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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25일 21시 37분 등록

열정과 기질-하워드 가드너 지음, 문용린 감역, 임재서 옮김, 북스넛


● 저자에 대하여

하워드 가드너는 하버드 대학의 교육심리학과 교수이면서 보스턴 의과대학의 신경학 교수이다. 다중지능(Multiple Intelligence) 이론의 창시자이기도 한 저자는 ‘마음의 틀’이라는 저서를 통해 다중지능 이론을 처음 제기했다. 다중지능 이론은 교육과 인간에 대한 철학적 개념을 바꾸어 놓았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많은 나라에서 하워드 가드너의 이론을 받아들여 교육체계를 바꾸기도 했으며, 다중지능 이론에 관한 많은 연구소와 단체가 전 세계 곳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가드너는 1943년 미국 펜실베니아주에서 태어났다. 1965년 하버드대학에서 학사학위를 받았으며, 런던대학의 경제학과에서 1년간 수학한 뒤 다시 하버드 대학으로 돌아와서 발달심리학을 전공했다. 1971년에 박사학위를 받은 가드너는 하버드 의과대학과 보스턴 대학에서 Postdoc 과정을 밟았다. 이 과정이 가드너로 하여금 두뇌손상을 입은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인지적 문제들을 연구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가드너는 인간의 잠재적 능력과 발달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피아제 이론이 인간의 정신이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너무 좁게 설명하고 있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가드너가 주장한 내용은 인간의 사고 전체를 이끄는 한 가지 형태의 인지는 없으며, 적어도 일곱 가지의 지능이 있고 이들은 마치 파이(pie)의 조각들처럼 서로 독립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이었다.
가드너의 연구 대상은 두 부류이다. 하나는 일반 아동들과 영재아들, 또 하나는 두뇌손상을 입은 어른들이다. 가드너는 이 두 부류의 특성들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다중지능 이론에 대해 연구하게 되었고, 수백편의 논문과 저술을 발표했다. 대부분의 저서는 수많은 외국어로 번역되어 소개되었다.

가드너는 현재 하버드 대학교의 프로젝트 제로(Project Zero) 연구소 책임자이자 운영위원장이기도 하다. 프로젝트 제로는 인간의 예술적이고 창조적인 능력의 발달 과정을 근본적으로 파헤치는 인간개발에 관한 연구기관이다. 가드너는 줄곧 정신능력 발달과 교육에 관한 일관된 연구를 진행해 왔다. 25년이 넘게 이 연구소를 이끌어 온 가드너는 지능과 창조성, 교육방법론, 두뇌개발에 관한 획기적인 연구 성과들을 통해 인간의 창조적 기질에 관한 기본 틀을 제시하였다.

가드너가 다중지능 이론을 처음 세상에 내놓은 것은 1983년 "마음의 틀(Frames of Mind: The Theory of Multiple Intelligence)"라는 저서를 통해서이다. 그가 소개한 아홉 가지 지능(언어 지능, 논리수학 지능. 음악 지능, 신체 지능, 공간 지능, 대인관계 지능, 자아 지능, 자연친화 지능, 실존지능)이다. 대부분의 인지 학자들이 인간의 지능을 언어 능력과 분석 능력만으로 평가해 온 현실에 비추어 볼 때 가드너의 가설은 혁신적인 것이었다. 존 듀이(John Dewey)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교육학 이론가로 평가 받고 있는 하워드 가드너는 지능이나 천재성, 창조성에 대한 기존에 사고 체계를 완전히 바꾸어 놓음으로써 현대 교육학 이론의 새로운 도약을 가능하게 했다.

총 18권의 책과 수백 편의 학술 보고서를 발표한 가드너는 1981년에 맥아더 펠로우십(MacArthur Prize Fellowship)을, 1990년에는 미 교육 분야에서는 처음으로 그라베마이어상(Louisville's Grawemeyer Award)을, 2000년에는 구겐하임 펠로우십(Guggenheim Fellowship)을 받았다. 그의 책으로는 <열정과 기질>, <체인징 마인드>, <마음의 틀>, <다중지능: 인간지능의 새로운 이해>, <비범성의 발견> 등이 있다.

* 다중지능 이론이란 - 하워드 가드너는 기존의 문화가 지능을 너무 좁게 해석하고 있으며, 단일한 능력이 아니라 다수의 능력이 인간의 지능을 구성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가드너는 IQ 점수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보다 넓은 시각에서 인간의 잠재적 능력을 탐구하고 있는데, 현재 그가 제시한 인간의 지능은 8과 2분의 1지능이다. 이 이론대로라면 인간은 8과 2분의 1 지능의 발현 정도에 따라 수십 만, 수천 만 가지의 지능 조합의 특징을 지닌 인간 개개인을 만날 수 있다. 가드너가 처음 제시한 인간의 지능은 음악지능(Musical intelligence), 신체운동지능(Bodily-Kinesthetic Intelligence), 논리수학지능(Logical-Mathematical Intelligence), 언어지능(Linguistic Intelligence), 공간지능(Spatial Intelligence), 대인관계지능(Interpersonal Intelligence), 자아지능(Intrapersonal Intelligence)이었다. 그리고 최근에 발견한 여덟 번째 지능인 자연친화지능(Naturalist Intelligence)을 새롭게 목록에 첨가했다. 아홉 번째인 실존지능(Existential Intelligence)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이에 대한 증거와 자료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에 현재는 8과 2분의 1지능으로 말하고 있다.


