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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5일 06시 07분 등록
인생으로의 두 번째 여행
알랜 B. 치넨 / 이나미 옮김, 황금가지

I. 저자에 대하여

알랜 B. 치넨 Allan B. Chinen
미국의 정신 분석학자로 현재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 대학교 정신 의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융 학파에 속하는 그는 옛날 이야기와 신화를 통해 인간의 심리현상을 해명하는 여러권의 책을 저술 했다. 주요 저서로서는 『젊은 여성을 위한 심리 동화』, 『영웅을 넘어서』, 『어른스러움의 진실』 등이 잇다.

이나미
서울대학 의과대학을 졸업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을지병원, 용인정신병원 신경정신과 과장을 거쳐, 현재 이나미 신경정신과 의원 원장으로 있다. 《문학사상》에 단편소설 「물의 혼」으로 등단했으며 『여자의 허물 벗기』, 『때론 나도 미치고 싶다』, 『딱 한 번만 더 보고 싶다』, 『사랑의 독은 왜 달콤할까』, 『에로스타나토스』등의 저서를 펴냈으며 역서로 『성의 침묵』이 있으며, 논문으로 『서양 정신 의학의 도입과 변천 과정』이 있다.

II.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머리말]

예날 이야기란 일상의 걱정들이 내적 성찰을 방해할 수밖에 없는 중년에 들어서는 특히 중요하다. 이야기란 독자들에게 자신의 믿음과 이성적인 생각들을 유보하고 자신만의 무의식으로 가는 명확한 통로가 될 수 있다. 이때 이야기란 듣는 사람의 가치관이나 이성적인 사고를 일단 멈추게 하고 사람을 자유롭게 놔두도록 하는 일종의 주문처럼 작용할 수 있다. 16p

[제1부 서른 이후, 젊음의 마법을 풀어놓다]

젊음의 마법을 상실하는 중년

.......대부분의 중년들은 자신들을 당나귀와 동일시할 것이다. 순수와 자발성, 그리고 젊은이들의 자유는 포기한 채 짐만 잔뜩 지고 사는 짐승이 된다는 것은 결코 쉽거나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그러나 성장에는 분명 슬픔과 비탄의 요소가 있다는 점은 명백하다. 29p

마법의 정령들이 사라진 것은 성인들이 <일> 때문에 <놀이>를 포기하고 <책임> 때문에 <순수>를 버리게 될 수밖에 없는 경험을 상징하고 있다. 33p

구두장이 부부는 관대한 행동을 했는데도 불고하고 요정의 마법을 잃어버렸다. 다른 중년 이야기들도 비슷한 관점을 견지한다. 마법의 상실은 윤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발달 과정상의 문제인 것이다. 이는 <벌>이 아니라 단지 <성장의 결과>인 것뿐이다. 35p

「인생의 시간 동안에 The Duration of Life」라는 이야기는 너무나 매력적이고 재미있어서 여기에 쓰지 않을 수가 없다.
신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후에 모든 짐승들이 30년은 당연히 살도록 명한다. 하지만 짐을 나르는 것이 벅차다고 많이 알려진 당나귀는 자신이 일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에 조금 더 오래 살도록 청한다. 하느님은 그가 18년을 더 살도록 허락한다. 반면 개는 늙는 것이 두려워 30년 중에 몇 년은 오히려 감해 주도록 청한다. 하느님은 그렇게 하도록 명한다. 원숭이 역시 늙는 것이 두려워 더 빨리 죽게 하도록 청했고 하느님은 친절하게도 10년을 감해준다. 마지막으로 사람이 나타나서 30년은 너무 짧다고 말한다. 하느님은 당나귀에게서 18년을 빼앗아 주었지만 사람은 여전히 만족을 못하자 개와 원숭이로부터 나이를 빼앗아 준다.
따라서 인간은 첫 30년은 행복하고 건강하게 산다. 왜냐하면 이것이 그들의 본래 인생의 기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에 당나귀에게서 빼앗은 18년을 더 살기 때문에 쉬지 않고 일하고 채찍질을 당하며 일상의 짐을 지고 살아야 한다. 다음의 12년은 개에게서 받았기 때문에 불 곁에 앉아 웅얼거리고 으르렁거리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원숭이로부터 받은 나이가 되었을 때 사람들은 자기가 좋은 대로 행동을 한다. 36p

요정들이 선물을 받자마자 떠난다는 사실은 의식이 창조성을 방해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많은 예술가, 과학자, 작가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 주목했고, 이를 아서 쾨슬러 Arthur Koestler는 그의 책 『창조의 행위 The of Creation』에서 이미 말한 바 있다. 창조성은 의식의 판단과 의도를 유보했을 때만 나온다. 특히 유치하고 장난기 많은 어린 시설의 흔적들은 창조성에서 꼭 필요한 요소다. 너무 정밀한 조사나 비평이나 명력을 받도록 강요하는 것은 요정이 갖는 창조성을 재빨리 도망가게 한다.
요정들은 떠나자마자 구두장이는 다시 일을 하게 된다. 그의 땀은 요정의 마법을 대치하는 것이다. 39p

