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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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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26일 11시 56분 등록
열정과 기질 Creating Minds
문용린 감역, 임재서 역, 북스넛, 2004


1. 저자소개

하워드 가드너 Howard Gardner

한양대가 수여하는 명예박사학위를 받기 위해서 2007년 3월 그가 한국에 왔었다. 학위식 축사에서 그가 한 말 중에 인상에 남는 말이 있다. ‘학자로서의 삶에 있어서 경이로움은 앞으로 다른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게 될지 지금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배움에 대한 그의 학자다운 관심과 열정, 호기심이 잘 담긴 표현이다. 그가 몸담은 ‘프로젝트 제로’가 지금까지 성취해온 성과물들을 볼 때 그 역시 어느 면에서 그가 이 책에 묘사한 창조적 대가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우선 장인정신이 투철해 매일 작업실에 홀로 들어가 완성까지 몇 달 혹은 몇 년씩 걸리는 작품 제작에 몰두하는 거장들의 모습이 바로 그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그의 배움에 대한 호기심이 다음에는 어디로 튈지, 한 독자로서 궁금해진다.

하워드 가드너, 그는 현재 하버드 대학의 교육심리학과 교수이자 보스턴 의과대학 신경학과 교수, 다중지능이론(Multiple Intelligence)의 창시자이다. 저자의 교육심리 이론은 여러 나라에 도입되었다. 그의 이론에 근거한 연구소와 단체가 우리나라에도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다. 그 유명한 다중지능(Multiple Intelligence) 이론은 교육과 인간에 대한 철학적 개념을 바꾼 역작 <마음의 틀>을 통해 처음 제기되었다. 다중지능 이론은 그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미 많은 나라에서 그의 이론을 받아들여 기존의 교육 체계를 가드너 식으로 바꾸었다.

이 책 <열정과 기질>은 다중지능 이론이 세상에 나온 이래, 현대의 거장들에 초점을 맞추어 창조성의 조건이 가장 방대하고 심오하게 분석되었다는 점에서 저자의 그 동안의 연구의 최종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존 듀이 이후 최고의 교육학 이론가로 손꼽히는 가드너는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1981년에 맥아더 펠로우십(MacArthur Prize Fellowship)을, 1990년에는 미 교육 분야에서는 처음으로 그라베마이어상(Louisville's Grawemeyer Award)을, 2000년에는 구겐하임 펠로우십(Guggenheim Fellowship)을 받았다. 저자의 책으로는 <열정과 기질> 외에도 <체인징 마인드>, <마음의 틀>, <다중지능: 인간지능의 새로운 이해>, <비범성의 발견> 등이 있다.


이 책이 쓰여지기까지

이 책은 가드너 연구의 정점이자 출발점이다. 창조성이라는 현상과 개별 사례에 대한 평생동안의 관심을 하나로 모았다는 점에서 정점이며, 인간의 창조적 기질을 새로운 접근법으로 연구했다는 점에서 출발점이다. 그는 이 연구 방식에 인문학 전통과 사화과학적 전통을 잘 접목하였다. 학창시절부터 이런 책을 쓰고 싶었지만 사반세기를 에둘러서야 그 일이 현실이 되었다.

1950년대 펜실베니아 스크랜턴에서 1950년대를 보낸 그는 독서를 좋아하는 학구적인 소년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것이 역사와 전기물이었다. 특히 그의 가족의 출신지인 서유럽과 새로운 고향이 된 미국의 전기물과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에 들어갈 때만해도 심리학에 대해 들어본 적 없었던 그는 자연스럽게 역사를 전공하려고 했다. 그러나 에릭 에릭슨의 심리분석적인 역사와 전기물들을 읽었을 때 그는 지적인 고향을 찾은 기분이었다. 곧 전공을 인지 발달에 관한 심리학으로 결정하였다. 대학 졸업반 시절 스위스 심리학자 피아제의 저서를 읽으며 다시 한 번 감동에 싸인 그는 영국에서 연구생으로 지낼 동안 피아제에 본격적으로 빠졌다. 한편 여가시간을 투입해 현대사상과 현대 예술과도 더욱 친숙해질 기회를 만들었다. 대학원에 들어가서는 경험적 학문인 발달심리학의 연구방법을 터득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때 그가 오래 전부터 끌린 예술적 인식과 교육에 특별히 주목한 ‘프로젝트 제로(Project Zero)라는 새로운 연구 기획이 학교에 공포되었고 그는 전율했다. 프로젝트 제로 연구소는 그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프로젝트 제로 연구소의 후원을 받으며 25년 동안 뇌 손상으로 인한 인간 능력과 재능의 파괴, 일반 아동과 영재 아동의 발달 과정에 대해 연구했다. 그는 인간의 상징화 능력의 본질과, 예술적 창조의 핵심 관건이 되는 상징화 형식에 각별히 주목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연구소 동료들과 그가 천착한 주제는 '왜 어떤 아동들은 음악가나 시인, 혹은 화가로 자라나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예술가가 되지 못하는지 그리고 이런 저런 예술적 재능은 다양한 문화권에서 어떤 방식으로 개발되고 혹은 위축되는가' 하는 문제였다.

예술과 창조는 항상 비슷한 범주로 이해된다. 그래서 그런지 가드너는 프로젝트 제로가 하는 일로 창조성과 관계된 확회나 언론 인터뷰에 자주 초대되었다. 그러다 창조성 문제를 국외자 입장이 아닌 본격적인 연구자 입장에서 바라보게 된 두 계기가 생겼다. 첫 계기는 그의 연구가 자연스럽게 도출해낸 다중지능이 창조성 설명에 적지 않은 시사점을 지니고 있다는 데 대한 호기심이었다. 그는 지능이 다원적이라면 창조성 역시 다원적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분야 연구에 매료된 것이다. 두번째는 가드너 자신이 창조성 연구에 필요하게 여겨지는 인접학문들, 즉 발달심리학, 사회심리학 교육심리학 분야에서 훈련받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학자 그룹에 소속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중에서도 그는 칙센트미하이의 이론 공식에 기초하여 새로운 연구방법론을 발전시켰다.

우선 개인의 발달과정을 연구하고, 그런 다음 한 개인이 활동하는 특정분야, 혹은 특정 상징체계와 그 분야에서 새로운 업적을 평가하는 역할을 하는 기성 권위자 집단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렇게 해서 프로이트, 피카소가 차례로 연구, 비교되었다. 둘은 상이한 지능을 대표하였다. 프로이트는 언어와 논리 지능이 뛰어난 반면, 피카소는 공간 지능과 신체 지능이 우수했다. 그가 가장 궁금한 것은 ‘창조성이 어떻게 상이한 지능을 통해 발현되는가’ 하는 문제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로 다른 지능을 대표하는 몇 명의 인물을 비교하기로했다. 그리하여 인류 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인물을 선택해보기로 했다. 전문적 식견과 자료의 한계를 감안해 최종적으로 그는 ‘동일한 시대’의 일곱 명의 거장만을 다루는 것이 더욱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이 책을 쓰는 일은 가드너에게는 더 없이 소중한 일이었다. 오랫동안 그의 호기심을 자극한 예술(가)과 가까이 하면서, 그것을 분석하기 위해 자신과 동료들이 발전시킨 지적도구들을 마음껏 적용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그는 이후 연구자들이 타고 넘을 징검다리로서 창조적인 인물과 시대를 연구하는 기본 방법론과 분석틀을 갖추게 된 것이다. 그의 이런 노력을 통해 또 다른 새로운 탐구의 지평은 열릴 것이다.


프로젝트 제로(Project Zero)
하워드 가드너의 책임 하에 인간의 예술적이고 창조적인 능력의 발달 과정을 근본적으로 파헤쳐온 하버드 내의 연구소. 인간의 정신능력에 관한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인간의 창조적 기질에 관한 기본 틀을 제시하였다. 지능과 창조성, 리더십, 교육방법론, 두뇌개발에 관한 이 연구소의 30년 연구 성과들은 그의 책 총 18권과 수백 편의 학술 보고서를 통해 지속적으로 발표되었다.
저자 홈페이지 http://www.howardgardner.com

가드너의 다중이론
그의 평생의 작업들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있다면 그것은 다중지능이다. 그의 다중지능이론은 그의 책, < 다중지능: 인간지능의 새로운 이해:Frames of Mind: The Theory of Multiple Intelligences >에 잘 소개되어 있다. 이 책에는 다중지능이론의 핵심 메시지, 다중지능의 교육 방법, 창의성과 리더십을 중요시하는 미래 사회에서의 다중지능의 역할과 전망을 담고 있다. 그는 기존의 문화가 지능을 너무 좁게 해석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책명에서 알 수 있듯이 일반 지능과 같은 단일한 능력이 아니라 다수의 능력이 인간의 지능을 구성하고 있고, 그러한 능력들은 모두 동일한 중요성을 지닌다는 가정 하에 책을 썼다. 가드너는 있는 의미보다 넓은 시각에서 인간의 잠재적 능력을 탐구하였다. 가드너는 지능을 "문화 속에서 가치가 부여된 문제를 해결하거나 결과물을 창출하는 능력"(An intelligence is the ability to solve problems, or to create products, that are a valued within one or more cultural settings)으로 정의하였다. 전통적인 IQ 개념은 학교 내에서 특별한 가치가 부여된 지식이나 기능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만, 가드너의 정의는 이보다 훨씬 넓은 범위에 걸쳐있다. 문제를 해결하거나 결과물을 창출한다는 것은 하나의 실용적인 접근으로서 실제 상황에서 어떤 능력을 사용한다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가드너가 처음 제시한 인간의 지능은 음악적 지능(musical intelligence), 신체-운동적 지능(bodily-kinesthetic intelligence) 논리-수학적 지능(logical-mathematical intelligence), 언어적 지능(linguistic intelligence), 공간적 지능(spatial intelligence), 대인관계 지능(interpersonal intelligence), 그리고, 자기이해 지능(intrapersonal intelligence)이었다. 그리고, 아직은 초기 단계에 있는 다중지능 이론이기에, 그 이외에 있을 수 있는 다른 지능을 결코 배제하지는 않았다. 최근에는 여덟 번째 지능인 자연탐구지능(naturalist intelligence)을 새롭게 목록에 첨가하였고, 아홉 번째인 실존적 지능(existential intelligence)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아직 널리 인정되지는 않았다.

