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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13일 08시 27분 등록
사기열전(상)
사마천 지음, 김원중 옮김, 을유문화사

I. 저자에 대하여

사마천에 대해 나는 중학교 시절 국사를 배우면서 그 이름 석자를 듣게 되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를 들어보지 못한 우리나라 학생은 없을 것이다. 그가 궁현의 벌을 받았다는 것은 유명한 내용이다. 그는 왜 궁형을 받았을까? 이릉이라는 사람을 변호하다 당시 황제인 한 무제의 노여움을 사서 궁형을 받았다고 전한다.

아래의 내용은 사마천이 이릉에 대해 이야기 한 내용을 발췌한 글이다. (인터넷에서 발췌한 것으로 출처가 불분명하여 출처를 밝히지 못하였음)

일찍이 흉노 정벌에 명성을 떨쳤던 비장군(飛將軍) 이광(李廣)의 손자인 이릉(李陵)은 무제(武帝)에게 자청하여 출정했다가 흉노의 대군에게 포위되었다. 원군도 없고 화살도 떨어진 막다른 상황에서 이릉은 할 수 없이 흉노에게 항복했다. 사마천의 <보임소경서(報任少卿書)>에 쓰여진 이릉의 화에 관한 내용을 발취하면 다음과 같다.

“ 나는 이릉과 같은 시기에 벼슬을 했지만 평소 친하지도 않았으며 문무의 취향이 달라 같이 술을 나눈 적도 없었다. 그러나 내가 볼 때 그 사람됨이 기사(奇士)라 할 수 있었고, 효친(孝親)하며 신의가 있고, 재물에 대해 염치가 있었으며, 분별심도 있고 공검(恭儉)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을 돌보지 않고 국가의 위급에 몸을 바치려 하는 국사지풍(國士之風)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 친하지도 않았던 이릉을 위해 그는 왜 위험을 무릅쓰고 변호를 했을까? 이러한 궁금증은 사기열전을 보면 느낄수 있다.

다음은 워키백과사전에서 발췌한 사마천에 대한 내용이다.

워키백과사전 발췌


사마천 (司馬遷)은 중국전한(前漢)시대의 역사가(기원전 145년? - 기원전 86년?)이다. 성은 사마(司馬)이고, 이름은 천(遷)이다. 자는 자장(子長)이며, 아버지인 사마담(司馬談)의 관직이었던 태사령(太史令)의 벼슬을 물려받아 태사령(太史令)으로 복무하였다. 태사공(太史公)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후에 이릉사건에 연루되어, 이릉을 변호하다 당시 황제인 한 무제(漢武帝)의 노염움을사서 궁형(宮刑)을 받게 된다. 『사기(史記)』의 저자로서 동양 최고의 역사가의 한 명으로 꼽힌다.

[편집]
생애
사마천은 한나라의 역사가로 주나라 역사가 집안인 사마 가문의 후손이며, 아버지인 사마담(司馬談)은 전한(前漢)의 천문, 달력, 기록을 맡아처리하는 부서의 장관인 태사령(太史令)으로 천문과 달력에 밝고, 고전에도 통달한 이였다. 20세경 낭중(郎中)이 되어 한 무제(漢武帝)를 수행하여 강남(江南)·산둥[山東]·허난[河南] 등의 지방을 여행하였다.
사마천이 36살 때인 기원전 110년, 사마담(司馬談)은 한 무제(漢武帝)가 태산(泰山)에서 거행된 봉선 의식에 참석하지 못하게 한 것을 분하게 여기다가 병이 나서 죽었는데, 죽을때 아들 사마천에게 생전부터 편찬하던 역사서의 편찬을 완료해 줄것을 부탁한다. 기원전 108년, 사마담(司馬談)이 세상을 떠나자 사마천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태사령(太史令)이 되었다.
사마천의 나이 42살쯤 역법을 개정하여 태초력(太初曆)을 기원전 104년 한 무제(漢武帝) (태초 원년)에 완성하였다. 그후 부친의 유언에 따라 역사서를 편찬하는 일에 착수하였다.
기원전 99년에 한 무제(漢武帝)의 명으로 흉노를 정벌하러 떠났던 장군 이릉(李陵)이 흉노족와의 전투에서 패전을 하여 포로가 된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을 보고받은 한 무제(漢武帝)는 매우 진노하여, 이릉(李陵)을 처분 문제를 결정하기 위한 중신(重臣) 회의를 열었다. 신하들은 모두들 이릉(李陵)을 비난하고는 이릉(李陵)의 가족들을 모두 능지 처참할 것을 주장하였으나, 사마천 이릉(李陵)의 충절과 용감함을 찬양하고 두둔했기 때문에 한 무제(漢武帝)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다. 사마천은 태사령(太史令)의 직책에서 파면을 당하고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궁형(宮刑)을 받았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은 궁형(宮刑)을 받느니, 죽음을 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회 풍조였다.
죽음을 모면한 사마천은 아버지의 대부터 편찬중이었던 역사서 사기(史記)의 편찬을 완료 하였다.
그후 한 무제(漢武帝)의 신임을 회복하여 환관의 최고의 관직인 중서령(中書令)으로 임명되었다.


