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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24일 02시 38분 등록
노년 나이듦의 의미와 그 위대함
시몬 드 보부아르 글/홍상희․박혜영 옮김/책세상

1. ‘저자에 대하여‘ - 저자에 대한 기록과 개인적 평가

프랑스의 신세대 여성의 대표주자, 시몬 드 보부아르. 그녀는 그녀 자체로서 유명인일까, 사르트르와의 계약결혼 아니면 사르트르의 아내로서 더 유명할까?

2008년은 보부아르 탄생 100주년에 해당되는 해이다. 프랑스 파리에서는 지난 1월 9일 보부아르의 탄생일을 기념해 '파리 인터내셔널 심포지엄'을 개최했고, 이 심포지엄에는 세계 각지에서 온 보부아르 전문가들과 페미니스트들이 참석했다고 한다. 언론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여 TV 방송에서 보부아르의 일생을 조명한 다큐멘터리가 방영됐는가 하면, 보부아르와 사르트르의 삶을 재조명한 TV 단편물 '플로르의 연인들'이 방송되기도 하였다. 이외에 5월에는 시몬 드 보부아르 다리 위에 비디오가 설치되어 "난 인생에서 모든 걸 원한다, 시몬 드 보부아르에 의한 자유"라는 영화가 상영될 예정이고, 또한 보부아르에 대한 서적도 무수히 발간되고 있다고 한다.

이 열기만 보더라도 그녀는 그녀 자체로서 대단한 역사적 인물임을 알 수 있겠다.

시몬 드 보부아르(1908∼1986)는 경제적으로 몰락한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그녀는 일찍부터 "유명한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상류층의 관습대로 가톨릭 학교에 다녔지만 사춘기를 거치면서 신앙을 버렸고, 그녀의 목표는 "인식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이 되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1929년 소르본 대학교에서 철학교수자격시험에 최연소이자 최우수의 성적으로 합격한다. 공식적인 1등은 사르트르였지만 심사위원들은 한결같이 보부아르쪽이 "더 나은 철학자"임에 동의했다고 한다. 단지 사르트르는 고등사범 출신인 데다가 나이도 3살이나 더 많고 재응시한 터라 1등을 주었다는 게 후문이다.

그후 그녀는 사르트르와 연인 사이가 되었고, 이들의 관계는 사르트르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각기 다른 공간에 살면서 매일 만나는 진정한 정신적 반려로 산다는 "계약 결혼"의 장본인으로서 세기의 관심을 불러모았다. 1차 세계대전 후 격렬한 마르크시즘 논쟁을 시대를 거쳐 실존주의로의 숙성, 제2차 세계대전 동안의 레지스탕스 활동, 이 모든 것을 두 사람은 함께했다.

그녀는 여러 고등학교를 다니며 가르치다 1943년 교직을 떠난다. 그리고 그녀의 꿈대로 집필에 전념하여 <초대받은 여자>, <타인의 피> 등의 작품을 펴내게 된다. 그후 발표한 <제2의 성>은 센세이션을 불러일킨 책으로 한때 바티칸이 금지하던 책이 되었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페미니스트들이 사랑하는 책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 <제2의 성>을 가리켜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의 기본 개념들을 여성 문제에 대입한 것이라 하여 한때 사르트르 사상의 파생물 정도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이것은 상당히 잘못된 견해이다. 보부아르는 사르트르를 만나기 전부터 그런 개념들에 대한 독자적인 견해를 지녔으며 이를 입증해주는 자료 역시 발견된다. 보부아르 자신이 씁쓸히 지적했던 대로, 그녀를 "사르트르의 동반자"라 일컫기는 해도 사르트르를 "보부아르의 동반자"라 하지는 않는 세상의 선입견이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 냈을 뿐이다.

그녀의 <제2의 성> 저술로 좀처럼 바꾸지 않았던 여성의 지위나 역할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듯 싶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여성의 인권을 위해 낙태를 주장하는가 하면 독립된 인간으로서의 여성의 권리와 삶에 대해 당시에는 매우 파격적인 주장을 펴는 페미니즘 이론가가 되었다. 들리는 후문에 의하면 이것은 모두 샤르트르의 여성 편력에 대한 보부아르의 대응책이었다고 한다.

보부아르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파리 지성계의 한복판에서 살았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소설 <레 망다렝>을 써냈다. 이 작품으로 공쿠르 상을 받았으며 1958년부터는 10여년간에 걸쳐 4부작 자서전의 집필에 들어가기도 했다. 이런 작품들은 1930년대부터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지식인 사회를 극명히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사르트르가 죽은 뒤 1981년에는 그의 고통스러 운 말년에 함께 한 추억들을 <작별 예식>이라는 책으로 묶어내기도 했다. "당신을 너무나 사랑하오, 내 사랑 카스토르"라는 마지막 말로 사르트르는 보부아르와의 관계를 이야기하였다. "카스토르"란 쉼 없이 일을 만들어내는 그녀의 부지런함을 집 짓는 비버(카스토르)에 비겨 사르트르가 붙인 별명이라고 한다.

사르트르의 죽음 이후 곧이어 그녀도 세상을 떠났고, 그녀의 개인적인 자료들이 속속히 세상에 공개되기 시작했다. <제2의 성>을 쓰던 바로 그 무렵에 만난 한 미국인 남자에게 전적으로 예속된 아내이기를 자청하며 했던 얘기며, 여제자들과 동성애적 관계를 맺으면서 사르트르와 삼각 내지는 사각 관계를 벌였던 얘기 그리고 사르트르의 임종에 관한 이야기까지....분명 그녀는 실존 철학에 입각하여 주체적인 선택의 삶을 살았고, 끊임없는 글쓰기를 통해 자기 의도대로 만들어진 삶을 보여주었던 여인이라 하겠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서론

내가 이 책을 쓰는 이유는 바로 이런 침묵의 음모를 깨버리기 위해서이다.(8P)

마르쿠제는, 소비 사회는 불행의 의식을 행복의 의식으로 대체시켰고, 모든 죄의식의 감정을 비난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소비 사회의 행복 의식, 그 태평함을 뒤흔들어놓아야 한다. 그러한 태평함은 나이 askg은 사람들에게 죄를 짓는 것일 뿐만 아니라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기도 하다.(9P)

“청춘기는 꽤 여러 해 동안 지속된다. 인생은 바로 이런 청년들을 노인들로 만든다.” -프루스트-(11P)

노인들의 사랑과 질투는 추하거나 우스꽝스럽고, 성행위는 혐오스러우며, 폭력은 가소로운 것으로 여겨진다.(11P)

"모든 현실 중에서 순수하게 추상적인 개념을 가장 오랫동안 간직하는 현실은 아마 노년기일 것이다.“
-프루스트-(12P)

젊거나 혹은 한창 나이일 때 우리는 붓다처럼, 우리의 내면에 이미 미래의 노인이 살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현재의 우리와 우리의 노년기를 갈라놓고 있는 시간은 너무나도 길어서 우리 눈에는 그것이 영원으로 착각되는 것이다.(13P)

이제 속임수는 그만두자. 문제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미래, 그때의 우리 인생의 방향이다. 미래에 우리가 어떤 인간일 것인가를 모른다면 우리는 지금 우리가 누구인가도 알지 못한다.(14P)

한 인간이 인생의 마지막 15년 또는 20년 동안 인수를 거절당한 불량품으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은 우리 서양 문명의 실패를 나타낸다.(16P)

한 사회를 뒤흔들어 동요시키려면 그 사회에서 가장 불행한 자들의 운명을 개선하는 데에 노력을 집중시켜야만 한다.(16P)


머리말

모든 인간의 상황이 그러하듯이, 늙는다는 것에도 존재적인 차원이 있다. 늙는다는 것은 개인이 시간과 맺는 관계를 변경시킨다. 고로 늙는다는 것은 인간이 세계와, 그 자신의 역사와 맺는 관계도 변경시킨다.(17P)

한 사람 한 사람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또 그 사람들에게서 영향을 받는다. 노년은 이런 무한한 순환성 속에서 포착되어야만 한다.(18P)

타인의 노년은 앎의 대상이다. 반면 자기 자신의 노년은 자기의 상태에 대한 산 경험과 관련 있는 법이다.(19P)

노년은 정태적(情態的)인 사실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과정의 결말이며 연장이다.(19P)

매순간 평형을 잃고 다시 정상을 회복하는 불안정한 체계, 그것이 삶이다. 죽음의 동의어, 그것은 부동(不動)의 상태이다. 변화야말로 삶의 법칙이다. 노화란 변화의 한 유형이다. 불가항력적이며 불리한 변화, 그것을 우리는 노쇠라고 부르는 것이다.(20P)

