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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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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24일 02시 32분 등록
노년(1970)
시몬 드 보부아르, 홍상희•박혜영 역, 2002(개정판), 책세상


◈ ‘저자에 대하여’

시몬 드 보부아르(1908~1986)가 일반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무엇보다도, 유명한 실존주의 철학자인 사르트르와의 계약결혼 – 2년 동안 살아보고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함 - 때문일 것이며, 그 다음으로는 ≪제2의 성≫의 저자로서일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으나 – 내가 여자라면 읽어봤을지 모르겠지만 –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대학시절에 많이 언급되었던 책이었다.

이번에 ≪노년≫을 읽으면서 저자에 대해 알게 된 흥미 있는 사실 하나는, 교수자격 시험에서 사르트르에 이어 2등을 했었다는 사실이다. 공부를 꽤 잘했다는 얘긴데,. 이후 두 수재는 계약결혼이라는 실험을 한다. 참 재미있게도 젊은 시절을 살았다고 생각된다. 지성의 첨단을 자부하면서 치열하게 살았을 테니까 말이다.

보부아르는 소르본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1928년 교수 자격증을 취득한 후, 마르세유•루앙•파리의 고등학교에서 12년간 철학강의를 하면서 습작생활을 거쳐, 1943년인 35세에 첫 소설 ≪초대받은 여자≫를 발표하였고, 다음해 집필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교사생활을 그만두고, 이후 소설을 비롯하여 사회적•철학적 에세이, 희곡, 사회학적 연구서, 자전적 이야기 등 20권이 넘는 다양한 작품활동을 하게 된다.

한편, 1949년 출간된 ≪제2의 성≫은 그녀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 주었으며, ≪노년≫이 출판된 해인 1970년에 창설된 여성해방운동 기구에 참여하는 것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여성운동에 뛰어든 그녀의 페미니즘은 타계할 때까지 점점 급진화되었다.
그의 주요 작품인 ≪제2의 성≫과 ≪노년≫에서도, “인간의 삶의 의미는 결코 확정지어지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끊임없이 정복되어야 할 무엇이다” 라는 그녀의 주제를 뚜렷이 느낄 수 있다. 마치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그의 계약상대자(?)인 사르트르의 유명한 명제와도 상당히 통하는 데가 있는 것 같다. 바로 ‘참여주의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2의 성≫은 보부아르가 41세에, 이 책 ≪노년≫은 62세에 발표되었다.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라는 유명한 선언을 한 ≪제2의 성≫에서 처럼, ≪노년≫에서는 “노인의 지위는 결코 자신이 정복해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주어지는 것”이라 주장하여 사회체제와 그 안에 소속된 구성원들의 노력, 더 나아가 체제 전체의 근본적인 변화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보부아르의 주요저서는 다음과 같다.
- 소설 : ≪초대받은 여자≫, ≪타인의 피≫, ≪모든 인간은 죽는다≫, ≪레 망다랭≫, ≪아름다운 영상들≫, ≪위기의 여자≫
- 사회학적 연구 : ≪제2의 성≫, ≪노년≫
- 에세이 : ≪피뤼스와 시네아스≫, ≪모호성의 윤리를 위하여≫, ≪미국에서의 나날≫, ≪특권≫, ≪대장정≫, ≪정신적인 것이 월등하다≫
- 자서전적 이야기 : ≪얌전한 처녀의 회상≫, ≪나이의 힘≫, ≪사물의 힘≫, ≪나이의 힘≫, ≪아주 달콤한 죽음≫, ≪작별의 의식≫
- 희곡 : ≪무위도식자들≫

이렇듯 다양한 작품활동과 사회참여 활동은 그녀를 작가로 참여적 지식인으로 자리매김했다고 보여지는데, 그녀의 작품 중 유일하게 이 책을 읽고 느낀 점은 – 그 사람의 책 한 권으로 판단하기는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지만 - 참여주의적인 작가(소설가) 정도로 그녀를 일단 규정케 만들었다. 그 이유로는 이 책이 사회학적 연구서라고 하지만, 사회학적인 어떤 구체적인 주장을 논리적으로 전개하고 결론을 도출하기 보다는, 노년에 대한 역사적 문헌적인 자료의 제시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주가 되어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78세를 일기로 고인이 된 보부아르의 노년은 과연 어떠했을까가 궁금해져 조금 더 추적해 보니, 그녀가 ≪제2의 성≫ 발표 이후 페미니스트 대열에 동참하고 페미니즘과 사회주의와의 결합 가능성을 보았으며, 여성의 낙태권을 주장했던 ‘343 선언’에 서명했고, 프랑스의 알제리인 학대와 미국의 베트남 참전을 항의하는 등 그의 생각과 글에 나타난 대로 자기 삶의 의미를 주는 목표들을 끝까지 추구하고 행동하면서 살았던, 앎과 행동이 일치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추가로 접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0. 서론

