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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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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24일 02시 57분 등록
1.저자에 대하여

어느 날 아침 거울을 보았다.
주름살 투성이에 눈은 휑하니 들어가고, 광대뼈만 툭 튀어 나온 늙은이 한 명이 그 안에 있다.
‘저게 누구지?’
거리로 나섰다. 버스를 탔더니 자리가 만석이다.
속으로 투덜 투덜 대고 있는데 한 학생이 얼른 일어나 자리를 비켜준다.
“할머니 여기 앉으세요.”
”누구요? 저요?”
황망함에 우선 자리에 앉아 마음을 진정시킨다.
그리고 차분히 지금 상황을 돌이켜 본다.

더 이상 모른 척 할 수 없다.
그렇다.
이.제.내.가 할.머.니.가.되.었.다.
어느새 내가 노인이 된 것이다. 어느새….

당신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겠는가?
자, 아래 사항 중 하나를 선택해 보라.

1. 다시는 거울을 보지 않고, 버스도 타지 않는다.
2. 주름 제거 성형수술을 받는다.
3. 두려움과 정면으로 맞선다.

저자는 여기서 3번을 선택했다. 저자는 용감한 사람이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볼 줄 아는 사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두려움으로 진실을 회피하고 있을 때, 자신의 현실을 받아 들이고 주변 노인들이 처한 상황까지 바라 볼 줄 안다. 이렇게 가만 있을 수만은 없다. 저자는 이 문제를 주제로 책을 쓰기로 마음 먹었다.

저자가 이렇게 사회 문제를 드러내어 공론화 시킨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제 2의 성>이라는 책을 통해 저자는 여성 문제를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 올렸다. 이 책에서 저자는 “여성은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여성이 가진 특성이 처음부터 타고 나는 게 아니라 사회에 의하여 길들여진 산물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국내외적으로 대단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여권 신장 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 흠… 멋.지.다

저자가 어떻게 이런 멋진 반항아가 될 수 있었을까… 저자 소개에는 그녀가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변호사인 아버지 밑에서 심한 저항감을 느끼며 성장했다고만 나온다. 그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것이 무엇인지 몰라도, 그녀 안의 반항아 기질이 겁 없이 이런 저서들을 써 낼 수 있는 배짱을 길러 준 것만은 확실하다. 점점 더 그녀에 대해 궁금해 진다. 다시 내 눈을 멈추게 하는 사실. 계약결혼을 했다고? 계약결혼이라니 무슨 뜻일까?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다. 상대방을 구속하지 않는 조건을 내세운 결혼 방식이란다. 그들은 결혼을 했음에도 동거하지 않는 채 20년 동안 각자 독립적으로 생활하였고, 서로 다른 파트너와 자유로운 사랑을 즐기기까지 했다고 한다. 계약 상대자인 사르트르는 당대 프랑스 지성인들이 악수 한 번 나누는 것 조차 영광으로 생각했던 사람이라니, 이 여자 진짜 대단하다. 하지만 이러한 대담함으로 인해 그녀가 감수해야 했을 사회적 비난과 공격을 가늠해 보며, 한편 그녀가 측은해 지기도 한다.

문득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화가 ‘나혜석’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결국 이혼 당하고 빈 몸으로 쫓겨나 조선 사회의 차가운 냉대 속에 길거리에서 병들어 죽어간 여인. 조선사회가 아니라 하여 저자의 상황이 훨씬 나았을까… 아닐 것이다. 그녀 또한 힘들고 괴로웠으리라.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고, 사회가 동의하지 않는 이야기를 하는 자의 운명은 어디나 비슷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용기 있는 자들에 의해 사회가 발전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오늘은 다시 한번 그녀가 쓴 노년을 되새겨 보며, 두려움 앞에 진실했던 한 여자의 용기에 찬사를 보내야겠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머리말

[18] 나의 본질적인 목표는 오늘날 우리 사회 속에서 연로한 사람들의 운명이 어떠한가를 밝히는 것이다.

[19] 외면성이란 그 상황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는가 하는 것이며, 내면성이란 주체가 어떻게 그것을 받아들여 초월해나가는가 하는 것이다.

[20] 매순간 평형을 잃고 다시 정상을 회복하는 불안정한 체계, 그것이 삶이다. 죽음의 동의어, 그것은 부동의 상태이다. 변화야말로 삶의 법칙이다. 노화란 변화의 한 유형이다.

[20] 인간의 삶이 겨냥하는 목표가 무엇인가를 알아야만 그 목표에서 멀어지는 것은 어떤 변모이고 그 목표에서 다가가는 것은 어떤 변모인지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제1부 외부에서 본 노년

1장 노화와 생물학

[38] 릴케의 말처럼 “마치 과일이 그 씨를 품고 있듯이 우리들 각자가 우리 내면에 품고 있는” 죽음과 같이, 모든 신체 조지근 애초부터 그 완성의 피할 수 없는 경과로서 노화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50] 이것은 한 개인의 지능과 기억력을 그 사람이 삶에 대해 기울이는 주의 깊은 관심이나 이 세상에 대한 흥미, 그 사람의 모든 계획들과 연관시켜서 설명할 수밖에 없다.

