 깊은 포만감이 우리를 사로잡는다. 그러나 거기에 대한 어떠한 자각도 없다. 슬픔과 나약함은 우리에게 비열하고 불건전한 덕을 야기시킨다. 나는 노년에 강렬하게 그리고 주의깊게 반항한다. 그런데도 지금 나의 이성은 가장 방탕했던 나이에 내가 갖고 잇던 이성과 똑 같은 것 같다. 그만큼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내 이성은 약해지고 악화된 것이다. …이제 내 이성은 자기 자신 이외에 판단하지 못하며, 그 이성에는 더 이상 새로운 명석함이 없음을 안다. 225
늙어가면서 시큼해지고 곰팡내 나지 않는 영혼은 없다. 있어도 매우 드물다. 인간은 동시에 성장과 퇴락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226

몽테뉴의<수상록>은 그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더욱더 풍요롭고 내밀하며 독창적이고 심오해졌다는 점이다. 몽테뉴의 위대함은 그가 능력이 감소했다고 스스로 느끼는 순간 최고에 달한다. 자신에 대한 엄격함이 없었더라면 이런 위대함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자기만족은 능력을 감퇴시킨다. 몽테뉴는 늙어가면서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할 줄 알았던 것이다. 그가 발전했다면 그것은 세상과 자신에 대한 그의 태도가 점점 더 비판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226

노인은 역사를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하며, 아무도 노년의 진실을 연구해보려고조차 않는다. 심지어 사회 속에는 노인의 침묵을 지키라는 명령까지 도사리고 있다. 찬양이건 격하이건 간에 문학은 노인을 상투적으로 표현한다. 문학은 노인을 드러내지 않고 숨긴다. 노인은 청춘기와 성인기를 돋보이게 하는 장치에 불과하다. 즉 노인은 인간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한계로 여겨진다. 노인은 인간 조건의 영역 박에 존재한다. 노인은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하며, 어떤 관찰자도 노인들에게서 자기와 같은 인간의 모습을 인정하지 않는다. 231

세익스피어는 연민의 정이라고는 전혀 없이 노인을 바라본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그는 이러게 말한다. “많은 노인들은 이미 죽을 듯한 모습이다. 그들은 납처럼 창백하고 행동이 둔하고 느리며 활기가 없다” 세익스피어는 노인의 비극을 통해 우리 삶의 모든 끔직한 부조리를 표현했다. 극이 시작될 때 리어는 미친 노인이 아니다. 그러나 리어에게 노년은 그 자체로 광기가 비슷하다. 234

고대 중세는 미친 사람들에게 신성한 성격과 일종의 선견지명을 부여했었다. 광기와 가까이 있는 노년에는 우리가 전통적으로 품고 있는 존경할 만한 현자와 미친 노인, 이 두개의 모순적인 이미지가 결합되기도 했다. 광란에 사로잡혀 신성한 영감을 받은 듯 진실을 깨닫는 리어왕의 경우가 그러하다. 236

영국을 횡폐화시키던 끔직한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서 엘리자베스 여왕은 통치 말기인 1603년경에 ‘빈민을 위한 법’을 제정했다. 그래서 교구의 중개를 통해 정부가 빈민들을 책임지게 되었다. 251

18세기는 시간과 공간을 탐험했다. 세상은 더 이상 문명화된 한 성인이 지배하는 곳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미개인’에게 관심을 가졌다. 루소는 성인들에게 그들도 한대는 아이였다는 것을, 아이들에게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것을 호소햇다.258

18세기에는 개인주의, 새로움, 사상의 풍요함이 촉진되었기 때문에 독창성이 뛰어난 많은 작가들을 만나게 된다. 그 중에 스위프트를 꼽을 수 있다. 그는 노인에 대한 가장 잔혹한 초상화를 그렸다. <걸리버여행기>제 3권을 썼을 때 그는 55세였다. 그의 일생에서 어려운 시기였다. 그러나 그에게서 노년은 분노를 폭발시킬 뿐이었다. 그 자신도 노년이 되었고, 건강도 좋지 않았다. 그의 노년은 실제로 비극적인 육체적, 정신적 쇠약기였다. 그는 그런 노년을 맞으리라는 예감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267

