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북

연구원들이

  • 서지희
  • 조회 수 2336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08년 5월 5일 11시 49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조셉캠벨을 마치며 읽기전환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했던 나는 목차를 보면서 가벼운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신화로부터 이제 겨우 빠져 나가는가 싶었는데 또 다시 신화와 옛이야기라니. 그러나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이 책은 지금 중년이거나 곧 맞게 될 사람들이 꼭 읽어 볼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으로부터의 두 번째 여행 저자 알랜 B.치넨은 미국의 정신분석학자이자 의학박사이다. 저서로는 <젊은 여성을 위한 심리 동화>와 <영웅을 넘어서>, <어른스러움의 진실> 등이 있다.

독일인인 저자는 독일, 한국, 페르시아, 러시아, 중국 등 세계 각국의 민담신화 등 16가지 이야기를 들려주며 중장년이 처한 여러 현실속의 사례를 녹여내고 있다.
‘당나귀의 비유’등 이미 고정화된 비유임에도 중년 남자의 짐의 예로 든 점 등은 충분한 공감력이 있었다. 곳곳에 등장하는 심리학 용어 ‘투사’ ‘로샤’등 굳이 저자소개를 보지 않아도 심리학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저자 역시 구스타프 칼융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지난번 캠벨의 책을 읽으며 칼융의 자서전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번 기회에 더 미루지 말고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번역자 역시 그 자신의 작품으로서도 작가적 명성을 일찍이 획득한 정신과의사 이나미의 중년과 이 책의 주제인 중년의 공통분모가 이 책을 더 설득력 있도록 번역하는데 기여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전 ‘때로 나도 미치고 싶다’ 란 저서를 통해서 번역자의 역량은 익히 알고 있었기에 더 반가웠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서문
10. 이 책에서 내 마음을 가장 강하게 울린 것은 일본, 중국, 이집트, 러시아, 인도, 폴리네시아, 그리고 미국 인디언들이 전설들에서 융의 아니마/아니무스 이론, 현대 남녀에 대한 로샤Rorschach 식의 해석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특성들을 발견한 점이다. 숙련된 정신과 의사나 작가의 손에 의해 이들 옛날이야기들은 인간 정신의 훌륭한 회화로 변형되었다. <이론의 개념>들은 이 책이라는 그림을 위한 틀이 되었고 <자료>의 특성들은 다양한 색깔과 모양들에게 미세한 반짝임들을 주는 동시에 감상자들에게 여러 반응들을 유발시키게 한다. 중년의 분야에서는 꽤 숙련된 프로인 나도 중년이라는 교직물을 짜면서 이만큼 시각적이고도 감정적인 울림이 큰 작품을 본 적은 없었다.

p.11. 중년이란, 언제나 거기에 숨어 있긴 했지만 위장되고 분열되고 합입된 채 잊혀진 자기 자신과 새롭게 다시 만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머리말
p.15. <사람들에게 사실이나 이념들을 들려주어라. 그러면 그들의 마음이 밝아질 것이다.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어라 그러면 그들의 영혼과 맞닿을 것이다.>

p.15-16. 첫 번째는 논리적이고도 선형적인 과학적 생각으로서 <사업>, <일>, <문제 해결>을 위해 사용되는 언어들이 있다. 두 번째는 이야기 형식의 Narrative 생각으로, <극>과 <신화>, <문학> 그리고 <옛날 이야기>등의 토양 이 되는 언어인데, 주로 인간 영혼을 건드리게 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인지 심리학자인 기슬라 라보비 비프Gisela Labouvie-Vief는 이를 보다 시적인 언어로 표현한다. 그녀는 두 가지의 추론 방식을 <로고스>와 <미토스>로 표현한다. 두 개 다 그리스의 언어로 <단어>를 뜻하긴 하지만 로고스는 설명, 계산, 계획들에 쓰이는 말이고, 미토스는 이야기, 극, 꿈 등에 쓰이는 단어이다. 그 이름만으로도 이야기란 인간의 영혼과 닿아 무의식 세계의 베일을 벗기는 작용을 하고 있다.

p.17. 놀랍게도, 중년의 이야기들은 관습적인 사회적 가치들을 반영하지 않는다. 이는 특히 여성들에게 중요하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문화들은 가부장제이고 여성적인 면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년의 이야기들은 놀랄 정도로 페미니즘 적이다. 중년에 관한 이야기들은 강하고도 독립적인 여성들이 자신들의 재능을 이용해 엄청난 사회적인 저항과 맞서 싸우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중년의 이야기에 여성주의적인 주제가 나오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 그런 이야기들은 관습적으로 친구들과 친척들 사이에서 구전되는 것이고 공적인 시각으로부터는 조금 비켜져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p.21. 중년의 이야기는 이미 인생이라는 여행을 거쳐 생존한 사람들에 의해 그려진, 중년이라면 거쳐야 할 통과의례, 장애물이나 오아시스, 위험들, 그리고 기쁨들이 어디 있는가에 대한 지도와 같다.

p.22-23. 문학 평론가인 노스롭 프라이 Northrop Frye나 민속 연구가이며 철학자인 로버트 펠톤 Rovert Pelton 으로부터 얻은 첫 번째 규칙은 옛날 이야기들을 해석하려고 들기 이전에 우선 귀를 열고 그 이야기들을 잘 듣는 것이다. 민속 연구가인 알란 던즈Alan Dundes가 말한 대로 옛날이야기에 대한 심리학적 토의들은 먼저 잘 듣지 않고 해석부터 하려고 했기 때문에 자기들의 대수롭지 않은 이론들에다 이야기들을 억지로 꿰맞춰 나가려고 애썼다.
제 1부 서른살 이후, 젊음의 마법을 풀어 놓다

p.32. 독일의 이 이야기는 중년 이야기의 아주 훌륭한 서론이 되고 있다. 이 이야기는 제일 널리 알려진 그림 형제의 동화집에 이미 나와 있는 것이기 때문에 독자들에게도 매우 친숙한 이야기일 것이다. 구두장이는 「헨델과 그레텔」이나 「엄지손가락 톰」과는 달리 이미 직업이 있고 결혼도 한 상태다. 이는 이것이 중년을 다룬 옛날 이야기라는 점을 아주 쉽게 알려주는 것이다.(중략)
마법의 상실은 세계 어느 나라건 중년의 이야기라면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이 주제의 중요성은 구두장이와 요정 이야기를 젊은이들의 이야기와 구별해 보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후자에서는 젊은이들은 오로지 뭔가 탐욕하고 사악한 일을 했을 때만 마법의 보물들을 잃게 된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구두장이는 탐욕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감사를 표시했고 관대했지만 마법의 힘을 잃었다. 이는 대체 무엇을 상징하는 것인가?

p.33. 그들은 젊은이나 아이들의 무심한 영혼을 의인화시킨 것이다. 마법의 정령들이 사라진 것은 성인들이 <일> 때문에 <놀이>를 포기하고 <책임> 때문에 <순수>를 버리게 될 수 밖에 없는 경험을 상징하고 있다.

p.34.남편은 아내를 몰래 훔쳐보다 그녀가 요정임을 알게 되는 순간 부인을 잃게 된다. 그의 지식으로 마법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비슷하게, 구두장이 이야기에서도 요정은 황새 이야기처럼 자연으로부터 만들어진 마술적인 존재다. 요정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는 순간, 그들은 자신들의 존재가 드러났다는 것을 알게 되고 떠난다. 자의식이라는 비슷한 주제는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고 난 다음에 벌어지는 성경 이야기에서도 나온다. 그들은 자기 자신의 존재를 의식하는 순간 에덴에서 쫓겨나고 천국의 마법을 잃어버린다.

p.34-35. 이 주제들을 같이 보면, 이야기들은 자의식의 발달과 지식이 어린 시절의 마법을 깨버린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단,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는 그들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는 것을 일종의 벌을 받은 것으로 표현하지만 구두장이 이야기는 거꾸로 결론을 보여준다. 구두장이 부부는 관대한 행동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요정의 마법을 잃어버렸다. 다른 중년 이야기들도 비슷한 관점을 견지한다. 마법의 상실은 윤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발달 과정상의 문제인 것이다. 이는 <벌>이 아니라 단지 <성장의 결과>인 것뿐이다.

p.36. 「인생의 시간 동안에 The Duration of Life」라는 이야기는 너무나 매력적이고 재미있어서 여기에 쓰지 않을 수가 없다. 신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후에 모든 짐승들이 30년은 당연히 살도록 명한다. 하지만 짐을 나르는 것이 벅차다고 많이 알려진 당나귀는 자신이 일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에 조금 더 오래 살도록 청한다. 하느님은 그가 18년을 더 사도록 허락한다. 반면에 개는 늙는 것이 두려워 30년 중에 몇 년은 오히려 감해 주도록 청한다. 하느님은 그렇게 하도록 명한다. 원숭이 역시 늙는 것이 두려워 더 빨리 죽게 해도록 청했고 하느님은 친절하게도 10년을 감해준다. 마지막으로 사람이 나타나서 30년은 너무 짧다고 말한다. 하느님은 당나귀에게서 18년을 빼앗아 주었지만 사람은 여전히 만족을 못하자 개와 원숭이로부터 나이를 빼앗아 준다.
따라서 인간은 첫 30년은 행복하고 건강하게 산다. 왜냐하면 이것이 그들의 본래 인생의 기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에 당나귀에게서 빼앗은 18년을 더 살기 때문에 쉬지 않고 일하고 채찍질을 당하며 일상의 짐을 지고 살아야 한다. 다음의 12년은 개에게서 받았기 때문에 불 곁에 앉아 웅크리고 으르렁거리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원숭이로부터 받은 나이가 되었을 때 사람들은 자기가 좋은 대로 행동을 한다.

p.36-37. 대부분의 중년들은 자신들을 당나귀의 운명과 동일시할 것이다. 순수와 자발성, 그리고 젊은이들의 자유는 포기한 채 짐만 잔뜩 지고 사는 짐승이 된다는 것은 결코 쉽거나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성장에서는 분명 슬픔과 비탄의 요소가 있다는 점은 명백하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이행을 거치는 데 실패하거나 그렇게 하기를 거부하는데, 이는 또 다른 어려움을 초래하기도 한다. 그중 하나가 피터 팬 신드롬으로 융 학파 사람들은 이를 <퓨어 콤플렉스 Puer Complex>라고 한다. (퓨어는 라틴어로 <아이>란 뜻이다 이런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피터 팬 같은 사람들은 젊은이들의 자유와 자발성을 영원히 즐기려고 하고, 직업이나 기타 다른 관계에서 받은 책임을 회피하면서 직장을 갖거나 결혼을 통해 감당해야 할 책무로부터 도망간다.)
이 증후군은 여러 가지 미묘한 형태를 갖는다. 어떤 사람들은 외부적으로는 일단 결혼해서 직업을 갖긴 한다. 그러나 내부에서는 여전히 위대한 미국 소설을 쓰는 꿈을 꾼다던가, 백만장자가 된다던가, 완전한 사랑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꿈이 실현되도록 무언가를 노력하려 들지는 않는다. 그들은 마흔이 되어야 일종의 충격적인 통찰을 경험을 하게 된다. 즉 이제 그들의 꿈을 성취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p.38-39. 구두장이의 이야기는 마법의 상실에 관한 또 다른 차원의 뜻인 창조성에 관한 면을 포함하고 있다. 요정들은 밤중에 도착해서 어둠속에서 일을 한다. 그들은 무의식의 창조성에 대한 아주 매력적인 상징이 된다. 의식의 사고가 해답을 찾지 못할 때, 잠자면서 어떤 문제에 대해 고민하다 보면 내부의 요정들이 성공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요정들이 선물을 받자마자 떠난다는 사실은 의식이 창조성을 방해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많은 예술가, 과학자, 작가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 주목했고 이를 아서 쾨슬러 Arthur Koestler 는 그의 책 『창조의 행위 The act of Creation』에서 이미 말한 바 있다. 창조성은 의식의 판단과 의도를 유보했을 때만 나온다. 특히 유치하고 장난기 많은 어린 시절의 흔적들은 창조성에는 꼭 필요한 요소이다. 너무 정밀한 조사나 비평이나 명령을 받도록 강요하는 것은 요정이 갖는 창조성을 재빨리 도망가게 한다.