비록 대부분의 어른들이 옛날 이야기들을 황홀함과 행복한 결말로 결부시킬지 모르겠지만 중년의 이야기들은 놀라울 만큼 또렷한 특징, 즉 젊은 시절의 마법을 잃어버린다는 내용을 포함한다. 중년의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그런 내용들을 그저 환상의 일부이거나 숨은 희망의 만족 따위로 그냥 버리지 말라고 경고한다. 중년의 이야기들은 중요하지만 대부분은 불쾌한, 그러나 항상 앞날을 내다볼 수 있는 통찰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40p

중년기에 잃은 젊음의 이상들

.......중년들은 보다 성스러운 완벽성, 순진성, 그리고 젊음의 이상을 잃어버리는 대신 노동과 고통에 대해 배운다. 젊음의 이상을 잃지 않겠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오히려 더 큰 재난이 닥치기 마련이다. 41p

순수함과 야망이 가득 찬 젊은이들은 완벽함이 가능할 것이라는 짐작을 갖고 있다. 그러나 실생활과 부딪치면서 그런 꿈들은 결국 깨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왜 중년의 이야기에서 마법을 잃게 되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작은 인간의 잘못들과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약점들이 완벽성에 대한 신성한 꿈을 깨버린다. 46p

융 분석학자인 도날드 샌드너 Donald Sandner는 이를 이렇게 표현했다. <젊은이들은 진정한 성인이 되기 위해 자신들이 갖고 있는 ‘하느님과 유사성’을 포기한다.> 47p

문제는 그들이 젊었을 때의 휘황찬란한 이상을 자신들의 현재와 비교하고 의기소침해지는 데 있다. 48p

젊음의 마법을 버리지 않는다는 것

.......젊은 시절 마법을 상실한다는 것은 단순히 마법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관심이 자기 자신에게 가족으로 또 다음 세대로 그리고 궁극적으로 사회로 변하는 것뿐이다. 50p

[제2부 서른 이후, 남자가 가는 길과 여자가 가는 길]

중년의 이야기에 나오는 여성의 억압은 대부분의 문화에서 보이는 어두운 진실을 반영한다. 사실 모든 사회에서 여성은, 특히 결혼 후에는 여러 면에서 불리한 위치에 처해진다. 현대의 미국에서 기혼녀는 독신 여성들 보다 훨씬 더 많은 불만을 갖고 있다. 남성들의 경우는 그 반대이다. 또한 독신 여성들은 기혼 여성들보다 훨씬 더 오래 산다. 결혼은 남성들에게는 큰 보상이 되지만 여성들에게는 고통과 질병을 주기도 한다. 멕시코처럼 고도로 가부장제적인 문화에서는 독신 여성들은 자유와 자발성을 즐기지만 일단 결혼하면 그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 신혼 시절의 많은 여성들이 무의식적으로 결혼을 죽음과 연상시키고 다른 중년 혹은 노년 성인들보다 훨씬더 죽음을 많이 생각한다는 것은 결코 놀랄 일은 아니다. (신혼기의 남성들은 죽음에 대해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게다가 신혼기의 여성들은 나이 많은 사람들보다 절망감과 자살의 공상에 대해 훨씬 더 많이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99p

많은 동화에서 여성의 계략이 부정적인 것으로 그려지는 반면, 중년의 이야기에서는 여성의 현명함은 칭찬받을 만한 무언가로 그려진다. 사실 여성들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통합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교활해지는 것 이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는 경우가 많다. 100p

엄격한 성역할을 아직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소년 소녀들은 상대적으로 양성적이다. 이 점은 중년의 이야기에서 각 개인의 남성과 여성성을 균형 잡게 하는 중요한 테마가 된다. 많은 연구에서 중년기가 되면 심리적인 양성성이 늘어난다는 점을 지적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양성성이란 나이 들면서도 깊이 행복할 수 있는 성공적인 심리 특성과 비례한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결혼 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기혼 부부들은 불행한 부부들이나 젊은 개인들과 비교할 때 전통적인 성역할에 별로 개의치 않고 있다. 중년에게 로샤의 잉크 심리 테스트를 시행해 보면 성역할의 편견에 개의치 않고 독특하고 개인적인 답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반대로 젊은 성인들은 엄격하고 전통적인 성역할에 훨씬 더 무게를 둔다(흥미로운 점은 치매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남성성과 여성성의 융통성 있는 개념들, 즉 양성성이란 성공적인 노화와 관련이 된다. 120-121p

심리학적인 변화를 고려해 보면, 원래는 이런 갱년기 우울증들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간주되었고 종종 호르몬 주사로 치료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들에서는 아주 소수의 여성들만이 폐경이 되었을 때 우울증에 빠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들은 자신들의 모든 삶을 단지 아이들 키우는 일에만 집중한 사람들이었다. 121p

<폐경>이란 단지 좁은 의미에서 어머니로서의 역할에만 자신을 얽어매는 여성들에게만 우울할 뿐이다. 대부분의 비서구 여성들은 폐경을 <해방>이라고 생각한다. 121p

