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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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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24일 09시 21분 등록
Ⅰ.저자에 대하여

시몬 드 보부아르.

1908년에 파리에서 태어난 저자는 작가이자 사상가로 널리 인류에게 공인되어 있다. 그녀의 멈추지 않는 탐구에 대한 열정은 그녀가 소설, 에세이, 논문, 전기, 자서전에 이르기 까지의 다양한 장르의 저서를 세상에 내어 놓게 했으며 그 저서들은 세월을 뛰어 넘어 오늘날 인류에게 많은 영향력을 주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방대한 그녀의 저서 중 무엇보다도 그녀를 그녀이게 만들어 주는 저서는 ‘여성’으로서의 자기 인식에 바탕을 둔 <제 2의 성>일 것이다. 이 저서에서 그녀는 ‘여자는 여자로 태어나지 않는다. 여자로 만들어질 뿐이다’라는 도발적인 주장을 하여 페미니즘 운동의 사상적인 기반이 된다.
태생이 반항아인 보부아르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62세의 나이에 또 다른 도발적인 주
장을 펴기에 이른다. 그녀의 말년 저서 <노년>에서는 ‘노인의 지위는 결코 자신이 정복해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라고 주장 하기에 이른다.
그녀의 주장들은 모두 인류가 이전의 세기 동안에 당연시 받아 들이던 ‘성’, 이나 ‘노
년’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그것들이 우리가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우리에게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주어진 것이라는 것에 중점을 둔다.
한편, 그녀의 저서는 모두 정교한 사유를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나의 명제를 만들
기 위해서 집요하고 논리적으로 파고든다. .
개혁적인 사상가이가 작가였던 그녀는 일생 내내 지행합일을 지향했던 실천적인 지식인
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남성에 대한 종속을 거부하고 자유의 추구를 위해 파트너인 사르트르에 ‘계약 결혼’을 제안을 했으며 평생 그 계약 결혼의 상태로 살아간다. 또한 실존주의 문화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1970년 대부터는 여성해방운동 기구에 참여하여 본격적으로 여성운동에 뛰어 들기도 한다.
평생 정열적인 저술 활동과 사회 참여를 해 온 보부아르는 오늘날 그녀가 남긴 저서를 통해서 영생(永生)을 얻고 있다.

Ⅱ.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서론
[p8]내가 이 책을 쓰는 이유는 바로 이런 침묵의 음모를 깨버리기 위해서이다. 마르쿠제는,소비 사회는 불행의 의식을 행복의 의식으로 대체시켰고, 모든 죄의식의 감정을 비난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소비 사회의 행복 의식, 그 태평함을 뒤흔들어놓아야 한다. 그러한 태평함은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 죄를 짓는 것일 뿐만 아니라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기도 하다.

[p9]노인들에 대하여 사회가 취하는 태도는 하나같이 이중적이다. 일반적으로 우리 사회는 노년기에 접어든 사람들을 어떤 분명한 연령 계층으로 보지 않는다. 사춘기의 위기는 청소년과 성인 사이에 하나의 경계선을 그을 수 있게 해준다. 18세에서 21세의 젊은이들은 성인 세계에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인간으로서의 지위 향상에는 거의 언제나 ‘통과의식’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노년기가 시작되는 순간은 명확히 정의되어 있지 않고,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화가 있다. 또한 이 새로운 지위의 확립을 기리는 ‘통과 의식’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p10]사람들은 노인들을 이질적인 종류에 속하는 인간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다시 말해서 노인들도 다른 인간들과 똑같이 여러 가지 욕구를 가지고 있으며, 다른 인간들과 또 같은 여러 가지 감점을 느낀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얼마 안 되는 보잘것없는 적선을 하고는 스스로 그들에 대한 의무를 충분히 다했다고 느낀다.

[p11]노인들은 청년의 연장이며, 그렇기에 예전에 그가 가졌던 인간의 자질과 결점들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바로 이 점을 여론을 모르는 체 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젊은이들과 똑 같은 욕망, 감정, 요구 들을 표명하는 노인은 사람들의 비축을 사게 된다. 노인들의 사랑과 질투는 추하거나 우스꽝스럽고, 성행위는 혐오스러우며, 폭력은 가소로운 것으로 여겨진다. 노인들은 모든 미덕의 본보기를 보여주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사람들은 그들에게 평정함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들은 평정함을 지니고 있다고 단정한다. 이러한 사고 방식 때문에 노인들의 불행에 무관심해 지는 것이다.

[p14]미래에 우리가 어떤 인간일 것인가를 모른다면 우리는 지금 우리가 누구인가도 알지 못한다. 이 늙은 남자, 이 늙은 여자, 이들 속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자. 우리가 우리의 인간 조건을 모두 받아들여 짊어지고자 한다면 그래야 한다. 그러면 단번에 우리는 말년의 불행을 더 이상 무관심하게 받아들이지 않게 될 것이다.

[p16]인간은 그 말년에도 계속 인간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는 강력한 요구는, 현 상황의 근본적이고 철저한 전복을 내포하는 것이다.

머리말
[p17]오늘날 우리가 생리적인 여건들과 심리적인 사실들을 분리시켜 개별적으로 고려한다는 것은 모두 알다시피 너무 추상적이다. 이 두 가지는 서로 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p23]즉, 노년은 총체성 안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노년은 단지 생물학적인 현상이 아니라 문화적 현상이기도 한 것이다.

