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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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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24일 09시 55분 등록
노년 - 나이듦의 의미와 그 위대함

1. 작가에 대하여

시몬 드 보부아르 Simone de Beauvoir (1908 ~ 1986)
시몬 드 보부아르에 대한 짧은 기록
그녀는 1908년 프랑스 파리의 부르조아 가정에서 태어난다.
아버지는 변호사였고 어머니는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다.
엄격하고 보수적인 가정환경에서 어린시절을 보낸다.
소르본 고등사범학교에서 교수자격시험을 준비하던 중 만난
사르트르와 계약결혼을 하고, 평생 그의 연인으로 살아갔다.
시몬 드 보부아르와 사르트르는 서로의 사상과 학문에 깊은 영향을
주고 받는다.
1960년대 여성해방문학의 고전이 돤 “제 2의 성”에서 그녀는
“여자는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로 길러진다”고 선언했다.
소설 “초대받은 여자” 은 연극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밖에 여러 권의 여행기와 철학서를 남겼다.
자신의 자서전 “얌전한 처녀의 회상” “나이의 힘” “사물의 힘” “결국”
4권을 통해 격동의 시대를 살아간 한 프랑스 지식인의 사상과 생활을
힘차게 묘사했다.
“노년”은 1970년, 자신이 60대에 들어선 얼마 후에 쓰여진 책이다.
----- 라고 한다.

너무나 유명한 사람이라 이름은 널리 알려져 있으나, 나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이번 같은 경우가 가장 난감하다. 작가는 널리 알려진 책만 해도 십여 권이 넘는데 내가 아는 것이라곤 고작 그의 이름뿐이라니.
“노년”을 읽으면서 첫 번째 가장 놀란 것은, 내가 그저 아름답고 지적이며 자유로운 여인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시몬 드 보봐르가 엄청난 저작들을 쏟아낸 작가였다는 점이다.
“제 2의 성”이나 “노년” 두 권의 책만으로도 우리가, 아니 내가 그에 대해 가졌던 무지와 선입견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두 번째 왜 이만한 작가 앞에 여성이나 사르트르의 연인 같은 수식어가 그토록 끈질기게 붙어 다녀야 했는지 안타까웠다.
40여년전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노인의 삶”에 대해 끈질기게 질문하고 답한 그녀 시몬 드 보봐르에게 존경과 감탄을 보낸다.
물론 읽기 쉬운 책은 아니었다. 이후에 그의 다른 저작들을 깊이있게 만나보고 싶은 마음까진 들지 못했다.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그의 자서전 - 무려 네권이나 된다는 - 은 꼭 읽어보고 싶다.
1908년이라, 그가 태어난 해서부터 사오십년동안 세계는 전래없이 격렬한 변화와 다툼의 시절을 지나왔다. 파리는 그 역사적인 시대의 한 복판에 서 있었을 것이다. 그 파리에서 이 열렬한 지식인은 어떻게 시대를 살아왔을까 그것이 몹시 궁금하긴 하다.
시몬 드 보봐르 검색창을 통해 만난 그녀가 너무 아름다워서, 나이든 그녀는 훨씬 더 매력적인데 그것이 좀 마음에 안 들긴 하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8 붓다는 한 노인을 통해 그 속에서 자신의 운명을 보았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태어난 붓다는 인간 조건 전부를 걸머지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그가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은 바로 이것이다. 사람들은 인간 조건 중에서 자신에게 고통스러운 것들은 피한다. 그중 “늙음”이라는 것을 유난히도 멀리한다. 미국사람들은 사망한 이라는 단어를 말소해 버렸다. 미국 사람들은 가버린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또 노년에 관계되는 모든 말들을 회피한다. 오늘날 프랑스에서도 “늙음”은 역시 금지된 주제이다. “사물의 힘”마지막 부분에서 나는 그 금기를 깨뜨렸다. 그때 그로 인해 야기된 항의의 소리란! 나는 내가 노년의 문턱에 서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이러한 인정은, 늙음이 모든 여자들을 복병처럼 노리고 있으며, 이미 많은 여자들이 늙음에 발목이 잡혀 있다고 말한 셈이었다. 많은 사람들, 특히 나이가 지긋한 분들은 친절하게 혹은 몹시 화를 내면서 내게 똑같은 소리를 수없이 되풀이했다. “노년이란 존재하지 않아요! 다른 사람보다 젊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 뿐이에요”라고. 우리는 노년을 마치 일종의 수치스런 비밀처럼 여긴다.

9 노인들에 대하여 사회가 취하는 태도는 하나같이 이중적이다.

11 경제력이 전혀 없는 노인들은 그들의 권리를 부각시킬 수단이 없다. 착취하는 사람들의 관심사는 생산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들과 종사하는 사람들 사이의 연대관계를 끊어 생산에 참여하지 않는 자들이 그 누구에 의해서도 변호받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12 프루스트는 “모든 현실 중에서 순수하게 추상적인 개념을 가장 오랫동안 간직하는 현실은 아마 노년기일 것이다”라고 정확하게 평가한 바 있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모든 사람들이 그 사실을 셩각한다. 사람들 중 대다수는 노인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삶의 큰 변화를 앞당겨 사전에 직시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늙는다는 것보다 더 자명하게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없다.

그날이 오면, 그보다 앞서 이미 그날이 가까워 오면, 사람들은 보통 죽는 것보다는 늙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긴 시간을 앞서서 거리를 두고 가장 명철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 바로 늙는다는 현실이다. 노년기란 우리의 직접적인 가능성 들 중의 일부이며, 어느 나이에고 노년은 언제나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13 우리가 어느 한순간 늙은이가 되어버리는 것은 아니다. 젊거나 혹은 한창 나이일 때 우리는 붓다처럼, 우리의 내면에 이미 미래의 노인이 살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16 한 인간이 인생의 마지막 15년 또는 20년 동안 인수를 거절 당한 불량품으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은 우리 서양 문명의 실패를 나타낸다.

