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북

연구원들이

  • 거암
  • 조회 수 2313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08년 5월 12일 22시 29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기원전
145년(1세) : 하양현 용문에서 출생했다. 자는 자장子長이며, 아버지는 사마담이다.
140년(6세) : 아버지 사마담이 천문 역법과 도서를 관장하는 태사령이 된다. 아버지를 따라 상경
134년(12세) : 유가를 대표하는 동중서와 공손홍이 발탁된다. 특히 동중서는 훗날 많은 영향
127년(19세) : 공안국에게 <고문상서>를, 동중서에게 <춘추>를 배움. 사기 저설의 바탕이 된다.
126년(20세) : 아버지의 권유로 남방 각지를 여행한다.
124년(22세) : 여행 도중 낭중이 되어 처음으로 벼슬길에 오른다.
113년(33세) : 한 무제 지방 순시에 나선다. 각지 풍속과 민심을 살핀다.
110년(36세) : 한 무제가 태산에서 종선의식을 거행. 아버지 사마담을 병을 얻어 낙양에서 객사
108년(38세) : 태사령에 오른다. <사기>집필을 위해 본격적으로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104년(42세) : 사마천의 주도 아래 태초력을 완성. 이것을 계기로 <사기>집필에 본격 착수한다.
99년(47세) : 이릉이 흉노에 패해 적의 포로가 됨. 사마천이 이릉을 변호하다 사형을 선고받음
98년(48세) : 치욕스러운 궁형을 자청하여 죽음을 면함. <사기>완수에 대한 새로운 각오
91년(55세) : 친구인 임안의 옥중 소식에 편지를 보내, 궁형의 치욕을 술회했음.
<사기> 130편을 완성
87년(59세) : 한 무제 7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남.

남자에게 죽음보다 치욕적인 형별인 ‘궁형’을 딛고 그를 존재할 수 있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가 충분하지는 않지만, 다음의 글에 묻어 나오고 잇다.

“(사기를) 완성시키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워 극형을 당하면서도 분노의 기색을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만약에 이 글이 세상에 나와 명산에 소장되고 알 만한 자에게 전해지며 큰 마을과 도시로 퍼져나간다면, 전에 당하였던 굴욕이 조금은 보상되리라 믿습니다. 이제 더 참혹한 처형을당한다 할지라도 어찌 후회됨이 있겠습니까.”
- 사마천이 말년에 벗 임안(任安)에게보낸 편지 中에서

그가 이 어려움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한 이유가 임안에게 보내는 편지에 잘 나와 았다. 그는 치욕적인 궁형 속에서 죽었지만, 역사라는 이름으로 불멸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역사 속에서 이름 없이 사라질 수 밖에 없었던 영웅들을 하나하나 되살리면서, 자신이 꿈꾸었던 인간상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기열전>에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에 대한 교훈도 있지만, 반대로 올바르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한탄과 원망도 묻어 나온다. 사마찬의 문제의식을 선명하게 읽을 수 있는 부분이 ‘백이열전’이 아닌가 한다. 또한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가장 가슴에 무찔러 드는 부분이기도 했다. 사마천의 솔직함이 더욱 인간적으로 다가왔고, 그가 좋아졌다.


어떤 사람은 “하늘의 도는 편애함이 없고 항상 선인을 돕는다”라고 했다. 백이와 숙제 같은 이는 정말 선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들은 이처럼 어진 덕을 쌓고 행실을 올바르게 했건만 결국 굶어 죽고 말았다. 공자는 70명의 제자 가운데 유독 안연을 가리켜 배우기를 좋아한다고 칭찬했다. 그러나 안연은 끼니를 잇지 못할 정도로 곤궁하여 쌀겨조차도 배불리 먹지 못하고 일찍 죽었다. 하늘이 선인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이 어찌 이럴 수 있는가? 반면 노나라 때의 악명 높은 도둑인 도척은 매일같이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사람의 간을 구워 먹었으며 흉포한 짓을 일삼으면서 수천명의 무리를 모아 천하를 횡행했지만 결국 천수를 다 누렸다. 도대체 그에게 무슨 덕이 있어서란 말인가? <백이열전> 17p

나 또한 사마천과 같은 생각을 많이 한다. 세상을 올바른 원칙과 생각을 갖고 사는 사람이 모두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부유함과 넉넉함으로 세상을 살지 못하지 않은가? 백이와 숙제, 안연을 예로 들지 않아도 수많은 불세출의 선인(善人)들이 있었지만, 그들이 항상 하늘의 도움을 받고 살지는 못하지 않았는가?

