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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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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7일 22시 51분 등록
I. 저자에 대해서

사부님에 의해서 첫 강사로 조셉 캠벨이 무덤에서 불려나왔습니다. 빌모이어스와의 대담집 '신화의 힘'을 인상깊게 읽은 사람으로서 살아 돌아온 조셉 캠벨을 그냥 보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붙잡고 인터뷰를 했습니다. 인터뷰는 '신화의 세계'의 전체 장(Chapter) 수와 같은 13개의 질문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나: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희 사부님의 강력한 요청으로 무덤에서 불려나와 저희 4기 연구원들을 위해 두 번째 강의를 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캠벨: 별 말씀을요. 신화는 저에게 모든 것입니다. 신화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한 곳이라면, 어느 시대, 어느 장소를 불문하고 전 달려갑니다. 살아서도 그랬고, 죽은 지금도 그렇습니다.

나: 역시 대단한 열정이십니다. 알만한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혹시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캠벨: 전 조셉 캠벨입니다. 1987년에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렇지만 지금도 이렇게 절 찾는 분들이 계셔서 간혹 세상으로 나옵니다. 전 비교신화학자 입니다. 생소한 분들도 계실 텐데요. 간단히 설명 드리자면, 세계의 수많은 신화들을 서로 비교분석하며 그것들 사이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는 일을 하며 평생을 살았습니다. 제 인생은 신화를 빼면 이야기할 것이 별로 없을 정도입니다.

나: 어린 시절부터 신화에 빠져드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계기였나요?

캠벨: 네, 맞습니다. 여섯 살 때 아버지께서 버팔로 빌의 와일드 웨스트 쇼에 데려가셨는데, 그 때 본 인디언들의 모습에 전 완전히 매료되었습니다. 그때부터 틈나는 대로 뉴욕에 있는 자연사 박물관을 방문하고 책을 읽으며 인디언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나: 무엇이 그토록 어린 자신을 매료시켰을까요?

캠벨: 글쎄요. 그냥 하늘이 지어준 인연 아닐까요? 전 그것을 천복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그저 그것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할 때가 가장 행복했기 때문에 했을 뿐입니다. 저는 남들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주제라고 해서 관심을 두는 것은 믿지 않습니다. 제가 신용하는 것은 어찌어찌 하다보니 사로잡히게 되는 주제입니다.

나: 아. 그러셨군요. 선생님께서 항상 강조하시는 천복이란 무엇인가요?

캠벨: 사람마다 저마다 살아야 할 인생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뿐입니다. 항상 주위를 기울이고, 자신을 행복하게 느끼는 순간이 어떤 순간인지 잘 관찰하고 이를 찾아야 합니다.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 항상 물어야 합니다. 그러면 언젠가는 답을 찾게 될 것입니다. 천복을 좇으면, 창세 때부터 거기에서 자신을 기다리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자기 천복을 좇는 사람은 늘, 그 생명수를 마시는 경험을, 자기 안에 있는 생명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지요.

나: 말씀을 듣고 나니, 선생님은 그야말로 천복에 따르는 삶을 사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과 관련하여 우리들에게 해주고픈 말씀이 있으십니까?

캠벨: 요즘 사람들을 천복을 따르려 하지 않습니다. 남의 인생을 살려 합니다. 또는 그것을 찾고도 이를 따르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좀 전에 말했듯이 천복을 좇으면, 창세 때부터 거기에서 자신을 기다리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이걸 알고 있으면 어디에 가든지 자기 천복의 벌판에 사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문을 열어줍니다. 그래서 나는 자신 있게 사람들에게 권합니다. "천복을 좇되 두려워하지 말라. 당신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있어도 문은 열릴 것이다."

나: 자신의 일에 대한 그러한 생각이 평생을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께서는 신화와 이와 관련된 작업에 평생을 바치셨는데, 공부하는 데 힘들다는 생각을 하거나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없으셨나요?

캠벨: 물론 힘든 적도 많았죠. 저는 독일어, 프랑스어는 물론이고 신화 연구를 위해 로망스어, 중세 프랑스어, 프로방스어, 라틴어, 산스크리트어 까지 익혔습니다. 이런 언어들을 배운다는 것은 그야말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생각만 해도 짐작이 가실 겁니다. 힘들었지만 또 그 안에서 저만의 큰 즐거움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할 수 있었죠.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은 해 본적이 없습니다.

나: 연구를 하시면서 여건이 안 좋아 힘드셨던 일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떠셨나요?

캠벨: 뮌헨 대학에서 경제적 사정 때문에 박사학위 과정을 그만두고 돌아와서는 취직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재즈 밴드에서 색소폰을 부는 대가로 식비를 벌며 연구를 계속했는데, 그때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어찌되었건 연구를 계속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저는 만족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마저도 좋은 추억으로 남는군요.

나: 선생님의 신화에 대한 연구는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그야말로 신화에 대한 모든 것을 다루셨는데요. 동양의 신화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캠벨: 1924년 이었을 겁니다. 처음으로 유럽을 여행하면서 배에서 인도의 저명한 종교가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분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힌두교와 불교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지요. 제가 늘 말해왔듯이, 시대와 장소에 상관없이 신화 속에 담겨진 궁극적인 의미는 다르지 않습니다. 이것이 제가 동서양의 신화를 가리지 않고 연구하게 된 이유라고 말씀드리면 될 것 같습니다.

나: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신화란 무엇인가요?

캠벨: 신화는 신비의 차원, 만물의 신비를 깨닫는 세계의 문을 엽니다. 그런 세계를 잃은 사람에게 신화는 있을 수 없지요. 만물에서 신비를 읽을 때, 우주는 한 폭의 거룩한 그림이 됩니다. 그러면 우리의 몸은 비록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도 초월의 신비로부터 끊임없이 메시지를 받으면서 살 수 있게 됩니다.