한 사회를 뒤흔들어 동요시키려면 그 사회에서 가장 불행한 자들의 운명을 개선하는 데에 노력을 집중시켜야만 성공한다.

18 나의 본질적인 목표는 오늘날 우리 사회 속에서 연로한 사람들의 운명이 어떤한가를 밝히는 겅이다.

19 모든 인간의 상황은 보는 관점에 따라 외면성과 내면성, 두가지 관점에서 고찰될 수 있다. 외면성이란, 그 상황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는가 하는 것이며, 내면성이란, 그 주체가 어떻게 그것을 받아들여 초월해나가는가 하는 것이다. 타인의 노년은 앎의 대상이다. 반면 자기 자신의 노년은 자기의 상태에 대한 산 경험과 관련있는 법이다.

노년은 정태적인 사실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과정의 결말이며 연장이다. 이 과정을 구성하는 것은 무엇인가? 다시 말해서 늙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늙는다는 개념은 변화의 개념과 직결되어 있다.

20 태아, 신생아, 어린아이의 삶도 연속적인 변화이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이 이미 그렇게 정의내렸듯이 느릿느릿 죽어 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고 결론 지어야 할까? 분명 그렇지 않다. 그러한 역설은 삶의 본질적인 진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매순간 평형을 잃고 다시 정상을 회복하는 불안정한 체계, 그것이 삶이다. 죽음의 동의어, 그것은 부동의 상태이다. 변화야말로 삶의 법칙이다. 노화란 변화의 한 유형이다. 불가항력적이며 불리한 변화, 그것을 우리는 노쇠라고 부르는 것이다.
미국의 노인학 의사인 랜심씨는 노화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노화란 보통 시간의 흐름과 관계가 깊으며, 성숙기 이후 뚜렷해져서 마침내는 확고부동하게 죽음에 이르는 불리한 변화의 점진적인 과정이다.”

21 출생에서 18세 또는 20세까지 신체 조직의 발달은 생존 기회의 증가를 목표로 한다. 신체 조직은 저항력을 더 높이며 어려움을 타개할 수 있는 수단을 증가시키고 따라서 전체 능력도 커진다. 개인의 신체적 능력의 총체는 20세를 전후해서 활짝 꽃피어 절정에 이른다. 그러니까 전체적으로 볼때 20세까지 신체 변화는 이로운 변화라고 할 수 있다.

22 쇠퇴는 절정에 다다르고 나서야 이루어진다. 그러면 절정의 위치를 어디로 잡아야 하는가?
23 인간에게 진보란 무엇이고 퇴보란 무엇안가를 정의하는 일은 어떤 목표에 의거했을 때에만 가능하다. 그러나 그 목표는 절대로 선험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어느 사회나 각자 고유의 목표를 창출해낸다. 따라서 사회라는 배경 안에서만 쇠퇴라는 말의 정확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즉 노년은 총체성 안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노년은 단지 생물학적인 현상이 아니라 문화적 현상이기도 한 것이다.

27 히포크라테스는 노화는 56세에 시작된다고 했다. 인간 삶의 단계를 처음으로 자연의 사계절에 비교한 것도 그였고 노년을 겨울에 비교한 것도 그였다.
30 르네상스 초기에 눈부시게 진보한 의학 분야는 해부학이다.
현대 해부학의 창시자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였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그는 육체를 정확히 알고 싶었던 것이다.

31 마치 기계가 닳듯이 신체 기관도 너무 오랫동안 사용하면 파손된다는 생각이다.

35 그 노파의 병은 다름 아닌 노환이라고 설명했다. 의학생인 네이셔는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어쩔 도리가 없는 거지” 네이셔는 교수의 이 대답에 너무 놀라 노쇠에 대한 연구에 헌신하게 되었다.

37 노인학은 생물학적, 심리적, 사회적인 세 차원에서 전개되었다.
현대의학은 노화를 출생이나 성장, 번식, 죽음과 똑같이 삶의 과정에 내재된 것으로 간주한다.
“노와와 죽음은 에너지 소비의 일정한 특정 수준, 심장의 일정 박동수와 관계 있는 것이 아니다. 노화나 죽음은 성장과 성숙의 확정된 프로그램이 한계에 도달하게 될 때 일어나는 것이다.”
릴케의 말처럼 “마치 과일이 그 씨를 품고 있듯이 우리들 각자가 우리 내면에 품고 있는” 죽음과 같이, 모든 신체 조직은 애초부터 그 완성의 피할 수 없는 경과로서 노화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39 치아가 빠지면 얼굴 아랫부분이 짧아진다. 그 결과 탄력있는 세포조직의 수축으로 코가 길어져 턱과 가까워진다. 노화에 따른 피부 조직의 증식으로 윗 눈꺼풀은 두꺼워진다. 반면 아래쪽에는 눈자위가 처지게 된다. 윗입술은 얇아지며, 귓불은 커진다....

40 운동신경은 자극을 더욱 천천히 전달한다. 그래서 반응이 느려진다. 신장과 소화샘, 간도 쇠약해진다. 감각 기관들도 타격을 받는다. 적응 능력이 감소한다. 노안은 노인들에게 거의 보편적인 현상이다. 시력이 떨어지고 식별 능럭도 쇠퇴한다. 청력 역시 쇠퇴하여 따로는 아주 들리지 않을 정도에 이른다.

42 순수한 상태의 노화 라고 부를 수 있는 경우를 만나기란 아주 드문 일이다.

44 연대기적 나이와 생물학적 나이는 꼭 일치하지 않는다. 신체적인 외양은 생리적인 검사보다 살아온 햇수를 더 잘 알려준다.

