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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7일 22시 13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김훈이라는 작가는 무척 독특하다. 처음 그의 책을 접했을 때, 전해지는 감촉은 거친 나무결을 만지는 느낌이었다. 낯설은 문체와 내뱉는 듯한 언어들. 그러나 빨려드는 듯한 흡인력은 단연 압권이다. 그의 문체는 무척 건조하다. 바싹 바싹 마른 장작을 보는 것처럼. 모 인터뷰에서 밝힌 그가 <난중일기>를 집필하게 된 동기는 이렇다.

"하루는 우연히 '난중일기'라는 책이 눈에 띄었죠. 이은상 선생이 번역한 책이었는데 영시(英詩)에 비하면 참 딱딱하고 드라이한 한 군인의 단편적 진중일기에 불과한 책이었어요. 그런데 암울한 현실을 끝까지 암울하게 뚫어 나가더군요. 19세기 낭만주의 시들처럼 찬란한 희망에 의지하지 않고 절망을 끝까지 절망으로 버티어내더군요. 그때 난 낭만주의적 희망의 허구성을 깨달았어요. 동시에 모든 이념의 허구성을 같이 버렸어요. 그랬더니 삶이 더 절망스러워지더군요. 그리곤 대학도 졸업 못했죠. 소설을 쓸 엄두도 안 났고요."

찬란한 희망에 의지하지 않고 절망을 끝까지 절망으로 버티는 사람, 인간 이순신. 그의 지독한 외로움과 고단함에 대해 김훈은 처절하게 그려내고 있다. 김훈은 1인칭 시점의 이 소설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이 살아온 삶을 이순신이라는 고단한 인물을 통해 마음껏 살풀이를 하는 듯하다. 김훈의 매력 중에 하나가 ‘솔직함’이다. 포장하지 않고, 척하지도 않는다. 평생 글로써 먹고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문학’을 벌거숭이 나체로 만들어 버린다. 솔직담백의 철학자이다.

"나는 문학이 인간을 구원하고, 문학이 인간의 영혼을 인도한다고 하는, 이런 개소리를 하는 놈은 다 죽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이 무슨 지순하고 지고한 가치가 있어 가지고 인간의 의식주 생활보다 높은 곳에 있어서 현실을 관리하고 지도한다는 소리를 믿을 수가 없어요. 나는 문학이란 걸 하찮은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문학은 뭐 초월적 존재로 인간을 구원한다, 이런 어리석은 언동을 하면 안 되죠. 문학이 현실 속에서의 자리가 어딘지를 알고, 문학하는 사람들이 정확하게 자기 자리에 가 있어야 하는 거죠"

맞나? 먹고, 싸고, 자는 인간의 원초적인 것보다 상위에 있는 것은 없는가? 아무튼 그는 글을 쓰는 이유를 대단한 거대담론으로 포장하거나, 대단한 문학적 가치를 부여하지도 않는다. 그는 단지 글 쓰는 이유를 "나를 표현해 내기 위해서"이며 또 "우연하게도 내 생애의 훈련이 글 써먹게 돼 있으니까"라고 말하고 있다. 그의 희망은 여러 가지 있는데 첫 번째가 음풍농월하는 것이라 한다. 또 음풍농월 하면서도 당대의 현실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득 멋진 싯구와 함께 기생들과 함께 유유자적하는 그가 떠오른다. 또한 작가로서 살아남기 위한 자신의 견해도 피력했다. 작가는 철저하게 외로운 섬과 같은 존재이기에 엄격한 자기통제와 관리가 필요하다 한다.

“작가가 되면 자기가 자기를 통제해. 기자는 육군처럼 삼엄한 기율과 통제가 있잖아. 소설가는 스스로 통제 않으면 날라리 깡패가 되는 것이지. 자기 통제가 어렵고 슬퍼. 나를 통제할 놈은 없고, 대신 욕하고 비판하는 놈은 많아. 그것은 처절하게 외로워.”.

김훈은 역사의 발전을 부정한다. 그의 문체는 건조하다 못해 염세적이다. 아니 허무적이다. 그는 이 세상이 조금 더 나을 질 수 있음에 대한 강한 회의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회의주의적인 눈빛은 저작의 곳곳에서 발견된다. 어쩌면 그는 이 세상의 진보를 믿지 않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유토피아라는 망상을 쓰레기통에 쳐넣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유독 ‘거대담론’이라고 표현되는 이데올로기들을 철저하게 혐오한다.

"프랑스혁명, 동학혁명, 볼셰비키혁명이 모두 약육강식에 반대하고 일어났지만 결국 또다시 약육강식에 얽매이는 사회를 만들 뿐이죠. 악에 저항하고 승복하고 또 저항하고, 그런 모순된 꼬라지가 나 김훈의 꼴입니다. 역사는 진보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전개되는 것이다. "

물론 이러한 김훈의 염세적 세계관에 동의할 수만은 없다. 비아냥거리는 듯한 세상에 대한 히죽거림을 마냥 좋은 얼굴로 바라 볼 수 만은 없지 않은가. 다만 절망의 세상을 절망의 힘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그는 대단한 작가적 재능의 소유자이다. 모든 인터뷰에서 느껴지는 어린 아이와 같은 솔직함과 핏빛서린 독설은 김훈만이 가지고 있는 분명한 정체성이다. 쉽게 미소지을 수 있는 녹녹한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한맺힌 조선의 피가 흐르는 그는 분명 메이디 인 코리안이다. 불세출의 작가를 만나게 된 것이 반갑다.



