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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26일 13시 08분 등록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지은이 고미숙



1. 저자에 관하여 ( 책의 저자 소개란 인용 )



1960년 강원도 정선 출생. 고려대학교 고전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어느 시인의 말을 빌리면, 나를 키운 건 책과 친구였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가난한 탄광촌에서 어린 시절 나와 친구들은 골방에 모여 책을 읽고 동네 골목에서 공을 찼다.

고등학교 때 도신인 춘천에 나와 처음으로 입시교육이라는 걸 받았다. ‘공부도 우정도’ 제대로 나누지 못한 꿀꿀한 시절 이었다. 그리고 더 큰 도시인 서울에서의 대학 생활. 내게 다시 한 번 공부에 대한 열정을 불러 일으킨 건 고전문학으로 전공을 바꾼 석사시절, 스승과 선배들이었다.

그 시절이 공부가 삶을 바꾸어준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면, 공부가 곧 삶임을 알게 해준 건 <연구공간 수유 + 너머>였다. 지금 나의 일상에는 ‘공부와 밥과 우정’이 충만하다. 고로, 나는 인생역전에 성공했다.

좋아하는 것 : 열정과 끈기, 귀동냥, 겨울산, 소박한 밥상.

싫어하는 것 :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 흔적을 남기는 것, 변명, 우유부단.

인생의 모토 : 세상은 넓고 친구는 많다! 몸이 곧 우주다!

지은책 :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 ,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나비와 전사>, <삶과 문명의 눈부신 비전, 열하일기> 등이 있다.



2. 인상 깊은 글



[5] 공부란 세상을 향해 이런 질문의 그물망을 던지는 것이다. “크게 의심하는 바가 없으면, 큰 깨달음이 없다.” (홍대용) 고로, 질문의 크기가 곧 내 삶의 크기를 결정한다.



[9] 그래서 고전을 공부하면, 그때부터 천 리 밖에서도 친구들이 막 찾아오게 돼 있어. <논어> 첫 머리에도 나오잖아. “벗이 있어 먼 데서 찾아오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멀리서도 찾아오는데, 가까이 있는 친구들이야 뭐. 더 볼 것도 없지.



[10] 더 중요한 건 그런 공부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사는 것 자체가 다 공부가 된다는 사실이지. 몸과 인생과 공부가 완전 하나 되는 오묘한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거지. 몸과 인생과 공부가 완전 하나 되는 오묘한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거지. 그리고 나면 아무리 남한테 퍼주고 퍼줘도 깊은 산속 옹달샘마냥 계속해서 솟아나게 되어 있어.



[23] 따라서 이제 대학에선 패기에 찬 논쟁도, 활발한 소통도 찾아볼 길이 없다. 고로, 대학은 더 이상 ,큰 배움터,가 아니다. 그럼 대학생들은 대체 뭘 하냐구? 취직시험에 올인하고 소비의 그물에 걸려 허우적대고. 노후 대책에 골몰한다. 청년이라 하기엔 너무 늙어버린 그들.



[33] 학교는 사람들을 체계적으로, 그리고 근본적으로 노예로 만든다.

학교는 교육을 위해 이용할 수 있는 자금, 사람, 그리고 선의를 독점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사회제도가 교육에 관여하는 것을 단념하게 만들고 있다. – 일리히, <학교 없는 사회>에서



[35] 동일한 연령대의 학생들을 같은 장소에 몰아넣고 같은 내용을 주입하는 것. 그럼으로써 모든 차이와 이질성을 말끔히 지워버리고 아주 평균적인고 상식적인 존재. 곧 국민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이 학교에 주어진 소명이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생 동안 엇비슷한 연령대외에는 서로 뒤섞일 만한 공간 자체를 빼앗겨버린다.