제 1부 외부에서 본 노년
제 1장 노화와 생물학
[p45]모든 관찰을 통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공통점은 같은 나이의 사람들에서 보이는 막대한 차이이다. 연대기적인 나이와 생물학적인 나이는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 신체적인 외양은 생리적인 검사보다 살아온 햇수를 더 잘 알려준다. 나이가 모든 사람의 어깨 위에서 똑같은 중압감으로 짓누르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노인병 학자 하월은 노쇠는 “사양길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똑 같은 속도로 내려가지는 않는다. 우리는 연속적이고 불규칙적인 보행으로 사양길을 내려가며,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빨리 굴러 떨어진다”라고 말했다.

[p49]단기 기억력은 거의 손상되지 않는다. 구체적인 기억력 –잘 알려진 사실들에 관한 것-은 30세에서 50세 사이에서 낮아진다. 논리적인 기억력도 마찬가지이다.

[p53]인간의 노쇠는 언제나 사회 안에서 일어난다. 그러므로 노쇠는 그 사회의 성격과 그 사람이 그 안에서 차지하고 있는 자리와 밀접한 종속 관계에 있다. 경제적인 요인 자체를 그것이 포함되어 있는 사회적 ∙ 정치적 ∙ 사상적 상부 구조들에서 따로 떼어낼 수 없다.

제 2장 민족학적 자료들
[p85] 게다가 만약 노인들이 신성한 전통들을 – 노래, 신화, 의식, 부족 생활의 관습들 –알고 있다면 그들의 권위는 막강해진다. 원시인들의 지식은 마법과 분리할 수 없다.

[p87]기술, 주술, 종교는 원시 사회 ∙ 문화의 본질을 이룬다. 이 세 분야는 서로 관계가 깊으며, 주술은 기술 그리고 동시에 종교와 아주 밀착되어 있다. 기술과 종교는 집단에게 이로운 것이며 주술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아란다족에게서는 ‘반백의 사람’이 이 세 분야를 지배하고 있다.

[p108]가난한 사회에서나 부유한 사회에서나, 혹은 정착민에게서나 유목민에게서나 노인은 더 이상 살 기회가 없다는 것이 명백한 사실이다. 정착민에게는 단지 부양의 문제가, 유목민에게는 그뿐 아니라 훨씬 더 어려운 이동의 문제가 제기된다. 유복함을 누린다 해도 유목민은 끊임없는 이동 때문에 노인들을 보호할 수 없다. 노인들이 집단을 따라갈 수가 없기 때문에 노인들을 보호할 수 없다. 노인들이 집단을 따라갈 수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을 버리고 가는 것이다. 농경 사회에서는 상대적 풍요로움이 노인들을 먹여 살리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경제적 상황이 전적으로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보통 그 사회가 만들어주는 특권이다. 이 특권은 다른 상황들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p110]어떤 안정의 여지가 있을 때, 그 사회는 노인들을 부양한다고 가정할 수 있다. 성인들 스스로가 미래를 내다보더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악순환을 만들어내기는커녕 결과는 좋은 방향으로 진전된다. 잘 키워진 아이들은 부모들을 잘 대접하게 되는 것이다. 적절한 음식물과 위생은 지나치게 이른 노쇠로부터 보호해준다. 문화가 발달하면 그 덕분에 노인들은 커다란 영향력을 가질 수가 있다.

[p114]노쇠는 남녀에게 똑 같은 의미를 가지지 않으며, 똑 같은 결과를 초래하는 것도 아니다. 여자들에게 노쇠는 특별한 지위를 나타낸다. 폐경 이후 여자들은 성을 상실한다. 나이 많은 여자는 사춘기 소녀와 동격이 되어 사춘기 소녀처럼 음식에 대한 일정한 금기에서도 벗어난다. 월경의 더러움 때문에 금해졌던 것들도 이제는 더 이상 그녀의 삶을 압박하지 못한다. 나이 많은 여자는 춤추고,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남자들 옆에 앉을 수 있다. 나이 많은 남자들에게 특혜를 주는 요인들은 나이 많은 여자들에게도 역시 어떤 이득을 보장해주게 된다. 특히 모계 사회에서 이런 나이 많은 여자들의 문화적 ∙ 종교적 ∙ 사회적 ∙ 정치적인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다른 사회에서는 그들의 경험이 가치를 지닌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초자연적인 능력을 부여한다. 그래서 그들은 권위를 획득할 수 있다.

[p118]노인들로 인해 제기되는 문제들에 관해 원시인들이 채택한 실제적인 해결책들은 아주 다양하다. 즉 그들을 죽이거나, 굶어 죽도록 내버려두거나, 최소한의 생명만을 유지하도록 하거나, 안락한 종말을 맞도록 해 주거나, 혹은 그들을 존경하거나 혹은 극진하게 대접한다. 우리는 소위 문명화된 국민들도 이와 똑 같은 방식을 적용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단지 공공연한 살해만이 금지되어 있을 뿐이다.