미국의 노인학 의사인 랜싱씨는 노화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노화란 보통 시간의 흐름과 관계가 깊으며, 성숙기 이후 뚜렷해져서 마침내는 확고부동하게 죽음에 이르는 불리한 변화의 점진적인 과정이다.”(20P)

인간에게 진보란 무엇이고 퇴보란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일은 어떤 목표에 의거했을 때에만 가능하다.(23P)


제1부 외부에서 본 노년

제1장 노화와 생물학

노년은 유쾌하지 않은 문제였던 것이다.(35P)

현대 의학은 노화를 출생이나 성장, 번식, 죽음과 똑같이 삶의 과정에 내재된 것으로 간주한다.(37P)

“노화나 죽음은 성장과 성숙의 확정된 프로그램이 한계에 도달하게 될 때 일어나는 것이다.” -에스코피에 랑비오트-(38P)

릴케의 말처럼 “마치 과일이 그 씨를 품고 있듯이 우리들 각자가 우리 내면에 품고 있는” 죽음과 같이, 모든 신체 조직은 애초부터 그 완성의 피할 수 없는 경과로서 노화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38P)

질병은 사고이다. 그러나 노화는 생명의 법칙 그 자체이다.(42P)

노화와 질병은 서로 관계가 있다. 질병은 노화를 가속시키고, 노령은 병리학적 장애가 생길 여건, 특히 노령의 특징인 퇴화 과정의 여건을 마련한다. ‘순수한 상태의 노화’라고 부를 수 있는 경우를 만나기란 아주 드문 일이다.(42P)

미국의 노인병 학자 하월은 노쇠는 “사양길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속도로 내려가지는 않는다. 우리는 연속적이고 불규칙적인 보행으로 사양길을 내려가며,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빨리 굴러 떨어진다.”(45P)

"시간의 척도는 어떤 사람에게는 더 빠를 수도 있고, 혹은 더 느릴 수도 있다.“ -프루스트-(45P)

“불행한 인간 조건이여! 정신이 겨우 성숙한 지점에 다다르면, 육체는 쇠약해지기 시작하는구나!” -몽테스키외-(46P)

"나이가 가져다주는 정신의 힘과 또한 나이의 결과인 육체의 쇠약 사이의 이 기이한 불협화음은 언제나 나늘 놀라게 한다. 그것은 내게 자연의 법령들 중 하나의 모순으로 여겨진다.“(47P)

나이 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많이 겪는다. 그들은 잘 아는 사물들은 쉽게 재조직하지만 변화에는 저항한다. 한 ‘세트’라고 부르는 것--다시 말해서 태도와 정신적인 방향 설정--을 얻는 일은 그들에게 막대한 노력을 요구한다. 노인은 예전에 얻은 습관들의 노예인 것이다.(49P)

'아름다운 노년‘이나 ’정정한 노년‘이라고 우리가 말해도, 그건 나이 든 사람이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균형을 이루었다는 뜻이지, 그의 신체 조직이나 기억력, 운동 작용과 정신 작용의 적응 능력들이 젊은이와 같다는 뜻은 아니다. 아무리 장수한다고 해도 인간은 노쇠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 노쇠란 불가항력의 것이며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51P)


제2장 민족학적 자료들

세련되지 못한 것일지라도 일종의 문화라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인간 집단이란 없다.(54P)

"아버지, 머리를 푹 담그세요. 그래야 가실 길이 훨씬 짧아질 거예요.“(72P)

경제적 생활이 더 풍부한 지식을 요구하고 또 자연과의 투쟁이 덜 격렬하여 어떤 점에서는 자연에 대해 한 발짝 물러서게 될 때 마법과 종교는 발전한다.(84P)

기술, 주술, 종교는 원시 사회․문화의 본질을 이룬다.(87P)

조상은 자손들의 지붕 밑에서 살고 있는 친절한 영혼이며, 자손들이 그에게 제사를 올릴 경우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영혼인 것이다.(107P)

효심은 관습과 종교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아들은 부모를 죽이는 죽음의 의식을 가능한 한 가장 빈틈없이 세심하게 실행하면서 자신의 존경과 애정을 부모에게 증명해 보이는 것이다.(110P)

마술은 앎에 접근하는 사고 체계이다.(111P)

노인은 필요하다. 또한 위험하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 마술적 힘을 자신에게 유익하게끔 전환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노인의 이러한 양면적 가치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죽음에 가까워진 그들은 초자연적 세계에도 가까운 존재이기 때문이다.(111P)

가장 중요한 사실은 노인들의 지위는 스스로 ‘획득되지’ 않고 ‘부여된다’는 것이다.(116P)

인간은 자기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노년의 의미와 가치를 정의하는 것은 바로 인간의 전체적인 가치 체계이다.(118P)


제3장 역사 사회에서의 노년

노년의 이미지란 불확실하고, 선명하지 않으며, 모순적이기 때문이다.(119P)

공자는 노년을 지혜의 소유와 동일시함으로써 정신적으로 노인의 권위를 정당화했다. “15세에 나는 지혜를 공부하는데 열중했으며, 30세에는 지혜 속에서 더욱 강해졌고, 40세에는 더 이상 의혹이 없었으며, 60세에는 이 세상에서 나를 심히 놀라게 할 것이 아무 것도 없었고, 70세에는 마음의 욕망을 따라도 도덕을 위반함이 없었다.”(124P)

"훌륭한 인간들은 천 년을 산 후 이 세상에 지치게 되면 수호신의 지위에 오른다“ -장자-(125P)

메난드로스에게 있어서 노화란 외부에서 인간을 공격하는 불길한 힘으로 나타난다. “오 노화여, 너는 인류의 적, 모든 형태의 아름다움을 파괴하는 것은 바로 너, 너는 찬란하게 아름다운 사지를 무겁게 축 늘어뜨리며, 신속함을 느릿느릿함으로 변모시키느니.”(149P)

인간의 진실은 이데와와 유사한 불멸의 영혼 속에 있으며, 육신은 겉모습에 지나지 않는다.(150P)

“다른 즐거움들 -- 육체적 삶의 즐거움들 -- 이 약화되면서 정신적인 것들에 대한 나의 욕구와 기쁨은 점점 더 증가하는도다.” -플라톤-(151P)

노인들은 온건해 보인다. 그들에게는 욕망은 없고 단지 이해관계를 따지는 이기심밖에 없기 때문이다. 노인들은 바로 이런 이기심에 의해 사는 것이지 아름다움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153P)

"가을은 한 해의 운행을 마치는 노년과도 같다. 습기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으나 열기는 사라지거나 약해졌으니 추위와 메마름의 신호인 가을은 육신을 쉽게 병들게 한다.“ -플루타르코스-(155P)

가장 위대한 일들이 성취되는 것은 “충고와 권위와 현명한 성숙함에 의해서이다. 노년에는 이러한 자질들이 사라지기는커녕, 반대로 가장 풍부하게 갖추어진다.”(165P)

"노년을 반갑게 맞아들이자, 노년을 소중히 여기자. 노년을 잘 이용할 줄 알면 즐거움이 많아질 것이다. 과일은 상하는 순간에야 비로소 그 맛을 제대로 풍기게 된다. 아직은 전혀 급격하지 않은 움직임이므로 세월의 비탈길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시기, 이 시기는 그윽한 시기이다……쾌락의 욕구를 느끼지 않는 것, 바로 그것이 말하자면 쾌락을 대치한다.“ -세네카-(168P)

"오 시간이여, 위대한 유린자여, 오 그대, 샘 많은 노년이여, 그대들은 함께 모든 것을 파괴하고, 그대들의 이빨로 야금야금 갉아먹어 마침내 모든 것을 서서히 죽음 속에 소멸시켜버린다.“ -오비디우스-(169P)

"장수의 대가(代價), 그것은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상실, 계속되는 초상, 그리고 영원히 계속되는 슬픔 속에 검은 상복을 걸친 노년이다.“(170P)

늙는다는 것은 소중한 사람들의 죽음을 보는 것이며, 초상과 슬픔이라는 형을 선고받는 것이다.(170P)

"노인은 태어나기 이전의 재와 먼지로 돌아갈 때까지 기침과 가래와 오물투성이다.“ -위그 도를레앙-(189P)

인간의 노년이 동물들의 노년보다 더 길고, 더 고통스러운 것은 모두 인간의 책임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경솔한 탐욕 탓에 그런 선고를 받은 것이다.(190P)

단테는 고령의 노인을 육지를 보고 가만히 돛을 내리며 항구에 서서히 다가가는 항해자에 비유한다. 인간의 진실은 내세에 있으므로, 인간은 단지 짧은 여행에 불과했던 이 지상의 삶의 종말을 편안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199P)

믿음이 확실한 기독교인에게 노년이란 자신의 구원을 확보하는 순간이다.(199P)

롱사르는 젊음의 덧없음이라는 주제를 종종 얘기했는데, 그에게 젊음은 슬픔과 추악함으로 가득 찬 미래가 염탐하고 있는 시간이다.(222P)