● 마음에 들어 온 글귀

이 모형에 따르면 개인은 내부에 어떤 분야의 대가가 될 만한 소질을 싹으로서 가지고 태어나는데, 이것만으로는 창조성이 발휘하는 성인으로 성장해 가지 못하고, 우선 그러한 소질을 심화하고 강화시킬 수 있는 적절한 일의 체험기회(교육, 훈련 등)를 필수적으로 가져야 하며, 이러한 체험의 과정에서 타인(가족, 친구, 경쟁자, 후원자 등)으로부터 격려와 지원을 받는 의미 있는 인간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7]

이 책은 내 연구의 정점이자 출발점이다. 창조성이라는 현상과 역사적 실례(개별 사례)에 대한 평생 동안의 관심을 하나로 모았다는 점에서는 정점이며, 인간의 창조적 기질을 새로운 접근법으로 연구했다는 출발점이다. [13]

물론 이들 각자는 지능의 전 영역을 골고루 지녔고, 자신의 일을 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지능을 두루 활용했다. 하지만 이들은 저마다 우수한 지능이 서로 달랐고, 각자의 창조적인 도약 역시 특정 지능의 우수함을 요구하는 해당분야의 상징과 이미지 및 조작 방식을 정교하게 활용한 성과물이다. [48]

나는 이와 같은 시대정신, 즉 특정한 개인들이 우연히 그것을 일깨우고 결과적으로(어쩌면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것을 매개하는 역할을 하는 시대정신이 존재한다는 견해를 신봉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역사를 우연적인 것으로 파악한다. 미리 앞서서 미래에 생길 일을 규정하는 정신은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가장 극적인 역사적 변동을 일으키는 요인은 빗나간 총탄이라는 화산 폭발과 같은 우연적인 사건인 경우가 많은 것이다. [49]

일반적으로 인간 행동의 성적 동기를 강조한 프로이트는 창조적인 삶을 뒷받침하는 성적 요인에 관심이 많았다. 프로이트의 입장에서 보면, 창조적인 인물은 리비도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승화시켜서 글쓰기나 그림, 작곡, 혹은 과학탐구와 같은 2차적인 목적을 추구한다. 아마도 그는 이 책에서 소개하는 일곱명의 인물들에게서도 흥미로운 자료를 많이 발견했을 것이다. [66]

정신분석학 전통과 미국의 행동과학 학파는 공유점이 거의 없지만, 두 학파는 모두 개인이 창조 활동을 하는 것이 주로 물질적인 보상 때문이라는 점에서 의견이 일치한다. 프로이트의 설명에 따르면, 예술가는 권력과 부를 갈구하지만 이것을 직접 얻을 수가 없기 때문에 창조행위에서 안식처를 구한다는 것이다. 혹은 예술가는 그들이 갈구하는 리비도적 쾌락과 오이디푸스적 쾌락을 창조 활동에서 간접적으로 얻는 다는 것이다. [68]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새로운 용어를 사용해서 몰입상태 혹은 몰입 경험이라는 감정 상태에 관해 설명한 바 있다. 사람들은 이와 같은 내재적으로 동기화된 경험에서 자신이 관심을 쏟는 대상에 완전히 몰입되고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고 말한다. 이러한 감정 상태는 어떤 활동 분야에서도 경험할 수 있다. 이렇듯 몰입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그 순간에는 자신이 무엇을 경험하는지조차 의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나중에 반성적으로 자신이 완전히 살아 있었고 자신의 모든 것이 실현되는 절정의 경험을 했다고 느낀다. [69]

유년기를 어떻게 보냈는가 하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어린 시절부터 아이들이 마음 편하게 탐구하면서 주변 세계에 대해 많은 것을 발견하면, 그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활용할 수 있는 귀중한 창조성 자본을 많이 축적하게 된다. 반면에 이러한 발견행위가 억압당하고 한쪽 방향으로만 떠밀리거나, 혹은 세상에는 정답이 하나밖에 없고 권위자들만 그 정답을 알고 있다는 고정 간념에 짓눌린 아이들은 자기만의 해답을 내놓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78]

어느 분야의 전문 지식에 정통하려면 아무리 열광적으로 몰두했더라도 최소한 10년 정도는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창조적인 도약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기 분야에서 통용되는 지식에 통달해야 한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10년 정도의 꾸준한 노력이 선행되지 않으면 의미있는 도약을 이룰 수가 없다. [79]

그는 꿈을 ‘무의식에 이르는 왕도’라고 불렀으며, 그 비밀을 밝히는 것은 ‘한사람의 생애에 평생 한 번 허용될까 말까 한 통찰’이라고 말했다. [130]