다시금 사마천을 통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어야 진정 가치 있는 삶인가라는 본원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 질문은 나에게 남은 숙제로 돌린다.


2. 내 마음에 들어오는 글귀


<백이열전>

어떤 사람은 “하늘의 도는 편애함이 없고 항상 선인을 돕는다”라고 했다. 백이와 숙제 같은 이는 정말 선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들은 이처럼 어진 덕을 쌓고 행실을 올바르게 했건만 결국 굶어 죽고 말았다. 공자는 70명의 제자 가운데 유독 안연을 가리켜 배우기를 좋아한다고 칭찬했다. 그러나 안연은 끼니를 잇지 못할 정도로 곤궁하여 쌀겨조차도 배불리 먹지 못하고 일찍 죽었다. 하늘이 선인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이 어찌 이럴 수 있는가? 반면 노나라 때의 악명 높은 도둑인 도척은 매일같이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사람의 간을 구워 먹었으며 흉포한 짓을 일삼으면서 수천명의 무리를 모아 천하를 횡행했지만 결국 천수를 다 누렸다. 도대체 그에게 무슨 덕이 있어서란 말인가? 이런 것은 아주 두드러진 예다. 17p

<관중, 안자 열전>

관중이 말했다.
“지난날 내가 곤궁한 처지에 있을 때 포숙아와 같이 장사를 한적이 있었다. 그때 이문을 나누면서 내가 더 많이 차지하고는 했으나 포숙아는 나를 탐욕스럽다고 하지 않았다. 내가 가난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한번은 포숙아를 위해 일을 꾸미다가 실패해 더욱 곤궁하게 되었는데, 포숙아는 나를 어리석다고 하지 않았다. 시운에 따라 유리한 때와 불리한 때가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세 번 벼슬길에 나아갔다가 세 번 다 쫓겨났지만 포숙아는 나를 부족하다고 하지 않았다. 내가 때를 만나지 못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세 번 싸워 모두 패하고 도망쳤지만 포숙아는 나를 겁쟁이라고 하지 않았다. 내게 늙으신 어머니가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왕위를 놓고 공자 규가 패했을 때 친구인 소홀은 죽고 나는 붙잡혀서 욕된 몸이 되었따. 그러나 포숙아는 나를 염치없는 자라고 하지 않았다. 내가 작은 일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천하에 공명을 떨치지 못함을 수치로 여김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낳아 준 이는 부모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아다.” 25p

관중이 말했다.
“창고에 곡식이 가득 차야만 백성은 예의를 알고, 의식이 풍족해야만 영욕을 안다. 위에 있는 자들이 절도를 알면 육친六親이 힘써 뭉치고, 예의, 정의, 깨끗함, 부끄러움이 해이해지면 나라가 망한다. 위에서 내린 법령이 흐르는 물과 같은 민심에 순응하게 된다.” 26p

<노자, 장자, 신자, 한비 열전>

한비가 말했다.
“유세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장점을 추켜세우고 단점은 말하지 않고 감추는 것이다. 군주가 자신이 세운 계책을 뛰어난 것이라고 여기면 그 결점을 지적하지 말아야 하고, 자신의 결단을 용감한 것이라고 여기면 그에 반대해 군주를 노하게 하지 말야야 하며, 군주가 스스로 자부한다면 실행의 어려움을 들어 용기를 꺾지 말아야 한다. 어떤 일을 꾸미면서 군주가 계획하는 바와 같은 생각을 가진 자가 있으면 그를 칭찬하고, 군주가 하는 일과 같은 일을 하는 자가 있으면 그를 격려해야 한다. 또한 군주와 같은 실패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고 두둔해 주어야 한다.
큰 충성이란 군주의 깨달음을 기다리면서 그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올리는 말에는 배척함이 없으며, 그런 뒤 자신의 아는 바를 고하는 것이다. 이것이 군주의 신임을 얻고 의심을 받지 않는 길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 군주의 은혜가 두터워지면 깊이 있게 계획을 실행해도 의심을 받지 않을 것이고, 분명히 이해를 따져 공을 세우고 솔직하게 옳고 그름을 지적해도 자신의 몸을 빛내면서 군신의 도리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니, 이러한 것이야말로 유세에서 성공한 것이다.” 36~37p

