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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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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27일 23시 13분 등록
1. 내가 저자라면
4월 “캠벨과 함께하는 달”이 끝나게 되었다. 4월 한달 같은 작가에 대해 매번 새로운 시각 또는 부분에서 글을 쓰기가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얻게 된 점도 많은 것 같다. 누가 물어보거나 툭 건드려도 캠벨에 대해서는 줄줄줄 외워 낼 수가 있는 수준이 된 것이다. 어쨌든 이번 연구원 4월 과제를 통해 ‘조셉캠벨’이라는 금세기 최고의 비교신화학자라고 칭송 받는 (칭송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칭송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과연 있는) 사람에 대해 알게 된 것은 큰 얻음이다. 그동인 무지했던 종교나 신화라는 부분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도가 향상되었고, 특히 종교 부분에 있어 평소 기독교 쪽에 대해 많은 의문을 품었던 점들에 대해 어느 정도 합당한 생각의 갈피를 정리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이번에는 최종적으로 캠벨에 대해 종합해서 정리해 볼까 한다.


그의 약력

-1904년 : 뉴욕, 아일랜드계 카톨릭 가정에서 출생
-1924년 : 유럽여행중 지두 크리슈나무르티와 만남. 그 뒤 힌두교와 불교에 흥미를 가지게 됨
-1927년 :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수학
-1928년 : 뮌헨 대학에서 사크르이트와 인도-유럽어족의 언어, 괴테와 토마스만,프로이트,융의 사상등 다양한 방면의 공부. 하지만 미국 대공황의 시작으로 귀국
-1929년 : 유럽에서의 유학을 마치고 돌아옴. 콜롬비아 대학에서 산스크리트어와 중세문학에 대한 연구 계획제출, 거절 / 학위과정을 포기 독자적인 연구 진행
-1933년 : 모교 캔테베리 프레프 스쿨 교사로 임명
-1934년 : 사라 로렌스 대학의 교수로 발탁. 이후 38년 동안 문학, 독일 철학, 비교 신화학등을 강의
-1987년 : 호놀룰루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83세의 나이로 별세

캠벨이 신화에 빠져든 계기

장면1. 어린 꼬마 시절 조셉캠벨. 당시 해마다 벌여지던 공연 〈와일드 웨스트 쇼〉를 보게 된 꼬마조셉은 그만 인디언을 짝사랑하게 된다. 인디언을 좀더 알고 싶은 그는 아메리카 인디언의 신를 읽기 시작했다.

장면2. 이로부터 오래지 않아 그는. 아메리카 인디언 신화를 읽다가 학교에서 수녀 선생님에게 들은 것과 똑같은 모티프가 나오는 것을 보고 약간 충격을 받았다! 세상에! 이런 얘기가 다른 곳에도 나오잖아!

그 뒤 어린 캠벨은 신화에 폭 빠져 더더욱 공부해 보고자 하는 욕심이 생기게 되고 이런 어릴적 장면들은 바로 본인 스스로 이야기 한 ‘천복’을 잡게 된, 한 평생 그의 열정을 쏟아 붓게 된 시초였다.

그의 사상과 비슷한 종교를 꼽자면,불교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던 집안에서 자란 그는 결국 ‘나는 기독교도가 아니다’라고 공표했다. 신화를 스스로 공부해 나가면서 나름의 신에 대한 정의를 이루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당당하게 “ 당신의 신은 나의 신이 아니다. 따라서 내게 그것을 강요하지 말라.”라고 이야기 할 정도로 자신만의 정의가 확실한 사람이었다. 직접적으로 불교신자라고 알려졌던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자신이 생각하는 신의 정의와 맞는 종교가 불교라 생각하고 불교적 방법론과 사상들에 의지했던 것도 같다. 그의 집에 달마대사 초상이 걸려 있었다는 것, 명상을 꾸준히 해왔다는 것, 동서양의 신화와 종교등을 설명할 때 호의적인 해설과 이해는 그것을 나타낸다. 즉, 그는 불교의 기본 사상처럼 자신 안에서, 내면에서 신을 찾고자 했고 답을 찾고자 노력했던 것 같다.
그는 “오늘날에는 유효한 단 하나의 신화학은 지구라고 하는 행성의 신화학인데, 유감스럽게도 우리에게 이것은 없어요. 내가 아는 한, 지구라는 행성의 신화학에 가장 가까운 것은 불교입니다.” 라고 이야기 하기도 했는데 이 부분을 통해 보면 그의 선호되는 사상은 '불교'로 더욱 뚜렷해 진다.

그의 작품들

그는 생전에 20여권의 책을 쓰거나 집필. 우리나라에는 8권 정도가 번역되어 소개되어 있고 공동 집필로 2권이 더 번역되어 있다. (알라딘, 예스 24참조)
대표작
- 신의 가면(The Masks of God)(전4권)
- 신화와 함께 살기
- 신화의 세계
- 세계의 영웅신화
- 신화 이미지
- 네가 바로 그것이다
-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 신화의 힘
- 신화와 함께 하는 삶
- 현대인을 위한 신화

조셉캠벨에게 영향을 끼친 사람들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 : 20세기 영문학의 새 장을 연 작품을 쓴 손꼽히는 작가로 대표작 ‘율리시스’가 있음. 캠벨의 중요한 첫 책 ‘A Skeleton Key to Finnegans Wake’ (1944년)은 조이스의 마지막 작품인 ‘피네간의 경야’의 중요한 분석서이기도 함. 캠벨이 쓰는 ‘monomyth(원질 신화)’라는 단어는 조이스의 ‘Finnegans Wake’에서 빌려 쓴 단어이기도 함

-토마스 만(Thomas Mann) : 독일의 소설가이자 평론가. 다양한 장,단편 소설과 산문들을 써낸 작가.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도 인용된 "시인적 본성은 심리학적 관심과 무관하지 않고, 심리학적 관심은 신화에의 관심과 무관하지 않다" 라는 말을 했는데 캠벨에게는 분명 매력적이었을 작가였을 것임

-인류학자 레오 프로베니우스(Leo Frobenius) : 조셉캠벨은 종종 그의 지적 발전에 중요한 책으로 오스와일더 스펭글러(Oswald Spengler)의 ‘The Decline of the West(서양의 몰락)’를 지적하기도 하는데 그 작품 또한 레오 프로베니우스의 영향을 받아 성립된 작품.

