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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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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13일 10시 34분 등록
1.저자소개

사마천(司馬遷)은 역사가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에 대해서는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그의 생몰연대에 대해 정확히 알려지고 있지 않으나 사후 여러 문헌에 의하여 추측할 뿐이다.
사마천은 자서전이라 할 수 있는 '태사공자서'와 임안에게 보내는 편지 (報任安書) , 그리고 반고(班固)가 지은 한서(漢書)의 '사마천전'이 주요 자료라고 할 수 있는데 한서는 위 두 글을 그대로 옮겨 적고 있으니 결국 주요한 자료는 <태사공자서>와 <임안에게 보내는 편지>뿐이라 할 수 있다. 이 밖에 사기의 각 편 끝에 '태사공왈(太史公曰)'로 시작되는 논평부분에 자신의 행적이 조금 실려 있을 뿐이다. 이러한 자료의 빈약함으로 인해 사마천의 출생 및 생몰연대가 확실하지 않다.
출생시기는 기원전 153년,145년,135년등 여러 설이 있으나 기원전 145년이 정설로 인정받고 있다. 지금부터 2천140 여년 전이고 前漢 경제(景帝) 중원(中元) 5년이다.

사마천의 생애를 살펴볼 때, 사실 사마천의 일생 전체가 사기의 저작을 위해 바쳐진 생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기는 곧 사마천의 땀과 눈물과 한이 얼룩져 있는 생애의 농축된 결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태어난 곳은 하양(夏陽), 지금의 섬서성 한성현의 교외로, 보통 사마판 (司馬坂)이라 불리는 부근이다.(이 근처에 황하의 나루터로 유명한 용문(龍門)이 있어 등용문의 고사가 생겨난 곳이기도 하다) 이 나루터 가까이에 용문산이 있고 그 아래 구릉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의 선조는 대대로 태사(太史:사관)였고 그의 부친 사마담도 학문에 조예가 깊었기에 사마천도 부친에게 좋은 교육을 받았다. 그가 열 살때 이미 고대문자로 된 경서를 암송할 수 있었고 좌전,국어,세본(世本)과 같은 역사문헌을 읽을 수 있었다.

선조가 태사였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졌던 부친은 마침내 한무제 때 태사령에 임명되었다. 수도 장안에 이주한 사마천은 공자의 후손인 공안국(孔安國)을 스승으로 하여 고문상서(古文尙書)를 배웠고, 당시 금문의 대가인 동중서(董仲舒)로부터 공양춘추(公羊春秋)를 배울 기회를 가졌으며 여러 학자들한테도 배웠다.

스무 살 되던 해 사마천은 2년간 중국전역을 돌아다녔으며 돌아온 후에는 낭중에 올랐다. 그 후 또다시 무제를 따라 순행하면서 거의 온 나라를 주유했다. 어디를 가든지 역사유적을 탐방하여 잊혀진 사람들을 찾고, 사람들을 만나 인정이나 풍속을 이해하는데 여정을 보냈는데 이는 뒷날 사기저술의 큰 도움이 되었으며 반드시 역사서를 집필하라고 당부한 뒤 세상을 더난 아버지의 유언을 받들어 수많은 자료를 정리하고 수집하여 4년의 준비 기간을 거친 끝에 태초원년에 정식으로 사시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사마천은 그 후 역법개정을 맡게 되었고 이 역법개정을 계기로 본격적인 사기저술에 착수하고 작업은 기원전 99년 [이릉의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 6년간 계속되었다.
뜻하지 않은 이릉사건으로 이릉을 변호한 것이 무제의 미움을 사 황제를 무고했다는 죄명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사형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돈 오십만냥으로 감형받는 것과 궁형을 받아 환관이 되는 것이었다.
죽음과 삶의 기로에서 사마천은 부친의 유언을 따르고 다 이루지 못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궁형을 자청하여 환관이 되었다. 부형(腐刑)이라 불리는 궁형은 사람이 당하는 모욕가운데 가장 심한 형벌이었다.
궁형을 받은 후 삼년 째 되던 해에 연호가 바뀌어(太始元年) 대사면령으로 옥중에서 석방된 사마천은 중서령에 임명되었고 사기의 집필을 계속할 수 있었다.
궁형의 치욕을 견디며 사기를 완성하여 후세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다면 그 치욕을 보상받을 수 있다는 일념으로 발분하여 사기를 완성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유언을 받든지 20년 만이었다. 집필을 완성하고 그는 세상을 떠났다.

사마천이 사기를 집필한 목적과 가치에 대해 생각해본다면 사기는
발분(發憤)의식의 소산이다. 궁형을 당한 것은 목숨을 이어 가기 위한 구차한 행위가 아니라 글을 지어 후세에 이름을 남기기 위한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치욕을 견디고 세인들에게 이름을 떨친 관중이나 오자서, 경포 등에게 의미를 부여하며 그들의 전기를 따로 마련한 것도 마찬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사마천은 인간 사회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대립과 갈등,배반과 충정, 이익과 손실, 물질과 정신, 도덕과 본능, 탐욕과 베풂등 양자택일의 기로에 선 인간을 제시하고 그 갈등 자체가 인간이 사는 모습임을 보여준다. 사기열전이 오늘날 생명력 넘치는 산 역사서로 만든 것은 바로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 본연의 역사’를 읽게 만든 노력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절대 군주 위주로 재편되는 엄혹한현실속의 인간에 대한 성찰일 것이다.

사기는 역사를 기록함에 있어서 사료를 철저하게 인용하여 2세기 이전에 기록된 사서로서 가장 권위 있고 방대한 역사서로 평가되고 있고, 중국 역사 뿐 아니라 주변의 인접국 역사까지 기록되어 주변국가들의 역사 연구에도 소중한 자료로 인정되고 있다.
사기는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역사적 사건에 사마천 자신의 관점에서 역사를 평가함으로서, 후대 동양의 역사가들은 역사를 기술하는 데 있어서 사마천의 자세에 큰 영향을 받았다.