p.39-40. 자크는 창조성에는 두 가지 기본적인 유형이 있다고 했다. 첫 번째는 불 속에서 나온 것처럼 뜨거운 창조적 작업이 있다. 조각이건 소설이건 음악이건 이는 완전히 예술가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젊은 시절의 모차르트로 예로 들자면 그는 귓가에 들리는 새로운 악상을 듣고 이를 악보에 옮겼다. 이런 창조성은 미친 듯한 영감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지만 나이가 먹을수록 사라진다. 그 다음에야 두 번째 유형이 전면에 나타난다. 이를 자크는 잘 다듬은 창조성이라고 이야기한다. 예술가들은 불완전한 영감으로 일단 일을 시작하지만 그 생각을 갖고 작업에 임하여 또다시 재작업한다. 젊은이들의 특징인 <발작적인 창조적 불꽃>은 계속되는 일의 습관으로 진화해서 성숙하고 기댈 만한 기술로 변하는 것이다. 만약 젊은이들의 창조성을 99퍼센트의 영감이라고 한다면 성숙한 창조성은 99퍼센트의 땀이다. 마법의 요정은 바로 부지런한 구두장이가 되는 것이다.

p.47. 그러나 30대 초반에 이르면, 그들은 자신들의 절정기를 이미 넘겼으며 보다 젊은 사람들의 도전과 싸워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더욱 나쁜 것은 왕년의 스타들은 대부분 경기에서 얻은 상처로 신체 불구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만족할 만한 두 번째 직업을 찾아보지만 거의 이런저런 상처만 입게 되는 경우가 많다. 조지프 헨더슨은 이와 비슷한 상황을 전쟁 영웅들에서 찾기도 했다.

p.49. 남자들이 마법의 상실을 받아들이느라 애쓰는 동안 여성들은 보다 끔찍하고 어려운 문제인 자신의 정체성과 자발성, 그리고 영혼과 자아라는 상실의 문제와 싸워야 한다.
「요정과 구두장이」이야기나 「마술 주머니」 같은 중년의 이야기들은 비슷한 주제를 다른 방식으로 다룬다. 젊은 시기에서 성인의 시기로 넘어가면서 남성과 여성은 은유적으로 선악과를 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셈이다. 그들은 보다 성스러운 완벽성, 순진성, 그리고 젊음의 이상을 잃어버리는 대신 노동과 고통에 대해 배운다. 다른 방법을 강구하려 하면 일은 더 꼬인다. 젊음의 마법을 잃지 않겠다고 애를 쓰면 쓸수록 더 큰 재난이 닥치기 마련이다. 다음의 이야기들은 바로 이런 주제를 다루고 있다.

p.52-53. 이는 파괴적 결말을 가져와 장남은 어머니가 인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곧 죽게 된다. 부모 중 아무도 그들의 비밀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아이가 죽음에 이를 만한 충격을 받았을 때 이를 예방할 길이 없던 것이다.

p.53. 이 이야기는 제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가족 관계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이런 집에서 부모들은 너무 자신들 일에만 빠져 살기 때문에 아이들을 성숙하게 돌보지 못하고 있다. 그런 집안의 아이들은 앨리스 밀러 Alice Miller가『영재아의 드라마The Drama of the Gifted Child』에서 지적하고 있듯 부모들을 돌보는 일을 돌연 끝내버리고 만다. 그런 아이들은 심리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게 되고 극단적인 경우는 「어부와 인어」이야기처럼 그들의 영혼이 그냥 죽고 만다.
어부와 인어는 아이들을 의식적으로 해친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 돌보는 일을 게을리 했다. 가장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경고는 그 부부가 큰아들의 장례식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 될 것이다. 이야기는 세세하게 이런 무책임성에 대해 미리 예시하고 있다. 어부가 처음 인어를 만났을 때 인어는 보물을 주면서 다음날 일찍 돌아오라고 한다. 그러나 어부는 시간이 늦었고 인어를 놓치고 만다. 이는 흔한 일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물을 받자마자 흥분해서 재빨리 행동할 것이다. 그런 식으로 어부는 자신이 해야 할 중요한 일들인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의무에 대해 무책임했다.

p.54. 에릭 에릭슨 Erik Erikson은 성인들의 발달에 대해 연구하면서 일생 동안 한 개인이 극복해야 할 여덟 개의 심리적 과제에 대해 말한 바 있다. 그가 생각하는 중년의 기본적인 과제는 베풂의 미덕(Generativity)이다. 이는 자기 자식을 돌보는 태도이자 다음 세대 전반, 즉 학생들, 피부양자, 후배들까지를 후원하는태도를 뜻한다. 이런 베풂의 미덕을 발전시키는 데 실패할 경우에는 노년이 되었을 때 비참하게 되거나 침체될 수 있다는 점을 에릭슨은 경고한 바 있다.

p.55. 책임 있는 베풂의 미덕은 개인적인 만족을 대치하는 것이다. 베풂의 미덕이란 각자 작업에 대한 헌신의 형태를 띠게 된다. 프로이트는 사랑과 일은 성인들의 생활에 기초적인 것이며 일에 대한 헌신은 마치 사랑처럼 스스로의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예술가들은 자신들이 창조적인 일을 추구하기 위해 개인의 많은 것들을 희생하고 과학자들 역시 지식의 탐구를 위해 오랜 시간동안 일한다. 사업가들 조차 자신들의 일에 대해 강한 책임감을 갖고 있다. 「어부와 인어」이야기는 창조성에 대한 통찰로 가득한 은유를 통해 일의 베풂의 미덕에 대해 탐구하게 한다. 바다에서 나온 아름다운 인어는 무의식으로부터 나온 창조적인 통찰을 상징하고 있다. 이들 영감들은 마치 인어처럼 사람을 흥분시키고 황홀하게 한다.

p.56-57. 트리스탄은 그의 삼촌인 마르크 왕을 섬기는 기사였다. 마르크 왕은 왕권 세습을 위해 <아름다운 이졸데>로 알려져 있는 이졸데 공주와 결혼하도록 되어 있었다. 트리스탄은 마르크 왕에게 공주를 데려다 주는 수행기사였는데 우연한 기회에 이졸데를 위해 마련된 사랑의 묘약을 마시게 되었다. 두 사람은 곧 사랑에 빠져 왕과 이졸데 공주가 결혼한 후에도 정열적인 연애를 하게 된다. 왕이 이 사실을 알게 되자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도망쳐 숲속에서 마치 짐승같은 생활을 하게 된다. 몇 년이 지나 그들을 발견한 왕은 그들을 용서하게 되고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죄를 뉘우치게 된다. 이졸데 공주는 왕에게 돌아와 여왕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만 그녀의 삶은 텅 비었고 공허할 뿐이었다. 트리스탄은 그 나라를 떠나 <하얀 손의 이졸데>라고 불리는 또 다른 이졸데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바느질과 길쌈 그리고 일상적인 모든 일들에 매우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트리스탄과 하얀 손의 이졸데는 결혼을 했지만 트리스탄은 결코 <아름다운 이졸데>를 잊지 못한다. 트리스탄의 현실적인 이졸데와의 결혼 생활은 감정적으로 황량했고, 전혀 내적인 사랑이나 기쁨 없는 외적인 형태만 지니고 있던 생활이었다. 트리스탄은 다시 <아름다운 이졸데>와의 정사를 시도했지만 그의 노력은 실패했고 그는 곧 죽게 된다.
마법은 젊은 트리스탄과 아름다운 이졸데에게 사랑이라는 형태를 띤 채 다가온 것이다. 그들은 정열적으로 사랑에 빠져 그 위험성과, 도덕적으로 잘못되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마법을 포기하기를 거부했다. 몇 년 후 왕이 그들을 발견해서 용서한 시점이 되었을 때 트리스탄과 이졸데에게는 마법을 포기할 두 번째 기회가 다가온 것이다. 이때쯤 마법은 대부분 닳아버린 셈이고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세상에 다시 적응한 듯이 보였고 이제는 보다 생산적인 역할이 주어진 것이다. 이졸데는 마르크 왕에게 되돌아갔고 트리스탄은 <하얀 손의 이졸데>와 결혼을 했다. 그러나 내적으로 그 두 사람은 전혀 변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서로에 대한 갈망을 비밀스럽게 간직하고 있었고 그들의 마법적인 로맨스를 포기하지 않으려 했다. <아름다운 이졸데>는 자신의 삶이 텅 비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트리스탄은 죽어버렸다.
제 2부 서른 이후, 남자가 가는 길과 여자가 가는 길
p.72. 이 이야기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아마도 남편과 아내가 전통적인 남성과 여성이 역할을 서로 바꾸었다는 데 있을 것이다. 남편은 정형화된 가부장제의 가장으로서 부인이 일하는 동안 매일 의자에 앉아 바깥에 앉아 있을 뿐이다. 그는 아내에게 명령하는 것이 그의 할 일이라고 고집한다. 그리고 이후에 남편은 그의 모든 것 - 남자로서의 체면, 재산, 그리고 권위들 -을 잃어버리게 된다. 수염이 없어졌으며 얼굴에는 분과 연지를 바르고 마지막으로 아내는 남편을 떠나버렸다. 이야기의 마지막쯤에는 남편은 거의 여자처럼 보이는 데다가 집안일까지 떠맡게 된다. 그는 전통적인 남성의 역할에서 다시 전형적인 여성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반면에 아내는 남편을 배반하고 주부로서의 자기의 역할을 거부한 채 집을 떠나 도둑을 따라간다. 그는 악한을 명민한 기지로 이기고 자기 물건들을 챙겨 집으로 의기양양하게 돌아온다. 그녀의 사막으로의 여행은 보통 옛 이야기에 나오는 젊은 남성 영웅의 역경들과 비슷하다. 부인은 전형적인 여성의 역할을 던져버린 채 오히려 전통적인 남성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런 <역할 바꾸기>는 특히 가부장적인 전통이 매우 견고한 무슬렘 문화에서는 놀랄 만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들은 세계의 곳곳에서 보이는데 이는 성역할 바꾸기가 중년의 중요한 과제라는 것을 암시한다.

