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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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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28일 11시 19분 등록
Ⅰ. 저자에 대하여

조셉 캠벨

담을 넘는 사람. 그를 한 마디로 나는 이렇게 요약하고 싶다.

20세기의 최고의 신화 해설가이며, 비교 신화학자로 불리 우는 그는 실제 범인들이 상상하는 ‘신화’의 작은 세계에 천착하지 않는다. 그의 신화는 불교에만, 기독교에만, 유대교에만, 요가에만, 이슬람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이 모든 경계의 담을 넘어서 하나의 종교의 세계로 아우른다. 그의 신화는 인도에만, 그리스에만, 중국에만 혹은 고대 마야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역시 이 모든 경계의 담을 넘어서 하나로 세계로 향한다. 그의 신화는 남성에만 혹은 여성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의 신화는 시에만, 희곡에만, 음악에만, 그리스 조각상에만, 현대 회화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의 신화는 역시 이 모든 경계를 넘어 하나가 된다.

그는 이 모든 담을 넘는 사람이다. 그의 신화는 종교간의 담을, 지역간의 담을, 성별간의 담을, 예술 쟝르간의 담을 모두 뛰어 넘어서 ‘인류의 무의식의 원형’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귀결된다.

그는 인류의 무의식의 원형을 언어로 보여주는 것에 대해서 표현의 한계를 느낀 듯하다. 그래서 ‘신화의 이미지’라는 그의 저서에서는 이미지로, 상징으로 그리고 그것들을 통한 ‘미묘한 떨림’으로 인간 무의식의 신비를 표현하려 노력한다.

그래서 특정한 문화에, 특정한 종교에, 특정한 예술의 담 안에 갇혀 있는 일반 사람들에게는 ‘이 담을 뛰어넘는 사람의 글’을 읽기가 그리 수월하지는 않을 것이다. 독자 자신이 자신의 지식의 한계를, 자신의 감각의 한계를, 자신의 통찰의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어야 만 그의 글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셉 캠벨의 연보>

1904년 3월 26일 뉴욕에서 태어남
1910년 남동생과 아버지와 함께 메디슨 스퀘어 가든의 ‘버팔로 빌의 와일드 웨스트 쇼’를 보고 미국 원주민 인디언들에 대해 관심이 생김.
1921년 다트머스 대학에 입학하여 생물학과 수학을 공부하지만 멜레스코우스키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로망스’를 읽고 인문학을 공부하고 싶어함. 이로 인해 콜럼비아 대학의 영문과로 전입
1924년 ~ 26년 배를 타고 유럽으로 가는 길에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를 만나 동양 철학의 세계에 이끌리기 시작
1927년 ~ 28년 연구비 지원을 받아 유럽에서 공부를 함. 프랑스 파리에서는 로망스어, 문헌학, 고대 불어, 프로방스어를 독일 뮌헨에서는 산스크리트 문학과 인도 유럽 철학을 공부함. 뮌헨에서 공부할 때는 프로이트, 융, 토마스 만, 괴테 등의 작품을 접하게 됨.
1929년 미국으로 귀국. 대공황의 영향으로 취직을 하지 못하고 여동생과 함께 우드스탁으로 가서 독서를 함.
1934년 사라 로렌스 대학에서 교수로 초빙되어 38년 간 이 대학에 교수로 근무함.
1938년 학생이었던 진 에드먼과 결혼
1941년 인도 연구가 하인리히 침머를 만남
1972년 ‘신화와 함께 하는 삶’ 출간
1974년 ‘신화의 이미지’ 출간
1984년 80세의 생일 파티가 열림
1987년 10월 30일 하와이 에서 사망

Ⅱ. 인상적인 글귀
옮긴이의 말
[p7]그가 신화를 ‘인류의 위대한 한 가지 이야기’로서 ‘단일신화’라고 할 때, 그것은 다양한 신화들의 차이를 지워나가는 ‘하나’가 아니라 다양한 신화들이 공존함으로써 이루어지는 ‘하나’이며 그 속엔 무수한 우주의 배꼽, 무수한 우주의 중심들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며 대화하게 된다.

[p7]하지만 신화의 진정한 의미는 문자그대로의 것이 아니라 상징적인 것이고, 신화의 상징적 의미는 심리학적인 것이다.