46 예전에는 종종 정신적인 변화와 신체적인 변화 사이에 명백한 대조가 있었다. 몽테스키외는 이러한 정신과 신체의 불일치를 통탄했다. “불행한 인간 조건이여! 정신이 겨우 성숙한 지점에 다다르면, 육체는 쇠약해지기 시작하는 구나!” 들라크루아는 그의 일기에 이렇게 적고 있다. “나이가 가져다 주는 정신의 힘과 또한 나이의 결과인 육체의 쇠약 사이의 이 기이한 불협화음은 언제나 나를 놀라게 한다. 그것은 내게 자연의 법령들 중 하나의 모순으로 여겨진다”

신체적 건강은 정신이 낙오될 때 망가진다. 반대로 생리적인 삶이 심각하게 저하되면 지적 능력의 장애가 온다.

52 인간의 수명은 다른 포유동물보다 길다.
많은 다른 요인들이 개입되는 데 그 중 첫째가 성이다. 모든 동물의 종을 통틀어 암컷은 수컷보다 오래 산다.

56 늙은 수놈이 냉대받는 이유는 그가 암놈들을 독차지했고 젊은 놈들에게 폭정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늙은 암원숭이들은 어떤 경우에도 죽임을 당하지 않는다. 무리가 이들을 책임진다.

59 많은 신화들은 인류에게 영속적인 힘이 있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순간 젊음을 다시 되돌려 받기 때문이다. 즉 옛사람은 없어지고 새 사람이 생기는 것이다.

63 극단적인 빈곤은 인간 생활을 예측 불가능으로 인도한다. 현재의 필요성이 가장 지배적이어서 사람들은 현재에 미래를 희생시킨다.
66 가난이 극에 달하면 가난은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가난은 감정을 억누르게 한다.

74 노인들은 보통 장엄하게 죽는 것을 더 선호했다. 사람들은 잔치를 베풀었고, 평화의 담뱃대를 피워 물었고 죽음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다시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아들은 큰 도끼로 자기 아버지를 죽였다.

75 첫째는 “나라야마”라는 일본 소설인데 후카자와는 실제 사건들에서 영감을 받아 한 노파의 종말을 표현하고 있다. 최근까지도 일본의 벽지에는, 너무 가난하여 살기 위해 노인들을 희생시켜야 하는 마을들이 있었다. 그들은 노인들을 “죽음의 산”이라는 산에 데려가 버리곤 했다.

80 아주 가난하지만 노인들을 제거하지 않는 미개인들도 있다.

100 노인들의 으뜸가는 성공 조건은 자식들의 사랑을 받는 것이다.

그들의 사회적 위치는 그들의 능력이나 재산에 달려 있다.

107 젊은 사람들보다는 훨씬 더 선조와 가깝고, 자기 차례가 되면 곧 이어 선조가 될 노인에게 사람들은 신성한 성격을 부여하는 것이다. 혈통은 그 사람을 통해 육화된다.

115 역으로 노인 살해 없이 유아 살해가 이루어지는 경우는 없다.
유아와 노인은 둘 다 기식자이므로 빈곤할 경우 그 사이에는 경쟁 관계가 생긴다. 그래서 아이들은 노인들의 몫을 훔친다.
손자와 할아버지 사이에는 흔히 긴밀한 유대가 있다. 그들은 상징적으로 같은 연령에 속한다.
120 노인에 관한 역사를 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역사는 순환성을 내포한다.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 원인은 다시 그 결과에 의해 수정된다. 이러한 연쇄성에 의해 전개되는 통시적인 단위는 일정한 의미를 지닌다.
사회적 범주로서 노인은 한 번도 이 세상의 흐름에 개입하지 않았다. 노인은 활동 능력이 있는 한 그 집단에 통합되어 존재하기 때문에 그 존재가 집단과 구별되지 않는다. 그는 단지 나이든 남자 성인일 뿐이다. 능력을 상실하게 되면 그때서야 “딴사람”으로 보이게 된다.
노인의 지위는 “주어지는”것임을 우리는 이미 보았다. 그러므로 노인 자신은 결코 자신의 지위 문제에서 아무런 진전도 가져오지 못한다. 흑인의 문제는 백인들의 문제이며, 여성의 문제는 남성들의 문제라고 사람들은 말해왔다. 그렇지만 여자는 평등을 쟁취하기 위하여 투쟁하고 흑인들은 억압에 대항해 싸운다. 그러나 노인들은 아무런 무기도 가지고 있자 않다. 그리고 노인들의 문제는 엄밀히 말해서 활동하고 있는 성인들의 문제이다.

121 노인 문제는 권력의 문제이다. 그러나 그 문제는 단지 지배 계급들 내부에서만 제기된다. 19세기까지 “늙고 가난한 자들”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노인들이 많지도 않았다. 장수란 특혜를 받은 계급 안에서만 가능했다.

122 지금부터 나는 나의 연구를 서양 사회에 국한시킬 것이다. 그러나 단 하나 예외를 두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중국이다. 그 이유는 중국이 노인들에게 만들어 준 기이한 특권적인 조건 때문이다.

133 첫 번째 전설은 노쇠가 그리스인들에게 죽음 그 자체보다 더한 재앙으로 여겨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새벽의 여신 오로로는 남편 티토노스의 영원한 생명을 얻어냈지만 그와 더불어 영원한 젊음을 요구하는 것을 깜빡 잊었다. 그에게 아무리 신의 양식을 먹여도 소용이 없어 티토노스는 노쇠를 피할 수 없었다.

151 플라톤은 노년의 가치를 확립해 놓은 다음, “가장 나이 많은 사람들이 명령하고, 젊은 사람들은 그 말에 복종해야 한다”라고 결론 짓는다.

154 아리스토텔레스는 나이 많은 사람들을 권력에서 멀리 떼어놓게 했다.

