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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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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5일 04시 36분 등록
신화의 세계
조지프 캠벨, 과학세대 옮김, 까치글방

I. 저자에 대하여

나는 지난 3월 연구원 2차과정 첫 번째 책인 [신화의 힘]을 읽으면서 캠벨의 종교가 무척 궁금했었다. 왜냐하면 책을 읽는 내내 그의 종교를 알 듯 말 듯 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카톨릭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카톨릭을 고수하지 않았다. 1924년 유럽을 여행할 무렵 만난 크리슈나무르티의 영향으로 힌두교와 불교에 흥미를 가지게되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그는 어떤 종교에도 귀의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비교 신화학자로서 자신의 위치를 중립으로 옮겨놓은 듯하다. 본 책의 역자 후기에 나오는 이야기를 잠시 인용하면 그의 신에 대한 생각을 간접적으로나마 들을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불교신자가 되었던 것은 아니며 일상생활에서 명상을 통하여 내면을 향한 끝없는 여행을 계속했다. 그는 설사 자신의 신을 발견했다고 하더라도 결코 그것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신은 나의 신이 아니다. 따라서 내게 그것을 강요하지 말라.”

그렇더라도 흥미로운 것은 그의 말년은 불교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만년에는 자택 서재에 달마대사 초상을 걸어두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왜 불교에 가까워졌을까? 왜 가장 신화와 거리가 먼 부처를 택했을까? 나는 그것이 궁금했다.

조셉 갭벨 그에 대해 앞으로 3회에 걸쳐 더 이야기할 것이다. 그 궁금증을 풀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 회에서는 국내에 번역된 그이 책을 소개하는 것으로 가름하고자 한다.

『네가 바로 그것이다』, 박경미 옮김, 해바라기, 2004.
『신의 가면 1 : 원시신화』, 이진구 옮김, 까치, 2003.
『신의 가면 2 : 동양신화』, 이진구 옮김, 까치, 1999.
『신의 가면 3 : 서양신화』, 정영목 옮김, 까치, 1999.
『신의 가면 4 : 창작신화』, 정영목 옮김, 까치, 2002.
『신화와 함께 하는 삶』, 이은희 옮김, 한숲출판사, 2004.
『신화의 세계』, 과학세대 옮김, 까치, 1998.
『신화의 힘』, 이윤기 옮김, 이끌리오, 2002.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이윤기 옮김, 민음사, 1999.

역자소개 과학세대
과학의 대중화 작업을 목표로 하는 이공계 출신 젊은이들의 출판 연구 모임. 「백만인의 상대성 이론」, 「시간은 항상 미래로 흐르는가」, 「그림으로 보는 중국의 과학과 문명」, 「마틴 가드너의 양손잡이 자연세계」, 「우주의 역사」, 「식물의 사생활」등의 책을 기획, 번역, 집필했다.

II.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1. 서론 : 인간과 신화의 기원

신화는 우리의 삶, 우리의 육체 그리고 우리의 환경을 소재로 한다. 5p

남자의 몸은 전투와 방어에 적합하게 만들어져 있다. 인체의 모든 근육은 활동하려는 충동을 가지고 있으며, 움직이지 않는 근육은 충분한 생명력을 가질 수 없다. 이것은 사실이다. 8p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한 종류는 매우 실제적인 동물적인 인간이고, 다른 한 종류는 신성한 잉여로서의 아름다움의 유혹에 민감한 인간적인 인간이다. 12p

우리가 아는 것은 인간의 영혼은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의 벽을 뛰어넘어 살아남으며, 사람은 그 영혼과 관련을 맺는다는 것이다. 14p

소년이 배워야 할 것은 용기였다. 그들은 죽음과 부활의 제의를 거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들은 의존적인 유년기를 마감하고, 자기 책임을 다하고 적극적이며 약자를 보호하는 남자로서의 성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수렵의 기술만이 아니라 수렴의 제의도 배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22p

우리는 언제나 신을 일종의 사실로서 생각한다. 신이 실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신이란 단지 초월과 신비를 상징하는 우리들 자신의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신비이며, 그것은 인간이나 동물로 나타난다. 아니,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나 동물로 인정되는 것이다. 23p

신비적인 차원은 선악을 초월해서 존재한다. 윤리적인 차원은 선악의 영역에 존재한다. 오늘날 우리 종교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 중의 하나는 그것이 최초의 출발점에서 선악의 문제를 강조한다는 점이다. 29p

당신의 신화, 당신의 심상은 우주에 관한 지식과 모순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신화의 역할은 근동(近東)에서 기원전 2000년에 알려진 우주가 아니라 현재 알려져 있는 우주와 당신을 조화시키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30p

2. 전설 속에서 사는 사람들 : 아메리카 인디언의 신화

1855년 시애틀 추장의 연설문 중에서
호수의 잔잔한 물에 비치는 희미한 그림자는 나의 동족이 겪었던 사건이나 추억을 말해줍니다. 흘러가는 시냇물 소리는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음성입니다. 강은 우리의 형제입니다. 37p