p. 73-74. 그렇다면 중년의 이야기에서 이런 역할의 전도는 왜 일어나는가? 칼 융은 이렇게 설명한다. 성인의 발달 과제에 대해 연구한 초기 심리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융은 중년 남자들이 전통적으로 여성적인 기호나 필요들과 싸우기 시작한다는 것에 주목했다. 중년의 남자들은 젊은 시기에 그들을 움직이게 했던 힘과 지위에 대한 남성적인 경쟁 심리를 옆으로 치워버린다. 그 대신 그들은 관계와 감성에 대해 관심을 두는데 이들 특성들은 젊었을 때는 너무나 여성적인 것이라서 거부했던 성격들이다.
반대로, 여성들은 자신감, 자발성, 그리고 모험심 같은 전통적으로 남성 특성이었던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관심을 갖게 된다. 여성들은 어린 시절 사회가 소녀들에게 요구했던 복종적이고 자기희생적인 역할을 벗어버리고자 시도한다. 융이 지적한 대로 <인생의 아침에 활짝 피었던 모든 이상과 가치관들이 인생의 정오쯤에는 바뀌게 되는 것이다>.

p.74. 이런 중년의 역할 바꾸기는 보다 체계적인 연구에서 다시 확인된다. 전형적으로 젊은 남자들은 성취의 기본적인 원천으로 일의 성공을 생각한다. 그러나 중년이 되면 그들은 동료들과의 관계나 가정에서의 행복을 보다 강조하게 된다. 이런 변화는 중년이 되면 노동자건 지식인들이건 모두 다 겪는 과정이다 .나이가 든 남자들은 사실 점점 더 집안의 잡다한 일을 더 하게 되고 자신의 용모에 관심을 더 많이 갖는다. (중략)
「고집쟁이 남편과 아내」이야기는 남편의 얼굴에 화장을 하고 립스틱을 바르는 장면에서 이런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반면에 여성들은 전통적인 주부 역할을 포기하고 개인의 성취에 훨씬 더 관심을 두며 새로운 직업을 시작하거나 또 다른 교육을 받기도 한다. 이때쯤 되면 여성들은 예쁘게 자기를 장식하는 일에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고 훨씬 더 독립적으로 변한다.
이런 남성, 여성의 역할 바꾸기는 종종 꿈에서도 잘 나타난다. 영웅이 나오는 드라마는 젊은 남자들의 꿈 소재로 자주 등장하지만 중년이 지나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여성들에게는 그 반대 현상이 생긴다. 즉 중년 여성들은 꿈속에서 보다 활발하고 영웅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p.76. 역할 바꾸기는 남자에게는 큰 상처가 된다. 첫 번째 이유는 기본적인 남자들의 심리에 기인한다.
p.78. 내가 쓴 글에는 중년에 관한 나 자신의 사적인 경험들, 감정들 그리고 생각들이 빠졌던 것이다. 이것들은 사실, 점잔을 빼는 지적인 코멘트 뒤에 숨어 있는 진짜 속 내용이 아니었던가. 나는 이 책을 마음으로,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감정을 가지고 쓸 필요가 있었다.
p.80. 도둑이 그녀의 재산을 훔쳤기 때문에 반대로 그녀는 도둑의 마음을 훔친 것이다. 그녀는 물리적인 힘에 의지한 것이 아니라 <설득>과 <관계>로부터 나오는 힘에 의지한 것이다.(중략)
비록 부인이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독립적이며, 자신감을 갖기는 하지만 남성으로 완전히 변한 것은 아니다. 그녀는 단지 강하고 재능이 많은 여성으로서 자기 자신일 뿐이다.
구두와 관련된 사건들은 다시 「요정과 구두장이」 이야기에서 다룬 테마와 비슷하다. 양쪽 이야기에서 다 <구두>란 든든한 기반과 현실주의를 표상한다.

p. 81. 승리를 거둔 뒤였지 후퇴를 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새로 얻게 된 힘에 근거해서 이제 자신과 남편과의 관계를 확고하게 한 것이다. 만약 부인이 자신의 공격적이고 영웅적이고 남성적인 면을 잘만 교정한다면 그녀는 자신의 여성적인 힘, 즉 관계 형성이나 영적 관계를 맺고 친밀감에 주의를 기울이는 특질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

p.85. 고집쟁이 남편과 아내는 남자와 여자가 중년기에 거치게 되는 다른 길에 대한 재미있는 조망을 해주게 된다.
p.98. 똑같은 일이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일어난다.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미친 왕은 매일 밤 새 신부를 맞아 다음 날 그들을 죽여 버린다. 비슷하게 그리스의 신화에도 페르세포네는 납치되고 강간당한 후 하데스와 결혼하도록 강요받는다. 다른 신화에 나오는 결혼들은 그래도 비교적 행복하게 그려지고 있지만 보통은 여성들에게는 비극으로 끝난다. 아리아드네 공주는 테세우스가 반인반수인 미노타우르스에게 잡아먹히는 순간 구하여 결혼한다. 테세우스는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그녀를 배에 실어가지만 결국 섬에 그녀를 버릴 뿐이다.
중년의 이야기는 이런 여성의 억압에 대해 진지하게 묘사하면서 매우 깊이 페미니즘적이 된다. 특히 가부장제적 문화에서 이런 이야기들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나는 페미니즘을 지나치게 강조하려는 것은 아니다. 또 옛 신화들을 새로운 사회적, 정치적 이론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려는 의도도 없다. 단지 성의 억압이 요즘 책에서 뿐 아니라 아주 옛날부터 있었던 이야기 속에서도 명백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p. 99. 신혼 시절의 많은 여성들이 무의식적으로 결혼을 죽음과 연상시키고 다른 중년 혹은 노년 성인들보다 훨씬 더 죽음을 많이 생각한다는 것은 결코 놀랄 일은 아니다 (신혼기의 남성들은 죽음에 대해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게다가 신혼기의 여성들은 나이 많은 사람들보다 절망감과 자살의 공상에 대해 훨씬 더 많이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중략)
아니트 프래트 Annis Pratt 는 여성들이 쓴 문학 작품에서도 역시 비슷한 주제를 많이 관찰했다. 그녀는 『여성 소설에서의 집단 무의식적 형태들 Arcvetypal Patterns in Women's Fiction』이란 책에서 지난 수세기에 걸쳐 영국과 미국 작가들의 작품을 분석해 본 결과, 결혼을 모욕과 수감 생활 혹은 자기 자신에 대한 공포로 묘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p.103. 사냥꾼과 도박꾼들로부터 도망 간 후 부인은 자기 자신을 감추기 위해 남자 옷을 입는다. 이런 행동은 두 가지 방식으로 상징적이다. 우선 이것은 여성의 억압이란 주제를 강화한다. 여성은 항상 공격받을 수 있게 되는 약한 존재이다. 두 번째로 공격성, 자발성, 그리고 영웅적인 여행은 대부분의 사회에서 남성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중년기의 성숙 단계를 거치면서 부인들은 자기 안의 이런 덕목들을 개발시킨다. 상징적으로 그녀는 남성의 옷을 입는 것이다 .다른 중년의 이야기에서도 이런 주제는 강조되고 여성들이 영웅적인 여행을 떠날 때 대개 남성의 옷을 입는 것으로 그려진다.
오늘날, 중년의 여성들은 자녀들을 세상에 내보낸 다음 새로운 일을 다시 시작한다. 그리고 사회가 만든 여러 가지 장애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성들이 놀랄 만큼 성공을 거둔다. 이것은 단순히 현대 페미니즘의 결과는 아니다. 이 과정은 오히려 무의식적인 원형이다.
p.104-105. 이 이야기 속에서 부인은 큰 나라의 왕이 된다. 이는 상징적으로 그녀의 권위와 독립의 재생을 의미한다. 비슷한 이야기가 세계 곳곳에서 두루 보인다. 이는 주제의 원형적인 성격을 강조하는 것이다. 부인은 또한 이상한 과정을 거쳐서 왕이 된다. 행복의 새가 그녀 위에 빛을 비추고 그녀 어깨 위에 내려앉고 그 때문에 그녀는 왕이 된다. 꿈에서의 이상한 묘사와 같이 옛날 이야기에서의 이상한 일들은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여기서도 이야기의 문화적인 맥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 이야기는 위구르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것이다.
p. 106. <행복의 새>는 또다른 방식으로 상징적이다. 부인은 왕이 되었을 때 자신의 힘과 영광의 극치에 대해 배운다. 은유적으로 그녀는 날아오른 것이다. 그러나 비상이란 대개는 고귀한 힘과 영광으로서의 남자들과 관련이 된다. 여성들이 현실 생활에서 어떻게 날 수 있는지 알지 못하고 또 감히 날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여성들은 높은 곳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자신들의 권위를 여성들이 주장할 때 바뀌게 된다. 자신이 비상하는 이미지는 중년 여성들의 꿈이나 공상 속에서 보다 확실하게 두드러진다.
p. 107. 그녀는 심리적으로 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고 왕이 된 부인처럼 자신의 힘을 조금씩 닦아가게 되었다.
p. 110. 「왕이 된 부인」이야기에는 매우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부인과 남편 말고도 사악한 왕, 살인자, 사냥꾼, 도박꾼들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악한의 역할을 맡고는 있지만 부인이 계속 성장하도록 압력을 가한다. 그들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부인은 계속 앞으로 말을 타고 달려 행복의 새가 있는 나라에 도착해서 왕이 된다. 만약 그녀가 나쁜 왕에 의해 납치되지 않았다면, 그리고 사냥꾼이나 도박꾼들이 납치를 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아마 평생 집안에 머물러서 전통적인 여성 역할을 편안하게 하고 살았을 것이다. 비록 처음에는 놀라고 위협을 느꼈지만 남자 악한들은 결과적으로 부인이 개성화할 수 있도록 도와준 셈이다. 남자들은 근본적인 적을 표상한다. 같은 주제들이 다른 중년의 이야기에도 나오고 실생활에서도 자주 튀어 나온다. 많은 여성들이 아내를 내버려두거나 박해하는 남편을 떠나도록 강요받았을 때만 그들의 힘을 주장할 수가 있다. 결국 남자가 자신들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했을 때만이 여성들은 숨어 있는 자신들의 힘과 재능을 발견해 내고 자기 자신에게 의지해 일어나는 것이다.
p. 111-112. 중국의 전통은 숫자 5에 상징에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다른 나라에서처럼 중국의 신화에는 동서남북의 네 방향이 등장한다. 중국의 이야기들은 다섯 번째 원소를 구별해서 중심에 놓고 세상의 네 방향을 통합시킨다. 이 다섯 번째의 원소는 황제를 연상시키고 우주의 중심을 표상한다. 따라서 숫자 5는 통합하는 중심점을 상징하는데 다른 나라에도 이런 상징이 등장한다. 고대 바빌로니아에서는 다섯은 다섯 방향의 중심에 서 있으며 하늘과 지구를 연결하는 피라미드형 신전을 의미했다. 불교에서는 심장이 네 방향을 갖고 있는데 그 다섯 번째가 중심에 있으면서도 조용하고 움직이지 않는 극점으로 간주되었다. 여러 우주론에서 다섯은 그곳에서부터 중요한 네 개 점들과 기본적인 원소들을 포함하는 다른 모든 부산물들이 나오는 창조적인 힘을 상징한다. 나바호 인디안 이야기에는 네 명의 형제가 전사가 되고 다섯 번째 남자는 주술사가 되어 변화의 촉진제로서 다른 형제들의 중심 역할을 하는 내용이 많이 등장한다.