[40] 공부란 눈앞의 실리를 따라가는 것과는 정반대의 벡터를 지닌다. 오히려 그런 것들과 과감히 결별하고, 아주 낯설고 이질적인 삶을 구성하는 것, 삶과 우주에 대한 원대한 비전을 탐구하는 것. 그것이 바로 공부다. 더 간단히 말하면, 공부는 무엇보다 자유에의 도정이어야 한다. 자본과 권력, 나아가 습속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해야 비로소 공부를 했다고 말할 수 있다.



[42] 빈민들이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매우 ‘급진적’인 행동이다. 인문학에 대한 공부가 빈민들에게 정치적 삶을 가르치며, 진정한 ‘힘’이 존재하고 있는 공적 세계로 이끌어주리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쇼리스 , <희망의 인문학>



[46] 홍대용은 여섯 살 많았고, 박제가는 열 살 이상이 어렸지만, 박지원은 이들과 함께 서로 공부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물론 그들로부터 배우는 것도 즐거워 했다. 박지원의 사귐에는 나이, 가문 , 계급 등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열하일기>를 보면 박지원이 청나라에 가서도 20대의 중국 청년들과도 스스럼 없이 사귀는 장면이 나온다. 이들은 학식도 딸리고 문자 소양도 부족한 일개 장사치에 지나지 않았건만 박지원은 그들과 사귀고 그들에게 배우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박지원의 우정론은 그가 쓴 <예덕선생전>의 다음 구절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대단한 사귐은 얼굴을 마주 대하지 않아도 되고, 두터운 벗은 서로 가까이 지내지 않아도 된다. 다만 마음과 마음으로 사귀고, 그 사람의 덕을 보고 벗을 삼으면 되는 것이다. …………. 위로 천 년 전의 옛사람과 벗을 해도 사이가 먼 것이 아니요, 만 리나 떨어져 지내는 사람과 사귀어도 사이가 먼 것이 아니다.”



[49] 남이 한 번 해서 그것에 능하다면 자기는 백 번 할 것이며, 남이 열 번 해서 그것에 능하다면 자기는 천 번 할 것이다. (중용) 人一能之 己百之 人十能之 己千之

밥을 먹고 물을 마시듯 꾸준히 밀고 가는 항심(恒心)과 늘 처음으로 돌아가 배움의 태세를 갖추는 하심(下心), 공부에 필요한 건 오직 이 두 가지뿐이다.



[55] 학교식 공부법은 애초부터 독서는 그저 개인적 취미나 교양의 영역이고, 공부는 그것과 달리 구체적이고 실용적 지식을 배우는 것이라는 이분법을 유포시켜왔다.



[57] 근기란 쉽게 말하면 그 사람에게서만 느껴지는 ‘에너지의 분포도’ 같은 것이다. 그릇이라고, 카리스마라고도 한다. 한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는 건 성적이나 학벌이 아니라, 바로 이 근기다. 그런데 이것을 제대로 충전할 수 있는 길은 단언컨대 독서밖에 없다!



[63] 이반 일리히에 따르면, 학교가 유포한 환상 중에 가장 나쁜 것이 사람들을 제도적 서비스에 길들이라는 것이라 한다. 즉, 서비스가 좋아질수록 삶의 질이 향상된다고 착각하는 것. 예컨대, 의료체계가 복잡해지면 건강해진다고 여기고, 학교가 많아지면 교육수준이 높아진다고 착각하고, 고속도로가 뚫리면 생활수준이 높아진다고 생각하는 식으로. 하지만 그 결과는 자립적 활동력을 상실한 신체, 곧 제도에 길들여진 노예들을 길러낼 뿐이다.