모든 생명은 신비로운 생명에 의해서 유지된다. 인간이 먹는 모든 것은, 식물이건 동물이건, 다신 자신의 생명을 구성하는 물질이 되려고 기꺼이 자신을 바치는 생명이다. 41p

그것은 최초의 인간이 대지의 자궁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면서 거치는 네 단계를 나타내고 있다. 아랫단계에서 사고가 일어난다. 금기를 어겼다든지 또는 어떤 괘씸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홍수가 일어난다. 그렇지만 어찌어찌해서 간신히 기어 올라가 마지막 단계에 도달한다. 42p

그냥 쓸어서 버리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그릇에 담아 우리가 전혀 모르는 어딘가로 가져간다. 45p

사회의 관습과 명령에 따르지 말라, 그 방향에는 막다른 골목이나 분쟁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무지개 인간(Rainbow Man)의 지시에 따라서 산들, 곧 그들의 활동무대로 간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신화에서는 모든 것이 네 단위로 이루어진다. 그들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기 길을 간다. 이것은 전형적인 영웅탐구 신화이다. 48p

예술작품에서 자연의 변용은 자연현상을 초월성에 대해서 투명하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51p

성지(聖地)는 어디에나 있다. 따라서 종교적인 예배를 위해서 자연의 풍경을 찾아갈 때는 여기가 중심이다, 여기가 북쪽이다, 여기가 남쪽 산이라는 식으로 스스로 결정하고 신비적인 존재에게 자신의 마음을 호소할 수 있다.
“신은 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공(球)이다. 그 중심은 어디에나 있지만, 그 경계는 어디에도 없다.” 58p

3. 그리고 우리는 바다에서 무기를 씻었다 : 신석기시대의 신들과 여신들

칼날에 새겨진 초승달에는 죽음과 부활이라는 달의 고유한 의미가 암시되어 있다. 크레타 섬에서 가장 숭배되는 동물은 뿔이 돋은 수소이다. 달은 부활하기 위하여 일단 죽지 않으면 안 된다. 성스러운 소는 도살되고, 부활하여 송아지가 된다. 67p

아주 옛날에는 이 특정한 한 그루의 나무, 이 특별한 연못이나 바위 등의 예외적인 것이 중요했다. 그 뒤 에는 어떤 동물이나 식물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제 우주적 질서라는 관념이 생기고, 예외는 환영받기는커녕 배척된다. 그리하여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우주관이 생기게 되었다. 72p

이 소들은 오늘날 캘커타를 어슬렁거리고 있는 소들과 마찬가지로 신성한 동물들이다. 여기에서는 어머니 우주(mother universe)로서의 소라는 관념이 이어지고 있다. 소의 네 다리는 나침반의 네 방향이다. 똑 같은 이미지들은 이집트에서도 발견된다. 74p

4. 파라오의 지배 : 이집트, 출애굽 그리고 오시리스 신화

전사들의 주요 신은 벼락을 내던지는 야훼나 제우스 같은 남성신이다.
대부분의 인도-유럽인 사회에서 주신(主神)들은 보편적인 질서를 주관한다. 각 부족의 수호신은 말하자면 이류의 신이다. 88p

기원전 4세기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인도에 원정했을 때, 그와 젊은 그래서 그들은 그 상관관계를 밝히려고 시도했다. 그 결과, 크리슈나는 헤라클레스와, 인드라라는 제우스와 동일시되었다. 88p

스핑크스는 파라오의 지배력을 상징한다. 모든 왕은 이 힘의 화신이다. 스핑크스는 사자의 여신인 세크메트와, 달과 같은 기묘한 신, 보통 미라로 상징되는 프타흐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여신 세크메트는 달빛을 받아 임신하여 스핑크스를 출산했다. 95p

아누비스는 오시리스의 시체 열네 토막을 한군데에 모아, 훗날 사제들이 그랬던 것처럼, 미라를 만든다. 끝내 못 찾은 나머지 한 토막인 성기는 물고기가 먹어버렸다. 금요일에 물고기를 먹는 습관은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것은 신성한 살을 먹는 일종의 제의이다. 99p

누구나 저승을 두렵고 위험한 곳으로 생각한다. “돌아가라, 그대 북쪽의 악어여. 돌아가라, 그대 남쪽의 악어여.” 그리고 사자는 저승의 입구에 다다른다. 매우 중요한 순간이다. “나는 어제요, 오늘이요, 내일이다. 나는 다시 태어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나는 신들이 솟아나오는 원천이다.” 이것은 위대한 자각이다. 당신이 죽기 전에, 그것이 어렵다면 저승에 닿기 전이라도 반드시 깨달아야 할 것이다. 100p

그러나 야훼 신앙의 일신교는 “이 세상에는 야훼 이외의 신은 없다. 다른 신들은 모두 악마이다”라고 말한다. 따라서 이 시대에 일어난 일을 이해하려면 이 명확한 차이를 충분히 인식해 둘 필요가 있다. 101p