자기 자신에 대해 그려보라고 하면 초기 청년기까지는 남자들은 자기를 점점 더 크게 그리게 되는데 이는 자신감과 자존심이 점점 더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중년이 넘으면 남자들은 자신을 점점 더 작게 그린다. 이는 예민함과 굴욕감을 훨씬 더 많이 느낀다는 점을 뜻한다. 124p

남성은 자신의 약한 부분과 고통을 감추도록 사회화되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중년에 겪는 혼란과 의심을 감춘다. 남자들은 대개 밖으로는 잘 기능하지만 속으로는 고통을 받는다. 중년의 이야기들은 외적인 겉모습이 아닌 내면의 진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남자들은 중년과 관련한 문제를 아주 서서히 다루게 된다. 남자들은 대개 작은 실망들을 여러 번 겪고 나서 자신들이 젊었을 때 가졌던 큰 야망들을 줄여나간다. 그리고 극적인 특별한 위기 없이 수년 간 적당히 타협해 나간다. 중년의 이야기들은 저속도 촬영 사진같이 느리고 점진적인 이러한 과정들을 빠르게 돌려준다. 위기를 묘사하는 이런 극적인 그림들은 어떤 극점에 이르러 과장되게 만들어지기도 한다. 125p

결국 왕비가 패배한 왕을 구출한다. 이는 또 다른 중년의 중요한 남성들의 주제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즉 남성은 여성에 의해 구원 받는다. 단테의 『신곡』에서 주인공은 아름다운 베아트리체를 그의 장정 중에 만나 지옥과 연옥을 통과하면서도 결국 천국으로 향할 수가 있게 된다. 127p

남편들은 종종 부인들이 여러 가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남자들은 오로지 공공의 영역에 나타나는 것만을 보지 그 뒤에 숨어 있는 개인을 알지 못한다. 이는 남자들이 개인간의 상호 작용과 관계를 습득하는 것을 어려워한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128p

중년의 이야기들은 여성들이 그들의 힘을 중년에 재선언하고 남성들은 고통을 겪는 지혜를 배운다는 것을 보여준다. 129p

여성의 새로운 경력은 남편이 그의 능력 이상의 것을 더 이상 추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비로소 시작하게 된다. 131p

[제3부 서른 이후, 운명을 받아들이다]

........중년은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의 세월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남아 있는 나이를 생각할 때 시작하는 것이다. 135p

신하들은 다시금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말없던 신하는 다시 한번 웃었습니다. 이때 왕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왜 웃고 있소? 죽음이나 영원한 생명에 대해 우스운 일은 없소」 그 신하는 왕에게 절을 하며 말하기를 「전하, 화내시게 할 의도는 없었나이다. 그러나 전하께서 원하시는 대로 영원히 산다면 우리의 인생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역사의 모든 영웅들은 여전히 우리와 더불어 살게 될 겁니다. 처음 나라를 통합한 왕, 평화를 가져온 제헌자, 모든 지혜를 갖춘 현인들 그리고 예언자들」 그는 잠시 쉬었다 다시 말했습니다. 「그들과 비교하면 우리는 밭에서 쟁기질하는 농부가 될 것이고 폐하께서는 틀림없이 지방의 서기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136p

남자와 여자가 줄다 직면해야 하는 문제들을 제기한다. 이러한 공통적인 위기의 시초는 인생에 있어서의 궁극적인 역할 바꾸기, 즉 죽음이다. 137p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왕이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법은 교훈적이다. 그는 자기 중심적 관점에서 시작해서 그가 죽어서 상실하게 될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더 커다란 그림을 보게 되는데 그것은 역사를 통한 세대의 계승과 그 안에서 자신의 초라한 위치였다. 그는 그의 선조들이 그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그도 다음 세대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이 우리가 논의했던 왕의 죽음에 대한 공포를 해결하는 생성의 정신이다. 139p

「집과 가족에게로 돌아가거라. 너의 몫에 만족하거라. 신이 너에게 지혜의 책을 내리셨다. 그 충고를 따르도록 해라. 성실히 일해라. 아이들을 잘 길러 미래를 준비시켜라. 그리고 너의 이웃을 도와라. 그리하면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이 말과 함께 그는 사라졌습니다. 그 백만장자는 지혜의 책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후로 그는 그 책의 조언을 따랐습니다. 그는 선하고 정직한 삶을 살았고, 드디어 이승에서의 마지막 날이 왔을 때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죽었습니다. 148p

백만장자는 영생을 찾는다. 그의 노력은 은유적으로 말해 중년의 공통된 반응이다. 중년의 남녀는 일에 몰두하고 열심히 운동하고 식이요법을 하면서 죽음의 불가피성을 부정하려고 노력한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청춘의 감각을 되살리려고 나이 어린 연인들과 사랑에 빠진다. 불행하게도 동화에서 나타나듯이 이러한 노력 중 어떤 것도 성공하지 못한다. 백만장자는 생명의 영약을 발견할 수 없었다. 149p