207 가난하고 바싹 마르고, 자그마한
내 벗은 몸을 보고 있자나
내 모습이 어찌나 변했는지
거의 미칠 듯이 화가 나네

축 늘어진데다가 이끼 낀 두 귀,
죽은 듯 창백하고 혈색 없는 얼굴,
찌푸린 턱과 닳아빠진 입술,
이것이 인간의 아름다움의 결말.

이것은 비유가 아니다. 이것은 어느 개인의 정확한 초상화이자, 우리들 모두와 관련있는 초상화이다. 아름다움을 상실한 이 노파의 모습속에는 인간 조건이 모두 문제시되고 있다. 노년은 다른 사람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비용에 의해 예언된 한탄처럼 아름다운 젊은 여인을 노리고 있듯이 우리들 모두를 노리고 있다. 노년은 우리의 운명이다.

224 몽테뉴는 마치 자기 이전에는 아무도 노년에 대해 말한 사람이 없었던 것처럼 노년에 대해 자문했다. 이것이 몽테뉴의 심오함의 비결이다.
몽테뉴는 노년을 멸시하지도 찬양하지도 않는다. 그는 다만 노년의 진실을 밝히고자 한다. 개인적으로 그는 노년이 자신을 풍요롭게 해주었다고 판단하지 않는다. 플라톤과 키케로의 도덕적인 낙관주의에 반하여, 노인들은 현명하다는 주장에 반하여, 몽테뉴는 자신의 경험을 환기시킨다.
“오래전부터 나는 서서히 늙어가고 있다. 그러나 조금도 현명해지지는 않았다. 지금의 나와 이후의 나는 확실히 다를 것이다. ”

225 “나는 요컨대 나이가 들면서 문득 찾아오는 회한이 싫다. 예전에 관능적 쾌락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주는 나이에 감사한다고 말했던 사람에게 반대한다. 나는 나이 때문에 직면하는 무능력을 도저히 감사할 수 없다.... 노년에는 욕망도 줄어든다. 그 후에는 깊은 포만감이 우리를 사로잡는다.
나는 노년에 강렬하게 그리고 주의 깊게 반항한다. 그런데도 지금 나의 이성은 가장 방탕했던 나이에 내가 갖고 있던 이성과 똑같은 것 같다
...“

226 나는 전통적이며 완화된 상투적 표현들을 과감히 버리고, 발전을 위한 그 어떤 진실의 훼손도 거부하며, 살아온 세월의 단순한 축적을 성장이라고 간주하기를 거부하는 점에서 몽테뉴를 존경한다. 그러나 몽테뉴의 경우에는 흥미로운 역설이 존재한다. 그 자신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하더라도 독자의 눈에는 금방 눈에 뛴다. 그것은 몽테뉴의 수상록이 그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더욱더 풍요롭고 내밀하며 독창적이고 심오해졌다는 점이다. 노년에 대한 환상이 전혀 없이 신랄하게 써내려간 이 명문들은 30세 때는 쓸 수 없었을 것이다. 몽테뉴의 위대함은 그가 능력이 감소했다고 스스로 느끼는 순가 최고에 달한다. 자신에 대한 엄격함이 없었더라면 이런 위대함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자기 만족은 능력을 감퇴시킨다.

228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들 중에는 노인들의 초상화가 많다.
그 시대의 돈 많고 존경받는 노인들은 자신의 노년을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229 “추악한 노파”는 화가들이 즐겨 그린 주제있다.

230 매우 위대한 예술가들은 시대를 증언하기보다는 자기 시대를 만들어 나간다.
회화속에서 노인들에게 많은 자리를 할애하고 있는 다빈치, 렘브란트도 마찬가지이다. 노인들의 특성아 대한 다빈치의 연구는 희화의 경지에까지 이른다.

235 리어가 빈곤과 참혹한 비탄으로 인해 자기 처지의 진실을 보게 되었을 때, 세익스피어는 리어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인간이 겨우 이것이란 말인가? 치장하지 않은 인간은 너와 같은 벌거벗은 동물, 두 갈래로 갈라진 동물, 그 이상 아무것도아니란 말인가! 자! 빌려온 것들일랑 모두 던져버리자! 자! 우리 여기서 옷을 벗어 던지자!”라고 소리치면서 리어는 옷을 벗어 던지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그는 때때로 광기에 빠지고 이따금씩 진실의 섬광에 의해 밝아진다.
광기와 가까이 있는 노년에는 우리가 전통적으로 품고 있는 존경할 만한 현자와 미친 노인, 이 두 개의 모순적인 이미자가 결합되기도 했다.
그가 숭고함에 다다르는 순간은 그가 와해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236 세익스피어는왜 “리어왕”을 썼을까 어떤 이유로 노인을 통해 인간을 표현했을까 하는 질문을 사람들은 자주 던졌다. 그것은 아마 영국의 도시와 시골에서 노년이 맞게 되는 비극적 운명을 많이 보았가 때문일 것이다.

277 게다가 졸라는 그 소설의 해설에서 “리어왕”에 대해 암시하고 있다. 사실 몇 세기 간격에도 불구하고 졸라와 세익스피어는 유사한 상황을 그리고 있다. 소설 초반에 푸앙 노인은 더 이상 농사를 지을 기력이 없어서 재산을 자식들에게 나누어주려고 그들으 공증인 사무실로 불러 모은다. 자식들은 아버지가 요구하는 연금에 대해 악착스레 논쟁을 벌이다. “두 노인의 삶은 필요한 물품에 따라 조목조목 파헤져지고 펼쳐지고 논의되었다. 빵, 고기, 야채 등 하나하나 무게를 달고.... 더 이상 일을 하지 못하면 생활비를 절약할 줄 아셔야 한다구요...”마침내 액수가 정해진다. 우선 노인은 아내와 함께 자기 집에서 계속 산다. 자식들은 합의한 연금의 극히 일부만을 준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아버지와 막내 아들 뷔토 사이에 끔찍한 말다툼이 벌어진다.
그는 리어왕처럼 차례차례로 이 자식, 저 자식의 집으로 옮겨 간다. 그는 자식들의 집에서 너무 불행하다.

