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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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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8일 10시 04분 등록
1.저자소개

조셉캠벨의 두번째 소개이다.
나는 저자를 소개하는데 있어 인터넷 서핑이나 혹은 그의 책에서 보여주는 약력에서 보여지는 캠벨이 아닌 그의 영혼이 녹아들어 있는 저서를 통해 그를 알아보고자 한다.
그는 이미 1987년에 타계했지만 책속에는 여전히 그의 생기가 살아있고 책 속에서 그는 여전히 뜨거운 목소리를 낸다.
책속의 캠벨, 책속에 살아있는 캠벨을 들여다 보자.

“민담과 인류학에 나오는 해골에 생명을 불어 넣는 사람 조셉캠벨”
“아주 어린나이에 인디언 민담을 통해 신화에 관심을 갖게 된 이후 평생동안 자신의 천복을 좇아 산 행복한 사람 조셉캠벨”
첫번째 책 <신화의 힘>에서 발견한 캠벨에 대해 축약적으로 말하라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내가 만나 두번째 책 <심화의 세계>에서의 캠벨은 어떨까?
“당신의 신은 나의 신이 아니다. 따라서 내게 강요하지 말라” 라고 말하면서 강하게 반 기독교적 입장을 보인다. 카톨릭 집안에서 자랐고 카톨릭 교육을 받았던 그가 기독교의 타종교에 대한 지독히 배타적인 성향과, 신화적인 상징에 포함되어 있는 속뜻을 놓쳐서는 안됨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사실, 마치 이데올로기 처럼 다루므로 상징에 포함되어 있는 초월성을 읽어내지 못한다고 강하게 비판한다.
뿐만 아니라 그가 불교, 흰두교, 등을 소개하며 동양적 사상에 강한 매력을 느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물론 그는 불교신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신들의 근원은 우리 자신 마음속에 있으며 , 신은 바로 당신 자신의 에너지의 상징적 의인화이며, 당신 자신의 에너지는 곧 우주의 에너지이며, 천국은 당신 안에 있다 라는 내용에서 보여지듯이 그가 불교와 같은 동양적 사상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켐벨은 <신화의 힘>에서 젊은이들에게 독서에 대해 깊이 강조한바 있듯이 그 스스로가 독서에 얼마나 몰입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독서에서 얻었다고 밝힌다. 이 독서가 자신을 떠받치고 있는데 이것이야 말로 자신 인생의 길라잡이라고 당당히 말한다.
캠벨이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분야와 어학에 해박하게 되었을까 의문을 품게되고 그에 반해 초등학교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지식을 가진 내 자신이 한계에 부딪히게 되었는데 그 해답이 그의 독서에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미국의 주가가 폭락하고 대공황으로 이력서를 수십통이나 썼지만 그를 불러주는 직장이 없어 얼마동안 섹스폰을 불고 받은 돈으로 극빈 생활을 하는 중에도 로망스어, 프랑스어,프로방스어, 라틴어를 익히고 프로이트와 융의 사상을 섭렵하고, <전쟁과 평화>를 원문으로 읽기 위해 러시아를 공부하고, 공부하고 또 공부한 그의 왕성한 지적 활동은 경외심을 갖기에 충분하다.

나는 앞으로 3번에 걸쳐 조셉캠벨과 더 깊은 대화를 하게 될 것이다.
아직 나의 지식이 어린아이와 같아서 어른의 말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청춘의 나이, 사춘기의 과정을 거쳐 빛보다 어두움이 지배하는 상현달에서 빛이 어두움을 지배하는 보름달로 커나가듯이 단순 읽기와 따라가기에서 벗어나, 책 속에 녹아있는 그의 삶 자체를 캠벨의 목소리로 이해하게 되리라 기대해본다.


2.내 마음속에 무찔러 들어 온 글귀
신화는 우리의 삶, 우리의 육체, 우리의 환경을 소재로한다.

아기를 안고 있는 여성은 신화의 기본적인 이미지이다. 누구나 태어나서 처음 경험하는 것이 어머니의 몸이다. …어린아이와 어머니의 관계와 같은 정도로 자신과 우주 사이의 관계가 완전하고 자연스럽게 느낄수 있는 사람은 자신과 우주 사이의 완전한 조화와 일치를 얻게 된다. 우주와 조화를 이루면서 그곳에 오래 머무는 것, 이것이 신화의 주요 기능이다 5

인간의 발달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의 하나는 유년기가 길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열다섯 살 무렵까지 계속 부모에게 의존한다. 이 의존의 태도, 곧 권위에 순종하고 칭찬받기를 기대하고 징벌을 두려워 하는 태도가 정신의 주요 조건이 된다. 그것은 철저하게 훈련된다. 또 그 사회에 특유한 관습, 선악관과 사회적 역할에 대한 특정한 관념이 자녀들에게 각인된다.6

