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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2일 11시 53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서점에 나가 난중일기를 살펴보다가 내가 골라 든 것은 송찬섭이 옮긴 서해문집의 것이었다. 그 책을 사들고 와서 읽다가 해독할 실력은 안 되지만, 원본을 살펴보고 싶어 도서관에 갔다. 거기서 시조시인 이은상이 1960년대에 한학자들과 옮긴 난중일기를 만나게 되었고, 기꺼이 책을 대출했다. 얼마쯤 낡은 표지와 종이는 난중일기를 읽기에는 그만인 세월의 손때가 묻어 있었다. 여러 종류의 같은 책이 있을 때는 서점에 가서 다 펼쳐 보고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라는 사부님 말씀이 떠올랐다.

난중일기. 一九六九年 四월 일, 역주, 이은상. 현암사,

1. 저자 소개

♣ 나는 이렇게 살았다.

집안이 나쁘다고 탓만 하지마라. 나는 지금의 서울 중구 인형동인 한성의 건천동에서 1542년 이정의 아들로 태어나 몰락한 역적의 가문의 가난 때문에 외갓집에서 자라야 했다.
머리가 나쁘다 탓하지 마라. 나는 첫 시험에서 말에서 낙마하여 낙방하고 서른둘의 늦은 나이에 겨우 과거에 급제했다.
좋은 직위가 아니라고 불평하지 말라. 나는 14년 동안, 변방 오지의 말단 수비 장교로 살았다.
윗사람의 지시라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마라. 나는 불의한 직속상관들과의 불화로 몇 차례나 파면과 불이익을 받았지만 기개를 꺾지 않았다.
몸이 약하다고 낙담하지 마라. 나는 사는 동안 고질적인 위장병과 전염병으로 고통 받았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마라. 나는 적군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태로워진 후 마흔 일곱에야 제독이 되었다.
인정받지 못하고 윗사람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상심하지 마라. 임금의 오해와 의심으로 옥살이를 해야 했다.

운이나 자본이 없다고 절망하지마라. 나는 빈손으로 돌아온 전쟁터에서 열 두 척의 낡은 배로 133척의 적을 막았다. 충심이 하늘에 닿으면 못 해낼 것이 없다.
옳지 못한 방법으로 가족을 사랑한다 하지 마라. 나는 스무 살의 아들을 적의 칼날에 잃었고 또 다른 아들들과 함께 전쟁터로 나섰다. 나는 하늘나라에 와서 나의 아이들에게 한 번도 원망을 들은 적이 없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적들이 물러가는 마지막 전투에서,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죽음이 나를 부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장부의 죽음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간략 연보
1. 1545년 3월 8일 이순신 출생
2. 1556년 열두 살의 어린 나이였으나 학문과 무예에 뛰어났으며 같은 마을에 사는 유성룡과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 이 무렵 집안이 더욱 어려워져서 충청도 아산으로 이사.
3.1576년 무과에 급제: 서른두 살의 나이로 식년 무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그 이듬해 동구비보의 권관으로 첫 벼슬길에 올랐다.
4. 1580년 훈련원 봉사와 충청도 병마절도사의 군관으로 육군에 있다가 전라도 발포의 수군만호로 발령을 받아 수군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러나 경차관으로 내려온 서익의 모함으로 만호에서 파면되고 다시훈련원 봉사를 거쳐 조산보의 만호가 되었다.
5.1587년 조산보 만호와 녹둔도 둔전관을 겸하며 일하던 중 여진족이 침입을 하자 적은 군사를 이끌고 나가 이들을 물리쳤다. 하지만 상관인 북병사 이일의 모략으로 백의종군 하게 되었다
6.1591년 어릴 적 친구 유성룡의 추천으로 전라 좌수사에 올랐다. 이무렵부터 왜군의 침략에 대비하여 군사들을 훈련시키고 거북선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7. 1592년 3월 27일, 거북선 완성. 그동안 만들어온 거북선을 완성하자마자 임진왜란이 일어나 거북선을 앞세워 큰 활약을 하였다. 옥포 해전에서 승리를 거두고 이어 당항포와 한산도 에서도 계속 승리를 하여 그 공으로 정헌대부가 되었다.
8. 1597년 원균의 모함으로 옥에 갇혀 죽을 고비를 맞았으나 원로대신 정탁의 상소로 다시 한 번 백의 종군하며 권율 장군 밑으로 들어갔다. 이 틈을 이용한 왜군의 재 침범으로 정유재란이 시작되었고, 바다를 지키고 있던 원균이 참해하자 다시 3도 수군통제사에 재임명 되어 여러 전투에서 승리 하였다.
9. 1598년 11월 19일, 노량해전노량 앞바다에서 이순신(李舜臣)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과 마지막 해전.
10. 1598년 11월 19일, 한반도에서 물러나는 왜선을 쫓아가 노량 해전에서 싸우다 적의 유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역자 이은상이 1960년에 한학자들과 난중일기를 옮기는 작업을 한 것은 여러 정황으로 보아 박정희의 독려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순신을 성웅이라 부르게 된 것도 이 시절인데 박정희가 이순신의 광팬이었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이은상의 행적에 관해서도 많은 말이 있지만 그것은 접어 두고 그의 간단한 이력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03년 10월 22일 (경상남도 마산) 1982년 9월 18일 학력 연세대학교 문학 명예박사 수상 1977년 대한민국 건국포장 경력 1981년 1월 통일촉진회 최고위원
1980년 12월 광복회 고문/1978년 10월 대한민국 예술원 종신회원 대표작>
대표작: 사랑, 그리워, 가고파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난중일기. 송찬섭, 2005년 9월6일, 서해문집