신화에는, 심연의 바닥에서 구원의 음성이 들려온다는 모티프가 있어요. 암흑의 순간이 진정한 변용의 메시지가 솟아나오는 순간이라는 거지요. 가장 칠흑 같은 암흑의 순간에 빛이 나온다는 겁니다.

또한 신화는 사회가 꾸는 집단적인 꿈입니다. 그러니까 신화는 공적인 꿈이요. 꿈은 사적인 신화라고 할 수 있겠지요. 어떤 개인이 꾸미는 사적인 신화인 꿈이 그 사회의 꿈인 신화와 일치한다면, 그 사람은 그 사회와 무난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보아야겠지요. 그렇지 않다면 앞에서 기다리는 캄캄한 숲 속에서 한바탕 모험을 해야 합니다.

나: 신화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캠벨: 사람들은 우리 인간이 궁극적으로 찾고자 하는 것은 삶의 의미라고 말하지요. 그러나 저는 우리가 진실로 찾고 있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전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은 살아 있음에 대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따라서 순수하게 육체적인 차원에서 우리 삶의 경험은 우리의 내적인 존재와 현실 안에서 공명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실재로 살아 있음의 황홀을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 어떤 실마리의 도움을 받아 우리가 우리 안에서 찾아야 할 것이 바로 이것이랍니다. 신화는 우리의 이런 경험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래서 신화는 항상 우리 곁에 있어야 합니다.

나: 선생님 하면 떠오르는 것 중의 하나가 선생님만의 독서를 통한 연구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주시죠.

캠벨: '신화의 힘'이라는 책에서 언급한 적이 있는데요. 제가 배우고 싶은 한 사람의 책을 모조리 읽는 것입니다. 반드시, 제대로 된 사람이 쓴 제대로 된 책을 읽어야 합니다. 읽는 행위를 통해서 일정한 수준에 이르면,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마음이 즐거워지기 시작합니다. 우리 삶에서 삶에 대한 이러한 깨달음은 항상 다른 깨달음을 유발합니다.

또한 붙잡은 작가, 그 작가만 물고늘어지는 겁니다. 그 사람이 쓴 것은 모조리 읽는 겁니다. 그런 다음에는, 그 작가가 읽은 것을 모조리 읽습니다. 이렇게 읽으면 우리는 일정한 관점을 획득하게 되고, 우리가 획득하게 된 관점에 따라 세상이 열리게 됩니다.

저는 프리드리히 니체, 오스왈드 슈펭글러, 지그문트 프로이트, 칼 융, 하인리히 침머, 제임스 조이스, 토마스 만, 쇼펜하우어 등의 책을 주로 읽었습니다.

나: 아 대단하십니다. 현재 독서를 통해 공부를 하고 있는 저로서도 배울 것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해야 할 것 같은데요. 끝으로 한 말씀 해주신다면?

캠벨: 요즘은 아쉽게도 신화가 사라지고 없습니다. 현대사회에서 여러분이 만들어야 할 신화란 무엇인가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천복을 따르세요. Follow your Bliss!

(참고)
신화의 힘
신화의 세계
Wikipedia (http://en.wikipedia.org/wiki/Joseph_Campbell)
위의 참고 자료들 중 일부는 수정없이 그대로 인용하였음.


II. 내 마음을 무찔러 든 글귀

1. 서론 : 인간과 신화의 기원

5) 어린아이와 어머니의 관계와 같은 정도로 자신과 우주의 관계가 완전하고 자연스럽다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자신과 우주 사이의 완전한 조화와 일치를 얻게 된다. 우주와 조화를 이루면서 그곳에 오래 머무는 것, 이것이 신화의 주요한 기능이다. 사회가 원시적인 상태에서 벗어나 발전할 때 제기되는 문제는 개인과 사회의 이런 "신비적인 관계"를 지속시키는 일이다.

12)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한 종류는 매우 실제적인 동물적인 인간이고, 다른 한 종류는 신성한 잉여로서의 아름다움의 유혹에 민감한 인간적인 인간이다. 이것은 큰 차이다. 이것이야말로 정신적인 관심과 욕구의 최초의 작은 싹이며 다른 동물은 알지 못하는 것이다.

15) 수렵문화의 기본적인 신화적 주제는 동물은 자발적인 희생자라는 것이다. 동물은 자진해서 살해되려고 찾아온다. 우리는 세계 곳곳의 신화에서 이 주제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동물은 다음 두 가지를 조건으로 하여 자신을 제물로 바친다 :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죽일 것. 내년이 또 다시 찾아오는 것처럼 자신의 생명을 어머니라는 원천으로 되돌려보내어 소생시키는 제의를 행할 것.

16) 근원적인 신화의 이미지는 생명의 이미지이다.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먹는 생명의 이미지이다.

2. 전설 속에서 사는 사람들 : 아메리카 인디언의 신화

33) 개인이 자신만의 독자적인 길을 발견하게 되면, 이른바 원초적 가면의 억압으로부터 점차적으로 벗어나게 된다. 이것은 왼손의 길(left-hand path)이라고 부른다. 오른손의 길은 자신이 사는 마을을 울타리, 곧 이데올로기와 가면 체계-페르소나(persona : "인격"을 뜻하는 라틴어. 본래는 에트루리아인들이 연극배우가 쓰는 탈을 가리키던 말이었다. 융은 개인이 일상생활을 유지해나가는 데이 필요한 조건들에 순응하는 태도를 가리켜 페르소나라고 불렀다/역주) 체계-에 갇혀 살아가는 길이다. 왼손의 길은 개인적인 탐구의 길이다.