일리히는 의무교육이 교육기회의 평등처럼 생각되는 사회에서는 아이들이 수업을 받는 것과 학습(공부)을 하는 것을 동일한 것으로 혼동하게 된다고 말한다. 연령별로 나누어진 각 단계의 학교에서 졸업장을 받으면 그만큼 새로운 것을 말하고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69] 공부하는 사람이 의심할 줄 모르는 것은 크나큰 병통이다. 오직 의심해야만 자주 분석하게 되고, 그렇게 해서 의심을 깨뜨리면 이것이 바로 깨달음인 것.( 이탁오 분서 )



[70] 잘하는 사람은 더더욱 잘하게, 못하는 사람 역시 조금씩 향상되게. 우월감과 열등감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는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진정한 평등이다.



[81] 그럼, 왜 그토록 스승을 찾아 헤매었던가? 스승을 만나야만, 그 ‘코뮌’에 접속해야만,지리멸렬하던 공부가 단번에 도약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인생역전’이 가능한 것. 스승이란 무엇인가? 길을 안내해주는 자이다. 그리고 도반이란 그 길을 함께 가는 벗들이다.



[87] 공부 역시 마찬가지다. 스승과 벗을 찾아가는 네트워킹을 멈추지 않는 것, 그것이 곧 공부다.



[93] 공부에는 여러 가지 길이 있다. 뜻을 완벽하게 이해한 다음 소리를 터득하는 길도 있고, 소리 자체를 음미하다 보면 뜻이 환하게 밝혀지는 길도 있다. 암기식 공부는 학습 진도를 넘어서기 어렵지만 암송으로 하는 공부에는 진도가 따로 없다. 마음과 몸을 열어놓기만 한다면, 원대한 지혜의 비다를 마음껏 유영할 수 있다. 암송은 정말, 힘이 세다!



[97] 그 나라 말로 된 수준 높은 작품을 하나 골라 주구장창 소리 내어 암송하면 된다. 입에서 저절로 튀어나올 때까지. 기타 다른 종류의 지식을 습득하는 데도 암송은 실로 효과만점이다. 이반 일리히에 따르면, “보통의 적성과 학습 의욕을 가지고 있는 학생이 만약 이러한 전통적인 방법(반복학습)의 교수를 받게 된다면 2~3개월 만에 습득할 수 있는 기능은 많이 있다.



[99] 어린애가 글을 읽으면 요망스럽게 되지 않고 늙은이가 글을 읽으면 노망이 들지 않는다. 귀해져도 해이해지지 않고 천해져도 제 분수를 넘지 않는다. 어진 자라 해서 남아돌지 않고 미련한 자라 해서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연암집>, 원사(原士)에서



[102] 구술 능력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구술 능력이란 단순한 말솜씨가 아니라, 삶과 인간, 세상에 대한 깊은 통찰의 표현이다. (중략) 누구든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할 때는 두 가지를 소망하게 된다. 하나는 자기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기를, 도 하나는 자기의말이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기를, 이게 인지상정이다.



[103] 진정한 유머는 무엇보다 사건과 사건, 사람과 사이의 차이와 간극을 관찰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럴 때 그의 말 속에는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깨는 기발한 착상들이 쏟아져 나오게 되고 그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웃음을 야기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유머의 기술과 구술 능력은 뗄 수 없이 결합되어 있다. 이야기를 잘하다 보면 사람들을 즐겁게 할 수 있고, 웃음이 야기되다 보면 이야기가 술술 풀리기도 한다. 이렇게 현장을 장악하는 능력이 커지면 그게 다름 아닌 리더십이다.



[105] 다산 정약용이 말했듯이, 독서는 “세상을 경륜하는 것은 물론 귀신과 통하고 우주를 지탱하는” 위대한 공부다. 이것만 있으면 세상에 두려울 게 없다. 이 세상의 모든 책이 내 인생의 자산이 될 테니까 말이다.



[106] 그러므로, 사교육 시장에 내몰리고 싶지 않은 꼬마들, 성적의 위계와 입시에 중압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청소년들, 기성세대의 고루한 관습에 저항하고 싶은 청년들, 시각의 지배에 예속되기를 원치 않는 직장인들, 매너리즘에 찌든 일상의 회로를 벗어나고 싶은 아줌마들, 삶의 비전과 지혜를 통찰하고 싶은 노인들 – 이 모든 ‘대중지성’이 하나로 연결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독서뿐이다. “책 속에 길이 있다!”