사람들이 원한 것은 불멸의 삶이 아니었다. 죽지 않는 삶 대신 사람들은 이미 말한 바 잇는 청춘의 샘을 꿈꾸었다. 괴테<파우스트>의 주제 중 하나는 회춘이다. 파우스트는 학자였다. 그는 마술사가 되어 지식에 대한 갈망으로 영혼을 상실하게 된다. 괴테의 희곡은 무엇보다도 지식의 비극, 인간의 한계를 그린 비극이다. 그러나 나이의 개념은 극에서 큰 역할을 한다. 이제 그는 학문에서 자만심을 얻지 못하며, 더 이상 자만심에 도취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유한성의 희생자이다. 배우고자하는 욕망이 사라진 이상, 그에게는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는 것이다. 존재가 이유를 되찾기 위해서는 젊음의 특권인 쾌락, 사랑, 도취가 주는 신선함으로 다시 태어나야 할 것이다.
괴테가 파우스트를 집필하기 시작했을 때 25세였고 완성했을 때 그의 나이는 48세였다. 노년의 경험은 부족했지만 그는 인간이 유한성에 대한 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가 항상 뱀처럼 허물을 벗기를 갈망했던 것은 때때로 자신의 모습에서 답답함을 느꼈기 대문이고 자기 모습이 낡아 보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다시 젊어지는 것이 아니라 젊어질 수 있다는 것, 즉 한계에서 벗어나서 결코 막다른 골목에서 끝나지 않는 모험처럼 삶을 다시 사는 것이다. 270

어린아이는 특권을 받은 존재이다. 왜냐하면 어린아이는 관조적인 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는 세상과 거리를 유지하는 심미적인 태도를 갖고 있으며 보편적인 형태로 대상들을 본다. 어린아이는 대상의 본질에 대한 일종의 직감을 가지고 있다. 나중에 우리가 고통스럽게 유년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은 바로 이때문이다. 어린시절은 행복하다. 왜냐하면 어린시절은 표상이지, 의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반대로 젊은이에게는 갈증이 있다. 그는 행복을 사냥한다. 그러나 그는 행복을 찾지 못한다.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 그것은 이미 행복을 상실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283

젊음은 지적으로 풍요로운 때이다. 지식과 창조력은 젊음에 속한다. 지적인 힘은 35세에 절정을 이룬다. …40세부터 사람들은 열정과 절망을 포기하지 못한채 환상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여 우울증에 빠진다. 이전에는 죽음을 알지 못했건만, 이제 그는 인생 여정의 막바지에 기다리고 있는 죽음을 보게 된다. …노년의 정열은 잠잠해지고 뜨거운 피는 식는다. 노인은 ‘모든 것은 핫되도다’라는 전도서의 격언에 감동받는다. 노인은 호두가 아무리 황금색으로 잘 익었다 하더라도 속이 비어있다는 것을 안다. 284

노년은 익은 과일이 풍부한 가을이다. 또 노년은 불모의 겨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추위를 떠올린다. 노년은 아름다운 저녁의 부드러움을 갖고 있다. 하지만 노년의 황혼에 어두운 슬픔이 부여되기도 한다. ‘착한노인’의 모습과 ‘화를 잘 내는 노인’의 모습은 잘 아우러진다. 296

인구의 노화는 자본주의 민주 국가들에게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를 ‘현대 사회의 문제들 중 에베레스트산’이라고 영국 보건성장관인 이안 맥 레오드는 말했다. 312

처음에는 이들이 무엇인가를 경정할 때 젊은이들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리고 그래서 반응하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그러나 대부분이 어려움을 극복한다. 그들에게 유리한 것은 바로 반복이다. 그래서 그들은 공장에서 배운 동작들을 하루 종일 되풀이하고 결국에는 아주 자동적으로 일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이 일상적인 작업에 항상 적절한 것은 아니라는 연구실의 결론들을 너무 믿지는 말아야한다. 324

자본주의 사회는 꼭 죽지 않을만큼의 도움밖에는 주지 않는다. “죽기에는 너무 많고 살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금액”이라고 퇴직 연금자는 서글프게 말한다. 338

가난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자주 아프다. 왜냐하면 비위생적인 누추한 집에 살고, 잘 먹지 못하고, 간신히 따뜻하게 지낼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을 돌볼 수단이 없으며, 병이 점점 심해져 일을 할 수 없게 되어 빈곤은 더욱 악화된다. 가난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그들은 집안에 틀어박혀 모든 사회적 접촉을 피한다. 343

많은 시골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난다. 결과적으로 시골에는 구식 방법으로 땅을 경작하고 자신들의 고립을 고통스러워하는 노인들만이 사는 크고 작은 마을이 생겨나게 된다. 반대로 아버지나 어머니가 자식들 집에 얹혀 사는 경우,노인들은 대우를 못받고 소홀히 취급당할 위험이 있다 어쨌든 노인들은 자신들의 의존성을 괴로워한다. 345

남자의 인생에서 퇴직은 뿌리 깊은 단절을 가져온다. 그것은 과거와의 단절이다. 그는 퇴직으로 인한 휴식이나 여가 시간 같은 어떤 이점과 궁핍과 자격 박탈이라는 심각한 단점을 초래하는 그의 새로운 신분에 적응해야 한다.
헤밍웨이는 이렇게 썼다. ‘어떤 사람에게 있어 최악의 죽음은 자기 삶의 중심, 진실로 그를 현재의 그로 만들어주는 것을 상실하는 것이다. 퇴직이란 말은 모든 말 중에서 가장혐오스운 단어이다. 자발적으로 선택하든, 혹은 운명적으로 강요당해서든 퇴직한다는 것, 우리를 현재의 우리로 만들어주는 일을 포기한다는 것, 그것은 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366