Part 1 꿈으로서의 세계
1. 잠의 지배자
[p20]우린 그런 것들이지
꿈으로 만들어진 것들, 하여 우리의 작은 생은 한숨 잠과 함께 한바퀴 도는 것이지
-셰익스피어, 헛소동

[p20]중국이 현자 장자는 자신이 나비가 된 꿈을 꾸고 일어나 상념에 잠겼다. 자신이 나비가 되는 꿈을 꾼 사람인지, 혹은 사람이 된 꿈을 꾸고 있는 나비인지

[p26](융에 의하면) 꿈은 영혼의 가장 깊고 비밀스러운 곳에 숨어 있는 작은 문이며, 이 문은 우주의 밤을 향해 열려 있다. 그 밤은 ‘자아-의식’이 생겨나기 오래 전부터 정신으로 존재했고, 또한 우리의 ‘자아-의식’이 얼마나 멀리 확장되건 간에 정신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중략)
꿈은 이 모든 것이 하나가 된 깊은 곳으로부터 생겨나며, 너무나도 유치하고 기괴하여 비도덕적이다. 꽃처럼 피어나는 그 솔직함과 진실함 앞에, 우리는 기만에 찬 우리의 삶에 대해 얼굴을 붉히게 된다.

[p31]우주적 의미들은 절대로 그 자체로 순수한 상태에서 경험될 수 없고, 자신의 지역적 조건에 따른 종족적 적용약식으로부터 추상해낼 수밖에 없다. 사실 우주적 의미들의 매력은 그 무한히 다양한 변형의 작용들에 있다.

2. 죽음과 부활의 신
[p35](투탕카멘의 사자의 서)나는 어제이자, 오늘이며, 내일이다. 그리고 나는 두 번 태어날 수 있는 힘을 가졌다. 나는 신들을 창조하고 지하세계와 심연과 천상의 주민들에게 무덤의 식사를 주는, 신성하며 숨겨진 영혼이다. 나는 동쪽의 지배자이며 빛이 뿜어져 나오는 신성한 두얼굴의 소유자이다. 나는 양육된 자들의 신이며, 어둠으로부터 생겨나 죽은 자가 살고 있는 집의 형태로 존재하는 신이다. 경배하라! 지구의 중심에 서 있는 성소의 군주를, 그가 바로 나이고, 내가 바고 그이다.

3. 경이로운 아이
[p52]”너에게 말하노니, 너의 원수를 사랑하라.”[마태복음 5:44]

[p65]랑은 계속 반복되어 나타나는 이런 전형적 형태를 정서적 장애가 있는 어린이가 공통적으로 지니는 환상에 비유하였다. 이런 어린이들은 자신이 부모보다 무한히 훌륭하고 뛰어나다고 믿으며, 자신이 사실은 고귀하고 신성한 혈통인데, 쫓겨나거나 실수로 잃어버려져 비천하고 초라한 부부의 자식으로 성장했고, 그들을 부모로써 존경하도록 교육되어온 것이라고 상상한다.

[p68]”오! 신성한 경전에서도 가장 뛰어난 분이시여! 두 개의 본성을 지니시어, 형상이 있으면서 형상이 없는 분이시여. 지혜에 있어서도 열려 있으면서도 비밀스러운 양면을 갖추어 자은 것 중 가장 작고, 큰 것 중 가장 크시며, 모든 것을 다 알고, 예술과 말의 영혼에 영감을 불어넣으시며, 감지할 수 없고, 묘사할 수 없으며, 불가해하며, 순수하고, 무한하며, 영원하신, 이름 없는 문이여. 귀 없이 듣는 자이며, 눈 없이 보는 자이며, 발 없이 다니는 자이며, 손 없이 잡는 자이며, 누군가 알려주지 않아도 모든 것을 아는 분이시여. 만물의 공통된 중심이시며, 그 안에 만물이 존재하는 분이며, 하나이지만 수많은 방식으로 변형하는 불과 같이 당신도 그렇습니다. 신이시여. 하나의 형상을 지니고 있지만 모든 모습으로 나타나는 분이시여. 당신은 지식의 문을 지닌 지혜가 바라보는 지극히 높고 영원한 상태입니다. 신이시여, 단신만이 진정으로 존재합니다. 두려움이나, 분노, 욕망, 피로나 태만에 영향받지 않고, 당신은 보편적이며 개별적이고, 독립적이면서 시작이 없습니다. 어떤 필연에도 종속되지 않고, 형상을 취하심에 어던 이유도 없고 모든 이유를 지닌 분이여. 우주 만물에 스며있는 분이시며, 무수한 형상과 무수한 팔들, 수많은 얼굴과 수많은 발을 지니신 분, 본성이며 지성이자, 의식이시며, 이 모든 것들의 영적 뿌리가 되는 분이시여, 당신께 영광을 올리나니! 이 우울한 대지를 바라보고 당신의 호의를 보여주소서. 우리 모두를 바라보소서, 우리 모든 신들은 당신의 의지를 행할 준비가 되었나이다. 명령만 내리소서, 우리가 가까이에 있나이다.”