278 육체적 힘을 상실한 아버지는 모든 권위를 상실한 것이다.

345 모랭은 세대간의 갈등을 강조한다. “한창 일할 나이의 젊은 성인과 아버지가 같이 사는 경우 그들 사이는 잔인한 갈등의 대립관계이다.”

346 1962년 빈에서 실시된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는 노인들이 공동 생활이나 고립보다는 “거리를 두는 밀접한 관계”를 더 좋아하는 것을 보여주었다.

366 남자의 인생에서 퇴직은 뿌리 깊은 단절을 가져온다. 그것은 과거와의 단절이다. 그는 퇴직으로 인한 휴식이나 여가 시간 같은 어떤 이점과, 궁핍과 자격 박탈이라는 심각한 단점을 초래하는 그의 새로운 신분에 적응해야 한다.
헤밍웨이는 이렇게 썼다. “어떤 사람에게 있어 최악의 죽음은 자기 삶의 중심, 진실로 그를 현재의 그로 만들어주는 것을 상실하는 것이다. 퇴직이란 말은 모든 말 중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단어이다. 자발적으로 선택하든, 혹은 운명적으로 강요당해서이든 퇴직한다는 것, 우리를 현재의 우리로 만들어주는 일을 포기한다는 것, 그것은 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368 “나는 일을 그만두게 된다고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나는 막연히 퇴직 이전에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371 전문적인 직업 환경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퇴직자들은 일생동안 지켜 온 일과 시간과 습관을 바꾸어야 한다.

384 일과 피로가 삶의 부재를 가리고 있다. 그러다가 은퇴와 동시에 그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권태보다 더욱 심각하다. 노동자는 나이가 들면 이 지상에서 자신의 자리를 잃어버린다. 실제로 그에게 자리가 주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단지 그가 그것을 알아차릴 시간이 없었을 뿐이다. 그 사실을 깨닫게 될 때 그는 아연한 절망에 빠지게 된다.

417 나이 든 화가들의 자화상은 흥미롭게 관찰할 만하다. 자기 얼굴의 그림을 통해 그들은 결산의 순간에 그들이 맺고 있는 자신의 생활과 세계와의 관계를 드러낸다.
60세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자기 모습을 노년의 놀라운 알레고리로 표현했다. 결류처럼 세차게 뻗어 넘치는 수염과 머리카락, 숱많은 눈썹은 혈기 왕성하기까지 하여 변함없는 생명력을 나타낸다. 얼굴선은 경험과 지식으로 새겨져 있다.

419 내가 알고 있는 노인의 자화상으로 기쁜 표정을 솔직하게 짓고 있는 것은 단 한 작품밖에 없다.
특기해야 할 것은 70세의 고야의 자화상이다. 그는 자기 나이를 부정하여 자신을 50세의 남자의 모습으로 그렸다.

445 한 개인이 성행위로부터 이끌어내는 만족감은 대단히 다양하고 풍부하다. 무엇보다도 인간은 그 행위에서 쾌락을, 혹은 욕망으로 인한 세계의 변모를, 혹은 일종의 자아의 표상을 얻고자 한다. 또는 이 모든 목적을 동시에 얻고자 한다. 어쨌든 우리는 남성이든 여성이든 그것을 포기하기는 끔찍이도 싫어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489 늙은 여자들의 성욕에 관한 근거 있는 자료는 역사에도 문학에도 없다. 문제는 연로한 나이에서 여자의 성욕은 남자의 성욕보다 금기시된다는 것이다.

491 노년은 전반적으로 욕구 불만의 시기이다. 그래서 노년은 막연한 원한들을 질투라는 형식으로 구체화하게 한다. 한편 성욕의 감퇴는 많은 노년의 부부들에 있어서 일방적인 또는 상호적인 원한들을 불러일으키며, 그 원한은 질투로 표현될 수 있다.

505 나이는 우리 자신과 시간과의 관계를 바꾸어놓는다. 해가 바뀜에 따라 우리의 과거는 점점 더 육중해지고, 반면 우리의 미래는 점점 짧아진다. 노인이란 “살아온 긴 생을 뒤에 갖고 있으며, 앞으로 살아갈 삶의 희망이 매우 한정된 인간이다 라고 정의할 수 있다.

506 “그들은 희망으로 살기보다는 차라리 추억으로 살아간다.”
“늙은 남자는 다시 어린아이로 되돌아가지는 못하지만, 비밀스레 그 시절로 되돌아가 작은 목소리로 엄마를 불러보는 기쁨을 즐긴다.”

507 그들은 시간을 거부한다. 쇠퇴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노인들은 자신들의 옛 자아가 현재에도 계속 존재한다고 규정한다. 그들은 자기 청춘과의 연대성을 주장한다. 설사 그들이 자기 정체성의 위기를 극복하고 자기의 새로운 모습 – 할머니, 퇴직자, 노작가 – 을 받아들였다 하더라도 각자 마음속으로는 자신이 변함없는 존재로 남아 있다는 확신을 간직하고 있다. 그들은 추억을 회상하면서 이러한 확신을 정당화한다. 노쇠에 따른 여러 가지 지위 하락에 맞서 그들은 변함없는 본질을 내세운다. 그들은 지치지 않고 자신들 안에 계속 살아남아 있는 과거의 자기 존재를 스스로에게 이야기한다. 때로 그들은 과거의 자신 중에서 가장 자존심을 만족시켜주는 인물을 택해 자기 자신이라고 인정한다. 그들은 영원히 옛 전사이며,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여인이며 존경할 만한 어머니인 것이다. 아니면 그들은 청춘기 최초의 신선함을 머릿속에 되살린다. 특히 그들은 모리악처럼 그들에게 있어 세계가 결정적으로 형성된 시기, 즉 어린 시절을 되돌아본다. 그래서 그들은 - 30세에건 50세에건 – 이제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면서도 동시에 마음속으로는 계속해서 어린애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과거의 자기 모습을 되찾아 그때 모습과 하나가 되는 순간, 그들은 80세이면서 동시에 30세 혹은 50세인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나이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521 왜 노인들이 그렇게 쉽사리 어린 시절로 향하게 되는가? 우리는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노인은 어린 시절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회학적 측면에서 확인한 바 있는 유아기와 노년기의 결합이 개인에 의해 내면화되는 것이다. 삶을 떠나야 할 노인은 이제 막 혼돈 상태에서 빠져 나온 어린 아기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522 그는 자신의 과거에서 자기가 소외됨을 느낀다.