늙는다는 것, 그것은 비틀거리는 어지러운 술꾼의 불안정한 움직임, 혹은 바람이 제멋대로 조종하는 막대기일 뿐이다.“ -몽테뉴-(225P)

우리는 충동의 곤란함,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혐오를 지혜라 부른다.(226P)

몽테뉴의 위대함은 그가 능력이 감소했다고 스스로 느끼는 순간 최고에 달한다. 자신에 대한 엄격함이 없었더라면 이런 위대함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자기 만족은 능력을 감퇴시킨다. 몽테뉴는 늙어가면서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할 줄 알았던 것이다. 그가 발전을 했다면 그것은 세상과 자신에 대한 그의 태도가 점점 더 비판적이 되었기 때문이다.(226P)

노인은 청춘기와 성인기를 돋보이게 하는 장치에 불과하다. 즉 노인은 인간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한계로 여겨진다. 노인은 인간 조건의 영역 밖에 존재한다.(231P)

노년은 서글픈 하강이다.(233P)

이마의 주름살은 “시간의 흐름의 궤적이고 시간의 발자국”이다. -케베도-(240P)

시간은 가장 아름다운 것들을
모욕하기 좋아한다오
내 얼굴에 주름살을 그려놓은 시간은
당신의 장미도 시들게 할 것입니다.
-코르네유-(246P)

……사랑스러운 여인을 사랑한다는 것, 그리고 많은 연적들 중에 자신이
가장 사랑스럽지 못함을 깨닫는 것은 얼마나 크나큰 형벌인가.
-코르네유-(247P)

“내 나이에 가장 서글픈 것은 희망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희망은 가장 달콤한 열정이며 우리가 유쾌하게 사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하는 열정이다.” -생테브르몽-(249P)

“노인에게 남아 있는 가장 큰 기쁨은 산다는 것입니다. 사랑만큼 그들에게 삶을 확신시켜 주는 것은 없습니다……. ‘나는 사랑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아주 생생한 결과입니다. 이것을 통해 젊은 시절의 욕망을 회상하고 때로는 아직도 젊다는 상상에 빠지기까지 하지요.” -생테브르몽-(249P)

문제는 다시 젊어지는 것이 아니라 젊어질 수 있다는 것, 즉 한계에서 벗어나서 결코 막다른 골목에서 끝나지 않는 모험처럼 삶을 다시 사는 것이다.(270P)

"이 세상에서 노인이란 무엇인가? 그들은 움직이는 무덤일 뿐이다. 군중은 말을 건다. 묘비명을 읽기 위해 다가서는 것이다.“ -라므네-(282P)

인류의 유일한 희망은 자신에게서 살려는 의지를 근절시켜 더 이상 후손을 만들지 않음으로써 완전한 무(無)로 미끄러져 가는 것이다. 자기 안의 의지가 강하면 강할수록 인간은 지혜와 더욱 더 멀어진다. -쇼펜하우어-(283P)

어린 시절은 행복하다. 왜냐하면 어린 시절은 표상이지, 의지가 아니기 때문이다.(283P)

노년의 시간은 너무 빨리 흐르기 때문에 더 이상 권태를 느끼지 못한다. 정열은 잠잠해지고, 뜨거운 피는 식는다. 성적 본능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이 나이의 인간은 이성을 되찾는다. 이때 “우리는 지상에 있는 모든 것의 허무에 대해 다소 확신을 갖게 된다.” 이러한 진리의 발견은 우리에게 행복의 조건이며 본질인 지적 평온을 준다.(284P)

“인간이, ‘감탄할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호라티우스의 말, 즉 이 세상 모든 것이 헛됨과 허식의 덧없음에 대한 진실되고 견고한 확신에 이르는 것은 상당히 나이가 들어서이다. 이제 환상은 없다. 노인은 완전히 환상에서 벗어난다.”(284P)

만일 삶이 불행하여 차라리 죽음이 더 낫다면, 노년이라는 이미 반쯤 죽은 상태는 환상의 나이인 젊은 시절보다 낫다. “사실 삶의 짐은 젊은 시절보다 더 가볍다”라는 쇼펜하우어의 판단은 완전히 부정적인 것이다.(285P)

“노년보다 더 인간의 정신 속에 모순을 자아내는 것은 없다. 노년, 그것은 젊은이에게 있어서는 믿기지 않는 유령이다. 한창 나이의 남자에게 있어, 그것은 허수아비이다. 그러나 모두가 노년이란 그러려니 생각하고 가능한 한 노년의 불편한 점들과 타협한다.” -스웨친부인-(285P)

“노년은 외부 세계에 대한 일종의 실명이다…… 노인이 더 이상 기원하지 않는 모든 소망, 그에게서 없어져버린 모든 열정을 신이 물려받아 신은 노인에게 항상 더욱 더 큰 내면 세계를 열어준다.” -스웨친부인-(286P)

에머슨은 노인은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우선 노인은 다양한 위험을 모면하고 지금까지 살아온 것을 기뻐하기 때문이다. 이제 두려워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이제 삶은 등뒤에 발자취로 남아 있다. 아무것도 그들에게서 그 삶을 빼앗지 못한다.(286P)

“은총이 주름 사이사이에 섞일 때 노년은 더할 나위 없이 근사한 것. 만개한 노년에은 뭔지 모를 새벽의 빛이 있다.” -《레 미제라블》(289P)


제4장 현대 사회에서의 노년

각 집단 구성원들은 노인의 운명은 곧 자신의 미래의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303P)

아이들은 잠재적 활동량을 지닌 존재이므로 사회는 그들에게 투자함으로써 자신의 미래를 확고 부동하게 보장한다. 반면 사회가 보기에 노인이란 한낱 집행 유예 상태의 죽은 자에 불과하다.(305P)

"현대의 모든 현상들 중 그 과정에 있어서 가장 이론의 여지없이 확실하며, 오래전부터 사전 예측이 용이하고, 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인구의 노화이다.” -소비-(310P)

노동 시장에서 일찍 탈락된 퇴직자들은 이익을 기초로 하는 사회가 인색하게 떠맡는 짐일 뿐이다.(316P)

“죽기에는 너무 많고 살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금액이지요”라고 한 퇴직 연금자는 서글프게 말했다. 그리고 다른 퇴직 연금자는 “더 이상 일할 능력이 없을 때, 우리는 겨우 시체를 만들기에나 딱 적당할 뿐이죠”라고 말했다.(338P)

《또 다른 미국》이라는 저서에서 해링턴은 빈곤 속에 사는 수백만의 노인들이 ‘바닥으로 향한 하강의 소용돌이’의 희생자임을 보여준다.(342P)

“우리 시민들 중 고령자들의 감정적인 문제 발전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는 요인들로는 노인들을 기피하는 사회적 배척 현상, 친구들 범위의 축소, 극심한 고독, 인간에 대한 존경심의 감소와 상실, 그리고 그들 자신에 대한 혐오감을 들 수 있다.” -린든 박사-(344P)

풍족한 사회도 노인들에게는 단지 ‘동물적인 생존’만 허용할 뿐 그 이상 아무 것도 주지 않는다.(344P)

활동하는 개인의 범주에서 갑자기 비활동적인 개인의 범주로 떨어져 늙은이로 분류되는 것, 재원의 놀랄 만한 감소와 생활 수준의 격하를 받아들이는 것, 그것은 대다수의 경우 심리적, 도덕적으로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 하나의 비극이다.(365P)

남자의 인생에서 퇴직은 뿌리 깊은 단절을 가져온다. 그것은 과거와의 단절이다. 그는 퇴직으로 인한 휴식이나 여가 시간 같은 어떤 이점과, 궁핍과 자격 박탈이라는 심각한 단점을 초래하는 그의 새로운 신분에 적응해야 한다.(366P)

“어떤 사람에게 있어 최악의 죽음은 자기 삶의 중심, 진실로 그를 현재의 그로 만들어 주는 것을 상실하는 것이다. 퇴직이란 말은 모든 말 중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단어이다. 자발적으로 선택하든, 혹은 운명적으로 강요당해서이든 퇴직한다는 것, 우리를 현재의 우리로 만들어 주는 일을 포기한다는 것, 그것은 무덤 속으로 들어 가는 것과 같다.” -헤밍웨이-(366-367P)

일이란 예속이며 피곤인 동시에 관심의 원천이며 균형의 요인이고, 우리를 사회에 통합시켜주는 요인이다.(367P)

“퇴직 후의 노인들에게 있어서 한숨 쉬는 것만큼 정상적인 일은 아무 것도 없다. 퇴직한 사람에게 있어 퇴직을 후회하지 않는 것처럼 드문 일도 없다.” -생테브르몽-(367P)