4. 강력한 여신
[p75]우주 기원이 본질이자 여성성과 개인성의 본질인 마야는 다음의 세 가지 힘을 지녔다고 한다.
1. 감추는 힘 :사물의 실재적, 내적, 본질적인 성격을 감추거나 은폐하는 힘이다. 어느 산스크리트 경전에서는 “그는 모든 생물체에 들어 있지만, 그 아트만은 겉으로 비춰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2. 투영하는 힘 : 환영으로서 인상과 생각을, 그와 결합되는 욕망이나 혐오와 함께 방출하는 힘이다. 예를 들어 밤에는 밧줄을 뱀으로 오해하고 소스라치게 놀랄 수 있다. 무지(감추는 힘)가 실재를 은폐한다면, 상상력(투영하는 힘)은 현상을 전개한다.”이 투영하는 힘은 모든 (겉으로 드러나는)모습들을 창조한다. 그것이 신의 모습이건, 우주의 모습이건.”
감추는 힘과 투영하는 힘은 햇빛을 여러 가지 무지개 빛으로 변형시키는 프리즘에 비유할 수 있다. 이 일곱 가지 색을 평평한 원반 위에 배열하고 돌리면 그것은 하얗게 보인다. 마찬가지로,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현상들을 보면, 현상들은 감추고 있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 보일 것이다.
3. 드러내는 힘 : 이것은 예술과 경정, 의례와 명상을 알게 하는 역할을 한다.

[p77](찬도기야 우파니샤드)(7장 25편 1-2)
그는 아래요, 위요, 뒤요, 앞이요, 남쪽이요, 북쪽이다. 그는 실로 이 세계 전체이다.
그리고 실로, 이것을 보고, 이것을 성찰하고, 이것을 이해하고, 아트만에서 기쁨을 취하는 자는 아트만에 참여하게 되고, 아트만에서의 지복을 안다. 그런 자는 자율적이며, 모든 세계에서 무한한 자유를 갖는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지 않는 자들은 다른 이들에게 지배되고, 결국 사라져버릴 세계에서 살게 되며, 모든 세계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p84]나무를 쪼개보아라, 나는 거기에 있다. 돌을 들어올려 보아라. 너는 그곳에서 나를 찾으리라(도마복음 95:26-28)

[p85]이런 관점으로 보면, 젊은 성모는 결국 ‘신의 어머니’라는 전설적인 이미지를 통해 우리각자가 내적으로 깨닫게 될 진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읽힌다.

Part 2. 우주 질서에 대한 생각
1. 문자 전통과 무문자 전통
[p94]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문화의 신화와 의례들에서 서로 비슷한 구조나 종종 동일한 모티프들이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현상을 설명하는 여러 반식들 중 한 가지가 바로 심리학적인 방법이다. 제임스 G. 프레이저의 ‘황금가지’에 나오는 유명한 말을 인용해 보자면, 그런 형상이 발생하는 것은 “서로 다른 나라, 서로 다른 하늘 아래 사는 인간 정신의 비슷하게 작동하는 유사한 원인들의 결과이다.”

2. 세계산
[p100]구세계와 신세계를 통틀어 초기 고등 문화 중심의 가장 두드러지는 상징적 형상은 주변에 밀집해있는 나즈막한 지붕들 위로 높이 솟아 있는 웅장한 신전탑과 피라미드이다.

[p113]우주의 신성이 단계적으로 현현한다는 이 옛 수메르의 사유는 탑처럼 쌓아올린 지구라트로 상징화되고 인간의 의식이 지닌 능력의 단계에 상응하는 것으로 이해되면서 많은 신화와 다양한 기념비들을 통해서, 고대세계 전체에서부터 (동양에서는)현대에 이르기까지 살아 남았다.