뉴기니섬의 힐족- 먹을것은 충분하다. 한 부족이 다른 부족을 침략해서 상대방의 토지나 재산을 약탈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남자들은 무얼하면 좋을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냥 멍하니 둘러앉아 있다. 그래서 그들은 전쟁을 발명했다. 그것은 전쟁놀이지만 창은 진짜 창이고 한 남자가 살해되면 전쟁은 끝나고 기습공격이 시작될때까지 기다린다. 그들은 언제나 상대방의 반격을 경계하며 준비한다. 남자란 뭔가 진지한 일을 하지 않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동물인것이다. 7

최초의 신성관념은 천둥소리에서 나왔다. 천둥 소리는 인간의 힘보다 더 큰 힘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최초의 암시이다. 9

네안데르탈인- 대뇌가 일정한 크기에 이르고 의식에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결과, 이 단계에서 신화적 사고의 최초가 출현한다. 그 하나는 매장이다. 매장할때 희생제물을 바치는 행위 , 주검은 태아처럼 웅크리고 있다. 모체의 자궁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것은 잉여로서의 뛰어난 아름다움을 넘어서는 신비의 첫체험이다. 이 인물은 우리의 벗이다. 걸어다녔고, 다정했고,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드러눕고, 무언가가 떠나고, 몸은 차가워지고, 굳어지고, 그리고 점점썩기 시작한다. 무엇이 그를 떠났을까? 그것은 아직도 살아 있다는 사상을 발견한다. 13

수렵민족은 1년 내내 동물을 잡아먹으면서도, 현대의 우리들과는 달리 , 그것들을 하등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동물은 인간과 다른 면을 가진 인간과 대등한 생물이며, 존중받고 소중히 여겨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살해된다. 수렵문화의 기본적인 신화적 주제는 동물은 자발적인 희생자라는 것이다.그러나 동물은 두 가지를 조건으로 자신을 제물로 바친다.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죽일 것, 내년이 또다시 찾아오는 것처럼 자신의 생명을 어머니라는 원천으로 되돌려 보내어 소생시키는 제의를 행할것이다. 15
자연의 신비는 생명을 죽임으로써 살아간다는 것이다. 달리 살아갈 방법은 없다. 잡아먹는 쪽도 잡아먹히는 쪽도 실은 하나의 생명이다.
여기에 태도의 차이가 있다. 동굴곰시대 사람들은 동물이 자신을 바친데 대해서 감사했다. 오늘날 우리는 양식을 주신 성스러운 존재를 떠올리고 그에게 감사한다. 이것은 전혀 다른 심리이며, 전혀다른 신화이다. 근원적인 신화의 이미지는 생명의 이미지이다.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먹는 생명의 이미지이다.16

달이 그림자를 벗어던지고 모습을 바꾸는 것처럼, 뱀은 허물을 벗음으로써 재생한다. 따라서 뱀은 달과 마찬가지로 태음의식의 상징이다. 생명과 의식, 생활에너지와 의식은 시간적으로 유연한 몸속으로 들어간다. 의식과 생명은 시간의 영역으로(탄생과 죽음의영역)과 관계가 있다. 28

사자는 태양과 관련이 있다. 사자는 태양의 동물이다. 태양은 그 안에 그림자를 가지고 있지 않다. 태양은 시간과 탄생과 죽음과 무관하며, 완전한 생명이다 29

보름달은 서른다섯살에 해당한다. 상현달이 뜨는 밤은 청춘의 밤, 사춘기의 밤이다. 그때 그 빛이 어두움을 지배하기 시작하는데 그 결과 의존과 종속의 태도는 성숙의 태도로 바뀌게 된다. 33

보름날 밤으로 가보자. 음력 보름날 해질녘 대평원의 서쪽을 보면 지평선으로 가라앉는 태양이 보인다. 바로 그 순간에 대평원의 동쪽을 보면 달이 지평선 정반대편에서 떠오른다. 이것은 대단이 중요한 신비의 순간이다. 여기에서 당신의 의식, 당신의 몸과 그 의식은 최고의 상태에 도달한다. 그 속에서 당신은 자문한다. 나는 누구이며 무엇인가? 나는 의식인가? 의식을 나르는 수레인가? 나는 빛, 태양의 빛을 나르는 육체인가, 아니면 빛 그 자체인가? 34
상현달이 뜨는 밤의 죽음과 부활은 유치한 자아의 죽음과 정신적 성숙의 탄생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육체에 대한 죽음, 육체 안에 있는 영원한 것과의 동일시가 있다. 그뒤, 자연의 순리에 따르면서 살아가는 육체를 보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하현달이 뜨는 밤까지는 어둠이 우세를 차지한다. 육체는 점점 사회와 자연의 원초적인 규칙에 따르게 된다. 36