II.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머리말]
<사기열전>이 갖는 최고의 미덕은 인간의 본질(Nature of Human)에 대한 날카로운 탐구에 있다. <사기열전>을 읽어 보면 사마천의 세계관과 인생관 위에 개인적 비극을 냉정한 현실 인식으로 승화시켜, 그 시대를 살다 간 인물을 조망해 나간 흔적이 남아 있다. 8p

[해제]
사마천은 인간 사회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대립과 갈등, 배반과 우정, 이익과 손실, 물질과 정신, 도덕과 본능, 탐용과 베풂 등 양자 선택의 길목에 선 인간을 어떤 선택적 갈등에 직면하게 하고, 그러한 갈등 자체가 인간이 사는 모습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20p

[1. 백이열전]
왜 유가 경전에는 허유와 무광 등의 사적이 없을까? 32p
백이와 숙제는 과연 원망하는 마음이 없었겠는가? 34p

착한이가 곤경에 빠지는 것이 하늘의 도인가? 36p
최근의 사례를 살펴보면, 하는 일이 올바르지 않고 법령이 금지하는 일만을 일삼으면서도 한평생을 호강하고 즐겁게 살며 대대로 부귀가 이어지는 사람이 있다. 그런가 하면 걸음 한 번 내딛는 데도 땅을 가려서 딛고, 말을 할 때도 알맞은 때를 기다려 하며, 길을 갈 때는 작은 길로 가지 않고, 공평하고 바른 길이 아니면 떨쳐 일어나서 하지 않는데도 재앙을 만나는 사람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이런 사실은 나를 매우 당혹스럽게 한다. 만약에 이러한 것이 하늘의 도리라면, 이것은 과연 옳은 일인가? 그른 것인가? 36p

파리도 천리마의 꼬리에 붙어 천리 길을 갈 수 있다 37p
백이와 숙제가 비록 어진 사람이기는 했지만 공자의 칭찬이 있고 나서부터 그 명성이 더욱더 드러나게 되었다. 안연이 학문을 매우 좋아하시는 하였지만 파리가 천리마의 꼬리에 붙어 천 리를 갈 수 있는 것처럼 공자의 칭찬을 받아 더욱 두드러지게 되었다. 바위나 동굴 속에 숨어 사는 선비들은 일정한 때를 보아 나아가고 물러난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의 명성에 묻혀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 것은 정말로 슬픈 일이다. 시골에 묻혀 살면서 덕행을 닦아 명성을 세우고자 하는 사람이라도, 덕행과 지위가 높은 선비를 만나지 못한다면, 어떻게 후세에 이름을 남길 수 있겠는가? 38p

[2. 관․안열전]
사람을 알아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40p
관중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가난하게 살았을 때 포숙과 장사를 한 적이 있었다. 이익을 나눌 때마다 내가 더 많은 몫을 차지하곤 하였으나, 포숙은 나를 욕심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가난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한 번은 포숙을 대신해서 어떤 일을 경영하다가 실패하여 그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지만, 포숙은 나를 어리석다고 하지 않았다. 운세에 따라 좋은 때와 나쁜 때가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일찍이 세 번이나 벼슬길에 나갔다가 세 번 다 군주에게 내쫒겼지만, 포숙은 나를 모자란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내가 아직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세 번 싸움에 나갔다가 세 번 모두 달아났지만, 포숙은 나를 겁쟁이라고 하지 않았다. 내가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공자 규가 왕의 자리를 놓고 벌인 싸움에서 졌을 때, [나와 함께 곁에서 규를 도왔던] 소홀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나 나를 붙잡혀 굴욕스런 몸이 되었다. 그러나 포숙은 나를 부끄러움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자그마한 일에는 부끄러워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낳아 준 이는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이다.” 41p

창고가 가득 차야 예절을 안다 41p
"주는 것이 곧 얻는 것임을 아는 것이 정치의 비책이다“ 42p

군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에게 뜻을 드러낸다 43p
전하는 말에 [군주의] ‘잘한 점은 좇아 더 잘하게 하고 그 잘못된 점은 바로 잡아 주어야만 구주와 신하가 서로 친해질 수 있다.’

오늘날 안자가 살아있다면, 나는 그를 위해서 채찍을 드는 마부가 되어도 좋을 만큼 흠모한다. 46p

[3. 노자․한비 열전]
해제
‘도’에 대한 노장사상은 하나의 존재론이다. 이와 같이 도가에게 있어 ‘도’란 자발적이고 자연스러움을 의미하는 ‘자연’이다. 그리고 이들이 말하는 ‘무위’란 전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뜻하지 않고, 자연에 따라 하는 것을 의미한다. 48p

훌륭한 상인은 물건을 깊숙이 숨겨둔다 48p
훌륭한 상인은 물건을 깊숙이 숨겨 두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군자는 아름다운 덕을 지니고 있지만 모양새는 어리석은 것처럼 보인다고 나는 들었소. 49p

용의 비늘을 거드리지 말라
유세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장점을 아름답게 꾸미고 단점을 덮어 버릴 줄 아는 것이다. 상대방이 자신의 계책을 지혜로운 것으로 여긴다면 과거의 잘못을 꼬집어 궁지로 몰아서는 안 된다. 자신의 결정을 용감한 것이라고 여기면 구태여 반대 의견을 내세워 화나게 해서는 안 된다. 상대방이 자신의 능력을 과장하더라도 그 일의 어려움을 들어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 56p

용이란 동물은 잘 길들이면 그 등에 탈 수도 있으나, 그 목덜미 아래에 거꾸로 난 한 자 길이의 비늘이 있어 이것을 건드린 사람은 죽는다고 한다. 군주에게도 거꾸로 난 비늘이 있으니, 유세하는 사람이 군주의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리지 않으면 거의 성공적인 유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59p

[4. 사마․양저 열전]

[5. 손자․오기 열전]