우라는 헤밍웨이가 자살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자신이 글을 계속해서 쓸 수 없다고 느낀 순간 죽음을 선택했다. 우리가 자유롭게 자기 일을 선택햇을 때 그리고 일이 자기 자신의 성취일 대, 일을 그만둔다는 것은 사실 일종의 죽음과도 같다. 일이 일종의 제약이었을 경우 일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해방이다. 그러나 실제로 일에는 거의 언제나 양면성이 있다. 일이란 예속이며 피곤인 동시에 관심의 원천이며 균형의 요인이고 우리를 사회에 통합시켜주는 요인이다. 일의 이러한 모호성은 퇴직에도 반영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퇴직을 긴 휴가로 혹은 폐품처리로 간주할 수 있는 것이다. 367

일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여가 시간이 더 적음에도 불구하고 오락 활동과 사회 활동이 훨씬 풍부했다. 371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할 일을 찾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미국의 조사들에 의하면 노인중에 40%에서 60%는 취미 생활에 전념한다. 50세에서 70세 사이에는 이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취미 생활에 할애한다.378

노년의 비극은 삶을 전달하는 모든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규율과 같다. 제도는 거기 소속되어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그 어떤 삶의 이유도 되지 못한다. 일과 피로가 삶의 부재를 가리고 있다. 그러다가 은퇴와 동시에 그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권태보다 더욱 심각하다. 384

오늘날 우리는 ‘늙고 가난하다’라는 말은 거의 같은 말의 반복임을 알고 있다. 비록 노년이 우리를 정열에서 해방시킨다고 해도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채우지 못하는 무력감에 의해 가난은 더욱 가중될 것이다. 385

나이든 사람이 어떻게 자기 노년을 살아가는지 살피는 문제를 다룸에 있어 어려운 점이 있다면, 그것은 노년에 관해서는 유명론자의 관점도, 관념론자의 관점도 취할 수 없다는 것이다. 노화란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찾아오는 것이다. 어떤 하나의 관념, 혹은 개념 속에 노년 체험의 다양성을 담기란 불가능하다. 390

우리가 접했던 숱한 상투적인 말들은 노년이 역사를 넘어서는 하나의 현실임을 보여준다. 물론 노인들의 처지가 언제 어디서나 동일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양성을 넘어서는 불변적인 요소들이 있기 대문에 몇몇 증언들은 연대를 고려하지 않고서도 서로 비교해볼 수 잇다. 391

우리는 언젠가 죽거나 늙어간다. 그 밖에 다른 대안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괴테가 쓴 바와 같이 “나이란 불시에 우리에게 들이닥친다” ..노년은 운명이다. 노년은 우리 자신의 삶을 휘어잡고 때로는 우리를 당황하게 만든다. 우주의 시간 흐름이 개인에게 변화를 주는 것, 그것이 우리를 당혹시킨다. 398

노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자기 나이를 암시해주는 일체의 것들을 모욕으로 느낀다. 그런 이유로 그들은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자신이 젊다고 여기고 싶어하며, 나이가 들어서라기 보다는 건강이 좋지 않아서 라고 생각하고 싶어한다. …노년이라는 것은 많은 핑계거리가 되며, 여러 제약들도 덜어주므로 노쇠를 부인하기 보다는 자신을 거기에 내맡기고 포기하는 편이 덜 피곤하기 때문이다. 396

우리는 늙어가는 자를 우리 존재 속에 있는 타자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때문에 타인들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나이를 알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우리 나이에 기꺼이 동의하지 못한다. “처음으로 노인이라는 말을 들은 사람은 누구나 소스라치게 놀라기 마련이다.” 399

소년은 남성다음에 환상을 품고 있고 소녀는 장래의 여성다움을 꿈꾼다. 그들은 서로 나누는 이야기나 놀이에서 미래를 예측하여 말한다. 반대로 성인은 노년을 거세에 대한 환상과 연관시켜 생각한다. 정신분석학자 마르탱 그로티앙이 강조하듯이 우리의 무의식은 노년을 모르며, 젊음은 영원할 것이라는 환상을 품고 있다. 그 환상이 깨질 때 당사자들에게는 병적인 나르시즘이 생기고 이것은 또다시 우울증적 정신 이상을 낳는다. 406

나이든 화가들의 자화상은 흥미롭게 관찰할만하다. 자기 얼굴의 그림을 통해 그들은 결산의 순간에 그들을 맺고 있는 자신의 생활과 세계와의 관계를 드러낸다. 418