제 3장 역사 사회에서의 노년
[p122] 역사를 갖고 있는 사회들은 남자들이 지배한다. 여자들 사이에서도 젊은이나 늙은이 사이에 권위를 놓고 다툴 수 있으나 그것은 사생활 연역에서일 뿐이다. 공적인 삶 속에서의 지위는 늙은 여자나 젊은 여자나 동일하다. 여자들은 영원한 미성년자들이다. 반대로 남자의 조건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한다. 청년은 성인 시민이 되고, 또 성인은 노인이 된다. 남자들은 연령 계층을 형성한다. 그 연령 계층의 자연적인 경계선은 모호하다. 그러나 사회가 정확한 한계선을 지정할 수도 있다. 퇴직 연령을 정해놓은 오늘날의 사회가 그러하다. 한 연령 계층에서 다른 연령 계층으로의 옮아감은 승격일 수도 있고 전락일 수도 있다.

[p134]의미론에 따르면 아주 먼 고대에는 명예라는 개념이 노년이라는 개념에 결부되어 있었던 것 같다. 노령을 가리키는 두 단어 ‘Gera’, ’geron’은 나이가 가져다 주는 이점, 고참의 권리, 대표라는 의미 또한 가지고 있다.

[p151]플라톤은 케팔로스의 입을 통해 노년을 예찬한다. “다른 즐거움들 – 육체적인 삶의 즐거움들-이 약화되면서 정신적인 것들에 대한 나의 욕구와 기쁨은 점점 더 증가하는도다.”

[p153]아리스토텔레스는 젊음을 더할 수 없이 밝고 즐거운 빛깔로 그려놓는다. 젊음은 열렬하며 열정적이고 도량이 넓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노년은 모든 면에서 그 반대이다. “노인들은 수많은 세월을 살아왔고, 또 그러는 동안 종종 속으며 살았고, 실수도 저질렀으며, 또 인간사란 태반이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것들이므로 그들은 아무것에도 안심하지 못하고, 뻔히 드러나는데도 모든 일을 마땅히 해야 할 것 뒤에 숨어 위선적으로 행한다.”

[p175] (서고트 법전에서)
1세 어린이는 금화 60전
∙∙∙
50~65세 남자는 금화 200전
65세 이상 남자는 금화 100전

[p175]기독교는 서양의 풍습을 부드럽게 완화시키는 데 성공했을까? 그리고 특히 노인들의
운명을 개선하는 데 성공했을까? 그 점은 의심스럽다.

[p209]르네상스 시대는 인간 육신의 아름다움을 찬양한다. 특히 여성의 육체는 격찬된다. 그렇기에 노인들의 추함은 더욱더 가증스러운 것일 수밖에 없다. 늙은 여인의 추함이 이 시대보다 더 잔인하게 고발된 적은 없었다.

[p226]그러나 몽테뉴의 경우에는 흥미로운 역설이 존재한다. 그 자신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하더라도 독자의 눈에는 금방 눈에 뛴다. 그것은 몽테뉴의 <수상록>이 그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더욱더 풍요롭고 내밀하며 독창적이고 심오해졌다는 점이다. 그는 노년에 대한 환상이 전혀 없이 신랄하게 써 내려간 이 명문들을 30세 때는 쓸 수 없었을 것이다. 몽테뉴의 위대함은 그가 능력이 감소했다고 스스로 느끼는 순간 최고에 달한다. 자신에 대한 엄격함이 없었더라면 이런 위대함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자기 만족은 능력을 감퇴시킨다. 몽테뉴는 늙어가면서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할 줄 알았던 것이다.

[p300]연령이 곧 자격 박탈은 아니었다. 평생 동안 부동산, 상품, 혹은 화폐를 축적했으므로 노인들은 부유했고, 공적인 생활과 사적인 생활에서 대단한 비중의 영향력을 가졌다.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는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나이 든 사람들이 지배를 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할 때는 노년에 가치가 부여된다.

[p301]연륜을 쌓아온 자는 누구나 살아 있는 자들 중 최상의 인간이다. 어떻게 보면 노년은 존재의 농축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노년은 그 자체로서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다. 어떤 품위나 지위에 오르려면 나이는 일종의 자격이 된다. 특히, 독일에서는 빈번하게 음악가나 철학자의 70주년, 80주년 기념일에 화려한 축제가 벌어진다. 그 축제의 의미는 바로 노인에 대한 경의이다.
올바른 사회 질서가 젊은 세대들에게 나이 든 세대의 정치적, 경제적 권위를 인정하도록 강요할 때, 젊은이들은 흔히 그것을 참을성 있게 받아들인다.

[p301]한편, 착취당한 노인들이 상황은 침묵 속에 파묻혀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권층의 개념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착취당한 노인들의 상황에 대해 우리는 막연한 개관밖에는 가지고 있지 않다. 중세에서 19세기까지 착취당한 노인들은 아주 적은 수였던 것 같다. 시공과 도시에서 노동자들은 젊은 나이에 죽어갔다. 살아남아 노인이 된 이들은 일반적으로 그들을 부양하기에는 너무나 가난한 가족에게 얹혀 살게 되었다.