[p115]뱀의 유동성은 물을 의미하고 계속해서 날름거리는 갈라진 붉은 혀는 불꽃, 즉 생명을 수태하는 바다에 내재된 생명의 불꽃을 의미한다. 게다가 달은 컵에 비유되는데, 이 컵에는 성찬식에 쓰이는 술의 재료가 되는 불타는 암브로시아가 채워지고 비워진다. 아마도 달의 배를 타고 우주적 바다를 항해한 달의 인간 노아가 물이 줄어들자마자 포도밭을 가꾸고 포도주에 취해 벌거벗은 채로 천막 안에 누웠다는 이야기도 이런 맥락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달은 생명의 조수, 즉 바다의 밀물 썰물과 자궁 속에서의 리듬을 주관한다. 또한 그 그림자를 벗어버리는 것은 뱀이 허물을 벗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죽음을 딛고 선 생명의 힘을 나타내는 지고한 천상의 징표이다.

[p128](프레이저의 말을 빌자면)”서로 다른 나라, 서로 다른 하늘 아래 사는 인간 정신의 유사한 구조에 비슷하게 작동하는”결과로서 생겨난 것이라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과연 인간의 신경체제가 그 정도로 ‘프로그래밍’되어 있다고 가정할 수 있을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나 많은 면에서 비슷한 이 두 가지 문화가 완전히 분리된 채 서로 독립적으로 발전하였을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을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문화, 역사적인 면에서 전파론자들은 어떻게 주장할까?

3. 중앙아메리카의 세계산
[P161]”만물이 우리에게 빌려진 것으로 생각하게나. 오 벗들이여, 우리는 여기 지구를 스쳐 지나갈 뿐이라네. 내일 또는 그 다음 날(당신이 바라시듯이, 오! 생명을 주신이여!)내 벗들이여. 우리는 갈 것이네. 그 분의 집으로.”

4. 달력의 순환
[p174]그러므로 이것은 시계 위에 씌어진 시간주기의 질서가 인도의 신 비슈누의 꿈속의 시간주기 질서와 똑같을 뿐 아니라, 이 체계 속에서 소우주로서 인간신체 기관의 리듬과 대우주로서의 우주의 순환하는 겁의 리듬이 상응한다는 신화적 관념이 세워져 있음을 보여준다.

[p178](하인리히 침머의 ‘비존재의 바다’중) 파괴의 과정에 대한 인도인의 관념에서 인도인의 역년의 규칙적인 진행은 – 폭염과 한발이 호우와 번갈아 오면서 –존재를 지탱해주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파괴하는 정도로까지 확대된다. 온기와 습기가 서로 이롭게 번갈아가며 찾아올 때 온기는 열매를 무르익게 하고 습기는 자양분을 주지만, 이제 그것들은 모든 것을 소멸시킨다. 비슈누는 그의 무한한 에너지를 태양에 방사함으로써 무시무시한 마지막 작업을 시작한다. 그 자신이 태양이 되는 것이다. 그것의 격렬하고 맹렬한 광선으로 그는 모든 생기를 가진 존재의 시선을 자신에게 끌어들인다. 온 누리는 메마르고 시들며 땅은 갈라지고, 갈라진 깊숙한 틈을 통해 치명적인 열기를 뿜는 불길이 지하 세계 나락의 신성한 바다에서 혀를 날름거린다.

5. 순환하는 시공간의 세계
[p212]”그 분은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느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도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분은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신을 낮추시고 죽음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2:6-8)

6. 변형의 중심
[p229]지상에 거주하는 모든 곳에 걸쳐 그런 형상들이 출현하는 것을 꼭 인종적 전파나 문화적 전파로 설명할 필요는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은 오히려 심리적인 것, 즉 무의식의 깊이이다. 융의 말을 빌자면, “(무의식의 장에서) 사람은 더 이상 별개의 고립된 개인이 아니다.그의 정신은 넓어지고, 인류의 정신으로 융합된다. –의식으로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공통적인 인류의 무의식에 융합되는 것이다.”

Part 3. 연꽃과 장미
1. 꽃의 권장
[p243]애착에서 슬픔이 솟아나고
애착에서 두려움이 솟아나니
애착에서 벗어나는 자에게는
슬픔이 없으니, 어찌 두려움이 있겠는가?

[p244]하늘과 땅, 심지어는 비존재와 존재가 둘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고 거기에 동화될 때, 마르지 않는 샘처럼 샘의 기쁨이 모든 것으로부터 흘러 넘칠 것이다.