p.113. 숫자 5는 중년의 중요한 과제인 불균형과 실수를 조화와 자아 정체성으로 변환시킴을 잘 요약해 주고 있다.

p.118. 이 재미있는 이야기는 중년의 남자와 여자가 겪는 두 가지 과제를 잘 요약해 주고 있다. 이야기는 왕과 왕비인 부부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런 투는 중년의 이야기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주제인데 상징은 아주 직설적이다. 중년은 사회에서 책임을 지고 있는 세대다. 남자와 여자는 한 집을 꾸려나가고 사업을 운영하고 정부를 끌고 나간다. 중년의 힘과 책임은 왕과 왕비라는 주인공으로 상징되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성인 초기시기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 사회에서 중년 남성과 여성이 해야 할 일을 다루고 있다.
p.118-119. 왕비의 이야기의 작은 주제들은 교훈적이다. 먼저 왕비는 전통적인 여성의 길을 거부한다. 그녀는 왕궁의 모든 것을 팔아 몸값으로 하라는 왕의 편지를 받았지만 왕의 제안을 일축한다. 만약 그 야만적인 왕에게 탄원할 경우 잡혀 들어가 다른 여자들처럼 첩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만약 다른 사람들에게 몸값을 딸려 보냈다가는 그들이 모든 돈을 갖고 도망갈지도 모른다는 것을 걱정했다. 왕비는 왕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으면서 전통적인 부인의 역할을 거부하는 것이다. 왕비는 남성들이 전통적으로 저지르는 방식으로 단순히 군대를 일으켜 무력으로 왕을 구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대신 왕비는 보다 창조적인 대안을 택한다. 왕비는 악사로 변장하고 외국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러고는 이국의 왕에게 노래를 불러준다. 여기서 그녀는 남성적인 면과 여성적인 면을 통합하는 것이다. 그녀는 야만적인 이국의 왕과 대면하려는 용기를 보이지만 음악과 정서, 아름다움, 그리고 부드러운 설득의 힘에 기대는 것이다.
p.119. 세헤라자드는 왕을 자신의 용기와 우아함, 힘과 친절함으로 감복시킨 것이다. 그녀는 「피리 부는 왕비」에 나오는 음악보다는, 대신 옛날 이야기에 기댄 것이고, 도전이나 무력 전쟁이 아닌 관계, 설득, 정서, 그리고 아름다움의 힘에 의지한 셈이다.
p.119-120. 이 이야기는 특별히 왕비가 여행을 떠나기 전, 자신의 머리를 자르고 소년의 옷을 입었다는 점을 말한다. 우리는 왕이 된 부인이 남자처럼 옷을 입었다는 비슷한 주제를 기억하고 있다. 이 주제에는 몇 가지 다층적인 의미가 있다. 옷을 입었다는 것은 여자들 이 주로 남자다움이라고 생각하는 내적 힘과 권력을 다시 한 번 주장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왕비는 소년처럼 분장을 한다. 이 점은 거의 문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왕비는 소년처럼 되었다. 심리적으로 여성들은 중년에 이르면 다시 젊은이처럼 된다. 엄격하고 보다 여성적인 편견을 지니기 이전의 시기인 것이다. 대개 소녀들은 마치 소년들처럼 보다 적극적이고 독립적이면서 모험심에 가득 차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지 안다. 그러나 청소년 시기가 되면 대부분의 소녀들은 사회적인 압력에 의해 자신들의 그런 남성적인 면을 억압하라고 강요받게 된다. 반면에 소년들은 보다 적극적이고 독립적으로 자라도록 격려 받는다. 소녀들은 생존하기 위해 진정한 자신들을 감추고 마치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심리적으로는 동면기에 들어간다. 중년에 이르렀을 때야 비로소 여성들은 다시 눈을 뜬다. 그들의 성역할의 금기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과거로 다시 돌아간다. 자신들의 정체성, 에너지, 적극성, 그리고 생명력을 다시 선언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왜냐하면 이런 일들에 실패한 여성들은 중년 이후 정서적인 문제들 때문에 매우 불행한 삶을 살기 때문이다.
엄격한 성역할을 아직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소년 소녀들은 상대적으로 양성적이다. 이 점은 중년의 이야기에서 각 개인의 남성성과 여성성을 균형 잡게 하는 중요한 테마가 된다. 많은 연구에서 중년기가 되면 심리적인 양성성이 늘어난다는 점을 지적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양성성이란 나이 들면서도 깊이 행복할 수 있는 성공적인 심리 특성과 비례한다는 것이다.
p.121. 중년에게 로샤의 잉크 심리 테스트를 시행해보면 성 역할의 편견에 개의치 않고 독특하고 개인적인 답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반대로 젊은 성인들은 엄격하고 전통적인 성역할에 훨씬 더 무게를 둔다(흥미로운 점은 치매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남성성과 여성성의 융통성 있는 개념들, 즉 양성성이란 성공적인 노화와 관련이 된다.
p.124. 중년의 위기는 창조적인 남자들 사이에 훨씬 뚜렷하다. 1장에서 언급한 대로 얼리엇 자크는 위대한 미술가, 작곡가, 작가들의 삶을 연구했다. 이들 대부분은 남자들이었는데, 3, 40대에 전형적으로 위기를 겪었고 이때 창조적인 작업 역시 중단되었다. 모차르트 같은 이들은 사실상 그 시기에 죽음을 맞이했다. 다행히 대부분은 보다 깊어진 창조성을 지니고 그 위기를 빠져나온다.
p.126. 「우리들의 아버지를 찾아서 Finding Our Father」에 나오는 샌 오셔만에서 부터 「아버지의 부재와 잃어버린 아들 Absent Father, lost sons」에 나오는 가이 코르노에 이르기까지 남성 작가들의 남자 주인공들을 보면 얼마나 많은 성인들이 어린 시절의 기억들로 돌아가 아버지와 더 많이 접할 수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지, 또 그런 관계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상처받고 외로웠고 예민했는가를 알 수가 있다.
p. 127. 이시스는 그것을 주워 모아 다시 합치고 오시리스는 죽음에서 다시 부활한다. 오시리스는 문자 그대로 부인에게 구원당해 새 삶을 얻게 되는 것이다.
p. 129. 그러나 문학적 변화는 이런 원형의 주제들에도 영향을 미친다. 젊은이들은 이제 더 이상 영웅적인 주제를 꿈꾸지 않는 경향이 생겼고 오히려 더욱 섬세한 내용을 많이 다루는데 이는 몇 세대 전에 비하면 큰 변화이다. 반대로 현대 여성들은 중년이 되어 그들의 재능을 사용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다. 많은 젊은 여성들은 진취적이고 독립적이면서 내향적이고 동시에 창조적이다. 중년이 되면 오히려 좀 더 내향적이고 남에게 베풀 줄 아는 성향을 갖기도 한다. 하지만 기본적인 과제는 언제 그것이 시작하는지에 상관없이 여성이나 남성이나 모두 같다. 개인들은 힘과 친밀성에 관해 중년이 되면 이해하게 되고 그들이 젊어서는 내버려두었던 반쪽과 대면하게 된다.
p. 130. 비록 중년들이 전통적인 역할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더라도 사회적인 압력과 의무들이 그런 소망을 방해한다. 그러나 여전히 성숙한 사람이라면 성역할에서도 융통성을 좋아할 것이고 중년의 이야기는 이런 이상과 희망을 반영한다.
p.131. 여성의 새로운 경력은 남편이 그의 능력 이상의 것을 더 이상 추구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될 때 비로소 시작하게 된다. 오늘날 많은 여성들이 페미니즘을 받아들여 남성들을 스스로 자신을 반성하는 고통스런 지경에 빠지게 했다. 로저 굴드는 그의 『변형』이란 책에서 많은 부부들이 성인기에 계속되는 발달에 대한 필요를 깨닫지 못한다고 했다. 「피리 부는 왕비」같은 중년의 이야기는 <도전>이란 모두가 같이 공유하면서 많은 사람이 같이 해야 성공적으로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제3부 서른 이후, 운명을 받아들이다

p.137-138. 죽음의 공포는 실제의 삶에서 중년의 위기를 유발하고 죽음의 공포가 크면 클수록 고통은 더 강렬해진다. 중년의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의 세월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남아 있는 나이를 생각할 때 시작하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는 대개 극적인 한순간에 죽음을 직면하는 것이 아니라 몇 십 년의 세월 속에서 직면하게 된다.

p.139. 자신의 병이 충분한 경고가 되지 못한다면 중년에 친구와 친척의 죽음을 맛보는 것은 죽음의 문제를 일깨우게 할 수 있다. 사별은 점점 흔해지고 심상치 않은 일이 된다. 죽음으로 끝나는 행렬에서 부모와 늙은 친구들이 가듯이 중년의 남녀는 결국 가게 된다.

p. 142. 죽음에 직면해서 보인 마이크의 변신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의 예는 다양하게 변형될 수 있다. 죽음은 종종 생성의 가장 좋은 스승이 된다.

p.143. 무엇보다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년에 죽음과 싸우는 동안에는 엄격한 시간표가 없다는 것이다. 치명적인 병으로 고통 받는 젊은이와 아이들 또한 자기 초월과 생성, 그리고 유산을 남기는 문제로 갈등을 겪는다. 엘리자베스 큐블러 로스 Elizabeth Kubler Ross는 정말로 많은 젊은이들이 조숙하게도 왕과 똑같은 세속적 지혜에 도달함을 관찰했다. 즉 그들의 자리를 좀 더 큰 규모의 틀에서 보게 되는 것이다.(중략)
젊은이에게 죽음은 극적이고 영웅적이며 낭만적이다. 그리고 젊은이와 여성은 사랑과 진실과 정의를 위해 기꺼이 죽는다. 그러나 젊은이들에게 죽음은 단지 추상적인 것일 뿐이다. 중년의 남녀는 이런 환상은 버린다. 중년에게 죽음이란 엄연한 현실이며 단호하고 불가피한 것이며 영광의 문제가 아니라 한계의 문제인 것이다.