2.마음속에 무찔러 들어온 글귀

<백이열전>
이 편은 일흔편의 열전 중 첫번째 편으로 고죽국 군주의 두 아들인 백이와 숙제의 고매한 인품을 허유, 무광과 대조 또는 대비하여 그려 나간다. 사마처은 백이와 숙제가 세상에 알려진게 공자의 친안에 의한 것임을 언급하면서 칠십열전의 인물이 자신의 붓끝을 빌려 세상에 이름을 떨치게 됨을 암시하고 있다.

요임금은 순에게 군주 자리를 물려주고 순 임금은 우에게 군주 자리를 물려주었다. 순임금과 우 임금 사이에 사악과 열두주의 목들이 다함께 우를 추천허였으므로 시험삼아 벼슬을 주고 수십년 동안 정치를 맡겨 공적이 이루어진 다음 군주 자리를 넘겨 주었다. 이러한 절차를 밟는 까닭은 천하는 소중한 그릇이고 왕은 가장 높은 통치자이므로 천하를 전해주는 일이 이처럼 어려움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61

파리도 천리마의 꼬리에 붙어 천 라 길을 갈 수 있다. 65
공자가 말했다 . “ 길道이 다르면 서로 도모하지 않는다.”65

<관. 안 열전>
춘추시대 명재상으로 이름을 떨친 관중과 안영의 이야기이다. 공자에게 소인으로 폄하된 관중은 관경중이라고 부른다. 출신이 보잘 것 없던 그가 재능을 펼치고 제나라의 뛰어난 제상이 된 것은 포숙의 추천 덕분이다. 따라서 사마천은 사람을 알아보는 포숙의 능력을 부각시키고 있다.

사람을 알아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관중은 곤궁하여 늘 포숙을 속였지만 포숙은 늘 그를 잘 대해 주고 속인일을 따지지 않았다.
관중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가난하게 살 때 포숙과 장사를 한 적이 있었다. 이익을 나눈 때마다 내가 더 많은 몫을 챙기곤 하였으나 포숙은 나를 욕심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가난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한 번은 내가 포숙을 대신해서 어떤 일을 경영하다가 실패하여 그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지만 그는 나를 어리석다고 하지 않았다. 운세에 따라 좋은때와 나쁜 때가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일찍이 세번 벼슬길에 나갔다가 군주에게 쫓겨났지만 포숙은 나를 모자란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내가 아직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낳아 준 이는 부모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이다. 72

군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에게 뜻을 드러낸다.
석보가 안자에게 말했다.
군자는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자에게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만 자기를 알아주는 자신에게는 뜻을 드러낸다고 합니다. 제가 죄인의 몸일 때 옥리들은 저에 대해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깨달은 바가 있어 보석금을 내어 저를 구해 주었으니 이는 저를 알아준 것입니다. 저를 알아주면서도 예의를 갖추지 않는ㄴ다면 진실로 죄인의 몸으로 있는 편이 낫습니다. 그러자 안자는 월석보를 모셔 상객으로 대우했다.76

태사공은 말한다.
세상사람들이 관중을 어진 신하라고 하지만 공자는 그를 도량이 좁다고 하였다….전하는 말에 군주가 잘한점은 좇아 더 잘하게 하고 그 잘못된 점은 바로 잡아주어야만 군주와 신하가 서로 친해질수 있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어찌 관중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겟는가…또한 안자는 왕에게 간언할 때 왕의 얼굴빛에 조금도 구애받지 않았으니, 이것은 조정에서는 충성을 다할 것을 생각하고 물러나서는 허물을 보충할 것을 생각한다는 마음가짐이었으리라! 오늘날 안자가 살아있으면 나는 그를 위해 채찍을 드는 마부가 되어도 좋을만큼 흠모한다. 77

<노자 한비열전>
이 편은 도가와 법가의 학술 원류를 다루고 있는데….노자에 관한 사마천의 관점은 이러하다. 노자는 공자와 동시대인으로 나이가 공자보다 많고 예에 밝아 공자에게 가르침을 주엇다는 것이다. 사마천은 장자의 우언을 당시 유가와 묵가를 공격하는 탁월한 무기로 본다.

군자는 때를 만나면 관리가 되지만, 때를 만나지 못하면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는 다북쑥처럼 떠돌이 신세가 되오. 훌륭한 상인은 물건을 깊숙히 숨겨두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군자는 아름다운 덕을 지니고 있지만 모양새는 어리석은 것처럼 보인다고 나는 들었소. 81

송나라에 어던 부자가 있었는데 집의 토담이 비에 무너져 내렸다. 그 아들은 이렇게 말했다. “담을 쌓지 않으면 도둑이 들 것입니다” 그 이웃집 주인도 아들과 독같이 말하였다. 날이 저물자 정말 많은 재물을 잃었다. 부자는 자기 아들은 매우 똑독하다고 칭찬하면서도 이웃집 주인을 의심했다. 89

용이라는 동물은 잘 길들이면 그 등에 탈 수도 있으나 그 목덜미 아래에 거꾸로 난 한 자 길이의 비늘이 있어 이것을 건드린 사람은 죽는다고 한다. 군주에게도 거꾸로 난 비늘이 있으니 유세하는 사람이 군주의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리지 않으면 거의 성공적인 유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91

