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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21일 09시 55분 등록
신화의 이미지
조셉 캠벨, 홍윤희 옮김, 살림

I. 저자에 대하여
조셉 캠벨(Joseph Campbell, 1904 - 1987)

본 내용은 『신화의 이미지』에 소개된 저자의 연보이다. 하지만 원문에는 저자의 연보는 없었다고 역자 홍윤희는 이야기했다. 조셉 캠벨을 소개하는 기관에서 소개한 내용을 번역한 것이라고 역자는 설명했다. 그중 몇 가지를 여기서 소개하고자 한다.

1927-1928년
연구비를 지원받아 프랑스 파리 대학에서 『크리스탄과 이졸데』의 번역자인 조지프 베디에르 아래서 로망스어, 문헌학, 고대 불어, 프로방스어를 배운다. 여기서 그는 현대 미술(피카소와 브라크)과 현대 문학(예이츠, 엘리엇, 그리고 특히 조이스)을 처음 접하게 된다. 그의 친구 안젤라 그레고리는 캠벨에게 미학을 가르친 저명한 조각가 앙투안느 부르델의 스튜디오에서 캠벨의 흉상을 만들어주기도 하였다. 그는 뮌헨 대학으로 옮겨가 산스크리트 문학과 인도 유럽 철학을 공부하였고, 프로이트, 융, 토마스 만, 괴테 등의 작품을 접한다.

1929년
미국 주식시장 붕괴하기 2주 전에 귀국했다. 준비하고 있던 박사 논문을 접고 여동생 앨리스와 함게 우드스탁 숲 속에 있는 1년에 20달러짜리 오두막에 세 들어 살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파리에서 시작한 공부를 이어, 엄청난 양의 독서를 한다.

1931-1932년
진로를 구상하기 위해 혼자서 차를 몰로 그의 어머니가 운영하던 Model T Ford로 향해 간다. 가는 길에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 들러 그의 오랜 친구이며 영양사인 아델 데이비스를 만났다. 그는 캠벨에게 존 스타인벡과 캐롤 스타인벡 부부와 그들의 이웃이었던 생물학자 에드 리켓을 소개해 준다. 에드 리켓과 캠벨은 알래스카의 브리티쉬 콜럼비아까지 해안을 따라 여행하며 조수간의 동군을 수집하는데, 이 여행은 신화학과 생물학 사이의 관계에 대한 그의 믿음을 재확인 시켰다.

1933년
85개의 대학들에 지원을 한 끝에 그의 모교였던 캔터베리 예비학교에 취직하여, 역사, 영어, 불어, 독어를 가르치는 한편, 슈펭글러, 토마스 만, 융, 조이스에 대해 공부한다. 그는 그해 말에 은퇴하고 다시 우드스탁으로 돌아와 독서와 집필에 열중한다.

1934년
사라 로렌스 대학에서 교수로 초빙된 그는 이후 38년간 이 대학 문학부에 재직한다.

1938년
그의 학생이었으며 마사 그레이엄 무용단 단원이었던 진 어드먼과 결혼한다.

1941년
인도연구자 하인리히 침머를 만난다. 침머는 캠벨을 볼링겐 시리즈의 설립자 폴 멜론과 메리 멜론에게 소개시켜준다. 캠벨은 볼링겐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자 그의 첫 번째 출판물인 제프 킨 글, 모드 오크스 그림의 『그 두 사람이 아버지에게 온 곳: 나바호족의 전쟁의례 Where the Two Came to Their Father: A Navho War Ceremonia』라는 주석본을 만들게 된다.


