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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13일 16시 38분 등록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_2

조셉 캠벨 / 이윤기 옮김





1. 작가에 대하여
혹자는 캠벨을 음유시인이라 했다. 그는 머리말에 이렇게 썼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상징의 문법’을 터득해야 할 터인데, (…) 다음 단계는, 세계 각처에서 채집된 신화와 민간 전설을 한 곳에 모아 놓고 상징으로 하여금 스스로 입을 열게 하는 일일 듯 하다.” [6] 역자는 또 이렇게 썼다. “행간을 직관으로 건너는 듯한 시적(詩的) 분위기가 엿보이는데 (…) [492]

그렇다. 그는 거반 시인이다. 그래서 말인데, “캠벨을 시로써 소개해보면 어떨까?”



내가 영웅을 보았는데……

머리시
*노인은 두꺼운 먼지를 털고 일어나 앉았다.
녹슨 갑옷의 허리를 묶고
대장부처럼 솟아 보검을 찍는다.
명계(冥界: 저승)가 흩어지고
*마른 뼈들이 불려와 살을 입고 생기가 돈다.
영웅이 온다.

분리
나는 모험처럼 그를 따린다.
영웅은 *기지(基地)의 족쇄를 털고 크게 일어났다.
미지(未知)의 미궁이 열리고 그가 입문의 노래를 하는데……
가라! 신화가 깊은 저 곳으로
*나바호족의 함성이 들려오지 않느냐?
사적(私的: 사사로운)의 의식(意識)을 걷고
*끈끈이 터럭 도깨비의 멱살을 쥐고
아! *오늘은 너무 요원하구나
내, 그대를 데려 고대의 꿈의 집으로
비의가 춤을 추고 무지가 무릎 꿇은 그곳으로

입문
*대우주의 문이 열리고 소우주가 꿈을 꾼다.
그는 음유하는 자유시인
구구한 색스폰은 삶의 치기요,
숲은 안빈낙도하는 주접의 터요.
타협은 세차게 들이쳐 세상을 포부하고
영웅은 그 알량한 자아의 로망일랑 걷어찼다.
그것은 썩은 꿈,
벼랑에 설지언정, 반 푼어치 없는 메스꺼움이다.
나의 도움은 이것이니
발로(發露; origin)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아름다운 벗 하인리히 짐머

오호라 이것은 나의 노래
나는 배냇병신(선천적 불구)처럼 주저 앉았는데
영웅은 끝까지 가더라
불가사의하다. 불가사의하다.
어느새 영웅은 번쩍 솟아 세계를 다니고
내 자식, 네 자식 할 것 없이 많이도 내었다
불가사의하다. 불가사의하다.
후학의 귀를 향해 로렌스(Sarah Lawrence)의 낭만을 불더니
오래된 전설처럼 *잠자는 소녀를 품었다.
불가사의하다. 불가사의하다.
내, 그가 가진 전리품을 보았는데
저편과 이편을 잇는 홍익(弘益)이더라.
불가사의하다. 불가사의하다.
나는 배냇병신처럼 주저 앉았는데
영웅은 끝까지 가더라.

귀환
이윽고 영웅은 *맨하튼의 발치에 섰다.
오늘은 허드슨을 건넌다.
사공이 묻는다.
“그대는 왜 저지로 가나?”
영웅은 대답한다.
“나는 저지로 가지 않는다.”
“나는 맨하튼을 떠나 허드슨을 건넌다.”
“그리고 여기, 허드슨의 복판에 서서 다리가 된다.”

나는 보았는데,
그가 놓은 다리를…… 사람들은 홍익이라 새기이더라.

꼬리시
텍스트의 메타포(metaphor; 은유)가 그쳤다.
노인은 녹슨 갑옷을 풀고
보검을 내려 놓는다.
명계(冥界)가 춤을 추고
두꺼운 먼지 속으로 생기가 빨려 든다.
영웅이 간다.