523 노인에게 일 년이라는 시간의 길이는 비참할 정도로 짧게 여겨진다. 왜냐하면 우리 인생의 서로 다른 시기마다 시간이 흐르는 속도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늙어갈수록 시간은 빨리 흐른다.
어린아이들에게는 시간이 길게 느껴진다. 어린아이는 시간 속에서 움직인다. 그러나 그것은 강조된 시간, 어른의 시간이다. 어린아이는 시간을 측정하지도 예측할 줄도 모른다. 어린아이는 시작도 끝도 없이 계속 되는 사건 가운데서 헤맨다. 내가 계획을 짜서 시간에 활기를 불어넣고, 나의 학업 일정에 따라 시간을 배분했을 때 나는 시간을 제어할 수 있었다.

524 쇼펜하우어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어린 시절에는 사물과 사건들에 새로움이 있어 모든 것이 우리의 의식 속에 새겨진다. 또한 하루하루가 까마득히 길게 느껴진다. 마찬가지 이유로 어른인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여행을 할 때이다. 여행을 하면서 보내는 한 달은 집에서 지내는 넉 달보다 더 길게 느껴진다.”

559 작가가 먼저 전달하기를 선택하고 그 후 상상력을 이용한다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글쓰기라는 천직을 결정하는 것은 상상의 세계에 대한 그의 독창적인 선택이다. 이러한 선택의 동기는 개인에 따라 다양하다. 그러나 이 선택은 언제나 문학 작품의 근원적인 문제이다.
문학작품이란 종이 위에 새겨진 기호들을 통해 주체가 유희와 몽상에 의해 창조해낸 비현실적 세계의 물질화이다. 비현실적 세계가 안정성을 갖고 경험의 전달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오로지 그것이 현실 세계의 다른 차원으로서의 투사이기 때문이다.

560 글을 쓴다는 것은, 인간이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거부와 인간들에 대한 눈물의 호소 사이의 긴장을 내포한다. 작가는 인간들에게 저항하는 동시에 그들과 더불어 있다. 이것은 지탱하기 어려운 태도이며 강렬한 열정을 함축한다. 그리고 이것을 오랫동안 지속하기 위해서는 힘이 요구된다.

614 노인에게 죽음은 더 이상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운명이 아니다. 죽음은 이제 임박한 것, 개인적인 사건이다.

620 내가 수집한 증거 자료에 의하면 죽음에 대한 불안은 일반적으로 삶에 대한 열정적인 사랑의 이면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사르트르는 유년 시절을 말하며 “죽음은 나의 현기증이다. 왜냐하면 나는 삶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불안해하는 부모나 마찬가지로 항상 불안해하는 배우자들은 가장 사랑하는 자들이 아니라, 자신들의 감정 속에서 어떤 결핍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가장 심하게 끊임없이 죽음을 되새기는 사람들은 자기 삶 속에서 편안하게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631 나이는 우리에게서 배우고자 하는 욕구를 앗아가는 것이다.
계획의 부재는 알고자 하는 욕망을 죽여 버린다.

643 “삶이 아직도 내게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에 대해 나는 더 이상 큰 호기심이 없다…… 하루하루에 진절머리가 난다. 이 지상에서 내게 남아 있는 이 시간들을 어디에 사용해야 할지 이젠 잘 알 수 없다. 지독하게 무표정한 권태의 얼굴"

652 선택하는 것은 노인을 두렵게 한다.
그의 열등감은 망설임, 의심으로 나타난다. 노인에게는 신뢰할 수 있는 명령에 의지하는 것이 편리한 것이다.

655 습관은 노인에게 있어서 일종의 존재론적인 안정을 보장한다. 그것을 통해서 노인은 자신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습관은 내일이 오늘을 되풀이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시킴으로써 노인들을 산만한 근심에서 보호한다.

678 우리는 노년이 평온함을 가져다 준다는 편견을 철저히 배격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고대부터, 성인이 된 인간은 인간 조건을 낙관적으로 보려고 했다. 자신이 지금 지니지 못한 미덕들을 나이에 전가시켰다. 즉 아이들에게는 순수함을, 노인에게는 평온함을 전가시켰다. 인간은 말년을, 그를 괴롭히는 모든 갈등이 해소되는 시기로 간주하고자 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편리한 환상이다.

683 특히 여자들에게 있어 말년은 하나의 해방이다. 평생 동안 남편에게 복종하고 자식들에게 헌신한 여자들은 마침내 자신을 염려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756 사실 우리가 삶에 대립시켜야 하는 것은 죽음보다 차라리 노년이다. 노년은 죽음의 풍자적 모방이다. 죽음은 삶을 운명으로 변화시킨다. 어느 면에서 죽음은 삶에 절대의 차원을 부여함으로써 삶을 구원한다.