제 4장 현대 사회에서의 노년
[p303]일반적으로 사회는 사회의 균형을 뒤흔들지 않을 정도의 악습과 추문, 참극 같은 것에는 눈을 감아준다. 사회는 오인들의 운명과 마찬가지로 고아들, 비행 청소년들, 신체 장애자들의 운명에도 개의치 않는다. 그러나 노인에 대한 사회의 무관심은 언뜻 보기에 더욱 놀랍게 느껴진다. 각 집단 구성원들은 노인의 운명은 곧 자신의 미래의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p304]노인은 예외 없이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이다. 그는 활동이 아니라 다만 현존으로 정의된다. 시간은 그를 하나의 목표 – 죽음-로 이끈다. 그러나 이 목표는 그의 목표가 아니며 또한 하나의 계획으로 설정된 것도 아니다. 노인이 활동적인 개체들에게 그 자신 스스로도 인정할 수 없는 ‘이상한 종’으로 보이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나는 노년이 생물학적으로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한 바 있다. 그래서 일종의 자기 방어로 우리 자신으로부터 노인을 멀리 내쫓는다. 그러나 이런 추방은 모든 시도 속에 내재하는 원칙적인 공모성이 노인의 경우에는 전혀 적용될 수 없기 때문에 가능해진다.

[p306]특히 아버지를 대신하려는 욕망은 아버지에 대해 증오와 두려움을 품게 한다. 전설의 영웅들은 언제나 자기 아버지에게 반항하고 그러다가 그를 죽이기 까지 한다. 현실에서 살인은 상징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즉 아버지가 그 위신을 잃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아들은 아버지와 화해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 화해란 것도 기실 아들이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했을 때에야 비로소 이루어진다.

[p306] 성인들이 노인을 대하는 실제 태도에는 이중적인 특성이 있다. 그들은 어느 정도까지 공식적인 윤리에 순응한다. 공식 윤리란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지난 몇 세기간 강화되어왔으며, 성인에게 노인들에 대한 존경을 강요한다. 그러나 노인들을 열등한 존재로 취급하고, 또 노인들에게 그들이 쇠약하다는 사실을 납득시키는 것이 성인들에게는 유리했다. 성인인 아들은 아버지가 정신적, 육체적 결핍과 서투름을 느끼도록 악착같이 설득한다. 그러면 노인은 그에게 모든 일에 대한 지시권을 물려주고, 잔소리도 덜 하게 되며, 자신의 소극적인 역할을 참고 따르게 된다. 만약 여론의 압력이 늙은 부모를 도와주라고 강요하면 아들은 부모를 자기 마음대로 지배하라는 뜻으로 듣는다. 그리고 그들 생각에 부모다 더 이상 혼자 행동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될수록 부모에 대한 자식들이 조심성도 덜하게 될 것이다.

[p309]어린이들과 청년들이 노인과 맺는 관계는 그들과 그들 아버지와의 관계보다는 그들과 그들 할아버지와의 관계를 반영한다. 19세기부터 노인과 손자 사이에는 흔히 상호적인 사랑이 싹텄다. 성인들에게 반항하는 손자들에게는 노인들도 그들처럼 피압제자로 보인다. 그래서 그들은 노인들과 연합하게 된다.

[p316]노동자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만큼 오래 현역으로 남아 있게 하고 그 다음 그들에게 괜찮은 생활을 보장하는 것, 이것이 올바른 해결책이다. 그들에게 만족스러운 생활 수준을 보장하면서 일찍 퇴직시키는 것. 이것 역시 타당한 선택이다. 그러나 부르주아 민주 국가들이 개인으로부터 노동의 가능성을 박탈하는 것은 대부분 그들에게 빈곤을 언도하는 것이 된다.

[p321]영국 뉴필드 사에서 실시한 매우 중요한 연구에 의하면 노년의 경함은 대부분 보충되었으며 나이가 더 들어서까지도 극복되었다. 이 좋은 예를 요크셔 직물 공장에서 볼 수 있다. 날실의 접기와 틀 걸기는 정밀함을 요하는 작업이다. 그런데 많은 고령의 여자들이 눈이 잘 안 보이는데도 완벽하게 그 일을 해내는 것이다. 즉 그녀들은 손가락에 기술을 갖고 있는 것이다.
(중략)숙련, 경험, 그리고 자신의 결함을 요령껏 피하는 기술이 위의 결함들을 상쇄시켜주었던 것이다. 연구실에서 얻은 결과들을 신용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그것은 현장에서 하는 것과 똑 같은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p367]우리는 헤밍웨이가 자살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물론 그의 자살에는 다른 이유들도 있었겠지만 어쨌든 그는 자신이 그을 계속해서 쓸 수 없다고 느낀 순간 죽음을 선택했다. 우리가 자유롭게 자기 일을 선택했을 때, 그리고 일이 자기 자신의 성취일 때, 일을 그만둔다는 것은 사실 일종의 죽음과도 같다. 일이 일종의 제약이었을 경우, 일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해방이다. 그러나 실제로 일에는 거의 언제나 양면성이 있다.

[p367](퇴직에 대해서)오랜 숙원들을 실현할 수 있게 해주는 기간으로 보는 ‘기적과도 같은 퇴직’의 이미지도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반대편에는 ‘참극과도 같은 퇴직’의 이미지도 존재한다.

제 2부 세계 속의 존재
제 5장 노년의 발견과 수락 : 육체의 산 경험
[p392]나는 이미 40대 이후부터 늙어간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아, 거울 앞에서 꼼작 않고 서서 “나는 마흔 살이다”라고 중얼거리곤 했다. 어린아이나 청소년에게도 나이가 있다. 그들을 구속하는 의미와 금기들, 그들에 대한 타인들이 행동은 그들로 하여금 자기 나이를 잊고 살 수 없게 한다.