p.150-151. 두 번째 사실 즉, 종이학은 주제를 강화하고 있다. 일본 전통에서 종이학은 결혼식이나 특별한 생일날에 등장한다. 종이학은 충실한 결혼 생활을 상징한다. 왜냐하면 전설에 따르면 그 새는 일생동안 단지 한 마리의 짝만을 갖는다. 그러나 종이학은 대개 또 다른 주술적 동물, 예를 들면 장수를 상징하는 거북과 연결된다. 물론 거북은 실제로 오래 산다. 그래서 백만장자가 거북을 타고 영원한 생명의 땅으로 가는 것이 더 상식적일 수 있다. 그가 종이학을 타고 여행한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충실한 결혼 생활과 다른 사람에 대한 애정의 상징으로서 종이학은 사랑과 베풂을 의인화한다. 그리고 이것은 정확히 백만장자가 얻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또 다른 유일한 동물인 상어의 상징은 좀 더 명백해진다. 상어는 사나운 동물이며 자신의 욕구만을 안다. 이것은 또 하나의 자기 중심이란 상징을 나타내고 있다.
p. 152. 그리고 가이의 경우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역설적으로 죽음은 삶에 대한 실질적인 지혜를 제공한다.
p. 152-153. 여성은 어느 문화에서든 남성보다 죽음의 공포를 더 표현하며 죽음에 대한 불안감에 있어 높은 점수를 기록한다. 그러나 여성은 대개 그들의 공포에 관해 개방적인 반면 남성은 습관적으로 죽음의 공포를 포함안 모든 불안을 부정하고 축소한다. 이것이야 말로 죽음에 관한 중년의 이야기에서 남자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 이유가 된다. 이 이야기는 남성이 의식적 삶에서 회피하고 억압하는 문제들을 끄집어내고 있다.
여성들은 죽음에 관해 충분히 의식의 영역에서 생각하기 때문에 굳이 죽음을 다루는 동화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여성은 출산 때마다 죽음의 위험에 직면했다. 남성은 전쟁에서 주로 죽음과 직면했고 평화시에는 그들의 죽음을 부정할 수 있었다. 최소한 중년에 병마가 그를 덮칠 때까지는 오늘날 현대 의학은 출산시 여성의 죽음의 위험을 획기적으로 줄이게 되었고 그 결과 여성은 남성보다 오래 살게 된다. 이것은 새로운 상황을 만들지만 유사한 결과를 가져온다. 남자는 폐암이나 심장병과 같은 병으로 쓰러질 때 중년의 죽음을 직면하는 반면 여성은 노년까지 그 문제를 연기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몇몇 요인들이 여성이 죽음을 다루는 것을 도와준다. 여성은 젊을 때 여러 형태의 사회적 압력을 경험한다. 고통과 상처에 직면해 보았기 때문에 죽음이란 요소는 그들에게 덜 위협적이다. 반면 권력과 영광에 익숙한 남성은 개인적 죽음이 더 큰 충격이고 절망이다. 여성은 또한 아이를 낳을 수 있고 그들에게 죽음의 불가피함에 대한 공포는 경감한다. 반면에 남성은 다른 방법으로 죽음을 다루어야 한다. 결국 여성은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역할을 하기 위해 일찍 사회화되는 반면 남성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찾으려고 한다. 그러므로 남성에게 있어 베풂이란 중년에 들어서 배우기에 훨씬 더 어렵다. 베풂이 죽음의 공포를 없애는 데 중요하기 때문에 남성은 죽음에 관해 좀 더 많은 문제를 갖게 된다.
p.154. 죽음은 여성들에게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더 크고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것을 깨닫도록 해준다. 죽음은 남성에게도 같은 통찰을 가져다주는데, 남성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그들의 역할이 더 작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좀 다르다.
죽음에 초점을 맞추는 것에 첨부하여 우리의 이야기는 또 다른 생동감 있는 소재를 가지고 있다. 즉, 꿈의 중요성이다. 백만장자는 실질적으로 영원한 생명의 땅에 가지 않는다. 그러나 꿈속에서 그곳에 도달한다. 중년의 이야기는 종종 꿈을 사용하는데, 두 개의 다른 이야기들이 그 주제의 의미를 나타낸다.
p.158. 변화의 매개로서 꿈을 사용함으로써 중년의 이야기는 현실적 감각을 갖게 된다. 「죽고 싶지 않은 남자」는 실제 이야기일 수 있다. 오늘날 남녀는 꿈에서 은둔자의 신이나 유사한 인물과 조우하여 영원한 생명의 땅으로 여행할 수 있다. 중년의 이야기는 가장 심오한 형태인 개인적인 변화의 형태를 제외하고는 어떤 마술과도 관련되어 있지 않다. 중년의 이야기와 현실적 삶에서 죽음이 비록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이 남녀가 받아들여야 하는 필연적인 결과만은 아니다. 똑같이 강력하게 받아들이기에 아마도 더 어려운 힘이 있다.

p.164. 독자와 청자에게 따뜻하고 귀여운 느낌을 남기는 대부분의 동화와는 달리 이 이야기는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는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는 유쾌하지는 못하나 중년의 중요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운명, 숙명, 우연 그리고 행운에 길드는 것. 그 소재는 일의 전형적인 본질을 강조하면서 중년의 이야기에 나타난다.

p.165. 운명의 신은, 동생은 행운의 날에 태어났고 형은 가난의 운명을 지고 태어났음을 주목한다. 현대 용어로 우리는 동생이 형보다 좋은 유전인자와 뛰어난 선천적 능력을 받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또 다르게 동생이 단지 좀 더 많은 행운을 가졌다고 말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의 경우든 우연, 동시대적인 운명의 변형이 관련되어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에 의해 계획된 것과 같은 운명을 거부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우연과 행운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중년이 된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패를 종종 단순한 불운인 반면, 성공은 일을 열심히 한 것에 대한 보상이라기보다는 적기적소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는다.
운명은 행운은 개인의 통제를 능가하는 단순한 힘이다. 죽음은 이러한 힘의 으뜸가는 예이다. 그러나 사회적 관습이 종종 운명과 비슷한 결과를 가져오는데, 왜냐하면 전통과 가족들의 압력이 종종 사람들을 원하지 않는 직업과 결혼으로 몰아가기 때문이다. 운명은 종종 내면적이고 심리적일 수 있다. 정신분석학자들은 무의식적 정서와 유형이 인간 행동의 많은 부분을 지배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가장 극적인 예가 알코올 중독이나 다른 중독과 같은 정서적 무질서로부터 오는데, 그곳에서는 내면의 강요가 개인을 지배한다. 이러한 것들이 운명의 내적인 형태이다.

p.168. 이는 중년의 이야기에서 <다섯>이라는 숫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다. 그 석공은 새롭고 넓은 시각을 가지고 옛 직업으로 되돌아온다. 커다란 그림을 흘낏 보고 그 안에서 자신의 작은 자리를 이해하게 된 것이다. 중년의 이야기는 운명과 행운의 문제를 결정짓는 것이 이러한 폭넓은 이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러한 통찰력은 지혜이다.

p.169. 유사하게도 남녀는 중년이 되면 운명에 순응하는 것을 배우게 되고, 운명을 무시하고 바꾸려는 젊은 날의 노력들을 포기한다.(중략)
젊은 시절의 정신과 비교해 볼 때 중년의 비극적 관점은 우울하고 침울한 것 같아 보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년에 운명과 행운을 수용한다는 것은 자유스러운 일이 될 수 있다.

p.171. 그녀는 영웅들이 본능적으로 그러하듯 운명이나 행운의 힘을 부정했다. 팻은 점차 중년에 들어섰다. 그녀는 자신을 조종하려는 영웅적 노력을 단념했지만 그런 이유로 무기력해지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팻은 자기 의지력의 한계를 느껴 체념했고 운명과 화해했다. 아마도 그것은 때 이른 죽음의 협박과 같은 가장 어두운 형태였을 것이다.

p.173. ……심리 분석가들은 젊음을 부러워하는 것이 젊은이와 자녀들에 대한 중년의 중요한 문제임을 강조한다. 중년의 오이디푸스적 질투를 이기지 못하고 베풂의 미덕을 발전시키는 데 실패한 사람은 자신의 괴로움과 분노로 소모되고 만다.

p.181. 오이디푸스적 대립 관계에서 대부분의 논의들은, 아들에 대해서는 상세히 쓰고 있지만 아버지는 무시한다. <라이오스 콤플렉스>라는 말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란 바로 그 말이 젊은이에게 강조를 두고 있음을 나타낸다. 지금의 이 이야기는 이러한 전통적인 초점을 반전시키고 있는데 아들 쪽인 누스 모하메드가 아니라 아버지 쪽인 왕의 편을 취하고 있다.
p.184. 이 이야기는 운명과 숙명의 문제라는 원래의 주제로 되돌아간다. 오이디푸스적 대립 관계와 함께 운명을 제시하면서 이 이야기는 놀랄 만큼 깊은 통찰력을 보여준다. 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해결한다. 자부심이 대단한 왕은 처음에는 누르 모하메드와 경쟁한다. 그러나 운명이 왕을 끌어내리고 왕은 자신의 통제력을 넘어서는 힘을 인지한다. 왕은 새로이 발견한 겸손한 마음으로 누르 모하메드의 미덕을 보게 되고 그를 그의 후계자로 삼는다. 운명의 충격은 왕에게 생성을 가르치고 이것이 오이디푸스적 전쟁을 해결한다.

p. 185-186. 셰익스피어와 찰스 디킨스의 문학 작품들이 이러한 과정을 반영한다. 둘다 중년 이후에 가장 심오한 비극을 썼고 그들의 비극은 고통과 악과 연약함을 수용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운명, 비극적 통찰 그리고 오이디푸스적 드라마 사이의 연결은 또한 오이디푸스에 관한 소포클레스의 희곡에서 나타난다. 사실상 「오이디푸스 대왕」은 오이디푸스에 관한 세 개의 드라마 중 첫 번째 것이다. 나머지 두 개는 종종 심리 분석자들이 간과하고 있지만 낸시 데이턴 Nancy Datan 과 주디스 샤브리엔 Judiith schavrien이 독립적으로 관찰한, 중년의 심리에 관한 심오한 통찰을 내포한다.

p.187. 젊은 남녀는 그들이 부모가 되었을 때 그들 자신의 한계를 발견한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부모가 사랑이나 보호를 거절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더 이상 사랑과 보호를 줄 수 가 없었음을 깨닫는다. 이것은 실패와 죄의 문제가 아니라 한계와 비극의 문제이다 젊은이의 분노는 그래서 탄식과 슬픔과 분노로 바뀐다. 겸손과 동정은 비극적 통찰에서 나온다.

p.187-188. 에릭 에릭슨은 이러한 자기 수용을 자아 통합(ego-integrity)이라 부른다. 그것은 꼭 이루어져야만 하고, 어떤 대안도 허락하지 않는 무엇으로서 인생의 긍정적인 면을 보는 것이다. 개인은 옳던 그르던 몇 년 동안 자신이 내린 결정을 인정하고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부터 문화적 영향과 우연한 사건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삶을 형성하는 힘을 인정한다. 「자아 통합」은 현대의 심리적 방법으로 표현하자면 「한 사람의 운명에 대한 긍정」이다.