-칼 융(Carl Jung) : 조셉캠벨의 사상과 개념은 융의 방법론과 매우 많은 영향을 받았음

-싱클레어 루이스(Sinclair lewis) : 캠벨이 자주 사용하는 천복이라는 표현은 그녀의 소설 ‘Babbitt’에 의해 영향 받은 것으로 그녀는 미국 사회와 종교의 문제점을 예리하게 비판하는 지성이었는데 조셉캠벨과 궁합이 잘 맞는 작가였을 것임.

-하인리히 짐머(heinrich Zimmer) : 짐머는 캠벨에게 신화는 복잡한 현대 사회의 미로에서 그 스스로를 찾기 위한 심리적인 로드맵을 제공하는 개인의 멘토의 역할이 될 수 있다는 핵심 사상을 전파했다.
캠벨은 후에 융의 해석적 기교를 차용하고 짐머의 세계 신화학의 해석과 같은 방식으로 그것들을 새로이

조셉캠벨에 대한 비판

그의 사후 비평가들 중 일부는 그를 반유대주의자라고 공격했다. 그것 들에 대한 이유 있는 반박은 캠벨 재단을 통해서 출판된 ‘네가 바로 그것이다’를 통해서 어느정도 반박된다고 보여지는데 나의 결론은 어쨰든 그는 결코 어떤 편협한 생각을 가지고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넓은 사고의 폭과 깊이 있는 통찰력으로 그의 논리를 있는 그대로 펼쳐 내 보이고 있는 하나의 지성일 뿐이다.

어찌되었건 평생을 한 사람이 공부했다고 하기에는 막대한 종류와 깊이를 공부해 낸 그는 과연 신화학을 떠나서도 대단한 대학자이다. 하지만 그 연구를 평생 즐겁게 생각하고 천복으로 생각한 그. 인생에서 ‘존재’ 란 죽음과 삶이 하나인 것이고 그 둘은 서로 균형을 잡아주어야 하는 것이라던 그는 분명히 달콤한 죽음을 맞이했을 것 같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서문
12P 캠벨은 인간 반응들 중 자비가 가장 고귀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것이 모든 전통들에서 똑같은 관심과 확신의 대상이 되지는 못했다.
14P 조셉캠벨 사후 그가 반유대주의자였다는 잘못된 비난이 쏟아졌었다. 그러나 그가 위대한 유대 신앙과 역사를 조명하면서 보여주었던 진정성과 세심함, 존경심을 안다면 그러한 비난이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 신구약 성서를 신화로 기술하는 것은 캠벨이 지적했듯이 그것을 깎아 내리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신화는 진리를 담는 일종의 그릇으로서 인구조사나 연감 같은 것들보다 훨씬 더 신뢰할 만한다. / 조셉캠벨의 목적은 성서 신화들을 탐구함으로써 그것들을 믿을 만하지 못한 것으로 폐기하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한번 그것들이 지닌 살아 있는 풍성한 의미들의 세계를 열어 보이려는 데 있다.
18P 노아 방주가 일종의 신화적 그릇이라는 사실, 즉 역사적 문서화의 결과가 아니라 영적 깨달음을 주고자 하는 한 비범한 이야기 안에 들어 있는 신화적 그릇이라는 사실들은 그런 여행을 하지 않고도 쉽게 노아 방주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창세기를 신화로 이해하는 것은 그 책을 파괴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지닌 영적 생명력과 그 의미를 다시 한번 발견하자는 것이다. / 그는 제도 종교에서 줄곧 영적 은유들을 역사적 사실들로 잘못 해석함으로 인해 생겨나는 수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19P 가령 동정녀 탄생은, 마리아의 생물학적 조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영적 거듭남을 말하는 것이다. / 약속의 땅은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인간 내면의 영역을 가리킨다. / 종교적 은유가 지니는 내포적 의미는 풍부하며 무시간적이고, 다른 어떤 외적 세계에 있는 누군가를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 지금 여기 있는 우리들 자신의 내적이고 영적인 경험을 지시한다.
20P 캠벨이 거듭 발견했듯이 영적 질문은 다른 사람이 아닌 우리 자신이 물어야 할 것이다.
23P 이 책은 이제는 정착된 것으로 보이는 유대-기독교 전통의 거대한 방주가 거쳐온 항해 속으로 사람들이 들어가서 영을 숨쉴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자 만들어진 최초의 사전 원고 같은 것이다. / 종교적 은유들을 마음과 영에서 우러나는 상징들이 아니라, 역사적이고 지리적인 사실로 이해하면서 여적인 권리들을 주장할 경우 세계는 끔찍하게 분열되고, 어쩔 수 없이 엄청난 비극을 맞게 된다.
24P 캠벨의 노고는 …. 복구시키는 예술품 복원가의 노고에 비교할 수 있다. / 사실 이 위대한 영적 은유는 그 외피만을 취하고, 그 안의 살은 던져버린 사람들에 의해 너무나도 파괴적으로 사용되어 왔다.
25P캠벨이 설명하는 바에 따르면, 세계의 종말은 … 자신들의 영적 통찰을 통해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사람들, 초월,신비의 성례전, 또는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가 썼듯이 ‘무한’을 향해 솔직한 사람들에게 매일매일 다가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의 종말은 어둡고 무시무시한 끝이 아니라 우리의 영적인 출발점에 대한 은유이다. / 이 전통의 가르침으로서, 그것은 우리가 자신에 대해 죽어서 다른 모든 사람들과 공유하고 있는 동일한 인간 본성을 드러내는 비전을 향해 부활할 것을 요구한다. 그것은 “네가 바로 그것이라”라는 가르침이다.
/ 21세기를 위한 캠벨의 메시지는 묵시록적이 아니라 희망적이다… 에덴으로부터 우리를 쫓겨나게 만든 욕망과 두려움을 정복함으로써 수치감으로 서로를 바라보지 않고,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인간성을 끌어안도록 하기 때문이다.