2. 내 마음속에 들어오는 글귀

책 머리에 – 2001년 봄, 김훈 쓰다.

2000년 가을에 나는 다시 초야로 돌아왔다. 나는 정의로운 자들의 세상과 작별하였다. 나는 내 당대의 어떠한 가치도 긍정할 수 없다. 제군들은 희망의 힘으로 살아 있는가. 그대들과 나누어 가질 희망이나 믿음이 나에게는 없다. 그러므로 그대들과 나는 영원한 남으로서 서로 복되다. 나는 나 자신의 절박한 오류들과 더불어 혼자서 살 것이다.

사랑은 불가능에 대한 사랑일 뿐이라고, 그 칼은 나에게 말해주었다. 영웅이 아닌 나는 쓸쓸해서 속으로 울었다. 이 가난한 글은 그 칼의 전언에 대한 나의 응답이다.

사랑이여 아득한 적이여, 너의 모든 생명의 함대는 바람 불고 물결 높은 날 내 마지막 바다 노량으로 오라. 오라, 내 거기서 한줄기 일자진(一字陣)으로 적을 맞으리.

다시, 만경강에 바친다.

칼의 울음

잡초가 올라와 지붕을 덮은 마을마다 백일홍은 흐드러지게 피었고, 아직 목숨이 붙어 있는 자들은 아이를 죽여 그 고기를 먹었다. 이따금씩 숙부쟁이 덩굴 밑에 엎드린 유령들이 내 말방울 소리에 놀라 머리를 내밀 때, 퀭한 두 눈에서 눈빛이 빛났다. 24~25p

목이야 어디로 갔건 간에 죽은 자는 죽어서 그 자신의 전쟁을 끝낸 것처럼 보였다. 이 끝없는 전쟁은 결국은 무의미한 장난이며, 이 세계도 마침내 무의미한 곳인가. 내 몸의 깊은 곳에서, 아마도 내가 알 수 없는 뼛속의 심연에서, 징징징, 칼이 울어대는 울음이 들리는 듯했다. 나는 등판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캄캄한 바다는 인광으로 뒤채었다. 26p

안개 속의 살구꽃

나는 안다. 원균은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고 아무도 말리지 못할 무서운 적의를 지닌 사내였다. 그 사내는 모든 전투가 자기 자신을 위한 전투이기를 바랐다. 30p

조정을 능멸한 죄, 조정의 기동출격 명령에 따르지 않은 죄……. 나는 살기를 바라지 않았다. 죽음은 절벽처럼 확실했다. 다만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고문과 문초가 길지 않기를 바랐다. 죽여야 할 것들을 다 죽여서, 세상이 스스로 세상일 수 있게 된 연후에 나는 내 자신의 한없는 무기력 속에서 죽고 싶었다. 32p

다시 세상 속으로

나는 정치적 상징성과 나의 군사를 바꿀 수는 없었다. 내가 가진 한 웅큼이 조선의 전부였다. 나는 임금의 장난감을 바칠 수 없는 나 자신의 무력을 한탄했다. 나는 임금을 이해할 수 있었으나, 함대를 움직이지는 않았다. 나는 즉각 기소되었다. 38p

나는 칼을 코에 대고 쇠비린내를 몸 속 깊이 빨아 넣었다. 이 세상을 다 버릴 수 있을 때까지, 이 방책 없는 세상에서 살아 있으라고 칼을 말하는 것 같았다. 40p

칼과 달과 몸

나는 내몸을 그 여자의 몸 속으로 밀어 넣듯이, 그렇게 칼날을 여자의 몸 속으로 밀어넣고 싶었다. 어둠 속에는 나는 생각했다. 이 여자를 안는 힘으로 세상의 적을 맞을 수는 없는 것일까? 나는 몸을 떨었다. 아마 그럴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때 나는 무인이 아니었다. 아침 숲에서 새떼들이 깨어나 지껄였다. 아침에 나는 그 여자의 행선지를 묻지 않았다. 49~49p

허깨비

크고 확실한 것들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았으므로, 헛 것인 지 실체인지 알 수가 없었다. 모든 헛것들은 실체의 옷을 입고, 모든 실체들은 헛것의 옷을 입고 있는 모양이었다. 내 젊은 날, 여진족과 맞서 있던 두만강 산속에서, 출렁거리며 대륙을 달려가는 산맥들은 보이지 않았고 남쪽 물가에서는 바다가 보이지 않았다. 눈보라 속에서는 눈과 바람의 저쪽이 보이지 않았지만, 크고 또 확실한 적들은 늘 보이지 않는 저 편으로부터 몰려왔다. 50p

몸이 살아서

그날 밤 나는 혼자서 취했다. 허리가 결리면서, 비가 내렸다. 차가운 늦가을 비였다. 어머니의 몸과, 피난민들의 노숙 자리에 내리는 비를 생각하면서 나는 자꾸 마셨다. 술은 비처럼 몸 안으로 스몄다. 아침에도 비는 멎지 않았다. 안주 없이 마신 술에 속이 쓰렸다. 빗소리를 들으며 혼자서 뒤채었다. 더 이상 떠돌아다니면서 확인할 것도 건질 것도 없었다. 63p