급소를 치고 빈틈을 노려라 69p
"어지럽게 엉킨 실을 풀려고 할 때는 주먹으로 쳐서는 안 되며, 싸우는 사람을 말리려고 할 때도 그 사이에 끼여들어 주먹만 휘둘러서는 안 됩니다. 급소를 치고 빈틈을 쩔러 형세를 불리하게 만들면 저절로 물러날 것입니다. 71p

나라의 보배는 험난한 지형이 아니라 임금의 덕행이다 74p

'실천을 잘하는 사람이 꼭 말을 잘하는 것은 아니며, 말을 잘하는 사람이 반드시 실천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79p

[6. 오자서 열전]

[7. 중니제자 열전]

한 그릇의 밥과 한 바가지의 물로도 즐거워하는 안회
“안회는 배울 때 듣고만 있어 어리석은 것 같지만, 물러가 행동하는 것을 보면 내가 가르친 것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었다. 안회는 절대로 어리석지 않구나!”
“벼슬에 나가게 되면 도를 실행하고 물러나면 조용히 도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와 너뿐이구나!” 99p

자로는 좋은 말을 한 가지 듣고 아직 실행하지 않았는데, 또 다른 좋은 말을 듣게 될까봐 두려워했다. 103p

하루는 재여가 낮잠을 잤다. 공자는 그 모습을 보고 이렇게 한탄했다.
“썩은 나무로는 조각할 수 없고, 더러운 흙으로 쌓은 담에는 흙손질을 할 수 없다.” 107p

용맹스런 사람은 어려움을 피하지 않고, 어지 사람은 곤경에 빠진 사람을 궁지로 몰아넣지 않으며, 지혜로운 사람은 때를 놓치지 않고, 왕자는 다른 나라의 후대를 끊지 않음으로써 의를 세웁니다. 112p

흰 바탕이 있은 튀에 색을 칠할 수 있다 117p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 117p
많이 듣고 삼가면 실수가 적다
자장이 녹을 구하는 방법을 묻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많이 듣고 그 중에서 의심나는 것을 버리고 그 나머지를 신중하게 말한다면 실수가 적을 것이다. 많이 보고 그 중에서 의심나는 것을 버리고 그 나머지를 신중히 실행한다면 뉘우치는 일이 적을 것이다. 말에 실수가 적고 행동에 뉘우침이 적다면, 벼슬은 그 가운데 저절로 얻어진다.” 118p

대체로 통달한 사람은 절박하고 정직하여 의를 좋아하고, 남의 말을 잘 듣고 표정을 잘 살피며, 깊이 생각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낮춘다. 119p

배우고도 실행하지 않으면 부끄러운 일이다 121p

어진 사람은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126p
자우는 다시 물었다.
“근심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그것만으로 군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 공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마음속 깊이 살펴보아 부끄러울 것이 없다면 무엇을 근심하고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126p

예와 의를 좋아하면 사람들이 몰려든다 126p
번수가 인(仁)이란 어떤 것인가를 묻자,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또 지(智)란 어떤 것인가를 묻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람을 아는 것이다.” 127p

[8. 상군 열전]

옛것을 따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137p
효공은 위앙을 등용했지만, 위앙이 법을 바꾸려고 하자 세상 사람들이 자기를 비방할까봐 매우 걱정이 되었다. 위앙이 말했다.
“의심스러워하면서 행동하면 공명이 따르지 않고, 의심스러워하면서 사업을 하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행동을 하는 자는 원래 세상 사람들의 비난을 받게 마련이며, 남들이 모르는 지혜를 가진 자는 반드시 사람들에게 오만하다는 비판을 듣게 마련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이미 이루어진 일도 모르지만, 지혜로운 자는 일이 시작되기 전에 압니다. 백성들이 일을 시작할 때에는 더불어 상의할 수 없으나, 일이 성공하면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가장 높은 덕을 강구하는 자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며, 큰 공을 이루는 자는 뭇 사람과 상의하지 않습니다. 그런 까닭에 성인은 나라를 강하게 할 수 있으면 구태여 옛것을 본뜨지 않았고, 백성들을 이롭게 할 수 있으면 옛날의 예악 제도를 좇지 않았습니다.” 137p

사람의 마음을 잃는 자는 망한다 143p
조량이 대답했다.
“돌이켜 자기 마음속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을 총(聰)이라 하고, 마음속으로 성찰할 수 있는 것을 명(明)이라고 하며, 자신을 이기는 것을 강(强)이라고 합니다. 순임금도 ‘스스로 자신을 낮추면 더욱더 높아진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당신은 순임금의 도를 따라야 합니다. 제 의견 따위는 물을 필요도 없습니다.” 143p

"천 마리의 양가죽은 여우 한 마리의 겨드랑이 가죽만 못합니다. 천 사람의 아부는 한 사람의 올바른 직언만 못합니다. 주나라 무왕은 신하들의 올바른 직언으로 일어났고, 은나라 주앙은 신하들이 입을 다물었기 때문에 망하였습니다. 당신이 만일 무왕을 잘못됐다고 나무라지 않는다면, 제가 온종일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죽이지 않으시겠지요? 그렇게 하겠습니까?“ 144p

[9. 소진 열전]

현명한 군주는 밖으로는 적의 강함과 약함을 헤아리고, 안으로는 병사의 자질이 뛰어난지 모자란지를 헤아려, 두 군대가 서로 싸울 때를 기다리지 않아도 이기고 지는 것과 죽고 사는 관건이 이미 가슴속에 있게 됩니다. 156p