II.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옮긴이의 말

캠벨은 신화가 바로 이 보물이 가득한 동굴로 들어가는 통로라고 본다. 그리고 그 동굴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보물을 발견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내면으로 더 깊게 파고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캠벨의 책은 바로 이 보물이 가득한 동굴로의 초대이다. 6p

우리는 책을 펼치는 순간 비슈누 신과 함께 잠든다. 그리고 내내 세계의 꿈을 꾸게 될 것이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에 이르러 우리는 잠에서 깨어난다. 하지만 꿈을 꾸고 난 당신은 더 이상 꿈꾸기 전의 당신이 아니며, 당신이 바라보는 지구는 꿈꾸기 전의 지구가 아니다. 깨어나서 우리는 우리가 신화 속을 살고 있음을, 꿈을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9p

저자 서문

신화는 꿈의 본성에서 비롯된다. 꿈은 깨어있는 의식에 알려지지 않은 채 내면세계로부터 떠오르는 것이며, 이는 신화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삶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12p

1. 꿈으로서의 세계 The world as dream
Chapter 1 잠의 지배자
이 젊은이들이 빛나는 신의 꿈인가? 아니면 신이 이 젊은이들의 꿈인가? 26p

신이 피조물이 신의 꿈을 꾸고 있다. 다시 한번 질문을 던져보자 욥이 야훼의 창조물인가, 아니면 야훼가 욥의 창조물인가? 판다바 형제들이 비슈누 꿈속이 환상인가, 아니면 비슈누가 그들의 상상인가? 우리들이 스스로 믿는 것처럼 우리는 어떤 고결한 신비의 반영인가? 그렇다면 그 신비가 ‘신’에 관한 우리의 상상 속에서 적절하게 표상되는가? 29p

C.G. 융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약에 무의식을 의인화시킬 수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집합적 인간존재로, 다시 말해 양성의 성격을 다 갖추고, 젊음과 노년, 탄생과 죽음을 넘나들며, 백만 년이나 이백만 년 동안의 인간의 경험을 고루 갖추고 있는, 불멸의 존재로 생각할 것이다. 그런 존재가 있다면 그는 변화하는 현세의 모든 것들보다 더 고귀한 위치에 자리 잡을 것이다. 그에게 현재란 더도 덜도 아닌 예수보다 십만 년 전의 어느 해(年)를 의미할 것이다. 그 존재는 오랜 옛날부터 꿈을 꾸는 자이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경험으로 인해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훌륭한 예언자일 것이다. 그는 무한히 긴 세월 동안 개인의 삶, 가족의 삶, 보족의 삶, 국가의 삶을 계속 반복하여 살아 왔으며, 성장하고 피어나고, 부식하는 삶의 리듬 감각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32p

Chapter 2 죽음과 부활의 신

Chapter 3 경이로운 아이

그림33. <성모와 선지자>, 200년경 그림 설명
젊은 여인이 앉아서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이고, 발가벗은 아기를 그녀의 무릅 우에 안고 있다. 아기는 한 손으로 엄마의 젖가슴을 쥐고 깜짝 놀라서 앙증맞게 뒤를 돌아보고 있다. 여인은 아름답고 강인한 로마인의 모습이다. 그녀의 튼튼한 팔이 드러나 있고, 약간 크고 타원형인 균형 잡힌 얼굴과 숱이 많은 검은 머리가 속이 비치는 베일에 살짝 가리워져 있다. 이것은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에 의해서 묘사되었듯이, 이미 성모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58p

프로이트의 초기 협력자였던 오토 랑 Otto Rank은 그의 유명한 연구서 『영웅 탄생의 신화 The Myth of the Birth of the Hero』(1922)에서 이 일반적인 테마에 관한 70개 정도의 예(여기에 수천 개는 더 더해질 수 있을 것이다.)를 정신분석학적으로 분석하면서,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 본질적 요소를 밝히고 논의하였다. 63p