프로이트는 모든 꿈에는 모종의 소원이나 환상이 담겨 있다고 믿게 되었다. 꿈은 억압된 소원이 위장 실현하는 과정이며, 예전의 결심이나 근심 혹은 욕망을 마음속에서 지속적으로 처리하는 수단이다. [137]

‘꿈의 해석’은 프로이트의 지적 재능이 지닌 힘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이 책은 프로이트의 문학적 재능이 유감없이 발휘된 뛰어난 저서이다. 파노라마처럼 인용되는 다양한 전거들은 프로이트가 과학 저서와 고전 문학뿐만 아니라 당대와 다른 시대의 정치적 문화적 사건들에 대해 풍부한 식견을 가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144]

프로이트 스스로 걸작이라고 여긴 ‘꿈의 해석’이 출간되었을 때, 세상은 과연 그의 발견이 지닌 잠재력을 인식할 수 있었던가? 얼핏 보기에 그처럼 폭넓은 시야를 가진 저서라면, 프로이트가 그 책의 내용을 전달하고 싶은 주된 대상 독자인 심리학자들의 장(場)에 즉각적인 충격을 주었으리리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잘 알려진 대로 ‘꿈의 해석’ 초판본은 처음 2년동안 겨우 351권이 팔렸을 뿐이며, 곧 절판되었다. [148]

하지만 결국 프로이트는 인간적으로나 사상적으로나 충성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불만을 품은 추종자들은 정신분석학 운동에서 불해의 씨앗이 되었다. [156]

프로이트와 맺은 인연으로 인해 불운을 겪은 이들도 있었다. 특히 그와 절교하게 된 사람들이 그러했는데 가령 젊은 제자였던 빅토르 타우스크는 용서할 줄 모르는 프로이트와 결별한 후 낙심한 상태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초기 추종자들 중에 적어도 여섯명은 같은 선택을 했다. 이는 창조성이 매우 뛰어난 인물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우리의 첫 번째 사례이다. [159]

또 한명의 존경스러운 물리학자 라바이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물리학자들이란 인간 피터팬이다. 그들은 결코 어른이 되지 않으며 언제나 호기심을 갖고 있다. 세상 물정에 밝아지면, 호기심을 갖기에는 너무 많이, 지나치게 많이 알게 된다.” [171]

아인슈타인은 성공을 위해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팔았으며, ‘나’와 ‘우리’의 세계에서 ‘그것(사물)’의 세계로 날아갔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다소 역설적이게도 아인슈타인은 오랫동안 좋은 친구들과 사귀었고, 말년의 프로이트보다는 훨씬 호감가는 인물이었다. [191]

하지만 자기 생각의 핵심 부분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지지를 구하는 마음과 다른 사람에게 완전히 의존하려는 마음은 전혀 다르다. 어느 경우든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교환했다는 이유로 최종 결과물의 요체가 달라졌으리라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프로이트와 아인슈타인 둘 다 자신들이 향하는 지점이 어디인지 확고하게 알고 있었고, 누구라도 그들이 가는 방향을 바꾸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193]

아인슈타인이 어떤 업적을 이룰지 알 도리가 없던 당대인들은 당연하게도 그를 실패한 사람으로 여겼다. 김나지움을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지 못했고, 처음에는 취리히 공대 입학에 실패했으며, 영향력 있는 스승이나 후원자도 없었다. 교수직을 확보하지도 못했고 박사 논문을 완성하지도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특허국의 이름 없는 관리로 남게 될 가능성이 가장 컸던 것이다. [202]

아인슈타인의 외모와 몸가짐, 그리고 마음속으로는 ‘어른’의 기준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태도에는 아이다운 천진성이 담겨 있었다. 나이가 들어서도 그는 걱정없이 살아가는 낙천적인 아이의 모습을 잃지 않았다. [220]

특수 상대성 이론과 일반 상대성 이론을 구상한 아인슈타인은 분야를 막론하고 창조적 행위를 특정짓는 일정한 패턴을 잘 보여준다. 자신이 선택한 분야에서 10년 동안 전문지식을 익힌 아인슈타인은 아직 젊은 나이에 결정적인 도약을 이루어 물리학의 연구 방향을 쇄신했다. 많은 창조적인 인물들이 처음의 근본적인 도약이 함의하는 내용을 탐구하는 다음 10년 동안의 연구를 거쳐, 아인슈타인은 두 번째 결정적인 도약을 감행했다. [229]

하지만 동시에 일정한 사고 방식에 너무 오랫동안 물들어 있으면, 새로운 혁신에 적응하지 못한다. 푸앵카레와 로렌츠도 자신들의 사고 습관에 너무 묶여 있던 나머지, 공간과 시간 그리고 이와 관련된 문제들에 대한 전혀 새로운 접근법을 용인할 수 없었을 것이다. [232]