몸의 지혜는 정신이 의지하는 자발행동적인 것이다. 우리는 아침을 먹는다. 우리 몸은 먹은 밥을 소화시킨다. 아침밥의 소화과정을 정신적으로 이해하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몸은 아침밥을 소화시킨다. 그렇지 않은가? 그것이 당신의 지혜의 몸(Wisdom Body)이다. 104p

크레오파트라가 자신이 근친상간으로 태어났노라고 말하자, 그 장교는 큰 충격을 표한다. 그러자 카이사르가 클레오파트라에게 말한다. “이 친구가 하는 말에 신경 쓰지 말구려. 이 친구는 브리타니아인이라오. 그러니 자기 종족의 법률이 전세계의 법률이라고 생각하는 거요.” 105p

유럽에서는 다른 데에 강조점을 둔다. 유럽을 기독교에 동화시킬 때 생긴 문제 중의 하나는둘도 없는 실체로서의 개인의 의식을 어떻게 재발견하고 유지해갈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근동의 집단주의 전통을 개인적인 자기 실현의 전통속에 어떻게 옮겨심을 것인가와 같은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은 13세기 유럽의 성배(聖杯, Grail) 전설의 문제이기도 한다. 13세기에 이 전설은 새로운 방식으로 정리되었다. 109p

나는 “부버선생님, 신성한 부름과 악마적인 부름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습니까?” 하고 질문했다. 그는 “그건 어떤 의미인가요?” 하고 반문했다. 나는 말했다. “15분 전에 선생님은 페니키아인들이 그들의 장남을 죽였다고 해서 그들을 심하게 비판해Ttmqslke. 그리고 이번에는 아브라함이 장남에게 같은 짓을 했는데도 그것을 칭찬했습니다. 그래서 답을 듣고 싶습니다.” 부버 박사는 말했다. “그 답은 ‘우리(We)'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고 믿습니다.” 내가 들은 답은 그것뿐이었다.
그런즉 우리가 한 것은 타인이 한 것과 다르다. 이것 또한 우리들(유태-기독교/역주)전통의 특징이다. 모세는 영웅이 아니다. 그가 이끌었던 부족이 영웅이다. 우리의 신화는 부족의 신화이며, 우주의 유일한 신은 우리의 신이다.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 110p

5. 성스러운 원천 : 영구불변의 동양철학

갓 태어난 아이는 어머니의 몸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알고 있다. 자신이 놓인 환경에 적응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교육이나 훈련도 받지 않는다. 이미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이 지혜의 몸의 활동이다. 그것과 똑같은 지혜가 어머니의 몸 속에도 생긴다. 그것은 우리 내부의 살아 있는 에너지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우리는 그런 에너지의 육체적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꿈의 지혜, 환상의 지헤는 영구불변의 철학의 지혜이다. 꿈을 꾸다가 깨어난 당신의 의식은 그 꿈을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정신분석의를 찾아가지만, 정신분석의라고 해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꿈의 해석은 서서히 행해지는데, 그것을 위해서는 당신 자신의 지혜를 당신의 머리로 탐색할 필요가 있다. 이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이지만, 영구불변의 철학과 이성적인 사고체계 사이에는 그 방법과 원리에서 극단적인 차이가 있다. 114-115p

나의 주된 관심은 신화에서 원소적인 것을 끌어내는 데에 있다. 다시 말해서 동양사상의 민족적인 특성을 강조하기보다는 원소적인 것을 끌어내는 데에 중점을 둘 참이다. 115p

독일의 작가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은 이런 훌륭한 말을 했다. “시를 쓰는 것은 말 뒤에 숨어 있는 원초적인 말(Urwort)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116p

진정한 순례는 글자 그대로의 순례, 물리적인 행동으로서의 순례를 당신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중심을 찾아가는 순례로 바꾸는 것이다. 118p

천체의 위대한 주기가 발견되자 사회의 전조직을 이 주기운동에 연관시키려는 강한 관심이 생긴다. 그곳에서는 계절마다 열리는 축제가 매우 중요시된다. 123p

인간은 이미 최초의 영적인 빛이었던 달의 표면을 걸었다. 지금 우리가 배우고 있는 것은 영혼과 대지의 분리는 극복되어왔으며, 이떤 점에서 영혼과 대지는 우리가 계승해온 이원론 철학이 가르치는 것 이상으로 하나라는 사실이다. 123p

브라만은 희생을 통해서 신들을 조종한다. 그들은 마치 큰 오르간을 연주하는 것처럼 희생을 다룬다. 브라만이 앉아서 건반을 두들기면, 전세계가 그 연주에 맞추어 노래한다. 희생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제물을 불 속에 던지는 것이다. 127p