35) 여러분의 머리가 나르는 것은 무엇일가? 여러분의 머리는 의식을 나르는 수레이다. 여러분의 머리는 얼마나 많은 의식을 비추고 있으며, 그중 어느 것이 당신인가? 당신은 의식을 나르는 수레인가, 그렇지 않으면 의식 자체인가?

38) 신이 우리 모두를 사랑하는 것처럼. 우리가 이 땅의 일부인 것처럼, 당신들도 이 땅의 일부입니다. 대지는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며, 그것은 당신들에게도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신은 오직 한 분만이 계실 뿐이라는 것을. 누구도 인디언이니 백인이니 하고 구별할 수 없습니다. 누가 뭐라고 하든 우리는 모두 형제입니다.
(시애틀 추장의 연설문 중에서)

40) 우리는 신비, 곧 끝없이 깊은 구렁에서 나오는, 무한하고 처음도 끝도 없고 영속하는 신비의 아주 작은 일부분이다.

48) 사회의 관습과 명령에 따르지 말라. 그 방향에는 막다른 골목이나 분쟁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무지개 인간(Rainbow Man)의 지시에 따라서 산들, 곧 그들의 활동무대로 간다.

58) "신은 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공(球)이다. 그 중심은 어디에나 있지만, 그 경계는 어디에도 없다. " 결국 중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제의나 신화의 기능은, 아주 먼 옛날의 어딘가가 아니라, 지금 바로 여기에서 당신이 그것을 경험하도록 하는 데에 있다.
(인용구는 '24인의 철학자들의 책(Book of the Twenty-Four Philosophers)' 중에서)

58) 나는 신비적인 차원과 그것에 대한 깨달음, 곧 신비주의와 과학 사이에는 모순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기원전 2000년의 과학과 2000년의 과학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점에서 우리는 곤란한 처지에 놓여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전(聖典: 구양성서와 신약성서/역주)은 아주 오래 전에 우리의 어떤 생활경험도 공유하지 않는 다른 민족이 다른 곳에서 편찬한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근본적인 괴리가 있다. 지금 그 성전을 읽어보면, 성전은 인간을 자연보다 우월한 존재로 말한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인간에게 주어진 본성으로 본다. 그것을 시애틀 추장이나 블랙 엘크의 말과 비교해보라. 이것이야말로 이미 진부해진, 죽어버린, 기능하지 않는 신화와 지금 기능하고 있는 신화의 차이이다. 신화가 살아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무에게도 말할 필요가 없다.

59) 신화가 살아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무에게도 말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실제로 당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그림을 보는 것과 같다. 그 그림은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만일 당신이 "저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고 물었을 때 화가가 대답해준다면, 그것은 당신을 경멸하기 때문이다. 그림과 마찬가지로, 신화는 기능하지 않으면 안된다. 만일 당신이 이미 신화를 경험하고 해석하고 확대했다면 신화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화는 먼저 기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우리는 기능하는 신화를 잃어버린 것이다.

59) 신화는 살아 있는 인간을 그의 생활주기와 조화시키고, 그가 살고 있는 환경과 조화시키고, 이미 그 자체가 환경의 일부가 되어버린 사회와 조화시키는 기능을 한다.

3. 그리고 우리는 바다에서 무기를 씼었다 : 신선기시대의 신들과 여신들

77) 인도에서는 신이 자신해서 춤을 추며 세계에 들어온다. 세계는 유희이며 놀이이다. 그것이 이 신화들의 기본적인 분위기이다. 적어도 그것은 즐거운 것이며 유머러스한 것이다.

4. 파라오의 지배 : 이집트, 출애굽, 그리고 오시리스 신화

101) 아크나톤은 지배권을 상징하는 것은 양떼를 지키고 인도할 때 사용하는 끝이 구부러진 지팡이와 곡식의 낱알을 떨어내는 도리깨였다. 이것은 자비의 신과 정의의 신이라는 지배의 두 측면, 곧 규제와 보호를 상징한다.

104) 생명은 환희의 표현이다. 그런데 애처로운 정신의 칼집이 모든 것을 양식의 몸(food body)와 연결시켜서 "아아, 인생이란 참으로 비참하도다"하고 생각한다. 누군가 이 주일 간격으로 잔디를 깎는다고 하자. 그때마다 풀이 "글세, 이런다고 무슨 소용이 있담?"하고 생각하는 것을 상상해보기 바란다.

104) 당신은 환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아무리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크나큰 번뇌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비참에 빠져 있다고 할지라도, 만일 환희의 문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기만 한다면, 이 현실이야말로 인생의 환희임을 깨달을 수 있다. 고통이 있는 곳에 생명이 있다.

109) 민족에 대해서는 두 개의 전혀 다른 관점이 있다. 한쪽은 "그래, 그것이 본래의 나이고 나의 모든 특징은 그런 물운에서 생긴다"라고 말한다. 다른 한쪽은 "아니, 이것은 나만의 존재야"라고 말한다.

110) 우리가 한 것은 타인이 한 것과는 다르다. 이것 또한 우리들(유태-기독교/역주) 전통의 특징이다. 모세는 영웅이 아니다. 그가 이끌었던 부족이 영웅이다. 우리의 신화는 부족의 신화이며, 우주의 유일한 신은 우리의 신이다.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

5. 성스러운 원천 : 영구불변의 동양철학

114) 신화에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계속성은 철학 속으로 숨어들어간다. 그것이 바로 영구불변의 철학이다. 신화는 꿈과 같은 영역에 속한다. 나더라 말하라면 그 영역을 지혜의 꿈(Wisdom Body)이라고 부르겠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 몸이 말하기 시작한다. 몸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에너지에 의해서 움직인다. 에너지가 지혜의 몸을 지배한다. 에너지는 거대한 생물학적 바탕에서 나온다. 그곳에 있는 에너지는 에너지임과 동시에, 의식의 양태이다.

