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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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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21일 06시 55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이번에는 캠벨에게 따르는 논란에 대해 알아볼까 한다. [위키피디아 참조]

그의 죽음 후, 캠벨의 비평가들 중의 일부는 그를 반유대주의로 비난했다. 그에게 씌워진 혐의들은 1989년 9월 28일자 New York Review of Books에 발행된 Brendan Gill의 기사 “조셉 캠벨의 얼굴들” 에서 드러났다. 뉴욕시의 Century Association로부터 캠벨의 한 친구로 그 스스로를 밝힌 Gill은 1988년 ‘신화의 힘’의 대단한 인기에 대한 반응을 쓴 기사와 함께 그에 대한 비판을 가한다.. 종교학 교수인 Robert Segal은 “유태인과 유대교에 대한 조셉캠벨” 기사에서 캠벨은 반유대주의자라는 Gill의 주장을 따른다.

하지만 다른 학자들은 반유대주의의 비난 뿐 아니라 Gill의 일반적인 비평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Gill의 기사가 나온 몇 달 후 1989년 11월 9일 New York Review of Books 에는 “Brendan Gill VS 조셉캠벨의 옹호론자” 편지 시리즈가 출판되었다. “조셉캠벨:맞바꾸기”(편지 모음의 제목). 이전 학생들과 동료로부터의 쓰여진 많은 편지는 캠벨에게 쏟아지는 비난에 대해 논하고 있다. 특히, Roberta와 Peter Makman교수는 “우리는 이런 인격 모독성 이야기가 어떠한 증거로도 증명될 수 없기에 더더욱 깜짝 놀랐다.” 이 편지들에 대해 Gill은 계속 그의 주장을 확인시키며 답을 해나가고 있다. . “조셉캠벨:마음속의 불(2002)” 전기의 저자들인 Stephen Larsen과 Robin Larsen는 또한 “반유대주의” 혐의를 뒤집어 쓴 캠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변한다. “ 캠벨은 인종적 또는 사회적 편견을 용서하는 어떤 조직에 속해있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가 그러한 관점을 지지했다는 어떤 다른 방법에 대해서 우리는 전혀 알지 못한다.” 그의 일생 동안 그가 어떤 위치를 정당화하도록 편협함을 강요하거나 눈에 띄게 공개적으로 배신한 어떤 혐의에 대한 기록은 없다고 그들은 전한다.

조셉캠벨의 책을 읽다 보면 조셉캠벨이 과연 기독교나 유대교도들에게 비판을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만큼 기독교와 유대교가 득실거리는 서구 사회의 분위기에서 그는 과감하게 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해나간다. 하지만 그의 책을 4권이나 읽었지만 확실하게 알고 있지 못하다고 이야기 할 수도 있겠지만 그가 결코 어떠한 편협한 생각을 가지고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지는 않다는 생각은 확실하게 든다. 그는 분명 사고의 폭이 넓고 굉장히 깨어있는 마인드의 소유자이다. 단지 그는 스스로 연구하고 생각했던 것들을 가감 없이 논리적으로 펼쳐 내 보이고 있을 뿐이다.

그를 학자로서, 그의 주장을 하나의 의견으로서 봐주는 미덕이 역시나 특정 종교에 사로잡힌 편협한 그들에게는 무리인 것인가?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1.신화에 미친 과학의 영향
21p 비교문화 연구는 전세계에 이와 비슷한 신화가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21p 현대 학문은 인류의 의례와 신화를 체계적으로 비교한 결과, 세계 곳곳에서 처녀 수태나 죽었다 부활하는 영웅 전설이 있음을 밝혀냈다.
22p 지금까지 전세계 모든 거대 문명 사람들은 자기네 상징적 인물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고 자신들을 신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선택 받은 민족으로 생각하려 했다. 다신교도로 다른 민족의 신과 관습을 인정하는 그리스와 로마, 인도와 중국 인도 자기네 신이 최고라고, 혹은 최소한 우월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유일신을 믿는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 교도는 다른 민족의 신은 신이 아니라 악마이며 그 숭배자들은 불경하다고 생각했다.
22p 니체와 입센이 알고 있던 것처럼 삶은 삶을 뒷받침하는 환상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23p 신화적 근거를 지닌 과거의 터부가 근대 과학으로 인해 흔들리면서, 문명화된 세계 곳곳에서 악과 범죄,정신병,자살과 마약중독,가정 파괴,경솔한 아이들, 폭력,살해 그리고 절망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23p 사회의 수호자 대부분은 귀찮은 진리 탐색을 방해하기 위해 자신의 권위를 주장하면서 낡은 환상 편에 서는 경향이 있다. 이 같은 경향은 최근 인규에 대하 토론하는 사회과학자와 인류 학자들 사이에서도 논의되고 있다.
23p 심리학의 연구결과, 특히 신화의 기원 및 본성과 관련된 연구 결과에서 얻을 수 있으리라. 사회의 도덕적 질서는 항상 신화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신화는 종교로 인정 받았고, 신화에 미친 과학의 영향은-필연적으로-도덕적 불안을 낳았기 때문에 삶을 떠받치는 신화의 본성을 과학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이 불가능한지 아닌지 물어보아야 한다. 신화의 낡은 특징을 비판하면서 신화의 필요성을 오해하고 무시하는지, 목욕물과 함께 아이까지 버리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24p 다시 말해 비록 사실이 아니고 실제 역사는 아니지만, 그토록 보편적으로 숭배 받은 신화적 가상인물은 정신의 사실을 재현하는 것이 틀림없다.
24p 상징화 된 ‘정신의 사실’을 밝히고 분석하며 해석할 뿐 아니라 건강하게 간직할 방법을 개발하고 희미해지는 과거의 오랜 전통이 사라질 때 인류가 내면 뿐 아니라 세상의 외적 사실을 알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심리학자와 비교신화학자의 임무는 갈수록 절박해질 것이다.
26p 카를 융 - 신화와 종교의 이미지는 긍정적이고 풍요로운 삶을 목적으로 한다.
27p 융은 신화를 제대로 해석하기만 한다면, 다시 그 내면의 힘을 얻는 수단이 된다고 말했다.
27p 를 소중히 하고 계속 살아 DT기 해는 사회는 인간 정신의 가장 건전하고 풍요로운 땅에서 자라날 것이다.
27p 우리가 과학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리스인 덕에 시작되었고 그들이 발견한 수많은 지식은 아시아로, 페르시아를 지나 인디아로, 심지어 중국으로도 전달됐다.
28p 과학적 사고는 ‘세상의 기원과 창조자에 대한 믿음을 앗아’갔다.
29p 현대 서구 세계에서는 무한한 진리의 경계를 넘으려는 소수 용감한 사람들의 지속적인 탐험의 결과로 자연에서 꽃이 피듯 자연스레 생산적인 성장이 지속됐다.
29p 과학은 그저 이 세상의 ‘실용적인 가설’이며
30p 과학의 매력이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든, 그것은 진리에 대한 열망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보기에는 과거의 종교가 주거나 수없이 제안했던 것보다 더 크고 더 생생한 계시가 존재하는 것 같다.