우리는 우리 핏줄속에 피가 흐르고 있음을 알듯이 나무에는 수액이 흐르고 있음을 압니다. 우리는 대지의 일부이며, 대지는 우리의 일부입니다. 향기를 풍기는 꽃들은 우리의 자매입니다. 반짝거리며 흐르는 시냇물이나 강물은 그저 물이 아니라 우리 조상의 피입니다. 만일 호수의 잔잔한 물에 비치는 희미한 그림자는 나의 동족이 겪었던 사건이나 추억을 말해줍니다. 흘러가는 시냇물소리는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음성입니다. 강은 우리의 형제입니다. 강은 우리의 마른 목을 적셔줍니다. 강은 우리의 카누를 옮겨주고 우리 자식들에게 양식을 줍니다. 공기는 그것을 호흡하는 모든 생명과 영혼과 공유합니다 바람은 우리 자식들에게 생명의 정기를 불어넣습니다. 대지는 우리의 어머니, 인간이 대지의 것임을 우리가 핏줄로 얽혀있듯이 이 세상 만물은 그렇게 얽혀 있습니다. 인간은 생명의 피륙을 스스로 짜지 않습니다. 인간은 그 피륙의 한 올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신은 당신들의 신이기도 합니다. 대지는 신에게 아주 중요한 곳입니다 대지에 상처를 내는 것은 그 창조주에 대한 모독입니다.,,우리는 이 대지를 사랑합니다. 갓난아기가 어머니의 가슴에서 들려오는 고동 소리를 사랑하는 것처럼 …38

땅이란 신성한 곳이다. 당신이 살고 있는 이땅 말이다. 태고의 신화에서는 육체만이 아니라 사람이 살고 있는 특정한 땅의 풍경도 신성시했다. 여러분은 성시를 찾아서 어느 먼 곳으로 갈 필요가 전혀 없다. 그것이 내가 말하려는 주제이다. 39

북쪽은 인생의 새로운 소재를 얻는 유일한 방향이다. 사회의 관습과 명령에 따르지 말라 그 방향에는 막다른 골목이나 분쟁이 기다리고 있다. 이것은 전형적인 영웅탐구 신화이다. …영웅은 늘 잘 잊어버린다.49

신화는 모든것에 영향을 미치는 신비적인 차원과 관련을 맺고 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신화가 아니라 이데오로기일 뿐이다. 신화는 개인의 교육과 관련을 맺고 있으며, 개인을 이끌어 가는 길을 제시한다. 신화는 살아있는 인간을 그의 생활주기와 조화시키고, 그가 살고 있는 환경과 조화시키고, 이미 그 자체가 환경의 일부가 되어버린 사회와 조화시키는 기능을 한다. 59

작은 공동체나 유목민의 문화생활은 대체로 그 공동체에 속해 있는 구성원 전부가 공유할 수 있다. 평등한 성인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이다. 차이가 있다면, 세대간의 차이, 남녀의 차이, 보통 사람들과 특별한 재능을 부여받은 샤먼 기질의 몽상가의 차이 정도였다. 그러나 농업의 정착과 가축의 사육에 이어 나타난 공동체의 확대와 함께 직업의 차별이 생기기 시작한다. 비전문가 또는 아마추어 문화대신 , 가족이 대를 이어가면서 평생동안 관리, 사제, 상업, 농업과 같은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된다. 그리하여 사람들간의 차별과 새로운 문제가 생긴다. 그것은 생활양식이 서로 다른 사람에게 단일조직의 구성원이라는 자각을 가지게 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는 그런 자각이 붕괴되고 있다. 노동자가 경영자와 대립하고, 이쪽과 저쪽이 적대하는 식으로 문화조직의 해체가 일어나고 있다. 72

세계 최초의 도시 티그리스- 유프라테스강 유역 –사람들이 많이 흘러들어간 것은 기원전 4000년 무렵, 동서남북 사방이 터져 있기 때문에 외적의 침입을 받기 쉽다. 어쩔 수 없이 수많은 변화와 역사적인 발전이 있었다. 72

<모세와 일신교>라는 책에서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모세가 아크나톤 궁정의 관리였고 나일 강 연안에 숨겨져 있었던 작은 파피루스 바구니에서 모세를 구해낸것도 아크나톤 딸들 중의 한 명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아르마니에 있던 아크나톤 왕실이 붕괴했을 때 돈독한 신앙심을 가진 모세는 삼각주 지역의 노동자 집단을 이끌고 그들의 일신교적인 신앙을 고수하기 위해 이집트를 떠났다. 그러나 아크나톤의 이른바 일신교와 모세의 일신교 사이에는 차이가 있었다. 아크나톤은 태양원반으로 상징되는 신비가 근동 전역의 모든 신들과 신화들에 가득 차 있다고 믿었다. 여기에서는 이렇게 나타나고, 저기에서는 저렇게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야훼 신앙의 일신교는 “ 이 세상에는 야훼 이외에는 신은 없다. 다른 신들은 모두 악마이다. 라고 말한다. 따라서 이 시대를 이해하려면 이명확한 차이를 인식해둘 필요가 있다. 101

첫번째 칼집 아나마야코새는 양식이다. 우리의 몸은 그것으로 만들어진다. 몸은 양식으로 만들어지며, 사람이 죽으면 그 몸은 구더기, 땅 속 벌레, 독수리 , 자칼, 불의 먹이가 된다. 두번째 칼집은 프라나마야코샤, 곧 호흡이다. 호흡의 칼집이 양식을 점화시키고 산화와 연소를 일으켜서 열과 체온과 생명을 준다. 세번째 칼집은 마나마야코샤, 곧 정신이다. 정신의 활동은 양식의 칼집과 관련이 있다. 양식의 칼집이 고생하고 있으면 마나마야코샤도 고통을 느끼고 “아 모든 것이 비참하도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양식의 칼집이 행복하면, 정신의 칼집 또한 행복을 느낀다. 103