1. 아기는 고귀하며 신성한 부모의 혈통이거나, 신과 지상의 처녀 사이에서 태어난다.
2. 탄생 과정에는 매우 이례적인 난관들이 수반되는데, 이 난관들은 보통 자신의 아버지이거나, 잔인한 삼촌이나 왕처럼 아버지의 태리격이 아이에게 살의를 품으면서 생겨난다.
3. 아기는 버려지거나(로물루스와 레무스, 혹은 외디푸스의 경우)어딘가로 보내지거나 유괴되는데, 홀로 버려지기도 하고 그 어머니와 함께 버려지기도 한다(페르세우스와 다나에, 또는 아기예수와 마리아의 경우).
4. 버려진 아이가 구출된다. 동물에 의해 구출되거나 대개는 시골에 사는 평범한 사람에 의해 구출된다(기독교 전설에서는 둘 다에 의해 구출된다. 어린 당나귀와 가난한 목수인 요셉).
5. 결국 청년이 되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오는 영웅은 자신의 아버지를 타도하고 스스로 아버지가 차지하고 있던 지위에 오르거나(외디푸스, 페르세우스, 구약을 대체하는 예수의 신약), 아버지와 화해하고 아버지의 과업을 완수한다(구약의 실현으로서 신약).

Chapter 4 강력한 여신

세계라는 꿈의 극점으로부터 분리를 의미하는 이 온화한 모습의 타라는 우리를 미혹시키는 즐거움이나 공포의 주술로부터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해방시키러 온다. 74p

우주 기원의 본질이자 여성성와 개인성의 본질은 마야는 다음의 세 가지 힘을 지녔다고 한다.
1. 감추는 힘: 사물의 실재적, 내적, 본질적인 성격을 감추거나 은폐하는 힘이다. 어느 산스크리트 경전에서는 “그는 모든 생물체에 들어 있지만, 그 아트만은 겉으로 비춰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2. 투영하는 힘: 환영으로서의 인상과 생각을, 그와 결합되는 욕망이나 혐오와 함게 방출하는 힘이다. 예를 들어 밤에는 밧줄을 뱀으로 오해하고 소스라치게 놀랄 수 있다. 무지(감추는 힘)가 실재를 은혜하다면, 상상력(투영하는 힘)은 현상을 전개한다. “이 투영하는 힘은 모든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들을 창조한다. 그것이 신의 모습이건, 우주의 모습이건.” (중략)
3. 트러내는 힘: 이것은 예술과 경전, 의례와 명상을 알게 하는 역할을 한다. 75p

이브 때문에 신이 ‘휴식을 취하러 오시던’ 에덴동산의문이 닫혀 버렸기 때문에, 여성의 아름다움은 ‘악마의 문’이 되었다(그림56). 그 파국을 해결할 열쇠는 마리아에게 주어졌다. 마리아의 처녀성은 신을 위한 문이 되고, 그녀의 모성은 ‘천국을 향한 문’이 되었다(그림 52). 80p

「도마보금」
너를 이끄는 자가 너에게 “보라, 왕국은 천상에 있다.”고 말한다면, 천상의 새들이 네 앞에 있을 것이다. 그들이 너에게 “그의 왕국은 바다 속에 있다.”고 말한다면, 물고기가 네 아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왕국은 네 안에 있고, 네 밖에도 있다. 네가 제 자신을 알게 된다면 너는 네가 살아있는 아버지의 아들임을 깨닫게 되리라. 하지만 네가 네 자신을 알지 못하면 너는 가난 속에 있을 것이고, 네 자신이 가난이 되리라(80:28-30). 84p

2. 우주 질서에 대한 생각 The idea of a cosmic order

Chapter 1 문자 전통과 무(無)문자 전통

그러나 더욱 중요한 이유는 결국 현재 우리의 삶 속에서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모든 철학, 신학, 신비주의와 과학이 사실은 다양하게 굴절되고 발전해온 하나의 위대한 문자화된 세계유산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그 역사, 해석, 적용방식, 주안점, 그리고 지역적 목적들은 달랐지만 어쨌거나 이들은 기원에 있어서 하나이며, 그 물려받은 상징들에 있어서도 하나이다. 99p

Chapter 2 세계산

지상의 질서에 상응한다. 모든 사제-왕은 (우주의 축소판인) 자신의 영토 안에서 신의 은총에 의해서 신성의 완전한 이미지가 된다. 그리고 이런 발상은 고도로 상징적인 시기가 지난 후에도 지속된다. 모든 왕좌는 천상에 있는 성좌의 이미지이다. 왕의 정원은 신의 정원을 반영한다. 왕좌를 향해 오르도록 계단이 놓여 있듯이 천국을 향해 계단을 오른다. 113p