115) 상징의 주요한 문제는 사람들이 상징에 빠져버리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원천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갠지스 강이 흘러나오는 근원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화에서 중요한 것, 신비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상징에 포함되어 있는 속뜻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속뜻은 언제나 정신적이다.

116) "시를 쓰는 것은 말 뒤에 숨어 있는 원초적인 말(Urwort)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독일의 작가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

116) "모든 변화하는 것들은 거울에 비친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괴테)

118) 진정한 순례는 글자 그대로의 순례, 물리적인 행동으로서의 순례를 당신 자신의 마음속에 잇는 중심을 찾아가는 순례로 바꾸는 것이다. 순례를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순례하는 동안 계속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명상하고, 참된 여행은 자신의 내면을 향한 여행임을 자각하기만 한다면.

122) 신화는 분석과 관계를 가질 필요가 없으며, 원인을 과학적으로 발견할 필요도 없다. 신화는 인간을 그를 둘러싼 환경에 결합시키는 것과 관계가 있다.

123) 우리는 환경보보운동을 통해서, 자신이 그 속에서 살아가는 환경을 파괴함으로써 실제로 에너지를 잃고 있으며 자신의 생명력의 근원을 잃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 조화의 관념을 가지고 이 세계에서 해야 할 일을 잘 분별해서 올바로 살아간다면 환경의 생명력을 되살릴 수 있을 것이다.

128) 어차피 떨어질 바에는 아예 뛰어들라. 꼭 해야 할 일이라면 해버려라. 이렇게 해서 희생에 대한 열의가 생기는 것이다.

131) 부처는 이렇게 말한다. "그렇다, 모든 인생은 비참으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이 인생의 본디 모습이다. 선과 악. 사람이 사물에 붙이는 모든 이름, 곧 '선'과 '악'은 모두 뒤섞여 있다." 부처는 힌두 의사의 말을 인용했다. 의사가 찾아와 환자를 진찰한다.
"선생님, 이 환자는 상태가 어떤지요?"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괴로움을 치료할 방법은 없습니까?"
"누구나 괴로워합니다. 괴로움을 치료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괴로움을 치료한다구요? 어떤 치료법인가요?"
"열반(涅槃)입니다."
"그건 어떤 건강 상태입니까? 열반이란 대체 어떤 것입니까?"

131) 당신의 인생을 괴로움에 불과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욕망과 불안이다. 그것은 무엇인가를 바라는 욕망, 사람을 속이려는 욕망이며, 무엇인가를 잃지 않으려는 불안이다. 이 욕망과 불안이 진정되었을 때 당신인 마하수카(Mahasukha), 곧 큰 기쁨의 경지에 도달하고 법열(法悅)을 경험하게 된다. 법열을 경험하게 되면 고통이 당신을 아프게 하지 못하게 된다. 당신은 중심으로 들어가며, 기쁨이 흘러넘치게 된다. 당신이 중신에 들어가면 이미 무엇을 얻는다든지 잃는다든지 하는 일이 없게 된다. 당신은 존재 그 자체가 된다. 이것이 열반이다.

133) 죽여야 할 것은 심리적 차원의 온갖 욕망과 불안이다. 그 때 비로소, 매우 흥미로운 방식으로, 생명은 긍정적인 것이 된다.

6. 정각(正覺)에 이르는 길 : 불교

136) 스즈키 다이세츠가 쓴 책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 젊은 제자가 스승에게 "제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스승이 "없다"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제자가 말했다. "그렇지만 스승께서는 만물에는 불성이 깃들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돌, 나무, 나비, 벌, 새, 짐승,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말입니다." 스승이 말했다. "네 말이 옳다. 만물에는 불성이 깃들어 있다. 돌, 나무, 나비, 벌, 새, 짐승, 모든 것들에. 하지만 네게는 없다." "제겐 없다구요? 어째서 그렇습니까?" "네가 그런 걸 묻기 때문이다."
이런 합리적인 방식으로 자기 발견을 이루고자 하는 한, 그 뜻을 파악 할 수 없다. 부처란 합리적인 방식을 털어내고, 그 뜻을 파악한 다음, 그 뜻으로부터 해방되어 살아가는 사람이다.

142) 인드라와 브라마가 말했다. "부디 인류와 신들과 전세계의 구제를 위해서 가르침을 베풀어주십시오." 그러자 부처가 답했다. "그럼 가르쳐주겠소. 그러나 내가 가르치는 것은 불교가 아니라, 불교에 이르는 길이요." 불교는 부처의 정각에로 당신을 데려가는 "탈것(yana)", 특히 나룻배이다. 불교는 우리를 피안(彼岸)으로 건네주는 나룻배이다. 피안이란 괴로움과 즐거움, 얻음과 잃음, 불안과 공포, 너와 나를 초월한 장소이다. 그것은 우주적인 일원성 또는 우주만물의 불변성을 자각함으로써 이원성을 초월하는 것이다.

143) "머리카락에 불이 붙어 연못에 뛰어드는 사람처럼 필사적으로 열반을 구하지 않으려거든 아예 처음부터 그만두는 것이 좋다. 그것은 참으로 어려운 길이다." 여기에는 매우 실천하기 어려운 금욕과 현세 부정의 사상이 있다. 그래서 작은 나룻배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당신은 그 배에 탄다.