<사마 양저 열전 >
이 편은 사마(군사 업무를 책임짐)를 지낸 양저를 다루었다. 사마천은 병가의 인물 전기를 통해 알 수 있는 각양각색의 전례를 기록하면서뛰어난 장수는 기술로써 전쟁을 치른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경공은 양저를 군사를 이끌고 연나라와 진나라 군사를 막도록 하였다. 양저가 말했다.
“저는 분래 미천한 신분이므로 병졸과 백성이 믿지 않으니 왕께서 총애하고 온 백성이 존경하는 신하에게 군대를 맡기십시오”
경공은 양저의 부탁을 받아즐여 장고에게 가도록 하였다.
양저는 장고와 내일 정오에 군무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져 이튿날 수레를 발리 달려 군영으로 가서 해시계와 물시계를 마련해놓고 장고를 기다렸다. 장고는 원래 교만한 사람이어서 서두를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친척과 측근들이 그를 전송하자 술을 마시며 꾸물댔다.
저멱때거 되어야 장고가 모습을 드러내자 양저는 군법에 따라 약속시간에 대지 못하면 목을 베도록 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겁이난 장고가 경공에게 이일을 알리고 사면을 요청하자 경공에게 갔던 사람이 돌아오기도 전에 장고의 목을 베 전군에게 본보기로 삼았다. 전군의 병사들은 모두 두려워 벌벌 떨었다
한참뒤 경공이 보낸 사자가 장고를 사면하라는 부절을 가지고 말을 달려 군영안으로 들이닥쳤다. 그러자 양저가 말했다.
“장수가 군영에 있을 때에는 왕의 명령도 받들지 않을 수 있소” 그러고는 군정에게 물었다.
“군영 안에서 말을 달리면 군법에는 어떻게 처리하도록 하고 있소?” 군정이 말했다.
“목을 베어야 합니다”
그어나 왕의 사자는 죽일 수 없어 말의 목을베어 전군에게 본보기로 삼고 싸움터로 나갔다. 99-101

<손자, 오기열전>
이 편은 세명의 뛰어닌 병법가 손무, 그 보다 백여년 뒤의 후손 손빈, 오기의 이야기에 방연을 덧붙인 것이다.

군령이 분명하지 않고 명령에 숙달되지 않은 것은 장수의 죄이지만 군령이 정해졌는데도 규정에 다르지 않는 것은 사졸들의 죄이다. 라고 손무는 말하고 왕이 총애하는 후궁 좌우 대장의 목을 베었다.108

손빈은 말했다.
“어지럽게 엉킨 실을 풀려고 할 때는 주먹으로 쳐서는 안되며, 싸우는 사람을 말리려고 할 때도 그 사이에 끼어들어 주먹만 휘둘러서는 안된다. 급소를 치고 빈틈을 찔러 불리하게 만들면 저절로 물러날 것이다. 111

손빈은 전기에게 말했다.
“병법에 승리를 좇아 백리까지 급하게 달려가는 군대는 상장군을 잃게 되고 오십리까지 급하게 달려오는 군대는 겨우 절반만 목적에 이른다.”라고 하였다. 우리 군대가 위나라 당에 이르면 찻날에는 아궁이 10만개를 만들게 하고, 다음 날에는 아궁이 5만개를 만들게 하며, 또 그다음 날에는 아궁이 3만개를 만들게 하십시오.
방연은 제나라 군대를 뒤쫓은지 사흘째가 되자 “나는 일찍이 군사가 겁쟁이인 줄 알고 있었지만 우리 땅에 들어온 지 사흘 만에 달아난 병사가 절반을 넘는구나” 그러고는 그의 보병들을 따로 남겨둔채 날쌘 정예부대만을 이끌고 이틀길을 하루만에 달려 급히 뒤쫓았다. 손자가 방연의 속도를 헤아려 보니 저녁무렵이면 위나라의 마릉에 이를 것 같았다. 마릉은 길이 좁은데다가 길 양쪽에 험한 산이 있어 병사들을 매복시키기에 좋았다. 손빈은 길 옆에 있던 큰 나무의 껍질을 벗겨내고 흰 부분에 이렇게 써 놓았다.
“방연은 이 나무 아래에서 죽을 것이다”
그러고는 제나라 군사 중에서 활을 잘쏘는 사람들을 골라 쇠뇌 1만개를 준비시켜 매복시키고 “밤에 불빛이 보이면 일제히 쏘도록 하라”고 말했다.
방연은 정말 밤이 되어 껍질을 벗겨놓은 나무 밑에 이르렀다.
그는 흰 부분에 씌어있는 글씨를 보려고 불을 밝혀 비추어 보았다. 방연은 그 글을 미처 다 읽기도 전에 죽었다. 111-113

한번은 종기 난 병사가있는데 오기가 그 병사를 위해 고름을 발아 주었다. 병사의 어머니가 그 소식을 듣고는 소리내어 울었다. 어떤 사람이 그 까닭을 물었다.
“당신 아들은 졸병에 지나지 않는데 장군께서 직접 고름을 발아주셨소. 그런데 어찌하여 그토록 소리내어 슬피 우시오?
그의 어머니는 대답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예전에 오공께서 우리 애 아버지의 종기를 빨아준 적이 있는데 그 사람은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용감히 싸우다가 적진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오공께서 지금 또 제자식의 종기를 빨아 주엇으니 니 아이도 어느 때 어디서 죽게 될지 모릅니다. 그래서 소리내어 우는 것입니다. 116

오기는 서하 태수가 되자 명성이 훨씬 높아졌다. 그런데 위나라에서는 재상 직책을 마련하고 전문을 그 자리에 임명했다. 오기는 기분이 언짢아져서 전문에게 말했다.
“당신과 공로를 비교해 보고 싶은데 어떻소?” 이에 전문이 말했다.
“좋지요” 오기가 물었다
“삼군의 장군이 되어 병사들에게 기꺼이 목순을 바쳐 싸우게 하고, 적국이 감히 우리를 도모하지 못하게 한 점에서 당신과 나를 비교하면 보가 더 낫소?
전문이 대답했다 “ 내가 당신만 못하지요”
오기가 물었다 “ 모든 관리를 다스리고 온 백성을 화합시키고 나라의 창고를 가득 채운 점에서는 나와 당신 중 누가 더 뛰어나오?”
전문이 대답했다 “ 내가 당신만 못하지요”
오기가 또다시 물었다 “ 서하를 지켜 진나라 군사들이 감히 쳐들어 오지 못하게 하고 한나라와 조나라를 복종시킨 점에서는 누가 더 낫소?”
그러자 전문은 이렇게 대답했다 “ 내가 당신만 못하지요”
오기가 물었다 “ 이 세가지 점에서 당신은 모두 나보다 못한데 나보다 윗자리에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이오?”
전문이 대답했다 “ 왕의 나이가 어려 안정되지 못하고 신하들은 말을 들으려 하지 않으며, 백성은 그분을 믿지 못하고 있소. 이런 때 재상 자리를 당신에게 맡기겠소. 아니면 내게 맡기겠소?”
오기는 한참동안 있다가 말했다 “당신에게 맡기겠소”
전문이 말했다 “이것이 바로 내가 당신보다 윗자리에 있는 까닭이오”
오기는 그제서야 자기가 전문만 못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117-119