제2장 민족학적 자료들

[76] 그는 어머니를 사랑하지만, 그의 효심은 사회가 그에게 제시하는 틀 안에서만 발휘된다.

[117] 그들의 권위는 두려움이나 그들이 불러일으키는 존경에 근거한다. 성인들이 그것을 뛰어넘는다면 노인들로서는 더 이상 이겨낼 능력이 없다.

[118] 나는 쇠퇴라는 말이 특정 목표에 가까이 가거나 혹은 거기서 멀어져가는 어떤 움직임과 관계 있을 때에만 의미를 가진다고 말한 바 있다. 단지 그럭저럭 살아가려고만 하는 집단에서 쓸모 없는 입이 된다는 것, 그것은 곧 쇠퇴를 의미한다. 반대로 선조들과 신비적으로 맺어진 정신적 생존을 바라는 집단이라면, 과거와 동시에 내세에 속해 있는 노인은 그 집단의 화신이 된다. 그리하여 육체적으로 가장 노쇠한 상태 역시 생의 절정으로 간주될 수 있다.

[118] 인간은 자기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노년의 의미와 가치를 정의하는 것은 바로 인간의 전체적인 가치 체계이다. 반대로 한 사회가 노인들에 대해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가를 보면 그 사회의 원칙과 목표에 대한 진실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3장 역사 사회에서의 노년

[119] 첫째, 노년이란 어떤 사회적 범주를 가리키며, 그 범주는 상황에 따라 다소 가치가 인정된다. 둘째, 노년은 각 개인의 특이한 운명, 즉 자기 자신의 운명을 가리킨다.

[143] 노년의 모든 것이 다 멸시할 만한 것은 아니란다. 내 아들 에테오클레스, 경험이란 분명한 자기 의견을 갖고 있으니 그 말은 젊은이들의 말보다 훨씬 더 현명하단다.

[147] 젊음, 활기, 매력과 분리된 성행위는 순전히 동물적 기능의 차원으로 격하된다.

[148] 어느 날엔가는 자신도 욕망을 채울 능력은 없으면서 욕망만은 그대로 간직할 날이 오리라는 것을 상상하기를 몹시 싫어하는 것이다. 그가 노인을 증오하는 것은 노인에게서 그 자신의 미래 상황을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그런 자신의 장래 상황을 비웃음으로써 거부한다.

[221] 슬픔과 질투는
희끗희끗한 털을 사랑하네
감미로운 열광에
그토록 거친 감옥은 없네

아, 꾸물거리며 기다리는
너무나도 어리석은 젊음이여
시간은 날아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네

그리고 열정은 재가 되고
재 속에서는 회환이 싹튼다네……

[225] 오래전부터 나는 서서히 늙어가고 있다. 그러나 조금도 현명해지지는 않았다. 지금의 나와 이후의 나는 확실히 다를 것이다. 어느 때의 내가 더 나을까? 나는 무어라 말할 수가 없다. 만약 우리가 발전해나가기만 한다면 늙는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일 것이다.

[226] 그러나 몽테뉴의 경우에는 흥미로운 역설이 존재한다. 그 자신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하더라도 독자의 눈에는 금방 눈에 띈다. 그것은 몽테뉴의 <수상록>이 그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더욱더 풍요롭고 내밀하며 독창적이고 심오해졌다는 점이다. 그는 노년에 대한 환상이 전혀 없이 신랄하게 써내려간 이 명문들을 30세 때는 쓸 수 없었을 것이다. 몽테뉴의 위대함은 그가 능력이 감소했다고 스스로 느끼는 순간 최고에 달한다. 자신에 대한 엄격함이 없었더라면 이런 위대함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자기 만족은 능력을 감퇴시킨다. 몽테뉴는 늙어가면서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할 줄 알았던 것이다. 그가 발전을 했다면 그것은 세상과 자신에 대한 그의 태도가 점점 더 비판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249] 내 나이에 가장 서글픈 것은 희망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희망은 가장 달콤한 열정이며 우리가 유쾌하게 사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하는 열정이다.

[249] 늙은 사람이 아직도 사랑한다는 사실에 당신은 놀라지 않으시는군요.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 우스꽝스러운 것은 아니지요. 바보같이 감히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스꽝스러운 것이니까요….노인에게 남아 있는 가장 큰 기쁨은 산다는 것입니다. 사랑만큼 그들에게 삶을 확신시켜주는 것은 없습니다.