[p393]노년은 특별히 감당하기 어려운 나이이다. 그것은 우리가 언제나 노인을 어떤 색다른 부류로 간주해왔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나인데, 내가 다른 사람이 되었단 말인가?”
사람들은 내게 말했다. “그건 문제가 아니에요. 당신이 젊다고 느끼는 한 당신은 젊은 거예요.”그러나 이것은 노년의 복잡한 진실을 몰랐을 때 하는 말이다. 노년의 진실, 그것은 객관적으로 정의되는 타인에게 보이는 나의 존재와 그것을 통해 내가 나 자신에 대해 갖는 자의식 사이의 변증법적 관계이다. 나에게 있어서 나이를 먹어가는 사람은 타자, 즉 타인들에게 보여지는 나이다.

[p399]우리는 늙어가는 자를 우리 존재 속에 있는 타자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때문에, 타인들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나이를 알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우리 나이에 기꺼이 동의하지 못한다. “처음으로 노인이라는 말을 들은 사람은 누구나 소스라치게 놀라기 마련이다”라고 홈스는 지적한다. 내 나이 50세에 어느 미국 여학생에게 “그렇다면 시몬 드 보부아르는 늙은 동지 중 하나군요!”하는 말을 듣고 나는 얼마나 소스라쳐 놀랐던가, 온갖 전통이 늙은이라는 말에 경멸의 뜻을 담아왔기 때문에, 이 말은 하나의 모욕처럼 들린다.

[p403]싫든 좋든, 우리는 끝내 타인의 관점에 굴복하기 마련이다. 주앙도는 70세에 이렇게 자책했다. “반세기 동안 나는 줄곧 스무살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횡령을 포기해야 할 때가 왔다.”그러나 이 ‘포기’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우리는 일종의 지적 분노에 부딪히게 된다. 우리는 의심할 여지 없이 노쇠라는 우리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러나 그 현실을 바깥으로부터 우리에게 오는 것이므로, 우리 자신에게는 여전히 포착 불가능한 것으로 남아 있다. 우리 자신의 영구 불변성을 보장하는 내적 명백성과, 변모의 객관적 확실성 사이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모순이 자리잡고 있다.

[p411](지드가 일기에서)나는 암기해야 할 과목처럼 ‘나는 65세가 넘었다’라고 되뇌인다. 그래도 나는 내 나이를 실감하기 어렵다.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다만 나의 갈망과 기쁨, 미덕과 의지가 확대되기를 바랄 수 있는 공간이 좁다는 사실뿐이다. 그것들이 이처럼 강력하게 느껴진 적은 결코 없었다.

[p444]노년에 유아적 성욕으로의 단순한 퇴행이 일어나리라고 가정하는 것은 틀림없이 불합리한 일일 것이다. 노인은 결코 어떤 차원에서도 ‘유아기로 퇴행’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유년기는 상승의 움직임으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 유아의 성욕은 스스로를 모색하는 과정이지만, 노인의 서용은 성인이 성욕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유년기와 노년기의 사회적 요인들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p490]특히 성욕과 창의력과의 관계는 놀라울 만큼 깊은 연관성이 있다. 이 관계는 위고, 피카소 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들의 경우 명백히 드러난다. 창조하기 위해서는 플로베르가 ‘일종의 열성’이라고 부르는 어떤 공격적 성격이 필요하며, 그것은 생물학적인 리비도에 근거를 둔다. 또한 창조하기 위해서는 애정의 열리고 스스로가 이 세계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껴야 한다.

[p491]성욕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심해지는 하나의 감정이 있는데 그것은 질투심이다.
(중략)노년은 전반적으로 욕구 불만의 시기이다. 그래서 노년은 막연한 원한들을 질투라는 형식으로 구체화하게 한다. 한편 성욕의 감퇴는 많은 노년의 부부들에 있어서 일방적인 또는 상호적인 원한들을 불러일으키며, 그 원한은 질투로 표현될 수 있다.

[p504](소냐 톨스토이의 질투에 대해서)즉 사랑, 믿음, 그리고 그녀가 요구하는 모든 것들이 지금 당장 획득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가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급함이 자신을 방해하는 그 어떠한 것도 참을 수 없게 하는 것이다. 노인이 체험하는 경험의 총체적인 검토 후에나 우리는 노년의 질투심을 완전히 이해할게 될 것이다.

제 6장 시간, 활동, 역사
[p505]나이는 우리 자신과 시간과의 관계를 바꾸어놓는다. 해가 바뀜에 따라 우리의 과거는 점점 육중해지고, 반면 우리의 미래는 점점 짧아진다. 노인이란 “살아온 긴 세월을 뒤에 갖고 있으면, 앞으로 살아갈 삶의 희망이 매우 한정된 인간이다.”라고 정의할 수 있다.

[p510]”과거는 짐작된다”라고 앙리 푸앙카레는 말했다. 이는 정확한 말이다.

[p513]가까운 사람의 죽음이나 친구의 죽음은 우리에게 현재만을 앗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보냈던 우리 인생의 한 부분을 통째로 앗아간다.