<주서(周書)>에서는, “처음에 싹을 자르지 않아 무성해지면 어떻게 하나? 터럭 같이 작을 때 치지 않으면 결국 도끼를 써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미리 깊이 생각하고 결정하지 않으면 일이 생긴 뒤에 큰 재앙이 이르게 되는데 어떻게 하시려고 합니까? 162p

[10. 장의 열전]

신이 듣건대, 깃털도 많으면 배를 가라앉히고, 가벼운 물건도 많이 실으면 수레의 축이 부러지며, 여러 사람의 입은 무쇠도 녹이고, 여러 사람의 비방이 쌓이면 뼈도 녹인다고 합니다. 197p

[11. 저리자․감무 열전]

[12. 양후 열전]

[13. 백기․왕전 열전]

[14. 맹자․순경 열전]

[15. 맹상군 열전]

“살아 있는 것이 반드시 죽게 마련인 것은 만물의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부유하고 귀하면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고, 가난하고 지위가 낮으면 벗이 적어지는 것은 일의 당연한 이치입니다. 당신은 혹시 아침 일찍 시장으로 가는 사람들을 보신 적이 없습니까? 새벽에는 어깨를 맞대면서 앞다투어 문으로 들어가지만, 날이 저물어 시장을 지나는 사람들은 팔을 휘저으면서 시장은 돌아보지도 않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아침을 좋아하고 날이 저무는 것을 싫어해서가 아닙니다. 날이 저물면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물건이 시장 안에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지위를 잃자 빈객들이 모두 떠나가 버렸다고 해서 선비들을 원망하여 일부러 빈객들이 오는 것을 막을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빈객들을 예우하십시오.” 292p

[16. 평원군․우경 열전]

“신은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작은 나라와 큰 나라가 함께 일을 하면, 이로운 것이 있을 때에는 큰 나라가 그 복을 받고, 일이 잘못 되면 작은 나라가 그 화를 입게 된다.’ 지금 위나라는 작은 나라인데 스스로 화를 부르고 있고, 왕은 큰 나라인데 복을 사양하고 핬습니다. 그래서 신은 왕께서도 질못하고 있고, 위나라도 잘못하고 있다고 한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합종하는 것이 낫습니다.” 310p

'이익에 사로잡히면, 지혜가 흐려진다‘ 311p

[17. 위공자 열전]

“대체로 세상 일에는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고, 또 잊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대체로 남이 공자에게 베푼 은덕은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공자께서 다른 사람에게 베푼 은덕은 잊으시기 바랍니다. 또 위나라 왕의 명령이라 속여 진비의 군사를 빼앗아 조나라를 구한 것은 조나라의 입장에서는 공을 세운 것이지만, 위나라의 입장에서는 틀림없이 충신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공자께서는 스스로 교만해져 공로가 있다고 하시니, 이것은 공자로서 취할 태도가 아닙니다.” 321p

태사공은 말한다.
“나는 대량의 옛 터를 지나다가 이문이라는 곳을 물어서 찾아보니, 성의 동쪽 문이었다. 천하의 여러 공자들도 선비들을 좋아했다. 그러나 신릉군만이 깊은 산과 계곡 속에 숨어 사는 사람들과 만났고, 신분이 낮고 천한 사람들과 사귀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은 것은 흥미롭다. 그의 명성이 제후들 사이에서 으뜸이었던 것도 결코 헛소문만은 아니었다. 한나라 고조도 대량을 지날 때마다 백성들을 시켜 신릉군을 제사지내게 하고, 그 제사를 끊이지 않게 했다.” 325p

[17. 춘신군 열전]

호랑이 두 마리가 싸우다 지치면 개도 못 이긴다. 327p

저는 ‘사물은 한쪽 끝까지 가면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 간다. 겨울과 여름은 서로 바뀌에 마련이다. 쌓인 것이 극에 이르면 위태롭다. 장기 말을 쌓아올리면 무너지게 마련이다’라고 들었습니다. 328p

<시경>에 ‘이리저리 날뛰는 토끼도 사냥개를 만나면 잡힌다. 다른 사람이 무언가 마음에 두고 있으면 내 마음으로 그걸 헤아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330p

태사공은 말한다.
세인의 말에 ‘마땅히 결단을 내려야 할 것에 결단을 내리지 못하면 도리어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하였다. 이것은 춘신군이 주영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두고 한 말일까?“ 340p

[범수․채택 열전]

군주가 의심하면 잠시 떠나 때를 기다려야 한다 342p

제가 들으니 “주(周)나라에는 지액(砥砨)이 있고, 송나라에는 결록(結綠)이 있으며, 양나라에는 현려(縣藜)가 있고, 초나라에는 화박(和璞)이 있다. 이 네가지 보옥은 흙 속에서 나온 것으로 처음에는 뛰어난 장인들도 그것을 바로 알아보지 못했지만, 결국은 천하에서 이름난 보물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선왕께서 버린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나라에 이익을 줄 힘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또 “대부의 집을 번창시킬 인재는 나라 안에서 찾고, 제후의 나라를 번창시킬 인재는 천하에서 찾는다”고 들었습니다. 천하에 현명한 군주가 있으면, 다른 제후들이 마음대로 인재를 얻을 수 없는 것은 무슨 이유이겠습니까? 현명한 군주는 그러한 인재를 제후들로부터 빼앗아오기 때문입니다. 훌륭한 의사는 환자가 죽고 사는 것을 알고, 훌륭한 군주는 일의 성공과 실패에 밝습니다. 이로우면 행하고 해로우면 버리고 의심스러우면 좀더 시험해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은 순임금이 우임금이 다시 태어나더라도 고칠 수 없는 일입니다. 346-347p