감각의 욕망은 타오르는 불이다. 귀로 듣는 것은 타오르는 불이다. 눈으로 보는 것은 타오르는 불이다. 그 불을 꺼야 한다. 그런데 다른 전통의 관념은 그 불을 더욱더 지피라고 말한다. 생명이라는 신비에 대해서는 이처럼 두 가지 상반된 태도가 있다. 생명은 생명에 의존한다. 새들을 보라. 풀을 뜯는 동물들을 보라. 그들이 하는 일은 언제나 먹는 일뿐이다. 온갖 것들을 죽이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가스를 섭취한다. 그렇지 않고는 생명을 유지할 방도가 없다. 생명이란 끊임없이 타고 있는 불이다. 그 불을 더욱더 지펴야 한다. 그것으로부터 희생에 대한 일종의 열망이 생긴다. 127p

신화는 선을 강조하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이 세상에 구세주가 찾아왔다고 말한다. 이 구세주의 활동의 결과로서 지금 재건이 이루어지고 있다. 선한 사람들이 이 세상을 본래의 상태로 되돌리고 있으므로, 지금 곧장 재건을 시작할 수 있다. 마침내 결정적인 순간이 찾아오고, 모든 암흑은 영원히 사라지며, 암흑의 신도 제거된다. 다시 빛만이 남는 것이다.
이해가 가는가, 이 이야기가? 요컨대 서양에는 서양의 이야기가 있는 법이다. 그것은 “자연과 화해해서는 안 된다. 자연의 본디 모습을 되찾으라”는 사상이다.
다음에는 불교 쪽으로 가보자. 부처는 이렇게 말한다. “그렇다, 모든 인생은 비참으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이 인생의 본디 보습이다. 선과 악. 사람이 사물에 붙이는 모든 이름, 곧 ‘선’과 ‘악’은 모두 뒤섞여 있다.” 부처는 힌두 의사의 말을 인용했다. 131p

당신이 중심에 들어가면 이미 무엇을 얻는다든지 않는다든지 하는 일이 없게 된다. 당신은 존재 그 자체가 된다. 이것이 열반이다. 132p

6. 정각(正覺)에 이르는 길 : 불교

합리적인 방식으로 자기 발견을 이루고자 하는 한, 그 뜻을 파악할 수 없다. 부처란 합리적인 방식을 털어내고, 그 뜻을 파악한 다음, 그 뜻으로부터 해방되어 살아가는 사람이다. 136p

어쨌든 부처가 태어나자 신들이 그를 황금 보자기로 받아 땅위에 놓는다. 그러자 이 아이는 일곱 걸음을 뗀 뒤 오른손으로 하늘을 가르키고 왼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며, “하늘 위에도 하늘 아래에도 나와 같은 자는 하나도 없다(天上天下唯我獨尊)”고 선언한다. 138p

그래서 두 개의 불교가 있게 된 것이다. 시간의 영역에서 벗어난 초기의 소승불교와 나중에 생긴 불교(대승불교/역주)이다. 나중에 생긴 불교는 우리는 불성의 표현이며 부동의 태도를 견지하면서 시간의 영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고계(苦界)에 기꺼이 참여하는 것”이다. 당신도 그 “존재(sattva)"가 ”깨달음의 길(bodhi)"인 사람, 즉 보살(菩薩, bodhisattva)이 됨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다. 부동지를 발견하게 되면, 움직이는 세계 속에 있으면서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것이 중요한 점이다. 142p

나룻배는 그곳에 있다. 그럼 나룻배에는 누가 타고 있는가? 나룻배에는 아무도 타고 있지 않다. 이것이 불교의 훌륭한 역설이다. 핵심이 되는 말은 “무아(無我, anatman)"이다. 삼라만상에는 자아(自我)가 없다. 우리 모두는 그런 초월성의 표현이다. 우리를 타인과 구별하는 것이 바로 자아의 관념이다. 그것을 없애라. 두려워하지 말고 상대에게 양보하라. 타자의 먹이가 되라. 그럴 때 당신은 완성자가 된다. 그때의 경지를 극락(極樂, mahasukha)이라고 부른다. 145p

보살이란 초월성을 자각한 사람이 현실세계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을 사랑하기에 하늘에서 내려와 십자가형을 받는, 스스로 나서서 기꺼이 십자가에 매달리는 그리스도의 사상이다. 145p

당신이 그리스도를 부처와 똑같은 존재라고 생각할 때, 기독교와 불교 사이에는 훌륭한 대화가 생긴다. 146p

결국 당신의 미래의 모습은 단지 지금 이 세상의 당신의 성격과 존재의 반영에 지나지 않는다. 148p

탑에는 불교 이전의 신들이 부처를 경배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그것이 불교의 훌륭한 점이다. 불교는 어디로 가건 “너희의 신들을 제거하라”하고 말하지 않는다. 불교가 가는 곳마다 참으로 간단하게 종교의 융합이 이루어진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특징은 자신이 진출한 곳의 신들을 전멸시키는 것이다. 154p

7. 이드에서 자아로 : 쿤달리니 요가(1)

요가의 이념은 요가(yoga)라는 말 속에 이미 나타나 있다. 그것은 어떤 것을 다른 어떤 것과 “묶다, 결합하다(yoke)"라는 뜻을 가진 유즈(yuj)라는 어근(語根)에서 유래한다. 결합되는 것은 우리의 자아의식(aham consciousness)과 의식의 근원이다. 155p