자나마야코샤는 지혜이다. 이것은 몸의 지혜이다. 곧 어머니 자궁 속에서 당신을 만든 지혜, 당신이 태어난 순간부터 젖을 먹는 방법을 알고 있는 지혜, 풀을 기르는 지혜, 나무와 산과 우주에 가득한 지혜이다. 몸의 지혜는 정신이 의지하는 자발행동적인 것,정신이 알아야 하는 자발행동적인 것이다. 104

이집트는 일찍이 겪었던 침략의 보상으로 거대한 이집트 제국을 건설했다. 107

누가 이집트에 잠입했을까? 족장들이다. 우물에서 끌어올려진 요셉이 그 최초의 인물이다. 이것 또한 신화적이다. 물이 없는 빈 우물이지만 우물임에는 틀림없다. 이리하여 우리눈 물을 지나서 들어가고 물을 지나서 나온다. 신화에서 그런 들고 나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무엇이 들어가고 무엇이 나오는가를 확인해보기 바란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신화가 전하는 신비적인 가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들어간 것은 족장들이고 나온 것은 민중이다. 지옥의 밑바닥과 같은 고난의 땅 이집트에서 민중이 일치단결하여 공동의 자기인식을 이룬 것은 위대한 일이다. 영웅은 모세가 아니다. 구약성서의 영웅은 민중이다. 민중은 하나의 단위로 간주되며, 개인은 그 일원이거나 그렇지 않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강조되는 것은 집단,집단,집단이다. 109

민족에 대해서는 두개의 전혀 다른 관점이 있다. 한쪽은 “ 그래, 그것이 본래의 나이고 나의 모든 특징은 그런 불운에서 생긴다.”라고 말한다. 다른 한쪽은 “아니 이것은 나만의 존재야”라고 말한다. 유태인의 전통을 이해하는 데는 이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 그 뿌리는 단일민족이라는 이념이 있는 것이다. 110

신화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계속성은 철학 속으로 숨어 들어간다. 그것이 바로 영구불변의 철학이다. 신화는 꿈과 같은 영역에 속한다. 그 영역을 지혜의 몸(Wisdom Body)라고 부르겠다. 당신이 잠든 사이 몸이 말하기 시작한다. 몸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에너지에 의해 움직인다. 에너지가 지혜의 몸을 지배한다. 에너지는 거대한 생물학적 바탕에서 나온다. 그곳에 있는 에너지는 에너지임과 동시에 의식의 양태이다. 그러나 몸은 머리를 가지고 있으며 독자적으로 사물을 생각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머리에 뿌리를 두고 의식의 모든 양태가 생기는데 지혜는 몸의 지식과 다르다. 갓 태어난 아기는 어머니의 몸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알고 있다. 자신이 놓인 환경에 적응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미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이 지혜의 몸이다. 114

동양사상의 풍부한 민족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지만, 나의 주된 관심은 신화에서 원소적인 것을 끌어내는 데에있다. 다시 말해서 동양사상의 민족적인 특성을 강조하기 보다는 원소적인 것을 끌어내는데에 중점을 둘 참이다. 115

상징의 주요 문제는 사람들이 상징에 빠져버리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원천에 다다르기 위해 서는 갠지즈강이 흘러나오는 근원을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화에서 중요한 것, 신비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상징에 포함되어 있는 속뜻을 놓쳐서는 안되는 것이다. 속뜻은 언제나 정신적이다. 따라서 상징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갠지즈의 원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하리드와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속 뜻을 잘못 읽은 것이다. 115

독일의 작가 게르하르트 하우트만은 “시를 쓰는 것은 말 뒤에 숨어있는 원초적인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세상만물은 상징으로 이뤄져 있다. 괴테의 말을 빌리자면 “모든 변화하는 것들은 거울에 비친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상징은 본래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것을 가리킨다. 그것들은 투명해질 필요가 있으며, 열려있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민족적인 것은 원소적인인 것에 대해 열려있다.117
진정한 순례는 글자 그대로의 순례, 물리적인 행동으로서의 순례를 당신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중심을 찾아가는 순례로 바꾸는 것이다. 순례를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순례를 하는 동안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명상하고 참된 여행은 자신의 내면을 향한 여행임을 자각하기만 한다면..118

신화는 분석과 관계를 가질필요가 없으며, 원인을 과학적으로 발견할 필요도 없다. 신화는 인간을 둘러싼 환경에 결합시키는 것과 관계가 있다.122

당신은 글을 쓸 때면 의도해서 쓰기도 하지만 영감에 사로잡혀 쓰기도 한다. 영감이 샘솟으며 말이 터져 나오는 일이 있다. 신들의 리듬과 찬가와 말씀을 깊이 새겨들은 사람들은 그 찬가를 신들도 매혹할 정도로 훌륭하게 낭송할 수 있다. 124