145)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무엇이 최선의 교훈, 최고의 규칙일까? 최고의 규칙은 벗들과 즐겁게 지내고, 즐겁게 식사하는 것이다. 당신의 놀이가 무엇인지를 깨달으라. 그 놀이, 인생의 놀이에 참여하라. 그것이 바로 극락, 곧 마하수카이다.

146) 기독교와 불교는 동일한 원소적 관념이 두 개의 민속적인 형태로 표현된 것이다. 부처가 당신에게 주는 가르침은 이렇다. "네가 그것이다. "(우주의 근본 원리인 범(梵)과 개인의 중심인 아(我)의 본체가 궁극적으로 동일하다(梵我一如)는 우파니샤드의 중심적 사상을 요약한 말. 여기에서의 "그것"은 "불성을 자각하여 보살의 도를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역주) 확실히 그렇다. 그리스도의 호소는 무엇일까? 기쁨을 가지고 참여하는 것, 불안해하거나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고 기꺼이 십자가에 매달리는 것이다. 그것은 더할 나위 없는 환희이다. 그것이 거기에 담긴 뜻이다.

148) 당신의 미래의 모습은 단지 지금 이 세상의 당신의 성격과 존재의 반영에 지나지 않는다.

7. 이드에서 자아로 : 쿤달리니 요가(1)

155) 요가의 이념은 요가(yoga)라는 말 속에 이미 나타나 있다. 그것은 어떤 것을 다른 어떤 것과 "묶다. 결합하다(yoke)"라는 뜻을 가진 유즈(yuj)라는 어근(語根)에서 유래한다. 결합되는 것은 우리의 자아의식(aham consciousness)과 의식의 근원이다.

155) 신화에 뿌리를 두고 있는 동양사상에 적합한 말로 표현한다면, 신들은 에너지의 의인화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생명, 모든 생명, 당신의 생명, 세계의 생명을 만드는 에너지의 의인화이다.

155) 초월적인 의식은 사물을 생각하고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우리의 모든 능력들을 훨씬 넘어선다. 이런 생각이 모든 생명의 밑바탕에 있는 기본 이념이다.

157) '형이상학의 기초'라는 훌륭한 책에서 칸트는 이런 의문을 제기한다. "어떻게 해서 우리는 이 공간에서 사물의 관계를 결정할 수 있으며, 같은 관계가 다른 공간에서도 성립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가?" 이어서 그는 답한다. "그것은 공간의 법칙들이 이미 우리 자신의 머릿속에 있기 때문이다."

158) 당신이 "신은 하나인가, 여럿인가?" 하고 묻는다면, 하나와 여럿은 개념이다. 그것들은 사고의 범주들이다. 그리고 신이라는 말은 본래 하나의 인격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인격을 넘어서는 것, 실제로 사고를 초월하는 것을 의미한다. 신화적인 상징은 초월성에의 길을 열어준다.

159) 서양에서의 통상적인 해석에 따르면, 신은 상징이 아니라 기호이다. 신이라는 말은 하나의 사실로서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160) 정신은 언제나 움직이고 있다. 그것은 바람에 잔물결이 일렁이는 연못을 연상시킨다. 잔물결이 일렁이는 연못은 일그러진 상을 비춘다. 상은 나타났다가는 사라지고, 나타났다가는 사라지고, 또 나타났다가는 사라진다. "창세기"에서는 하느님의 바람, 숨, 기운이 수면 위에 휘돌았다. 그것이 세계의 창조이다. 이제 흥분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이제 요점에 이르렀다. 우리는 자신을 그런 일그러진 상들의 하나, 곧 연못의 수면에 일그러진 모습으로 비친 상의 하나와 동일시한다. 나는 나타난다. 그리고 사라진다. 그것이 우리를 시간의 흐름, 시간과 공간-마야-에 결합시킨다. 연못을 정지시키고, 상을 하나로 만들라. 일그러져 비쳤던 것이 이제 완전한 정지 상태에서 보인다. 그것이 당신의 참된 실재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다른 모든 사람의 실재이기도 하다. 자신의 것이면서 동시에 다른 모든 사람의 것이기도 한 의식이 실체를 발견하는 것, 이것의 요가의 목표이다.

160) "왜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의 위험에 깊은 관심을 품으며 자기 몸의 위험을 돌보지 않고 다른 사람을 구하려고 자발적으로 뛰어드는 것일까?" (중략) 왜 그럴까?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것은 보통 때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형이상학적인 자각이 갑자기 생기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보편적인 의식의 구현이라는 자각이다.

161) 요가의 기능은 우리를 시간과 공간의 구속으로부터 해방시켜 초월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다. 그뒤, 우리가 양쪽의 지식을 가지고 활동할 수 있도록 현실계로 돌아오는 문제가 생긴다.

162) 쉬고 있을 때 호흡은 평온한 좋은 상태로 유지된다. 어떤 충격으로 마음이 흔들리면 호흡은 흐트러진다. 반대로 호흡을 바꾸면 정신상태도 바뀐다. 천천히 호흡함으로써 연못의 잔물결을 잠재우는 것이다. 참선중인 승려의 한 호흡의 길이는 놀라울 정도이다. 수련을 쌓은 요가 수행자는 대단한 폐활량을 가지고 있다.

165) 아메리카 인디언의 신화에서, 괴물들로부터 어머니를 구하려는 어린 영웅들은 어머니로부터 북쪽은 위험하니 가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받았었다. 동쪽, 남쪽, 서쪽이라면 괜찮다. 그래서 소년들은 북쪽으로 간다. 사회의 규칙을 넘어서는 유일한 길은 북쪽으로 가는 것이며, 그것을 규칙을 깨는 것이다. 그곳에는 사회가 그때까지 전혀 알지 못했던 어떤 것이 있다. 그것을 가지고 돌아오면 그것이 구원하는 힘, 확장된 힘이 된다.