과학, 예술, 의례와 관습, 심지어는 옷 입는 예절이나 장신구, 그리고 권위의 상징물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든 국면을 망라하는 그토록 많은 부분에서 양자가 정확히 일치하는 현상이 단지(프레이저의 말을 다시 빌자면) “서로 다른 나라, 서로 다른 하늘 아래 사는 인간 정신의 유사한 구조에 비슷하게 작동하는” 결과로서 생겨난 것이라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과연 인간의 신경체제가 그 정도로 ‘프로그램밍’ 되어 있다고 가정할 수 있을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나 많은 면에서 비슷한 이 두 가지 문화가 완전히 분리된 채 서로 독립적으로 발전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문화 역사적인 면에서 전파론자들은 어떻게 주장할까? 128p
Chapter 3 중앙아메리카의 세계산

샤먼과 재규어는 둘다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것으로 믿어지며, 그런 의미에서 캘리포니아 대학의 피터 퍼스트 Peter Furst 교수가 말했듯이 “샤먼과 재규어는 단순히 힘이 동등한 것이 아니라 샤먼이 동시에 재규어고 재규어가 샤먼이었다.” 그러므로 이런 관점에서 올메카 입상들 중에 환관처럼 생긴 신기한 몸의 형태가 범처럼 생긴 모습들은 실제 인간을 모델로 했다기보다 신화적 관념, 즉 “사제, 혹은 샤먼에게 내재되어 있는 초자연적인 재규어의 능력, 재규어와의 영적인 유대와 동일한 정체성, 그리고 총체적인 영적 변형 능력으로 동물과 인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인간들 사이에서는 특별한 그의 역량”을 나타내는 것일 수 있다. 144p

크뢰버는 1923년 『인류학 Anthropology』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우선적으로 주의해야 할 점은 독립적인 발전으로 설명하려 할 때 유사성들이 너무 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만약 그런 유사성들이 장신구 하나 정도로 비본질적이고 개별적이라면, 효용성을 생각해볼 때 그 비율은 확실히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무작위로 골라낸 숫자나 이름은 다르다. 그 경우 독립적 발전의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된다. 그런 고유한 특징들이 함께 나타나기란 백만 번에 한 번도 힘든 것이다.” 158p

그런다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중앙아메리카의 역법의 기원을 멕시코가 아닌 중국에서 찾아야 한다고 하면 너무 지나친 것을까? 어떤 경우라도, 지상과 하늘을 통제하는 수학적 질서의 신화들은 동일하다. 183p

마야인들이 자신들의 연대기를 그들이 역법을 발명한 시기보다 거의 3,000년 전부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마야의 연대기는 실제의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어떤 가상적 사건으로 시작된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그것은 세계 창조와 같은 가정적 사건을 것이다. 아마 그 연대기는 그들이 자신들의 신의 생일로 가정하는 날짜부터 계산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 질문을 결론짓지 못한 채로 그 막연하고 먼 과거에 남겨두는 수밖에 없다. 186p

삶이란 죽음의 얼굴 위에 덮어쓴 가면일 뿐이다. 그렇다면 죽음도 또 다른 가면일 뿐인가? 아즈텍 시인이 물었듯,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저 너머에 진실이 있다고, 혹은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단지 꿈꿀 뿐, 우리는 꿈속에서 태어날 뿐.
모든 것이 꿈이라네...... 199p

Chapter 5 순환하는 시공간의 세계

중국에서도 세계의 원소는 다섯 가지인데 인도와 동일하지는 않다. 이 다섯가지는 나무(木), 불(火), 흙(土), 쇠(金), 물(水)인데 보통 이 순서대로 상생의 관계에 있는 것으로간주된다. 즉 나무는 장작으로 쓰여 불을 낳는다. 불은 재로 변하여 흙을 낳는다. 흙은 바위 속에서 금속이 자라도록 길러줌으로써 쇠를 낳는다. 쇠는 금속 거울처럼 밤에 내놓으면 이슬을 빨아들이거나 배출해서 물을 만든다. 그리고 물은 식물 속으로 들어가 다시 나무를 낳는다. 202p