1.은유와 종교적 신비
30P 신화는 거짓말이 아닙니다. 전체적으로 신화란 상징적인 이미지들과 이야기들을 조합해 놓은 것이며, 인간 경험의 가능성들에 대한 은유이고, 특정한 시대에 이루어진 특정한 문화적 성취입니다.
31P 인류의 절반쯤은 종교 전통의 은유들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인다는 점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33P 나는 전통적인 신화들이 네 가지 기능을 한다고 본다. 첫 번째 기능은 존재의 근원적 조건에 의식을 맞추는 것이다.다시 말해 우주의 ‘신비스러운 떨림’을 향해 의식을 깨우고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1) 자기 밖으로 옮겨 놓거나 2)자기 안으로 깊이 침잠하게 되거나, 아니면 3)스스로 변화하게 한다. 나는 이것이 본질적으로 종교적인 신화의 기능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신비적인 기능인데, 이를 통해 존재의 신비의 차원을 발견하고 인식하게 된다.
두번째 전통적인 신화의 기능은 해석적인 기능. 바로 우주질서의 일관된 상을 제시하는 것이다.
37P 오래된 은유들은 창조에 대한 사시적인 서술들로 간주되었다. / 세번째 기능은 구체적인 도덕질서, 다시 말해 그 신화가 생겨난 사회의 질서를 정당화하고 지지하는 것이다… 이 세번째 기능을 통해 신화는 지리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조건 지어진 구체적인 사회 집단의 요구에 개인을 맞춤으로써 도덕 질서를 강화한다.
38P 인도에서 사티 의례나 신화뿐만 아니라 카스트 제도를 유지하는 것은 사회적 권위라고 할 수있다. / 네번째 기능은 개인이 삶의 다양한 단계들과 위기들을 통과할 수 있게 하는 것, 즉 개인들이 삶의 전개를 통전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다.
40P 특정한 역사적 시기의 은유들과 그것이 전달하는 상징들은 그보다 훨씬 후대에 전혀 다른 경험들에 의해 의식이 형성된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메시지도 전달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41P 우리들 가운데 이미 내재하고 있는 새로운 신화, 정신에 고유하게 내장되어 있는 신화는 잠자는 왕자가 연인의 키스를 기다리듯이 새로운 은유적 상징이 자신을 깨워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 은유와 상징들은 반드시 현재의 삶과 사고,경험으로부터 나올 것이며.. / 예술가들은 각자의 분야와 재능에 따라 신화의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하는 소명을 받았다. / 신화는 특정한 마음의 상태들을 내포하는 은유적 언어들의 조직체라고 할 수 있다.
42P신화와 형이상학의 은유적 언어들은 둘 다 실제 세계나 신들을 외연적으로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건드리는 개인의 내면에 존재하는 차원들과 실재들의 의미를 표현한다. / 은유가 지시하는 실제 우주는 내적인 삶의 영적 영역이다. 하느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 / 영적인 의미를 전달하는 은유의 풍성한 아우라는 완전히 무시된다. 그 결과 우리는 ‘민족’적으로 굴절된 특수한 은유만을 가지게 되었다.
43P 유대-기독교-이슬람신화에 대한 전문적인 주석들은.. 외연적 의미에 치중해 왔고…. 세계의 모든 신화들은 이러한 ‘기본적인’, 또는 동정녀 탄생과 같이 자연과 관련된 관념들을 사용했는데, 이것은 역사적 실제가 아니라 영적인 실재를 지시하기 위해서였다. / 오로지 관조를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는 마음의 영적인 장소에 관한 것이다.
45P 진정한 의미에서 신화란 다른 사람들의 종교라고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종교란 신화에 대한 대중적인 오해라고 이해될 수 있다.
46P 신화적 상징 체계는.. 동일한 삶의 경험 영역을 공유하는 공동체 안에서만 기능할 수 있다.

2.종교적 신비 경험
49P 서구 종교는 유럽이 아니라.. 즉 근동으로부터 유래했다.. 서구 정교는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존재론적이고 본질적인 구별이 있다. / 이 종교들의 목표는 동일하지 않은 인간 존재와 신 사이에 관계를 수립하는 데 있다.
50P 전통적인 서구 종교에서 신성은 울 안에 있지 않다.
51P 신과인간 사이의 관계를 중재하는 종교 제도로부터 개인이 소외된 것이다.
56P 오르페우스와 그리스도에게서는 분명히 동일한 원형이 나타난다.
59P 종교적 관점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선과 악을 대립시키는 윤리적 관점으로서 성서에 근거한 서구 기독교에서는 선과 악을 대립 시키는 윤리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신비적 관점에서는 선과 악을 한 과정이 지니는 두 측면들로 이해한다. 중국의 음양 표징이나 태극이 여기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타락 이후의 세상에 절대적인 선악이 존재한다고 보는 성서적 관점에서는 타락한 자연에 의지할 수 없다.
61P 신비의 경험은 단지 기대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적 계획을 포기해야 이루어질 수 있다는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인간의 계획이란 두려움과 욕망에 근거한 것이기 떄문이다. 따라서 그런 계획을 버리면 빛이 다가올 것이다.