♣ 이 부분은 이책의 발췌문을 읽기 전에 이해를 돕기 위해서 또 한권의 책, 임진년 아침이 오다. 난중일기 서해문집 송찬섭 역서의 서문을 올린 것이다.
글을 시작하기 전에
p.5. 그간 우리가 이순신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구국의 영웅’ 그 자체였다. 이것은 1960년대 군사 정권이 영웅사관을 통하여 그들의 권력을 더 강화하려는 정치적 의도에 의한 것이었다. 이에 따라 이순신에 대한 책이 발간되고 각종 기념비와 동상, 기념관이 세워졌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은 이순신을 제대로 알리기보다는 정권 강화, 유지를 위한 이용에 치중되었다. 때문에 우리가 이순신에 대해 받은 교육은 다소 왜곡되어 있었다.
p.6. 1960년대 이은상 씨가 중심이 되어 번역본을 간행하였고, 이를 답습한 책들도 여러 권 출판되었다. 이은상 씨의 번역본은 상당히 잘 된 것이다. 그러나 내용에 있어서 수정하거나 통일시켜야 할 부분도 있고, 무엇보다도 책의 중요성이나 자료적 성격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 책이기도 하다.
『난중일기』와 이순신에 대하여
p.12. “이순신은 무인 속에 있어서 이름과 칭찬이 드러나지 않다가, 신묘년에 서애 유성룡이 정승이 되어 그를 쓸 만한 인재라고 하여 정읍 현감에서 차례를 뛰어넘어 전라 좌수사를 제수하니, 드디어 중흥의 제일 명장이 되었다. 아아, 지금 세상엔들 어찌 또한 이와 같은 인물이 없겠는가. 다만 인재를 알아 추천하는 자가 없을 뿐이다.” ― 이수광, 『지봉유설』
p.17. 1597년 통제사가 된 원균은 칠천량에서 대패했다. 1백여 척의 전함이 모두 깨어지고 바다 속에 가라앉아 남은 것이 없었다. 그래서 이후 다시 통제사가 된 이순신은 거의 초토화된 수군을 수습하여 한 척의 거북선도 없이 오직 전선 13척을 가지고 명량 싸움에 나섰다. 그때 적의 함대 수백 척을 보고 겁을 먹은 거제 현령 안위가 도망하려 하자 이순신은 뱃전에서 그를 불러 크게 꾸짖었다. “안위야, 군법에 죽고 싶으냐? 군법에 죽고 싶으냐? 도망간다고 어디 가서 살 것이냐?” 결국 안위는 싸움에 앞장섰고 대패할 것만 같았던 싸움은 승리로 끝났다. 그리고 이듬해 11월 임진왜란 최후의 해전, 노량 싸움 중에 이순신은 적의 유탄에 죽음을 맞는다.
일러두기
p.18. 다섯째: 난중일기는 1592년에서 1598년까지 7년간에 걸쳐 쓰였으나 부분적으로 유실된 내용이 있다. 이러한 부분은 이충무공전서를 통해서 보충하였다. 그리고 가끔 중간에 몇 달씩 일기가 빠진 부분이 있다. 그 가운데 중요한 일이 있었던 기간에 대해서는 장계를 통해 보충하였다. 또한 1597년의 경우 4~10월간의 일기와 8~12월간의 일기가 두 권이 있어서 8~10월은 겹쳐 있다. 겹친 부분은 내용을 하나로 합쳐서 정리하였는데 대체로 후자를 따르면서 전자로 보완하였다. 원본에 손을 댔다는 부담은 있으나 하나의 날짜에 두 종류의 일기가 있다는 것은 독자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불편할 듯하여 내용을 손상하지 않는 범위에서 정리하였다.

p.26.
이순신의 가계
돈수----변――――――거―――――백록――――정―――――
IP *.9.11.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