모네는 나이든 후 시력이 약해져 색깔들을 정확하게 구별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그는 결코 그림그리기를 중단하지 않았다. 그는 기억력으로 지각 능력의 쇠퇴를 보완했다. 곧 그는 원래의 시력을 회복했고 고령의 몸으로 가장 놀랄만한 걸작품들을 그려냈다. 그는 자기 작품의 가치에 대해 회의를 품기도 햇었지만, 그 문제는 이차적인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임을 그린다는 기쁨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놀라운 작품 능력을 갖고 태어났으며, 매우 건강했고 주변에 좋은 친구들을 많이 두었고 삶을 사랑했다. 419

우리는 몸으로 노년을 겪어야 한다. 우리에게 노년은 일깨워주는 것은 몸이 아니다. 노쇠가 우리의 육체를 점거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리는 불안해진다. 건강에 대한 노인들의 무관심은 실제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표면적인 것이다. 주의깊게 노인들을 관찰하면 그들이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420

노쇠의 악화는 피할 수 없는 것이며, 누구도 거기에서 제외될수 없다. 그러나 노쇠 상태의 악화가 부분적인가 혹은 전체적인가, 완만한가 혹은 급속한가, 존재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한가 혹은 미미한가는 많은 요인에 달려 있다. ..그 당사자가 자신의 운명을 어떻게 책임지는가 하는 방식에 따라 다르다. 421

볼테르- “마음은 늙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 마음을 폐허속에 살게 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421

르누아르는 60세때부터 반신불수였다 걸을 수 없었고 손이 마비되었다. 그러나 그는 78세에 죽을 때까지 그림을 계속 그렸다. 436

노인의 비극, 그것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구상하고,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려는 순간, 몸이 먼저 슬금슬금 뒷걸음질쳐 가버리는 것이다. 피로가 정신적 충동의 도약을 깨버린다. 노인은 뿌연 안개 저 너머의 추억을 더듬는다. 노인의 생각은 집중하던 대상에서 이탈한다. 그리하여 노인은 병리학적 사건이 없어도 일종의 정시병처럼 자기자신에게 멀어지는 극도의 불안을 몸소겪게 되는 것이다. 440

노인은 결코 어떤 차원에서도 ‘유아기로 퇴행’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유년기는 상승의 움직임으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 유아의 성욕은 스스로를 모색하는 과정이지만, 노인의 성욕은 성인의 성욕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444

사실 정상적으로 욕망은 단지 욕망으로서만, 욕망 그 자체로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특정한 쾌락에 대한 욕망, 특정한 육체에 대한 욕망이다. 어쨌든 그 욕망이 자연 발생적으로 일어나지 않을 때, 사람들은 욕망의 사라짐에 대해 아주 애석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실제로 노인에게는 욕망에 사로잡히고 싶은 욕망이 있음을 흔히 볼 수 있다. 445

괴테는 65세에 자기만족감에 싸여 자신을 바라보았다. <파우스트>에서 주인공이 다시 사랑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부분적으로 젊어지게 했다. 거꾸로 괴테가 사랑에 기대했던 것은 허물을 벗은 뱀의 재생과도 같은 쇄신 작용이엇다. 459

상당한 나이에 이르면 남자는 더 이상 발기를 할 수 없는 반면에 여자는 “어떤 나이에서건 뜨거운 가마솥처럼 모든 불씨와 모든 질료를 자신 안에 받아들인다. 484

여자의 나르시시즘은 순전히 신체에 대한 것이다. 자기 파트너의 시선과 애무를 통해 그녀는 기분좋게 자기의 몸을 매력적인 것으로 여긴다. 만일 남자가 자신을 육체적으로 계속 원한다면 그녀는 늙어감을 관대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487

늙은 여자들의 성욕에 관한 근거 있는 자료는 역사에도 문학에도 없다. 문제는 연로한 나이에서 여자의 성욕은 남자의 성욕보다 금기시된다는 것이다. 489
리비도의 상실은 다른 부분의 상실을 초래한다. 왜냐면 성욕과 원기와 활동은 불가분의 관계로 연결되어 있기 대문이다. 때로 모든 욕망이 죽으면 애정마저 무디어진다. 489

성적 무관심이 필연적으로 모든 영역에 무기력과 무력함을 초래한다고 주장하면 그것은 옳지 않은 이야기일 것이다. 많은 사례들이 그 반대적인 면을 증명한다. 다만 세상과의 육체적인 접촉이 결여될 때 삶의 한 차원이 사라져 버린다고 말해두자. 나이가 많이 들어서까지도 육체적 건강과 성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다.491

성욕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심해지는 하나의 감정이 있는데 그것은 질투심이다. 491

위고의 아내 쥘리에트가 블랑슈와 위고에게서의 질투- 순교자 시시포스는 매일 자신의 사랑을 하늘 가장 높은 꼭대기까지 굴려 올립니다. 그는 그것이 막중한 무게로 매일같이 자기의 가슴위로 다시 떨어짐을 느낍니다. 나는 시시포스가 소름끼치도록 혐오스럽습니다. 494