2.인류의 출현
35p 신화는 인류와 함께 시작됐다.
35p 호모 사피엔스의 세계와 예술에 이미 신화적 목적과 관심이 형성되어 있었다는 흔적이 나타난다.
35p 신화적 사고라는 근본적인 주제는 역사 전반에 그리고 인류가 차지하는 영역 전반에 걸쳐 항상 보편적으로 존재했기 때문이다.
36p 죽음에 대한 의식과 죽음을 초월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신화의 가장 커다란 발생원인이었다.
36p 개인이 스스로 동화되도록 해야 하는 사회체제는 한 개인의 인생보다 우위를 차지하고 개인은 사회에 참여하면서 죽음을 초월한 인생을 알게 될 것이다. 유사시대와 선사 시대라는 긴 시간 속에 세계 곳곳에서 발생한 모든 신화 체계에는 이 두 가지 근본적인 깨달음-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과 사회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상징적으로 결합되어 있고, 의례와 사회를 이루는 중요한 힘이었다.
37p 인류 신화에 대한 비교문화 연구는 수많은 장소에서 발생한 그 공통적 주제의 보편성뿐 아니라 차이에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40p 주된 서양 종교의 역사는 허구에 기반하고 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다른 종교들 역시 이 같은 전설에 뿌리를 두고 있다.
42p 신화는 외부의 사건이 아니라 상상의 주제를 말하고 있다. 신화는 사실 보편적인 특징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인간 정신 혹은 요즘 말로 영혼의 영원한 특징, 특유한 인류의 보편적 상상력을 나타낼 것이다.
43p 사실 우리를 동산 밖으로, 우리 자신의 중심에서 멀리 내던진 것은 지식일 것이다. 그래서 현재 우리는 지식을 통해 사물을 판단하고 영원한 생명 대신 선과 악만을 경험한다.
43p 신화를 선사시대가 아니라 인간의 내적 영혼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읽을 때, 그것이 바로 신화의 의미일 것이다.
44p 우리는 이 물질적 삶의 재물과 쾌락이라 여기는 것을 포기하기 싫어하며, 이 집착이야 말로 우리가 동산에 들어가지 못하는 커다란 사실, 거대한 이유 혹은 걸림돌이다.
45p 우리가 동산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외적이고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자기 자신과 이 세상에 대한 집착으로 우리 스스로 동산으로 가는 길을 막기 때문이다.
46p 성서의 교훈은 유아용 동화 수준인 반면, 불교의 가르침은 스스로 책임감을 갖는 성인용 우화와 같다.
46p 전세계 종교서를 보면 이 두 위대한 인물에 상응하는 존재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47p 구원자의 신화적 전기는 언어를 초월하는 상징으로 세상을 초월하는 지혜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47p 영생은 산다는 행위 그 자체와 항상 동시에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는 인간의 경험과 표현 안에 내재된 영원한 인간 가치의 차원이 있기 때문이다.우리는 모두 이렇게 유명하지는 않지만 깨달음을 얻은 위대한 사람들의 구현이다.
48p 신화적 개념을 보여주는 최초의 구체적인 증거는 네안데르탈인 시기의 것들이다.
50p 분명 끊임없이 이어지는 무자비한 살육에 의존해야 하는 원시 수렵인들이 죄책감이나 복수에 대한 공포심을 가졌으리라는 가정이 심적으로 타당해 보인다.
52p 불은 선사시대 사람들이 최초로 신성하게 생각했던 신이었을 것이다.
55p 어릴 적-프로이드와 융이 지적했듯-어머니는 자연의 힘으로,아버지는 사회의 권위로 경험된다.
59p 죽음 같은 것은 없으며 몸은 만질 수 없는 벽을 지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저승과 이승을 넘나들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실재가 입는 옷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
60p 열대지방에서는 새싹을 틔우면서 부패하는 식물의 흔히 볼 수 있기 때문에 생명을 낳는 죽음이라는 신화가 생긴 듯 하다.
60p 자발적 희생이라는 신화적 주제는 처음부터 그 신을 죽이고 잘라 묻어 달라고 한 원시적 존재의 이미지와 연관된다. 그리고 땅에 묻힌 신체 일부는 사람들이 생명을 유지할 식물로 소생한다.

3.의례의 중요성
63p 의례는 단순히 겉으로가 아니라 심도 있게 인간의 삶을 행복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64p 인류는 중앙신경계통의 행동해발기구가 대부분 ‘정형화’되지 않고 ‘열려’있다는 점에서 다른 동물과 구분된다. 때문에 인간은 자신이 성장한 사회적 각인의 영향을 받기 쉽다.
64p 의례는 전 세계적으로 그러한 각인의 공인수단이었다.
64p 아이는 자신이 속한 사회집단의 신화를 습득하고 그 의례에 참여하면서 자연적, 사회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미숙한 상태로 태어난 비결정적 자연 산물에서 특별하고 효율적으로 기능하는 독특하고 능력 있는 사회 구성원이 된다.
66p 과거의 패턴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말고 자신의 창조적 가능성을 인식하고 개발하도록 그리고 초기 생물학과 사회학이 증명한 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발달을 꾀하도록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69p 바로 지금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정신적 변화가 일어나는 이 위대한 시대-세계 제 2차 대전 후-의 필요조건과 가능성에 필적할 만한 창조적 작품을 단 하나도 모른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69p 지금까지 그 사회에 적합하고 삶을 뒷받침하는 신화와 의례는 창조적 선구자와 예술가의 통찰력에서만 탄생됐기 때문이다.
71p 오슈발트 슈펭글러는 ‘서구의 몰락’에서 ‘문화’란 운동 선수의 ‘몸 상태가 좋다’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 ‘건강한’ 사회 조건이라고 정의 했다.
75p 나름의 생활 방식으로 자연의 힘과 원형을 보여주었던 인간의 교사는 다름 아닌 동물들이었다.
75p 죽은 자는 다시 태어나기 위해 땅에 묻히고 식물계의 순환은 인류의 신화와 의례를 위한 본이 되었다.
79p 연민이란 엄숙하고 영원한 인간의 고통과 대면했을 때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감정인데, 이때 우리의 마음은 고통 받는 사람들과 같아진다네. 공포 역시 엄숙하고 영원한 인간의 고통과 대면했을 때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감정인데, 이때는 공포의 원인을 알 수 없어. 그 원인은 알 수 없는 비밀인 셈이지
79p 모든 고통의 알 수 없는 원인이란 죽음 자체로, 이는 삶의 제일 전제조건이면서 실제로 엄숙하고 영원하다.
80p 이제 결론적으로 모든 신화의 의례-위대한 시와 예술로서-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결합시켰던 헤아릴 수 없는 경이의 미래에 관심을 돌려보자.