[p566](음악들에 대하여)노년의 작품들은 장년기의 작품들에 비해서 독창적이며 가치도 떨어지지 않는다. 음악가들이 이렇게 나이와 더불어 발전하는 것은 음악가들이 지켜야 할 구속의 엄격함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 나는 생각한다. 자신의 독창성을 이끌어낼 수 있는 숙련된 기술을 얻기 위해서 음악가는 오랜 수련 기간을 가져야만 한다.

[p572]우리가 노년에 대해 일반적으로 말했던 것, 다시 말해 노년은 우리에게 우리의 이중적 유한성을 드러내준다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한 실례들,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을 통해 보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갇혀 있는 뛰어 넘을 수 없는 역사의 기이함과 짧게 남은 그들의 미래를 의식하고 있다.

[p572]과학자들의 경우에는 노화가 거의 운명적으로 경화증과 불모성을 야기한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보았다. 반대로 예술가들은 흔히 자신의 작품은 완성되지 않았다는 느낌, 아직도 작품을 더 풍부하게 만들 수 있으리라는 느낌을 갖는다. 그러나 그 작품을 끝마칠 시간이 부족한 경우도 생기게 된다.

[p576]나의 삶이 새겨지는 이 인류의 모험이 무한하게 연장 되었으면 하는 욕구가 내게 있다. 나는 젊은이를 좋아한다. 나는 젊은이 안에서 우리 인류가 지속되기를 바라며, 그가 좀더 나은 시대를 맞기를 원한다. 이와 같은 희망이 없다면 내가 향해 가고 있는 늙음은 나에게 완전히 견딜 수 없는 일일 것이다.

[p602]간디는 결코 신체가 말을 듣지 않는 지경까지는 가지 않았다. 그의 원기는 클레망소보다 더 놀라운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전 인생을 걸었던 목표, 즉 영국으로부터 인도를 해방시키는 목표를 완수했다. 그러나 그 승리는 치명적으로 그를 배반했다.

[p606](아라공)인간이 자기 것으로 간주하는 시대는 자신의 계획들을 구상하고 펼치는 때이다.

[p617]사실, 죽음과의 관계를 말하는 것도 옳지 않다. 모든 인간과 마찬가지로 노인도 삶과의 관계밖에는 가지고 있지 않다. 문제는 바로 살려고 하는 의지이다. 아주 적절한 표현이 하나 있다. 즉 삶을 끝낸다는 말이다. 죽음을 바란다는 것, 혹은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긍정의 의미이다. 즉 삶을 끝장내기를 바라거나, 혹은 삶을 끝장내기로 받아들인다는 의미이다. 노쇠가 점점 심해짐에 따라 삶이 점점 더 견딜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당연하다.

[p619]처칠은 80세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죽는다는 것은 이제 내게는 아무래도 상관 없다. 나는 볼 만한 것을 다 보았다.”(중략) 그러나 사실 처칠이 옳았다. 새로운 세계를 본다 하더라도 낡은 시각으로 볼 것이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것이었던 관점들로 새로운 세계를 파악했을 것이다.

[p622]죽음은 근심의 대상은 아니다. 사람들은 건강이라든가 돈, 가까운 미래의 매우 제한된 현실, 그러나 우리의 한계를 벗어나는 현실을 염려하다. 그러나 죽음은 이와 종류가 다르다. 실현 불가능성이라는 사실 때문에 죽음을 모호하고 불명확한 전망처럼 나타난다. 죽음의 숙명성은 외적으로 파악된다. “가난한 자든 부자든 모두 죽게 된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는 하나, 나의 죽음을 생각하기에 이르지는 못한다.

[p623]노인에게서 죽음이 최악의 불행이 아니라는 증거는 ‘삶을 끝장내기’로 결심하는 노인들의 수이다. 오늘날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노인들에게 삶의 여러 조건들 속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헛된 시련이다. 그리하여 많은 노인들의 삶의 단축을 선택하는 것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제 7장 노년과 일상생활
[p625]그러므로 노년은 젊은 시절보다도 훨씬 카르페 디엠의 시기이다.”씨 뿌린 것을 거두어들이는 “순간이라고 퐁트넬은 말한다.

[p633]대부분의 인간들에게서는 악순환이 생겨난다. 활동을 하지 않으므로 호기심과 정열은 저하되며, 무관심하므로 세계가 공허해진다. 그 공허한 세계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활동할 이유를 전혀 찾아 내지 못한다. 죽음이 우리 내면에, 그리고 사물 속에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p633]노인들에게 예정된 하나의 정열은 야심이다. 더 이상 세계에 대한 영향력이 없고, 그래서 더 이상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노인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기를 원한다. 자신의 이미지를 상실한 노인은 자기 밖에서 그것을 되찾으려 한다. 그는 훈장, 명예, 칭호, 아카데미 회원의 검을 갈망한다. 생명력이 꺼진 노인은 진정한 욕망, 실제 대상을 목표로 하는 정열의 충만함을 모른다. 그리하여 그는 겉치레를 추구한다.

[p651]습관, 그것은 과거이다. 그것은 표상으로서가 아니라 태도와 행동의 형태로 우리가 경험한 과거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몽타주와 기계적인 동작의 총체로서, 이것에 의해 우리는 걷고 말하고 글을 쓰고 기타 등등의 행동을 한다. 정상적인 노년기에 있어 이것은 약화되지 않는다. 심지어 그 역할이 커지기까지 하는데, 그것이 인습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p652]노인에게 있어 습관의 역할은 기계적인 동작과 틀에 박힌 일이라는 이중적인 현태로, 심리적인 생활이 저하되면 될수록 더욱 중요해진다.