p.8~9 내가 노년에 관한 에세이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놀라며 이렇게 말했다. “참 이상한 생각도 하셨군요! … 하지만 당신은 아직 늙지 않으셨는데요!... 어찌 그런 슬픈 주제를…. ”
내가 이 책을 쓰는 이유는 바로 이런 침묵의 음모를 깨버리기 위해서이다. 마르쿠제는, 소비사회는 불행의 의식을 행복의 의식으로 대체시켰고, 모든 죄의식의 감정을 비난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소비사회의 행복의식, 그 태평함을 뒤흔들어놓아야 한다. 그러한 태평함은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 죄를 짓는 것일 뿐만 아니라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기도 하다.

0-1. 머리말

p.19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한 인간이 노년을 맞게 되는 방식은 계층에 따라 다르다. 늙은 노예와 늙은 귀족, 보잘것없는 연금을 받는 퇴직 직공과 오나시스 같은 사람 간의 차이는 엄청나다. 노년의 이런 개인적인 차이에는 건강, 가족 등과 같은 또 다른 요인들이 있다. 그러나 이 두 범주 가운데 하나는 대단히 광범위하고, 다른 하나는 아주 적은 소수에 제한되어 있어, 착취하는 사람들과 착취당하는 사람들의 대립을 야기시킨다. 일반적으로 노년과 관계가 있다고 주장하는 모든 진술은 거부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모두 이 두 범주 간의 단절을 은폐하려 하기 때문이다.

p.23 어느 사회나 각자 고유의 목표를 창출해낸다. 따라서 사회라는 배경 안에서만 쇠퇴라는 말의 정확한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
즉 노년은 단지 생물학적인 현상이 아니라 문화적 현상이기도 한 것이다.


<제1부 외부에서 본 노년>

1. 노화와 생물학

p.47 (몽테스키외) “나이가 가져다 주는 정신의 힘과 또한 나이의 결과인 육체의 쇠약 사이의 이 기이한 불협화음은 언제나 나를 놀라게 한다.”

p.50 개인에게는 유동적이고 적응성이 강한 잠재능력과 이미 습득된 메커니즘으로 이루어진 결정화된 부분이 있는데 전자는 노후하며, 후자는 노후하지 않는다.

p.53 노쇠는 그 사회의 성격과 그 사람이 그 안에서 차지하고 있는 자리와 밀접한 종속관계에 있다. 경제적인 요인 자체를 그것이 포함되어 있는 사회적•정치적•사상적 상부구조들에서 따로 떼어낼 수 없다.

2. 민족학적 자료들

p.76 (≪나라야마≫라는 일본 소설) 그는 어머니를 사랑하지만, 그의 효심은 사회가 그에게 제시하는 틀 안에서만 발휘된다.

p.84 경제적 생활이 더 풍부한 지식을 요구하고 또 자연과의 투쟁이 덜 격렬하여 어떤 점에서는 자연에 대해 한 발짝 물러서게 될 때 마법과 종교가 발전한다. 그러면 노인의 역할은 훨씬 복합적인 것이 된다. 그는 큰 권한을 보유할 수 있다.

p.100 노인들의 으뜸가는 성공조건은 자식들의 사랑을 받는 것이다. 즉자로서 그들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우리는 노인들이 사회적으로 제일 높은 지위 또는 제일 낮은 지위에 있는 수 많은 경우를 보았다. 그들의 사회적 위치는 능력이나 재산에 달려 있다.

p.109 내가 조사한 모든 경우에서 행복하게 자란 자식들이 성인이 되어 늙은 부모에게 잔인하게 대하는 경우는 단 한 건밖에 발견하지 못했다. …
노인들은 흔히 악순환의 희생양이 된다. 즉 너무나 궁핍해지면 어른들은 자식들을 잘 먹일 수 없게 되고 노인들은 소홀히 대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또한 효심은 관습과 종교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p.114 전통에 대한 지식 덕분에 노인들이 할 수 있는 봉사는, 일반적으로 그들에게 존경 외에도 물질적인 번영을 가져다 준다. …
그러나 좀더 진보된 시회에서는 노인들의 영향력이 줄어든다. 그런 사회는 귀신이나 마술도 덜 믿는다.

p.118 단지 그럭저럭 살아가려고만 하는 집단에서 쓸모 없는 입이 된다는 것, 그것은 곧 쇠퇴를 의미한다. 반대로 선조들과 신비적으로 맺어진 정신적 생존을 바라는 집단이라면, 과거와 동시에 내세에 속해 있는 노인은 그 집단의 화신이 된다.