감각의 욕망은 타오르는 불이다. 귀로 듣는 것은 타오르는 불이다. 눈으로 보는 것은 타오르는 불이다. 그 불을 꺼야 한다. 그런데 다른 전통의 관념은 그 불을 더욱더 지피라고 말한다. 생명이라는 신비에 대해서는 이처럼 두가지 상반된 태도가 있다. 생명은 생명에 의존한다. 새들을 보라 풀을 뜯는 동물들을 보라 그들이 하는 일은 언제나 먹는일 뿐이다. 온갖 것들을 죽이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가스를 섭취한다. 그렇지 않고는 생명을 유지할 방도가 없다. 생명이란 끊임없이 타고 있는 불이다. 그 불을 더욱더 지펴야 한다. 그것으로부터 희생에 대한 일종의 열망이 생긴다. 127
어짜피 떨어질 바에는 아예 뒤어들어라. 꼭 해야 할 일이라면 해버려라. 이렇게 해서 희생에 대한 열의가 생기는 것이다. 128

신들의 근원은 당신 마음속에 있다. 발자취를 더듬어 중심으로 가서 신들을 낳는 근원은 당신 자신임을 알라 이것은 이미 이집트에도 있었던 생각이다. 그것이 영구불변의 철학의 기본적인 관념이다. 신들은 바로 당신 자신의 에너지의 상징적인 의인화이다. 당신 자신의 에너지는 우주의 에너지이다. 따라서 신은 저곳에도 있고 이곳에도 있다. 그렇다. 천국은 당신 안에 있다. 그렇지만 또 어디에나 있다. 이것이 영구불변의 철학의 실질적인 내용이다. 그렇다면 이제 자기 내부의 불을 찾아 나서야 한다. 129

열반에 대해서는 많은 오해가 있다. 열반이란 괴로움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는 심리적인 태도를 말한다. 당신의 인생을 괴로움에 불과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욕망과 불안이다. 그것은 무언가를 바라는 욕망, 사람을 속이려는 욕망이며, 무엇인가를 잃지 않으려는 불안이다. 이 욕망과 불안이 진정되었을 때 당신은 마하수카 곧 기쁨의 경지에 도달하고 법영을 경험하게 된다. 법열을 경험하게 되면 고통이 당신을 아프게 하지 못하게 된다. 당신은 중심으로 들어가며, 기쁨이 흘러넘치게 된다. 당신이 중심에 들어가면 이미 무엇을 얻는다든지 잃는다든지 하는 일이 없게 된다. 당신은 존재 그 자체가 된다. 이것이 열반이다.132

합리적으로 자기 발견을 이루고자 하는 한, 그뜻을 파악할 수 없다. 부처란 합리적인 방식을 털어고, 그 뜻을 파악한 다음 그뜻으로 해방되어 살아가는 사람이다. 136

요가의 이념은 요가(yoga)라는 말 속에 나타나 있다. 그것은 어떤 것을 다른 것과 “묶다. 결합하다(yoke)”라는 뜻을 가진 유즈(yuj)라는 어근에서 유래한다. 결합되는 우리의 자아의식과 의식의 근원이다. 155

신이라는 말은 본래 하나의 인격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인격을 넘어서는 것, 실제로 사고를 초월하는 것을 의미한다. 신화적인 상징은 초월성에의 길을 열어준다. 융은 상징(symbol)이라는 말과 기호(sign)라는 말을 구별했다. 상징이란 본디 신화적인 상징인데 그 한 쪽 발은 이곳에 놓여 있지만, 다른 한쪽 발은 무한성에 놓여 있다. 그것은 초월성을 향하고 있다. 기호는 이곳에 있는 어떤 것을 가리킨다. 158

정서, 감정 그리고 정신상태는 모두 호흡과 관계가 있다. 쉬고 있을 때 호흡은 평온한 좋은 상태로 유지된다. 어떤 충격으로 마음이 흔들리면 호흡은 흐트러진다. 반대로 호흡을 바꾸면 정신 상태도 바뀐다. 천천히 호흡함으로써 연못의 잔물결을 잠재우는 것이다. 마침내 우리는 물결을 진정시킨다. 수면이 고요해지면 여러 개로 나뉘었던 상이 나타나서 우리에게 보이게 된다. 그것이 중요한 점이다.163

신은 모든 에너지의 의인화일 뿐이며, 그 이상의 어떤 것도 아니다. 그러나 에너지는 이 세상에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육체의 기관들은 모두 저마다의 독자적인 충동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모든 심리적인 문제는 이 충동계의 충돌에서 나온다. 자연의 기관과 육체의 기관은 저마다 독자적인 방식으로 그 모습을 비춘다. 164

인간에게는 복잡미묘한 신경이 있고, 신경마다 이름이 있다. 신경에 중요한 것은 프라나야마인데, 이것은 호흡의 조절을 의미한다. 당신은 숨을 들이마시면서 그 숨이 모든 신경계에 가득 차서 모든 감각기관과 모든 의식을 활성화시킨다고 상상한다. 그러는 동안에 의식이 점차 끌어올려진다.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167