[249] “늙기 시작하자마자, 우리는 우리 안에서 비밀스레 생겨나는 자기 혐오로 자기 자신을 싫어하기 시작한다. 스스로에 대한 사랑이 사라져버린 영혼 속에는 쉽게 타인에 대한 사랑이 자리잡는다.” 그에 의하면 노인은 나르시시즘에 상처를 받게 되어 매력적인 사람 앞에서 속수무책이 된다는 것이다.

[270] 그가 항상 뱀처럼 허물을 벗기를 갈망했던 것은 때때로 자신의 모습에서 답답함을 느꼈기 때문이고, 자기 모습이 낡아 보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다시 젊어지는 것이 아니라 젊어질 수 있다는 것, 즉 한계에서 벗어나서 결코 막다른 골목에서 끝나지 않는 모험처럼 삶을 다시 사는 것이다.

[283] 자기 안의 의지가 강하면 강할수록 인간은 지혜와 더욱더 멀어진다. 어린아이는 특권을 받은 존재이다. 왜냐하면 어린아이는 관조적인 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는 세상과 거리를 유지하는 심미적인 태도를 갖고 있으며 보편적인 형태로 대상들을 본다. 어린 아이는 대상의 본질에 대한 일종의 직감을 가지고 있다…… 어린 시절은 행복하다. 왜냐하면 어린 시절은 표상이지, 의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반대로 젊은이에게는 삶에 대한 갈증이 있다. 그는 행복을 사냥한다. 그러나 그는 행복을 찾지 못한다.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 그것은 이미 행복을 상실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지식과 창조력은 젊음에 속한다. 지적인 힘은 35세에 절정을 이룬다. 그러나 사람들은 환상과 실수 속에 산다. 성적 본능은 인간에게 경이로운 정신 착란을 일으킨다.

[283] 젊은이는 이 세상에서 무언지 모를 경이로운 것들을 자신이 정복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단지 어디서 그것들을 찾을 수 있을지만 안다면 말이다. 노인은 ‘모든 것은 헛되도다’라는 전도서의 격언에 감동받는다. 노인은 호두가 아무리 황금색으로 잘 익었다 하더라도 속이 비어 있다는 것을 안다….. 이제 환상은 없다. 노인은 완전히 환상에서 벗어난다.”

[297] 나에게 있어 모든 것은 되풀이, 후렴, 상투적인 말일 뿐이다. 나는 내가 이미 했던 것을 다시 할 뿐이다. 그것도 그전보다 더 잘하지 못하면서 시간을 허비한다. 내가 성공했던 것이나 실패했던 것이나, 오늘날 내게는 모두 같은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인간들은 너무 비슷비슷하게 닮은 것처럼 보인다….사물들이 차례차례로 나를 저버리다.

4장 현대 사회에서의 노년

[304] 그는 활동이 아니라 다만 현존으로 정의된다. 시간은 그를 하나의 목표-죽음-로 이끈다. 그러나 이 목표는 그의 목표가 아니며 또한 하나의 계획으로 설정된 것도 아니다. 노인이 활동적인 개체들에게 그 자신 스스로도 인정할 수 없는 ‘이상한 종’으로 보이는 것은 바로 그때문이다.

[324] 그런데 자기의 경쟁자가 훨씬 젊다는 것을 알고는 좌절했는데 열등 의식 때문이었다. 실수를 저지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나이 많은 사람들은 부정적인 태도를 고수한다.

[362] 사회가 자기들을 책임지니까 그들은 자기 몸을 스스로 완전히 포기하고 사회에 맡겨버려 극단적인 수동성에까지 이르는 것이라고 의사는 설명했다. 나는 노인들이 원한에 싸여 그들의 상황을 살아가고 있으며, 그런 식으로 복수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364] 약간의 공간과 내면 생활의 보장이라는 간단한 사실이 그들의 생활을 변형시킬 수 있었던 것 같다.

[366] 헤밍웨이는 이렇게 썼다 “어떤 사람에게 있어 최악의 죽음은 자기 삶의 중심, 진실로 그를 현재의 그로 만들어주는 것을 상실하는 것이다”

[367] 우리는 헤밍웨이가 자살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물론 그의 자살에는 다른 이유들도 있었겠지만 어쨌든 그는 자신이 글을 계속해서 쓸 수 없다고 느낀 순간 죽음을 선택했다. 우리가 자유롭게 자기 일을 선택했을 때, 그리고 일이 자기 자신의 성취일 때, 일을 그만둔다는 것은 사실 일종의 죽음과도 같다. 일이 일종의 제약이었을 경우, 일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해방이다.

[382] 좋은 건강 상태로 마지막 20년을 산다는 것, 그러나 아무 쓸모 없는 행위로 산다는 것, 그것은 심리적으로, 사회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모든 노인학자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노인들에게 그들이 살아 있는 이유를 주어야만 한다. ‘동물적인 생존’, 그것은 죽음보다 못하다.