어떤 일을 하고 있을때나 그의 마음속에는 과학이 있었다. 그는 차를 저으면서 차 찌꺼기가 컵 바닥의 가장자리가 아니라 가운데로 모인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이런 현상이 생기는 이유를 전혀 뜻밖의 사실, 즉 강물이 굽이쳐 흐르는 모습과 연결시켜 생각했다. 모래 위를 걸을 때도 그는 우리가 보통 아무생각없이 알고 있는 사실을 신기하게 생각했다. 즉 마른 모래나 물에 잠긴 모래는 그렇지 않은데, 젖은 모래는 딱딱한 발판이 될 수 있다는 사실말이다. 이 현상에 대해서도 그는 과학적 설명을 찾아냈다. [234]

“나는 신이 어떻게 우주를 창조했는지 알고 싶다. 이런저런 현상이나 이런저런 요소에 대한 각양각색의 견해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신의 생각이다. 나머지는 지엽적인 것이다.” 철학적 색채가 가미된 아인슈타인의 발언은 어는 것도 완전히 독창적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렇지만 그는 분명한 확신을 갖고 일관성 있게, 그리고 인상적인 태도로 그런 주장을 했고, 덕분에 그의 주장은 우리 시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이 될 수 있다. [236]

“우리들 각자는 무궁무진한 자연이 그저 놀이 삼아 우리 내부에 심어 놓은 비합리성과 비일관성, 우스꽝스러움, 광기 등을 품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를 간과해 왔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의 정신이 호된 시련을 겪을 때면 언제든 이런 요소가 불거진다.” [237]

나는 사회 정의와 사회적 책임에 대해 서는 열정적일 만큼 관심ㅇ이 많은데 비해, 이와는 이상하리 만치 대조적으로 주변사람들과 직접 어울리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나는 협동작업에는 익숙치 않고 혼자 일하는 스타일이다. 이러한 고립은 때로 쓰라린 기분을 느끼게 하지만, 다른 사람의 이해와 공감을 얻지 못한 걸 후회하지는 않는다. 여기에는 나름대로의 보상이 있었는데, 나는 관습이나 다른 사람의 의견과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고 그와 같은 변덕스런 토대에 내 정신을 의존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240]

프로이트와 아인슈타인은 내 논의에 배어 있는 몇가지 주제를 소개하는 역할을 한다. 두 사람 모두 위대한 도약의 시기에 고립된 생활을 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이론적이고 정서적인 도움을 많이 받았다. 프로이트는 한 친구에게서 도움을 받았고 아인슈타인은 소규모의 친구들에게서 도움을 받았다. 두 사람 모두 처음의 좌절을 극복하고 끈기있게 노력했는데, 어쩌면 자신들을 둘러싼 논란에 다소 즐거움을 느낀 면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연구에 매진하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했다. [245]

신동의 출현은 특정 분야에 대한 어떤 문화권의 관심과 지원 이외에도, 언제나 여러 요인들이 ‘우연히 맞아 떨어져야’ 가능한 현상이다. 그러니까, 재능이 갖춰진 아이와 그 분야에 우호적인 문화 뿐만 아니라, 풍부한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 [252]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 같은 실험적인 성향이 생긴 이유는 좀더 내생적인 요인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그러니까 피카소의 실험적인 성향은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는 기질, 미술 소재로 작업하는 일에서 느끼는 순수한 즐거움, 점점 커지는 자기 능력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더 불행한 일이지만 미술 소재를 다루는데는 익숙하고 뛰어난 솜씨를 발휘하지만 표준적이 학과공부를 하는 데는 어려움을 느끼는 능력간의 불균형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259]

이와 같은 ‘신과의 거래’는 우리가 다루는 일곱명의 창조적인 인물들의 삶에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261]

피카소를 비롯한 위대한 예술가들이 각기 자신의 분야에서 창조한 대표작들은 개인적 의미가 깊이 담긴 사건과 정서를 보편적인 주제와 이미지로 표현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277]

그는 화가라는 전문가로서나 사사로운 개인으로서나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에 맞서 새로운 경지에 오르고자 했으며, 전례가 없는 깊이에 도달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이와 같은 가차없는 도전 의지는 이 책에서 다루는 창조적인 거인들 모두의 특징이며, 그들을 그들답게 만드는 특성이다. [278]

“우리는 피카소의 작품에서 그의 정신의 변천사와 운명의 굴곡을 엿볼 수 있으며, 어느 날 혹은 어떤 시기에 그가 느낀 성취감과 곤혹스러움, 기쁨과 환희, 고통 등을 알게 된다.” 피카소는 이 점을 간결하게 말했다. “내 작품은 일기와 같다.” [284]

피카소는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는 이러한 순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그림은 자유다. 도약하면 밧줄을 놓쳐 추락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목이 부러지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고 무슨 좋은 점이 있겠는가? 도약하지 않는 것뿐이다. 우리는 사람들을 일깨워야 한다.” [287]

이 때 피카소는 이전이든 이후든 비근한 사례를 볼 수 없을만큼 자신의 자아와 개성을 억눌렷고, 덕분에 새로운 전망을 열 수가 있었다. 훗날 그는 이 무렵을 가장 행복했던 시기로 회상했다. 브라크와 맺은 관계가 그의 가족 관계를 재현한 것인지, 동성애적인 함의를 내포했는지, 이후에는 입체주의에 버금가는 혁명적인 양식을 추구하는 길을 방해한 면이 있는지 여부는 임상 의학자들에게 맡겨둬야 할 문제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피카소가 ‘아비뇽의 처녀들’의 수준을 뛰어넘어 한 단계 높이 도약하기 위해서는 다른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는 점이다. [332]