낡은 몸을 버리고 새로운 몸을 얻는 것은 생명 에너지를 상징한다. 의식의 시간의 영역, 곧 죽음과 탄생의 영역에서 활동한다. 달은 다시 태어나기 위하여 그 그림자를 버린다. 뱀은 다시 태어나기 위하여 허물을 벗는다. 그것들이 이 힘의 상징이다.
또 하나의 신경계는 핑칼라라고 부르는데, 태양의 의식을 상징한다. 태양은 죽지 않는다. 태양은 서쪽으로 진 뒤에도 그 생명력을 간직하고 있다. 태양에게는 본디 죽음이 없다. 이것은 시간의 영역에서 해방된 의식이다. 169




하인리히 침머가 자주 말했던 것처럼 “최선의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차선의 것은 오해된다” 왜냐하면 차선은 초월계를 설명하려고 시간과 공간의 사물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시간과 공간의 용어로 설명됨으로써 언제나 오해된다. 차선에 버금가는 선은 대화이다 우리는 지금 최선의 것을 말하려고 차선의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175

인생의 활동속에서 신성한 것을 찾아내는 것, 이것이 흰두교, 탄드라교, 불교의 훌륭한 점이다. 189

당신과 당신의 신은 하나이다. 그러나 당신과 당신의 신은 나의 신이 아니다. 따라서 나에게 그것을 강요하지말라. 모든 사람은 저마다 고유한 존재와 의식을 가지고 있다. 195

나방은 불꽃에 뛰어들려고 한다. 그러나 유리가 그것을 막는다. 나방은 밤새 유리에 몸을 부딪고는 아침이 되자 친구들에게 정말 대단한 것을 보았노라고 말한다. 그러자 친구들은 말한다 “그런데도 별로 좋아 보이지는 않는군” 돌파구를 열려고 필사적으로 몸을 부딪는 것, 이것이 요가 수행자의 필요조건이다. 나방은 다음날 밤 다시 호롱불로 날아가 우연히 또는 계획적으로 유리를 부수는데 성공한다. 한순간에 나방은 목적을 이루고 불꽃이 된다. 그 순간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영원한 순간이다. 그것이, 곧 장벽을 돌파하는 것이 여기서의 목적이다. 202

여러 지방을 돌아보는 대신에 영혼의 여행을 떠나기로 하자. 205

개종자라면 누구나 그런 것처럼, 그녀도 불안을 느꼈고 그래서 다른 모든 사람을 개종시킴으로써 자신을 안심시키고자 했다. 설득에 따르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가죽을 벗겼다. 그녀의 이름은 라모이다. 그녀가 개종시키는데에 실패해서 처음으로 가죽을 벗긴 인간은 자기 아들이었다. 221

나는 독서와 경전의 신인 판카크사라를 으뜸으로 꼽는다. 그것이 나의 이담이기 때문이다. 나는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독서에서 얻었다. 나는 불교도나 요가수행자를 만날때면 나의 독서에 의해서 그들을 이해한다. 그것이 나를 떠받치는 것이다.

자신이 선택한 신을 자신의 길라잡이로 삼는 것은 내가 알고 있는 한 가장 세련된 관념이다. 당신이 그것을 자신의 관념으로 삼는한 그것은 생명을 가진다. 그때 그신은 당신 인생의 길라잡이가 된다. 226
고전시대의 그리스에서 신비 종교가 추구한 것은 영적 경험이다. 그것의 본질은 의식을 인간생활의 순수하게 현상적인 것으로부터 영적인 것 , 헤아리기 어려운 것, 에너지로 가득한 것, 영원한 것으로 변화시키는데에 있었다. 229

모든 생명은 어떤 초월적인 힘이 주어지거나 산출됨으로써 유지된다. 이것이 명상의 핵심이다. 여러분은 이미 제의를 행하고 있다. 단지 그것에 대해서 명상하지 않을 뿐이다. 밥 먹는 일도 제의이다.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자각하라. 벗들과 의논하는 일도 제의이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생각해보라235

디오니소스의 힘은 생명력으로 가득한 격정을 몰고온다. 그것이야말로 그가 대표하는 것이다. 제의의 본질적인 메시지는 분명히, 우리는 시간의 영역에 에너지를 쏟아붓는 무한한 자연의 힘을 옳바르게 준비된 방식으로 이해해야 하며 그것과 더불어 그 힘의 생산적인 면과 파괴적인 면 양쪽 모두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생명력을 남김없이 경험할 수 있다. 240

우리들 각자에게 중요한 것은 해방되어야 할 의식의 씨앗이다. 243

선(禪)의 과제중 하나는 경험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인생의 의미를 배우고 싶다고 말한다. 인생에는 의미가 없다. 꽃에 의미가 있는가? 우리가 찾는 것은 경험을쌓는 것, 인생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눈앞의 모든 경험에 대해서 이름을 붙이고 해석하고, 분류하느라 경험에서 멀어진다. 당신은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그것은 결혼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아니면 불륜 또는 이런 저런 것이 될 수도 있다. 당신은 이런 식으로 분류하느라 경험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러므로 사자입속에 머리를 집어넣고 이렇게 말하라 “에이, 될대로 돼라” 그러면 무슨 일인가 일어날 것이다. 249