[384] 노인들에게 계속해서 일하기를 원하느냐, 은퇴하기를 원하느냐 물었을 때 그들이 내놓는 답변이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내세우는 이유들이 언제나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일하기를 원하는 경우, 그 이유는 가난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고, 일을 그만두기를 바라는 경우, 그것은 건강 관리를 위해서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삶의 양식 중 그 어느 것도 만족스러운 긍정적인 해결책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그들은 일 속에서도, 여가 속에서도 성취감을 찾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어느 것도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제2부 세계 속의 존재

제5장 노년의 발견과 수락:육체의 산 경험

[398] 우리는 늙어가는 자를 우리 존재 속에 있는 타자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들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나이를 알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405] 그러나 노인은 심각한 변화를 겪지 않고 남들을 통해서 자신이 늙었음을 느낀다. 내면적으로 그는 자신에게 붙어 다니는 그 꼬리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이제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르는 것이다.

[408] 자각의 순간에 그녀가 자신을 너라고 부른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그녀가 말을 건네는 사람은 그녀 안에 존재하는 타자이다. 타인들의 눈에 비치는 타자로서의 자기 자신인 것이다. 그녀가 직접 알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녀 자신에 다름 아닌 이 타자에게 그녀는 말을 하는 것이다.

[420] 자신에 대해 다소 만족스러운, 혹은 다소 타당성 있는 모습을 발견했든 아니든 우리는 우리가 ‘실감할 수’ 없는 이 노년을 ‘살지’ 않으면 안 된다. 먼저 우리는 몸으로 노년을겪어야 한다. 우리에게 노년을 일깨워주는 것은 몸이 아니다. 노쇠가 우리의 육체를 점거하고 있다는 것을 일단 알게 되면 우리는 불안해진다.

[422] 내가 눈이 조금 멀고, 귀가 잘 들리지 않으며, 수족이 약간 부자유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이런 모든 것들은 서너 부분의 신체 장애일 뿐이다. 그러나 어떠한 것도 내게서 희망을 앗아가지는 못한다.

[423] 침몰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있어 늙는다는 것은 곧 노년과의 투쟁을 의미한다.

[438] 그리하여 바닷가 모래사장에 나타난 것은 살 없는 뼈대뿐인 물고기였다. 그래도 아무 상관 없다. 그의 목적은 모험 그 자체였기 대문이다. 노인으로서 대부분의 동료 어부들처럼 목숨만 부지하는 생활을 거부하고 끝까지 용기와 인내라는 남성적 가치를 보여주는 것이 필요했던 것이다.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어도 정복될 수는 없다”라고 늙은 어부는 말한다.

[439] 정신과 육체는 매우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변경된 신체 조직을 세계에 재적응시키는 작업을 수행하려는 사람은 삶에 대한 취향을 보존하고 있어야 한다. 역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좋은 건강은 지적, 감정적 흥미가 오래도록 살아 있게 도와준다.

[447] 즉 사람은 사랑을 받으면 스스로를 사랑스럽게 느끼고 주저 없이 사랑에 몸을 맡긴다.

[467] 위고의 눈에 늙음이라는 것은 결함이라기보다는 명예였다. 늙음이란 신에게 가까이 가는 것, 숭고한 것, 그리고 순수함과 아름다움에 결합되는 것이었다.

[487] 이것은 여자가 성적 대상이라는 여성의 조건을 끝까지 감내한다는 말이다. 여자에게는 생리적인 운명에 다라 순결이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 존재라는 여자의 신분에 의해 순결이 강요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심리적인 장벽’ 때문에 스스로 어쩔 수 없이 자신에게 순결을 강요한다.

제6장 시간, 활동, 역사

[505] 노인이란 “살아온 긴 생을 뒤에 갖고 있으며, 앞으로 살아갈 삶의 희망이 매우 한정된 인간이다”

[506] “과거가 살아 있는 것인지 아니면 죽은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미래이다”라고 사르트르는 지적한다. 진보하고자 계획하는 사람은 과거에서 벗어난다. 그는 자신의 옛 자아는 자신의 자아가 아니라고 정의하고, 분리하여 생각한다.

[507] 때로 그들은 과거의 자신 중에서 가장 자존심을 만족시켜주는 인물을 택해 자기 자신이라고 인정한다.

[507] 그들이 과거의 자기 모습을 되찾아 그때 모습과 하나가 되는 순간, 그들은 80세이면서 동시에 30세 혹은 50세인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나이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510] 과거의 순간들은 종종 아주 상투적인 성격을 띤다. 우리는 그것들을 수정이나 장식없이 떠올린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 시간 속에 부여한 것밖에는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511] 나의 과거는 나로부터 벗어난다. 나는 한쪽 끝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다른 쪽 끝을 잡아당겼다. 그랬더니 내 손에 남은 것은 끝이 풀린 썩은 천뿐이다. 모든 것이 환상 혹은 거짓이 되어버렸다.