어떤 사람은 신의 책으로부터 심오한 충고를 기대할지 모르지만 책의 내용은 예상 밖이다. 그것은 단순히 백만장자에게 열심히 일하고 가족을 잘 부양하고 아이들의 장래를 준비해 주고 이웃을 공격하라는 것이다. 150p

사실 여성이 모성애를 생각할 때 죽음에 대한 공포는 경감한다. 반면에 남성은 다른 방법으로 죽음을 다루어야 한다. 결국 여성은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역할을 하기 위해 일찍 사회화되는 반면 남성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찾으려고 한다. 그러므로 남성에게 있어 베풂이란 중년에 들어서 배우기에 훨씬 더 어렵다. 베풂이 죽음의 공포를 없애는 데 중요하기 때문에 남성은 죽음에 관해 좀더 많은 문제를 갖게 된다. 남성과 여성은 중년에 정반대 방향에서 죽음에 접근한다. 남성에게 있어 죽음에 직면하는 것은 대부분의 중년 남성들이 그러하듯 절망적이다. 여성에게 있어 죽음과의 조우는 종종 자유스러운 것이 된다. 여성은 그들의 삶이 다 끝나감을 깨달으면 전형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나 자신의 힘을 개척한다. 죽음은 그들에게 매력적인 왕자를 기다릴 수 없음을 경고한다. 154p

프로이트는 꿈이 금지된 소망을 숨기고 수용되지 못하는 충동이 의식세계로 나오는 것을 가려주거나 제외시킨다고 주장한다. 융은 여기에 동의하지 않고 꿈은 억압에 대항하고 개인이 회피하는 문제를 끄집어냄으로써 무의식을 나타낸다고 주장한다. 156p

.......젊은 시절의 정신과 비교해 볼 때 중년의 비극적 관점은 우울하고 침울한 것같이 보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년에 운명을 받다 들인다는 것은 자유스러운 일이 될 수 있다. 159p

형은 그 낯선 사람을 뒤쫓아가 외쳤습니다. 「실례합니다만 그 밀밭은 나의 아내 밀리자의 것이라고 말할 참이었습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은 그녀의 것입니다」곧 불길이 사라졌고 모든 것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누가 물을 때면 형은 항상 대답했습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나의 아내 것입니다」 그래서 그와 그의 아내는 그들의 남은 여생을 풍요로이 살았습니다. 164p

운명과 행운은 개인의 통제를 능가하는 단순한 힘이다. 죽음은 이러한 힘의 으뜸가는 예이다. 그러나 사회적 관습이 종종 운명과 비슷한 결과를 가져오는데, 왜냐하면 전통과 가족들의 압력이 종종 사람들을 원하지 않는 직업과 결혼으로 몰아가기 때문이다. 165p

팻의 이야기는 중년의 초반에 삶과 죽음의 갈등을 다루었다는 데서 드라마틱하다. 그러나 운명, 행운, 그리고 자신의 통제를 능가하는 힘과의 갈등 같은 똑같은 문제가 중년의 대부분의 남녀와 부딪히게 된다. 운명은 또한 많은 형태를 띤다. 직장에서 물러나는 것, 자식들의 약물 문제와 씨름하는 것, 치매에 걸린 부모를 돌보는 것 어떤 이름으로, 어떤 설명으로든 운명이나 행운은 중년에 그의 의무를 요구한다. 172p

.......심리 분석가들은 젊음을 부러워하는 것이 젊은이와 자녀들에 대한 중년의 중요한 문제임을 강조한다. 중년의 오이디푸스적 질투를 이기지 못하고 베풂의 미덕을 발전시키는 데 실패한 사람은 자신의 괴로움과 분노로 소모되고 만다. 173p

아버지는 대개 아들에 대해 자부심과 애정을 느끼지만 또한 질투와 경쟁 관계도 느낀다. 이런 오이디푸스적 갈등은 중년에 심해진다. 아버지가 신체적으로 나이가 먹었음을 처음 느끼게 될 때, 아마도 정력과 기민함이 하향 곡선을 그을 때 그의 아들은 신체적 힘의 정점에 달할는지 모른다. 유사한 문제가 선생님과의 사이에서도 일어난다. 스승은 그의 제자가 성공하기를 돕고 싶어 하나 또한 후배에 의해 자신의 자리를 빼앗길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갖는다. 결과적으로 종종 폭발적인 갈등이 일어난다. 182p

중년의 오이디푸스적 갈등은 남성의 또는 여성의 심리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부모와 지도자 즉 다음 세대에 의해 어떤 방법으로든 위협받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심리를 다룬다. 심리학자와 심리분석가들은 젊음을 부러워하는 것이 - 질투와 증오 - 중년의 중요한 문제임을 강조한다. 만약에 개인이 인간 마음속의 이러한 어둡고 그늘진 면을 체념하지 않는다면 많은 문제가 일어날 것이다. 부모가 아이들과의 경쟁을 참아낼 수 없다면 아이들은 상처받고 분노하면서 자랄 것이다. 그러나 부모가 승리하는 시기는 단시일 내에 끝난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성인이 되고 부모는 늙어 쇠약해지기 때문이다. 베풂의 정신이 없다면 불행한 결과가 두 세대에 일어날 것이다. 183p