[p655]이처럼 습관은 노인에게 있어서 일종의 존재론적인 안정을 보장한다. 그것을 통해서 노인은 자신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습관은 내일이 오늘을 되풀이 할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시킴으로써 노인들을 산만한 근심에서 보호한다.

[p664]여자들은 나이가 들어 그 지위가 하락해도 남자보다 덜 높은 곳에서 하락한다. 또한 여자들은 더욱 많은 활동 가능성을 유지한다.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덜 까다롭고, 권리를 적게 요구하기 때문에 ‘손을 떼는’ 일도 적다. 여자들은 또한 타인을 위해, 그리고 타인을 통해 살아가는 데 남자보다 익숙하다. 여자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좋은 일에나 나쁜 일에나 타인들에게는 현존하는 존재다.

[p678]우리는 노년이 평온함을 가져다 준다는 편견을 철저히 배격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p679]내가 만난 사람들 중 어느 누구에서도 책 속에서 볼 수 있는, 경륜이 가져다 주는 훌륭한 조부모의 지혜나 평온함을 볼 수 없었다.

[p680]아이들이 미완성이 아닌 것처럼 노인도 팔다리가 잘린 성인이 아니라, 완벽하고 독창적인 경험을 살아온 개인이다.

[p681](존 쿠퍼스)”노년에 우리 인간은 한가로이 수동적인 활동을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수동적 활동에 의해 우리 인체 조직은 무생물과 하나로 놓여 섞이게 된다”는 것이다. 노년의 행복, 그것은 무생물을 닮아가는 능력을 말한다.

[p687]지적인 면에서도 노년은 해방을 가져다 줄 수 있다. 노년은 환상에서 벗어나게 해주기 때문이다. 노년이 가져다 주는 명석함에는 때때로 쓰라린 환멸이 수반된다.

[p688]나이가 가져다 주는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나이는 맹목적인 숭배와 환상들을 제거해 준다.

[p689]노인의 가장 중대한 행운은 역시 양호한 건강 상태보다도 그에게 있어 세계가 아직도 목표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활동적이고 유용한 노인은 권태와 노쇠에서 벗어난다. 그가 살아가는 시간은 여전히 그의 시간이고, 일상적으로 말년을 특징 짓는 방어적이거나 혹은 공격적인 행동들이 그에게는 필요치 한다.

제 8장 노년의 실례들
[p707]위고의 예는, 우리는 의식적으로든 혹은 무의식적으로든 인생의 초기부터 어떤 노년을 준비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우연들, 특히 생물학적인 사고가 노년을 변질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개인의 손에 달려 있는 것에 한해서, 우리는 자신의 삶의 방식에 따라 스스로 노녀을 결정한다.

[p708](노년의 위고에 대해)”그는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젊고 더 매력적이다”라고 1877년 플로베르는 적었다.

결론
[p757]노년이 우리의 이전 삶의 우스꽝스런 하찮은 모방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한 해결책은 단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우리의 삶에 의미를 주는 목표들을 계속하여 추구하는 것이다.다시 말해 다른 사람들이든, 집단이든, 대의명분이든, 사회적 혹은 정치적 일이든, 지적∙창조적 일이든, 그 무엇에 헌신하는 길밖에 없다.

[p758]사람들은 종종 노년을 ‘준비’하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돈을 저축하고, 은퇴 생활을 할 곳을 정하고, 취미를 만드는 것에 그칠 뿐이다. 그날이 와도 우리는 거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모든 환상들이 사라지고 생명의 열기가 식었다 하더라고, 계속 삶에 밀착하기 위해서는 차라리 노년에 대해 너무 생각하지 말고, 정당하고 참여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낫다.

[p759]자기 일이 없는 여가란 자주성이 상실된 것이기 때문이다.

[p760]만약 인간이 어린 시절부터 다른 수많은 미립자들 틈에 갇혀, 고립된 미립자처럼 무력화되지 않는다면, 인간이 자기 자신의 삶과 마찬가지로 매일매일 본질적인 집단적인 삶에 참여한다면, 인간은 결코 유배를 겪지 않을 것이다.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도 이러한 조건들이 실현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사회주의 국가들이 자본주의 국가보다 조금은 더 거기에 가까이 가고 있지만, 아직도 한참 멀었다.
조금 전 내가 환기시킨 이상적인 사회에서라면 노년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우리는 꿈꾸어 볼 수도 있다.