<손자, 오기 열전>

손빈이 말했다.
“무릇 헝클어진 실을 풀 때는 주먹으로 두들기지 않으며, 싸움을 도울 때는 맨주먹으로 하지 않습니다. 급소를 치고 허를 찌르면 치열했던 싸움의 형세는 저절로 풀리게 됩니다. 지금 위나라와 조나라가 싸우고 있으니 위나라의 정예병들은 분명 나라 밖에 있을 것이며 나라 안에는 쇠약한 자들만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군사를 이끌고 급히 달려 위나라 도읍인 대량을 친다면 위나라는 틀림없이 조나라를 포기할 것입니다. 그러면 일거에 조나라를 구하고 위나라를 피폐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45p

태사공은 말했다.
세상에 군사를 논하는 자들은 모두 <손자병법>열세편과 오기의 병법을 많이 운운한다. 이에 관해서는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두 사람의 사적만을 논했다. 옛말에 이르기를 “실천을 잘하는 자가 반드시 말을 잘하는 것은 아니며, 말을 잘하는 자가 반드시 실천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손자(손빈)가 방연을 계책으로 죽인 일은 실로 현명했으나, 일찍이 자신의 다리가 잘리는 형벌은 막지 못했다. 오기는 위나라 무후에게 나라의 보배는 산하의 험준함이 아닌 군주의 덕망에 있다고 말했지만, 그가 초나라에서 행한 정치는 각박하고 몰인정하여 결국 제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53p

<오자서 열전>

오운이 말했다.
“나라에서 우리 형제를 오라고 하는 것은 아버지를 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 중에 도망치는 사람이 있으면 나중에 화가 될 것을 두려워하여 아버지를 인질로 삼아 우리 형제를 잡으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단다고 해도 삼부자 모두 죽게 될 것이니 아버지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그리되면 아버지의 원수도 갚을 수 없습니다. 차라리 다른 나라로 도망쳐 그 나라의 힘을 빌려 원수를 갚는 것이 낫습니다. 우리 모두 함께 죽는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오상이 대답했다.
“가보았자 아버지의 목숨을 구하지 못할 것은 나도 잘 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살기 위해 나를 부르셨는데 가지 않고 훗날 아버지의 원수도 갚을 수 없게 된다면 세상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니, 나는 것이 걱정이다. 너는 달아나거라. 네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을 수 있을 것이니 나는 아버지에게로 가서 죽음을 같이 하겠다.”56~ 57p

<상군 열전>

위앙이 말했다.
“확신이 없는 행위는 명예가 될 수 없고, 확신이 없는 사업은 공적이 될 수 없습니다. 또한 보통 사람보다 뛰어난 식견을 가진 사람은 세상에서 비난을 받기 쉽고, 독특한 생각을 하는 사람도 반드시 백성에게서 비방을 받기 마련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이미 이룬 일의 성과조차 모르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압니다. 그러므로 일을 처음 시작할 때는 백성들과 더불어 상의할 수 없지만, 성공한 뒤에는 그 성과를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지극한 덕을 논하는 자는 속된 말에 대답하지 않으며, 큰 공을 이루는 자는 뭇 사람과 의논하지 않습니다. 그런 까닭에 성인은 나라를 강하게 만들 수 있는 길이 있으면 결코 선례를 따르지 않으며, 백성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길이 있으면 예법을 따르지 않습니다.” 75p

조량이 말했다.
“남의 말을 듣고 반성하는 것을 총聰이라 하고, 마음의 눈으로 자기를 밝게 보는 것을 명明이라 하며, 자신을 이기는 것을 강强이라 합니다. 순 임금이 이르기를 ‘스스로 겸손하면 존경을 받는다’고 했는데, 순 임금의 도를 논할 생각이 없다면 제게 물으실 필요가 없을 줄 압니다.” 81p