신비적으로 해석하라 이것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그러면 위대한 전통들은 위대한, 참으로 위대한 진실, 즉 우리는 영원한 힘과 한몸이지만 만일 자신을 속박하는 불안과 욕망의 세계에 사로잡히게 되면 그 일체성을 잃게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250
우리의 의도, 우리의 여행, 우리의 목표는 지금까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 곧 자신의 가능성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똑 같은 지문을 가진 사람은 없다. 당신 몸의 모든 세포와 구조는 지금까지 이 세상에 존재한 어떤 사람의 것과도 다르다. 따라서 당신은 여기저기에서 암시를 받으면서도 직접 그것을 움직일 수밖에 없다. 259

중요한 것은 느끼는 것이다. 부처는 인생을 괴로움으로 가득차있다고 말했다. 인생은 살아 있음의 고통의 경험이다. 고통이 있는곳에 당신의 인생이 있다. 그러니 그것을 찾아라. 261

트리스탄 문제는 사회적인 질서, 수입되고, 주입되고, 들씌워진 질서와 개인생활의 긴장관계를 가져온다. 둘은 양립할 수 없다. 261

볼프람- 성배의 주제는 ‘황무지’에 생명을 불어 넣는 것이다. 황무지는 진실한 삶을 살아가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규범에 따라서 행동하는 사람들의 세계이다. 12세기 사람들은 믿건 믿지 않건 신앙을 고백하지 않으면 안되었고 사랑하건 사랑하지 않건 간에 결헌 상대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되었고 추기경들이 명령한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262

진정한 사회적 전통이 있는 곳에서는 신의 형상이 아니라 신의 에너지를 강조한다. 에너지는 동물의 형상, 사람의 형상, 바위의 형상 등 온갖 형상으로 자신을 나타낼 수 있다. 267

로마인 그리고 그앞의 그리스인은 다른 민족이 섬기는 신들과 자신이 섬기는 신들을 같은 신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신들을 우주를 만들고 유지하는 에너지의 의인화라고 보았기 때문이다270

구원이란 자신의 내부에 신성한 것이 나타남을 보고 기뻐하는 것이다. 281

랜슬롯의 시련- 이 이야기는 남성이 여성의 기질을 경험하는 이야기이다. 여성의 기질은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확실히 존재한다. 이랬다저랬다 변죽이 죽 끓듯 한다. 그리고 침머는 이렇게 말했다 “ 시련은 참고 견디는 것이다” 인내하라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려고 들지 말라 오직 참고 견뎌라. 그러면 아름다운 여성의 자비가 당신의 것이 되리라 287

자신의 선택한 길을 여행하는 것은 면도날 위를 걷는것과 같다. 288

중세 이야기의 특징은 한 사람이 이야기를 창작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발전시킨다는 점이다. 그것은 옛날부터 전해오는 이야기를 받아들여 그것을 해석하는 것, 곧 시대의 조건에 맞게 새로운 의미와 깊이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290

독약과 미약은 사랑의 고통, 즉 어떤 의사도 고칠 수 없는 죽음에 이른다는 병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은 약이다. 294

형이상학적인 신비는 모든 대립물을 초월한다. 선과 대립물 속에 있는 한 당신은 윤리의 영역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자연은 선과 악을 구별하지 않는다. 302

진실하지 않게 살아가는, 자기의 삶이 아닌 사회로부터 주어지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황무지”의 문제를 안고 있다. 파르치팔은 “그저 주어지는 여자와 결혼하지 않겠다. 내 아애는 내손으로 고르겠다.” 그것이 결혼과 사랑의 최초의 결합이다. 결혼과 사랑의 분열이라는 문제에 대한 최초의 답이다.
파르치팔은 고삐를 늘어뜨리려 말의 목에 얹는다. 이 전통에서 말은 자연의 의지를. 말 타는 사람은 이성의 통제를 상징한다. 여기서는 자연이 인간을 움직이고 있다. 308

결혼은 사랑의 확인이며, 성애는 결혼의 상징이다. 그것이 사랑과 결혼을 하나로 만든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이상적인 결혼이다. 이것의 바탕은 개인과 개인이 맺는 관계이지 개인과 이러저러한 사회적 효용이 맺는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의 결혼이 육체적인 성으로 시작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볼프람은 결혼이란 정신에서 시작되고 육체에서 완성된다고 말한다. 310

볼프람- 그가 우리에게 말하려 하는 것은 초자연적인 은총과 자연적인 은총을 구별하는 중세의 정신적 이상이 유럽을 거세해 버렸다는 것이다.자연적인 은총 즉 말이 가는대로 내버려두는 것은 허용되지 않으며, 그것이 삶을 이끌어가지도 않는다. 삶을 이끌어가는 것은 초자연적인 은총,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추기경들을 통해서 얻게 되는 정신적인 관념이다. 유럽에서 자연은 살해 되었다. 자연의 에너지는 살해되었다.312