공전의 성공을 거듭하는 가운데서 이례적인 실패를 맛보았다는 점은 꼭 알아두어야 할 중요한 사실이다. 아무리 창조성이 뛰어난 혁신가라 해도 길을 잘못 들어설 수가 있는 법이며, 이들은 본래부터 오류 따위는 범하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라 다만 그 실패를 딛고 재기하는 방식이 보통 예술가와는 다른 사람들이라는 점을 새삼 일깨우는 사실인 까닭이다. [355]

스트라빈스키와 피카소가 과거와 자극적인 대화를 지속적으로 했다는 점은 두 사람이 오랫동안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였다. 그들은 과거로부터 배우고 과거를 재창조함으로써 자신의 목소리를 한층 더 심화시킬 수 있었다. 이는 과학자나 수학자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만약 그들이 이런 식으로 과거와 유희하지 않았다면 훨씬 개인적이고 급진적인 작품은 창조했겠지만, 이는 기껏해야 창조력을 갉아먹은 곤란한 재주에 불과했을 것이다. [383]

스트라빈스키는 자신의 작곡 행위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성찰했다. “창조적인 음악가로서 나는 매일매일 짐을 풀 듯이 내 마음속의 아이디어를 표출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나는 작곡가라는 운명을 타고났고 다른 것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작곡을 했다. 나는 영감이라는 것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을 하다 보면 영감이 떠오르는 것이다. 물론 처음엔 잘 모를 수도 있다.” (프로이트 역시 비슷한 마을 한 적이 있다. “영감이 내게 오지 않으면, 나는 그것을 맞으러 나간다”) [388]

‘황무지’의 작시 과정은 창조적인 걸작품의 탄생에는 다른 사람의 역할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실례가 된다. 시를 쓸 무렵 엘리엇은 절망적인 위치에 놓여 있었다. 개인적으로 불행했고, 문학계에서의 자기 위치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대단한 성공이 가능한 작품을 난삽하게나마 탈고한 상태였지만, 사람들이 제대로 읽어줄지가 의문인 작품이었다. 그럼에도 엘리엇은 행운아였다. 가까운 두 사람이 작업을 도와주었고, 그들의 비판을 건설적으로 수용했다는 점에서 엘리엇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429]

그레이엄의 아버지는 딸이 사실대로 말하지 않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네가 거짓말을 하면 내가 모를줄 아니? 네가 나를 속인다는 걸 항상 네 몸짓이 말해 준단다. 네가 말하는 내용과는 상관 없이 네 모습에 다 써 있어. 주먹을 쥐면 내가 모를거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등이 뻣뻣해지고 발을 끌거나 눈을 내리깔고 있잖니. 몸짓은 거짓말을 못하는 법이란다.” 딸의 잘못에 대한 이런 통찰력 있는 부모의 대응은 나중에 커다란 의미로 남았다. [470]

그레이엄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자연스러움과 간결함을 갖추기 위해선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니진스키는 단 한 번의 탁월한 도약을 위해서 수천 번이나 도약연습을 했다.” [521]

그레이엄은 거의 평생에 걸쳐 자신을 무용가이자 배우로 생각했다. 그녀는 자신이 무용가로 태어났다고 느꼈다. “나는 무용가가 되기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 나는 무용가로 선택된 것이다.” 그녀는 젊은 사람들에게 무용가가 되는 일에 관해 은근히 겁을 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여러분을 위해서나 다른 사람을 위해서 활기찬 인생을 사는 길이 하나 뿐이라면 그 길을 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나의 삶, 그리고 작품활동의 필연입니다. 마치 동물처럼 다른 생각 하나없이 오직 이 길을 걸어갈 뿐입니다. 선택은 없습니다. 동물이 일체의 속임수나 야망없이 먹고 마시고 새끼를 치는 것처럼 말이죠” [524]

“누구에게나 실패 할 권리는 있다. 실패했더라도 더 높이 올라가고자 하는 용기만 있다면 실패를 발판으로 새로운 단계로 오를 수 있다. 한 가지 대죄가 있다면 그건 범용이다. 이게 내 믿음이다.” [526]

마침내 남아프리카의 더반으로 떠날 기회가 생겼다. 어느 회사가 더반에서 법률 조문 역할을 맡아달라고 부탁했건 것인데, 그는 주저하는 기색이 없이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다시 한 번 가족을 버린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간디 성격의 중요한 일면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기회가 문을 두드리면 아무리 먼 곳으로 떠나야 하고 또 자신과 가족에 어떤 대가를 치르게 해도 그 기회를 붙잡는다는 점이다. [550]