감역, 문용린
다중지능이론을 국내 최초로 소개한 서울대 교수. <지력혁명>을 써서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다소 어려운 가드너 교수의 이론을 우리의 실정에 맞게 예를 들어 쉽게 풀이했다. 교육부장관, 교육개혁위원회 상임위원 등을 역임하였고, 현재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도덕심리연구실을 이끌며 지능과 창조성에 대한 심도있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하워드 가드너 교수의 다중지능 이론에 대한 연구와 더불어 우리 실정에 맞춘 현장 중심의 창조성 및 지능 개발에 관한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지력혁명>, <나는 어떤 부모인가?> 등이 있고, 옮긴 책에는 <다중지능: 인간지능의 새로운 이해>, <비범성의 발견> 등이 있다.


2. 마음에 들어오는 글귀


21. ...답을 찾았지만 해답없는 인생을 살았을 뿐...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황홀하게 바라보겠지. 간 밤에 내린 첫 눈이 싸인 햐얀 정원을.- 체스와프 미워시의 시

31. 예술가란 불멸에 이르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망을 아주 기발한 방법으로 충족시키는 마술사와 같다. - 톰 스토파드의 '익살'의 레닌 대사

32. 앙드레 말로의 '벽이 없는 미술관'...

38. 나는 창조적인 혁신에는 아이다운 천진성과 어른의 원숙함이 결합해 있다고 생각한다. 20세기의 고유한 천재들은 어린 아이의 감수성을 체화하고 있었다.

43. 하나의 문화에서 다른 문화로 기꺼이 이주하는 것은 현대의 두드러진 현상이며, 이 책에서 다루는 창조적인 거장들 역시 다양한 문화에 흠뻑 젖는 것이 필요하고 매력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49. 헤겔적 사고방식의 핵심만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즉, 역사에는 고유한 추동력이 있어서 일정한 시대에는 특정한 시대정신과 주제가 전면에 나서고 시대가 바뀌면 다른시대 정신에게 자리를 내주는 식으로 역사가 나선형적(변증법적)으로 진행한다는 생각이다. 심지어 특정한 시대정신을 예측할 수도 있으며,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과거에 대응하는 방식에 따라 한 시대의 고유한 모습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60. 포드의 도전적인 시도 이후 수십 년 동안 심리학자들은 상당한 논쟁과 실험을 거친 후에 다음 세 가지 결론에 도전했다. 첫째가 창조성은 지능과 다르다는 점이다. 창조성과 지능은 서로 관련되어 있지만, 지능이 우수하지 않아도 창조성이 풍부한 사람이 있으며,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67. 창조적인 작가와 놀고 있는 아이가 하는 일은 똑같다. 창조적인 작가는 환상의 세계를 창조하고 이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즉, 작가의 환상세계에는 그의 감정이 충전돼 있다. 물론 그는 환상의 세계와 현실을 날카롭게 구별한다.

68. 스키너(B. F. Skinner)의 행동과학적 관점에서 말하면, 사람들이 창조 행위에 나서는 것은 이전에 보상을 받은 경험이 있거나 ‘긍정적인 강화’가 주어졌기 때문이다….사회심리학자 테레사 아마빌라(Teresa Amabile)는 일련의 탁월한 실험을 통해 ‘내재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의 중요성에 주목하도록 했다. 아마빌라는 고전적인 심리학의 설명과는 반대로, 사람들이 외적인 보상을 노릴 때보다 순수한 즐거움만으로 행동을 할 때 창조적인 해법을 발견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78. 실상 창조적인 인물이란 호기심 많던 어린 시절에 품었던 수많은 의문점과 문제의식, 그리고 주변 사물을 관찰하는 섬세한 감수성을 자신이 선택한 분야의 가장 선진적인 이해 방식과 ‘결혼’시키는 참으로 어려운 일을 해낸 사람이다.

84. 창조적인 인물은 끊임없이 창조성을 추구하며 지속적으로 창조적인 도약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조정한다….창조적인 행위는 특정한 문화에서 받아들여질 때에만 제대로 인식된다

108. 프로이트는 법학을 전공할 생각이었다가, 괴테의 <자연론>에 관한 강의를 듣고 마음을 바꿨다. 자연을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로 묘사한 세상 만물에 대한 이 위대한 송가(頌歌)는 프로이트가 의학을 공부하고 자연학도가 되는 데 촉매 역할을 했다.

108-9. '나(프로이트)는 탐욕이라해도 좋을 지적 욕구에 이끌렸다...김나지움을 졸업하고 의학 학위를 받을 때까지 8년 동안 지식의 세계에 흠뻑 젖었다. 그는 성경, 고대의 고전, 독일어나 영어로 출판된 셰익스피어 작품, 세르반테스, 몰리에르, 레싱, 괴테, 실러 등 다양하고 폭넓은 독서를 했다. 영어와 프랑스어를 익혔고, 세르반테를 원어로 읽기 위해 스페인어를 배웠다. 미술과 연극을 좋아해 자주 전시회나 극장에 들렀고, 자신이 본 작품을 날카롭게 비평했다.

117. 프로이트의 20대는 일종의 ‘심리사회적 유예기간(psychosocial moratorium)'이었다.

121. 어떤 원인이나 증상을 출발점으로 삼든, 종국적으로 우리가 만나는 것은 성적 체험이다. – 프로이트

129. 억압이라는 교의는 정신분석학 이론 전체가 서 있는 주춧돌이다. – 프로이트

130. 만약 억압이 프로이트 이론 체계의 중심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면, 꿈은 억압 과정을 이해하고 그 밖의 정신 생활(psychic life)에 접근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가 된다.

131. 신경증은 다양한 방어 기제에 의존한다. 방어 기제란 두려운 생각이나 정서적 불안을 야기할 만한 관념을 안전하게 처리하는 심리 기제이다.

137. 프로이트는 모든 꿈에는 모종의 소원이나 환상이 담겨 있다고 믿게 되었다. 꿈은 억압된 소원이 위장 실현되는 과정이며, 예전의 결심이나 근심 혹은 욕망을 마음속에서 지속적으로 처리하는 수단이다.

139. 나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환자는 나 자신이라네.

140. 해소되지 않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바로 성인 신경증의 뿌리이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여성의 경우는 ‘엘렉트라 콤플렉스’는 모든 인간의 무의식에 내재해 있는 것- 프로이트

144. 꿈의 동인(動因)은 무의식에서 생기며, 꿈에는 무의식적 소원이 잠복해 있다. 소원은 전의식으로 표출되고자 하는데, 낮에는 검열에 의해 왜곡되지만 저항이 약해지는 밤에는 다양한 위장과 타협형성(compromise formation)을 통해 꿈으로 분출된다.

148. <꿈의 해석> 초판본은 처음 2년 동안 겨우 351권이 팔렸을 뿐이다.

155. 고요한 확신이 내 마음에 들어차기 위해선 누군지 알 수 없는 사람의 목소리가 내게 응답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네. 그 목소리의 주인이 바로 자네라네. - 융에게 보내는 편지, 프로이트

171. 예술가의 천재성이란 의지로 되찾은 유년기이자, 이제는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는 어른의 육체적인 능력을 갖춘 유년기, 그리고 무의지적으로 축적된 경험의 총합에 질서를 부여하는, 분석적인 정신을 갖춘 유년기 –보들레르

171. 우리가 아는 물리학이란 세 살 무렵이면 알 필요가 있는 것 – 아인슈타인

171. 물리학자들은 인간 피터팬이다. 그들은 결코 어른이 되지 않으며 언제나 호기심을 갖고 있다. 세상 물정에 밝아지면, 호기심을 갖기에는 너무 많이, 지나치게 많이 알게 된다. – 라바이

194-5 나 같은 사람에게 발달의 전환점이란, 그저 덧없을 뿐인 개인적 관심사를 서서히 뒤로 하고 사물을 관념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관심을 집중한다는 사실에 있다.

196. 공상하는 재능이 실증적인 지식을 흡수하는 재능보다 나한테는 더 큰 의미가 있었다. -아인슈타인

197. 아인슈타인은 어떤 문제에 관해 사고할 때 항상 이 주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정식화해서 사고방식이나 교육 배경이 다른 사람들도 모두 이해할 수 있도록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필립 프랭크

230. 신은 우주를 가지고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아인슈타인-

236. 나는 신이 어떻게 우주를 창조했는지 알고 싶다. 이런저런 현상이나 이런저런 요소에 대한 각양각색의 견해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신의 생각이다. 나머지는 지엽적인 것이다. – 아인슈타인

237. 아인슈타인은 만약 북극곰으로 태어났더라도 여전히 아인슈타인이 되었을 것이다. – 비서 헬렌 뒤카스

252. 신동의 출현은 특정 분야에 대한 어떤 문화권의 관심과 지원 이외에도, 언제나 여러 요인들이 ‘우연히 맞아 떨어져야(co-incidence)’ 가능한 현상이다. 그러니까, ‘재능이 갖춰진’ 아이와 그 분야에 ‘우호적인 문화’뿐만 아니라, 풍부한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

254. 피카소는 다른 아이들이 abc를 쓸 때 그림을 그렸다. ……그림은 언제나 그가 말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피카소 친구 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 263. 그 나이 적에 이미 나는 라파엘로처럼 그릴 수 있었지만, 그 아이들처럼 그리는 법을 배우기까지는 평생이 걸렸습니다. – 피카소

256. (피카소는) 숫자를 수량을 나타내는 상징보다는 차라리 시각적 무늬로 여기고 싶어했다...그는 숫자를 의인화했고, 자기 만의 공상에 빠졌다.

262. 파블로가 아버지의 성 루이스(ruiz)를 버리고 어머니의 성 피카소로 세상에 알려지기를 선택했다는 것은 확실한 일이다.

265. 몇 번의 붗질로 모델의 정조와 성격, 심지어는 생각까지 포착하는 놀라운 솜씨...침묵할 때조차 타고난 지도자...

270. 아폴리네르와는 예술과 문학의 역사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서로에게 촉매 역할을 했다.

