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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3일 22시 36분 등록
21장

큰 덕(virtue)은 오직 도를 따르는 것이다.

도는 이해하기 어렵고 만질 수도 없다.
형체가 없고 만질 수 없음에도
형상을 소생하게 한다.
어둡고 분명치 않지만
정신이고, 정수이며
만물의 살아있는 숨결이다.

흐르는 세월에도 만물의 시작을 상기하기 위해
그 이름은 사라지지 않고 지켜져왔다.
내가 어떻게 만물의 길을 시작부터 알 수가 있을까?
나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본다.

오묘한 모순의 삶(Living the Elusive Paradox)

이번 21장에서 노자는 우리를 이 책 최초의 전제인 '신비로운 삶(living the mystery)'으로 다시 데리고 간다. 노자는 그 생각의 정의와 장점으로 되돌아가 더욱 분명하고 정확하게 이를 다시 확인한다. 이 장에서 그는 꼬집어 말할 수 없고 오감으로는 경험할 수도 없는 원칙인 도의 오묘한 본질을 단순히 아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이 오묘한 모순의 본보기로 인식함으로써 깨달음을 확인하라고 이른다.

이 중요한 장의 마지막 줄을 다시 읽어보라. "내가 어떻게 만물의 길을 시작부터 알 수가 있을까? 나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본다." 이제 여러분 자신의 시작으로 끝까지 거슬러 올라가보라. - 여러분은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인간 세포질의 미립자(particle)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뜻하는게 아니다; 그보다 이전으로 가보라. 양자 물리학은 입자(particle)란 보이지도 않고 형태도 없는 에너지장에서 나타난다고 가르친다. 따라서 여러분 자신을 포함한 모든 창조물은 운동의 작용이다; 형태가 없는 에너지(energy, 기운)에서 형상으로, 정신에서 육체로, 이름없는 도에서 이름을 가진 물체로. 창조의 과정은 영원한 익명성을 이해한다는 주제와 함께 도덕경 전체를 따라 흐른다. 이것은 여러분이 눈여겨 보고, 내버려 두고, 경험하도록 초대받았다는 오묘한 모순이다. 여러분 스스로의 본질을 시험해보고 만물을 창조한 것과 같은 원칙이 여러분의 모든 생각과 행동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함으로써 그것을 깨달을 수 있다.

바로 지금 집게손가락을 움직이겠다는 간단한 결정을 내려라. 발가락을 꼼지락거려보라. 그런 다음 팔을 들어올려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러분이 이런 동작들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라. 다시 말해, 무엇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색과 모양을 볼 수 있게 해주는가? 도대체 눈동자 뒤의 무슨 힘이 하늘은 푸르다거나 나무는 키가 크다는 것을 인식하도록 보이지 않게 신호를 보내는가? 귓 속 어딘가에서 진동을 집어내 소리로 만드는 형태없는 에너지는 무엇인가?

그 모든 것은 형태도 없고 이름도 없다. 그렇다. 그것은 모호하다. 그렇다. 그것은 구름이 낀 것처럼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여러분이 세상을 바라보게 되면 스스로의 그러한 면을 알기 시작한다. 노자는 이것을 "만물의 살아있는 숨결"이라고 묘사한다. 이것은 더이상 신비로 남아있을 필요가 없다. 여러분은 내면에 그와 같은 영원한 도를 품고 있으며 이를 하루에도 수없이 적용한다. 그것은 여러분 안에 있다... 여러분이 바로 도다.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도덕경의 이 장은 여러분에게 돈, 성취, 횡재, 명예 등을 추구하는 마음을 내려놓으라고 부탁한다. 대신 여러분의 관심을 만물의 시작 즉 오묘하고 만질 수 없는 도 속에 담긴 에너지로 이동시켜라. 가장 큰 덕(virtue)은 여러분의 내면에서 이 이름도 없고, 형태도 없는 힘을 찾는 것이다. 여러분의 모든 생각과 행동 속에서 작용하는 그 에너지를 안에서 살피고 바라봄으로써 느껴라.(Know it by looking within and seeing it at work in all of your thoughts and actions.)

이것이 여러분이 태어나기 2,500년전에 노자가 여러분에게 전하고자 했던 것이다.

모든 생명을 지탱하는 만질 수도 없고 정체를 알 수도 없는 힘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갈증을 가져라.