<오자서 열전>
오자서는 본래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와 형의 원수를 갚고자 초나라를 등지고 오나라로 들어온 인물이다. 어찌보면 사마천도 궁형을 받고 인고의 세월을 살았으니 오자서의 입장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비무기는 평왕에게 말했다.
“오사의 아들은 모두 현명하므로 지금 없애지 않으면 초나라의 두통거리가 될 것입ㅂ니다. 그 아버지를 인질로 잡고 그들을 불러 들이십시오. 구렇게 하지 않으면 앞으로 초나라의 화근이 될 것입니다.”
왕은 오사에게 사신을 보내 말했다.
“네 두 아들을 불러 들이면 살려주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죽일 것이다”
그러자 오사는 이렇게 말했다
“오상은 사람됨이 어질어 내가 부르면 틀림없이 올 것입니다. 그러나 오운은 사람됨이 고집스럽고 굴욕을 견딜 수 있어 큰일을 해낼 것입니다. 그는 이곳으로 오면 아버지와 자식이 함께 사로잡혀 죽을 줄 알고 틀림없이 오지 않을 것입니다.
왕은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사람을 보내 오사의 두 아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희가 오면 네 아버지를 살려 주겠지만 오지 않으면 당장 죽여버리겠다”
오상이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가려 하자 오운이 말했다.
“초나라에서 우리 형제를 부르는 것은 아버지를 살려 주려고 해서가 아닙니다. 도망치는 자가 있으면 훗날 근심거리가 될까봐 두려워하여 아버지를 볼모로 잡고 거짓으로 우리형제를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 형제가 그곳으로 가면 아버지와 자식이 모두 죽게 됩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죽음에 무슨 보탬이 됩니까? 그곳으로 간다면 원수조차 갚을 길 조차 사라지게 됩니다. 차라리 다른 나라로 달아났다가 병력을 빌려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 것이 낫습니다. 함께 죽는다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자 오상이 말했다.
“나 역시 그곳으로 가더라도 끝내 아버지의 목숨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살기 위해 나를 부르셨는데 가지 않았다가 나중에 원수도 갗지 못하면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나는 그것이 싫어서 가려고 한다.
그래서 오상은 아버지에게 갔고 오운은 훗날을 도모했다. 127-129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다 134

악의 씨가 자라지 못하게 하라.
지금 오나라에 월나라가 있는 것은 뱃속에 병이 생긴것과 같습니다. 137
태사공은 말한다.
원한맺힌 사람이 끼치는 해독은 정녕 무섭구나 임금이라도 신하에게 원한을 사서는 안되거늘 하물며 같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끼리야 어떠하겠는가? 일찍이 오자서가 아버지 오사를 다라 함께 죽었다면 하찮은 땅강아지나 개미와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그는 작은 의를 버리고 큰 치욕을 씻어 후세에까지 이름을 남겼으니 그 뜻이 참으로 비장하구나 143

<중니 제자 열전>
기원전 500년부터 250년에 이르는 기간은 제자백가의 전성시대다. 당시 사상가들은 각국을 돌아다니며 유세를 하였고, 의기투합하여 봉건 제후의 고문이 되거나 외교관 역할을 하였다. 이들의 지적전개와 성과는 문화적 진보를 가져왔다. ,,,공자는 교육의 중요성을 부르짖고 그의 나이 서른살을 전후로 하여 제자를 모아 수업을 했는데 그에게 가르침을 받은자가 3000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교육관을 유교무류에 두었다.

안회는 배울 때 듣고만 있어 어리석은 것 같지만 물러가 행동하는 것을 보면 내가 가르친 것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었다. 148

공자가 말했다
“안회라는 자가 배우기를 좋아하고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않으며 잘못을 거듭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젊은 나이에 죽었습니다. 지금은 세상에 배우기를 좋아하는 자가 없습니다. 149

염구가 공자에게 물었다.
“의로운 일을 들으면 바로 실천해야 합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실천해야 한다”
자로가 물었다. “의로운 일을 들으면 바로 실천해야 합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아버지와 형이 살아계신데 어찌 들은 것을 바로 실천하겠느냐”
자화가 공자의 대답이 다른것에 대해 의아해 하며 물었다. “ 감히 여쭙겠습니다. 어째서 같은 질문에 달리 대답하십니까? 공자가 말햇다.
“염구는 머뭇거리는 성격이므로 앞으로 나아가게 해준 것이고 자로는 지나치게 용감하므로 제지한 것이다. 152

군자는 의를 소중히 여긴다. 군자가 용맹함만을 좋아하고 의를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세상을 어지럽히게 되고 소인이 용맹함만을 좋아하면 의를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도적이된다. 자로는 좋은 말을 듣고 실행하지 않았는데 또다시 좋은말을 듣게 될까봐 두려워했다. 공자는 또 자로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말 한마디로 소송을 판결할 수 있는자는 자로일 것이다”153

썩은 나무로는 조각할 수 없다.
하루는 재여가 낮잠을 잤다. 공자는 그 모습을 보고 이렇게 한탄했다. “썩은 나무로는 조각할 수 없고 더러운 흙으로 쌓은 담에는 흙손질을 할 수 없다.” 158

용맹스러운 사람은 어려움을 피하지 않고 어진 사람은 곤경에 빠진 사람을 궁지에 몰아넣지 않으며 지혜로운 사람은 때를 놓지 않고 왕은 다른 나라의 후대를 끊지 않음으로써 의를 세운다. 164