내 끝나지 않은 운명에 대한 전율로 나는 몸을 떨었다. 나는 다시 충청, 전라, 경상의 삼군수군통제사였다. 그리고 나는 다시 전라 좌수사였다. 나는 통제할 수군이 없는 수군통제사였다. 내가 임금을 용서하거나 임금을 긍정할 수 있을는지는 나 자신에게도 불분명했다. 그러나 나의 무(무)는 임금이 손댈 수 없는 곳에 건설되어야 마땅할 것이었다. 그리고 그 건설은 소멸되기 위한 건설이어야 마땅할 것이었다. 65p
서캐

우수영에서 내 군사는 120명이었고 내 전선은 12척이었다. 그것이 내가 그 위에 입각해야 할 사실이었다. 그것은 많거나 적은 것이 아니고 다만 사실일 뿐이었다. 다른 아무것도 없었고 그 밖에는 말할 것이 없었다. 70p

식은땀

노부나가는 천하포무(天下布武)라는 깃발을 앞세우고 있었는데 그 뜻은 무(武)를 천하에 펼쳐서 난세를 치세(治世)로 바군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히데요시는 스스로 천하인(天下人)을 자처하고 있는데, 그 천하포무는 조선과 명을 아울러서 가지런히 하는 것이며, 조선의 국토를 여러 봉토로 찢어서 일본 막부의 가신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히데요시의 전후 조선 경영 구상이라고 적장들은 실토했다. 77p

물위에서 죽음에 죽음을 잇대어가며 파도처럼 달려드는 그 무수한 적병들의 적의의 근본을 나는 알 수 없었다. 그 죽음의 물결은 충(忠)이나 무(武)라기보다는 광(狂)에 가까웠다. 77p

내가 지는 어느 날, 내 몸이 적의 창검에 베어지더라도 나의 죽음은 결국은 자연사일 것이었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지는 풍경처럼, 애도될 일이 아닐 것이다. 79p

임금은 장수의 용맹이 필요했고 장수의 용맹이 두려웠다. 사직의 제단은 날마다 피에 젖었다. 81p

나는 다만 적의 적으로서 살아지고 죽어지기를 바랐다. 나는 나의 충을 임금의 칼이 닿지 않는 자리에 세우고 싶었다. 적의 적으로서는 죽는 내 죽음의 자리에서 내 무와 충이 소멸해 주기를 나는 바랐다. 82p

적의 기척

……이제 수군을 폐하시면, 전하의 적들은 서해를 따라 충청 해안을 거쳐서 한강으로 들어가 전하에게로 갈 것이므로, 신은 멀리서 이것을 염려하는 바입니다. 수군이 비록 외롭다 하나 이제 신에게 오히려 전선 열두 척이 있사온즉……
그리고 나는 한 줄을 더 써서 글을 마쳤다.
……신의 몸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한에는 적들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 삼도수군통제사 신(臣) 이(李) 올림

일자진

- 명랑에서 적을 맞겠다. 우수영으로 돌아가자. 돌아가서 기다리자. 오늘밤 전 함대는 발진하라.
장졸들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나는 다시 말했다.
- 사지에서는 살 길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아마도 살 길이다. 살 길과 죽을 길이 다르지 않다. 너희는 마땅히 알라. 93p

- 열 두 척으로 진을 짠다면 대체 어떤……?
내가 말했다.
- 아무런 방책이 없다. 일자진 뿐이다. 열두 척으로는 다른 진법이 없다.
수령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한참 후에 김응함이 입을 열었다.
- 일자진이라 하심은……?
- 횡렬진이다. 모르는가?
- 열두 척을 다만 일렬 횡대로 적 앞에 펼치시다는 말씀이시온지?
- 그렇다. 밝는 날 명량에서 일자진으로 적을 맞겠다.
수령들이 다시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96p

전환

나의 사지는 내 앞에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잘 죽을 수 있는 자리였다. 그러나 죽음에 이르는 길은 너무 멀어서 끝은 보이지 않았다. 물결은 우우우 울며 내달았고, 이물은 솟고 또 곤두박질쳤다. 배를 따라 이동하는 갈매기들이 멀리서 너울거렸다. 우짖는 새떼를 앞세우고, 적들은 오고 있었다. 104p

노을 속의 함대

나는 김응함의 목에 칼을 들이댔다.
- 응함아, 여기는 사지다. 내 칼에 죽느니 나아가서 적의 칼에 죽어라.
제 배로 건너간 김응함은 격군을 질타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안위가 다가왔다. 대장선으로 건너와서 안위는 갑판에 꿇어앉았다. 나는 말했다.
- 안위야, 너를 죽여서 길을 열겠다. 네가 군법에 죽겠느냐? 물러서면 살 듯싶으냐?
안위가 몸을 떨었다. 안위는 제 배로 건너갔다. 안위의 배가 앞으로 나아갔다. 109p

구덩이

나는 죽은 여진에게 울음 같은 성욕을 느꼈다. 세상은 칼로서 막아낼 수 없고 칼로써 헤쳐나갈 수 없는 곳이었다. 칼이 닿지 않고 화살이 미치지 못하는 서쪽에서, 세상은 뒤채이며 무너져갔고, 죽어서 돌아서는 자들 앞에서 칼은 속수무책이었다. 목숨을 벨 수는 있지만 죽음을 벨 수는 없었다. 물러간 적들은 또 올 것이고, 남쪽 물가를 내려다보는 임금의 꿈자리는 밤마다 흉흉할 것이었다. 124p

바람 속의 무 싹

하루 종일 물의 칼들이 일어섰다. 저녁 바다는 거칠었다. 인광의 칼날들이 어둠 속에서 곤두서고 쓰러졌다. 캄캄한 바다에서 칼의 떼들이 부딪혔다. 물보라가 수영 안마당까지 날아들었다. 섬도 수평선도 보이지 않았다. 132p