어쩌면 우리는 의식하지 못한 채 자신의 우상을 숭배하고 있기 때문에 타인의 우상숭배를 찾아내어 파괴하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다. 158p

[요가 수트라]의 첫머리에 나오는 격언은 요가의 고전적인 정의이다. “요가란 정신의 자연발생적인 활동을 의도적으로 정지시키는 것이다.” 159p

요가의 기능은 우리를 시간과 공간의 구속으로부터 해방시켜 초월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다 그뒤, 우리가 양쪽의 지식을 가지고 활동할 수 있도록 현실계로 돌아오는 문제가 생긴다. 161p

시간과 공간의 영역으로 흘러들어오는 생명 에너지의 총체를 나타낸다. 그것이 우리가 신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신은 모든 에너지의 의인화일 뿐이며, 그 이상의 어떤 것도 아니다. 그러나 에너지는 이 세상에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164p

달의 의식, 곧 달과 마찬가지로 죽었다가 소생하는 의식은 만사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뱀은 다시 태어자기 위하여 허물을 벗는다. 따라서 그것은 생명력, 에너지 그리고 죽음을 떨쳐버리는 의식을 상징한다. 168p

낡은 몸을 버리고 새로운 몸을 얻는 것은 생명 에너지를 상징한다. 의식은 시간의 영역, 곧 죽음과 탄생의 영역에서 활동한다. 달은 다시 태어나기 위하여 그 그림자를 버린다. 뱀은 다시 태어나기 위하여 허물을 벗는다. 그것들이 이 힘의 상징이다. 169p

브라만은 희생, 곧 죽임을 당하는 것이다. 브라만은 희생을 일으키는 도구이다. 브라만은 희생의 불이며, 그 불은 희생을 태운다. 만물 가운데서 브라만의 작용을 보는 자는 자신도 하나의 브라만임을 깨닫는다. 178p

8. 심리학에서 영적인 것으로 : 쿤달리니 요가(2)

프로이트에게 근원적인 에너지는 성이었다. 아들러에게 근원적인 에너지는 권력에의 의지였다. 어떤 사람에게는 성,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권력에의 의지가 근원적인 에너지이다. 둘이 다투고 있는 곳으로 융이 찾아와서 말한다. “그렇다, 이쪽을 향해서 달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저쪽을 향해서 달리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모두 그 양면을 가지고 있다. 어떤 경우에든지 한쪽은 열성이고 다른 쪽은 우성이다.” 그래서 융은 에난티오드로미아(enanitiodromia : 서로 반대쪽에 있는 것들 간의 반발과 상호 의존이라는 긴장관계를 가리킨다./역주)라는 이원론적인 심리학을 세웠다. 순식간에 당신의 성 충동은 폭력 충동으로 바뀐다. 또는 이기고 싶은 충동이 성 충동에 점령된다. 우리의 인생에서 그것들은 서로 대립하고 있다. 191p

발자국은 상징이다. 그런데 말(言)은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발자국에 걸려서 움직이지 못할 수도 있고, 발자국을 통과할 수도 있다. 「노자(老子)」나 우파니샤드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아는 자는 말하지 않는다.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 나로서는 좀체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것은 발자국을 통과할 때의 경고이다. 203p

부처는 심장의 중심에서 가능하다. 에너지는 심장의 중심에서 나온다. 부처가 유혹자에게 “아니다” 하고 말할 때, 그의 손은 땅에 닿아 있다. 그러나 경험해야 할 것을 다 경험한 뒤, 부처의 손은 한바퀴를 돌아서 은혜를 베푼다. 따라서 부처는 운혜를 베풀려고 되돌아온다. 고행에서 돌아와서 중생에게 가르침을 준다. 우주의 지배자가 자기를 낮추어 우주로서의 자신, 여신으로서의 자신을 포옹한다. (실제로 부처가 어린 부처를 안고 있는 상이 있다/역주) 그것이 쿤달리니의 교훈이다. 204p

9. 천상계로의 하강 : 「티베트 사자의 서」

죽음과 삶의 신화는 곧 환생의 신화이다. 동양의 환생은 서양의 연옥에 해당한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재생의 기회, 다인이 광명을 경험할 수 있도록 주어지는 기회이다. 내가 자주 말하는 것 이지만, 연옥은 대학원 과정이다. 만일 당신이 광명을 얻지 못하고 죽는다면, 아직 어둠속에 있는 다인의 모든 것을 분쇄하는 지복의 직관을 볼 준비가 안 된 채로 죽는다면, 연옥에서 죄를 씻게 된다. 그런데 동양에서는 당신은 또다른 생으로 돌아가게 된다. 205p

사람들 중에는 광명을 경험할 수 없어도 광명에 대한 강의를 들을 수는 있는 사람들이 있다. 오스카 와일드였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는 이렇게 말했다. “미국인은 천국에 달 것인가 혹은 천국에 대한 강연회에 갈 것인가를 선택하라고 하면 강연회를 선택할 것이다.” 당신은 천국을 경험할 수는 없어도 천국에 대한 강의를 들을 수는 있다. 그것이 당신을 구해줄지도 모른다. 207p