남에게 보복할 뜻이 없으면서도 그런 의심을 받는다면 이는 어리석은 일이고 남에게 보복할 뜻이 있는데도 이것을 알아차리게 한다면 이것은 위태로운 일이다. 또 계획을 행동으로 옮기기도 전에 새어 나간다면 이는 내우 위험한 일이다. 165

많이 듣고 그중에서 의심나는 것을 버리고 그 나머지를 신중하게말한다면 실수가 적을 것이다. 많이 보고 그중에서 의심나는 것을 버리고 그 나머지를 신중히 실행한다면 뉘우치는 일이 적을 것이다. 말에 실수가 적고 행동에 뉘우침이 적으면 벼슬은 그 가운데서 저절로 얻어진다. 172

대체로 통달한 사람은 질박하고 정직하여 의를 좋아하고 남의 말을 잘 듣고 표정을 잘 살피며 깊이 생각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낮춘다. 173

내가 듣건대 재물이 없는 것을 가난이라 하고 도를 배우고도 실행하지 못하는 것은 병들었다고 말했다. 저는 가난하지만 병들지는 않았습니다라고 원헌이 자공에게 말했다. 176

증점은 자가 석이다. 공자를 가까이 모시고 있을 때 공자가 말했다.
“네 뜻을 말해 보아라”
그러자 증점은 이렇게 말했다.
“봄옷이 새로 만들어지면 젊은이 대여섯명과 어린아이 ㅇ닐곱명을 데리고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기우제를 지내던 누대)밑에서 바람을 쐰다음 시를 읊조리며 돌아오고 싶습니다.”
공자는 이말을 듣고서 감탄했다.
“나도 너와 같이 하고 싶구나” …(이 대목에서 사부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인이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고 지란 사람을 아는 것이다. 184

공자가 말했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내가 잘못을 저지르면 다른 사람들이 반드시 알려 주기 대문이다. 그러나 신하는 임금의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는다. 그것을 숨기는 것이 예이다. 187

<상군열전>
상군은 중국 선진 시기 법가를 대표하는 정치가 상앙을 말한다. 상앙은 전국시대 중기 위나라의 공자로서 공손앙 또는 위앙 이라고도 하며, 진나라에서 변법을 성공적으로 단행하여 상군에 봉해짐에 따라 역사적으로는 상앙으로 불린다.

의심스러워하면서 행동하면 공명이 따르지 않고 의심스러워 하면서 사업을 하면 성공할 수 없다. 또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행동을 하는 자는 원래 세상 사람들의 비난을 받게 마련이며, 남들이 모르는 지혜를 가진 자는 사람들에게 오만하다는 비판을 듣게 마련이다. 어리석은 자는 이미 이루어진 일도 모르지만 지혜로운 자는 일이 시작되기 전에 안다. 백성은 일을 시작할때는 더불어 상의할 수 없으나 일이 성공하면 함께 즐길 수 있다. 가장 높은 덕을 강구하는 자는 세상과 타현하지 않으며 큰 공을 이루는 자는 뭇사람과 상의하지 않는다. 199

돌이켜 자기 마음속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을 총이라하고 마음 속으로 성찰할 수 있는 것을 명이라하며 자신을 이기는 것을 강이라 한다. 207

천마리의 양가죽은 여우 한 마리의 겨드랑이 가죽만 못하고 천 사람의 아부는 한 사람의 직언만 못하다. 207

사람의 마음을 얻는자는 흥하고 마음을 잃는자는 망한다. …덕을 믿는 자는 일어나고 힘을 믿는 자는 멸망한다. 210

<소진열전>
새도 깃털이 자라지 않으면 높이 날 수 없다. 217

주서에는 ‘처음에 싹을 자르지 않아 무성해지면 어떻게 하나? 터럭같이 작을 때 치지 않으면 결국 도끼를 써야한다’라고 하엿다.231

모든일은 혼란스러워지기 전에 다스리고 해로운 일은 일어나기 전에 대책을 세워 막아야 한다. 우화이 닥친 뒤에 걱정하면 이미 늦는다. 235

<장의열전>
이 편은 연횡가들의 전기로서 장의 진진 서수 세사람의 사적을 수록하고 있다.

신이 듣건대 깃털도 많이 쌓으면 배를 가라안히고 가벼운 물건도 많이 실으면 수레의 축이 부러지고 여러 사람의 입은 무쇠도 녹이고 여러 사람의 비방이 쌓이면 뼈도 녹인다.275

호랑이와 양은 서로 적수가 될 수 없다….병력이 부치면 싸워서는 안되고, 식량이 부치면 오래 싸우지 말라. 252

<저리자. 감무열전>
진시황이 여섯나라를 통일하기까지 매우 큰 공을 세운 자로는 단연 저리자와 감무를 꼽을 수 있다. ..이 편은 지혜주머니라고 불린 저리자, 저리자를 통해 혜왕을 만나 천하의 일을 언급한 감무, 그리고 그 손자 감라의 전기를 다룬다.

저리자의 이름은 질이고 진나라 혜와의 배다른 동생으로 어머니는 한나라 사람이다. 그는 우스갯소리나 행동을 잘하고 지혜도 풍부하며 진나라 사람들이 지혜주머니라고 불렀다. 309

옛날 효자로 유명한 증삼이 비읍에 있을 때 노나라 사람 가운데 증삼과 닮은이가 살인을 했는데 어떤 사람이 증삼의 어머니에게 “증삼이 사람을 죽였다고 했지만 그 어머니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조금 뒤 도 한사람이 증삼이 사람을 죽였다 고 했지만 태연하게 베를 짯다. 그런데 또다른 사람이 증삼이 사람을 죽였다고 하자 그 어머니는 달아나고 말았다.314

존귀하게 되는 까닭을 소중하게 여기는 자는 그 존귀함을 영원히 잃지 않는다. 318

남으 남는 빛으로 집안을 일으킨다. 못사는 여자와 잘사는 여자가 길쌈을 하였는데 못사는 여자가 나는 초를 살 돈이 없다 그렇지만 당신의 촛불에는 남는 빛이 있으니 그 남는 빛을 나에게 나누어 주십시오 당신의 밝음에 해를 끼치지 않고도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321

<양후열전>
주서에 천명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라고 했으니 니것은 요행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라는 말이다. 포자와 싸워 이겨 현 여덟개를 얻은 것은 병사가 정예로워서가 아니요 계략이 교묘해서도 아니고 하늘이 큰 행운을 내려주었기 때문이다.337

<백기 왕전열전>
백기는 전국시대 진나라의 유명한 장수로 공손기라고도 하며 소왕때 벼슬이 대량조가지 이르렀다.