167) 시간은 폭력을 요구한다. 그러나 눈은 폭력의 뒤에 놓여 있는 평화를, 어린 양과 함께 잠자는 사자를 인정할 것을 요구한다. 이것은 사자가 어린 양을 잡아먹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당연히 사자는 어린 양을 잡아먹는다. 그러나 사자가 어린 양을 잡아먹었다고 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시간적인 사건일 뿐이다. 그 행위의 뒤에 놓여 있는 평화를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168) 뱀은 다시 태어나기 위하여 허물을 벗는다. 따라서 그것은 생명력, 에너지 그리고 죽음을 떨쳐버리는 의식을 상징한다. 그러나 그것은 죽음의 영역 안에 있다. 죽음의 영역 안에 있는 의식이 죽음을 떨쳐버리고 새로운 육체를 얻는다. 그것이 재생이며 세대의 연속이다. 언제나 새로운 새대가 태어나고, 현세대는 죽음으로 던져진다. 생명은 그렇게 이어져온 것이다.

170) 이 세상에는 상징의 정신적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채 상징을 물질적인 것으로 해석하면서 엉뚱한 속물적인 행동에 열중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꿔 말하면 이런 것이다. 정신적인 상징을 구체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그때는 현실의 육체와 관련을 가지는 현실의 행위에 열중하게 되고 정신적인 내용을 잃어버리게 된다.

172) 낙원의 문을 지키는 거룹들, 불멸의 생명나무로부터 인간을 떼어놓기 위해서 신이 문 앞에 배치한 두 마리의 거룹이 지금 그 문을 열고 있다. 따라서 당신은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들어가면 생명나무가 있다. 부처가 그 밑에 앉았던 나무이다. 그 나무는 대체 어디에 있을까? 그 나무는 바로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있다. 따라서 당신은 부다가야에 갈 필요가 없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이 모든 것을 정신적인 것이 아니라 단순히 물질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부다가야로 가게 될 것이다.

175) 하인리히 침머가 자주 말했던 것처럼, "최선의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차선의 것은 오해된다." 왜냐하면 차선은 초월계를 설명하려고 시간과 공간의 사물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시간과 공간의 용어로 설명됨으로써 언제나 오해된다. 차선에 버금가는 선은 대화이다. 우리는 지금 최선의 것을 말하려고 차선의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8. 심리학에서 영적인 것으로 : 쿤달리니 요가(2)

189) 한 여성이 라마크리슈나(1834-1886. 인도의 신비주의 종교가, 힌두교의 개혁자/역주)에게 찾아와서 말했다. "저는 도저히 신을 사랑할 수 없어요. 신이라는 개념은 제 마음을 조금도 움직이지 못한답니다." 라마크리슈나가 물었다. "이 세상에 당신이 사랑하는게 아무 것도 없나요?"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있지요. 제 어린 조카를 사랑합니다." 라마크리슈나가 말했다. "거기에 신이 계십니다."

189) 인생의 활동 속에서 신성한 것을 찾아내는 것, 이것이 힌두교, 탄트라교, 불교의 훌륭한 점이다. 절에 불공을 드리러 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의 종교생활은 지금, 이곳에 있다.

189) 사랑의 가장 높은 형태는 사랑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이다. 앞뒤를 헤아리지 않는, 적극적인, 금지된, 세상의 관습을 무시한 사랑이며 초월계의 돌파구를 여는 사랑이다. 그것은 자기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누군가를 돕는 경험과 비슷하다. 정열과 충동이 너무나 강렬하여 세계가 눈앞에서 사라진다.

195) 꿈은 신화의 개인적인 모습이다. 꿈과 신화는 같은 종류의 것이다. 둘 다 우의 단계, 곧 꿈꾸는 의식의 상태에 있다. 당신과 당신의 꿈이 하나인 것과 마찬가지로, 당신과 당신의 신은 하나이다. 그러나 당신의 신은 나의 신이 아니다. 따라서 나에게 그것을 강요하려고 하지 말라. 모든 사람은 저마다 고유한 존재와 의식을 가지고 있다.

202) 나방은 불꽃에 뛰어들려고 한다. 그러나 유리가 그것을 막는다. 나방은 밤새 유리에 몸을 부딪고는 아침이 되자 친구들에게 정말 대단한 것을 보았노라고 말한다. 그러자 친구들은 말한다. "그런데도 별로 좋아 보이지는 않는군." 돌파구를 열려고 필사적으로 몸을 부딪는 것, 이것이 요가 수행자의 필요 조건이다. 나방은 다음날 밤 다시 호롱불로 날아가, 우연히 또는 계획적으로, 유리를 부수는 데에 성공한다. 한순간에 나방은 목적을 이루고 불꽃이 되어버린다. 그 순간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영원한 순간이다.

203) 지옥에는 어떻게 해서 떨어질까? 자신의 자아를 완고하게 닫아버리는 사람은 그것에 사로잡혀버린다. 지옥이란 자기 자신에게 사로잡힌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천국에는 어떻게 해서 오를까? 마음을 열면 마침내 모든 것이 개인의 한계를 초월하게 된다.

9. 천상계로의 하강 : '티베트 사자의 서'

219) 누구나 야마 안타카(Yama-Antaka), 즉 자기 내면에 있는 죽음의 공포를 죽이는 힘에 의지함으로써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 있다.