3. 역사 사회에서의 노년

p.120 인간의 모험 속에서 여성은 한 번도 주체인 적이 없었다. 그들은 구실이고 원동력이었다.

p.134 젊음이 없다면 불멸의 생명도 아무런 가치가 없다. 반대로 영원히 계속되는 젊음은 인간에게는 지고한 행복일 것이다.

p.139 체제가 귀족적이고 보수적으로 남아 있는 한, 구세대는 특권을 유지했다. 구세대가 그 특권을 잃은 것은 클레이스테네스가 민주주의를 확립했을 때부터였다.

p.164 (로마의 정복정치) 일단 개인의 권력이 구축도자 원로원의 영향력은 계속 줄어든다. 젊은 황제는 실제적으로 원로원 없이 통치한다.

p.171 남자의 눈에 여자의 운명은 단지 에로티시즘의 대상이며, 그런 이유로 여자란 늙고 추해지면 사회가 여자에게 설정해준 자리를 잃게 된다.

p.176 기독교가 여러 다른 민족들에게 새로운 종교로 채택된 것은 오로지 그들 민족들의 관습에 순응함으로써였다. …
기독교는 사실 자신이 개종시킨 민족들의 풍습에 의해 타락했고, 사상적으로는 고대의 사상을 물려받았다.

p.190 인간은 당나귀가 포기한 18년, 개가 포기한 12년, 원숭이가 포기한 10년을 얻어내어 자기 삶에 보탤 수 있었다.

p.207 노년은 다른 사람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비용에 의해 예언된 한탄처럼 아름다운 젊은 여인을 노리고 있듯이 우리들 모두를 노리고 있다. 노년은 우리의 운명이다.

p.220 왜 16세기에는 그렇게 악착같이 노인들을 공격했을까? 아버지들은 로마 시대의 가장과 같은 권위를 전혀 갖고 있지 못했다. 그래서 가장이 우롱당한 것이다.

p.224 몽테뉴는 노년을 멸시하지도 찬양하지도 않는다. 그는 다만 노년의 진실을 밝히고자 한다.

p.226 모든 자기 만족은 능력을 감퇴시킨다. 몽테뉴는 늙어가면서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할 줄 알았던 것이다. 그가 발전을 했다면 그것은 세상과 자신에 대한 그의 태도가 점점 더 비판적이 되었디 때문이다.

p.269 세상의 진보와 발맞추어 갈 수 없는 노인은 홀로 뒤에 처져 자기에게서 멀어져 가는 모든 것을 빼앗긴 채 고립된다.

p.269 이오니아의 시인 민네르모스가 한탄했던 것은 죽지 않는 노인 티토노스의 슬픈 운명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결코 불멸의 삶이 아니었다. 죽지 않는 삶 대신 사람들은 이미 말한 바 있는 청춘의 샘을 꿈꾸었다.

p.291 (위고) 아직 인간 조건 이하에 있는 어린이와 인간 조건 너머 저 위에 있는 노인 사이에서는 정신적인 대화가 이루어진다. 어른들의 도덕과 비속한 이성은 그들에게 적합하지 않다. 천진난만함과 지혜로, 노인과 어린이는 세상의 신비에 가까이 있고 하나님에 가까이 있다.

p.295 경험이라는 개념이 실추됨에 따라 노인의 위세가 많이 축소되었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기술주의 사회는 해가 거듭되면서 지식이 축적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해가 갈수록 지식은 쓸모 없어진다고 생각한다.

p.295 (지드) “어째서 책 속에서는 노인들에 대한 문제를 좀처럼 다루지 않는 것일까? 노인들은 그 문제를 쓸 능력도 없고, 젊을 때는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노인은 더 이상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한다.” …
소설가는 자기보다 더 젊은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할 수 있다. 왜냐하면 소설가는 그 나이를 겪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인에 대해서는 단지 피상적으로 알 수 있을 뿐이다.

p.302 (19세기 산업혁명 동안) 일에 지쳐 한번 쓸모가 없어지고 나면 지배 계급은 그들을 빈손으로 내동댕이쳤다.
쓸모 없는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된 이 시대의 노인들의 운명은 원시사회의 노인의 운명과 흡사했다. 노인의 운명은 본질적으로 그들 가족에 달려 있었다. …

19세기부터 노인들의 수가 증가했다. 지배계층은 그들을 무시할 수 없었다. 절대적인 무관심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지배계층은 노인들을 과소 평가해야 했다. 게다가 노년이라는 개념에 반대 감정의 양립을 가져온 것은 세대간의 갈등보다도 계층간의 투쟁이었다.