[513] 지나간 사건의 의미는 언제나 뒤집어질 수 있다. 사실들의 물질적인 면에 대한 기억이 우리에게서 사라질 뿐만 아니라 그것에 두어야만 하는 비중을 결정할 수 없기에 우리의 판단은 언제나 유보된 채로 남아 있다.

[513] 가가운 사람의 죽음이나 친구의 죽음은 우리에게 현재만을 앗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보냈던 우리 인생의 한 부분을 통째로 앗아간다.

[514] 특히 노인들을 위로할 길 없는 상태에 빠뜨리는 것은 그들이 자신의 미래와 연결시켰던 사람들, 특히 낳아서 기르고 교육시켰던 젊은 사람들과의 이별이다. 자녀의 죽음, 손자의 죽음은 모든 약속의 갑작스러운 붕괴이다. 그러한 죽음은 그 사람을 위해 바쳤던 희생과 노력들 그리고 그에게 걸었던 희망들을 터무니없이 헛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515] 콕토의 말에 따르면 빅토르 위고가 ‘스스로 빅토르 위고임을 인정하는 것’은 오로지 발작적으로 감정이 폭발할 때뿐이었다고 한다. 매우 적절한 표현이다. 이 말은 사람이 자신의 이미지를 연기할 수는 있어도 자기 자신과 자신의 이미지를 혼동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출세한’ 사람은 타인에게는 풍요한 존재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외적인 존재와 그 사람이 스스로 갖고 있는 체험 사이에는 커다란 오해의 심연이 가로놓여 있다.

[515] 비니는 아름다운 인생이란 장년기에 실현된 청년기의 이상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치자. 그러나 열망하는 꿈과 실현된 꿈 사이에는 무한한 거리가 있다.

[516] 설령 나의 현재가 존재를 넘어서 내가 스스로를 투사했던 미래와 내용상으로 동일할지라도, 내가 스스로를 투사하던 것은 지금의 이 현재가 아니다. 그 까닭은 나는 미래로서의 미래를 향해, 다시 말해서 내 존재를 만나는 지점으로서의 미래를 향해, 다시 말해서 내 존재를 만나는 지점으로서의 미래를 향해 나 스스로를 투사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516] 나의 기대에 부합하는 현재조차도 내가 기대했던 것, 생에서 헛되이 지향했던 존재의 충만을 가져다 주지 못했다.

[517] 물론 긍지를 갖고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는 사람도 있다. 특히 그가 살고 있는 현실이 예감하는 미래가 실망스러운 것일 경우에 그러하다.

[517] 우리가 과거를 인식하는 것은 과거가 우리를 어떻게 만들었나 하는 것을 통해서이다.

[526] 반면 사르트르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가 스무 살이었을 때 자기 자신이란 자기 자신에 이르는 것을 의미한다”

[527] 그 후 매일 나는 무언가 안정된 것에 몰두해 절망적으로 현재를 회복하고자 했으며 그 현재를 정착시켜 확대하려고 애썼다. 시간의 지배를 받지 않는 세계, 손상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되찾으려고 나는 여행을 한다. 사실 여행으로 이틀을 보내며 새로운 마을을 알게 되는 것은 사건들의 빠른 흐름을 늦추어 준다. 낯선 지방에서 보내는 이틀이라는 시간은 일상적인 장소에서 보내는 시간, 소모되어 닳고닳은 시간, 습관으로 왜곡된 시간의 30일의 가치를 지닌다. 습관은 시간을 광채나게 닦아준다. 그래서 우리는 지나치게 왁스를 발라 윤이 나는 마룻바닥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듯 시간 속으로 미끄러진다. 새로운 세계, 언제나 새로운 세계, 영원한 세계, 영원히 젊은 세계, 그것이 바로 낙원이다. 빠른 속도는 지옥과 같을 뿐 아니라, 지옥 그 자체이다. 그것은 추락의 가속화이다. 현재가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현재도 시간도 없이, 추락의 기하학적인 진행이 우리를 무 속으로 집어 던진다.”

[527] 돌이켜볼 때 짧은 것처럼 여겨지는 주일들은 사실상 끝없이 질질 끌 듯 지낸 시간들이다.

[529] 누가 나에게 100년 동안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시간을 준다면, 나는 새로운 계획들 속에 뛰어들 것이고 미지의 영역을 정복하러 떠날 것이다.

[530] 죽음이나 노쇠에 의한 소멸이 더 이상 하나의 운명이라 생각되지 않고 당신을 내려칠 준비를 하는 악으로 생각될 때 우리는 어떤 일에 대해 기도하려는 작은 욕망마저 잃게 된다. 아직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시간을 헤아려본다. 하나의 시도가 자유롭게 전개되기 위해 필요한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조차 못했던 날들과는 전혀 관계없는 이 숨막히는 시간을 헤아려본다. 이것은 모든 열정을 꺾어 놓는다.