287. 그림은 자유다. 도약하면 밧줄을 놓쳐 추락할 지도 모른다….우리는 사람들을 일깨워야 한다. 그들이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미지를 창조해야 한다. – 피카소

307. ...화가란 결국 무엇이겠는가? 다른 사람의 소장품에서 본 그림을 그려서 자신의 소장품으로 만들고 싶은 수집가가 아니겠는가. 시작은 이렇게 하더라도 여기서 색다른 작품이 나오는 것이다. - 피카소

309. 관람자에게 아무런 감정상의 동요도 일으키지 못하고 관람자가 그저 대충 훑어보는 예술작품은 아무 의미가 없다….관람자가 비록 상상 속에서라도 어떤 반응을 보이고 스스로 창조에 대한 열망을 강렬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되어야 한다…관람자를 마비 증상에서 일깨워야 한다.-피카소

313. 완성된’ 작품이란 있을 수 없다. 한 작품의 상이한 상태가 있을 뿐이다....내 그림은 모두 탐구다. - 피카소

317. 그림이란 기본적으로 변하는 게 아니다. 외양은 어떨지 몰라도 처음의 구상은 그대로 남는다.

322. 예술가가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는가? 백치(白痴)이다. ……정치적인 존재이면서 동시에 심장을 뒤흔드는 정열적이거나 행복한 사건에 민감한 사람이다. ……그림은 집 따위를 꾸미는 수단이 아니다. 그림은 적을 공격하고 적의 공격을 방어하는 전쟁의 수단이다. – 피카소

334. 음악은 그 본질상 무언가를 표현하는 데는 무력하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자서전에서 가장 유명한 문장

336. 스트라빈스키의 정신은 천재 음악가와 대금업자로 거의 정확히 양분된 것 같다…1912년 11월의 어느 날 아침 그는 <봄의 제전>을 완성하고는 투자 재산에 관한 편지를 쓰는 일로 오후 시간을 보냈다.

350.불새의 성공은 스트라빈스키의 인생행로를 바꿔 놓았다...실로는 그는 하룻밤 사이에 러시아 작곡가의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알려졌다.

355. 공전의 성공을 거듭하는 가운데서 이례적인 실패를 맛보았다는 점은 꼭 알아두어야 할 중요한 사실이다. 아무리 창조성이 뛰어난 혁신가라 해도 길을 잘못 들어설 수가 있는 법이며, 이들은 본래부터 오류 따위는 범하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라 다만 그 실패를 딛고 재기하는 방식이 보통 예술가와는 다른 사람들이라는 점을 새삼 일깨우는 사실인 까닭이다.

372. 흥정이 격렬한 것은 짜낼 이익이 얼마 안되기 때문이다. –경구

374. 그는 법적 다툼을 즐기고 생애 내내 소송을 일삼는 버릇을 버리지 못했다.

381. 그는 음악사 전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겠다고 굳게 마음 먹었다. 당시 그가 매혹되고 영감을 받은 것은 무엇이든 때와 여건을 불문하고 활용하여 스트라빈스키 자신의 색깔이 담긴 새로운 작품으로 창조하기로 굳게 마음먹은 것이다. - 부쿠레슐리프

382. <풀치넬라>는 과거에서 발견한 것이다. 이 발견이 있었기에 나의 모든 후기 작품이 가능했던 것이다. 물론 처음으로 뒤를 돌아다보는 일이긴 했지만, 내 안을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했다. - 스트라빈스키

383 시간상으로 우리와 더 가까운 시기가 더 먼 시기보다 일시적으로는 우리와 더 많이 떨어져 있는 게 세상 이치다. – 스트라빈스키

384. 엘리엇과 내가 낡은 배를 수리하지 않았는가? 낡은 배를 수리하는 것이야말로 예술가의 진정한 임무다. 예술가는 이미 말해진 것을 그 자신의 방식으로 다시 말할 수 있을 뿐이다. - 스트라빈스키

388. 창조적인 음악가로서 나는 매일매일 짐을 풀 듯이 내 마음 속의 아이디어를 표출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나는 작곡가라는 운명을 타고났고 다른 것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작곡을 했다. ……나는 영감이라는 것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을 하다 보면 영감이 떠오르는 것이다. 물론 처음엔 잘 모를 수도 있다. – 스트라빈스키 (프로이트 역시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영감이 내게 오지 않으면, 나는 그것을 맞으러 마중나간다’ )

390. 나의 행동 반경을 좁힐수록, 그리고 내 주위에 장애물을 더 많이 쌓아둘수록, 나의 자유 역시 더욱 커지고 풍부해진다. 속박을 없애면 그만큼 내가 발휘할 힘도 줄어든다. 더 많은 제한을 부과할수록 우리는 영혼을 구속하는 사슬에서 더 자유로와진다. – 스트라빈스키 <음악의 시학>

437. 위대한 시인은 모두 요절했다. 소설은 중년의 예술이고, 에세이는 노년의 예술이다. - 소설가 마샤 데이븐포트

443. 완벽한 예술가일수록, 번민하는 자아와 창조하는 자아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미숙한 시인은 선배의 작품을 그저 모방만 할 뿐이지만 성숙한 시인은 그 핵심을 훔쳐내서 더욱 개성적이고 훌륭한 작품으로 빚어낸다 - 엘리엇

444. 시인은 어떤 종류의 경험도 소화할 수 있는 감수성을 지닌 존재이다. 시인의 마음은 무수한 감정과 말씨와 이미지 등을 붙잡아 저장해둘 수 있는 용기(容器)와 같다. 이러한 요소들이 무의식적이고 정리되지 않는 산만한 형태로 남아있다가, 서로 융합하여 새로운 화합물로 표현된다.

444. 비상한 감수성과 뛰어난 언어 구사력을 결합시킬 줄 아는 시인이 없다면, 우리가 날것 그대로의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뿐 아니라 그것을 느끼는 능력까지도 퇴화할 것이다.- 엘리엇

455. 경계인으로 살았던 엘리엇의 생애는 역설적이다…그는 어쩔 수 없이 경계인으로 살았던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런 길을 선택했다.

456. (파우스트적인 계약); 예술은 인간이 가진 것을 모두 포기하기를 요구한다. 가족도 버리고 오직 예술 만을 좇아야 한다고 요구한다. 예술은 인간이 어느 가족이나 계급, 당 혹은 동인의 일원이 아니라 그저 그 자신일 뿐이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 엘리엇

457. 경계인이란 오직 공동체를 전제하고서야 성립할 수 있는 존재이므로 …창조성이 매우 뛰어난 인물들은 어느 정도는 세계 전체에 속하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으로만 홀로 남겨져 있다고 할 수 잇다. 그리고 이렇게 양극을 오가는 모습이야말로 창조자의 생애에 긍정적인 비동시성과 부정적인 비동시성을 동시에 가능케 한 요인일 것이다.

462. 피카소와 세잔, 스트라빈스키와 드뷔시, 엘리엇과 라포르그 사이에는 연속성이 개재한다. 이들 혁신가들 사이에는 인상적인 유사점이 있다. 파편적인 요소와 형태 자체에 대한 관심, 일상의 세속적인 삶에서 겪는 긴장, 원시에의 동경, 과거의 무거운 주제, 세속의 사소한 일들과 고상한 전체 주제 사이를 왕복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468. 이사도라의 성공요인은 제자나 ‘양녀’들에게 전수해 줄 수 있는 기술이 아니라, 주로 그녀의 카리스마 넘치는 태도와 ‘몸의 본능적인 움직임’에 있었다…“이사도라는 무대에 널린 쓰레기를 모두 청소했다. 그녀는 거대한 빗자루였다. 그녀로 인해 비로소 무대가 깨끗하게 청소된 것이었다.” – 평론가, 애그니스 드 밀

472. 로스 세인트 데니스의 공연을 보고- " 그 순간, 내 운명은 결정되었다. 나는 여신처럼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을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480. (1920년대 후반-30년대초반) ...모든 것을 잃을 걸 각오하고 새로운 것을 각오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했고, 각자가 우리의 모든 전통을 바다에 내던진 지 오래였다 - 애그니스 드 밀

474. 나는 정상에 오를 것이다. 누구도 아무 것도 나를 막지 못한다. 그리고 나 홀로 그 길을 갈 것이다. – 그레이엄

488. '젊은 예술가에게는 타고 넘을 담쟁이 벽이 필요한 법이오, 나를 그 벽으로 생각하시오" - 호스트가 그레이엄에게

502. 그녀는 언제나 위험을 감수할 태세가 되어있었고, 가끔은 신랄한 비판에 의욕이 꺾이기는 했어도 다시 도전할 용기를 잃은 적은 없었다.

522. 나는 무용을 내 삶에서 분리시킨 적이 없다...나는 이해받기를 원한다. 사람들이 나를 느끼기를 원한다.

523. 모든 것이 그녀의 시적, 신체적 상상력이라는 제분소에서 빻아지는 낟알이 되었다.

523. ‘나는 도둑이다. 하지만 부끄럽지 않다. 플라톤, 피카소, 베르트람로스, 누구라도 최고의 인물에게서 생각을 훔친다. 나는 도둑이고 이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나는 내가 훔친 것의 진가를 잘 알고 있고, 늘 소중히 간직한다. 물론 나만의 재산이 아니라 내가 물려줄 유산으로 여긴다’.

524. 나는 무용가가 되기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 나는 무용가로 선택된 것이다. – 그레이엄

526. 누구나 실패할 권리는 있다. 실패했더라도 더 높이 올라가고자 하는 용기만 있다면 실패를 발판으로 새로운 단계로 오를 수 있다. ……한 가지 대죄가 있다면 그건 범용(mediocrity)이다. 이게 내 믿음이다. - 그레이엄

530. 무용가의 도구는 탄생과 죽음의 운명에 매여있는 그의 육체이다. 그가 사멸하면 그의 예술도 사멸한다.