아미타불은 관세음보살을 섬기는 부처인데 관세음보살이 지상에 환생한 것이 달라이 라마이다. “백의(白衣)의 여인”으로 알려진 그의 샤크티를 안고 있는 아미타불의 특성은 자비, 자애이다. 그럼 그의 악덕은 무엇인가? 집착, 사랑하는 이에 대한 집착이다. 만일 당신이 그런 집착의 마음을 가진 채로 죽는다면 아귀(餓鬼)의 세계에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이 아귀들은 탐욕스러운 위를 가지고 있으나 바늘 끝처럼 작은 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먹고 싶은 것을 결코 먹을 수 없다. 217p

수피교의 위대한 신비주의자인 마수르 알-할라즈는 고문을 받고 예수처럼 십자가형에 처해지기 직전에 이렇게 기도했다고 한다. “오 주여, 만일 당신이 제게 계시하셨던 것을 그들에게도 계시하셨더라면 그들이 제게 이런 짓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만일 당신께서 하신 일을 제게 계시하지 않으셨더라면 이런 결과가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 주여, 당신과 당신의 과업을 찬미하옵니다.” 이것은 굉장한 표현이다. 할라즈는 또 이렇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통파 교단의 임무는 신비적인 욕구를 불어넣는 데에 있다.” 이것은 참으로 훌륭한 -영웅적인- 사고방식이다. 223p

플라톤은 「티마이오스(Timaios)」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가 타인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일은 그들을 영혼의 형상들, 탄생과 함께 잊어버린 기억으로 다시 인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가, 이것이 문제가 된다. 225p

누구나 자기가 선택한 신, 곧 이스타데바타를 가지고 있다. 자신이 선택한 신에게 충실하라. 그것이 당신의 길이다. 226p

10. 어둠에서 광명으로 : 고대 그리스의 신비 종교

고전시대의 그리스에서 신비 종교가 추구한 것은 영적 경험이었다. 그것의 본질은 의식을 인간생활의 순수하게 현상적인 것으로부터 영적인 것, 헤아리기 어려운 것, 에너지로 가득한 것, 영원한 것으로 변화시키는 데에 있었다. 229p

명상이란 우리는 신성한 실체를 먹고 있으며 우리를 길러주는 것은 그 신성한 실체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은 물질적인 실체가 아니다. 모든 생명은 어떤 초월적인 힘이 주어지거나 산출됨으로써 유지된다. 이것이 명상의 핵심이다. 235p

11. 길(道)은 없었다 : 아서 왕 전설과 서양의 길

동양의 구루(guru)를 만나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들은 길[道]을 알고 있으며, 당신이 길의 어디쯤에 와 있는지도 알고 있다. 어떤 도사들은 자기가 알고 있는 상황을 당신에게 가르쳐주기도 한다. 따라서 당신은 직접 상황을 파악하지 않고서도 자신이가야 할 곳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유럽과 동양의 다른 점이다. 259p

한 기사가 다른 사람이 걸었던 자취를 발견하고는 “아하, 그가 여기를 지났었군!” 하면서 그 길을 따라가기 시작하면, 그때는, 설령 다른 기사들은 성공할지라도, 완전히 길을 잃고 만다. 얼마나 멋진 이야기인가. 우리의 의도, 우리의 여행, 우리의 목표는 지금까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어떤 것, 곧 자신의 가능성을 실현하는 것이다. 259p

신은 우리 마음속에 있거나, 우리 자신의 경험을 벗어나서 우리 마음속에 없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신의 존재는 그것에 대한 느낌이다. 261p

12세기 사람들은 그들은 믿건 믿지 않건 간에 신앙을 고백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사랑하건 사랑하지 않건 간에 결혼상대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었으며, 추기경들이 명령한 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 파르치팔은 자신의 마음이 일러주는 대로 행동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명령한 대로 행동하기 때문에 성배를 찾는 데에 실패한다. 262p

진정한 사회적 전통이 있는 곳에서는 신의 형상이 아니라 신의 에너지를 강조한다. 에너지는 동물의 형상, 사람의 형상, 바위의 형상 등 온갖 형상으로 자신을 나타낼 수 있다. 267p

하나의 힘이 시간의 영역에서 작용할 때는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이라는 두 개의 양상이 나타난다. 272p

12. 고상한 마음 :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궁정연애

궁정전통에서의 다른 어떤 것도 가치를 잃어버린다. 그렇다면 무엇이 사랑(amour)을 위협하는가? 명예이다. 따라서 중세의 전통에서는 명예와 사랑 사이에 갈등이 나타난다. 고상한 마음을 얻기 위한 궁극적인 희생은 사랑을 위하여 명예를 희생하는 것이다. 282p