“퇴직자의 역할, 그것은 더 이상 아무 역할도 없다는 것이다.” -버제스-(372P)

퇴직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고 느끼는 아무것도 소용 없다는 슬픔, 홀로 버려진 듯한 고독의 감정 등을 되살아 나게 하는 것이다.(377P)

오늘날 우리는 ‘늙고 가난하다’라는 말은 거의 같은 말의 반복임을 알고 있다. 비록 노년이 우리를 정열에서 해방시킨다고 해도,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채우지 못하는 무력감에 의해 가난은 더욱 가중될 것이다. 즉 노인들은 배고프고, 춥고, 그로 인해 죽게 된다. 그래서 단지 죽음 만이 그들의 육체를 ‘해방’시킨다.(385P)


제2부 세계 속의 존재

제5장 노년의 발견과 수락 : 육체의 산 경험

노년은 운명이다. 노년은 우리 자신의 삶을 휘어잡고 때로는 우리를 당황하게 만든다.(392P)

나이라는 개념은 과거를 뒤돌아본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또 생을 중단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미래를 향하여 돌진하는 우리는 느낄 수 없을 만큼 조금씩, 하루 또 하루, 일 년 또 일 년 미끄러져 간다.(393P)

노년의 진실, 그것은 객관적으로 정의되는, 타인에게 보이는 나의 존재와 그것을 통해 내가 나 자신에 대해 갖는 자의식 사이의 변증법적 관계이다.(393P)

‘60대’라는 단어는 모두에게 하나의 동일한 사실을 나타낸다. 그 단어는 진찰을 통해 검출해낼 수 있는 생물학적인 현상들과 일치한다. 그러나 우리의 개인적인 경험은 우리에게 숫자로서의 나이를 나타내주지는 않는다.(393P)

노화는 생리적 균형의 새로운 생태이다. 별 무리 없이 노년에 대한 적응이 이루어지는 경우, 당사자는 자신이 늙어간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394P)

노화에 관한 신체적인 증상들이 몸에 나타난다 할지라도 그것들은 분명치가 않다. 사람들은 회복이 가능한 병과 회복이 불가능한 노화를 은근히 혼동하고 싶어한다.(394P)

“당신은 모든 악 중에서 가장 심각한 것이 무엇인지 아시오? 그것은 쉰다섯 이상 나이를 먹는 것이오” -투르게네프-(394P)

노쇠를 건강한 상태와 질병의 중간 상태로 설정한 갈레노스의 견해에는 일리가 있다. 어처구니없게도 노인은 정상적이면서 비정상적인 상태인 것이다.(396P)

노인들이 자기 건강에 만족할 만하다고 말할 때, 또는 건강에 아예 신경 쓰기를 그만둘 때도 노인은 이미 노쇠 현상 속에 안주해버린 상태이다. 다시 말해 노쇠 현상이라는 것이 그들의 장애의 해명인 것이다.(396P)

노년이라는 것은 많은 핑계거리가 되며, 여러 제약들도 덜어주므로 노쇠를 부인하기보다 자신을 거기에 내맡기고 포기하는 편이 덜 피곤하기 때문이다.(396P)


노인들은 나이를 내세우며 병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리고, 병을 내세우며 나이를 잊어버리고자 한다. 이런 식의 회피로써 그들은 결국 이것도 저것도 믿지 않는 데 성공하게 된다.(397P)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하루하루이다. 오늘은 어제와 비슷하고, 내일은 오늘과 거의 다름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살아간다. 이것이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신의 섭리에 의한 기적 중 하나이다. -세비네부인-(398P)

‘당신이 원하지 않아도 앞으로 걸어 나아가야 하는걸. 그걸 원하지 않는다면 죽을 수밖에 없는거야.’ 혐오감을 불러 일으키는 자연, 그것이 죽음이야. 그러나 그것은 지나치게 시간이흘러 버린 모든 것의 운명인거야“ -세비네부인-(400P)

“가장 끔직한 것, 그것은 알고 지냈던 사람들을 5,6년 동안 보지 못하다가 --- 매일 보면 늙어가는 모습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 단번에 5,6년 늙어버린 그를 다시 만나게 되는 일이다. 그건 참 볼 만한 구경거리이다. 게다가 자기 자신까지 구경거리로 내놓지 않으면 안 된다!” -레오토-(401P)

"우리는 자기 모습이나 자기 나이는 보지 않고, 남의 모습이나 나이는 자기 앞에 걸려 있는 거울 속을 보듯 똑똑히 본다.“(402P)

주앙도는 70세게 이렇게 자책했다. “반세기 동안 나는 줄곧 스무살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횡령을 포기해야 할 때가 왔다.”(403P)

우리 자신의 영구 불변성을 보장하는 내적 명백성과, 변모의 객관적 확실성 사이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모순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는 이 둘을 한꺼번에 거머쥐지 못하고, 그 둘 사이에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할 뿐이다.(403P)

"젊었을 때 내게 그렇게도 늙어 보였던 사람들의 나이, 오늘 내가 그 나이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나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지드-(409P)

"노년이란 일종의 파산이다“ -샤토브리앙-(415P)

침몰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있어 늙는다는 것은 곧 노년과의 투쟁을 의미한다.(423P)

대양으로 흘러가며 점점 더 웅장해지고 넓어지는 강어귀를
나는 네게서 본다.
-〈노년에게〉 -휘트먼-(429P)

그러나 삶이 저물어가고 거칠었던 모든 정열들이 가라앉을 때……
그때 마침내 가장 고요하고,
모든 날들 중 가장 행복한 풍요로운 날들이 온다.
-휘트먼-(432P)

“정신의 눈은 육신의 눈이 감퇴하기 시작하는 바로 그때 비로소 뜨이기 시작한다.” -플라톤-(440P)

“육체가 노쇠를 향해 하강함에 따라 영혼은 절정을 향해 상승한다.” -주앙도-(441P)

한 개인이 성행위로부터 이끌어내는 만족감은 대단히 다양하고 풍부하다. 무엇보다도 인간은 그 행위에서 쾌락을, 혹은 욕망으로 인한 세계의 변모를, 혹은 일종의 자아의 표상을 얻고자 한다. 또는 이 모든 목적을 동시에 얻고자 한다.(445P)

실제로 프로이트는 ‘정상적인’ 성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성욕은 특별한 행위 속에서 만족을 찾는 것이 아니라, 다른 충동들에 종속되어 있는 기능들에 결부된 ‘쾌락의 획득’ 속에서 만족을 추구하는 것이다.(452P)

위고의 눈에 늙음이라는 것은 결함이라기보다는 명예였다. 늙음이란 신에게 가까이 가는 것, 숭고한 것, 그리고 순수함과 아름다움에 결합되는 것이었다.(467P)

특히 성욕과 창의력과의 관계는 놀라울 만큼 깊은 연관성이 있다. 이 관계는 위고, 피카소 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들의 경우 명백히 드러난다.(490P)

성적 무관심이 필연적으로 모든 영역에 무기력과 무력함을 초래한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옳지 않은 이야기일 것이다. 많은 사례들이 그 반대적인 면을 증명한다. 다만 세상과의 육체적인 접촉이 결여될 대 삶의 한 차원이 사라져버린다고 말해두자.(491P)

성욕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심해지는 하나의 감정이 있는데 그것은 질투심이다.(491P)

노년은 전반적으로 욕구 불만의 시기이다. 그래서 노년은 막연한 원한들을 질투라는 형식으로 구체화하게 한다.(491P)


제6장 시간, 활동, 역사

인간에게 있어서 현실 속에 존재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시간화하는 것이다. 현재 속에서 과거를 넘어서는 계획들을 통해 우리는 미래를 겨냥한다.(505P)

나이는 우리 자신과 시간과의 관계를 바꾸어놓는다. 해가 바뀜에 따라 우리의 과거는 점점 더 육중해지고, 반면 우리의 미래는 점점 짧아진다.(505P)

노인이란 "살아온 긴 생을 뒤에 갖고 있으며, 앞으로 살아갈 삶의 희망이 매우 한정된 인간이다"라고 정의할 수 있다.(505P)

"노인들은 희망으로 살기보다는 차라리 추억으로 살아간다" -아리스토텔레스-(506P)


"늙은 남자는 다시 어린아이로 되돌아가지는 못하지만, 비밀스레 그 시절로 되돌아가 작은 목소리로 엄마를 불러보는 기쁨을 즐긴다." -모리악-(506P)

"과거가 살아 있는 것인지 아니면 죽은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미래이다"라고 사르트르는 지적한다. 진보하고자 계획하는 사람은 과거에서 벗어난다. 그는 자신의 옛 자아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의 자아가 아니라고 정의하고, 분리하여 생각한다.(506P)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나 친구의 죽음은 우리에게 현재만을 앗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보냈던 우리 인생의 한 부분을 통째로 앗아간다. 우리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 그들은 그들의 죽음과 더불어 우리 자신의 과거를 앗아간다.(513P)