내 안의 죽음

나는 겨우 알았다. 임금은 수군통제사를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명량 싸움의 결과가 임금은 두려운 것이다. 수영 안에 혹시라도 배설을 감추어놓고 역모의 군사라도 기르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그것이 임금의 조바심이었다. 139p

‘면사’ 두 글자뿐이었다. 다른 아무 문구도 없었다. 조정을 능멸하고 임금을 기만했으며 임금의 기동출격 명령에 따르지 않은 죄에 대하여 죽음을 면해주겠다는 것이었다. 면사첩을 받던 날은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나는 ‘면사’ 두 글자를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죄가 없다는 것도 아니고 죄를 사면해 주겠다는 것도 아니고 다만 죽이지는 않겠다는 것이었다. 140p

젖냄새

면은 아산 고향에서 죽었다. 면은 어깨로 적의 칼을 받았다. 적의 칼이 면의 몸을 세로로 갈랐다. 죽을 때, 면은 스물한 살이었다. 혼인하지 않았다. 143p

면의 부고를 받던 날, 나는 군무를 폐하고 하루 종일 혼자 앉아 있었다. 환도 두 자루와 면사첩이 걸린 내 숙사 도배지 아래 나는 하루 종일 혼자 앉아 있었다. 바람이 잠들어 바다는 고요했다. 덜 삭은 젖내가 나던 면의 푸른 똥과 면이 돌을 지날 무렵의 아내의 몸냄새를 생각했다. 쌀냄새가 나고 보리 냄새가 나던 면의 작은 입과 그 알아들을 수 없는 옹아리를 생각했다. 날이 선 연장을 신기해하던 면의 장난을 생각했다. 허벅지와 어깨에 적의 칼을 받고 혼자서 죽어갈 때의 면의 무서움을 생각했고, 산 위에서 불타는 집을 내려다보던 면의 분노를 생각했다. 쓰러져 뒹굴며 통곡하는 늙은 아내를 생각했다. 나를 닮아서, 사물을 아래에서 위로 빨아당기듯이 훑어내는 면의 눈동자를 생각했고, 또 내가 닮은 내 죽은 어머니와 이마와 눈썹과 시선을 생각했다. 젊은날, 국경에서 돌아와 면을 처음 안았을 때, 그 따스한 젖비린내 속에서 뭉클거리며 솟아오르던 슬픔을 생각했다. 탯줄에 붙어서 여자의 배로 태어나는 인간이 혈육의 이마와 눈썹을 닮고, 시선까지도 닮는다는 씨내림의 운명을 나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송장으로 뒤덮인 이 쓰레기의 바다 위에서 그 씨내림의 운명을 힘들어하는 내 슬픔의 하찮음이 나는 진실로 슬펐다. 몸 깊은 곳에서 치솟는 울음을 이를 악물어 참았다. 밀려내려 갔던 울음은 다시 잇새로 새어 나오려 했다. 151p

생선, 배, 무기, 연장

배는 살아 있는 생선과 같다. 전선과 어선이 같고, 판옥선(板屋船)과 협선(挾船)이 매한가지다. 생선의 몸이 물을 읽듯이 배는 물을 읽고, 물을 받아내면서 나아간다. 여울을 거스를 때 생선이 때때로 몸통 전체를 뒤틀며 물에 저항하듯이, 배도 몸통 전체를 뒤틀며 파도와 파도 사이를 빠져나간다. 물에 맞서는 배의 저항은 물에 순응하기 위한 저항이다. 배는 생선과 같다. 배가 물을 거스르지만, 배는 물에 오래 맞설 수 없고, 물을 끝끝내 거절하지 못한다. 155p

사지(死地)에서

이제 다시 적이 온다면 우수영 앞 명량 수로는 죽기에 편한 자리였다. 나는 명량 수로에서 죽고 싶지 않았다. 나는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아무런 은총도 없는 자리에서 죽고 싶었다. 내가 죽어야 할 자리는 우수영보다 훨씬 더 뒤쪽이라야 마땅했다. 162p

누린내와 비린내

나는 화약 연기를 몸 깊숙이 들이마셨다. 내 허파에 스미는 화약 연기는 매캐하고도 향기로웠다. 유황이 타는 냄새는 먼바다를 뒤덮은 적들의 냄새였고, 그리고 나와 내 함대의 냄새였다. 167p

임진년의 싸움은 힘겨웠고 정유년의 싸움은 다급했다. 모든 싸움에 대한 기억은 늘 막연하고 몽롱했다. 싸움은 싸움마다 개별적인 것이어서, 새로운 싸움을 시작할 때마다 그 싸움이 나에게는 모두 첫 번째 싸움이었다. 지금 명량 싸움은 지나간 모든 싸움과 전혀 다른 낯선 싸움이었다. 싸움은 싸울수록 경험되지 않았고, 지나간 모든 싸움은 닥쳐올 모든 싸움 앞에서 무효였다. 167p

죽은 여진의 가랑이 사이에서 물컹거리던 젓국 냄새와 죽은 면이 어렸을 때 쌌던 푸른 똥의 덜 삭은 젖냄새와 죽은 어머니의, 오래된 아궁이 같던 몸냄새가 내 마음 속에서 화약 냄새와 비벼졌다. 168p