544.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지성의 발달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마음의 성장에는 그런 한계가 없다." - 간디

549. 별다른 특징이 없이 평범하고 결점이 많고 허둥대던 변호사로 1891년 런던을 떠난 간디와, 수백만의 위대한(마하트마) 지도자' 사이에는 거의 닮은 점이 없다 - 루이스 피셔, 전기작가

557. 1910년에 그는 요하네스버그에서 20마일 정도 떨어진 개간지에서 1,100에이커의 톨스토이 농장을 세웠다.

560. 간디와 같은 정치적 창조자들에게는 창조적인 작업의 핵심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개인적인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보다 넓은 목적을 위해 움직이도록 추동하는 능력에 있다.

563. 나는 영국법을 어겨야 했다. 내가 복종하는 것은 그보다 더 높은 법, 내 양심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 간디

575. 에릭슨이 그의 간디 연구에서 강조한 것처럼, 종교적인 혁신가란 자신의 개인적인 난국을 해결하기 위해 제시한 해답이 궁극적으로는 보다 넓은 공동체의 난국을 해결하는 데도 효과가 있는 그런 사람을 말한다.

578. 폭력을 사용해서 정부가 법안을 폐기하도록 강제한다면, 나는 몸의 힘을 사용하는 셈이다. 법에 복종하지 않고 그 대가로 주어지는 처벌을 달게 받는다면, 나는 영혼의 힘을 사용하는 것이다. 여기엔 자아의 희생이 수반된다.– 간디

584. 간디가 가난하게 사는데는 아주 많은 돈이 필요했다 - 무명인

595. 힘센 정부에 맞서 소금 한 줌을 집어들고 범죄자가 되는 것은 약간의 소맨쉽을 필요로했다. - 간디

600. 자유는 여러분의 생득권(生得權)이듯 우리의 생득권입니다…자유를 얻는 데 희생이 필요하다면 우리는 갠지스 강을 피로 물들인다 해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 간디

607. 사티아그라하의 유산은 오늘날 인도에 거의 남아있지 않다. 인도는 호전적인 점에서는 이웃 파키스탄이나 다른 나라들과 별다른 차이가 없고, 다양한 인종 및 종교세력 간의 알력은 20세기 초반이나 다름없이 그치질 않고, 폭력적인 양상을 띠었다.

610. 나의 전문 분야는 행동이다.- 간디

613. 실제로 간디가 사망하자 그가 평생을 바쳐 헌신한 운동이 순식간에 시들어버렸다.

633. 남들은 도착이라 할지 모르나 나는 내 작품을 미친 듯이 사랑한다. 마치 고행자가 배를 할퀴는 마모직 셔츠(hairshirts)를 사랑하듯이 말이다.-플로베르

638. 프로이트의 「프로젝트」와 아이슈타인의 특수 상대성이론,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엘리엇의 『황무지』, 그레이엄의 「프론티어」, 간디의 아메다바드 파업을 결정적인 도약으로 간주한다….프로이트의 『꿈의 해석』(혹은 『토템과 터부』), 아이슈타인의 일반 상대성이론, 피카소의 「게르니카」, 스트라빈스키의 「결혼」, 엘리엇의 「4개의 사중주」, 그레이엄의 「애팔래치아의 봄」, 간디의 소금행진 등이 두 번째로 정점에 오른 도약이라 할 수 있다.

675. 새로운 세기의 시작이란, 기회의 시간이자 과거의 짐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뜻에 따라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시간이며 표면 아래에 꿈틀거리고 있는 긴장과 불확실성을 표현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677. 현대성이란 파편화된 삶이며 시간의 급속한 변화이고 조각난 경험이다.–보들레르

678. 현대 예술은 끊임없는 변화라는 맥락에서 탄생한다. 그것은 전통을 송두리째 거부하고 비평가 해럴드 로젠버그(Harold Rosenberg)의 말대로 ‘새로움의 전통’을 창조하려는 단호한 노력이다.

682. 모든 창조적인 도약에는 겉보기엔 전혀 이질적인 두 영역의 결합이 있다. 하나는 관련 분야에 대한 철저하고 조숙한 통달이고, 다른 하나는 유년기의 의식과 관련된 이해 방식과 직관이다. 창조적인 도약은 이런 두 영역의 성공적인 결합에 있으며, 이런 결합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도 그 도약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683. 현대의 거장들은 각기 독특한 방식으로 아이다운 천진성과 자기 분야의 가장 선진적인 사고방식을 결합할 수 있었다.

685. 보들레르가 말한 대로 천재란 유년기를 다시 찾을 수 있는 능력일 것이다.

691. 인간이란 어쩌면 개방적이고 관용적인 방향, 장르 혼융의 방향으로 무한정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혁신과 전통, 모더니즘과 역사주의, 창조적인 도약의 시기와 인간의 파괴로 이어질 수 있는 정체 혹은 퇴행적인 시기를 시계추처럼 왕복하는 운명일지도 모른다.

694. 창조성은 단지 한 개인의 탁월한 재능만으로 실현되거나 발휘될 수는 없고, '오직 재능이 갖춰진 아이와 그 분야에 우호적인 문화, 그리고 풍부한 사회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695. 꿈을 잃어버린 사람은 소처럼 그때그때의 먹을 풀을 위하여 살아간다 – 프루스트



3.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은 깊고 넓고 방대하다
이 책의 저자 가드너는 인간 지능에 관해 평생을 연구해온 학자다. 이 책은 가드너의 최종연구의 성과인 다중지능이라는 정신능력의 이론체계를 바탕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깊고, 창조성과 관련된 실제 개인들의 심리적, 사회적, 시대적 조건을 모두 다룬다는 점에서 넓다. 또한 영역이 서로 다른 창조적 거장 7명을 한꺼번에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방대한 작업이다.

이 책은 전기가 아니다
이 책은 인간의 심리적 기질과 그가 처한 주변환경, 그리고 시대적 특성을 곁들여 창조성의본질을 조명해내려는 한 사회심리학자의 과학적이고 분석적인 시도이다. 대상 인물의 관념체계에 주목하고 인지과학에서 빌려온 개념과 모델을 이용하여 대상 인물에게만 해당되지 않는 일반적인 원리를 발견하려는 것이 목표이다. 각 거장들의 삶의 궤적이 비교적 상세하고 흥미롭게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일견 전기로 보이지만, 위와 같이 분명한 학술적 의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문학 전통의 일반 전기물과는 완전히 구별된다.

이 책의 목표와 연구방법론

가드너는 이 책의 목표를 두 가지로 삼았다. 하나는 창조성의 본질을 밝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창조적인 인물을 가능하게 한 현대사회(modern era) 라는 시대적 특성을 살펴보는 것이다. 그러나 창조성이라는 추상적인 성질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일은 난제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창조성은 분석을 초월해 있다’는 말의 금기를 깨고 그간의 인접 학문 간의 축적된 성과들을 바탕으로 방대한 연구에 착수한다. 먼저 창조성 연구처럼 어렵고 복잡한 연구 영역에서는 개념상의 중요한 진전을 이루기가 쉽지 않다. 그리하여 가드너는 칙센트미하이의 제안에 근거, 질문을 바꾼다. ‘창조성이란 무엇인가’에서 ‘창조성은 어디에 있는가’, 즉 창조성이란 단어의 정의로 불필요하게 힘을 빼는 대신 창조성을 현실적으로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세 요소의 변증법적 상호작용에 주목하는 것이다. 3 요소는 1)재능있는 개인, 2)그 개인이 활약한 분야나 학문영역, 3) 개인과 업적을 판단하는 장(場:타인들)이다.

재능을 가진 개인은 그 분야의 기존의 관습을 해체시킬 만한 작품(일)을 만들어내고, 주변 인물들의 격려와 성원을 받아 창조적 거장의 위치에까지 오른다. 그 과정에서 창조자들은 그들의 특출한 재능과는 동떨어진 사회적 평가나 경험(비동시성)을 하기도 하고, 자신의 원만한 삶을 비롯한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자신의 일에 매진하기 위해 파우스트적인 거래를 하기도 한다.

이런 창조적 활동의 역동성을 연구하는 배경에는 인물 개인을 상세히 조망하는 하워드 그루버의 개별 사례연구 방법론과, 개인의 계량적인 자료들에 기반하는 딘 키스 사이먼튼의 역사계량학이 버티고 있다. 이들의 탐구방법은 최근 창조성 연구에 있어 가장 흥미로운 성과들을 제시해왔다. 가드너의 연구방법은 그루버의 진화론적 체계의 연구법(이 쪽에 더 가깝지만)과 역사계량학파의 연구법 사이에 위치한다. 달리 말하면 이 책은 개별 사례 연구에서 발견한 사항들을 계량화(일반화)해서 다양한 분야의 창조성을 해명하고자 하는 첫걸음이라고 보면 된다. 가드너가 복잡하게 앞과 뒤에 150 페이지 이상을 할애해 설명하고 있는 연구 방법론이라는 것을 요약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개별인물을 어떻게 선정하느냐, 그 대표성의 문제와, 얼마나 양질의 다양한 자료들을 구비하여 유의미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느냐가 이 연구의 성패를 좌우한다.

왜 7명의 창조적 거장인가
가드너는 이 글을 시작하며 톰 스토파드의 희극 <익살>을 언급한다. 대전쟁을 피해 취리히에 모인 아일랜드 작가 제임스 조이스와 러시아 혁명가 레닌, 다다이즘을 유행시킨 러시아 예술가 트리스탄 차라가 모여 현대라는 주제를 놓고 벌이는 담론은 20세기를 달군 논쟁을 상징한다. 이 희극을 떠올리며 가드너는 시대적 배경을 1914년에서 1918년으로 옮겨 놓고 <익살>을 확장하여 무대에 올릴 만한 인물을 고른다면 누굴 고를까 고민한다. 결론은 비교가 가능하면서도 이 시대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친 역사적인 인물을 고르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선택된 것이20세기의 기라성 같은 창조적 거장 7명이다. 인간의 마음 깊이 잠복해 있는 성적이고 공격적인 무의식의 동기와 충동을 밝힌 프로이트, 영원한 아이의 감성으로 베일 속의 근원적인 과학 법칙을 찾아낸 아인슈타인, 현실의 충실한 재현 기법을 해체하고 추상 미술의 토대를 마련해준 피카소, 기존의 단순한 리듬법을 벗고 격렬하고 충격적이며 복합적인 리듬을 창조한 스트라빈스키, 무용에 혁명적인 포맷을 도입한 마사 그레이엄, 폭력이 난무하던 시절 비폭력이라는 당시로서는 선뜻 수용하기 힘든 저항 형식을 주창한 간디가 그들이다.