옛 시에도 ‘나무의 열매가 너무 많으면 가지가 부러지고, 가지가 부러지면 나무의 기둥을 해친다’고 했습니다. 수도가 지나치게 크면 나라가 위태롭고, 신하가 지나치게 존중되면 군주가 낮아집니다. 355-356p

옛말에도 ‘해가 중천에 오르면 서쪽으로 기울고, 달도 차면 기운다’고 했습니다. 만물이 왕성해지면 곧 바로 쇠약해져 떨어지는 것은 천지의 변하지 않는 이치입니다. 나아가고 물러가는 것, 굽히고 펴는 것이 때에 따라 바뀌는 것은 성인의 영원한 도리[常道]입니다. 그래서 나라에 도가 시행되면 나아가서 벼슬하고, 나라에 도가 시행되지 않으면 물러나 숨어야 합니다. 성인이 말하기를 ‘나는 용이 하늘에 있으면 덕이 있는 자를 만나기에 이롭다’, ‘정당하게 얻지 않은 부귀는 나에게 뜬구름과 같다’고 했습니다. 지금 당신은 원한을 이미 다 갚았고, 은혜도 이미 갚았습니다. 마음속으로 하고 싶었던 것은 다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세상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당신을 위해서 그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371p

제가 듣건대, ‘물을 거울로 삼는 자는 자기 얼굴을 볼 수 있고, 사람을 거울로 삼는 자는 자기 길흉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또 옛글에는 ‘성공했으면 그 자리에 오래 있지 말라’고 했습니다. 저 네 사람이 화를 입었는데, 당신은 어찌 그것을 이어받으려고 하십니까? 374p

<역경>에는 ‘높이 올라간 용에게는 뉘우칠 날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오르기만 하고 내려갈 줄 모르며, 펴기만 하고 굽힐 줄 모르며, 가기만 하고 돌아올 줄 모르는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이 점을 잘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375p

'욕심이 그칠 줄 모르면 하고자 하는 바를 잃고, 가지고 있으면서 만족할 줄 모르면 가지고 있던 것마저 잃는다‘고 들었습니다. 375p

[20. 악의 열전]

“어질고 성스러운 군주가 공을 세우면 그것이 무너지지 않기 때문에 역사에 이름이 남고, 앞을 내다보는 밝은 눈을 가지 선비가 공명을 이루면 그것을 손상시키지 않기 때문에 후세까지 칭송된다”고 합니다. 383p

제가 듣건대 “옛날의 군자는 사람과 교제를 끊더라도 그 사람의 단점을 말하지 않고, 충신은 그 나라를 떠나더라도 자기의 결백을 밝히려고 군주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384p

[21. 염파․인상여 열전]

태사공은 말한다.
“죽음을 알면 반드시 용기가 솟아나게 된다. 죽는 것 그 자체가 어려운 것이 아니고 죽음에 대처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인상여가 화씨벽을 돌려 받고 기둥을 노려볼 때라든지 진나라 왕의 주위에 있던 신하들을 꾸짖을 때, 그 형세는 기껏해야 죽음뿐이었다. 선비들 중에 어떤 자는 겁을 집어먹고 감히 용기를 내지 못한다. 그러나 상여가 한 번 용기를 내자 그 위세가 상대편 나라까지 떨쳤고, 물러나 고국으로 돌아와서는 염파에게 겸손하게 양보하니 그 이름은 태산만큼 무거워졌다. 인상여는 지혜와 용기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춘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407p

[22. 전단 열전]

태사공은 말한다.
“용병(用兵)의 도(道)는 정공법으로 싸우고, 기이한 계책으로 [허를 찔러] 승리하는 것이다. 싸움을 잘하는 사람은 기이한 계책을 무궁무진하게 낸다. 기이한 계책과 정공법이 어우러져 쓰이는 것이 마치 끝이 없는 둥근 고리 같다. 대체로 기이한 병법은 처음에는 처녀처럼 약하게 보여 적군으로 하여금 [얕잡아보고] 문을 열어두게 하지만, 나중에는 그물을 벗어난 토끼처럼 날래져서 적이 막으려고 해도 막을 수 없다. 이는 전단의 용병법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413p

[23. 노중련․추양 열전]

“천하에서 선비가 귀하게 여겨지는 까닭은 다른 사람의 걱정거리를 덜어주고 재앙을 없애주며 다툼을 풀어주고도 보상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일 보상을 받는다면 이것은 장사꾼의 행위입니다. 저는 이런 짓은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 422p

지혜로운 사람은 과감하게 결단을 내리고, 용감한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장군은 지금 사느냐 죽느냐, 영예냐 오욕이냐 부귀냐 천함이냐의 갈람길에 놓여 있습니다.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습니다. 부디 깊이 생각하여 속된 사람들처럼 처신하지 마십시오. 423p

작은 예절에 얽매인 사람은 영화로운 이름을 이룰 수 없고, 작은 치욕을 마다하는 사람은 큰 공을 세울 수 없다고 합ㄴ다. 425p

과자는 감옥에 갇혀있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천하를 바로잡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했고, 공자 규를 위해서 죽지 않은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제나라가 제후들 사이에서 위엄을 떨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였습니다. 426p

노중련은 달아나 어느 바닷가에 숨어살며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부귀로우면서 남에게 얽매여 사느니 차라리 가난할망정 세상을 가볍게 내 맘대로 살리라!” 427p