<소진 열전>

소진이 말했다.
“신은 이런 이야기를 들은 바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관리가 되어 먼 곳에 가 있는 동안 그의 처가 다른 남자와 정을 통했습니다. 남편이 돌아온다는 말을 들은 정부가 걱정을 하자 그 여자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이미 독주를 준비해 두었어요’라고 했습니다. 사흘 후 남편이 돌아오자 처는 첩에게 술잔을 들려 남편에게 권하도록 했습니다. 첩은 술에 독약을 탄 사실을 말하자니 처에게 쫓겨날 것이 두려웠고, 말하지 않자니 주인이 죽게 될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넘어지는 척하며 술을 엎질렀는데, 주인이 크게 노하여 채찍을 50대나 쳤습니다. 한 번 넘어져 술을 쏟은 첩의 계교는 주인과 처를 모두 살린 것이지만 매는 면할 수 없었습니다. 충성을 다하면 죄를 지지 않는다고 어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신의 허물을 말하자면 불행하게도 이와 비슷합니다.” 103~104p

<장의 열전>

<백기, 왕전 열전>

태사공은 말한다.
전해 오는 말에 “자에도 짧은 것이 있고, 치에도 긴 것이 있다”고 했다. 백기는 적의 힘을 헤아려 상황에 따라 적절한 계책을 세움으로써 그 이름을 천하에 떨쳤다. 그러나 응후가 꾸민 화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 왕전은 진나라의 장수가 되어 여섯 나라를 평정했다. 시황제는 노련한 장수였던 그를 스승으로 받들었다. 그러나 황제를 보필하여 덕을 세우고 기틀을 튼튼히 하는 데 이바지하지 못하고, 단지 황제의 뜻에 맞추어 그의 환심을 사가며 일생을 마쳤을 뿐이다. 그의 손자 왕리가 항우에게 사로잡힌 것은 마땅하지 않은가? 그들에게는 각기 단점이 있었다. 152p

<맹상군 열전>

풍환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고기와 술을 많이 마련하지 않고서는 돈을 빌린 자들을 다 모이게 할 수 없었고, 여유 있는 자와 가난한 자를 구별할 수 있었습니다. 여유 있는 자에게는 갚을 날을 정해 주었습니다. 반면 가난한 자는 그 차용증서를 10년 동안 가지고 있어도 이자만 쌓을 뿐입니다. 게다가 심하게 독촉하면 달아나 이자도 갚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되면 결국 보상도 받지 못하고, 위로는 당신이 돈놀이를 좋아하고 백성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게 될 것이고, 아래로는 선비와 백성들이 당신을 떠나 거역한다는 오점만을 남기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선비와 백성을 격려하고 당신의 명성을 높이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쓸데없는 빈 증서를 태워 버리고 받을 수 없는 빈 장부를 없애 버림으로써 설 땅의 백성들이 당신을 가까이하고 당신의 명성을 높이고자 했을 뿐입니다. 무엇을 의심하는 것입니까?” 164p

풍환이 말했다.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죽기 마련입니다. 이는 사물의 정해진 이치입니다. 부귀하면 따르는 자가 많고, 비천하면 친구가 적은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공은 아침에 저자로 가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습니까? 새벽에는 서로 어깨를 맞대며 앞 다투어 들어가지만 날이 저물면 저자를 지나는 자들은 시장을 돌아보지도 않습니다. 이는 아침을 좋아하고 저녁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거기에 바라는 물건이 없기 때문입니다. 공이 재상의 지위를 잃자 빈객들이 떠나갔다 하여 선비를 원망하고 손들의 출입을 끊어서는 안 됩니다. 바라건대 예전처럼 빈객들을 대해 주었으면 합니다.” 168p

<평원군, 우경 열전>

우경이 말했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와 함께 일을 도모해 성공하면 큰 나라가 덕을 보고, 실패하면 작은 나라가 화를 입게 된다고 합니다.” 184p

<위공자 열전>

빈객 중에 한 사람이 말했다.
“무릇 일에는 잊어서는 안 될 것과 잊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있습니다. 남이 공자에게 베푼 은혜는 잊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공자께서 남에게 베푼 은혜는 잊으셔야 합니다.” 194p

<춘신군 열전>

<시경>에서는 “병사를 잘 다스리는 자는 멀리 가서 정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적은 용서해서는 안되며, 때는 놓쳐서는 안된다.” 201p