침머는 이렇게 말했다. “시련은 참고 견디는 것이다.” 인내하라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려고 들지 말라. 오직 참고 견뎌라. 그러면 아름다운 여성의 자비가 모두 당신의 것이 되리라. 287p

「카나 우파니샤드(Kana Upanishad)」에서 따온 것이다. “자신이 선택한 길을 어행하는 것은 면도날 위를 걷는 것과 같다.” 실제로 그렇다 ; 그 길을 여행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특히 자신만의 희열, 자신만의 열망을 추구하는 사람은 균형을 잃고 열망의 급류로 떨어져 떠내려가기 십상이다. 이것은 현실적인 교훈이다. 288p

중세 유럽에서 결혼은 집안 간에 결정되는 것이 관습이었다. 귀족사회는 이것이 견딜 수 없었기 때문에 사랑의 주제를 찬미했던 것이다. 이 양자를 조화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성배를 그 해답으로 제시하고 싶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성배 전설은 중세의 가장 위대한 이야기이다. 볼프람 폰 에센바흐의 「파르치팔」 이야말로 중세 최고의 이야기이다. 그것은 단테의 「신곡」을 능가한다. 왜냐하면 단테는 천국에서 이야기를 끝냈지만, 고트프리트는 이 지상에서 이야기를 끝냈기 때문이다. 모든 일들이 지금, 여기에서, 육체를 가진 인간에 의해서, 참으로 멋지게 해결된다. 298p

13. 성배를 찾아서 : 파르치팔 전설

볼프람의 성배 이야기에 따르면, 성배는 하늘에서 내려보낸 돌그릇이다. 그런데 이것은 메카에 있는 이슬람 카바 신전(Kabba : 메카의 대사원 안에 있는, 네모난 흑석[黑石]으로 지어진 건물로서 이슬람 교도가 가장 숭배하는 신전. 이슬람 순례자들은 이 시전 벽의 흑석에 입맞춤을 한다/역주)의 돌, 곧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돌을 모방한 것이다. 302p

내 생각으로는이런 생각이 나타난 것은 문명의 역사상 이것이 처음이다. 영국에서 대헌장(Magna Carta)이 반포된 것은 1215년이다. 그러나 그것은 귀족들이 자신의 권리를 국왕에게 요구한 것이었다. 여기에는 국왕이 자신의 이름으로가 아니라 인민의 이름으로 통치한다는 이념이 있다. 따라서 볼프람의 이야기에는 사랑을 위한 결혼, 결혼 생활에의 충실을 통해서 확인되는 사랑 그리고 인민을 위해서 통치하는 국왕의 이념이 나타나 있다. 그것이 13세기 초에 나타났다니 참으로 대다한 일이다. 319p


III. 내가 저자라면

책을 읽는 내내 불편했다. 왜였을까? 곰곰이 다시 생각해봤다.
사실 이 책은 태생적인 한계가 있다. 그 한계는 역자 후기에 잘 나타나있다. [신화의 세계] 본 책은 저자 조셉 캠벨이 책으로 펴내려 한 것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든다. 1982년부터 1984년까지 미국 각지에서 행한 캠벨의 강연을 녹화하여 텔레비전으로 방영한 뒤 1990년 출판한 것이다. 1987년 캠벨이 타계했으니 그의 유작이다. 결국 이 책은 저자의 최종 보살핌을 받지 못한체 세상에 태어났다고 봐야한다. 마치 빗질하지 않은 머리처럼 여기저기 헝클어진 곳이 자꾸 눈에 밟힌다.

캠벨이 살아 있었다면 이 책이 어떤 모습으로 세상에 태어났을까? 내가 책을 읽는 내내 불편했던 것은 이책은 전체적인 뼈대를 이야기하기가 참 곤란하다는 것이다. 이야기의 초점을 찾기가 어려웠다. 서론에서 이야기하는 신화의 역할을 본문에서 찾기 어려웠다.

그가 이야기한 신화의 역할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신화의 역할은 근동(近東)에서 기원전 2000년에 알려진 우주가 아니라 현재 알려져 있는 우주와 당신을 조화시키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라는 것인데, 대부분 기원전에 알려진 우주가 중심이다.

내가 책에 대해 너무 비관적으로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신화에 대한 기초지식이 거의 전무한 상태에서 책을 읽고 있으니 그도 그럴법 하기 때문이다. 나는 신화의 내용에 대해서는 평설할 능력이 되지 못한다. 책을 읽으며 줄그며 몇 번이고 다시 읽은 몇 문장을 다시 옮겨본다.