왜 동시대인들인가
원래 가드너의 관심은 인간 지능이 전반적으로 고루 발달한 사람들을 연구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충분한 자료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위인들(공자, 모세, 바흐, 아퀴나스 등)의 자료에는 창조성을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는 것들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자료 접근이 유리한 현대 인물 7명을 골랐다. 더구나 이들이 존재했던 역사적 시기는 현대, 1900년을 전후한 시기였다. 이 시기는 기존의 패러다임을 바꿀 창조성에 대한 우호적인 사회적, 문화적 여건이 존재하던 시기다. 전세계의 문화와 정치의 중심이었던 당시 유럽 사회는 전에 없던 격동의 소용돌이에 휩싸이면서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이를 대체할 만한 새로운 규범을 간절히 원하던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저자는 이런 시기에 출현한 창조적 인물과 그들이 활약한 분야는 다양한 후보집단의 대표성을 가지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아인슈타인과 프로이트는 과학자로서 논리/수학 지능과 인성 지능이 우수한 사람들이고 피카소는 시각/공간 지능이, 스트라빈스키는 음악 지능이, 엘리엇은 언어 지능이, 그레이엄은 신체/운동 지능이 출중한 자였다. 그리고 이들의 창조적 업적을 뒷받침하는 토대를 이해하면 이들이 속한 ‘현대’라는 시대를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왜 7명을 3 범주로 나누었는가
가드너는 3 범주, 즉 과학(프로이트와 아인슈타인), 예술(피카소, 스트라빈스키, 엘리엇), 그리고 세상의 무대 활동가(그레이엄, 간디)로 나누어 유사점과 차이점을 일반화하기 좋도록, 종사하는 일의 성격으로 창조자들을 분류하였다.그레이엄은 예술가라는 점에서 두번 째 분류에 들어가야 마땅하지만 그가 일하는 장소가 작업실이 아니고 관객들의 즉각적인 반응과 긴밀히 엮인 무대라는 점에서 간디의 창조활동과 연관해서 살펴보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전문적인 주제를 다루는, 750여 페이지에 달하는 만만치 않은 분량의 학술서인 이 책은 가드너 본인 자신이 '내 자신이 읽고 싶어하는 스타일의 책을 쓰고자 노력했다’고 말한 만큼 전문 용어는 되도록 쓰지 않고 가급적 평이한 문체로 글을 전개한 덕분에 읽는 게 그다지 힘들진 않다. 다만 제1부와 제3부, 에필로그, 거기에 중간에 삽입된 3개의 간주곡(해설)까지, 약 170 페이지에 달하는 창조성 연구 방법론과 분석 후기, 현대와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마치 학술 논문처럼 장황하다. 만약 미리 책에 대한 정보를 얻을 목적으로 이 부분을 일부러 읽는 독자라면 지치지 않도록 단단히 무장할 필요가 있다. 읽기도 어렵지만, 읽은 내용을 숙지하는 건 더 어렵다. 사실 교육학 전공자가 아니라면 저자의 의도를 이해하기 위해 그 많은 설명을 꼼꼼히 다 읽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본문을 읽어나가다 저자의 의도가 모호해지면 그때 돌아와 헤아려 보아도 된다. 저자는 자신의 연구과정을 필요 이상으로, 혹은 어떤 의무감을 가지고 가능한 한 자세히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학술적인 의도를 가지고 읽는 것이 아니라면 2부부터 읽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중간에 삽입된 간단한 설명(간주곡1,2,3)만으로도 저자의 의도는 충분히 헤아릴 수 있다.

이 책은 매력있다

이 책이 채택한 개인사례연구와 계량학적인 분석 방법에서는 뭐니뭐니해도 많은 자료가 관건이다. 가드너는 오랫동안 이 방면에 업적을 쌓아왔다. 누구보다 창조적 거장들의 창조성과 관련된 자료를 많이 확보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그의 의도 따위는 잊고 그냥 흥미로운 전기를 읽는다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그는 7명 거장들 개개인을 비교적 잘 살려 놓았다. 그의 붓놀림은 전형적인 사회과학자의 그것과는 다르다. 글을 풀어가는 솜씨가 보통은 넘는다. 오랫동안 문학과 역사에 관심을 가져온 사람의 필향이 간혹 느껴진다. 그렇다고 의도를 완전히 벗어나는 법도 없다. 다만 그것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가끔 분석 의도와는 상관없어 보이는 이야기도 많이 보인다. 그런 경우는 십중팔구 애써 조사한 좋은 내용을 다 쳐내기 아까운 경우일 것이다.

그가 얼마나 세세히 조사했는지도 알 수 있다. 조사한대로 책을 만들었다면 이 책 분량의 3배가 넘었을 것(18)이라는 그의 말에 공감이 간다. 짧은 지면에도 불구하고 거장들 개개인의 전기가 비교적 소상하다. 책 하나를 쓰기 위해 얼마나 방대한 연구가 필요했을까 짐작이 간다.

장 간의 내용을 연관시켜주는 것도 좋다. ‘스트라빈스키의 청각적 경험은 나침반에 흥미를 느낀 아이슈타인의 기질이나, 시각과 촉각에 민감했던 엘리엇의 감수성과 유비 관계를 이룬다(339)’ ‘한결 같은 경계인답게 엘리엇은 젊은 시절의 프로이트나 아인슈타인 혹은 피카소가 지닌 대단한 자신감이 별로 없었다(420)’.

시각적인 균형을 잡는 노력도 가상하다. ‘내가 피카소의 부정적인 측면을 언급하는 목적은 그의 미덕을 부인하거나 그가 이룩한 탁월한 성과를 간과하려는 데 있지 않다. 우리는 결국 인간으로서 평가받아야 하지만, 예술가의 업적을 그들의 인간적인 약점으로 판단해서는 안된다(330)’.

행간의 유머와 재치도 놓칠 수 없다. ‘사실 나는 이 책에서 다루는 모든 인물들에 대해 모두 알고 싶지만 굳이 고른다면 스트라빈스키의 만찬에 참가하면 가장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386)’.

인간의 이중성을 비판하지 않는 상대적인 그의 눈도 초롱하다. ‘피카소는 누구든 작품에 방해가 되면 희생시키겠다는 일념이 강했다. 가끔은 그런 행동에 죄책감을 느꼈지만 그것은 작품을 완성하려는 더 큰 열정에 흡수되었다.’(331)


이 책을 읽고 나서

7명 거장들의 스토리는 그 자체로 흥미있었다. 프로이트, 아인슈타인, 엘리엇, 간디, 피카소, 그레이엄, 스트라빈스키. 이미 우리 생활 속에 깊숙히 들어와 있는 친숙한 이름들이지만 언제 우리가 그들의 전기를 제대로 읽어본 적이 있었던가. 그래서 이런 기회는 반가운 법이다. 이 책처럼, 일정의 학문적 목적을 가진 책에서 재미를 기대한다는 건 보통 무리다. 그런데 이 책은 무리 없이 잘 읽혔다. 어려서부터 역사와 문학, 전기물에 익숙한 저자의 글쓰기 능력과, 독자들을 감안하여 쉽게 쓰려고 노력한 저자의 배려가 잘 읽히는 글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발표 논문도 아니고,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한 책에서 연구에 적용한 방법론을 그렇게 장황하게 늘어놓을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 간다. 그 방법론이란 걸 꽤 장시간 숙독하고 본문을 읽었지만 본문 속에서는 정작 ‘창조성이 발현되는 역동적인 메커니즘’에 대한 생각은 놓쳐버렸다.

홍보하는 것과 달리 이 책이 그다지 대단한 책이란 걸 인정할 수 없어 유감이다. 책에 소개된 방법론을 보고 '인간들의 강박'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학문이든 ‘과학’이라는 이름을 달아서(사회과학, 종교과학, 심지어는 인문과학…) 어떤 현상이든 눈에 보이는 결과물로 계량해내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인간들의 끈질긴 강박… 물론 그런 그들의 노력 때문에 신의 영역에 속한다고 치부된 많은 것들이 인간의 손 바닥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다중지능이라는 획기적인 개념도 그런 노력의 성과다. 그러나 거창한 방법론과 방대한 연구에 비해 그가 주창하는 바는 결코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지 못한다.

방법론에 대해 시비하는 것은 사회과학자로서 그의 존재를 뒤흔드는 짓이니 일단 함구하겠다. 그러나 그렇게 찾아진 창조성 유형이란 것도 유사한 영역에서 일하는 예술가들마저 개인 간 차이가 심하니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일반화하려는 의도가 강하면 강할수록 논리의 비약은 심해지고 무리가 생길 것이 뻔하다. 연구를 통해 새롭게 알게된 두 사실-정서적/인지적 지지와, 파우스트 거래-이라는 것도 정말 특별할 게 없다. 10년 주기론이라는 것도 매우 식상하다. 그가 7명을 3 범주로 분류한 방식 역시 그다지 의미있어 보이진 않는다. 용어를 정의하고 범주를 구분하는 방식에 따라 인물들은 얼마든지 다르게 분류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7명의 대표성에 대해서도 그 합리성을 지지해주기가 쉽지 않다. 아무리 합당함을 주장해도 그의 변론은 여전히 궁색하다. 집중한 대상의 ‘시기’ 역시 논란을 피할 수 없다. 개인별로도 일반화하기 힘든 창조성은 시대별로 일반화하기는 더 어렵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진정으로 연구의 목표가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는 데 있다. 방법론(방법론 속의 방법론, 스스로도 명쾌한지 묻고 싶다)이 정교할수록 실제 연구의 범위는 넓고 모호하다. 칙센트미하이의 제안에 따라 (3요소를 중심으로) 창조성의 역학에 대해 파악해 보겠다고 하면서도 그가 그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은 그다지 들지 않는다. 내놓은 결론까지 너무 진부하다. 거기에 그는 시대(현대)를 조망하고픈 욕심까지 하나를 더 보탰다. 잘못하다가는 사회 과학과 인지 과학의 통찰로도 모자라 지성사와 문화사의 업적까지 빌어와야 하는 더욱 방대하고 복잡한 연구가 될지 모른다. 모름지기 ‘논쟁을 이끌어낼 수 있을 만한 논의 구조를 세우는 정도’가 이 연구의 바램(621)이라는 그의 말을 믿고 싶다.