그러나 간디는 전혀 성취감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그는 좌절감을 느꼈고 무언가를 이루지 못했다는 낭패감을 느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이 몸소 실천한 선례를 따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한탄했고, 이것은 자신이 견지하는 삶의 원칙을 모범적으로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책망했다. 힌두교 교리에서는 가장이 어는 시점이 되면 사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대신 종교적 고행자로서 은둔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소위 바나프라스타가 그것이다. [556]

인생 행로에 관한 이와 같은 중대한 결정을 내리면서 간디는 인도 민중과 신 그리고 자기자신과 일종의 계약을 맺었던 것이다. 실제로 다른 사람들에게 드높은 행위 규범의 모범이 되기 위해 공개적으로 삶의 쾌락을 포기하고 금욕적인 삶을 살았다. 고립된 작업을 하는 창조자들 역시 사적으로 이러한 맹세를 할 수 있지만, 대중의 행동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르치는 내용을 직접 실행하면서 아주 공개적인 방식으로 파우스트적 계약을 실천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558]

간디가 처음으로 사티아그라하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한 곳은 남아프리카였다. 그는 참과 사랑에서 태어난 힘이라는 뜻을 강조하기 위해 이 용어를 사용했는데, 그것은 오랜 세월 인도인들이 자기에게 가해진 불의에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같은 지역내에 존재하는 사람들 간의 보다 인간적이고 동등한 관계를 확보하기 위해 실천했던 방법이었다. 사타아그라하는 두 세력이 그 내부에서 불화와 반목 상태에 놓여있는 공동체의 존재를 전제한다. 사티아그라하의 신봉자는 폭력과 고통 혹은 위협을 통해 서로 대결하는 대신, 몸소 고통을 짊어짐으로써 상대방의 양식과 양심을 일깨운다. 이를 통해 진리파지자(satyagrahis)는 상대방을 개심시키고 그들이 자진해서 동반자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577]

시대를 막론하고 간디보다 더욱 솔직하게 자신의 내밀한 생각을 밝힌 지도자는 거의 없다. 간디는 자신의 모든 글, 특히 자전적인 내용을 담은 ‘진리 실험’에서 정확하고 거짓 없이 자신의 행동과 생각과 동기를 성찰했다. 이러한 고백적 글쓰기는 두 가지 효과를 자아냈다. 첫째, 이를 통해 간디는 자신의 역사와 현재 처해있는 상황, 자기 및 인도 민중 그리고 인류 전체에 대한 자신의 포부를 온전히 자기 내부에 받아들일 수 있었다. 게다가 이러한 글들은 자신의 삶을 주변의 가까운 동료들뿐 아니라 그의 실천 방법에 관심이 있던 수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게 만들었다. [582]

무론 간디와 같은 훌륭한 인물도 비난을 비껴갈 수는 없는 일이며,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 자신의 추종자들을 고압적으로 대한 일이나 가족을 이상할 정도로 몰인정하게 대한 일, 그리고 일부 정치적 견해의 소박함 등에 덧붙여 새로운 비난이 가해졌다. 만년의 간디가 나체의 젊은 여자를 곁에 두고 잠을 자겠다고 고집을 피웠다는 비난이 그것이다. 간디는 이러한 사실 자체를 부인한 적은 없었다. 다만 그가 젊은 여자들을 성적으로 욕보였다거나 여자들이 억지로 늙은이 옆에서 잠을 자야 했다는 추측에 대해서는 격렬하게 부인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엑게 이러한 행태는 간디의 괴팍함을 확고하게 드러낼 뿐 아니라, 간디가 종종 다른 사람들을 희생하면서까지 자신의 개인적인 괴벽과 취향을 만족시켰다는 사실을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것으로 여겨졌다. [606]

“나의 전문 분야는 행동이다” - 마하트마 간디 [610]

자기 분야에 들어가서 얻는 경험은 개인에 따라 다른데, 여기서 이 점을 상세히 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E.C.는 다소간의 속도 차이는 있지만 관심이 가는 문제 영역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해당 분야를 전인미답의 경지로 추동하는 계기가 된다. 이 순간이 바로 가장 긴장된 순간이다. E.C.는 이제 동료들과 고립되어 홀로 자신만의 작업에 몰두해야 한다. 자신이 도약의 문턱에 왔음을 감지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자기 자신도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놀랍게도 이 중대한 순간에 E.C.는 인지적 정서적인 도움을 받아서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놓치지 않는다. 그런 도움이 없다면 좌절하기 십상일 것이다. [623]

창조성의 현저한 특징은 아이다운 천진성과 어른의 원숙함의 결합에 있다. 이런 결합은 성격만이 아니라 사고방식에서도 나타난다. 아이다운 특성이 수진함고 참신함으로 나타나면 긍정적인 색채를 띠게 되지만, 반대로 이기심과 보복심리로 나타나면 부정적인 색채를 띠게 된다. 일곱 명의 인물이 지닌 아이의 ‘얼굴’과 어른의 ‘얼굴’ 사이의 관계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629]