p.188. 중년의 숲속에서 어쩔 줄 모르는 중년의 아서 왕을 보여준다. (중략)
나중에 누르 모하메드가 그의 운명의 메시지를 가지고 동쪽 지방의 군수에게 갔을 때 이 이야기는 여행이 보통 5일이 걸리지만 젊은이는 단지 3일 만에 갔음을 보여준다. 3장에서 논의했듯이 3이란 숫자는 젊은이의 이야기, 대개 오이디푸스적 대립 관계의 상황에서 유난히 나타나는데 거기에서두 사람은 제3자를 위해 경합을 벌인다. 왕과 누르 모하메드가 공주를 두고 경쟁할 때 주제는 명확해진다. 다른 한 편 4라는 숫자는 과도함과 변형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그것은 또한 왕의 행동에서 명백해진다.

p.189. 즉, 성 역할과 운명의 반전이다. 우리가 논의한 이야기들은 대립되는 것들에 관한 것이다: 남성과 여성, 삶과 죽음, 힘과 운명이 그것이다.
제4부 서른 이후, 삶을 깨닫다
p.193. ……젊은이들과 중년은 세상을 대하는 데 대조적인 태도를 취한다. 젊은 사람들의 세련되고 미적인 감각과, 중년의 거칠지만 효과적인 실용주의가 그것이다. 이것은 젊은 시절에 대개 익히는 책 속의 이상과 인생의 성숙함에서 오는 실용성의 차이로 비유할 수 있다.
p.197. 심리학자들은 오랫동안 이성의 가장 진보된 유형이 되는 추상적 사고와 논리에 대해 생각해왔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중년의 성인이 젊은이보다 추상적 이성을 덜 사용하는 것을 알고는 충격을 받았다. 젊은 남녀는 가상의 도덕적 딜레마와 같은 추상적 문제가 나타나면 전형적으로 교양적이고 윤리적인 원칙에 호소한다. 반대로 노년의 남녀는 개인적 경험과 구체적 예를 들기 쉬우며 대학생들보다 아이들에게 더욱 전형적인 유형인 좀더 단순한 유형의 논리를 사용한다. 수학자들과 이론적 물리학자들은 추상적 사고의 장점은 젊을 때에 온다고 생각하여 30세 이전에 최선을 다한다. 그래서 중년의 남녀는 그들의 이성적 능력에 있어 역행하는 것 같은데 이것은 나이 때문이다. 사람들은 중년부터 이 이야기에 나오는 군인처럼 약간은 바보스럽게 되는 것 같다.
p.197-199. 다행스럽게는 더욱 상세한 연구가 완전히 다른 그림을 나타낸다. 실질적인 삶의 문제에 부딪혔을 때 중년의 성인들은 젊은이보다 더욱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결론에 도달한다. 중년의 개인은 어떻게 추상적 이성을 사용하는지 알며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으려 하는데, 그것은 왜냐하면 순수한 이성은 실제의 삶의 문제에 있어서는 실용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숙한 성인은 책에서 배우는 것과 삶에서 배우는 것을 구별하며 후자가 그들에게는 더 실리적이라는 것을 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군인의 실리주의는 금방 나타나는데, 황제가 자신이 잘생겼냐고 묻는 첫 번째 질문에 대답할 때이다. 황제가 잘생겼든 그렇지 않든 군인은 그렇다라고 대답할 만큼 현명하다. 왜냐하면 그는 황제의 면전에서 구주를 모욕하면 어떤 위험이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집이 얼마나 머냐고 황제가 물었을 때 군인은 볼 수 없기 때문에 먼 것이 틀림없다고 단순히 대답했다.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대답을 선호하는 과학자, 철학자, 젊은이와는 달리 군인은 그가 집에 가려면 얼마나 멀리 걸어가야 하는지와 같은 실질적인 문제에 더 관심이 있다.
또한 이 이야기는 아직까지 그 군인이 추상적으로 추론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황제는 그에게 30마리 거위의 깃털을 뽑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하고는 감옥으로 보낸다. 그 군인은 재빨리 그 말이 30명의 부자가 그와 함께 감옥에 있다는 은유임을 추론해 낸다. 그러나 은유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린아이의 능력을 넘어서는 꽤 세련되고 추상적인 이성 작용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그 군인이 얼간이가 아님을 명확히 해준다.
일단 우리가 그 군인이 은유를 이해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의 모호한 대답들이 심오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구는 그의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묻을 만큼 충분히 깊다는 군인의 대답은 죽음의 종국에 관한 은유로 해석되어 질 수 있다.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곳에서 나는 소리가 지구에 들릴 만큼 충분히 가깝다는 천국에 관한 군인의 대답은 사람의 운에 관한 운명의 영향력에 관한 것으로, 외부인의 힘이 어떻게 인간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지에 관한 얘기를 보인다. 우리가 지난 4장에서 논의했듯이 죽음과 운명은 중년에 크게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한다.
몇 년 동안의 연구는 개인이 은유를 사용하는 것이 실용적 지혜의 발전과 평형을 이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젊은이가 <제때의 한 바늘이 나중의 아홉 바늘을 대신한다>와 같은 은유를 이해하려 할 때 그들은 전형적으로 간단하고 추상적인 대답을 하게 되는데, 예를 들면 <문젯거리를 미리 예방하는 것은 그것을 해결하는 것보다 낫다>와 같은 식이다. 중년의 성인은 이와 유사한 추상적인 대답을 좀 더 실용적이고 개인적 사고를 더하여 대답하는데, <예방은 치료보다 낫지만 또한 어려운 것이다. 경미한 편도염을 앓기 시작했을 때와 같이 작은 문제는 무시하기 쉽다. 한 바늘의 문제도 역시 부정하기는 쉽다. 너는 조심해서 기꺼이 나쁜 일을 살펴야 한다>와 같이 대답한다. 젊은 시절 은유는 <내 사랑은 빨간색, 한 송이의 빨간 장미>와 같이 쓰듯이 시적이고 미적이며 영감을 불러일으키게 씌어진다. 중년에 은유는 장식이라기보다는 도구와 같이 변한다. 내가 <동화는 선천적으로 은유적이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이 책의 전체적인 요점은 동화가 단순히 흥밋거리나 시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들은 매우 실용적이며 중년에 관한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해 준다.
p.201. 반면에 여성들은 보완적인 유형을 쫓는다. 그들은 대개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에 강조를 두고 시작하여 나중에 그들 통찰력의 더 넓고 우주적인 중요성을 인지한다. 이것은 부분적으로 여성이 그들의 추상적인 능력을 나타내는 데 억압받아 왔을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고등 지식 교육의 기회에서 배제되어 왔기 때문이다.
p.202-203. 벨렌키의 연구에 등장하는 31세의 한 여성의 다음의 말에서 그 점을 엿볼 수 있다. <나는 단지 나의 본질로만 알 수 있을 뿐이다. 동시에 나는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점에 나의 본질을 일치시켰다. 그리고 나는 옳은 것을 안다. 나의 본질은 나의 가장 좋은 친구이다. 세상에서 나를 지치지 않게 하고 나에게 거짓말하지 않고 나로부터 뒷걸음치지 않는 유일한 것이다.>
p.203. 융은 남성과 여성이 지혜에 도달하는 상호 보완적 길을 이해하는 또 다른 방법을 제공한다. 그는 두 개의 뚜렷한 이해의 유형을 묘사했다. 바로 로고스와 에로스이다. 로고스는 추상적이고 우주적이고 이성적이고 지적이다. 그것은 자연과학, 수학, 철학의 본질이며 사심 없는 관찰자의 견해를 나타낸다. 반대로 에로스는 감정, 직관, 내적 경험과 관련되어 있다. 그것은 신화, 꿈, 인간 관계의 언어로서 멀리 떨어져서 관망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관련된 사람의 견해를 반영한다. 전통적으로 남성은 로고스로 시작하여 에로스를 포용하는 반면, 여성은 에로스로 시작하여 그 다음에 그들의 삶에서 로고스와 통합한다. 남녀 모두에게 있어 성숙이란 여성스러움과 남성스러움의 이성적 유형의 조화를 요구한다.
이번 이야기는 군인의 은유와 함께 로고스와 에로스의 통합을 제시한다. 군인이 지구가 그의 할아버지의 무덤 만큼 깊다고 말했을 때 그는 그의 개인적 경험을 죽음에 관한 추상적 해설과 연결시킨다.

p.204. 지혜에 관한 이야기가 남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특징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 문제는 남성에게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남성과 여성은 똑같이 추상성과 실용성을 조화시켜야만 한다. 이 점을 역설하기 위해 나는 이번 장을 여성의 성숙한 지혜를 축하하는 재미있는 이야기로 마치고자 한다.

p.210. 첫 번째로 젊은 영웅들은 결코 그들 자신이 악과 싸우지 않는다. 만약 그들이 싸운다면 그것은 단지 그들이 악당의 마법에 걸려 그들의 본질과는 다르게 행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리적으로 젊은 남녀는 악을 다른 사람에게 투영할 뿐 결코 그들 자신 안에 악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젊은이들은 모든 것들 중에 가장 어려운 악, 즉 자기 자신 안에 내제한 악을 산뜻하게 회피한다.

p.211. 상인이 시체를 보고 도피하는 것은 젊은 시절의 악의 회피를 그리고 있다. 이와 같은 회피의 이유는 단순히 자기 보호이다. 일시적으로 죽음과 비극과 악을 무시하는 것은 젊은이들이 낙관적인 생각과 희망을 갖는 데 도움을 준다. 만약 젊은이들이 인간 본질의 어두운 면이나 어렸을 때 그들이 겪었던 고통에 사로잡힌다면 그들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쉽게 낙담하게 될 것이다.

p.212-213. 고상한 이유로 젊었을 때 목숨을 거는 사람은 전형적으로 중년에 개혁을 포기한다. 생계를 꾸려가고 아이들을 길러야 하는 필요성이 우선하는 것이다.
옛길을 고수하라는 솔로몬의 충고는 유일하게 중년과 관련이 있다. 상인은 즐거운 여행자들의 무리와 함께 새로운 모험의 길을 떠나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이와 같은 일탈은 중년에 항상 존재하는 유혹이다. 솔로몬의 충고는 너무 자주 새로운 로맨스나 일자리를 찾고자 하여 자신의 길에서 지나치게 멀어져 방황하는 것에 대한 경고가 된다.

p.213. 여기에서 두 가지 점이 중요해진다. 우선 악이나 비극과의 직접적 대면은 중년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남자와 여자는 조지 베일런트가 발견해 낸 대로 성적인 학대에서 정서적 상실에 이르기까지 과거의 고통을 기억하고 다루기 시작한다. 작가 조셉 콘래드는 또다른 예를 제공해 준다. 그는 어린 시절 많은 고통을 겪었지만 선원이 되어 세계를 돌아다니며 그의 기억들을 회피해 버렸다. 중년에 콘래드는 소설을 썼는데. 그것은 특히 악과 비극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그의 초기 작품 중의 하나인 『암흑의 핵심 The Heart of Darkness』은 식민 지배하에 있는 콩고의 두려움에 관한 것으로 아프리카에서의 그의 개인적 경험을 그리고 있다. 콘래드는 또한 세계의 악과 비극에 관한 글을 통해 어렸을 때 겪었던 고통과 직면하였다.