특히 노인들을 위로할 길 없는 상태에 빠뜨리는 것은 그들이 자신의 미래와 연결시켰던 사람들, 특히 낳아서 기르고 교육시켰던 젊은 사람들과의 이별이다. 자녀의 죽음, 손자의 죽음은 모든 약속의 갑작스러운 붕괴이다.(514P)

'출세한' 사람은 타인에게는 풍요한 존재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외적인 존재와 그 사람이 스스로 갖고 있는 체험 사이에는 커다란 오해의 심연이 가로놓여 있다.(515P)

나의 기대에 부합하는 현재조차도 내가 기대했던 것, 생에서 헛되이 지향했던 존재의 충만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대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나는 아름다운 인생을 가졌다"라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인생은 소유할 수도 지배할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516P)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전날보다 약간 더 흥미가 사라진 삶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내게 가장 괴로운 것은 20년 전 나의 생활을 떠올리는 것, 그리고 그 후 갑자기 현재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스위프트-(517P)

"늙어가는 사람에게 자연이 부여한 가장 감미로운 특권은 너무나도 쉽고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의 인상들을 되찾는 것이다." -노디에-(518P)

어린아이는 삶을 어려운 학습으로 여긴다. 그리고 극복해야 하는 콤플렉스에 시달리며, 죄의식과 수치심, 불안을 경험한다. 성년기에 억압당했던 나쁜 추억들은 노년기에 다시 눈을 뜬다.(519P)

왜 노인들이 그렇게 쉽사리 어린 시절로 향하게 되는가? 노인은 어린 시절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을 무시하고 싶을 때조차도 그 시간이 노인들의 뇌리를 결코 떠나지 않기에 그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521P)

유아기와 노년기의 결합이 개인에 의해 내면화되는 것이다. 삶을 떠나야 할 노인은 이제 막 혼돈 상태에서 빠져나온 어린 아기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521P)

고르즈는 청춘을 "활동함에 있어서 무기력이 보다 덜한 상태"라고 정의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타인을 위한 또 하나의 타인이 된다는 것이다. 즉 직업에 의해 규정되는 개인이 되는 것이다.(522P)

노인에게 일 년이라는 시간의 길이는 비참할 정도로 짧게 여겨진다. 왜냐하면 우리 인생의 서로 다른 시기마다 시간이 흐르는 속도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늙어갈수록 시간은 빨리 흐른다.(523P)

"추억 속에 옮겨진 여행 중의 하루는 자기 집에서 보낸 하루보다 훨씬 큰 '공간'을 차지한다." -조르주 콩다미나스-(524P)

"낯선 지방에서 보내는 이틀이라는 시간은 일상적인 장소에서 보내는 시간, 소모되어 닳고닳은 시간, 습관으로 왜곡된 시간의 30일의 가치를 지닌다. 습관은 시간을 광채나게 닦아준다. 그래서 우리는 지나치게 왁스를 발라 윤이 나는 마룻바닥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듯 시간 속으로 미끄러진다. 새로운 세계, 언제나 새로운 세계, 영원한 세계, 영원히 젊은 세계, 그것이 바로 낙원이다. 빠른 속도는 지옥과 같을 뿐 아니라, 지옥 그 자체이다. 그것은 추락의 가속화이다. 현재가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현재도 시간도 없이, 추락의 기하학적인 진행이 우리를 무(無) 속으로 집어 던진다." -이오네스코-(527P)

"인간의 현실은 설령 영원한 삶이라 할지라도 유한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적인 것을 선택하면서 스스로를 유한한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자유의 행위 자체는 창조적이며 내 유한성의 수락이다. 내가 나를 만든다면 이때 나는 나를 유한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생은 유일한 것이다." -사르트르-(529P)

장년기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의 미래는 질적으로 변한다. 65세의 우리는 45세 때보다 단지 스무 살만 더 먹은 것이 아니다. 무제한의 미래--무한한 것으로 보이던 미래--를 제한된 미래와 바꾼 것이다.(529P)

"노년이 다가왔을 때, 가장 고통스러웠던 일은 여가의 의미를 완전히 잃어버렸다는 것이었다." -베런슨-(531P)

지적인 관점에서 "문화란 모든 것을 잊어버렸을 때 남는 것"이라고 에리오는 말했다.(534P)

인간 조건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갖기 위해서 그리고 일의 진행에 대한 전반적인 시각을 갖기 위해서는 오랫동안의 체험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사람은 '현재'를 예측할 수 있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책임이 막중한 자리가 종종 노인들에게 맡겨졌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534P)

변화하는 오늘날의 세계 속에서는 그렇지 않다. 개인의 발전과 '생성'은 사회의 발전에 포함되며 일치되지 않는다. 여기서 생겨나는 편차는 불가피하게 시대에 뒤져 있는 노인에게 손해로 돌아간다. 노인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점점 더 자신을 옭아매는 과거로부터 끊임없이 자신을 이끌어 내야만 한다. 그러기에 노인의 행보는 느리다.(535P)

과거라는 무거운 짐은 나이 든 이의 걸음걸이의 속도를 늦추거나 마비시킨다. 반면에 새로운 세대들은 자신의 무기력한 실제에서 벗어나 앞으로 전진한다.(546P)

바슐라르는 "위대한 과학자들은 생의 전반부에서는 학문에 유용하나, 후반부에서는 학문에 해롭다"라고 말했다.(548P)

"주어진 주제에 관한 문제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반드시 그 분야에서 가장 정확하게 미래를 예견하는 사람은 아니다"라고 클라크는 결론 내렸다.(549P)

과학자가 우주를 외재성으로 설명한다면, 철학자는 과학을 만드는 사람의 관점을 고려한다. 철학자는 주체로서 제기된 인간과 우주와의 관계를 설명하고자 한다.(553P)

과학자는 과학이 누구에 의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인간은 누구에 의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하는 것을 문제시하지 않는다. 철학자는 바로 인간, 그 존재를 문제로 삼는 자이다. 총체적으로 파악된 인간 존재의 조건에 대해 자문하는 자이다. 그러나 철학자는 한 인간이며, 인간 전체이다. 그가 말해야 할 것, 그것은 보편성 속에서 본 자기 자신이다.(553P)

철학은 개념으로서의 인간을 고찰한다. 철학은 인간과 우주와의 전체적인 관계를 알아내고자 한다. 작가 역시 보편성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작가는 자기의 개별성에서부터 출발한다. 세상에서 겪는 자기 존재의 산 체험의 의미를 전달하고자 한다. 그는 그것을 개별적인 보편성을 통해 즉 그의 작품을 통해 전달한다. 보편적인 것은 개별화되지 않는다. 작품은 오로지 문체를 통해서, 어조를 통해서, 그의 특성을 지닌 예술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작품 속에 드러낼 때만 문학적인 차원을 갖게 된다.(558P)

작가에게 있어 문제는 비언어의 혼란된 불투명성에서 명료하고 한정된 진술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그 어떠한 대상을 현실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상상의 양식으로만 존재하는 하나의 대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559P)

글쓰기라는 천직을 결정하는 것은 상상의 세계에 대한 그의 독창적인 선택이다.(559P)

문학작품이란 종이 위에 새겨진 기호들을 통해 주체가 유희와 몽상에 의해 창조해낸 비현실적 세계의 물질화이다. 비현실적 세계가 안정성을 갖고 경험의 전달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오로지 그것이 현실 세계의 다른 차원으로서의 투사이기 때문이다.(559P)

그러므로 글을 쓴다는 것은 복합적인 활동이며 상상의 세계를 선호함과 동시에 의사 전달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559P)

그러므로 글을 쓴다는 것은, 인간이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거부와 인간들에 대한 눈물의 호소 사이의 긴장을 내포한다.(560P)

"내가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나는 어느 정도 잘 말했다. 그리고 나는 되풀이할까 봐 두렵다." -지드-(561P)

문학은 작가를 그 개별적 특성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다양하지만 그 안에 있는 것은 언제나 작가 자신이다. 삶이 형성한 그대로의 작가 자신이 고스란히 작품 속에 있는 것이다.(562P)

화가들은 과거의 연장 속에 사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산다. 세계는 그들에게 색깔, 빛, 다채로운 광채, 형태들을 무궁무진하게 제공한다.(568P)

노년이란 시기에 있어서 진보란 실망스러운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기는 한다. 그러나 그것은 제자리 걸음인 것이다. 최상의 경우에도 노인은 그가 이미 도달했던 지점을 더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572P)

육체와의 투쟁뿐 아니라 곧 죽음으로 막을 내리게 될 진보에서 기쁨을 찾아내는 것도 영웅적 행위로 볼 수 있으며, 계속해서 자신의 유한성을 받아들이면서도 자기 스스로를 초월하고자 원하는 데서 기쁨을 찾는 것 또한 영웅적 행위이다. 이러한 행위에는 예술의 가치, 사상의 가치에 대한 체험에서 오는 긍정이 있다. 이것이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573P)