에필로그에서 다루는 현대 이후 포스트 모던 시대에 대한 고찰은 유익했다.


나라면 이렇게 하겠다

1. 이 책의 성격을 분명히 하겠다 - 학술서나 대중서냐, 그 경계에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는 저자의 욕심이 한 마리도 제대로 잡지 못하게 했다. 나라면 대중서로 가겠다. 감각적인 표현들을 대폭 강화하고 학술적인 냄새는 확 빼겠다. 저자가 원하는 곳에 독자가 이르게 하려면 인문적인 향취도 더 강화해야 한다. 가드너라면 역량은 충분하다. 아카데믹한 방법론을 늘어놓으며 '나는 이렇게 연구했고 이런 결과를 얻었다'고 미주알 고주알 떠벌리는 건 독자를 십리 밖으로 쫓아내는 일이다. 있던 정도 떨어진다.

2. "창조성"에 대한 나만의 정의를 분명히 내리겠다 - 적어도 이 책이 '창조성'에 관한 연구라면 '창조성'에 대한 작가의 정의가 분명해야 한다. 별다른 정의 없이 '이미 전제하고' 논의를 이끌고 가는 저자의 방식 때문에 '창조성'에 대해 독자는 명확한 개념 없이 길을 나서고, 그러다 보니 그의 의도에 보조를 맞출 수가 없다. 긴 책을 다 끝내고도, '그래서 뭐가 어쨌다는 건데?'하는 반응만 남을 뿐이다. 당연한 결과로, 독자는 이 책에서 창조성에 관한 눈이 번쩍 뜨이는 각성이나 통찰을 얻기 힘들다.

3.방법론에 관한 내용을 분리하겠다 -책을 시작하기도 전에 방법론으로 가득 채은 이 책의 기획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대중들이 읽어주길 바라고 출판하는 책이라면 대중에 대한 배려가 먼저 있어야 한다. 학술적으로 대단히 의미있는 작업이라서 연구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면 책을 학술서와 대중서로 분리 출판하거나, 아니면, 책 뒤에 방법론을 부록 형태로, 내용을 압축해서 실으면 좋겠다. 책 중간에 끼워 넣은 '간주곡'도 사족이다. 방향을 잡아주겠다는 의도는 고맙지만 학구적인 냄새가 나는 분석 노트는 독서의 흐름만 깰 뿐이다.

4. 제목과 내용의 문제 - 제목 '열정과 기질'이 좋아서 이 책에 관심을 갖는 독자가 상당하리라 본다. 나 역시 제목에 먼저 끌렸다. 그런데 이 책의 원제는 '창조적 마인드'(Creating Minds)다. 이 책은 가드너의 평생 연구가 녹아있는 대단히 훌륭한 책이다. 그런 그의 업적을 단순히 마케팅 차원에서 잘못된 제목으로 왜곡하는 게 나로서는 반갑지 않다. 그럼에도 한 가지, 독자들에게 선입견을 갖게 하는 이런 제목에도 불구하고, 호감가는 이 한국어 제목에 걸맞는 창조성 책 하나쯤 쓴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창조성의 조건들을 굳이 일반화하려는 노력이나 위험없이 사례 중심으로, 누구나 즐겁게 읽고 감동할 수 있는 그런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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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건진 것들


창조적 거장들에게서 배운다

1. 지적 욕구가 강하다
1) 프로이트
프로이트는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의학 학위를 받을 때까지 8년 동안 지식의 세계에 흠뻑 젖었다. 젊은 날 캠벨의 지적 여행과 그의 궤적은 너무나 유사하다. 그 역시 캠벨에 필적할 만한 지적 욕구를 가진 청년이었던 것. 성경, 고대의 고전, 독일어나 영어로 출판된 셰익스피어 작품, 세르반테스, 몰리에르, 레싱, 괴테, 실러 등 다양하고 폭넓은 독서를 했다. 영어와 프랑스어를 익혔고, 세르반테를 원어로 읽기 위해 스페인어를 배웠다. 미술과 연극을 좋아해서 자주 전시회나 극장에 들렀고, 자신이 본 작품을 날카롭게 비평했다.
2) 피카소
피카소의 창작열은 그 누구도 따라오는 걸 불허할 정로로 뜨겁고 지속력이 강했다. 그가 얼마나 작품에 몰두했는지 그의 노트를 보면 알 수 있다. 일례로 입체주의 양식을 고무한 그의 기념비적 작품인 <아비뇽의 처녀들>의 스케치 노트 8권이 최근 발견되었다. 그는 아비뇽이라는 걸작을 얻기 위해 수많은 시도와 실험을 감수한 것이다. 그는 그의 드로잉 노트의 첫 전시의 제목을 ‘나는 노트이다(Je suis un cahier)’로 잡았다. 이는 상징하는 바가 크다. 프로이트의 <프로젝트> 초고나, 엘리엇의 <황무지> 초고 작업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무수한 수정작업을 거치며 그들은 상징과 지능의 광맥을 채굴하여 풍부한 의미망을 만들고 궁극적으로는 ‘독특한 예술적 업적을 응축해낸 것’이다(277).
3) 스트라빈스키
스트라빈스키는 정규교육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평생 스스로 배워 익히는 방식을 좋아해서 혼자 책을 통해 배웠다. 아버지 뜻대로 법대에 갔지만 음악을 천직으로 삼아야겠다고 결심하고 독학으로 음악을 익혔다. 디아길페르가 그의 <불꽃> 연주회에 와준 것을 계기로 하루 아침에 인생이 바뀐 스트라빈스키의 행운은 준비한 자에게 찾아온 필연의 행운이었다. 그는 발레뤼스와의 공동작업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되었어도 성실한 작곡가로서의 임무는 언제나 잊지 않았다. 과거의 고전음악을 재발견하고 이를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재창조하는 동안에도, 언제나 그랬듯이 그에게는 그 자신이 최고의 스승이었다. 그는 오랜 세월에 걸쳐 하루 적어도 10시간 동안 일했다(387). 오전에 일어나면 먼저 바흐의 푸가를 연주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이후 4시간 작곡에 몰두하고, 오후에는 관현악편곡과 기악편곡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는 말한다. ‘나는 매일매일 짐을 풀듯이 내 안의 아이디어를 풀어놓아야 직성이 풀렸다. 나는 영감이란 것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을 하다 보면 영감이 떠오르는 것이다.’ 프로이트도 말한다. ‘영감이 내게 오지 않는다면 내가 마중을 나가겠다’. 피카소 역시 하루에 한 점 이상씩 쉬지 않고 그렸다. 휴가 중에는 오히려 더 강한 창작열을 보였다. 일례로 1906년 올리비에와 피레네 산골마을 고솔에서 머무는 10주 동안, 그는200점에 가까운 작품을 그렸다.
4) 그레이엄
그레이엄 역시 학습에 대단한 정열을 보였다. 그는 당당히 밝힌다. ‘나는 도둑이다. 하지만 부끄럽지 않다. 플라톤, 피카소, 베르트람로스, 누구라도 최고의 인물에게서 생각을 훔친다. 나는 도둑이고 이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나는 내가 훔친 것의 진가를 잘 알고 있고, 늘 소중히 간직한다. 물론 나만의 재산이 아니라 내가 물려줄 유산으로 여긴다’(523). 그는 늦은 밤까지 몰입하며 자신의 무용을 생각하고 구상하고 다듬었다. 그리고 침대에 작은 탁자를 올려놓고 밤새워 읽고 썼다. 그 모든 것이 그의 시적, 신체적 상상력이라는 제분소에서 낟알처럼 빻아져 새 작품이 되었다
5) 간디
간디는 결코 뛰어난 사람이 아니었다. 평범한 학생이었고, 대학입학시험에도 간신히 합격한 학생이었다. 그러나 그가 영국 행을 결심하고 그곳에 정착한 이후에는 엄청난 독서와 풍부한 산 체험을 자기 것으로 소화했다. 처음에는 롤 모델이 없어서 스스로 공부하며 배움의 능력을 향상시켰다. 그는 매우 규칙적인 생활을 했으며 시간을 분 단위로 지켰다. 자신이 관장하는 활동에 대해서도 모든 것을 신중하게 기록하였다(555).

2. 과거로부터 배우고 재창조한다
피카소와 스트라빈스키는 과거와의 대화를 지속한다는 것은 거장들이 오랫동안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였다.(383) 그들은 과거로부터 배우고 과거를 재창조함으로써 자신의 목소리를 한층 강화할 수 있었다. 엘리엇은 ‘황무지’를 창작할 때 다른 시대의 소재를 적재적소에 활용하였다. 스트라빈스키는 ‘낡은 배를 수리하는 것이야말로 예술가의 진정한 임무’라고 말한다. 예술가는 어떤 의미에서 이미 말해진 것을 자신의 방식으로 다시 말하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3. 가차없는 도전의지, 포기란 없다
창조적 거장들은 현실에 부적절한 면이 있음을 발견하면, 오직 근본적인 방향전환을 통해서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 때 창조자들은 용기를 발휘해야 하는데 혼자서라도 관습적인 체계를 모두 뜯어고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경험한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아무런 보상도 없는 반복적인 실패도 꿋꿋하게 버텨낸다. 그레이엄은 말한다. ‘누구나 실패할 권리는 있다. 가장 큰 죄가 있다면 그건 범용(mediocrity)이다.’ 결국 창조자들은 자신들의 작품(일)을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평가할 수 있는 장(場)에 내놓고 평가를 받게 된다. 그런데 대체로 새로운 첫 시도는 많은 반대와 반발에 부딪치게 마련이다. 엄청나게 성공한 <불새>와 <페트르슈카>에도 만족하지 못했던 스트라빈스키가 ‘이제서야 비로소 내 귀를 믿게 되었다’고 자찬한 <봄의 제전>은 초연 당시 엄청난 야유와 조롱을 받았다. 심지어는 ‘이 시대의 가장 우스꽝스런 사기’라는 평까지 감수해야 했다.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역시 오랫동안 묻혀졌다. 그럴 때는 그레이엄과 같은 태도가 필요하다. ‘내 일에 대한 논쟁은 언제든 환영이다. 아무도 나의 작품을 평하지 않으면 도대체 내가 했던 일에 실패란 게 어떻게 있을 수가 있겠는가’. 그러면 <봄의 제전>과 <아비뇽의 처녀들>이 이후 엄청난 걸작으로 인정받은 것처럼 곧 내 작품도 세상의 빛을 보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적어도 다시 다른 작품으로 나갈 수는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용어들

세익스피어의 여동생: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 만의 방>에서 창조한 인물. 셰익스피어 못지않은 재능을 타고 났지만 남성우월적인 주변 상황의 벽에 부딪혀 재능을 꽃 피울 수 없었던 여인.