4.동양과 서양의 분리
87p 사실 그런 세계에는 개인적 인생 같은 것은 없었고, 그저 만물을 지배하는 거대한 우주의 법칙만 있을 뿐이다.
87p 거기에는 개인의 선택, 의지, 심지어 생각도 없다.
88p 산스크리트어의 동사 ‘존재하다’의 여성형 현재 분사는 ‘사티’로 인도 아내가 죽은 남편과 함께 산 채로 화장되는 것을 가리킨다.
88p 사회적 역할을 완성하는 이 헌신적이고 무분별하며 충실한 행동을 통해 영원한 삶, 다시 말해 아내가 된다.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않는 아내는 아사티, 즉 ‘무’가 된다. 이승에서의 인생과 의미,존재하는 사회적 역할의 실천과 경험으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그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한 사람만이 참으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89p 개인의 완전성을 획득하는 심리적 과장을 ‘개성화’라고 표현했던 스위스 심리학자 카를 G.융
89p 이 세상에서 구실을 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끊임없이 자신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데, 융은 이 역할을 페르소나라고 했다.
90p 융의 표현대로, 개성화되고 자유로운 개인으로 살기 위해서는 무수한 역할의 가면을 언제, 어떻게 쓰고 벗을지 알아야 한다.
90p 개성화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과 해로운 것을 통제하면서 자신의 중심을 찾아 그에 따라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91p 서구 유럽에서는 전형적으로 개개인에게는 운명과 역할이 내재되어 있고 살아가면서 그 ‘의미’와 ‘완성’을 실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동양은 사람이 아니라 확립된 사회 질서에 관심을 두었기 때문이다.
91p 동양에서는 서양적 의미의 자아, 즉 자신의 의견과 호오, 자신만의 독특한 생각이나 목표를 가진 자아가 없기 때문이다.
91p 죽으면 세속적 역할의 가면은 벗겨지고 내세의 가면을 쓰기 때문이다.
92p 단 한번 태어나고 단 한번 살며 생각과 의지,행동이 다른 사람과 다른 개인에 관심을 두는 반면
92p 동양 전반에서는 살아있는 존재란 육체를 입고 벗는 하찮은 이주자라고 생각한다.
92p 개개인에 대한 동양과 유럽의 이 근본적인 개념 차이는 사회적, 도덕적 개념뿐 아니라 심리적, 우주적, 형이상학적 개념 등 모든 의미에 영향을 미친다.
93p 융의 관점에서 보기에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적합한 성인의 이상이었던 개성화가 동양에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95p 서구에서 자아의 성숙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동양에서는 허용하지 않는다.
95p 동양은 자아와 이드를 구분한 적이 없었다.
96p 신은 영원히 돌아가는 만화경을 돌리는 존재에 지나지 않으며, 이 만화경은 나타남과 사라짐, 끝없는 세계의 환영을 보여준다.
96p 개인과 우주의 관계에 대한 동양적 관점에서 서양의 관점으로 바뀐 역사적 전환은 언제 어떻게 일어났는가?
96p 우주적 순환의 매개자였던 동양의 신들은 우주의 주기를 움직이거나 통제하지 않으면서 그 주기 과정을 상징하고 관리하는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99p (서방세계에서) 신과 인간은 본질적으로 서로 다르고 심지어 적대적일 뿐 아니라 인류를 경시하기도 했다. 더욱이 인간의 신은 우주의 법칙 앞이 아니라 뒷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99p 크고 작은 수많은 국가 혹은 대륙은 사실 신을 믿지 않는다.
102p 동양에선 각자 자신과 다른 모든 이가 사실은 똑같은 자아인 우주적 존재의 본질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때문에 동양종교의 목적은 보통 살아 있는 동안 자신과 절대적 존재의 동일성을 경험하고 깨닫는 것이다.
102p 서양에서는 내면의 자아가 아닌, 저 멀리에 있는 조물주,절대적인 타자와 관계를 맺는 것을 이상으로 삼는다.
103p 그리스인들은 인간의 편이고, 유대인은 신의 편이었다.

5.동양과 서양의 종교적 대립
106p (오스바트 슈펭글러, 토마스 만, 제임스 조이스등) 그 작가들은 우리의 합리적인 위엄과 진보적인 정치적 위업이 이 세상의 어두운 곳을 비추기는 하지만 서구 문명의 핵심에서 무언가가 붕괴되기 시작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106p 지금 이순간이 기원전 마지막 2백년,… 시대와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109p 슈펭글러와 예이츠가 서구 문화 주기의 끝으로 해석한 것을 프로베니우스는 훨씬 넓은 관점에서 무한한 지평을 지닌 새 시대의 시작으로 생각했다.
110p 동양이 매력적인 까닭은 그 가르침이 영적이고 신비하며 심리적이기 때문이다.
110p 나는 현재 서양의 종교적 상황이 19세기 막바지인 1870년과 80년대 버펄로가 사라지던 무렵 북미 인디언 부족의 종교적 상황과 대단히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112p 정신의학과 교수인 존W.페리 박사는 살아있는 신화적 상징의 특징을 ‘감응 이미지’라고 했다.
113p 전 인류에게 수십억 년이나 된 우주의 무한한 기적을 보여주었던 위대한 서구 문명이 조그마한 우주적 이미지를 강요하는 종교를 얘기한다는 것은 유치하고 아이러니하지 않을까?
113p 우주에 대한 성서적 이미지는 더 이상 인정받지 못한다.
114p 결국 정신적 조언자라는 성직자의 본질적인 역할은 과학적 정신 의학자가 대신 차지했다. 실제로 요즘 많은 성직자들이 더 나은 목사가 되기 위해 심리학자에게 배운다.
116p 궁극적인 신의 신비는 각자의 내면에 있는 유배지에 있다.
117p 동양에서는 모든 개념을 초월한 궁극적인 신의 신비를 찾는다.
118p ‘브리하다란야카 우파니샤드’ – 사람들은 각기 여러 신들을 섬기면서 이 신에게 제례를 올리라, 저 신에게 제례를 올리라 한다. 그러나 모두 하나의 창조자로부터 나온 창조물일 뿐이다.
121p 의례는 신화적 상징체계다. 사람들은 예배라는 드라마에 참여함으로써 언어가 아니라 지금 이 곳에서 과거나 현재, 혹은 미래의 역사적 사건을 드러내는 계시의 형태로 신화적 상징과 접촉하게 된다.
121p 효과적인 의례는 모두에게 각자의 생각을 남겨주는 것이다. 교리나 정의는 혼란을 일으킬 뿐이다.
125p 태어난 것에는 죽음이 확실하고 죽은 것에게는 태어남이 확실하다.
128p 이 세상의 의미를 물어보지 말고 즐겨라. 자신의 의미를 묻지 않고 자신을 즐겨라. 최소한 건강할 때만이라도 자신을 즐겨라.
128p 부처는 “모든 삶은 고통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다. 삶을 소모하는 삶. 이것이 그 존재의 본질이요, 영원히 바뀌고 다른 것이 된다.
129p 삶의 경이와 신비를 상징하는 최고신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인생의 잔인한 속성과 그 영광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가르침이다.
131p 어느 사회든 다 사악하고 불행하며 불굥평하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따라서 정말로 이 세상을 구하고 싶다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을 가르칠 줄 알아야 한다.