757 노년이 우리의 이전 삶의 우스꽝스러운 하찮은 모방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한 해결책은 단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우리의 삶에 의미를 주는 목표들을 계속하여 추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들이든, 집단이든, 대의명분이든, 사회적 혹은 정치적 일이든, 지적.창조적 일이든, 그 무엇에 헌신하는 길밖에 없다.

759 살아오면서 겪은 손상은 훨씬 더 근본적인 것이다. 은퇴한 사람은 현재의 자기 삶의 무의미함에 절망한다. 그는 항상 삶의 의미를 도둑질 당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죄이다. 우리 사회의 ‘노인 정책’은 수치스러울 정도다. 그러나 더욱더 수치스러운 것은 우리 사회가 대부분의 청년기와 장년기의 인간에게 하는 대우이다. 우리 사회는 그들의 말년의 몫인 훼손된 비참한 조건을 미리부터 만들고 있다. 노쇠가 때이르게 시작되고, 빨리 진전되며, 육체적으로 고통스럽고, 정신적으로 끔직한 것은 사회의 잘못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빈손으로 노년에 다가가기 때문이다. 소외되고 착취당한 사람들은 기력이 사라지면 숙명적으로 ‘폐품’과 ‘쓰레기’가 되는 것이다.

760 대답은 간단하다. 인간이 항상 인간으로 대우받는 사회여야 한다.
노년은 우리 문명의 모든 실패를 고발한다.
노인의 조건이 받아들일 만한 것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인간을 온통 다시 만들어내야 한다. 인간들 사이의 모든 관계를 재창조해야 한다.

761 그리하여 요구는 근본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바로 삶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3. 내가 저자라면

권보드래 : 당신은 사실 전 재산을 털어 놓고 있는 것 아닌가. 집 한 채도 없는 신세라면서, 정년을 보장해 줄 교수도 아니고, 자식도 없잖은가, 뭘 믿고 그러는 건가?
고미숙: 근데 정말들 경제적으로 불안한 건가? 먹고 살만한 능력 있잖아?
권: 실제로 따져보면 불안할 이유가 없을지 모르지. 그럼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꼬박꼬박 월급 들어오고 평생 그걸 받아먹을 수 있다고 생각할 때의 안정감과 계속 분주하게 뭄을 움직여서 그때그때 생계를 해결해야 한다고 할 때의 불안감.
고: 공부를 계속하면 능력은 더 커질 것 아닌가? 돈이 없다, 직업이 없다, 가족이 없다. 이런 말은 사실 현실을 걱정하는 말이라기보다 미래를 걱정하는 말 아냐? 지식인이라면 돈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사업가라면 당연히 돈으로 자신의 삶을 표현해야겠지만, 지식인이 자기를 표현하는 경로는 다양하니까. 그리고 난 본래 물질을 욕심내는 회로가 없다.
권: 꼭 경제적인 것만 말하는 건 아니다. 지금 수유연구실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언제까지 당신 곁에 있겠나?
고: 물론. 하지만 난 계속 새로운 사람을 만날 거다.
권: 언제까지? 쉰 넘고 예순 넘고 칠순 넘기고까지? 당신도 벌써 마흔이 넘지 않았나.
(중략)
권: 당신이 말하는 역동성이 과연 시간을 이겨낼 수 있을까?
고: 시간을 이기지 못하면 혁명은 없다. 혁명은 일상을 극복할 때 온다. 일상 안에서 축제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일상을 축제화하지 못한다면 그건 혁명이 아니다.
권: 난 시간과 더불어 성숙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고: 그게 그 얘기다.
권: 반대되는 말처럼 들리는데?
고: 나한텐 아니다. 시간과 더불어 성숙하고, 더 많은 능력이 생기고 새로운 벗들이 생길텐데 10년 후를 걱정하겠나? 게다가 자식? 자식이 10년 후를 보장해 줄 수 있나? 20년 후에도 여전히 친구가 될 것 같나? 난 그거야말로 허구라고 생각해.
결국 횡적인 연대가 관건인데, 친구는 어디서건 만날 수 있다.
(고미숙 지음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p 110 )

수유+너머가 오늘 만큼 유명하지는 않았을 때, 고미숙이 그의 친구 권보드레와 함께 한 웹진 인터뷰의 일부라고 한다. 이날의 인터뷰 제목이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였고, 책의 제목이 되었다. 이 인터뷰했을 때로부터 시간이 꽤 흘러 고미숙은 이제 나이 쉰에 아주 가까워졌다. 그녀는 자신의 말대로 공부를 계속해서 능력도 더 커졌고, 노후대책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어 보인다.
나는 고미숙이 말했던 노후대책을 내식대로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던 것 같다.
공부하기, 친구만들기
그런데 그게 만만치 않은 일이란 걸 아버지를 통해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올해 칠순을 맞으셨다. 늘 손에서 책을 놓지 않으셨는데 얼마전부터 친정에 가면 신문도, 책도 눈에 띄지 않는 것이었다. 엄마께 여쭤보니 요사이 눈이 많이 침침해져서 글을 안 읽으신다는 거다.
아! 솔직히 그날 꽤 큰 충격이었다.
나는 늙어서도 책만 있으면 심심하지 않겠다. 그런 오만함이 있었는데 그건 “노년”에 대한 나의 철저한 무지였던 것이다.
노년, 늙음, 나이듦에 대한 나의 사유는 이만큼 빈곤했다.
시몬 드 보봐르의 “노년- 나이듦의 의미와 그 위대함”에서 지적한 대로 나 역시 나이듦에 대해 외면하고, 문제를 직시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보봐르의 책은 이처럼 노년에 대한 문제제기 그 자체로 커다란 의미가 있다.