4. 현대 사회에서의 노년

p.325 노인들에게 강요된 무위상태는 숙명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선택의 결과라는 것이다. 기술의 진보는 고령 노동자의 자격을 박탈한다. 왜냐하면 직업교육은 40년 전에 받은 것이어서 일반적으로 불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장에서 적절한 재교육을 시킨다면 그를 개선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p.361 물질적인 걱정 이상으로 늙은 여자들은 개인적인 생활의 부재와 양로원에서 강요하는 순수한 사물로의 변모를 괴로워한다.

p.362 사회가 자기들을 책임지니까 그들은 자기 몸을 스스로 완전히 포기하고 사회에 맡겨버려 극단적인 수동성에까지 이르는 것이라고 의사는 설명했다. 나는 노인들이 원한에 싸여 그들의 상황을 살아가고 있으며, 그런 식으로 복수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p.372 (발자크) “퇴직자들 중 이제 그만 둔 일을 다른 기능으로 대치할 줄 모르거나, 대치할 수 없는 사람들은 이상하게 변한다. 어떤 사람들은 죽고, 또 어떤 사람들은 낚시에 몰두한다. 낚시라는 오락의 공허함이 사무실 내에서의 그들의 일과 가깝기 때문이다.”

p.373 불만의 근본적인 원인, 그것은 가난이다. 특히 육체 노동자들이, 일하던 당시에는 사무직 노동자들보다 일에 대한 애착이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을 그만둔 것에 대해 더 섭섭해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p.381~382 우리시대의 역설, 그것은 바로 노인들이 옛날보다 더 건강이 좋다는 것이다. 그들은 좀더 오래 ‘젊음’을 유지한다. 그래서 무위의 노인들을 한층 더 무겁게 짓누를 뿐이다. 좋은 건강 상태로 마지막 20년을 산다는 것, 그러나 아무 쓸모 없는 행위로 산다는 것, 그것은 심리적으로, 사회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모든 노인학자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노인들에게 그들이 살아 있는 이유를 주어야만 한다.


<제2부 세계 속의 존재>

5. 노년의 발견과 수락 : 육체의 산 경험

p.393 노년의 진실, 그것은 객관적으로 정의되는, 타인에게 보이는 나의 존재와 그것을 통해 내가 나 자신에 대해 갖는 자의식 사이의 변증법적 관계이다. 나에게 있어서 나이를 먹어가는 사람은 타자, 즉 타인들에게 보여지는 나이다. 그 타자가 바로 나인 것이다.

p.424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노인들은 너무 가난하여 좋은 안경과 보청기를 살 수 없다. 이렇게 하여 자신 안에 갇힌 그들은 의기소침에 빠져, 노쇠에 대항하여 싸우기를 단념하게 된다. 부분적인 노쇠 때문에 야기되는 자포자기에는 흔히 모든 분야에 걸친 급격한 전락이 뒤따른다.

p.440 노인의 비극, 그것은 바로 자기가 원하는 것을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구상하고,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려는 순간, 몸이 먼저 슬금슬금 뒷걸음쳐 가버리는 것이다.

p.441 대부분의 노인들이 겪는 실제적인 여건을 고려할 때, 이런 정신주의적인 객설들은 터무니없는 것들이다. 배고픔, 추위, 질병이 반드시 어떤 정신적인 이득을 동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런 것들은 가장 기본적인 근거조차 결여된 주장인 것이다. …
우리의 체험은 나이가 들면 육체에서 자유로워진다는 생각을 근본적으로 반박한다.

p.491 노년은 전반적으로 욕구 불만의 시기이다. 그래서 노년은 막연한 원한들을 질투라는 형식으로 구체화하게 된다. 한편, 성욕의 감퇴는 많은 노년의 부부들에 있어서 일방적인 또는 상호적인 원한들을 불러일으키며, 그 원한은 질투로 표현될 수 있다.