6.동양 예술의 영감
133p 동양에서는 어떤 개인이나 특별한 사건 내지 사실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화려한 동양 예술은 주로 확실하고 진실한 주제를 계속 표현한다.
133p 동양 예술은 이처럼 영원히 지속될 수 없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서양은 개인의 독특함을 억압하지 않고 오히려 개발해야 할 현상으로 존중한다.
134p 자아 지향적인 생각은 동양적 삶과 생각, 신앙심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반대로 동양에서는 ‘나’라는 이 덧없는 것에 대한 모든 관심과 자아를 억누르는 데 관심을 둔다.
134p 완벽한 에술 작품이란 삼라만상에 깃든 영원한 존재를 인간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다.
137p 프로이트와 아들러 이들의 제자들은 정신의 현상을 두 번째와 세 번째 차크라로만 해석했고, 따라서 인류의 신화적 상징이나 희망의 목적에 더 많은 관심을 두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다.
139p 옴(AUM) A는 깨어나는 의식, U는 꿈의 의식, M은 꿈도 없는 깊은 잠, 무의식 상태.
142p 궁극적인 목적은 이 여섯 번째 행복이 아니라 모든 범주와 환상, 감정, 생각등을 넘어선 절대적 상태, 즉 정수리에 있는 일곱 번째이자 마지막 연꽃, ‘천 개의 꽃잎’이라는 뜻의 사하스라라이기 떄문이다.
142p 인도 예술에는 평범한 눈에 보이는 이 세상 낮의 경험적 현실이 거의 없다. 인도 예술의 최대 관심사는 단연 신과 신화적 광경이다.
145p 인도 예술은 일상적 경험의 초월에 관심을 둔 예술이다. 즉 이마 한 가운데 있는 제3의 눈을 뜨게 해서 깨어있을 때 조차 천국이나 지옥이라는 꿈 세계의 환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145p 이는 중국,한국, 일본 등 다른 동양 예술의 주제와 전혀 다르다.
145p 극동 예술은 인도보다는 훨씬 세속적이고 현실적이며 시각적이고 현세적이다.
146p 극동에는 두 가지 예술이 존재한다. 하나는 가능한 한 인도의 환상적인 정신을 잇고는 있지만 네번째 차크라 수준에 머물러 있는 불교의 도상 예술이다. 다른 하나는 중국과 일본 풍경화 전통에서 가장 잘 드러나는 것으로 극동 고유의 철학, 즉 도교를 나타내는 전혀 다른 정신의 예술작품이다.
147p 중국과 일본 예술가의 눈은 세상을 향해 열려 있다.
148p 신이 명상하는 인도 예술가에게 자기 자신을 보여주는 것처럼, 세상은 극동 사람들의 눈에 그 본질적인 형상을 보여준다.
148p 우주가 자발적으로 형상을 이룬다는 개념은 도교적 관점의 본질이다.
149p 예술의 기능은 자연의 법칙과 패턴, 자연의 운행방식을 알고 다른 이들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149p 무위라는 원리는 효율적인 행동과 관련된 극동의 모든 원리를 설명한다.
150p 항상 경계하지 않으면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놓친다. 반면 무위의 예술은 끊임없는 경계자세다.
150p 인도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 등 동양 전역의 예술이란 서양처럼 스튜디오나 무용실, 음악실에 제한되어 삶과 동떨어진 활동이 아니었다. 고대 동양 예술은 삶의 예술이었다.
151p 인도의 정신과 예술은 이 삼라만상에서 벗어난 상상력의 세계를 날아다니는 경향이 있다. 반면 중국의 도교 예술과 예술가들은 자연의 경이와 조화를 이루며 자연과 함께 남으려 한다.
151p ‘자유’라는 개념을 나타내는 일본과 중국의 문자는 겉보기에는 똑같지만, 중국에서는 인간관계에서의 해방을 의미하는 반면, 일본에서는 세속적 활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인간관계에의 순종을 뜻한다.
151p ‘자유’라는 개념을 나타내는 일본과 중국의 문자는 겉보기에는 똑같지만, 중국에서는 인간관계에서의 해방을 의미하는 반면, 일본에서는 세속적 활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인간관계에의 순종을 뜻한다.
152p 고통과 쾌락, 슬픔과 기쁨이 삶 속에 분리되지 않고 섞여 있다는 것, 그것이 삶의 본질이다.
152p 기쁨을 위한 삶의 의지는 곧 고통을 통해 이 세상에 오려는 의지였다.
152p 바로 환생이라는 동양 사상의 기본 개념이다.
154p 행위와 무위가 하나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참으로 아는 자이다.
154p 예술로서의 삶과 유희로서의 예술 – 득실, 칭찬이나 비난을 생각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행위-은 삶을 요가로, 예술을 그러한 삶의 수단으로 만드는 열쇠다.
155p “환상은 그것을 보는 사람 안에서 태어나고 죽는다오. 늙은 중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소?”


7.선
157p 인도에서는 종교에 대한 두 가지 태도를 두 상징으로 묘사한다. 하나는 ‘고양이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원숭이의 길’이다.
158p 자립적이고 스스로 행하는 내적 에너지의 길인 ‘지리키’는 어떤 신이나 부처의 도움을 기대하거나 간청하지 않고 스스로 행하며 일본에서는 선(禪)으로 나타났다.
158p 일본에서는 선으로 알려진 마하야나 불교 종파의 지리키 방식은 신에게 의지하지 않고, 절대적인 신이라는 개념도 없으며, 심지어 부처도 필요로 하지 않는 종교 형식이다.
158p 경전 밖의 특별한 전달.
말이나 문자에 의존하지 않고
인간의 마음에 직접 향한다.
자신의 본성을 바라보고, 이를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
160p 우리들에게는 의식의 질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자신을 덧없는 육체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자기 육체를 단순한 의식의 수레로 여기고, 의식을 우리 모두를 통해 현현하는 존재로 여길 수도 있다.
160p “네 자신은 모든 존재, 모든 의식, 모든 행복의 구분되지 않은 보편적 근거다”
161p 존재 의미를 육체에서 의식으로, 그 다음 이 의식에서 의식 전체로 바꾸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162p 선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관념의 그물을 끊어내는 것이다.
164p “이것은 배울 수 없다” 실제로 깨달음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칠 수 없다.
164p 불교는 길일 뿐이다. 이는 이 세간이라는 차안에서 개념과 생각의 그물 너머, 침묵 너머 절대적 침묵을 깨닫는 피안으로 가는 수레라 한다.
166p “슬픔으로부터의 해방이 니르바나이다”
167p 세속적인 삶 속에서 세속적인 임무를 사심 없이 수행하면서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
167p 보살은 그 ‘존재’가 ‘깨달음’이다.
167p 관세음 보살. 그 이름의 뜻은 ‘세상을 (자비로)보는 분’이라 한다.
168p 관세음보살의 전설에 따르면 그가 이 세상의 윤회에서 완전히 벗어날 무렵 바위와 나무, 모든 피조물이 탄식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170p 부처는 여래라고 한다. 그는 꽃이나 나무 같은 의미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것이 어떤 관념이나 관계와 가리키지 않고 그저 그 자체로 경험될 때마다 그 순간 보는 사람은 의미를 두지 않는 순수한 존재로 돌아간다.
170p 공덕을 채우는 유일한 방법은 순수하고 완벽하며 신비한 지혜를 얻는 것입니다.
171p 면벽좌선. 올바른 불교란 경전을 해석하거나 의식을 행하는 것 같은 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보이기 위함이었다.
172p 심시보리수 마음은 보리의 나무요,
신위명경대 몸은 밝은 거울의 받침대와 같나니.
명경본청정 밝은 거울은 본래 깨끗하거늘
하처염진애 어느 곳이 티끌과 먼지에 물들리오.