시몬 드 보봐르의 “노년”을 읽으면서, 책은 어떻게 쓰여지는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이 책의 독자는 누구일까?
작가는 서론에서 이 책을 쓰는 이유를 이렇게 밝혀두고 있다.
“내가 이 책을 쓰는 이유는 바로 이런 침묵의 음모를 깨버리기 위해서이다.
지배계급은 자기들이 표방하는 휴머니즘과 노인에 대한 야만적인 행위를 타협시키기 위하여, 노인들은 인간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편리한 결정을 취한다.
나는 수많은 거짓과 신화, 부르조아 문화의 상투적인 사고와 상투적인 문구들에 의해 왜곡되어 우리가 진상을 알 수 없게 된 것, 즉 노인들이 실제로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느끼는가를 말하고자 한다.
노인들에 대하여 사회가 취하는 태도는 하나같이 모두 이중적이다.“
“이제 속임수는 그만두자. 문제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미래, 그때의 우리 인생의 방향이다. 미래에 우리가 어떤 인간일 것인가를 모른다면 우리는 지금 우리가 누구인가도 알지 못한다. 이 늙은 남자, 이 늙은 여자, 이들 속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자. 우리가 우리의 인간 조건을 모두 받아들여 짊어지고자 한다면 그래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일이라고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우선 이 책은 노년에 완전히 접어든 사람들보다는 아직 늙는다는 것을 다른 사람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나 같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것으로 완전히 내가 수많은 속임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져 노년의 삶을 나 자신의 미래로 받아들이기는 힘들지만, 훌륭한 문제제기는 되었다.
하지만 좀더 많은 사람들이 읽기에는 벅차지 않을까 싶다.
책을 대중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눌 수 있다면 이 책은 어느 쪽에 있는 걸까?
물론 오늘에 와서는 너나없이 노인문제 노인정책 실버산업 어쩌구 하면서 노년의 삶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지만, 30년 전 모두가 외면하는 문제에 대해 당차게 목소리를 높인 시몬 드 보봐르에게 다시 한번 존경을 표한다.

졸라의 <대지>에 나오는 이야기(p 277)를 읽다보니 우리 옛이야기 “할미꽃”이 생각났다.
대지의 노인 푸앙과 그의 아들들 대신에 할미꽃이 되고 만 할머니와 그의 세 딸을 대입해 보았다. 세 딸을 키우고 시집보내느라 가진 것을 모두 써버린 가여운 어머니는 딸들에게 부양받지 못하고 결국 차가운 겨울 눈속에 묻혀 죽게 되고 이듬해 봄 그 무덤에서 흰머리를 한 할미꽃이 피어난다는 이야기.
이 책의 몇몇 대목에서 앞전에 읽은 우리 삼국유사가 떠오른다.
보봐르는 책에서 자신은 서양 사회에 국한 시켜 이 책을 쓴다고 밝혀 두었다. 중국은 예외로 하였지만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서양의 이야기라 공감이 안 간다 싶은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만큼 노년의 삶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동양적인 관점에서 아니 한국적인 관점에서 노년의 삶에 대해 책을 쓴다면 그것은 또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노년
책의 부제에는 나이듦의 의미와 그 위대함 이라고 쓰여있지만, 근사하지만 썩 어울리지 않는 부제목이다. 이 부제가 원작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나라에서 번역 출판하면서 실린 것인지 궁금하다.
차라리, 노년 - 내 안의 미래
이런 건 어떨까? 너무 진부한가^^

“매순간 평형을 잃고 다시 정상을 회복하는 불안정한 체계, 그것이 삶이다.
변화야말로 삶의 법칙이다.
노화란 그 변화의 한 유형이다.“
내가 중요하게 밑줄 그은 대목이다.
60대에 접어 든 나이에 시몬 드 보봐르는 이 책을 써 냈다.
결론에서 보봐르는 노년에 대한 해결책으로 “우리의 삶에 의미를 주는 목표들을 계속하여 추구하는 것이다. 그 무엇에 헌신하는 길밖에 없다”고 했다.
이것은 보봐르 자신의 해결책 같아 보이기도 한다.
그녀는 자신의 말대로 나이가 상당히 들어서까지도 강렬한 열정을 보였고, 행동했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 스스로 말했듯이 이런 노년은 특별히 혜택받은 이들의 몫이기도 하다.

“계속 삶에 밀착하기 위해서는 차라리 노년에 대해 너무 생각히지 말고,
정당하고 참여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낫다“


IP *.255.159.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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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3.24 23:26:27 *.36.210.80
그렇게 주장하지 않고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것 빼고는 한게 없는 데? ㅋ 자기를 실험적으로 살았고 뭔가는 짹!하고 죽고 싶었을 텐데요. 특히나 남성적 기질이 많은 여자였다고 생각이 되서요. 그래서 남성과 똑같이 주장 할 수도 있었겠지요. 재능과 열정으로. 게다가 아주 건강미 넘쳐보이잖아요. ㅋ

이제는 아주 책에 완전히 푹 빠져버린 느낌이 드네요. 이번 리뷰에서는 남자들은 같은 연령대라도 노년에 대해 인정을 덜하는 것 같죠? 여자들이 철이 빨리드는 건가 영악한 걸까요? 현실적인 거 겠죠? 남자들은 자신들이 무한능력이라고 생각하는 면도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늙고 힘없는 노년에 대해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눈치에요. 안 그래요?

시작이 반이란 말 맞네요. 벌써 긴 레이스를 다 마치셨어요. 장해요.
수고 많으셨고 덕분에 재미있고 즐거웠답니다. 소망한 대로 뜻을 펼쳐나가시길 바랍니다. 아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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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2008.03.25 14:25:38 *.67.52.209
생노병사 희노애락
인간이 겪는 모든 것이라고 봅니다.
결국엔 죽음을 피할 수 없고 어떠한 말을 하여도 닥치는 현실입니다.
사람의 실존엔 있어서는 절대적인 문제입니다.
다만, 인위적으로 의식하지 않으려 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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