[551] 당신은 내가 평온한 만족감으로 내 평생의 작업을 볼 것이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그러나 가까이서 볼 때 사물은 완전히 다르게 보입니다. 확고한 진실이라고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개념은 한 가지도 없습니다. 또한 내가 일반적으로 바른 길을 걷고 있다는 확신도 없습니다. 현대인들은 모두들 나를 이단자인 동시에 반동자,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의 사후에 살아남은 반동자로 봅니다. 이것은 분명 관습의 문제이며 근시안적 시각입니다. 그러나 불충분하다는 느낌은 내부로부터 옵니다.

[568] 무엇을 하든 자기를 예찬할 것이라는 생각이 그를 안일하게 만들어 비판력을 무디게 할 우려가 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까다로울 경우, 남이 좋아하든 불쾌해하든 상관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판단 기준들을 따를 수 있다는 것은 큰 특권을 누리는 것이다.

[568] 젊은이들을 열광시키는 것은 외부 세계라는 대상이다. 뒷날에는 내면 세계가 우리를 열광시킨다. 감동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화가로 하여금 어떠어떠한 형태, 어떠어떠한 출발점을 선택하도록 충동하는 것이다.

[572] 그들의 상황을 결정하는 요인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그들의 독창적인 계획의 폭이며, 또 하나는 그들을 마비시키는 과거의 중압감이다.

[576] 나는 젊은이 안에서 우리 인류가 지속되기를 바라며, 그가 좀더 나은 시대를 맞기를 원한다. 이와 같은 희망이 없다면 내가 향해 가고 있는 늙음은 나에게 완전히 견딜 수 없는 일일 것이다.

[577] 젊은이들은 오늘과 다른 내일이 오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 한 걸음 후퇴가 아마 앞으로의 도약을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노인들은 길게 보아 미래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있을지라도, 미래에 이러한 급변을 맞이할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미래에 대한 그들의 믿음이 현재 그들이 느끼는 실망들로부터 그들을 보호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605] 비폭력 사상을 고집했던 간디에게는 두 공동체 사이에 어떤 폭력이 불씨로 살아 있는지 볼 수 있는 눈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현실보다 원칙을 선호했고, 목표보다는 방법을 선호했다. 한 인간에게 있어서 자신의 활동이 완성되는 시기에 그것이 철저하게 부패되는 것을 보는 것보다 더 비극적인 운명은 없다.

제7장 노년과 일상생활

[624] 그렇지만 오늘이라는 말의 절대적이며 부인할 수 없고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그 찬란한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노년에 도달해야 한다. 그때가 되면 어떤 이들은 단지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을 느낀다

[625] 나는 내가 살아 있고, 여기 존재하고 있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

[631] 계획의 부재는 알고자 하는 욕망을 죽여버린다.

[632] 노년을 가장 활동적으로 보낸 사람들은 여러 종류의 관심을 가진 자들이다. 이들에게는 변화하는 것이 더 용이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633] 대부분의 인간들에게서는 악순환이 생겨난다. 활동을 하지 않으므로 호기심과 정열은 저하되며, 무관심하므로 세계가 공허해진다. 그 공허한 세계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활동할 이유를 전혀 찾아내지 못한다. 죽음이 우리 내면에, 그리고 사물 속에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644] 더 이상 목표에 헌신하지 않는 것, 더 이상 절박한 욕망을 발견하지 못한다는 것이 노인들을 어쩔 수 없이 권태롭게 한다.

[655] 노인은 변화를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변화에 자신을 적응시키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는 노인은 변화에서 어떤 출구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단절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679] 건강, 기억, 물질적 재산, 위엄, 권위 등 모든 것을 빼앗기고 난 후에도 한 인간으로 남아 있다는 것, 그것 자체가 벌써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이 투쟁은 인간 이하로 떨어지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며, 성인들은 그들을 하찮은 벌레나 무기력한 사물로 축소시켜버리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처럼 극도의 비참함 속에서 최소한의 위엄을 지니고 싶어한다는 것에는 무언가 영웅적인 것이 있는 것이다.

[683] 드디어 나는 나 자신일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나는 아무개 부인이 아니며 아무개라고 하는 직원이 아니다

[689] 자유와 명석함도 만약 어떠한 목표가 더 이상 우리를 자극하지 않는다면 별 소용이 없는 것이다. 계획들이 아직도 우리 가슴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면, 자유와 명석성은 큰 가치를 지닌다. 노인의가장 중대한 행운은 역시 양호한 건강 상태보다도 그에게 있어 세계가 아직도 목표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이러기 위해서는 성인의 나이에 이미 그가 시간에 도전하는 시도들에 참여한 경험이 있었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690] 사람이 신경쇠약 환자가 되는 것은 자기 자신과의 동일화 속에서 타인과의 좋은 관계, 그리고 만족스러운 내적 안정감을 찾을 수 없을 때이다.