여자는 예쁘든 못생기든 궁중으로 들어가면 질투를 받게 마련이고, 선비는 어질든 어리석든 조정으로 들어가면 시샘을 받게 마련입니다. 430p

옛날 노나라는 계손의 말을 듣고 공자를 내쫓았고, 송나라는 자한의 계책만 믿고 묵적을 가두었습니다. 공자와 묵적의 말재주로도 참소와 아첨하는 사람들의 피해에서 벗어나지 못하였고, 노나라와 송나라는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여러 사람의 입은 무쇠라도 녹일 수 있고, 헐뜯는 말이 쌓이고 쌓이면 뼈라도 녹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431p

오늘날의 군주가 진실로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공이 있는 사람에게 보답할 뜻을 가지고, 마음을 꺼내 보여주며, 간담을 털어 많은 덕을 베풀고, 기쁨과 어려움을 선비와 함께 하고 선비에게 봉록과 벼슬을 주는 일에 인색하지 않다면, 포악한 걸왕의 개라도 요임금을 보고 짖게 할 수 있고, 도척의 자객이라도 허유를 찔러 죽게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433p

신이 듣건대, ‘어두운 길을 걸어가는 사람에게 명월주(明月珠)와 야광벽(夜光璧)을 던지면 칼을 잡고 노려보지 않을 사람이 없는데, 이는 무엇 때문인가? 이것은 아무런 이유 없이 갑자기 보물이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구불구불 뒤틀린 나무 뿌리일지라도 만승의 그릇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주위 사람들이 먼저 그 모양을 꾸미기 때문이다’라고 합니다. 434p

[24. 굴원․가생 열전]

‘이소’란 걱정스런 일을 만난다는 뜻이다. 대체로 하늘은 사람의 시작이며, 부모는 사람의 근본이다. 사람이 곤궁해지면 근본을 뒤돌아본다. 그런 까닭에 힘들고 곤궁할 때 하늘을 찾지 않는 자가 없고, 질병과 고통과 참담한 일이 있으면 부모를 찾지 않는 자가 없다. 439p

<역경>에 말하기를, “우물물이 흐렸다가 맑아져도 마시지 않으니, 내 마음이 슬프구나. 이 물을 길어갈 수는 있다. 왕이 현명하면 모든 사람이 그 복을 받는다”라고 하였다. 왕이 현명하지 않으니, 어찌 복이 있겠는가! 443p

[25. 여불위 열전]

“제가 듣건대, 아름다운 얼굴로써 남을 섬기는 자는 아름다운 얼굴이 스러지면 사랑도 시든다고 합니다.” 462p

[26. 자객 열전]

“대체로 위태로운 일을 하면서 안전함을 찾고 재앙을 만들면서 복을 구하려고 한다면, 계책은 얕아지고 원망만 깊어질 뿐입니다. 483p

[27. 이사 열전]

[28. 몽염 열전]

[29. 장이․진여 열전]

[30. 위표․팽월 열전]

[31. 경포 열전]

[32. 회음후 열전]

“네놈이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나를 찌르고, 죽음을 두려워하면 내 가랑이 사이로 기어나가라.” 588p

천하는 마음을 얻는 자의 몫이다. 592p

병법에는 죽을 곳에 빠뜨린 뒤라야 비로소 살게 할 수 있고, 망할 곳에 둔 뒤라야 비로소 멸망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 있지 않소? 또 내가 평소부터 사대부를 길들여 따르게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고, 시장 바닥에 있는 사람들을 물아다가 싸우게 한 것과 같소. 이런 형국이므로 이들을 죽을 땅에 두어 저마다 자신을 위하여 싸우게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곳을 준다면 모두 달아날 것인데, 어떻게 이들을 쓸 수 있겠소?“ 599p

"제가 듣건대, ‘싸움에서 진 장수는 무용에 대해서 말할 수 없고, 멸망한 나라의 대부는 나라를 존속시키는 일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고 합니다. 지금 저는 싸움에서 지고 나라를 멸망하게 만든 포로에 불과한데, 어떻게 그러한 큰 일을 꾀할 수 있겠습니까?“ 600p

궁무군은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듣건대, ‘지혜로운 사람도 천 번 생각하면 한 번은 실수가 있으며, 어리석은 사람도 천 번 생각하면 한 번은 얻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인은 미친 사람의 말도 가려서 듣는다’로 했습니다. 저의 계책이 반드시 쓸 만하지는 않을지라도 성의를 다하겠습니다. 600p

들짐승이 다 없어지면 사냥개는 삶아 먹힌다. 606p

‘남의 수례를 타는 자는 남의 우환을 제 몸에 지고, 남의 옷을 입은 자는 남의 근심을 제 마음에 품고, 남의 것을 먹으면 그의 일을 위하여 죽는다’고 합니다. 제가 어떻게 이익을 바라고 의리를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610p

우환이라는 것은 욕심이 많은 데서 생기고, 사람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610p

'맹호라도 꾸물거리고 있으면 벌이나 전갈만한 해도 끼치지 못하며, 준마라도 주춤거리면 노둔한 말의 느릿한 걸음만 못하며, 진(秦)나라의 용사 맹분(孟賁)도 여우처럼 의심만 하고 있으면 보통 사람들이 일을 결행하는 것만 못하고, 순임금이나 우임금의 지혜가 있더라도 우물거리고 말하지 않으면 벙어리나 귀머거리가 손짓발짓을 하는 것만 못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능히 실행하는 것을 귀중하게 여긴다는 뜻입니다. 대체로 공이란 이루기는 힘들고 실패하기는 쉬우며, 때는 얻기는 어렵고 잃기는 쉽습니다. 원컨대 족하께서는 이것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612p