그대의 칼

나를 죽이면 나를 살릴 수 없기 때문에 임금은 나를 풀어준 것 같았다. 그러므로 나를 살려준 것은 결국 적이었다. 살아서, 나는 다시 나를 살려준 적 앞으로 나아갔다. 세상은 뒤엉켜 있었다. 그 뒤엉킴은 말을 걸어볼 수 없이 무내용했다. 195p

국물

정유년 겨울에, 전쟁은 전개되지 않았다. 전쟁은 지지부진했다. 전쟁은 천천히 죽어가는 것인지 내가 죽어가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희망을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언어로 개념화되는 어떠한 미래도 생각하지 않았다. 희망은 멀어서 보이지 않았고, 희망 없는 세상에서 죽음 또한 멀어서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았지만, 살아 있는 나에게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만은 의심할 수 없이 분명했다. 213p

언어와 울음

임금은 울음과 언어로써 전쟁을 수행하고 있었다. 언어와 울음이 임금의 권력이었고, 언어와 울음 사이에서 임금의 칼은 보이지 않았다. 임금의 전쟁과 나의 전쟁은 크게 달랐다. 임진년에 임금은 자주 울었고, 장려한 교서를 바다로 내려 보냈으며 울음과 울음 사이에서 임금의 칼날은 번뜩였다. 임진년에는 갑옷을 벗을 날이 없었다. 그때 나는 임금의 언어와 울음을 깊이 들여다보지 못했다. 231p



그 해 겨울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격군과 사부들이 병들어 죽고 굶어 죽었다. 나는 굶어 죽지 않았다. 나는 수군통제사였다. 나는 먹었다. 부황 든 부하들이 굶어 죽어가는 수영에서 나는 끼니때마다 먹었다. 죽은 부하들의 시체를 수십 구씩 묻던 날 저녁에도 나는 먹었다. 237p

아무 일도 없는 바다

바다에서, 삶은 늘 죽음을 거스르고 죽음을 가로지는 방식으로만 가능했다. 내어줄 것은 목숨뿐이었으므로 나는 목숨을 내어줄 수는 없었다. 죽음을 가로지를 때, 나는 죽어지기 전까지는 죽음을 생각할 수 없었고 나는 늘 살아 있었다. 삶과 분리된 죽음은 죽음 그 자체만으로 각오 되어지지 않았다.
아마도 삶을 버린 자가 죽음을 가로지를 수는 없을 것이었는데, 바다에서 그 경계는 늘 불분명함은 확실했다. 길고 가파른 전투가 끝나는 저녁 바다는 죽고 물에 뜬 것들의 쓰레기로 덮였고 화약 연기에 노을이 스몄다. 그 노을 속에서 나는 늘 살아 있었고, 살아서 기진맥진했다. 240p

삶은 집중 속에 있는 것도 아니었고 분산 속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모르기는 하되, 삶은 그 전환 속에 있을 것이다. 개별적인 살기들을 눈보라처럼 휘날리며 달려드는 저거 앞에서 고착은 곧 죽음이었다. 달려드는 적 앞에서 나의 함대는 수없이 진을 바꾸어가며 펼치고 오므렸고 모이고 흩어졌다. 대장선이 후미에 있을 때 이물 너머로 바라보면 함대는 적과 마주잡고 쉴새없이 너울거리며 춤을 추는 무도자처럼 보였다. 243p

바다에서, 삶과 죽음은 단순하지 않았다. 삶과 죽음은 서로 꼬리를 물고 있었다. 나는 그 꼬리에 물려서 죽는 죽음이 두려웠다. 내 함대는 늘 춤추듯 너울거리며 진을 바꾸었다. 다시 모항으로 돌아가기 위해 장사진을 펼칠 때, 바다는 쓰레기로 덮여 있었다. 245p

새벽바다의 안개 비린낸 속에는 나는 때때로 죽은 여진의 몸냄새를 생각했다. 살아 있는 목숨의 냄새는 비리고 숨막혔다. 그 냄새가 평화인지 구분을 넘어서서 살아 있었다. 그 냄새는 싸움과 평화의 구분을 넘어서서 살아 있었다. 살아서, 다른 살아 있는 것들을 부르고 있었다. 산 것은 늘 다른 산 것들을 부르는 모양이었다. 나으리, 밝은 날 저를 베어주시어요……라던 여진의 소리는 다른 산 것을 부르는 산 것의 소리가 아니었을까. 산 것을 부르는 산 것의 소리는 외마디 비명처럼 단순했다. 263p

날개

이것이 환상이었을까. 나는 가난했다. 적 안에 내포된 죽음만이 나의 재산이었다. 그것이 환상이었다 하더라도, 돌아서 펼치는 새의 양쪽 날개는 대안이 없는 환상이었다. 수영 앞바다 진법 훈련장 물위에서 나는 그 양쪽 날개를 쉴새 없이 퍼덕거렸다. 물은 늘 거칠었고, 물은 노에 저항했다. 배는 그 저항의 힘으로만 나아갔다. 281p

백골과 백설

명과 일본이 조선을 분할해서 강화한다면 나는 고려 때의 삼별초들처럼 함대를 이끌고 제주도로 들어가야 할 것인지를 생각했다. 그때는 명과 일본이, 그리고 조정 전체가 나의 군사적인 적이 될 것이었다. 아마, 그때 나의 함대는 수영을 이탈하거나 나를 배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혼자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의 죽음은 내가 수락할 수 없는 방식으로는 오지 못할 것이었다. 309p

인후

정유년 가을에 바람이 고와서 소금은 고요했다. 갯벌을 막아 물을 가둔 수영 염전에 허연 소금이 햇볕의 무늬를 드러냈다. 317p

적의 달, 적의 해

임진년 개전 이후 남해안의 포구와 물목마다 벌어졌던 저 끝없는 싸움과 죽음과 죽임이 이렇게 끝장이 날 수가 있는 것인가. 329p

적의 인후 앞에서 나는 온 천지의 적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나는 이런 방식으로 전쟁이 끝나는, 이 세상의 손댈 수 없는 무내용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날 밤, 나는 혼자서 숨죽여 울었다. 329p

몸이여 이슬이여

그(히데요시)가 조선 철병을 명령하고 죽었다는 것인데, 그가 죽기 전에 남긴 유언시는 이러했다는 것이다.