운명의 충격은 왕에게 생성을 가르치고 이것이 오이디푸스적 전쟁을 해결한다. 184p

운명은 그것 자체로는 중년의 질투를 해결하지 못한다. 운명이 부여하는 것은 다소 비극적이고 철학적인 관점이다. 인간의 통제력을 능가하는 힘의 수용이다. 중년의 비극적 통찰의 발전은 남녀가 인생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도록 도와준다. 185p

젊은 남녀는 부모의 과실이 무능력과 한계의 결과라기보다는 고의적이라고 느끼는데, 왜냐하면 젊은이들은 비난과 죄의식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187p

개인적 계획과 야망에 열중하여 전속력으로 앞으로 달려가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낯선 상황에서 당황하고 머뭇거리는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188p

운명은 구체적이고 현세적이며 인간적인 형태를 취한다. 반대로 오이디푸스적 갈등은 개인적인 가족 문제 이상의 것을 드러낸다. 그것은 또한 운명과 숙명의 문제이다. 운명을 가족간의 대립과 연결 지음으로써 중년의 이야기는 추상성과 구체성, 숭고함과 평범함을 결합시킨다. 이것은 중년의 지혜의 특징이다. 189p
[제4부 서른 이후, 삶을 깨닫다]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면 천국에서 지구까지는 얼마나 먼지 나에게 말해보아라」
군인은 잠시 멈추어 생각하다가 대답했습니다. 「그들이 그곳에서 소리 지를 때 우리가 여기서 그것을 들을 수 있을 만큼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러면 지구는 얼마나 넓으냐?」황제가 계속해서 물었습니다.
「태양은 저쪽에서 뜨고」 군인이 동쪽을 가리켰습니다. 「그리고 저쪽으로 집니다」 그는 서쪽을 가리켰습니다. 「그것이 지구의 넓이입니다」 황제가 웃었습니다. 「그러면 지구는 얼마나 깊으냐?」 황제가 물었습니다.
「몇 년 전에」 군인이 말했습니다. 「저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우리는 그를 땅에 묻었습니다. 그는 결코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그것이 지구의 깊이임에 틀림없습니다」 194p

아직까지도 인간관계를 이해하는 것은 복잡하고 추상적인 이성을 요구한다. 다른 사람과 공감하기 위해서 개인은 다른 사람이 느끼고 경험하는 것을 상상 해야만 한다. 이것은 타인의 복잡한 인격의 유형을 해석할 것을 요구한다. 공감은 과학과 관련된 똑같은 추상적 사고를 사용하며 단지 사물과 사고보다는 사람과 감정을 다룬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201p

벨렌키의 연구에 등장하는 31세의 한 여성의 다음의 말에서 그 점을 엿볼 수 있다. <나는 단지 나의 본질로만 알 수 있을 뿐이다. 동시에 나는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점에 나의 본질을 일치시켰다. 그리고 나는 옳은 것을 안다. 나의 본질은 나의 가장 좋은 친구다. 세상에서 나를 지치지 않게 하고 나에게 거짓말하지 않고 나로부터 뒷걸음치지 않는 유일한 것이다. 202p

.......악에 대한 관용은 중년의 미덕이다. 몇 년 간의 삶을 경험한 후에 남자와 여자는 고통스럽게 괴로움과 악을 깨닫고 또한 종종 상황을 바꿀 수 없음을 깨닫는다. 중년의 지혜는 바로 이러한 비극적 통찰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206p

실용적인 지혜가 중요하다 할지라도 악과 비극을 다루는 데는 다른 방법들이 있다. 다음의 중년 이야기는 아마도 가장 놀랄 만한 접근 방법을 소개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웃음>이다. 221p

.......유머란 그저 웃어넘기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지혜인 것이다. 유머는 중년의 여성과 남성이 인생의 비극적인 면을 다루는 데 큰 힘이 된다. 222p

유머가 없다면 중년의 삶이 비극으로 될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 경고함으로써 우리를 오싹하게 한다. 유머란 그저 웃어넘기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지혜인 것이다. 228p

한 사람이 성숙하면 성숙할수록 보다 많은 유머를 사용한다. 한 사람의 심리적인 행복감이 클수록 유머 감각도 늘어난다. 228p

중년에는 그런 호사를 누릴 여유가 없다. 그들은 무능한 권위체제에 대해 분노를 표현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바로 그들이 책임을 지고 있는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중년의 사람들이 상황을 단순히 떠날 수 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화가 난 젊은이들을 포함해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정서적으로나 물질적으로 그들에게 의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책임에 꼼짝 않고 갇혀 있기 때문에 중년의 여성들은 도망치거나 싸울 수가 없다. 유머는 이런 상황에 꼭 필요한 해결책이다. 229-230p

유머는 중년의 여성과 남성이 인생의 비극적인 면을 다루는 데 큰 힘이 된다. 이 주제는 죽음에 이르러서 자신의 자리를 내줘야 하는 문제를 농담을 통해 극복한 제왕 이야기에 이미 등장한다. 프로이트가 지적한 바대로 유머는 인간에게 죽음의 불가피성을 극복하고 승리자가 될 수 있도록 해준다. 즉, 죽음조차도 농담의 재료로 만드는 것이다. 231p