3.신에 대한 개념들
65P 우리는 시공간의 영역 밖에 있는 것들은 경험할 수 없다. 칸트는 이것을 ‘감각의 감성적 형식들’이라고 불렀다.
66P ‘신’이라는 말은, 우리가 생각하거나 이름 지을 수 있는 것들을 넘어선 무언가를 지시한다. / 유대-기독교가 아닌 대부분의 종교 전통들에서 신은 모든 개념화를 초월하는 특정한 에너지의 대리자이거나 현시이며, 기능들이다.
69P 내포는 외연을 넘어서 존재한다. / 예수는 동양의 구루들이 사용한 것과 같은 어휘를 사용했다. / 정통적인 성서 전통에서는 어디서도 우리 자신을 하느님과 동일시 하지 않는다.
70P 그런데 예수는 하느님과 자신을 동일시 했다. 예수가 우리 모두의 존재에 대한 은유이듯이, 하느님도 은유이다.
71P 네가 바로 그것이다. 인도에서부터 나온 이 메시지는 마치 섬광과도 같이 우리를 치지만, 불행하게도 교회에서는 이렇게 가르치고 있지 않다. / 예수에 대해 명상할 때 그것은 신비주의가 아니라 숭배가 되어버린다. / 근본적이고도 단순하며 위대한 신비적 깨달음이란 의식의 매체가 아니라 의식 자체와 우리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이다. 우리 몸은 의식의 매체이다.
77P 신화는 자신의 가장 내밀한 세계를 탐구하는 사람들의 환상으로부터 유래했다. / 문화는 신화에서 유래한다. / 신화는 꿈과 마찬가지로 상상력의 산물이다. / 가령 엄청난 재앙이 닥친다거나 커다란 불행에 직면했을 때, 나를 지탱해 주고 견디게 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지탱해주고 견디게 해주는 무언가를 나는 가지고 있는가? 아니면 나를 지탱해 준다고 생각했던 것이 이제 나를 넘어지게 하는가? 이것이 신화, 즉 내 삶을 구성하는 신화가 내놓는 시험이다.
80P 영원은 미래도, 과거도 아니고 현재 / 영생은 현재와 영원의 한 차원이며, 그 안에서 발견되고 경험되어야 할 존재의 의식적 차원이다. / 우리 존재와 삶의 경험들이 지니는 초개인적이고 초역사적인 차원에 대한 인식으로 인도하는 것은 신화적 원형들이다.
81P 편파적으로 하느님의 신비의 한 가지 측면만 강조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모계적 희생자들에 대한 가부장적 정복자들의 우월성을 옹호하기 위한 것이다.
82P 모든 범주들을 초월하기 떄문에 결코 ‘그것’일 수가 없는 것이 우리 존재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여기, 지금 존재하며, 내가 차고 있는 시계에,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종이 위에 있다. / “나는 내 몸을 보며 또한 안다. 나는 내 몸이 아니다” “나는 내 생각을 안다. 나는 내 생각이 안다 “나는 내 느낌을 안다.나는 내 느낌이 아니다.” “나는 아는 자이며, 보는 자 이다.”
83P 모순 어법, 혹은 자기 모순적인 진술은 동방의 신비라 부르는 것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이다. / 서구의 신학은 의식을 일깨우고 아리스토텔레스적 논리학을 적용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84P 서구 종교적 전통에서는, 이처럼 자기 존재의 근거와 하나가 되는 경험의 가능성을 알지 못한다. 그보다 창조주라고 여겨지는 인격적 존재와 관계를 수립하고 유지할 것을 강조한다. 달리 말하자면, 서구 종교는 “관계성의 종교”이다. / 동양 종교에서는 모든 사람이 자신 안에서 이러한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가령 크리슈나나 라마, 부처는 그저 모범일 뿐이고, 우리는 그들을 통해 자신 안에 있는 성육의 신비를 깨달아야 한다.
85P 세례를 통해 교회에 소속됨으로써 그와의 관계가 수립된다. 즉 배타적인 주장을 내세우는 성화된 사회적 조건 안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 서구의 종교적 상징들이 시종일관 인간의 내적 자아보다 일차적으로 외적인 역사적 사건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되어 온 이유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이 교회제도나 회당의 번영을 위해서 유리했을지는 모르지만, 확신에 도달하지 못한 개인의 영적 건강에는 전혀 기여하지 못했다.
86P 역사는 종교적 상징들의 실질적인 근원도 아니고, 일차적인 지시대상도 아니다. / 서구의 제도 종교들은 이들이 옳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하며, 교회의 제단 위에서도 동일한 상징들이 있다는 기억해야 한다.
87P 교회의 실제적인 기능은, 신자들이 그들에게 가능한 어떤 방식으로든 스스로 메시지를 경험할 수 있도록 상징을 보존하고 재현하며 의례를 행하는 것이다. / 동정녀 탄생은 우리 마음속에 영적 생명이 탄생하는 것으로, 즉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탄생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89P 우리는 지구의 감각 기관들이다. 우리는 우주의 감각이다. 바로 우리 자신 안에 그것이 있다. / 그 신들은 우주의 신비를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해석하고자 했던 인간 상상력의 산물이다.
90P 과거로부터 전해진 질서를 그냥 따라서는 안된다. / 각자의 방식대로 스스로에게, 그리고 세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개인으로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 이제 우리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진정한 사랑을 발휘해서 증오와 경멸을 없애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 우리 이웃과 동시에 우리들 자신의 삶에서 열매를 맺는 자비로운 사랑의 경험을 통해서 가능할 것이다.
92P 모든 것이 모든 제도가 급속히 파편화되어 가는 이 시대에는 기존의 의미들이 모두 굳어져 버린 집단 안에서 의미를 발견할 수 없다. / 나름대로의 모험을 통해 각자 개인적 삶을 다 살고 나서 돌이켜 보았을 때 얻게 되는 깨달음은 결국 하나의 모범적인 인간적 삶을 살았다는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4.종교적 상상력과 전통신학의 규칙들
95P 이 시대 종교의 과제와 기능은 마음을 깨우는 것이다.
101P 모든 종교들의 전면은 윤리적이다. 그러나 종교에는 선악을 넘어서고 나와 너를 넘어서며 삶과 죽음을 넘어서는 형이상학적 근거가 있다. / 신화의 기능은 우리가 살고 있는 상황은 물론 그 장소를 영화하는데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102P 약속 받은 땅은 우리 마음속의 한 모퉁이고, 신화적으로 영화된 환경인 것이다. / 지금 우리가 삶에서 헌신하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특정한 영적 관련성을 지닌다. / 서예전은 불러냄이지, 교리주입이 아니다.
106P 신화적 상들은 원래 영혼으로부터 나온 것이지만, 다시 영혼에게 말을 건다.
107P 신비가가 내면을 향할 떄 항상 도달하게 되는 꺠달음, 즉 모든 개념화와 신학적 게임의 법칙들을 넘어서는 깨달음에 이르렀음에 틀림없다. / 토마스아퀴나스…. 신의 속성들에 관한 목록을 만들고 논증하는 데 생을 바쳤다. / 신은 초월의 범주마저도 초월해 있다.
109P 모든 전통들 중에서 유일하게 셈 족의 종교 전통만이 신성을 절대 타자로 간주해야 한다는 게임의 법칙을 내세운다.