<범수, 채택 열전>

범수가 글을 올렸다.
“현명한 군주는 공로가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상을 주고, 능력이 있는 자에게는 벼슬을 준다. 노고가 큰 자는 봉록이 많고, 공이 많은 자는 작위가 높으며, 백성을 잘 다스리는 자는 벼슬이 높다. 그러므로 무능한 자는 관직에 앉는 일이 없고, 유능한 자는 그 재능을 감출 수 없다.” 216p

평원군이 말했다.
“사람이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벗을 사귀는 것은 천해질 때를 생각해서이며, 부유하면서 벗을 사귀는 것은 가련해질 때를 생각해서입니다.” 230p

채택이 말했다.
“군왕이 성스럽고 신하가 현명한 것은 천하의 복이요, 군왕이 지혜롭고 신하가 정직한 것은 나라의 복이요, 아버지가 인자하고 아들이 효도하며 남편이 믿음직하고 아내가 현숙한 것은 집안의 복입니다.(중략) 이와 같이 충신과 효자가 다 있는데도 나라와 집안이 망하거나 어지러워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충신과 효자의 권고를 받아들이는 밝은 군주와 어진 아버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하의 사람들은 그 군주와 아버지를 수치로 여겨 욕하고, 그 신하와 아들을 불쌍히 여기는 것입니다.” 236p

태사공은 말했다.
한비자는 “소매가 길어야 춤을 잘 출 수 있고, 돈이 많아야 장사를 잘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는 옳은 말이다. 241p

<악의 열전>

“옛 군자는 교제를 끊고도 상대의 허물을 말하지 않으며, 충신은 자기 나라를 떠나서도 자신의 결백을 밝히지 않는다” 248p

<전단 열전>

<염파, 인상여 열전>

태사공은 말했다.
죽음을 각오하면 반드시 용기가 생긴다. 죽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죽음을 대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272p

<여불위 열전>

<자객 열전>

예양은 다짐했다.
“아! 사나이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죽고, 여자는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꾸민다고 한다. 지백은 나를 알아주었다. 내 기어코 목숨을 바쳐 지백의 원수를 갚으리라. 그렇게 보답해야만 내 영혼이 그에게 부끄럽지 않으리라.” 287p

<이사 열전>

신은 “땅이 넓으면 곡식이 많이 나고, 나라가 크면 백성이 많으며, 군대가 강하면 병사가 용감하다”고 들었습니다. 태산은 한 덩어리의 흙도 마다하지 않기 때문에 높을 수 있고, 하해는 작은 시냇물도 가리지 않기 때문에 깊을 수 있으며, 제왕은 뭇 서민도 버리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덕을 빛낼 수 있는 것입니다.” 313p

한비자는 “인자한 어머니에게는 방탕한 자식이 있지만, 엄한 가정에게는 거역하는 모지가 없다”고 했습니다. 무슨 “뜻이겠습니까? 이는 잘못을 하면 엄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상앙의 법에 따르면 재를 길에 버리면 처벌한다고 했습니다. 재를 버리는 것은 사소한 일이지만 처벌은 무거웠습니다. 오직 현명한 군주만이 가벼운 죄를 무겁게 할 수 있습니다. 가벼운 죄를 무겁게 처벌하니 무거운 죄는 어떻게 했겠습니까? 그래서 백성들은 감히 법을 어기지 못했습니다.” 331p

<경포 열전>

태사공은 말했다.
<춘구>에 ‘초나라가 영과 육을 멸망시켰다’라고 했는데, 경포의 조상은 아마 그 영씨로서 고요의 후예가 아닐까? 경포는 몸에 먹물을 들이는 형을 받고도 어떻게 그렇게 빨리 일어날 수 있었을까? 항우는 천만 명이나 되는 사람을 생매장했는데, 경포는 늘 그런 잔학한 일을 하는 자의 우두머리였다. 그의 공적은 제후들 중에서 가장 으뜸이었다. 그래서 왕의 자리에 올랐지만 그 자신도 세상의 큰 치욕을 면하지는 못했다. 그의 화는 애첩에게서 시작되었으니, 질투가 화를 불러 마침내 나라를 멸명시키기에 이르렀다. 337p