만물의 근원인 도(the Source)와 규칙적으로 소통하라. 도에게 길을 구하고 그 신성함에 대해 명상하라. 보이지 않는 도에 대한 선의의 공경을 실천할수록 도와 연결되었음을 더 많이 느끼게 될 것이다. 도와 연결되면(the presence of a known connection with the Tao) 에고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인 걱정, 스트레스 그리고 불안 등에서 벗어날 것이다. 여러분 주위의 다른 사람들이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을 추구하는데 몰두하는 반면 여러분은 자신을 포함한 "만물의 살아있는 숨결"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갖음으로써 그들을 바라보며(notice it) 동정의 미소를 짓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나누어주는 도와 신성한 협력의 관계 속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여러분은 더욱 안전하게 느끼게 될 것이다.

하루에 한 번 혹은 가능하다면 여러 번 큰 소리로 외쳐볼 것을 제안한다. "신이시여,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라고 말이다. 이를 여러분 자신의 개인적이고 정중한 의식으로 삼아라. 사실, 이 글을 쓰기 바로 전에 나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이시여, 나의 손 끝을 타고 이런 글이 나타나다록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까지 포함한 모든 것의 근원이 오묘하고 만질 수 없는 도라는 것을 내가 알고 있습니다."

이 장의 마지막 두 줄을 외워서 필요할 때 나지막이 암송하라.

이 두 줄의 문장을 반복해서 암송하라. "내가 어떻게 만물의 길을 시작부터 알 수가 있을까? 나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본다." 그렇게 하면 도는 항상 여러분 내면에 있는 진실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여러분이 가진 비전의 정당함을 다른 누군가에게 설득하려 애쓰기를 멈춰라. - 그들이 준비되면 그들 자신의 스승이 나타날 것이다.

다음은 노자가 죽고 수백 년이 지난 후에 하피즈가 쓴 도의 오묘한 본질에 대한 결론적인 생각이다.

만약 글로
진실이 밝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만약 말이라는 틈으로
태양과 바다가 지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 누군가는 웃기 시작해야 한다.(someone should start laughing)
누군가는 크게 웃기 시작해야 한다.
지금!

지금 도를 행하라.(Do the Tao Now)

오늘, 여러분의 매 순간을 허락하는 힘을 자각하라. 명상을 통해 5분간 여러분의 생각 사이에 존재하는 '틈(the gap)'에 머물러라. 그리고 여러분이 말하고, 듣고, 만지고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포착하기 어렵지만 동시에 어디에나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근원에 주목하라. (나는 여러분이 이 과정을 진행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명상법을 하나 고안해냈는데, 그 내용은 내 책 "Getting in the Gap"에 들어있다.)




22장

휘어지면 온전해지고, (유연한 것은 부러지지 않고,)
구부리면 펴지게 된다.
비우면 채워지고,
낡으면 다시 새로워진다.
적으면 얻게 되고,
많으면 미혹된다.

그런 까닭에 성인은 그 하나를 끌어안는다.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기에 사람들은 그의 빛을 볼 수 있고,
스스로 옳다고 하지 않기에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는다.
스스로 누구인지 모르기에 사람들이 그 안에서 자신들을 보고,
마음 속에 품은 목표가 없기에 하는 일마다 이루어진다.

옛 사람이 유연한 것은 깨지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참으로 옳구나.
진실로 온전함을 이루면 모든 것이 거기(너에게로)로 귀결된다.

유연한 삶(Living with Fexibility)

몇 년 동안 바닷가에 살면서 나는 물가에 자란 커다란 야자나무의 아름다움과 장대함을 보아왔다. 이들은 종종 10미터가 넘기도 한다. 이 당당한 거인들은 시속 300킬로미터가 넘는 허리케인 급의 바람이 일으키는 엄청난 압력도 견뎌낼 수 있다. 거대한 폭풍의 경로에 있던 다른 수많은 나무들은 뿌리째 뽑혀 죽은 데 반해 이 당당한 야자나무들은 굳건히 뿌리를 내린 채 살아남아 그들과는 달리 폐허가 된 땅 위에 자랑스럽게 흔들린다. 그러니 야자나무가 한 자리에 고정돼서 살아남은 비밀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유연성이다. 그들은 수시로 거의 땅에 닿을 듯이 구부러지는데, 이것이야말로 그들이 부러지지 않고 살아남게 만드는 능력이다.