톨스토이의 아내 소피는 결혼생활 중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리나>를 집필하던 때였다. 그녀는 그의 초고를 다시 옮겨 쓰면서 이러한 공동작업으로 그와하나됨을 느꼈다. 그가 소설 쓰기를 중단했을 때 배신감을 느꼈다. 497

나이는 우리 자신과 시간과의 관계를 바꾸어놓는다. 해가 바뀜에 따라 우리의 과거는 점점 더 육중해지고 반면 우리의 미래는 점점 짧아진다. 노인이란 “살아온 긴 생을 뒤에 갖고 있으며, 앞으로 살아갈 삶의 희망이 매우 한정된 인간이다”라고 정의할 수 있다. 505

노인들은 과거를 즐거운 마음으로 회상한다. “그들은 희망으로 살기보다는 차라리 추억으로 살아간다.” 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적했다. 506

그들이 과거의 자기 모습을 되찾아 그때 모습과 하나가 되는 순간, 그들은 80세이면서 동시에 30세 혹은 50세인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나이에서 벗어난다. 507

기억의 필수조건은 망각이다. 만일 우리가 모든 것을 기록해놓으면 우리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거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508

노인들을 위로할 수 없는 상태로 빠뜨리는 것은 그들이 자신의 미래와 연결시켰던 사람들, 특히 낳아서 기르고 교육시켰던 젊은 사람들과의 이별이다. 자녀의 죽음, 손자의 죽음은 모든 약속의 갑작스러운 붕괴이다. 그러한 죽음은 그 사람을 위해 바쳤던 희생과 노력들 그리고 그에게 걸었던 희망들을 터무니없이 헛된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514
노인의 뇌리를 사로잡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자심의 어린시절이다. 518

나이든 사람은 자신의 과거를 이미지, 환상, 감정적인 태도 등과 같은 형태로 내면화시킨다. 또한 노인은 또 다른 방식으로 과거에 종속되어 있다. 나의 현 상황과 미래로의 열림을 결정하는 것은 과거이다. 521

노인에게 일년이란 시간은 비참할 정도로 짧게 여겨진다. 왜냐하면 우리 인생의 서로 다른 시기마다 시간이 흐르는 속도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늙어갈수록 시간은 빨리 흐른다.
어린이들에게는 시간이 길게 느껴진다. 어린아이는 시간 속에서 움직인다. 그러나 그것은 강요된 시간, 어른의 시간이다. 어린아이는 시간을 측정하지도 예측할 줄도 모른다.523

어린아이의 세계는 매우 새로운 것이며 그때 받은 인상들은 너무나도 신선하고 활기있는 것들이다. 524

노인의 관점과 어린아이의 관점 혹은 젊은이의 관점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는 노인은 생애 초기에는 몰랐던 자신의 유한성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어렸을적에 노인은 자신 앞에 놓인 가능성들, 너무나 다양하고 막연해서 무한한 것으로 보였던 가능성들을 느꼈었다. 528

누가 내게 100년동안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시간을 준다면, 나는 새로운 계획들 속에 뛰어들것이고 미지의 영역을 정복하러 떠날 것이다. 돌이킬 수 없이 나의 개별성 속에 갇혀 있다고 느끼지 않을 것이다. 529


시간은 우리에게 세계를 주는 동시에 빼앗아간다. 우리는 배우고 망각하고 풍부해지는 동시에 감퇴해간다.533

지식의 영역에서 인간은 불가피하게 뒤쳐진다. 나는 나 자신의 예를 통해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535

수학의 진보는 조용한 전진이 아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수정을 수반하는 일련의 논쟁이다. 기존의 지식들을 완전히 뒤집으려면 많은 열정과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 점에 있어서는 다른 이들보다 젊은 이들이 더 적합하다. 546

아인슈타인 그는 최종 결론을 맺으려고 하지 않았다. 또한 자기 명성에도 그다지 불안해하지 않았다. 진리에 대한 그의 사랑은 절대적으로 순수했다. 단지 그는 자기 안에 매우 견고하게 뿌리 내린 학문적 시각을 갖고 있었고,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그것을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550

칸트 그는 자신의 지적 능력들이 쇠해질때까지 작품에 노력을 기울였고, 그것들은 그 사후에 출판되었다. 556

볼테르는 자신의 생애 최후 20년동안 가장 좋은 작품을 만들어 냈고 괴테는 마지막 25년동안 가장 아름다운 시를 위고는 늙어서도 자신의 과거보다 열등해졌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예이츠는 초월적인 힘을 발휘했다. 557
말년에글을 쓴다는 것은 인간이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거부와 인간들에 대한 눈물의 호소 사이의 긴장을 내포한다. 이것은 지탱하기 어려운 태도이며 어려운 태도이며 강렬한 열정을 함축한다. 그리고 그것을 오랫동안 지속하기 위해서는 힘이 요구된다.560