10년 주기론
저자가 일곱 명의 인물들을 분석하며 밝혀낸 사실. 창조적 업적에는 일정한 주기가 나타나는데 그것이 10년이라는 것이다. 창조자들은 10년 동안 완전히 그 분야의 기본을 터득하고, 다음 10년간 이를 획기적인 창조적 혁신으로 창출해내며, 다음 10년간 또 다른 분야에서 창조적 위업을 이루어낸다는 것이다.

지능과 창조성은 무관하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창조적인 인물은 모든 분야가 아닌 어느 한 분야에서만 창조적일 수 있다고 전제한다. 지능이 다중적이라면 창조성은 훨씬 더 다중적이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따라서 창조 행위는 어느 한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게 당연하며, 이를 평가하는 장(場)의 전문가들의 인정을 받을 때에만 창조적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신동에 대한 견해
신동의 출현은 특정 분야에 대한 어떤 문화권의 관심과 지원 이외에도, 언제나 여러 요인들이 ‘우연히 맞아 떨어져야(co-incidence)’ 가능한 현상이다. 즉 ‘재능이 갖춰진’ 아이와 그 분야에 ‘우호적인 문화’뿐만 아니라, 풍부한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 역사상 가장 특출한 재능을 발휘한 미술 신동은 왕야니라는 중국 여자아이였지만 피카소처럼 유명해지지 못한 건 여러 요인이 맞아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좋은 선생, 지원자로서의 부모, 재주를 뽐낼 풍부한 기회, 경쟁의 의무를 덜어주는 혜택, 대중적 명성을 얻을 다양한 경로, 도약의 장애물 등이 그것이다(252).

훔볼트의 앵무새
프로이트가 아직 학계의 인정을 받기 전, 그는 고립무원의 나날들을 보내며 가슴앓이를 해야 했다. 이때 그는 일기에 썼다. ‘나는 훔볼트의 앵무새처럼 그저 묵묵히 지낼 뿐이야.’ 훔볼트는 독일의 박물학자요 탐험가로 남미 탐험 중에 한 원주민 부족에게서 앵무새 한 마리를 얻었다. 그 앵무새는 다른 부족의 언어를 흉내냈는데 물어보니 원주민은 자신들이 이웃 부족을 공격하여 몰살하는 과정에서 얻은 전리품이라고 말했다. 이 앵무새는 전멸당한 부족의 언어를 말하는 유일한 생존자였다. 이런 의미에서 프로이트는 이 앵무새를 빌어 자신의 외로운 상태를 표현한 것이다.

20세기를 빛낸 탁월한 예술경영자들
법률가에서 발레 흥행주로 직업을 바꾼 세르게이 디아길레프는 작곡가가 되고 싶었으나 림스키 코르샤코프의 권유로 꿈을 포기하고 다른 이의 재능을 키워주는 예술 양육자가 되었다. 그는 자신이 이끌던 예술가들의 활약상에 힘입어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평정한 후 해외로 눈을 돌렸다. 1909년 발레 뤼스를 설립, 유럽 예술의 중심지 파리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디아길레프와 같은 인물은 사진작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작곡 교사인 나디아 불랑제, 편집자 맥스웰 퍼킨스, 연출가 막스 라인하르트 등이 있다. 이 소수의 예술양육자들에 의해 20세기 예술사가 풍요롭게 성장하였다.

스트라빈스키가 디아길레프에게서 배운 두 가지
디아길레프에게 픽업되어 발레 뤼스를 위해 <불새>와 <페트르슈카>를 지어주고 일약 스타덤에 오른 스트라빈스키, 그는 발레 뤼스와의 공동작업에서 디아길레프를 유심히 살피며 굉장히 중요한 교훈 두 가지를 배운다. 하나는 마감 시한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예술적 이상이 각기 다르고 고집도 무척 센 사람들 사이에서 일을 완성하려면 중재와 타협의 기술을 익혀야 한다는 것이었다. 공연 현장에서 일하는 내게 정말 필요한 일이 바로 두 번째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보통 매우 개인적이고 자기 세계가 뚜렷하다. 남과 타협하며 일하는 게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들의 기분을 존중하며 원하는 성과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중재와 타협은 필수다. 개성강한 그들이 협동해야 하는 공연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관계를 조율하는 기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람을 잘 조율하는 것은 음악을 조율하는 것보다 때론 더 힘들다.

입체주의
입체주의 창시자는 피카소와 브라크이다. 야수파에 영향을 받은 브라크와 의기 투합해 피카소는 공동작업에 나섰다. 이들은 애초 입체주의를 창안하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작업한 것은 아니다. 당시 미술계의 변화나 혁신적인 화풍의 도래는 무르익은 요구였다. 그들은 내면에 솟아나는 영감을 빌어 대상을 해체하고 분해하여 모든 것을 ‘작은 입방체’로 환원시키는, 즉 당시로서는 구상 미술의 경계를 넘는 자칭 파격과 모험을 자청한 것이다. 대상미술이 지배하는 화단에 도전을 주고 이런 경우 누군가의 지지와 격려는 큰 역할을 하게 마련인데 그런 점에서 둘은 천생연분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이들의 작풍은 입체주의로 불리게 되었다. 이 세상에 소개된 지 1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입체주의는 여전히 현대미술의 상징으로 여겨지지만 예술적 업적의 중요한 성취로 보다는 수수께끼 같은 호기심의 대상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분명한 건 입체주의 미술의 이미지가 상업광고물에서 아류모방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각물에 스며들어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이 되었음에도 보는 사람은 대체로 그 이미지의 원천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생산적인 비동시성(fruitful asynchrony)
창조적인 인물의 특징적인 모습은 창조성 삼각형에서 어떤 부조화, 혹은 부드러운 연결의 결여를 장점으로 활용할 줄 안다는 점이다. 그림은 잘 그리지만 학교 공부는 형편없던 피카소나 프로이트의 인성 지능이 당시의 과학 분야에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나, 학위를 따고도 교사직을 얻지 못한 아인슈타인이나, 그레이엄 초기의 무용이 평범한 관객의 취향을 만족시키지 못한 것처럼 창조자가 지닌 재능과는 무관하게 평가나 현실이 따라주지 못하는 것이 비동시성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비동시성을 잘 극복하면 생산적인 결과를 낳는다는 점이다. 비동시성이 너무 정도가 지나쳐 압도되지 않을 만큼이라면 생산적인 창조성에 매우 유용하다. 용어가 익숙하지 않아서이지 이는 그다지 새로운 개념도 아니다. 어떤 장애나 어려움은, 그것에 압도될 만큼 지나치지만 않다면, 도약과 발전을 위한 토대가 된다. 창조적인 사람일수록 비동시성의 조건을 의도적으로 추구하는 경우가 많다.

파우스트적인 거래
가드너가 멋진 용어를 만들어내긴 했지만, 이 개념 역시 우리에게 낯선 것은 아니다. 파우스트 계약이란 창조적인 인물은 뛰어난 재능을 타고났다는 점에서 특별하지만 그런 재능을 잃지 않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르거나 모종의 계약을 치른다는 통념을 반영한 개념이다. 저자는 창조적인 인물들이 자신의 재능을 잃지 않기 위해 미신을 믿거나 비합리적이고 강박적인 행동을 하는 모습에 놀랐다고 한다. 창조활동을 지속하기 위해 그들은 정상적인 관계를 희생하기도 한다. 이런 예는 한국에도 보편적이다. 부모가 자신의 꿈을 전혀 지지해주지 않고 다른 진로를 강요할 때 관계를 일시 단절하고 집을 튀쳐나오는 경우가 이런 예에 해당할 것이다. 어쨌든 창조자들은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심지어는 원만한 인생을 포기하면서라도 자신의 일에 매진하려고,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파우스트적 거래를 단행한다. 파우스트 박사와 메피스토펠레스를 연상시키는 마술적이고도 신비한 계약은 종교적 색채를 띠기도 한다. 피카소의 경우 죽어가는 누이동생이 질병에서 회복된다면 그림을 그만두겠다는 맹세를 신에게 했었다. 자신의 계약이 파기될 경우 평생 난폭하게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반대계약을 맺는 경우가 많다. 피카소가 그랬던 것처럼. 삶의 쾌락을 포기하고 금욕적인 삶을 다짐하고(프로이트, 엘리엇, 간디), 사람들의 감정을 가학적으로 무시하고(엘리엇), 고립을 자초하고(아인슈타인, 그레이엄), 자기를 보존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노골적으로 이용하거나 가학적으로 대하고(피카소), 친분 관계를 희생해서라도 법정 싸움의 불씨를 지피는(스트라빈스키) 등의 극단적 행동은 모두 파우스트 계약의 예들로 볼 수 있다.