173p 신수는 이후 단계적 깨달음을 바탕으로 한 북종선의 창시자가 되었고, 혜능은 직관적인 깨달음을 바탕으로 한 남종선의 창시자가 되었다.
173p “내면을 들여다보라! 비밀은 네 안에 있다” 하지만 교리를 연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 비밀을 깨달을 수 있단 말인가? 일본의 선승단은 명상법을 가장 선호하는데 이는 ‘화두’에 의해 인도되고 촉진된다.
173p 궁극적인 화두는 우주 그 자체라고 한다. 그리고 그 화두의 답을 찾으면, 다른 화두를 저절로 깨닫는다고 한다. DT 스즈키는 “ 화두는 논리적인 말이 아니라 어떤 심리상태의 표현이다”
화두는 언뜻 보면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깨달음을 위해 세심하게 계획된 초 이성적인 직관의 심리상태다.
174p 불교는 피안으로 가는 운반수단이나 배다.
175p”오늘, 이 시간, 이번 주, 이번 달, 올해, 이번 10년간 나는 조금이라도 발전했는가?” 이러한 자아의 생각에 집착한 나머지 배에서 내리고자 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우연히 자신을 잊어버린 순간, 기적이 일어나고 옛 현인들처럼 배는 뉴저지,열반의 해안에 도착한다.
176p 자아에 대한 의식과 함께 욕망과 두려움을 없애면 열반에 이를 것이다. 깨닫기만 한다면 우리는 이미 열반에 이르렀다. 이 모든 세상이 이미 무한한 공간의 선착장에 떠 있는 배요,
177p 원인은 결과에 앞선다. 하지만 도토리가 크는 원인은 무엇인가? 도토리 나무가 자라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미래의 일은 지금 일어나는 일의 원인이다. 동시에 과거의 일은 또한 지금 일어나는 일의 원인이기도 하다.
177p 모든 것은 언제나 다른 모든 것의 원인이다.
177p ‘사물과 사물에는 구분이 없다’ 이는 극동 불교 예술에 깃든 숭고한 개념이다.
178p 이는 이 세속적인 세상에 즐겁게 살면서 이 세상과 이 세상에 대해 참여하는 방법이다.생계를 위한 노동과 가족 부양, 친지들과의 관계, 고통과 기쁨이 모두 우리의 수행이다.

8.사랑의 신화
183p 사랑의 신이 신들 중 가장 나이가 많다는 고대 그리스의 개념은 ‘브리하다란야카 우파니샤드’에 나타난 인도의 개념과 똑같다.
183p ‘이 모든 것이 나다’ 이 이야기의 의미는 의식에 앞서는 최고의 존재가 우리를 무의식적으로 자극해 움직이는 동기라는 것이다.
183p 우리는 사랑의 결합이라는 경험을 통해 모든 존재의 근원인 창조행위에 동참한다는 것이다.
185p ”둘은 한 몸이다.” 이제 자기 자신, 자신의 삶보다 한 쌍을 이룬 둘의 삶이라는 인식 속에선 자아를 초월한 두 사람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187p 세속에 대한 인간의 관심을 신으로 회복시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의 행동이었다.
189p 시간은 “움직이는 영원의 이미지”라는 플라톤의 말
189p 가르침의 생을 마치고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부처와 달리 스스로 윤회에 영원히 머물겠다고 했던 무한한 자비의 관세음 보살은 살아 있는 동안 항상 영원한 자유의 신비를 상징한다.
189p 보살의 목적은 이 찰나의 세계를 바꾸는 것-혹은 ‘개선’-이 아니다. 갈등가 긴장, 패배와 승리는 만물의 본성에 고유하고 보살의 행위는 만물의 본성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는 목적 없는 자비다.
194p 아모르는 눈과 가슴 속에서 태어난다. 즉 개인적이고 특별하다.
196p 단테가 그의 영혼이 지옥에 빠진 것을 순전한 고통으로 묘사했던 부분을 바로 잡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관점은 외부인의 것이다.
203p 완벽함에는 인간성이 결여되어 있다.
203p 인간이 사랑스러울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불완전함 때문이다. (이것은 토마스 만의 핵심사상이다.)
203p 시인을 만들 수 있는 게 있다면 그건 인간적인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온기,선,, 유머는 모두 이 사랑에서 비롯되지.
204p 헤라클레이토스는 “신에게 만물은 공평하고 선하며 정당하다. 하지만 인간은 어떤 것은 그릇되다 하고 어떤 것은 옳다 한다. 선과 악은 하나다”라고 했다.

9.전쟁과 평화의 신화
211p 열대지방 부족들에게서 지배적으로 나타나는 신화적 주제는 죽음을 통해 생명이 태어난다는 개념을 뒷받침하고 있다.
211p 삶을 낳기 위해 희생자를 획득한다는 이 끔찍한 임무와 관련해 볼 때, 고대 아스텍 문명은 가장 극단적인 사례를 보여준다.
229p 이러한 가르침의 개념은 금욕주의처럼 평범한 세속적 삶과 가족, 지역사회를 완벽하게 버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초기 기독교의 가르침은 초기 불교와 자이나교도와 같아 보인다.
230p 초기 신화적 개념은 대 전쟁, 마지막 성전이었고 이를 통해 역사가 끝날 때에는 결국 평화가 지배하게 되리라는 개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평화의 신화가 아니라 전쟁, 영원한 전쟁을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231p 이 원시적인 형태의 불교는 자이나교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하지만 삶의 해탈보다는 자아의 해탈을 더 강조한다.
238p 행위의 결과에 대한 두려움과 욕망을 모두 저버린 사람은 의무에 집착하지 않고 행동한다.
238p 역설적으로 평화와 전쟁의 신화는 사실 같은 것이다.
239p 처음부터 전쟁은 필연적이고 선할 뿐 아니라 문명화된 인류의 보편적이고 가장 유쾌한 형태의 사회 행동
239p 이러한 관점의 목적은 전쟁과 분쟁을 완전히 없애 영원한 평화 상태가 되는 것