헤라클레이토스는 불이 모든 것의 근본적인 활성체이며, 사랑이 아닌 다툼으로 대립쌍을 한데 모음으로써 우주를 유지하는 원리라고 보았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전쟁은 모든 것에 공통적이고, 다툼은 정의이며, 그래서 모든 사물은 다툼에 의해서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그와 동시대인인 붓다가 유명한 ‘불의 설법’에서 말한 것처럼) “이 세계와 모든 만물들은 특정 신이나 한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언제나 살아있는 불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불처럼 타오르고 소멸해가는 것이다.” 206p

그리스도와 성모마리아의 전설을 위해서 성단이 지어지고 또한 그 전설 속에서 교회당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처럼, 거기에는 시간과 공간, 영원의 조작들에 앞서 우리 자신과 모든 사물들에 들어있는 어떤 씨앗이나 부분에 대한 지식이 암시된다. 그리고 그것은 태양과 달과 샛별 속에서 꺼지지 않는 빛이 우주의 법칙에 따라 떠오르고 지는 것처럼 결코 죽지 않고 계속해서 새롭게 태아난다. 그것이 불과 바람에서 태어나고, 물과 대지에서 태어났듯이 그것은 모든 생명 속에 살아있으며, 모든 것보다 앞서 태어나고, 모든 것 보다 오래 산다. 224p

Chapter 6 변형의 중심

하늘과 땅, 심지어는 비존재와 존재가 둘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고 거기에 동화될 때, 마르지 않는 샘처럼 생의 기쁨이 모든 것으로부터 흘러넘칠 것이다. 224p

정신과 만물의 ‘빛 중의 빛’을 상징하던 그 본래의 신비한 함의를 대신했다. 그 시기 이교도의 『헤르메티카』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것 중에서 신이 아닌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규모도, 공간도, 질도, 형태도 시간과 신을 둘러싸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그분은 모든 것이며 모든 것은 모든 것에 둘러싸고 모든 것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모세를 통해 알려진 유대의 엄격한 율법의 상징들로 대체되어 왔다. 253p

3. 연꽃과 장미

Chapter 1 꽃의 권장

윌리엄 브레이크는 「천국과 지옥의 결혼」에서 이렇게 적었다. “만약 인식의 문이 정화된다면, 만물은 그 자체의 무한한 모습을 인간에게 드러낼 것이다. 인간이 스스로 동굴의 좁은 틈을 통해 모든 사물을 접하는 이상, 인간은 자기 자신을 가두고 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사고가 중국 선불교의 개조인 혜능(638-713)의 “우리의 순수한 정신은 타락한 정신 속에 있다.”는 말에도 나타난다. 그리고 천 년 뒤, 일본의 고승 하쿠인(1685-1768)도 이렇게 말한다. “바로 이 땅이 순수한 연꽃의 땅이며, 이땅에 널리 펼쳐져 있는데, 인간은 그것을 보지 못한다.” 제임스 조이스는 『율리시스』에서 ‘DOG'라는 단어를 거울을 통해 비춰보니 ’GOD'으로 전도되더라는 대목에서 똑같은 생각을 보여준다. 268p