도덕경의 이번 22장에서 노자는 여러분에게 이와 비슷한 수준의 유연성을 받아들이라고 이른다. 여러분에게 탄성과 그 기초를 제공하고 야자나무처럼 유연하게 삶의 폭풍을 견디게 도와주는 도의 하나됨을 느끼기 시작하라. 파괴적인 에너지가 찾아올 때, 구부러짐으로써 깨짐을 막아라.(allow yourself to resist brokenness by bending) 저항하는 대신 통해서 흐르게 내버려둠으로써 폭풍을 이겨내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찾아라. 싸우는 대신 힘을 빼고 직면한 모든 것과 어울려 함께 가면 여러분은 "도의 시간"으로 들어서게 된다.

이 장은 온전함의 한가지 추가적인 이로움을 함축하고 있는데 이는 모든 것을 여러분에게로 끌어당긴다. 즉, 만약 여러분이 윤택함, 지식, 건강, 사랑 그리고 도를 상징(personify)하는 다른 모든 것들을 원한다면 그들에 대해 수용적일 필요가 있다. 노자는 가득 채우기 위해서는 먼저 비워야 한다고 가르친다. 군더더기들이 여러분을 그토록 가로막고 있으면 이미 가득 찬 자아로 아무것도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비운다는 것은 믿음, 소유 또는 에고(ego)가 이끄는 생각들로 가득 찬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가능성에 대해 열린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도와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도는 특정한 관점이나 일을 하는데 있어 한 가지 방법에 스스로를 얽어 매지 않는다; 도는 모든 것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유사하게 유연한 사람은 모든 가능성에 대해 열려있다. - 그 혹은 그녀가 입증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에고가 아니라 도가 책임질 테니 말이다.

도에 대한 깨달음은 유연함을 길러준다. 그리고 여러분이 경직된 사고를 벗어 던지면 신뢰의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나는 확실히는 모릅니다. 그러나 기꺼이 듣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자세로 살아간다면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이 행동과 마음을 함께 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왜냐고? 여러분의 유연함이 그들에게 자신들의 관점이 환영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가능성에 대해 마음을 열면 여러분을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생각이 가치 있으며 충돌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게 된다.

도의 본질과 점점 더 연결될수록 여러분은 이 원칙이 계속적으로 존재하며 모든 순간에 유효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시작한다. 바꿔 말하면 도는 자신이 지금 있는 자리가 아닌 다른 어떤 곳으로 가려고 애쓰지 않는다. 도는 어떤 목적도, 욕망도, 비난도 품지 않는다; 그저 어디든지 흐른다. 도는 창조의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도와 조화를 이루는 것은 목적에서 벗어나 성과에 대한 걱정 없이 여러분이 하고 있는 모든 일에 몰두하는 것이다. - 그저 모든 순간 속에서 깨닫고 우주 속의 모든 사물과 사람들에게 활기를 불어넣는 창조적인 근원에 따라 흐르는 것이다(flow). 여러분이 이렇게 산다면 실패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어떻게 자기 자신을 찾고 만물의 근원의 지혜를 완전히 신뢰하는데 실패할 수 있겠는가? 여러분의 삶에서 실패가 없어지면 노자가 "하는 일마다 이루어진다."라고 말한 의미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다음은 2,500년 전에 노자가 도덕경의 이 22장을 쓰며 준비한 메시지다.

여러분 삶의 폭풍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꿔라.

여러분에게 지배적인 영향을 미치는 에고(ego)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라. 타인의 관심에 대한 욕구를 놓아 주고 어떻게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자연스레 빠져드는지 보라. "당신이 정말로 옳은 것 같습니다. 저에게 새로운 관점을 알게 해준 것에 대해 감사 드립니다."와 같은 말로 분위기를 바꿈으로써 논쟁에서 이기려는 마음과 자신이 옳아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아라. 이런 종류의 말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그들의 경직된 마음을 풀 수 있게 해준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스스로가 옳다거나 다른 사람이 틀리다는 것을 증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여러분의 생각을 바꾸면, 여러분이 살고 있는 삶이 달라진다. 그러니 기꺼이 "모릅니다." 혹은 "내가 한 일을 왜 했는지에 대해서 확실히는 모릅니다."라고 말하라. 노자가 이르는 것처럼 여러분의 거만한 태도와 경직된 사고를 버리면 다른 사람들은 여러분의 유연한 본질 속에서 그들 스스로를 알아보고는 여러분을 신뢰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 스스로가 크고 당당한 야자나무라고 상상해보라.