10.정신 분열증-내면으로의 여행
244p 정신 분열증의 일반적인 패턴. 첫째, 지역의 사회적 질서와 환경을 위반하거나 벗어난다. 둘째, 내면으로 오래도록 깊숙이 숨어들고, 곧이어 점점 더 깊이 물러나 내면의 정신 밑바닥까지 들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245p 정신분열은 잃어버린 무언가를 회복하고 대단히 중요한 균형을 복원하기 위한 내면의 퇴행적 여행이다.
250p 정신분열증 환자는 낯설기 만한 자신의 허구적 상상을 두려워할 뿐이다. 반면 원시 샤먼의 경우에는 외적 삶과 내적 삶이 근본적으로 일치한다.
251p 요가 역시 의도적인 정신분열이다.
251p 신화학자로 평생 이러한 전형을 연구한 나는 전형이 실제로 존재하며 전세계에 걸쳐 모두 똑같다고 장담할 수 있다.
252p 신화와 의례는 달리 해석되고 달리 적용되며 다른 규칙에 따라 이루어질 것이다. 하지만 전형적이고 본질적인 형태와 개념은 똑같다.
252p 집단 무의식의 원형, 이는 단순한 개인적 경험이 아니라 모든 인류에 공통적인 정신구조와 관련됐다고 말했다. 그(융)가 보기에 정신의 기본적인 깊이나 층은 인류의 본능 체계를 나타낸 것으로 인간의 몸과 신경계통, 놀라운 두뇌에 내재해 있다고 했다.
252p 인간에겐 유전된 생물학과 개인적 생물학이 있는데, 앞의 것이 ‘무의식의 원형’이다.
252p 정신분열증에 걸린 사람은 ‘집단적인 무의식’까지 내려가고 그 곳에서 경험하는 심상은 대부분 신화의 전형과 같은 종류다.
255p 모든 신화는 문화적으로 관습화 된 신호 체계요,자연 발생적 유전질과 문화적 유전질이 그 신호 속에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둘을 구분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255p 나는 기능하는 신화적 상징을 ‘에너지를 유발하고 조작하는 신호’라고 정의했고 페리 박사는 그러한 신호를 감응 이미지라고 지칭했다.
256p 적절한 신화의 기능. 첫째는 신비적 기능…우주라는 존재의 신비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심오한 신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두번째 기능은 시간의 지식, 신화를 이야기하는 민족의 행동과학 및 영역과 일치할 우주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세번째 기능은 사회의 구체적이고 일정한 도덕적 규범을 인정하고 지지하며 각인시키는 것이다. 네번째 기능은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균형을 이루면서 예측할 수 있는 삶의 과정을 거치도록 단계적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258p 인류에게는 이 같은 생물학적 기능을 신화가 수행한다. 겉보기에는 아니지만, 신화는 꼭 필요한 생물학적 기관, 자연의 산물과 다름없다.
258p 신화는 어른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신화의 첫번째 기능은 미성숙한 영혼이 세상에 맞설 준비를 하고 성숙해지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274p 신화의 영웅, 샤먼, 신비주의자,정신분열증 환자의 내면 여행은 원칙적으로 똑같다. 귀혼을 하거나 병이 나으면 이는 부활로 경험된다.즉 ‘두번 태어난’자아의 탄생으로 더 이상 낮은 세계에 머물지 않는다.

11.달 위를 걷다.-외면의 여행
283p 하나하나 관찰해서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내면에는 그 법칙이 있고, 이미 우주를 마음에 얼싸안고 있다. 시인 릴케의 말처럼 “세상은 넓으나 우리 안에선 바다처럼 깊다” 인간의 내면에는 질서 있는 법칙이 있다.
290p 지구와 인간 정신의 법칙은 전에는 신의 능력과 영역이었으나 이제는 인간의 능력과 영역으로 인식된 것과 통합될 만큼 확대되었다.
293p 우리가 외부 자연뿐 아니라 깊은 내면의 신비를 향한 커다란 정신적 도약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12.글을 맺으며: 더 이상의 한계는 없다.
299p 그는 틀에 맞춰진 자가 아니다. 숨을 쉬므로 ‘숨’,말을 한다 해서 ‘목소리’라고 부른다. 보기 때문에 ‘눈’이라고 하고, 듣기 때문에 ‘귀’ 그리고 생각하기 때문에 ‘마음’이라 부른다. 이 모든 것은 그의 일에 따라 그를 부른 이름이다. 그러므로 이들 중에 어느 하나만 숭배하는 사람은 그를 진정으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301p 오늘날 기독교도의 난점은 나사렛 예수를 유일무이한 신의 역사적 화신이라고 생각한다는데 있다.
301p 민족 중심적 역사주의 때문에 오늘날 목사들은 신도를 끌어들이기 어려워졌다.
313p 우리는 지구의 눈이자 정신이고, 지구가 보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결국 우주의 정신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우주의 법칙과 우리의 법칙은 하나다!
313p 이제 우리의 신화는 외부뿐 아니라 내부에 있는 무한한 우주와 그 빛에 대한 신화여야 한다.
313p 이 지구라는 우주선에는 더 이상 ‘다른 곳’이 없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다른 곳’과 ‘이방인’을 말하거나 가르치는 신화는 이 시대의 필요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313p 새로운 신화는 무엇인가? … ‘민족들’의 아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알고 있는 깨어있는 개인들, 이 아름다운 별에서 땅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개개인이 아니라 평등한 전체적 정신의 중심, 모든 이와 함께 나름의 길을 가고 한계가 없는 개인에게 말을 거는 신화다.


내가 저자라면
이번 책은 캠벨이 평소 이야기 하는 것들이 모두 녹아 들어 한번에 정리되는 느낌이 드는 책이다. 혹시 나 같은 연역적인 사고를 주로 하는 사람들은 이 책을 먼저 읽고 그의 다른 책들을 읽어나간다면 그나마 그의 이야기들이 더욱 쉽게 와 닿지 않을까 싶다.
일단 이 책은 그가 1958년부터 1971년까지 뉴욕 쿠퍼 재단 포럼의 그레이트 홀에서 스물다섯 차례에 걸쳐 했던 신화 강좌 중 열세 차례의 강연을 선별해 구성한 것이다. 실제로 청중 앞에서 했던 강좌이기 때문일까? 오로지 책으로서 의사 소통 하는 한계를 극복한 캐쥬얼하고 생생한 느낌들을 주는 내용들이 그대로 각 이야기 장 앞부분을 꾸미고 있어 더욱 흥미롭다. 하지만 아직 세부적인 사항들에 대해 캠벨을 확실히 느끼기엔 나의 지식의 길이가 짧음을 한탄할 수 밖에. 일단 각 장에 대한 캠벨의 생각을 정리해 보면 다시 한번 큰 줄기에서의 그의 사상을 엿볼수가 있을 것 같아 정리해 보았다.