[109] 그러므로 정말로 멋진 몸을 만들고 싶다면 제대로 전략을 짜야 한다. 송나라 때의 유명한 기철학자 장재가 말했듯이, “배움이 크게 이롭다는 것은, 그것을 통해 자신의 기질을 바꿀 수 있어서다.” 그리고 그 배움의 핵심은 다름 아닌 독서다.



[114] 뻔한 코스를 벗어나 나만의 특이하고 강렬한 사랑을 하고 싶다면, 방법은 간단하다.

자신이 먼저 그런 존재가 되면 된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자신의 능력만큼 신을 만난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아무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느닷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사랑 따위는 없다. 그러니 운명적 사랑을 하고 싶다면, 내가 상대방의 운명을 바꾸어줄 만한 능력을 가지면 된다. 그리고 그걸 터득하는 길은? 오로지 독서밖에 없다.



[120] 고전은 눈이 아니라 소리로 만나야 한다. 그래야 기질이 바뀌고 내공이 쌓이는 법이므로.



[122] 우리 시대에 공부란 책을 읽는 것이고, 책 중에서도 고전과 접속하는 것이다. 독서는 결코 선택이나 취미가 아니라 필수며, 특히 고전 읽기를 하지 않는다면 그 공부는 말짱 도루묵이다. 그러므로 뭔가 다르게 살고 싶다면, 가장 먼저 자신이 ‘호모 부커스’ (책 읽는 존재)임을 환기해야 한다.



[125] 고전을 읽는다는 건 기본적으로 돈과 권력, 기타 다른 종류의 위계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학벌과 세대, 직업과 성별의 경계를 간단히 넘어서 찐한 우정을 나눌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132] 그러다 보면, 문득 알게 된다. 내가 자료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료가 내 신체를 통해 스스로 웅성거린다는 것을. 세상 가득히 앎의 흐름이 있고, 나는 단지 그 흐름 속을 이리저리 유영(游泳)하고 있다는 것을



[134] 새로운 질문을 던질 것, 하나의 논리로 관통할 것 – 이 두 가지가 내가 석사과정 내내 갈고닦은 글쓰기의 초식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글의 완성도가 아니라, 신체적 능력을 증식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앎과 삶, 글과 신체의 결합, 지식의 거대한 순환, 글쓰기의 집합적 배치 등 지금 연구실의 주요 강령을 이루는 토대를 나는 철학으로 배우기 이전, 현장에서 실감으로 체득했던 것이다.



[135] 배움에 있어 가장 불리한 조건은 겸손을 가장한 자기 비하, 혹은 이미 획득한 지식에 갇혀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직성이다. 그러므로 지식의 양이 많건 적건 ‘비움’은 배움의 필수적 조건이다. 끊임없이 비울 수 있어야 더 큰 앎이 흘러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139] 참으로 놀랍게 문체는 그 사람과 닮아 있다. 아니, 문체는 얼굴이요 몸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으면 자신의 문체를 주의 깊게 살펴보라. 거울보다 더 투명하게 자신을 비춰줄 것이다. 문장의 흐르는 기세나 빛깔만 보고도 장차 어떤 인물이 될지, 어떤 일을 저지를지 충분히 예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지금과는 다른 존재가 되고 싶다면, 문체를 바꾸면 된다. 거꾸로, 문체를 바꾸고 싶으면 모름지기 표정을, 몸을, 삶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152] 욕망이란 외부와의 ‘네트워킹’을 통해 증식 변용되는 법인데, 그 통로가 막혀버리면 욕망의 흐름이 차단되어, 일종의 자폐 상태가 되고 마는 것이다.



[163] 몸이 곧 마음의 표현이고, 마음은 또 몸의 상태를 그대로 반영한다.