[p253]”모든 것 중에서 신이 아닌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규모도, 공간도, 질도, 형태도 시간도 신을 둘러싸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그분은 모든 것이며 모든 것은 모든 것을 둘러싸고 모든 것에 스며들어 있게 때문이다.”

2. 꽃받침
[p261](단테)그 때 순결한 흰 장미의 형상으로
거룩한 군대가 내 앞에 나타났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피로 빚어낸 신부일지니
(‘신곡’ 중 ‘천국’ 편 31.1~3)

[p266]샤크티라는 이 중요한 산스크리스트 단어는 ‘힘, 역량, 에너지, 재능, 가능성’이라는 뜻을 가지는데,여기서는 동양에서 모든 종교적 사고의 바탕이 되는 특정한 의미로 쓰였다. 즉, 그의 배우자로 육화된 남성 신의 에너지나 활력을 의미한다. 더 나라가 (유추에 의해서)모든 아내는 그 남편의 샤크티이며, 모든 사랑받는 여인은 그 애인의 샤크티이다. 베아트리체는 단테의 샤크티이다.

[p267](괴테 ‘파우스트’에서)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위로 끌어 올린다.

[p270]혜능의 말을 빌자면 “당신이 진정으로 부동의 것을 열망한다면, 부동의 것은 움직임 속에 있으리라.”

[p279]아미타는 단지 우리가 다가갈 수 있는 것만이 아니라, 그 자신이 보는 자에게 다가온다. 이 그림은 죽어가는 신도가 보게 되는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그 신도의 영혼은 붓다에 의해서 서방 정토로 받아들여 지고 환영 받는다.

[p280]그리스의 성자 피타고라스의 말처럼, “영혼은 떠다니면서 이곳으로 왔다가 저곳으로 갔다가 하며 어떤 껍데기든 마음에 드는 것에 깃든다. 짐승의 몸에서 인간의 몸으로 인간의 몸에서 짐승의 몸으로 옮겨 다니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붓다와 보살 (그리고 힌두교에서는 신)의 신성한 능력은 우리 모두에게 잠재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새로 부여 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발견하게 되는 것으로, 혹은 플라톤적인 의미에서 ‘기억나게’되는 것이다. 그 때, 무지(마야의 감추는 힘)라는 장애물은 천천히 사라지거나 일시에 초월되는 것이다. 워즈워드가 말했듯, 우리의 생은 “한숨 잠이며 망각일 뿐”이었던 것이다.

[p282]연꽃은 우주의 심장인 태양과 몸의 태양인 심장을 동시에 상징하며, 둘 다 내재하는 동일한 자아(아트만)에 의해 움직여진다. 따라서 태양을 향해 피어 있는 연꽃은 이 거울에 비추어진 진실에 대한 만개한 지식을 상징하며, 봉오리가 진 연꽃들은 그 실현을 향해 나아가는 단계들을 표현한다.

[p282]로빈슨 제퍼슨의 시 ‘얼룩 털의 종마’
원자들은 튀어 오르며 부서진다.
태양에는 핵이, 행성에는 전자가, 인식을 지닌 채
기도하기 않고, 스스로 동일하게, 전체에는 전체인, 소우주는
들어서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으면서
또 다른 극한, 또 다른 위대함과
더욱 동등하게, 더욱 순전하게, 더욱 경이롭게 결합한다.
열렬히 동일성을 자각하면서…..

3. 저 아래 흐르는 물, 저 위에 흐르는 물
[p292](연꽃 여신)스스로가 이 세계가 전체의 화신이다. 그녀의 자궁은 공간의 장이며, 그녀의 심장은 시간의 맥박이고, 그녀의 생은 우주적 꿈을 반영하는 우리들 각자의 삶이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피안의 것이 아니라 바로 이곳의 매혹하는 힘이다. 성서로 치자면 그녀는 이브이다.

[p305]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내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찍어 버리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열매를 더 많이 맺게 하려고손질 하신다. … 언제나 내 안에 머물러 있어라. 그러면 나도 너희 안에 머물러 있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과 같이, 너희도 내 안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사람이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가 그 사람 안에 머물러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너희는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요한복음 15:1-2,4-5)

4. 황금의 씨앗
[p308]붉고 흰 아름다운 장미를 꺾어다가
한 자리에 잘 결합시켜라.
그러면 그 사이에서 장미들이 녹아들어
그대는 영광스런 즙액을 맺어낼 것이다.

[p313]연결되지 않는 인간 존재는 전체성을 상실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영혼을 통해서만 전체성을 확보할 수 있는데, 영혼은 그 다른 반쪽 없이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언제나 ‘너’속에서 발견된다.