“몸이여, 이슬로 와서 이슬로 가니
오사카의 영화여, 꿈속의 꿈이로다.”

술취한 명의 하급 지휘관들이 히데요시의 유언시를 노래로 부르며 춤을 추었다. 술 취한 이국 군대들이 부르는 노래가 칼처럼 내 마음을 그었다. 그날 나는 취했다. 내 마음 속에서 내 칼이 징징징 울면서 춤을 추었다. 저러한 노래, 저러한 시구를 이 세상에 남겨두어서는 안된다고, 진실로 이 남쪽 바다를 적의 피로 붉게 물들이지 않으면 안된다고, 내 술 취한 칼은 마구 울었다. 339p

서늘한 중심

그날 저녁에, 내 숙사 토방에 걸려 있던 면사첩을 끌어 내려 불 아궁이에 던졌다. 나는 집중된 중심을 비웠다. 중심은 가볍고 소슬했다. 나는 결국 자연사 이외의 방식으로 죽을 수 없었다. 적탄에 쓰러져 죽는 나의 죽음까지도 결국은 자연사일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적이 물러가버린 빈 바다에서는 죽을 수 없었다. 나는 갈 것이었다. 357p
빈손

하루하루가 무서웠다. 오는 적보다 가는 적이 더 무서웠다. 적은 철수함으로써 세상의 무의미를 내 눈 앞에서 완성해 보이려는 듯했다. 적들이 철수의 대열을 정돈하는 밤마다, 적들이 부수고 불태운 빈 마을에 봄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꿈을 꾸었다. 361p

들리지 않는 사랑의 노래

갑자기 왼쪽 가슴이 무거웠다. 나는 장대 바닥에 쓰러졌다. 군관 송희립이 방패로 내 앞을 가렸다. 송희립은 나를 선실 안으로 옮겼다. 고통은 오래 전부터 내 몸 속에서 살아왔던 것처럼 전신에 퍼져나갔다. 나는 졸음처럼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다가오는 죽음을 느꼈다.
- 지금 싸움이 한창이다. 너는 내 죽었다는 말을 내지 말라. 387p

내 시체를 이 쓰레기의 바다에 던지라고 말하고 싶었다. 졸음이 입을 막아 입은 열러지 않았다. 나는 내 자연사에 안도했다. 바람결에 화약 연기 냄새가 끼쳐왔다. 이길 수 없는 졸음 속에서, 어린 면의 젖냄새와 내 젊은날 함경도 백두산 밑의 새벽 안개 냄새와 죽은 여진의 몸 냄새가 떠올랐다. 멀리서 임금의 해소기침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냄새들은 화약 연기에 비벼지면서 멀어져갔다. 함대가 관음포 내항으로 들어선 모양이었다. 관음포는 보살의 포구인가. 배는 격렬하게 흔들렸고, 마지막 고비를 넘기는 싸움이 시작되고 있었다. 선창 너머로 싸움은 문득 고요해 보였다.
세상의 끝이……이처럼……가볍고……또……고요할 수 있다는 것이……, 칼로 베어지지 않는 적들을……이 세상에 남겨놓고……내가 먼저……, 관음포의 노을이……적들 쪽으로……. 388p

부록

충무공 연보

옥포만 전투는 임진왜란 최초의 해전이었고, 최초의 승전이었다. 이순신과 수군 장졸들은 해전 경험이 없었다. 적을 향해 돌격할 때 이순신은 실전 경험이 없는 장종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경거망동하지 마라. 너희는 태산과 같이 진중하라.” 403p

그무렵 조선 백성들의 참상은 땅위의 지옥을 이루었다. 부자가 서로 잡아먹고 부부가 서로 잡아먹었다. 뼈다귀를 길에 내버렸다.[정비록]

굶어 죽은 송장이 길에 널렸다. 한 사람이 쓰러지면 백성들이 덤벼들어 그 살을 뜯어 먹었다. 뜯어먹은 자들도 머지 않아 죽었다.[난중잡록(亂中雜錄)]

명나라 군사들이 술 취해서 먹은 것을 토하면 주린 백성들이 달려들어 머리를 틀어박고 빨아먹었다. 힘이 없는 자는 달려들지 못하고 뒷전에서 울었다. [난중잡록]

동인문학상 수상소감
다시, 임화 林和를 추억함

삶은 견딜 수 없이 절망적이고 무의미하다는 현실의 운명과, 이 무의미한 삶을 무의미한 채로 방치할 수는 없는 생명의 운명이 원고지 위에서 마주 부딪치고 있습니다. 말은 현실이 아니라는 절망의 힘으로 다시 그 절망과 싸워나가야 하는 것이 아마도 말의 운명인지요. 그래서 삶은, 말을 배반한 삶으로부터 가출하는 수많은 부랑아들을 길러내는 것이지요. –김훈-