노년이 되면 힘은 축소되고 열정은 소모된다. 노인이 흔히 빠져드는 신체적 쇠약, 피로, 무관심은 노인으로 하여금 외부세계에 몰두하는 것을 단념하게 만든다. 560

음악가들, 일반적으로 그들의 작업은 시간과 더불어 진보한다. 노년에 바흐의 작품들은 그의 가장 아름다운 작품들로 꼽히고, 베토벤은 마지막 4중주로 그 이전의 자기자신을 초월했다는 것이다….이렇게 음악가들이 나이와 더불어 발전하는 것은 음악가들이 지켜야 할 구속이 엄격함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 자신의 독창성을 이끌어낼수 있는 숙련된 기술을 얻기 위해선 오랜 수련기간을 거쳐야만 한다. 566
창작하는 인생의 말기에서 가장 힘든 일은 회의를 내면화시키는 일이다. 유한성, 그리고 유한성이 내포하고 있는 불가능성들은 모든 연령에 나타날 수 있다. 573

정치가 그들은 현실에 뿌리박고 있다. 그 시대의 역사를 어떤 목적지로 이끌어가기 위해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다.575

젊은이들은 오늘과 다른 내일이 오리라는 희망을 품고있다. 한 걸음 후퇴가 아마 앞으로의 도약을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노인은 미래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있을지라도 미래에 급변을 기대하지는 않는다.577

비생산적이고 효율적이지 못한 노인은 자신에게도 예전 자신의 생존자로 보인다. 이러한 이유로 노인은 기꺼이 과거를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과거는 그에게 속했던 시간, 자신을 스스로 완전히 독자적인 한 개인, 살아 있는 한 사람으로 여기던 시간인 것이다. 607

늙어서까지 산다는 것은 강제로 고독을 선고받는 일이었다. 607

노인은 자기세대의 죽음만을 보지는 않는다. 흔히 그의 세계가 가고 그것과 교체되어 또 다른 세계가 오는 것을 보게 된다. 어떤 노인들은 이 변화를 기쁘게 심지어는 궁지를 갖고 받아들인다. 608

젊은이는 생명을 무릅쓰는 행동, 생명을 바치는 행동을 주저 않고 하기도 한다. 젊은이는 생명 그 자체가 아닌 다른 것에 생명의 목표를 둘때야 생명에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성인은 이해관계를 통하여 죽기를 거부한다. 내가족, 내재산, 성인은 자기 활동에 몰두하기 때문에 자기 죽음을 자주 생각하지 않는다. 노인은 죽음은 더 이상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운명이 아니다. 죽음은 이제 임박한 것, 개인작인 사건이다. 614

모든 인간과 마찬가지로 노인도 삶과의 관계밖에는 없다. 문제는 바로 살려고 하는 의지이다. 죽음을 바란다는 것, 혹은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긍정적인 의미이다. 617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철하고 평온하게 죽는 자들도 있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살려는 모든 의욕이 사라졌을 때 노인은 투쟁이나 일상의 권태로움보다는 영원함 잠을 더 좋아한다. 623

노년은 젊은 시절보다 훨씬 더 카르페디엠의시기이다. “씨뿌린 것을 거두어 들이는”순간이라고 퐁트넬은 말한다. 더 이상의 수고의 계절이 아니라 습관의 계절이라고 도비녜는 말한다. 625

노인들에게 예정된 하나의 정열은 야심이다. 더 이상 세계에 대한 영향력은 없고 그래서 더 이상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노인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기를 원한다 633

권태가 너무 깊어지면 그것은 모든 가능성을 제거해버린다. 심지어 권태에서 벗어나려는 욕망마저도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642

사람들이 노인들의 열등한 점을 세세하게 용서한다는 것은 사람들이 노인을 결정적으로 열등하다고 생각하게 때문이다. 645

노인은 모든 안전에 대한 보장이 주어졌을때도 사람들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여전히 경계상태를 풀지 않는다. 즉 노인은 불신이라는 형태로 의존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것이다. 650

거의 모든 노인에게 공통된 태도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습관을 피난처로 삼아 안주한다는 것이다. “모든 신체적인 증상들보다 더욱 놀라게 하는 것은 나이의 흔적이 있으니 그것은 습관의 형성이다.
습관 그것은 과거이다. 그것은 표상으로서가 아니라 태도와 행동의 형태로 우리가 경험한 과거이다. …내가 오늘 하는 행동이 어제의 행동을 모델로 취하고 어제의 행동은 그저께의 행동을 본보기로 삼고 이렇게 무한히 계속되는 곳에 인습이 있다. 651