[p322]그리고 붓다의 어머니가 아이를 낳는 것도 이런 자셀 묘사 되었다는 사실은 그녀 안에서 (나무와 대지의 신에 대한 상상적 사고가 유행하던 시기에 나타난)자연의 모성적 힘이 지고한 결실을 맺게 된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이 세계의 연꽃의 심장에 있던 붓다-의식의 활금열매를 맺게 된 것이다. 옴 마니 반메 훔.

[p324] 침머는 이어서 서구의 작품에 대해 이렇게 언급한다. “나는 이 완전하게 세속화된 자세(힌두나 발리의 이미지에 널리 퍼져 있는 것 같은 그런 상징성이 결여된 자세)는 어쨌거나 좀 더 고대의 자세를 바탕으로 하여 나온 것이며, 사실은 더 오래되고 널리 전해진 생명과 풍요와 사랑의 여신이라는 고전적 개념의 반 의식적인 기억이라고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반면 동양 예술에서는 똑 같은 자세가 완전히 의식되고 이해된 채 보존되어 왔다.”

Part4. 내면의 빛의 변형
1. 심리학과 요가
[p334]현대 학문인 심리학과 요가와 동일한 컨텍스트 안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세가지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 개인의 운명은 m의 심리적 성향의 작용이라는 생각이다. 즉, 자신에게 들이닥치는 재앙들은 스스로가 초래한다는 것이다. 다음은 신화와 종교의 형상들은 저 높은 곳으로부터의 계시가 아니라 저 높은 곳으로 계시가 아니라 정신생활의 발현이며, 그 환상의 투영이라는 것이다. 즉, 신들과 정령들은 우리 안에 있다. 마지막으로 한 개인의 심리적 성향은 자신의 꿈과 그의 운명적 사건들에 대한 통제를 통해서 변형될 수 있다는 점이다.

[p335]사람들은 각기 여러 신들을 섬기면서 “ 이 신을 숭배하라. 저 신을 숭배하라”고 한다. 그러나 모두 하나의 창조자로부터 나온 창조물일 뿐이며, 그 자신이 모든 신이다. …..그는 우주 속에, 심지어 우리의 손톱 끝까지 들어와 있으며, 그것은 마치 칼이 칼집 속에 들어 있거나, 불이 장작 속에 들어 있는 것과도 같다. 그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눈으로 보이는 것은 완전한 그가 아니다. 숨을 쉴 때 그는 ‘숨’이라고 불리고, 말을 할 때는 ‘목소리’라 불리며, 볼 때는 ‘눈’이라 불리고, 들을 때는 ‘귀’라고 불리며, 생각할 때는 ‘마음’이라고 불린다. 이것들은 그가 행하는 일에 따른 이름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들 중에 어느 하나만 숭배하는 사람은 그를 진정으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는 이 가운데 어느 하나만으로는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2. 인도하는 뱀
[p359] 들어라, 멀리 떨어진 저 빛나는 세계로 영원히 들어가신 그대여…. 원초적 하늘과 땅은 우주란과 같은 하나의 형태였으니… 첫째로 빛, 파네스가 나타났다. 그는 디오니소스라고도 불렸다. 무한히 높은 올림푸스 산 둘레를 돌고 있었기에….

3. 여래의 도래
[p367] 그리하여 그것을 명상하는 동안, 우리는 자신의 순수 상태로 되던져진다. 주체가 객체를 향하듯, 그러면 각자의 신비의 국면들이 “도래하리라.”

4. 피안의 지혜
[p374]요가는 임의대로 움직이는, 마음이라는 것의 활동을 의도적으로 멈추는 것에 있다.

[p375]요가의 사고방식은 바람을 가라앉히고 물을 다시 평온한 상태로 되돌리려는 것이다.

[p385] 달라이 라마는 관세음보살의 현세의 화신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관세음보살은 모든 존재들이 서로서로를 비춰주는 한, 그들이 교접에도 존재한다. 그는 브라만들에게는 브라만으로 나타나고, 상인들에게는 상인으로 나타나며, 곤충들에게는 곤충으로 나타나는 등, 각자에게 그것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5. 연꽃 사다리
[p397] 따라서 호흡을 조절하는 것은 감정과 느낌을 조절하는 것이며, 정신을 조절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p424]옴은 모든 존재의 씨앗소리이자 에너지의 소리이며, 샤크티로 해석된다.