* 빌려온 표현. “이윽고 폭포처럼 가장 적합한 표현이 쏟아지고, 역사 속의 한 인물, 한 장면은 갑자기 두꺼운 먼지 속에서 벌떡 일어나 앉곤 했다.” – 구본형
* (…)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 또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 (에스겔 37:1-10)
* 모험이란, 기지(터전, 활동의 근거지)의 세계에서 미지의 세계로 가는 것을 말한다. [112]
* 인디언 나바호족의 쌍둥이 신화. [93] (인디언은 캠벨에게 각별하다)
* 보살의 화신이 도깨비와 싸우는 신화 [115] – [119]
* 그러나 모든 것은 오늘날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요원하다. (…) 저 유서 깊은, 시간을 초월해서 존재하는 상징의 우주는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483]
* 4장 소멸. 소우주의 끝과 대우주의 끝. [458] – [473]
* 잠자는 여성은 미인의 본보기 중 본보기며, 모든 욕망에 대한 응답, 모든 영웅의 지상적, 비지상적 모험의 은혜로운 최종 목표다. 뿐만 아니라 (…) 애인이며, 신부이기도 하다. [145]
* <신화의 세계>에서 소승불교와 대승불교를 설명하기 위해 든 예시. <신화의 세계> [143] – [145]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머리말

프롤로그 – 원질신화
비극이란 형체의 파편이며 형체에 대한 우리의 애착이다. (그래서 안타깝다) 희극은, 정복할 수 없는 삶에 대한 거칠고, 방만하고, 꺼질 줄 모르는 환희다. (그래서 익살스럽다) [42]
일찍이 헤라클레이토스는 이렇게 주장했다. “닮지 않은 것이 상합(서로 만나 결합함)하고, 서로 다른 것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화가 이루어지며, 모든 것은 다툼에 의해 생겨난다.” [62]

1부 영웅의 모험
1장 출발
왕의 딸 중에서도 막내딸은 하도 예뻐서, 세상 구경이라면 할 만큼 한 태양도 이 막내딸의 얼굴을 비출 때면 오히려 제 얼굴을 붉혔을 정도였다. [69]
아, 사랑스럽되 눈멀고 약한 자여,
내가 바로 그대가 찾던 그이니라!
나를 몰아내던 그대는, 그대 내부로부터 사랑까지 몰아내었다.
Francis Thompson, [83]
팔찌 없는 그 손목
가랑비에 젖은 채 소매에서 나와 있네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지니가 부두르의 공주를 찬양하며 시인 알 왈라한의 시를 인용) [103]

2장 입문
새들이 초록빛 숲 그늘에 깃들이듯
사랑은 온유한 마음속에 깃들인다
이치로 보면
사랑 이전에 온유한 마음이 없었고,
온유한 마음 이전에 사랑도 없었다
태양이 솟을 때 빛도 발할지니
태양에 앞서 빛은 있을 수 없다
불길 속이 가장 뜨겁듯
사랑은 부드러움 속에서만 뜨겁게 타오른다
<아와레; 연민(憐憫) Gentle Sympathy> 12세기 일본의 궁정시(宮廷詩) [156]
우리가 생각하는 것, 우리가 행하는 것에는 어차피 육욕의 냄새가 나게 마련이라는 것을 깨닫거나, 다른 사람을 통해 깨우치게 되었을 때 우리는 예외 없이 낭패의 순간을 경험한다. [160]
오. 은자여. 아름다운 은자여!
그대 내 어깨로 손을 얹어 보아요.
불 같은 화살이 그대 핏줄을 타고 지나가는 것 같으리니.
아니, 내 몸의 더 비천한 곳을 점유하시면,
제국을 정복한 것 이상의 격렬한 기쁨을 맛보시리니.
그대 입술을 더 가까이.
(구스타브 플로베르트Gustav Flaubert, <성안투안의 유혹; La tentation de Saint Antoine> [165]
임제선의 비조 임제가 어릴 적에, 밖에 나가기가 무서워 법당 안에서 방뇨하자 스승이 몹시 꾸짖었다. 어째서 거룩한 부처님 계신 곳에서 방뇨 하느냐는 꾸중을 듣자 임제가 되물었다.
“그럼 부처님이계시지 않는 곳을 일러주십시오. 거기에 가서 누겠습니다.” [222]
일본에는 “인간이 재물을 내려달라고 기도하면 신들이 웃는다” 는 속담이 있다. (…) 신의 은총을 입고 있는 영웅이 완전한 깨달음의 은총을 구한다면 몰라도 그가 장수의 은혜와, 이웃을 시해할 무기, 혹은 자식의 건강 등을 구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 일이다. [249]
이때부터 내가 본 환상은, 말로 할 수 없었으니,
말이 그 나타난 바에 승복하고,
기억 또한 압도당했다. [250]