1. 신화에 미친 과학의 영향
콜럼버스의 역사적인 항해, 마젤란의 세계 일주, 지구에 대한 개념이 속속들이 밝혀지면서 신화의 지리학은 의심 받게 되었다. 성서에 대한 것들도 다양한 역사적 사실들을 퍼즐 맞추듯 맞추어 나가면 하나의 지어진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것이 결론이다. 하지만 어쨌든 신화와 종교는 사실이 아니고 실제 역사는 아니지만 정신의 사실을 재현하는 역할로서는 충분하다고 캠벨은 이야기 한다. “상징화 된 ‘정신의 사실’을 밝히고 분석하며 해석할 뿐 아니라 건강하게 간직할 방법을 개발하고 희미해지는 과거의 오랜 전통이 사라질 때 인류가 내면뿐 아니라 세상의 외적 사실을 알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24P)”는 것이 심리학자와 비교 신화학자의 현재의 절박한 임무라고 그는 이야기 하고 있다.
캠벨은 융의 ‘신화를 제대로 해석하기만 한다면, 다시 그 내면의 힘들 얻는 수단이 된다’라는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신화를 소중히 하고 계속 살아 있게 하는 사회는 인간 정신의 가장 건전하고 풍요로운 땅에서 자라날 것이라는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캠벨은 과학도 결국은 진리에 대한 열망에 지나지 않고 “과거의 종교가 주거나 수없이 제안했던 것보다 더 크고 더 생생한 계시가 존재하는 것 같다(30P)”라고 이야기 하면 과학 또한 신화 자체가 갖는 의미를 무너뜨릴 수 없음을 이야기 하고 있다.

2. 인류의 출현
신화는 인류와 함께 시작됐다고 캠벨은 이번 장에서 운을 떼고 있다. 캠벨은 “신화를 선사 시대가 아니라 인간의 내적 영혼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읽을 때, 그것이 바로 신화의 의미일 것이다”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또한 신화는 다양한 민족적 특질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띤다. 수렵민에게 있어 죽음은 껍데기만 사라지는 것이고 원래의 위치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신화다. 그들의 생활방식(동물 사냥)을 떠올려 본다면 어렵지 않게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현명한 방식으로 신화 또한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 또 열대지방 민족에게 죽음은 재생을 위한 과정으로 생명을 낳는 죽음이라는 신화가 생겨났다. 이처럼 인류의 출현과 함께 태어난 신화는 결코 인간의 특질과 존재에서는 떼어낼 수 없는 위치임을 나타낸다고도 볼 수 있다.
이 장을 읽던 중에도 나의 육체는 정말 껍데기 뿐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스친다. 죽음이 온다해도 현세에서 육체만 바스러질 뿐 나의 영혼은 그대로 남아 또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것이지 않을까. 그렇게 보면 누군가의 죽음도 그다지 가슴 찢어지게 아파할 일도 아니지 않을까 하는 초탈스러운 생각까지 든다. 그는 또 다른 그의 단계에 맞는 세계로 이동한 것일 뿐이니. 단지 그가 곁에 없음을 잠시 아쉬워하는 수 밖에..

3. 의례의 중요성
캠벨은 의례는 단순 겉치레가 아닌 심도 있게 인간의 삶을 행복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의례를 통해 인간은 자연스럽게 그가 속한 자연,사화 환경과 조화를 이루게 되고 개개인을 다독이거나 다잡게 하는 역할을 의례가 해준다고 캠벨은 이야기 한다.

4. 동양과 서양의 분리
동,서양은 신에 대한 기대가 다르다. 어찌 보면 완전히 반대의 개념이기도 하다. 서양에서는 “전형적으로 개개인에게는 운명과 역할이 내재되어 있고 살아가면서 그 ‘의미’와 ‘완성’을 실현해야 한다고 생각(91P)”했던 것과 달리 동양은 “사람이 아니라 확립된 사회 질서에 관심을 둔다(91P)” 고 비교한다. 즉 동양에서는 “살아있는 존재란 육체를 입고 벗는 하찮은 이주자라고 생각한다(92P)”라고 생각한다. 결국 각각은 어느 것이 옳다 틀리다의 개념이 아니라 정확히 정반대의 각각의 나름 의미 있는 관점이 아닐까 싶다.

5. 동양과 서양의 종교적 대립
서양에서 신은 인간과 분리된 신성한 존재로서만 여겨진다. 하지만 동양에서는 반대로 ‘신은 바로당신과 하나다’ 라는 개념을 갖는다. 예수가 “하느님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라고 말했을 때 신에 대한 모독으로 십자가에 못 박혔으나 동양에서는 바로 그것이 종교의 핵심적인 가르침이었다.
캠벨은 동양의 종교적 입장을 어느 정도 지지하며 ‘삶을 즐기라’고 독자에게 주문한다. ‘모든 삶은 고통이다’라는 부처의 이야기를 빌리며 캠벨은 “이 세상의 의미를 물어보지 말고 즐겨라 자신의 의미를 묻지 않고 자신을 즐겨라. 최소한 건강할 때만이라도 즐겨라.(128P)” 라고 조언한다.
특히 이장의 마지막에 “어느 사회든 다 사악하고 불행하며 불굥평하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따라서 정말로 이 세상을 구하고 싶다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을 가르칠 줄 알아야 한다.(131P)”라는 이야기는 현실적이면서도 마음에 와 닿는 문구다.

6. 동양 예술의 영감
동양 예술은 이처럼 영원히 지속될 수 없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주로 확실하고 진실한 주제들을계속 표현한다. 서양에서는 앞에서 살펴본 개념들과 비슷하게 동양의 개념과 정확히 반대편에서 개인의 독특함을 억압하지 않고 개발해야 할 현상으로 존중한다.
이 장에서는 동양예술을 인도와 극동(중국,한국,일본)으로 다시 나누어 각각의 차이에 대해서도 논하고 있다. 일본에서 갖는 ‘자유’의 개념에 대해 이야기 하는 부분은 지난번에 읽은 ‘코리아니티’에 나오는 일본인의 공동체적 관점이 정확하게 드러나 통하는 즐거움을 맛볼 수도 있었다.
캠벨은 “예술로서의 삶과 유희로서의 예술 – 득실, 칭찬이나 비난을 생각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행위-은 삶을 요가로, 예술을 그러한 삶의 수단으로 만드는 열쇠다.(154P)”라는 말로 예술과 삶에 대한 그의 관점을 드러내고 있다.

7. 선
인도에서 종교를 대하는 두 가지 태도로 ‘고양이의 길(신에게 갈망하며 기도하는 자세)’ ‘원숭이의 길(어떤 신이나 부처의 도움이 아닌 스스로 행하는 자세)’ 가 꼽힌다. 이장에서는 주로 후자에 대한 설명을 다룬다. 흔히 절에서 보면 부엌, 수리, 농사등 인생을 꾸려나가는데 필요한 일들을 스님들 각자가 행하는 모습들이 바로 “이는 이 세속적인 세상에 즐겁게 살면서 이 세상과 이 세상에 대해 참여하는 방법이다.생계를 위한 노동과 가족 부양, 친지들과의 관계, 고통과 기쁨이 모두 우리의 수행이다.(178P)”라는 불교의 의미가 녹아 든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내가 집안에서 하는 모든 일들 또한 불교의 수행의 방법이겠지?