[p429]간단히 말하면, 모든 요가의 목표는 그 깨어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즉, 더 이상 깨어있는 세계이건 꿈속이건 간에 이런 저런 사물에 의거함이 없고, 불교의 가르침에서 ‘어머니의 빛’이라고 하는 내재한 빛과 만나는 곳으로 가라앉는 것이다.

6. 땅으로 돌아가다
[p468] 아, 고귀하게 태어난 자여, 무섭고 두려운 어떤 환영이 눈앞에 나타날지라도 그것들이 자신의 마음에서 투영되어 나온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 중요한 비밀을 잊지말라. 내 눈에 어떤 모습이 보일지라도, 그것은 내 자아의 의식이 반영된 것임을 깨달으리라 그것들이 바르도의 상태에서 보이는 환영의 본질임을 지각하리라.

Part 5. 희생
1. 자발적인 희생양
[p490]바울은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와 똑 같은 마음을 지니라며 격려하였다. “어떤 일을 하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고,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십시오. 또한 여러분은 자시 일만 돌보지 말고 다른 사람들의 일도 돌보아 주십시오. 여러분은 이런 태도를 가지십시오. 그것이 예수께서 보여주신 태도입니다. “(2:2-5)

2. 희생의 주술적, 도덕적, 밀교적 규칙들
[p511]나는 종교를 자연이 운행이나 사람의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고 조정한다고 믿어지는, 초인간적인 힘에 대한 회유나 위무로 이해한다. 이렇게 정의할 때, 종교는 이론과 실천의 두 가지 요소, 곧 인간보다 우월한 힘에 대한 믿음과 그 힘을 달래거나 기쁘게 하려는 시도로 구성된다.

4. 신화
[p535] 호루스의 눈을 가져라, 그것을 맛보아라. 한 덩어리의 눈을,
호루스의 눈을 가져라, 그것을 받아들이라, 한 덩어리의 살점을.
호루스의 눈을 가져라, 세트로부터 벗어난 눈을, 그것을 입으로 가져가 그것을 들고
입을 벌려라. 삼켜라, 하나의 흰 구슬 단지를,

Part 6. 깨어남

[p586]<가을의 리듬> 잭슨 폴록
별들, 어둠, 등불, 환영, 이슬, 거품 방울
하나의 꿈과, 하나의 섬광, 한 조각 구름,
우리는 이 세상을 잘 살펴 보아야 하리라.

[p588] “색은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은 색과 다르지 않다. 색은 곧 공이요. 공이 즉 색이다. 수, 상, 행, 식 역시 이와 같다.

[p588]다시 말해서 그 제한된 의식의 조건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고자 하는데 붓다의 목적이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삶을 결정짓는 기만적인 공포와 열망과 다툼들을 빚어내는 형태의, 꿈으로 경계 지어진 현혹의 상태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p591]우리는 어느 칼라하리 부쉬맨의 입을 빌어 이 책이 서막을 열었다. “우리는 꿈꾸는 꿈이 있답니다. “그리고 이제 쇼펜하우어의 펜 끝에서 나온 주문을 외며, “하나의 존재가 꾸는 광대한 꿈으로서 그 꿈속의 등장인물들도 모두 꿈을 꾸고 있는” 은하수와 우리 자신으로 이루어진, 전 우주의 막을 내리고자 한다. 여기에는 분명 영감의 일치 같은 것이 있다. 하지만 또한 차이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는 칼라하리 사냥꾼들의 세계를 들여다 본 적도 없고, 스스로 신화화 관련된 무엇이 우리에게 그리고 쇼펜하우어에게 남아있는지 묻지도 않았다. 오늘날 우리가 꾸고 있고, 그것이 우리를 꿈꾸는, 그 꿈은 무엇인가? 어떤 르네상스적 깨어남이 티치아노의 붓과 셰익스피어의 거침없는 펜에 영감을 불어넣고, 갈릴레오의 뉴턴과 달나라를 향한 우주비행사들의 비행을 가능케 했는가?