마음을 잘 바꾸는 자는 난을 일으킨다.

무릇 세대에 걸쳐 장군이 된 자는 반드시 싸움에서 지게 되오. 반드시 싸움에서 지는 것은 무엇때문이오? 그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사람을 죽이고 쳐부순 것이 많아서 그 후손이 상서롭지 못한 기운을 받았기 때문이오. 358

세상에 자에도 짧은데가 잇고 치에도 긴 데가 있다. 라는 말이 있다. 백기는 적의 전략을 헤아려 날쌔게 대응하고 끊임없이 기이한 게책을 세워 천하에 명성을 덜쳤지만 응후와의 사이에서 생긴 근심은 없애지 못햇다. 358
<맹자, 순경열전>
니 편은 제목과 달리 잡가들의 열전이다. 사마천은 음양가와 도가의 학문이 사실상 근본이며 기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유가의 위대한 두 스승 맹자와 순자의 사적에 관해서는 짧게 다루고 음양오행가와 도가에 대해서는 유가보다 상세하게 다루었다.

공자는 이익에 따라 행동하면 원한을 사는 일이 많다고 했다. 363

<맹상군 열전>
맹상군이 설 땅에 있으면서 제후들의 빈객을 불러 모으자, 죄를 짓고 도망친자까지 모두 그 문하로 모여들었다. 맹상군은 신분이 귀하고 천함을 따지지 않고 똑같이 대우해주었다. 하루는 맹상군이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면 밤참을 대접하고 있었는대 누군가 불빛을 가린 탓에 방안이 어두웠다. 이에 손님은 자신의 음식이 맹상군것과 다른 것을 감추려 일부러 어둡게 한 줄 알고 기분이 상해서 돌아가려 했다 . 맹상군이 일어서서 몸소 밥그릇을 들어 손님의 것과 비교해 보이자 손님은 부끄러워 목숨을 끊었다. 381

맹상군이 좀도둑과 닭울음 소리를 잘 내는 사람을 빈객으로 삼았을 때, 다른 빈객들은 모두 같은 자리에 앉는 것을 부끄러워 했다.그런데 맹상군이 진나라에서 곤경에 처했을 때 이 두사람이 그를 구했다. 384

풍환이 대답했다.
술과 소를 마련하지 않고는 돈 빌린 사람들을 다 모이게 할 수 없고, 돈이 있는자와 없는 자를 구분할 수 없었습니다. 여유있는 자는 갚을 날짜를 정하게 하였고 가난한자는 차용증서를 십년동안 가지고 있어도 이자만 더욱 쌓여갈 뿐 성급하게 독촉하면 바로 달아날 테니 영원히 받을 수 없게 됩니다. 만일 성급하게 재촉하여 돌려받지 못하면 위로는 군주가 이익ㅇ[ 눈멀어 백성을 사랑하지 않은꼴이 되고 아래로는 백성이 빛을 갚지 않으려 군주를 떠난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따라서 쓸모없는 차용서는 불살라 받을 수 없는 빚을 없애 설 땅의 백성이 군주를 가까이 하고 군주의 이름을 칭송하게 하려는것입니다. 맹상군은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393

살아있는 것이 반드시 죽게 된다는 것은 만물의 필연적인 졀과이다. 부유하고 귀하면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고, 가난하고 지위가 낮으면 벗이 적어진다는 것은 일의 당연한 이치이다397

<평원군. 우경열전>
사마천은 구차한 삶을 감추고 발분하여 글을 지었기 때문에 우경을 기록한 부분에서 동변상련의 마음을 나타내고 있다.

세치혀는 군사 백만명보다 강했다. 409

태사공은 말한다. 평원군은 새가 하늘 높이 날듯이 혼탁한 세상에서 벗어나 재능과 지혜가 있는 훌륭한 공자였다. 그러나 나라를 다스리는 큰 이치를 알지 못했다. 속담에 ‘이익에 사로 잡히면 지헤가 흐려진다’라고 하였다. 평원군은 풍정의 그릇된말에 빠져 조나라 장평의 사십여만 병사를 산 채로 매장하게 되고 한단을 거의 멸망시킬 뻔했다. 421

<위공자 열전>
공자는 군사들을 각각 부서에 배치시킨 뒤 명령했다.
아버지와 아들이 군대 안에 있는 사람들은 아버지가 돌아가고 형과 동생이 함께 군대 안에 있는 사람은 형이 돌아가라. 외아들로서 형제가 없는 자는 돌아가 부모를 모시도록 하라 435

세상에는 잊으면 안되는 것이 있고 또 잊어야만 하는 것이 있다. 암이 베푼 은덕은 잊어서는 안되며 다른 사람에게 베푼 은덕은 잊어야 한다 436

<춘신군 열전>
사물은 한쪽 끝까지 가면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간다. 겨울과 여름은 서로 바뀌게 마련이다. 쌓인 것이 극에 이르면 위태롭다. 바둑돌을 쌓아 올리면 무너지게 마련이다. 446

시경에서 시작이 없는 것은 없으나 끝이 좋기란 드문 일이다. 역경에서는 여우가 물을 건너가려면 꼬리를 적시게 마련이다라고 했다. 이 말은 시작은 쉽지만 씉맺음은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 447

<범저. 채택열전>
사마천은 범저와 채택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들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자신들의 뜻을 잃지 않았고 공을 이룬 뒤에는 물러나 어진 사람으 따랐기 때문에 이들에 관한 열전을 만들었다.