p.214. 악에 대한 관용은 중년의 미덕이다. 몇 년 간의 삶을 경험한 후에 남자와 여자는 고통스럽게 괴로움과 악을 깨닫고 또한 종종 상황을 바꿀 수 없음을 깨닫는다. 중년의 지혜는 바로 이러한 비극적 통찰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p.215. 남녀는 도덕적 모호성에서 커다란 관용을 보이며 어떠한 도덕적 문제에 대해 어떠한 올바른 대답이 있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그들은 선과 악에 대해 이중적 태도를 갖는다. 전형적인 유형과는 반대로 사람들은 대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더 관용적이고 덜 도덕적으로 된다. 젊을수록 그들의 비타협적 이상주의 때문에 종종 도덕적으로 경직된다.
p.216. 젊은 시절의 도덕성은 다 뭐란 말인가!

p.219. 이 중년의 이야기는 중년의 지혜가 악이나 추상적이고 도덕적인 원칙에 관한 심오한 정신적 통찰과 통한다기보다는 오히려 단순한 상식과 더 유사하다는 점을 말해 주고 있다.
중년의 이야기는 또한 평범하고 너무나 인간적인 어떤 것으로서의 악을 드려낸다. 「솔로몬의 충고」에는 괴물이나 마녀나 용 같은 것은 없다. 단지 도둑떼들, 아내를 죽인 남편, 그리고 상인의 질투가 있다.「운명을 말해 주는 카드」에서는 우리는 폭풍우, 욕심 많은 여관 주인 그리고 농부의 질투를 본다. 악은 평범하고 진부하기까지 하다. 만약「요정과 구두장이」에서 그랬듯이 인정 많은 요정들이 중년의 이야기에서 사라지게 된다면 사악한 피조물도 또한 사라질 것이다. 마술의 상실은 좋은 목적으로 쓰는 백마술이든, 악마의 힘을 비는 흑마술이든 똑같이 적용된다. 그림 형제의 이야기인 「농부와 악마」같은 중년의 이야기에서 악마가 등장할 때 그는 코트와 넥타이를 메고 사무를 보는 듯한 전형적인 모습으로 묘사된다.
p.221. 실용적 지혜가 중요하다 할지라도 악과 비극을 다루는 데는 다른 방법들이 있다.

p.222. ……유머란 그저 웃어넘기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지혜인 것이다 유머는 중년의 여성과 남성이 인생의 비극적인 면을 다루는 데 큰 힘이 된다.
p.226. 바람피우는 중년의 남녀에 관한 고정관념은 사실에 근거한다기 보다는 공포의 감정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그런 공상은 매우 깊숙한 의식의 밑바닥을 관통하는 것이고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만큼 강렬하기도 하다.

p.227. 젊은이들의 이야기와 노인들의 이야기는 중년의 이야기와 비교가 되는데, 대개는 감동적이고 가슴이 따뜻하고 도덕적인 어조가 담겨 있지만 유머스럽지는 않다. 젊은이들의 이야기는 영웅적인 투쟁에 영광을 보내고 따라서 악당들이나 다양한 역할들에게서 재미를 찾아낼 만한 여유가 없다. 노인들의 이야기는 그 나름대로의 역할이 있기 때문에 보다 초월적이고 성스러운 계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유머란 그저 눈 깜박이는 정도로 짧게 다룰 뿐이다. 중년의 이야기들은 그런 부담이나 억제가 없다. 그들은 왕에서부터 농부까지 우스개로 만들어버린다. 이런 유머가 왜 존재하는 지는 나무꾼의 이야기에 잘 드러나고 있다.

p.228. 이 이야기는 유머가 없다면 중년의 삶이 비극으로 될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 경고함으로써 우리를 오싹하게 한다. 유머란 그저 웃어넘기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지혜인 것이다.(중략)
유머는 성숙의 징표이다. 뛰어난 심리학자들인 아브라함 마슬로 Abraham maslow, 칼 로저스 Carl Rogers, 고든 올포트Gordon Allport 등은 이미 이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한 바 있다. 유머는 깊은 공감력, 자기 확신, 그리고 창조적 재능과 비례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유머는 지적 능력 중 가장 고귀하고 성숙한 방식이라고 말한 바 있다. 연구자들은 이 점에 주목한다. 한 사람이 성숙하면 성숙할수록 보다 많은 유머를 사용한다. 한 사람의 심리적인 행복감이 클수록 유머 감각도 늘어난다.

p.229. 남성들은 반대로 대개는 싸움을 멈추고 농담을 할 필요가 있다. 세 번째로 중년의 여성들은 자신을 내세울 때 좌절되기 보다는 고양되기 마련이다. 성공의 한계에 도달한 남성들의 상황과의 이러한 대비는 쇠퇴와 한계와 대면하게 되고 일종의 강장제로 유머를 필요로 한다.(중략)
중년에게 그런 호사를 누릴 여유가 없다. 그들은 무능한 권위체제에 대해 분노를 표현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바로 그들이 책임을 지고 있는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중년의 사람들이 상황을 단순히 떠날 수 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화가 난 젊은이들을 포함해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정서적으로나 물질적으로 그들에게 의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p.230. 「밀고자」이야기는 바로 이런 상황을 잘 요약해 준다. 나무꾼은 숨겨진 진실을 마치 아는 것처럼 꾸며대었지만 진실은 바로 꾸며댐 그 자체일 뿐 이었다!

p.231. 프로이트가 지적한 바대로 유머는 인간에게 죽음의 불가피성을 극복하고 승리자가 될 수 있도록 해준다. 즉, 죽음조차 농담의 재료로 만드는 것이다.

p.234. 아이러니란 어떤 것을 인지할 때 그것이 동시에 완전히 진실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확신할 때 거칠게나마 만들어진다. 다른 말로 하면 아이러니란 두 관점을 동시에 견지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p.235. 만약 아이러니가 유머를 뒷받침한다면 그것은 중년의 도덕적인 상대주의를 모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남자와 여자는 그들 자신의 도덕적인 원칙을 따르긴 하지만 또 다른 대안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도 안다. 그들은 믿지만 동시에 믿지 않을 수도 있다. 그 같은 자세는 한 사람의 깊은 확신을 통해 본다면 지혜의 전통적인 척도이다. 아이러니는 또한 종교적인 믿음에까지 영역을 넓힌다. 제임스 파울러 James Fowler의 연구에서 그는 어린 아이들이 전형적으로 신을 좋은 부모로 그리고 있지만 젊은 성인들을 신을 보다 추상적인 개념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을 지적했다. 파울러는 또한 중년이 되면 신에대한 아이로니컬한 자세를 갖게 되는 것을 지적했다.(중략)
유머는 아이러니뿐 아니라 착각이나 적개심과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치유라는 또 다른 덕목과도 관계가 있다.
p.236. 치유란 중년의 중요한 관심사이고 중년의 이야기는 놀랄 만큼 이 문제에 대해 여러 통찰을 준다.
p.244-245. 개인적인 고통과 치료의 능력이 왜 그렇게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이유들이 있다. 한편으로는 고통, 상처, 질병들의 체험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을 가르치고, 이는 치유 과정에서는 필수적인 것이다. 성숙한 동정은 젊은이들의 동정과는 다르다. 옛날 이야기에서 젊은 영웅과 여주인공들은 병자와 상처받은 동물들을 불쌍하게 여긴다. 그러나 그들의 동정은 어떤 고통도 완화될 수 있고 어떤 상처와 병도 치료될 수 있다는 무지에서 나온 것이다. 젊은이들은 치료되지 않는 상처도 있고 낫지 않는 상처도 있다는 인생의 어두운 한 부분을 보려고 애쓰지 않는다. 반면에 중년들은 인간 조건들의 비극적인 차원을 경험하고 나서야 보다 깊은 동정심을 배우게 된다. 이는 중년들이 치료를 할 수 있게 하는 덕목이 된다.
보다 깊이 들어가면 고통은 자기 성찰과 자기 변형의 과정을 통해 치유로 이르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p.246. 정화하는 힘의 경험은 사람들이 젊은 시절엔 건강하지 못하게 지나친 맹목적인 본능을 잘 다룰 수 있게 한다.
이런 정화의 과정은 죽음과 재생의 이미지 속에 극적으로 표현된다. 개인들은 그들의 친숙한 가치와 사회적 역할 가치들을 버린다. 개인의 인생 구조는 파괴되고 새로운 가능성의 길이 열린다. 융 학파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페르소나는 일단 중년이 되면 붕괴된다.(중략)
페르소나가 중년에 이르러 비틀거리면서 각 개인들은 내면으로 향하도록 강요된다. 이상적으로는 각 개인은 내면에서 새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자원들을 발견해야 한다. 이것이 치료와 재생의 내적 에너지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런 깊은 영감이 신과의 접촉이 될 것이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사랑, 생명력, 신비, 죽지 않는 영혼에 대한 내적인 갈망이 된다.
p.251. 조산부나 민속 치료자들은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여성들이다.
치료자는 여성이나 남성 어느 한 쪽을 배제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치료란 남성적인 면과 여성적인 힘을 모두 요구하기 때문이다. 동정과 공감은 전통적으로 여성의 덕목이기 때문에 환자를 돌보고 건강하게 돌려놓는 데 꼭 필요하다.(중략)
치유가 남성적인 면과 여성적인 면을 모두 요구하기 때문에 좋은 치료자가 되기 위해서는 남자들은 돌보는 측면을 지녀야 하고 여성들은 적극적인 힘을 키워야 한다.
p.252. 치료에 있어서 남성과 여성의 통합은 다음 장에서 아주 매력적으로 기술된다. 여기서 남편과 아내는 치료 능력을 획득하는 데 아주 긴요한 역할을 한다.
p.256. 중년에서 상극이란 매우 뚜렷하게 보인다. 특히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의 이중성이 그렇다. 여성적인 것은 두 번째 주제를 포함한다.
p.260. 똑같이 치료자의 악마적인 힘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 많은 문화권에서 관찰된다. 고대 아시리아의 치유의 여신인 굴라는 죽음의 신이었다.
p.262. 치료의 능력이나 파괴의 행위는 중년이 되어서야 완전히 등장한다. 이는 젊은이들은 분노나 성욕같이 악마적이고도 강력한 본능들을 억압하기 때문이다. 중년이 되어서야 젊은 시절의 억압이 사라지고 거칠고 다듬어진 정신적 에너지들이 전면에 나선다. 비록 처음에는 무서워하지만 마치 화산이 폭발되는 것처럼 이런 원시적인 리비도들이 나오면 치료에 필요한 심리적 에너지들을 제공해 준다. 폭력적인 면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화산이란 새로운 땅을 창조하고 지구의 핵으로부터 생명의 물질을 운반해 준다.
p.274. 구두를 벗어서는
p.281. 이런 삶의 구조들이 중년에 이르면 녹아서 다시 재형성되는데, 이는 마치 황금나무의 가지와 잎들이 소용돌이 속에서 없어졌다 다시 형성되는 과정과도 비슷하다. 녹아내리는 샘은 인간이 중년에 겪어야 할 원시적인 삶의 원천이라는 이미지와 딱 들어맞는 상징이다.
p.282. 그는 만들어낸 물건들보다는 창조적인 작업 그 자체에 가치를 두고 있다. 황금나무처럼 오래된 구조들은 다 없어지고 새로 만들어지는 가운데 변형이 이루어지는 끝이 없는 인간의 노고들을 상징한다. 이야기는 생명력과 창조력의 지치지 않는 원천의 이미지를 되풀이하고 있다.
p.284. 폴리네시아에서는 악마적인 측면이 보다 강조된다.
p.284-285. 황금의 나무는 금속 중에서 가장 부드럽고 다루기 쉬운 황금으로 만들어졌지만 꽃은 다이아몬드로 이는 금속 중에서 가장 단단한 존재이다. 따라서 나무는 문자 그대로 서로 반대되는 것의 통합이다. 나무는 사실 녹는 황금의 샘 그 자체란 것을 배울 때 우리는 이야기에서 서로 다른 두 가지가 통합된다는 점을 배울 수가 있다. 액체는 끝없이 움직이고, 간헐적으로 솟는 황금물이 나무의 고정된 모양을 만든다. 이는 정적인 영구성과 동정인 방출을 통합한다. 게다가 황금은 썩지 않고 다이아몬드 또한 세월이 흐른다고 해서 변하지 않는다. 이는 비록 샘물이 끊임없이 움직이긴 하지만 나무는 영원한 시간을 초월하는 존재라는 점을 암시한다. 황금나무는 아름답게 서로 다른 두 쌍과 양극의 화해를 상징하고, 이는 중년의 지혜를 의미한다.
이런 지혜의 중심에는 상대적인 전망이 있고 황금나무는 이런 상대주의에 대한 매력적인 비유이기도 하다. 모든 의견이나 사실 또는 가치들은 황금의 나무에 열린 잎이나 가지다. 확신이나 신앙은 어떨 때는 황금처럼 빛나는 것으로 보이지만 곧 연못으로 떨어져 녹아버리고 또 새로운 의견과 견해가 생긴다. 이는 매우 공고해 보이는 어떤 의견이나 중년의 윤리 모두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p.286. 모든 개인들의 신념이나 헌신들은 신의 시원적인 진리의 한 부분이다. 비슷하게 힌두의 전통에서도 힌두신전의 여러 신탁들은 동일하고 시원적인 성스러움의 여러 형태로 간주된다. 특히 종교적인 것이나 윤리적인 행동들은 잠재적으로는 보다 깊은 시원적 진실에 비하면 불완전하고 상대적이다.(중략)
중년의 원형적 통찰은 인간 관계에 근거한다.
p.287. 그렇다면 화해의 주제란 심리학적 용어로 무엇을 뜻하는가? 양성이란 이미 앞에서 토의한 대로 전통적인 성역할 고정관념의 대안이자 하나의 가능성이다. 각 개인은 그들이 생물학적으로 남성이건 여성이건 간에 자기 내부의 남성적인 면과 여성적인 면을 다 발전시켜야 이상적이다. 비록 이런 것이 양성성에 대해 인기 있는 해석이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반대 의견을 제기하기도 한다. 어떤 비평가들은 양성성이란 개념이, 남성성과 여성성이 인간 생활의 기본적인 요소로 너무나 쉽게 규정되었다는 점을 의심 없이 전제해서 나온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그런 반론들은 별다른 증거가 없다.