Ⅲ. 내가 저자라면

세계 곳곳의 신화를 살피고 그 신화 내에 있는 이미지 혹은 상징에 대해 상호간의 유사성과 상이성을 밝혀내어 기술한 이 책은 죠셉 캠벨만이 쓸 수 있는 야심만만한 저작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방대한 자료와 함께 서로 다른 문화의 신화 사이에서 발견할 수 있는 유사성을 예민하게 발견해 내어 기술할 수 있는 있었던 사람은 오직 조셉 캠벨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끝없는 지식 덕분에, 이 책은 매우 산만해졌다. 마치 범인(凡人)이 천재의 머리
속의 의식의 흐름을 들여다 보는 느낌으로 읽는 책이다. 이 천재의 머리 속에서는 한 가지
주제에 대해서 순식간에 여러 가지 신화가 연결이 되고 여러 장면에 동시 다발적으로 연결이
된다.

이로 인해 당연히 신화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독자에게는 책을 읽는 것이 고역이 되
어 버리고 만다. 그러한 비전문적인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책 전체의 형식이 이런 형식이었
으면 읽기가 더 쉽지 않을까 하여 몇 가지 제안을 해 본다.

먼저, 그림이 책의 내용을 이끌어 가고 글이 그 뒤를 따르는 형식으로 편집을 해 보았어도
좋았을 것 같다. 이 책은 논거를 따라가는 논리적인 책이 아니다. 오히려, ‘인도 어느 신화에
서 등장하는 어떤 상징이 성경의 어떤 상징과 유사성을 지니는 구나’라는 식으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책이다. 따라서 글보다는 그림으로 신화들 간의 상호 유사성과 상이성을 발견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그래서 그림들을 먼저 내어 놓고 그들간의 상호
유사성을 독자들이 느끼게 해 준 후에 그에 대해 죠셉 캠벨의 생각을 자세히 설명하는 방식
을 취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식으로 구성을 바꾸면 독자들
이 머리 보다는 가슴으로 책을 받아들이기도 더욱 쉬웠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글쓰기 방식을 이런 식으로 바꾸어 보았으면 어땠을까? 캠벨의 글쓰기는 자신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서 이야기를 하듯이 글을 쓰는 방식을 취한다. 이러한 글쓰기를 따라 가
다 보면 독자들로서는 전체적인 그림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캠벨이 그 장에서 말
하고자 하는 요점을 놓치고 그저 작은 그림이나 작은 스토리에 초점을 맞추어 글을 읽게 되
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서 편집인이 전체적인 흐름을 이
해하는 글을 각 장의 앞머리에 붙여 두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예를 들어, 연꽃과 장미라는 제목이 붙은 장의 앞머리에서, 다음 장은 불교에서 자주 등장하
는 연꽃과 기독교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미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 지 그리고 그 두 가지의 상
징이 어떻게 인류 전체의 무의식을 공유하는 지에 대해서 쓴 글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캠벨
은 연꽃과 장미의 상징을 이런 식으로 파악하고 있다 정도의 글을 편집인이 붙여 주는 것이
다.

이런 배려를 하였다면 이 책이 천재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 가다가 독자가 지치게 되는 상황
을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에서 어떻게 하면 이 책이 좀 더 쉽게 독자에게 다가가는 책이 될 수 있었을까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저자 캠벨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책의 의도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캠벨이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그 무엇인가를 넘어서
는 “신비로움”이었는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독자가 이 책을 읽는 방식을 바꾸어야 할 지
도 모르겠다. 독자는 이 책을 글로 읽는 것을 그만두고 오감과 상상력을 동원하여 캠벨처럼
느끼도록 노력해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IP *.84.24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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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2008.04.28 14:29:05 *.97.37.242
어렵죠? 저도 그래요.

책 읽다가 중간쯤에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어서 이렇게 써놨어요. "켐벨, 천재 아니면 또라이다!"

그런데 나중에 다시 그 부분을 보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아주 쬐끔 감이 올듯 말듯 하더라구요. ㅎㅎㅎ
캠벨은 시간이 필요한 저자 같아요. 시간을 갖고 충분히 음미하며 읽어야 할... 그리구 생각나면 다시 한번 읽어야 할... 근데 다시 읽을 일이 있을라나? ㅋㅋ

여하튼 캠벨 여행을 마치게 된걸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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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
2008.04.28 14:47:22 *.84.240.105
천재가 아니면 또라이다 ..이거 정말 죽이는데요...

이 책이 가장 어려웠어요. 다른 것들은 어느 정도 이해했다고 스스로 생각했는데..이 책을 보면서는 제 상상력의 한계가 오더군요. 그리고 번역한 사람이 너무 불쌍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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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28 16:07:25 *.64.21.2
담을 넘는 사람. 그를 한 마디로 나는 이렇게 요약하고 싶다.
---지식의 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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