평범한 군주는 사랑하는 자에게 상을 내리고 미워하는 자에게 벌을 주지만 현명한 군주는 그렇지 않아 상은 반드시 공 있는 자에게 주고 형벌은 반드시 죄있는 자에게 내린다. 470

훌륭한 의사는 환자가 죽고 사는 것을 알고, 훌륭한 군주는 일의 성공과 실패에 밝다470

왕께서는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와 우호관게를 맺고 이웃 나라를 치는 것이 제일 좋다. 그렇게 하면 한 치의 땅을 얻어도 왕의 것이 되고 한 자의 땅을 얻어도 왕의 것이 된다 477

나무 열매가 너무 많으면 가지가 부러지고 가지가 부러지면 나무 기둥을 헤친다. 수도가 지나치게 크면 나라가 위태롭고, 신하가 지나치게 존중되면 군주가 낮아진다. 480

옛말에 해가 중천에 떠오르면 서쪽으로 기울고, 달도 차면 기운다. 라고 했다. 만물이 왕성해지면 곧바로 쇠약해져 떨어지는 천지의 변하지 않는 이치이다. 나아가고 물러가는 것, 굽히고 펴는 것이 때에 따라 바뀌는 것은 성인의 영원한 도리이다.498

물을 거울로 삼는 사람은 자기 얼굴을 볼 수 있고 사람을 거울로 삼는자는 자기의 길흉을 알수 있다고 했다. 또 옛글에 성공했으면 그 자리에 오래 있지 말라고 했다. 502

역경에 높이 올라간 용에게는 뉘우칠일이 있다고 했다. 이것은 오르기만 하고 내려갈 줄은 모르며, 펴기만 하고 굽힐줄 모르고, 가기만 하고 돌아올 줄 모르는 자를 일컫는 말이다. 503

<악의열전>
옛 군자는 사람과 교제를 끊더라도 그 사람의 단점을 말하지 않고 충신은 그 나라를 떠나도 자기결백을 밝히려고 군주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는다. 516

<염파. 인상여 열전>
전쟁이란 목숨을 거는거요. 그런데 괄은 전쟁을 너무 쉽게 말하오 조나라가 괄을 장군으로 삼지 않는다면 다행이지만 만일 괄을 장군으로 삼는다면 파멸할 것이오 538

진나라는 조나라 왕이 남달리 아끼던 신하 관객에게 많은 금을 주어 이목과 사마상이 모반하려 한다고 이간질 했다. 이에 조나라 왕은 조총과 제나라 장군 안취를 보내 이목과 바꾸려 했지만 이목이 왕명을 따르지 않았다. 그러므로 조나라에서는 사람을 보내 이목을 봍잡아 죽이고 사마상을 해임시켰다. 그 뒤 세달이 지나 왕전이 갑자기 조나라를 쳐 크게 깨뜨리고 조총을 죽였으며 조나라 왕천과 안취를 사로 잡음으로써 마침내 조나라는 멸망하고 말았다. 545

<전단열전>
충성스런 신하는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정조있는 여자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다. 555

<노중련, 추양열전>
천하에서 선비가 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다른 사람의 걱정거리를 덜어주고 재앙을 없애주며 다툼을 풀어 주고 보상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566

지혜로운 자는 때를 거슬러 기회를 놓치지 않고 용감한 자는 죽음을 겁내지 않고 명예를 훼손시키지 않으며 충성스런 신하는 자기 한몸을 앞세워 군주를 뒤로하지 않는다. 567

젊을때부터 희머리가 되도록 사귀었으면서도 새로 사귄듯한 이가 있는가하면 길에서 우연히 잠깐 만나 이야기하고도 옛날부터사귄 것 같은 사람이 있다. 574

마음이 서로 통하고 일치하면 아교나 옻으로 칠한 것보다 더 친밀해져 형제라도 그들을 갈라놓을 수 없다. …한쪽 말만 들으면 간사한 일이 생기고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맡기면 혼란이 일어난다. 575

<굴원 가생열전>
이소란 걱정스러운 일을 만난다는 뜻이다. 무릇 하늘은 사람의 시작이며 부모는 사람의 근본이다. 사람은 곤궁해지면 근본을 돌아본다. 그러므로 힘들고 곤궁할 때 하늘을 찾지 않는 이가 없고 질병과 고통과 참담한 일이 있으면 부모를 찾지 않는 이가 없다. 586

새로 머리를 감는 사람은 관의 먼지를 털어 쓰고 새로 목욕을 한 사람은 반드시 옷의 티끌을 털어서 입는다 사람이라면 누가 자신의 깨끗한 몸에 더러운 때를 묻히게 하겠는가591


<자객열전>
예물을 바치고 남의 신하가 되어 섬기면서 그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것은 두 마음을 품고 자기 주인을 섬기는 일이다. 631

사람이 많으면 생각을 달리 하는 이가 생길 수 있고 생각을 달리 하는 이가 생기면 말이 새 나갈 수 있고 말이 새 나가면 한나라 전체가 당신을 원수로 여긴다. 636

<이사열전>
땅이 넓으면 곡식이 많이 나고 나라가 크면 인구가 많으며 군대가 강하면 병사도 용감하다. 태산은 흙한줌 양보하지 않으므로 그렇게 높아질 수 있고 하해는 작은 물줄기 하나도 가리지 않으므로 그렇게 깊어질 수 있다. 왕은 어떠한 백성이라도 물리치지 않아야 자신의 덕을 천하에 밝힐 수 있다. 그러므로 땅에는 사방에 구분이 없고 백성에게는 다른 나라의 차별이 없으며 사계절이 조화되어 아름답고 귀신은 복을 내린다. 666

성인은 변하여 정해진 태도가 없으며 변화에 따르고 시대에 호응하며 끝을 보고 근본을 알며 지향하는 바를 보고 귀착되는 바를 안다고 한다. 사물이란 본래 이런 것이다. 어찌 변하지 않고 고정된 법칙이 있겠는가. …가을에 서리가 내리면 일과 꽃이 지고 얼음이 녹아 물이 흐르게 되면 만물이 일어난다. 676