오직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깥에서 볼 수 있는 사람만이 자신을 소재로 농담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자기 자신과는 상관없는 상황을 볼 때만 웃을 수 있는 것이다. 반면에 너무 완전히 상관하지 않을 때는 무관심과 냉정한 객관성만을 지닐 수 있을 뿐이지 유머가 나오지는 않는다. 몰입과 적당히 유지되는 거리는 유머의 핵심적인 조건이 된다. 여기서 우리는 중년의 기지에 대한 또 다른 면을 보려 한다. 즉 아이러니와의 연결이다. 234p

치유란 중년의 중요한 관심사이고 중년의 이야기는 놀랄 만큼 이 문제에 대해 여러 통찰을 준다. 236p

.......젊은이들은 치료도지 않는 상처도, 낮지 않는 고통도 있다는 인생의 어두운 부분을 보려고 애쓰지 않는다. 반면에 중년들은 인간 조건들의 비극적인 차원을 경험하고 나서야 보다 깊은 동정심을 배우게 된다. 이는 중년들이 스스로를 치료할 수 있게 하는 덕목이 된다. 237p

여성들의 억압은 단순히 남성으로부터 오지 않고 전체 문화, 특히 여성에 대한 여성의 억압과 이웃에 대한 이웃의 억압으로부터 온다. 241p

젊은 주인공은 그의 치료할 수 있는 힘을 보물과 진정한 사랑을 얻는 데 쓰고 있다. 젊은이들에게 치료란 세상에서 무언가를 해내는 또 다른 한 가지 방법이다. 치료란 영웅주의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너무 멀리 지나치게 되어 치료의 힘을 놓치고 결국 생명도 잃게 된다. 중년 이야기에서는 남성과 여성 모두 치유의 능력을 남용하지 않는다. 치료란 힘이나 영광의 수단이 아니라 역경과 비극을 극복하는 방법이다. 치유란 영웅주의를 극복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치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주 잘 움직여 주던 젊은 육체는 중년이 되면서 신음하고 절름거리게 된다. 젊은 육체일 때는 얼마든지 견딜 수 있었던 과식과 과로도 이제는 녹녹지가 않다. 상처들은 치유하는 데 시간이 점점 더 걸리고 원하지 않는 체내 지방은 점점 축적된다. 243p

노인에게 질병이 훨씬 더 일반적인 상황임에도 노인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치유보다는 초월에 더 관심이 많다. 243p

젊은이들은 치료되지 않는 상처도 있고 낫지 않는 고통도 있다는 인생의 어두운 한 부분을 보려고 애쓰지 않는다. 반면에 중년들은 인간 조건들의 비극적인 차원을 경험하고 나서야 보다 깊은 동정심을 배우게 된다. 이는 중년들이 치료를 할 수 있게 하는 덕목이 된다. 245p

치유가 남성적인 면과 여성적인 면을 모두 요구하기 때문에 좋은 치료자가 되기 위해 남자들은 돌보는 측면을 지녀야 하고 여성들은 적극적인 힘을 키워야 한다. 251p

.......중년의 개인들은 오랫동안 고통 받아야 한다는 자신의 몫을 기억하고 성숙의 생성을 위해 젊은 시절의 영웅주의를 버림으로써 자아 팽창과 원시성을 피한다. 253p

.......젊은 시절에 확립해 놓았던 개인적인 확신, 헌신들, 가치관 그리고 사회적 역할이 중년에 이르러 파괴된다. 이는 마치 황금나무의 가지와 잎들이 소용돌이 속에서 없어졌다 다시 형성되는 과정과도 비슷하다. 268p

남성의 행복은 궁극적으로 여성에게 달려 있다는 가정이다. 278p

그렇다면 화해의 주제란 심리학적 용어로 무엇을 뜻하는가? 양성성이란 이미 앞에서 토의한 대로 전통적인 성역할 고정관념의 대안이자 하나의 가능성이다. 각 개인은 그들이 생물학적으로 남성이건 여성이건 간에 자기 내부의 남성적인 면과 여성적인 면을 다 발전시켜야 이상적이다. 287p

「황금나무」는 이책의 모든 해석에 대한 은유를 제공해 준다. 이야기들에 관한 언급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녹고 다시 형성되는 나무와 가지 이상의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중년의 이야기는 심리학적 해석이 생기기 이전에도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다. 그리고 이야기들은 심리학이 잊혀진 학문이 된 후에도 계속 남게 될 것이다. 이야기들은 스스로 변하고 발전된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 이야기들은 또한 미래가 되면 녹아 없어지고 재형성될 것이다. 이야기는 상상력이란 시원적 샘물과 인간 영혼의 창조성이라는 보다 깊은 실재로부터 솟아났다. 그리고 이는 중년을 병들게 하는 전복과 혼란의 소용돌이에서 통찰과 재생 그리고 치유가 기다리고 있다는 중년 이야기들의 궁극적인 메시지이기도 하다. 292p

[에필로그]