3장 귀환
사내에게서는 아내를 빼앗고,
어미로부터는 그 품 안에 안긴 아이를 빼앗는 자들이더라.
(수메르의 신화에서 마귀들을 묘사하는 글) [280]
하나님이, 인간의 생각이 미칠 수 없는 높은 곳에 계신다는 믿음만 가지고 있다면, 우리도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고 있는 셈이다. (토마스 아퀴나스) [305]
의미를 실어 나르는 수레를 의미 자체로 오해하면 헛된 잉크뿐만 아니라 헛된 피까지 흘리게 된다. [305]

4장 열쇠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시편 42:1-3) [320]

2부 영웅의 모험
1장 유출
도처에서 개체화된 이 존재의 ‘근원’에 대한 인식은, 바로 이를 인식해야 하는 기관에 의해 좌절 당한다. [330]

2장 처녀의 잉태
조물주는 자기 사회 속에서 형이상학적 구닥다리 존재로 타락했다. [389]

3장 영웅의 변모
삶의 너머에 존재하는 이런 영웅은, 신화를 초월한 영웅들이기도 하다. 그런 영웅들은 이 삶의 너머에 존재하는 것을 다루려 하지 않는다. 그런 그들을 신화도 다룰 수 없다. (성자에 대하여) [444]
말할 필요도 없이 죽음에 겁을 먹는다면 그 영웅은 영웅이 아니다. 영웅은 마땅히 무덤과 화해할 수 있어야 한다. [445]

4장 소멸
개인은, 생전에 자기 가슴에 반영되어 있던, 세계를 창조하는 신에 대한 근원적인 깨달음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459]

에필로그 – 신화와 사회
신화 체계에 대한 정의들
자연계를 설명하려는 원초적인 서툰 노력 – 프레이저
후세에 오인되고 있는, 선사 시대로부터의 시적 환상의 산물 – 뮐러
개인을 집단에 귀속시키기 위한 비유적인 가르침의 보고 – 뒤르켐Durkheim
인간의 심성 깊은 곳에 내재한 원형적 충동의 징후인 집단의 꿈 – 융
인간의 심오한 형이상학적 통찰을 담은 전통적인 그릇 – 쿠마라스와미
그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계시 – 기독교 [478]
전승의 굴레인 과거의 마력은 확실하고 강력한 타격을 받아 산산조각이 되었다. 신화라고 하는 꿈의 집은 이제 무너지고 없다. 마음은 깨어 있는 의식 쪽으로만 열려있다. 현대인은, 나비가 고치에서 나오듯, 새벽의 태양이 어머니 밤의 자궁을 빠져 나오듯이, 현대인은 고대의 무지로부터 빠져 나왔다. [484]

역자후기
시인적 본성은 심리학적 관심과 무관하지 않고, 심리학적 관심은 신화에의 관심과 무관하지 않다. (토마스 만) [490]






3. 여신(타고 남은 불기운)
“영웅은 일상적인 삶의 세계에서 초자연적인 경이의 세계로 떠나고(분리) 여기에서 엄청난 세력과 만나고, 결국은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고(입문, 혹은 통찰), 이 신비스러운 모험에서, 동료들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힘을 얻어 현실 세계로 돌아온다. (귀환)” [44]

프롤로그에서 밝힌 책의 구성(?)이다. 이 책은 신화의 ‘원소적 관념(Elementary Ideas)’에 집중하고 있다. 즉, 영웅들의 이야기가 가지는 패턴(분리-입문-귀환)을 목차로 구성하고, 그에 걸맞은 실례를 들어 주장을 돕는 식으로 이야기를 엮은 것이다. 1부에서는 이러한 패턴을 그대로 옮기어 뼈대를 잡았고, 2부에서는 몇 개의 테마를 선정하여 살을 붙였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프롤로그인 ‘원질신화’에서는 신화의 기능•성격•분위기•닮은 꼴 따위를 소개하여 독자의 마음가짐을 도닥인다. 특별히 3장 영웅과 신 에는, 서투른 독자를 위해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을 읽는 지도(책의 큰 그림)를 그려두었다. 나는 영락없이 이곳을 들춰댔다.