<위표 팽월열전>
인생은 흰망아지가 문 틈새로 달려 지나가는 것처럼 매우 짧다. 745

지금은 용두마리가 한참 싸우고 있으미 잠시 기다려 보자. 746

위표와 팽월은 물이 증발하여 구름이 되고 뱀이 용이되어 하늘로 올라 가는 것처럼 때를 만난 자신들의 뜻을 펼쳐 보려고 했기 때문에 갇히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751

<경포열전>

<회음후열전>
병법에는 산과 언덕을 오른쪽으로 하여 등지고 물과 못을 앞으로 하여 왼쪽에 두라 했는데 도리어 물을 등지고 진을 치게 하였는데 무슨 전술입니까?
병법에는 죽을 곳에 빠뜨린 뒤라야 반드시 살릴 수 있고 망할 곳에 둔 뒤라야 비로소 멸망하지 않을 수 있다했소. 788

지혜로운 사람도 천 번 생각하면 한 번 실수가 있고, 어리석은 사람도 천 번 생각하면 한 번은 얻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789

남의 수레를 타는 자는 남의 우환을 몸에 지고 남의 옷을 입는 자는 남의 근신을 제 마음에 품으며 남의 것을 먹으면 그의 일을 위하여 죽는다. 801

남의 의견을 듣는 것은 일의 성공과 실패의 조짐이며, 계획을 세우는 것은 일의 성공과 실패의 기틀이 된다. …지식은 일의 결단하는 힘이며 의심은 방해만 된다. 터럭 같은 작은 계획을 자세히 따지고 있으면 천하의 큰 술수를 잊어버리고 지혜로운 그것을 알면서도 과감하게 행동하지 않는 것은 모든 일의 화근이 된다. 그래서 맹호라도 꾸물거리고 있으면 벌이나 전갈만한 해도 끼치지 못하고 주마라도 주춤거리면 노둔한 말의 느릿한 걸음만 못하다. 803

공이란 이루기 힘들고 실패하기란 쉬우며 때란 얻기 어렵고 잃기는 쉽다. 때는 오지 않는다. 804


<전담열전.>
독사에게 손을 물리면 손을 자르고 발을 물리면 발을 자른다. 자르지 않으면 몸뚱이마저 해치기 때문이다. 837


3.내가 저자라면

사기열전은 격동과 파란의 시대를 치열하게 살다 간 온갖 인물 군상의 결정체이다.
각후의 제후 왕들이 천하의 패권을 쥐려는 야심을 품고 서로 죽고 죽인 혼란기였다. 물론 제후 왕들만 야심을 품은 것은 아니었다. 이들의 야심을 구체화해 줄 능력있는 실력자집단, 사상가, 전략가, 장수, 유세의 달인들, 공자는 물론이고 손자병법까지 상고시대부터 사마천이 살던 한 무제 때까지의 중국역사를 다루고있다.

사기열전은 인간에 관한 책이다. 지배자의 전유물을 넘어 실력만 된다면 누구라도 최고의 인재가 될 수 있었던 시대적 상황을 사람중심적으로 기술함에 따라 춘추전국시대의 진수를 보여준다.
구본형선생님께서 ‘사람에게서 구하라’라는 책에서 ‘중국이 우리에게 고구려사를 훔치려 한다면 나는 중국의 역사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골수, 바로 춘추전국시대를 떼오려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이제서 조금 이해하겠다.
‘어떤 방식으로 살아야 할까?’에 대한 물음에 다양한 답을 제시해준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고있는 고충이 우리만이 겪고있는 것이 아님을 역사속의 다양한 인물들의 다양한 삶을 통해 알게 된다.
2500년전 춘추전국시대의 영웅호걸들의 삶과 그 당시 어떤 인재를 등용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흥망성쇠가 결론지어졌고 인재들이 제기량을 마음껏 뽐낼 수 있었던 시기의 거장들의 숨결을 읽어낼 수 있다.
삶의 진리를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사람을 알아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군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에게 뜻을 드러낸다.
훌륭한 상인은 물건을 깊숙히 숨겨둔다.
급소를 치고 빈틈을 노려라.
때를 기다려라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다.
이것은 사기열전의 차례 중 일부이다.
제목만 보아도 그 숨은 뜻이 확연히 드러나듯이 삶의 깊이와 넓이를 위한 진리가 한 편의 서사시처럼 펼쳐진다.

고전에 일천하기 그지없는 나를 비롯 초자가 일기에 수월하게 쓰여졌다.
김원중씨는 사기열전이라는 대작은 아무리 뛰어난 번역도 원전을 따라가지 못할 것이라고 고백하며 번역에 있어 이념성이 개입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스스로의 원칙을 지키려 노력했음이 잘 드러난다.
그의 바람대로 번역자의 편견 없이 객관적으로 해석되어 있어 읽는 이가 편협한 시각이 아닌 객관적인 관점을 갖도록 이끈다.
다만 각주를 원문과 별도로 구별하고 있어 원문 내용을 읽다가 각주의 장을 왔다 갔다 해야 하는 불편함은 독자로 하여금 집중도를 떨어뜨리는 경향이 있어 보인다.

두고 두고 곱씹고 곱씹어야 할 책이다.
이 방대하고 심오한 내용을 어찌 일주일만에 소화할 수 있겠는가.
과제의 중압감에 질문하고 스스로 답을 구하고 의미를 해석해내지 못하고 그저 급하게 읽어 내려가기에 바빴다.
일상생활 중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곳, 눈길이 가장 많이 머무는 곳에 오랫동안 두고 하루에 한 장씩 , 조금씩, 아주 천천히 느리게 읽어 내려가며 기나긴 역사 속에서 가장 창의적인 삶을 살았던 그들의 빛나는 삶을 되새김질하여 내 삶속으로 투영시키고 싶다.
IP *.128.3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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