3. 내가 저자라면

“굶어 죽은 송장이 길에 널렸다. 한 사람이 쓰러지면 백성들이 덤벼들어 그 살을 뜯어 먹었다. 뜯어먹은 자들도 머지 않아 죽었다. 명나라 군사들이 술 취해서 먹은 것을 토하면 주린 백성들이 달려들어 머리를 틀어박고 빨아먹었다. 힘이 없는 자는 달려들지 못하고 뒷전에서 울었다.” [난중잡록(亂中雜錄)]

<칼의 노래>를 읽는 내내 가슴이 아팠다. 작가 김훈이 말하려는 절망을 절망의 힘으로 버티고자 했음이 이해되는 대목이기도 했다. 이순신은 절망적 상황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백성과 군인들이 굶주림으로 인한 아사(餓死)의 상황에서 삼시 세끼를 꼬박꼬박 챙겨먹는 자로서의 비애(悲哀). 자신의 충심을 끊임없이 의심하는 임금과 조정. 가족을 지키다 죽음을 맞이한 아들에 대한 죄책감. 무의미한 죽음을 극도로 싫어했던 혐오감. <칼의 노래>는 지독한 외로움 속에서, 처절한 삶을 살았던 한 인간에 대한 ‘연민’(憐憫)이다.

<칼의 노래>에 대한 자료를 조사하다 인상적인 글을 하나 발견했다.
강금실. 과거 ‘철의 여인’과 같은 반듯한 이미지를 가진 그녀. 그녀가 <칼의 노래>에 대한 서평과 함께 자신의 생각을 피력한 인상적인 글을 읽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칼의 노래>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 것 같아 길지만 인용한다.

“나에게는 답이 없다. 내가 무엇으로 사는가에 앞서, 내가 어떻게 살아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결심조차 서있지 아니하며, 그 추상의 의문으로부터 단 하루도 자유롭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희망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깊이 각인되는 고통과 절망이 키워내는 세속 한가운데의 신기루이기 때문이다. 아마 미리 그 사실을 알고서 살아가지는 못하였으리라.

내가 세상 끝까지 걸어왔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바닥의 촉감이 만져지는 듯한 시간들이 있다. 그 바닥에는 아무 것도 없다. 내가 살아있기 전 삶의 기억을 담은 맨몸이 내가 죽어 사라지기 전의 시간 속에 살아있을 뿐. 그리하여 삶은 살아있기 전 죽음과 다음 죽음 사이에 놓인 짧은 간격일 뿐. 이 간격은 생명의 개화이자 죽음으로 가는 과정으로서, 모든 의미가 문득 끊어지는 죽음과 같이 그곳에서 삶은 순연하다.

그곳에서 살아있음은 죽음과 죽음에게 몸을 내걸고 아무 두려움이 없다. 두려움이 없는 삶, 순간순간에 그 바닥의 체험으로 긴장하는 삶이야말로 세상 끝에 놓인 지점이 아닐까. 나는 세상을 걸어가는 길에 지칠 때마다 길목에 기대어 서서 두려움 없는 기세로 세상을 베어내어 진면목이 드러나는 살아있음을 그린다.

그와 같이 길목에서 서성이다가 만난 책이 김훈의 “칼의 노래”였다. 충무공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바탕으로 한 1인칭의 전기적 소설이다. 김훈은 이순신을 “한없는 단순성과 순결한 칼”로 묘사한다. 이순신은 조국의 남쪽바다에 눈보라처럼 몰려드는 적을 맞아서 그의 목숨을 내놓아 적을 베는 칼로 존재하였다.

그에게 현실은 정치가 아니라 오직 바다였다. 그의 칼은 정치의 향방에 따라서 이동하는 세태가 아니라, 순전히 바다를 적의 피로 ‘물들이기’ 위한 것이었다. 그의 칼은 정치적 대안을 설정하지 않았으므로, 그는 정치를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그가 정치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기 때문에 정치는 그를 두려워했다.

그의 칼은 온전히 칼로서 순결하고, 이 한없는 단순성이야말로 그의 칼의 무서움이고 그의 생애의 비극이었다는 것이다. 이순신의 바다는 칼날을 겨루어 살아있음과 죽음이 교차하는 세상 끝 지점이었던 듯 하다. 이순신의 바다는 돌아갈 곳이 없었다. 죽음을 베어 살아있음이 한 자루 칼 끝에 놓여 있었으니, 그 살아있음은 기꺼이 삶을 버림으로써 죽음과 삶이 서로 다르지 않은 경계에 이르러 가능하였다.

김훈이 전하고자 한 이순신의 삶은 두려움이 없는 순결성으로 인하여 무서움에 전율케 하였다. 생을 넘어 바닥에 이른 삶을 산다면, 그를 영웅이라 부르겠다. 비속한 사람은 그 긴장을 이겨낼 힘이 도저히 없다. 비속한 나는 다만 김훈과 함께 잠시 그 살아있음을 만나서 마음 속에 눈물겹다.”

마지막으로 강금실 전 장관은 세상을 베어 삶의 순결성에 이르고자 하는 사람, 스스로 베이는 칼이 되고자 하는 사람에게 <칼의 노래>를 권한다고 마무리하고 있다. 멋진 문구인 것은 분명하지만, 쉽게 이해되지는 않는다.