[165] 사람들은 병이 닥쳐오면 그때부터 고통과 죽음에 대해 사유하기 시작한다. 죽음이 삶의 또 다른 얼굴이라는 걸 그제서야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죽음을 사유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삶에 대한 성찰도 깊어진다. 그럼 점에서 질병과 죽음은 스승이자 좋은 친구인 셈이다.



[181] 사나이의 가슴속에는 늘 가을 매가 하늘로 치솟아오르는 기상이 있어야 하며, 건곤(乾坤)을 작게 여기고 우주를 자신의 손바닥 안에 있는 것처럼 여겨야 옳다.



[195] 공부란 특정한 시공간에 고착되지 않고 끊임없이 다른 존재로 변이되는 것을 의미한다. 존재의 변이를 통해 세상의 질서와 배치를 바꾸는 것, 거기가 바로 공부가 혁명과 조우하는 지점이다.



[203] 아무런 실용적 목적이 없이도 공부할 수 있을 때, 그때 비로소 최고의 지식이자 사회를 변혁하는 무기이면서 동시에 운명을 통찰하는 지혜의 수행이 된다. 고로, 공부에 외부는 없다.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207] 사람들은 재산을 누리기보다 섬기기 바쁘다. 뼛속 깊이, 자본의 노예인 것. “삶이냐 소유냐?” 이 고전적 질문은 이제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삶의 주인이 될 것인가, 자본의 노예가 될 것인가?”



[207] 삶과 소유의 혼연일체! 권력의 지배와 억압은 금방 알아차리면서도, 자본의 지배에 대해서는 별 감각이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209] 앎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천지에 떠도는 정보의 흐름, 혹은 우주적 비의 혹은 말의 길을 특정한 방식으로 ‘절단, 채취’ 한 것이다. 지식 또한 사건의 흐름일 뿐이고 따라서 끊임없는 순환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210] 연암은 말한다. “군자는 글로써 벗을 모으고, 벗을 가지고 어짊을 보태나니, 그대가 만약 어짊을 구한다면 천 상자에 가득한 책을 벗들에게 주어 함께 닳아 없어지게 함이 옳을 것입니다.”



[214] 자,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그러므로 절대 10억을 위해, 부귀공명을 위해 공부해서는 안 된다. 아니, 그건 공부가 아니다. 그건 우리 호모 쿵푸스에겐 수치스러운 짓이다. 그럼 공부는 뭣 때문에 하냐고? 남들에게 퍼주기 위해서다! 얼마나 많이 퍼줄 수 있느냐가 나의 내공을 결정한다. 최고의 경지에 오르면 ‘공부의 달인’들처럼 퍼준다는 생각조차도 없이 퍼주게 된다. “다만 힘차고 유유히 장강과 대해를 헤엄쳤을 뿐인데, 그 기운으로 다 죽어가는 뱀장어들을 살려낸 미꾸라지” 처럼 말이다. 고로, 공부해서 남 주자!





3. 감상



라디오 방송에서 고미숙 선생님이 출연하셔서 대담을 나누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 상당한 인상을 받아서 마음에 두고 있었다. 서점에 들렀다가 책을 보게 되서 구입했다.

공부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학위, 자격증, 취직, 성적등 대강 이런 것들이 떠오른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고시에 합격하면 출세를 하고, 공부를 못하면 취업도 못 할 뿐만아니라 사회에서도 낙오가 된다는 불안감등이 내가 가진 공부에 관한 생각이었다.

시험공부를 하면서 좋았던 적은 없었다. 공부는 에너지를 복둗는 활동이라 하는데, 내 경우에는 자해를 하는 것 같았다.

공부란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라 믿는다. 틀에박힌 교과서를 공부하고 성적이 결정되는 것도 좋다. 그러나 한 번쯤은 본질적인 문제에 관해 사유를 해보아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이런 질문은 그 자체는 해답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은 사람을 성숙하게 만드는 힘은 있다. 현실에서 잘 사는 사람들에게는 유치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절대적인 한계에 놓여있고 결국엔 죽는다.