자연은 본디 정신을 지향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는데에 반하여 정신의 지도자는 자연을 거부한다. 그것이 황무지이다. 황무지를 치유하려면 고상한 마음에서 우러 나오는 자발적인 행위이다. 고상한 마음은 자만이 아닌 사랑에서 나온다. 312

볼프람은 폰 에션바흐로부터 ‘황무지’에 이렇게 노래했다. “여기서는 앉을 수도 없고, 설 수도 없고, 누울 수도 없다네” 313

혼자탐색여행을 계속하는 파르치팔 315

가웨인의 충실성- 사랑에의 충실, 결혼에의 충실. 이것을 기사들에게 아주 아주 높은 가치이다. 316

그 신은 어디까지나 우리안에 있는 신이다.319

3.내가 저자라면…
신화의세계는 기원에서부터 추적해 아메리카 인디언의 신화, 고대 그리스, 아사왕 전설, 티베트 사자의 서, 트리스탄 이졸데, 파르치팔 전설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의 종교와 신화를 훑는다.
이 훑음에 있어 캠벨은 ‘단일신화’라는 개념을 빌어 다양한 종교와 신화가 한 뿌리에서 나왔음을 바탕으로 한다.
그는 동양신화, 그리스신화,그리고 종교까지의 유사성에 대해 말하므로 그의 사상을 뒷받침한다.
더욱이 재미있는 것은 그가 다분히 동양철학을 기저에 깔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데, 그가 불교의 명상이나, 열반등을 소개하는데 있어서 그의 이상에 가장 가까운 것을 발견이기라도 한듯 다소 흥분된듯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책은 다소 불친절하다.
신화의 세계는 갬벨의 강연집으로 1982년부터 1984년까지의 미국 PBS방송에서의 강연을 녹화해서 방영한 뒤 1990년에 간행한 것으로 1987년에 타계한 캠벨의 유작인 셈이다.
강연집을 책으로 구성하다보니 다소 매끄럽지 못한 편이고 책에 구성이 이미지와 그에 대한 설명을 통해 신화를 이해하도록 하고 있어 이미지의 비중이 크다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지는 선명도가 많이 떨어지는 편이며 칼라를 설명하는 부분에 있어서 조차 흑백을 띄고 있어 이해하는데 다소 어려움이 있다.
또 이미지를 건너뛰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이는 방송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역주를 통해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고는 있으나 매끄럽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또 그토록 많으 용어를 설명해야 할 필요성까지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그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한것은 어떤 종교에 관한 지독한 비판이나, 신화에 대한 찬양은 아닐것이다.
결국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은 신화를 통해 우리 자신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고 삶의 실마리를 찾아보자는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좀더 그 궁극적인 취지에 집중했더라면 독자는 더 깊이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지 않았을까?
너무나 방대하게 펼쳐지는 신화와 전설, 그리고 해석이 난해한 용어들은 오히려 집중도를 떨어트리고 산만하게 하여 흥미를 잃게 하는 경향이 있다.

캠벨은 왜 그토록 신화에 집중하고자 한 것일까?
그가 신화를 통해 끝까지 놓지 않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사부님께서는 왜 연구원의 첫번째 책으로 <신화의 세계>를 선택한 것일까?
그것은 사부님께서 진전사에서 “1년동안 ‘양’에 대한 괴로운 훈련을 통해 자신의 내면의 영웅을 꺼내 불태워 주옥 같은 사리로 만들라”는 말씀과 일치한다.
그것은 ‘자신의 내면을 향한 탐색’이다.
나방이 불꽃에 뛰어들기 위해 밤새 유리라는 장애물에 부딪히지만 필사적으로 유리를 부수고 나방자신이 불꽃이 되는 것처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장벽을 돌파하라는 것이다.
자신의 내면을 향한 탐색, 곧 ‘황무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황무지란 진실한 삶을 살지 않는 것이다. 자기의 삶이 아닌 사회로부터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물론 이 황무지에서 벗어나는 것은 면도날 위를 걷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캠벨은 이 황무지에서는 앉을수도, 설수도, 누울수도 없다고 말한다. 이 세상에 똑 같은 지문을 가진 사람은 없으며 우리 몸의 모든 세포와 구조는 지금까지 이 세상에 존재한 어떤 사람과도 다르므로 신화라는 매개체를 통해
신화가 전하는 신비적인 가치를 발견하고, 자기 내부의 불을 찾으라는 것이다.
내면을 보지 못하면 엉터리라는 것이다.
황무지를 무찔러 내고 지금까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 곧 자신의 가능성을 실현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의 지침대로 '내 자신의 내면을 향한 탐험' '영혼으로의 여행'을 통해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진정한 자아를 찾아 실현시켜 보자.
IP *.128.30.49

프로필 이미지
거암
2008.04.08 10:40:32 *.244.220.254
역시 보험인(?)은 글에서 열정이 묻어나네요~
프로필 이미지
이은미
2008.04.08 11:07:19 *.128.30.50
하하 전 보험인 아니예요
한번도 그렇게 생각해본적이 없어서요...
그래서 지금 헤메이는 중이겠지요.

이렇게 다 읽고 답하는 중환님이야 말로 열정이 넘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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