5.유대-기독교 전통의 상징들
118P 힌두교의 신들은 야훼가 창조자인 것과는 달리 창조자가 아니다. / 성서에 나타나는 신에 대한 이러한 신화는 무리 지어 다니는 유목민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 농경민들은 …역동성으로서의 신에 대한 신화를 가지고 있었다.
123P 신화와 종교적 의례의 기능은 이러한 대우주-소우주에 대한 통찰을 우리에게 알려주어서, 약 성분이 우리 몸 속에서 효과가 나타나듯이 인간이 자연계의 질서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 옛 신화들은 인간 사회를 자연과 일치 시키는 기능을 한다. / 개인을 사회와 일치되게 하고, 그럼으로써 자연과 조화로운 삶을 살도록 이끈다.
124P 사회의 의례와 규칙들은 개인을 사회적 세계와 외부의 자연 세계뿐만이 아니라, 안에 있는 인간 자신의 본성과도 일치되게 한다.
128P 은유는 아직 남아 있는 신화의 언어 / 모든 종교적 관념들은 신비에 대한 은유들이다 그러나 은유의 외연을 내연으로 잘못 받아들일 경우, 상징이 내포하는 의미는 완전히 잃어버리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129P 신은 상징이다. / 은유가 사실이 아님을 아는 사람들을 ‘무신론자’라고 부르며, 은유를 사실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종교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들 중 누가 실제로 의미를 이해할까?
130P 신화가 자라온 온갖 다양한 지평들이 사라지고 우리 모두가 한 지구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게 된 오늘날, 우리의 신화를 은유로 표현된 다른 모든 신화들과 연결시켜 우리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으로 읽기 시작해야 할 것이다.
134P 두려움과 욕망이 인간을 동산으로부터 멀리 떼어놓는다. 우리를 유배된 상태에 머물게 하는 것은 신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이다. / 다시 동산으로 돌아가는 길은 무엇일까? 그것은 두려움과 욕망을 극복해야 가능할 것이다.
135P 에덴 동산으로부터의 추방에 대한 이야기가 말하는 것도.. 그것은 역사적 사건에 대한 잉야기가 아니라 심리적이고 영적인 경험에 대한 것이며, 지금 여기서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한 은유이다.
138P 신화적 주제들은 황당한 동화적 이야기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고, 우리의 삶을 밝혀주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147P 신을 하나의 사실로 생각할 떄는 신가 우리 자신을 동일시 할 수 없다.
148P 신을 생명의 역동성에 대한 은유로 보고, 우리 자신을 거기에 포갤 떄 우리는 신이다. / 기독교는 모든 것을 역사화하면서 동시에 매우 강력하게 영지주의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 이 책들을 읽을 떄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역사로 읽기보다는, 유대 민족사의 의미, 즉 역사의 영적 토대를 강조하는 해석으로 읽어야 한다.
149P 유대교는 동일성의 종교가 아니라 신이 허락한 참여의 종교이다. / 힌두교는 유대교와 정반대이다. 힌두교에서는 모든 사회적 규범을 초월하는 깨달음이 중요하기 떄문이다. / 기독교건, 유대교건 우리 서양 종교들은 역사적인 측면을 지나치게 강조해왔다. / 그러한 사건을 넘어서서 그 영적 의미를 읽지 못하고, 역사적 사건들 자체를 숭배하게 되었던 것이다.
150P 제도화 된 종교는 어린아이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과 성인들에게 전달하는 방식이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 신에 관해 배워가는 우리도 성숙해져야 하며, 제도 교회는 보다 성숙한 방식으로 상징들의 의미를 성인들에게 전달해야 한다.
151P 성서를 가지고 할 수 있는 가능 훌륭한 일은 그것을 역사적으로가 아니라 영적으로 읽는 것이다. / 스스로의 방식대로 성서를 읽고, 의미를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성서는 모든 독자들 개개인에게 그들 자신의 경험에 근거하여 특수한 무엇인가를 말하기 때문이다.
152P 칼융은 이렇게 말했다. “종교는 신에 대한 경험 앞에서 우리를 방어해 주는 체계이다.”

6.유대-기독교 영성의 상징들에 대한 이해
157P 특별한 인물들이나 그들의 영향력은 마치 자석과도 같아서 떠돌아 다니는 신화적 재료들을 끌어당기는 역할을 한다.
160P 붓다는 어머니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고 하는데.. 신체적인 출생이 아니라 영적인 출생을 나타낸다. 동정녀 탄생은 영적인 거듭남이며, 내면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168P 아기가 도망갔다는 것 역시 새로운 세계는 옛 세계의 영역들 밖에서 탄생한다는 오래된 관념을 반영한다.
174P 본래 이신,저신을 뒤섞는 혼합주의적 경향을 가지고 있던 그리스인들은 근동의 종교들을 매우 성공적으로 결합 또는 조화시켜 놓았다.
185P 심리적 질환은 영적 깨달음을 얻는 사람들의 영향에 의해 치유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기적들은 심대한 영적 능력의 기능일 수 있다.
186P 기독교와 그리스의 종교, 신화는 개인을 향해 있다. 여기서 개인가 그들의 구원은 구체적인 영웅, 가령 아도니스나 그리스도, 또는 다른 사람들의 구원과 동일시된다.
187P 유월절과 부활절, 그리고 아도니스의 부활, 이것들은 모두 이전의 어둠으로부터 자아가 탄생하는 것을 상징한다.
192P 의미있는 역사적 사건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도 상징적 형식을 읽는 한가지 방법이다.
193P 복된 삼위일체의 두번째 위격인 여원한 아들이, 십자가에 달린 지상 예수의 인격 안에 성육해서-이것은 신성 모독이 아니다-악마로부터 인류를 구원해야만 한다. / 구원의 목적은 최초 인간의 불복종 행위로 인한 가증스러운 범법 행위를 죽음을 통해 속죄해 창조주의 분노를 누그러뜨리는 것이다.
195P 비록 에덴동산 신화 같은 것들이 빈번하게 역사로 잘못 읽히고, 신화적 해석들이 예수의 십자가 처형과 같은 실제적 사건들과 결부되기도 했지만 신화는 본래 역사가 아니다.
197P 그리스도의 십자가 역시 상징적으로는 만다라의 중심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198P 융은 만다라 상징이 인간의 경험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네 가지 기본적인 심리학적 기능들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 해석했다. / 융의 견해에 의하면, 인간은 살아가면서 각각의 대립을 이루는 두 기능들 중 한가지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199P 일상적인 삶 속에서 우리는 반쪽짜리 인간으로 살아갈 뿐이며, 모든 사회가 인간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선과 악으로 도덕적으로 나누어서 한쪽을 선호하며 키워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00P 십자가의 은유를 감각과 직관, 감정과 사유라는 융의 심리학적 틀을 통해 읽으면, 인간은 시간적이고 역사적인 삶 속에서 대립이 되는 쌍의 어느 한쪽에 얽매어 살아가며, 따라서 산악 개념에 얽매어 부분적인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201P 유대교와 마찬가지로 힌두교도 인종과 카스트, 출신을 중시하는 고대 종교이다. / 불교는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출신과 인종이 아니라 믿음과 신념을 중시하는 신앙의 종교이다.