.......중년이란, 짐을 잔뜩 싣고 가는 당나귀일 뿐이다. 그러나 바로 이때 조금 더 어렵고 깊이 있는 전복이 일어난다. 짐만 싣고 살아야 하는 당나귀와는 달리, 인간은 두 번째 인생으로의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293p

전통적인 남성 역할과 여성 역할을 뒤집어 경험해 보면 중년의 개인들은 성과 인간의 경험에 대해 보다 깊고 풍부한 이해를 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젊은 시절에 우세했던 황량한 이분법과 날카롭게 대비가 된다. 296p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절망과 냉소주의이다. 젊은이들이 너무 확신에 찬 것이 문제라면, 중년들은 너무 믿음을 적게 가진다는 함정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재치는 위로와 치유를 준다. 297p

남성과 여성은 궁극적으로 중년에 이르러 지혜를 얻게 된다. 그러나 지혜란 숭고하거나 철학적인 무엇이 아니다. 그것은 단순히 인간의 삶 속에 필요한 실제적인 통찰력을 의미한다. 「현명한 대답」에서 잘 묘사된 것처럼 실제 경험에서 얻어진 실제적인 좌우명들이 이들의 선행조건이 된다. 299p

젊은 시절에는 그들이 보수적인 사람이건 진보적인 사람이건 간에 힘과 성취에 관해서만 초점을 맞추었지만 중년이 되면 유약함이나 한계 그리고 관계성에 대해서도 잘 다루어야만 한다. 또한 양육과 친밀함을 초기에 강조했던 사람들은 그들의 보수나 진보 성향에 관계없이 또 다른 면인 자신감과 자발성 그리고 권력에 대한 심리적 특성이 도드라진다. 균형과 변환이 중년에는 보다 진지한 과제가 된다. 301p

쉬지 않는 모색은 중년과 중년의 이야기의 주제이다. 그리고 바로 이 중간 지점의 정신이 통합과 변환 그리고 인생 그 자체인 것이다. 304p


III. 내가 저자라면

오랜만에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을 인터넷 서점에서 뒤졌을 때 품절된 책이었다. 다행히도 중고로 내놓은 책이 있어 얼른 샀다. 약간은 오래된 느낌의 책이 그 내용과 잘 어울렸다. 중년이란 단어가 나에겐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 이 책을 보면서 30이 넘으면 중년으로 봐야하는 거구나란 생각을 했다. 내일 모래면 내 나이 40이다. 공자님은 그 나이를 불혹이라면서 인생을 좀 알 때라 했는데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난 이 책을 읽으면서 동화가 참 재미있게 다가왔다. 물론 저자의 해설도 전문가적 기질이 돋보이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해설보다 이야기가 훨씬 더 재미있었다. 이야기의 원 의미는 보는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나는 그냥 재미있었다. 마치 만화책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무튼 오랜만에 책에 빠져 즐거운 꿈을 꿨다. 시간 가는 것이 아까웠다. 꿈꾸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 그 꿈에서 깨어나지 않기를 바라던 그 기억을 더듬는다.

내가 저자라면 나는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갔을까?

이 책은 다분히 여성성을 강조한 책이다. 책은 중년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내용의 대부분은 중년 여성을 겨냥하고 있다. 거의 대부분 중년 남자들은 마치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나이만 먹은 사람으로 취급되고 있다. 과연 그럴까? 그냥 옛날이야기로 치부하기엔 좀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물론 이야기의 초점을 중년 여성에 두었음은 확연하다. 여성들에겐 많은 자신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내용이다. 하지만 남성들에겐 그동안의 삶이 무력함으로 꺾이는 순간이 적지 않다. 과연 중년을 이야기하는 동화들이 대부분 저런 내용뿐일까? 좀더 이야기의 균형을 갖췄으면 하는 바램을 조금 해본다.

나는 알랜 B. 치넨이라는 작가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다. 작가가 여자일 것이라는 것도 그저 짐작일 뿐이다. 그가 남자라면 나는 이 책을 다시 생각하고 싶다. 책속에 나오는 16가지 이야기 모두 여성은 현명함을 찾아가는 중년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남성은 발달이 멈춰지거나 지난날을 후회하고 잘못을 참회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것이 역사적 투영일지라도 현명한 중년의 모습을 갈구하는 반은 남성이기도 하다.

내가 저자라면 이 부분을 남성과 여성의 특징을 지우기보다는 똑같은 사람의 삶속에서 조화롭게 그려내고 싶다. 말하자면 이 책은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조화롭지 못하다. 그것이 우화에 나오는 이야기를 정신분석학 적으로 해석하니 그렇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한쪽으로의 치우침은 모자람만 못할 때가 많다.

책은 중년의 시작을 젊은이가 마법을 상실하는 데서 출발했다. 젊음과 중년을 서로 반대 개념으로 본 것이다. 젊음은 꿈과 이상에 비중을 두었다면 중년은 일상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가는 당나귀로 설명한다. 나에 삶을 봐도 그 범주에 속하는 것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꿈과 이상을 상실한 중년은 너무 가혹하다.