노인은 변화를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노인은 변화에서 출구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단절을 발견하기 때문이다…습관은 내일이 오늘을 되풀이 할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시킴으로써 노인들을 산만한 근심에서 보호한다. 655

노인의 탐욕은 소유물의 추상적인 동의어인 돈에 고착되기도 한다. 돈은 미래에 대한 일종의 안전을 보장해준다. 돈은 노인을 상황의 불안정에서 보호해준다. 657

젊은 사람들과의 우정은 노인들에게는 소중하다. 그것은 그들에게 그들이 살고 있는 시간이 그들의 시간이라는 인상을 준다. ‘도한 그들 자신의 젊음을 되살아나게 해주며, 그들을 무한한 미래 속으로 데려간다. 그것은 노인을 위협하는 우울감에 맞서는 가장 좋은 방어책이다. 664

아이들이 미완성의 인간이 아닌것처럼 노인도 팔다리가 잘린 성인이 아니라 완벽하고 독창적인 경험을 살아온 개인이다. 680

특히 여자들에게 있어 말년은 하나의 해방이다. 평생동안 남편에게 복종하고 자식들에게 헌신한 여자들은 마침내 자심을 염려할 수 있게되는 것이다683

어떤 노인들에게는 꺽을 수 없는 심지어 영웅적인 무언가가 있다 그들은 이제 집착하지 않기에 무관심하게 목숨을 걸고 행동한다. 686

지적인 면에서도 노년은 해방을 가져다 줄 수 있다. 노년은 환상에서 벗어나게 해주기 때문이다. 노년이 가져다주는 명석함에는 때때로 쓰라림 환멸이 수반된다. 유년기와 청년기에서 삶은 일종의 상승과 같다. 687

노인의 가장 중요한 행운은 양호한 건강 상태보다도 그에게 있어 세계가 아직도 목표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활동적이고 유용한 노인은 권태와 노쇠에서 벗어난다. 그가 살아가는 시간은 여전히 그의 시간이고 일상적으로 말년을 특징짓는 방어적이거나 공격적인 행동들이 그에게 필요치 않다. 그의 노년은 말하자면 불문에 부쳐지는 것이다. 이러기 위해서는 성인의 나이에 이미 그가 도전하는 시도들에 참여한 경험이 있었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689
노년이 존재의 완성으로 간주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지만 있기는 하다. 코르나로, 퐁트넬이 그런 경우다. 그들은 평생을 신중하고 절제있게 노년을 준비했다. ..우리는 자신의 삶의 방식에 따라 스스로 노년을 결정한다. 707

노인이 죽을때까지 자신이 세운 계획들에 착수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다. 죽을때까지 창조적인 힘을 간직했음에도 불구하고 환멸속에 죽었던 사람들은 미켈란젤로와 베르디이다 715

프로이드 그가 자신에게 자살을 금한 것은 오로지 가족들에게 불행을 안겨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내가 혼자라면 나는 벌써 오래전에 삶을 끝장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733

프로이드 그의 마지막 해는 매우 어두웠다. 그의 머리는 온전했으며 꺽을 수 없는 성격은 여전했다. 아내와 특히 딸 안나에 대한 사랑을 위해 스스로 자살을 금했다는 것은 용기와 이타주의의 대단한 증거이다. 그는 1939년 사망했다. 1923년 이후로 그는 33번의 수술을 받았다. 735

하루살이처럼 많은 동물들은 쇠퇴기를 거치지 않고 번식후에 죽는다. 그러나 인간의 신체 조직은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 쇠퇴한다. 그것은 경험적이며 보편적인 진리이다 그것은 불가피한 과정이다.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노쇠는 개인의 활동의 축소를 가져온다. 흔히 정신적 능력의 감퇴와 세계에 대한 개인의 변화를 수반한다. 755

노년이 우리의 이전 삶의 우스꽝스러운 하찮은 모방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한 해결책은 단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우리의 삶에 의미를 주는 목표들을 계속하여 추구하는 것이다.757

자기 일이 없는 여가란 자주성이 상실된 것이다. 759

노년은 우리 문명의 모든 실패를 고발한다. 노인의 조건이 받아들일만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인간을 온통 다시 만들어내야 한다. 인간들 사이의 모든 관계를 재창조해야 한다. 760


3.내가 저자라면...책을 읽고
노년은 보부아르가 62세에 발표되었다. 아마도 자신이 직접체험한, 자신속에 나타나는 노년의 특성들을 느꼈을 것이다. 물론 그녀는 철저하게 냉철하고도 객관적으로 기술하고 있기에 어디에서도 그녀의 노년이 드러나 있다고 할 수 없지만 ,그녀 스스로 자신이 노년의 문턱에 서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고 말한다.