죽는 것이 허무한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깊게 사유하지 못하고 체제에 길들여지는게 허무할 뿐이다. 이러한 자기성찰적 과정의 방법으로 이상적인 것이 공부라 믿는다. 그 중에서도 책을 읽는 것이 가장 훌륭한 방법이라 나는 믿는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방법은 고전 읽기다. 고전은 읽어야 한다는 당위성은 인정하면서도 실제로는 선뜻 읽지 못하는 책이다.

지금 아함경을 읽고 있지만 잘 읽히지가 않는다. 책과 음식이 같다면, 사람이 먹는 음식이 곧 그요, 사람이 읽는 책이 곧 그다.

나 또한 자기계발서와 같은 책에 길들여져 고전과 같은 인류의 지혜가 담긴 책은 잘 보질 못한다. 최근에서야 그 폐해를 심각하게 느끼고 있고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있다.



4.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은 상당히 템포가 빠르고 강하다. 흡인력이 있어 집중하게 만든다. 그러나 후반부의 칼럼은 불필요한 부분이다.

책의 칼럼부분은 저자의 의도가 무엇이든간에 좀 더 고전읽기와 공부의 상관관계에 할애를 했어야 했다.

독서의 힘은 인정하지만 그 구체적인 방법론은 좀 미약하다. 약간 제시하고 있지만 좀 더 자세한 제시가 있어야 했다. 예를 들어 목록을 만들거나 해서 제시를 해줬어야 한다.

글 자체가 강하다보니 읽는 순간은 좋았는데 지식인 특유의 가르침이랄까? 글로 사람을 낚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단, 내가 의심이 많은 사람일지는 모른다.

전체적인 글의 구성은 혼재가 되어 있다. 처음 앞 부분은 결론이 분명해서 이해하기 편했다. 그러나 중후반부는 행간과 행간 사이에서 읽어내야 했기에 어려웠다.

대상이 포괄적이다. 청소년을 위한 책 같기도 했고 성인에게 맞는 책이기도 하다.

내가 저자라면 고전에 관한 실제 사례를 들어 그 고전이 현실의 삶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보여주어야 했다. 단순한 인용은 곤란하다.

인용문은 잘 쓰면 약이고, 못쓰.면 독이다. 인용문 제시 후 부연 설명이 부족하다.

그러나 그 간의 공부에 관한 나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을수 있는 계기가 된 책 임에는 분명하다.

부자병과 성공병에 노출되어 있는 현대인에게는 백신과 같은 책이다. 사람에게는 대상을 객관화해서 볼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어떠한 계기가 있어야 한다. 인간에게는 이성이 있고 이 이성의 힘으로 사물의 본질을 볼 수 있다면 잘못된 시각을 조정할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이 공부에 관한 나의 비뚤어진 고정관념을 고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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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3.26 14:34:28 *.36.210.80
열심히 읽으셨군요. 리뷰를 읽으며 저자와 책에 대해 관심이 가네요.

대단한 결심을 하십니다. 이렇게 혼자 해보기로 하셨나요? 내년에 5기 예약? (ㅋ) 요즘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군요. 일전에 공연장에서 같이 뵌 멋진 선배 형아도 우리 변.경.연에 같이 하면 좋을 텐데요.

그래요. 저도 리듬이 떨어지기 전에 빨리 읽고 또 써나가야겠군요. 같이 이렇게 참여해 나갑시다. 리뷰가 앞으로 계속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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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2008.03.28 10:18:52 *.67.52.194
감사합니다.
틈나는 대로 쓸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멋진 선배 형아는 공부하느라 바쁩니다.
말씀전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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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
2008.04.03 11:26:48 *.152.82.96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자주 올려주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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