1부는 영웅신화의 표준 궤도인 1)출발 2)입문 3)귀환 이다. 앞서, 본문을 인용한 것이 큰 흐름인데, 몇 가지를 더하자면, 전령관(messenger), 조력자(helper), 전리품(utility) 따위를 들 수 있겠다. 영웅이 모험으로 입문하는 과정에는 전령관이 등장해야 제격이다. 주로 징그러운 뱀이나 개구리가 전령관의 역할을 하게 되는데, 영웅은 그들의 요구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무시했다가, 어쩔 수 없이 모험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스토리는 이때부터 흥미진진해진다. 한편, 영웅이 겪는 모험은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어려운 것이어야 한다. 영웅이 겪어야 할 시련이 고될수록 귀환의 맛도 단 법이다. 영웅은 모험의 복판에서 어려운 관문을 지나게 되는데, 이때 등장하는 것이 조력자다. 주로 노파나 요정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이들은, 절망스런 상황을 극적으로 해결해준다. 전리품은 모험의 대가로 주어지는 열쇠 같은 것이다. 모험을 마치고 귀환한 영웅은 이 열쇠로 현실세계의 문제를 해결한다.

2부는 1부의 테마 편이라 하면 되겠다. 영웅신화에 등장하는 대표적 동일 모티프인 ‘유출•여성•변모•소멸’ 로 꾸렸다. ‘유출’은 말 그대로 ‘뿜어져 나오는 이미지’를 모은 테마다. 창조, 탄생, 분열, 순환 따위의 모티프다. ‘여성’은 ‘처녀의 잉태’라는 테마로 소제목을 두고 있는데, 여기 모아둔 모티프는 어머니, 여신, 자궁, 공주 등이다. ‘변모’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영웅의 모습을 정리한 테마다. 전사, 애인, 황제, 폭군, 구세주, 성자. 이런 모습들은 영웅신화의 단골 모티프다. 마지막 ‘소멸’이라는 테마는 1)소우주의 끝 과 2)대우주의 끝 으로 구성했는데, 여기서 소우주는 영웅의 모험을, 대우주는 모험이 펼쳐지는 세계를 각각 상징한다.

에필로그는 ‘신화와 사회’다. 신화의 원소적인 부분을 통해 그 상징의 문법을 터득하고, 현대 세계의 잃어버린 초상, 즉, 종교적 제의는 사라지고 경제적•정치적 조직으로 탈바꿈한 일그러진 면상 앞에 화해의 악수를 건네라는 것. 그렇게 현대인은 영웅이 되고 우리 사회는 응집력 있는 기관이 된다. 흠. 이렇게 캠벨의 중재 앞에 신화와 사회는 어색한 포옹을 한다. 엉거주춤하다.

지금쯤이 좋겠다. 어떤 독자는 이따금 등장하는 생소한 개념에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행간으로 읽혔겠지만, 분명한 의미를 짚고 가는 것이 좋을 듯하여 꼬집는다. 바로 ‘원소적 관념’이다.

캠벨의 강연 내용을 책으로 엮은 <신화의 세계>에는, 신화를 향한 두 가지 관전 포인트가 명시되어 있다. 하나는 이 책(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의 ‘외형’인 ‘원소적 관념’이고, 다른 하나는 그 ‘속내’인 ‘영구불변의 철학’이다. 나는 <신화의 세계>를 읽으며 그 개념에 대해 정리해둔 바 있다. 이어 옮겨보자.

첫 번째 개념은 어렵지 않다. 세계의 신화와 종교를 연구하던 바스티안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세계 어느 신화에서나 같은 이미지와 같은 주제가 되풀이해서 나타난다는 것’, 그는 이것을 ‘원소적 관념(Elementary Ideas)’이라고 불렀다. 켐벨은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나의 주된 관심은 신화에서 원소적인 것을 끌어내는 데에 있다.” ― 영웅신화의 패턴(분리-입문-귀환)과 동일 모티프(유출, 여성, 변모, 소멸)는 대표적인 원소적 관념이다.

두 번째 개념은 ‘영구불변의 철학’. 켐벨은 이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서양인이 신화를 해석할 때 저지를 수 있는 오류, 두 가지를 들고 있다. “하나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이성적 사고에 치우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신화적 상징에 나타나는 민족적 요소를 성서의 틀에 끼워 맞추는 것이다.” 이 말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틀을 버리고 신화를 해석하라는 것이다. (성서(기독교 철학)는 서양인의 사고를 주름잡는 가장 큰 사고 틀이다) 그렇게 하고 신화를 바라보면, 신화 안에서 어떤 일관성과 계속성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이 끊임없이 이어져나간다는 것. 캠벨은 이런 현상을 통틀어 ‘영구불변의 철학’이라 칭한다. ― 이 책(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의 숨은 의도이다.