그녀는 이 책을 쓴 동기를 서두에 이렇게 밝히고 있다.
모든 문학작품에서는 노년에 관한 것들은 찾아 볼수가 없다. ‘노인들은 삭제해버리시오’ 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내가 이 책을 쓰는 이유는 바로 이런 침묵의 음모를 깨버리기 위해서다.라고 밝히고 있다.
팽창과 풍요의 여러 신화 뒤에 몸을 숨기는 그 무사태평한 의식은 노인들을 천민 계급으로 취급한다. 노인들은 가난과 고독, 불구, 그리고 절망의 형을 언도받았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노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게 하고자 한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상황은 어떤 것이며, 그들이 어떻게 그 상황을 살아나가는가를 묘사하고자 한다. 즉 노인들이 실제로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느끼는가를 말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러기 위해 그녀는
제 1부에서는 과학적, 생물학, 의학 등의 예시를 통해 노화와 생물학을 면밀히 다루고 인종학적 문학적 자료들을 통해 노년을 고찰하고 신화의 예시나 의례와 상징적인 것들을 살펴보므로 역사 사회에서의 노년을, 산업혁명이후로 노인의 수는 급격히 증가하고 18세기부터 노인을 위한 사회복지 제도들이 만들어 졌으나 여전히 노년의 문제는 지금까지 여전히 과제로 남았있음을 현대사회의 노년을 살펴보므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제 2부에서는 노인이 스스로 자신의 노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문인, 음악가, 화가, 정치가,등 다양한 예시들을 통해 한 개인이 노년에 이르렀을 때 느끼는 육체의 고통, 감정,들을 면밀히 살펴본다.
실제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톨스토이 괴테. 미켈란젤로 ,프로이드.등이 말년에 자기 인생을 어떻게 느꼈는가를 보여준다.

그러나 나는 그녀에게 묻고 싶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노인에 관한 문제는 피할 수 없다. 그녀의 지적대로 19세기 산업혁명 이후로 노인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그녀의 시대보다 더 심각한 지경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 있어 그녀가 제시하는 대안은 너무 미흡하다.
노년의 실상을 적나라게 드러내고 너나 나나 피할 수 없는 숙명임을 깨닫게 되는 잔인한 진실에 비해 그녀는 개인적, 사회적 대안도 제시해 주어야 한다.
노년의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면서 노년을 준비한다하면 그저 경제적인 준비 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노인문제는 개인에게만 책임 지울수도 사회에게만 책임지울수도 없는 문제이다.
우리가 나이듦에 있어 조금 더 성숙된 나이듦이 필요하리라 본다.
오래전부터 경로사상에 익숙한 우리 사회지만 너무나도 이기적이고 타인에 대한 배려심 이라곤 조금도 찾아 볼 수 없는 노인을 보면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게 되고 그들을 경시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노인을 위한 복지 문제는 우리 사회로서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문제다.
언젠가 지하철광고를 보니 지금의 경로석에는 어린이들이, 지금의 일반석에는 노인들이 앉아있는 모습을 본적이 있다. 물론 이 광고는 출산정려를 위한 광고이기는 했으나,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닥쳐올 노인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고 그에 따른 대안이 시급하다.
노년의 실상과 현실을 직시하게 되는 것은 좋았지만 그 문제를 위한 대안을 찾기에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녀가 보여준 거장들의 노년을 보는 것은 고통스러웠지만 아주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타고난 천재들이라 여겼던 그들에게서 그들이 느꼈던 말년의 고통과 그 속에서도 창작의 끈을 놓지 않았던 그들의 집념은 나로 하여금 책을 덮어버리고 음악을 틀게 하였고 미술관에 가고 싶게 만들었다. 그들의 작품들을 속속들이 다시 만나고픈 열망이 든다. 그들의 작품을 읽고 듣고 느끼고 싶어지게 했다.

책의 마지막장을 조금은 쓸쓸한 마음으로 넘기는데 어느새 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저 봄비가 그치고 나면 만물이 소생할 것이다.두껍고 투박한 나무껍질 속에 숨죽이고 있던 새싹이 돋아날테고 앞다투어 꽃들이 피어나리라. 춥고 메마르고 서걱거리던 이 대지에 새싹은 돋아나고 새들은 노래하고 꽃잎은 피어나며 나비는 춤을 추리라
거장들의 삶, 지금은 저물었고 이별한 그들의 삶들이 봄비에 새봄이 돌아오듯 그들의 음악으로 그들의 문학으로 그들의 미술작품으로 우리에게 다시 태어나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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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3.23 21:01:16 *.36.210.80
봄비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는 낭만도 괜찮았는지요. 읽고 쓰는 일에도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답니다. 읽고 싶은 작품들을 많이 읽을 수 있는 한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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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미
2008.03.24 11:36:36 *.128.30.50
언니, 언니의 응원이 많은 힘과 위로가 되었어요
한번도 고맙다 말하지 못했어요
고마워요.

언니 역시 지금 집중하고 에너지를 모아야 할때일텐죠
응원보냅니다.
아자 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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