세상을 베는 칼이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이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걸까?
‘순결성’이라는 것은 진정 무엇인가? 아무튼 의문투성이다.

이에 문학평론가 ‘남진우’의 서평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나는 이 소설에서 조선시대 중기를 대표하는 명장이자 민족의 영웅인 한 인물의 초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고통스럽게 살아 넘기고 있는 작가-지식인의 처절한 내면의 기록을 본다. 작가가 이순이란 ‘페르소나’를 빌어 자신의 내밀한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이 작품이 보여주는 진실에 더 가까울 게다. 이 소설이 보여주고 있는 이순신은 차라리 현대적 의미에서 삶의 무의미와 죽음의 현존 앞에서 고뇌하는 한 고독한 실존주의자의 모습에 근접해 있다. 작가는 이순신의 내면 깊숙이 침투해 이순신으로 하여금 말하게 하지만, 그 말의 실질적 주인공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 김훈 자신일 것이다. 이순신은 그는 자기 마음 속의 지옥과 싸운다. 그러나 시종일관 이순이 싸우는, 싸워야 하는 궁극적 대상은 바로 자신이다. 그 싸움은 그 어떤 보답도 없는 상황, 그 어떤 가치의 수호도 가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더욱 비극적이다.”

평론가 남진우는 <칼의 노래>라는 작품을 80년 굴종의 시대 속에서 생존을 위한 작가의 처절함을 말하고 있다고 한다. 그 작가적 성찰과 내면이 이순신에게 투영되어 비춰지고 있다고 한다. 김훈은 서문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2000년 가을에 나는 다시 초야로 돌아왔다. 나는 정의로운 자들의 세상과 작별하였다. 나는 내 당대의 어떠한 가치도 긍정할 수 없다. 제군들은 희망의 힘으로 살아 있는가. 그대들과 나누어 가질 희망이나 믿음이 나에게는 없다. 그러므로 그대들과 나는 영원한 남으로서 서로 복되다. 나는 나 자신의 절박한 오류들과 더불어 혼자서 살 것이다. 사랑은 불가능에 대한 사랑일 뿐이라고, 그 칼은 나에게 말해주었다. 영웅이 아닌 나는 쓸쓸해서 속으로 울었다. 이 가난한 글은 그 칼의 전언에 대한 나의 응답이다.” – 서문 중에서 –

질풍노도의 시기를 살아왔던 저널리스트의 고뇌와 고단함을 읽을 수 있다. 타협, 굴종, 회환 그리고 부끄러움. 이 죽음과도 같은 시대를 살아남은 지식인 무리 속에서는 그는 서 있었을 것이다. 강금실과 남진우는 <칼의 노래> 속에서 죽음과도 같은 절망을 베고,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희망의 노래를 본 것 같다.

김훈의 몇몇 인터뷰와 이 책을 살펴볼 때, 그가 작품을 통해 지식인으로서의 처절한 자기고뇌를 투영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가 ‘희망의 노래’를 독자들에게 던지고 있는 것은 의문이다. 그는 이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답게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음에 대해 철저하게 염세적이며, 허무적이다. <칼의 노래>를 덮으면서도 이 느낌은 지워지지 않는다. 주인공 이순신의 처절함, 고독함, 외로움, 절망감. 이 모든 단어들이 사무치게 가슴에 들어오지만, 그 사무침을 어떻게 승화시켜야 할 지에 대해서는 해답이 없다. 절망이 절망으로 끝나고, 허무가 허무로 끝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언제 한 번 김훈이라는 작가를 만나보고 싶다.

* 추신 :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저자라면]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책에 대해 충분한 숙지가 부족해서인지, 글에 대한 간절함이 모자라서 그런지,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질(質) 좋은 리뷰를 쓰지 못함이 부끄럽습니다. 내일까지 붙들고 있을까 고민하다 불쑥 올립니다. 못난 펜이 우네요.
IP *.111.35.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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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7 22:59:41 *.41.62.236
남진우의 글을 발췌해 놓았던 나였던지라 거암의 글이 또렷이 읽힙니다.

남진우는 오랫동안 편집자이고 시인이고 신랄한 비평가입니다. 신경숙씨의 남편이기도 하지요.

그런 그의 글은 김훈의 심경을 비교적 소상히 살피고 있다고 봅니다.
리뷰에 대한 고민이 이심전심이라 반갑고 남진우의 글을 봐서 반갑고,.

잘읽고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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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9 17:48:03 *.64.21.2
펜을 잡으면 펜이 항상 울더이다.
'니가 왜 감히 나를 잡고있니' 하면서
그럼 이렇게 말하지요.
'그렇게 말하면 배신이야 배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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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8.07.01 20:49:41 *.247.80.52
칼의 노래 리뷰를 쓰다 말고, 막막하여 연구원의 리뷰를 읽고 있다.

또박또박 전달되는 글들을 보며... '하~ 정말 무섭게도 쓰는구나'라고 느꼈다.
난 내공이 많이 부족하구나.
어제 네가 해준 이야기는 응원이었구나. 고맙다. (밥 얻어먹었다고 서비스가 들어간 것 알지? ^^)

쓰는 것은 언제나 어렵다. 바다에서 파도가 밀려오듯이, 그리고 삼시 세끼 밥때가 돌아오듯이.. 매번의 쓰기는 앞의 것을 가져다가 지금의 것을 채울 수 없다.

강금실의 문체가 멋지다. 무슨 말인지는 어렵풋이 알겠는데...단지 나는 그 수려한 글들을 지금은 기억하지 못함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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