<회음후 열전>

한신이 말했다.
“이 또한 병법에 있는 것인데 다만 제군들이 주의해서 보지 않았을 뿐이오. 병법에 ‘죽을 곳으로 몰아넣은 다음이라야 살게 되고, 망하게 될 곳에 둔 다음이라야 멸망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고. 나는 평소 사대부들을 장악하여 따르게 한 것이 아니라 시정의 사람들을 내세워 전투에 참가시켰소. 이런 형편이다 보니 그들을 사지로 내몰아 저마다 죽기 살기로 싸우게 하지 않을 수 없었소. 만약 그들에게 살아 나갈 수 있는 길이 있었다면 그들은 모두 달아났을 것이니, 어찌 적을 이길 수 있었겠소?” 369p

괴통이 말했다.
“사람의 귀천은 골상에 있고, 근심과 즐거움은 얼굴빛에 있으며, 성공과 실패는 결단력에 있습니다. 이 세 가지를 살피면 만의 하나도 틀리는 것이 없습니다.” 377p

괴통이 한신을 설득했다.
“무릇 남의 말을 받아들이는 것은 일의 성패를 알 수 있는 조짐이며, 거듭 헤아리는 것은 성패의 계기가 됩니다. 그릇된 말을 듣고 계책에서 실수하고도 오랫동안 편안히 지내는 자는 드뭅니다. 남의 말을 듣고 선후를 잃지 않으면 말로도 그의 마음을 어지럽힐 수 없고, 일을 꾀하면서 본말을 잃지 않으면 교묘한 말로도 그의 일을 헝클어뜨릴 수 없습니다.
남을 따라 잡역이나 하는 자는 만승의 권력을 잃게 되고, 한두 섬의 녹봉이나 지키는 자는 재상의 지위를 얻지 못합니다. 그런 까닭에 지식은 일을 결단하는 힘이며, 의심은 일하는 데 방해만 됩니다. 사소한 이해타산에 얽매이면 천하의 큰 수를 잃게 되고, 지혜로써 일을 알면서도 실행하지 않으면 모든 일의 화근이 됩니다. 그래서 ‘용맹한 호랑이가 주저하면 벌이 쏘는 것만 못하고, 천리마라도 머뭇거리며 달리지 않으면 늙은 말이 천천히 걷는 것만 못하며, 맹분 같은 용사라도 의심하여 주저하면 용렬한 자가 결심하여 목적을 이루는 것만 못하고, 순임금과 우임금이 지혜를 가지고도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으면 벙어리가 손짓하는 것만 못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는 실행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 주는 것입니다. 대저 공을 이루기는 어렵고 패하기는 쉬우며, 때는 얻기 어렵고 잃기는 쉬운 법입니다. 좋은 때는 다시 오지 않습니다. 왕께서는 자세히 살피보시기 바랍니다.” 382p

<역생, 육가 열전>

두 영웅은 함께 설 수 없습니다. 초나라와 한나라가 오랫동안 대치하면서 승부를 가르지 않는다면, 백성들은 안정되지 못할 것이고, 천하는 흔들릴 것이며, 농부들은 쟁기를 내던질 것이고, 부녀자들은 베틀에서 내려올 것이니 천하의 인심은 불안해 질 것입니다.
바라건대 왕께서는 급히 군사를 진격시켜 형양을 취하고 오창의 식량을 차지하며, 성고의 요새를 지키고 태행산의 길을 막으며, 비호령 입구를 장악하고 백마 나루터를 지킴으로써 제후들에게 실리를 줄 수 있고 적을 제압할 수 있는 형세를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천하는 어디로 귀속해야 할지 알게 될 것입니다.395p

역생이 말했다.
“큰일을 하는 자는 작은 예에 구애하지 않으며, 성덕이 있는 자는 사소한 겸양은 하지 않는다. 나는 너를 위해 두 말을 하지 않는다.” 398p

<혹리 열전>

<유협 열전>

한비자는 “선비는 문장으로 법을 어지럽히고, 협객은 무력으로 금령을 어긴다”고 했으니 이는 선비와 협객을 모두 비난한 것이다. 그러나 선비들은 세상에서 인정을 받는다. 417p

<영행 열전>


옛말에 “힘들여 농사짓는 것이 풍년을 만나는 것만 못하고, 충성을 다하는 것이 임금의 사랑을 받는 것만 못하다”고 했는데, 이는 헛된 말이 아니다. 여자만 미색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남자도 미색을 통해 군왕의 사랑을 받았다. 423p