6. 시간, 활동, 역사

p.513 (샤토브리앙) “너무나 긴 나의 인생은 죽음의 기념비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로마의 길들과 비슷하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나 친구의 죽음은 우리에게 현재만을 앗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보냈던 우리 인생의 한 부분을 통째로 앗아간다. 우리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 그들은 그들의 죽음과 더불어 우리 자신의 과거를 앗아간다. 60대의 사람들은 부모와 같은 세대의 친구들을 잃을 때, 고인이 그들 자신에 대해 간직하고 있던 어떤 이미지를 잃게 됨을 괴로워한다. 고인만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었던 자신에 대한 청년기와 유년시절이 고인과 더불어 사라져버린 것이다.

p.524 (쇼펜하우어) “어린 시절에는 사물과 사건들에 새로움이 있어 모든 것이 우리의 의식 속에 새겨진다. 또한 하루하루가 까마득히 길게 느껴진다. 마찬가지 이유로 어른인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여행을 할 때이다. 여행을 하면서 보내는 한 달은 집에서 지내는 넉 달보다 더 길게 느껴진다.”

p.529 65세의 우리는 45세 때보다 단지 스무 살만 더 먹은 것이 아니다. 무제한의 미래 - 무한한 것으로 보이던 미래 – 를 제한된 미래와 바꾼 것이다. 예전에는 우리는 지평선에서 어떤 경계 표지도 발견할 수 없었다. 하나의 지평선이 보일 뿐이었다.

p.530 제한된 미래와 굳어진 과거, 노인들이 직면해야 하는 상황은 이런 것이다. 많은 경우 이러한 상황은 그들의 행동을 마비시킨다. 그들의 모든 계획들은 실현되었거나 혹은 포기되었으며, 그들의 삶은 그 자체로 닫혀졌다. 아무도 그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

p.534 나이가 자격을 줄 수 있는 것은 단지 변화가 없는 사회나 적어도 안정된 사회에서 뿐이다. 변화 없는 세상에서 진보하려고 노력하는 노인은, 그 자신보다 뒤에서 출발했던 사람들보다 앞서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변화하는 오늘날의 세계 속에서는 그렇지 않다. 개인의 발전과 ‘생성’은 사회의 발전에 포함되며 일치하지 않는다. 여기서 생겨나는 편차는 불가피하게 시대에 뒤져 있는 노인에게 손해로 돌아간다. 노인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점점 더 자신을 옭아매는 과거로부터 끊임없이 자신을 이끌어내야만 한다.

p.548 (바슐라르) “위대한 과학자들은 생의 전반부에서는 학문에 유용하나, 후반부에서는 학문에 해롭다.”

p.549 (클라크) “주어진 주제에 관한 문제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반드시 그 분야에서 가장 정확하게 미래를 예견하는 사람은 아니다.“

p.558 철학은 개념으로서의 인간을 고찰한다. 철학은 인간과 우주와의 전체적인 관계를 알아내고자 한다. 작가 역시 보편성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작가는 자기의 개별성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는 지식의 입증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는 앎이라고 할 수 없는 것, 다시 말해서 세상에서 겪는 자기 존재의 산 체험의 의미를 전달하고자 한다. 그는 그것을 개별적인 보편성을 통해 즉 그의 작품을 통해 전달한다.

p.584 우리는 사회 역사를 연구하면서 노인들은 어떤 당, 어떤 체제에 소속돼 있든 보수주의자 쪽에 서게 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들로서는 그들을 형성시켜준 과거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들은 과거를 통해 현실을 본다. 그래서 현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새로움에 적응하기에는 그들에게 수단과 시간이 부족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적응하려는 시도조차 억제된다. 그들은 현 상태를 유지하려 애쓴다. 혁명은 젊은 층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p.619 나의 경우에 있어 죽음에 대한 생각은 예전보다 괴롭다. 거기에는 약간 다른 이유가 한 가지 있다. 죽음은 세상에서의 부재이며, 내가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은 이 부재였다. 그러나 그토록 많은 부재들이 이미 내 안에 깊이 파이고 있지 않은가! 나의 과거가 부재하고, 나보다 먼저 죽음을 맞이한 친구들과 잃어버린 친구들이 부재하고, 내가 결코 되돌아가지 못할 지구상의 많은 장소들이 부재한다. 부재가 모든 것을 삼켜버렸다 해도 별 차이는 없을 것이다.