7.질의 응답
208P 신화적인 상들은 심리학적 에너지를 일깨우고 이끌어간다. / 신화를 통해 상들이 나타남으로 인해 그러한 정서와 감정이 생겨나게 된다. / 여러분과 내가 가지고 있는 신화들은 정서적 상들로서 우리의 특수한 유산이다. / 합리적 체계는 우리 삶에서 신화적 상들의 연관성을 깨뜨리고 신화적 상들이 지닌 힘을 사용할 수 없게 한다. / 우리의 상징들은 그 것을 역사적으로 해석하려는 제도 종교에 의해서 애매하게 제시되었다.
209P 여러분은 신화 체계의 조각들 가운데서 여러분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조각을 선택할 수 있다. 신하 조각의 도움을 받아 상징들이 유래했던 무의식의 체계와 여러분 스스로 관계를 만들어 가도록 해보라.
211P 그리스도는.. 영적 삶에 대한 경제적 이론을 거부한다… 정치 권력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 유혹을 뛰어넘는다… 영적 과시에 대한 유혹을 거부한다.
212P 신화적 성배는 교회 안에 있지 않았다. 오직 특정한 성품을 지닌 사람만이 그 성배를 찾을 수 있었다.
213P 달은 시간 속에서 재생의 기적을 나타내는 중요한 상징이다. / 호아소의 희생은 우리 안에 있는 사멸하는 것을 희생함으로써 영원에 이른다는 상징이다. / 태양은.. 돌아오거나 여기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재생의 영역을 넘어서 초월의 빛으로 나아간다는 관념을 일깨운다.
214P 영원은 바로 지금 여기에 존재하며, 나 자신의 진리와 존재의 영원성을 나의 가능성 안에서 경험할 수 있다. 만일 이 사실을 깨닫는다면, 자신이 본래 태어나지도 않았으며 죽지도 않으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동양 종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공 아닌 공과 자신의 동일성을 내면에서 경험하는 데 있다.
216P 아버지에 대한 속죄라는 신화적 주제는 기독교 전통을 통해 전해졌고, 주로 역사적 갠며으로 받아들여졌다. / 결혼에서 한쪽이 희생할 때 그는 상대방에게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다.
217P 한 사람이 결혼했다면 이제 관심의 중심을 자신에게서 둘의 관계로 옮긴 것이다. / 결혼이 전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게 아니라면, 당신은 결혼하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 내가 말하려는 것의 전분이다. 내가 자주 말하듯이, 결혼은 긴 연애가 아니다.
218P 어떻게 보통 사람이 초월에 이를 수 있는가? 맨 먼저 시를 공부하라고 말하고 싶다.
219P 초월의 경험은 서서히 올 수 있다. 초월에 대한 경험에 이르는 길은 많다. / 예술은 우리 안에 있는 가능성에 말을 건다. / 여인은 생명을 낳는 힘의 도구가 됨으로써 영웅이 된다
220P 여자는 자연의 도구이고, 남자는 사회 질서의 도구이다.
221P 제의가 있는 곳에는 집단이 있고, 제의는 늘 수많은 사람들을 포괄한다. / 창조적인 축제들로부터 고전 신화가 나오게 된 것이다.
222P 우리 문화에서는 제의와 제의가 상징하고 강화하는 신화들을 모두 파괴해 버렸다. / 모든 분리된 집단들을 하나로 묶는 공유 신화가 약화된 결과이다. / 사회적 정체성의 형성이라는 면에서 신화의 기능은 대단히 유익하다.
227P 모름지기 예술이란 전체 사회를 조직화하는 신화를 형성하기 위한 것이었으리라.
228P 쿤달리니라는 말은 감겨진 것을 뜻하며, 인간의 몸속 가장 밑바닥에 실제로 항문 위치에 감겨져 있다고 여겨지는 영적 에너지를 가리킨다.
229P 욕망은 더 큰 욕망에 의해 치유되지 않는다. / 공격으로 공격을 치유하지 못한다. / 인간이라는 못된 짐승을 그냥 짐승으로 대해서는 좋은 짐승으로 만들지 못한다.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의 차크라, 심장의 차크라를 깨워야 한다.
230P 당연히 지옥은 자신들의 자아와 이기적인 가치들에 사로잡혀서 초인간적인 은총에 자신을 열지 못하는 사람들의 삶의 조건을 가리킨다.
231P 만일 어떤 사람이 유한한 가치 세계에 얽매인 채로 죽는다면, 그 상태에서는 초월적인 신의 복된 모습을 향해 열려져 있을 수 없다.