<골계 열전>

순우곤이 말했다.
“마을에 기쁜 일이 있어 남녀가 함께 자리하여 술을 돌리고 즐겁게 놀며, 서로 손을 잡아도 말리지 않고 눈짓을 주고받아도 상관하지 않으며, 귀고리와 비녀가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때가 되면 여덟 말을 마셔도 얼마 취하지 않을 것입니다. 날이 저물어 술도 바닥을 드러내면 술 단지를 한군데 모아 놓고 남녀가 한자리에 앉고, 신발은 서로 뒤섞이며, 술잔은 어지럽게 흩어집니다. 주인은 대청의 불을 끄고 저만을 남겨 놓고 모두 돌려보낼 것입니다. 이윽고 저만을 위해 향기 나는 비단 속옷의 깃을 열어 보이면 저의 마음은 이내 흩어져 한 섬을 마셔도 취하지 않을 것입니다. 옛말에 ‘술이 지나치면 어지러워지고 즐거움이 지나치면 슬퍼진다’고 했으니, 모든 일이 이와 같습니다.” 429p

<일자 열전>

사마계주가 말했다.
“빠르고 날랜 말과 허기진 당나귀가 함께 마차를 끌 수 없습니다. 봉황은 제비, 참새와 함께 어울려 날 수 없습니다. 현명한 자는 어리석은 자와 나란히 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몸을 낮추어 낮은 곳에 살며, 거짓된 무리를 피해 보이지 않게 그 덕을 드러내며, 인간의 폐를 제거하여 그 천성을 밝혀 줍니다. 또한 위를 돕고 아래를 길러 세상의 공덕과 이익을 키우고 자신의 부귀와 명예는 추구하지 않습니다. 공들은 부화뇌동하는 자에 불과하니 현자의 도리를 어찌 알겠습니까?” 441p

<화식 열전>

속담에도 “백 리 밖에 나가 땔감을 팔지 마라. 천 리 먼 곳에 나가 곡식을 팔지 마라. 일 년 살려거든 곡식을 심고, 십 년 살려거든 나무를 심으며, 백 년 살려거든 덕을 베풀어라”고 했다. 너무 멀리 물건을 가지고 나가면 노력에 비해 이익이 적고, 덕을 베풀면 그 자손이 은덕을 입기 때문이다.” 450p

아껴 쓰고 부지런히 일하는 것은 생업을 다스리는 바른 길이다. 그러나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특별한 방법이 있어야 한다. 452p

이로 미루어 볼 때 부를 일구는 데는 정해진 일이 없고, 재물에도 정해진 주인이 없다. 재능 있는 자에게는 재물이 모이고, 능력이 없는 자에게서는 순식간에 흩어지고 만다. 천금을 가진 부자는 한 도읍의 제후와 맞먹고, 수만금의 부를 가진 자는 왕자와 즐거움을 같이 하니 그들이야말로 진정 소중이라 할 만하다. 452p

<태사공 자서>

“성인의 가르침이 영원한 것은 때에 따른 변화를 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비움은 자연의 불변하는 본질이며, 그것에 순응하는 것은 군주가 지켜야할 기본 태도이다.”라고 했던 것이다. 그리하면 군주와 모든 신하들이 자신의 직분을 명확히 알고 임무를 수행한다. 자신의 주장과 실제 행동이 부합하는 자를 곧고 바른 자라 하며, 그렇지 못한 자는 빈 말을 하는 자라 한다. 빈 말을 듣지 않으면 간악한 일이 발생하지 않고 현명한 자와 우매한 자는 절로 구별된다. 이와 같이 운용한다면 무슨 일인들 이루지 못하겠는가? 무위하면 큰 도에 합치하여 무지무형인채로 천하에 빛나게 되고 무명의 상태로 돌아가게 된다. 457p


3. 내가 저자라면

사마천은 <사기>를 통해 방대한 역사적 사실을 담아내면서도 다양한 내용을 특성에 맞추어 서술하였다. 단순히 기록의 나열에 그치는 역사서를 거부했다. 그는 일련의 사건과 인물과 기록 그 자체에 가치를 부여하는 대신 역사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졌다. 이러한 태도는 <사기>전체에 걸쳐 시종일관 관통하고 있는데, 특히 <사기 열전>의 처음을 장식한 <백이, 숙제 열전>편에 잘 나타나 있다. 여기에서 그는 “과연 그들은 죽어 가면서 하늘에 대한 원망을 하지 않았을까?”라고 함으로써 일반적으로 알려진 그들의 죽음에 대해 강한 의문을 던졌다. 이어 그는 “도대체 하늘의 도란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라고 질문함으로써 천도에 대해 회의했다. 충분히 그러할만 하다. 옳은 직언을 하였음에도 궁형의 치욕을 당한 사람으로 당연한 질문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것은 천도에 대한 믿음을 포기한 것이라기 보다는 인간의 길이란 과연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질문일 것이다.