인생패턴:창조성의 10년 규칙. 정당한 근거 없이 숫자의 마술을 부릴 생각이 없었음에도 본 연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나는 창조성의 10년 규칙을 발견했다. 일곱 명의 창조적인 인물들은 물론 분야마다 약간씩 기간은 달라도 대략 10년을 사이에 두고 창조적인 도약을 이루었다. 인지 심리학 계통의 연구를 통해 알려진 바와 같이 한 사람이 어느 분야를 기본적으로 통달하는데 필요한 기간은 대략 10년 정도이다. 피카소처럼 네 살에 시작하면 10대에 거장이 될 수 있고, 10대 후반에 창조의 노력을 시작한 스트라빈스키와 같은 작곡가와 그레이엄과 같은 무용가는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창조성의 본 궤도에 올라선다. 10년간의 견습 기간을 거쳐야 중대한 혁신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도약은 대개 일련의 시험적인 단계를 거쳐 이루어지는 편이지만, 일단 도약을 하게 되면 과거로부터 결정적인 단절을 이룬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프로이트의 ‘프로젝트’와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엘리엇의 ‘황무지’, 그레이엄의 ‘프론티어’, 간디의 아메다바드 파업을 결정적인 도약으로 간주한다. [637]

창조적인 인물의 특징적인 모습은 창조성의 삼각형에서 어떤 부조화, 혹은 부드러운 연결의 결여를 장점으로 활용할 줄 안다는 점이다. 분석적으로 보면, 여섯 가지의 비동시성 영역이 존재한다. 개인 내부, 분야 내부, 장 내부, 그리고 개인과 분야 사이, 개인과 장 사이, 분야와 장 사이에 비동시성 영역이 존재한다. 모든 종류의 비동시성에서 면제된 사람들은 신동이나 전문가가 될 수는 있을지언정, 창조적인 사람이 될 수는 없다. 반면 모든 지점에서 비동시성을 경험하는 사람 역시 여기에 압도당할 가능성이 크다. 나는 몇몇 지점에서 비동시성을 겪으면서도 동시에 거기에 따르는 중압감을 견뎌낼 수 있는 사람만이 창조적인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가정했다. [654]

게다가 엄마와 아이 혹은 보모와 유아 간의 대화, 혹은 친한 친구들 간의 대화와 같은 어린 시절의 효과적인 소통을 경험하지 못한 창조자는 어른이 되어서도 근본적인 소통을 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성년기에 있어서 이런 종류의 지지와 격려는 새로운 업적을 창조한 일과 관련이 있으며, 어린 시절 무엇인가 성취한 일에 보상을 받던 상황이 재연된 것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662]

바쁜 일상과 홍수처럼 밀려드는 정보 속에 자칫 삶을 적극적으로 살지 못하고 여기저기서 치이기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어릴 때 품었던 꿈을 이제는 기억조차 못할 정도로 아스라이 잊어버린 사람들에게 가드너는 창조성이란 바로 “아이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힘”에서 나온다는 메시지를 전해주기 때문이다. 아이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힘을 평생 동안 지닐 수 있었기에 이 책에서 다루는 거장들은 그토록 열정적으로 자신의 분야를 개척할 수 있었다는 게 저자가 전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인 것 같다. [693]


● 내가 저자라면

‘시대적 화두이자 가장 경쟁력 있는 인간 특질은 다름 아닌 창조성이다.’ 책의 감역을 맡은 문용린은 책의 첫 페이지 첫 문장을 ‘경쟁력’이란 말로 시작한다. 책의 발행연도를 보니 2004년. 지겨울 정도로 압박처럼 들려오는 ‘실용과 경쟁’이 최근에 생겨난 화두는 아닌 모양이다.
힘 있는 사람도, 많은 지식을 갖춘 사람도, 오피니언 리더라는 사회 지도층도 경쟁이 시대적 화두라고 말하니 싫든 좋든 그 화두를 한번 붙잡아 보자. 화두를 붙잡고 보니 그렇다면 경쟁시대의 경쟁력은 무엇인가가 궁금해진다.
책의 첫 문장에 따르면 경쟁력 있는 인간의 특질은 창조성이다. 아놀드 토인비는 이미 20세기 초반에 “역사의 변화는 언제나 창조적인 소수에 의해 주도 된다”고 말했다. 남들과 다른, 남들보다 앞선, 남들보다 뛰어난 그런 사람들을 창조성이 뛰어나다고 하면 무리가 없을 것 같다. 개인의 삶은 물론이고 세계적 기업과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는 기업들은 독창성이나 탁월함이 없으면 경쟁자에게 뒤처지는 현실에서 창조성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이렇게 누구나, 어느 분야에서나 중요하게 여기는 창조성은 무엇이고 어디서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 다중지능 이론을 만들어낸 가드너는 이러한 궁금함에 대한 답을 제시해준다. 막연한 이론이 아니라 이해하기 쉬운 사례를 통해서이다. 가드너가 사례로 제시한 일곱 사람은 20세기의 시대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인물들이다.
인간 무의식의 동기와 충동을 밝힌 프로이트, 상대성원리라는 근원적 과학 법칙을 찾아낸 아인슈타인, 현대미술의 거장 피카소, 자신만의 리듬을 만들어낸 스트라빈스키, 현대시의 새로운 장을 연 엘리엇, 무용의 혁명가 마사 그레이엄, 비폭력으로 저항한 간디가 그들이다.