225) "우리가 타인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일은 그들을 영혼의 형상들, 탄생과 함께 잊어버린 기억으로 다시 인도하는 것이다."
(플라톤의 '티아이오스(Timaios)')

10. 어둠에서 광명으로 : 고대 그리스의 신비 종교

235) 명상이란 우리는 신성한 실체를 먹고 있으며 우리를 길러주는 것은 그 신성한 실체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은 물질적인 실체가 아니다. 모든 생명은 어떤 초월적인 힘이 주어지거나 산출됨으로써 유지된다. 이것이 명상의 핵심이다.

248) 최초의 뮤즈인 탈리아(Thalia)는 지하에 있다. 그녀의 소리가 우리에게 들리지 않기 때문에 "침묵의 탈리아"라고 부른다. 우리가 자아와 공포와 욕망에 집착하는 한,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에 집착하는 한, 우주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248) 선(禪)의 과제 중의 하나는 경험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인생의 의미를 배우고 싶다고 말한다. 인생에 의미는 없다. 꽃에 의미가 있는가? 우리가 찾는 것은 경험을 쌓는 것, 인생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눈앞의 모든 경험에 대해서 이름을 붙이고, 해석하고, 분류하느라 경험에서 멀어져버리낟. 당신은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그것은 결혼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아니면 불륜 또는 이런저런 것이 될 수도 있다. 당신은 이런 식으로 분류하느라 경험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러므로 머리를 사자 입 속에 집어넣고 이렇게 말하라. "에이, 될 대로 돼라." 그러면 무슨 일인가 일어날 것이다.

11. 길(道)은 없었다. : 아서 왕 전설과 서양의 길

259) 동양의 구루(guru)를 만나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들은 길(道)을 알고 있으며, 당신이 길의 어디쯤에 와 있는지도 알고 있다. 어떤 도사들은 자기가 알고 있는 상황을 당신에게 가르쳐주기도 한다. 따라서 당신은 직접 상황을 파악하지 않고서도 자신이 가야 할 곳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유럽과 동양의 다른 점이다.

259) 이 세상에 똑같은 지문을 가진 사람은 없다. 당신 몸의 모든 세포와 구조는 지금까지 이 세상에 존재한 어떤 사람의 것과도 다르다. 따라서 당신은 여기저기에서 암시를 받으면서도 직접 그것을 움직일 수밖에 없다.

261) 부처는 인생은 괴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한다. 인생은 살아 있음의 고통의 경험이다. 고통이 있는 곳에 당신의 인생이 있다. 그러니 그것을 찾으라.

261) "당신 말은 이해할 수 없군요. 만일 당신이 말하는 죽음이 이졸데를 사랑하는 나의 아픔을 가리킨다면, 그것은 내 생명이라고 말하겠소. 만일 당신이 말하는 죽음이 세상에서 내리는 벌을 가리킨다면, 나는 기꺼이 그것을 받겠소. 만일 당신이 말하는 죽음이 지옥의 영원한 저주를 가리킨다면, 나는 기꺼이 그것을 받겠소."
(트리스탄이 브랑게네에게 한 말)

12. 고상한 마음 :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궁정연애

288) "자신이 선택한 길을 여행하는 것은 면도날 위를 걷는 것과 같다." 실제로 그렇다; 그 길을 여행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특히 자신만의 희열, 자신만의 열망을 추구하는 사람은 균형을 잃고 열망의 급류로 떨어져 떠내려가기 십상이다. 이것은 현실적인 교훈이다.
(인용구는 서머셋 몸의 '면도날(The Razor's Edge)' 중에서)

290) 중세 이야기의 특징은 한 사람이 이야기를 창작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발전시킨다는 점이다. 그것은 옛날부터 전해오는 이야기를 받아들여 그것을 해석하는 것, 곧 그 시대의 조건에 맞게 새로운 깊이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13. 성배를 찾아서 : 파르치팔 전설

308) 파르치팔은 이렇게 생각한다. "그저 주어지는 여자와 결혼하지는 않겠다. 내 아내는 내 손으로 고르겠다." 그것이 결혼과 사랑의 최초의 결합이다. 결혼과 사랑의 분열이라는 문제에 대한 최초의 답인 것이다.

310) 결혼은 사랑의 확인이며, 성애는 결혼의 상징이다. 그것이 사랑과 결혼을 하나로 만든다.

310) 볼프람은 결혼이란 정신에서 시작되고 육체에서 완성된다고 말한다.


III. 내가 저자라면

빌 모이어스와의 대담을 책으로 엮은 '신화의 힘(The Power of Myth)'과 그 태생이 유사한 '신화의 세계(Transformation of Myth Through Time)'는 조셉 캠벨이 미국 각지에서 행한 강연을 녹화하여 TV로 방영한 뒤, 다시 이를 엮어 출판한 강연집이다. 실제 강연의 내용이 어느 정도의 편집과정을 거쳐 책으로 옮겨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책의 구성을 살피는데 있어서 필히 염두해 두어야 할 부분이라 여겨진다.