[690] 자신이 늙었다는 것을 안다는 사실 그 자체가 그를 다른 사람으로 변하게 한다. 그러나 그는 결코 이 또 다른 자의 존재를 대자로 실현시키지 못한다. 한편 노인은 사회적인 자격과 역할을 상실한 존재다. 그는 그 무엇에 의해서도 더 이상 자신을 정의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더 이상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른다.

결론

[757] 노년이 우리의 이전 삶의 우스꽝스러운 하찮은 모방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한 해결책은 단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우리의 삶에 의미를 주는 목표들을 계속하여 추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들이든, 집단이든, 대의명분이든, 사회적 혹은 정치적 일이든, 지적.창조적 일이든, 그 무엇에 헌신하는 길밖에 없다. 도덕주의자들의 충고와는 반대로, 우리는 나이가 상당히 들어서까지도 강렬한 열정들을 오래 보존하기를 바라야 한다. 그 열정들은 우리가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760] 대답은 간단하다. 인간이 항상 인간으로 대우받는 사회여야 한다. 사회가 비활동 인구에게 지정해주는 운명을 통해서, 그 사회의 이면의 베일은 벗겨진다. 사회는 항상 그들에게 상품 취급을 해왔던 것이다. 사회를 위해서는 오로지 이윤만이 중요하며, 사회가 내거는 ‘휴머니즘’이란 겉모습일 뿐이라는 사실을 사회는 고백하는 것이다.

[760] 만약 인간이 문화를 통해 자기 주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또 그 영향력이 해를 지남에 따라 완성되며, 또 거듭나는 것이라면, 인간은 어떤 나이에나 내내 능동적이며 유용한 시민일 것이다. 만약 인간이 어린 시절부터 다른 수많은 미립자들 틈에 갇혀, 고립된 미립자처럼 무력화되지 않는다면, 인간이 자기 자신의 삶과 마찬가지로 매일매일 본질적인 집단적인 삶에 참여한다면, 인간은 결코 유배를 겪지 않을 것이다.

[761] 이 둘 사이에서 기계는 돌아간다. 그 기계는 인간을 빻고, 사람들은 그 속에서 으깨지는 대로 가만히 있다. 사람들은 거기서 도망치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인들의 조건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되면, 우리는 단지 좀더 전반적인 ‘노인 정책’, 노인 연금의 인상, 위생적인 양로원, 노인들을 위한 조직적인 여가 등만을 요구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다. 체제 전체가 이 문제에 맞물려 걸려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요구는 근본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바로 삶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3. 내가 저자라면

휴~ 다 읽었다.
글 쓰기에 앞서 7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다 읽었다는 성취감이 날 기쁘게 한다. 우후~
하지만 내가 뭘 읽었더라? 이런… 처음부터 다시…..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다. 연구원 과제만 아니면 이쯤에서 그만 두고, 젊음의 기쁨을 찬양하는 책이라도 한 권 골라 읽고 싶다. 이 책은 노년을 은근슬쩍 미화시킨다든가, 노인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는 책이 아니다. (그런 책이라면 참 좋으련만…) 화려한 겉옷, 우아한 속옷, 마지막 꽃무니 팬티까지 벗겨내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노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노인들이 직면한 현실을 너무나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리얼리즘의 극치이다. 너무나 진실해서 그 진실함의 장점조차 가려지게 만든다.

예전에 88만원 세대를 읽은 후의 느낌이 꼭 지금 같았다. 꿈과 모험 따위로 젊은이들을 한껏 치켜 올리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하는 대신, 너네 들의 몸값은 88만원이 고작이라고 이야기한다. (그 기분을 끌어올리기 위해 시크릿 같은 자기계발서를 3권이나 읽어야 했다.) 헌데 이 책 또한 마찬가지다. 노인의 지혜라든지, 모든 것을 초월하여 진정 성숙한 인간이 된 노인의 모습은 책의 극히 일부분을 차지할 뿐이다. 힘도 없고, 얼굴은 쭈글쭈글하고, 기억은 깜박깜박 한데, 젊었을 때의 욕망만은 그대로 남겨진 인간이라….
그게 노년의 전부라면 나이 드는 게 참 겁이 난다.