여기서 ‘틀을 버린다’는 말이 좀 모호하다. 어떻게 틀을 버린단 말인가? 다음은 캠벨의 설명이다. “신화는 상징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사실과 인식의 세계를 벗어나야 한다. 칸트가 주장한 바, 선험적인 사고의 범주를 벗어난 채로 신화를 바라봐야 한다. 게다가 그것들을 모두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선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직 그것들을 해석할 수 있는 경험체계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비적으로 해석하라. 신화는 꿈과 같은 것이다. 신화를 읽을 때에는, 이성적인 사고체계를 벗어나, ‘지혜의 몸’과 같은 영역으로 들어가라.”

여기까지이다. 자, 그럼 다음 단계로 넘어가보자.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은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을 두 가지 관전 포인트에 견주어보는 것이다. 눈치 빠른 독자는 벌써부터 알아 챘을 것이다.

앞서, 두 개념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외형’과 ‘속내’라는 표현을 썼다. 말 그대로다. 이 책은, 겉으로 보기에는 ‘원소적 관념’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저자의 속내는 좀 다른 것이었다. 그의 의도는 원소적인 것들을 끌어 모아 ‘상징의 형상’을 만듦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이성, 성서 따위의 고정관념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다음 단계는, 세계 각처에서 채집된 신화와 민간 전설을 한곳에 모아놓고 상징으로 하여금 스스로 입을 열게 하는 일일 듯 하다.” [6]

신화가 가진 상징의 형상, 즉 ‘영구불변의 철학’ 앞에 더욱 바투 앉아보자. 가만히 보면 그 얼개는 대략 이런 것이다. 1)신화의 원소적인 것들을 모아 본다 2)세계 각지의 신화에서 무수히 많은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3)이들이 완전히 분리된 채 독립적으로 이어져 온 것이라고? 4)’초자연적인 심연’에 무엇인가가 있다 5)오호라 계속 들여다보니 그 단일성 안에서 무언가가 읽히는구나! 6)이것이 바로, ‘지혜의 몸’에 심기운 ‘상징의 문법’이로다.

초자연적인 심연, 지혜의 몸, 상징의 문법. 이런 표현들을 읽으면서 인상을 찌푸리고 있다면, 그대는 글을 썩 잘 읽어 온 것이다. 이것들을 해결해야 신화가 열린다. 안개를 걷어보자.

저자는 본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무의식은 꿈을 통해서, 혹은 벌건 대낮에, 아니면 정신 착란을 이용하여 갖가지 부질없는 몽상과 기이한 상념과 공포와 정신을 어지럽히는 허상을 마음으로 올려 보낸다.” 그리고 니체의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인용한다. “잠잘 때나 꿈속에서 우리는 인간성의 사고를 꿰뚫어 체험한다. 내 말은, 수천 년 전에 인간이 깨어 있는 상태에서 했던 것과 같은 방법으로 꿈속에서 사유한다는 것이다. (…) 꿈은 우리를 인류문화의 이런 상태로 데려가고, 그 때에 관한 우리의 이해를 돕는 것이다.” 또, C.G. 융은 신화를 이렇게 정의했다며 인용한다. “인간의 심성 깊은 곳에 내재한 원형적 충동의 징후인 집단의 꿈”.

캠벨이 ‘초자연적 심연’이라고 표현한 것은 인간의 ‘무의식’이다. (문맥에 따라서, 신(god)이나 순환 에너지 따위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니체에 의하면, 그 심연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바로 ‘꿈’이다. C.G. 융이 신화를 ‘집단의 꿈’이라 표현한 것은, 개개인의 꿈이 각기 다른 듯 하나, 그 본질은 집단적(원소적)이라는 의미이다. 이어지는 캠벨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세계의 신화들이 유사성을 보이는 까닭은, 그것(원소적인 것)이 원형적(본래부터)으로 인간의 본성에 심기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꿈, 정신, 상념 따위의 통로를 따라 발원된 고대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신화다. 따라서 세계 신화의 원소적인 것들을 검토하다 보면, 인간의 몸에 심기운 지혜를 발견할 수 있다. (지혜의 몸) 이것이 신화를 읽는 법(상징의 문법)이며, 이것을 이해하려는 사유의 체계가 바로 ‘영구불변의 철학’이다.