“역사는 사라진 것에 대한 기록이다. 사라진다는 것은 무이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는 역사란 무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다. 스스로가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아는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존재다. 그 자신의 삶이 의미 있다는 확신을 갖기 위해서는 먼저 그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이 의미 있었음을 입증해야 했고, 이런 필요가 역사라는 서사를 만들어냈다.”
– 김기봉 경기대 교수 ‘고전 다시 읽기’중에서(한겨레 2005.07.28)

위의 글은 역사서에 대한 개념과 정의를 멋떨어지게 정의하고 있다. 살아 있음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역사일지도 모른다. 사마천은 자신의 옳은 직언에 대해 궁형이라는 치욕이고 부정의한 현실에 대해 고뇌했을 것이다. 현실세계에서 정의(正義)가 도(道)가 실현되지 않은 모순적 상황을 극복하고 싶기에 <사기>를 서술하였는지 모른다.

사마천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은 가급적 인용하지 않음으로써, 자료를 다루는 그의 실사구시적 태도를 확고히 했다. <사기>는 사실감의 표현에서 뛰어난 성취를 보여 주었다. 사마천은 자신의 역사서를 살아있는 기록으로 만드릭 위해 상황을 재현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기울였다. 그 결과 <사기>는 수많은 대화체로 구성되어 있다. 대화란 그 자리에 함께 하지 않으면 확인하기 여려운 것이다. 생동감 있는 진행을 위해 과감한 그의 대화체 도입에 박수를 보낸다.

<열전>은 한 개인의 사적을 서술한 것이지만, 그 형식이 다양하고 천하에 이름을 날린 사람들 외에 보잘것없는 저잣거리의 인물까지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사마천의 시각을 선명하게 보여 준다.

방대하며, 한 인물의 평생의 역작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논할 지적 수준도 깊이도 내겐 아직 없다. 또한 <사기열전>의 전체적인 내용에 대한 세밀한 이해가 없는 상황에서 그의 책을 논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그의 저작은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살아있음에 대한 ‘의미’가 무엇이며, 그 의미를 되살리기 위해 어떠한 길을 걸어가야 할 지에 대한 강한 질문을 내게 숙제로 남긴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 왜 이리도 어렵고 복잡하단 말인가? 삶이 요체가 ‘변화’라고 하지만, 그 변화의 흐름과 원형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만은 않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고, 기술은 끝없이 바뀐다. 아무리 어려운 난관에 부딪혀도 반드시 방법이 있음을 믿고, 아무리 하찮은 적이라도 우리와 다른 기술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한시도 잊지 말라. 내가 최고라고 자만하지 말라. 옆을 보고, 앞을 보고, 뒤를 보아라. 산을 넘고, 강을 건너고, 바다를 건너라. 세상을 살되 한 뼘이라도 더 넓게 살고, 사람을 사귀되 한 명이라도 더 사귀며, 기술을 배우되 한 가지라도 더 배워라. 상대가 강하면 너희를 바꾸고, 너희가 강하면 상대를 바꾸어라.」 - 「쿠빌라이 칸」의 유언, 구본형, <사람에게서 구하라> 중에서 인용


추신 : 죄송스러운 마음을 전해야할 것 같습니다. 저는 일전에 사부님의 <사람에게서 구하라>를 보고, 바로 <사기열전>을 구입했었습니다. 구입한 뒤 읽지 못한채 방치(?)해 두었습니다. 그런데 그 책은 옌볜인민출판사에서 번역한 책이었습니다. 이번 연구원 분들이 읽은 텍스트와 다른 책을 정리하게 되서 죄송한 마음 많습니다. 많은 이해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만약 정당하지 못했다면 채찍은 달게 받겠습니다.
IP *.179.70.254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