정치가가 겨냥하는 목표는 그 무엇보다도, 어떠한 권력이든 권력 행사와 권력에서 나오는 권위이다. 또 다른 경우에 정치가가 겨냥하는 목표는 사건들의 흐름이 자극하는 사회 참여이다.(575P)

정치인은 역사를 만들기 위해 그리고 역사에 의해 죽기 위해 활동한다. 정치인은 그가 무엇을 하든지 빠져나올 수 없는 역사의 어떤 순간을 살아낸다.(605P)

"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불행은 자신의 모든 친구들이 죽은 뒤에 살아남아 있는 것이다." -카사노바-(607P)

《나의 아버지의 생애》에서 레티프가 숭배하여 묘사한 고령의 노인은 한 젊은 대화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얘야, 나의 운명도 나의 늙음도 부러워하지 말아라. 어린시절 친구들 중 마지막 친구를 잃고, 나의 고향에서 그리고 가족 품에서 이방인으로 있게 된 것이 벌써 40년이 되었단다. 나와 유사한 사람, 내가 친구 동료로 여길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 너무 긴 인생은 재앙이란다."(607-608P)

노인은 자기 세대의 사람들이 죽는 것만을 보지는 않는다. 흔히 그의 세계가 가고 그것과 교체되어 또 다른 세계가 오는 것을 보게 된다.(608P)

노인에게 죽음은 더 이상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운명이 아니다. 죽음은 이제 임박한 것, 개인적인 사건이다. "그렇다. 영원히 삶을 불하받았다는 생각,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환상을 품고 살아간다. 나 또한 이런 환상 속에서 지금껏 살아왔다. 이제 나에게는 그런 환상이 없다."라고 에드몽 드 공쿠르는 말한다.(614P)

사실 죽음이 가까이 온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죽음은 가까이도 멀리도 있지 않다.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617P)

세상이 변화하거나 혹은 세상에 남는다는 것이 견딜 수 없는 것이 될 때, 젊은 사람은 변화와 희망을 간직한다. 노인은 그렇지 않다. 그는 아니톨 프랑스, 웰스, 간디가 그랬던 것처럼 오로지 죽음만을 원한다.(618P)


제7장 노년과 일상생활

"오늘이라는 말의 절대적이며 부인할 수 없고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그 찬란한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노년에 도달해야 한다. 그때가 되면 어떤 이들은 단지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을 느낀다." -클로델-(624-625P)

"내가 지금보다 더 가는 실오라기에 의해 세상에 연결됐다고 느꼈던 적은 없다. 그 끈은 매순간 이내 끊어져버릴 것 같다. 이것이 살아 있다는 기쁨을 절정으로 끌어 올린다." -주앙도-(625P)

노년은 젊은 시절보다도 훨씬 더 카르페 디엠의 시기이다. "씨 뿌린 것을 거두어들이는" 순간이라고 퐁트넬은 말한다. "더 이상 수고의 계절이 아니라 습관의 계절이다"라고 도비녜는 말한다.(625P)

"늙어감에 따라서 모든 것은 추억의 형태를 취한다. 심지어 현재조차 그러하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조차 이미 지나버린 과거로 간주한다." -주앙도-(627P)

"노년은 단지 호기심의 하락일 뿐이다." -앙드레 시그프리드-(631P)

대부분의 인간들에게서는 악순환이 생겨난다. 활동을 하지 않음으로 호기심과 정열은 저하되며, 무관심하므로 세계가 공허해진다. 그 공허한 세계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활동할 이유를 전혀 찾아내지 못한다. 죽음이 우리 내면에, 그리고 사물 속에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633P)

"절름거리는 나날들보다 기나긴 것은 아무것도 없다. 눈 많은 계절, 무거운 눈송이 아래서 음울한 무관심의 열매인 권태는 불멸의 삶과 같은 규모로 번진다." -보들레르-(642P)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What then?〉 - 예이츠

작품은 완성되었다. 늙은 그는 말했다.
어린아이와 같이, 나는 작품을 구상했었노라.
얼간이들은 원통해하라지, 그렇지만 나는 아무것도 게을리 하지 않았노라.
난 무언가를 완벽에까지 끌어올렸노라.
그러나 더 높은 곳에서 정신은 이렇게 노래하곤 했도다.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644P)

그들은 '그들의 존재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그때부터 그들은 그들이 어떠한 것을 성취하든 간에 그것에 이르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644P)

주앙도에 의하면 고령이란 "삶이라는 감각과 마음과 정신의 혹사 뒤에 오는 진정한 오랜 휴가"라고 한다.(645P)

이슬을 더듬기엔 이제 그리 민첩하지 않은 다리.
새로운 감동에 이제 그리 민첩하지 않은 마음.
도약하기에는 이제 민첩하지 않은 짓밟힌 희망.
-매튜 아널드-(646P)

몸가르트네 박사는 "정신적인 면에서 볼 때, 노년에 접어드는 인간의 가장 확실하고 분명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분명 쾌활함의 상실이다"라고 말했다.(647P)

"모든 신체적인 증상들보다 더욱 나를 놀라게 하는 나이의 흔적이 있으니, 그것은 습관의 형성이다" -O.W.홈스-(651P)

습관, 그것은 과거이다. 그것은 표상으로서가 아니라 태도와 행동의 형태로 우리가 경험한 과거이다.(651P)

노인은 지나친 여가에서 오는 역겨움을 의무로 표현되는 임무, 요구들로 가득 채움으로써 피한다. 이와 같이 함으로써 노인은 무엇을 해야 하나 하는 불안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제기하는 것을 피하는 것이다.(652P)

노인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습관이라는 시에 더욱 많은 가치를 부여한다. 과거, 현재, 미래를 뒤섞는 이 습관의 시는 노인을 그의 적과 같은 시간에서 떼어내어, 노인에게 그가 더 이상 순간 속에서 만날 수 없는 영원성을 부여해주는 것이다.(655P)

노인은 변화를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변화에 자신을 적응시키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는 노인은 변화에서 어떤 출구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단절을 발견하기 때문이다.(655P)

습관은 노인에게 있어서 일종의 존재론적인 안정을 보장한다. 그것을 통해서 노인은 자신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습관은 내일이 오늘을 되풀이할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노인들을 산만한 근심에서 보호한다.(655P)

습관을 유지한다는 것, 그것은 자신의 소유물에 애착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656P)

"내 소유물의 총체는 내 존재의 총체를 반영한다." -사르트르-(656P)

행위를 함으로써 스스로를 존재하게 하는 것은 더 이상 노인에게 속해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노인은 존재하기 위해서 소유하기를 원한다. 노인들에게서 아주 일반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탐욕의 원인은 바로 이것이다.(656P)

"소유는 타인에 맞서는 방어이다." -사르트르-(657P)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통하여 나는 타인에 대한 내 존재와 유사한 대상을 되찾게 된다. 그러므로 내가 누구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타인에게 속한 일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노인을 단지 하나의 대상으로만 보고자 하는 자들에 대항하여, 노인은 자기의 재산 덕택에 자신의 신분을 보장받게 된다.(657P)

탐욕은 노인이 보유한 유일한 권력의 형태이며 노인은 자식에게 그 힘을 느끼게 하는 데서 교활한 기쁨을 맛보는 것이다.(657P)

아들이 성인임을 갑자기 느끼게 될 때, 아버지는 '역전된 오이디푸스적 감정'의 단계를 거친다. 그는 아들과의 관계를 재구축해야 한다. 화해를 통해 새로운 부자 관계를 재구축하는 데 성공하는냐 못하느냐에 따라 아버지가 노년기에 이르러 아들에 대해 품은 감정들은 애정이 넘치기도 하고 양면적이기도 하며, 혹은 적대적이기도 하다.(661P)

인간으로 남기 위해 노인이 이끌어 가는 투쟁은 비참하고 또는 덧없는 것이기도 하다. 투쟁은 실로 비참한 것이다. 이 투쟁은 인간 이하로 떨어지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며, 성인들은 그들을 하찮은 벌레나 무기력한 사물로 축소시켜버러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처럼 극도의 비참함 속에서 최소한의 위엄을 지니고 싶어한다는 것에는 무언가 영웅적인 것이 있다.(680P)

"태양에 몸을 데우는 노인과, 태양에 따뜻하게 달구어지는 부싯돌 조각 사이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호성이 있다." -존 쿠퍼 포위스-(681P)

"인생은 결코 오지 않는 그 무언가에 대한 오랜 준비이다" -예이츠-(687P)