캠벨은 이 책,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 하고자 했던 바를 썩 잘 하였다. 원소적 형상은 허리를 묶고 단단히 일어섰고, 상징은 스스로 입을 열었다. 그 호령은 켐벨의 입을 통해 내게도 전해졌다.

번개는 풍요를 약속하는 비의 전조인 동시에 신이 방출한 에너지의 현현이다. 은총, 양식, 에너지, 이러한 것들은 나날의 삶이 있는 이 땅으로 내려오는데, 이것들이 내려오지 않으면 살아 있는 것들은 죽을 뿐이다. [58]

우리가 생각하는 것, 우리가 행하는 것에는 어차피 육욕의 냄새가 나게 마련이라는 것을 깨닫거나, 다른 사람을 통해 깨우치게 되었을 때 우리는 예외 없이 낭패의 순간을 경험한다. [160]

열반Nirvana이라는 말은 탐욕(욕망)과 성내는 것(적의)과 어리석음(미망)이라는 세 겹의 불을 끈다는 뜻이다. [213]

하나님이, 인간의 생각이 미칠 수 없는 높은 곳에 계신다는 믿음만 가지고 있다면, 우리도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고 있는 셈이다. (토마스 아퀴나스) [305]

영웅은 마땅히 무덤과 화해할 수 있어야 한다. [445]

개인은, 생전에 자기 가슴에 반영되어 있던, 세계를 창조하는 신에 대한 근원적인 깨달음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459]

현대의 영웅들은 신화에 대해 이렇게 기술(記述)했다. 선사로부터의 시적 환상(뮐러), 원초적인 서툰 노력(프레이저), 집단의 꿈(융), 형이상학적 통찰의 그릇(쿠마라스와미), 개인을 집단으로 귀속하려는 가르침(뒤르켐), 그리고 우주 에너지의 은밀한 통로(캠벨).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울림이 되었던 기술은 이것이었다. “그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계시” (기독교)




4. 내가 저자라면
문학을 읽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아름다운 문장’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몇 번이고 눈을 감은 채 되뇌곤 했다. 가장 큰 울림이 되었던 문장으로 조금 소개한다.

팔찌 없는 그 손목
가랑비에 젖은 채 소매에서 나와 있네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지니가 부두르의 공주를 찬양하며 시인 알 왈라한의 시를 인용) [103]

오. 은자여. 아름다운 은자여!
그대 내 어깨로 손을 얹어 보아요.
불 같은 화살이 그대 핏줄을 타고 지나가는 것 같으리니.
아니, 내 몸의 더 비천한 곳을 점유하시면,
제국을 정복한 것 이상의 격렬한 기쁨을 맛보시리니.
그대 입술을 더 가까이.
(구스타브 플로베르트Gustav Flaubert, <성안투안의 유혹; La tentation de Saint Antoine> [165]

전에는 신화가 아름다운 것인지 몰랐다. 책을 읽기 전에는 고리타분한 구멍가게 할아버지의 모습이었던 신화가, 책을 읽고 나니 온갖 뮤즈를 거느리는 현자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는 ‘문장’이라는 지팡이로 나를 툭 치더니, 이내 보따리를 풀어 두 개의 구슬을 꺼내 보였다. 하나는 검은 색이었고, 하나는 빨간 색이었는데, 거기에서는 ‘은유’라는 멜로디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구슬의 이름은 각각 ‘비극’과 ‘희극’이었다.

“비극이란 형체의 파편이며 형체에 대한 우리의 애착이다. 희극은, 정복할 수 없는 삶에 대한 거칠고, 방만하고, 꺼질 줄 모르는 환희다.” [42]

그(캠벨)의 말대로, 비극에는 애착이 있고 희극에는 환희가 있다. 비극은 이루지 못한 꿈처럼 안타까운 것이고, 알고 보면 그 비극의 주인공이 다름아닌 나의 모습이요, 그 비극의 텍스트가 다름아닌 나의 것이었기에 더욱 애착이 간다. 희극은 이루고 싶은 꿈처럼 즐거운 것이고, 알고 보면 그 희극의 익살과 풍자와 유쾌함은, 불가항력 앞에 선 아주 작은 자의 야무진 반항 같은 것이어서 더욱 환희롭다.