7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은 두께만으로도 다소 위압적이다. 그러한 위압적인 느낌을 많이 줄여주는 것은 1장과 2장의 친절함과 충실함이다. 책의 두께를 보고 잠시 놀란 독자에게 정확한 이정표를 제시해 방대한 내용 속에서 길을 잃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한다. 저자는 1장에서 일곱 사람이 선택된 이유가 무엇인지와 책의 구성 형식, 책의 목표, 책의 주제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하고 있다. 2장에서는 연구 방법에 대한 이론적 도구적 방법을 알려주는데 이것 또한 독자를 편안하게 책 속으로 이끌고 있다.
또 다른 편안함은 뜻밖에 책이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이론적 연구를 밑바탕으로 한 연구서적의 성격이 강함에도 불구하고, 전문지식의 격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일반 독자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어휘와 문장의 선택은 절묘한 조화를 보인다.

무엇보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은 거장들이 어떻게 창조성을 길렀는가 하는 부분일 것이다. 저자는 한두 가지가 아닌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거장들이 창조성이 뛰어난 삶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우선 어린아이의 감성을 유지하는 것의 중요성이다. 창조적인 인물들은 어린 시절의 감정과 경험을 활용하는 면에서 남들과 달랐다. 창조적 거장들은 유년기에 품었던 감수성을 대부분 그대로 유지하며 자라났고 어른이 되면서 이를 활용했다.
혁명적 기질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일곱 사람은 모두 자신이 걷고 있는 분야의 문제를 발견하고 개선하려 노력한다. 갖은 실패와 시행착오를 겪고, 보상도 없는 일을 하면서 꿋꿋하게 그러한 과정을 거름으로 삼는다. 그들이 처음 세상에 내놓은 결과물들도 처음엔 세상에서 홀대를 받지만 그 과정을 모두 이겨내고 결국 시대를 빛내는 존재로 자리매김한다.
10년 주기설은 공감이 많이 가는 부분이다. 저자가 분석한 일곱 인물에서 밝혀낸 것은 10년을 주기로 창조적 업적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 분야의 기초를 탄탄히 익히고, 다음의 10년은 이를 토대로 창조적 혁신을 만들어내며, 또 다음 10년은 또 다른 분야에서 창조적 성과를 이루어낸다는 것이다.
지능과 창조성은 관련이 없다는 지적도 눈에 뜨이는 부분이다. 저자는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은 찾기 어려우며, 창조적 인물도 어느 한 분야에서만 창조적일 수 있다고 전제한다. 창조성은 무척 다중적이며 창조행위는 한 분야에서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어떤 분야에서의 형편없는 능력도 생산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학교공부에 전혀 소질이 없었던 피카소와 프로이트처럼 창조적 인물들이 지닌 다른 부분들을 비동시성이라고 한다. 이러한 비동시성이 사람을 억누르지 않을 정도면 생산적인 창조성에 유용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무엇보다 눈길이 가는 것은 파우스트적 거래이다. 파우스트적 거래란 모든 것을 희생하더라도 자신의 일에 몰입하려는 하는 거래를 말한다. 예를 들자면 프로이트 엘리엇 간디처럼 금욕적인 삶을 살기로 다짐하거나, 아인슈타인 그레이엄처럼 고립을 자초하는 일을 일러서 파우스트적 거래라고 한다. 그 외에도 자신의 일을 위하여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 피카소, 주변사람과 심한 마찰을 빚는 스트라빈스키도 이러한 행태를 보였다.

저자가 강조한 창조성에 관한 것 말고도 책은 다양한 내용으로 독자의 눈길을 잡아들인다. 거장들의 개인적 욕망이나, 뜻밖의 기질, 인생행로, 인간관계 등은 흥미와 놀라움을 동시에 유발시킨다. 당시의 다양한 문화사조를 접할 수 있는 것이나 시대적 명작들의 창작의 막전막후를 상세히 알 수 있는 것도 즐거움의 하나다.
그럼에도 책은 무엇보다 지나치게 방대한 내용 때문에 창조성에 대한 초점이 흐트러지게 한다. 거장들 개개인의 삶을 상세히 풀어낸 것은 좋지만, 창조성보다는 전기에 가까운 흐름을 보여주는 것도 아쉬움 중의 하나다. 거장들의 창조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데 그렇게 세세한 개인의 삶의 과정을 표현하는 것이 꼭 필요할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일부에서는 그들의 삶의 과정 중 창조성의 발현에 관한 언급을 찾기 힘들어 더 그러하다. 일부 내용을 덜어내고 강한 임팩트를 주는 게 좋았을 것으로 보인다.
후반부의 에필로그는 그렇지 않아도 두꺼운 책에 무게만 더한 느낌이다. 에필로그에서 다시 길고 깊은 이야기를 늘어놓아 독자에게 지나친 지구력을 요구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면 내용을 축약해 책의 본문 속에 풀어 놓는 게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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