사회의 관습과 명령에 따르지 말라, 그 방향에는 막다른 골목이나 분쟁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무지개 인간(Rainbow Man)의 지시에 따라서 산들, 곧 그들의 활동무대로 간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신화에서는 모든 것이 네 단위로 이루어진다. 그들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기 길을 간다. 이것은 전형적인 영웅탐구 신화이다. 48p

그러나 야훼 신앙의 일신교는 “이 세상에는 야훼 이외의 신은 없다. 다른 신들은 모두 악마이다”라고 말한다. 따라서 이 시대에 일어난 일을 이해하려면 이 명확한 차이를 충분히 인식해 둘 필요가 있다. 101p

몸의 지혜는 정신이 의지하는 자발행동적인 것이다. 우리는 아침을 먹는다. 우리 몸은 먹은 밥을 소화시킨다. 아침밥의 소화과정을 정신적으로 이해하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몸은 아침밥을 소화시킨다. 그렇지 않은가? 그것이 당신의 지혜의 몸(Wisdom Body)이다. 104p

갓 태어난 아이는 어머니의 몸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알고 있다. 자신이 놓인 환경에 적응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교육이나 훈련도 받지 않는다. 이미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이 지혜의 몸의 활동이다.

합리적인 방식으로 자기 발견을 이루고자 하는 한, 그 뜻을 파악할 수 없다. 부처란 합리적인 방식을 털어내고, 그 뜻을 파악한 다음, 그 뜻으로부터 해방되어 살아가는 사람이다. 136p

보살이란 초월성을 자각한 사람이 현실세계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을 사랑하기에 하늘에서 내려와 십자가형을 받는, 스스로 나서서 기꺼이 십자가에 매달리는 그리스도의 사상이다. 145p

당신이 그리스도를 부처와 똑같은 존재라고 생각할 때, 기독교와 불교 사이에는 훌륭한 대화가 생긴다. 146p

달의 의식, 곧 달과 마찬가지로 죽었다가 소생하는 의식은 만사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뱀은 다시 태어자기 위하여 허물을 벗는다. 따라서 그것은 생명력, 에너지 그리고 죽음을 떨쳐버리는 의식을 상징한다. 168p

누구나 자기가 선택한 신, 곧 이스타데바타를 가지고 있다. 자신이 선택한 신에게 충실하라. 그것이 당신의 길이다. 226p

신은 우리 마음속에 있거나, 우리 자신의 경험을 벗어나서 우리 마음속에 없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신의 존재는 그것에 대한 느낌이다. 261p

침머는 이렇게 말했다. “시련은 참고 견디는 것이다.” 인내하라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려고 들지 말라. 오직 참고 견뎌라. 그러면 아름다운 여성의 자비가 모두 당신의 것이 되리라. 287p

[신화의 세계]는 종교의 화해였다. 저자는 신화든 종교든 그것은 오로지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신화속의 수 많은 신들이 현대인들에게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종교에서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 것일까?

번역의 중요성을 집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서두에서 이야기한 책을 읽는 내내 불편했던 것은 흐린 초점보다 번역의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더 컷다. 강연 내용을 책으로 엮었다는데 강연을 듣는 듯한 현장감을 느낄 수 없었다. 문장과 문장의 연결이 어색한 곳이 자주 눈에 띠었다. 반복되는 조사는 책의 완성도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전문적인 번역가의 번역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수 있을 만큼 잘 연결되지 않는 단어의 부자연스러운 연결도 자주 눈에 띤다. 전체적으로 내가 처음 접한 조셉 캠벨의 [신화의 힘]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옮긴이를 과학세대라고 뭉뚱그려 놓은 점 또한 썩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책 어디에도 옮긴이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았다. 단지 그들이 이공계 출신 젊은이들의 출판 연구 모임이란 소개가 전부다. 내가 너무 심하게 이야기하는 것일까?

그림에 제목과 설명이 없다. (사실 좀 황당했다.)
이 책의 그림엔 제목과 설명이 없다. 원서도 그런지 그것이 궁금하다. 원서도 그렇다면 거기부터 뭔가 꼬였다. 가뜩이나 이해안가는 이야기인데 그림에 대한 친절한 설명이라도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실 위 푸념의 글은 내 무지에서 기인한 것이다. 좀더 꼼꼼히 읽었으면 사고의 초점이 좀더 건설적으로 다가갔을텐데 말이다. 내가 신화에 대해 너무 무지하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이달에 캡벨의 책 3권을 더 읽는다. 캠벨이 신화에 대해 전체적인 틀을 어떻게 전달하려고 하는지 그것을 유심히 볼 것이다.

왜 신화속 영웅들은 우리 사람들과 다를까.
그것 또한 사람이 만들어낸 것인데 말이다.
IP *.64.7.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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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4.08 10:53:19 *.244.220.254
"[신화의 세계]는 종교의 화해였다" 좋은 문구인데요~
"그림에 제목과 설명이 없다." 형님 글보고 책을 다시보니 맞네요~ 책에 그림제목이 없네요~ 그림도 안보았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네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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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우
2008.04.08 11:23:57 *.122.143.151
홍스만 무지한것이 아니라 나두!!(손번쩍) ㅋ

신화는 뭘까? 신화가 왜 중요하지?

왜 우리는 한달내내 캠벨만 쳐다봐야하지?

3권을 더 읽으면 알 수 있겠지, 이런 이유를..

대답해줘~ 어여~ 빨랑~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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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스
2008.04.09 00:09:43 *.64.7.155
큰바위... 재우형 고마워~~^)^
애구 언능 더 공부해야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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