p.290. 융은 연금술의 심리적 상징들을 광범위하게 탐색한 바 있다. 그는 납이 황금으로 변하는 것에 대한 연금술의 논의는 중년에 일어나는 심리적 변환을 상징한다고 했다. 연금술에서의 첫 단계는 니그레도 nigredo 즉 검은색의 시기이다. 이때 모든 것은 다 부서져서 원형의 물질로 변한다. 이는 우울과 고통을 경험하는 중년과 통한다. 이때가 되면 그 동안 편안하고 친숙했던 역할들은 모두 녹아버린다. 그 다음에 알베도 albedo, 즉 백색의 시기가 온다. 이는 젊은 시절에는 억압했지만 중년의 위기시 다시 제기되는 갈등들과 과제들을 다시 재작업하는 것의 비유이기도 하다. 세 번째 연금술의 단계가 루베도 rubedo, 즉 정열을 포함하는 적색의 시기이다. 이는 무의식 속에 있는 보다 원시적인 치유의 생명력과의 조우를 상징한다. 따라서 연금술이란 중년에게는 극적인 은유이기도 하다. 납이 금처럼 고귀한 금속이 되어가는 것처럼 기본적인 요소의 변이는 중년의 도전을 반영한다. 즉 질투나 죽음 혹은 고통과 같은 인생의 어두운 부분을 변형시켜 지혜와 성숙한 베풂 의식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p.291. 융 분석가들은 아마도 진정한 자신(self)이 되게 하는 내적 원천을 생각할 것이다. 종교인들에게는 그것이 신이 될 것이고 예술가들에게는 창조적인 영감이나 정열적인 로맨스가 될 수도 있다.
p.292. 무엇보다 중년의 이야기는 심리학적 해석이 생기기 이전에도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다. 그리고 이야기들은 심리학이 잊혀진 학문이 된 후에도 계속 남게 될 것이다. 이야기들은 스스로 변하고 발전된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 이야기들은 또한 미래가 되면 녹아 없어지고 재형성될 것이다. 이야기는 상상력이란 시원적 샘물과 인간 영혼의 창조성이라는 보다 깊은 실재로부터 솟아났다. 그리고 이는 중년을 병들게 하는 전복과 혼란의 소용돌이에서 통찰과 재생 그리고 치유가 기다리고 있다는 중년 이야기들의 궁극적인 메시지이기도 하다.
에필로그 -중년의 길
p.295-296. 중년의 이야기들은 이런 과정을 거꾸로 되돌린다. 중년에는 젊은 시절에 노력과 투쟁으로 성취한 것들이 파괴되고 새로 만들어진다. 첫 번째 전복은 젊은 시절의 마법을 포기하는 것이다. 「요정과 구두장이」, 그리고 「마술 주머니」에서 아프게 지적한 바와 같이 모든 남자와 여자들은 중년에 진입하면서 젊은 시절에 가졌던 유토피아적 조망과 낭만적인 꿈들을 포기해야 한다. 그들은 생활을 꾸려나가고 가족들을 부양하면서 자신들의 이상과 타협해야만 한다. 젊은 시절의 순수함은 일로 바뀌고 이상주의는 현실주의로 바뀐다. 그림 형제의 「인생의 시간 동안」이라는 이야기에서 중년이란, 짐을 잔뜩 싣고 가는 가축에 불과한 당나귀일 뿐이다. 그러나 이런 책임에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지구를 떠받들고 있는 아틀라스처럼 중년의 남자와 여자들은 젊은이를 먹여 살리고 노인들을 부양하며 이 사회의 버팀목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이들 의무들을 만족시켜 주는 보다 깊은 만족이 있다.
두 번째 전복이 다음에 일어난다. 「고집쟁이 남편과 아내」와 「피리 부는 왕비」에서처럼 남성과 여성들은 중년에 전통적인 성역할을 바꾸게 된다. 여성들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그들이 겪는 억압을 알아차리고 그들의 재능과 자신감을 키우며 사회적 금기들을 던져버린다.
p.296. 만약 젊은이들의 이야기가 젊은 여성이 나쁜 악한에게 위협을 당하고 있는 것을 용감한 젊은이가 구출하는 식의 이야기라면, 중년의 이야기는 매력적인 영웅이 실은 여성에게 또 다른 억압자이므로 결국 버려야 할 존재라는 점을 드려내고 있다.
남자들은 반대로 자신들이 오랫동안 억압했던 여성성에 대해 새롭게 탐색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하고 자신들이 갖고 있는 유약함에 대해 인정하며 관계의 중요성을 알기 시작한다. 그 경험은 종종 고통스럽고 때로는 상처로 다가오거나 모욕을 당하는 것과도 같다. 비유하자면 남자들은 젊은 영광의 절정으로부터 내려오는 것이다. 「피리 부는 왕비」에서 극적으로 묘사되었듯이 그들은 여성들이 그들을 도와줄 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다. 용맹스러운 왕비는 불운에 빠진 왕을 구원하지 않았던가! 이는 시적으로 표현된 공정함이다. 목표는 오히려 균형과 통합에 있다. 중년이 되면 남자들과 여자들은 권력과 무기력, 자발성과 관계성, 승리와 고통에 대한 지혜를 직접 경험한다.
p.297-298.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절망과 냉소주의이다. 젊은이들이 너무 확신에 찬 것이 문제라면, 중년들은 너무 믿음을 적게 가진다는 함정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재치는 위로와 치유를 준다. 이는 말하는 종과 현자의 대답에서 너무 산뜻하게 묘사되고 있다. 유머는 잠시 동안이라도 다른 사람들 입장에 서게 해준다. 이제 사람들은 동시에 두 관점을 갖고 안에서 보기와 바깥에서 보기를 배우게 된다. 이런 두 개의 시각은 때로 모들뜨기눈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중년에 겪을 문제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도와준다. 이 시기가 되면 사람들은 사회를 지배하게 되어 자신들의 자리를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그 동안 갖고 있었던 환각들이 하나하나 깨지면서 사회에 대해 완전하게 믿지 못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은 때로 정신 질환을 가져오게 하거나 냉소주의에 빠지게 하기도 하지만 유머로 극복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상적으로 보자면 사람들은 그들이 해야 할 일을 수행해 나가지만 동시에 그런 과제들을 꿰뚫어보면서 자기 자신에게 웃음을 던질 여유도 생긴다. 유머는 통찰과 책임 사이의 충돌을 화해시켜 준다.
기지와 아이러니는 중년에 우리가 겪는 일 중의 유예, 즉 모라토리엄이기도 하다.(중략)
짐만 싣고 살아야 하는 당나귀와는 달리 인간은 장난도 치고 이야기도 만들어낸다. 그리고 정말 마술처럼 농담과 이야기들은 짐을 덜어준다. 유머가 영웅주의를 대신하게 되는 것이다.
p.299. 남성과 여성은 궁극적으로 중년에 이르러 지혜를 얻게 된다. 그러나 지혜란 숭고하거나 철학적인 무엇이 아니다. 그것은 단순히 인간의 삶 속에 필요한 실제적인 통찰력을 의미한다. 「현명한 대답」에서 잘 묘사된 것처럼 실제 경험에서 얻어진 실제적인 좌우명들이 이들의 선행 조건이 된다. 군인의 답들은 매우 구체적이고 처음에는 바보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운명과 죽음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표현하는 은유이다. 중년은 추상적이고 남성적인 사유의 방식을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여성적 접근법에 통합시킨다. 로고스와 에로스는 지혜를 낳게 된 것이다.
p.302. 중년의 오랜 허덕임은 자신들의 영혼 속에 깊이 숨어 있는 시원적 원천과 대면할 때 절정에 도달하게 된다. 이는 마지막 이야기인 「황금나무」의 메시지이자 약속이기도 하다.
IP *.71.76.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