물론 책은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저자가 에필로그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처음 <요정과 구두장이>와 마지막 <황금나무>는 같은 맥락으로 보여 진다. 꿈이 일상이 되고 일상이 꿈이 되는 것이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알랜 B. 치넨은 이것을 꿰뚫은 것 같다. 그것은 다른 꿈이다. 중년의 다른 꿈....... 그것은 이전과는 다른 것이었다.

저자는 꿈과 일상의 삶을 반대 개념으로 보았다. 꿈은 이루어 질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우린 중년에 이르러 마음속으로 꿈꿔왔던 일을 저지르는 무모한 도전에 찬사를 보내기도 한다.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제2부 서른 이후 남자가 가는 길과 여자가 가는 길>에서는 이러한 아이러니가 여성들에게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 여성성이 꿈을 이루는데 많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제3부 서른 이후, 운명을 받아들이다>의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왕」에서 저자는 사람이 가는 종착역을 염두 해 둔다. 보다 자세한 내용을 다른 지면을 통해 이야기하기로 했는데 무척 궁금하다. 시공간의 건너뜀이 크다. 아마도 내가 궁금하게 여겼던 내용이 여기 있지 싶었다.

<제4부 서른 이후, 삶을 깨닫다>는 아마도 서른 초반이기 보다는 마흔은 족히 넘은 나이가 아닐까 한다. 역시 깨달음이란 단어는 꽉 찬 느낌을 받는다. 이 장에 이르면 “남성들이여 여성성의 위대함을 알아야 한다.”라는 저자의 목소리가 더욱더 커짐을 느낄 수 있다. 확실히 조화란 서로 어울림이다. 남성성과 여성성의 비교는 그리 중요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이 가지는 타고난 기질적 특징을 알지 못한다면 깨닫는 나이도 그만큼 오래 걸릴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할 때 시너지는 커지는 법이다. 그런 면에서 남성성의 긍정적인 면을 책에서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살면서 알아야 할 것이 참 많다. “모르는게 약이다”란 이야기를 들을 때면 앎이란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지식이 원색의 강렬함이라면 지혜는 파스텔 톤의 은은함이리라. 젊음이 강렬하다면 중년은 은은하다. 그것은 끊기로 이어지는 삶의 두 번째 여행이다. 굳이 새로운 삶이라고 치장하고 싶지 않다. 그냥 이전과는 다른 여행이면 족하다. 어떻게든 다를 수밖에 없는 여행이다. 다만 수레를 끌고 가는 당나귀의 네 다리가 들리지 않도록 너무 무거운 짐은 좀 덜어 놓고 홀가분하게 가야 할 것이다.

“.......중년이란, 짐을 잔뜩 싣고 가는 당나귀일 뿐이다. 그러나 바로 이때 조금 더 어렵고 깊이 있는 전복이 일어난다. 짐만 싣고 살아야 하는 당나귀와는 달리, 인간은 두 번째 인생으로의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293p

저자는 “중년의 비극적 통찰의 발전은 남녀가 인생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도록 도와준다.” 고 이야기했다. 역시 혼자보다 둘이 더 났다. 이 책을 보면서 나는 내 아내 생각이 참 많이 났다. 책의 주인공은 바로 그녀였기 때문이다. 동화속의 이야기처럼 현명한 아내를 둔 사내들은 대부분 행복한 노년을 맞이했다. 아내의 두 번째 여행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남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물론 아내도 나에 두 번째 여행에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

마지막 아쉬움.......
저자 자신의 이야기가 책 속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좀 아쉬웠다. 자신의 중년을 이야기하는 대목이 있었다면 좀더 설득력이 더해졌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다. 저자의 직업이 정신의학과 교수인 것을 증명하듯이 대부분의 내용은 환자를 다루는 의사의 입장을 끝까지 고수하고 있었다. “위로는 위로를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위로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기 때문입니다.” 란 신영복 선생님의 글이 갑자기 떠오르는 건 왜일까?
정신분석학 같은 학술적인 내용도 좋지만 그런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잘 들리지 않는 먼 나라 이야기인 경우가 많다. 나는 아직도 무슨무슨 콤플랙스와 같은 이야기에 대해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건 내 삶속에 와 닿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것을 내 삶속으로 끌어들이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다. 삶을 이야기 하면서 그 삶속에 깊숙이 파고드는 것은 학술용어이기 보다 우리 삶속의 사람 이야기가 더 정겹고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위에서 한 이야기는 그냥 타자치는 대로 써재낀 것이다. 책의 심오한 내용에 10%로도 채 이해하지 못하고 이야기 한 것 이니 저자에게 죄송한 마음이 든다. 나도 이제 중년이란 단어를 떠올리는 나이가 되었다. 책은 남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내 이야기였다. 많은 우화 속에서 나를 보았다. 어떨 때는 부끄러웠고 때론 숨고 싶은 심정이 들기도 했다. 솔로몬의 충고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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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환
2008.05.05 08:54:37 *.34.17.93
형수님께 반드시 훌륭한 여행의 동반자가 되리라 믿어의심치 않습니다. ^^
물론 지금도 그러실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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