한신이 말했다.
“과연 사람들의 말에 ‘날랜 토끼가 죽으면 훌륭한 사냥개를 삶아 죽이고, 높이 나는 새가 모두 없어지면 좋은 활은 치워진다. 적을 깨뜨리고 나면 지혜와 지모가 있는 신하는 죽게 된다’고 하더니, 천하가 이미 평정되었으니 내가 삶겨 죽는 것은 당연하구나!” 615p

[33. 한신․노관 열전]

[34. 전담 열전]

[35. 번․역․등․관 열전]


III. 내가 저자라면

다음의 내용은 진기환의 사기강독 서문(명문당 간)의 내용을 인터넷 자료에서 제 인용한 것이다. 사마천이 궁형을 받던 그 때를 생각하게 한다. 나라면 어땠을까?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 저는 집이 가난하여 형벌을 면할 재물도 없었습니다. 친구 중 누구도 나를 구해 주지 않았으며, 주상 좌우의 근신들 중 그 누구도 나를 위해 말 한 마디 해주지 않았습니다.”
“ 사람은 본디 한 번 죽지만 그 죽음은 태산보다 무거울 수도 있고 홍모(鴻毛)보다 가벼울 수도 있습니다.”
“ 형벌 중 제일 치욕적인 것은 궁형입니다.”
“ 맹호가 심산에 있을 때는 백수가 두려워하지만 우리나 함정에 있게 되면 비록 맹호라 할지라도 꼬리를 흔들며 먹이를 얻고자 하는데, 이는 주변의 위세에 눌린 까닭입니다.”
“ 감옥 안에서 옥리를 보면 머리를 땅에 조아리고, 옥에서 일하는 노예만 보아도 무서움에 마음이 떨렸습니다.”
“ 제가 법에 따라 형을 받은 것에 대해 세상사람들은 구우일모(九牛一毛)라 생각할 것이고 땅강아지나 개미와 다름없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참담한 속에서도 그가 자결하지 않고 버틴 것은 선친의 유언 때문이었다. 사마천은 선현들이 겪은 역경을 생각한 것이다.
“ 서백(西伯)은 제후이면서 유리(羑里)의 옥에 갇혔고, 이사(李斯)는 승상이면서 오형(五刑)을 받았으며 회음후(淮陰侯) 한신(韓信)은 왕이면서 진(陳) 땅에 구금 당했다.
“ 문왕은 구금 중에 주역(周易)을 연역(演繹)했고, 중니(仲尼)는 진과 채 사이에서 곤란을 당하고서도 춘추를 지었으며, 굴원은 추방되고 나서 이소(離騷)를, 손빈은 다리고 잘리고 나서 병법을 엮었다.”

사마천이 형을 받은 뒤 얼마나 분발하여 <태사공서(太史公書)>를 썼는가는 이상의 글로써도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즉 <춘추(春秋)> 이후 그 뒤를 이을 사서를 엮겠다는 오직 그 일념뿐이었다.
“ 저는 외람되게 무능지사에 자탁하여 천하의 방실된 구문을 망라하고 사실을 약고하며 시종을 종합하고 성패나 승기의 원리를 계고해서 위로는 황제(黃帝) 헌원씨(軒轅氏)로부터 아래로는 지금까지 12본기, 10표, 8서, 30세가, 70열전 모두 130권을 지었습니다.”

“ 저는 천의와 인도의 관계를 탐구하고 고금지변을 통찰하여 일가지언을 이루고자 하였습니다. 초고가 다 이루어지기 전에 이런 화를 만났습니다만, 혹시나 성취하지 못할까 걱정했기에 이 책을 다 써서 명산에 감추었다가 내 뜻을 알아줄 바로 그 사람을 만나 전국에 널리 퍼질 수만 있다면 이전의 치욕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으리니, 비록 일만 번 죽음을 당한다 할지라도 무슨 후회가 있겠습니까?”
사마천이 55세가 되었을 당시인 정화(征和) 2년 (기원전 91년)에 <태사공서(太史公書)>가 완성되자 그 자신은 자살을 하려고 했으나, 그의 남은 혈육인 딸을 출가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몇 년을 더 살았다. 딸을 출가시키고 나서 기원전 86년에 무제가 죽자 그 자신은 자결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태사공자서에서는 “ 정본은 명산에 비장하고 부본은 경사에 두고 후세의 성인 군자를 기다린다”라고 했다. 뒷날 선제(宣帝 : 재위 기원전 73-48년) 때 사마천의 외손인 평통후(平通侯) 양운(楊惲)이 그 원고를 조정에 바침으로써 비로소 사기는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1) 내가 사마천이 었다면.......

감히 상상한다는 것 자체가 그에 대한 예의가 아닌 듯싶다. 나는 여기서 그냥 사기열전의 대해 어설픈 썰을 풀어볼까 한다.

인간의 희노애락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역사서

마치 소설의 부분 부분을 읽는 느낌을 받았다. 이것은 자칫 딱딱하게만 느껴질 수 있는 역사서의 전달과정에 대한 한계를 사마천 그의 문학성으로 극복했다고 생각한다. 많은 부분이 대화체로 되어있어 현장감이 아주 높다. 그리고 그 대화의 내용은 일반적인 내용에서 아주 심오한 철학적 깊이를 느낄 수 있는 것 까지 다양하게 이야기 되고 있다. 이러한 방법은 주위를 집중시키고 환기시키는 완급조절이 아주 적절히 구사되고 있는 듯하다.