나이는 체제 비판으로 기울어짐과 동시에 자제력과 자유를 가져다준다. 자기 행위를 '괄호 안에 넣고' 행동하는 것, 그것이 진정함에 이르는 길이다.(688P)

나이는 맹목적인 숭배와 환상들을 제거해준다.(688P)

"사람이 신경쇠약 환자가 되는 것은 자기 자신과의 동일화 속에서 타인과의 좋은 관계, 그리고 만족스러운 내적 안정감을 찾을 수 없을 때"이다. -예이-(690P)

신경증이 환자의 성격을 완전하게 변화시키지는 않는다. 환자의 성격이 완전히 변화했을 때, 그리고 그것이 새로운 구조를 취하게 되었을 때 정신병이라고 말하는 것이다.(693P)

우울이란 '정신적 고통, 감정과 더불어 체험되는 그리고 심리적인 정신 운동의 기능 약화와 억제로 특정지어지는 격심한 의기소침 상태'이다.(693P)


제8장 노년의 실례들

빅토르 위고는 쥘리에트가 죽는 것을 보았다. 깊은 충격을 받은 그는 스스로 죽음을 원했다. "죽을 때까지, 내가 어찌 될 것인가?" "내 삶에는 너무나도 많은 죽음이 있어 이제 더 이상 즐거운 잔치란 없다."(714P)

"이제 내가 세계를 비울 시간이다", "나는 신을 믿고, 영혼을 믿는다" 죽는다는 것, 그것은 신과 만나는 것, 다시 말해 또 다른 자기 자신과 만나는 것이었다. -빅토르위고- (715P)


"우리 나이가 되면 매일처럼 새로운 빈 자리가 우리 주위에 생겨나는 것일세!" -베르디-(722P)

"서서히 무감각의 껍질이 내 주위에 형성됩니다. 아무 불평 없이 나는 이런 사실을 확인합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발전 과정이며, 이런 식으로 무생물이 되어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람들이 '고령 특유의 초연함'이라고 부르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프로이트-(730P)

"영원한 휴식에 대한 욕망은 무언가 기본적이며, 근원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깨달은 것 같습니다. 이러한 욕망은 나이에 영향을 미치는 삶의 사소한 세부 사항들에서 느끼는, 불충분하다는 감정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것을 나타냅니다." -프로이트-(733P)

"삶은 교수대가 아니면 죄인 공시대이다. 어느 것이 더 나은 것일까? 20년간 서서히 지속되는 정신의 죽음의 고통? 아니면 1초 만에 끝나는 도끼날?" -라마르틴-(751P)


결론

노년은 인간의 삶의 필요불가결한 결론이 아니다.(755P)

인간의 신체 조직은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 쇠퇴한다. 그것이 경험적이며 보편적인 진리이다. 그것은 불가피한 과정이다.(755P)

대부분의 인간들은 노년을 슬프게 혹은 반항적으로 맞아들인다. 노년은 죽음 자체보다 더 큰 혐오감을 불러 일으킨다.(755P)

사실 우리가 삶에 대립시켜야 하는 것은 죽음보다 차라리 노년이다. 노년은 죽음의 풍자적 모방이다. 죽음은 삶을 운명으로 변화시킨다. 어느 면에서 죽음은 삶에 절대의 차원을 부여함으로써 삶을 구원한다.(756P)

"노년은 인간이 다른 사람들, 그리고 자기 자신의 눈을 속이기 위해 연기하는 끊임없는 희극이다. 그것이 희극적인 것은 특히 그가 연기를 잘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파게-(757P)

나이를 먹는다는 것, 그것은 우리의 계획에 들지 않는다. 성장하고, 성숙하고, 늙고, 죽는다는 이러한 시간의 흐름은 숙명일 뿐이다.(757P)

노년이 우리의 이전 삶의 우스꽝스러운 하찮은 모방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한 해결책은 단 하나 밖에 없다. 그것은 우리의 삶에 의미를 주는 목표들을 계속하여 추구하는 것이다. 도덕주의자들의 충고와는 반대로, 우리는 나이가 상당히 들어서까지도 강렬한 열정들을 오래 보존하기를 바라야 한다. 그 열정들은 우리가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사랑을 통하여, 우정을 통하여, 분노를 통하여, 연민을 통하여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삶에 가치를 부여하며, 그 덕분에 삶을 가치를 보존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행동해야 하는 이유, 또는 말해야 하는 이유가 남아 있게 되는 것이다.(758P)

모든 환상들이 사라지고 생명의 열기가 식었다 하더라도, 계속 삶에 밀착하기 위해서는 차라리 노년에 대해 너무 생각하지 말고, 정당하고 참여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낫다.(758P)

특혜를 부여받은 자들과 그 나머지 대다수의 사람들 사이에 가장 깊게 고랑이 파이게 되는 때는 바로 말년이다.(758P)

건강과 명석한 이성을 보존한다 해도 은퇴한 사람은 권태라는 끔찍한 재앙에 시달리게 된다. 세상에 대한 영향력을 박탈당한 은퇴자는 다른 어떤 영향력도 회복할 수 없다. 자기 일이 없는 여가란 자주성이 상실된 것이기 때문이다.(759P)

은퇴한 사람은 현재의 자기 삶의 무의미함에 절망한다. 그는 항상 삶의 의미를 도둑질당했기 때문이다. 강철법과 같은 가차없는 법이라도 법은 단지 삶의 모방만을 가능하게 해주었으며, 삶을 정당화하는 그 어떤 가능성의 고안도 거절했기 때문이다. 직업의 구속에서 벗어난다 해도, 이제 주위에는 사막만이 보일 뿐이다. 이 세상을 목표들, 가치들, 존재 이유들로 가득 채울 만한 계획들에 착수할 기회가 그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다.(759P)

노쇠가 때이르게 시작되고, 빨리 진전되며, 육체적으로 고통스럽고, 정신적으로 끔찍한 것은 사회의 잘못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빈손으로 노년에 다가가기 때문이다. 소외되고 착취당한 사람들은 기력이 사라지면 숙명적으로 '폐품'과 '쓰레기'가 되는 것이다.(759P)

노년은 우리 문명의 모든 실패를 고발한다. 노인의 조건이 받아들일 만한 것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인간을 온통 다시 만들어내야 한다. 인간들 사이의 모든 관계를 재창조해야 한다.(760P)

젊은이는 그의 목덜미를 움켜잡게 될 사회라는 기계를 두려워한다. 그래서 그는 때때로 보도블럭을 던지며 스스로를 방어하려고 한다. 그러나 사회에서 밀려난, 이제 지치고 헐벗은 노인에게 남은 것은 눈물밖에 없다. 이 둘 사이에서 기계는 돌아간다. 그 기계는 인간을 빻고, 사람들은 그 속에서 으깨지는대로 가만히 있다. 사람들은 거기서 도망치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761P)

그리하여 요구는 근본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바로 삶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762P)


해설

"인간의 삶의 의미는 결코 확정지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끊임없이 정복되어야 할 무엇이다."(763P)

"보부아르의 소설은 우선 '존재에 이르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그리고 발언권을 얻기 위한, 이어 타인의 자유에 호소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그녀의 이러한 계획 속에는 열렬한 권유가 있다. 작가는 자신을 구원하고자 하는 만큼이나 타인들, '살고자 하는 기도' 속에 뛰어든 자기와 같은 인간들을 구원하고자 한다. 그들에게 '봉사'하고자 하는 것이다.(765P)

《제2의 성》에서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던 그녀는 《노년》에서 "노인의 지위는 결코 자신이 정복해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주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인간의 말년을 인간답게 만들기 위해 사회 구성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한다.(766P)

나는 내면적으로 항상 30세 때와 같은 존재이나, 남들은 나에게 70세 노인을 보고 그 연령층의 행동거지를 요구하는 것이다. 내적으로 느끼는 자기와 외모로 나타나는 자기 사이의 괴리는 또한 노인들에게 어떤 역할을 연기해야 한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역할을 해내지 못할 때 그는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신세가 된다.(770P)


3. ‘내가 저자라면’

작년에 알렌 B. 치넨의 〈인생으로의 두 번째 여행〉이란 책을 읽었었다. 그 책에서 저자는 중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나가고 있는데, 중년이란 짐을 잔뜩 싣고 가는 당나귀일 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바로 이시기에 조금 더 어렵고 깊이 있는 전복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것이 스스로를 찾아가는 두 번째 인생으로의 여행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노년은 세 번째 여행에 해당되는가? 두 번째 여행의 마무리인셈인가?