Ⅲ.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은 ‘노년’이라는 생물학적, 문화적, 사회적인 현상에 대한 종합적인 보고서이다. 인류가 직면한 ‘노년’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이 책 뛰어넘어 면밀하고 방대하게 구성된 저작은 아직 없으리라고 생각된다.
먼저, 서론에서 보여준 시몬 드 보부아르의 문제 의식은 그녀의 지적인 욕구는 역시 대학자의 그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지금까지 인류가 우리 모두에게 당면할 문제에 대해서 얼마나 오랫동안 회피해 왔는지를 지적하는 부분에서 이 책을 읽는 모든 이가 가슴 뜨끔하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나도 그녀의 날카로운 문제 의식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보부아르를 여느 작가들과 구분 지어 줄 수 있는 특성이 아닌가 한다.
보부아르는 이 책에서 ‘노년’이라는 하나의 문제를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본다. 그 다양한 관점은 생물학, 사회학, 신화학, 역사, 철학, 문학과 예술 등에 까지 이르는 데, 이런 다양한 관점의 차용은 독자들에게 문제를 좀 더 자세하고 면밀하게 관찰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러한 다양한 관점에서의 문제의 관찰은 잘 못 활용했을 경우에는 독자를 산만하게 만들어서 문제의 핵심을 지나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보부아르는 역시 상당한 경지에 오른 작가임에 틀림이 없다. 이러한 다양한 관점을 취하여 각각의 관점에서 문제의 단면을 보여주되 결코 그 핵심을 벗어나지 않는다.
보부아르는 각각의 관점에 대해서도 깊은 이해력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깊은 이해력을 만들 수 있었던 그녀의 탐구심, 끈기, 지성에 대한 열정에 감탄을 하며 많은 존경을 보내고 싶다. 아울러, 고대와 신화에까지 이르는 그녀의 방대한 자료 수집력에도 감탄을 보낸다.
책에 면면히 흐르는 그녀의 날카로운 통찰력. 이것은 그녀의 깊은 사유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예를 들어, 나이듦을 거부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설명하는 다음과 같은 글에서 그녀만의 통찰력은 여실히 드러난다. 일반적인 생각에서 좀 더 깊이 생각을 해 보는 그녀의 사유능력 참으로 배울만하다.

[p304]노인은 예외 없이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이다. 그는 활동이 아니라 다만 현존으로 정의된다. 시간은 그를 하나의 목표 – 죽음-로 이끈다. 그러나 이 목표는 그의 목표가 아니며 또한 하나의 계획으로 설정된 것도 아니다. 노인이 활동적인 개체들에게 그 자신 스스로도 인정할 수 없는 ‘이상한 종’으로 보이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나는 노년이 생물학적으로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한 바 있다. 그래서 일종의 자기 방어로 우리 자신으로부터 노인을 멀리 내쫓는다. 그러나 이런 추방은 모든 시도 속에 내재하는 원칙적인 공모성이 노인의 경우에는 전혀 적용될 수 없기 때문에 가능해진다.

크게 1,2부로 나누어 노년을 외면성과 내면성으로 설명을 하는 방법도 그녀의 뛰어난 통찰력에서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 구조는 보부아르가 노년에 대해서 보는 그녀만의 틀을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구조라고 생각된다. 노년에 대해 사회가 규정하는 것과 개인 내부에서 느끼는 것을 나누어 보여줌으로써 그 둘의 모순적인 면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만든다. 이것 역시 내공이 쌓인 작가만이 할 수 있는 구성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보부아르는 많은 예시와 인용을 이용한다. 자칫하면 많은 예시와 인용은 독자들을 산만하게 만들 수도 있는 요소이다. 그러나, 그녀는 이 많은 예와 인용을 매우 부드럽게 끌고 나간다. 이는 그녀가 많은 예시와 인용을 먼저 잘 소화시켜 자신만의 언어로 재창조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이 된다. 많은 예와 인용을 사용하되 자신의 언어로 녹여내는 능력. 이것은 작가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배워야 할 점이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 간간히 등장하는 그녀의 페미니즘적인 시각이 매우 신선했다. 남성이 인간이 대표가 아니고 여성과 남성 간에 차이가 있음을 보여주는 그녀의 노력은 그녀가 자신이 페미니스트 임을 잊지 않는 자세라고 생각이 된다.

[p122] 역사를 갖고 있는 사회들은 남자들이 지배한다. 여자들 사이에서도 젊은이나 늙은이 사이에 권위를 놓고 다툴 수 있으나 그것은 사생활 연역에서일 뿐이다. 공적인 삶 속에서의 지위는 늙은 여자나 젊은 여자나 동일하다. 여자들은 영원한 미성년자들이다. 반대로 남자의 조건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한다. 청년은 성인 시민이 되고, 또 성인은 노인이 된다. 남자들은 연령 계층을 형성한다. 그 연령 계층의 자연적인 경계선은 모호하다. 그러나 사회가 정확한 한계선을 지정할 수도 있다. 퇴직 연령을 정해놓은 오늘날의 사회가 그러하다. 한 연령 계층에서 다른 연령 계층으로의 옮아감은 승격일 수도 있고 전락일 수도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남기는 아쉬움은 저자에 대한 것이 아니다. 우리 학계와 우리 지식계에 대한 아쉬움이다. 이 책에서 노년에 대한 철저한 분석은 서양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물론 많은 논의가 인류 보편적인 관점일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사회를 위한 철저한 사유는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노년’ 이라는 우리의 문제를 가지고 철저하게 사유하는 이런 명저가 우리 사회에서 하나 있었음 한다.
IP *.84.24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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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3.24 22:10:47 *.36.210.80
앞으로 열심히 해서 현정님이 하나 쓰면 좋겠네요. 우리 연구소에서 그런 인물이 나와 주면 참 좋을 텐데요. 늘 경쾌한 글 잘 읽었어요. 수고 많았네요.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바랍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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