8. 사랑의 신화
사랑의 신화야 말로 우주의 가능 놀라운 신화라고 생각한 캠벨. 사랑의 의미로 사탄, 관세음보살, 예수 모두 불려 나온다. 이번 장에서는 남녀의 사랑은 물론 만물에 대한 사랑으로 사랑을 나눠보기도 한다. 특히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빠지지 않고 캠벨이 이야기 하는 사랑의 대표적인 신화로 단테가 그의 영혼이 지옥에 빠진 것을 순전한 고통으로 묘사했던 부분을 바로 잡을 수도 있지 않을까 라고 의문을 제시할 만큼 그는 사랑에 대한 순수한 관점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캠벨은 “인간이 사랑스러울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불완전함 때문이다”라는 토마스만의 말을 인용하면서 인간애에 대해 주문하고 있다.

9. 전쟁과 평화의 신화
이 장에서 캠벨은 전쟁에 대한 세가지 관점을 요약,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결국 캠벨은 “역설적으로 평화와 전쟁의 신화는 사실 같은 것이다.(238P)”라고 이야기 하는 그는 결국 피안의 지혜는 모든 반대 개념을 넘어서기에 필연적으로 전쟁과 평화의 반대 개념을 초월하고 포함해야 한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10. 정신 분열증-내면으로의 여행
그는 정신분열증 걸린 사람이 겪는 경험들과 신화의 전형은 같은 종류라고 이야기 한다. 결국 신화 속 영웅이나 샤먼, 신비주의자, 정신분열증 환자의 내면 여행은 원칙적으로 똑같다는 게 그의 입장인데 차이는 그 내면의 바다에서 수영을 하느냐 익사하는 차이다. 성인이나 수련자들은 내면의 바다에서 수영을 해 본인의 내면을 극복해 내지만 정신분열증 환자는 익사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귀혼을 하거나 병이 나으면 이는 부활로 경험된다.즉 ‘두 번 태어난’자아의 탄생으로 더 이상 낮은 세계에 머물지 않는다.(274P)” 캠벨은 또 인류에게는 신화가 탄생 이후의 삶에 대한 적응을 위한 과정에 생물학적 기능을 수행한다고 이야기 한다. 신화는 그만큼 인류가 있는 한 결코 빠질 수 없는 필연이라는 게 그의 의견이다.

11. 달 위를 걷다.-외면의 여행
캠벨은 달 착륙 후 “지구와 인간 정신의 법칙은 전에는 신의 능력과 영역이었으나 이제는 인간의 능력과 영역으로 인식된 것과 통합될 만큼 확대되었다.( 290p)”라고 이야기 한다. 달 착륙은 우리 내면을 향한 여행이었고 달 여행의 실현과 방송은 새로운 정신적 시대로 인간 의식을 바꾸고 깊고 넓게 했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우리가 외부 자연 뿐 아니라 깊은 내면의 신비를 향한 커다란 정신적 도약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293P)”으로 캠벨은 달 착륙의 시대에 “우리는 실로 이 세상의 눈과 귀, 생각, 말 혹은 신학적으로 말해, 신의 눈,신의 귀, 신의 생각, 신의 말이다. 마찬가지로 행성이 떠 있는 무한한 정신의 창조 행위에 항상 지금, 여기에서 참여하는 자”라는 말로 이 장을 마무리 하고 있다.

12. 글을 맺으며: 더 이상의 한계는 없다.
이번 장에서는 캠벨은 이야기 한다. ‘신’ 그는 “그는 틀에 맞춰진 자가 아니다. 숨을 쉬므로 ‘숨’,말을 한다 해서 ‘목소리’라고 부른다. 보기 때문에 ‘눈’이라고 하고, 듣기 때문에 ‘귀’ 그리고 생각하기 때문에 ‘마음’이라 부른다. 이 모든 것은 그의 일에 따라 그를 부른 이름이다. 그러므로 이들 중에 어느 하나만 숭배하는 사람은 그를 진정으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299P)”
우리는 어떤 신에 의해 우리가 지구에 온 게 아니라 지구에서 태어났으며 “우리는 지구의 눈이자 정신이고, 지구가 보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결국 우주의 정신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우주의 법칙과 우리의 법칙은 하나다!”라고 이야기 한다. 결국 신화는 외부뿐 아니라 내부에 있는 무한한 우주와 그 빛에 관한 신화여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더 이상 “‘다른 곳’이 없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다른 곳’과 ‘이방인’을 말하거나 가르치는 신화는 이 시대의 필요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이야기 한다. 그렇다면 새로운 신화는 무엇인가? 그것은 “오래되고 영원한 신화,기억하고 있는 과거나 상상한 미래가 아니라 ‘지금’에 대해 시적으로 새로워진 신화(313P)라고 이야기 한다. 결국 어느 한 개개인의 신화가 아닌 지구를 아우르는 전체의 현재 신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의 다양한 사상을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무리일 것이다. 따라서 한 단면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그의 이야기를 적어보자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캠벨은 동,서양의 다양한 신화적 비교를 거쳐도 신이라는 것은 어떤 한가지 형태로 언표될수 없이나 인류에게는 신화와 의례는 필연적인 것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 같다. 과학의 발전으로 실제와 신화에 대한 비교가 이루어지고 어떠한 것들은 사실이고 아니고가 밝혀지고 있지만 결국 과학 또한 신화가 이야기 하는 것처럼 그것도 진리에 대한 열망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캠벨의 입장이다.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오히려 “과거 종교가 주거나 수없이 제안했던 것보다 더 크고 더 생생한 계시가 존재하는 것 같다.(30P)”라는 게 그의 이야기이다. 캠벨은 이제 이 시대에 새로운 신화가 필요하다고 이야기 한다. ‘오래’되고 ‘상상한 미래’가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지구’에 있는 ‘우리’에 대한 신화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형태일까? 이 시대에도 신화가 만들어질까가 궁금했던 나의 지속적인 궁금증에 ‘필요성’으로 답하는 역시나 어렵고도 신비로운 그이다. ‘캠벨’ 그 스스로가 바로 지구적 마인드를 가지고 그의 이야기를 써나가, 우리에게 다양한 사고 스펙트럼과 영향을 끼친 그가 요구하는 ‘새로운 신화’ 이야기의 주인공 중의 하나가 아닐까?

아쉬운 점
이번 책은 각 장의 마무리가 부실한 경우가 눈에 띈다. 뭔가 정리되는 이야기로 끝맺으면 좋을텐데 예시를 들다가 끝난다던가, 서둘러 끝내는 경향이 보여 강한 임팩트가 부족한 듯 하다. 물론 이는 나의 이해력이 아직 캠벨이 그것을 이해하기엔 짧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이번 책 역시 글 전체가 한번에 읽고 한가지 흐름으로 귀결되도록 정리되기엔 뭔가 어렵다. 그의 의견들이 상징적인 예시 뒤로 숨어있거나 다른 이의 의견에 감춰져 있어 감을 잡지 못할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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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4.21 09:46:30 *.244.220.254
'저자에 대하여'에서 캠벨에 대한 논란과 이슈에 대해 재미있게 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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