이 책 역시 '신화의 힘'과 마찬가지로 처음 읽기 시작할 때, 가장 이해하기 힘들었던 부분은 논리적으로 명확한 구조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전체적인 구성은 물론이고 각 장의 내용 역시 다양한 신화의 예와 이들 간의 비교를 통해 그들 속에 숨겨진 공통점을 찾아 보이는데 집중하고 있다. 책은 초반부터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신화의 조각들을 가져와 퍼즐 맞추기를 시작한다. 따라서 책의 각 장이 긴밀하게 연결되었다기보다는 단절된 느낌은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러한 느낌이 들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이 책이 순수하게 책의 출판을 위해 저술된 내용이 아닌, 강연 내용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 이 책은 조셉 캠벨이 죽은 이후에 출판된 그의 유작으로서, 책의 편집과정에 그가 어느 정도 관여했는지 알 수가 없다. 책 소개에 실린 내용으로만 봤을 때에는, 편집과정에는 전혀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렇게 단절되어 보이는 신화들 사이에서 어떤 공통점을 발견하는 것이 작가의 직업이고, 그가 우리에게 전달하려 하는 메시지가 바로 그 공통점이기 때문에 이러한 식의 내용전개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수많은 이야기 속에 숨겨진 보편적인 상징을 찾아내기 위해 자신이 겪은 과정을 독자에게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책을 읽으면서 초반에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전체적인 구성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 그 결과 나름대로 책의 각 장들을 이리저리 짜맞추어보면, 최소한 3개의 덩어리로 묶을 수 있을 것 같다. 1장에서 4장에 이르는 첫 번째 부분은 앞서 언급한 형식과 내용으로 비교신화학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갖가지 이야기를 끌어다가 이들을 비교분석하며 공통점을 찾고, 조셉 캠벨, 자신이 하는 일을 우리에게 보여주며 그 일을 통해 자신이 알아낸 것들을 들려준다. 인간과 신화에 대한 보편성을 설명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5장에서 9장에 이르는 두 번째 부분은 순수하게 동양의 신화에 대한 이야기에 할애하고 있다. 주로 동양철학과 불교, 요가, 죽음의 이야기를 다룬다. 나머지를 차지하는 세 번째 부분에 이르러서는 서양으로 무대를 옮겨 작가 스스로가 신화 속에서 유럽적 의식을 끌어내기에 가장 좋은 소재라고 밝힌 성배의 이야기와 더불어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궁정연예, 아서왕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개인적으로 목차를 다시 꾸며본다면 다음과 같다.

1부. 인간과 신화
1. 인간과 신화의 기원
2. 전설 속에서 사는 사람들 : 아메리카 인디언의 신화
3. 그리고 우리는 바다에서 무기를 씼었다 : 신선기시대의 신들과 여신들
4. 파라오의 지배 : 이집트, 출애굽기, 그리고 오시리스 신화

2부. 동양의 신화
5. 성스러운 원천 : 영구불변의 동양철학
6. 정각(正覺)에 이르는 길 : 불교
7. 이드에서 자아로 : 쿤달리니 요가(1)
8. 심리학에서 영적인 것으로 : 쿤달리니 요가(2)
9. 천상계로의 하강 : '티베트 사자의 서'

3부. 서양의 신화
10. 어둠에서 광명으로 : 고대 그리스의 신비 종교
11. 길(道)은 없었다. : 아서 왕 전설과 서양의 길
12. 고상한 마음 :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궁정연애
13. 성배를 찾아서 : 파르치팔 전설

이 세 개의 부분에서 처음 내가 지적한 다소 산만한 느낌의 구성은 첫 번째 부분에 치중되어 있으며, 나머지 두 부분은 강연내용을 옮겼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을 정도로 각 장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에 대해 예시를 적절히 사용하며 좋은 설명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지금까지 읽은 두 권의 조셉 캠벨의 저서는 모두 나에게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한편으로는 할머니가 손자에게 들려주는 듯한 신비한 옛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으며, 자신의 직업에 걸맞게 그 많은 이야기 속에서 공통점을 찾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상징을 알려주고자 하는 훌륭한 선생님의 다소 어려운 강의를 듣는 느낌이었다.

신화는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재미있고, 우리에게 교훈과 감동을 주기도 하며, 우리자신의 모습을 타인의 시선에서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반면 신화는 분명 재미있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은 이야기이다. 이 책 속에 소개되는 많은 이야기는 때로는 해독이 필요한 암호와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와 다른 시대의 다른 장소의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와의 시간적, 공간적 거리로 인해 쉽게 다가오지 않으며,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또한 어른들을 위한 동화나 우화가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를 항상 차지하고 있는 이 시대에 신화가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사실일 수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조셉 캠벨은 신화와 현대의 우리를 잇는 다리이며, 신화의 해석을 돕는 번역자이다. 바로 그의 책을 통해 우리는 신화를 이해하고 그 신화가 살아 숨 쉬었던 그 시대와 연결된다.

'신화의 세계'는 순수하게 신화만 담고 있는 이야기책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입문서라고 하기에도 조금 벅찬 느낌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비교신화학이라는 조셉 캠벨의 연구분야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를 하고 나니, 그 학문의 특성에 맞는 구성과 내용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쪽으로 생각의 변화가 일어났다.

신화가 살아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무에게도 말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실제로 당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그림을 보는 것과 같다. 그 그림은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만일 당신이 "저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고 물었을 때 화가가 대답해준다면, 그것은 당신을 경멸하기 때문이다. 그림과 마찬가지로, 신화는 기능하지 않으면 안된다. 만일 당신이 이미 신화를 경험하고 해석하고 확대했다면 신화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화는 먼저 기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우리는 기능하는 신화를 잃어버린 것이다. (59p)

'우리시대의 진정한 신화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또 다시 마음 한 구석에 남는다.

IP *.34.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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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4.08 10:38:39 *.244.220.254
"저자라면"의 새로운 목차 마음에 드네요~
그런데 난 왜 이런 생각을 못하지?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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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희
2008.04.08 21:11:00 *.41.62.236

책을 제대로 읽었다는 느낌이 옵니다. 부러워라.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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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쟁이
2008.04.09 09:55:22 *.235.31.78
겸손하고 차분하게 쓰시는 분.

조용한 사자.

으르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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