8.대담
237P 신화는 거짓을 뜻하는 말로 잘 쓰이지만, 실제로는 진리를 표현하는 영구적인 수단이다. / 사람들은 언제나 기억하고 싶고 전하고 싶은 이야기들… 신화적 형태로 말했다.신화와 상징은 모든 종교의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특징으로 종교 체험의 특수한 언어이다. / 다양한 신화들이 종교 체험의 단일한 지하수를 마시고 생존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 캠벨은 다양한 종교 전통들로 나타나는 것이 실제로는 모든 문화가 공유하는 단일한 체험의 상이한 표현이라고 말했다.
238P 고대와 현대의 영웅 이야기들을 탐구하고, 그들의 도전과 경험들이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실로 옹근 사람임을 보여준다. 신화의 무시간적인 이야기들과 신화에서 볼 수 있는 양태들은 우리 자신의 삶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239P 신화는 첫째, 우리의 깨어있는 의식과 우주 전체의 신비를 이어주는 신비한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신화의 우주론적 기능입니다… 특정한 사회적,도덕적 질서를 정당화하고, 공고하게 함으로써 신화는 사회학적 기능을 합니다…끝으로 신화는 출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다양한 단계들을 통과하고 처리하는 방식을 제공함으로써 심리학적 기능을 합니다. / 신화는 모두가 공유하는 창조적 상상력에서 나온 것입니다. 영적 의미에 대한 스스로의 탐구를 통해 발견하게 되는 우리의 이야기도 원탁의 기사들과 같은 모든 영웅들의 전설들과 비슷합니다.
241P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던 당시의 종교적 상징들을 더 이상 고수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신화의 외적 형식 일부를 떨쳐내 버리고도 그 힘을 유지하고 새롭게 갱신할 수 있다는 데 신화의 영속적인 힘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 부활절과 유월절은 우리로 하여금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라는 부름을 경험하게 합니다. / 우주 시대는 우리 자신에 대한 우리의 관념을 바꿀 것을 요구합니다. / 그러나 우리는 이 관념을 고수하고 싶어합니다.
242P 우주 공간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낡은 시대의 종교가 아니라 사물들의 새 질서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뜻합니다./ 신화적 진리에 대한 자각은.. 우리 안에서 유월절과 부활절을 경험하고, 우리 자신의 종교의식 위로 우주 시대를 끌어오는 것을 느낀다는 사실을 예민하게 깨닫게 합니다.
243P 달 위를 걸음으로써,이런 생각들을 지탱했던 종교적 신화는 더 이상 견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 하늘과 땅의 구분에 기초한 모든 신학적 관념은 이 깨달음과 함께 무너집니다. 우주에는 통일성이 있고, 우리의 경험에도 통일성이 있습니다.
245P 우리는 묵시록을 문자적으로, 세상에 대한 물리적 파괴와 심판, 또는 미래에 일어날 어떤 일로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그 나라는 여기에 있습니다.
246P 우리는 일어날 무엇인가를 기다려서는 안됩니다. / 우주 시대에는 두 가지 명제가 분명히 드러납니다. 첫째, 우리는 사회적으로 새로운 상징체계로 나가야 합니다… 둘째, 현존하는 상징들은 구체적으로가 아니라 영적으로 해석될 때 계시를 드러냅니다. / 묵시록은 불타는 아마겟돈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무지와 자기 만족이 끝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을 조합할 수 있는 신화를 가지지 못한, 갈라지고 분열된 세계관은 끝나고 있습니다. / 하느님의 나라는 무엇입니까? 그 나라는 하느님의 보편적 현존이 우리의 이웃들 안에서, 우리의 원수들 안에서, 우리 모두 안에서 실현되는 데 있습니다.
247P 현실적이고 궁극적인 수단은 우리의 개인적 계보에 있지 않고, 공동 인간성에 있습니다.
248P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들이 ‘바깥 어딘가’로부터 행동한다는 관념을 지니고 있습니다.
249P 우주 시대는 구원이 우리 안에서 와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250P 상징들을 통해서 우리는 정서적으로 우리의 가장 깊은 자아와 접촉하게 되고, 다른 사람들과 서로 접촉하게 되며, 신과 접촉하게 됩니다.
254P 문제는 제도화된 종교들이 상징들로 하여금 그 고유한 의미로부터 직접 사람들에게 말하도록 허락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 내가 좋아하는 신화에 대한 정의는 ‘다른 사람들의 종교’입니다. 종교에 대한 내가 좋아하는 정의는 ‘신화에 대한 오해입니다.’
256P 자기 보존은 생명의 둘째 법칙일 뿐입니다.첫째 법칙은 당신과 타자가 하나라는 것입니다.
257P 우리가 서로 하나라는 것, 그것이 우주 시대가 우리에게 요청하는 진리입니다.


3.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은 조셉캠벨 재단의 유진 케네디 박사의 지도 하에 조셉 캠벨의 유고와 강연 테이프들을 중심으로 엮어진 책이다. 하지만 나는 사실 순수 독자로서는 이 유진 케네디 박사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독자로서 궁금증을 가졌던 것들을 같은 독자 입장에서 시원하게 캠벨의 생각과 사상을 찾아서 긁어주고 있다.

먼저 이 책을 통해서는 대부분이 종교, 특히 유대-기독교를 염두에 두고 캠벨의 사상들을 이야기 하고 있는데 반유대주의자로 오해 받을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한 반박집 내지 해소제가 되기도 한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유대-기독교 전통을 복원한 복원가가 되어 왜곡을 벗겨내고 진실을 볼 수 있도록 다양한 이야기와 논리를 수월하게 펼쳐낸다. 특이 이 책 '네가 바로 그것이다'를 통해 나에겐 종교의 진정성이 눈에 띄게 해주는 계기가 마련된 것도 같다.

일단 나 스스로 다시금 정리된 나의 의문점들에 대해 캠벨을 통해 이해하게 된이슈들을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왜 유일신이며 기독교여야만 하는가?

한국에서 자라난 사람이라면 어려서부터 교회에 대해서는 어떤 종교보다도 더더욱 많은 것들을 보고 듣지 않았을까 싶다. 아이 때는 크리스마스 날, 부활절 날 교회에 가야 과자도 얻어먹고 재미있는 연극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까지가 교회에 대해 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인상이었다. 그 뒤는 온통 교회라면 피해가고 싶을 정도로 내 주위에서 나에게 손짓을 하고 있었다. 중,고등학교,대학교에는 항상 다양한 서클 활동 중에 반드시 기독교 학생 모임은 꼭 있었고 겉으로 봐도 그들의 연대는 강하고 단단해서 열리지 않는 철옹성 같았다. 대학 캠퍼스에서건 길거리에서건 자주 기독교인들인 그들에게 잡혀 설교를 들어야 했고, 일요일 점심때쯤이면 항상 두,세명의 여인이 벨을 누르고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다고 했다. 양념으로 주변 종교인들이 주는 인간적으로도 실망스런 모습들은 자주 목격되었다. 그런 것들 때문일까? 나는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도 전에 먼저 기독교라면 질려버리게 되었다. 가끔 친한 친구에 의해 끌려나간 교회에서도 유일신,지옥 이야기만 들려주는 기독교는 나에겐 유치하고 편협한 하나의 어설픈 거짓 이야기로 들리는 것이 다였다.
간디가 "나는 예수를 존경하고 사랑한다. 그러나 크리스찬은 싫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를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나 또한 예수를 믿고 존경하지만 기독교의 바로 이러한 모습들 때문에 질렸었다.
하지만 캠벨을 통해 오히려 그러한 기독교에 대한 나의 불신이 어느 정도 씻겨지고 기독교가 하나의 종교로서 격상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그렇게 거부감을 느꼈던 것들은 상징을 사실로,역사로 설명하는 그들의 잘못된 접근 방식이었던 것이다.(이 점에 대해서는 논쟁거리가 나올법 하지만 캠벨의 입장에 전적으로 따르는 나는 단정적으로 이야기 하겠다.) 은유를 사실로 읽게 됨으로써 성서는 엄한 이야기가 된 것이다.
그러나 캠벨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신 개념(유일신)이 기독교가 초기에 생겨난 유목민적 특성에 맞춰 인간과는 다른 강력한 힘의 존재로 자연스럽게 생겨난 그들 이해 방식의 하나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또 기독교에서 말하는 종말은 “ 어둡고 무시무시한 끝이 아니라 우리의 영적인 출발점에 대한 은유(25P)”라는 캠벨의 이야기는 기독교에 대한 적대감을 많이 감소시키고 앞으로 지하철이나 길거리에서도 끊임없이 듣게 될 “지구종말”이라는 단어를 보아도 그나마 편안하게 받아들 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 동안 기독교에 가졌던 나의 거부감 또한 나의 무지로 인한 소치였음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나는 교회, 기독교의 존재를 무엇으로 바라봐야 할까?