7. 노년과 일상생활

p.625 노년은 젊은 시절보다도 훨씬 더 키르페 디엠(Carpe diem : 현재를 향유하라는 뜻)의 시기이다. “씨 뿌린 것을 거두어들이는” 순간이라고 퐁트넬은 말한다. “더 이상 수고의 계절이 아니라 습관의 계절이다” 라고 도비녜는 말한다.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우리가 본 바대로 현대 사회는 노인들에게 여가를 즐길 물질적 수단을 빼앗음과 동시에 여가를 제공한다.

p.632~633 노년은 가장 활동적으로 보낸 사람들은 여러 종류의 관심을 가진 자들이다. 이들에게는 변화하는 것이 더 용이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
대부분의 인간들에게 악순환이 생겨난다. 활동을 하지 않으므로 호기심과 정열은 저하되며, 무관심하므로 세계가 공허해진다. 그 공허한 세계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활동할 이유를 전혀 찾아내지 못한다. 죽음이 우리 내면에, 그리고 사물 속에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p.652 우리가 젊을 때에는 규칙이 느슨하여 즉흥적인 변덕에 새로운 선택의 여지를 남겨둔다. 노인은 새로운 것을 걱정스럽게 받아들인다. 선택하는 것은 노인을 두렵게 한다.

p.663 할머니는 손자들 곁에서 단지 부수적인 역할만을 하는 것을 분하게 생각한다. 할머니는 자기 아들의 자식인 손자 속에서 자기 아들을 사랑하지만 그 손자들은 역시 그녀가 질투하는 며느리의 자식인 것이다.

p.678 우리는 노년이 평온함을 가져다 준다는 편견을 철저히 배격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고대부터, 성인이 된 인간은 인간 조건을 낙관적으로 보려고 한다. 자신이 지금 지니지 못한 미덕들을 나이에 전가시켰다. 즉 아이들에게는 순수함을, 노인에게는 평온함을 전가시켰다. 인간은 말년을, 그를 괴롭히는 모든 갈등이 해소되는 시기로 간주하고자 한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편리한 환상이다.

p.682 인류의 영역 밖으로 밀려나는 것, 그것은 인간의 몫인 구속, 소외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노인들 대부분은 이러한 기회를 이용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기회는 몇몇 사람들에게 제공되며 그 중 몇 사람은 그 기회를 포착한다.

p.683 특히 여자들에게 있어 말년은 하나의 해방이다. 평생 동안 남편에게 복종하고 자식들에게 헌신한 여자들은 마침내 자신을 염려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p.687 지적인 면에서도 노년은 해방을 가져다 줄 수 있다. 노년은 환상에서 벗어나게 해주기 때문이다.

p.688 나이가 가져다 주는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나이는 맹목적인 숭배와 환상들을 제거해준다.

p.689 자유와 명석함도 만약 어떠한 목표가 더 이상 우리를 자극하지 않는다면 별 소용이 없는 것이다. 계획들이 아직도 우리 가슴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면, 자유와 명석함은 큰 가치를 지닌다. 노인의 가장 중대한 행운은 역시 양호한 건강상태보다도 그에게 있어 세계가 아직도 목표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활동적이고 유용한 노인은 권태와 노쇠에서 벗어난다.

8. 노년의 실례들

p.707 빅토르 위고는 아직 젊었을 때에도 그의 작품 속에서 노인들에게 영예로운 위치를 주었다. 위고의 예는, 우리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인생의 초기부터 어떤 노년을 준비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우연들, 특히 생물학적인 사고가 노년을 변질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개인의 손에 달려 있는 것에 한해서, 우리는 자신의 삶의 방식에 따라 스스로 노년을 결정한다.

p.747 라마르틴의 경우에는 무엇인가 본보기적이며 극단적인 것이 있다. 행운과 불운은 즉각적인 정의 개념을 허망한 것으로 만든다는 것을 우리는 보았다. 그러나 라마르틴은 말년에 가서 젊은 시절과 장년기의 과오의 대가를 가혹하게 치렀다.

p.753 그는 유치하게 경박했고, 변덕스러웠으며, 허영심이 많았고,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비판의식이 없었고, 예측을 하지 못했다.