문장과 비극과 희극. 이것이 신화의 아름다움이며, 그 아름다움을 적절히 드러내는 것이 신화학자의 일이다. 오랜 세월, 현자의 지팡이에 얻어맞고, 구슬의 멜로디를 들었던 까닭일까? 캠벨의 목소리도 신화처럼 아름답게 들려온다. 누가 그랬듯이, 그는 음유시인처럼 노래하고, 덕분에 우리는 신화의 은유에, 문학을 노닌다.

친절한 캠벨씨
독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길을 잃을 일이 별로 없다. 목차를 보면 알겠지만, 구조가 너무 명확하기 때문이다. 1부는 영웅신화의 패턴인 분리 – 입문 – 귀환. 2부는 영웅신화의 동일 모티프인 유출, 여성, 변모, 소멸. 이보다 더 명확할 순 없다.

주장을 돕기 위한 예시들도 적절하다. 저자는 세계 각지의 영웅신화들이 어떻게 유사점을 보이고 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많은 신화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의 주장을 읽으면서 “무슨 말이지?” 생각했다가도, 그가 들은 예시들을 보며 무릎을 쳤던 적이 여러 번이었다. 모름지기 글은 이렇게 써야 하는 법이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이 있다. 이 책은 일종의 숨은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이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캠벨은 세계 신화들의 유사점을 모아 놓고 어떤 형상을 만들었다. 그는 이것을 ‘상징’이라고 칭한다. 그가 이 책에서 하고자 했던 바는 이런 상징을 드러냄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신화를 옳게 읽을 수 있는 철학을 전하려는 것이었다. 이른바 ‘영구불변의 철학’이다.

실제로 독자는 신화들의 유사점을 읽으면서, 사실 그대로의 해석이 아닌 신비로운 해석법에 길들여진다. 조금씩 그 상징의 문법을 터득하다가, 책을 덮을 즈음이면, 어느새 신화 ‘독법(讀法)’이 갖추어지는 것이다.

저자가 이런 숨은 구조를 명확하게 밝혀주었으면 어땠을까? 본문에는 그의 의도에 대한 힌트가 너무 적다. 고작 머리말에서 이렇게 언급하는 정도? “다음 단계는, 세계 각처에서 채집된 신화와 민간 전설을 한곳에 모아놓고 상징으로 하여금 스스로 입을 열게 하는 일일 듯 하다.”

어쩌면 이것은 기우일수도 있다. 그의 다른 책에서는 이런 것, 하나하나를 언급하는 것이 오히려 독자를 무시하는 처사라고 단정한다.

“신화가 살아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무에게도 말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실제로 당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그림을 보는 것과 같다. 그 그림은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만일 당신이 “저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고 물었을 때 화가가 대답해준다면, 그것은 당신을 경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화의 세계>에서.

그래도, 이런 식으로 말해주었으면 어땠을까?

“나는 이 책 안에 숨은 이야기를 담아두었다. 여러분은 그 구조를 발견하는 재미를 느껴보기 바란다.”

재담꾼의 공식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바로, ‘유명 희극들이 신화적 플롯을 답습하고 있다는 사실’. 실제로 사람들은 플롯에 끌려 다닌다. 혐오스런 전령관이 나타나서 황당한 거래를 제안할 때는, “주인공이 저 제안을 받아들이면 안 되는데……” 하며 마음을 졸이고, 거대한 시련 앞에 절망하고 있는 주인공에게 조력자가 극적인 도움의 손길을 건넬 때면, “휴~ 다행이야.” 하며 안도한다. 이처럼, 분리, 입문, 통찰, 귀환에 이르는 기승전결의 플롯은 사람들을 높이 띄웠다가, 다시 바닥까지 내려뜨렸다가, 다시 높이 띄워놓곤 한다.