사마천의 철학을 닮은 책 사기열전

사기열전은 사마천의 생각이 깊숙이 베어 있음에 틀림없다. 그것은 열전에 나오는 인물의 설정에서 들어나는 것 같다. 다분히 선비를 숭상하는 그의 생각이 짙게 베어져 있는 것 같다. 시대적 상황이 춘추전국시대여서 그런지 대부분이 죽고 죽이는 인간의 비극에서 출발하고 비극에서 끝나는 내용이어서 좀 서글펐다. 좀더 밝고 긍정적인 내용의 역사는 인류에 없는 것일까?

그러나 그의 열전에도 민중의 역사는 보이지 않는다.

많은 역사서들이 그렇듯 시대의 영웅들을 대상으로 삼는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큰 것과 작은 것을 이야기한다. 큰 것은 영웅이고 작은 것은 민중이다. 영웅의 삶과 죽음은 후세에 많이 비춰지지만 민중의 삶은 그렇지 못하다. 이 부분은 사마천의 사기열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기원전 중국의 시대상황에 대해 내가 이해하는 바는 전무하다. 특히 군웅이 활거하던 춘추전국시대의 민중들의 삶이라는 것이 과연 어땠을까? 그것은 큰것이라 불리우는 것의 땅따먹기 싸움에 소모된 화살받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그것은 그 나름대로의 시대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약육강식의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국이 자랑하는 경전에는 세계 모든 나라에서도 족히 통하고 남을 파라다이스가 존재한다. 물론 이러한 역사는 세계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어쨌든 서운한 점은 사마천의 눈에 민초들의 삶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가 사마천이었다면 나는 그들의 삶을 역사서로 남겨놓을 생각을 해보겠다.



2) 감동적인 장, 절, 내용

[1. 백이열전]
착한이가 곤경에 빠지는 것이 하늘의 도인가? 36p
최근의 사례를 살펴보면, 하는 일이 올바르지 않고 법령이 금지하는 일만을 일삼으면서도 한평생을 호강하고 즐겁게 살며 대대로 부귀가 이어지는 사람이 있다. 그런가 하면 걸음 한 번 내딛는 데도 땅을 가려서 딛고, 말을 할 때도 알맞은 때를 기다려 하며, 길을 갈 때는 작은 길로 가지 않고, 공평하고 바른 길이 아니면 떨쳐 일어나서 하지 않는데도 재앙을 만나는 사람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이런 사실은 나를 매우 당혹스럽게 한다. 만약에 이러한 것이 하늘의 도리라면, 이것은 과연 옳은 일인가? 그른 것인가? 36p

정말 하늘에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고전에서는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 했던가?

[3. 노자․한비 열전]
용이란 동물은 잘 길들이면 그 등에 탈 수도 있으나, 그 목덜미 아래에 거꾸로 난 한 자 길이의 비늘이 있어 이것을 건드린 사람은 죽는다고 한다. 군주에게도 거꾸로 난 비늘이 있으니, 유세하는 사람이 군주의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리지 않으면 거의 성공적인 유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59p

역린을 조심하라고 했다. 넘어서지 말아야할 선이 있음이다.

[5. 손자․오기 열전]
'실천을 잘하는 사람이 꼭 말을 잘하는 것은 아니며, 말을 잘하는 사람이 반드시 실천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79p

사람은 저마다의 장점이 있게 마련이다. 하나를 보고 둘을 판단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

[7. 중니제자 열전]
하루는 재여가 낮잠을 잤다. 공자는 그 모습을 보고 이렇게 한탄했다.
“썩은 나무로는 조각할 수 없고, 더러운 흙으로 쌓은 담에는 흙손질을 할 수 없다.” 107p

너무나 뜨끔한 말이었다. 내 나무가 썩어 가는지 살피고 또 살필 일이다. 그 나무가 썩지 않도록 햇빛을 비추고 물도 줘야 한다.

[15. 맹상군 열전]
“살아 있는 것이 반드시 죽게 마련인 것은 만물의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부유하고 귀하면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고, 가난하고 지위가 낮으면 벗이 적어지는 것은 일의 당연한 이치입니다. 당신은 혹시 아침 일찍 시장으로 가는 사람들을 보신 적이 없습니까? 새벽에는 어깨를 맞대면서 앞다투어 문으로 들어가지만, 날이 저물어 시장을 지나는 사람들은 팔을 휘저으면서 시장은 돌아보지도 않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아침을 좋아하고 날이 저무는 것을 싫어해서가 아닙니다. 날이 저물면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물건이 시장 안에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지위를 잃자 빈객들이 모두 떠나가 버렸다고 해서 선비들을 원망하여 일부러 빈객들이 오는 것을 막을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빈객들을 예우하십시오.” 292p

사람을 대함에 있어 바램을 가지면 그 기대에 못 미칠 때 내 마음엔 번뇌가 찾아온다.

[32. 회음후 열전]
한신이 말했다.
“과연 사람들의 말에 ‘날랜 토끼가 죽으면 훌륭한 사냥개를 삶아 죽이고, 높이 나는 새가 모두 없어지면 좋은 활은 치워진다. 적을 깨뜨리고 나면 지혜와 지모가 있는 신하는 죽게 된다’고 하더니, 천하가 이미 평정되었으니 내가 삶겨 죽는 것은 당연하구나!” 615p

토사구팽....... 어쩌면 이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른다.

3) 마치며
일주일 사기열전과의 여행을 마쳤다.
책을 읽으며 공감되는 부분을 여러 번 지나갔다. 나는 그곳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줄을 그어두었다. 다시 그곳을 찾아보고 싶음이다. 아름다운 경치가 오래 가듯이........ 사기열전의 붓끝 휘몰아침이 내 마음에 깊이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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