하지만 읽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의도한 게 그런 불편한 감정이 아닐까 하는…. 저자는 사람들이 노년에 갖는 터무니없는 환상을 깨고 싶어한다. 노인이 되면 특별히 고생스러운 일도 없고, 힘들게 일해야 할 필요도 없으니 행복할 것이라는 사회의 고정관념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싶어한다.
저자는 지금 화가 나 있다. 자신이 이제 노인의 나이에 접어 들었는데 사회에서는 노인에 대해 너무 무관심하다. 그들의 처지가 남의 일 같지 않고, 어떻게든 이 책을 통해 노인 문제에 사회의 관심을 집중 시키려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절대 글이 편안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읽는 사람들의 심기를 어지럽히고, 밥 먹다가도 생각이 나고, 잠자다 꿈에서도 나와야 한다. 이게 앞으로 너희에게도 닥칠 일이라고 여러 번 강조 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신문 줍는 지하철 할머니, 구걸하는 할아버지 등등.... 여기저기서 보이는 노인들의 모습에 자꾸만 신경이 쓰이는 걸 보니 저자의 목적이 어느 정도 달성된 듯 하다.

이 책은 총 2부 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외부에서 본 노년을, 2부는 내면에서 본 노년을 다루고 있다. 1장에서는 생물학, 의학에서 나타나는 노년의 특징을 살펴보고, 2장에서는 역사 이전 사회에서의 노년의 모습을, 3장에서는 역사 속에서의 노년을 4장에서는 현대 사회에서의 노년을 다룬다. 결국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한 노년의 사회적 지위와 조건들을 이야기 하고 있다.

1부에서는 문학 작품과 그림 속에 나타난 노인의 모습을 통해 그 당시 노인의 지위와 사회적 조건을 추측해 보려는 시도를 하였다. 어떤 구체적인 사실보다 이런 작품 속의 노인의 모습이 오히려 더 사실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런 저런 역사적 사실을 이용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으로 그 때의 모습이 전달 되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특별히 다른 논점이 나오지 않는데도 지나치게 많은 문학작품을 예로 든 것은 읽는 사람을 지루하게 만들기도 하는 것 같다. 거기다가 글을 쓴 작가 이야기까지 덧붙여져 핵심을 잃어버리고 장황해진 것 같다. 이 부분은 노년의 특징을 강조한 문학 작품 몇 편 정도로 줄여도 좋을 듯 하다. 문학작품은 예문을 들 수 있지만, 그림 속의 노인의 모습 같은 경우는 관련 자료를 사진으로 곁들이면 더욱 효과적 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부에서는 노인이 노년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5장에서는 몇몇 사람들의 예를 들어 노년을 설명하고 있고, 6장에서는 노년이 되면 시간의 개념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각 직업별로 나뉘어 노년의 활동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7장에서는 노년기를 맞은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어떻게 영위하고 있는지 이야기하고, 8장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내면적으로 노년기를 어떻게 느끼는가 이야기한다.

1부는 그 구분이 명확한데 비해, 2부는 그 구분이 조금 모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5장, 7장, 8장은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고, 결국 노년의 내적 변화를 주제로 계속 이야기하는 것 같다. 성공적으로 노년을 보낸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로 나뉘어 그들의 내적 차이점을 집중 분석하는 내용이 들어가면 좋을 듯 하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문장이 짧고 간결하며 다른 의미로 해석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문장이 따라가기 쉽고 편안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이는 번역자의 재능일지도 모르겠다.) 단락과 단락 간의 연결도 분명하다. 나는 문장을 길게 쓰지 못하는 편인데, 이러한 저자의 글 쓰는 방식은 앞으로 눈 여겨 공부해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아쉬운 점은 이러한 노년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한 것들이 조금은 허무하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저자는 두 가지의 해결책을 제시한 듯 하다.
하나는 노인 스스로 자신의 삶에 의미를 주는 목표들을 계속 추구하라는 것이고, 두번째는사회 전체가 인간을 항상 인간으로 대우하여야 한다는 원칙론적인 해결책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너무나 이상적인 해결책이어서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물론 노인정 몇 개 더 지어 준다고 해서, 노인 연금을 조금 올려준다고 해서 노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인간의 존엄성을 귀하게 여길 때, 노인 문제든 여성 문제든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칼날 같이 날카로운 문장으로 현 사회의 문제점을 비판하던 그녀가 내놓은 해결책 치고는 조금은 허무하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흠….

무엇보다 이 책을 읽으며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꿈과 개인적 욕망의 소중함이었다. 저자는 이야기한다. 노년은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고… 단지 돈을 저축하고, 은퇴생활을 할 곳을 정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할 일은 큰 포부를 세우고, 그것에 자신을 헌신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추구할 수 있는 목표, 반드시 이루고 싶은 욕망이 있다면 노후준비 완료인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노후준비는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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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3.24 20:42:25 *.36.210.80
그랬구나. 안나는 벌써 노후준비를 제대로 갖추었구나. 멋진 걸.
더욱 탄탄한 노후를 위하여 화이팅! 빈틈 없는 노후를 위하여 건배!
좋은 결과를 바랍니다.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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