이는 기독교 뿐 아니라 이슬람이나 다른 종교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캠벨은 종교의 실제적인 기능은 “신자들이 그들에게 가능한 어떤 방식으로든 스스로 메시지를 경험할 수 있도록 상징을 보존하고 재현하며 의례를 행하는 것(87P)” 이라고 이야기 한다.
즉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주고 그 방식대로 잡도록 이해시키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를 만나는 법을 가르쳐 줘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에서 매일 터져 나오는 “예수님 믿지 않으면 지옥 가고 그 지옥은 이러하나 예수님 믿고 따르면 지상낙원, 에덴동산인 천국으로 간다”는 식의 유아적 교육방식의 설교가 아닌 진정으로 신자와 신을 잇는 중간 매체로서 바로 교회가 있어야 할 이유인 것이다.
교회 자체의 존재에 대한 부정이라기 보다는 현재보다 더욱 올바른 목표와 방향을 가진 교회로서의 위치 변화를 기대를 하면서 나 또한 기독교를 진정한 종교로서 관심 있게 지켜볼까 한다.

기독교인, 아니 종교인들 궁금한 점

종교인들에게 한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다.
과연 종교인들은 진정으로 자신이 믿는 종교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는지 말이다. 사실 주위를 보면 종교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같다. 즉 종교를 믿는 다는 것이 한,두번 모임에 나가다 보면 그들의 끈끈한 관계에 엮이게 되어 자신도 모르게 믿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거나, 지옥이 무서워서 억지로라도 믿으려고 노력하다 보면 (내 주변의 기독교인들의 답변이었다.) 그것이 종교를 믿게 되는 길이라는 단순한 사고방식들이 있는 듯도 하다.
하지만 캠벨을 통해 알게 된 종교의 세계라는 것은 진정으로 자신에게 의미를 갖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이해와 그에 대한 노력이 필요로 되는 , 겉이 아닌 속을 볼 수 있는 진정한 마음의 준비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종교를 믿더라도 본인만의 가치관과 사상으로 종교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잘 알지도 못하고 종교도 없는 주제에 떠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겠지만 바로 그게 어렵고 이해가 안 가서 선뜻 어떠한 종교를 정하지 못하고 갈등하고 있는 나다. 과연 종교를 믿는 여러분들은 어떠한 확신과 이해를 가지고 믿고 계신지요?

그러면 이 시점에서 나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특정한 종교를 믿는 것은 아니지만 나 역시 분명 신 (신이라는 단어,사고의 초월의 의미라고 생각하지만 일단 신으로 칭하겠다)은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어렴풋이 그 동안 느껴온 것은 그 신이라는 것은 내가 내 인생을 제대로 알고 살아 나갔을 때 그것이 바로 신이 만족해 하고 인정해 하는 모습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었다. 캠벨 또한 그러한 나의 평소의 어렴풋한 생각들을 강력하게 뒷받침 해주고 있다. ”영원은 바로 지금 여기에 존재하며, 나 자신의 진리와 존재의 영원성을 나의 가능성 안에서 경험할 수 있다. 만일 이 사실을 깨닫는다면, 자신이 본래 태어나지도 않았으며 죽지도 않으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214P)”
따라서 나는 나를 더욱 알기 위한 내면 여행을 끊임없이 떠날까 한다. 필요하다면 기독교의 성경을 통해서 그 통찰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요, 불교의 경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를 통해 그것을 실현하는 것. 그것을 나는 실험해 볼까한다.

궁극적으로 캠벨은 그 동안 특히 서양의 종교들이 가졌던 배타적인 의식들, 쇼비니즘으로까지 비춰지는 그런 과거의 모습들을 벗어버려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이제 우리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진정한 사랑을 발휘해서 증오와 경멸을 없애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우리 이웃과 동시에 우리들 자신의 삶에서 열매를 맺는 자비로운 사랑의 경험을 통해서 가능할 것이다.(90P)”
즉 이제는 배타가 아닌 통합, 자비의 시대라고 말한다. 즉 캠벨은 바로 책의 제목이기도 한 이 말 “네가 바로 그것이다” 로 그의 신화와 종교에 대한 최고점을 모두 이야기 하고 있는 것 같다.

아쉬운 점
책을 읽다 보면 캠벨 스스로도 이야기들에서 약간의 착각을 가지고 서술한 부분들도 없지 않다. 이는 편집자의 주를 통해서도 드러나는데 혹시나 그의 책을 많이 접해 보지 못한 독자에게는 이런 착각이 편협한 결과를 끌어낸 게 아닐까 하는 본연의 의심이 살짝 들 수도 있게 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학자에게도 덜렁 거리는 면이 있다는 부분이 한편으로는 인간적이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기에 그것이 바로 매력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신화 조각의 도움을 받아 상징들이 유래했던 무의식의 체계와 여러분 스스로 관계를 만들어 가도록 해보라.(209P)”라고 캠벨은 제안한다.
우리는 5월 두 번째 주에 있을 오프라인 수업에서 각자에게 맞는 신화 조각들을 들여다 볼 수도 있을 것이며, 나 또한 그것들을 준비하면서 나에게 도움이 될 상징적인 신화의 조각들을 찾아 무의식과 나와의 관계를 만드는 실행의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IP *.34.1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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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쟁이
2008.04.28 00:05:39 *.52.236.185
재미있게 읽으셨나봐요.

작가의 생각과 내 생각이 일치하면 즐겁잖아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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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3 2-22. 삶을 바꾼 만남 - 정민 [1] 콩두 2014.01.14 3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