Chapter 2 꽃받침

하얀 천상의 장미 속에 서서 저 위의 빛을 응시하던 단테의 눈에 비친 장면과 비교해보자

높고 높은 빛의 깊고 밝은 실체 속에 세 가지 빛깔, 같은 나비의 세 개의 원이 나타났다.
두 개의 무지개처럼 첫째 원은 그 둘에서 균등하게 발해지는 불처럼 보였다.
아아, 내 말은 생각에 비해 얼마나 약하고 모자라는가, 그리고 이 생각 또한 내가 본 것에 비하면 ‘조금’이라는 말조차도 못할 만큼 모자라는 것이다!
아아, 영원한 빛이시여, 당신은 당신 안에서만 계시고,
당신만이 당신을 아시고, 당신에게만 알려지고,
당신을 알면서 사랑하고 웃으시는도다!
그 두 번째 원은, 말하자면 반사된 빛으로 당신 안에서 생기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 원을 찬찬히 바라보고 있노라니, 그 안에 그것과 같은 빛깔을 한 우리들 인간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것 같았다.
내 시선은 온통 그 모습으로 쏠렸으나
원의 둘레를 재려고 열정했던 기하학자가
아무리 궁리를 해도
자신에게 필요한 원리를 못 찾아내듯이,
그 기묘한 모습을 본 나는 어찌하여 그 상이 원에 합치하며, 어찌하여 그 상이 거기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이를 위해서는 내 날개만으로 부족했던 것이다.
그러나 돌연, 내 날개만으로 부족했던 것이다.
그러나돌연, 내 머릿속에 번개같이 섬광이 스치더니,
내가 알고자 한 것이 빛을 발하며 다가왔다.
내 공상의 힘도 이 높이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그러나 사랑은 벌써 내 소망과 내 마음을
한결같이 드는 수레바퀴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태양과 뭇 별들을 움직이는 사랑이었다. 288p

Chapter 3 저 아래 흐르는 물, 저 위에 흐르는 물

물론 붓다에게서 나타난 삶의 은총이 대중적인 코끼리 숭배에서보다 더 높고 영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 코끼리 숭배에서 받는 은총 역시 삶의 은총이다. 따라서 빵과 포도주로 이루어지는 기독교의 성찬식에서처럼, 더 예날 ‘지상의’ 탈 것들은 ‘영적인’ 양식으로 변모해갔으며, 그래서 불교에서 구세주가 강림하는 이미지에서 붓다는 더 옛날 지상의 존재였던 코끼리를 타고 온다. 말하자면 성체화되고 높은 곳에서 빛나며 하강하게 된 것이다. 298p

Chapter 4 황금의 씨앗

살아 있는 존재는
머리카락 하나를 백 갈래로 가르고
그 갈라진 가락을 다시 백 갈래로 갈라
이런 식으로 백 번을 백갈래씩으로 갈라서 나온
백 갈래 중의 한 갈래 끝과 같은 것.
그리고 그 안에 무한이 들어 있다.

이는 여자도 아니요, 남자도 아니요, 중성도 아니다.
다만 그가 어떤 육신을 입는가에 따라
그 안에 깃드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그는 모든 생물체에 숨어 있으며
각각의 아트만은 우리에게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지극히 뛰어나고 미묘한 지혜를 지닌 사람의 지극히 세밀한 시간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이다. 308-309p

흥미롭게도 ‘연결고리’를 나타내는 라틴어 ‘vinculum'은 산스크리트로는 ’카타카 kataka', 즉 ‘피안의 지혜’인 반야바라밀다로서의 여왕 디데스의 수인명으로 연꽃과 그 그림자가 만나는 그 신비한 접점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313p


III. 내가 저자라면

나는 『신화의 이미지』를 끝까지 읽지 못하고 내가 저자라면을 쓰고 있다. 처음에 책을 선택한 이유는 조셉 캠벨의 대표작이라는 책 소개 때문이다. 옮긴이 홍윤희는 이책의 그림을 유심히 봐줄 것을 당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은 수많은 그림이 등장한다. 421개의 그림에 자세한 설명까지 곁들인 책이다. 사실 본문의 내용보다 그림에 대한 설명이 양적으로도 더 많다고 봐야한다.