어디선가 “응용은 반복에서 나온다” 라는 구절을 읽은 기억이 난다. 여러 번 반복해서 완전히 몸에 익었을 때, 비로소 응용이 나온다는 말이다. 지당하다. 그래서 말인데, 이런 생각도 해봄직하다. 만약, 신화적 플롯에 완전히 익숙해져서 그 구조를 손아귀에 쥐락펴락할 수 있다면? 정말로 멋진 이야기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희대의 명작들은 플롯의 응용이다. 플롯의 기본 틀을 따르면서, 메피스토펠레스(괴테의 파우스트에서 전령관의 역할, 보통의 전령관과는 다르게 악마의 모습을 하고 있다)나 베르길리우스(단테의 신곡에서 단테를 천국, 지옥, 연옥으로 데려가는 전령관인 동시에 어두운 숲의 맹수로부터 구해주는 조력자)처럼 독창적인 변형을 주면 희대의 명작이 된다. 3대 판타지 중 하나인 <나니아 연대기>를 쓴 C.S. 루이스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이 지어낸 이야기는 대부분 비슷비슷하다.”

캠벨은 플롯을 잘 정리해두었다. 간단한 표와 함께. 독자는 그의 글을 읽으며 플롯을 조합하는 수고를 덜게 될 것이다. (이걸 반복하다 보면, 우리 중 누군가는 분명 근사한 재담꾼이 되어 있을 거다)

용두사미
결론은 매우 중요하다. (나는 부사를 잘 안 쓰려 하는데, 여기서는 굳이 ‘매우’를 썼다) 앞에서 아무리 근사한 이야기를 했다 해도, 결론이 흐지부지해지면 싸잡아서 욕을 먹는 법이다. 어디 한번, 캠벨의 글을 싸잡아 볼까? (농담이다) (어찌 감히)

‘주제는 끝까지 모호’. 에필로그의 마지막 장에 남긴 메모이다. 그의 결론이 궁금했기에 찬찬히 읽어 내렸건만. 실망이었다. 그는 이야기를 잘 해놓고, 흐지부지한 마무리를 한다. ‘신화와 사회’(에필로그 소제목)라 하는 그의 결론은 대략 이런 것이다.

“삶의 양태에서, 개인은 한 구성 요소일 뿐이다. ‘신화와 제의와 명상’은 보잘것없는 개인의 상태를 발견하기 위한 도구이다. 신화를 비롯한 이 도구들을 통해 자신의 작음(small)을 발견한 자는 영웅이다. 한편, 오늘의 사회는 이런 도구들이 기능하는 종교적 틀이 무너지고, 오직 경제적•정치적 역할만 남은 껍데기로 변모했다. 현대의 영웅에게는 ‘소명’이 있다. 니체는 “그날이 도래한 것처럼 살라”고 했다. 빛나는 순간에 환호하지 말고 오직, 모진 시련을 나누어 부담하라. 이 사회는 그렇게 지켜진다.”

그가 살아있어서 북세미나라도 열었다면, 나는 손을 번쩍 들 테다. 그리고 이렇게 묻겠다. 현대의 영웅이 되기 위해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가? 신화와 제의와 명상을 지켜나가야 하나? 사회에 무엇을 이바지해야 하나? 아니면 개인 안에서 무엇을 발견해야 하나?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이란 정확히 무엇인가? 그날이 도래한 것처럼 사는 것은 어떤 것인가? 모진 시련을 나누어 부담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어려웠다. 전문가와 진리는 언제나 ‘단순’하고 ‘명쾌’하다고 했지 않은가? 혹시, 그는 잘 몰랐던 것일까? 그래, 이런 것을 명확히 해두면, 여운이 없긴 하지. 게다가 그는 범인이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는 데카르트 같은 천재도 아닐뿐더러, 선채로 바지를 갈아 입으려면, 영락없이 외발질을 해야 하는 보통사람 그대로인데…… 우리 같은 이에게 그는, 너무 어려운 처사를 한 듯 하다. 에필로그에 서서, 나는 끊임없이 자문한다. “영웅이 되려면?” 하고……


IP *.52.236.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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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4.14 09:13:06 *.244.220.254
"아무리 근사한 이야기를 했다 해도, 결론이 흐지부지해지면 싸잡아서 욕을 먹는 법이다. 어디 한번, 캠벨의 글을 싸잡아 볼까?"
님의 생각에 나도 한표!그래도 캠벨의 지적 여행이 도움은 많이 되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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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쟁이
2008.04.14 17:41:18 *.235.31.78
네~

도움 많이 되요. ㅎ

이늠의 걸 싸잡을 수 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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