목표나 목적이 없는 사람이 되라. - 그대신 자연의 힘에 순응할 수 있도록 단단히 그리고 성공적으로(successful) 서라. 마치 허리케인 같은 바람 속에서 허리를 구부린 나무처럼 처음부터 그 힘을 느끼도록 자신을 내버려둠으로써 여러분에게 무슨 일이 닥치든 기꺼이 받아들여라. 비판하는 이가 있거든 들어라. 강력한 힘이 여러분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더라도 싸우지 말고 머리를 숙여라. 부러지는 대신 몸을 구부려라. 그리고 경직된 규칙의 더미에서 벗어나라. - 그렇게 하는 속에서 여러분은 부러지지 않고 보호될 것이다. 어려운 상황을 상징하는 바람을 머리 속으로 떠올리며 다음과 같이 다짐하라: 나는 내 안에 어떤 경직된 마음도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어떤 바람에도 스스로를 구부려 부러지지 않고 남을 것이다. 나는 그 바람의 힘을 이용해서 더 강해지고 나아질 것이다.(better preserved)

이 단순한 가르침은 매우 유쾌한 것이어서 여러분은 왜 미처 이를 깨닫지 못했는지 의아할 것이다. 도의 시간(the Tao time) 속에서 "폭풍"을 인정하고 받아들여라. 그리고 여러분의 육체가 이를 느끼도록 내버려두라. - 마치 바람 속에 자신을 굽힌 나무처럼 판단하는 대신 그냥 지켜보라. 경직된 마음이 되살아나면 그것에도 역시 주의를 기울여라. 에고(ego)의 공간에서 여러분이 도를 연습하는 것처럼 바람은 그냥 불도록 내버려두라. 여러분이 가진 경직성의 뿌리를 밝혀내고 삶의 폭풍들 속에서 더 큰 유연함을 얻고자 시도하라. 도의 에너지를 열 수 있는 이런 종류의 기회를 통해 폭풍은 여러분의 진정한 본질(your true nature of love)을 밝혀내는데 활기를 불어넣는 사건으로 전환될 수도 있다.

지금 도를 행하라(Do the Tao Now)

오늘은 여러분의 것과 반대되는 의견을 나타내는 사람에게 귀를 기울여보라. 그것은 예를 들어 정치, 환경, 종교, 마약, 전쟁, 무기 징역 등등 다양한 주제 중에 어떤 것일 수도 있다. 여러분의 입장을 강요하지 말고 대신 이렇게 말해보라. "나는 한번도 그런 관점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당신의 생각을 제게도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반대되는 입장을 경청함으로써 여러분은 에고(ego)의 태도를 버리고 도의 유연함을 기꺼이 맞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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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6.04 12:24:39 *.36.210.11
재미있네. 그러나 생각하며 읽어야 하기에 분량이 좀 많은가? 나누어서 올리지 그랬어? 나중에 한 번 더 읽어 봐야겠다. 4기들과 함께 어울리니 쑥스러우신가? 그대가 이렇게 꾸준하게 열심히 나가주니 참 보기 좋으이.

우리도 읽은 4기들의 독서 가운데 이순신 장군의 말을 그대에게도 옮겨 드리리.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사람도 두렵게 할 수가 있다’(280p)

이 어찌 병법에서만 통하는 말이 되리오.

그대 한 사람의 노력은 변.경.연 천 사람을 감동시키고 나아가 요한이나 운제 선배님 등과 같이 좋은 책의 결실과 함께 수 만 수십 만 수백 만의 감동으로 이어질 것이라 믿네. 주원아빠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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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윤
2008.06.04 16:05:17 *.227.22.57
이 글을 읽고 재미있다고 말해주는 누나가 있어서 참 좋네. 어찌 하다보니 2개 장씩 묶어서 올리고 있는데 나눠서 올려야 더 좋을까?

4기들의 폭풍우같은 글 속에서 더듬더듬 서있을라니 쑥스럽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하고 그래요. 전에도 말했던 거 같은데, "꾸준히", "열심히', 이런 말들에 쥐구멍을 찾게 되네요.

그리고 누나 수십만, 수백만은 좀 오버같은데... 더 열심히 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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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희
2008.06.04 23:30:41 *.41.62.236

번역하신 글에서,
'폭풍우 같은 글' 이란 표현에서 위로 받고 갑니다.

올리시는 글, 잘 읽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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