저자인 시몬 드 보부아르는 노년은 유쾌하지 않은 문제이며, 거북스런 불안을 야기하므로 결코 즐겁지 않은 상상을 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노년은 인간의 삶의 필요불가결한 결론이 아니다'고 말하지만 시간의 순리상 어쩔 수 없이 도달할 수 밖에 없는 종착역에 해당된다 하겠다. 각자 도착하는 시기는 다를지언정 종착역에서 최후의 순간을 맞이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죽음이 우리를 천연덕스럽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보부아르는 노년을 금기시하고 감추려하는 이 사회의 음모를 깨부수기위해 이 책을 썼다고 주장한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노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게 하고자 이 글을 작성했다고 말한다. 이 책이 출간된 해는 1970년이므로 보부아르가 62세때 였다. 그렇다면 보부아르도 중년이라기보다는 노년의 시기에 글을 썼다고 조심스럽게 이야기 할 수도 있겠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지만 당신은 늙지 않으셨는데요!……어찌 그런 서글픈 주제를……."이라 말했다고 보부아르는 주장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책 중간에 프랑스 사회보장제도나 연금제도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자세히 언급한 것으로 보아 자신의 문제이자 현실에 해당되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책을 읽으며 2번 코끝이 찡해지고 눈물이 찔끔 나왔다. 첫 번째는 그린란드 아마살리크의 에스키모족 이야기였다. 나이가 들어 쓸모가 없어지면 부모를 익사시키는 제도를 갖고 있는 에스키모족의 딸이 아버지의 익사장면에서 아버지에게 "아버지, 머리를 푹 담그세요. 그래야 가는 길이 훨씬 짧아질거예요."라고 말한다. 다정다감하고 사랑이 넘치기 때문에 하는 말이란다. 괴로웠다. 하지만 어찌보면 이것이 관행이고 풍습이라면 어느 누구도 괴롭다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밥"은 이만큼이나 무서운 것일까? 결국 현대는 "밥"이 "돈"으로 옮겨간 것 아닌가. 밥 앞에 사람 목숨이 참 부질없다.

두 번째는 트로츠키의 말 "나는 당신의 옛 사진을 보면서 억누를 길 없는 향수를 느낀다오. 그토록 젊었던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우리의 그 사진 말이오."을 읽었을 때였다. 이 글을 보며 가슴한켠이 아려오는 건 젊은 시절에 대한 에피소드의 기억, 향수 그리고 지금 전철안에서 돈을 구걸하며 다니는 노인의 힘겨운 걸음걸이와 돈을 내미는 내 손길에 전하는(눈은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돈'에 고정되어 있었다) "고맙습니다" 말 한마디 때문이였다. 저 힘든 노인의 모습이(구걸은 아니더라도) 나중의 내 모습일 터인즉, 타인을 통해 자신의 시간을 본다는 것은 맞는 말일 것이다. 그래서 더욱 슬퍼진다. 신이 주신 하루하루의 작은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고 사는 것이 나을 수도 있겠지만. 눈물 찔끔이다.

이 책은 저자의 넓이를 알 수 없는 예시의 탐구, 끝없는 호기심의 추적, 장르를 가리지 않는 지적욕구 등 여러 가지가 복합된 실험서이자 사회과학서이다. 보부아르는 이 책을 통해 자신 즉, 노년들을 대표한 처지를 대변하고 널리 알리기 위해 수많은 역사적 인용을 따왔으며 결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다양한 유명인사들의 깊숙한 이야기까지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노년의 정의, 의미, 노년을 받아들인 역사 선배들의 이야기, 노년과의 투쟁, 항쟁. 노년으로 인한 괴로움, 슬픔, 정체성의 상실. 떼어낼래야 떼어낼 수 없는 죽음과의 관계 등등 많은 내용들을 접할 수 있었고 새롭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만큼 이 책은 신선했고, 인생에 대하여 다시한번 진지하게 고민하도록 만들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저자라면'이란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너무나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 책이기도 하다. 몇가지만 언급해 보자.

첫째, 전체적인 책의 구성이다. 이 책은 일반적인 다른 책들과 비교해 볼 때 만만치않은 두께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목차구성을 가지고 있다. 머리말과 서론에 이어 제1부는 외부에서 본 노년, 제2부는 세계 속의 존재(내부)로 구분하였고, 마지막은 결론을 배치하였다. 내용 중 제1부는 역사의 예시와 인용 위주, 2부는 실사례 위주로 구성하고 각 장으로 쪼개어 큰 내용을 구분해 놓았다. 각 장에서는 시간 또는 상황적 구분을 '*'표시를 통해 해 놓았다.

책을 읽는 내내 불편했었다. 저자 본인은 주제에 몰입하여 글을 써 나갔는지는 모르겠으니 독자에 대한 배려는 사실 너무 적었다. 아니 심하게 이야기하자면 너무 없었다. 한 주제를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한 유명인사의 이야기를 깊게 들어간다든가, 주제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보다는 계속적인 반복의 예시만 나열한다는가 뚜렷한 방향성 없이 이리저리 헤맨다든가 하는 것은 어쩌면 본인의 자기만족에 의한 작품활동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부분적인 구성의 변경이 필요하면 좋을 듯 싶다. 각 장별 '*'에 대한 구분은 소제목을 달았으면 좋겠다. 예를 들자면 "16세기 - 초기 자본주의의 시대" 하는 식으로 넣어주면 시기와 주제에 대한 이해가 있어서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제7장 노년과 일상생활에는 많은 유명인사들의 이야기가 들어 있는데(페탱은 특히 길다!) 이 부분은 제8장 노년의 실례들과 통합하는 것이 보다 깔끔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제8장은 유명인사에 따라 구분하여 나중 다시 해당 인물에 대해 찾아 보기 쉽도록 목차에도 소제목으로 넣었으면 보다 더 독자에 대한 배려가 될 듯 싶다. 한가지 여기서 더 제안하자면 단순히 유명인사의 노년 이야기만 넣는 것이 아니라 그의 젊은 시절과 대비하여 이야기를 구성한다면 보다 알찬 내용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둘째, 그 많은 인용과 예시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별도의 참고문헌 표시를 하지 않음으로 이 책을 읽고 다시 이 책과 연결된 다른 책을 읽는 것이 어렵게 되어 있다. 즉, 링크를 통한 지식 넓히기는 다소 무리가 있다는 점이다. 원본에도 없는 것인지, 아니면 번역본에만 없는 것인지 그것이 궁금하다.

셋째, 이왕이면 노년의 전단계인 중년의 의미를 좀 알려주고 노년에 대해 언급했더라면 좀 더 도움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물론 그것은 내가 중년에 해당되기 때문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역시 이 책을 읽을 독자를 생각한다면 이 정도의 배려는 해도 될 듯 싶다. 한가지 더 언급하자면, 노년에 대해 알리는 건 훌륭한데 과연 이 책의 주 독자층이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

넷째, 예시는 많으나 실제적으로 자신의 목소리가 다소 작은 편이다. 결론에 의하면 결국 보부아르가 주장하는 것은 사회보장 제도의 확대나 노년의 마음가짐에 대한 변화인데, 과연 그것만이 궁극적 결론이라고 한다면 이 정도 분량의 책이 필요했을까? 결론을 이끌어 가는 설득력 있는 이야기의 전개가 다소 부족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 이 책을 실험서로 분류한다면 이 책은 '금기에 대한 도전' 자체가 큰 의미가 되는 책이라 하겠다. 저자인 보부아르의 자유분방함이 이 책의 전편에 걸쳐 드러나고 있음은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임에 틀림없다. 특히 유명인사들의 성욕에 대한 이야기는 보부아르의 신여성으로서의 자유분방함이 물씬 풍겨나오는 대목이라 하겠다. 명사들의 성이야기가 적나라한 것, 어릴 적 삼류 빨간 책을 읽는 기분이 순간적으로 문득 들었었다. ㅋㅋ

마지막으로 사족하나 달고자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남편인 '사르트르'를 상당히 많이 인용하고 있다. 물론 남편을 통해 실존주의 철학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나는 그것보다 아내인 보부아르가 사르트르를 지적으로 많이 존경했구나 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왜냐하면 계약결혼을 한 후 사르트르가 노년까지 젊은 여자들과 육체적 관계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사랑은 계속 꾸준하게 유지되었기 때문이다(물론 그녀도 젊은 제자와 관계를 맺기도 했다). 오히려 사르트르가 육체보다 마음을 다른 여자에게 주는 움직임을 보였을 때 그녀의 질투심은 크게 발휘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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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3.24 20:21:53 *.36.210.80
재미있게 읽은 느낌이 드네요. 우리에게는 노년이 조금 더 가까워요. 아직 노년이라고 하기 싫어서 중년 운운 하는 거죠? 그런데 정말 재미있게 살려면 지금부터 인 것만은 틀림없겠죠? 예순까지 연장해 줄까요? 그나저나 지금부터 글쓰기 해서 퇴직 후 계속 글쓰면서 사는 것도 좋겠네요. 열정을 살려서. 고생많았어요. 즐거웠을 테지만요. 어쩐지 느긋함이 보이거든요.좋은 결과 바랍니다. W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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