도약의 시기에 얻는 인지적, 정서적인 도움
상식적으로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런 식으로 분류해놓으니 이해에 도움이 된다. 이상적인 것은 두 차원이 공존하는 것이다. 무조건적인 지지로 격려하는 정서적인 차원과, 혁신적인 도약의 성격을 이해하고 그 본질에 관해 유용한 조언을 해 주는 인지적인 차원이 동시에 만족되어야 한다. 창조적으로 도약하는 시기는 정서적으로나 인지적으로 매우 긴장이 높은 시기이다. 이때는 유아기 이래 그 어떤 시기보다 지지와 격려가 필요한 시기다. 성취한 일에 대해 보상과 격려를 받던 어린 시절의 상황의 재현으로 이해하면 된다. 특히 창조적 도약의 시기에는 새로운 언어를 창조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시기이다. 정서적인 지지 못지않게 인지적인 지지가 매우 중요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흥미로운 이슈

데드 라인
작가들이 일을 마무리하도록 추동하는 힘은 무엇일까. 여러 이유를 댈 수 있겠지만 결정적으로 시한이 정해지지 않는다면 작품이 세상에 나올 확률은 극적으로 줄어든다는 게 내 생각이다. 마감 날짜가 정해지지 않아도 순수한 내재적 동기만 가지고 작품을 완성할 작가가 얼마나 되랴. 그냥이라면 도저히 끝낼 수 없는 대작을 마감의 힘에 의지해 탈고하는 순간의 그 기쁨을 어디에 비하랴. 여기 한없이 길고 지루한 작업을 마치고, 긴 악보에 마지막 방점을 찍는 스트라빈스키의 기분을 상상해보라. <봄의 제전> 마지막 페이지에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드디어 오늘, 1912년 11월 17일 일요일에, 견딜 수 없는 치통을 앓으면서 ‘봄의 제전’을 끝냈다. 클라렝의 샤트라 호텔에서, 스트라빈스키’(그의 친필을 책 361쪽에서 볼 수 있다).

사생활과 예술적 성취 간의 관계-비극중독자 피카소
피카소의 혼란스러운 사생활과 지속적인 예술적 다산성 간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논평할 만한 가치가 있다. 피카소의 삶은 끊임없이 새로운 연인과 가정과 아이들이 생기고, 새 연인과 여름 휴양지를 찾는 삶이었지만 동시에 꾸준히 새로운 양식과 작품을 추구하는 과정이었다. 하나도 똘똘이 간수 못하는 속인들에게 그는 범접할 수도 없는 엄청난 정력가였다. 그는 난마처럼 복잡하게 얽힌 많은 여인들과의 관계에서 오히려 기운을 얻고 역량을 발휘할 수 있었다. 여인들은 그에게 언제나 신선한 예술적 자극이었고 실험 정신을 북돋는 원천이었다. <노년>에 소개된 빅토르 위고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남자들의 왕성한 성욕과 창작열 사이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것인지 이 주제로 조사를 하면 재미있는 결과들이 나올 것 같다.)
피카소 사후에 전해진 자료들에 의하면 피카소는 참으로 이기적이고 잔혹한 인물이었다. 프로이트는 흉내도 낼 수 없을 정도로 개인 조수나 여인들의 충성을 요구했고 무자비하게 서로 간의 갈등을 부추키고 함부로 해고하거나 쫓아냈다. 가학적인 성격은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폭행으로까지 이어졌다. 마리 테레즈 발터에 의하면 그는 강간과 일을 연관시키기도 했다고 한다. 피카소와 관련된 여인들의 삶을 보면, 그를 왜 비극중독자라 부르는 지 알 수 있다. 피카소는 미노타우로스와 자신을 동일시해서 여인들이 몸과 마음을 모두 희생하기를 요구했다. 첫번째 부인 올가는 정신이상으로 1935년에 죽었고, 가장 낙천적이던 발터는 1977년 스스로 목을 맸다. 지성적인 연인 도라 마르는 신경쇠약에 시달렸으며 1961년 결혼한 두 번째 부인 자클린은 역시 농축 표백제를 마시고 자살하였다. 피카소는 그가 연약한 여인들에게 매력을 느꼈고 그녀들에게 비극적인 사태가 발생할 때까지 그녀들 곁에 있어주었다고 주장한다. 어떤 경우든 피카소를 결백하다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나의 죽음은 배가 침몰하는 일과 같다. 거대한 배가 침몰하면 많은 사람들이 바다에 빠질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피카소의 동성 친구들도 고통을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그림을 그릴 때 색깔을 고르듯, 시기와 목적에 맞게 적당한 친구를 골랐다.’ 그는 자신의 재능을 초월해서 생각할 능력이 없었다. 자신의 작품과 생존을 우선시했다. 그러나 모든 결점과 엽기적 행각은 언제나 작품을 완성하려는 그의 더 큰 열정에 흡수되었다.

<게르니카>의 작업과정
뉴욕 현대미술관 모마에서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본 적이 있다. 한 폭의 그림이 줄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그 그림은 말하고 있었다. 그 그림을 그린 피카소가 어떤 사람인지 참 궁금했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서 만난 게르니카 제작과정에 대한 설명이 흥미로왔다. 작가에 의하면 피카소 성격 밑바닥에는 원래 ‘반항적으로’ 그림을 그리고픈 강한 충동이 뿌리박혀 있다. 중년 이후, 피카소는 자신의 삶에서 가장 힘들고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야 했는데 그 고통의 태반은 그가(엽기적인 성품과 여성편력이) 자초한 일이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이 시기의 피카소 작품에는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성품이 작품의 동기가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310). 때 마침(1937년 4월 26일), 프랑코 군에 가담한 독일 폭격기가 바스크 지방의 작은 마을 게르니카를 폭격해 쑥대밭을 만든 비극적인 사태가 벌어졌다. 이 사건에 큰 충격을 받은 피카소는 게르니카의 참상을 화폭에 담기로 맘먹는다. 당시 스페인 공화국 정부는 같은 해의 파리 만국박람회 스페인 관을 장식할 벽화를 피카소에게 의뢰한 상태였다. 피카소는 혼신을 기울여 이 작품을 운명적인 작품으로 완성하리라 마음을 먹었다. 그는 드로잉 노트에 이렇게 적고 있다. ‘내 그림은 모두 탐구다…이 탐구에는 논리적인 순서가 있다. 내가 번호를 붙인 이유가 여기 있다. 시간 순서에 따라 실험하고 거기에 번호와 날짜를 적어두는 것이다.’ 피카소의 이런 작업방식은 <게르니카>의 스케치 작업에서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하였다. 바로크 협주곡에서 듣는 바처럼 그는 전체와 부분을 끊임없이 왕복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하였다. 게르니카를 준비하며 그는 45점의 스케치를 남겼다. 피카소는 스페인 내전으로 폭발한 사회적 갈등 뿐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폭력과 성, 예술창조에 관한 갈등까지 화폭에 담아냈다. 게르니카는 피카소의 대표작 중의 대표작으로 불멸의 위치에 올랐다. 그의 작품 <인생>의 사랑, 인생, 죽음이라는 주제, <아비뇽의 처녀들>의 척박함과 잔혹함, 초현실주의 작품인 <세 무용수>의 예기치 못한 열정과 무아지경의 폭력성, <안락의자에 앉은 여자>와 <우는 여인>의 데포르마시옹(deformation), 그리고 <미노타우로마키>의 복잡하게 얽힌 주제와 의인화가 게르니카에 모두 담겨있다. 피카소가 게르니카를 완성한 나이는 55세, 그는 80이 넘어서도 엄청난 정력과 기운을 발휘해 그림을 그렸고 도전하기를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영예에 안주하는 사람은 결코 피카소처럼 쏟아질 비난을 개의치 않을 용기를 가질 수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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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
2008.06.03 12:13:50 *.75.127.219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이한숙씨의 북리뷰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책이 워낙 분량이 많다보니 이렇게 써놓아도 충분치 않다고
느끼실런지 모르겠습니다만 쓰시는 분이나 읽는 사람이나 상당한
수고 만치 보람이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이한숙씨의 서평에 이책의 대중성추구나 언구서의 성격으로 봐서
두마리의 토끼를 잡으려다가 다 놓쳤다고 하셨는데 제가 보기에는
욕심이 많거나 기대치가 커서 그렇지 이정도로 만족하거나 그래도
배우는 것이 많다고 느끼는 사람한테는 두루 두루 다양한 시각을
갖게 하는데는 의미가 있다고 볼수도 있다고 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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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6.07 16:15:48 *.36.210.11
<38. 나는 창조적인 혁신에는 아이다운 천진성과 어른의 원숙함이 결합해 있다고 생각한다. 20세기의 고유한 천재들은 어린 아이의 감수성을 체화하고 있었다.

78. 실상 창조적인 인물이란 호기심 많던 어린 시절에 품었던 수많은 의문점과 문제의식, 그리고 주변 사물을 관찰하는 섬세한 감수성을 자신이 선택한 분야의 가장 선진적인 이해 방식과 ‘결혼’시키는 참으로 어려운 일을 해낸 사람이다.

139. 나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환자는 나 자신이라네.

140. 해소되지 않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바로 성인 신경증의 뿌리이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여성의 경우는 ‘엘렉트라 콤플렉스’는 모든 인간의 무의식에 내재해 있는 것. - 프로이트

254. 피카소는 다른 아이들이 abc를 쓸 때 그림을 그렸다. ……그림은 언제나 그가 말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피카소 친구 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

263. 그 나이 적에 이미 나는 라파엘로처럼 그릴 수 있었지만, 그 아이들처럼 그리는 법을 배우기까지는 평생이 걸렸습니다. - 피카소

633. 남들은 도착이라 할지 모르나 나는 내 작품을 미친 듯이 사랑한다. 마치 고행자가 배를 할퀴는 마모직 셔츠(hairshirts)를 사랑하듯이 말이다.-플로베르

695. 꿈을 잃어버린 사람은 소처럼 그때그때의 먹을 풀을 위하여 살아간다. - 프루스트

10년 주기론
저자가 일곱 명의 인물들을 분석하며 밝혀낸 사실. 창조적 업적에는 일정한 주기가 나타나는데 그것이 10년이라는 것이다. 창조자들은 10년 동안 완전히 그 분야의 기본을 터득하고, 다음 10년간 이를 획기적인 창조적 혁신으로 창출해내며, 다음 10년간 또 다른 분야에서 창조적 위업을 이루어낸다는 것이다.>


지치지 않는 그대의 열정에 찬사를 보내며 그대는 피카소를 찜 쪄 먹고도 남을 위인이란 걸 기억해 두시게.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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