9-1. 결론

p.757 노년이 우리의 이전 삶의 우스꽝스러운 하잖은 모방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한 해결책은 단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우리의 삶의 의미를 주는 목표들을 계속하여 추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들이든, 집단이든, 대의명분이든, 사회적 혹은 정치적인 일이든, 지적•창조적인 일이든, 그 무엇에 헌신하는 길 밖에 없다.

p.758 모든 환상들이 사라지고 생명의 열기가 식었다 하더라도, 계속 삶에 밀착하기 위해서는 차라리 노년에 대해 너무 생각하지 말고, 정당하고 참여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낫다.

p.759 직업의 구속에서 벗어난다 해도, 이제 주위에는 사막만이 보일 뿐이다. 이 세상을 목표들, 가치들, 존재 이유들로 가득 채울 만한 계획들에 착수할 기회가 그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죄이다. 우리 사회의 ‘노인정책’은 수치스러울 정도이다. 그러나 더욱더 수치스러운 것은 우리 사회가 대부분의 청년기와 장년기의 인간에게 하는 대우이다. 우리 사회는 그들의 말년의 몫인 훼손된 비참한 조건을 미리부터 만들고 있다. 노쇠가 때이르게 시작되고, 빨리 진전되며, 육체적으로 고통스럽고, 정신적으로 끔찍한 것은 사회의 잘못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빈손으로 노년에 다가가기 때문이다. 소외되고 착취당한 사람들은 기력이 사라지면 숙명적으로 ‘폐품’과 ‘쓰레기’가 되는 것이다.

p.760 노인의 조건이 받아들인 만한 것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인간을 온통 다시 만들어내야 한다. 인간들 사이의 모든 관계를 재창조해야 한다. …
만약 문화가 일단 습득된 후에는 곧 잊혀지는 무기력한 지식이 아니라 실제적이고 살아 있는 것이라면, 만약 인간이 문화를 통해 자기 주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또 그 영향력이 해를 지남에 따라 완성되며, 또 거듭나는 것이라면, 인간은 어떤 나이에나 내내 능동적이며 유용한 시민일 것이다.

p.761 (젊은이와 노인) 이 두 순간 사이의 기간 동안에는 일상의 반복되는 삶이 문제들을 은폐한다. …
이 둘 사이에서 기계는 돌아간다. 그 기계는 인간을 빻고, 사람들은 그 속에서 으깨지는 대로 가만히 있다. 사람들은 거기서 도망치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p.762 체제 전체가 이 문제에 맞물려 걸려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요구는 근본적인 것이 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바로 삶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 ‘내가 저자라면’

가. 전체적인 뼈대

700 페이지가 넘는 이 책에서 대부분의 페이지는 노년의 슬픔과 고통 그리고 피할 수 없는 비참한 현실을 묘사하고 소개하는데 사용되었다. 그리고, 중간중간과 각 장의 끝부분은 그 장에서 나열된 사례들에 근거한 저자의 분노와 주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사회적으로 묵인되고 있는 노년의 비참함에 대해서 사회의 힘 있는 자들의 인식과 동참을 촉구하고 있다.
1부에서는 과학[의학]적인 자료와 민속학적, 역사학적인 문헌, 그리고 현대에서의 노년과 관련된 사례들을 제시하며 노년의 고단함을 열거하고 있다. 또한, 2부에서는 저명한 사람들의 사례를 제시하면서 그들 스스로가 노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살았는지 소개하고 있는데, 1부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노년에 대한 다양한 인사들의 평가가 우울한 사례들로 적혀있다. 차이가 있다면 후반부로 가면서, 앞의 우울한 사례들을 근거로 노년은 사회적•문화적으로 규정된 것이라는 고발과 함께 이를 극복하기 위한 기득권자들[기득권 계층]의 참여를 요구하는 저자의 주장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며, 이는 결론 부분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아니, 결론 부분에 이 책의 중요한 주장 – 결국, 행복한 노년은 그들이 속한 체제의 성격에 달렸으며, 노년의 행복은 노년 이전의 청년기와 장년기의 인생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는 생각 - 이 몰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집중되어 있다.
내가 느끼기에는, 저자의 이성적이고 날카로운 비판에는 충분히 동의하지만, 이의 근거로 제시한 수 많은 실례들이 너무 많고 산만하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즉, 노년의 비참함을 보여주는 사례들 중 중요한 것을 압축하여 제시하고, 바람직한 해결방안을 좀 더 구체적이고 탄탄하게 제시하면 좀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나. 감동적이었던 부분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나 친구의 죽음은 우리에게 현재만을 앗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보냈던 우리 인생의 한 부분을 통째로 앗아간다. …
고인만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었던 자신에 대한 청년기와 유년시절이 고인과 더불어 사라져버린 것이다.” (p.513)