친절한 그림
『신화의 이미지』는 책의 제목처럼 이미지를 강조했다. 책의 내용은 그림을 설명하는 것이라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그림이 등장한다. 주목할 점은 그림의 상황설명에 있어서 저자가 생각하는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사진을 좀더 자세한 부분까지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저자 캠벨의 학문적 깊이를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기도하다. 나는 그냥 그림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저자는 그 그림의 표정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았다. 어떤 그림은 너무 오래된 나머지 흐릿하게 보였다. 그런데 캠벨의 그의 상상력으로 그 그림을 다시 글로 재현해 놓았다. 그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책의 전체 내용에서 확연히 느낄 수 있다. 그 설명의 세세함에 놀랬다.

아쉬운 점 몇 가지

책을 읽으면서 사전 지식의 중요성을 여실히 느끼고 있다. 특히 나에게 신화는 더욱더 그렇다. 그래도 앞에서 3권의 책을 보아서 그런지 좀 나아지긴 했으나 이것이 몇 권의 책을 짧은 기간에 본다고 하여 금방 좋아질 성격은 아닌 듯싶다. 깊이 사고해야 하는 책일수록 시간의 한계를 절감하게 한다.

지극히 전문가를 위한 책
책은 대중성을 지향할 수도 있고 보다 더 전문성을 고수할 수도 있다. 『신화의 이미지』로 보자면 적어도 나에게는 지극히 전문가적 향기가 물씬 풍기는 그런 책이다. 사실 처음에 그림이 많아 책 읽은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급기야 마감에 임박하여 책을 반밖에 보지 못하고 글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읽어본 캠벨의 책 대부분이 대중성 보다는 전문성이 돋보이는 책이었다. 특히나는 신화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조차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그의 책을 보기 시작했는데 역시 어려운 일이었다.

초보자를 위한 배려
책을 쓰면서 초보자를 생각하며 쓸 필요가 있을까? 작가가 자신의 생각을 필역하면서 비전문가에 대한 배려까지 신경을 써야하는 것일까? 이러한 물음을 스스로 해봤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래야 한다고......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읽힐 수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혹자는 대중의 인기에 연연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이야기를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더라도 나는 쉽게 표현된 책이 더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많이 생각하고 깊이 사고해야 이해할 수 있는 책이 있다. 한 페이지를 넘기는데 한 시간 이상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어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읽는 이의 몫일까?
이러한 관점에서 나는 『신화의 이미지』가 좀더 많은 사람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초보자를 위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이러한 배려는 어떻게 가능할까?
좀더 현실적인 예로 신화를 투영시키는 것은 어떨까?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너무도 오래된 이야기 말고 그것을 현실세계와 가까운 시기의 것을 예로 드는 내용으로 접근하면 좀더 이해가 빠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을 해봤다. 물론 이것은 현실적 대안이다. 학문적 접근과는 좀 다른 시각으로 보자는 것이다. 캠벨의 영웅 신화가 꼭 영화나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시종일과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그것이 현실세계에 투영된 예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공감할 수 있으면 이해도 빨라진다.
책을 읽는 내내 어렵고 지루했다. 책의 내용이 어떻다는 것을 느낄 수 없을 정도였다. 어렵다고 생각한 것은 내 앎의 깊이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지루함은 내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의 것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시 공감의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 것 같다. 특히나 신화와 같이 보이지 않는 것을 대상으로 할 때는 보통 난해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동안 나는 신화는 신화일 뿐 그것은 현실과는 거리가 먼 꿈같은 이야기로 치부해왔다. 이러한 이야기는 그 이름만 다를 뿐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동화 속에서도 나오고 소설 속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하는 것이다. 동화나 소설이 신화의 모티브를 빌려왔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 신화 또한 사람에 의해 쓰여 진 소설이다.

어느 시대에서건 삶의 파편은 제 각각이기 마련이다. 바라보는 시각과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리라. 신화가 대중의 공감력을 얻으려면 그 속으로 들어와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원효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는 대중 속에서 천복을 좇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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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08.04.21 17:51:01 *.117.241.251
홍스야.

나만 어려운 줄 알았는데 너도 어려웠구나.

갑작스러운 외국출장에 힘들기도 하겠지만 열심히 응원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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