죽음으로 인한 가까운 사람들과의 이별이 갖는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사실, 이것은 연구원 지원을 위한 개인사를 쓸 때도 경험했던 부분이다. ‘태몽’에 관한 자료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해당 기억을 지니고 있을 수 있는 분은 어머님 혼자뿐이셨다. 기억이 거의 안 나신다고 했을 때의 그 허망함이란…. 그리고 내 어린 시절의 내가 알고 있지 않은 추억과 기억들을 지니고 계신 분들도 차츰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 구석이 휑해진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죄이다. 우리 사회의 ‘노인정책’은 수치스러울 정도이다. 그러나 더욱더 수치스러운 것은 우리 사회가 대부분의 청년기와 장년기의 인간에게 하는 대우이다. 우리 사회는 그들의 말년의 몫인 훼손된 비참한 조건을 미리부터 만들고 있다.” (p.759)

이 책이 출판된 시절 보다는 나아졌겠지만, 현재도 우리의 삶은 거칠다. 물론 그 때 보다 풍요로워지고 진보한 것은 사실이겠으나, 인간답다든지 정신적인 여유가 존재한다든지 하는 면에서는 더 열악한 환경일 수도 있으리라. 개인의 삶이 인정 받으며, 자유의지가 존중되는 삶이 이루어져야 인생의 노년도 충실해진다는 저자의 통찰력은 큰 반향을 일으킨다.

다. 보완점

이 두꺼운 책을 인내를 갖고 읽어가면서 읽는 내내 떠나지 않는 두 가지 궁금증이 있었다. 그 하나는, ‘저자는 왜 이런 책을 썼을까’ 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결국 저자는 무슨 주장을 하려는 것일까’ 하는 것이다.
물론 두 가지 의문에 대해서 서론과 머리말에 일부 언급되어 있기는 하다.

“내가 이 책을 쓰는 이유는 바로 이런 침묵의 음모를 깨버리기 위해서이다. … 소비사회의 행복의식, 그 태평함을 뒤흔들어놓아야 한다. ” (p.8)
“노년은 단지 생물학적인 현상이 아니라 문화적인 현상이기도 한 것이다.” (p.23)

내 생각은 이렇다. 우리를 포함하여 모든 인간이 겪게 될 불행한 노년에 대해 폭로하는 것은 당연히 바람직하지만, 너무 지나치지 않나 하는 점이다. 여기서 지나치다 함은 질적으로가 아니라 양적으로 지나치다는 의미이다. 인용된 사람들이 다양하지만, 그런 사례들이 말하는 것은 너무 유사한 내용들이어서 지나치게 지루함을 안겨준다. 대부분의 사례가 처음부터 노년의 고통을 증언하는 것이고, 조금 다른 사례의 경우도 결국 노년은 고통스러운 것이었다는 내용이기에 말이다.

저자의 주장과 관련해서는, 그 주장이 너무 끝부분 – 주로 결론 부분 – 에 상대적으로 적은 분량으로 언급되어 있어, 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저자의 주장을 명료하게 이어갈 수 없었다는 점이다. 물론, 결론 부분의 주장이 앞 부분의 전개와 동떨어진 것은 아니지만, 이전까지 전개된 수많은 사례들과의 지속적이고 밀접한 연결이라는 면에서는 그리 매끄러운 구성은 아닌 것 같다.
어쨌든, 저자의 실증적인 자세와 그가 축적한 박학한 지식 그리고 전 생애에 걸쳐 현실에서 보여준 참여정신에는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덧붙여서, 거론된 사례의 주인공들이 주로 유럽 그 중에서도 프랑스인들이 많은 것 같아서 흥미를 덜 느끼게 되었던 면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밝히며 4번째 과제를 마무리한다. 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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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3.24 19:41:27 *.36.210.80
점점 깊이감 있게 읽으시는 군요. 참 수고 많으셨어요. 4번 째 마무리 어떠세요? 홀가분 하신가요? 노력하신 만큼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랍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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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빈
2008.03.24 22:34:51 *.109.192.214
오늘은 오랜만에 좀 여유네요..ㅋㅋ
이번 주말 압박감도 덜할 것 같고요 ^^ - 맞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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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스
2008.03.24 23:26:33 *.117.68.202
저도 책 읽는 내내 의문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많은 양의 비슷한 자료를 넣었을까? 아직도 의문스럽습니다. ㅎㅎㅎ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덧글 넣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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